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기타 말씀1998.11.21 (토)

17 가인의 성격

선포일
1998.11.21 (토)
성경 본문
시118:1

첨부 파일

17 가인의 성격 19981121 토 아침말씀(월명동 감람산) 여호와께 감사하자 시118:1 하나님께서 왜 만들었는지를 알고, 왜 창조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참나무도 연구해보면 이것이 없으면 산이 존재하지 못합니다. 소나무만 갖고서는 산을 덮을 수가 없습니다. 참나무는 억세고 강하기 때문에 잘 큽니다. 잡목이 없다면 산도 없습니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다 깎여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구를 하면 무엇이 나옵니다. 그렇게 지식을 통한 하나님께 감사도 필요합니다. 지식이 있고, 아는 것이 있어야 하나님께 감사도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소나무 없는 곳에는 참나무를 베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아벨이 없으면 가인이라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벨 죽인 후에는 가인을 죽여도 벌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참나무 베라고 했더니 소나무를 베어버렸다면 그 때는 참나무를 베면 큰일난다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이치와 똑같습니다. 사막에는 풀도 없기에 선인장 가시라도 존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존재를 시키는 것입니다. 아벨이 없는 곳에는 가인이라도 존재시키는 원리가 그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연구하고, 알고 지식적인 입장에서 그 때 그 때 감사하고 감격해야합니다. 그리고 감사한 그것을 바로 모든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지도자가 되고, 가르치는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19980110 토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주를 좇으라 마4:22 하나님을 중심해서 사람이 둘이 있을 때는 둘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2위기대입니다. 하나는 잘되었는데 하나가 안되면 안됩니다. 안된 사람까지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인과 아벨처럼 하나만 하나님께 잘해서 영광 돌리면 항상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야 합니다. 혼자는 못 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있고 가인과 아벨이 있을 때는 아벨을 통해서만 가지 가인이 가는 길은 없습니다. 그 길은 놓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산이 겹쳐 있어서 가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둘이 일체된 상태라면 둘 다 길이 생깁니다. 그러나 일체되지 않으니 안됩니다. 가인은 이미 믿음을 상실했고, 행실을 상실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아벨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지 그 외에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가인은 실수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집에서도 돈 갖고서 실수해 버리면 다시는 그에게 돈을 안 맡깁니다. 이미 자기 돈을 갖다가 없앴다면 다시 돈을 달라고 해도 줄 수가 없습니다. 그 때는 작은아들의 것이기에 안줍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설명하면 바로 이해가 갑니다. 나는 비유로 깨우쳐 주기 때문입니다. 똑똑히 배워야 합니다. 말은 빨리 해도 똑똑히 알아들어야 합니다. 가인은 한번 실수를 했기 때문에 구원을 이미 상실한 것입니다. 믿음과 행실에서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가인 혼자서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구원받으려면 조건세운 아벨이라는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가인과 아벨이 있을 때 아벨은 하나님께 올라갔지만, 가인의 제물은 안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조건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걸렸느냐면 가인이 나기 전부터 걸렸던 것입니다. 그 편은 다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사단이 가입되어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벨을 통해서만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가인은 스스로 못 올라가 갑니다. 산이기 때문에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길도 안 닦은 산인데 차를 타고서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벨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벨만 하나님께 인정받기에 항상 그를 통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일이 없어서 복직된 역사였다면 계속 같이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똑같이 올라가야지, 왜 통해서 올라갑니까? 아까 가정의 비유를 했었습니다. 한 가정에 1억의 돈이 있고, 2명의 자식이 있는데 큰아들에게도 작은아들에게도 5천만 원씩 주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그 돈을 다 떼어먹혔습니다. 그리고 나니 다음에 또 하면 10억을 벌 것 같았습니다. 사실 벌 수도 있구요. 그러나 그러려니까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안줍니다. 다만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한다면 형에게 돈을 투자하겠습니다”하는 것입니다. 형은 이미 실수를 했기에 못 믿기에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조건을 통해서만 꾸어주는 것입니다. 가인은 영원히 구원을 못 받게 되어있습니다. 아벨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가인을 확대시키면 구약이고, 아벨을 확대시키면 신약입니다. 신약을 통해서만 구약은 구원을 받습니다. 구약인들은 신약의 주인인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로 안 오니까 구원을 못 받은 것입니다. 안 오고서도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면 바보입니다.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하면 결국 돈도 법니다. 아벨은 축복을 받았기에 어디에 가도 돈을 법니다. 가인은 실패한 경험을 통해서 다음 번에 돈번다고 하지만, 아벨은 실패를 안하고, 경험도 없지만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항상 하기에 경험으로 얻는 것보다 더 크게 얻습니다. 가인이 아벨이 시키는대로 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 때서야 사는 것입니다. 형과 동생이 같이 사업을 해서 결국 5억을 벌었습니다. 그러니까 상대를 구원시키니까 아벨도 놀을 것보다 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벨은 구원해야할 책임을 가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책임을 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안 하면 안됩니다. 꼭 해야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상태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벨 자리가 바로 메시아 자리입니다. 그를 통해서 가야만 합니다. 아벨은 하나님과 주고 받으며 통할 길이 있지만, 가인은 통할 길이 없습니다. 그는 아벨과 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니꼽고 치사해도 아벨과 통해야 합니다. 가인은 이미 변질된 불신의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이 걸어온 노정입니다. 그러다가 신약이 왔을 때는 다시금 하늘과 일체되었습니다. 가인을 여자, 아벨을 남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와가 한번 실수했기 때문에 이제는 여자를 믿을 수가 없어서 남자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해서 아담과 하와가 있습니다. 하와는 가인격이고, 아담은 아벨격입니다. 하와가 타락했기에 그는 다시는 못 믿겠다고 하셨고, 하와는 아담을 통해서만 가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습니다. 그 때 선과 악을 쪼개서 가인과 아벨을 나누어 내놓은 것입니다. 금과 은을 안 녹였을 때는 같은 금 취급을 받았지만 녹여서 제련하니까 금은 금끼리, 은은 은끼리 완전히 구분되는 것입니다. 은은 금 속에 들어가야 금 취급을 같이 받습니다. 금은 은 속에 들어가도 은 취급이 아니라 금 취급을 받습니다. 그것이 14k, 18k입니다. 은이 금에게 들어오기 전에는 높은 단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은이 동과 합해지면 동 취급만 받습니다. 섭리사는 이와 똑같은 입장입니다. 아벨의 입장에서 항상 가는 것입니다. 가인을 통해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로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있을 때 예수님 따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이것을 열납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둘 이상이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나는 그들과 함께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빼내고 말 잘 듣는, 예수님과 일체가 된 사람들을 말할 때 주체인 예수님과 대상인 따르는 사람이 일체가 되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예수님 이름을 가지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같은 핏줄이 될지라도 예수님 이름을 가지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너희 스스로 아버지 앞에 가기는 가되 반드시 내 이름을 대도록 하라”하셨습니다. 거기서는 자기의 이름을 대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벨이 가인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큽니다. 그러나 가인 스스로 “나 좀 살려 주십시오”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메시아가 다른 사람을 살려 달라고 하는 것도 큽니다. 그것을 하면 메시아가 할 일을 100%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살림을 받아야할 사람도 “나 좀 살려 주십시오”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살려주는 것입니다. 지금은 길이 뚫려서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갈 길도 있고, 메시아 통해서 가는 길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가더라도 메시아의 이름을 갖고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가서 이런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여러분은 아까 얘기한대로 하나님, 아벨, 가인의 도표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가인이 아닙니다. 기성은 아벨과 가인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들은 조건을 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의 조건을 못 세우고, 믿음의 조건을 못 세웠지, 절대 조건을 못 세웠지, 하나님의 근본 조건을 못 세웠지, 원죄의 근본과 유전죄의 근본과 연대죄의 근본을 못 해결했기에 갈 데가 없이 가인입니다. 먼저 배우고 먼저 씻은 사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다 더러운 사람이었는데 목욕탕 주인이 아니라고 해도 먼저 가서 씻으면 깨끗한 취급을 받는 것입니다. 목욕탕 주인이라고 해도 목욕을 안 하면 더러운 냄새가 나서 불합격 받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회개한다고 울었습니까? 울은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말씀을 믿고 따라온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우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는 것만 회개가 아닙니다. 말씀 믿고 따라왔다면 이미 회개가 된 것입니다. 우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때로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심으로 돌아올 때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따라왔다면 가인이겠습니까? 아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서 신광야에 나오니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애굽의 종이 아니고 형제인 것입니다. 고욤나무이지만 감나무에 접붙였다면 뿌리는 고욤나무일지라도 나무는 감나무라는 것입니다. 이치가 똑같습니다. 우리 어머니라고 해도 내가 누군지 모르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바사바가 없이 원리원칙입니다. 아버지도 똑같습니다. 내가 제일 기쁜 것은 어머니 아버지가 믿고, 형제들이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벨과 가인의 입장이 아니고, 하나님을 중심해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입장과 같습니다. 한 형제입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갈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 중심해서 여러분과 내가 있습니다. 같은 아벨입니다. 가인이 아닙니다. 종이 아니니까요. 구약시대도 아니니까요. 가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남편 없이 육해공군 참모총장 사모가 어디를 갔다면 무언가 증거를 대야합니다. 그냥 “나 몰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그의 이름을 갖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만큼은 1000년이 가도 변함이 없습니다. 혼자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가기 싫으면 예수님께 와야 합니다. 무엇을 할지라도 혼자서 해서는 제물을 안 받습니다. 통해서 받습니다. 이것이 절대적인 역사의 법칙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 믿고 따라가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이라고 해서 기와집 짓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활적 구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구원은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오는 것입니다. 19980122 목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화평케 하라 마12:25 원래 싸움은 죄에서부터, 범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 뜻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부터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선과 악이 갈렸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나왔고, 아벨이 나와서 서로 싸웠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선과 악이 갈려오면서 싸웠습니다. 선과 악은 싸우지 말라고 해도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 싸우고 복직하는 길이 있으니 가인은 절대로 보다 선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꼽고 치사하고 더럽고 선배라고 해도 선의 주권을 잡은 자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칼주권 총주권이지만 하늘 세상은 선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꾸 선한 사람으로 왕으로 들여앉힙니다. 가인은 무조건 보다 선을 따라가야 하는데 죽어도 안 따라갑니다. 자기 위신, 체면, 간판 때문에 절대로 안 가려고 합니다. 가인이 직접 갔다가는 죽습니다. 아벨을 따라가면 살게 되어있습니다. 더러운 물도 바다로 흘러만 가면 깨끗하게 되는 것인데 가기를 싫어합니다. 악한 사람도 선의 세계로 가서 하나되면 유익인데 안가고 “네가 나에게 오라”합니다. 그래서 만일 선이 악에게 간다면 가는 즉시 죽습니다. 정신 이상된 사람을 따라다니면 자기도 정신 이상되는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도 정신 이상된 사람을 따라가며 그가 시키는 대로 하게되면 바로 정신이 돌아버립니다. 하나님의 주관, 선의 주관, 온전한 주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정신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아벨이 아무리 선이라고 해도 가인이 가는 길을 가면 안됩니다. 오직 자기의 길로 가야 합니다. 아벨 통해서 가는 길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가인으로 가는 길은 죽는 길입니다. 가인은 하와이고, 아벨은 아담입니다. “너는 바람 피워서 난놈. 이미 변질되어서 난 놈”하면서 하나님께서 싫어 하셨습니다. 그러니 죽어도 아벨을 따라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길만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로 안간 사람은 가인편이 되었습니다. 가인편은 공산주의이고, 아벨편은 민주주의입니다. 가인편은 보다 구시대이고, 아벨편은 보다 신시대입니다. 그래서 죽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부터도 구시대로 가지를 않습니다. 내가 사는 길을 눈물겹게 발견했는데 그 길로 가겠습니까? 전에 내가 안될 때 기독교로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작은 나무를 보여주시는데 작은 열매가 열려있더라구요. 그 나무에 올라가려고 했었습니다. 열매냐고 꼭 쥐염열매였습니다. 그나마 따먹으려고 하면 뱀이 감고 있어서 물려고 하더라구요. 그것을 꿈에 보고서 기성을 알았습니다. 원남동 4층에 있을 때였습니다. 밤에는 술장사하고, 낮에는 시간이 비어서 그 때 말씀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도 해왔습니다. 결국 거기서는 하나도 전도 못했습니다. 그 때 음성이 들렸는데 “네가 난 씨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거기서부터 역사가 시작되리라. 네가 데려다 네가 가르쳐서 신앙으로 낳아야 한다. 이 말씀을 듣고 따라오는 사람이라야 네 신앙의 자녀가 된다. 그들이 아브라함 같은 씨들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은 자녀권이 되어서 말 잘 듣고 따라옵니다. 말씀을 확실히 알고, 나를 확실히 알 때 구원이 확실하게 결정됩니다. 그 전에는 안됩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선생님 누가 나가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교회에 다시 오려고 합니다”하기에 “말도 안 듣고 나간 것이 왜 들어오려고 하느냐? 안 된다. 그 애 때문에 역사 펴는 것이 아니다. 그가 오면 90% 역사에 지장이 있다”했습니다. 90%는 내가 갚아주고, 10%만 자기가 갚으면서 시작되는 것인데 그것을 알겠습니까? 전에는 받아주었으나 이제는 안 받아줍니다. 나가면 안 받아 줍니다. 나가서 아무리 심술 부려도 소용없습니다. 확실히 알고서 뛰어 나가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 될 것입니다. 이 시대가 계속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2000년이 되면 심판하신다고 했는데 이미 20년 전부터 심판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50년 전부터 회개를 외쳐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는 놈이 하는 것입니다. 축구만 해도 아는 사람이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고, 구분하고,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 윗집에 살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자기는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했습니다. 밭을 갈아도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보다”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저 분은 맨날 하나님 뜻이라고 하니 이상하다”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잘 모르고 기도해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뜻이 무엇이냐고 하나님께 물었을 때는 말씀이 바로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성경 말씀을 찾아서 그것을 실천해줄 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실천할 때 나는 제일 좋아합니다. 요즘은 지나가면서 말을 안 합니다. 눈치를 딱 주면 알고서 따라옵니다. 와서는 “선생님, 저 불렀지요?” “그래. 어떻게 알았느냐?” “느낌이 왔습니다. 그런데 따라오다가 왜 오냐고 하면 그냥 갈 것이고 놔두면 뜻인 줄 알겠다고 하고 따라왔습니다”합니다. 나도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감이 아주 작게 옵니다. 그것을 매일 찾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커다란 칠판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표시해놓지 않았나 하고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점 하나를 작게 찍어놓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 판에 하나님께서 무슨 계시하신 것이 없는가하고 매일 찾는 것입니다. 한참 스키 타고 내려박힐 때 계시하면 잘 모릅니다. 그래서 끝난 다음에는 “하나님, 혹시 뭐 계시한 것 없습니까?”합니다. 눈치가 빨라야 합니다. 그에 비하면 여러분은 더 크게 계시해 줍니다. 인류의 역사는 선악의 구분 역사이고,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투쟁역사입니다. 사상 투쟁, 물질 투쟁의 역사입니다. 싸우면서 사는 것입니다. 싸움도 배워서 해야합니다. 아까 얘기한대로 둘러 가면 안됩니다. 요령을 배워야 합니다. 아벨이라는 사람은 혼자 하나님 앞에 가면 혼납니다. 반드시 말 안 듣는 사람을 끌고서 갈 때 하나님께서 대 환영을 해주십니다. 그냥 혼자 가면 안됩니다. “그가 말을 안 들어서 혼자 왔습니다. 너무 깡패같이 놉니다”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너는 내가 함께 하니 데리고 와야할 것이 아니냐? 가인의 말을 다 받아주어라. 위해주고, 섬겨주고, 공경해주고 해야한다. 너에게 하늘주권을 주었으니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느냐?”하십니다. 그것이 아벨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도 그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부모가 되면 “너, 그만둬”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이기에 이래도 저래도 끌고 가고, 이래도 밥을 주고, 저래도 신발을 사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가인을 위해주고 섬겨주고 받들어주는 것을 해야합니다. 혼자만 가면 안됩니다. “너무 틱틱 거려서 놔두어 버렸습니다”하면 “너는 그래도 아벨인데 그러면 되느냐? 저는 사단의 주관을 받고있는 놈이고, 너는 내 주관 받는 놈인데 그러면 되겠느냐?”하십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그 사람을 구출해 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선은 악을 구원해서 와야 선이 됩니다. 선인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이고, 그래서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되어도 고민하고, 사도가 되어도 고민하고, 하늘 사람이 되어도 고민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가인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한번 저버렸다면 어렵습니다. <히5>에 보면 한번 은혜 받고, 한번 하늘을 인정하고서 타락하면 새롭게 구원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자기의 주를 자기가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예수의 날에 구원받는다는 법으로 넘어갑니다. 메시아를 불신으로 죽였기 때문에 자기의 구세주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은 멸하고 죽은 다음에 영혼만 다시 소생하는 법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200가지 법을 알아야 겨우 하늘을 수종 들어서 심판합니다. 그렇게 법이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는 이런 것을 기독교 목사님들이 깨닫고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10년이 가도 20년이 가도 못 가르칩니다. 내가 기독교에서 커서 압니다. 맨날 다른 얘기나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속이 얼마나 타겠습니까? 지금은 모르나 크면 다 알 것입니다. 내가 100년 200년 500년 1000년씩 가보십시오. 앞으로 10년씩만 가도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자꾸 쫓아다니며 전해야 알지, 말 안 하면 모른다. 네가 70일 굶고서 형님 집에 갔을 때 밥이 남아서 부엌으로 내가면서도 밥 먹으라 소리 안 했잖느냐? 네가 밥 달라 소리 안 해서 그렇다”하셨습니다. 그 때 나는 밥 안 주었다고 앙심을 품고 평생동안 안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담장을 잡고 기어왔습니다. 그렇게 오는데 거지가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더라구요. 화가 났지만 힘이 없어서 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와서 하나님께 고했을 때는 오히려 내가 혼났습니다. “왜 얘기를 안 했느냐? 네가 일부러 금식하는 줄 알지 않았겠느냐? 금식하는 사람에게 밥 먹으라고 하면 약올리는 것이 아니냐?”하면서 나만 혼났습니다. 그러니 항상 아벨 책임인 것입니다. ‘저놈은 진짜 혼날 것이다’하고 일러 받치면 오히려 자기만 혼나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선이라고 한 것이 저기서는 하나님의 심판거리가 되고, 어느 것은 심판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칭찬 받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나쁘다고 한 것이 하늘 앞에는 좋은 것이 된다면 어찌 하리요”했습니다. 유대인은 다 예수님을 나쁘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메시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