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1998.12.14 (월)
8 공 중 휴 거
- 선포일
- 1998.12.14 (월)
- 성경 본문
- 전서 4:16-17
첨부 파일
- PDF
8 공 중 휴 거.pdf
182.9 KB
8 공 중 휴 거
하늘말 내말 잠언집 제1집 중에서 발췌
265. 사람들에게 있어서 흔히 안된 일을 보면, 반대로 거꾸로 하다가 잘 안되어 결국 헛수고만
하고 말게 되는 일이 많은데 너도 그런 일이 적지 않은 자니 특히 신앙 생활하면서 바로 못하고
행여 반대로나 거꾸로 해서 헛수고하는 일이 없는가 오늘 생각하고 찾아보아라.
*이 말씀은 1970년 여름. 꿈에 주님께서 한 장면을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
날 몸부림쳐 하루종일 찾은 것이 <데살로니가 전서 4:16-17>였고 결국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말을 깨닫게 되었다. 공중이 한늘이 아니고 지구가 공중임을 깨닫게 되었다. 1967년
월남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 높이 떳을 때에도 귓속말로 들은 음성이 있는데 그 때 “네기
비행기 탈 때에만 공중에 올라 왔다고 생각하느냐? 공중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지구가 공중임을
모르느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땅에서 오실 주님을 거꾸로 하늘에서 온다고 그릇 생각하며 또
공중에서 온다고 그릇 생각함을 모두 근본으로 터득하게 되었다.
9. 말 세 론
19981214 월 아침말씀(서울성실교회) 다스리는 자는 네게서 마2:6
“다스리는 자는 네게서 온다”는 것은, 같은 족속과 동질 동류의 세계에 있어야 다스리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논리의 법칙이며, 근원입니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다스릴 자는 기독교에서 와야 합니다. 우리 세포 조직이나, 인체 조직도 그런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말씀을 깨닫고, 크게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다스리는 자는 네게서
나온다”고 했을 때, 개미가 되기 전에는 개미를 다스릴 수가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땅에서 와야 한다고 나를 깨우치셨습니다. 개미를 연구한 장소는 월명동, 스키 탈 때
출발하는 날망입니다. 거기는 황토박이로서 동네 사람들이 황토를 다 파갔습니다. 거기에 개미가
집을 많이 짓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마득한 옛날에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개미를
통해서 “다스리는 자는 땅에서 와야 한다”하셨습니다. 이렇게 대개 하나님께서는 개미를 통해서,
벌을 통해서, 나무를 통해서, 돌을 통해서 늘 교육의 자료를 삼고서 깨우쳐 주시고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
19970210. 월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세모와 네모와 원이 있을 때 어느 것이 제일 튼튼하게 생겼습니까? 원이 제일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이 세개를 산꼭대기에서 뒹굴리면 네모는 한바퀴 겨우 돌고서 섭니다. 세모는 딱
들어 붙어서 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원은 계속 굴러갑니다. 그래서 원불교도 영원성이라고
원으로 해놨습니다. 성경에 ‘시작과 끝’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나와있습니다.
그것은 영원성을 얘기한 것입니다. 생긴 것을 볼 때 원으로 생겼으면 오래 사는 것입니다. 지구는
계속 돌고 있습니다. 힘이 얼마나 좋다구요. 여러분이 한 번 돌아 보십시오. 지구는 1초에
40Km를 갑니다. 100리를 가는 것입니다. 힘이 그렇게 좋은데 금방 죽겠습니까? 사람들이 너무
모릅니다. 만물의 존재물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지요. “지가 아무리 정력이 변강쇠라고 해도
하나님이 쳐 없애고, 심판하는데 별 수 있느냐?”합니다. 그러나 지구는 사람이 사는
집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할 때는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집이 죄지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죄지은 사람을 끌고 갈 때도 사람을 끌고 가지 집을 끌고 가지는
않습니다. 옷에서 벼룩이 물었다고 가서 옷을 불질러 죽습니까? 벼룩만 잡아내지요. 거기에다
인간은 벼룩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든 만물의 영장이고 혈통성이기에 불 갖고 꼬실러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옳고 그른 것을 가려주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고, 사랑의 하나님이고, 정도의 하나님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에서는 불로 심판하고, 칼로 목을 잘라 버리는 하나님인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며 “하나님의 무서운 것을 감히 모르는 이 배은망덕한 놈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 자식이 모르는 소리 하니 사람들이 제발 못 들었으면 좋겠다.”했는데 다
들어 버렸습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석가는 자비를 베푸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불과 칼로
심판한다고 하느냐? 자비 베푸는 석가가 오히려 낫다.”합니다. 불같은 말씀이고, 칼같은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칼갖고 싹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똑같은 샘인데 어떻게 한 샘에서 쓴 물과
단물이 나올 수 있느냐고 했는데 그것은 한 하나님의 한 입에서 어떻게 저주의 말씀이 나오고,
축복의 말씀이 나올 수 있느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성인들은 그것은 그것이라고 따로
생각하니 아직 어린애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전해서 하나님을 다시 인식시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근본을 깨닫고 살게 해야 합니다.
19980222 주일 때 마24:32-39 부산 연합예배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도 이처럼 시간을 지키는데 하나님께서 시간을 안 지키겠습니까? 사람은
완전히 다른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2000년이 말세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를
봄이라고 봅니까? 12달이면 4계절인데 석 달 가운데 어느 날을 봄이라고 결정하겠습니까? 1월
1일을 겨울로 결정하겠습니까? 2월 3일을 결정하겠습니까? 3월 3일을 결정하겠습니까? 다
주관권 속에 들어 있습니다. 어느 한 날이 아닙니다. 2000년이 되었을 때 그 해가 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는 이 세상의 마지막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말세는 수십 년이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 시계가 죽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2000년이 되면 말세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입니다. 그런 식의 주관은 없습니다. 이미 2000년을 중심한 전후를 주관권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말세 주관권 속에 들어가서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을
봄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춥지만 봄날입니다. 내일도 모레도 봄날입니다. 앞으로
따뜻하고 잔디가 새파랄 때도 봄날입니다. 완전히 잎이 피고 꽃이 피어도 봄날입니다. 이와 같이
말세는 어느 한 날이나 한 해가 아닙니다. 이미 말세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서 하나님의 거기에
해당되는 일을 해오고 계십니다. 이치에 맞는 말이지요? 이미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5월
5일이 운동회 날인데 어느 시간을 운동회 시간으로 보겠습니까? 2시, 3시, 4시, 10시, 11시 어떤
시간입니까? 계속 하고 있으니까 따로 시간이 없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2000년대라고 했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심판하고 계신 것입니다. 2000년을 중심해서 세계
각 나라를 계속 심판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거기 가담한
사람이기 때문에 압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그 시대의 내용을 알듯이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0년을 말세로 보고 심판한다면 2000년을 장식하기 위해서 이미 해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2000년 그 한 해만 심판하시겠습니까? 재판소에서는 날마다 늘 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기 전에 계속 재판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날을 재판날로 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날그날 그때그때 재판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일 칼을 가시고 매일
활을 당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매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날 가만히 참았다가
2000년이 되어서 어느날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문자대로 알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보좌에 앉아서 심판할 줄 알았지만 이미 예수님께서 백보좌심판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근본과 시대를 깨닫고 가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19980324 화 아침말씀(월명동 운동장) 말세와 우리와 현실 벧후3:8-13
말세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되는 것이고, 새로운 역사를 받는 것이고, 말세라는
것은 기존의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잔디도 불질러서 끝나버리는 줄
알았지만, 거기서 또 새싹이 올라옵니다. 이와 같이 바톤을 주고받는 것과 똑같습니다. 1번의
말세는 2번의 시작입니다. 2번이 끝나니 다 끝났다고 했지만 다시 3번이 바톤 잡고 뛰는
것입니다. 3번이 끝나면 4번이 또 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이 다 끝났구나. 볼 것을 다
봤구나’했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옛날의 공부 못한 노인들이나 생각하는 관인데 그런 관으로
학자들이 생각을 하니까 너무나 불행하고, 부정정인 사고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를 깨닫고
움직이며 살아야 합니다. <벧후3:8->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하셨던 것입니다.
19980326 목 아침말씀(월명동 운동장) - 교역자 모임. 말세와 우리와 현실 벧후3:8-13
이 역사는 벌써 50년 전부터 시작되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응앵하고 울었을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세를 계산할
때 “앞으로 내가 커서 20살쯤 되면 말세가 올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젊었을 때 망하는
세상이 올까?”라고 합니다. 이미 그 시대는 수십 년이나 지나갔는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말세의 날짜를 자른다면 다 나옵니다. 그것을 볼 때는 이미 50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감행되었습니다. 이미 40-50년 동안 새로운
역사의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극적인 시간이 갔습니다. 이미 전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 꽃도 안 피어서 봄인가 하지만, 이미 꽃망울이 피기 한달 전부터
봄의 물기가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말세의 개념도 시간을 꼭 따진다면
그렇게 따져야 합니다. <벧후3:8>을 보면 말세를 논하려면 시간을 따질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고 했습니다. 계산법을 모르고 어떻게 무엇을 따지겠습니까? 시계의
분침이 한 칸가는 것은 5분, 시침이 한 칸 가는 것은 한시간인 것을 모르고 어떻게 시계를
보겠습니까? 그런 것을 따질 줄 모르면 날짜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역사의
날짜까지도 압니다. 몰랐을 때는 캄캄했으나 이제는 정확하게 압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습니다. 1:1도 있고, 10:1도 있고, 100:1도 있고, 1000:1도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일하라고 서울로 보낼 때 1978년 6월 전에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그 전날
밤 12시에 서울로 올라와서 6월 1일의 새벽 한시를 서울에서 맞았습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하나님께서는 일을 하십니다. 일에는 다 시간이 있습니다. 밤 나무산 조경작업도 어제까지는
매듭짓겠다고 해서 기어코 매듭을 지었습니다. 일을 하기 전에 계산을 해보면 다 나옵니다. 그
동안 일한 것을 계산해보니 날짜는 34일이 지났지만, 일은 24일을 했습니다. 일은 24일 했지만,
시간은 다 갔습니다. 한 열흘의 차이가 압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세에 관한 것도 직접 주인이
와서 부닥칠 때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흘러간 것입니다. 2000년을 딱 끊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수십년, 반세기 전에부터 하나님께서는 서서히 말세의 물기가 오르는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2000년이라면 내일 모레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의 극적인 역사로 접어들어서
완전히 크라이막스를 장식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이 말씀이 나온 것도 이미 20년 전입니다.
선생님 것만 계산해도 20년 전입니다. 전초하는 사람들까지 따지면 한 40년이 넘습니다.
오래되었습니다. 겹친 것까지 합하면 50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앞으로 한 10년
있으면 말세가 오려는가?”라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따지니 안됩니다. 내가 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
시계를 못 봤었는데 너무나 창피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시대를 볼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는 어찌하여 시대를 모르느냐? 때가 어느 때라고. 앉을 때가 있고, 설 때가
있는데 지금이 어느 때라고. 때를 모르는 사람들아”라고 책망했습니다. 사람이 때를 모르면
성공을 못하고, 출세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때가 다 있습니다. 성공할 때가 있습니다. 명예를
받을 때가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때와 시기가 척척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때에
놀면 그것을 못하게 되고, 다음에 그 일을 하려면 엄청나게 피눈물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도 작업을 보다 일찍부터 시작을 못해서 밤과 낮을 통해서 계속 일해서 결국 생각했던
위치만큼 일을 해 놨습니다. 책임감을 느끼고 한 것입니다. 선생님 같은 사람은 원래 행동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 늦어도 어떻게든 기어코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처지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행동적인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초인도 아니고, 머리가 날고 기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기에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만일 지옥과 천국을 결정하게 된다면 참으로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의는
안되니까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척척척 움직여야 합니다.
19980328 토 아침말씀(월명동 운동장) 말세와 우리와 현실 벧후3:8-13
앞산도 마당을 덜 쓰더라도 돌을 눕혀서 쌓으려고 합니다. 어차피 운동장이 남으니까요. 몇
미터만 내어 쌓아도 절벽이 아니게 됩니다. 이렇게 말세라는 것은 파괴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구 시대는 파괴되지만, 신시대는 건설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랑잎은 떨어지고, 새 순은
올라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말세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 생각해서 “이제,
끝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랑잎이 떨어지니 거기에 붙어있던 벌레가 ‘이제 끝났다. 그러니
여기에 집을 지으면 무엇 하느냐?’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다른 벌레는 ‘나무에 붙어서 있다보면
거기서 새 순이 나온다. 그것을 뜯어먹고 살면 된다’고 합니다. 없어질 것으로 아는 벌레가
“아니다. 다 불질러서 없어진다고 했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하는 격입니다. 구 시대를 접을
때는 한번에 접지 않고 멍석을 말듯이 서서히 접고, 새 시대도 서서히 시작해서 건너올 사람은
건너올 여유가 있게 하시고, 역사를 펴나가십니다. 그것이 이치입니다. 구시대도 서서히 접고, 새
시대도 서서히 펴면서 역사를 진행하게 되어있습니다.
19970707 월 아침말씀(낙타바위 옆 감나무 아래)
오늘 말세가 와도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입니다. 진짜 내일 말세가 오는데 왜 사과나무를
심습니까? 따먹을 수도 없는데 왜 심습니까? 여러분들이 그 답을 찾아내 보십시오. (말세가 안 올
줄 알기 때문에? 일이 낙이기 때문에? 심는 것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에? 후손들이 먹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면 죽는 날까지 뭐하다 왔느냐고 묻습니다. ‘네! 죽을 때까지 내가
낙심치 않고 오는 날도 사과나무를 심고 왔습니다’ ‘ 너는 왜 그냥 왔느냐?’ ‘죽는데 뭐하러
합니까? 그냥 안하고 오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까?’ ‘이놈아 하는 것이 지혜이지. 그 귀한 시간에
왜 못했느냐?’ 우리는 그만큼 하나님이 주신 몸을 가치 있게 써야합니다. 안 쓰면 너무
아깝잖아요. 처녀가 시집도 못 가고 가만히 있으면 아깝잖아요. 여기에 한달반동안 공사를 했는데
아깝잖아요. 오늘도 여기 보기 싫은 돌을 빼내고 또 작업을 할 것입니다. 계속 일을 해야합니다.
잔디밭 꼭대기도 잔디를 입히니까 멋있게 되었습니다. 한만큼, 손을 댄 만큼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