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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1993.12.27 (월)

4 7단계 법칙

선포일
1993.12.27 (월)
성경 본문
마5: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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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단계 법칙 19931227 월 아침말씀 풍부한 삶 마5:33-42 기독교의 사랑 정도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다. 우리는 1급이다. 전자는 2급, 기독교는 3급, 4급은 천주교, 5급은 유대종교, 6급은 회교, 7급은 이방인으로 보면 된다. 역사가 그렇게 역사가 진행된다. 19970214. 금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비유를 하면 광산의 금줄이 있습니다. 금을 캐기 위해서 굴을 파고 들어가는데 아무데나 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을 못 캘 때는 ‘광목 친다’고 하는데 죽친다는 것입니다. 광목칠 때는 1년이고, 2년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못하겠다. 돈도 없고, 힘으로도 안 된다.”하고 그만둡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거기서 캤는데 그 이튿날부터 금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금도 가다가 맺힌 곳이 있습니다. 우리 도표(7단계 법칙)에도 있습니다. 금이 나려면 금나는 법칙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금이 안 납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무조건 아무데서나 금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금이 나는 법칙이 형성되지 않으면 절대 금이 없습니다. 금을 많이 캔 아버지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금이 50년 전에 1관이었는데 100년이 가면 금을 더 캘 수 있을까요, 그대로 있을까요?” 이런 것은 박사들도 모릅니다. 일반적인 것 즉, 금줄이 와야하고, 둘이 합해져야 하고, 딱딱해야 금이 난다는 것은 전문가나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아는데 이런 최종적인 문제는 신이 아니면 모릅니다. 하나님 아니고서는 모릅니다. 이것을 놔두면 더 많이 캘까요? 최종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꽉 쥐고 계십니다. 그런 것을 내줄 때는 생명과 바꾸면서 내줍니다. 남자가 최종적으로 “너, 나 사랑할래, 안 사랑할래?”하면서 인생을 내주듯이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일생동안 영원히 변하지 않겠다고, 변하면 죽이라고 하고서 하는 것입니다. 불교법도 그렇고, 기독교법도 그렇고 최종적인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4대 교리를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광산 전문가도 모릅니다. 이렇게 따지면 이런 답이 있고, 저렇게 따지면 저런 답이 있어서 분별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다고 합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1관이 그대로 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2관을 캘 수 있다.”고 합니다. 40년 동안 수백관 금을 캤다는 우리 아버지도 답을 못합니다. 최종적인 문제는 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마지막 문제는 못 풀더라구요.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도 그 동안 놔두면 더크는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 “태초에 하나님께서 1관으로 만드셨으면 그냥 있는 것이다.”, 아버지 - “그냥 똑같다.”) 하나님은 이미 그런 답을 할 것을 아셨습니다. 모른다는 것이 답입니다. 내가 산에서 답을 배울 때 그렇게 배웠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이렇게 답을 하실 것 같다고 하면 반대로 말씀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답을 했다 해도 거기에 따른 이론까지는 제출하지를 못합니다. 그 여자가 자기의 아내가 아니고서는 자기의 땅문서를 다 주지를 않습니다. 요즘은 아내라도 다 주지 않습니다. 면담하다 보면 부부의 금슬이 좋은데도 여자는 여자대로 꿍쳐서 감춰놓고, 남자는 남자대로 꿍쳐서 감춰 놓았더라구요.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품속에 있는 여인도 믿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왜 부부일체 되어서 잘사는데 믿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런 꼴이 있어서 그러신 것입니다. 다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꼽치면 안다고 하셨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꼽쳤다가 걸렸습니다. 하나님도 아닌 사도에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있었으면 이렇게 내가 손해 가는 일을 하겠느냐? 하나님 믿는 사람을 죽게 하겠느냐?”라고 오해하고 안 믿다가 불교를 믿게 되었고 너무 고마워 4억을 투자해서 암자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자기 것으로 다 해달라고 하고, 자기가 오라는 사람만 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사업을 통해서 상황의 도가 트였기에 그냥 당하지 않고 싸웠답니다. “그래서 내가 땅문서를 안 해준 것이다. 당신은 스님도 아니다. 뭘 해달라고 하느냐?”하면서 못으로 문을 때려박고서 30리를 걸어서 나왔답니다. 차가 있는데도 성격을 보여 주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아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답을 준다고 해도 답만 주면 안 믿어집니다. 천하의 모든 이치를 설명할 때에야 그와 똑같다고 압니다. 만물의 이치는 똑같습니다. 만물의 이치는 형성되는 대로 번져가게 되어있습니다. 형성이 안되면 번져가지 않고, 형성이 되면 막 번져갑니다. 박재수씨의 소가 하도 오래 살아서 소가 얼마나 사는가 물어보러 금산 소전에 가서 물어보니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하더랍니다. 왜냐하면 소를 죽을 때 까지 지켜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크면서 잡아 먹고, 팔아 먹기 때문에 누가 끝까지 지켜보며 연구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병들어 죽는 것만 봤답니다. 병들어 죽는 것말고 얼마나 사는지 누가 건강하게 관리하면서 지켜본 사람이 없습니다. 엊그제 와서 난로가에서 불쬐며 얘기를 하는데 소가 지금도 힘이 좋아서 구유도 들이받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보리를 내가 베었다고 자복했습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자기도 눈치는 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베어갔는지는 궁금했답니다. 보리 베어다가 소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도 일을 잘하고 말을 잘 듣기에 사람이 먹는 것을 베어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가 잘사나 보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나 보리 먹였다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랑 받으면 잘삽니다. 그리고 말 잘 들었다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 얘기하니 사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듣더라구요. 그 소를 갖고 가려면 갖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 소는 나와 말했던 소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이 형성되면 있게 됩니다. 조건이 갖춰지면 발전하게 되어있고, 조건이 안 갖춰지면 발전이 안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돌에는 왜 금이 없을까요? 조건이 안 갖춰져서 금이 없는 것입니다. 금줄이 지나가야 되고, 거기에 조건이 형성이 되어야 하고, 모든 조건이 갖춰지면 금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그러니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답입니다. 큰다고 할 수도 없고, 안 큰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건이 갖춰지면 2관도 되지만 안 갖춰지면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바로 만물의 책임분담입니다. 이것이 이치의 답입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소리를 못합니다. 지혜로운 자의 답은 들어보면 누구나 맞다고 하게 됩니다. 이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저것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누구보고 잘된다 할 수도 없고, 안 된다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 아들보고 부모가 항상 “내 아들은 잘될 것이다.”했지만 조건이 안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책임분담의 조건을 못해서 안된 것입니다. 그와 똑같습니다. 모든 만물의 이치가 똑같습니다. 모든 도는 딱 하나입니다. 도는 둘이 없습니다. 만물의 도는 하나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내가 “이것은 크는 법이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안 크는 법이다.”대답할 줄 알았을 것이나 아닙니다. 하나님의 답은 만물이 통하고, 온 인류가 통하는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