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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1999.03.19 (금)

30개론 전체 개요 1 12번 종합

선포일
1999.03.19 (금)
성경 본문
마4: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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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초 19990319 금 아침말씀 감사와 회개와 사명과 구할 것 마4:13-20 생명의 죽을 고비에서 살려주신 것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전초 말씀이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듣고 모두 어떤 뜨거운 은혜만 받으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얘기하는 이런 얘기를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한번도 하나님이 죽을 고비를 살려주지 않은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3번 10번 30번 그리고 죽을 고비 말고도 물질로 도와 준 것, 어려운 문제 해결해 준 것, 자기 기도한 것 해결해 준 것이 수백 가지라는 것입니다. 나는 표상이니 누구보다도 더 엄청난 죽을 고비를 생명의 고비를 살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이 얘기를 진지하게 해봐라 이것이 산 설교니라. 그 얘기 전하고 30개론을 전해보아라. 그래야 되느니라.’하셨습니다. 그것이 30개론을 전하기 전에 전초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전초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하나님 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하나님이 도왔다 아니할 자가 없다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나와 같이 그런 죽음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한번이 아니고 몇 번씩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보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격적 은혜가 가슴에 불붙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말씀을 듣고 선생님 같이 여러분들도 그런 충격적인 은혜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19980525 월 아침말씀(월명동 자연성전 북편벽화) 이제가라.내가네입과함께 할것이다 출4:10-17 어제도 예배 끝나고 사람들 돌아보고 있는데 “너무 머물렀다. 빨리 가라”하셨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조종하는 것입니다. 너무 머물러 있다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옆에서 운영하고 계신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전초가 시원찮으면 선생님이 잘 가지를 않습니다. 정말로 알고, 크게 보는 사람에게는 접해주고 얘기를 해줍니다. 그러나 대개는 모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뭐하러 해줍니까? 깨닫지 못하는데 뭐하러 해줍니까? 아는 그만큼만 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가치를 깨닫고 아는 사람만 계속 크는 것입니다. 19980621 주일 주께서 함께 하시옵소서 요11:21 전주 실내 체육관 결국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보니까 30개론 같은 알짜배기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자세하게 하려면 암만 못해도 전초말씀을 빼놓고 30시간은 해야 합니다. 전초말씀은 적어도 2/3정도는 해야 합니다. 30시간이면 20시간은 전초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냥 데려다 가르치니까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간단하게 된 것이 도표를 이용한 도표강의 입니다. 그림을 보면 잊어버리지 않고 다 기억이 납니다.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니까 중계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2. 베드로와 물고기 19980723 목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 너는 내 것이라 사 43:1-3 사람은 여든 팔십이 먹었을지라도 자기의 삶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가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하는 말이 “못 같은 것을 박지 마시오. 1년 살다 가면서 못을 있는 대로 때려 박으면 아주 흉측합니다. 그러니 제발 못은 박지 마십시오. 못을 박으려거든 아주 들어올 생각도 마십시오”했습니다. 그 전에 살던 사람이 못을 있는 대로 때려 박아놓고서 살았는데, 그 사람을 내보내고는 다시는 접방살이를 안주겠다고 하면서, 제발 못은 박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전에 박은 못은 사람 데려다가 다 뺏고, 옷을 걸을만한 것으로 몇 개만 남겨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들어올 때 그런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두어 군데만 남겨놓은 줄 알고서 두어 곳만 사용했습니다. 옷을 걸려고 해도 너무 못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 나오려고 이삿짐을 챙기다 보니 사방에 못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주인이 상당히 인격적이구먼.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 동안 사용하지 못했네’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주인만 보면 항상 ‘자식. 자기야 농이 있어서 넣으면 되지만, 나는 농도 없는데.... 접방살이가 서럽구먼. 그래도 못을 몇 개씩은 박아 놨어야지’라고 했었습니다. ‘자식. 못도 안 박아 놓고서 세를 놓아?’했습니다. 주인이 무슨 얘기를 해도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오늘 교회 가십니까?”물어도 간다고 하고 나서는 ‘자식. 못을 몇 개 박아놓지. 못도 못 때려 박으면서 무슨 주인이야? 나는 앞으로 집을 크게 지으면 못을 많이 때려 박아 놓을 것이다. 자식’했습니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자식. 못도 안 때려 박아놓고서’했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못이 많았습니다. 못의 숫자가 자기 옷을 걸고서도 충분히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모르는 것은 여든 팔십까지 모르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놓고서도 오해를 합니다. 오해는 오히려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입니다. 자꾸 오해를 해버릇하면 오히려 본인에게 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께 성전 세를 받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이야 만 왕의 왕, 만주의 주였습니다. 그러니까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또 친구 10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사람의 생일이 돌아와서 선물을 해주기로 했는데 생일을 당한 사람에게까지 가서 돈 내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돈 1만원만 내라. 생일 잔치를 하려고 한다”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경우는 본인은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는 하지만, 오히려 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보, 빨리 가서 주머니의 쌈짓돈이라도 꺼내서 갖다 주시오”해서 갖다 주었습니다. 그 돈까지 합해서 생일 선물을 하고는 큰소리 빵빵 칩니다. “이것은 우리 포켓 돈을 털어서 산 것이니 정성스럽게 받아”합니다. 마치 자기들 돈이 100% 들어간 것처럼 생각하는데, 거기서 “친구 그것이 아니네. 나도 돈 냈어”라는 얘기를 하겠습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격입니다. 꼭 하고싶은 얘기지만 안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이란 해야될 것이 있고, 안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금 내라고 쫓아다니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에게 얘기하셨습니다. “어떤 임금이 있는데 아들에게 세금을 받겠느냐, 타인에게냐?”하니 “당연히 백성에게 받아야지, 임금이 아들에게 세금을 받습니까?”했습니다. “너는 이제 알았구나. 그럴지라도 너는 바다에 가서 고기를 낚으면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너와 나를 위해서 세금을 내라”하셨습니다. 오히려 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그것은 생일날 생일 당한 사람에게까지 돈 거두는 것과 똑같은 얘기입니다. 그럴지라도 내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주님인 줄 모르고서 세금 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세금 한가지만 갖고서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 있었던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세의 경우도 이방의 여자를 취했다고 누나인 미리암이 그러면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때는 모세가 걸렸기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법으로는 걸려도 천법에는 안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도 종교문제로는 유대 종교에게는 걸렸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나라로 가서는 그것으로 안 걸립니다. 그래서 원국으로 가고 싶다고 바울이 원했고, 결국 로마에 가서는 안 걸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걸렸습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하늘 나라로 볼 때는 안 걸리고, 세상으로는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나서셨습니다. 모세가 입장 곤란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나서셔서 “너는 종이고, 얘는 내 앞에 충성된 세운 자가 아니냐? 너는 꿈으로 보여주고, 이에게는 실체로 보여준다. 그러니 얼마나 차이가 많겠느냐? 그 잘못한 것으로 인해서 밖에 나가 있다가 와라”하여서 “하나님께서 누나에게 나갔다 오라고 합니다”하여서 나갔을 때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문둥병 있는 사람은 나을 때까지 성안에 못 들어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런 것과 똑같습니다. 법이 많습니다. 3. 태양아 멈추어라 19980203 화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그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계22:10-15. 태양은 가는 것이 아니기에 태양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시속 1600Km로 달리는 지구가 멈춘 것도 아닙니다. 지구가 멈추었다면 다 튕겨 나갔을 것입니다. 차가 100Km로 달리다가 어느 선에 딱 멈추어도 튕겨 나가는 것인데, 그 무겁고, 빨리 달리는 지구가 멈추면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자동차보다는 수억만 배는 무겁고, 수십 배 빨리 달리는 지구가 여호수아가 싸울 때 순간에 멈출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경험적으로 성경의 많은 진리도 깨닫고, 하나님의 깊은 심정의 사랑도 나의 짝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내가 그 동안 많은 경험한 것을 통해서 볼 때 시간적이 굉장히 많습니다. 5시간 꼭 한다고 했는데 끝나고 보니 오히려 그렇게 안 걸린 것이 많았습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일을 할 사건이었는데 하다보니 불과한 시간이 간 것을 많이 봅니다. 그 당시 여호수아도 엄청난 시간이 걸려서 전쟁을 할 것으로 생각했고, 그 당시 해는 얼마 남지 않았기에 기도를 하고서 싸움을 하여 쳐부수었습니다. 그렇게 다 이기고 쳐부수었는데 아직도 해가 남아있었기에 ‘아, 해가 멈추었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여호수아의 시간적 착각인 것임을 최종적으로 전했습니다. 사람은 시간적 착각뿐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으로 착각이 많습니다. 잔디밭에 올라가서 보면 운동장에 비해서 잔디밭이 배 이상은 크게 보입니다. 또 마당에 와서 쳐다보면 잔디밭은 운동장의 1/3밖에 안되어 보입니다. 내가 여러 번을 왔다갔다하면서 보다가 결국 확인해보니 평수로 볼 때는 둘이 많은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착시현상입니다. 똑같은 키인데도 뚱뚱한 사람이 마른 사람보다 작아 보입니다. 마른 사람이 훨씬 더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이 살을 빼면 훨씬 더 크게 보입니다. 똑같은 키인데도 그렇습니다. 인간도 그렇게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실수하는 것이 많습니다. 100번 봐도 1000번 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사람이 착시 현상을 참고하지 않고 산다면 생명까지 위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이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내가 차를 타고 가는데 강원도 근방인데 앞에 길이 푹 꺼져있더라구요. 그래서 위험하니 천천히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곳을 지나갈 때는 차가 안 내려가더라구요. 아스팔트 위가 깊게 꺼진 것으로 보였지만, 색이 짙어서 그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의 거리도 그렇습니다. 착시 현상이 일어나면 코앞에 있는 것도 멀리 보이기도 합니다. 멀리 있는 것도 가깝게 보이기도 하고, 가깝게 있는 것이 멀리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듯이 인간의 생각도 메모리 시키기에 달렸습니다. 본인이 메모리를 어떻게 시키느냐가 문제입니다. 여호수아도 “한번 싸우고 나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겠구나”했습니다. 적어도 한번 싸움이 붙으면 5-6시간은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5-6시간 갖고서는 개인의 싸움도 안 끝나는데 그 큰 지역의 싸움이 끝나겠습니까? 그래서 하루 종일 싸워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해가 둥글레 산 근처에 걸치면 ‘아이쿠, 오늘 예배 끝나면 침침하겠다. 서둘자’하고서 설교를 끝내고 보면 아직도 해는 한발이나 남아있습니다. ‘내가 의식하고 설교를 조금했나?’하지만 할 것을 다했습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한바탕 싸우고 나면 하루 종일의 시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한바탕 싸우느라 정신이 없이, 시간이 갔나왔나 모르고, 누가 죽었나 엎어졌나 모르고 싸우고 보니 아직도 해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기가 태양보고 멈추라고 기도를 한 상태였습니다. 막다른 골목이기에 얼마나 야물질 기도를 했을 것이며, 얼마나 메모리가 강하게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싸우고 나서도 태양이 남아있기에 하루종일, 밤새도록, 다 싸우기까지 태양이 넘어가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본인이 볼 때는 싸움할 때 하루 종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일순간에 싸움이 끝난 것입니다. 물론 옛날에는 활과 창으로 싸우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내가 월남에서 싸움해보니 신형무기로 싸우면 쉽습니다. 신형무기로 싸우면 쉽게 싸우지만 그만큼 사람도 약아 빠져서 잘 안 맞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거기가 거기입니다. 선생님이 2개 여단과 싸움을 해봤습니다. 나는 적어도 초저녁에 싸움이 붙었기에 날샐 때까지 해야 한 막이 끝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나서 보니 불과 시간반 정도에 끝났습니다. 밤새도록 싸울 것으로 알았지만 후닥닥 끝났습니다. 이번에 월남에서 온 친구도 나에게 도움이 되려면 간증하라고 해서 간증해주었습니다. 엄청난 시간이 소모될 것으로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아무리 기다려도 날이 안 새었습니다. 그러니 싸움은 일순간에 금방 끝났던 것입니다. 전쟁할 때 가지고 다니는 총알은 20분만 넘으면 다 쏩니다. 싸움이 붙으면 정신 못 차리고 마구 쏘아댑니다. 전쟁이 붙으면 바위 뒤에 있다가도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와서 다리며 쏩니다. 전쟁할 때 최고의 스릴을 느낍니다. 자기에게 최고로 대항하는 사람을 죽일 때 최고의 스릴을 느끼는 것입니다. 막상 전쟁하는 사람은 생각같이 그렇게 무섭지를 않습니다. 일반 사람이 보기에는 무섭고 두렵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불이 붙고, 작전에 몸이 풀리면 밥만 먹고 작전 나가기를 좋아합니다. 1주일이 되도록 적을 못 만나면 그렇게 곤고한데, 그러다 적이 나타났다고 하면 날아다닙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많은 경험을 겪었을 때에 시간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설교할 때도 많이 느낍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전했는데 순간 시간이 지나간 것으로 느껴집니다. 영적인 상황으로 들어가면 순간인데도 육적으로는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육계의 시간과 영계의 시간이 있을 때, 영계의 시간이 1분이라면 육계의 시간은 10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쓰여질 때는 대개는 영계에서 한시간이 갔다고 생각될 때는 실제로는 3-4시간이 갔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그렇습니다. 한 20분 갔다고 했을 때는 10분밖에 안 걸립니다. 한참 몸이 풀려서 축구를 할 때는 1시간쯤 찼겠다고 생각했는데 3-4시간이 지났을 때가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은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사람이 정신적인 것은 한번 거기에 빠지면 시간 제한을 안 받아서 잘 모릅니다. 뇌파는 그렇게 생겼습니다. 해보면 순간입니다. 어떤 사람과 밥 먹으면서 얘기를 했는데 30분 걸렸는지 알았는데 하고 나니 1시간씩 지나갔습니다. 누구는 면담했는데 잠깐의 시간이 갔다고 생각했는데 2시간이 가기도 했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보니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 착각입니다. 자기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 옆의 사람이 보기에는 시간이 다르게 걸린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그렇게 생각했지, 실제 시간은 다 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20-30년 가까이 성경을 풀은 결과입니다. 엄청난 지구, 무게 있는 지구를 하나님께서 그 당시의 한 족속을 위해서 끝내셨겠습니까? 한 족속이 싸우는 것을 돕다가 착각해서 갑작히 지구를 세웠는데 그러다가 지구의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 시대 순간을 돕다가 지구가 날아가 버린다면 이후 하나님께서 예언하고, 염려했던 지구상의 일이 그냥 깨져버리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은 그런 무서운 일을, 원리에 벗어난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논리적으로, 지식적으로, 천륜의 법칙적으로 선생님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적과 싸우는데 있어서 원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것만 협조하면 끝납니다. 굳이 그것 때문에 지구를 멈출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시간만 해결해 주면 끝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싸우는데 시간으로만 도우면 되는데 뭐하러 지구를 멈출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린아이가 지금 방앗간 핏대에 손을 넣었으니 그것만 빼내게 하면 되는데 뭐하러 기계 전체를 멈춥니까? 어린애가 지금 전기에 누전 되었는데 그 집 전기만 끄면 되지, 뭐하러 화력발전소까지 다 불을 끌 필요가 있습니까? 그 때도 온 지구상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전체가 사용하고 있는 지구를 멈출 필요가 있습니까? 지구가 안 돌아가면 엄청난 생명의 문제가 없겠습니까? 지구가 안 돌아가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누가 조사해 와보십시오. 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안가면 가던 길을 못 가는 일이 생깁니다. 그렇게 지구가 안가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가다가 안 간다고 “잘되었다. 오줌 누고 가자”합니까? 자동차야 가다가 안가면 오줌누고 가면 되지만, 지구가 가다가 안 돌아가면 엄청난 이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이것을 연구해 와보십시오. 나는 수학자이고, 물리학자입니다. 옛날부터 철인들은 물리학을 자동적으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에 도가 터서 전부 아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것, 생리적인 것, 역리적인 것을 같이 알게됩니다. 만일 지구가 안 돌게 하려면 지구뿐 아니라 천체 전체가 필요합니다. 지구를 안 돌게 하려면 천체 전체의 작동도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지구만은 안 멈추어질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영계로 배울 때는 지구와 다른 천체들이 피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나도 천문학을 조금 배웠습니다. 지구가 핵이기에 지구와 전체의 천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멈추게 하려면 전체의 것을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조금 싸움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지구를 멈추어서 전체의 사람에게 영향받게 만들고, 다른 천체까지 영향받게 만들겠습니까? 빨리 싸우게 해서 해결해 주면 되는데요. 큰 싸움일수록 후닥닥 입니다. 큰 싸움일수록 대개 후닥닥 끝납니다.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힘이 좋은 사람인데도 싸우면 후닥닥 끝납니다. 반면에 힘없는 사람도 힘이 없으니까 바로 끝나기도 합니다. 우리 애들중 단대 다니는 애가 천하장사가 되었더라구요. 아파서 나에게 매일 기도 받고 그랬었습니다. 이런 원리로 볼 때 지구를 멈출 필요가 없습니다. 경험으로 성경을 푸는 것이 많습니다. 투시도 경험 투시가 많고, 경험 계시가 많습니다. 자기가 겪어볼 때 그것이 아니었으면 틀림없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경험 투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 같은 어른들은 대학을 안나오고, 정규 공부를 안 했을지라도 똑같이 공부한 것입니다. 대학을 안 다녀도 아는 것은 똑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내내 그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풀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배우는데, 공부만 한 사람은 실제로 풀을 뽑아본 사람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실기를 하고, 직접 해본 사람은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직접 해본 사람은 수천 번을 해보기 때문에 수천번 하기 전에는 그 사람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으로 배운 것은 실제로 해본 것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안 배웠다고 하지만, 그 일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다 배운 것입니다. 물리학도 안 배웠지만 내가 다 터득했습니다. 법칙을 터득했기에 아닌 것은 영원히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닌 것은 영원히 아니다. 긴 것은 영원히 긴 것이고”하셨습니다. 지구촌 모든 사람이 이렇다고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구촌 사람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태양이 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닌 것은 영원히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몰랐을 뿐이지, 천륜의 법칙은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합니다. 다만 인간의 무지로 인해서 이렇게 알기도 하고, 저렇게 알기도 하는 것입니다. 옛날 책에는 박사들의 책에도 태양이 갔다고 써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터득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주인만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19980728 화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호산나,찬송하리로다마21:15-17 성경에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여호수아가 “태양아 멈추어라”기도했더니 태양이 멈추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학자들이 다 태양이 멈춘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제일 처음으로 나에게 가르쳤습니다. “너는 태양이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럼요. 믿습니다”하였습니다. “그래? 믿으면 확인해야지”하셨습니다. 선거에서 자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고 나서 확인해보니 몇백표 떨어졌다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금산군의원으로 나온 사람이 내 후배인데, 선거하기 전에 800표 뒤진다고 내가 얘기했었는데 3표 차이로 맞추었습니다. 797표 차이가 났습니다. 800표 떨어진다는 말을 다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아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하늘의 천비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니고 오직 되는 사람의 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대통령 선거 때도 물으러 옵니다. 물론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이 진리를 다 배우고 나면 가르쳐주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본인도 예언할 수 있으니까요. 19980929 화 아침말씀(월명동 자연성전 식당) 속을 깨끗케 하라 마23:25-26 태양아 멈추어라도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은 천주적인 법칙과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번 수료식 때 말씀이 나왔습니다. 지구가 도는 것은 지구촌의 공기가 골고루 섞이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지구가 도는 것은 생명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내가 들었습니다. 지구가 도는 것은 지구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가장 핵적으로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결국 그 생명적인 것이 공기였다고 밝혔습니다. 공기를 골고루 하기 위해서 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구가 돌지 않으면 지구상의 존재는 다 죽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고서는 시대가 시작되었어도 몰랐고, 말씀도 근본을 몰랐습니다. 물론 통일교로 돌아다니면서 일부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것 갖고서는 진리에 대해서 많이는 모릅니다. 내가 얘기했기 때문에 시대도 깨닫게 되었고, 나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내가 얘기해서 알게된 것입니다. 내가 얘기하지 않았다면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깨닫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숨겨서 몰랐다. 안 숨겼으면 대번에 알았을 것이다”하셨습니다. 이 숨긴 것이 말씀을 들음으로 숨긴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개인 면담을 하자고 하더라구요. 하고싶은 얘기가 있다고 그러셨습니다. 아버지를 성령님께서 감동시켜서 나에게 속시원한 얘기를 하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누구누구가 걱정된다는 말을 하시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9890927 수요 일순간 시90:8-12 성공을 하려면 첫째, 시간이 많이 있어야 됩니다. 첫째는 시간입니다. 시간! 아얄론 골짝에서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거민들을 이긴 첫째 이유가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시간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시간이 많아야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장년부들에게 다시금 젊음을 준다면 아마도 경험을 바탕으로 대성공을 할 것입니다. 시간은 1분도 뒤로 빠꾸(back) 할 수 없습니다. 1초도 빠꾸 할 수 없는 것이 천륜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나는 빠꾸하는 법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시간아 멈춰라!”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시간을 맘추는가? 5시간을 갈 것을 2시간 동안에 가면 3시간이 남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뛰는 것을 연습해서 시간을 많이 단축 하는 길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머리 쓰듯이 머리를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5시간을 일 할 것을 2시간만에 하고 3시간을 남기기 때문에 배(倍) 이상의 엄청난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시간은 24시간을 25시간으로 줄 수 없는 것이므로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 하라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혜로우면 시간을 많이 쓸 수가 있습니다. 시간을 아껴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시간 쓰는 것을 계수해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젊은 자들에게는 특히! 젊은 사람들도 버뜩하면 시간이 다 간다는 것입니다. 4. 7단계 법칙 19931227 월 아침말씀 풍부한 삶 마5:33-42 기독교의 사랑 정도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다. 우리는 1급이다. 전자는 2급, 기독교는 3급, 4급은 천주교, 5급은 유대종교, 6급은 회교, 7급은 이방인으로 보면 된다. 역사가 그렇게 역사가 진행된다. 19970214. 금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비유를 하면 광산의 금줄이 있습니다. 금을 캐기 위해서 굴을 파고 들어가는데 아무데나 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을 못 캘 때는 ‘광목 친다’고 하는데 죽친다는 것입니다. 광목칠 때는 1년이고, 2년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못하겠다. 돈도 없고, 힘으로도 안 된다.”하고 그만둡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거기서 캤는데 그 이튿날부터 금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금도 가다가 맺힌 곳이 있습니다. 우리 도표(7단계 법칙)에도 있습니다. 금이 나려면 금나는 법칙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금이 안 납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무조건 아무데서나 금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금이 나는 법칙이 형성되지 않으면 절대 금이 없습니다. 금을 많이 캔 아버지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금이 50년 전에 1관이었는데 100년이 가면 금을 더 캘 수 있을까요, 그대로 있을까요?” 이런 것은 박사들도 모릅니다. 일반적인 것 즉, 금줄이 와야하고, 둘이 합해져야 하고, 딱딱해야 금이 난다는 것은 전문가나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아는데 이런 최종적인 문제는 신이 아니면 모릅니다. 하나님 아니고서는 모릅니다. 이것을 놔두면 더 많이 캘까요? 최종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꽉 쥐고 계십니다. 그런 것을 내줄 때는 생명과 바꾸면서 내줍니다. 남자가 최종적으로 “너, 나 사랑할래, 안 사랑할래?”하면서 인생을 내주듯이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일생동안 영원히 변하지 않겠다고, 변하면 죽이라고 하고서 하는 것입니다. 불교법도 그렇고, 기독교법도 그렇고 최종적인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4대 교리를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광산 전문가도 모릅니다. 이렇게 따지면 이런 답이 있고, 저렇게 따지면 저런 답이 있어서 분별을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다고 합니다. 이 사람 말을 들어보면 “1관이 그대로 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2관을 캘 수 있다.”고 합니다. 40년 동안 수백관 금을 캤다는 우리 아버지도 답을 못합니다. 최종적인 문제는 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마지막 문제는 못 풀더라구요.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도 그 동안 놔두면 더크는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 “태초에 하나님께서 1관으로 만드셨으면 그냥 있는 것이다.”, 아버지 - “그냥 똑같다.”) 하나님은 이미 그런 답을 할 것을 아셨습니다. 모른다는 것이 답입니다. 내가 산에서 답을 배울 때 그렇게 배웠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이렇게 답을 하실 것 같다고 하면 반대로 말씀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답을 했다 해도 거기에 따른 이론까지는 제출하지를 못합니다. 그 여자가 자기의 아내가 아니고서는 자기의 땅문서를 다 주지를 않습니다. 요즘은 아내라도 다 주지 않습니다. 면담하다 보면 부부의 금슬이 좋은데도 여자는 여자대로 꿍쳐서 감춰놓고, 남자는 남자대로 꿍쳐서 감춰 놓았더라구요.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품속에 있는 여인도 믿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왜 부부일체 되어서 잘사는데 믿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런 꼴이 있어서 그러신 것입니다. 다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꼽치면 안다고 하셨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꼽쳤다가 걸렸습니다. 하나님도 아닌 사도에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있었으면 이렇게 내가 손해 가는 일을 하겠느냐? 하나님 믿는 사람을 죽게 하겠느냐?”라고 오해하고 안 믿다가 불교를 믿게 되었고 너무 고마워 4억을 투자해서 암자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자기 것으로 다 해달라고 하고, 자기가 오라는 사람만 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사업을 통해서 상황의 도가 트였기에 그냥 당하지 않고 싸웠답니다. “그래서 내가 땅문서를 안 해준 것이다. 당신은 스님도 아니다. 뭘 해달라고 하느냐?”하면서 못으로 문을 때려박고서 30리를 걸어서 나왔답니다. 차가 있는데도 성격을 보여 주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아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답을 준다고 해도 답만 주면 안 믿어집니다. 천하의 모든 이치를 설명할 때에야 그와 똑같다고 압니다. 만물의 이치는 똑같습니다. 만물의 이치는 형성되는 대로 번져가게 되어있습니다. 형성이 안되면 번져가지 않고, 형성이 되면 막 번져갑니다. 박재수씨의 소가 하도 오래 살아서 소가 얼마나 사는가 물어보러 금산 소전에 가서 물어보니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하더랍니다. 왜냐하면 소를 죽을 때 까지 지켜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크면서 잡아 먹고, 팔아 먹기 때문에 누가 끝까지 지켜보며 연구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병들어 죽는 것만 봤답니다. 병들어 죽는 것말고 얼마나 사는지 누가 건강하게 관리하면서 지켜본 사람이 없습니다. 엊그제 와서 난로가에서 불쬐며 얘기를 하는데 소가 지금도 힘이 좋아서 구유도 들이받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보리를 내가 베었다고 자복했습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자기도 눈치는 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베어갔는지는 궁금했답니다. 보리 베어다가 소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도 일을 잘하고 말을 잘 듣기에 사람이 먹는 것을 베어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가 잘사나 보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나 보리 먹였다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랑 받으면 잘삽니다. 그리고 말 잘 들었다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 얘기하니 사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듣더라구요. 그 소를 갖고 가려면 갖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 소는 나와 말했던 소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이 형성되면 있게 됩니다. 조건이 갖춰지면 발전하게 되어있고, 조건이 안 갖춰지면 발전이 안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돌에는 왜 금이 없을까요? 조건이 안 갖춰져서 금이 없는 것입니다. 금줄이 지나가야 되고, 거기에 조건이 형성이 되어야 하고, 모든 조건이 갖춰지면 금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그러니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답입니다. 큰다고 할 수도 없고, 안 큰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건이 갖춰지면 2관도 되지만 안 갖춰지면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바로 만물의 책임분담입니다. 이것이 이치의 답입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소리를 못합니다. 지혜로운 자의 답은 들어보면 누구나 맞다고 하게 됩니다. 이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저것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누구보고 잘된다 할 수도 없고, 안 된다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 아들보고 부모가 항상 “내 아들은 잘될 것이다.”했지만 조건이 안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책임분담의 조건을 못해서 안된 것입니다. 그와 똑같습니다. 모든 만물의 이치가 똑같습니다. 모든 도는 딱 하나입니다. 도는 둘이 없습니다. 만물의 도는 하나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내가 “이것은 크는 법이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안 크는 법이다.”대답할 줄 알았을 것이나 아닙니다. 하나님의 답은 만물이 통하고, 온 인류가 통하는 답입니다. 5. 삼 분 설 19970209 주일 말씀 제목 :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 월명동 자연성전(잔디밭 상단부) 사람을 나누어 분석해보면 영이 있고, 혼이 있고. 육체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체, 혼, 육체 세 가지고 존재하고 있어서 육신과 혼이 수수작용을 가지고, 혼과 영이 수수작용을 가지고, 크게 보면 영과 육이 수수작용을 가지고 있고, 육체는 만물과 수수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뛰면 입으로 만물이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영체는 하늘과 더불어 수수작용을 가집니다. 육체와 만물이 잘 통하면 육통했다고 하고, 육체와 혼이 잘 통하면 혼통했다고 하고, 영체와 하늘이 잘 통하면 영통 했다고 합니다. 혼이 통하는 단계에 이르면 상대의 마음을 읽고, 영통의 단계까지 들어가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서로 통하다가 끊어지면 영적인 죽음이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죽어도 육체는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잘 믿고 지내다가 안 믿어서 영적으로 죽어도 육신은 늘 살아서 움직입니다. 우리 육신이 죽어서 장례식을 치를 때는 이미 영과 육의 수수작용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해서 영혼이 존재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영혼이 육신을 떠나버립니다. 예를 들어 집이 다 무너져서 존재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집주인도 집을 다시 지으려고 자기 집을 일단 떠나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육신이 죽으면 정말로 썩어버리는 것입니다. 3일만 지나면 썩기 시작합니다. 어떤 영웅열사나 팔방미인이라고 해도 사람은 죽습니다. 이렇게 육과 혼은 무(無)로 사라져버립니다. 시체는 땅에 묻어서 오래 지나면 썩어서 없어지고, 혼이라는 마음의 세계는 그 사람이 없어지면 그냥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영혼은 남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믿는 세계라면 그 계통에 따라서 올라가게 되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세계의 계통에 따라서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영이 어떻게 생겼습니까?”하는데 영은 자기 육체를 닮았습니다. 내가 영도 안보고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영을 많이 보았겠습니까? 영은 자기 육신의 기본형을 닮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이 가장 닮은 것이 자기 육신입니다. 영이 눈도 있고, 코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리고 영은 원존재이신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부전자전(父傳子傳)인 것입니다. 세종 대왕이 아들을 한 50명 낳았습니다. 그런데 50명의 아들이 다 세종 대왕을 닮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령 변강쇠, 옹녀라고 해서 아들딸 3000명을 낳았다고 해도 거기에 자기를 안 닮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습니다. 자기 유전자를 빼내갔는데 안 닮을 수 있겠습니까? 토끼가 새끼를 천만 마리를 낳아도 토끼를 닮았지 개를 닮지는 않습니다.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들은 창세기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자기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한 것을 모릅니다. 자기 모양과 형상은 자기의 정신과 사상 등을 가리킵니다. 영적으로 보면 자기 모양대로 만든 것은 자기 속성대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선을 보면 좋아하고, 나쁜 것을 보면 싫어하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하고 그러는 것이 형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렇게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과 우리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에 사는 사람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일거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사람은 “그들도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구조가 다 같습니다. 다만 약간 눈이 들어가고, 머리가 약간 노랗고 고수머리라서 그렇지 다 똑같습니다. 거기도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안 먹으면 배고프고 다 똑같습니다.”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내가 하늘 나라에 밥먹듯이 다녔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인간의 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태양과 같은 불덩어리라면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안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보면 작가의 두뇌를 투시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실상이 작품 아닙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의안이 없으면 사람을 만들 때 ‘무엇을 보고 사람을 만들까? 감나무처럼 만들까? 돼지처럼 만들까? 돼지처럼 만들면 내가 늘 돼지를 껴안고 살아야 되잖아, 그럼 안되지.’ 이러다가 자기와 같이 만든 것입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자기를 닮으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버님, 제 친구입니다.” “그러니? 내가 이야기 많이 들었다. 명절은 잘 지냈니?” “예, 인사 받으세요.” “그냥 있지 뭐.” “아버님을 뵈니까 자식하고 너무나 다르군요. 전혀 닮은 점이 없네요.” “뭐? 내가 자식이랑 전혀 닮은 점이 없다고?” “전혀 안 닮았어요.” “그럼 나 심각하다. 그렇게 안 닮았니?” “안 닮았어요.” “그럼 누구를 닮았니?” “윗집 아저씨를 닮은 것 같은데요? 제가 그 아저씨를 잘 아는데 완전히 그 아저씨를 닮았는데요?” “너, 조용히 말해라. 이 돈이 얼마 안되는데 쓰도록 해라. 그리고 이 애 엄마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도록 해라.” “제가 의사인데 건강한지 피나 한 번 빼볼까요?” 그래서 피검사를 해보니 아이의 피가 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가 아니었습니다. 윗집아저씨를 닮은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안 닮았으면 끝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닮게 만들지 않았다면 일단 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닮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집에 가서 여러분이 부모를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보십시오.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와 그 자식이 와서 보니까 닮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눈치를 채고 하나님께 물어보니 “괜히 애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너만 알고 있어라. 그들의 자식이 아니다.”그러셨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끝끝내 나보다 자기 아버지가 최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나 화가 나서 들통내버렸습니다. “너는 입양해 온 딸이야.” “선생님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선생님이 그 시대에 내가 태어난 것 보았나요?” “까불지마. 피를 빼봐.” 그런데 그 애는 쇼크를 받고 그날부터 교회에 안 나옵니다. 나는 이발사나 의사도 아니라 바로 도사입니다. 후에 알아보니까 누가 그 집에다 아기를 놓고 갔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도 지금 우리 교회에 나옵니다. 19970210. 월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사람들이 왜 큰 착오를 보였는가 하면 하나님이 “너, 죽어도 산다.”했는데 육이 자기에게 한 말인줄 알아 들었습니다. (30개론 도표중 <삼분설>도표 참고) 예수님이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산다.”했는데 육이 자기에게 한 줄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알고 보니까 영에게 한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육이 “저지요? 저지요?”하고는 “하나님께서 나는 죽어도 산단다.”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너, 아니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배우고 아는 지식의 책임이고 노력의 책임이니까요. 공산주의는 배고프니까 신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 배가 고프니 우리가 벌어서 우리가 먹고살지 신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무신이 꼭 필요하듯이 하나님도 꼭 필요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너, 나와 같이 공중에서 휴거되리라.”하신 말씀은 육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영이 “저지요? 저지요?”합니다. 근본은 육에게 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휴거를 기다릴 때 영적인 휴거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휴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이 자기인줄 알고 맨날 기다리면 웃기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지나가며 “너, 사랑한다.”했는데 거기에 있던 다른 남자가 “저지요? 저지요?”했고, 한 여자도 “저지요? 저지요?”했습니다. 이 때는 상식적으로 여자에게 한 말인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만일 여자가 “너, 정말 사랑하겠다. 부지런히 커라.”했으면 이것은 상식적으로 남자에게 한 말이지 여자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식으로 봐도 “너, 앞으로 내가 오면 공중으로 휴거된다.”는 얘기는 문자적으로 하면 육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문자대로 따지면 육신이 못 올라가니까요. 그러나 영적으로 하면 육에게 한 말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한다면 육에게 한 말입니다. 그런데 대개 사람들이 말귀를 못 알아 듣고, 이해를 못합니다. 나도 학교에 다닐 때 선생이 나보고 이해를 못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도 안 가르쳐 주고 이해를 못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해는 따로 책이 없습니다. 그러니 풀어서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곰곰이 생각했더니 영에 대해서 먼저 가르쳐 주어야겠더라구요. 영에 대해서 안 가르쳐 주고 성경을 풀어주니까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한글에는 모음이 있고, 자음이 있는데 모음만 갖추어서 글씨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음만 갖추어서 글씨가 안되고 반드시 모음과 자음을 갖추어야 하듯이 영과 육을 분명히 갖추어야 겠습니다. 사람들이 육에 대한 얘기는 많이 아는데 영에 대한 얘기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 민족이고, 어느 세계이고 영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일본도 영에 대한 것을 잘 모르고, 우리 한국도 종교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영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벌써 종교의 나라라면 영에 대해서 알고 영을 딱 잡아야 합니다. 의사들이 진맥을 잘하면 용하다고 합니다. “그 의사는 용해. 너무너무 잘 알아. 내가 어려서 속썩어 화병이 생긴 것을 딱 집어내더라.”합니다. 그런데 화병은 반드시 속을 많이 썩어야 오는 것을 알기에 집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어내면 용하다고 하고, 거기서 치료를 받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이 종교도 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하다’는 말은 한의원에 통하는 얘기이고, ‘실력 있다’는 말은 의사에게 하는 말이고, ‘신령하다’는 말이 종교성에 통하는 말입니다. “영적인 사람이다. 마음을 읽더라.” 하는 얘기는 종교 세계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종교는 절대로 영의 세계만큼은 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의 세계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의 영을 못 봅니다. 그러나 상식적인 세계로 볼 때 영도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사랑한다고 하면 상식으로 볼 때 남자에게 한 얘기입니다. 성서를 풀 때도 상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요11:25->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했을 때 제자들이 “예.”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안 죽는다니까 육이 좋아하며 “나지요?”하며 계속 믿고 따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영에 대해서 모르는 시대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니까 “아멘. 할렐루야.” 했습니다. 육이 자기인줄 생각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영이 “아멘. 할렐루야. 저지요?”했어야 했습니다. 영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니까 믿으면 바로 산다는 것입니다. 육체가 죽었다 산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수수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과 육은 바로 한 지체입니다. 영이 남편이면 육은 부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예수님과 더불어 수수작용을 일으키기에 그것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았다는 것이고,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다고 하니까 육에게 하는 말 인줄 알고 막 돌아다닙니다. 기성에서 이런 식으로 안 가르치면 내가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는데 지구상 모든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죽어도 산다. 예수가 말씀했는데 왜 그것을 불신하느냐?”합니다. 말귀를 못 알아 듣고 그럽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했습니다. 성령의 교회란 성령의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을 성령의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나 할 것 없이 모든 종교들이 영과 육의 문제에 대해서 착각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산다는 것은 사망 권에 묻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망권에 묻히는 것을 죽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지금 사상도 행실도 죽어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살아 있습니다. 그 때 “너희가 대한 민국의 말을 들을진데 살리라.”하면 “이놈아, 우리가 지금 죽어 있느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민주주의 사상으로 살아난다는 것이고, 보다 이상적인 이 시대로 살아 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성경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휴거된다는 것은 그 몸뚱이를 갖고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님의 프로그램과, 예수님의 사상과, 성인의 행실에 의해서 살아나가면 휴거된 것입니다. 그러면 농사를 지어도 휴거요, 장사를 해도 휴거입니다. 예수님이 온다고 해서 장사를 집어 던지는 것은 기성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다 없애 버리고 오직 따르라고 하지만 꼭 필요한 사람은 버리고 따라야겠지만 그 외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주관과 사상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성서의 말씀이 영에게 한 말인지, 육에게 한 말인지 분명코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31,062절의 말씀이 영적인 말씀이 있고, 육적인 말씀이 있어서 두 가지가 완전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구약 말씀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육에 해당되는 말씀이고, 신약 말씀은 예수님 이후로 전부 영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전체를 볼 줄 모르면 성경을 못 봅니다. 이것을 못하고 교회에서 맨날 설교만 해대면 안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백성을 가르치는 일을 잘했다고 했습니다. 덤벙덤벙하지 않으셨습니다. 손뼉 치며 부흥 집회하면서 헌금만 하고 끝내면 안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모릅니다. 불교를 오래 다녀도 ‘나무아비타불’의 뜻을 모릅니다. 미륵불의 뜻도 모릅니다. 배워야 압니다. 기독교도 똑같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런데 신학교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헤브라이즘, 헬라이즘이나 따지고, 나가서 하나님을 너무 지나치게 따지면 안된다고나 배웁니다. 그래서는 안되고 깊은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영적인 것을 갖추지 않으면 성경을 얘기해도 자꾸 육적으로만 알아 듣습니다. 19970212. 수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육의 기본 IQ는 120이고, 영의 기본은 1200입니다. 그리고 그 영이 하나님과 통하기 시작하면 12만이 되고 그러다 하나님의 위치까지 가면 상상도 못하게 됩니다. 영계에 들어가면 자기가 내고싶은 새소리도 다 낼 수 있습니다. 영계에 있으면 1년 배울 노래도 하루면 거의 합니다. 바로 들어갑니다. 바로 혓바닥이 돌아갑니다. 이런 영의 단계에서 한 것입니다. 아니면 이런 짧은 시간에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짧은 시간에 성경 2300번을 읽겠습니까? 도(道)로서 훑어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100리의 길을 한시간에 가겠습니까? 그러나 영의 단계에 들어가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축지입니다. 나는 실존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것은 지금도 합니다. 여러분은 직접 축지하는 사람은 못 봤을 것입니다. 달리기 초인은 봤고, 축구 잘하는 초인은 봤어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초인은 드뭅니다. 나같이 세계를 뒤집을 수 있는 진리를 갖고 있는 초인은 없습니다. 나는 운동에도 초인이고, 머리에도 초인입니다. 그 전에도 동네 청년들이 내가 기도만 하고 돌아다닌다고 영들렸다고 무시했는데 “내가 영들렸나 글쓰기 대회를 합시다.”했었는데 나보고 교만하다고만 하더라구요. 나는 그 때도 글을 잘 썼습니다. 영계에 들어가면 책이 한 권씩 지나갔습니다. 결국 나는 시인 되었습니다. 시인되기 힘듭니다. 이제 나는 하는 대로됩니다. 앞으로 작가도 되고, 작곡도 할 것입니다. 나는 배우기만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과 같이 수수작용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을 갖고서 배우고 터득한 것입니다. 육신은 한계 이상은 못 올라갑니다. 공연히 보통의 머리로 했다가 돌아 버립니다. 우리는 영의 단계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육이 있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육의 세계를 떠날 수 없으니 부지런히 땀흘려 열심히 뛰고 달려라. 경제도 펴라. 권력도 잡고 몸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하라.”합니다. 그리고 영계는 영을 중심하여 뛰고 달려야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친해야 합니다. 안 친하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북한에 살면서 김일성과 안 친하면 죽습니다. 그것을 하면 큰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육계도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육신을 뛰어다니게 하고,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며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며 책임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면 됩니다. 해도 안되는 것은 신의 백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천운을 타야 합니다. 개미가 도와도 도와주어야 삽니다. 하나님과 일체된 영이 마음으로 내려오고, 초인의 마음과 이상적인 마음을 갖고서 육신을 통해 나타날 때 일도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뒤적거리다가 1년 할 것도 2년하고, 일생을 갑니다. 19970215. 토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고전15:39->을 중심해서 영에 대한 얘기를 해주겠습니다. 칠판 강의보다 도표 보는 것이 낫습니다.(30개론 도표중 <삼분설>과 <영계 구조 형태 및 초혼영들의 모습> 도표 참고) 39절을 보면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있고, 짐승 육체도 있고, 새의 육체도 있고, 물고기의 육체가 있어서 육체라고 해서 다 같은 육체가 아니고 만물의 영장의 육체와 그들이 잡아먹는 육체는 다르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의 육체하고, 영체는 판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는 동물이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영체는 잡아 먹을래야 잡아먹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만물은 인간의 기본형을 닮고 태어났습니다. 모든 만물은 사람의 기본형의 구조를 닮았습니다. 소도 사람의 기본형을 닮았고, 물고기도 사람의 기본형을 닮았습니다. 코도 있고, 눈도 있고, 등치도 있고, 사람도 아랫배가 나왔고 고기도 아랫배가 나왔습니다. 더 나온 고기가 있고, 덜 나온 고기가 있듯이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세세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못 알아 듣습니다. 기본형이 닮았다고 하면 “기본형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시계도 사람의 기본형을 닮았습니다. 전부 다 닮았습니다. 산도 사람의 기본형을 닮았습니다. 산도 등발이 좋은 산이 있고, 어떤 산은 뾰족하니 마른 산이 있습니다. 만물이 다 닮았습니다. 그래서 몽땅 털어 말할 때 지구는 인간의 기본형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수분이 있듯 지구에도 수분이 있습니다. 수분이 70%씩 있습니다. 사람에게 뼈가 있고, 지구에게도 뼈와 같은 용암의 세계가 있고, 지구에 나무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솜털이 서있습니다. 어떤 산은 불나서 다 타버렸구요.(웃음) 이렇게 다 기본형이라는 것입니다. 일일이 얘기하려면 시간이 걸려서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지구에 흙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살이 있습니다. 지구에서 흙이 자꾸 떠나버리고 앙상한 바위만 남으면 농사를 못 짓습니다. 사람도 자꾸 말라 들어가면 안됩니다. 똑같습니다. 이런 것이 기본형이라는 것입니다. 지구를 지리학적으로 세밀히 내다보면 손 같은 부분이 있고, 얼굴 같은 부분이 있고, 배꼽 같은 부분이 있고, 생식기 같은 부분이 있고 다 있습니다. 나에게 지적하라면 어디가 어디라고 그런 것 딱딱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안 배웁니다. 학교에서는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는 것이나 배웁니다. 그것은 학문일 뿐입니다. 이것도 학문이기는 하나 약간 실존적인 학문입니다. 실제와 더불어 배우니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연결시켜서 배우니 이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사람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철학이 아닙니다. 지구를 확대시키면 우주도 사람의 기본형을 갖고 만들었습니다. 우주에 등불같이 태양이 있는데 사람에게도 등불과 같은 눈이 있습니다. 달과 해가 있어 하나는 밝고 하나는 덜 밝습니다. 그렇게 해놨습니다. 그냥 지껄이니까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벌써 내 입을 통해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한 번 하러 오기도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냥 할 수 없기에 준비하고, 대화하고, 예비했다가 오기 때문입니다. 일단 말씀을 안하면 안할까, 하면 오리지날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름 있는 회사라면 빵을 하나든 둘이든 찌려면 태워서는 안되고 잘 쪄야 합니다. 100개이든, 10000개인든 잘 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한번 하려면 힘듭니다. 그래서 준비 안되고 오는 사람은 안됩니다. 말씀들을 준비를 하고 와야 합니다. 나도 준비해 오니까요. 우주도 인간의 기본형을 닮았습니다. 보이는 세계인 지구를 중심한 우주 세계는 육신과 똑같은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을 중심한 천주의 세계는 인간의 영의 기본형을 갖고 만들었기에 영의 세계와 똑같습니다. 영의 존재 세계를 연구하면 그 세계와 비슷합니다. 똑같습니다. 사람이 옷을 벗은 것과 같이 벌거벗은 산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자체 세계의 대화보다 상대 세계의 대화가 더 좋습니다. 내 얘기만 해서는 무언가 빠진 것입니다. 내 얘기도 하고, 상대의 얘기도 해야합니다. 그래야 대화가 이뤄집니다. 시를 쓸 때도 그렇습니다. 시를 쓸 때도 두 가지를 보고서 씁니다. 한 가지만 봐서는 안됩니다.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막연히 압니다. 기독교인들도 막연히 알지 누가 뛰어나게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벌써 누군가 나와서 사명을 하고서 갔을 것입니다. 영계를 그저 꿈에 불과한 세계로 압니다. 기도 많이 한 사람은 그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가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것도 부분적으로 알뿐입니다. <고전13>에는 그 때가 오기 전까지는 부분적으로밖에 모른다고 했습니다. 여기 월명동도 아직은 부분적 개발입니다. 앞산 한쪽과, 잔디밭과, 샘은 완공식을 했지만 그 나머지는 부분적인 것입니다. 집도 부분적이고, 운동장도 부분적입니다. 부분적인 것은 완전한 것이 오면 상상도 못할 차이가 있습니다. 건물도 대리석으로 지어 놓으면 상상도 못할 건물이 될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을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영계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영계에 대해서 쓴 글을 가져 와보십시오. 제대로 쓴 것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었어도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예수님을 믿었어도 예수님의 근원에 대해서 잘 모르고, 부분적으로만 압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인 것을 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것은 언제 올까요? 기성인들은 하늘나라에야 가야 온전한 세계라고 하며, 이 세상에 완전이 어디있느냐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하면 바보인 것입니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하면 그것은 완전한 것입니다. 더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그렇게 보십니다. 우리만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공통적인 세계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수학적인 용어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어서 발전해 왔기에 하나님이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수학적인 용어를 주시고, 요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날을 달 갖고 계산하게 만드셨습니다. 월삭에서 만월까지 계산해서 30일씩 계산하게 하셨습니다. 달 갖고 한계를 정하고, 바닷물의 한계를 못 벗어 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찾았을 뿐이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바닷물을 만들었습니까, 물을 만들었습니까, 나무를 만들었습니까? 못 만들었습니다. 자료를 다 주어서 인간이 쓰는 것뿐입니다. 인간에게는 창조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근원에 대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어제도 말했지만 금이 1관이 있으면 50년 후에 얼마가 되었는가를 모릅니다. 창조의 근원을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모릅니다. 박사가 많이 안다고 하지만 바닷가의 모래만큼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영계에 올라간다고 해서 다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이 세상의 학문을 못 다배우고 죽는 것처럼 영계에서 영원히 살면서도 못 다 배우고 산다고 안다면 쉬울 것입니다. 그렇게 많습니다. 무형의 세계는 무형의 세계로서 배워야지 유형의 세계 갖고는 시간이 짧아서 못 배웁니다. 거북이가 1000년 산다고 하니까 어느 사람은 그것을 지켜보다가 죽었답니다. 사람에게 이 육계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육계만 위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잘되나 영계 가서 보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눈깜박입니다. 영계에 비하면 1초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100년은 1초인 것입니다. 그 1초안에서 우리가 다 하는 것입니다. 1초안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뭐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1초를 확대시킨 세계가 이 지구상의 기간입니다. 하루를 확대시킨 것이 일생입니다. 무엇을 하다가보면 금방내 한나절이고, 뭐하다 보면 금방내 두나절입니다. 그리고 금방 잠을 자고 있고, 금방내 아침이 옵니다. 그래서 24시간이 금방 지나가듯이 일생도 그렇게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19980115. 목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사랑의 본질 마22:34-40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그 집에 살면 그 주인을 사랑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도리이듯이 너희가 내 집에 사니 너희가 나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함이 합당하지 않느냐?”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지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지구 자체가 집입니다. 거대하고 웅장한 지구가 집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지은 집에서 살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지은 집에 사십니다. 지구가 집이고, 우주는 마치 정원과 같습니다. 큰 사람은 큰 단어를 쓰고, 작은 사람은 작은 단어밖에 못씁니다. 작은 사람은 큰 단어를 못씁니다. 70년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큰 사람은 큰 책을 보고, 작은 사람은 작은 책을 본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초등학교 책을 가지고 배우지만, 법관인 경우는 큰 법전을 갖고 배웁니다. 더 큰 사람은 일반 사람이 볼 수 없는 논리적인 것을 가지고 배웁니다. 지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가 집에서 늘 거하잖아요. 우리가 집에서 거의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지구에 거하십니다. 지구에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구를 유형의 집으로 사용하시고, 천국을 무형의 집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나머지 우주의 벌판은 유형의 정원으로 사용하십니다. 우주의 법칙은 정원의 법칙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돌 있는 곳에는 돌만 있고, 흙 있는 곳에는 흙만 있고, 나무가 있는 곳은 나무만 있고, 물 있는 곳은 물만 있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세상은 이중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가정 확대시킨 세계가 우주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은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영 19930728 수 아침말씀 자기의 날 눅17:22-31 육신과 영은 생활이 다르고 살림살이가 다르다. 그 빠른 영이 그 답답한 육신을 따라 다니면 답답해 죽는다. 나는 영인체적 입장이고 여러분은 육인체적 입장인데 내 육신이 여러분보다 빠르잖아! 그래서 일을 시킨 후 답답해서 쫓아가잖아. 영과 육이 다르게 살고 있다. 영을 위해서 늘 연구하라. 영이 고달픈가, 힘든가, 답답한가 연구하라. 자기 영이 답답하면 자기 육신을 때린다. 어느 땐 천군과 천사가 때리기도 하고 어느 땐 하나님이 때리기도 하지만 자기 영도 자기 육을 때린다. 이런 것을 분별해야 된다. 자기 영이 자기 육신도 때린다. 그리고 육신도 자기 영을 책망하고 욕하기도 한다. 아무튼 자기 영을 잘 해줘야 한다. 새벽 기도도 하고 노래도 하면 영이 좋아서 죽으려고 한다. 영과 육은 부부일체이다. 어떤 것이 남편일까? 영이 주체이므로 남자이다. 육은 아내이다. 왜 영이 주체일까? 논리와 이치를 댈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도 영인체이다. 우리 인간은 신부요 하나님이 신랑이다. 그래서 우리 자체 영도 신랑이고 육은 신부이다. 결혼하면 남자가 여자 때리듯 영도 육을 잘 때린다. 그러나 자기 할 일 하면 동등권을 갖게 된다. 영과 육이 서로 하나돼서 잘가면 부부일체가 된다. 자기 영이 무서운 것을 육은 생각해야 된다. 영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아야 한다.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찬송하고 말씀도 좇아다니며 듣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영이 자기 육을 괴롭다. 한번 돌이키면 넘넘이다. 일순간이다. 신앙은 각각이다. 그게 무섭다. 영이 떠나가는 수도 있다. 그러면 타(他) 영이 들어와서 산다. 자기 육신 생각대로 안한다. 그걸 미쳤다고 하는 것이다. 19980303 화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잔디밭)거듭나야하나님나라를볼수있느니라요3:1-7 하늘 나라도 첫째는 낳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낳는 것이 중요합니다. 낳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낳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영은 어떻게 낳을까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낳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낳는 것입니다. 인간을 어떻게 낳느냐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함으로 자식이 탄생하듯이, 하나님과 우리 육신이 사랑함으로 영이 낳는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이 우리의 영인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부라면 하나님은 신랑입니다. 이 둘이 사랑함으로 거기서 우리의 영혼이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지만, 어렸을 때는 믿어도 잘 모릅니다. 근본을 모릅니다. 잘 터득한 사람이 깨우쳐 주면 그 때서야 깨닫고서 나갑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어렸을 때는 모르는 것입니다. 누가 한 살 때 연애했다고 하면 그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영혼도 육신이 세상 만사로 성장하면서, 하늘 근본의 뜻을 깨달았을 때부터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부된 입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우리의 영이 다시 탄생하게 되고, 탄생한 영으로 인해서 그 세계를 살게되는 것입니다. 육신이 태어나면 육신의 세계에서 살 듯이 영으로 태어나면 그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낳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 수료식 날 영안이 뜨인 사람들이 보면 아기가 우는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영의 귀가 열린 사람은 들린다고 합니다. 6. 비 유 론 19980407 화 아침말씀(월명동 전망대)* 너는 스스로 결심하고 기도하고 행하라 단10:10-14 성경에서는 근심을 안개로 봤습니다. 왜 안개로 비유했는가 알아야 합니다. 안개는 있다가 금방 없어집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금만 있으면 금방 없어집니다. 친구에게 가서 근심 걱정을 다 얘기하고 왔는데, 오는 길에 다 없어져서 ‘아무 것도 아닌데 공연히 얘기했다’고 쑥스러워 합니다. 근심은 근심을 낳고, 고민은 고민을 낳고, 걱정은 걱정을 낳습니다. 자꾸 염려를 하면 염려가 오고, 자꾸 기뻐하면 기쁨 거리가 오는 것입니다. 나는 사실 상당히 염려하는 머리통입니다. 번민하고, 걱정하는 머리통입니다. 무엇이 있으면 꼬치꼬치 밤새도록 생각을 합니다. 그냥 하면 되는 일인데도 걱정을 또 하고 또 하고 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근심은 근심을 낳고, 고독은 고독을 낳고, 번민은 번민을, 낳고 기쁨은 기쁨을 낳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느냐?”하셨습니다. 19980810 월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 하나님과 삶의 일체 요15:1-9 포도나무로 비유를 하셨는데, 포도는 지구상에서 평균적으로 제일 많이 먹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는 포도나무가 주요 농사였기에, 포도나무 비유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포도나무 비유를 더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포도나무만 들어서 비유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부분, 어느 역할을 정확히 비유해야 맞습니다. 가지와 포도나무 사이는 떨어지면 죽습니다. 떨어지면 가지는 죽지만, 나무는 뿌리가 땅에 있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면 너희는 죽는다”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열지 않으면 쓸 곳이 없습니다. 다른 나무는 열매가 없어도 재목으로라도 쓸 수가 있는데, 포도나무는 재목으로도 쓸 수가 없고,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비유를 하셨으면 그 비유에 대해서 세밀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포도나무를 열매 아닌 다른데 쓸 곳이 있겠습니까? 열매를 안 열면 꼬불꼬불하니 쓸 곳이 없습니다. 목재로도 못쓰고, 땔감으로도 못씁니다. 포도나무는 현재까지는 열매 외에는 특별히 쓸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을 때는 베어서 없애고, 그냥 불태워 없앱니다. 성경에도 포도나무가 열매를 열지 않으면 불에 태워 없앤다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그래서 어떤 다른 나무보다도 꼭 열매를 열어야 합니다. 열매라는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도 인내의 열매를 연 것입니다. 참을성도 없고, 인내력도 없으면 안됩니다. 사랑은 견딘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끝까지 견딥니다. 진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끝까지 하나님을 섬깁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환난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다 이긴다고 얘기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깁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열매가 필요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열매는 여러 가지입니다. 의의 열매가 있고, 기쁨의 열매가 있습니다. 기쁨을 누리고 사는 것도 열매입니다. 희락의 열매, 참는 열매, 화평의 열매, 사랑의 열매, 절대시하는 열매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은 무엇을 들어도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안 믿어지는데, 자기는 믿어진다면 그것도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실천을 못하는데, 자기는 실천한다면 실천의 열매가 열은 것입니다. 찬송하는 열매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꾸 찬송한다면 찬송의 아름다운 열매를 열은 것입니다. 7. 불 심 판 19981015 목 아침말씀(월명동 자연성전 전망대) 하나님의 행사 시111:1-5 하나님께서 그러십니다. “2000년대에는 불로 심판하지 않고, 불보다 더 무서운 말씀으로 흑백을 가린다. 그것을 2000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다”하십니다. 이 일을 수십 년 전부터 이미 해오고 있습니다. 말씀에 들어온 자는 보다 심판권을 벗어나게 됩니다. 말씀으로 심판하는 것이니 말씀에 들어온 자는 보다 심판권에서 벗어난 것이고, 말씀에 안 들어온 사람은 아직도 불로 심판할 것을 두렵게 생각하는데 그것이 심판 받는 것과 똑같습니다. 모르니까 그런 것입니다. 19970720 주일 지상천국 마4:17 공중에서 천국이 된다고 하고 불심판을 해서 꼬실러 죽인다고 하니까 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어떻게 하늘로 올라갈 것인가 생각해보면 머리가 아픕니다.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천국이 이루어진다면 신경쓸것이 없기 때문에 머리가 안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공중에서 천국이 이루어지게 되면 비행기도 없는데 어떻게 올라갈 것인지 하나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불심판을 한다고 하는데 자기만 심판 받지 않을 것이 아니니 기도할 때는 심판을 받을 것 같고, 성질을 낼 때는 심판을 받을 것 같고 그러니 천국 가기가 힘들겠다는 생각하면 늘 근심과 걱정입니다. 나는 불 심판을 한다고 해서 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불 속에 손을 넣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어머니에게 혼이 났습니다. “왜 불 속에 손을 집어넣느냐?” “나무를 집어넣으려다가 그런 거예요.” “그것이 아닌 것 같다. 네가 좀 이상하다.” 나는 불심판을 한다면 어느 정도나 견딜 수 있는지 손을 넣어본 것이었는데 불이 뜨거운 것이 아니라 따가웠습니다. 그런 실험을 해보니 불심판을 한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모두가 불심판을 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만약 죽은 사람들이 다 살아난다면 “그 사람이 나를 죽일 지 몰랐어.” “그 사람이 나에게 낫을 휘두를 줄 몰랐어.” “그 놈의 고향이 어디였더라?” “그 새끼가 부활되었겠지. 한 번 가보자.”하며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너무너무 머리가 아팠습니다. 전부다 머리가 아픈 교리를 가르치고 있으니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쓰는 사람들은 생각을 해보기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지금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뚱뚱한 사람들은 어떻게 휴거가 되느냐면서 살을 빼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삼각산에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돼지같이 살만 찌고. 휴거 되기 전에 살을 빼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도 하며 별의 별 생각들을 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쳐다보시고 “으하하하” 웃으시면서 “예수야, 어떻게 가르쳤기에 저 모양들이냐?” 그러시지 않겠습니까? (웃음) 이렇게 사람들이 별의 별 생각들을 다 하고 있는 것은 내가 빨리 전도를 안 한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와 여러분들의 죄입니다. 먼저 깨달았으면 그들에게 좇아가야지 왜 자기만 믿고만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어른들을 책임지라고 하면서 삼각산에 가보라고 했더니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19970814 목 아침말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자 창2:9 사랑과 진리의 심판이다 하나님이 불심판하고 저주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니까 하나님을 무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심판은 사랑의 심판입니다. 사랑 안하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불이고 진리가 불입니다. 잠언서에 보면 사랑은 불같다고 했습니다. 사랑과 진리로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진리대로 살지 못하면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심판입니다. 8. 공 중 휴 거 하늘말 내말 잠언집 제1집 중에서 발췌 265. 사람들에게 있어서 흔히 안된 일을 보면, 반대로 거꾸로 하다가 잘 안되어 결국 헛수고만 하고 말게 되는 일이 많은데 너도 그런 일이 적지 않은 자니 특히 신앙 생활하면서 바로 못하고 행여 반대로나 거꾸로 해서 헛수고하는 일이 없는가 오늘 생각하고 찾아보아라. *이 말씀은 1970년 여름. 꿈에 주님께서 한 장면을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 날 몸부림쳐 하루종일 찾은 것이 <데살로니가 전서 4:16-17>였고 결국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말을 깨닫게 되었다. 공중이 한늘이 아니고 지구가 공중임을 깨닫게 되었다. 1967년 월남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 높이 떳을 때에도 귓속말로 들은 음성이 있는데 그 때 “네기 비행기 탈 때에만 공중에 올라 왔다고 생각하느냐? 공중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지구가 공중임을 모르느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땅에서 오실 주님을 거꾸로 하늘에서 온다고 그릇 생각하며 또 공중에서 온다고 그릇 생각함을 모두 근본으로 터득하게 되었다. 9. 말 세 론 19981214 월 아침말씀(서울성실교회) 다스리는 자는 네게서 마2:6 “다스리는 자는 네게서 온다”는 것은, 같은 족속과 동질 동류의 세계에 있어야 다스리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논리의 법칙이며, 근원입니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다스릴 자는 기독교에서 와야 합니다. 우리 세포 조직이나, 인체 조직도 그런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말씀을 깨닫고, 크게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다스리는 자는 네게서 나온다”고 했을 때, 개미가 되기 전에는 개미를 다스릴 수가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땅에서 와야 한다고 나를 깨우치셨습니다. 개미를 연구한 장소는 월명동, 스키 탈 때 출발하는 날망입니다. 거기는 황토박이로서 동네 사람들이 황토를 다 파갔습니다. 거기에 개미가 집을 많이 짓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마득한 옛날에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개미를 통해서 “다스리는 자는 땅에서 와야 한다”하셨습니다. 이렇게 대개 하나님께서는 개미를 통해서, 벌을 통해서, 나무를 통해서, 돌을 통해서 늘 교육의 자료를 삼고서 깨우쳐 주시고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 19970210. 월 아침말씀(월명동 식당) 영의 세계 육의 세계 세모와 네모와 원이 있을 때 어느 것이 제일 튼튼하게 생겼습니까? 원이 제일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이 세개를 산꼭대기에서 뒹굴리면 네모는 한바퀴 겨우 돌고서 섭니다. 세모는 딱 들어 붙어서 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원은 계속 굴러갑니다. 그래서 원불교도 영원성이라고 원으로 해놨습니다. 성경에 ‘시작과 끝’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나와있습니다. 그것은 영원성을 얘기한 것입니다. 생긴 것을 볼 때 원으로 생겼으면 오래 사는 것입니다. 지구는 계속 돌고 있습니다. 힘이 얼마나 좋다구요. 여러분이 한 번 돌아 보십시오. 지구는 1초에 40Km를 갑니다. 100리를 가는 것입니다. 힘이 그렇게 좋은데 금방 죽겠습니까? 사람들이 너무 모릅니다. 만물의 존재물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지요. “지가 아무리 정력이 변강쇠라고 해도 하나님이 쳐 없애고, 심판하는데 별 수 있느냐?”합니다. 그러나 지구는 사람이 사는 집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할 때는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집이 죄지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죄지은 사람을 끌고 갈 때도 사람을 끌고 가지 집을 끌고 가지는 않습니다. 옷에서 벼룩이 물었다고 가서 옷을 불질러 죽습니까? 벼룩만 잡아내지요. 거기에다 인간은 벼룩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든 만물의 영장이고 혈통성이기에 불 갖고 꼬실러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옳고 그른 것을 가려주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고, 사랑의 하나님이고, 정도의 하나님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에서는 불로 심판하고, 칼로 목을 잘라 버리는 하나님인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며 “하나님의 무서운 것을 감히 모르는 이 배은망덕한 놈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 자식이 모르는 소리 하니 사람들이 제발 못 들었으면 좋겠다.”했는데 다 들어 버렸습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석가는 자비를 베푸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불과 칼로 심판한다고 하느냐? 자비 베푸는 석가가 오히려 낫다.”합니다. 불같은 말씀이고, 칼같은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칼갖고 싹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똑같은 샘인데 어떻게 한 샘에서 쓴 물과 단물이 나올 수 있느냐고 했는데 그것은 한 하나님의 한 입에서 어떻게 저주의 말씀이 나오고, 축복의 말씀이 나올 수 있느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성인들은 그것은 그것이라고 따로 생각하니 아직 어린애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전해서 하나님을 다시 인식시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근본을 깨닫고 살게 해야 합니다. 19980222 주일 때 마24:32-39 부산 연합예배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도 이처럼 시간을 지키는데 하나님께서 시간을 안 지키겠습니까? 사람은 완전히 다른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2000년이 말세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보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를 봄이라고 봅니까? 12달이면 4계절인데 석 달 가운데 어느 날을 봄이라고 결정하겠습니까? 1월 1일을 겨울로 결정하겠습니까? 2월 3일을 결정하겠습니까? 3월 3일을 결정하겠습니까? 다 주관권 속에 들어 있습니다. 어느 한 날이 아닙니다. 2000년이 되었을 때 그 해가 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는 이 세상의 마지막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말세는 수십 년이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 시계가 죽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2000년이 되면 말세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입니다. 그런 식의 주관은 없습니다. 이미 2000년을 중심한 전후를 주관권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말세 주관권 속에 들어가서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을 봄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춥지만 봄날입니다. 내일도 모레도 봄날입니다. 앞으로 따뜻하고 잔디가 새파랄 때도 봄날입니다. 완전히 잎이 피고 꽃이 피어도 봄날입니다. 이와 같이 말세는 어느 한 날이나 한 해가 아닙니다. 이미 말세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서 하나님의 거기에 해당되는 일을 해오고 계십니다. 이치에 맞는 말이지요? 이미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5월 5일이 운동회 날인데 어느 시간을 운동회 시간으로 보겠습니까? 2시, 3시, 4시, 10시, 11시 어떤 시간입니까? 계속 하고 있으니까 따로 시간이 없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2000년대라고 했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심판하고 계신 것입니다. 2000년을 중심해서 세계 각 나라를 계속 심판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거기 가담한 사람이기 때문에 압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그 시대의 내용을 알듯이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0년을 말세로 보고 심판한다면 2000년을 장식하기 위해서 이미 해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2000년 그 한 해만 심판하시겠습니까? 재판소에서는 날마다 늘 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기 전에 계속 재판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날을 재판날로 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날그날 그때그때 재판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일 칼을 가시고 매일 활을 당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매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날 가만히 참았다가 2000년이 되어서 어느날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문자대로 알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보좌에 앉아서 심판할 줄 알았지만 이미 예수님께서 백보좌심판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근본과 시대를 깨닫고 가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19980324 화 아침말씀(월명동 운동장) 말세와 우리와 현실 벧후3:8-13 말세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되는 것이고, 새로운 역사를 받는 것이고, 말세라는 것은 기존의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잔디도 불질러서 끝나버리는 줄 알았지만, 거기서 또 새싹이 올라옵니다. 이와 같이 바톤을 주고받는 것과 똑같습니다. 1번의 말세는 2번의 시작입니다. 2번이 끝나니 다 끝났다고 했지만 다시 3번이 바톤 잡고 뛰는 것입니다. 3번이 끝나면 4번이 또 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이 다 끝났구나. 볼 것을 다 봤구나’했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옛날의 공부 못한 노인들이나 생각하는 관인데 그런 관으로 학자들이 생각을 하니까 너무나 불행하고, 부정정인 사고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를 깨닫고 움직이며 살아야 합니다. <벧후3:8->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하셨던 것입니다. 19980326 목 아침말씀(월명동 운동장) - 교역자 모임. 말세와 우리와 현실 벧후3:8-13 이 역사는 벌써 50년 전부터 시작되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응앵하고 울었을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세를 계산할 때 “앞으로 내가 커서 20살쯤 되면 말세가 올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젊었을 때 망하는 세상이 올까?”라고 합니다. 이미 그 시대는 수십 년이나 지나갔는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말세의 날짜를 자른다면 다 나옵니다. 그것을 볼 때는 이미 50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감행되었습니다. 이미 40-50년 동안 새로운 역사의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극적인 시간이 갔습니다. 이미 전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 꽃도 안 피어서 봄인가 하지만, 이미 꽃망울이 피기 한달 전부터 봄의 물기가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말세의 개념도 시간을 꼭 따진다면 그렇게 따져야 합니다. <벧후3:8>을 보면 말세를 논하려면 시간을 따질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고 했습니다. 계산법을 모르고 어떻게 무엇을 따지겠습니까? 시계의 분침이 한 칸가는 것은 5분, 시침이 한 칸 가는 것은 한시간인 것을 모르고 어떻게 시계를 보겠습니까? 그런 것을 따질 줄 모르면 날짜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역사의 날짜까지도 압니다. 몰랐을 때는 캄캄했으나 이제는 정확하게 압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습니다. 1:1도 있고, 10:1도 있고, 100:1도 있고, 1000:1도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일하라고 서울로 보낼 때 1978년 6월 전에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그 전날 밤 12시에 서울로 올라와서 6월 1일의 새벽 한시를 서울에서 맞았습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하나님께서는 일을 하십니다. 일에는 다 시간이 있습니다. 밤 나무산 조경작업도 어제까지는 매듭짓겠다고 해서 기어코 매듭을 지었습니다. 일을 하기 전에 계산을 해보면 다 나옵니다. 그 동안 일한 것을 계산해보니 날짜는 34일이 지났지만, 일은 24일을 했습니다. 일은 24일 했지만, 시간은 다 갔습니다. 한 열흘의 차이가 압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세에 관한 것도 직접 주인이 와서 부닥칠 때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흘러간 것입니다. 2000년을 딱 끊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수십년, 반세기 전에부터 하나님께서는 서서히 말세의 물기가 오르는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2000년이라면 내일 모레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의 극적인 역사로 접어들어서 완전히 크라이막스를 장식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이 말씀이 나온 것도 이미 20년 전입니다. 선생님 것만 계산해도 20년 전입니다. 전초하는 사람들까지 따지면 한 40년이 넘습니다. 오래되었습니다. 겹친 것까지 합하면 50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앞으로 한 10년 있으면 말세가 오려는가?”라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따지니 안됩니다. 내가 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 시계를 못 봤었는데 너무나 창피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시대를 볼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는 어찌하여 시대를 모르느냐? 때가 어느 때라고. 앉을 때가 있고, 설 때가 있는데 지금이 어느 때라고. 때를 모르는 사람들아”라고 책망했습니다. 사람이 때를 모르면 성공을 못하고, 출세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때가 다 있습니다. 성공할 때가 있습니다. 명예를 받을 때가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때와 시기가 척척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때에 놀면 그것을 못하게 되고, 다음에 그 일을 하려면 엄청나게 피눈물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도 작업을 보다 일찍부터 시작을 못해서 밤과 낮을 통해서 계속 일해서 결국 생각했던 위치만큼 일을 해 놨습니다. 책임감을 느끼고 한 것입니다. 선생님 같은 사람은 원래 행동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 늦어도 어떻게든 기어코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처지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행동적인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초인도 아니고, 머리가 날고 기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기에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만일 지옥과 천국을 결정하게 된다면 참으로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의는 안되니까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척척척 움직여야 합니다. 19980328 토 아침말씀(월명동 운동장) 말세와 우리와 현실 벧후3:8-13 앞산도 마당을 덜 쓰더라도 돌을 눕혀서 쌓으려고 합니다. 어차피 운동장이 남으니까요. 몇 미터만 내어 쌓아도 절벽이 아니게 됩니다. 이렇게 말세라는 것은 파괴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구 시대는 파괴되지만, 신시대는 건설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랑잎은 떨어지고, 새 순은 올라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말세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 생각해서 “이제, 끝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랑잎이 떨어지니 거기에 붙어있던 벌레가 ‘이제 끝났다. 그러니 여기에 집을 지으면 무엇 하느냐?’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다른 벌레는 ‘나무에 붙어서 있다보면 거기서 새 순이 나온다. 그것을 뜯어먹고 살면 된다’고 합니다. 없어질 것으로 아는 벌레가 “아니다. 다 불질러서 없어진다고 했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하는 격입니다. 구 시대를 접을 때는 한번에 접지 않고 멍석을 말듯이 서서히 접고, 새 시대도 서서히 시작해서 건너올 사람은 건너올 여유가 있게 하시고, 역사를 펴나가십니다. 그것이 이치입니다. 구시대도 서서히 접고, 새 시대도 서서히 펴면서 역사를 진행하게 되어있습니다. 19970707 월 아침말씀(낙타바위 옆 감나무 아래) 오늘 말세가 와도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입니다. 진짜 내일 말세가 오는데 왜 사과나무를 심습니까? 따먹을 수도 없는데 왜 심습니까? 여러분들이 그 답을 찾아내 보십시오. (말세가 안 올 줄 알기 때문에? 일이 낙이기 때문에? 심는 것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에? 후손들이 먹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면 죽는 날까지 뭐하다 왔느냐고 묻습니다. ‘네! 죽을 때까지 내가 낙심치 않고 오는 날도 사과나무를 심고 왔습니다’ ‘ 너는 왜 그냥 왔느냐?’ ‘죽는데 뭐하러 합니까? 그냥 안하고 오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까?’ ‘이놈아 하는 것이 지혜이지. 그 귀한 시간에 왜 못했느냐?’ 우리는 그만큼 하나님이 주신 몸을 가치 있게 써야합니다. 안 쓰면 너무 아깝잖아요. 처녀가 시집도 못 가고 가만히 있으면 아깝잖아요. 여기에 한달반동안 공사를 했는데 아깝잖아요. 오늘도 여기 보기 싫은 돌을 빼내고 또 작업을 할 것입니다. 계속 일을 해야합니다. 잔디밭 꼭대기도 잔디를 입히니까 멋있게 되었습니다. 한만큼, 손을 댄 만큼 좋아집니다. 10. 무지 속의 상극세계 19990102 토 아침말씀(월명동북편벽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총력하자 마22:36-40 나는 개방적이고, 백성의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백성들이 말을 안 해서 못 듣지, 들으면 일단은 참고를 합니다. 앞산이 세 번째인가 무너졌을 때입니다. 그 때는 돌 뒤에 도랑 내는 것을 연결시키지 않아서 물이 들어와서 무너졌습니다. 그 때 누구 때문에 그랬느냐고 했더니 꿈에 보여주셨습니다. 종배가 그것을 안 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 여러 사람에게 시켰지만 그가 하겠다고 대답했기에 그가 했어야 했습니다. 그 꿈을 꾸고서도 ‘지금 얘기해서 무슨 소용 있느냐? 내가 시켰는데. 내가 했어야 했는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약수 샘을 앉히는데 내가 가운데에 앉히려고 했을 때 종배가 하는 말이 “여기에 앉히면 스키탈 때 지장이 있을 텐데요?”했습니다. 그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네가 말을 안 들어서 저것이 무너졌는데”하지 않고 그의 받아들였습니다. “네가 잘 생각했다. 너를 통해서 계시가 오는구나”했습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놔야 들어오는 것이 많습니다. 만일 그 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까불지 마”했다면 나중에 스키 탈 때 걸려서 다시 옮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너를 통해서 오는구나”했습니다. 선생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거기서 그냥 끝나버리고 다음을 또 기다립니다. “너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교역자들도 특별히 말을 안 들었어도 일단 관망하고 자제하고 생각할 시간을 줄뿐이지 “너는 끝났다”고 하지 않습니다. 나의 철학은 ‘그래도 인생이 태어나서 한번 살려고 하는데 내가 목을 쥐면 되겠는가? 안 된다“합니다. 성경에는 목 죈 사람을 풀러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매인 자들을 풀어주러 왔는데요. 그러니까 상당히 너그럽습니다. 그것이 산에서 기도생활하고, 수도생활해서 백성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생각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모르면 스스로 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약수샘을 산밑으로 놨습니다. “내가 그것을 먼저 생각하지 못했구나.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묵시를 하셨구나. 앞산이 무너진 것은 너의 무지도 있지만 너를 통해서 그것을 무너트리게 만들고 다시 쌓게 만드는 구나”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러나 저러나 무너지면 또 합니다. 일한 것에 대해서는 얘 기거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19981026 월 아침말씀(천안상록리조트컨벤션센터)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아라 대하 35 : 20-27 내가 죽 인도해보니 이 말씀을 들어도 자기를 위한 것만 압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체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너, 무지 속의 상극세계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그 길로 가지 말고 이 길로 가라는 것인데, 실제에 가서는 또 어렵게 생각해서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못 지킨 것입니다. 말씀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여서 엄명을 내리셨는데도 다른 길로 가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께서 채찍과 책망을 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역사의 허점들을 얘기했지만, 요시아는 싫어했습니다. 느고 왕은 왕 중의 왕이었습니다. 애굽을 휩쓰는 왕이니까요. 그런 느고가 하는 말이 “오늘날 내가 그대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나와 같이 싸우는 자와 싸우겠다”했습니다. 그것은 “네가 나와 싸운다면 나도 네가 적인 줄 알고 싸우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나는 그대를 치러 온 것이 아니다.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러왔다. 그러니 네가 나와 싸운다면 그것이 뜻인 줄 알고 너를 치겠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로 더불어 싸우는 자를 치라’고 했으니까”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부딪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그 사람에게 부딪치면 절대로 안됩니다. 선생님도 시대의 말씀을 받아왔기에 큰소리 치는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보다 다른 사람이 큰 사람이 있다면 큰소리를 못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지구상에서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상관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사명을 다 갖고 왔기 때문에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군대의 참모총장이라면 군대에서는 누구에게든 큰소리를 쳐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모시고 섬기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져왔으니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계급싸움을 해도 이기고, 사명싸움을 해도 다 이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와 싸움이 붙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나와 싸우지 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를 하나님의 말을 거슬리지 마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시아는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거기서 옷을 변장하고 마음을 변장하고 같이 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안됩니다. 요시아 군대는 10만도 제대로 안 된다면, 느고의 군대는 100만도 넘는 지경인데 그것이 싸움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요시아의 군대가 10만이고, 느고의 군대가 5만이라고 해도 느고의 군대가 이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군대가 이기니까요. 그러니까 게임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못하니까 느고를 통해서 역사 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하나님 믿고있는 요시아와 같은 입장이라고 해도, 여러분이 못하니까 선생님이 해결하려고 뛰어드는 것입니다. 사명자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구요. 오늘날 기성도 하루아침에 “아멘. 저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서 왔구나”했으면 벌써 끝났습니다. 벌써 국교화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세계 만국이 돌아왔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 하나를 전도하면 그 민족이 또 다른 민족을 전도하고, 그 민족이 또 다른 민족을 전도하면 150개 나라가 싹 전도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으면 150명 전도하듯이 쉽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하고 지금은 완전히 소립자를 전도하듯이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자 전도하듯이 전도하면 간단했을 것입니다. 분자와 원자만 하면 끝나니까요. 그런데 소립자까지 내려가서 전도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하나씩만 전도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밭뙈기를 사들일 것은 곡식 모가지 하나씩 하나씩 사들이는 입장과 똑같습니다. 그래도 워낙 수고하고 10년, 20년씩 수고하니까 이만큼의 한 그룹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일이 잘되었으면 그냥 뚝딱 뚝딱 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돌아오고, 천주교가 돌아오고, 그리고 일개 교단이 돌아오다가 일개 민족이 돌아오고, 그렇게 하여서 민족이 전도되게 되었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원 뜻입니다. 그런데 그 뜻이 안 이뤄진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하나님 뜻 안에 돌아온 우리끼리만 가는 것입니다. 원래 지금은 우리가 사명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가 전해 보지도 않고 안 온다고 불만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먼저 손쓰기 전에 사단이 먼저 손써서 “거기 이단이다”하면서 못 들어올 뿐입니다. 그들은 아직 우리 아벨 말을 못 들어봤기 때문에 우리가 심판을 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 전도도 안 해보고 말씀을 전해보지도 않고 그러느냐?”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솥에 불을 때는 것과 똑같습니다. 불을 때보지도 않고 어떻게 판단합니까? 보일러를 틀어본 다음에 방이 뜨겁다, 안 뜨겁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보일러를 틀어보지도 않고서 “에이, 냉랭하네”해서는 안됩니다. 그 때 불때는 것은 본인이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넣은 다음에 “냉랭하다. 안 받아들인다. 안 믿네”해야 합니다. 복음도 안 전해보고, 냉랭하다든지, 왜 그러느냐고 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런 얘기는 전부 자기의 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불가불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며 열심히 해야합니다. 요시아는 느고의 말을 듣고서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변장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변장도 하고, 마음의 변장도 한 것입니다. 이번 주 말씀이 죽 가다보면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계속 나올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상황도 한번 봤습니다. 75년에, 모든 말씀을 조립하고 서서히 나왔었는데, 그 당시 통일교가 외치고 돌아다니는 전성기였습니다. 그 때 그들은 “광야를 달리는~”이라고 노래했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면서 죽는 놈은 죽고 가는 놈은 가자고 했을 때였습니다. 그 때는 리틀 엔젤스도 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놔두면 다 이단이 되게 생겼다고 하면서 나왔었습니다. 그 때 통일교는 “우리는 기독교를 치러 온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해서 우리 나라 사람에게 반공사상을 넣어주고, 북한을 막으라는 사명을 가지고 왔다”하니 “그러느냐? 그러면 우리는 손댈 것이 없구나”하고 일단은 들어왔습니다. 내가 그 과정을 다 봤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금 목사님들이 “믿을 수 없다. 그름같이 몰려간다”고 하면서 다시금 나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월명동에 구름 떼 같이 오듯이 대전 충무 체육관에 1만 명 정도가 모여들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 때 기독교 목사님들은 원래 십자가 뺏지를 달고 다녔는데, 모두 십자가를 떼고, 잠바를 걸치고, 교회 나오는 청년들을 동원해서 막게 만들고, 목사님들은 뒤에서 조정하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 이 말씀이 생각 나면서 “이와 같이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일어났다”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전쟁, 신앙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전쟁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면서 “너는 정녕코 보고 깨달아라. 지금 이런 상황이 지나가고 있다”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도 대개는 압니다.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압니다. 75년 전까지는 기독교가 대학생 엑스폴로하면서 굉장했었습니다. 여의도 광장에 수십만 명씩 모이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75년도에 그렇게 싸움을 하고 부터는 기독교도 조용해 졌고, 통일교도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서로 죽인 것으로 봤습니다. 통일교는 살인 당한 바가 되고, 기성은 살인한 바가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므깃도 골짝이 되었다”하셔서 이 진리를 떼게 된 것입니다. 제 2의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므깃도 골짝이 된 것입니다. 그냥 봐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본문의 육적인 므깃도 골짝에서는 싸움을 해서 엄청난 사람이 죽었습니다. 요시아 왕뿐 아니라 그날 상상도 못할 많은 사람이 죽어서 그 골짝이 해골 골짝이 된 것입니다. 전에도 싸움할 때마다 므깃도 골짝에서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므깃도 골짝은 해골골짝이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므깃도 골짝에 대해서 몇 년 동안 연구하는 가운데,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의 영적인 므깃도 골짝은 어디이냐? 우리 한국인데. 그러면 전방이냐? 그것은 육적인 세계이다. 바로 기독교와 새로운 종교가 싸우는 완충지대를 말한다. 그것은 어느 지역이 아니고 기독교와 새로운 종교가 싸우는 곳이 바로 영적인 므깃도 골짝이고, 해골의 골짝이다”하였고, 에스겔 골짝으로 바로 연결되어서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 골짝이 바로 므깃도 골짝입니다. 그곳이 내내 그곳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심령을 살림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선생님에게 “너는 내려가서 이 말씀을 전해라.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생기가 들어가서 일어나 군대가 되리라”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앙의 군대가 되어서 신앙을 살리며 가는 것입니다. 기성도 죽고 다 죽은 골짝에서 다시금 심령을 일으켜서 가고있는 것입니다. 그 당세의 젊었던 사람들은 지금은 50대가 넘어서 다 끝났습니다. 그래서 그 2세들을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2세들에게 말씀을 전해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내가 산에 있을 때 그랬습니다. 다리골 굴에서였습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가 살아날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시대의 종교가 다 죽어버렸는데, 이 시대의 종교가 살아날 수 있겠느냐?”주님이 말씀하시기에 살아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나느냐고 하기에, 말씀만 주면 내가 말씀으로 살아났듯이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밖에는 없다”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같이 시대를 의논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 굴이 위험해서 못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다시 살려면 이 말씀을 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연습하라”하여서 나가서 차안에서 외치고, 노방전도 연습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다가 명동거리까지 가서 외치고 그러다가 이 섭리까지 왔습니다. 웅변대회 나가는 사람이 많이 연습하고 나오듯이 연습하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데는 잠을 자면서도, 중얼거려도 복음입니다. 선생님은 몇 마디만 해도 돌아오고, 쳐다만 봐도 돌아오고, 악수만 해도 돌아옵니다. 쳐다보면 마음이 녹아집니다. 그렇게 여러분들도 전도를 열심히 해야합니다. 아까도 전도한 사람은 사인도 해주고, 독수리도 그려주었습니다. 독수리처럼 사냥하라구요. 이렇게 해서 에스겔 골짝의 마른 뼈들을 다시 살려 군대를 일으키는 지구상의 역사가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새노래도 주셔서 지은 것입니다. 그런 120곡의 노래가 새로운 역사에 맞추어서 지어져서 새로운 역사의 노래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늘 생각하면서 이 골짝이 어떤 골짝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여러분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기독교를 보고 한 말입니다. 기독교가 요시아입니다. 그들은 75년도에 깨진 것입니다. “미워하면 살인한 바가 된다. 또 살인을 받은 바가 된다”하셨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안 되는 것이고, 다시 일어날 길이 없고, 이미 역사는 거기서 끝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냥 역사를 압니다. 여러분을 붙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어른들이 돌아와도 거기가 거기라는 것을 알기에 큰 기대를 안 겁니다. 욕심을 부릴 것도 없고,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 당세에 젊은이 수백만 명을 끌고 나가면, 거기서 해결 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되면 방송으로 때려서 역사를 뒤집는 것도 있지만, 안되고 이 길로 그냥 가면 후반기까지 하면 기백만 명 정도가 되어서 그들을 무장시키고, 결혼도 시켜놓고 가게되면 그들로 인해서 성약 역사가 쭉 펴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압니다. 그러나 만일 역사가 잘되고 기적의 역사가 성취되어서 나간다면 좀 쓸고 갈 것입니다. 그래도 기성이 들어오기는 힘듭니다. 그렇게 쉽게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는데, 엊그제도 기성에서 한 80명되는 어머니들이 왔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와서 찾았다고 좋아하나, 그들이 이제 찾아서 무엇을 한다는 것입니까? 결국 여러분을 불러서 시대의 업을 주고, 신앙의 업을 주어서 가고 있습니다. 19980708 수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혀를금하라.듣는자에게은혜를벧전 3:8-12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있었습니다. 자기의 뜻을 이뤄주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자기가 무지해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절대로 실수를 안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말실수하는 것이 없는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무조건 복을 달라고 해도 안되고, 무조건 저 놈을 혼내달라고 해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대개 원수를 통해서 자기의 소원이 이뤄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럴진데 무슨 다른 두말이 필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필 왜 원수를 통해서만 뜻이 이뤄지느냐고 따졌었습니다. 나도 보면 원수를 통해서 큰 뜻이 이뤄지기에 그렇게 따졌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크고도 큰 일이다. 그것은 성자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일을 했는데 내가 어찌 그 소원을 안 이뤄 주겠느냐? 그 상으로 이뤄주는 것이다”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는 이상하게 원수를 통해서 이뤄지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세상은 기막히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모든 사람에게 원수 없게 만드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19980404 토 아침말씀(월명동 운동장) 진리로 공의롭게 사는 자 렘5:1-6 금주는 예레미아서의 말씀을 갖고서 한 주일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레미아가 애가를 지었는데 그 지은 원인이 있습니다. 요시아의 죽음에서부터 출발해서 슬픈 애가를 부른 것입니다. 유명한 대학의 신학박사가 요시아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신학박사이고 엄청난 젊은이를 가르치는 사람이 모르는데 나에게는 주님이 깨우쳐 주신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요시아 왕은 제일 의롭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대하35>을 보면 요시아 같이 의로운 왕이 없고, 요시아 같이 하나님의 전을 정돈한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가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못 풀었던 것입니다. 나도 몰랐었는데 기도하는 중에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펼치게 하셨고, 그곳을 중심해서 성서를 한달 동안 풀어주셨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 때까지 나는 요시아는 잘 몰랐고, 다윗만 최고로 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게 만들고 깨우쳐 주시면서 세상의 모든 세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가 전쟁을 해봤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것으로 인식시키며 깨우쳐 주실 때 너무나 감명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깨달았고, 지금도 이 말씀은 나에게 철학이 되어서 인생을 살아나갈 때 심각하게 적용됩니다. 이 사건이 내가 제일 신경 쓰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예레미아가 애가 속에서 슬픈 탄식을 했었는데 처음에는 어디를 보고 그러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슬픈 일이야 많이 있지만 그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핵심을 알아야 원자탄을 갖고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예레미아는 백성의 슬픔과 하나님의 관계도 얘기했습니다. “슬프다 어찌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처녀 이스라엘아”했습니다. 이렇게 탄식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그 상황을 예레미아는 선지자로서 제대로 봤기에 탄식한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예레미아만이 요시아가 왜 죽었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리 신학을 연구한다고 해도 모르고, 그 당세에 겪었던 사람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 때 모르고 사는 것이 많습니다. 나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난이 나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주도에서만 난이 나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서도 난이 나고, 꽤 비싸더라구요. 아는 사람이 와서 알려주어서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일생을 살면서도 전혀 모르고 죽는 것이 있습니다. 꼭 알아야 할 것인데 전혀 몰라서 너무나 억울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기도하면서 “나를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아직도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했습니다. 예레미아와 요시아가 통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아는 요시아가 왜 죽었는지 알았습니다. 요시아는 전쟁하다가 죽었습니다. 한참 하나님의 전을 정돈하고, 한참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 한가지 고민이 있으니 갈그미스가 쳐들어오는 국방문제였습니다. 나도 신앙의 국방 문제가 항상 신경 쓰였습니다. 그것이 50%를 차지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복음의 국방 문제는 삼선교에서 부터 있었습니다. 복음 전하면서부터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2-3명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요시아가 한참 전을 정돈하고 이상세계 만들어 놨는데 잘못하면 다 뺏기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로 늘 고민하며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 응답은 “걱정하지 마라”는 마음만 주셨지,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알려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 그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될 것은 모릅니다. 그리고 있는데 어느 날 전방에 적들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왔습니다. 보니까 애굽 사람들이 구름 떼 같이 몰려왔습니다. 애굽은 대국이라 엄청난 군대가 있었습니다. 애굽은 항상 이스라엘에게는 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아가 명지털 까지 선 것입니다. 그래서 방비하고 싸우러 나갔더니 느고가 하는 말이 “내가 당신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 싸우겠다면 나도 싸우겠다”했습니다. 자기 영토를 밟고 지나가니 요시아가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시아가 군인에게 비상 걸고 나가니까 느고가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렇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는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나중에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다시 싸우러 나갔습니다. 안 하겠다고 하고 또 하면 그것은 개입니다. 안 싸우겠다고 하고는 다시 싸우러 나갔습니다. 나는 이것을 분석할 때 아무래도 밑의 사람이 깔짝거린 것 같습니다. 밑의 사람이 “어떻게 적의 말을 믿습니까?”했던 것입니다. 대개 지도자는 밑의 사람이 깔짝거려서 움직입니다. “적들이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있으면 안됩니다. 당하더라도 싸우다가 당해야 합니다”했던 것입니다. 요시아가 안 싸우겠다고 하고는 싸우러 나오니 할 수 없이 느고도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싸우라고 보낸 민족과 싸우러 간다”고 했습니다. 느고는 갈그미스와 싸우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사실 갈그미스는 애굽의 적이기 보다 이스라엘의 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을 이스라엘 나라를 갖고서는 안되니 대국인 애굽을 시켜서 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군을 이끌고 가는 길에 이스라엘과 붙은 것입니다. 안 하겠다고 하다가 다시 싸우러 나오니 싸움이 붙은 것입니다. 거기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때 요시아가 죽었습니다. 약속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안 싸우겠다고 했으면 안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갔다가 우연히 쏜 화살이 갑옷 솔기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아의 죽음을 백성이 모두 슬퍼했습니다. 그 때 다 오해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안도와 주셨느냐?”했을 것입니다. 애굽의 느고는 결국 갈그미스와 싸우고 내려갔습니다. 이스라엘과만 싸우고 그냥 간 것이 아니고 결국 갈그미스와 싸우고 갔습니다. 갈그미스가 깔짝거릴 때는 애굽보다는 이스라엘이 문제였습니다. 애굽이 갈그미스와 싸울 때 2/3만 쳐죽이고 갔습니다. 미리 애굽이 올라오는 것을 알고서 방비했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는 이스라엘이 ‘아, 우리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었구나. 괜히 싸웠구나’했습니다. 이것이 무지 속의 상극세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 이렇게 되었구나’하고 알았습니다. ‘성서에 이런 비밀이 있구나’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지구상 역사가 계속 그렇게 나간 것을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도와준다고 했으면 원수도 와서 도와 준다고하고 다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수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이 의식하는 애굽을 시켰을까요?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흉년들어서 다 죽을 것을 요셉으로 인해서 살았습니다. ‘아, 이렇게 인과응보가 있구나. 3-4대까지 간다더니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했습니다. 요셉이 민족 전체를 살려주고 받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손을 통해서 엄청난 국방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비하게 역사 하신 것을 듣다보면 기도할 때 나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요시아가 그렇게 죽었습니다. 항상 보면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가 무지함으로 너를 돕는 사람을 원수로 의식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으면 나를 믿어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있고, 내가 있고, 성령님이 있잖느냐?” 항상 그래야 합니다. 사람을 중심하지 말고, 오직 하늘을 중심 해야 합니다. 하늘 앞에는 멍청해야 합니다. 공연히 하늘 앞에서 잔머리 굴리면 안됩니다. 그래야 하늘이 하는 것을 압니다. 그래야 하늘이 마음놓고 쓰십니다. 하늘이 마음놓고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손발이 되어야 합니다. 축구도 전혀 못하는 사람은 가르치기가 쉽습니다. 그들은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 배운 사람들은 기어코 자기 맘대로 하기에 오히려 못합니다. 조금 아는 사람은 가르치기가 힘듭니다. 그것도 무지한 사람을 통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요시아의 죽음을 예레미아가 보고서 한탄하고 거기에 대해서 눈물겨운 애가를 부른 것입니다. 참으로 아깝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당시 하나님께서는 요시아 왕을 중심해서 시대를 완전히 통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갈그미스만 없어지면 간단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게 고맙다고 한턱 낼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지시하셨습니다” “이것은 뜻입니다. 당신 나라에 하나님 역사가 일어날 뜻입니다. 우리 서로 국교를 틉시다”하면서 전도하면서 애굽에 가서 알롱거릴 것이고, 그렇게 애굽을 사귀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운을 타고, 애굽은 당시 육적인 운을 탔기에 그 둘이 하나되면 바벨론, 앗수르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번져 나가서 메시아가 올 터전을 만들어 놨으면 세계적 터전이 되었을 것인데, 그것이 깨져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식 잃고 슬피 울고, 남편 잃고 슬피 우는 여인같이 슬픈 애가를 부르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안됩니다. 월남에서도 죽는 사람을 보면 90%가 몰라서 죽습니다. 죽을 줄 알았으면 거기에 안 가는데 대개는 몰라서 가다가 죽습니다. 하늘의 운을 몰라서, 못 타서 죽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이 몰라서 못삽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늘 기도해야 합니다.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 작업 중에도 몇 번 죽을 고비가 있었는데 미리 알고서 살기도 하고, 우연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살기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던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되었습니다. 루터와 칼빈도 천주교의 해방을 위해서 그들을 풀어준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유대민족을 위해서 살려주려고 했는데 자기의 적으로 보고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일으켰습니다. 자기들이 구하고 찾아서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보내주셨는데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되었습니다. “너도 나가서 역시 무지 속의 상극세계에 부닥칠 때가 있다”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내가 애굽의 느고 입장에 설 때가 있고, 요시아의 입장에 설 때가 있고, 이스라엘의 편에 설 때가 있으니 항상 바꾸어 가며 생각을 해야합니다. 항상 요시아의 입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시대를 풀어 나가는데,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이런 것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 원리입니다. 이것을 깨우치면서 시대를 내다보니 시대가 그렇게 해왔습니다. 다윗과 사울도 무지 속의 상극세계였습니다. 사위인 다윗을 통해서 역사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그가 정권잡고 흔들 줄 알고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사울도 다윗이 결국에는 참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런 무지 속의 상극세계가 안 들어간 역사가 없습니다. 진리는 공통성이니까요. 대개 자기를 위해서 한 일인데 그것을 모릅니다. 그런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치에도 있습니다. 요시아가 순교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무지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안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아멘 했으면 지켜야 하는데 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느고가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 했으면 그대로 믿어야 했는데,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대개 사람이 안 하겠다고 하고서 다시 그 일을 하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믿음의 조건을 못 세웠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번 믿음을 세웠으면 그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자꾸 지키지 못할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기도하면서 넘어가야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어려운 일이 생기는데 기도를 해서 그 단계를 넘어가야 합니다. 참고 견디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어려움도 넘어가는데, 기도를 안 하면 작은 환난도 큰 환난으로 무섭게 보입니다. 가나안 복지에 갔을 때도 여호수아에게 담대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31개 족속이 있어서 사생결단 해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신천 신지는 싸워서 이루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도 사망과 어둠을 대상으로 싸웠습니다. 싸우면서 견디면서 기어 올라와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것입니다. 늘 그런 교육을 시킵니다. 나도 기도하면서 “이들에게 늘 바른 교육을 시키게 하시옵소서”합니다. 좋아서 따라오기는 하는데 교육을 받고 근본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어제도 신학생들이 수업하러 와서 하루 종일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수고했다. 밥 먹고 가라”는 한마디로 끝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을 봤으니까요. 직장인들이 전도하고 수고했다고 왔는데 “열심히 기도하고 가라”한마디 했습니다. 내일이면 또 집회하러 가야 하니까요. 집회에는 사생 결단할 사람들이 잔뜩 있습니다. 그들은 설교 한마디에 일생이 좌우됩니다. 그래서 섣불리 가르치면 안됩니다. 더구나 극적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기에 잘해야 합니다. 우냐, 좌냐 사생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지혜롭게 잘해야 합니다.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해도 지혜롭게 행동할 때 호감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행동 여하에 따라서 해줄 것도 안 해주고, 안 해줄 것도 해주게 됩니다. 11. 이단의 개념 19981023 금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 법을 지키는 자가 복을 받으리라 시119:1-3 오늘 하는 이런 말씀이 다 이치입니다. 이치의 말씀이 깊습니다. 원리는 “이렇게 해야한다”하는 것입니다. 원리는 아주 못을 박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냥 봐서는 이치가 더 약한 것 같아도 더 강합니다. 매력이 이치입니다. 못 참고 후닥닥거리면 되겠습니까?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나중에 내려가면서 빵이라도 사다주면서 “형제, 근무 잘 서게. 얼마나 수고가 많나? 하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겠지. 잘하려다 보니 이런 이도 있겠지”해야 합니다. 나는 70일 동안 기도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북한에 간첩을 보내야 북한의 정보를 얻어내겠기에 결국 간첩을 보냈습니다. 한번 간첩을 보내면 2-3달만에 오는데, 보냈다고 전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를 간첩으로 보내니까 다음에 올 때 철조망 열어주어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알려주면 아군 중에 간첩이 있으면 바로 죽이기에 알려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70일 동안 기도할 때 이 종교의 모든 상황이 그렇고 하나님의 입장이 그러하다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두달이 있다가 그 간첩이 정보를 다 모아서 밤에 내려왔습니다. 오다가 철조망에 걸려서 막 애원했습니다. “나, 자수하니 살려주어라”해도 믿을 수가 없다고 총으로 쏴서 죽였습니다. 대한 민국 군인 전체가 해도 못할 정보를 빼오는데 그렇게 죽였습니다. 그가 간첩으로 갔던 것은 국방 장관이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간첩 죽였다고 모두가 축제 분위기였는데, 국방장관이 보니까 자기가 보낸 간첩이기에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간첩을 죽인 사람 중에도 “왜 이렇게 많은 정보를 가져왔을까? 이중 간첩을 하려고 그러나? 얼굴도 우리와 비슷하다”하면서 의심하는 자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보고서 국방장관이 눈물을 흘리니까 그 중의 어느 사람은 “간첩 죽였다고 우니 국방 장관도 한편이 아니냐?”라고 의심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말합니까? 나중에 암암리에 얘기할 뿐입니다. 아군을 죽였다구요. 그리고 아군을 죽였어도 이치적으로 볼 때는 훈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 없이 훈장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이 그런 입장과 똑같다고 하면서 “너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래?”하셨습니다. 그러면 현재까지 보낸 사람이 누구냐고 했더니 다 보여주셨습니다. 통일교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단이라는 소리를 안 하는 것입니다. 적의 정보를 빼오라고 사단의 세계로 보낸 것입니다. 북한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영계의 국방에 특공대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은 스스로는 알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차량 검문하는 사람도 선생님이 서라고 했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빨리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이치를 깨달으려면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늘 선생님과 상의하구요. “선생님, 이런 사람이 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해야합니다. 여기에 늘 오는 사람은 선생님은 평신도 취급을 합니다. 정장하지 말고 평상복으로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명함을 받아도 그냥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고 “오늘 누가 올 테니 문열어 주어라”하면 평신도까지 다 알기에 안됩니다. 엊그제도 종교연구소에서 왔다가 갔다고 합니다. 왔다가도 모르더라구요. 그래서 누구든지 잘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훈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데리고 섭리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 같은 사람 데리고 섭리할 줄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구상에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점쟁이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 하실 줄을 몰랐습니다. 지금도 여러분 안에만 알지, 밖에서는 모릅니다. 19980111 주일 사랑의 본질 마 22:34-40 올림픽 역도 경기장 그러는 가운데 언니는 시집을 갔습니다. 언니는 죽어도 나와 결혼하고 싶어했습니다. 나에게 “통일교에 들어와야 나와 결혼할 수 있으니 들어오세요” 그랬지만 나는 안 들어갔습니다. 보통 내가 통일교보다 밑의 말씀을 받았다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말씀이 있기에 안 들어간 것입니다. 진리에 미친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진리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바꿔 버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비교해 보아도 내 말씀이 더 훨씬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 들어갔습니다. 내가 받은 말씀이 높기 때문에 안 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 인식관을 바르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볼지라도 너는 이단으로 보지 말아라. 아무리 이단이라도 이단으로 봐서는 안되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그다지 나쁘게 보지 않았습니다. 나를 죽이려는 적도 잡아다가 회개를 시켰는데 그까짓 것을 못하겠습니까? 19970724 목 아침말씀(자연 성전 잔디밭) 지상천국 마4:17 옛날 이스라엘의 솔로몬 성전이 큰줄 압니까? 솔로몬 성전은 코딱지 만했습니다.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나도 전에는 큰 체육관만한줄 알았습니다. 사람들 5만 명씩 모여서 지었다고 해서 큰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준 대로 지었을 것이 아닙니까? 그대로 했으면 조그마했습니다. 장이 30규빗이었고, 고가 60규빗이었습니다. 작았습니다. 제물 드리는 데만 딱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같이 교인들이 안 모였고, 제사장만 들어가면 끝났습니다. 성전이 그렇게 안 컸습니다. 바보들입니다. 성경에 규격이 나와있는데도 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다 나와있는데도 그랬습니다. 제물 드리기 위해서 사람 몇 명만 들어가면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다 밖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안마당과 밖마당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믿어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단이라는 얘기도 얼마나 함부로 하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 웃기는 얘기입니다. 12. 홍 수 심 판 19980620 토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 주여 나를 생각하소서 눅23:39-43 선생님도 알지 못하고 하는 짓이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선생님은 말씀을 하도 면도칼로 포를 뜨듯이 싹싹 끊어 냅니다. 아닌 것을 완전히 못을 박아 버립니다. 아닌 것은 평생동안 봐도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은 전체심판이 아닙니다. 가다보면 도로에서 어느 곳까지만 비가 오고 다음에는 안 옵니다. 지역심판입니다. 자기 자식이나 뭐라고 해야지, 뭐하러 남의 자식까지 자기 호적에 올린 사람 취급을 합니까?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지역심판입니다. 이치를 볼 때 그렇습니다. 이가 썩었는데 이를 빼야지 왜 발바닥을 치료합니까? 지역 치료가 아닙니까? 아픈 곳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치질이 걸렸는데 왜 입에다 소독약을 바릅니까? 지역심판입니다. 그 지역에 문제가 있으면 그 지역을 심판해야지요. 19980702 목 아침말씀(월명동어머니집짓는곳) 나도 그러하다 요12:44-47 노아의 방주라고 하면 굉장히 큰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코끼리 몇 마리 타면 그대로 가라앉습니다.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120년 가면 그 나무가 다 썩을 것입니다. 그 때는 4300년 전이기에 지금과 같은 날짜 계산하던 때가 아닙니다. 시계가 나온 지가 얼마 안됩니다. 그들의 날은 120년 된다고 했는데 120년 후에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120년 걸렸다면 나무가 썩어서 물이 새서 노아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이치가 아닙니다. 그 때는 날짜의 착오가 많았습니다. 19980827 목 아침말씀(월명동자연성전북편벽화)너희도이와같이해주리라마19:27-30 내가 오기 전에 각 교파 통해서 말씀했지만, 홍수 심판도 다 전체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그렇게 비가 많이 왔어도 보십시오. 비가 많이 오면 장대같은 비가 온다고 하고, 그보다 더 많은 비가 오면 억수같이 온다고 하고, 금년부터는 악수가 온다고 했습니다. 이번 여름철에 그렇게 비가 많이 왔다고 하지만, 여기는 어느 해보다 적게 왔습니다. 번데기 만한 작은 나라에도 비가 온 곳만 왔습니다. 그런데 노아 때는 온 지구상에 40일 동안 비가 왔다고 합니까? 그것을 믿는 바보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이라고 해도 그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법칙의 하나님이신데요. 써놓은 것을 보면 하늘까지 물이 닿았다고 했습니다. 비가 올 때는 자기가 있는 서울에 비가 오니까 딸이 있는 지방에도 비가 오는 줄 알고 전화해서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 때도 애들이 자기 지방에 비가 온다고, 여기도 엄청나게 비가 오는 줄 알고 안온 사람 많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서운하다고 나중에 슬글슬금 왔다 가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비를 맞으니까 남도 비를 맞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 지역에 비가 오니까 남의 지역에도 비가 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심판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분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상식입니다. 나도 물론 깨우쳐 주셔서 받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나만 깨우쳐 주셨겠습니까? 나만 이쁜 털이 나서 나만 가르쳤겠습니까? 다 똑같은 태보자기 쓰고 나왔고, 다 똑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요. 그런 것은 인간의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지해서 노아 때 온 지구상을 다 심판했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살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내가 계룡산에 가보니 꼭대기에 사금파리가 있는데, 그것이 맞아. 홍수심판해서 배가 그 위로 넘어가다가 걸쳐서 그릇이 깨졌다는 얘기이다. 내가 홍수심판을 읽고서 신비함을 느꼈다”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위신이 꺾일까봐 내가 즉시 얘기합니다”하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노아의 배가 공주 계룡산까지 올 리가 있겠습니까? 오다가 다른 산에 걸치지요. 목사님 정도면 연구해서 알아야 합니다. 아니면 학자들이 연구를 해야 하는데, 연구를 안 합니다. 그런 말씀을 하면 사람들의 속을 얼마나 시원하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철장갖고 질그릇 깨부수듯이 깨부수는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니, 북극 지방에 비가 오겠습니까? 거기는 냉각 작용에 의해서 비가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극에서 북극까지 지구상 전체에 비가 왔다고 하니 얼마나 바보입니까? 초등학교 학생에게 물어봐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도 안나온 사람에게 물어봐도 그렇게 안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죄지은 사람에게만 회개하라고 하지, 왜 죄도 짓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다 회개하라고 합니까? “지구상 모든 사람아, 회개하라”하지 않습니다. <계11>에도 있습니다. 죄지은 놈만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죄형법정주의라고 법을 준데만 심판이 있습니다. 법을 준 곳만 죄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을 주지 않았는데, 죄를 알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상식입니다. 신호등 준 곳에서만 신호를 범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호등 없는 곳에서는 신호등 범했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호등은 없지만, 내가 대강 짐작해볼 때 범한 것 같아”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법을 준 곳만 심판할 수 있습니다. 노아 때도 거기만 하나님을 안 믿으면 안 된다는 법을 주었습니다. 그 때가 얼마나 오래 전인지 압니까? 아담에서부터 시작해서 복음의 역사가 1600년 동안 흘러왔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어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떨어트려서 그대로 1600년 동안 폈습니다. 그러나 깨졌습니다. 그래서 노아 때부터 다시 복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 겨우 가족이 믿을 정도였습니다. 복음은 그 마을, 그 지역에 전했지만, 겨우 가족이 믿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복음을 많이 전했지만, 모든 종교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잘 안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노아 때도 엄청난 복음을 전했다고 하지만, 실제 구원받은 범위는 노아의 8식구에 불과했고, 복음의 범위는 겨우 그 근방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몰랐고, 필리핀도 몰랐고, 싱가폴도, 중국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지역에 불과한 사람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하늘은 노아에게만 복음을 주셨습니다.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그러면 죽음을 피하리라”하셨는데, 그 복음을 들은 사람은 그 지역의 사람들일뿐입니다. 이스라엘 그 아래 나라도 못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래 나라도 홍수심판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바로 붙었어도 그 아래 나라는 안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적으로 하시면 사람이 빡빡하게 있어도 그 사람만 매를 때립니다. 바로 옆의 사람과 살이 닿아 있다고 해도 그 사람만 매를 때립니다. 같은 한 필지의 땅이라고 해도 그 아래는 비가 안 오고, 노아를 통해 복음을 들은 그 지역에만 비가 온 것입니다. 그 아래의 나라도 안 온 것입니다. 안 왔으니까 그 아래 나라의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다닌 것입니다. 전체에 비가 왔다면 방주도 안 만들었기에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해야 정확한 해석이 되는데 “그것이 뭐냐? 히말라야산까지 덮었고, 하늘까지 물이 닿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기꾼도 아니고, 완전히 또라이들입니다. 나에게 여기서 설교 듣고 본교회로 싸우러 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네가 목사냐? 이 무식한 놈아. 선악과가 무엇인지 모르느냐? 네 부인이야”했답니다. 모르면 배워야 합니다. 내가 그래서 그럽니다. “저것들이 결국 안 돌아 올 수 없다. 오면 내가 여기서 무릎 꿇려 가지고 운동장 열댓 바퀴씩 돌리리라”합니다. 나도 40일, 70일씩 굶었는데 적어도 30일씩은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대나 하지 않았으면 괜찮은데 반대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세밀하게 알아야 성경을 아는 것입니다. 홍수 심판이라고 해서 우리 나라 전설 가운데 물이 백두산을 덮었다, 한라산을 덮었다는 얘기가 있습니까? 바닷물이 거기까지 올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닷물의 한계를 정해서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홍수심판 때는 한계를 넘었단 말입니까?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닷물의 한계를 정하사, 비가 아무리 와도 바닷물은 안 불어나게 하셨습니다. 바닷물이 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물론 바보들은 믿을 것입니다. 그렇게 물이 많이 내려가도 바닷물은 안 불어납니다. 그 이치를 말하면, 큰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을 때 바람이 분다고 가지는 흔들리지만, 나무 등치는 절대로 안 흔들리게 되어있습니다. 강은 하나의 가지에 불과합니다. 강의 물이 많아서 범람한다고 해서 그 가지보다 수천만 배 큰 바닷물이 불어나겠습니까? 그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보고서, 정확하게 성서를 판단하며 갈 때 하늘의 재판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칠 때에 아주 멋있게 가르칠 것이 많습니다. 지혜와 말하는 능력을 선생님같이 받아서 가서 가르칠 때 논리적으로, 이치적으로, 섬세하게 가르치면 사람들이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여러 가지 상황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것은 성경을 배우면 다 나옵니다. 그 이치가 다 나옵니다. 성경을 세밀하게 보라고 해서 나는 세밀하게 읽으면서 잘못된 것을 다 잡아 내어 버렸습니다. 어느 곳이 틀린 곳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따로 안 했을 뿐이지, 완전히 1/10억만 도 근거 없이 쓴 것이 많습니다. 기성의 목사들도 절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많습니다. 학자들도 근거 없는 것을 알기는 아는데, 하나님의 권위를 높인다고 얘기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야 합니다. 황태자 몸뚱이의 때는 사람 몸뚱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벗겨낼 것은 벗겨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것일지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다 뽑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근본을 찾아봐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것까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인데도 비유라고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죽어도 못 찾아냅니다. 사실인데 사람들 앞에는 비유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비유도 있지만, 실제인데도 비유라고 말한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러나 모든 성경을 풀어보면 ‘이것은 비유가 아닌데 비유로 했구나’라고 찾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말씀까지 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세계적인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지이니까 가지로서 영양 공급만 받으면 됩니다. 가지가 뿌리까지 다 알 것은 없습니다. 큰 등치나 뿌리에 연결되어있습니다. 가지는 믿음으로 들을 뿐입니다. 재판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재판은 성서의 옳은 진리를 깨달아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홍수 심판도 모릅니다. 신학박사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전체 심판했다고 합니다. 물이 어디서 왔느냐고 하면 하늘의 창을 열고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하늘에 무슨 문이 있어서 그 창을 열고 퍼붓습니까? 비가 올 때는 지금이나 똑같이 옵니다. 이 세상에 물을 주려고 하늘 나라의 물을 뺀 일이 전혀 없습니다. 하늘 나라의 물이 여기에 올 리가 없습니다. 하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물은 1만 m 이상에서는 안 옵니다. 비가 올 때도 1만m 이내에서 옵니다. 200m-1000m 사이에서 비가 옵니다. 그 이상은 무거워서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무슨 하늘 나라의 창을 엽니까? 여유 있게 잡아서 2만m 위에는 구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상에 있는 구름은 사라져 버립니다. 구름은 너무 태양 가까이에 올라가면 증발되어 없어져 버립니다. 인간이 구름이라면 인간도 너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적당한 위치에 서있어야 합니다. 너무 신과 같아지려고 했다가는 증발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얘기입니다. 이와 같이 구름은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비가 올 때는 땅에 있던 것이 올라가서 내려오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방송국에서 늘 설명합니다. 구름에서 비가 오는 것이지, 무슨 하늘의 창이 열립니까?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늘 나라에 있는 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어느 부흥강사는 “그 때 하늘나라의 오염된 물의 1/3을 뺐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보고 ‘야, 사기꾼아. 무식한 놈아. 내가 나중에 나타나서 복음전할 때 그런 얘기를 하겠다’했습니다. 그렇다면 홍수심판 때 고기가 많이 내려왔겠네요. 무슨 하늘 나라의 물이 내려옵니까?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거기는 거기의 것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하늘 나라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전혀 모릅니다. 그것을 듣고, 어린애들이 그대로 세뇌된 것입니다. 어린애들도 어려서부터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 놓으면 누구의 말도 안 듣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물이 올라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지구촌에 있는 물의 8배가 와야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까지 찹니다. 그런데 물이 있어야 차지요. 과학의 하나님입니다. 법칙과 이치의 하나님이요, 자연 법칙의 하나님입니다. 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역사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따지면서 우리가 말씀이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심판의 세계를 잘 알고서 깨닫고서 해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이 끝나고서 이스라엘 주변에 살던 네피림들이 팬티 바람에 고기 잡으러 다니는 것을 노아가 봤습니다. 자기만 살았는지 알았는데, 살아있으니 노아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자세히는 얘기 안하고 슬쩍 “네피림이 있었다”고 기록만 해놨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풀어야 합니다. 나를 보고 하나님께서 “월남에서 벌은 돈 갖고서 방주를 만들어라. 그래서 죽음을 면케 하라”하셨습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풀었다면 방주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주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석막교회를 지어준 것입니다. 그것이 시대의 방주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노아 할아버지처럼 계속 방주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문학을 연구해서 문학을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문학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센스 있게 표현하고, 감칠맛 나게 표현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모가 한 얘기를 작은아이가 어떻게 이해를 하겠습니까? 그 부모가 하는 일을 이해하겠습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두 살 먹은 아이가 왔기에 “나는 너와 악수 안 한다. 기억도 못할 텐데 무엇 하러 하느냐?”했습니다. 우리가 심판을 하려면 그만큼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은 사람이 심판하면 되겠습니까? 성경에 “내가 언제 너희로 법관으로 세웠느냐?”했습니다. 법관으로 세우지 않았으니 그들이 심판하는 얘기는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오히려 심판하기 위해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심판하듯이, 이 시대의 12교파를 심판하기 위해서 나선 법관들입니다. 다 법관이 되어서 심판마당에 가는 것입니다. 법관들이 가서 재벌가나, 정치가나 심판하려고 끌고 가는 것을 못 봤습니까? 누가 되었어도 부정을 저질렀으면 끌고 가는 것입니다. 심판은 그렇게 법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30개론, 40개론, 70개론을 다 듣고서도 감히 심판을 안 합니다. 우리는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전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 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