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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1999.03.19 (금)

30개론 전체 개요 말씀 시리즈 연재

선포일
1999.03.19 (금)
성경 본문
마4: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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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론 전체 개요 말씀 시리즈 연재 1. 전 초 19990319 금 아침말씀 감사와 회개와 사명과 구할 것 마4:13-20 생명의 죽을 고비에서 살려주신 것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전초 말씀이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듣고 모두 어떤 뜨거운 은혜만 받으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얘기하는 이런 얘기를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한번도 하나님이 죽을 고비를 살려주지 않은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3번 10번 30번 그리고 죽을 고비 말고도 물질로 도와 준 것, 어려운 문제 해결해 준 것, 자기 기도한 것 해결해 준 것이 수백 가지라는 것입니다. 나는 표상이니 누구보다도 더 엄청난 죽을 고비를 생명의 고비를 살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이 얘기를 진지하게 해봐라 이것이 산 설교니라. 그 얘기 전하고 30개론을 전해보아라. 그래야 되느니라.’하셨습니다. 그것이 30개론을 전하기 전에 전초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전초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하나님 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하나님이 도왔다 아니할 자가 없다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나와 같이 그런 죽음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한번이 아니고 몇 번씩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보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격적 은혜가 가슴에 불붙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말씀을 듣고 선생님 같이 여러분들도 그런 충격적인 은혜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19980525 월 아침말씀(월명동 자연성전 북편벽화) 이제가라.내가네입과함께 할것이다 출4:10-17 어제도 예배 끝나고 사람들 돌아보고 있는데 “너무 머물렀다. 빨리 가라”하셨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조종하는 것입니다. 너무 머물러 있다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옆에서 운영하고 계신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전초가 시원찮으면 선생님이 잘 가지를 않습니다. 정말로 알고, 크게 보는 사람에게는 접해주고 얘기를 해줍니다. 그러나 대개는 모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뭐하러 해줍니까? 깨닫지 못하는데 뭐하러 해줍니까? 아는 그만큼만 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가치를 깨닫고 아는 사람만 계속 크는 것입니다. 19980621 주일 주께서 함께 하시옵소서 요11:21 전주 실내 체육관 결국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보니까 30개론 같은 알짜배기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자세하게 하려면 암만 못해도 전초말씀을 빼놓고 30시간은 해야 합니다. 전초말씀은 적어도 2/3정도는 해야 합니다. 30시간이면 20시간은 전초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냥 데려다 가르치니까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간단하게 된 것이 도표를 이용한 도표강의 입니다. 그림을 보면 잊어버리지 않고 다 기억이 납니다.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니까 중계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2. 베드로와 물고기 19980723 목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 너는 내 것이라 사 43:1-3 사람은 여든 팔십이 먹었을지라도 자기의 삶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가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하는 말이 “못 같은 것을 박지 마시오. 1년 살다 가면서 못을 있는 대로 때려 박으면 아주 흉측합니다. 그러니 제발 못은 박지 마십시오. 못을 박으려거든 아주 들어올 생각도 마십시오”했습니다. 그 전에 살던 사람이 못을 있는 대로 때려 박아놓고서 살았는데, 그 사람을 내보내고는 다시는 접방살이를 안주겠다고 하면서, 제발 못은 박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전에 박은 못은 사람 데려다가 다 뺏고, 옷을 걸을만한 것으로 몇 개만 남겨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들어올 때 그런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두어 군데만 남겨놓은 줄 알고서 두어 곳만 사용했습니다. 옷을 걸려고 해도 너무 못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 나오려고 이삿짐을 챙기다 보니 사방에 못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주인이 상당히 인격적이구먼.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 동안 사용하지 못했네’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주인만 보면 항상 ‘자식. 자기야 농이 있어서 넣으면 되지만, 나는 농도 없는데.... 접방살이가 서럽구먼. 그래도 못을 몇 개씩은 박아 놨어야지’라고 했었습니다. ‘자식. 못도 안 박아 놓고서 세를 놓아?’했습니다. 주인이 무슨 얘기를 해도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오늘 교회 가십니까?”물어도 간다고 하고 나서는 ‘자식. 못을 몇 개 박아놓지. 못도 못 때려 박으면서 무슨 주인이야? 나는 앞으로 집을 크게 지으면 못을 많이 때려 박아 놓을 것이다. 자식’했습니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자식. 못도 안 때려 박아놓고서’했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못이 많았습니다. 못의 숫자가 자기 옷을 걸고서도 충분히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모르는 것은 여든 팔십까지 모르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놓고서도 오해를 합니다. 오해는 오히려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입니다. 자꾸 오해를 해버릇하면 오히려 본인에게 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께 성전 세를 받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이야 만 왕의 왕, 만주의 주였습니다. 그러니까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또 친구 10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의 생일이 돌아와서 선물을 해주기로 했는데 생일을 당한 사람에게까지 가서 돈 내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돈 1만원만 내라. 생일 잔치를 하려고 한다”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경우는 본인은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는 하지만, 오히려 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보, 빨리 가서 주머니의 쌈짓돈이라도 꺼내서 갖다 주시오”해서 갖다 주었습니다. 그 돈까지 합해서 생일 선물을 하고는 큰소리 빵빵 칩니다. “이것은 우리 포켓 돈을 털어서 산 것이니 정성스럽게 받아”합니다. 마치 자기들 돈이 100% 들어간 것처럼 생각하는데, 거기서 “친구 그것이 아니네. 나도 돈 냈어”라는 얘기를 하겠습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격입니다. 꼭 하고싶은 얘기지만 안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이란 해야될 것이 있고, 안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금 내라고 쫓아다니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에게 얘기하셨습니다. “어떤 임금이 있는데 아들에게 세금을 받겠느냐, 타인에게냐?”하니 “당연히 백성에게 받아야지, 임금이 아들에게 세금을 받습니까?”했습니다. “너는 이제 알았구나. 그럴지라도 너는 바다에 가서 고기를 낚으면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너와 나를 위해서 세금을 내라”하셨습니다. 오히려 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그것은 생일날 생일 당한 사람에게까지 돈 거두는 것과 똑같은 얘기입니다. 그럴지라도 내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주님인 줄 모르고서 세금 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세금 한가지만 갖고서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 있었던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세의 경우도 이방의 여자를 취했다고 누나인 미리암이 그러면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때는 모세가 걸렸기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법으로는 걸려도 천법에는 안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도 종교문제로는 유대 종교에게는 걸렸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나라로 가서는 그것으로 안 걸립니다. 그래서 원국으로 가고 싶다고 바울이 원했고, 결국 로마에 가서는 안 걸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걸렸습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하늘 나라로 볼 때는 안 걸리고, 세상으로는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나서셨습니다. 모세가 입장 곤란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나서셔서 “너는 종이고, 얘는 내 앞에 충성된 세운 자가 아니냐? 너는 꿈으로 보여주고, 이에게는 실체로 보여준다. 그러니 얼마나 차이가 많겠느냐? 그 잘못한 것으로 인해서 밖에 나가 있다가 와라”하여서 “하나님께서 누나에게 나갔다 오라고 합니다”하여서 나갔을 때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문둥병 있는 사람은 나을 때까지 성안에 못 들어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런 것과 똑같습니다. 법이 많습니다. 3. 태양아 멈추어라 19980203 화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그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계22:10-15. 태양은 가는 것이 아니기에 태양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시속 1600Km로 달리는 지구가 멈춘 것도 아닙니다. 지구가 멈추었다면 다 튕겨 나갔을 것입니다. 차가 100Km로 달리다가 어느 선에 딱 멈추어도 튕겨 나가는 것인데, 그 무겁고, 빨리 달리는 지구가 멈추면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자동차보다는 수억만 배는 무겁고, 수십 배 빨리 달리는 지구가 여호수아가 싸울 때 순간에 멈출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경험적으로 성경의 많은 진리도 깨닫고, 하나님의 깊은 심정의 사랑도 나의 짝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내가 그 동안 많은 경험한 것을 통해서 볼 때 시간적이 굉장히 많습니다. 5시간 꼭 한다고 했는데 끝나고 보니 오히려 그렇게 안 걸린 것이 많았습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일을 할 사건이었는데 하다보니 불과한 시간이 간 것을 많이 봅니다. 그 당시 여호수아도 엄청난 시간이 걸려서 전쟁을 할 것으로 생각했고, 그 당시 해는 얼마 남지 않았기에 기도를 하고서 싸움을 하여 쳐부수었습니다. 그렇게 다 이기고 쳐부수었는데 아직도 해가 남아있었기에 ‘아, 해가 멈추었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여호수아의 시간적 착각인 것임을 최종적으로 전했습니다. 사람은 시간적 착각뿐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으로 착각이 많습니다. 잔디밭에 올라가서 보면 운동장에 비해서 잔디밭이 배 이상은 크게 보입니다. 또 마당에 와서 쳐다보면 잔디밭은 운동장의 1/3밖에 안되어 보입니다. 내가 여러 번을 왔다갔다하면서 보다가 결국 확인해보니 평수로 볼 때는 둘이 많은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착시현상입니다. 똑같은 키인데도 뚱뚱한 사람이 마른 사람보다 작아 보입니다. 마른 사람이 훨씬 더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이 살을 빼면 훨씬 더 크게 보입니다. 똑같은 키인데도 그렇습니다. 인간도 그렇게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실수하는 것이 많습니다. 100번 봐도 1000번 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사람이 착시 현상을 참고하지 않고 산다면 생명까지 위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이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내가 차를 타고 가는데 강원도 근방인데 앞에 길이 푹 꺼져있더라구요. 그래서 위험하니 천천히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곳을 지나갈 때는 차가 안 내려가더라구요. 아스팔트 위가 깊게 꺼진 것으로 보였지만, 색이 짙어서 그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의 거리도 그렇습니다. 착시 현상이 일어나면 코앞에 있는 것도 멀리 보이기도 합니다. 멀리 있는 것도 가깝게 보이기도 하고, 가깝게 있는 것이 멀리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듯이 인간의 생각도 메모리 시키기에 달렸습니다. 본인이 메모리를 어떻게 시키느냐가 문제입니다. 여호수아도 “한번 싸우고 나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겠구나”했습니다. 적어도 한번 싸움이 붙으면 5-6시간은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5-6시간 갖고서는 개인의 싸움도 안 끝나는데 그 큰 지역의 싸움이 끝나겠습니까? 그래서 하루 종일 싸워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해가 둥글레 산 근처에 걸치면 ‘아이쿠, 오늘 예배 끝나면 침침하겠다. 서둘자’하고서 설교를 끝내고 보면 아직도 해는 한발이나 남아있습니다. ‘내가 의식하고 설교를 조금했나?’하지만 할 것을 다했습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한바탕 싸우고 나면 하루 종일의 시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한바탕 싸우느라 정신이 없이, 시간이 갔나왔나 모르고, 누가 죽었나 엎어졌나 모르고 싸우고 보니 아직도 해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기가 태양보고 멈추라고 기도를 한 상태였습니다. 막다른 골목이기에 얼마나 야물질 기도를 했을 것이며, 얼마나 메모리가 강하게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싸우고 나서도 태양이 남아있기에 하루종일, 밤새도록, 다 싸우기까지 태양이 넘어가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본인이 볼 때는 싸움할 때 하루 종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일순간에 싸움이 끝난 것입니다. 물론 옛날에는 활과 창으로 싸우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내가 월남에서 싸움해보니 신형무기로 싸우면 쉽습니다. 신형무기로 싸우면 쉽게 싸우지만 그만큼 사람도 약아 빠져서 잘 안 맞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거기가 거기입니다. 선생님이 2개 여단과 싸움을 해봤습니다. 나는 적어도 초저녁에 싸움이 붙었기에 날샐 때까지 해야 한 막이 끝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나서 보니 불과 시간반 정도에 끝났습니다. 밤새도록 싸울 것으로 알았지만 후닥닥 끝났습니다. 이번에 월남에서 온 친구도 나에게 도움이 되려면 간증하라고 해서 간증해주었습니다. 엄청난 시간이 소모될 것으로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아무리 기다려도 날이 안 새었습니다. 그러니 싸움은 일순간에 금방 끝났던 것입니다. 전쟁할 때 가지고 다니는 총알은 20분만 넘으면 다 쏩니다. 싸움이 붙으면 정신 못 차리고 마구 쏘아댑니다. 전쟁이 붙으면 바위 뒤에 있다가도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와서 다리며 쏩니다. 전쟁할 때 최고의 스릴을 느낍니다. 자기에게 최고로 대항하는 사람을 죽일 때 최고의 스릴을 느끼는 것입니다. 막상 전쟁하는 사람은 생각같이 그렇게 무섭지를 않습니다. 일반 사람이 보기에는 무섭고 두렵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불이 붙고, 작전에 몸이 풀리면 밥만 먹고 작전 나가기를 좋아합니다. 1주일이 되도록 적을 못 만나면 그렇게 곤고한데, 그러다 적이 나타났다고 하면 날아다닙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많은 경험을 겪었을 때에 시간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설교할 때도 많이 느낍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전했는데 순간 시간이 지나간 것으로 느껴집니다. 영적인 상황으로 들어가면 순간인데도 육적으로는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육계의 시간과 영계의 시간이 있을 때, 영계의 시간이 1분이라면 육계의 시간은 10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쓰여질 때는 대개는 영계에서 한시간이 갔다고 생각될 때는 실제로는 3-4시간이 갔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그렇습니다. 한 20분 갔다고 했을 때는 10분밖에 안 걸립니다. 한참 몸이 풀려서 축구를 할 때는 1시간쯤 찼겠다고 생각했는데 3-4시간이 지났을 때가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은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사람이 정신적인 것은 한번 거기에 빠지면 시간 제한을 안 받아서 잘 모릅니다. 뇌파는 그렇게 생겼습니다. 해보면 순간입니다. 어떤 사람과 밥 먹으면서 얘기를 했는데 30분 걸렸는지 알았는데 하고 나니 1시간씩 지나갔습니다. 누구는 면담했는데 잠깐의 시간이 갔다고 생각했는데 2시간이 가기도 했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보니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 착각입니다. 자기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 옆의 사람이 보기에는 시간이 다르게 걸린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그렇게 생각했지, 실제 시간은 다 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20-30년 가까이 성경을 풀은 결과입니다. 엄청난 지구, 무게 있는 지구를 하나님께서 그 당시의 한 족속을 위해서 끝내셨겠습니까? 한 족속이 싸우는 것을 돕다가 착각해서 갑작히 지구를 세웠는데 그러다가 지구의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 시대 순간을 돕다가 지구가 날아가 버린다면 이후 하나님께서 예언하고, 염려했던 지구상의 일이 그냥 깨져버리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은 그런 무서운 일을, 원리에 벗어난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논리적으로, 지식적으로, 천륜의 법칙적으로 선생님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적과 싸우는데 있어서 원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것만 협조하면 끝납니다. 굳이 그것 때문에 지구를 멈출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시간만 해결해 주면 끝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싸우는데 시간으로만 도우면 되는데 뭐하러 지구를 멈출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린아이가 지금 방앗간 핏대에 손을 넣었으니 그것만 빼내게 하면 되는데 뭐하러 기계 전체를 멈춥니까? 어린애가 지금 전기에 누전 되었는데 그 집 전기만 끄면 되지, 뭐하러 화력발전소까지 다 불을 끌 필요가 있습니까? 그 때도 온 지구상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전체가 사용하고 있는 지구를 멈출 필요가 있습니까? 지구가 안 돌아가면 엄청난 생명의 문제가 없겠습니까? 지구가 안 돌아가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누가 조사해 와보십시오. 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안가면 가던 길을 못 가는 일이 생깁니다. 그렇게 지구가 안가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가다가 안 간다고 “잘되었다. 오줌 누고 가자”합니까? 자동차야 가다가 안가면 오줌누고 가면 되지만, 지구가 가다가 안 돌아가면 엄청난 이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이것을 연구해 와보십시오. 나는 수학자이고, 물리학자입니다. 옛날부터 철인들은 물리학을 자동적으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에 도가 터서 전부 아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것, 생리적인 것, 역리적인 것을 같이 알게됩니다. 만일 지구가 안 돌게 하려면 지구뿐 아니라 천체 전체가 필요합니다. 지구를 안 돌게 하려면 천체 전체의 작동도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지구만은 안 멈추어질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영계로 배울 때는 지구와 다른 천체들이 피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나도 천문학을 조금 배웠습니다. 지구가 핵이기에 지구와 전체의 천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멈추게 하려면 전체의 것을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조금 싸움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지구를 멈추어서 전체의 사람에게 영향받게 만들고, 다른 천체까지 영향받게 만들겠습니까? 빨리 싸우게 해서 해결해 주면 되는데요. 큰 싸움일수록 후닥닥 입니다. 큰 싸움일수록 대개 후닥닥 끝납니다.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힘이 좋은 사람인데도 싸우면 후닥닥 끝납니다. 반면에 힘없는 사람도 힘이 없으니까 바로 끝나기도 합니다. 우리 애들중 단대 다니는 애가 천하장사가 되었더라구요. 아파서 나에게 매일 기도 받고 그랬었습니다. 이런 원리로 볼 때 지구를 멈출 필요가 없습니다. 경험으로 성경을 푸는 것이 많습니다. 투시도 경험 투시가 많고, 경험 계시가 많습니다. 자기가 겪어볼 때 그것이 아니었으면 틀림없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경험 투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 같은 어른들은 대학을 안나오고, 정규 공부를 안 했을지라도 똑같이 공부한 것입니다. 대학을 안 다녀도 아는 것은 똑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내내 그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풀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배우는데, 공부만 한 사람은 실제로 풀을 뽑아본 사람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실기를 하고, 직접 해본 사람은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직접 해본 사람은 수천 번을 해보기 때문에 수천번 하기 전에는 그 사람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으로 배운 것은 실제로 해본 것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안 배웠다고 하지만, 그 일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다 배운 것입니다. 물리학도 안 배웠지만 내가 다 터득했습니다. 법칙을 터득했기에 아닌 것은 영원히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닌 것은 영원히 아니다. 긴 것은 영원히 긴 것이고”하셨습니다. 지구촌 모든 사람이 이렇다고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구촌 사람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태양이 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닌 것은 영원히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몰랐을 뿐이지, 천륜의 법칙은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합니다. 다만 인간의 무지로 인해서 이렇게 알기도 하고, 저렇게 알기도 하는 것입니다. 옛날 책에는 박사들의 책에도 태양이 갔다고 써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터득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주인만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19980728 화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호산나,찬송하리로다마21:15-17 성경에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여호수아가 “태양아 멈추어라”기도했더니 태양이 멈추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학자들이 다 태양이 멈춘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제일 처음으로 나에게 가르쳤습니다. “너는 태양이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럼요. 믿습니다”하였습니다. “그래? 믿으면 확인해야지”하셨습니다. 선거에서 자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고 나서 확인해보니 몇백표 떨어졌다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금산군의원으로 나온 사람이 내 후배인데, 선거하기 전에 800표 뒤진다고 내가 얘기했었는데 3표 차이로 맞추었습니다. 797표 차이가 났습니다. 800표 떨어진다는 말을 다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아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하늘의 천비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니고 오직 되는 사람의 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대통령 선거 때도 물으러 옵니다. 물론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이 진리를 다 배우고 나면 가르쳐주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본인도 예언할 수 있으니까요. 19980929 화 아침말씀(월명동 자연성전 식당) 속을 깨끗케 하라 마23:25-26 태양아 멈추어라도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은 천주적인 법칙과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번 수료식 때 말씀이 나왔습니다. 지구가 도는 것은 지구촌의 공기가 골고루 섞이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지구가 도는 것은 생명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내가 들었습니다. 지구가 도는 것은 지구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가장 핵적으로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결국 그 생명적인 것이 공기였다고 밝혔습니다. 공기를 골고루 하기 위해서 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구가 돌지 않으면 지구상의 존재는 다 죽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고서는 시대가 시작되었어도 몰랐고, 말씀도 근본을 몰랐습니다. 물론 통일교로 돌아다니면서 일부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것 갖고서는 진리에 대해서 많이는 모릅니다. 내가 얘기했기 때문에 시대도 깨닫게 되었고, 나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내가 얘기해서 알게된 것입니다. 내가 얘기하지 않았다면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깨닫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숨겨서 몰랐다. 안 숨겼으면 대번에 알았을 것이다”하셨습니다. 이 숨긴 것이 말씀을 들음으로 숨긴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개인 면담을 하자고 하더라구요. 하고싶은 얘기가 있다고 그러셨습니다. 아버지를 성령님께서 감동시켜서 나에게 속시원한 얘기를 하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누구누구가 걱정된다는 말을 하시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9890927 수요 일순간 시90:8-12 성공을 하려면 첫째, 시간이 많이 있어야 됩니다. 첫째는 시간입니다. 시간! 아얄론 골짝에서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거민들을 이긴 첫째 이유가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시간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시간이 많아야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장년부들에게 다시금 젊음을 준다면 아마도 경험을 바탕으로 대성공을 할 것입니다. 시간은 1분도 뒤로 빠꾸(back) 할 수 없습니다. 1초도 빠꾸 할 수 없는 것이 천륜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나는 빠꾸하는 법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시간아 멈춰라!”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시간을 맘추는가? 5시간을 갈 것을 2시간 동안에 가면 3시간이 남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뛰는 것을 연습해서 시간을 많이 단축 하는 길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머리 쓰듯이 머리를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5시간을 일 할 것을 2시간만에 하고 3시간을 남기기 때문에 배(倍) 이상의 엄청난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시간은 24시간을 25시간으로 줄 수 없는 것이므로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 하라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혜로우면 시간을 많이 쓸 수가 있습니다. 시간을 아껴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시간 쓰는 것을 계수해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젊은 자들에게는 특히! 젊은 사람들도 버뜩하면 시간이 다 간다는 것입니다. 4. 7단계 법칙 19931227 월 아침말씀 풍부한 삶 마5:33-42 기독교의 사랑 정도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다. 우리는 1급이다. 전자는 2급, 기독교는 3급, 4급은 천주교, 5급은 유대종교, 6급은 회교, 7급은 이방인으로 보면 된다. 역사가 그렇게 역사가 진행된다. 19970214. 금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비유를 하면 광산의 금줄이 있습니다. 금을 캐기 위해서 굴을 파고 들어가는데 아무데나 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을 못 캘 때는 ‘광목 친다’고 하는데 죽친다는 것입니다. 광목칠 때는 1년이고, 2년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못하겠다. 돈도 없고, 힘으로도 안 된다.”하고 그만둡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거기서 캤는데 그 이튿날부터 금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금도 가다가 맺힌 곳이 있습니다. 우리 도표(7단계 법칙)에도 있습니다. 금이 나려면 금나는 법칙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금이 안 납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무조건 아무데서나 금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금이 나는 법칙이 형성되지 않으면 절대 금이 없습니다. 금을 많이 캔 아버지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금이 50년 전에 1관이었는데 100년이 가면 금을 더 캘 수 있을까요, 그대로 있을까요?” 이런 것은 박사들도 모릅니다. 일반적인 것 즉, 금줄이 와야하고, 둘이 합해져야 하고, 딱딱해야 금이 난다는 것은 전문가나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아는데 이런 최종적인 문제는 신이 아니면 모릅니다. 하나님 아니고서는 모릅니다. 이것을 놔두면 더 많이 캘까요? 최종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꽉 쥐고 계십니다. 그런 것을 내줄 때는 생명과 바꾸면서 내줍니다. 남자가 최종적으로 “너, 나 사랑할래, 안 사랑할래?”하면서 인생을 내주듯이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일생동안 영원히 변하지 않겠다고, 변하면 죽이라고 하고서 하는 것입니다. 불교법도 그렇고, 기독교법도 그렇고 최종적인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4대 교리를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광산 전문가도 모릅니다. 이렇게 따지면 이런 답이 있고, 저렇게 따지면 저런 답이 있어서 분별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다고 합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1관이 그대로 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2관을 캘 수 있다.”고 합니다. 40년 동안 수백관 금을 캤다는 우리 아버지도 답을 못합니다. 최종적인 문제는 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마지막 문제는 못 풀더라구요.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도 그 동안 놔두면 더크는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 “태초에 하나님께서 1관으로 만드셨으면 그냥 있는 것이다.”, 아버지 - “그냥 똑같다.”) 하나님은 이미 그런 답을 할 것을 아셨습니다. 모른다는 것이 답입니다. 내가 산에서 답을 배울 때 그렇게 배웠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이렇게 답을 하실 것 같다고 하면 반대로 말씀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답을 했다 해도 거기에 따른 이론까지는 제출하지를 못합니다. 그 여자가 자기의 아내가 아니고서는 자기의 땅문서를 다 주지를 않습니다. 요즘은 아내라도 다 주지 않습니다. 면담하다 보면 부부의 금슬이 좋은데도 여자는 여자대로 꿍쳐서 감춰놓고, 남자는 남자대로 꿍쳐서 감춰 놓았더라구요.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품속에 있는 여인도 믿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왜 부부일체 되어서 잘사는데 믿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런 꼴이 있어서 그러신 것입니다. 다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꼽치면 안다고 하셨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꼽쳤다가 걸렸습니다. 하나님도 아닌 사도에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있었으면 이렇게 내가 손해 가는 일을 하겠느냐? 하나님 믿는 사람을 죽게 하겠느냐?”라고 오해하고 안 믿다가 불교를 믿게 되었고 너무 고마워 4억을 투자해서 암자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자기 것으로 다 해달라고 하고, 자기가 오라는 사람만 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사업을 통해서 상황의 도가 트였기에 그냥 당하지 않고 싸웠답니다. “그래서 내가 땅문서를 안 해준 것이다. 당신은 스님도 아니다. 뭘 해달라고 하느냐?”하면서 못으로 문을 때려박고서 30리를 걸어서 나왔답니다. 차가 있는데도 성격을 보여 주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아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답을 준다고 해도 답만 주면 안 믿어집니다. 천하의 모든 이치를 설명할 때에야 그와 똑같다고 압니다. 만물의 이치는 똑같습니다. 만물의 이치는 형성되는 대로 번져가게 되어있습니다. 형성이 안되면 번져가지 않고, 형성이 되면 막 번져갑니다. 박재수씨의 소가 하도 오래 살아서 소가 얼마나 사는가 물어보러 금산 소전에 가서 물어보니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하더랍니다. 왜냐하면 소를 죽을 때 까지 지켜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크면서 잡아 먹고, 팔아 먹기 때문에 누가 끝까지 지켜보며 연구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병들어 죽는 것만 봤답니다. 병들어 죽는 것말고 얼마나 사는지 누가 건강하게 관리하면서 지켜본 사람이 없습니다. 엊그제 와서 난로가에서 불쬐며 얘기를 하는데 소가 지금도 힘이 좋아서 구유도 들이받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보리를 내가 베었다고 자복했습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자기도 눈치는 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베어갔는지는 궁금했답니다. 보리 베어다가 소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도 일을 잘하고 말을 잘 듣기에 사람이 먹는 것을 베어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가 잘사나 보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나 보리 먹였다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랑 받으면 잘삽니다. 그리고 말 잘 들었다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 얘기하니 사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듣더라구요. 그 소를 갖고 가려면 갖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 소는 나와 말했던 소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이 형성되면 있게 됩니다. 조건이 갖춰지면 발전하게 되어있고, 조건이 안 갖춰지면 발전이 안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돌에는 왜 금이 없을까요? 조건이 안 갖춰져서 금이 없는 것입니다. 금줄이 지나가야 되고, 거기에 조건이 형성이 되어야 하고, 모든 조건이 갖춰지면 금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그러니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답입니다. 큰다고 할 수도 없고, 안 큰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건이 갖춰지면 2관도 되지만 안 갖춰지면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바로 만물의 책임분담입니다. 이것이 이치의 답입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소리를 못합니다. 지혜로운 자의 답은 들어보면 누구나 맞다고 하게 됩니다. 이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저것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누구보고 잘된다 할 수도 없고, 안 된다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 아들보고 부모가 항상 “내 아들은 잘될 것이다.”했지만 조건이 안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책임분담의 조건을 못해서 안된 것입니다. 그와 똑같습니다. 모든 만물의 이치가 똑같습니다. 모든 도는 딱 하나입니다. 도는 둘이 없습니다. 만물의 도는 하나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내가 “이것은 크는 법이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안 크는 법이다.”대답할 줄 알았을 것이나 아닙니다. 하나님의 답은 만물이 통하고, 온 인류가 통하는 답입니다. 5. 삼 분 설 19970209 주일 말씀 제목 :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 월명동 자연성전(잔디밭 상단부) 사람을 나누어 분석해보면 영이 있고, 혼이 있고. 육체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체, 혼, 육체 세 가지고 존재하고 있어서 육신과 혼이 수수작용을 가지고, 혼과 영이 수수작용을 가지고, 크게 보면 영과 육이 수수작용을 가지고 있고, 육체는 만물과 수수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뛰면 입으로 만물이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영체는 하늘과 더불어 수수작용을 가집니다. 육체와 만물이 잘 통하면 육통했다고 하고, 육체와 혼이 잘 통하면 혼통했다고 하고, 영체와 하늘이 잘 통하면 영통 했다고 합니다. 혼이 통하는 단계에 이르면 상대의 마음을 읽고, 영통의 단계까지 들어가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서로 통하다가 끊어지면 영적인 죽음이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죽어도 육체는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잘 믿고 지내다가 안 믿어서 영적으로 죽어도 육신은 늘 살아서 움직입니다. 우리 육신이 죽어서 장례식을 치를 때는 이미 영과 육의 수수작용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해서 영혼이 존재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영혼이 육신을 떠나버립니다. 예를 들어 집이 다 무너져서 존재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집주인도 집을 다시 지으려고 자기 집을 일단 떠나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육신이 죽으면 정말로 썩어버리는 것입니다. 3일만 지나면 썩기 시작합니다. 어떤 영웅열사나 팔방미인이라고 해도 사람은 죽습니다. 이렇게 육과 혼은 무(無)로 사라져버립니다. 시체는 땅에 묻어서 오래 지나면 썩어서 없어지고, 혼이라는 마음의 세계는 그 사람이 없어지면 그냥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영혼은 남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믿는 세계라면 그 계통에 따라서 올라가게 되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세계의 계통에 따라서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영이 어떻게 생겼습니까?”하는데 영은 자기 육체를 닮았습니다. 내가 영도 안보고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영을 많이 보았겠습니까? 영은 자기 육신의 기본형을 닮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이 가장 닮은 것이 자기 육신입니다. 영이 눈도 있고, 코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리고 영은 원존재이신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부전자전(父傳子傳)인 것입니다. 세종 대왕이 아들을 한 50명 낳았습니다. 그런데 50명의 아들이 다 세종 대왕을 닮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령 변강쇠, 옹녀라고 해서 아들딸 3000명을 낳았다고 해도 거기에 자기를 안 닮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습니다. 자기 유전자를 빼내갔는데 안 닮을 수 있겠습니까? 토끼가 새끼를 천만 마리를 낳아도 토끼를 닮았지 개를 닮지는 않습니다.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들은 창세기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자기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한 것을 모릅니다. 자기 모양과 형상은 자기의 정신과 사상 등을 가리킵니다. 영적으로 보면 자기 모양대로 만든 것은 자기 속성대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선을 보면 좋아하고, 나쁜 것을 보면 싫어하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하고 그러는 것이 형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렇게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과 우리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에 사는 사람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일거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사람은 “그들도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구조가 다 같습니다. 다만 약간 눈이 들어가고, 머리가 약간 노랗고 고수머리라서 그렇지 다 똑같습니다. 거기도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안 먹으면 배고프고 다 똑같습니다.”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내가 하늘 나라에 밥먹듯이 다녔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인간의 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태양과 같은 불덩어리라면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안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보면 작가의 두뇌를 투시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실상이 작품 아닙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의안이 없으면 사람을 만들 때 ‘무엇을 보고 사람을 만들까? 감나무처럼 만들까? 돼지처럼 만들까? 돼지처럼 만들면 내가 늘 돼지를 껴안고 살아야 되잖아, 그럼 안되지.’ 이러다가 자기와 같이 만든 것입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자기를 닮으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버님, 제 친구입니다.” “그러니? 내가 이야기 많이 들었다. 명절은 잘 지냈니?” “예, 인사 받으세요.” “그냥 있지 뭐.” “아버님을 뵈니까 자식하고 너무나 다르군요. 전혀 닮은 점이 없네요.” “뭐? 내가 자식이랑 전혀 닮은 점이 없다고?” “전혀 안 닮았어요.” “그럼 나 심각하다. 그렇게 안 닮았니?” “안 닮았어요.” “그럼 누구를 닮았니?” “윗집 아저씨를 닮은 것 같은데요? 제가 그 아저씨를 잘 아는데 완전히 그 아저씨를 닮았는데요?” “너, 조용히 말해라. 이 돈이 얼마 안되는데 쓰도록 해라. 그리고 이 애 엄마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도록 해라.” “제가 의사인데 건강한지 피나 한 번 빼볼까요?” 그래서 피검사를 해보니 아이의 피가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가 아니었습니다. 윗집아저씨를 닮은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안 닮았으면 끝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닮게 만들지 않았다면 일단 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닮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집에 가서 여러분이 부모를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보십시오.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와 그 자식이 와서 보니까 닮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눈치를 채고 하나님께 물어보니 “괜히 애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너만 알고 있어라. 그들의 자식이 아니다.”그러셨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끝끝내 나보다 자기 아버지가 최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나 화가 나서 들통내버렸습니다. “너는 입양해 온 딸이야.” “선생님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선생님이 그 시대에 내가 태어난 것 보았나요?” “까불지마. 피를 빼봐.” 그런데 그 애는 쇼크를 받고 그날부터 교회에 안 나옵니다. 나는 이발사나 의사도 아니라 바로 도사입니다. 후에 알아보니까 누가 그 집에다 아기를 놓고 갔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도 지금 우리 교회에 나옵니다. 19970210. 월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사람들이 왜 큰 착오를 보였는가 하면 하나님이 “너, 죽어도 산다.”했는데 육이 자기에게 한 말인줄 알아 들었습니다. (30개론 도표중 <삼분설>도표 참고) 예수님이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산다.”했는데 육이 자기에게 한 줄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알고 보니까 영에게 한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육이 “저지요? 저지요?”하고는 “하나님께서 나는 죽어도 산단다.”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너, 아니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배우고 아는 지식의 책임이고 노력의 책임이니까요. 공산주의는 배고프니까 신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 배가 고프니 우리가 벌어서 우리가 먹고살지 신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무신이 꼭 필요하듯이 하나님도 꼭 필요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너, 나와 같이 공중에서 휴거되리라.”하신 말씀은 육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영이 “저지요? 저지요?”합니다. 근본은 육에게 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휴거를 기다릴 때 영적인 휴거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휴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이 자기인줄 알고 맨날 기다리면 웃기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지나가며 “너, 사랑한다.”했는데 거기에 있던 다른 남자가 “저지요? 저지요?”했고, 한 여자도 “저지요? 저지요?”했습니다. 이 때는 상식적으로 여자에게 한 말인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만일 여자가 “너, 정말 사랑하겠다. 부지런히 커라.”했으면 이것은 상식적으로 남자에게 한 말이지 여자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식으로 봐도 “너, 앞으로 내가 오면 공중으로 휴거된다.”는 얘기는 문자적으로 하면 육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문자대로 따지면 육신이 못 올라가니까요. 그러나 영적으로 하면 육에게 한 말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한다면 육에게 한 말입니다. 그런데 대개 사람들이 말귀를 못 알아 듣고, 이해를 못합니다. 나도 학교에 다닐 때 선생이 나보고 이해를 못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도 안 가르쳐 주고 이해를 못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해는 따로 책이 없습니다. 그러니 풀어서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곰곰이 생각했더니 영에 대해서 먼저 가르쳐 주어야겠더라구요. 영에 대해서 안 가르쳐 주고 성경을 풀어주니까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한글에는 모음이 있고, 자음이 있는데 모음만 갖추어서 글씨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음만 갖추어서 글씨가 안되고 반드시 모음과 자음을 갖추어야 하듯이 영과 육을 분명히 갖추어야 겠습니다. 사람들이 육에 대한 얘기는 많이 아는데 영에 대한 얘기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 민족이고, 어느 세계이고 영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일본도 영에 대한 것을 잘 모르고, 우리 한국도 종교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영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벌써 종교의 나라라면 영에 대해서 알고 영을 딱 잡아야 합니다. 의사들이 진맥을 잘하면 용하다고 합니다. “그 의사는 용해. 너무너무 잘 알아. 내가 어려서 속썩어 화병이 생긴 것을 딱 집어내더라.”합니다. 그런데 화병은 반드시 속을 많이 썩어야 오는 것을 알기에 집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어내면 용하다고 하고, 거기서 치료를 받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이 종교도 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하다’는 말은 한의원에 통하는 얘기이고, ‘실력 있다’는 말은 의사에게 하는 말이고, ‘신령하다’는 말이 종교성에 통하는 말입니다. “영적인 사람이다. 마음을 읽더라.” 하는 얘기는 종교 세계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종교는 절대로 영의 세계만큼은 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의 세계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의 영을 못 봅니다. 그러나 상식적인 세계로 볼 때 영도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사랑한다고 하면 상식으로 볼 때 남자에게 한 얘기입니다. 성서를 풀 때도 상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요11:25->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했을 때 제자들이 “예.”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안 죽는다니까 육이 좋아하며 “나지요?”하며 계속 믿고 따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영에 대해서 모르는 시대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니까 “아멘. 할렐루야.” 했습니다. 육이 자기인줄 생각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영이 “아멘. 할렐루야. 저지요?”했어야 했습니다. 영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니까 믿으면 바로 산다는 것입니다. 육체가 죽었다 산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수수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과 육은 바로 한 지체입니다. 영이 남편이면 육은 부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예수님과 더불어 수수작용을 일으키기에 그것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았다는 것이고,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다고 하니까 육에게 하는 말 인줄 알고 막 돌아다닙니다. 기성에서 이런 식으로 안 가르치면 내가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는데 지구상 모든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죽어도 산다. 예수가 말씀했는데 왜 그것을 불신하느냐?”합니다. 말귀를 못 알아 듣고 그럽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했습니다. 성령의 교회란 성령의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을 성령의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나 할 것 없이 모든 종교들이 영과 육의 문제에 대해서 착각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산다는 것은 사망 권에 묻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망권에 묻히는 것을 죽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지금 사상도 행실도 죽어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살아 있습니다. 그 때 “너희가 대한 민국의 말을 들을진데 살리라.”하면 “이놈아, 우리가 지금 죽어 있느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민주주의 사상으로 살아난다는 것이고, 보다 이상적인 이 시대로 살아 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성경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휴거된다는 것은 그 몸뚱이를 갖고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님의 프로그램과, 예수님의 사상과, 성인의 행실에 의해서 살아나가면 휴거된 것입니다. 그러면 농사를 지어도 휴거요, 장사를 해도 휴거입니다. 예수님이 온다고 해서 장사를 집어 던지는 것은 기성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다 없애 버리고 오직 따르라고 하지만 꼭 필요한 사람은 버리고 따라야겠지만 그 외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주관과 사상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성서의 말씀이 영에게 한 말인지, 육에게 한 말인지 분명코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31,062절의 말씀이 영적인 말씀이 있고, 육적인 말씀이 있어서 두 가지가 완전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구약 말씀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육에 해당되는 말씀이고, 신약 말씀은 예수님 이후로 전부 영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전체를 볼 줄 모르면 성경을 못 봅니다. 이것을 못하고 교회에서 맨날 설교만 해대면 안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백성을 가르치는 일을 잘했다고 했습니다. 덤벙덤벙하지 않으셨습니다. 손뼉 치며 부흥 집회하면서 헌금만 하고 끝내면 안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모릅니다. 불교를 오래 다녀도 ‘나무아비타불’의 뜻을 모릅니다. 미륵불의 뜻도 모릅니다. 배워야 압니다. 기독교도 똑같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런데 신학교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헤브라이즘, 헬라이즘이나 따지고, 나가서 하나님을 너무 지나치게 따지면 안된다고나 배웁니다. 그래서는 안되고 깊은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영적인 것을 갖추지 않으면 성경을 얘기해도 자꾸 육적으로만 알아 듣습니다. 19970212. 수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육의 기본 IQ는 120이고, 영의 기본은 1200입니다. 그리고 그 영이 하나님과 통하기 시작하면 12만이 되고 그러다 하나님의 위치까지 가면 상상도 못하게 됩니다. 영계에 들어가면 자기가 내고싶은 새소리도 다 낼 수 있습니다. 영계에 있으면 1년 배울 노래도 하루면 거의 합니다. 바로 들어갑니다. 바로 혓바닥이 돌아갑니다. 이런 영의 단계에서 한 것입니다. 아니면 이런 짧은 시간에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짧은 시간에 성경 2300번을 읽겠습니까? 도(道)로서 훑어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100리의 길을 한시간에 가겠습니까? 그러나 영의 단계에 들어가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축지입니다. 나는 실존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것은 지금도 합니다. 여러분은 직접 축지하는 사람은 못 봤을 것입니다. 달리기 초인은 봤고, 축구 잘하는 초인은 봤어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초인은 드뭅니다. 나같이 세계를 뒤집을 수 있는 진리를 갖고 있는 초인은 없습니다. 나는 운동에도 초인이고, 머리에도 초인입니다. 그 전에도 동네 청년들이 내가 기도만 하고 돌아다닌다고 영들렸다고 무시했는데 “내가 영들렸나 글쓰기 대회를 합시다.”했었는데 나보고 교만하다고만 하더라구요. 나는 그 때도 글을 잘 썼습니다. 영계에 들어가면 책이 한 권씩 지나갔습니다. 결국 나는 시인 되었습니다. 시인되기 힘듭니다. 이제 나는 하는 대로됩니다. 앞으로 작가도 되고, 작곡도 할 것입니다. 나는 배우기만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과 같이 수수작용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을 갖고서 배우고 터득한 것입니다. 육신은 한계 이상은 못 올라갑니다. 공연히 보통의 머리로 했다가 돌아 버립니다. 우리는 영의 단계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육이 있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육의 세계를 떠날 수 없으니 부지런히 땀흘려 열심히 뛰고 달려라. 경제도 펴라. 권력도 잡고 몸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하라.”합니다. 그리고 영계는 영을 중심하여 뛰고 달려야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친해야 합니다. 안 친하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북한에 살면서 김일성과 안 친하면 죽습니다. 그것을 하면 큰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육계도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육신을 뛰어다니게 하고,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며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며 책임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면 됩니다. 해도 안되는 것은 신의 백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천운을 타야 합니다. 개미가 도와도 도와주어야 삽니다. 하나님과 일체된 영이 마음으로 내려오고, 초인의 마음과 이상적인 마음을 갖고서 육신을 통해 나타날 때 일도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뒤적거리다가 1년 할 것도 2년하고, 일생을 갑니다. 19970215. 토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고전15:39->을 중심해서 영에 대한 얘기를 해주겠습니다. 칠판 강의보다 도표 보는 것이 낫습니다.(30개론 도표중 <삼분설>과 <영계 구조 형태 및 초혼영들의 모습> 도표 참고) 39절을 보면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있고, 짐승 육체도 있고, 새의 육체도 있고, 물고기의 육체가 있어서 육체라고 해서 다 같은 육체가 아니고 만물의 영장의 육체와 그들이 잡아먹는 육체는 다르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의 육체하고, 영체는 판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는 동물이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영체는 잡아 먹을래야 잡아먹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만물은 인간의 기본형을 닮고 태어났습니다. 모든 만물은 사람의 기본형의 구조를 닮았습니다. 소도 사람의 기본형을 닮았고, 물고기도 사람의 기본형을 닮았습니다. 코도 있고, 눈도 있고, 등치도 있고, 사람도 아랫배가 나왔고 고기도 아랫배가 나왔습니다. 더 나온 고기가 있고, 덜 나온 고기가 있듯이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세세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못 알아 듣습니다. 기본형이 닮았다고 하면 “기본형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시계도 사람의 기본형을 닮았습니다. 전부 다 닮았습니다. 산도 사람의 기본형을 닮았습니다. 산도 등발이 좋은 산이 있고, 어떤 산은 뾰족하니 마른 산이 있습니다. 만물이 다 닮았습니다. 그래서 몽땅 털어 말할 때 지구는 인간의 기본형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수분이 있듯 지구에도 수분이 있습니다. 수분이 70%씩 있습니다. 사람에게 뼈가 있고, 지구에게도 뼈와 같은 용암의 세계가 있고, 지구에 나무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솜털이 서있습니다. 어떤 산은 불나서 다 타버렸구요.(웃음) 이렇게 다 기본형이라는 것입니다. 일일이 얘기하려면 시간이 걸려서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지구에 흙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살이 있습니다. 지구에서 흙이 자꾸 떠나버리고 앙상한 바위만 남으면 농사를 못 짓습니다. 사람도 자꾸 말라 들어가면 안됩니다. 똑같습니다. 이런 것이 기본형이라는 것입니다. 지구를 지리학적으로 세밀히 내다보면 손 같은 부분이 있고, 얼굴 같은 부분이 있고, 배꼽 같은 부분이 있고, 생식기 같은 부분이 있고 다 있습니다. 나에게 지적하라면 어디가 어디라고 그런 것 딱딱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안 배웁니다. 학교에서는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는 것이나 배웁니다. 그것은 학문일 뿐입니다. 이것도 학문이기는 하나 약간 실존적인 학문입니다. 실제와 더불어 배우니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연결시켜서 배우니 이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사람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철학이 아닙니다. 지구를 확대시키면 우주도 사람의 기본형을 갖고 만들었습니다. 우주에 등불같이 태양이 있는데 사람에게도 등불과 같은 눈이 있습니다. 달과 해가 있어 하나는 밝고 하나는 덜 밝습니다. 그렇게 해놨습니다. 그냥 지껄이니까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벌써 내 입을 통해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한 번 하러 오기도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냥 할 수 없기에 준비하고, 대화하고, 예비했다가 오기 때문입니다. 일단 말씀을 안하면 안할까, 하면 오리지날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름 있는 회사라면 빵을 하나든 둘이든 찌려면 태워서는 안되고 잘 쪄야 합니다. 100개이든, 10000개인든 잘 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한번 하려면 힘듭니다. 그래서 준비 안되고 오는 사람은 안됩니다. 말씀들을 준비를 하고 와야 합니다. 나도 준비해 오니까요. 우주도 인간의 기본형을 닮았습니다. 보이는 세계인 지구를 중심한 우주 세계는 육신과 똑같은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을 중심한 천주의 세계는 인간의 영의 기본형을 갖고 만들었기에 영의 세계와 똑같습니다. 영의 존재 세계를 연구하면 그 세계와 비슷합니다. 똑같습니다. 사람이 옷을 벗은 것과 같이 벌거벗은 산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자체 세계의 대화보다 상대 세계의 대화가 더 좋습니다. 내 얘기만 해서는 무언가 빠진 것입니다. 내 얘기도 하고, 상대의 얘기도 해야합니다. 그래야 대화가 이뤄집니다. 시를 쓸 때도 그렇습니다. 시를 쓸 때도 두 가지를 보고서 씁니다. 한 가지만 봐서는 안됩니다.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막연히 압니다. 기독교인들도 막연히 알지 누가 뛰어나게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벌써 누군가 나와서 사명을 하고서 갔을 것입니다. 영계를 그저 꿈에 불과한 세계로 압니다. 기도 많이 한 사람은 그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가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것도 부분적으로 알뿐입니다. <고전13>에는 그 때가 오기 전까지는 부분적으로밖에 모른다고 했습니다. 여기 월명동도 아직은 부분적 개발입니다. 앞산 한쪽과, 잔디밭과, 샘은 완공식을 했지만 그 나머지는 부분적인 것입니다. 집도 부분적이고, 운동장도 부분적입니다. 부분적인 것은 완전한 것이 오면 상상도 못할 차이가 있습니다. 건물도 대리석으로 지어 놓으면 상상도 못할 건물이 될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을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영계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영계에 대해서 쓴 글을 가져 와보십시오. 제대로 쓴 것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었어도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예수님을 믿었어도 예수님의 근원에 대해서 잘 모르고, 부분적으로만 압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인 것을 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것은 언제 올까요? 기성인들은 하늘나라에야 가야 온전한 세계라고 하며, 이 세상에 완전이 어디있느냐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하면 바보인 것입니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하면 그것은 완전한 것입니다. 더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그렇게 보십니다. 우리만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공통적인 세계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수학적인 용어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어서 발전해 왔기에 하나님이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수학적인 용어를 주시고, 요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날을 달 갖고 계산하게 만드셨습니다. 월삭에서 만월까지 계산해서 30일씩 계산하게 하셨습니다. 달 갖고 한계를 정하고, 바닷물의 한계를 못 벗어 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찾았을 뿐이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바닷물을 만들었습니까, 물을 만들었습니까, 나무를 만들었습니까? 못 만들었습니다. 자료를 다 주어서 인간이 쓰는 것뿐입니다. 인간에게는 창조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근원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어제도 말했지만 금이 1관이 있으면 50년 후에 얼마가 되었는가를 모릅니다. 창조의 근원을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모릅니다. 박사가 많이 안다고 하지만 바닷가의 모래만큼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영계에 올라간다고 해서 다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이 세상의 학문을 못 다배우고 죽는 것처럼 영계에서 영원히 살면서도 못 다 배우고 산다고 안다면 쉬울 것입니다. 그렇게 많습니다. 무형의 세계는 무형의 세계로서 배워야지 유형의 세계 갖고는 시간이 짧아서 못 배웁니다. 거북이가 1000년 산다고 하니까 어느 사람은 그것을 지켜보다가 죽었답니다. 사람에게 이 육계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육계만 위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잘되나 영계 가서 보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눈깜박입니다. 영계에 비하면 1초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100년은 1초인 것입니다. 그 1초안에서 우리가 다 하는 것입니다. 1초안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뭐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1초를 확대시킨 세계가 이 지구상의 기간입니다. 하루를 확대시킨 것이 일생입니다. 무엇을 하다가보면 금방내 한나절이고, 뭐하다 보면 금방내 두나절입니다. 그리고 금방 잠을 자고 있고, 금방내 아침이 옵니다. 그래서 24시간이 금방 지나가듯이 일생도 그렇게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19980115. 목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사랑의 본질 마22:34-40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그 집에 살면 그 주인을 사랑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도리이듯이 너희가 내 집에 사니 너희가 나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함이 합당하지 않느냐?”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지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지구 자체가 집입니다. 거대하고 웅장한 지구가 집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지은 집에서 살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지은 집에 사십니다. 지구가 집이고, 우주는 마치 정원과 같습니다. 큰 사람은 큰 단어를 쓰고, 작은 사람은 작은 단어밖에 못씁니다. 작은 사람은 큰 단어를 못씁니다. 70년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큰 사람은 큰 책을 보고, 작은 사람은 작은 책을 본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초등학교 책을 가지고 배우지만, 법관인 경우는 큰 법전을 갖고 배웁니다. 더 큰 사람은 일반 사람이 볼 수 없는 논리적인 것을 가지고 배웁니다. 지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가 집에서 늘 거하잖아요. 우리가 집에서 거의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지구에 거하십니다. 지구에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구를 유형의 집으로 사용하시고, 천국을 무형의 집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나머지 우주의 벌판은 유형의 정원으로 사용하십니다. 우주의 법칙은 정원의 법칙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돌 있는 곳에는 돌만 있고, 흙 있는 곳에는 흙만 있고, 나무가 있는 곳은 나무만 있고, 물 있는 곳은 물만 있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세상은 이중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가정 확대시킨 세계가 우주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은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영 19930728 수 아침말씀 자기의 날 눅17:22-31 육신과 영은 생활이 다르고 살림살이가 다르다. 그 빠른 영이 그 답답한 육신을 따라 다니면 답답해 죽는다. 나는 영인체적 입장이고 여러분은 육인체적 입장인데 내 육신이 여러분보다 빠르잖아! 그래서 일을 시킨 후 답답해서 쫓아가잖아. 영과 육이 다르게 살고 있다. 영을 위해서 늘 연구하라. 영이 고달픈가, 힘든가, 답답한가 연구하라. 자기 영이 답답하면 자기 육신을 때린다. 어느 땐 천군과 천사가 때리기도 하고 어느 땐 하나님이 때리기도 하지만 자기 영도 자기 육을 때린다. 이런 것을 분별해야 된다. 자기 영이 자기 육신도 때린다. 그리고 육신도 자기 영을 책망하고 욕하기도 한다. 아무튼 자기 영을 잘 해줘야 한다. 새벽 기도도 하고 노래도 하면 영이 좋아서 죽으려고 한다. 영과 육은 부부일체이다. 어떤 것이 남편일까? 영이 주체이므로 남자이다. 육은 아내이다. 왜 영이 주체일까? 논리와 이치를 댈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도 영인체이다. 우리 인간은 신부요 하나님이 신랑이다. 그래서 우리 자체 영도 신랑이고 육은 신부이다. 결혼하면 남자가 여자 때리듯 영도 육을 잘 때린다. 그러나 자기 할 일 하면 동등권을 갖게 된다. 영과 육이 서로 하나돼서 잘가면 부부일체가 된다. 자기 영이 무서운 것을 육은 생각해야 된다. 영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아야 한다.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찬송하고 말씀도 좇아다니며 듣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영이 자기 육을 괴롭다. 한번 돌이키면 넘넘이다. 일순간이다. 신앙은 각각이다. 그게 무섭다. 영이 떠나가는 수도 있다. 그러면 타(他) 영이 들어와서 산다. 자기 육신 생각대로 안한다. 그걸 미쳤다고 하는 것이다. 19980303 화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잔디밭)거듭나야하나님나라를볼수있느니라요3:1-7 하늘 나라도 첫째는 낳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낳는 것이 중요합니다. 낳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낳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영은 어떻게 낳을까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낳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낳는 것입니다. 인간을 어떻게 낳느냐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함으로 자식이 탄생하듯이, 하나님과 우리 육신이 사랑함으로 영이 낳는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이 우리의 영인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부라면 하나님은 신랑입니다. 이 둘이 사랑함으로 거기서 우리의 영혼이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지만, 어렸을 때는 믿어도 잘 모릅니다. 근본을 모릅니다. 잘 터득한 사람이 깨우쳐 주면 그 때서야 깨닫고서 나갑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어렸을 때는 모르는 것입니다. 누가 한 살 때 연애했다고 하면 그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영혼도 육신이 세상 만사로 성장하면서, 하늘 근본의 뜻을 깨달았을 때부터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부된 입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우리의 영이 다시 탄생하게 되고, 탄생한 영으로 인해서 그 세계를 살게되는 것입니다. 육신이 태어나면 육신의 세계에서 살 듯이 영으로 태어나면 그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낳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 수료식 날 영안이 뜨인 사람들이 보면 아기가 우는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영의 귀가 열린 사람은 들린다고 합니다. 6. 비 유 론 19980407 화 아침말씀(월명동 전망대)* 너는 스스로 결심하고 기도하고 행하라 단10:10-14 성경에서는 근심을 안개로 봤습니다. 왜 안개로 비유했는가 알아야 합니다. 안개는 있다가 금방 없어집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금만 있으면 금방 없어집니다. 친구에게 가서 근심 걱정을 다 얘기하고 왔는데, 오는 길에 다 없어져서 ‘아무 것도 아닌데 공연히 얘기했다’고 쑥스러워 합니다. 근심은 근심을 낳고, 고민은 고민을 낳고, 걱정은 걱정을 낳습니다. 자꾸 염려를 하면 염려가 오고, 자꾸 기뻐하면 기쁨 거리가 오는 것입니다. 나는 사실 상당히 염려하는 머리통입니다. 번민하고, 걱정하는 머리통입니다. 무엇이 있으면 꼬치꼬치 밤새도록 생각을 합니다. 그냥 하면 되는 일인데도 걱정을 또 하고 또 하고 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근심은 근심을 낳고, 고독은 고독을 낳고, 번민은 번민을, 낳고 기쁨은 기쁨을 낳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느냐?”하셨습니다. 19980810 월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 하나님과 삶의 일체 요15:1-9 포도나무로 비유를 하셨는데, 포도는 지구상에서 평균적으로 제일 많이 먹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는 포도나무가 주요 농사였기에, 포도나무 비유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포도나무 비유를 더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포도나무만 들어서 비유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부분, 어느 역할을 정확히 비유해야 맞습니다. 가지와 포도나무 사이는 떨어지면 죽습니다. 떨어지면 가지는 죽지만, 나무는 뿌리가 땅에 있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면 너희는 죽는다”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열지 않으면 쓸 곳이 없습니다. 다른 나무는 열매가 없어도 재목으로라도 쓸 수가 있는데, 포도나무는 재목으로도 쓸 수가 없고,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비유를 하셨으면 그 비유에 대해서 세밀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포도나무를 열매 아닌 다른데 쓸 곳이 있겠습니까? 열매를 안 열면 꼬불꼬불하니 쓸 곳이 없습니다. 목재로도 못쓰고, 땔감으로도 못씁니다. 포도나무는 현재까지는 열매 외에는 특별히 쓸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을 때는 베어서 없애고, 그냥 불태워 없앱니다. 성경에도 포도나무가 열매를 열지 않으면 불에 태워 없앤다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그래서 어떤 다른 나무보다도 꼭 열매를 열어야 합니다. 열매라는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도 인내의 열매를 연 것입니다. 참을성도 없고, 인내력도 없으면 안됩니다. 사랑은 견딘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끝까지 견딥니다. 진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끝까지 하나님을 섬깁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환난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다 이긴다고 얘기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깁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열매가 필요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열매는 여러 가지입니다. 의의 열매가 있고, 기쁨의 열매가 있습니다. 기쁨을 누리고 사는 것도 열매입니다. 희락의 열매, 참는 열매, 화평의 열매, 사랑의 열매, 절대시하는 열매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은 무엇을 들어도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안 믿어지는데, 자기는 믿어진다면 그것도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실천을 못하는데, 자기는 실천한다면 실천의 열매가 열은 것입니다. 찬송하는 열매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꾸 찬송한다면 찬송의 아름다운 열매를 열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