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05.03.15 (화)
화 새벽말씀
- 선포일
- 2005.03.15 (화)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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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5일 화요일 새벽말씀(1시간48분)
섭리의 나라 모두, 새벽을 깨우며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 안녕하셨습니까? 또 한 날이 시작
되었습니다. 또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며, 선생이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은 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들으면서 깨닫고, 좋으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때 그 때, 그 순간 순간 화답하면서 말
씀을 듣기 바랍니다. 어른이 이야기를 하든지, 애인이 이야기할 때는 꼭 대답을 하는 것입
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대답을 해야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
는 장로들이나 그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옳소이다.” 그럽니다.
그리고 “아멘~”그럽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꼭 응답을 해야 됩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
에게도 이야기를 하면 늘 화답을 해야 됩니다. 이러면서 말씀을 들으면 됩니다.
그리고 너무 적는 데만 심혈을 기울이면 적은 것은 남아있는데 머리에다 못 적습니다. 머리
에 적는 것을 못 합니다. 머리에 녹화를 하면서, 적으면서, 또 쳐다보면서 이렇게 하며 들어
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오래 글을 썼으니까 반쯤은 노트를 보며, 반쯤은 화면을 보며, 그리
고 귀를 기울이며, 머리에 녹화를 하며 그렇게 듣는 것입니다. 머리에 녹화한 것이 오래 갑
니다.
오늘은 화요일입니다. 오늘은 2005년 3월 1일, 화요일입니다. 벌써 3월 달이 되었네요. 마
태복음 5장에서 주일 말씀을 해주었고, 월요일 새벽에도 말씀했지만 다 못 했습니다. 연속
해서 말씀이 갑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 있는 말씀을 깊이 다루면서 우리 섭리와 실제
세계를 말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들으면서 가겠습니다.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했습니다.
“기독교는 핍박의 종교다.”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천주교가 있고, 루터 종교 개혁 이후 400
년 동안인 개신 기독교가 있습니다. 장로교가 있고, 예수교가 있고, 그리고 천주교가 있습니
다. 내내 똑같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똑같이 믿습니다. 그러나 천
주교와 개신교는 그 제도와 예배 형식이 다르고, 그리고 교회 짓는 것도 모양이 조금 다릅
니다. 그런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똑같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삽니다. 주장하는 것 때문에
“아, 이것은 다르다.”하지만 실상 하나님이 보시고 예수님이 볼 때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
습니다. 제도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개혁을 시켰습니다. 시대를 따라 “이것은 이렇게 하
라.”하신 것인데, 제도 면을 이해를 못하니까 교리 면까지 이해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 이해를 빨리 해야 됩니다. 한 마디 가지고 이해가 될 것이고, 들으면서 이해가 될 것인
데 직접 주인공들을 부딪치면서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것을 이해할 때 까지는 400년이
넘도록 서로 이해를 못하고 싸웠습니다. 400년 역사면 고역 기간이 끝나잖아요. 고역기간이
끝나니까 할 수 없이 이제 “서로 싸워봤자 뭐하냐? 서로 한 집안 꼴인데. 구원도 같다. 한
예수님 믿고 한 하나님 믿는데.”했습니다. 싸울 것 다 싸워놓고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되는데요. 처음부터 안 하는 것인데요. 기간이 끝나고 나니까 그 때서야 “하지 말
자.”한 것입니다. 사람이 실컷 싸울 것 싸워놓고 그랬으니 얼마나 웃깁니까? 스스로 무덤들
을 서로 팠습니다.
핍박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상대로부터 오는 핍박, 이해 못해서 상대 편에
서 오는 핍박이 있습니다. “나와 교리가 다르다. 우리들의 주장과 다르다. 형식이 다르다.
그래서 이것은 정통이 아니다. 비 원리다. 비 진리다. 비 역사다.”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싸
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체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지체잖아요. 우측 손과 좌측 손이
서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자체 분열의 싸움이 있습니다 자체에서 마음이 안 맞으
니까 싸움이 있습니다. 결혼했을 때 외부 사람들이 “너는 그가 짝이 아니고, 이치가 안 맞
아. 너희 둘이 이렇게 하면 안돼. 그리고 너희들은 연애 결혼했으니까 정식적인 결혼 못했
어.” 이런 식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트러블, 싸움, 다툼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이 살면서 한
지체끼리 서로 싸움하는 것, “서로 뜻이 안 맞다. 뜻이 아니다. 사는 것이 뜻이 아닌가보
다.” 이렇게 하는 것 등 두 가지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핍박도 두 가지로 옵니다.
의의 길을 가는데, 의의 길은 메시아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뜻을 펴며 가
는 세계입니다. 그것이 의의 길입니다. 의롭게 살려고 하는 것,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것, 선
하게 살려고 하는 것 이것이 다 의를 위해 사는 삶입니다. 근본 정통적으로 한마디로 이야
기한다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한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때 예수님이 의인 아닙
니까? 의인을 따라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모든 핍박, 자체에서 일어나는 어려움, 믿으면서
일어나는 믿음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슬럼프에 빠지고, 믿음이 약해지는 이런
어려움이 있고 그리고 가정의 핍박, 친구들의 핍박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세계가 있
고 자체적인 것이 있습니다. 자체로 어려운 것, 믿음이 파손되어 어려운 일들, 믿음이 식어
지고 서로 자체 안의 사람끼리 이해 못하고 싸움하고 다투고 시험 들고 힘들고 부딪치는 이
런 자체적인 핍박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의를 위해서 사는데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상대편
으로부터 오는 것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 교리를 모르고 진리를 안 배운 사람들이 악
평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간 사람을 통해서 악평 소리를 듣고서 핍박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극적인 핍박들은 같이 가다가 불신하는 사람들이 나가서 핍박을 하는 것이 굉장히
큽니다. 예수님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들 말을 듣고 모르고 핍박하는 것이 더 무섭습
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인식만 뒤집어져서 핍박하는 것입니다. 이런 핍박들이 있습니다.
의를 위해서, 메시아를 따라가면서, 선지자를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가는데
그것이 바로 의를 위한 길이고 그 길이 바로 의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의로운 일을
하면서, 착한 일을 하면서 당하는 그런 핍박들입니다.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 남을 구제한
다, 남을 도와준다, 그리고 불쌍히 여긴다면 여기에는 큰 핍박이 없지 않습니까? 누가 남을
구제하는데 막 소리 지르면서 도와주지 말라고 하는 사람 없잖아요. 일반적인 것은 그렇습
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는 것, 괴로움을 받는 단계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새로운 역
사를 시작했을 때 구시대 사람들이 가장 핍박을 많이 했습니다. 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인이 아니면 핍박을 안 하지요. 우리 기독교의 핍박을
보면 기독교에서 핍박이 일어났지, 불교에서 핍박이 일어난 것이 없습니다. 같은 기독교에
서 핍박을 하니까 가장 무섭지 않습니까? 자기 집에서 사는데 집안 식구들이 여러분들 교회
못 가게 하지, 다른 사람이 교회 못 가게 하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자기 식구들, 같은 틀
에서 핍박을 하면 무섭다는 것입니다.
잘 알아야 됩니다.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여러분이 상식으로 알지만, 이 시
간 하늘의 말씀에 더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그런 핍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종교의 핍박, 정치인들은 정치적인 싸움이 있
습니다. 내란, 외란이 막 일어납니다. 과학자는 과학자끼리, 보다 구시대의 과학과 신시대의
과학과 서로 다툽니다. 종교인들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를 가는 사람들이 가장 핍박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구시대에 있었어
도 새시대만 오면 구시대 사람들이 핍박합니다. 여러분들도 같은 교회 다녔던 사람이 있습
니다. 일반 교회를 같이 다녔는데, 거기서 이리로 오니까 말할 수 없는 핍박을 하고, 귀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막 하지 않습니까? 너무 욕설을 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하고,
정말로 화가 나고 분이 날 정도로 하는 것을 보았지요?
신약 시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큰 거성인 사도 바울도 율법주의에 있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4천년 동안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 율법에 있으면서 말씀을 듣고 율법에 굳혔습
니다. 그러니까 그 때는 핍박 안 받았잖아요. 누구도 핍박 안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새로운 시대에 오니까, 예수님을 따르고 새로운 시대로 오니까 그 때부터 핍박했습니다.
“저 놈은 저리로 건너갔다. 나쁜 놈이 되었다. 아주 변해버렸다. 우리편이 아니다.”그러면서
핍박하였습니다. 그 진리를 알아보는 것은 둘째로 치고, 그들의 주장을 알아보는 것을 둘째
로 치고 우선 우리편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핍박하는 것입니다. 어떤 진리를 따져보고, 진리
를 보고서 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우리편이 아니다. 우리편에서 떠나갔다.”그래서
핍박하는 것입니다. 우리편 아닌 것은 싸우지 않습니까? 운동장에 같은 선생님 제자들이 있
습니다. 운동장에 22명의 남자 제자들이 같이 놀았습니다. “야, 우리 운동하자. A팀 B팀으
로 우리 편을 갈라서 운동하자.”하고서 편을 갈라놓으니까 우리편이 아니니까 계속 공격하
는 것입니다. A팀은 B팀 공격, B팀은 A팀 공격을 서로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내 똑같은
한 형제들인데 갈라놓으니까 서로 싸움하는 것입니다. 운동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고
운동 안 하면 심심하고 재미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운동하는 것은 늘 과격하게 하
지 말라. 재미로 하는 것이니까, 재미로 멋있게 하자.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서로 볼넣
기를 해야 재미있으니까. 그러니 그렇게만 하라.”합니다.
이와 같이 같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그런 입장에서 복음을 펴려고 했습니다. 천
주교는 예수님을 중심해서 1600년 동안 끌고 왔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각도로, 더 멋있는
시대를 따라가야 사회를 따라갈 수 있고, 사회 사람을 리드할 수 있고, 시대의 하나님 복음
을 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한 1600년 동안 해보니까 그 전에는 이렇게 했던 제도를 지
금도 할 필요가 없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다 컸으니까 이렇게 하자.”하고
루터를 일으켜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랬는데 “저것은 우리편이 아니다. 자기 주
장한다. 뭐한다.”했습니다. 자기 주장이라고 해도 “예수 믿지 마라. 내가 예수다. 하나님 믿
지 마라.” 그런 주장은 없었습니다. 그것만 맞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으면 그 방법론은 여러 가지이니까요. 그래서 “이제 너희들 천주교가 예수 이후 1600년
을 컸으니까 옛날에 하던 제도는 없애도 된다.”하시며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루
터가 그랬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근거했습니
다. “믿음으로 살아라. 믿음으로 살지 뭐하러 그러느냐? 믿음으로 살자.”하고 성경 갖고 믿
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죽이고, 종교 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일
어나고 굉장했습니다.
그 때는 천주교가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 때는 우리 나라에 들어오지도 않았
을 때입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 때는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었습니다. 우리
한국이나 여러 나라들이 그렇습니다. 유럽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때의 상황을 몰랐었습니다. 누가 죽었는지, 누가 고통받았는지 환난을 받았는지 몰랐습니다.
그 때 당시의 역사를 대강만 들어봐도 어마어마하고 엄청납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놀랬습니
다. 유럽에서 천주교가 한 일에 대해서 듣고 놀랐습니다. 아주 잔인하게 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아니 그렇게 이해를 못하면 쓰겠습니까? “잘못된 길을 가는데, 막아야 되지 않
겠느냐?” 이렇게 막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보기에 잘못된 길을 루터가
가니까요. “루터가 무엇을 잘못했느냐?” “아니, 신부들 결혼 안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자
기 마음대로 결혼해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제도를 해왔는데
모두 폐지를 시켜 버리고 그렇게 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무슨 종교이냐? 저것
없애자.” 이렇게 하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싸우고, 총 갖고 쏘고 그랬습니다. 그 때 있었던
일들은, 지금으로부터 4세기 전에 있었던 일들은 너무 너무 엄청났습니다. 그 때를 겪지 않
은 사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
신 것입니다. 그래서 400년 동안 역사를 펴왔는데, 엄청나게 어마하게 지구촌을 차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온유하게 계속 핍박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이기면서, 눈물겨움
을 이기면서 오지 않았습니까? 그 핍박받은 것은 하도 많아서 우리는 감히 모릅니다. 상상
할 수 없이 핍박받았습니다. 천주교도 우리 한국에 들어올 때는 어마 어마한 핍박이 있었습
니다. 정치적 핍박, 압력이 있었고, 왕들이“ 완전히 절대 다 싹 없애 버려라.”했습니다. 한국
의 서울에 천주교인들을 죽인 곳이 있습니다. 절두산이라고 한강 옆에 있습니다. 거기에 기
념탑이 있는데 거기를 보니 만 몇 명이 죽었다고 나와 있더라구요. 한국 전체 죽은 천주교
인 숫자가 만여 명 이상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가 제자들이 보고 와서 이야기를 하
더라구요. “우리 핍박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옛날에는 너무 너무 엄청났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왔습니다. 그 정치는 없어졌지만 나머지는 계속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죽어도 믿었습
니다. 그렇게 복음을 넣어서 한국의 천주교가 꽃을 피우게 되었고, 끝끝내 밀어붙였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처음 복음이 들어갔을 때는 그렇게 죽이고, 없애고, 너무 너무 엄청나
게 무섭게 했습니다. 그 핍박이라는 것은 말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으로 프랑스에서 선교사를 많이 보내지 않았습니까? 프랑스가 16명을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도 한국 사람을 의식하더라구요. “지금은 무슨 종교가 활발 하느
냐?” “나는 장로교 다니고 있다.” “천주교는 잘되느냐?” “천주교도 잘된다.” “우리 나라에
서 신부들을 16명 보냈는데 거의 다 죽이지 않았느냐? 두 명인가 남았다.” 그렇게 무섭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역사에 기록한 것이 프랑스에는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보냈
었답니다. 그렇게 되어서 복음도 받아들이고, 그 대신 국가와 교류도 하고, 그리고 문화 예
술을 받아들이고 하면 좋다고 했는데, 그 때에 안 받아들였습니다. 인천으로 들어왔는데 군
사들을 보내서 죽이고,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전쟁을 할 수
없으니까 할 수없이 그냥 철수한 것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느냐? 선교사들을 이렇게
죽일 수가 있느냐?” 군인들이 왔는데, 군인들이 나가서 다 죽이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래
서 쫓겨갔습니다. 프랑스에 가니까 그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여러분도 그것을 알지요? 천주
교 핍박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알지 않습니까? 천주교에서 온 사람들은 다 배웠지요? 그 때
그 전쟁을 무슨 전쟁이라고 하더라구요.
한국에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들어왔습니다. 각 나라가 그렇지요? 일본도 그랬습니다. 일본
도 종교가 들어왔는데 문화만 받아들이고 “우리는 종교는 싫다. 우리의 종교가 있다.”하고
서 일단은 배척했습니다. 일본도 기독교, 예수님 종교가 들어왔는데 그 때 “싫다. 우리는 문
화만 받아들이겠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종교는 안 받아들이고 “우리
는 종교가 있다. 뭐 섬기는 것이 있다.” 미신 섬기듯이 신사 신을 섬기고 여러 가지를 섬겼
잖아요. 하나님의 종교는 안 받아들이고 문화 예술만 받아들이겠다.“ 예술성과 문화 등 이
런 것들만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럽과 교류가 바로 되었습니다. 프랑스도 교
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안 받아들여서 지금까지 제대로 못 들어가지 않습니까? 제
대로 못 큰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한국은 복음
으로 천주교가 자리를 잡게 되고, 기독교도 자리를 잡게 되어서 세계적인 천주교 기독교가
딱 방방하게 컸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렇게 방방하게 커서, 지금도 한국같이 열렬한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2의 이스라엘 민족이라 할 정도로 그렇게 되었습니
다.
세계 각 나라가 이런 핍박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도 하
나님 믿으면서 의를 위해서 그 핍박받은 것을 보면, 말할 수 없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미국
이라는 나라가 핍박받다가 찾은 나라 아닙니까?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더 열심 내고, 더 하
나님을 섬기니까 “너희들 틀렸다.”했고, 막 새로운 것을 주장하니 “너희들 틀렸다.”했습니
다.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는 막 없애고, 싸우고, 죽이고 그러니까 배타고서 도망쳤잖아요.
그 족속들이 비밀로 계속 도망친 것이 미국 쪽으로 간 것입니다. 미국의 보스톤 근방으로
갔습니다. 그 근방에 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영국에서 거기까지 쫓아오지 않았습니까? 거기
로 간 줄을 알고 배타고 쫓아왔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거기서 싸웠습니다. 계속 총 갖
고 싸우고, 죽이면서 전쟁하면서 종교를 일으켰습니다. 미국 나라는 그 전에는 원주민들이
살았습니다. 미국 땅이 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핍박 때문에 쫓겨갔다가 만든 나라라는 것
입니다. 그것이 미국이었습니다. 200년 만에 오늘의 세계적으로 크고 완전히 축복 받는 나
라가 되지 않았습니까? 핍박받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으나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이 크다.”했습니다. 미국은 그 핍박으로 인해서 그
신앙을 안 버리고 “끝까지 우리가 다른 곳에 가서라도 신앙생활하자.”하면서 끝가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메리카 그 대륙을 차지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청교도들이 와서 일으
킨 기독교 역사입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해서 영국에서 거기로 들어갔습니다. 영국에서는
‘성공회’라고 하더라구요. 거기서 열심히 뛰고 새롭게 과감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신앙 죽
은 사람들은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뛰쳐나가지 않았습니까? 가정에서도
부모님들을 보고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우리 뜻대로 하겠다.”하고 막 열심을 내면 “너,
도대체 안되겠다.”하고 집에서 쫓아내 버립니다. 그러면 다른 곳에 가서 차지하고 열심히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계 각 나라가 복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
으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에게 상이 크다.”하신 것입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다.” 영
적으로는 신앙적 천국이 자기 것이 되었습니다. 그 시대마다 늘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옛날
시대라고 안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너희 자손에게 주겠다.”고 안 준 것이 아닙니다.
그 당세에도 주시면서 “앞으로 자손들에게는 더 좋게 주시겠다.” 항상 그렇게 해왔습니다.
항상 보면 후에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그 시대마다 그 때 그 때 그 당세에도 하나님께
서는 늘 주셨습니다. 주셨으니까 그렇게 먹고살고, 감격하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대
에는 계속 가면서 더 잘되리라. 너희들이 조건을 세워놔서 잘 되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도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 그렇게 핍박하고, 죽이고 했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구시대 사람들이 신시
대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고 그저 싸우고 미워하고 저주하고 악평하고 잔인하게 죽여 버리고
너무 너무 무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때도 그랬습니다. 그들에게 “너희가 의를 위
하여 핍박받으면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하늘의 상이 큼이라.”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이런 역
사를 많이 훑어봤기 때문에 자료가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는 “앞으로 역사를 안 봐
도 복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들이 좋은 것을 차지하리라. 아무튼 복있다.”고 그대
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 선포하시고 말씀하시고, 메시아 되시고, 만 왕의 왕되
시는 예수님께서도 또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포했으니까 그대로 되잖아요.
성경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깨우쳐주시기를 “성경에 모든 말씀한 것은, 나의
사랑하는 자들, 선지자나 종들에게 약속한 것이나 말한 것은 내가 책임지고 어느 시대든지
그대로 해준다. 그대로 늘 지켜 행하도록 하라.”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니까 별의 별
수천 가지 약속이 다 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절대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어려움에도 절대 행동하고 왔기에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핍박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거기서 뛰쳐나오지 않았습
니까? 그 환난을 받으며, 어려움을 받으며 나와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다 안 믿는 사
람에게 조금씩 기울어졌습니다. 살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 3년 짧은 기간에 핍박이 밤낮
주야로 1분도 쉬지 않고 계속 예수님께 스쳐 들이닥쳤습니다. 예수님 따르는 사람 전체를
왜 그렇게 핍박하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
는 사람이니 “너희들 이렇게 잘하는구나. 많이 가서 듣도록 하라. 나도 한마디 해줄까?”하
고 제사장들도 한마디 해주고, “하나님께로부터 큰 능력이 함께하는구먼. 하나님께서 축복
해주고 기도해주고 가니까 나도 기도해줄게.” 왜 이렇게 안 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모세의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살은 사람들이 왜 그랬느냐는 것입니다. 못되었
지. 양심들이 있지.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항상 그렇습니다. 구시대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게 씹어댔습니다. 강대상에서는 설교를 해야
지, “어디 이단 생겼다. 조심해라. 완전히 없애야 된다. 거기 가면 큰일난다. 다 쫓아낸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거기 이단. 너무 무섭다. 이단 너무 무섭다.” 그렇게 완전히 머리에
세뇌를 시키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것을 들으십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하
고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인간이 무지해서 몰랐을 뿐이
아니겠습니까? 무지해도, 아무리 몰라도 모르는 대로 “아, 나는 모르겠다.”하고 끝나고 말아
야 되는데, 모르면서 막 잔인하게 씹고, 막 저주를 하고, “지옥에 갈 놈들이다. 완전히 지옥
에 가서 그 소굴 속에 살 놈들이다.”했습니다. 예수님 때도 그랬습니다. “저 지옥, 적 그리
스도, 완전히 마귀요 사단이요 귀신이 들렸다.”하면서 유대인들이 잔인하게 씹어댔잖아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수님께 그렇게 막 “저, 죽일 놈이다. 완전히 때려 죽이라.”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보냈고, 지금 하나님이 그 육신을 쓰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그냥 사명대로 하면 하나님이 열두
영을 내려보내서 그냥 싹 없애버리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소돔 땅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저런 일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언했는데, 그 예언을
따라서 내가 지금 가고 있기에 예언을 패할 수 있느냐? 네가 참고 견디면서 가야지. 몰라서
모두 미치광이가 되어서 악마들 사단들 주관 받고 저렇게 한다. 그러니 싸움도 못 한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싸움하러 오지 않았으니까 싸움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또 “저
놈이 잘못되었으니까 가만히 있지. 봐라. 대들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지 않느냐?” 예수님 설
교 소리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가만히 들어보면서 꼬투리 잡고, 또 꼬투리 잡고 계속 또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꼬투리 잡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슨 꼬투리가 있습니
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왜 꼬투리를 잡습니까? 만 왕의 왕 그리스도인데. 저희들 기다
리는 메시아가 와서 지금 외치고 있는데 왜 꼬투리를 잡느냐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렇습니
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워낙 안되게 생긴 사람은 그 때 당시에도 뒤에서 계속 처리를 했습니
다. 천사들이 보다 보다 못하니까 처리를 시킨 것입니다. 그런 핍박, 그 잔인한 핍박, 무서
운 핍박이 계속 일어난 것입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받은 사람들, 피를 흘리며 핍박받고, 그
쫓겨가면서 핍박받고, 생업을 버리고 도망가야될 핍박받고, 자식새끼를 놓고 도망가야 하고,
신앙 생활하려니까, 하나님 섬기려니까, 구원받으려니까 서로 헤어지고, 서로 이별이 있게
되고, 눈물겨운 일이 일어나는 핍박들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너무 어려웠습니다. 바로 그런
핍박들이 있었습니다.
이 역사라는 것은 당세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런 터전 위에서 이 역사가 온 것을 생
각할 때 과거 역사를 생각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서 자기네 집이 집을 짓고 사는지를 알아
야 됩니다. 자기 할아버지가 머슴살이하고, 자기 아버지도 그 뼛골이 빠지며 일을 해서 겨
우 집을 장만했다는 것을 알아야 ‘이 집이 아, 중요하구나. 죽어서도 귀히 쓰이기를 원하겠
구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이렇게 뼛골 빠지게 만든 집이니 늘 귀하게
쓰고 귀하게 여겨야지. 늘 기도하고 써야지.’ 그런 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들이 이렇게 난 것은 그런 터전 위에서, 그들이 그러한 공적과 의의 기준을 세워 ‘너의 자
손들이 너의 뒤를 따라오면 잘되리라.’해서 그런 복을 받고 있어서 이만큼 좋아진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감격하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2천년 동안 터전을 닦아서 해놨기 때
문에 그 터전에서 이런 역사가 오지 그냥은 못 옵니다.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 터전 위에
서 온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까? 월명동 돌 쌓을 때, 30억년
씩, 20억년 씩 돌이 된 다음에 그 돌을 갖다가 쌓지, 그 당세에 돌이 됩니까? 월명동 들어
갔다고 해서 이 장소가 그냥 우리 장소가 됩니까? 우리 땅이었습니까? 조상들이 이미 오래
전인 150년 전, 160년 전에 쓰던 땅을 하나님이 주셔서 이렇게 땅이 되게 되었지, 그냥 됩
니까? 이 땅이 그냥 되었습니까? 우리 조상 때 160년 전부터 고생하면서 여기서 살면서 이
땅을 차지해서 이 땅을 계속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그와 똑같은 것
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여기에 살면서 돈 많이 벌었어도 안 나가고 그 산골짜기를 지켰습니
다. 본인은 몰랐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었으니까 지킨 것입니다. 아버지께 그러니까 “몰랐지.
그래도 안 간 것이 뜻이었던가 보다.”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대전으로 이사갔어 보십시오. 서
울로 이사갔어 보십시오. 아버지는 80년도에 이사갔잖아요. 80년도에 아버지가 어머니와 서
울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나는 초가집 그 조그마한 것 하나 남겨놓은 것을 계속 붙잡고 있
었습니다. 뜻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이곳 성지땅을 잡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계
속 역사해서요. 붙잡아주고, 역사해서 이곳을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 섭리의 조상들, 일찍 온 사람들이 여기 가서 파고, 리어커로 흙 실어
날랐습니다. 리어커로 수천 리어커, 수만 리어커를 끌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차로 만 트럭
이상의 흙을 파냈습니다. 포크레인으로 파내고, 삽으로 파냈습니다. 그러면서 눈물겹게 80
년도부터 한 10년, 20년 가까이 우리 전반전 뛴 사람들이 계속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겹게 해서 얻었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핍박이 있었
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못 올라가게 막고, “안 된다. 거기서 꾸정물 내려온다.”하며 계속 어
려움이 있었지만 이기면서 결국 이것을 만들어 놨으니 지금은 귀하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
다. 선생님의 조상들이 한 것도 생각하고, 또 여러분들도 생각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를
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 후에 일찍 온 사람들이 리어커 끌고 다니면서 계속 눈물겹게
일했던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80년도에 범석이가 서울에 와서 보니까 남의 운동장에서 배구만 해도 때가 되면 쫓겨나고
그러니까 ‘야, 이것 우리도 어디에 가서 무엇 하나를 만들자. 실컷 하루 종일 배구 좀 하게.
안 쫓겨나고 하루 종일 하게. 석막리, 월명동에 가서 만들자.’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
해서 하셨습니다. 그가 사명자입니다. 항상 사명자에게 그것을 맡깁니다. 사명자에게 그것을
맡겨서 일을 하게 만듭니다. “네가 이것을 해야 되겠다.”하면 이것을 맡기고, “네가 해야하
겠다.”하면 이것을 맡기고 그럽니다. 그것을 반대하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사명자를 통해
서 사명을 맡긴다.” 그런데 사명자는 자기가 혼자 다 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부터도 그
럽니다. 나에게 다 안 줍니다. 내가 다 안 하는데 왜 나에게 다 줍니까? 내가 못할 것인데
요. 그러니까 사명자, 이 주관권의 사명자를 통해서 무엇을 하면 “그렇다. 잘 봤다. 네가 해
야된다. 그렇다. 너 잘 봤다. 네가 해야된다.”고 하니까 너무 좋잖아요. 머리이니까요. 머리
가 미처 생각 못했던 것에 손이 막 가잖아요 “어? 그래 잘한다. 그 물 컵 가지고 와라. 잘
되었다 마시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손발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자 시켜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무지 속의 상극 세계도 있습니다. 역대하 35장에 나옵니다. 사명자를 통해서 시켰으니 가만
히 있으면 되는데, 요시아 왕이 제일 처음에는 그렇게 한다고 해놓고 뒤집었습니다. 약속대
로 해야지요. 무지 속의 상극 세계입니다. “너희들이 여기 지나가면서 갈그미스를 치러 간
다고 하는 것이니, 우리와 싸우는 사람을 친다고 하니 그러면 우리는 안 싸우면 되겠네.”
“아, 그렇다. 안 싸우면 된다. 우리와 싸우면 무조건 적이다.” “아, 그렇게 하겠다.” 그랬습
니다. 그랬는데 안 한다고 하고서 또 가서 싸웠잖아요. 안 한다고 해놓고 싸우니까 ‘아, 우
리를 치는구나. 우리도 우선 쳐놓고 보자. 갈그미스를 하나님께서 때리라고 해서 지금 간
다.’ 그런데 못 가니까 우선 이스라엘을 때리는 것입니다. 때리다보니까 죽었습니다. 요시아
죽고, 전쟁 일어나고, 가서 기어코 갈그미스 때리고 내려가지 않았습니까? 그 때서야 “아,
본래는 갈그리스 때리러 갔구나.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갈그미스를. 아하.” 그 때서야 울고
통곡했습니다. 무지 속의 상극 세계라고 몰라서 상극 했다는 것입니다. 무지 속의 상극 세
계는 항상 머리 속에 넣고 있으십시오. 여러분들 알지요? 모르면 배우고요.
이렇게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피눈물나게, 여러분이 못 먹고, 잠을 못 자가면서 만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핍박과 어려움을 겪고,
조상들을 통해서 역사를 했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요즘에 온 사람들은 뭐가 있습니까? 요
즘에 온 사람들을 쭉 왔다가 그냥 기도만 하고 가고, “야, 너무 좋다.”합니다. 요즘에 온 사
람이 무슨 작업을 합니까? 운동장에 청소나 조금 하지요. 그러나 다 깨끗한데 청소할 것이
있습니까? 요즘에 온 사람들은 특별히 할 일이 많이 없잖아요. 이제 일꾼들이 조금씩 뒷일
못한 것만 하지요. 여기에 와서 일한 사람들은 건축가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성전이니
까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과거에 이런 핍박과 어려움이 엄청나게 많았구나.’알아야 됩니
다. 몇 번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니고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여기가 무
너져서 다 죽을 뻔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속 왔던 것입니다. 요즘은 그냥 사
용하잖아요. 이제 온 사람들은 그냥 사용하지요? 그 감격하고 감사한 것을 모르잖아요. 모
두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함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이렇게 눈물나게 했다. 하
다가 지쳐서 모두 쓰러졌다.” 그리고 일 하다가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프고 쑤시고, 완전히
그 항우 같은 젊은 사람들이 쓰러져 버렸고, 신앙도 팔아먹게 되었고, 나중에 가서는 또 쓰
러져서 잡아당겨 오고, 낙심하고 이 정도로 하면서 계속 해서 여기를 일으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도 이렇게 수고를 해야 됩니다. 여기가 가나안 복지입니다. 우리의 현대식
가나안 복지입니다. 성전 가나안 복지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차지했잖아요. 이곳을 차지
해서 이제는 모두 쓰잖아요. 눈물겹게 만들어서 쓰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과 핍박이 있으므로 복이 있다. 앞날을 볼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지금은
핍박 안 합니다. 다 해놨는데 누가 핍박합니까? 이제는 써먹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는 누가
그렇게 핍박하는 것이 없습니다. 동네 사람이 거기 못 올라가게 하지 않잖아요. 환영하잖아
요. “거기 갑니까? 와, 거기 나도 가고싶습니다.”합니다. 다 그런 기간이 있습니다. “너희가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너희 상이 큼이니라.” 우리는 큰 상을 이
렇게 받았지 않습니까?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수고하고 애쓰면 그 수고한 나름대로 다 받습니다. 받은 것을 가지고 귀히 쓰고,
기뻐하며 쓰고, 즐거워함으로 쓰고, 감탄함으로 쓰고, 하나님을 좋아함으로 쓰고, 하나님을
그 장소에 모시고 늘 영광 돌리며 쓰고, 그리고 노래하며 써야 됩니다. 그렇게 안 쓰면 필
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어디 갔다가 저녁 때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잘
지내.”그랬습니다. 그러면서 둘에게 볼을 하나씩 사주었습니다. 10살 넘었고, 15살 넘었으
니까 그랬더니 “알았어. 그러면 올 때 맛있는 것 사와.”그랬습니다. 그런데 한 두어 시간 있
으니까 한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언제 와?” “해 넘어갈 때 온다니까.” “아이,
심심해.” 다른 아들은 전화도 안 합니다. “네 형 어디 갔느냐?” “나갔나봐. 볼 갖고 나갔는
데.” “너도 재미있게 놀고 그래.” “알았어.” 그런데 한 두 시간 있다가 전화를 또 했습니다.
“엄마, 언제 와?” “아직 멀었어. 지금 가는 중에 있어.” “이제 가? 아이, 지겨워. 언제 하루
종일 기다리지.” 나중에 도착해서 있으니까 또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밥 먹어.” “아이, 지
겨워라.” 나중에 보니까 전화가 17-8통이 온 것입니다. 지겨우니 언제 오느냐고 계속 전화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놈에게도 전화가 한번 왔습니다. “엄마, 저녁 때 오지? 저녁 때 온
다고 했지? 나, 지금 잘 놀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잘 있다가 와요.” “뭐하냐?” “지금 친구
들과 볼 차고 있어.” “볼 차고 있어?” “응, 내기하는 것이라 지금 빨리 불나게 뛰어야 돼.
그러다가 잠깐 전화했어.” “빨리 열심히 뛰어.” 그러다가 나중에 집에 와봤습니다. 오나 마
나입니다. 한 놈은 방안에 앉아서 볼 사주었는데도 엄마가 놓은 채로 그대로 있고, 하나는
엄마가 왔는데 아직도 안 왔습니다. 운동장 가서 밥 먹고 목욕한다고요. “야, 몇 시에 오느
냐? 엄마 왔다.” “엄마 왔어? 지금 우리 밥 먹어. 우리가 이겼어. 엄마가 사준 볼 갖고 했
다. 애들의 볼이 시원찮더구먼. 그래서 엄마가 사준 볼 갖고 그것을 찼어. 볼이 다 닳았어.”
하나는 재미있게 놀다 보니까 기다림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집에서 있으니까 17번
이나 전화를 한 것입니다. “엄마, 언제 와? 뭐 해 갖고 와. 뭐 사 갖고 와.”그래서 어머니가
무엇을 사왔습니다. 오다가 튀김을 사왔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고, 내가 하루 조일 기다렸는
데 튀김 기다렸나?”그랬습니다. 다른 애는 와서 “어머니, 뭐 사왔다면서요?” “응, 튀김 사왔
어.” “아이고, 내가 배가 불러서 못 먹겠어.” “형 줘?” “다 주어버려.”
여러분들, 똑같은 삶을 두고서 지루하게 인생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삶을 가지고
그렇게 삽니다.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똑같은 24시간이고, 여러분들도 24
시간인데 “어떻게 시간들을 사느냐?”입니다. 나에게 준 말씀의 볼, 사명의 볼을 재미있게
하다보면 해가 넘어가고, 재미있게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말씀 가지고 재미있게 뛰
어야 됩니다. 그래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기다린다고 엄마가 금방 옵니까? 차 타고 가
는 중이고, 지금 공중에 비행기타고 가고 있는데 오겠습니까? 여러분이 꼭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구력 있게, 재미있게 하다보면 언제 홀연히 나타나서 말씀을 전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야, 나 왔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겹
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들어 놓지도 않고 뭘 그럽니까? 엄마가 하는 말이 “야, 임
마. 볼 차라고 볼 사다 주었는데 이것이 뭐야?” “나가려다가 ‘아이고, 밥 먹고 나가지.’ 점심
먹은 다음에는 ‘에이, 뜨거워서 2시에 나가자.’ 그랬더니 ‘에이, 뭘 나가.’하고 안 나갔습니
다.” “그러니까 너, 매일 지겹다고 시간마다 전화가 왔잖아. 시간마다 한번씩, 17통이니까
한 시간에 한 통씩 보다 더 했잖아.” “그렇게 했나? 진짜 오늘 하루 종일 지겨웠다.” 그것
이 뭡니까? “나간 애는 지금 볼 차고, 밥 먹고, 돼지 갈비 먹고 야단났대. 아직도 한시간 있
다가 온단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재미있게 살아야 됩니다. 건강해지고, 좋아지고요. 여
러분들은 그렇게 살라고 비유를 들어서 지금 말씀을 하시네요. “이와 같이 그러하느니라.
온 세계의 이 나라 저 나라, 요 나라 저 나라 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각 교회마다, 각 개인
마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할 일이나 해놓고서 서로 만나야 되지 않겠느냐?” 나도 책을 다
쓰고, 짝 갖추어놓고 “야, 읽어봐.”하든지, 미리 책을 보내놓아 책을 읽어보고 “야!”하게 하
고서 더 본다는 것입니다. 만났을 때 “무엇을 했느냐?”하면 안 되잖아요. 요즘은 급해서 책
도 책이지만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말씀의 책으로 그냥 입으로 나갑니다. 입으로 바로 나가
서 말씀하지 않습니까? 핍박 이야기하면서 조금 한 마디 했습니다.
예수님 때 그렇게 핍박을 했습니다. 너무 핍박하고, 구시대 사람이 핍박하고, 참으로 잔인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때 예수님께 한 이야기를 잘 못 들어서 잘 모르지요? 성
경에 보면 미쳤다고 하고, 뺨 때린 이런 것만 남아있습니다. 그냥 핍박했다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었으니까 무섭게 핍박했다고 압니다. 안 죽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핍
박받았습니다. 한두 번 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는 못 견디어서 다른 나라로 도망갔습
니다. 로마로 가버리고, 터키 쪽으로 가버리고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배를 타고 계속 막 죽
음을 내걸고 갔습니다. 거기서는 죽어도 신앙생활 못 하겠으니까 ‘없는 곳에 가서 하자.’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핍박들 없지 않습니까? 지금은 조금 누가 욕한다, 나쁘다 악평하고,
교회 가지 말라하는 이 정도이지, 막 죽이려고 쫓아다니지는 않지 않습니까? 종교는 자유가
되었으니까요. “이단 교회 다니는구먼.” 그냥 그러고 끝나고, 또 이야기하면 “아, 그렇느
냐?”하고 끝납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없이 십자가를 져주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겠구나.”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
니까? 요한 복음에 나옵니다. 요한 복음 3장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되겠구나.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갈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보니까 전부 핍박
하고 모두 모르고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핍박 속에 사람이 헷갈리니까 처음에는
믿다가도 “예수님이 메시아인가?”그런 것입니다. 너무 핍박하고 너무 잔인하게 막으니까
“예수님이 메시아인가? 선지자인가?”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라고 대했잖아요. “예수님 선
지자 아닙니까? 예수님, 혹시 선지자 아닙니까? 엘리야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저들은 아니
라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크게 봅니다. 선지자가 아닙니까?”하다가, “유대인들이 기다리
는 하나님이 오시는데, 하나님이 있는데.”하니까 또 헷가닥 헷가닥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 제자들 보면서 “인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갈 자가 없구나.” 이야기했습니다. 너무 불신했
습니다. 그 불신하는 사람들은 사단의 주관을 받고, 흑암의 주관 받고, 자기가 사단같이 하
고 반대하고 핍박하니까 하나님이 놔두겠습니까? 법이 있는데요. 하나님의 엄격한 법을 넘
어가고, 법을 범하고 막 하나님 하시는 일을 막았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는 일을 막으니까 하나님이 너무 화가 나시고, 분노
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십자가로 인해서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길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져주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멸망 받을 것을
멸망 받지 않게 겨우 해놨습니다. 멸망 받을 것인데 멸망 안 받게 되었습니다. 심판 안 받
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지기 전까지는 다 모두에
게 복음을 전했는데, 십자가 지고 부터는 내적인 역사만 나갔습니다. 2세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 2세들만, 신진 2세들의 자체 안에서만 복음을 폈다는 것입니다. 외부 사람이 오
면 안되니까요. 핍박하는 사람이 오면 큰일나니까요. 그래서 자체 안에서만 속삭속삭 속 이
야기하고서, 물고기 그리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구나.’하고서 비밀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죽 이야기하다가 물고기를 슬쩍 그리면 ‘아, 믿는 사람이구나.’하고서 “형제여. 나도 믿어.”
이렇게 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모사 쓰는 것은 아닌가 딱 보고서 그렇게 해오지 않
았습니까? 물고기 그려져 있으면 ‘아,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하고 표시를 했습니다. 암호 표
시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선악을 구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체 역사를 펴오면서 신약 역사를 펴온 것입니다. 그 때부터 딱 선악이 구분되었습
니다. 구약 역사, 신약 역사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까? 부모 되는 1세들은, 구약의 부모 같
은 1세들은 못 들어가고, 2세들만 가나안 복지형의 신약 역사를 시작해서 아들역사를 했다
는 것입니다.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져주면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살려준 대
신, 그들을 위해 죽어준 대신 쪼개지는 역사입니다. 선악을 구분합니다. 양과 염소를 쪼개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역사를 그렇게 해왔잖아요. 그것을 해석해주는 것이고, 가르쳐주는 것
입니다.
“이 역사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되겠다.” 모세 때도 그렇지 않
았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모두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고역을 벗어나려고 해서 하나님께서 벗어나게 하셨고, 홍해바다 건너오게 만들고, 바다를
쫙 찢게 만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외에는 있을 수 없지요. 그렇게 크나큰 기적을
일으키고, 표적을 일으켰으면 그만큼 대가를 해야 됩니다. 그 엄청난 일을 해주었으면 그런
큰 대가를 해주어야 됩니다. “감격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하며 일을 해주어야됩니
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투자를 했습니다. 정말 투자를 했습니다. 정말로 회사 하나를 팔아
서 다 들어갈 정도로 그에게 투자를 하고서 사랑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시집와서 자기 애인
이 되었을 때 그만큼 해주지 않으면 ‘이것 틀렸어.’ 그런다니까요. 그만큼 해야되지 않겠습
니까? 그런데 “아, 나 다른 사람에게 결혼할 뻔했는데 이리로 결혼하게 되었어. 나, 다른 사
람 알았었는데 이리로 결혼하게 되었어.” 이런 이야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도 그럽니다. “사실상 나는 누구와 알고 있었다.” “와, 대단하다.” 이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과거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홍해 바다를 갈랐다. 이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 하나님이 그런 기적 일으킨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거를 생각
해봐라.”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와서 신광야에 있을 때에 아말렉과 싸우니까 조금 어렵다고 전부 포기하고, “아, 힘들다.”했
습니다. 가나안 복지가 어떤 곳인가 지도자들이 갔다 왔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보냈습니다.
열두 족속에서 족장들 하나씩 뽑아서 가나안 복지에 갔다오니까 갔다와서 어떻게 했는지 압
니까? 하도 백성들의 아우성이 있어서 갔다오라고 했는데, 갔다 오더니 “좋다. 가나안 복지
다. 좋다.”했습니다. 그런데 좋다고 해놓고서도 악평했잖아요. 좋다고 한 사람이 누군지 압
니까? 여호수아 갈렙만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 열 사람들은 “거기, 갈
수가 없는 곳이다. 부수는 세계다. 거기 갈 수 없다. 우리 가면 먹힌다.” 그런 식으로 해서
가나안 복지를 안가지 않았습니까? 가나안 복지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못 가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이놈들이 마지막까지 그렇게 발
악을 하는구나.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들을 생각해야지. 저희들이 싸움할 때 다 이기게 만
들고, 모세를 통해서 이기게 만들고 그랬는데.” 모세를 하나님이 보냈다고 모세의 손만 올
라가면 이기고, 손 내려가면 지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소문나서 백성들도 다 압니다. 모세
때문에 이기는 것을 다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었구나.’ 그러면서 살아야 하는데, 모세
를 원망했습니다. 보이는 것이 사람이라고 자꾸 모세를 원망하고, 보이는 사람을 자꾸 원망
하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악평하고 하나님께 “우리는 이 길 밖에 없습니까?”하고 “우리가
송아지 섬기겠다.”하며 송아지 섬기고,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섬기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다 때려부수고 그 갈은 물을 마시라고 했습니다. “다 집어 버려 버려라. 애굽에서 종살이했
다고 금반지, 은반지 다 갖고 오게 만들었는데, 그것 만들라고 했느냐? 나를 최고 욕되게
하려고 그것을 만들었느냐? 이 놈들아.” 그렇게 다른 사람을 섬기고 쫓아다녔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신했다고 뱀을 보내서, 불 뱀이 와서 물었습니다. 이스
라엘 민족을 진짜 물었습니다. 여기 물고 저기 물고 그러니까 죽었습니다. 불 뱀에 물려서
죽었습니다. 코브라 같은 것이 나타나서 막 물은 것입니다. 광야의 불 뱀들이 나타나서 물
은 것입니다. 놔두면 다 죽게 생겼습니다. 1천명 죽고, 2천명 죽고, 1만 명씩 막 죽으니까
요. 나중에 가서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너희들 다 죽겠다. 너를 불신해서 죽는다. 너
불신은 나 불신이다. 구리 철사로 뱀을 만들어서 들어라. 그러면 그것을 쳐다보면 너를 믿
는 것으로 인정하겠다.”하셨습니다. 모세가 “이것을 쳐다보면 살리라.”하니까 불신했던 사람
은 불신했기 때문에 배짱 부리고 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살려니까 나중에는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라도, 그런 조건이라도 세워라.” 세운 사람들은 안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안 쳐다본 사람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끝끝내 “나는 싫다.”했습니다. 거
기서 모세가 심정의 십자가를 져준 것입니다. 모세는 육신의 십자가는 안 지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직접 죽었지만 모세는 죽지는 않았잖아요. 그런 것을 참고 견디면서 끝까지 해주
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믿고 따른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사단을 상징한 뱀을 보여주
었습니다. 사단을 상징한 뱀이 와서 물었다는 것은 사단에게 물렸다는 것입니다. 마귀, 사
단, 귀신들에게, 불신한 영들로 인해서 물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끝나고 부터는 패가 갈라졌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1세들은 못 간다.
그리고 믿고 따르고 순종한 2세들은, 20대가 못된 이런 사람들만 데리고 가자.” 그렇게 나
이로 딱 쪼개버리니까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만 내가 허락하겠다. 불신 안 한 사람
만 간다.” 그러면 불신 안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른들은 다 불신했거든요. 1세들은 다 불
신하고, 2세들은 안 했습니다. 2세들은 “가나안 복지에 가야지, 왜 가다가 맙니까? 우리는
가겠습니다. 가자. 가자.”그런 판국이었습니다. 2세들은 호기심이 있잖아요. “좋다. 가자.”고
하는 호기심 있는 사람들만 여호수아를 중심해서 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복지에
가지 않았습니까? 바로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복지에 가니까 싸울 것이 있으니까 “싸우자.
좋다. 싸우자.”했고, 싸워서 31개 족속을 다 때려부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함
께 하니까 게임이 안되었습니다. 2세들이 무섭습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2
세, 2세. 2세들 무섭다.”하잖아요. 왜냐하면 모르고 반대하는 사람이 무섭고, 모르고 믿는
사람이 무섭다니까요. 무조건 믿잖아요. “모르고 반대하는 사람 무섭고, 모르고 믿는 사람
무섭다. 2세들 무섭다. 그런 사람들로 자꾸 지도자로 세우고, 같이 일도 하도록 하라.” 모르
고 하는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나도 모르고 했잖아요. 모르고 무조건 산에 가서 기도하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20년 동안
한 것입니다. 몰랐습니다. 나중에 보니 너무 무서운 일을 한 것입니다. 산 속에 들어가서,
대둔산에 가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대둔산 바위가 얼어서 없어지나, 내가 없어지나 보자.”
하고서 했잖아요. “대둔산 정기를 받겠다. 기를 받겠다.”했습니다. 대둔산의 기가 무엇인가
하니, “대둔산 같이 그렇게 나도 장엄하리라.”는 것입니다.
결국적으로 1세들은 못 가고, 광야에서 그냥 살았습니다. 모세가 뱀을 들은 것을 쳐다봤기
때문에 그래도 뱀은 안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40년 동
안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 고통받고, 거기에 가서 또 40년 동안 살게 되었습니
다. 그리고 신시대 때는 그냥 여호수아를 중심해서 가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갈린 것입니
다. 전반기 역사는 전체로 포괄적인 역사이고, “일단 불신한 사람들 때문에 십자가를 지니
까 이제, 할 수 없이 전반기 역사는 딱 살다가 죽는데서 끝난다.” 그리고 후대, 그 2세들은
불신 안 했기 때문에 들어갔습니다. 불신한 것과 안 한 것은 그렇게 갈립니다. “불신 안한
사람들은 그대로 가나안 복지에 가는 것이다.” 그렇게 2세들 역사가 시작되어서 가서 싸워
서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그 호기심 갖고 막 싸우고 “야, 너, 몇 놈 죽였어? 몇 놈 쳐죽였
어?”하고 호기심 갖고 막 밀고 나가고, 밀고 나가고 그랬습니다.
역사가 그렇게 갈렸습니다. 그래서 후반기 역사는 자체 역사로 2세들만 딱 하나 되어서 그
냥 가서 따로 살았잖아요. 그렇게 후반기 역사는 자체 역사로 갑니다. 전반기 역사는 쫙 번
져서 “모두 전체를 하자.”했지만, 후반기는 다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럽니다. 누구는 예수님 안 믿습니까? 나도
믿고 있잖아요. 하나님도 믿고요. 안 믿어 봤으면 모르겠습니다. 다 믿었는데요. 그렇게 하
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잘못된 사람이라도 예수님께서는 “원수라도 사랑해 주라.”하셨습
니다. 그런데 더구나 원수가 아니었잖아요. 잘못한 것이 없는데요. 원수라도 사랑하는데 지
들이 모르는 것은 모르고, 불신하고 배신하고 “적 그리스도, 이단의 교주 나타났다. 또 종교
교주 나타났다. 촌놈이 지랄하고 자빠졌네.” 막 그랬습니다. 씹고 또 씹고, 입이 아플 정도
로 씹고, 아주 잔인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내가 월남에 있을 때 적들에
게도 그렇게 안 들어봤습니다. 완전히 잔인한 적들에게도 안 들어봤습니다. 적들도 그렇게
무서운 욕들은 안 했습니다. 그런 잔인한 욕들을 하면서 “저주를 받을 자들, 지옥 갈 놈들,
완전히 지옥 바닥, 지옥 사자들.”이렇게 하면서 우리를 욕하고, 악평하고 계속 찍어낸 것입
니다. “이단 나타났다.”하며 내 얼굴 찍어서 벽보를 딱 붙이고 전부 다 그랬습니다. 대한민
국에는 벽보를 다 붙였습니다. 세계 각 나라는 들어보십시오. 종교는 헌금한 돈 갖고 계속
찍어냈던 것입니다. 헌금한 것 갖고 찍어내고, 그리고 나아가서 “종교인들은 모두 가서 협
조하라. 저 이단 종교를 방해하라. 이단 종교 막게끔.” 그래서 돈 갖고서 전부 잡지책 찍어
내고 한 것입니다. 잡지책에 있다고 내가 못할 것 같습니까? 다 하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요. 하나님이 하시는데요. 할렐루야! 예수님이 하시는데요. 예수님이 딱 하나 되어서
같이 다니는데요.
우리 아버지가 저기 서울에 있었습니다. 서울에 사실 때 큰 형님이 있어서 신장 근방에 사
셨습니다. 거기서 보니까 나이 먹어 한 70세 된 사람들이 늘 산에 올라가고, 마을 뒷동산에
있는 공원에 올라갔답니다. 지금 신장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뒷동산에 가서 하루 종일
놀다가 내려오는데, 골목으로 가다보니까 내 사진이 딱 붙어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
라도 아버지는 나인 줄 알잖아요. 골목길을 가다보니까 그 골목 벽에 내 사진이 크게 붙어
있더랍니다. “이단.”이라구요. 그렇지 않아도 늘 이단 소리 듣고 그랬는데요. “책에 나온다.
잡지책에 나온다. 방송도 나왔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골목길을 가다보니까, 노인들 대여섯
명이 가다보니까 벽에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노인들이 “이 사람도 이단이래. 대통령 출마
하러 나온 사람도 아니고, 여기 보니 이단이라는구먼.” 그래서 아버지가 쳐다보면서 “이
단?”그랬답니다. 아버지는 교회 다니니까요. “자네는 교회 다니니 잘 알 것 아니야? 우리는
교회 안 다니니까 잘 모르는데. 아, 별 놈들 다 있네. 젊은 놈인데.” 그래서 아버지가 보니
까 내 얼굴을 크게 해서 딱 붙여놨거든요. 아버지가 보고는 너무 너무 화가 나니까 속이 훽
뒤집어진 것입니다. “나쁜 놈들, 세상에.”하셨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나를 못 믿고, 못 미더
워하고 걱정하고 그랬는데, 아버지도 그 때 걱정했는데, 자식이니까 너무 속이 상한 것입니
다. 이단이고 무엇이고 자식이니까요. 그 때 당시 마음이 순간 훽 뒤집어지더랍니다. 뒤집어
졌는데 하나님이 역사 하신 것입니다. 그 때 아버지에게 무슨 영감이 왔는지 압니까? 하나
님이나 예수님께서 해준 것입니다. “큰 사람이 되면 저러하느니라.”는 마음이 딱 오더랍니
다. “큰 사람들은 다 역사에 그렇게 했노라. 큰 사람들이나 그러지, 작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아, 그러면 우리 아들도 큰 사람 되는 것 아니겠는가.’그러고 그 때 기쁨이
충만해서 자랑을 하려고 했답니다. 하도 기뻐서 옆의 노인들에게 “저것이 우리 아들인데,
큰 사람은 저렇게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느냐? 옛날에 큰 사람은 다, 왕들도 어려움을 당했
고, 큰 지도자들도 그렇다.”
그러면서 예수님 생각났답니다. 예수님이 핍박받은 것을 아버지는 아니까요. 그것을 마음에
두고서 항상 ‘얼마나 크나 보자.’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하면 아버지는 “잘하도
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도 나를 오해하고 걱정할까봐서 “나 괜찮습니다. 열심히 하
고 있습니다. 이단시하고 사람들이 책에도 내고 그럽니다. 어머니도 알지만, 어머니 어려운
일이 있어서 내가 대전에 인사하러 갔었습니다. 교회 여자 목사님하고 같이 갔습니다. 그랬
더니 그 때 어머니와 기념 사진 찍은 것을 책자에 내더니만, 그것을 이용해서 ‘둘이 썸씽이
있어서 놀러 다닌다. 이 사람이 부인이다.’ 여자 목사를 그렇게 했습니다.” 내가 우리 어머
니께 보여드리니 “죽일 놈들. 잡놈들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 아들이 내 집에서 같이 있다가
자고 갔는데.” 그랬습니다. 그 사진을 이용해서 그렇게 막 했습니다. 그것이 전단지에 나오
고 막 나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따지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요?”
하니까 나중에 가서는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나나 당신이나 행한 대로 받는 것인데. 앞
으로는 그러지 말라. 나 그런 일 없었다.” “다른 사람이 제보했다.” “그런 말 듣지 말라.”
그렇게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고 핍박이 많았습니다. 지방에 순회 다니면 조그만 교회는 교인들이 몇 명
안되었습니다. 한국에 열 개 교회밖에 없었는데, 순회 다니다 휴게소에서 내려보면 잡지책
에 나왔습니다. <이단의 교주가 나타났다.> 그리고 내 이름을 크게 써서 내보내주고 그랬습
니다. 그렇게 야단들을 쳤습니다. 종교인들이고, 전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것을 보고 “더 이상 안되겠다.”하셨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끝까지 갔잖아요. 그렇게 참고
약 20년 동안을 한 것입니다. 따라오는 사람에게도 “야, 속상해 하지 말고 하라. 네가 어떤
남자에게 시집왔으면 누가 욕하든지 그것 상관할 것 없다. 그렇지 않으니까. 와보니까 아니
거든. 내 말을 들어본 사람은 아니니까. 감격하면서 가자.”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아니까 철
통같이 따라오지요. 이것은 일반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어느 부흥강사가 오해받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큰 형님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
다. 성결 교단에 아주 유명한 강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민장로님이라고 있었습니다. 내가 압
니다. 서울 가서 광주에 있었기 때문에 민장로님을 압니다. 내가 늘 인사도 하고 알고 같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광주에 있던 사람이 아니고 서울의 부흥강사인데, 장로님인
데 부흥 강사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전에 장로 시절 때에 아주 열심히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운동을 해서 아주 운동하던 기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데 이
사람이 열심히 하다보니까 이 교회에서 저 교회에서 데리고 가기에 한번씩 부흥집회를 해준
것입니다. 장로님인데도 유명하다고 부흥집회도 하고 열심히 하고 돌아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중직자들이 교회에서 회의를 하고 나오는데, 비가 왔답니다. 큰형도 20
미터 뒤에 바로 뒤따라 왔답니다. 그 사람과 같이 우산 쓰고 가려고 하다가 그 사람의 등치
가 크기에 같이 쓰면 힘드니까 교회에서 나도 우산 하나 달라고 해서 뒤에서 우산 받고 오
는데, 앞에서 “꽝!” 한 것입니다. 그 양반이 벼락을 맞았습니다. 천둥 번개 치다가 그런 것
입니다. 벼락 맞고서 탁 쓰러졌는데 고기 비늘처럼 살이 다 일어났습니다. 몸뚱이 전체가
비늘처럼 쭉 일어났더랍니다. 살갗이 찢어져서 떡 채처럼, 고기 비늘처럼 일어난 것입니다.
병원으로 옮겼는데 식물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직이 안 됩니다.
그 때 당시 그 교단에 소문이 돌았습니다. “부흥집회 다닐 때 무슨 잘못한 것이 있다. 그냥
벼락 맞을 리가 만무하다. 이성문제가 있다. 여자들, 부인들을 건드렸다. 그래서 벼락 맞았
다.” 그런 소문이 막 퍼졌는데, 이 양반은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그 소문을 몰랐답니다. 그
주위에 같이 따라다녔던 사람들도 “그런가?”의심하고, “그렇지 않은데.”하기도 했답니다. 벼
락을 맞았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 사람은 식물인간으로 말을 못하니까요. 몇 달 동안 식
물인간이 되었으니까요. 나중에 6-7개월 되면서부터 말을 조금씩 조금씩 하기 시작하더랍
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벼락을 맞아도 싸다고 하더랍니다. 속 이야기는 안 하고, 그냥 “벼락
맞아도 싸다. 안 죽기가 다행이다. 내가 살아난 것은 내가 옳은 것을 이야기하라고 아마 살
려준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또 해야되겠다.”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아, 무슨 큰 죄를 지었구
나.’했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소문이 또 돌은 것입니다. ‘그렇게 날고 기게 집회하고 돌아
다니더니, 부흥강사도 아닌데 그렇게 하더니만 일 저질렀구먼.’ 전부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우리 큰 형님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압니까? 그 분이 일어나서 간증을 한 것입니다. 그 간증거리 하나
를 갖고서 계속 20년 동안 부흥집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인데도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었습니다. 가서 부흥 집회하면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하나님 일 안 하면 벼락
맞는다. 하나님의 일 안 하면 벼락 맞는다.” 그 이야기만 하고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
게 은혜 받고 병도 고치고 그랬는데 자기가 일을 안 하겠다고 했답니다. “이것만큼은 안 하
겠습니다. 부흥강사는 안 하겠습니다. 싫습니다. 나는 장로직만 하면서 충성하면서 가끔 은
혜롭게 교인들에게 가서 설교해주는 이것만하겠다. 이제 부흥강사 안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눈에 뜨인 것입니다. 너무 잘하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 완전히 굳히고 “안 한다.
나, 그것은 안 한다.”고 그랬답니다. 몇 번이나 하라는 깨달음이 왔답니다. 집회 다니라고
왔답니다. 그러나 자기는 사업할 것도 있고, 장로로서 돈 벌어서 교회에 계속 헌금해주고,
장로로서의 그 직이 제일 만족하다고 한 것입니다. 계속 몇 번을 그래 버린 것입니다. 그
중직자 모임 때도 자기는 싫다고, 부흥 집회 안 다닌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모임 때도 부
흥집회 하자고 많이 들어왔었답니다. 이 교회서 저 교회서 와달라고 했는데 안 간다고 잘라
버리고 그런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하나님 일 안 하면 벼락 맞는다.” 그 이야기만
하면 다 은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안 해서 하나님께 형벌 받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 하나를 통해서 다 은혜를 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 양반이 무슨 문제 있다. 이
성 문제 있다.”한 것은 전혀 일순간에 다 없어진 것입니다. 그 말한 사람들도 와서 은혜 받
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한 20년 동안 부흥집회
를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20년 동안 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등치가 좋았었습니다. 역기
인가 레스링 선수였습니다. 내가 잘 압니다. 큰형 동생이라고 인사하면 “멋있어. 영적이라면
서? 형이 그러는데 기도생활 많이 한다고 그러데. 아, 그래야 돼.” 그러던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모를 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래서 역사가 뒤집어졌잖아요. 뒤집
어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일 안 하면 벼락 맞는답니다.
그런 말은 우리에게도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일 안 하면 벼락 맞는다.” 일 안 하면 벼락
만 맞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명 받고 일 안 하면 안 됩
니다. 사명을 내가 주었는데 안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무슨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 안
되었지요. 해야지요. 내가 줄 때도 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깨우쳐주고, 감동 주고 하시
니 부지런히 일하기를 바랍니다.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일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가 오면 안 받아들이면 쪼개서 신시대는 신시대대로 갑니다. 우리들도
이제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구 시대 사람들은 구시대로 가서 이제는 핍박을 안 하잖아요.
이제는 그렇게 안 나지요? 구시대 사람들끼리 그냥 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사는 것입니다.
신광야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현재 기독교를 신광야 세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시
대의 가나안 복지 역사를 우리끼리 서로 하나 되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터치하지 않
잖아요. 이제 우리끼리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가 가고 있지 않습니까?
공산주의가 60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여러분은 공산주의 시작을 알지요? 60년 만에 무너졌
습니다. 역사적으로 잘 보십시오. 공산주의가 60년이 되니까 서서히 무너져서 무너져 버렸
지 않습니까? 지금은 무너진 것입니다. 여기서 깔짝, 저기서 깔짝 조금씩 있지만 무너졌습
니다. 소련도 중국도 다 지금은 보다 평화의 세계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 안 했으면
지금 엄청났을 것입니다. 지금 어떻게 돌아다닙니까? 못 돌아다니지요. 소련을 어떻게 갈
수 있고, 중국에 모든 관광객들이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못 가지요. 조금 북한 같은 나
라만 그렇게 남아 있습니다. “세계를 평화로 하라.” 모두 그럽니다. 지금은 세계가 거의 다
평화주의로 민주주의 세계로 갑니다. 그러니까 싸움이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너져서 그
렇습니다. 사단수인 6에 해당되는 60년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666
수가 있습니다. 월화수목금토의 6수, 보다 사망권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또 구약의 4천년,
신약 2천년해서 6천년만에 그런 역사로 사망권의 사단의 역사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하나
님께서 천년 역사를 시작하는데 그것을 놔두겠습니까? 무너트려야 평화의 역사가 오지요. 6
수는 사단 수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 전 3년 반, 후 3년 반해서 6년만에 흑암의 세계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
미 다 무너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 무너지고 없어지지요. 그것이 살아날 수 있습니까?
여기서 깔짝, 저기서 깔짝 조금씩은 있지요. 그러나 큰불은 다 꺼버립니다. 그래서 7천년 안
식 역사에 천년 역사를 계속 가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부활 역사를 갑니다. 육도 살렸고,
영도 살린 역사를 지금 가고 있지 않습니까? 영을 살리는 말씀이 왔기 때문에 벌써 부활되
었다는 것입니다. 영을 살리는 말씀이 왔으니 부활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 지금 부
활되었습니까, 죽었습니까? 심령이 살아났잖아요. 이런 말씀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야,
이것 안되겠다. 새로운 역사하자.”이래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하고, 하나님
이 역사해 주셔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셔서 감동주어야 하고, 예수님이 와서 말씀해야
되고, 하나님이 말씀해야지요.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나는 하나의 마이크인데요.
하나의 신부인데요. 대상인데요. 신랑이 주인이잖아요. 여자는 구조가 여자 입장 밖에 없잖
아요. 주인이 나타나야 됩니다. 신랑이 나타나야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서 “역사가 이렇게 돌아갔다.”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서 말씀을 하게 만드십니다.
우리 자체 역사이니까 모두 밝은 미소 같은 것도 이제는 우리 자체로 하잖아요. “우리끼리
웃으면서 살자. 전체가 같이 웃자고 했더니만 저희들만 웃고 그냥 끝나지 않느냐? 웃고서
우리에게 오라고 했더니 안 오지 않느냐?” GACP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세계로 흩어서 쭉
해보니까 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리 자체로 계속 밀고 나가라. 우리 2세들
을 갖고 밀고 나가면서 열심히 나가자. 이제 역사가 섰으니까 그러면서 실속 있는 역사를
끌고 나가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외부 사람들이 우리보고 교회 하나 만들려고 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석막리
사람들이 나를 보고 “저 달밝골의 정집사도 교회 하나 지금 만들고 있다면서? 아이고, 신학
교도 안 했잖아.”모두 그랬습니다. 제일 처음에 선생님이 살던 석막리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랬습니다. 나는 집사였습니다. “거기 정집사가 교회 만든다면서? 서울서 목회 한다
고 그러대. 그런데 집사가 어떻게 목회를 해?” 석막교회 사람들이 전부 그랬습니다. 그렇게
몰랐습니다. “아이고, 교회를 두 개 만들었대. 세 개 만들었대. 아이고, 그것을 본인이 하겠
어? 전부 다른 사람이 하면서 그렇게 소문만 났지.” 그렇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가서 종교
에서 막 핍박하고 그러니까 “이단이래. 어떻게 이단이냐? 끔찍하다. 창피스럽다.” 그랬습니
다. 어디 가면 석막리 사람이냐고 물어봤을 것입니다. 석막 교회 사람이 시집갔을 때 물어
봤을 것이 아닙니까? “그 분 아느냐? 거기 산다면서?” “아는데 우리는 잘 모른다. 산으로
기도만 다니고 미친 척하고 그랬다.” 그랬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월명동 개발한 곳에
모두 왔었습니다. 여기 와서 나를 못 만나고 갔습니다. 나와 같이 반사했던 사람들, 청년부
하던 사람들이 여기 왔었습니다. 왔는데 감히 나를 못 만났습니다. 만나러 가자고 하니까
못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왜 못 만나느냐고 하니까 자기의 꾀죄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답니다. 그 때 당시야 나도 꾀죄죄했잖아요. 일하고 땀 흘리고, 얼굴 시커멓고 한
데도 못 만나고 갔습니다. 그때 마당에 있는 사람들이 불과 몇 천명도 안되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니까 놀란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인들 20명, 30명, 70명에서 크던 사람
들이 그 엄청난 사람들을 보니까 놀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다 여기 왔다갔
습니다. 석막교회 집사들도 왔다가고 다 왔다갔습니다. 와서 보더니 “참으로 엄청나구나.”했
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교단 하나 만들어지나 보다. 교회가 많으면 교단 하나는 되겠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단의 이름이 있습니까? 우리는 성약 교단입니다. 신약 교단같이 성약 교단
입니다. 하늘 역사이지 않습니까? 교단 하나 만들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
사를 지금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 역사를 내가 합니까? 하나님이 하시는데요. 하나님을
한번 말려보십시오.
홍해 바다를 건너와 버리면 홍해 바다로 인해 가다가 못 쫓아오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것이
이치입니다. 홍해바다 건너왔으면, 요단강을 건너 와버렸으면 발바닥에 물도 없다니까요. 건
너와 버렸으면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핍박기간이 끝나버리면 그냥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열심히 가도록 하라. 할렐루야!”
선생님도 대단하지요? “어떻게 그렇게 대단하게 버텨왔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고, 예수
님이 늘 이야기하는데 그것을 못합니까? 해야지요. 그러나 생각보다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도, 예수님이 함께 해도 생각과 달랐습니다. 신약시대 때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라다녔어도 그렇게 어려웠잖아요. 헷가닥하고, 왔다갔다했습니다. 여러분도 내가 복
음의 씨앗을 낳았으니까 어려워서 넘어졌어도 내가 이해 할테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
분은 너무 귀하니까요. 넘어져서 “어휴, 나는 넘어졌는데. 나는 너무나 낙심돼. 나는 나는
실수했는데.” 그러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이니까, 괜찮아요. 내가 괜찮다
하고, 내가 좋아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내가 좋은데요.
예수님도 그러잖아요. “이런 것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너무 그런 것 저런 것을 많이 못했습
니다.” “내가 좋은데 어떻느냐? 내가 좋은데. 환난 이기느라고 수고했다. 어려움 이기느라고
수고했어. 내가 좋은데.” 하나님도 “내가 좋은데 어떠냐? 내가 좋은데.”하십니다. 선생님은
기도하다가 가끔 실력껏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듣다가 하나님이 부르면 “하나님, 지금
뭐하십니까? 궁금한데 뭐하십니까?” 묻습니다. “지금 내가 인류를 불꽃같이 살피고 있다.”
“감사하옵나이다.”하고 일하다가도 바로 무릎꿇고 기도합니다. “이들이 모르지 않습니까?
내가 아니까 내가 대신 기도합니다. 온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피는 것을 내가 대
신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 대신 감사합니다. 내 것을 받아주세요.” 그런다고 안 받아주시
는 것이 아니잖아요. “너는 너지!” 그렇게 안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 시대 것을 대신했잖
아요. 모세가 대신했잖아요. 예수님이 대신 했잖아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늘 생각해야됩니
다. 그런데 “이 시대에 받는 사람들이 모르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큰 것 중에 하나가 감사하는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왜? 나는 돈도 없으니까, 백
도 없으니까, 줄 것이 없으니까 입으로만 한 것입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왜? 다른
사람은 돈을 내주는데,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는 헌금가지고 가서 감사하다고 낮 내미는데
나는 헌금도 없고 하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몸을 받아주시옵소서.”맨날 그랬는데 결
국 받아주셨습니다. “내 몸을 받으시옵소서. 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몸을 받으시옵소
서. 어제도 드렸는데 오늘 또 드리겠습니다. 내 몸을 받아주옵소서. 내 몸을 하나님이 쓰시
옵소서.”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니까 하나님이 잘 쓰시잖아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몸을
드려야 하나님이 잘 쓰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10대들, 20대, 30대들. 가정국들도 다 하
나님께 몸을 드렸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몸을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좋잖아요. 내가
계속 축복 해줄테니까 잘 되라는 말입니다. “사기 당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잘되게
해주옵소서 이들이 그 환난을 이기고 믿고 따라왔으니까요.” 앞으로 축복 받고, 물질의 축
복을 앞으로 얼마든지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물질축복 받아도 흔들리지 말
아야 됩니다. 잘되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며 주님과 같이 먹고 마시고 같이 해야지 자
기만 먹고 마시면 안 된단 것입니다. 나도 축복 받으면 여러분과 같이 먹고 마시고 할테니
까, 서로 그렇게 하자구요.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신약 시대 같이 유물상통주의입니다. 나
도 축복 받으면 여러분에게 같이 줄테니까, 여러분도 축복 받으면 같이 먹고살자구요. 너무
좋잖아요. 신부이고, 신랑이니까요. 신랑은 신랑대로 꼽치고 신부는 신부대로 꼽치면 무엇을
먹겠습니까? 그렇게 되어서 나중에 먹을 것이 없으니까 서로 각각 먹으면 안됩니다. 가정
생활하다보면 신랑 못 믿어서 꼽치잖아요. 조그만 사업체 하나 만들어놓고, 남편은 남편대
로 만들어놓고 꼽치고 그러는데, 그러지 마십시오. 나는 그렇게 추접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무엇을 꼽치고 그렇게 안 했습니다. 꼽쳤으면 결국은
여러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너무 좋으니까 결국은 줍니다. 새벽예배 열심히
나오니까요.
새벽예배 나오기 힘들지요? 몸부림치지요? 너무 힘들지요? 오늘 아침에 자는데 “시간 되었
다. 종 밥이 울린다. 종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려면 지금!”그랬습니다. 그래서 내가 “으음, 아
이고 목 아파.”하고 후다닥 일어나니까 나중에 종 밥이 울렸습니다. 그 말하고 나서 30초
넘어가니까 딱 종이 울리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여유 있게 일어났습니다. 아주 여유 있게
일어났습니다. 10분 더 자봤자 계속 하루종일 10분에게 쫓깁니다. 그러나 10분 여유 있게
하면 계속 하루종일 10분 여유 있게 해나가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즐거워하면서 기뻐하면서 사십시오. 그런데 한가지는 뭔가 하니, 혼자 하나님과 즐거워하고
영적으로 하는 것도 좋은데, 그래도 사람들이 있어야 되겠더라구요. 지금은 앞날을 희망하
면서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 만나고 이야기하는 그런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 엄청난 것을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내가 자체로 되어야될 것
은 자체로 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필요 없습니다. 연단 하는데, 그리고 시대의
신령한 말씀을 하는데는 사람이 필요치 않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한참 연단 받고, 막 하
는데는 내가 필요 없단 말입니다. 부활되는 이런 때, 여기 저기서 일어나고 빽빽거리고 후
다닥 거리는데는 내가 필요 없습니다. 개가 훈련할 때는 주인이 옆에 서있으면 절대 못합니
다. 주인만 자꾸 쫓아가고, 주인 말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엄하게 해서 훈련
을 시키자구요. 훈련을 다 한 다음에 주인이 데리고 가면 그 때는 주인 말을 듣지요. 대신
훈련시킨 사람이 주인한테 “이렇게 하라고 하면 할 것입니다. 옛날 식으로 하지 마십시오.”
말하는 이런 입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귀하니까 하나님께 묻습니다. “나는 애들을 그렇게 귀하게 보고 맨날 크
게 본다고 하는데 얘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얘는 지금 뭐하지요?” “얘? 지금 뭐하고
있다.” “나에게 관심 갖고 있나요?” “아니.” “이것이 뭐야? 나만 관심 갖고. 정말 눈물이 찔
찔나네요. 나는 얘들에게 관심 갖고, 많은 기도도 해주고 그러는데.” 몇 번을 물어봐도 “너
에게 지금 관심을 안 갖고 있어. 네가 그렇게 기도하는지 몰라. 아무 것도 아니다.”하십니
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어느 누가 그렇게 나에게 관심을 갖느냐? 관심을 안 갖는다고 버려 보아라. 나만 손해가지.
관심 없어도 조금씩이라도 내가 이야기하면 듣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설교시간이라도 듣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아야지.’하니 그것이라도 다행이다. 평소에 하루종일 범사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합니다.’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것
이 얼마나 삶에 보람이 있겠느냐? 그렇게 못사니까 인생들이 곤고하고, 쓸쓸하고, 고적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 염려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내가 “이들이 이렇게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강압적으로 역사해서 은혜를 주옵소서. 그렇게 뒤집어지고 하게끔 은총을 주시
옵소서. 불같은 역사가 식지 않게 해주옵소서.”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애들이 어리니까 힘
을 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사람에게는 이것이 있습니다. “모든 법칙은 동일하다.” 어린애가 낳아서 크고 있습니다. 그
러나 그 부모가 몇 달 동안 했다고 해서 그렇게 큽니까? 내내 어린애이지요. 몇 달 동안 그
렇게 막 안아주고 빨리 크라고 했는데, 몇 달 사이에 그렇게 컸습니까? 역시 어린아이지요.
우리들은 몇 달 동안하고 나면 ‘야아, 이제 내 신앙이 많이 컸겠다.’하는데 정신이 사상만
다른 사상으로 뒤집어졌지요. 몇 달 안에 그렇게 큽니까? 나무에 물을 막 주고 퇴비한다고
몇 달했는데 그렇게 큽니까? 안 크는 것입니다. 나무도 그렇고 모든 법칙은 동일한 것입니
다. 한 3년 쯤을 그렇게 물을 주고 하면 나무가 조금 큽니다. 큰 것이 표가 납니다. 손가락
만한 어린 나무도 한 3년을 하게되면, 부지런히 하면 손목 정도 큽니다. 3년 부지런히 하면
그렇게 됩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3년을 기르니까 어느 정도 큽니다. 이제 어린아이가 아
닙니다. 기어다니고 어느 정도 컸습니다. “그와 같이 똑같다.” 나무를 갖다가 옮겨놓으면 새
뿌리를 박고서 새롭게 속잎이 다시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3년 동안 무엇을 하면 조금 달라
졌다는 것입니다. 새 뿌리 박아서 ‘이제는 살겠다.’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제 몇 달,
5-6개월, 1년씩으로 어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 컸다고 놔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러면 관리자들이 관리를 못하는 것이고,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3년은 길러야 겨우 엎어졌
어도 일어나서 왔다갔다합니다. “엄마, 엄마!”하고 귀엽지 않습니까?
사람의 신앙이 그렇게 금방 크는 것이 아닙니다. 우어떤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 있다합시
다. 그러면 새로 교회를 다닌다면 그 영이 다시 손톱 만해지지 않습니다. 그 영이 있는데,
새로운 영으로 거듭난 영으로 되었을 때 한살입니다. 신앙 1년 했으면 영적 나이 1년입니
다. 어떤 사람이 1년 동안 영어공부를 배웠습니다. 그러면 나이가 30살이 되었을지라도 영
어실력으로는 1년에 있는 것입니다. “영어 실력 1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들도 그러하다.” 그런데 보여줄 때는 인식하라고 어린아이로서 보여줍니다. “그 영
은 크다. 그러나 모든 신앙적인 것, 모든 것이 1년 컸으면 1년만큼 신앙이 들어갔기에 1년
나이로 보는 것이다. 영은 크다. 그러나 어린아이로 보여준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있고, 고욤나무에 접붙이는 것으로 어린 영을 생각하는 것도 있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보
아야 합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몇 년씩 커야 성장된 사람이다. 오래되었어도 짧은 시간에 많이 배운
사람하고는 또 다르다.” 어떤 사람이 영어공부를 5년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5년 되었어도
3년 동안 열심히 한 만큼 못 배운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이 2년 동안 열심히 한만큼 그 실
력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안 배운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열심히 안 한 사람은.
“그와 같이 그러하다. 그래서 너희들도 이제 왔다고 해서 1년 되었다고 허리 펴지 말고, 2
년 되었다고 허리 펴지 말고, 3년 되었다고 허리 펴지 말아라. 계속 꾸준하게 여기서 커라.
본인이 커라.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지켜주니까 잠깐 큰다. 그렇게 금방 크는 것이 아닌 것
으로 알도록 하라.” 그래서 10년 되었어도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제 섭리사에 시작한 것이 공적역사가 25살 밖에 안되었습니다. 영적으로서는 그렇습
니다. 예수님 처럼 한 2천년 되면 엄청납니다. 그런데 신약보다 성약 역사가 왜 다른고 하
니, 애인으로서 기르고 대하니까 빨리 크는 것입니다. 애인으로 대하면 빨리 크잖아요. 종으
로 기른 것과 아들로 기른 것은 다르잖아요. 애인으로서 기르는 역사는 엄청나게, 배 이상
빨리 크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살도록 하십시오.
시대를 분류하면서, 그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는데 결국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핍박 안 받고서 그냥 했으면 얻은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핍박받음으로 많은 생명들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아기를 많이 낳듯이요. 아기를 처음에 날 때는 ‘그만
낳아야지.’합니다. 그러나 다 기른 후에는 ‘많이 낳은 것이 다행이다.’하고, 적게 낳은 사람
은 ‘나도 그 때 더 나을걸. 아, 더 나을걸. 아, 더 나을걸.’그런다는 것입니다. 다 길러놓은
다음에는 ‘더 나을걸.’ 그럽니다. 전도 할 때는 ‘그만 해야지.’하지만 전도 다 해놓은 다음에,
큰 다음에는 ‘더 할걸. 더 낳을걸. 이제 다시 또 시작하려면 7-8년 걸리는데.’ 그러지요.
그런 환난을 만약 내가 안 받고 왔으면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천국을 기뻐하
며 즐거워하며 이 천국을 차지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못했
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복 있는 것을 못 받았지요. 여러분도 오늘날 그런 환난과 핍박과 어
려움을 다 겪고 왔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이 나라를 받고, 하나님이 섭리하는 역사를 받
았습니다. 지금은 작지요. 25년 밖에 안 했으니까 작지요. 일개 교회하나 세우는데도 25년
은 걸려야 교회가 어느 정도 큽니다. 교회 짓고, 뭐 하려면 25년 갖고 못합니다. 석막리 교
회도 엄청나게 오랫동안 해온 것입니다. 석막 교회도 6.25때 들어온 교회입니다. 내가 다녔
던 석막 교회도 50년이 넘었지요. 불같이 역사해서, 막 해서 그 만큼 교회하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50년 되어서 교회 하나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25년만에, 아직 25년이 안되
었고 25년 째입니다. 25년 째에 세계로 여기저기 복음이 나가있고, 수백 개의 교회가 만들
어져서 가니까 하나님의 역사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다 클 때까지는 천년동안 기간이 되야
다 큰다는 것입니다. 천년을 커봐야 얼마나 큰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천년을 커봐야 압니
다. 그전에는 그 크는 과정이기 때문에 모릅니다. 월명동 소나무를 여러분이 처음 봤을 때
는 조그마했었지요? 그런데 그 나무가 지금은 한아름씩 되었습니다. 10년 이상을 크니까 그
렇게 크더라구요. 거름을 막 하니까요. “계속 거름해서 길러라. 가지는 쳐주고. 계속 길러
라.”그럽니다. “여러분들을 상징한 것이다."
이런 기간을 두고 클 때에 희망 있고,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희망 있게, 소망 있
게 계속 움직여 가도록 하라.” 지금 이 시대 나이 먹은 사람들도 악평치 않으면 그냥 가나
안 복지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평한 사람들은 본인이 싫으니까 안 들어오잖아요. 본인
이 악평하니까 본인 때문에 못 오는 것입니다. “나, 이것 때문에 못 들어오겠다. 나는 싫으
니까.”합니다2973. 공정한 역사가 아닙니까? 본인들이 나이 먹었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
다.”고 말씀 듣고 오면 여호수아, 갈렙 처럼 시대 운을 타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년부
들도 3-4천명이 오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여호수아, 갈렙 같이 믿음이 좋은 사람들입니
다. 지금 온 사람들은 덜합니다. 옛날에, 이 환난 때 온 사람들은 참으로 오기 어려웠습니
다. 극히 막 반대하고 그렇게 할 때에, 교회에 반대하고 전화합니다. “김권사, 거기 갔어?
어디 거기로 갈 수 있어? 정말로 저주받고 싶어? 하나님께 죄 받고 싶어?” 그랬어도 계속
숨어서 왔잖아요. 지금은 그런 사람들 없잖아요. 그런 사람들 지금 죽었지요. 그 목사들 이
제 죽었지요? 저주받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나이 먹어서 죽었잖아요. 부모 죽듯이 죽었습니
다. 핍박하던 부모가 죽었잖아요.
그전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너무 핍박해서 교회를 못 나왔습니다. 그래도 너무
힘들지만 숨어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아버지만 죽으면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버지만
죽으면요. 나이 먹어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죽으면 나는 아무 것도 더 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 아버지가 딸에게 결혼하라고 핍박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나이 먹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나이를 먹고 해서, 근 70년이 넘어서 병으로,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열심히 해라. 아버지 때문에 교회 못 나왔는데, 앞으
로 교회 더 잘 나오면서 더 잘하라.”고 했더니만, 결국 그 때 조금 하다가 교회를 안 나오
더라구요. 핍박이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 안나왔습니다. 지금도 안 나오더라구요. 핍박이 문
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았을 때는 오히려 뒤에서 숨어서 더 잘 다녔습니다. 그
래서 어떤 사람은 핍박이 해결되면 더 잘 다닌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안봅니다. 핍박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데 집에서 말린다고요? 말려서 안 할 정도면 그 사람을 사랑해
선 안되지요. 그와는 상관없잖아요. 자기가 사랑하는데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부모가 사
는 것도 아니고, 오빠가 그 사람과 사는 것도 아닙니다. 본인이 싫으면 핍박이 없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문제이다. 하고자하는 마음, 심지가 곧은 자에게 함께 하
신다.” 이러면서 오늘 아침에 말씀을 해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메시아가 와서, 선지자가 와서 그 시대 말씀을 하기 전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오고, 메시아가 올 줄 알았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올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지요. 메시아가 아닌데 어떻게 아느냐
는 말입니다. 그들이 생각한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갑니까? 그들의 수준이 그렇게 하나님과
같은 수준에 있습니까? “너희는 모른다. 그날과 그 시는 모른다. 인자가 가는 것을 모른다.
아버지만 알고, 아들도 모른다. 천사도 모른다.”고 했는데 어떻게 압니까? 그러니 모르고 메
시아를 기다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주관을 보면 전혀 다른 주관을 갖고 기다렸습
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왔어도 메시아 자신도 몰랐습니다. 메시아가 수십 년 동안 하나님께
배운 후에 그때서야 비로소 본인이 메시아인 것을 압니다. 수십 년 동안 배워야 압니다. 그
런 다음에 그때서 하나님께서 비밀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복음을 전해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사들이 사사된 것을 자기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따르니까 ‘어. 내
가 사사가 되었구나.’ 알았습니다. 백성들이 따르니까 알았지, 안 따랐으면 모르지요. 역사가
되니까 역사인줄 알게됩니다. 나무가 크게 되니까 ‘이것은 겨자씨 나무구나. 이것은 풀이 아
니구나.’라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본인도 그렇습니다. 본인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왔어도 모릅니다. 선지자가 여기저기 다 복음을 전하고, 목사들하고 똑같이 전하고 있는데
요. 그런데 선지자는 말만 약간 다르지요. 그래서 선지자인줄 그 후에야 압니다. 지금이야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이사야, 다니엘을 알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때 당시 믿는 사람만
조금 알았지요. 그 당세는 모르는 것입니다. 발명왕들이나 정치가들도 그 당세에 크는 것을
누가 알았습니까? 몰랐지요. 클 때는 모르는 것입니다.
이들이 그렇게 주장하고서 모두 자기 뜻대로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대민족들은 4천년 동
안 기다렸다가 2천년 동안 지내와서 지금도 자기 관대로 기다리잖아요. ‘메시아 언제 오나?
구원자가 언제 오나?’ 그런 식으로 기다립니다. 맨날 기다리는 사람은 자기 관을 못 버리니
까 기다리는 것입니다. 관 때문에 죽습니다. 자기 관에 갇혀서 죽습니다. 그가 와서 전하여
말씀을 듣다가도 환난이 오면 믿어지던 것이 또 안 믿어지고 왔다갔다해집니다 그러나 이제
환난이 끝나고 믿어지고 좋으니까 가면서 ‘아. 맞다. 확실하다.’합니다.
여러분도 솔직히 말해서 전반기 때, 한참 10년 씩 말씀을 외쳤을 지라도 자기들끼리 하는
소리를 내가 계속 들었습니다. “역사의 말씀은 맞는데, 선생님이 전초하는 역사가 아닌가?
이런 작업만 하고 수련소 같은 것만 만들고, 여기에다 투자한다. 무슨 아방궁 만드는 것이
아니냐?” 이런 식으로 제자들도 했습니다. 내가 소스를 받았는데 80%가 그랬습니다. “하나
님이 보낸 사람은 맞다. 선지자가 아니냐?”하면서 모두 따라왔지요. 내가 다 알았습니다.
80%가 그랬습니다. 지금은 말씀을 듣고 안 믿으면 자기만 손해 가니까 이제 믿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부활되어서 영이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영이
부활되어서 “확실하다. 가자. 믿자.”합니다. 여러분들이 안 믿어지는 것은, 자기 물건을 잃어
버렸는데 “그것이 어디에 있대.” 하니까 “못 믿겠어 정말. 거기 있어?”하다가 가서 갖고 오
니까 “누가 사서 거기다 놓은 것 아니야? 내가 애타니까.” 또 그렇게 의심 한다니까요. 그
러나 보니까 “맞다. 내 것 맞다.” 그제서야 압니다. “이와 같이 그러하다. 사람의 심리가 그
러하다.” 여러분들 심리가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어 자꾸 뒤집어지면 자기 마음을 잡으십시
오. “영적 부활, 육적 부활되었으니까 영적인 사고를 육적으로 실천하고 가고, 믿고 나가야
된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굳건히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들어서 무엇인가 좀 굳건해
진 것 같습니까? 말씀을 들으십시오.
새벽말씀을 모두 많이 듣고 있는데, 새벽말씀을 못 듣는 사람들에게 자기신앙이 팍 서려면
이 말씀을 다시 들려주라는 것입니다. 교회들은 그룹별로 그렇게 하십시오. “야, 어느 날 새
벽의 말씀이 좋았다. 이 말씀을 따로 빼내서 이 말씀 들려주자.” 오늘 말씀 같은 말씀을 더
들려주고, 옆에서 코치도 해주고, 말씀이 끝난 다음에 “이 말씀을 이해하느냐? 흐름은 이렇
다. 뼈다귀 있는 말씀을 몇 개다.”해야 합니다.
사람이 흔들거리면 안 됩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이 철근입니다. 손가락 같은 철근 넣지 말
고, 한 아름 되는 철근을 넣고, 팔뚝만한 철근을 넣어서 건물을 탁 지어야 흔들림이 없잖아
요. 그래서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됩니다. 그리스도 위에, 그리스도를 중심한 위에 집을 지
어야됩니다. 메시아를 중심해서 집을 지어야됩니다. 그러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런 한 아
름씩 되는 철근이 무엇입니까? “이런 진리의 말씀이 바로 철근이다.” 철근이 많이 들어가야
그 건물이 좋단 말입니다. 요새는 한 아름씩 되는 철근이 막 들어가잖아요. 큰 골격이 들어
가잖아요. “철근 넣고 이 시대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나가면 흔들림이 없다.” 이러면서 가
야지, 흔들리면 절대 안됩니다. 흔들리면 하나님이 역사 안 하니까요.
지금 역사가 가고 있잖아요. 2천년 넘어가서 가고 있잖아요. “2천년에 누가 온다. 말세 때
온다.”했는데, 말세 때 모두 다르게 됐잖아요. “지구 없어진다. 심판한다. 녹아진다. 해가 변
한다. 뭐 한다.”했지만 해가 변하기는 뭘 변했습니까? 일식 하는 것 봤잖아요. 프랑스에서
일식 하는 것을 봤다구요. 나는 봤습니다. 비디오로 다 찍어 놓았습니다. 그 성경에 있는 것
하고 이렇게 다릅니다. 핵심적인 근본으로 이야기한 것은 무엇인가 하니 그 해가 변한 것
보다 근본은 “해 같은 구시대가 빛을 잃는다.”입니다. 구시대가 빛을 잃었잖아요. 새시대가
빛나게 계속 가지 않습니까? 우리 전반기 역사는 보다 육적 역사라고 했지요. 빛을 잃고 새
시대 역사로 쭈욱 가잖아요. 후반기도 계속 해서, 육신이 안 죽었으니까, 영이 살았으니까
계속 주관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복지형에 우리가 와서, 우리가 젊은 시대, 2
세들같이 하고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2세들입니다. 기독교 2세들입니다. 나이가 40살, 50
살 먹어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은 전부 2세들입니다. 그러면서 새로 지금 오는 2세들, 젊은
애들과 같이 자체의 새로운 땅을 발견하여서 이제 자체로 우리가 역사를 해나가면서 쫙 펴
나갑니다.
이 말씀, 오늘 새벽말씀을 거의 1시간 반 동안 특별히 제작을 더하면서 하나님께서 역사 하
면서, 아주 하는 김에 하니까 여러분들이 듣고서 마음이 굳은 마음을 갖고서 나가야 합니
다. 이것이 부흥집회를 하는 것입니다. 부흥집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대의 말씀을 강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말씀을 택해서 쭉 나가지 않습니까? 그 속에 다 들어있으
니까요.
핍박 이야기 잘하잖아요. 왜? 핍박을 받아서입니다. 또 사랑이야기를 잘하잖아요 왜? 사랑
의 말씀의 진리를 인봉 떼어서 갖고 왔기 때문에 잘 하지 않습니까? 잘하는 설교가 그것입
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이야기 잘합니다. 왜? 우리가 주인공이니까 너무 잘하잖아요.
우리가 핍박받은 것이 너무 큽니다. 요즘 치는 안 했습니다. 요즘의 그 피눈물 나는 어려움
을 참았습니다. 그런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 성약 역사가 새로운 역사인데 왜 이렇게 어
렵느냐? 역사인데.” 아니, 왜 어려워요. 결혼하면 너무 기쁘고 즐겁다는데 아기 임신되어서
입덧 나지 구역질 나지 밥도 못 먹고, 신랑은 막 “너, 왜 이렇게 짜증내느냐? 한두 번도 아
니고, 내가 못 받아주겠다. 정말로.”합니다. “나 임신했는데 그럼 못 받아준다면 어떻게 해?
아기를 떼어버리면 끝나겠잖아. 나 결혼했는데 왜 이렇지?”합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저희
들끼리 서로 좋게 지내야됩니다. “아이구. 아파?”하면 자꾸 다독거려주고, “어떻게 하지? 나
는 입덧 안 해봐서 모르는데. 뭐해줄까?” 자꾸 그래야 됩니다. 짜증을 백 번 내도 “짜증을
내서 무엇하냐?” 그러면서 자꾸 붙잡아주고 그래야지요, 그러다가 아기 낳으면 ‘이제 됐다.
역사가 일어났다. 후세가 일어났다.’ 이렇게 해야지, 서로 자기들끼리 싸우고 하면 안 된다
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자체적으로 서로 화평케 지내고, 의롭게 지내고, 선하게 지내야
합니다. 과거에 전쟁터에서도 살았으니까요. 6.25때를 보세요. 전쟁이 일어남으로 갑자기 젖
먹이는 것을 놓고 도망가야 되었습니다. 왜 도망가야 하는고 하니, 엄마만 끌고 가고, 아빠
만 끌고 갔다는 것입니다. 아기는 안 끌고 가니 놔둘 수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니까 죽는
것입니다. 막 울고 짜고, 징용 끌려가고, 전쟁 나서 이리 가고 저리 가고, 남의 아들을 막
끌고 가고 그런 것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까, 밤에 가다보니까 남의 자식이었어요. 자기
자식은 아들이었는데 데리고 가다보니 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 어떻게 하느냐? 이것.” 완전히 미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났던 세계였습니다.
1999년도 이후로 부모는 떠나버리고, 애인은 어디 가버리고, 신부들만 남겨놓았습니다. 그
렇게 울고 짜고 하던 역사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니까 서로 찾아봐야 될 것 아닙니까?
살았나 죽었나 찾아봐야지요. ‘전쟁 때 다 죽었구나.’했지만 찾아보니까 살았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이제 “나 살았다. 너, 살았느냐?”하고 일단 확인시켜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은 이제 말씀의 전화를 하는 것입니다. “나 살았다. 나, 잘 지내니까 기다려. 나 뭐하다가
갈테니까. 알았어? 이제 전쟁 다 끝났으니까. 이제 열심히 지내고 그래? 다 커서 예뻐졌
어?” “나 예뻐졌어. 엄마, 나 멋있게 세련됐다.”하면서 사랑하는 애인에게 이야기하듯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죽을 것인데 살아나고, 전쟁터에서 살아났다는 것은 너
무 기적이지 않느냐?” 그 피투성이가 컸습니다. 죽은 줄 알았더니 누가 길러서 컸다는 것입
니다. 죽은 줄 알았더니 옆의 사람이 길러주어서 컸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딸이었는데 아들
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길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서로 찾은 것입니다. “아, 우리 친척
삼자. 이것이 운명이다.” 그래서 어찌 되었든지 생명은 길러놓고 봐야됩니다. 잃어버린 양을
놔두면 안되고, 꼭 찾으러 다녀야됩니다. 찾다보면 산양도 찾고 되고, 남의 양도 찾아서 많
이 데려올 수 있잖아요. 끝끝내 해야 됩니다.
“이러면서 우리섭리사가 가고 있다. 이 전쟁의 어려운 핍박가운데, 삶의 고통가운데 안 죽
고 살아났다. 부모 없이 6년 동안이나 컸다. 애인 없이 6년 동안 있었는데 열심히 컸다.”
참 기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말 사랑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면서 시대의
말씀을 주고, 부활을 시켜서 이제는 완전히 영의 철근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영적 철근이
들어가서 튼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치 핍박하던 부모들이 죽었으니까, 나이 먹
고 죽었으니까 자식들이 있으니까 서로 의논하게 되고, 애인들끼리 잘 지내고 살듯이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세계입니다. 이제는 앞으로 뜻 있게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긴 말씀을 했습니다. 일부러 후대를 위해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특별히 말씀을 눌러
서, 꾹꾹 눌러서 강한 말씀을 주고, 은혜로운 말씀을 주었습니다. 말씀 듣고 은혜 받고 충만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새벽에 이와 같이 말씀하심을 감사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심을 감사하고, 성령으로 감동시킴을 감사합니다. 과거를 생각할 때 힘있게,
뜻있게 역사하셨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힘있게 우리를 붙잡아주십니다. 애인이니까 사랑하
는 신부들이니까 좋아하면서 사랑하니까 늘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기
뻐하며 즐거워하며 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로 우리에게 늘 뜨겁게 역사하니
지금도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심령이 뜨거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케 채우시고 함께해 주옵소서. 신부들이니까 늘 걱정하지 말고, 기뻐하면서 “이런 환난
기도 참았는데 이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다.”하면서 가라고 했습니다. 모두 의논하면서 하
나 되어서 열심히 말씀의 뜻을 깨닫고 살게 축복하심을 감당케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능력
과 권능과 은혜가 이들에게 함께 하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 하심과 은혜로움이
함께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심과, 나의 빈 사랑과 은혜와 진리가 이들에게 차고
넘쳐서 이 말씀을 듣는 이 시대 사람들과, 후대에 있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심령이 살아나
시대를 믿고 열심히 따라서 모든 것을 해결 보며 가게 축복해주옵소서. “너희 중 핍박을 받
는 자,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이다. 핍박과 환난을 이긴 자, 받는 자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다.”고 했습니다. 핍박을 받고 이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늘 지켜주심
을 감사하옵나이다. 평강이 이들 위에 함께 하고 영원할지어다 할렐루야 아멘.
. 네, 여기서 말씀을 마쳤습니다. 여러분들 긴 말씀을 듣느라 수고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
분들이 조금 일찍 와서 들어야 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