성령집회 말씀1987.11.22 (일)
생명관리
- 선포일
- 1987.11.22 (일)
- 성경 본문
- 마10: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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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은 역사적인 말씀의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수료식을 예전에는 통과식이라 했습니다. 구시대의 터널을
통과해 신시대로 넘어왔다는 의미, 즉 종의 차원에서 아들차원으로 예수님을 통해 가게 되었듯이 아들차원에서
신부차원으로 주와 함께 통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늘 앞에 이 모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여건을 만드시고 능력으로 감동으로 이끌어 주신 총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표적을 일으키는
해 1년 내내 많은 기적이 일어났지만, 이번 수료식을 통해 생명의 표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6년 동안의 기나긴 신앙의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하시고 부활 역사의 문을 열어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수료생들이 잘 양육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관리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러기 위해서는 하늘의 관리방법을 알고 하늘의 방법대로 생명관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수료생들의 다양한 문제점들
을 이미 주님은 우리 가운데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말씀 듣고 있는데 믿음이 없고 화끈한 것이 안 생기는 사람>, <하라는 대로 하니 어려움 있다는 사
람>, <어려움이 있다는 사람>,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모르는 사람>, <하라는 대로 하니 어려움 있다는 사람>, <기도해도 안 깨달아 진다는 사
람>, <늘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힘들다는 사람>, <자기를 기억 않는다고 낙심하는 사람>, <고3 이라 섭리 뛸
시간이 없다는 사람>, <나는 부족하다 연약하다는 사람>, <늘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주관이 강한 사람>, <어
려움 환난을 피하려는 사람>, <자기에게만 어려움이 있다고 꽁하는 사람> 등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
겠지만, 우선 확실하고 분명하게 그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이끌어 준다면 그 때 그때의 고비에서 확확 전환을 하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신입생 입장에 서서 그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생명의 대한 애착
만큼 강한 관리는 없을 것입니다.
말씀 듣고 있는데 믿음이 없고 화끈한 것이 안생기는 사람
언젠가 광주에서 집회를 하는데. 한 명씩 면담을 하자니 한이 없어서 열 명씩 스무 명씩
한꺼번에 면담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개인 면담을 해야만 되는 자가 있으면 틈틈이 잠깐
잠깐씩 만나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면담을 하는 가운데 나한테 그랬습니다.
“저는 동생들이 두 명이나 교회에 나오는데 사실상은 반대를 하다 안돼서 저 애들이 뭘 듣고
그러나 들어보고서 반대를 하려고 계획적으로 왔는데 말씀을 반쯤 배우다가 말씀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다 배우고 말씀을 시인하면서 따라가기는 따라가는데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동생들만큼 믿음도 안 들어가고 다른 모든 청년들처럼 불붙는 심령이 안 생깁니다.
나에게는 화끈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믿음이 들어가게 기도 좀 해 주세요.”
“기도 받을 것도 없다. 자네는 말씀을 배웠으나 나를 모르는구먼. 나를 알 때까지는 그런
마음이 안 생기지! 저들은 나를 일었어! 자네는 모르고”
“어디에 사시는데요”(웃음)
아무튼 그 후 뭔가 생각을 하고 집에 갔던 모양인지 그 다음날 아침에 또 기어이 면담을
해야된다고 했습니다. 애들이 “한번 했는데 또 하느냐”고 옆에서 말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들여보내라고 했더니 다시 들어왔습니다.
“저도 알겠습니다.”
“자네가 제일 처음 공부하러 왔다 갔다 하면서 나에 대해 점을 쳐보기도 했구먼.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이제 알았기에 자네도 좋고 나도 좋고 피차 좋은 것이야”
“네! 열심히 가치 있게 인생을 살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취직이 안돼서 왔다 갔다 했는데
좀 부탁합니다.”
“그거 준비해 내가 하늘 앞에 이야기해 줄 테니까?
국가 앞에 부탁하는 것보다 하늘 앞에 직통전화 한 통화하는 것이 더 빠릅니다. 제가
국가한테도 부탁하고 하늘 앞에도 부탁을 해보았는데 어떤 것이 더 빠르느냐? 국가한테 부탁한
것은 석달 넉달 다섯 달이 걸려도 소식이 올동말동한데, 하늘 앞에 부탁한 것은 벌써 그 이튿날
따르릉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빠릅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전부 틀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급한 것은 톱니바퀴가 부러지더라도 막 돌려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돌려서라도
역사를 돌아가게 만들고 모든 문제가 풀려지게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19871122 주일 하나님과 나 마10:29-33
어려움이 있다는 사람
부산에 갔을 때도 어려움이 있다는 사람에게 그랬습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산에 가서 여러 가지 사
건을 넣고서 기도하고 왔는데, 다 해결해 달라고 했는데, 그것이 해결 안될 수가 없다. 나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
열심히 하늘을 섬기고 바라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산에 올라가서 두어 시간 기도하니까 내려가라고 하셨습니
다. 걱정하지 말고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백이 누구보다도 큽니다. 누구는 검사 백이 있고, 경찰
백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이 있습니다. 다윗이 검사 끼고서 골리앗을 이겼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
폴레옹 군사를 끼었습니다. 여호사밧을 의지하고서 같이 군대 협조를 받았습니까? 혼자서 단독으로 여호와만 의지하
고 가니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자기만 의지하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역사해서 다 해결하고 왔습니
다. 골리앗 목을 누가 잘랐는지 압니까? 다윗이 자르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다윗에게 신이 되어서 골리앗 목을 쳐
돌린 것입니다. 나도 군대에서 있어봤지만 못 하겠더라구요. 그렇게 무서운 일인데도 민족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의탁하여 골리앗 목을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들어오면 백만 대군도 안 무섭고, 아무 것도 무서
운 것이 없습니다.
19981104 수 아침말씀 어려움을이겨라눅17:22-30
하라는 대로 하니 어려움 있다는 사람
이와 같이 우리들이 하늘을 의지하고, 섬기며, 바라고, 기도하고 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백성을 그렇게 멸
하게 두지를 않습니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이 다 있는데,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내가
하라는 대로했더니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나에게 왔기에 “그래도 그 길을 가라”했습니다.
“거기서 살다보면 별로 이니 한번 집을 뜯어서 지으시오”해서 집을 뜯고 보니 먼지가 나고, 겨울에 춥고 그랬습니
다. 그러나 “그래도 밀어붙이면 집을 짓습니다”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무슨 사건을 주었을 때 그렇게 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가다보면 먼지 나고 어려운 사건들이 있습니다. 나도 이사를 가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있고, 몸부림이 있었습
니다. 그러나 그 때의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싹 처리해 주십니다. 그래서 “봐. 그래서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내
가 도사인 것이다. 앞날을 내다본다”했습니다. “교회는 별로 안나왔어도 마음은 항상 하늘을 섬기고, 총재님을 존경
합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을 섬기고 따르고 역사를 뛰면 얼마나 잘해
주시겠느냐?”했습니다. 이방 사람들도 그렇게 복을 받는데, 우리가 복을 못 받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따르고, 섬기
고, 위하고, 받들고, 좋아하며 가는데 복을 못 받으면 되겠습니까? 그리함을 받고 살아야겠습니다.
19981104 수 아침말씀 어려움을 이겨라 눅17:22-30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모르는 사람
어제도 캠퍼스 지도자들 350명이 왔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지 마라. 나도 어려서 그러다가 흰머
리 났었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잘하면 잘되고, 못하면 못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차에 올라타서 매번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산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광주로 가는데, 나는 어떤 길을 타고 갈까?’했더니 머리만 더
아팠습니다. 번민, 걱정, 근심, 염려가 꽉 차지해서 그런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늘을 잘 섬기고, 믿으면 잘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은 다 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그것이 진로입니다. 그렇게
해나가면 다 됩니다. 누가 무엇을 물으러 와서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여도 대답을 안 해줍니
다. 왜냐하면 본인이 하나님께 충성하면 잘되는데, 그것을 하겠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답이 안나오는 것입니
다. 인간의 책임분담 때문입니다.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동으로 갈까요, 서로 갈까요?”묻습니다. 그럴 때는 “네가
하늘 앞에 하기 여하에 따라서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잘된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할지를 모르기에
대답을 못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래? 목숨을 걸고 서약하고 하나님께 열심히 하라” “그렇게 하겠습
니다” “그러면 실천하라. 말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말은 다 필요 없다. 하겠느냐?”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뛰어라. 뛰어가는 만큼 된다”합니다. 최고의 삶의 이상 원리는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지붕 삼고, 하늘을 섬기고
위하고 받들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되면 다 되게 되어있습니다. 19981107 토 아침말씀 어려움을 이겨
라 눅17:22-30
기도해도 안 깨달아 진다는 사람
기도해도 안깨달아 질때는 자기 주관을 바꾸고 기도를 해야 된다
하늘이 가르쳐 주면 그대로 깨닫고 가야 하는데, 그 깨닫는 것도 기도해야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누가 나에게
말하기를 “많은 기도를 했는데도 안 깨달아집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관을 바꾸고 기도를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19990309 화 아침 너는 믿음이 충만한 자가 되라 마14:25-33
힘들다는 사람 19980429
오늘 아침에도 그랬습니다. 누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네가 힘들게 뛰니까 힘든 것이다. 내가 힘들게 했느냐? 네
가 더 열심히 안 해서 그렇다. 열심히 열이 나서 하는 사람이 힘들겠느냐?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을 봐라. 열심히 뛰
는 사람은 힘들다 소리를 안 한다. 그것을 구경하느라 서있는 사람이 힘들다고 한다”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열심
히 움직이라고 했고, 하나에게는 서있으라고 했을 때 서있으라고 한 사람이 움직이라고 한 사람보다 더 먼저 쓰러집
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움직이기를 싫어합니다. 나도 돌조경할 때 돌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움직이니까 덜
피곤한 것입니다. 그냥 서있으면 다리가 퉁퉁 붓습니다. 그러나 뛰면 자꾸 순환이 되어서 안 붓습니다. 물론 너무
어리니까 힘든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이를 안 따집니다. 육의 연령을 안 따지고, 정신 연령만 따져서
살핍니다. 나도 늦게 깨쳤을 때는 정신 연령이 어렸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여러분에게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러분
은 정신 연령이 어려도 군중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선생님이 있습니다. 믿음이 흩어지면 힘드는데, 그래
도 군중이 가는 길이 있으니 쉽습니다. 나는 군중이 가는 길이 없이, 혼자서 가시덤불 길을 걸어왔습니다. 여러분이
야 앞에 가는 사람의 뒤만 따라가면 됩니다. 19980429. 수 아침말씀 쫓아내지 않도록 하라 창3:22-24
고3이라 섭리 뛸 시간이 없다는 사람
(한 남학생을 지적하여 문제를 들으심. 섭리를 열심히 뛰고 싶은데 고3이라 시간이 없습니다) 사실 그런 것을 문제
가 아닙니다. 그러니 교사가 문제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공부하지 않고는 남을 못 가르칩니다.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나, 자나, 깨나, 먹으나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
다. 꼭 전도만 해야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은 지금 다 같이 답을 받아야 합니
다. 그러다가 앞으로 대학교에 가면 일도 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자기를 존재시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고3이면 공부
를 열심히 해야지요. 재수하고, 두 번 떨어지고 하면 그 때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쇼크를 받습니다. 아무리 덤프 트
럭이라고 해도 티코와 부딪치면 쇼크는 받는 것입니다. 섭리를 뛰어야 하는데 고3이라 시간이 없다는 사람이 있는
데, 그런 사람은 공부를 해야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
으면 하는 모든 짓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9980815
자기를 기억 않는다고 낙심하는 사람
하나님이나를태속에서부터기억하셨을까-하나님은 지구상의 사람이 일생동안 몇번 숨쉬고 죽었나를 아신다
성경을 그렇게 좋아하다가 나는 이런 사명에까지 들어 오게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1장5절을 보면 예레미야에
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태 속에 있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선지자로 구별했다. 그러니까 내
가 시키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종교에 대해서 너무 어린아이입니다. 육적으로 볼 때 많은 어른들 앞에 아
기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가서 전해 주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
신 말씀이 선지자급들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태 속에서부터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자기를 하나님께서 태 속
에서부터 기억하셨을까 생각하지요? 기억했나 안 했나 내가 한마디 얘기를 통해서 깨우쳐 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지구상에서 살 동안에 한 사람이 숨을 몇 번 쉬고 죽었는가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 갑자기 질
문해서 생각할 여유도 없이 수백 가지를 물어봤습니다. 지구 안에 있는 모래가 몇 알이냐고 물으니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놓고는 꼭 세어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늘 세어봤느냐고 물으시기에 그 이후로는 그런
것을 안 물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나에게 무엇을 물을 때는 조심해서 물으십시오. 그것을 이제까지 못 세어봤습니다.
성령님께 얘기하고 예수님께 얘기하니 왜 그런 것을 물어봤느냐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못 세어봤기에 오늘 또 세어
봤느냐고 물을까봐 겁납니다.
하나님의전지전능-씨를 뿌리기 전에 주인이 알 듯이 사람도 태속에서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깨우쳐주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너무 몰라준다고 얘기한 것이 많습니다.
“네 머리칼도 다 세어놨다”하셨습니다. 평생 그런 질문 안 할텐데 왜 세어봤나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전지전능 하시
다는 것입니다. 나도 나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 속에서 하면 청중을 쳐다보면 청중의 숫자가 딱 맞습니다.
그런 것 많이 봤을 것입니다. 한 명도 안 틀리게 맞춥니다. 그것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대체 못 맞춥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신기하다고만 생각하더라구요. 하나님이 우리를 태 속에서부터 아셨다고 했습니다. 밭의 씨가 우리들이라
고 생각하십시오. 땅은 태라고 생각하구요. 씨를 뿌리기 전에 주인이 밭을 가는데 거기에 무슨 씨를 뿌릴 지를 주인
은 다 압니다. 거기다 무슨 씨를 뿌리고, 무슨 거름을 할 것을 주인은 다 사다놓고 있기에 이미 압니다. 그 곡식이
커서 가을이 되어서 베었습니다. 곡식은 주인이 손에 쥐니까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 때에 곡식이 주인과 부딪친 것
입니다. 그 때 주인이 “내가 너를 태 속에 있기 전부터 알았노라. 땅에 떨어지기 전부터 벌써 알았다”고 한 것입니
다. 한 생명이 올 때는 그 태를 잘해주어야 그 생명이 태어나지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안 태어납니다. 그와 같이 의
미에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미 땅에 떨어지기 전에도 그 씨를 갖고 있기에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에 대한 것은 아무리 얘기해도 못 깨닫습니다. 깊은 것들은 말로 안되고, 영적으로만 전달되기에 그래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너를 알았다는 의미의 비유
씨가 태 속에 있기 전에도 알았다고 했는데, 그 때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밭에 씨가 떨어지기 전에 그 씨는 씨
앗 망태기 속에 있습니다. 씨앗 망태를 압니까? 씨를 뿌리기 전에 보관하는 곳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자의 태 속에
인간의 씨를 뿌리기 전에 사람의 씨가 있는 곳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씨가 어디에 있습니까? 의학적으로 얘기해보
십시오. 아버지 안에 씨 망태가 있습니다. 남자의 고환 속에 씨가 있습니다. 목의 갑상선 근방에 있고, 신장 근방에
도 있어서 세 군데에 씨를 저장해 놨습니다. “너를 태 속에 가기 전부터 내가 알았다”하신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방금 비유로 들어서 말씀을 주셔서 전해준 것입니다. “그 때부터 내가 너를 알았노라” 한씨는 남자
속에 있었고, 하나는 여자 속에 있지만 그 두 개의 씨가 합해져서 생명이 될 것을 하나님은 그 전부터 아셨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아셨느냐면, 한 사람은 미국에 있고, 한 사람은 한국에 있어도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기였을 때도 아셨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의 조상이 아기였을 때도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아기였을
때도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수십 대를 기어 올라가고, 수천 대를 올라가도 하나님은 아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
리 인간이 생각하면 머리에 쥐가 납니다. 지혜를 안 받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받게 되면 머리에 쥐가 나서 못 듣습
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태초부터 알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네 씨가 태초부터 시작해서 흘러가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태어나는 것을 내가 알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19990505 수 아침말씀 그리스도의
성품 사11:1-9-
요즘 애들 교육하고 있는데 낙심하는 사람, 자기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부르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뿐 아니라 선생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서 내가 빨리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보여도 선생님께서는 가진 것이 많
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느 때는 가만히 생각하면 내 자신이 초라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러면 네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라. 간판은 내놓고”라시는 느낌이 옵니다. 사도 바울이 안질에 걸려서 매일 울면
서 하나님께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네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하셨습니다. 유대교에 있을 때는 근심과 걱정과 아
픔과 번뇌였지만, 신약에 와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사니까 그러신 것입니다. 선생님이 구시대에 있을 때는 산에서
고생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1%도 고생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나의 입장을 생각하면 ‘애들 보기
에 체면이 안 서는데’하게 됩니다.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지
라도 그런 것은 다 버리도록 하십시오. 조금 어렵고, 조금 힘들더라도 그런 생각은 다 버리도록 하십시오. 이왕에
이 길을 가니까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길을 가야 합니다. 만일 내가 이 일을 안하고 다른 길로 갔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다른 길로 갔다면 우리 형님들을 앞서지 못했고, 동생들도 앞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규석이야 운전 기술
이라도 있어서 회사에 가서 많이씩 받겠지만, 나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형님들은 목회로 나갔지만 나는 길이 없어
서 제일 형편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나마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나가십시오. ‘지금의 상황은 장차의 영광에 족히 비할 수 없다’고 늘 생
각합니다. 그러면서 욕심을 버리려고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살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갖고서 삽니다.
여러분들도 여기서 있으면서 수도생활한다고 생각하면서 있으면 딱 맞습니다. 수도생활치고는 너무 빨리 끝나는 것
입니다.
19980110 토 아침말씀 주를 좇으라 마4:22
나는 부족하다 연약하다는 사람
. 사람들이 대개 ‘나는 연약하다. 나는 부족하다’합니다. 그것을 누가 모릅니까? 부족하다고 했으면 거기서 끝나고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하고서 일어나야 합니다. 자기는 못합니다. 나도 내가 한다고 했으면 못했을 것입니다.
나도 자포자기해서 못한다고 했지만 주님은 할 수 있고, 하나님은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지. 너는 못한
다. 그러니 내게 맡겨라. 늘 물어봐라. 늘 가르쳐줄테니. 그리고 입장이 곤란해도 내가 말하라고 할 때는 늘 말하라”
하셨습니다. 내가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지?’하지만, 주님이 하신다고 하면 ‘이것은 너무 작다’고 합니다. 월명동 작
업도 어느 때는 ‘이것을 언제 다하나? 고달프다’하는데 내가 한다고 하니까 고달픈 것입니다. 그런 말을 했더니 하
루는 말씀을 다섯 시까지 전하게 하시더니 2시간만에 23개의 돌을 놓게 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해도 그만큼 하기가
힘든데요. 그 다음에는 시간이 있어서 아침부터 돌을 놨지만 15개 놓고서 끝났습니다. ‘야,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 차이가 엄청나구나’깨달았습니다. 나를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
나님이 함께 함으로 되는 것입니다. 기성은 태양이 멈추었다고 하지만, 자기 시계만 약이 없어서 멈춘 것일 뿐입니
다. 다 쓸데없는 얘기들입니다. 답은 다른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10시간 할 것을 2시간에 끝마친 것
입니다. 그것이 기적이고, 이적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 시간적 표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늘 생활 가운데
가르치기에 어디에 가서도 헷갈리지 않는 것입니다.
19980626 금 아침말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옵소서 요11:21
‘나는 힘들다. 나는 못한다’고만 하면 안됩니다. 기독교는 예수님만 믿어도 해나가는데, 왜 섭리를 직접 지휘하고 있
는 선생님이 있는데도 힘들다고 합니까? 부족하다고 하는데 물론 힘들고 부족합니다. 자기의 부족을 먼저는 인정해
야 합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나도 전에 ‘나는 부족합니다’하니 맞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머리가 나쁘고 지혜가 없습
니다’하니 그것도 맞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안됩니다. ‘하나님, 나의 부족과 지혜 없음을 인정하셨
죠? 인정하셨으니 나에게 은혜를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하여서 은혜를 받고, 가르침을 받고서 다시 뛰었습니다.
그런데 맨날 ‘나는 부족하다. 나는 자신이 없다’고만 하고 말면 안됩니다. “너는 부족하고 자신이 없다. 그러나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 그러면 그만큼 된다”하십니다. 나도 그런 일이 있어봤지만, 사람들이 그러고 말면 안됩니다.
나는 왜 남 같지 않은가 하는 사람
19980627 토 아침말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옵소서요 11:21
이런것을하나님께서주신것을나는감사합니다.철학적이며,따지는것,쪼개는것,살피는것,답을찾는것을주
신것을늘하나님께감사합니다.그러니까감사하는가지수가여러분보다내가더많을것입니다.그리고여러분
들이‘나는왜남같지않은가?’할것이없습니다.그코스를오면다똑같습니다.청주에서차타고오다보면붐비고
밀리는곳이있습니다.그럴때‘나는왜하필이면여기에살게되어서이렇게고생하나모르겠다’할것이없습니다.
다똑같습니다.부산에서오는사람이나,서울에서오는사람이나그런곳은다있습니다.그러나빠져나오면다같
이월명동에와있습니다.그와같이자기코스의인생을살면서원망하지말고,불만하지말라는것입니다.누구든지
다그런것이있으니까요.가시덤불을헤치고나왔을때는다동일한곳에서게되니까요.그러니까‘나는이코스를
벗어나서다른코스로해보겠다’해서는안됩니다.‘여기밀리니까다른곳으로가보자’하지만거기도밀립니다.고속
도로가밀리면사람의심리는똑같아서다국도로빠지기에국도도밀리는것입니다.그때는‘여기도밀리네.그럴
바에야아까저리로그냥갈것그랬다’합니다.이와같이자기인생포기하고남의인생가운데덤으로살려고하
면안됩니다.자기것은자기가언제처리해도처리를시켜야합니다.그러면서살때에감사하는마음이자꾸생기
는것입니다.안된다고생각하지말고,그런것을자꾸처리하고처단을시키십시오.쓰레기통에자꾸버리다보면
쓰레기통이넘치는것입니다.그때는화장실푸듯이퍼없애야합니다.자꾸넣기만할줄알고소각시킬줄모르면
안됩니다.이와같이우리들도누적된죄나,잘못을자꾸하나님앞에소각을시켜야합니다.그렇지않으면안된다
는것입니다.누적된일을즉시즉시소각을시켜야합니다.그래야집이깨끗해집니다.그래야마음의집이,양심의
집이깨끗하게되고,기분이좋은것입니다.깨끗한집에있으면기분이좋지않습니까?월명동에오면왜기분이
좋은지압니까?월명동에오면휴지쪽이많이돌아다니고,여기저기서냄새가나면기분이나쁠것입니다.워낙
깨끗하고,맑고,물도깨끗하니까기분이좋은것입니다.그밑의농촌은돼지냄새가나는데,올라오면신선한공기
가탁터지기에기분이좋은것입니다.거기다가여기저기돌조경도해놓고만들어놓으니까좋은것입니다.연못
은아직공사중이기때문에사람들이안갑니다.거기에팔각정이그렇게좋은것이있어도잘안들어갑니다.그러
나운동장은다정리되었기에막옵니다.이와같이여러분의신앙도그렇게해서개인개인을세밀하게잡아나가
야지,덜퍽덜퍽해서는안됩니다.그렇게해서는곤고함이오고,어려움이옵니다.자기의문제를해결해야한다는
것입니다.방구들놓고,보일러를싹깔듯이해야합니다.남의집에가봤자손님으로갔기에며칠있다가나와야합
니다.나도여기에손님으로왔기때문에아무리좋아도왔다가바로가야합니다.이와같이자기것으로완전히
만들어서들어앉는자가되어야합니다.바둑둘때도자기집을지어야상대에게안뺏깁니다.그런것을초근초근
해나가야문제가없으니까기뻐서늘감사가나오는것입니다.
19981116 월 아침말씀 하나님께 감사하자 시118:1
늘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어제 교역자랑 같이 누구 만나러 갔다가 교역자 전화하러 간 사이에 나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유명한 식
당이면서도 그리고 차마시는 장소였습니다. 그 만난 사람을 보내고 교역자가 나가고 내가 거기 혼자 있었습니다.
혼자 있으니 적적하더라구요. 그때 나는 글을 썼습니다. ‘홀로’라는 시를 썼습니다.
홀로
나는 지금 홀로 앉아 있으나
홀로 앉아 있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쌍쌍
차를 마시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다.
오 나는 모두가 홀로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홀로 앉아 있지 않는다.
존재하는 자가 내 옆에 존재하고 계시다.
나는 그와 더불어 대화하며 이 글을 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그는 우리를 보고
나와 내 주변 사람을 쳐다봐 주시고 계시구나.
내가 그인줄 누가 알자 있으랴.
오 그 존재하는 자가 이곳에 내 옆에 와 계신줄
누가 알자 있으랴.
이렇게 글을 써놨습니다. 여러분들이 홀로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존재하는 자가 옆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십
시오. 온 섭리의 사람들 지금 혼자 있다 생각을 하지 마세요. 옆에 존재하는 자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자가 옆에 그
영혼이 옆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이 예수님이 내가, 그 존재하는 자가 그 옆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면서 같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대화를 해보라구요. 여러분들은 전도하러 다니다가 공원에 멍하니 서있고 회원을 모집하러 다
니다가 혼자 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 화장실에 혼자 앉았을 때 혼자 있다고 생각을 하고, 개인 목욕탕에 있
다고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많아 혼자있을때 말씀을 들었습니다. 산에 있을때 얼마나 수십년동안 혼자
있었습니까. 가정생활 할 때도 얼마나 혼자 많이 있었습니까. 나무하러 갈때도 혼자. 오히려 나는 홀로 있을때 많
은 깨달음을 받게 되었고 많은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존재하는 자가 내 옆에 계셔서 말씀해 주시고 깨우쳐 주신것
입니다. 근원자 존재하는자. 그는 스스로 존재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스스로 존재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심심하고 왜롭고 쓸쓸하고 혼자 있다고 생각해서는 결
단고 자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영적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사람이 의인이 되어서 같이 존재하는 것도 있고 죄
인이 되어서 같이 존재하는 것도 있습니다. 무신론은 무신론을 위해 존재해주고 유신론은 유신론을 위해 존재해
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섭리사의 모든 사람들이 홀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홀로 침대에서 혼자 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존재하는 자가 옆에 계십니다. 외롭고 쓸쓸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옆에 가 주십니다. 내가
산에 있을 때 그렇게 오래 기도하면서 혼자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그 도를 깨우쳤습니다. 어느날 전도하고 집
에 돌아 오는데 새벽 두시 세시 성황당 길을 넘어 올때, 아 밤중길 나 혼자 걷는데 왜 내가 이렇게 담대하고 무서
운 것을 모르지? 오래 산길을 걷다 보면 그러하겠지..오래 산길을 걷는다고 그럴 수가 없는 것인데. 그때에 나는
그럴 리가 없어. 하나님은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천사들은 나를 따라 다니기 때문에 밤중에 홀로 걸어도 무섭지
않은 거야. 그렇게 생각을 굳혔을 때 내 옆에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가고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깨끗한 옷을 입은
사람들 남자 둘이 가고 있었습니다. 약 5m 앞에 7m 앞에. 나랑 삼각을 이루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시골길 좁지만
그들은 공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땅을 밟는것 같지만 그대로 떠서 갔습니다. 사람 걷듯이 거리를 맞추어 나를 처
다 보면서 좌우로 처다보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아! 수호신이로구나 천사로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
원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경호원 같이 천사를 보내준다고 그랬거든요. 구원 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유지하도록
저들은 부리는 영으로 구원얻은 자를 섬기라고 보낸 자들이 아니냐 그럽니다. 음성으로 그 위에서 들렸습니다. 그
러면서 히브리서 2장 11절이 딱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아하! 저들이구나. 그래서 내가 무서움을 타지 않는 구
나. 뒤에는 또 누가 따라오나 보니까 안보이는데 많은 사람이 따라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내가 혼자
있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나 화장실을 가나 혼자 있지 않는다. 하나님의 전단은 시간이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는
시간이 있지요. 우리는 모르니까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장실에 있다고 전화가 안옵니가? 목욕탕
에 있다고 전화가 따르릉 안합니까? 밥을 먹는다고 잠을 잔다고 전화하는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 전화를 하기 때
문에 지금 화장실에 있는지 목욕탕에 있는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수시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항상 근신하고 있어야 합니다. 19990216 화 아침말씀
주관이 강한 사람
사람들은 정말로 천둥번개를 치는 말씀, 철장같은 말씀이 아니면 말씀을 듣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기의 주관을
깨부수고 자기의 사고를 깨부수는 말씀을 주어야만 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주관과 사고가 너무 강합니다. 여러분
들 중에도 과거에 기독교, 천주교 할 것 없이 다 다녀보았지만 그 주관이 깨졌을 것입니다. 안 깨져서는 올 수 없습
니다. 일부러 안 깨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안 깨질수록 손해가는 것입니다. 늦게 깨질수록 손해가 갑니다. 새로운
역사에 전진하는 사람들은 구역사에 있을수록 손해가 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관이 일찍 깨질수록 하나님의 주관
으로 뒤바뀌니까 이익입니다. 바로 이런 주관들을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부수듯이 깨부수어야 합니다. 불꽃같이 보
고, 공의로 심판을 하고, 많은 생명들이 따르고, 자기 밖에 모르는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야 사람들이 듣는다는 것입
니다. 그때는 이미 말씀이 거의 끝났을 때입니다. 19980111 주일 사랑의 본질 마 22:34-40
어려움 환난을 피하려는 사람
그러면 나의 즐거움에 참예하지 않은 것을 구체적으로 몇 가지만 들어서 얘기해주겠습니다. 나의 즐거움,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예해야 합니다. 즐거운 역사라는 것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역사가 끝난 다음에 즐거
운 역사가 옵니다. 탕감과 형벌이 끝난 다음에 옵니다. 그런데 그 기나긴 탕감과 형벌이 끝났어도 즐거운 역사에 참
여하지 못한다면 너무나도 안타깝고, 너무나도 뼈아픈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에도 참석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주에 저주가 또 겹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편 죽어 묻고 돌아오다가 그 영구차가
뒹굴어서 자기 아들도 또 죽은 입장과 똑같아서 곡에 곡을 더하는 입장입니다. 탕감이 끝나고, 형벌이 끝난 다음에
즐거운 역사가 시작되는데 거기에 참여를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어
려움과 환난과 핍박과 그리고 고난이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즐거운 날이 오게 하나님께서 조직을 해놨습니다. 대개
보면 시험이 들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뛰어 도망가고, 집을 뛰쳐 도망가고, 방구석을 뛰쳐나가고, 섭리사를 뛰쳐나가
고 하는데, 가서 고통이 더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한 고통으로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더하고,
어려움이 더합니다. 다윗의 시에 나온 대로 “내가 괴로워서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바다 깊은 데로 숨었더니 하나님
은 미리 와 계셔서 왜 이제 오느냐는 식이다”라고 문학으로 썼습니다. “내가 바다 깊은 곳에 갈지라도 거기에도 하
나님이 계셔서 나를 책망도 하시고, 꾸짖기도 하시는 하나님이다. 내가 환난과 어려움을 피해서 어디로 가오리까”했
습니다. 내가 다시 이르는데, 환난이 있을 때 환난을 피해서 다른 데로 가면 그 환난이 곱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
래서 일은 거기서 처리해야 합니다. 비유를 들어서 말할 진데, 여러분이 앉아있는 뒷동산 꼭대기에서 돌을 뒹굴렸는
데 10m에서 못 잡았다면 20m에서 잡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뒹굴어 가는 탄력에 의해서 10배의 힘이 더 들
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은 그 자리에서 꺼야 합니다. 불은 그 자리에서 꺼야지, 더 가서 끄려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와 이런 비유의 말씀을 볼지라도 모든 환난은 그 자리에서 이기고 처리를 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목회를 해봐서 모두 알 것인데, 애들이 힘들면 뛰쳐나가고, 힘들면 다른 데로 위로 받으러 가고,
힘들면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그것을 쉽게 해결하지는 못하는 것을 봤을 것입니다. 해결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나
마 위에서 늘 기도를 해주기 때문에 비비작 거리는 운이라도 있기에 살지, 자체적으로는 힘듭니다. 원리적으로, 법
칙적으로는 자기 위치를 떠나면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위치에서 이기라는 것입니다. 자기 위치가 그래도 좋
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접한 환경이기에 익숙하고 그 위치에 있을 때 알기에 상황 판단이 빨리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치를 벗어나면 첫째는 사망 주관권의 세계, 사탄 주관권의 세계가 됩니다. 자기가 뛰던 곳은 생명 주관권
의 세계라 하늘의 빛을 받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못 이기면 안되게 되어있
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원리입니다. 원리란 100번하면 100번 다 그렇게 똑같은 것입니다. 천번을 해도 동일하게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법칙입니다. 자기의 환경과 자기의 위치에서 힘들고, 앞사람과 옆사람과 윗사람에
게 힘든 일이 있으면 거기서 처리해야 합니다. 나로 인해서 시험을 받았으면 나로 인해서 풀고, 옆 사람으로 인해서
시험을 받았으면 옆 사람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이치가 그렇습니다. 두 가지입
니다. 그 사람에게 풀지 못하면 그 자리를 뜨지 말고 그 옆 사람을 통해서라도 풀어 가는 법이 있습니다. 아주 쉽습
니다. 환난을 받을수록 더 침착하고, 어려움을 받을수록 더욱 자신감을 가져야 될 것이며, 힘들수록 더 용기를 가져
야하는 것이 비상 조치입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비상조치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998년의 해가 저물어가고, 태양이 목을 매달아 마지막 얼굴을 인류에게 비추는 모습을 쳐다보며 오늘 성
지땅에서 여러분과 같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전국과 온 세계의 복음의 나라, 섭리의 나라에 있는 여러분들, 여기
서는 늘 말씀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그야말로 계시록에서 그 제단에 불이 강같이 흘러간다는 말씀과 같이 여기 성
지땅으로부터 시작해서 말씀이 흘러서 동방으로, 서방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마음속까지 도착하게 됩
니다. 마음의 밭과 논에, 그 농경지에 풍부하게 적시고도 남아야하겠습니다. 그 동안도 환난에 대한 것을 늘 가르치
며 말씀해왔지만, 오늘은 종합적으로 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어려움을 항상 이기고, 그 자리에서
이겨버려야 합니다. 그 자리를 뜨면 못 이깁니다. 힘듭니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니 자꾸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어
려움을 피하면 안됩니다. 볼을 달고 갈 때도 골키퍼를 피해서 넣으려고 애를 먹으면 잘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골키
퍼 앞까지 골을 몰고 왔는데 거기서 골키퍼를 피해서 어떻게 넣으려고 합니까? 거기까지 가면 상대편이 벌떼같이
목숨을 걸고 쫓아옵니다. 그러니 골키퍼를 의식하지 말고 그냥 차고싶은 대로 차야 합니다. 피해서 차려고 해서는
못 넣습니다. 피한다는 것이 유익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깨닫고 알라고, 원리를 깨우쳐 주려고 10
명, 20명의 골키퍼를 놓고서 하기도 합니다. 그 때는 골키퍼를 피해서 넣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무조건 찹니다. 골
키퍼가 서로 붙어서 있는데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골키퍼를 피해서 골이 들어갈 구멍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때
리면 볼이 책임지고 들어갑니다. 골키퍼를 넘어트리고, 때리고서라도 들어갑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들도 어떤 어려
움이 있으면 일단 부딪치라고 합니다. 구멍이 어디에 있다고 구멍을 찾고 있습니까? 골키퍼 혼자 있을 때도 나는 구
멍을 안 찾는데, 무슨 구멍을 찾습니까? 다 구멍인데요. 볼 들어가는 곳은 다 구멍인 것입니다. 골키퍼의 가슴을 뚫
고서도 들어갈 수 있고, 머리통을 때리고서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 구멍이고, 다 찬스이고, 기회인데 그
앞에 가서 기웃거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정말로 할 일없는 축구 선수라고 합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들도 전문적인
프로 급의 지도자라면 앞에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의식하지 말고 그것을 그냥 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치고 들어
가다 보면 문이 생기고, 길이 생기고, 구멍이 생깁니다. 전부 문종이로 발라놓았는데 돌을 집어 던져야 구멍이 생기
지, 그냥 구멍이 어디에 있는가 찾으면 있겠습니까? 그러나 때리면 그냥 구멍이 뚫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세상
을 살 때에 그런 비법과 이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가는 여러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게 다 해먹는 방법이 있으니까 해
먹지, 해먹지 못하는 방법만 있어서는 못해먹는 것입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먹는 방법이 있고, 잇몸이 없
으면 옆구리를 찢어서 집어넣는 방법이 다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가장 크니까요. 최종 마지막의 세계에서는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그런 방법을 찾아서 열심히 뛰고
달려야하겠습니다. 19981229 화 아침말씀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 마25:21
선생님 따라가기 어렵다는 사람
이렇게 극적인 약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을 성서의 말씀으로 돌아오면 극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극적인 해결하는 방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쉽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늘 그대로 하고 있습니
다. 극적인 어려움에는 극적인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못해서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대해
서 흔들리는 것도 그렇고, 가정에 문제 있는 것도 그렇고 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되는 것이니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따라오면 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따라가는데, 어렵습니다”하지만, 따라오기만 하면 됩니다. 따라오기만 하면 해결 안된 경우는 없습니다. 자기가 따라
오다가 집에 가니까 안된 것일 뿐입니다. 아까 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와서 농구하면서 그랬습니다. 애들이 넣는데 안
들어간다고 하기에 내가 자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볼이 돌아서 들어가고, 손끝에서 돌리며 넣어야
한다. 그러니까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그 원리만 절대로 배워라”했습니다. 100번하면 100번 되는 것이 원리입
니다. 손가락 쓰는 것과, 돌리는 것 두 가지를 배워서 나는 넣는 것입니다. 자기도 해보고 넣으니 “나도 된다”하면
서 놀라더라구요. 이와 같이 나와 같이 따라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유
달지 말고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산골짝에서 기도만 하면 되나? 신학도 가서 공부도 해야 뭘 배우지’합니다. 그러
면 예수님께서 “어휴, 정말로. 이 세상 사람이 모두 네 모양이다. 나를 안 믿고, 모두 학문만 믿고 따라간다. 그러니
되느냐? 사실은 신학도 하나 배울 것이 없다. 무조건 내 말 들으면 되잖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신학을 하나도 안
배웠습니다. 안 배우고 예수님만 따라가다가 그 공부를 다 한 것입니다. 그 후에 신학에서 무엇 가르치나 가보니 아
무 것도 아닌 것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근본을 못 헤치고 있었습니다. 수박이 있으면 딱 쪼개서 먹
어야 하는데, 맨날 수박 겉만 핥다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그런 것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여
기서만 다 배우면 신학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배우면 신학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배우고서 80개
교파를 돌아다니면서 핵심 논리를 보니까 다 이치가 안 맞습니다. 하나는 땅에서 온다고 하고, 하나는 이 땅을 불
심판한다고 하고, 하나는 공중에서 온다고 하고 다 다르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두 가지를 다 주장
합니다. “맞다. 지구 자체가 공중이니까 공중에서 온다는 말이 맞다. 땅이 공중이니까 맞다”고 풀어버립니다. 그러니
까 하나님께서 공중 재림을 하신 것입니다. 공중 재림은 지구에서 다시 한다는 의미입니다.
19981113 금 아침말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눅24:26-35
생활 속에서 보여주고, 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돌을 같이 쌓아도 “선생님, 왜 이 돌을
안 쓰고 다른 돌을 썼습니까? 나는 이것을 쓸 줄 알았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했습니까?”라고 물어보지 않으면 잘 모
릅니다. 묻지 않기에 나는 그냥 넘어갑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묻기에 다 압니다. “하나님, 왜 이 돌을 놓아야
합니까? 왜 이렇게 해야합니까?”라고 묻기에 대개는 압니다. 더 살아나고, 더 해야될 일이 있고, 더 기도하고, 더 말
씀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쉬운 얘기를 하면 그렇습니다. 그래야 더 살아나는 것입니다. 기성은 죽어있습니다. 에
스겔 골짝같이 죽은 시체들입니다. 어른들 말 중에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식 불
알 만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 필요 없습니다. 죽은 놈 갖고서는 일을 못하고, 산 놈을 갖고서 일을 해야합니
다. 산 놈도 살았다고 뛰어 돌아다니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살려놨으면 살려준 사람의 소원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소원이면 금방 풀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주적인 소원도 있을 것입니
다. 하나님이 살려주었으니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나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첫 부활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도 죽은 자 가운데 잠자다가 일어났습
니다. 예수님 때는 자세히 안 썼습니다. “고민했다. 슬펐다. 인생을 겪으며 자살하고 싶었다. 철도 자살을 하려고 했
었다. 나는 정말로 괴로웠다. 우리 아버지는 왜 목수가 되었나 모르겠다. 큰집은 제사장 가정인데... 나는 정말로 괴
로웠다”고 안 썼습니다. 그러나 그런 괴로움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인데요. 그리스도는 최고의 고통과 어려움
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있습니다. “그가 먼저는 고난을 받고 온다”했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했을 때만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기 전에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생애 때도 고난과, 아픔과, 슬픔과, 번민과,
어려움과, 역경과, 고독과, 각종 각색의 인생살이의 모든 어려움에 닥치면서 힘이 빠지고, 스트레스 쌓이고, 자포자
기에 빠지는 어려운 역경을 겪으면서 사셨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한마디
로 “그가 먼저 고난을 받고 나오리라”하신 말씀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다 똑같은데, 여러분들 인생살
이 할 때 그렇게 편하게 지낸 사람 있습니까? 아무리 잘 먹고, 편하게 잘 지낸 사람도 정신적인 문제에서는 고난과
고통과 역경과 슬픔과 번민과 스트레스가 각종으로 있습니다. 아무리 부자 집에 산다고 해도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자 집에서 잘 먹고 잘 지내면 뚱뚱해져서 스트레스 쌓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누구든지 인생의 걱정은
다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누구든지 같은 고난을 받게 된다고 한마디로 했습니다. 다 똑같은 고난과 어려움을 받
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평창동으로 이사가면서 “평창동 사람들은 대궐 같은 집에 사니까 걱정 근심 없겠다”했었습니다. 그러
나 나도 나도 거기에 살았지만, 내가 걱정이 없겠습니까? 온 세상 걱정을 다 갖고 있는데요. 그와 같이 똑같습니다.
언젠가 우리 교회 다니는 어느 사람이 평창동 산다고 하고 어느 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대궐 집이다. 진짜 멋있
다”했습니다. “이런 집에 살면 근심 걱정이 없고 잘 살겠다”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아버지를 전도했습니다.
“전도하자. 독수리가 그 까짓 것을 못하겠느냐? 너는 망만 봐라. 내가 할테니”하고서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궁궐 같은 집에 살아도 걱정 근심입니다. 걱정과 고민은 다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걱정은 있는
것입니다. 부자도 있고, 달동네 사는 사람도 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있고, 재림주를 믿어도 다 있는 것
입니다. 다 있는데 누가 많이 해소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인생 육신을 쓴 만큼은 어려움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옛날에 비해서 보다 적습니다. 옛날에는 1만개가 있다면 지금은 하늘을 위한 생각을 하기 때
문에 걱정이 적어졌고, 걱정을 해도 걱정과 근심이 다릅니다. 걱정을 해도 주를 위해서 하고, 주를 위해서 염려하고
합니다. 주를 위해서 하니까 섭리사 오기 전에는 나를 위해서 염려하고, 육신을 위해서 걱정하던 것과는 수준 차이
가 있는 것입니다. 수준이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으니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감격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옛날
에는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하루라도 일찍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는 찬송만 계속 불렀습니다. 그 찬송
만 몇 달 동안 계속 부르니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노래는 듣기 싫다. 이제는 그 노래로 영광 안 받는다. 그 노래는
이제는 부르지 마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마음만 기뻐서 그 나라만 가면 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만
돌아가면 산다고 하고, 이 세상을 쳐다보니 달동네고, 고구마나 먹고살고 하니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는 밭을 일군다고 해도 해봤자 밭농사일 뿐이었고, 도대체 솟아날 구멍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막막
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는 소망이 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할 것인데, 그런 데서 하나님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희망이 있는 세계를 찾으면 그 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막막하니까 하나님만 찾게 되
는 것입니다. 전에는 매일 그런 노래만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원래 죽으면서 하는 찬양입니다. 내일 모레 죽을 사
람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 모시옵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리라 그립던 벗들도 그 나라가면 만나리 돌
아갈 내 고향 하늘 나라”라고 염불 외우듯이 매일 불렀습니다. 도대체 희망이 없었습니다. 나무를 해다가 판다고 해
도 거기가 거기였습니다. 머슴살이를 한다고 해도 거기가 거기였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가서 봉급 받고, 잘되어서
누가 쓴다고 해도, 결혼해서 산다고 해도 거기가 거기였습니다. 영계에서 쳐다보니 세상의 그 끝은 다 고생이었습니
다. 그러면서 “에이, 3절이나 한 절 더 부르자”하고서 “천하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하였습
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막다른 골목에서 부른 노래였습니다. 이 세상에 남아서 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 기도를 하나
님이 받는다고 해도, 전도를 해서 사람들을 살린다고 해도 거기가 거기이니, 그 나라에 일찍 돌아가는 것이 최고라
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큰일난다”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늘 나라가 이 세상보다 못하다는 것입
니까?”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두 시간 계속 기도해서 하늘 나라에 가보면, 그 나라는 상상도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이런데 왜 예수님은 내가 여기에 오는 것을 싫어하시지? 이상하다”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잘못 먹
으면 큰일납니다. 여러분도 ‘섭리사 뛰어봤자 거기가 거기이다. 선생님도 알아주지 않고, 살아봤자 거기가 거기다’라
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왜냐하면 아침에도 애들 데리고 얘기하다 나왔지만, 밤 송아리가 있을 때 밤송이는 육신이
고 밤 알맹이는 영혼입니다. 밤송이가 시퍼렇던 것이 누렇게 되어야 익은 것인데, 밤송이가 익을 정도가 되어서 떨
어져야 그 안에 밤이 박혀있지 시퍼런 상태서 떨어지면 알맹이는 없는 상태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영혼이
자라기 전에 육신이 죽으면 없는 대로 하늘나라에서는 끝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인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영인체
는 고욤나무와 같아서 접붙여서 새싹이 나와서 참 감나무가 되기 전에는 다 필요 없습니다. 낙타 바위에 고욤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것은 베려다가 교육상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그 옆에는 돌감나무가 있습니다. 감이 탁구공 만
한 나무입니다. 감나무는 접붙여서 참 감나무가 되는 것인데, 원래는 돌감나무에는 접붙이지 않습니다. 고욤나무 뿌
리가 성하기 때문에 고욤나무에 접붙여야 잘 커서 감이 잘 엽니다. 이런 식으로 되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가 이 지상
에 살 때에 할 일을 못하고 죽으면 밤송이가 익지도 않고 떨어진 것과 같아서 그 밤송이는 까보나 마나 없습니다.
또 익지 않은 밤송이는 까지지도 않습니다. 알맹이가 없이 섶만 져서 그런 것입니다. 임신한 여자가 입덧한다고 미
리 애 낳자고 해서 낳았다면 석달 만에 낳았는데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그 이가는 못 살리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
고, 몸부림친 다음에 낳아야 아기가 옥동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참고 견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많은 일을 하고, 고통스러워도, 어려움이 있어도, 핍박을 당해도 참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더
좋은 부활을 하기 위해서 고통과 어려움을 이겼다고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더 좋은
영인체를 형성하기 위해서, 더 알밤을 형성하기 위해서 더 싱싱한 껍질인 육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
신이 더 뛰고 달리면서 충성하게 되면 알밤 같은 영혼이 성장됩니다. 그 때는 밤송이가 떨어져도 다행입니다. 알밤
이 익으면 밤송이는 자연히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송이가 안 떨어지면 알밤이 그대로 빠져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되어야지, 익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늘나라에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얘기를 듣고 “아, 그렇구
나”했습니다. 19981204 금 아침말씀 인생의 부활 요5:25
자기에게만 어려움이 있다고 꽁하는 사람
막상 심판에 이르러서 심판해보면 억울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기가 행해놓고, 자기가 받기 때
문에 억울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하는 말은 그렇게 큰 참고가 안되더라
구요. 그것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죄를 지었다”하면 “네 길만 가면 되었지, 저 사람 때문
에 네 가는 길을 못 가느냐?”합니다. 사람은 누가 아무리 어찌해도 곡식이 올라오듯이 올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것이 있습니다. 곡식을 뿌렸는데, 큰돌이 눌러서 못 올라오는 것은 있습니다. 아무리 주인이래도 밭을 덮다보면 돌
로 덮게도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갈고리로 덮다보면 어떤 것은 씨 위를 돌이 덮게 됩니다. 주인이 덮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의로 덮는 것이 아니고, 흙을 덮다보니 그 중에 더러는 돌로 덮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싹이
쉽게 못 나오고 삐지고 나옵니다. 곡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법칙에 의해서 보면 옆으로 삐지고 올라오게 만들
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보면 결국에는 다 올라오기는 올라옵니다. 올라와서는 “아니꼽고 치사하다. 왜 주인은 나
를 그렇게 덮었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살아보겠다고 올라왔다”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주인은 그런 것도 모르고
거름을 잔뜩 줍니다. 만일 주인이 그것을 안다면 “이 놈은 삐지고 올라왔으니 장하다”하고서 거름을 더 줄 것입니
다. 그러나 그렇게 삐지고 올라왔어도 가을은 같이 맞게 됩니다. 별로 늦지를 않습니다. 하루 늦게 났다고 해도 그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선생님도 일을 하다보면, 거름을 하고, 퇴비를 하다보면 퇴비에서 열이 나서 뜨거워서 죽기
도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아예 부터 주인은 많이 뿌리는 것입니다. 뿌릴 때 잔뜩 뿌려서 많이 나게 하는 것입니다.
날 때 더러는 없어질 것을 생각하고서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과 법칙을 갖고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
리의 삶은 그런 세계입니다. 항상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뚫고 올라올 줄 알아야지, 꽁하게 생각해서는 한도 끝도 없
습니다. 부모 앞에도 그렇고, 형제들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입장에 처해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그런 환경 속
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19981021 수 아침말씀 법을 지키는 자가 복을 받으리라 시 1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