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말씀1999.01.02 (토)
10 무지 속의 상극세계
- 선포일
- 1999.01.02 (토)
- 성경 본문
- 마22:36-40
첨부 파일
- PDF
10 무지 속의 상극세계.pdf
229.2 KB
10 . 무지 속의 상극세계
19990102 토 아침말씀(월명동북편벽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총력하자 마22:36-40
나는 개방적이고, 백성의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백성들이 말을 안 해서 못 듣지, 들으면 일단은
참고를 합니다. 앞산이 세 번째인가 무너졌을 때입니다. 그 때는 돌 뒤에 도랑 내는 것을
연결시키지 않아서 물이 들어와서 무너졌습니다. 그 때 누구 때문에 그랬느냐고 했더니 꿈에
보여주셨습니다. 종배가 그것을 안 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 여러 사람에게 시켰지만
그가 하겠다고 대답했기에 그가 했어야 했습니다. 그 꿈을 꾸고서도 ‘지금 얘기해서 무슨 소용
있느냐? 내가 시켰는데. 내가 했어야 했는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약수 샘을 앉히는데
내가 가운데에 앉히려고 했을 때 종배가 하는 말이 “여기에 앉히면 스키탈 때 지장이 있을
텐데요?”했습니다. 그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네가 말을 안 들어서 저것이 무너졌는데”하지
않고 그의 받아들였습니다. “네가 잘 생각했다. 너를 통해서 계시가 오는구나”했습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놔야 들어오는 것이 많습니다. 만일 그 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까불지 마”했다면 나중에 스키 탈 때 걸려서 다시 옮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너를 통해서 오는구나”했습니다. 선생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거기서 그냥 끝나버리고
다음을 또 기다립니다. “너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교역자들도 특별히 말을 안
들었어도 일단 관망하고 자제하고 생각할 시간을 줄뿐이지 “너는 끝났다”고 하지 않습니다. 나의
철학은 ‘그래도 인생이 태어나서 한번 살려고 하는데 내가 목을 쥐면 되겠는가? 안 된다“합니다.
성경에는 목 죈 사람을 풀러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매인 자들을 풀어주러 왔는데요. 그러니까
상당히 너그럽습니다. 그것이 산에서 기도생활하고, 수도생활해서 백성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생각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모르면 스스로 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약수샘을 산밑으로
놨습니다. “내가 그것을 먼저 생각하지 못했구나.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묵시를 하셨구나. 앞산이
무너진 것은 너의 무지도 있지만 너를 통해서 그것을 무너트리게 만들고 다시 쌓게 만드는
구나”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러나 저러나 무너지면 또 합니다. 일한 것에 대해서는 얘 기거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19981026 월 아침말씀(천안상록리조트컨벤션센터)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아라 대하 35 : 20-27
내가 죽 인도해보니 이 말씀을 들어도 자기를 위한 것만 압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체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너, 무지 속의 상극세계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그 길로 가지 말고 이 길로 가라는 것인데, 실제에 가서는 또
어렵게 생각해서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못 지킨 것입니다. 말씀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여서 엄명을 내리셨는데도 다른 길로 가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께서 채찍과 책망을
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역사의 허점들을 얘기했지만, 요시아는 싫어했습니다. 느고 왕은 왕 중의
왕이었습니다. 애굽을 휩쓰는 왕이니까요. 그런 느고가 하는 말이 “오늘날 내가 그대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나와 같이 싸우는 자와 싸우겠다”했습니다. 그것은 “네가 나와 싸운다면 나도
네가 적인 줄 알고 싸우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나는 그대를 치러 온 것이 아니다.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러왔다. 그러니 네가 나와 싸운다면 그것이 뜻인 줄 알고 너를
치겠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로 더불어 싸우는 자를 치라’고 했으니까”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부딪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그
사람에게 부딪치면 절대로 안됩니다. 선생님도 시대의 말씀을 받아왔기에 큰소리 치는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보다 다른 사람이 큰 사람이 있다면 큰소리를 못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지구상에서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상관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사명을 다 갖고 왔기 때문에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군대의 참모총장이라면 군대에서는 누구에게든
큰소리를 쳐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모시고 섬기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져왔으니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계급싸움을 해도 이기고, 사명싸움을 해도 다
이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와 싸움이 붙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나와 싸우지 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를 하나님의 말을 거슬리지 마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시아는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거기서
옷을 변장하고 마음을 변장하고 같이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안됩니다. 요시아 군대는
10만도 제대로 안 된다면, 느고의 군대는 100만도 넘는 지경인데 그것이 싸움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요시아의 군대가 10만이고, 느고의 군대가 5만이라고 해도 느고의 군대가 이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군대가 이기니까요. 그러니까 게임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못하니까
느고를 통해서 역사 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하나님 믿고있는 요시아와 같은
입장이라고 해도, 여러분이 못하니까 선생님이 해결하려고 뛰어드는 것입니다. 사명자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구요. 오늘날 기성도 하루아침에 “아멘. 저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서
왔구나”했으면 벌써 끝났습니다. 벌써 국교화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세계 만국이
돌아왔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 하나를 전도하면 그 민족이 또 다른 민족을 전도하고,
그 민족이 또 다른 민족을 전도하면 150개 나라가 싹 전도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으면 150명
전도하듯이 쉽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하고 지금은 완전히 소립자를 전도하듯이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자 전도하듯이 전도하면 간단했을 것입니다. 분자와 원자만 하면
끝나니까요. 그런데 소립자까지 내려가서 전도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하나씩만 전도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밭뙈기를 사들일 것은 곡식 모가지 하나씩 하나씩 사들이는 입장과 똑같습니다.
그래도 워낙 수고하고 10년, 20년씩 수고하니까 이만큼의 한 그룹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일이 잘되었으면 그냥 뚝딱 뚝딱 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돌아오고, 천주교가 돌아오고,
그리고 일개 교단이 돌아오다가 일개 민족이 돌아오고, 그렇게 하여서 민족이 전도되게
되었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원 뜻입니다. 그런데 그 뜻이 안 이뤄진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하나님 뜻 안에 돌아온 우리끼리만 가는 것입니다.
원래 지금은 우리가 사명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가 전해 보지도
않고 안 온다고 불만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먼저 손쓰기 전에 사단이 먼저 손써서
“거기 이단이다”하면서 못 들어올 뿐입니다. 그들은 아직 우리 아벨 말을 못 들어봤기 때문에
우리가 심판을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 전도도 안 해보고
말씀을 전해보지도 않고 그러느냐?”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솥에 불을 때는 것과
똑같습니다. 불을 때보지도 않고 어떻게 판단합니까? 보일러를 틀어본 다음에 방이 뜨겁다, 안
뜨겁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보일러를 틀어보지도 않고서 “에이, 냉랭하네”해서는 안됩니다. 그 때
불때는 것은 본인이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넣은 다음에 “냉랭하다. 안 받아들인다. 안
믿네”해야 합니다. 복음도 안 전해보고, 냉랭하다든지, 왜 그러느냐고 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런
얘기는 전부 자기의 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불가불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며 열심히 해야합니다.
요시아는 느고의 말을 듣고서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변장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변장도 하고, 마음의 변장도 한 것입니다. 이번 주 말씀이 죽 가다보면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계속 나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상황도 한번 봤습니다. 75년에, 모든 말씀을
조립하고 서서히 나왔었는데, 그 당시 통일교가 외치고 돌아다니는 전성기였습니다. 그 때 그들은
“광야를 달리는~”이라고 노래했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면서 죽는 놈은 죽고 가는 놈은
가자고 했을 때였습니다. 그 때는 리틀 엔젤스도 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놔두면
다 이단이 되게 생겼다고 하면서 나왔었습니다. 그 때 통일교는 “우리는 기독교를 치러 온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해서 우리 나라
사람에게 반공사상을 넣어주고, 북한을 막으라는 사명을 가지고 왔다”하니 “그러느냐? 그러면
우리는 손댈 것이 없구나”하고 일단은 들어왔습니다. 내가 그 과정을 다 봤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금 목사님들이 “믿을 수 없다. 그름같이 몰려간다”고 하면서 다시금 나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월명동에 구름 떼 같이 오듯이 대전 충무 체육관에 1만 명 정도가 모여들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 때 기독교 목사님들은 원래 십자가 뺏지를 달고
다녔는데, 모두 십자가를 떼고, 잠바를 걸치고, 교회 나오는 청년들을 동원해서 막게 만들고,
목사님들은 뒤에서 조정하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 이 말씀이 생각 나면서 “이와 같이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일어났다”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전쟁, 신앙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전쟁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면서 “너는 정녕코 보고
깨달아라. 지금 이런 상황이 지나가고 있다”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도 대개는 압니다.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압니다.
75년 전까지는 기독교가 대학생 엑스폴로하면서 굉장했었습니다. 여의도 광장에 수십만 명씩
모이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75년도에 그렇게 싸움을 하고 부터는 기독교도 조용해 졌고,
통일교도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서로 죽인 것으로 봤습니다. 통일교는 살인 당한 바가
되고, 기성은 살인한 바가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므깃도 골짝이
되었다”하셔서 이 진리를 떼게 된 것입니다. 제 2의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므깃도 골짝이 된
것입니다. 그냥 봐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본문의 육적인 므깃도 골짝에서는 싸움을 해서 엄청난
사람이 죽었습니다. 요시아 왕뿐 아니라 그날 상상도 못할 많은 사람이 죽어서 그 골짝이 해골
골짝이 된 것입니다. 전에도 싸움할 때마다 므깃도 골짝에서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므깃도
골짝은 해골골짝이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므깃도 골짝에 대해서 몇 년 동안 연구하는 가운데,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의 영적인 므깃도 골짝은 어디이냐? 우리 한국인데. 그러면 전방이냐?
그것은 육적인 세계이다. 바로 기독교와 새로운 종교가 싸우는 완충지대를 말한다. 그것은 어느
지역이 아니고 기독교와 새로운 종교가 싸우는 곳이 바로 영적인 므깃도 골짝이고, 해골의
골짝이다”하였고, 에스겔 골짝으로 바로 연결되어서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 골짝이
바로 므깃도 골짝입니다. 그곳이 내내 그곳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심령을
살림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선생님에게 “너는 내려가서 이 말씀을 전해라.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생기가 들어가서 일어나 군대가 되리라”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앙의 군대가
되어서 신앙을 살리며 가는 것입니다. 기성도 죽고 다 죽은 골짝에서 다시금 심령을 일으켜서
가고있는 것입니다. 그 당세의 젊었던 사람들은 지금은 50대가 넘어서 다 끝났습니다. 그래서 그
2세들을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2세들에게 말씀을 전해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내가 산에 있을
때 그랬습니다. 다리골 굴에서였습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가 살아날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시대의 종교가 다 죽어버렸는데, 이 시대의 종교가 살아날 수 있겠느냐?”주님이 말씀하시기에
살아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나느냐고 하기에, 말씀만 주면 내가 말씀으로 살아났듯이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밖에는 없다”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같이 시대를
의논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 굴이 위험해서 못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다시 살려면 이 말씀을 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연습하라”하여서 나가서 차안에서 외치고, 노방전도 연습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다가
명동거리까지 가서 외치고 그러다가 이 섭리까지 왔습니다. 웅변대회 나가는 사람이 많이
연습하고 나오듯이 연습하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데는 잠을 자면서도, 중얼거려도
복음입니다. 선생님은 몇 마디만 해도 돌아오고, 쳐다만 봐도 돌아오고, 악수만 해도 돌아옵니다.
쳐다보면 마음이 녹아집니다. 그렇게 여러분들도 전도를 열심히 해야합니다. 아까도 전도한
사람은 사인도 해주고, 독수리도 그려주었습니다. 독수리처럼 사냥하라구요. 이렇게 해서 에스겔
골짝의 마른 뼈들을 다시 살려 군대를 일으키는 지구상의 역사가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새노래도 주셔서 지은 것입니다. 그런 120곡의 노래가 새로운 역사에 맞추어서 지어져서
새로운 역사의 노래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늘 생각하면서 이 골짝이 어떤
골짝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여러분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기독교를 보고 한 말입니다. 기독교가
요시아입니다. 그들은 75년도에 깨진 것입니다. “미워하면 살인한 바가 된다. 또 살인을 받은
바가 된다”하셨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안 되는 것이고, 다시 일어날 길이 없고, 이미 역사는
거기서 끝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냥 역사를 압니다. 여러분을 붙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어른들이 돌아와도 거기가 거기라는 것을 알기에 큰 기대를 안 겁니다. 욕심을 부릴 것도 없고,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 당세에 젊은이 수백만 명을 끌고 나가면, 거기서 해결
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되면 방송으로 때려서 역사를 뒤집는 것도 있지만, 안되고 이 길로
그냥 가면 후반기까지 하면 기백만 명 정도가 되어서 그들을 무장시키고, 결혼도 시켜놓고
가게되면 그들로 인해서 성약 역사가 쭉 펴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압니다.
그러나 만일 역사가 잘되고 기적의 역사가 성취되어서 나간다면 좀 쓸고 갈 것입니다. 그래도
기성이 들어오기는 힘듭니다. 그렇게 쉽게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는데, 엊그제도
기성에서 한 80명되는 어머니들이 왔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와서 찾았다고 좋아하나, 그들이 이제
찾아서 무엇을 한다는 것입니까? 결국 여러분을 불러서 시대의 업을 주고, 신앙의 업을 주어서
가고 있습니다.
19980708 수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혀를금하라.듣는자에게은혜를벧전 3:8-12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있었습니다. 자기의 뜻을 이뤄주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자기가 무지해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절대로 실수를 안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말실수하는 것이 없는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무조건 복을 달라고 해도 안되고, 무조건 저 놈을 혼내달라고 해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대개 원수를 통해서 자기의 소원이 이뤄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럴진데 무슨 다른 두말이 필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필
왜 원수를 통해서만 뜻이 이뤄지느냐고 따졌었습니다. 나도 보면 원수를 통해서 큰 뜻이
이뤄지기에 그렇게 따졌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크고도 큰 일이다. 그것은 성자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일을 했는데 내가 어찌 그 소원을 안
이뤄 주겠느냐? 그 상으로 이뤄주는 것이다”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는 이상하게
원수를 통해서 이뤄지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세상은 기막히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모든 사람에게 원수 없게 만드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19980404 토 아침말씀(월명동 운동장) 진리로 공의롭게 사는 자 렘5:1-6
금주는 예레미아서의 말씀을 갖고서 한 주일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레미아가 애가를
지었는데 그 지은 원인이 있습니다. 요시아의 죽음에서부터 출발해서 슬픈 애가를 부른 것입니다.
유명한 대학의 신학박사가 요시아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신학박사이고 엄청난
젊은이를 가르치는 사람이 모르는데 나에게는 주님이 깨우쳐 주신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요시아 왕은 제일 의롭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대하35>을 보면 요시아 같이 의로운
왕이 없고, 요시아 같이 하나님의 전을 정돈한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가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못 풀었던 것입니다. 나도 몰랐었는데 기도하는 중에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펼치게 하셨고, 그곳을 중심해서 성서를 한달 동안 풀어주셨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 때까지 나는 요시아는 잘 몰랐고, 다윗만 최고로 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게
만들고 깨우쳐 주시면서 세상의 모든 세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가 전쟁을 해봤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것으로 인식시키며 깨우쳐 주실 때 너무나 감명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깨달았고,
지금도 이 말씀은 나에게 철학이 되어서 인생을 살아나갈 때 심각하게 적용됩니다. 이 사건이
내가 제일 신경 쓰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예레미아가 애가 속에서 슬픈 탄식을 했었는데
처음에는 어디를 보고 그러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슬픈 일이야 많이 있지만 그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핵심을 알아야 원자탄을 갖고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예레미아는 백성의 슬픔과
하나님의 관계도 얘기했습니다. “슬프다 어찌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처녀
이스라엘아”했습니다. 이렇게 탄식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그 상황을 예레미아는 선지자로서
제대로 봤기에 탄식한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예레미아만이 요시아가 왜
죽었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리 신학을 연구한다고 해도
모르고, 그 당세에 겪었던 사람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 때 모르고 사는 것이 많습니다.
나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난이 나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주도에서만 난이 나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서도 난이 나고, 꽤 비싸더라구요. 아는 사람이 와서
알려주어서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일생을 살면서도 전혀 모르고 죽는 것이 있습니다. 꼭 알아야
할 것인데 전혀 몰라서 너무나 억울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기도하면서 “나를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아직도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했습니다.
예레미아와 요시아가 통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아는 요시아가 왜 죽었는지 알았습니다. 요시아는
전쟁하다가 죽었습니다. 한참 하나님의 전을 정돈하고, 한참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 한가지 고민이
있으니 갈그미스가 쳐들어오는 국방문제였습니다. 나도 신앙의 국방 문제가 항상 신경
쓰였습니다. 그것이 50%를 차지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복음의
국방 문제는 삼선교에서 부터 있었습니다. 복음 전하면서부터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2-3명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요시아가 한참 전을 정돈하고 이상세계
만들어 놨는데 잘못하면 다 뺏기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로 늘 고민하며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 응답은 “걱정하지 마라”는 마음만 주셨지,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알려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 그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될 것은 모릅니다. 그리고 있는데 어느 날 전방에 적들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왔습니다. 보니까 애굽 사람들이 구름 떼 같이 몰려왔습니다. 애굽은 대국이라 엄청난 군대가
있었습니다. 애굽은 항상 이스라엘에게는 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아가 명지털 까지 선
것입니다. 그래서 방비하고 싸우러 나갔더니 느고가 하는 말이 “내가 당신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 싸우겠다면 나도 싸우겠다”했습니다. 자기 영토를 밟고 지나가니
요시아가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시아가 군인에게 비상 걸고 나가니까 느고가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렇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는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나중에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다시 싸우러 나갔습니다. 안 하겠다고 하고 또 하면 그것은
개입니다. 안 싸우겠다고 하고는 다시 싸우러 나갔습니다. 나는 이것을 분석할 때 아무래도 밑의
사람이 깔짝거린 것 같습니다. 밑의 사람이 “어떻게 적의 말을 믿습니까?”했던 것입니다. 대개
지도자는 밑의 사람이 깔짝거려서 움직입니다. “적들이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있으면 안됩니다.
당하더라도 싸우다가 당해야 합니다”했던 것입니다. 요시아가 안 싸우겠다고 하고는 싸우러
나오니 할 수 없이 느고도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싸우라고 보낸 민족과 싸우러
간다”고 했습니다. 느고는 갈그미스와 싸우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사실 갈그미스는 애굽의 적이기
보다 이스라엘의 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을 이스라엘 나라를 갖고서는 안되니 대국인
애굽을 시켜서 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군을 이끌고 가는 길에 이스라엘과 붙은
것입니다. 안 하겠다고 하다가 다시 싸우러 나오니 싸움이 붙은 것입니다. 거기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때 요시아가 죽었습니다. 약속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안 싸우겠다고
했으면 안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갔다가 우연히 쏜 화살이 갑옷 솔기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아의 죽음을 백성이 모두 슬퍼했습니다. 그 때 다 오해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안도와 주셨느냐?”했을 것입니다.
애굽의 느고는 결국 갈그미스와 싸우고 내려갔습니다. 이스라엘과만 싸우고 그냥 간
것이 아니고 결국 갈그미스와 싸우고 갔습니다. 갈그미스가 깔짝거릴 때는 애굽보다는
이스라엘이 문제였습니다. 애굽이 갈그미스와 싸울 때 2/3만 쳐죽이고 갔습니다. 미리 애굽이
올라오는 것을 알고서 방비했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는 이스라엘이 ‘아, 우리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었구나. 괜히 싸웠구나’했습니다. 이것이 무지 속의 상극세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 이렇게 되었구나’하고 알았습니다. ‘성서에 이런 비밀이
있구나’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지구상 역사가 계속 그렇게 나간 것을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도와준다고 했으면 원수도 와서 도와 준다고하고 다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수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이 의식하는 애굽을 시켰을까요?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흉년들어서 다 죽을 것을 요셉으로 인해서 살았습니다.
‘아, 이렇게 인과응보가 있구나. 3-4대까지 간다더니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했습니다. 요셉이
민족 전체를 살려주고 받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손을 통해서 엄청난 국방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비하게 역사 하신 것을 듣다보면 기도할
때 나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요시아가 그렇게 죽었습니다. 항상 보면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가 무지함으로 너를 돕는 사람을 원수로 의식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으면 나를 믿어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있고, 내가 있고, 성령님이 있잖느냐?” 항상 그래야 합니다.
사람을 중심하지 말고, 오직 하늘을 중심 해야 합니다. 하늘 앞에는 멍청해야 합니다. 공연히
하늘 앞에서 잔머리 굴리면 안됩니다. 그래야 하늘이 하는 것을 압니다. 그래야 하늘이 마음놓고
쓰십니다. 하늘이 마음놓고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손발이 되어야 합니다. 축구도
전혀 못하는 사람은 가르치기가 쉽습니다. 그들은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
배운 사람들은 기어코 자기 맘대로 하기에 오히려 못합니다. 조금 아는 사람은 가르치기가
힘듭니다. 그것도 무지한 사람을 통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요시아의 죽음을 예레미아가 보고서 한탄하고 거기에 대해서 눈물겨운 애가를 부른 것입니다.
참으로 아깝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당시 하나님께서는 요시아 왕을 중심해서
시대를 완전히 통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갈그미스만 없어지면 간단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게 고맙다고 한턱 낼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지시하셨습니다” “이것은
뜻입니다. 당신 나라에 하나님 역사가 일어날 뜻입니다. 우리 서로 국교를 틉시다”하면서
전도하면서 애굽에 가서 알롱거릴 것이고, 그렇게 애굽을 사귀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운을 타고, 애굽은 당시 육적인 운을 탔기에 그 둘이 하나되면 바벨론, 앗수르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번져 나가서 메시아가 올 터전을 만들어 놨으면 세계적 터전이
되었을 것인데, 그것이 깨져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식 잃고 슬피 울고, 남편 잃고 슬피 우는
여인같이 슬픈 애가를 부르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안됩니다. 월남에서도 죽는 사람을 보면
90%가 몰라서 죽습니다. 죽을 줄 알았으면 거기에 안 가는데 대개는 몰라서 가다가 죽습니다.
하늘의 운을 몰라서, 못 타서 죽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이 몰라서 못삽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늘 기도해야 합니다.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
작업 중에도 몇 번 죽을 고비가 있었는데 미리 알고서 살기도 하고, 우연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살기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던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되었습니다. 루터와 칼빈도 천주교의 해방을 위해서 그들을 풀어준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유대민족을 위해서
살려주려고 했는데 자기의 적으로 보고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일으켰습니다. 자기들이 구하고
찾아서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보내주셨는데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되었습니다. “너도 나가서 역시
무지 속의 상극세계에 부닥칠 때가 있다”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내가 애굽의 느고 입장에 설
때가 있고, 요시아의 입장에 설 때가 있고, 이스라엘의 편에 설 때가 있으니 항상 바꾸어 가며
생각을 해야합니다. 항상 요시아의 입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시대를 풀어 나가는데,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이런 것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 원리입니다. 이것을
깨우치면서 시대를 내다보니 시대가 그렇게 해왔습니다. 다윗과 사울도 무지 속의
상극세계였습니다. 사위인 다윗을 통해서 역사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그가 정권잡고 흔들 줄 알고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사울도 다윗이 결국에는 참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런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안 들어간 역사가 없습니다. 진리는
공통성이니까요. 대개 자기를 위해서 한 일인데 그것을 모릅니다. 그런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치에도 있습니다.
요시아가 순교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무지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안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아멘 했으면 지켜야 하는데 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느고가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 했으면 그대로 믿어야 했는데,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대개
사람이 안 하겠다고 하고서 다시 그 일을 하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믿음의 조건을 못
세웠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번 믿음을 세웠으면 그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자꾸 지키지 못할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기도하면서 넘어가야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어려운 일이 생기는데 기도를 해서 그 단계를 넘어가야 합니다. 참고 견디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어려움도 넘어가는데, 기도를 안 하면 작은 환난도 큰 환난으로
무섭게 보입니다. 가나안 복지에 갔을 때도 여호수아에게 담대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31개
족속이 있어서 사생결단 해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신천 신지는 싸워서 이루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도 사망과 어둠을 대상으로 싸웠습니다. 싸우면서 견디면서 기어 올라와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것입니다. 늘 그런 교육을 시킵니다. 나도 기도하면서 “이들에게 늘 바른 교육을
시키게 하시옵소서”합니다. 좋아서 따라오기는 하는데 교육을 받고 근본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어제도 신학생들이 수업하러 와서 하루 종일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수고했다. 밥 먹고 가라”는 한마디로 끝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을 봤으니까요. 직장인들이 전도하고 수고했다고 왔는데 “열심히 기도하고 가라”한마디
했습니다. 내일이면 또 집회하러 가야 하니까요. 집회에는 사생 결단할 사람들이 잔뜩 있습니다.
그들은 설교 한마디에 일생이 좌우됩니다. 그래서 섣불리 가르치면 안됩니다. 더구나 극적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기에 잘해야 합니다. 우냐, 좌냐 사생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지혜롭게 잘해야 합니다.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해도 지혜롭게 행동할 때 호감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행동 여하에 따라서 해줄 것도 안 해주고, 안 해줄 것도 해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