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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05.03.16 (수)

수 새벽말씀

선포일
2005.03.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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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5년 3월 16일 수요일 새벽말씀(1시간42분) 다시금 새벽이 돌아왔습니다. 온 지구촌에 있는 섭리사에 사는 하늘의 사랑하는 신부 여러분들, 안녕하셨습니까 새벽마다 이렇게 보니까 반갑지요 또 말씀을 듣는 귀한 시간이 왔습니다. 옛날에 선생님이 산에서 기도할 때는 참 오랫동안 몸부림을 쳐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빨리 말씀을 주시니까 참 좋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온 지구촌에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씀을 빨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하게 여러 나라에, 여러 각종 개성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다양하게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새벽말씀, 주일말씀, 늘 평소에 하는 말씀들은 하나님이 하시니까 여러분들 하나씩 하나씩 보면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이 나가는 것을 보면은 여러분들 상태를 내가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면서 말씀하시니 아, 이런 상태의 사람들이 이런 상태에 있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답을 받으려고 “어떻게 할까요”하면 “말씀이 어떻게 나오나 말씀을 들어보자.”그럽니다. 말씀의 답은 한 마디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해서 말씀의 답이 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말씀의 답을 받으러 오는 것입니다. 인생 사는데 답을 받으러 오는 것입니다. 집에서 잠만 자면 답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리고 깨닫고 가는 사람하고 그냥 하는 사람하고는 너무 차이가 있지요. 그 차이는 새벽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말씀을 들으면 되는데, 그것을 못하기 때문에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새벽에 일어날 때 힘들지 않습니까 사람은 선악에 서있습니다. 인생은 선악과와 같아 선으로 지향할 수도 있고 악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한 여자가 있는데 이성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로 갈 수도 있는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 때는 어떻게 할까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나 마음을 딱 먹으면 하나님 편으로 늘 기울어집니다. 새벽에 딱 “야, 오늘 가자. 이것이 도대체 뭐냐 일어나자.”하면 그 쪽 일어나는 편으로 기울어지고,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하면 10분, 20분이 가고 ‘더 생각해봐야지.’하게 되면 한시간씩 갑니다. 그러면 못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오라고 명령을 했어. 안 오면 가만 안 둔다고 했어. 가자. 내가 이까짓 것 잠을 못 이겨 잠이 뭐야 잠은 사망이요, 나를 죽이는 살인자요, 도둑놈이요.”하고서 후닥닥 일어나면 일어나집니다. 항상 누구든지 새벽에 일어나기가 매일 해도 힘들지요. 그러니까 매일 그렇게 생각하면서 해야 됩니다. 잠을 계속 자는 게으른 사람들은 그것 조금 더 자고서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아침에 만일 잠을 더 잤다고 칩시다. 그러면 아침 새벽에 기도 한시간 이상 못합니다. 그리고 또 이 엄청난 세계적으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을 못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못하니까 아침에 하나님의 그 엄청난 종류의 잠언을 못 받습니다. 아침에 잠을 잤다고 칩시다. 새벽에 잠을 자고 못 일어났다고 칩시다. 그럴 때 그런 엄청난 피해가 오고, 하루 종일 일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죽치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잠자는 것입니다. 눈을 떴으나 일거리가 없으니까 잠을 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손해가 갑니다. “나와 같이 여러분들도 다 그렇다. 누구든지 그렇다. 새벽에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나와 같이 그렇게 된다.” 말씀을 못 듣는 사람들은 새벽시간을 뺏기고, 그 다음에 시간을 내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들어라. 늦게라도 들어라. 이 시대에 이 새벽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 새벽에 듣고 낮에 이렇게 진행된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날 새벽에 못 들었으면 그날 밤에라도 듣고, 그 주일에 듣고, 어떻게 해서라도 새벽말씀을 들어라. 안 하면 안 된다.” 새벽에 일어나면 이렇게 오장육부의 기구가 돌아갑니다. 버릴 것은 나와집니다. 공장이 돌아가니까 폐수 물은 버려지게 우리 지체의 기구가 돌아갑니다.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만약 못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하루가 다 죽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깨지면 내일이 또 깨집니다. 그러니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야된다는 것을 아침에 깨닫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합니다. “새벽을 깨워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들의 힘든 새벽을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그렇게 안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꼭 깨워줘야 됩니다. 우리를 꼭 깨워줘야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이것은 굉장히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어요 깨워주셔야 합니다. 사랑하니까 꼭 깨워주십시오. 나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들으러 새벽에 달려오는 세계 모든 자들을 깨워 주시옵소서.” 오늘 목회자들은 자기뿐만 아니라 모두 새벽을 깨우고 와서 말씀을 듣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말씀합니다. 먼저 여러분들에게 잠언 하나 해주겠습니다. 먼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됩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도 감동을 받게 됩니다. 생명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감동 받을 때까지 기도를 합니다. 감동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 들어와도 내가 감동을 일으켜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감동되고,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할 때 쑥쑥 들어옵니다. “맞아. 그렇다. 아멘!” 그냥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에 말씀 한 마디라도 더 많이 하려고 전초를 조금 하고 하잖아요. 전초를 조금하고 말씀을 많이 합니다. “반드시 그런 준비를 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것을 알도록 하여라.” 하나님이 말씀을 한 마디 우리에게 해주었다는 것이 작은 것이 아닙니다. 너무 큽니다. 너무 엄청나다니까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나라의 대통령이 여러분들에게 전화해서 한 마디라도 들어봤습니까 전화해서 “인생 이렇게 살도록 하라.” 그렇게 전화해본 일이 있었습니까 드물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매일 사람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말씀을 한 만큼 되었잖아요. 한 40년 동안 만들었으니까요. 요즘에 기도할 때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하심을 늘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안 가르쳐주면, 모르면 못하니까요. 이것은 방금, 한 3분 전에 온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와 대화하면 어른도 어린아이같이 된다.”했습니다. “어린아이도 어른과 자꾸 대화를 하면 정신과 행실이 어른스러워진다. 너희가 하나님과 대화해봐라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졌을 때 인간이 무지하게 되었고, 무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 선지자들이 하나님과 늘 대화하면서 선지자들에게 전해주었을 때 그 말씀을 듣고 서로 상호 교통했을 때는, 그 때 시대는 심판치 않았느니라.”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데,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누가 심판합니까 안 하지요. 대화가 되는데요. 대화가 안 되었을 때는 그런 것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어렸을 때 자꾸 큰 사람들 말을 듣는 것입니다. 어른들, 성인들의 말을 듣고, 자꾸 큰 사람들의 책을 볼 때에 커지는 것입니다. 이 선생도 어렸을 때는 내가 조금밖에 모르니까 큰 사람들, 어른들의 말을, 50대 60대 닦아진 자들의 말을 들으러, 설교를 들으러 갔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배우려고 갔습니다. 그렇게 10대 때에 60대의 닦아진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까 굉장히 필요하게 들리고, 그 때부터 사상이 다르게 굳어진 것입니다. ‘아, 이렇게 살아야되겠다.’ 그러니까 10대에 10대의 할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50대, 60대의 닦아진 어른들의 말을 듣고, 그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해서 받고 깨달은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까 10대 때인 17살, 18살, 19살부터도 사상이 달라졌습니다. 정신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10대 때 어른들의 얘기를 잘 듣고, 무슨 이야기인가 듣고, 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렇게 어른들 얘기를 듣고서 일반 사람들을 보니까 너무 어리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빨리 본 것입니다. 빨리 쳐다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문을 받았습니다. 15살, 16살에 하나님의 자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문 쓴 것이 있잖아요. 그때는 이렇게 쓰지 않고, 내 개인이 깨닫고, ‘아, 이렇게 살아야지.’하면서 이런 자문으로 계속 하나님 자문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크지요. 어린것이 예수님의 자문 받고, 아주 큰 자와 사귄 것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 예수님을 사귀었습니다. 보니까 내 영은 그 때 조그마했었습니다. 10대 때에 내 영은 작았었습니다. 예수님이 늘 가르쳐주고, 큰 자의 말을 듣고 하니까 점차 컸습니다. 사람이 큰 사람이 되려면 항상 큰 책을 본다고 했습니다. 큰 책, 성인들의 책을 본다고 했습니다. 큰 자들의 책인 선지자의 책이요, 메시아의 책이요, 하나님의 책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계속 본 것입니다. 성경에는 실패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고,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성공, 특히 하나님이 세상에 대해서 성공한 일들이 쭉 들어있습니다. 이것을 계속 보니까 머릿속에 그것만 들어온 것입니다. 다른 세계를 보기 전에 그것만 먼저 들어왔습니다. 무슨 텔레비전을 보고, 연속극을 보면 사람을 스릴 있게 만드는 연구가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재미있으니까 그대로 들어오잖아요. 영화를 보면 거기서 들어오는 것, 세상의 모든 퇴폐의식의 세계를 보고 들어오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장날에 시장 같은 곳에 가서 보고 그랬습니다. 술집 같은 곳도 덜퍽덜퍽 들어가 봅니다. 어렸을 때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보면 ‘왜 저렇게 술을 먹고, 왜 저렇게 사나 어른들인데. 자식도 저렇게 많은데 어른이 술 먹고 방탕하며 살고, 서로 싸우고 사는가’ 했습니다. 금산 장날에 가서 쭉 돌아다녔습니다. 여기서 저기까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람 사는 것을 보고 ‘참, 복잡하게 사는구나. 여러 종류로 사는구나. 왜 어른들은 저렇게 사나 어른들인데. 자식도 낳고 어른들인데.’ 그러면서 봤습니다. 그러면서 성서를 통해서 보고, 인생살이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보시면서 참으로 생각이 깊으시겠다. 하나님이 인생들을 시작하셨으니까 살피시고, 함께는 하시는구나. 엄마, 아빠가 어린 아이 낳아 놓았으니까 어린아이가 이러든 저러든 계속 살피주듯이 살피시는 입장이구나.’ 이런 것을 실제로 보고, 듣고, 깨달았습니다. 또 거지들을 보면서 “왜 거지가 되었느냐” 물어보면 다 답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집에서 배고파서 구걸하다보니까 이렇게 되어버렸다.” 오늘 말씀입니다. 두 번째 잠언을 보면 “앉아서 인생 구상만 하지 말고 실천하라. 실천하며 가다보면 너 구상한 것이 잘못되었나, 잘 되었나 부닥치면 안다. 일은 부닥쳐봐야 된다. 앉아 구상할 때는 안 되는 것 같아도, 가다보면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 만나다보면 거기서 또 일이 된다. 구상만 하고 앉아있으면 그 사람이 자기 갈 길로 가기 때문에 못 만난다. 그러니 구상만 하지 말고 쭉 가라. 그러면 그 사람과 부딪혀서 답이 되어서 또 간다.” 두 번째의 잠언은 그런 묵시를 받아 기록을 했습니다. “환난과 핍박은 받아본 사람, 겪어본 사람들이 환난 당한 사람을 알고, 옛날 환난 당한 것과 핍박당한 것을 알지 안 받아본 사람은 이론적으로만 안다. 이론적으로만 알면 그만큼 사람이 뒤쳐진다.” 이론적으로만 아는 사람이 설교를 한다든가 얘기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도도 자기가 전도를 해서 길러본 사람이 압니다. 1명, 2명뿐만 아니라 10명, 20명 길러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과, 그냥 이론적으로 하는 사람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래서 전도 많이 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전도의 사례, 성공비법을 얘기합니다. 그러나 전도를 해보면 전부 다 개성적입니다. 전도하는 것의 개성이 전부 다릅니다. 그 사람에게 역사해서, 그 사람을 통해서 올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전도를 해야됩니다. 여러분들 교회에 올 사람들은 여러분들 교회 주변의 사람들이나, 여러분 센터 사람들이 전도를 해야 오지,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가거나 미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전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전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살았으니까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선생님도 전도를 많이 해서 생명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선생님 생명을 늘 지켜주시고, 생명에 대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 지구상에 여기 저기 복음이 나간 것은 생명의 역사 밖에 더 있습니까 그래서 희망이 있고, 이렇게 나와있지 있지 않습니까 생명들이 없으면 어떻게 나와있습니까 생명을 관리하려고 여기서 지구상의 말씀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계로 보냅니다.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이 이렇게 내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명이 있으므로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희망도 많아지고, 소망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니 생명을 전도하고, 생명을 구원하라. 이것이 구원자가 하는 일에 같이 동참하는 일이다. 구원자, 메시아의 가장 큰 일이 무엇인가 하면, 생명을 구원해서 그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이다.” 가정 구상의 근본이 무엇인가 하면, 아기 낳고 길러서 그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후대를 계속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손들이 번창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당세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번져가니까 계속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희망이고, 소망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왔을 때, 또 왔을 때 얼마나 희망스럽습니까 가장 희망이 끊어지는 것은 그 집에 자녀가 다 끝나 버리고, 다 커서 더 이상 자녀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희망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노인들 둘이만 재미있게 삽니다. 그러나 또 결혼해서 아들 딸을 낳고, 그들이 또 결혼해서 아들 딸 낳으며 계속 번져갈 때에, 막 우글우글하며 번져 갈 때에 기쁘고 즐겁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소망도 그것입니다. 전도해서 생명을 관리하고 소망을 이루어야 여러분들이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여러분들이 구상한 것이나, 여러분들의 가정적인 체계가 딱 됩니다. 전도해야 한 가정을 이루듯이 됩니다. 결혼해서 한 가정에서 아들 딸을 낳듯이 여러분은 전도해야 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같이 살았으면 아기를 낳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늘 신랑과 여러분들이 같이 살고 있으니까 그러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전도를 해봐야 알고, 그렇다. 한번 전도를 해봐라.” 생명을 전도한 사람들만이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고 사명인 줄을 압니다. “생명을 관리하고, 생명을 전도하고, 생명에 함께 하는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크다. 그가 받는 축복이 심히 크다.” 심히 큽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생명들이 자기 앞에 오고, 자기 주관권에 오기 때문에 힘이 생기고, 능력이 생기고, 위력이 생기고, 모든 것이 생깁니다. 보십시오. 우리 섭리사에 사람이 많으니까 여러분들이 그만큼 힘이 있고, 보람이 있지요. 여러분들 몇 명만 왔다갔다 해보십시오. 힘이 없지 않습니까 교회도 전도해서 새로운 인원들이 쭉쭉 들어와야만 역시 서로 힘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해서 애들 기르고, 가르치고 하는 사람들은 소망이 너무 큽니다. 그러니 신입생 여러분들도 전부 생명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말씀 듣고 깨달았을 때, “으악!”했을 때 그 때 전도 못하면 이상하니 전도 못하잖아요. 안되잖아요. 어렵잖아요. 아기 낳을 때가 따로 있습니다. 그 때 아기를 못 낳으면 벌써 그 엄마나 아빠는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바로 1년, 2년, 3년 동안 임신이 안되면 그 사람들은 대개 6-7년 되어도 임신이 안됩니다. 아주 어렵습니다. 아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축복을 받아야 겨우 임신해서 기적으로 아기 하나 낳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바로 전도할 계획을 해야됩니다. “결혼했으면 꼭 아기를 낳아야 된다.”하면서 얼른 의사에게도 가보고, 이상이 있는가 물어보고 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신경을 안 쓰니까 안 됩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들도 그냥 자기만 마냥 즐겁게 교회 다니면 아기를 못 낳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불행한 결과가 옵니다. 선생님이 이 섭리 시작할 때 계속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전도하고 다녔습니다. 여기 쫓아다니고, 저기 쫓아다니며 계속 쫓아다니면서 전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침에 밥만 먹으면 계속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여기 돌아다니고, 저기 돌아다니고 하면서 ‘생명 하나만 전도되면 그 애가 또 전도하니까.’ 그렇게 하면서 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가 딱 전도되면 그를 통해서 또 전도가 꼭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이 하나 전도했잖아요. 그 하나 전도한 사람을 통해서 계속 전도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가 제대로 전도되어서 그를 통해서 또 전도되고, 그가 더 이상 못하면 다른 사람이 또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낳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대가 끊어집니다.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느니라.” 여러분들이 ‘공적을 세우겠다.’하고 하나님께 무슨 공을 세워야 하는데, 그 할 것이 너무 많잖아. 그런데 “선생님, 저 사명 주세요. 사명이 뭐지요”하면 참으로 막연하지요. 아니, 생명을 전도하면 되잖아요. “그래. 너, 그렇게 사명 달라고 전도 100명 하도록 하라. 내가 1차 사명을 너에게 주었노라.” 그러면 그 다음에 편지가 오기를 “어떤 목회 하는 사명은 없어요”합니다. “그것이 목회이지 않느냐 나도 어느 교회를 주어서 한 것이 아니다. 한 명씩 전도해서 불어나니까 내가 이들에게 생명의 목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지 않았느냐” 꼭 보면 어느 교회를 달라, 어느 교회를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주어서 관리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1년에 5명 불리고, 몇 명 불리고 그랬습니다. 그런 교역자들은 이제 서서히 파악되어서 교체를 합니다. 너무 전도가 안되었으니까 이것은 관리 부족, 전도 부족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를 안 맡았어도 본인 개인이 투자를 해야지요. 투자해서 전도를 많이 한 이런 사람들은, 전도를 많이 한 사람 중에 목회를 하고싶다는 사람들은 올리기를 바랍니다. 전도 많이 한 사람이 꼭 목회하고 싶다고 올리면 그 사람들에게 목회지를 주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가면 잘 하겠지요.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아, 나는 이제 전도할 때가 지났으니까. 아, 나는 그 때 통과하고 전도를 5명, 3명 했으니까.’ 그러고 쉬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꾸 생명을 전도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통 이 섭리사에 몇 명을 원하시는가하면, 보통, 기본적인 것은 7명이라 십니다. 7명은 기본으로 할 일입니다. 기본으로 섭리사가 할 일입니다. 1인당 7명 정도는 전도를 해야 된답니다. 무슨 역사가 일어나는가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자기가 더 하고싶으면 더 해서 이제 하늘 앞에 스타들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 엄청난 환난, 핍박, 고난을 받으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했는지 압니까 자기 존재를 죽이지 않고 신앙을 살리기 위해서 핍박받으면서도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중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전도하면 사람을 갖다 가두는데도 계속 하지 않았습니까 복음을 전하면 가두는데도 전도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누가 복음 전한다고 가두는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편하면 편한 대로 더 안 하더라구요. 마태복음 5장 11절을 보면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거스리며 너희에게 모든 악한 말을 할 때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 너의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와 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면서 오늘 시대의 말씀과 예수님 시대의 말씀을 했지요. 예수님 때 그렇게 핍박하고 거스렸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나로 인해서 이렇게 고통받고, 핍박받는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이 큼이니라.”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냥 위로하는 말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그런가 하니 핍박 받을만하잖아요. 영원한 지옥에서 생명 길로 가게 되고, 종의 입장에서 아들로 되니까 그것 핍박 받을만하잖아요.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려면 한번 뒤집어지고 수고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얻을 수는 없잖아요. “옛집을 때려부수고 한 1년 동안 고생하면 새 집에 살 수 있다.”하면 그것 한번 해볼만 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평생 옛집에서 안 살게 되고, 좋은 집에서 살게 되니까요. 집 지을 때 힘듭니다. 나도 옛날 집 때려부수고 집을 지을 때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손이 부르트고 그랬습니다. 옛날에 집을 한번 지어봤습니다. 지금 지은 집 말고, 그 전에 지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괭이 갖고 했습니다. 그 단단한 땅 25평을 한길 넘게 전부 파냈습니다. 그런데 한 3개월 이상 흙을 파냈습니다. 지금 같으면 포크레인으로 10분 잡아당기면 다 끝날 것입니다. 그것을 3개월 동안 나와 동생들이 괭이로 했더니 막 손이 불어나고 피가 나서 더 이상 못 하겠었습니다. 장갑 끼고 하고, 나중에 가서는 손으로 못 쥐어서 겨드랑이에 쥐고 찍으면서 파냈습니다. 그래도 내가 “너희들 집 짓느라고 이렇게 고생도 하지만 괜찮다. 좋은 집 지어놓고 평생 편하게 살면 되잖아. 그것이 훨씬 낫잖아. 이나마도 내가 월남 가서 돈도 벌어오고 했으니까 할 수 있지, 어디라고 할 수 있었겠느냐 하자. 저 아랫집, 윗집을 봐라. 우리가 살면서 매일 윗집이 집이 좋아서 놀러갔다가 앉았다 오고 그랬잖아.”했습니다. 윗집 아랫집을 그렇게 크게 봤습니다. “우리 집은 훨씬 멋있으니까, 비교가 안되게 멋있으니까 우리, 짓자.” 그러면서 집을 지었습니다. 여러분들, 이런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당한 것은 예수님 때도 “환난 받을만하지 않느냐”했습니다. 환난이 좋아서가 아니라 받을 것을 생각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종 문서를 태우고 아들 되고, 또 아들급의 천국을 가니까 그것 받을만하잖아. 받을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받을 대가를 생각할 때 받을만하잖아.” 그것이었습니다. “자신 있다. 너희들이 나로 인해서 핍박받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냥 받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일반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을 따름이 아니고 메시아를 따르므로 메시아가 주는 혜택과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주시는 큰 혜택을 받을진대 그 환난, 핍박 받을만하잖아. 수고 할만하잖아. 피흘림을 받을만하잖아. 너무 노골적이고 고통스럽고 쓰린 꼴을 받을 만하잖아. 저렇게 악을 쓰고 저렇게 악랄한 세계에서 너희들은 살았다. 이제 와서 보아라. 그냥 거죽에서 볼 때는 별 표가 안 났는데, 저 봐라. 본심들 일어나니까 저렇게 악을 쓰고, 그 악랄한 짓을 하지 않았느냐 그런 세계에서 너희들이 살았던 것이다. 너희들도 속을 끄집어내면 저런 것이 막 나온다.” 그 세계에서 나와서 환경부터 옮겨놓으면 사람이 그런 성격도 없어지고, 그런 마음도 없어집니다. 사람이 “저는 정말 성격 고치기가 힘듭니다. 너무 혈기를 잘 내고, 저는 너무 분노를 잘 내고 너무 못되어 먹었습니다.”하면 내가 그럽니다. “그것 고치기 힘들지만, 환경이 좋아지면 어느새 모르게 고쳐진다. 그런 환경에서 화날 사건에 부딪치니까 화가 나고 그러는 것이다. 분노가 터지고, 막 혈기가 나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벗어나면 잘 안 나지 않느냐” “그래요” “그럼. 그것이 한 80%는 되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환경을 옮겨 버리잖아요. 그렇게 환경 옮기면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꽃들도 환경을 옮김에 따라서, 온도 조절을 함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그것이 굉장히 큽니다. 이 꽃을 보십시오. 이 꽃은 온도 조정해서 이렇게 오래가는 것이 아니고 희귀한 꽃이 되어 버렸습니다. 희귀한 희귀종이 지금 희귀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희귀한 희귀종이 희귀한 짓을 하고 있다.” “어떻게요” 이 꽃은 벌써 졌을 꽃입니다. 이 뒤의 다른 꽃은 진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 뒤의 꽃이 져버린 것은 오래 되었습니다. 생명은 비슷하니까요. 이 남은 꽃이 늦게 핀 것이 아니라 그 때 필 때 같이 핀 꽃입니다. 이 꽃도 옛날에 필 때 같이 핀 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희귀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귀엽네요. 선생님은 무엇을 그냥 안 봅니다. 선생님은 관찰자입니다. 관찰합니다. 하루 이틀, 한 1주일 더 피는 것은 모르겠는데 거의 20일 정도 더 피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대개는 거의 비슷합니다. 내가 그것을 알았을 때에, 어제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수국 꽃이 내 정원에 피었는데, 이 꽃(아잘리아) 세 송이인가 두 송이가 있어서 만져보니까 닭털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상하게 왜 닭털로 변했을까 내가 닭인데.’ 닭털로 변해서 닭 꽃이 되었습니다. 닭털 꽃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지지도 않네.”했습니다. 그렇게 변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변해 버렸습니다. 이 꽃도 이렇게 내가 관심 가지니까 그 능력을 힘입어서 변해버렸습니다. 오래 가려면 다 같이 오래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 져버렸는데 이것 세 송이만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지금 세 송이가 남았습니다.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과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꽃 자체로는 못 합니다. 자기가 못 합니다. 이 꽃이 자체로 이렇게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연구가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연구가입니다. 원래 철학자들은 물리를 연구합니다. 수학, 물리, 이런 정신적인 세계를 아주 연구합니다.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하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꾸 연구하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 속에 깊이 들어간 사람들은 수압을 연구하고 무게를 연구하면서 계속 1미터씩 더 들어가고 그러지, 그냥 푹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냥 해서는 똑같습니다. 어제 한 것이나 오늘 한 것이나 똑같습니다. 10미터 간 사람이 11미터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더 들어가는가 연구합니다. ‘아, 그것 11미터 가려면 돌을 껴안고 가면 더 들어가겠다.’ 이렇게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큰돌을 껴안고 들어가면 쑥 들어가겠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깊이 많이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같은 1분을 가지고.’ ‘아, 그러려면 반듯하게 내려가면 되겠다.’ ‘더 빨리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 물에다가 큰 철근을 박아서 물 속에다 레일을 깔면 되겠다. 레일을 깔고 돌 매달고 딱 붙잡으면 순간 쑥 들어가잖아. 그러면 1분에 100미터까지 내려갈 수 있겠구나. 올라올 때도 1분 걸리고. 올라올 때도 촥 올라오면 빨리 올라올 수 있으니까.’ 프랑스와 이태리에 잠수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빨리 100미터씩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냥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계속 연구를 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꽃은 자체 자기는 이렇게 오래 못 갑니다. 능력을 받아서 그렇게 오래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선생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른인 것입니다. 세밀하게 살피니까요. 여러분들도 누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아, 이놈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었구나. 자체로는 못 한다.’ 알아야 합니다. “누가 열심히 한다. 뜻있게 한다.”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구나.’ 바로 압니다. 다 똑같은데요. ‘사람은 다 비슷한데 능력을 받아서 저렇게 하는구나.’ 바로 압니다. ‘은혜를 힘입었다.’ 바로 압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설교를 하고 끝나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능으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옵나이다.”합니다. 왜 설교를 하다보면 이렇게 써놓은 것이 많지만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써놓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니 84편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1주일을 해도 못 다합니다. 아까 몇 개의 잠언 들어봤지요 잠언 듣고서 설명해주고, “어떤 입장을 두고 말한다.”하지 않아도 오늘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까 말씀을 하나님이 잘 해주십니다. 잘 통변도 하고, 통역하고, 대언하며, 내가 한 일은 내가 확실하게 깊게 증거하고, 예수님이 한 일은 예수님이 깊게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감동시키면서 우리 쩍지게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꽃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일기 쓰면서 날짜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느꼈습니까 내가 이야기를 해주어야 알지, 모릅니다. 그저 ‘아, 저 꽃은 늦게까지 하나씩 남는 꽃같이 남았구나.’했을 것입니다. 여기는 기후 때문에라도 그렇게 못 합니다. 방 안이 추워서 무엇을 틀어놓으니까 뜨거우니까 시들고 그럽니다. 그러더니 결국 못 견디니까 다 떨어지더라구요. 기후 조정을 못 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추우니까 온풍기를 틀어놓고 하니까 막 건조하고 뜨거워서 그냥 시들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밖에 내놓으면 너무 추우니까 또 얼어버립니다. 꽃 잎사귀가 사폿하면 얼더라구요. 그런데 꿈에 보여주었는데 이 꽃이 변화되었습니다. 변화되어 버려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벌써 여기서 이 꽃이 질 줄 알고 다른 꽃을 사다놓은 지가 15일이 되었습니다. 대처하려고 15일 전에 사다놓았는데 여기 이대로 있으니까 그 꽃이 못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꽃이 자꾸 조화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꽃 자체로는 못 합니다. 이것은 식물이라 못합니다. 하나님이 꽃에게도 능력을 베풀고, 함께하고, 선생님이 그렇게 기도를 계속하니까 이것도 능력 발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식물도 동물도 다 받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내가 동물이 아팠을 때에 기도하고, 대화하니까 다 통하고 낫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만치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핍박이 있습니다. “그 핍박과 어려움을 이렇게 받아도 받을만하지 않느냐” 왜 받을 대가를 생각하니까요. “사망권에 있던 사람이 생명권에 오게 되니까 그것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물에 빠진 사람에게,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기어 올라 오라.” 그런데 올라올 때 너무 힘듭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내가 너, 올라오라고 해서 올라오다가 지금 고통받는데, 고통을 받아도 복이 있다. 상이 큼이니라. 거기 있다가 한번 나와봐라. 얼마나 보람이 있는지. 그러니 기어 올라와라. 손에 피가 나도 그까짓 것은 괜찮다. 손에 피가 난다고 그까짓 것은 쳐다도 보지 마라. 그까짓 것이 문제냐 몸뚱이 전체가 다 죽는 판국인데. 거기에 있으면 죽는데. 기어서 나와라. 앞으로 장마지면 여기에 물이 괸다. 물 괴면 죽는다. 빨리 나와라. ‘손에 피가 난다. 손톱이 뒤로 넘어졌다.’ 그것은 생각하지 말아라. 얼른 나와라. 내가 여기서 계속 이야기할 때 나와야지, 나 지나가면 너 혼자 올라오다가 포기하겠다. 나와라.” 그래서 끙끙거리고 올라왔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올라와라. 손바닥이 따갑더라도 올라와라. 올라와서 나중에 그까짓 것은 치료 하면 금방 된다. 그 정도는 열흘만 치료하면 다 낫는다. 그 때부터는 넓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위로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핍박을 나로 인하여 받아도 괜찮다. 올라와라. 그 함정에서 빨리 올라와라. 올라와라. 저 밑에서 저렇게 아우성치는 것을 봐라. 올라온다고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고, ‘이 새끼 어디 가느냐’고 하고, 막 잡아당기고 그런 입장이 바닥에서 일어난다. 빨리 올라와라. 나로 인해서 핍박을 받는구나. 내가 너희를 위해서 구원하려다가 나도 핍박받고 있지 않느냐 내가 너희를 구원하려고 하다가 저놈들에게 지금 욕 얻어먹는 것을 봐라. ‘야, 그 위에 있는 놈은 어떤 놈이냐 야, 이놈의 새끼야!’하며 별 놈의 욕을 다 하는 것이다. ‘야, 이놈의 새끼야, 왜 우리와 있는 사람을 끌고 가느냐’한다. 너희가 나로 인해서 이렇게 고통을 받지만, 나도 너를 구원하기 위해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올라와라. 일단 올라와라.”해서 올라왔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로 인해서 모든 악한 말하고, 그리고 모든 욕을 하고, 각종 고통을 주고 핍박하고 해를 주는 일이 있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 “그런 고통을 겪고, 그런 잔인한 것을 받고 와야 네가 다시는 그 놈의 곳에 안 간다. 너무 무서운 곳이니까 다시는 안 간다. 그 핍박하는 장소 안 가지 않느냐” 우리도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지요 그러니 이제 거기는 안 간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잔인한 놈들에게 안 간다고 합니다. “아주 잔인하고, 아주 못 되었다. 거기는 안 간다.”고 하잖아요. “다른 곳에 가면 갈까 거기는 안 간다.” “다른 곳, 어디 갈려고 그래” “핍박 때문에 교회를 안 오고, 핍박 끝난 다음에 오고 싶다.” 그것은 내가 다 알았습니다. 그래서 핍박받을 때 받고서 해야됩니다. 그 핍박 끝나고 오잖아요, 핍박을 안 받잖아요 그러면 상이 없습니다. “너희에게 줄 상이 크지 않다. 작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저기 행복은 간다.” 행복을 찾아도 행복이 없는데 저기에 행복이 가고 있습니다. “비바람 속에 행복이 간다. 가시덤불 속으로 헤치고 행복이 간다. 비바람과 같이 눈보라와 같이 같이 가고 있다.” 그래서 가시에 찔리면서, 차가운 눈을 맞으면서 행복이 갑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이 가시덤불 헤치고 비바람 맞고 가는데 그를 사랑하려면 같이 대화하면서 가야 되지 않겠느냐 행복이라는 것은 아주 편안하고 좋은 정자 그늘 밑에 신선처럼, 양반처럼 바둑두고 장기 두면서 앉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앉을 수 있지요. 그러나 행복은 그렇지 않다고 시의 묵시로 나왔습니다. “환난 때 어려움 속에서 행복이 우리와 함께 간다. 행복은 하나님이다. 행복은 주님이다. 예수님이다. 성령님이다. 복이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행복은 너희다. 내가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환난 당한 너희에게 내가 늘 이야기해야 풀린다.” 그래서 늘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말씀으로 하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여러분들이 환난을 겪으면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왔습니다. 선생님이 한마디 이야기해줄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어제 예수님을 보면서 그랬습니다. “참 우러러봅니다. 주님.” “왜” “정말로 내가 우러러보고, 우러러보고, 또 울면서 봅니다.” “네가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하는 말인지 내가 들어서 알겠노라.” “알지요 그래도 내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주님이 다 안다고 말 안 하면 나는 벙어리이니까요. 예수님은 영이니까 무언으로 살아도 괜찮지만, 나는 육이니까 이야기를 해야되겠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으로 신약에서부터 이렇게 2천년 동안 역사 흐른 것을 대강 영감으로, 육감으로 볼 때에 참 얼마나 쓰린 꼴이 많이 있었습니까” 예수님 당세의 쓰린 꼴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 믿고 따르는 사랑하는 자들이 받는 그 고통, 그 어린것들이 다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사는 고통을 다 보고 있었을 것인데요. 그 쓰린 꼴을 보고, 마음 아픈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인데요. 그리고 로마에서 네로 황제 그 놈의 새끼가 그렇게 기독교인들을 죽이려고 그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천주교들이 아닙니까 순진한 천주교인들을요. 천주교인들이 얼마나 순진하다구요. 그 순진한 사람들은 예수님 같이 마음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핍박을 받아도 그저 ‘무슨 뜻이 있겠지. 내 죄야.’ 이렇게 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로마 병정들과 네로 그 놈. 기독교인들에게 핍박할 것이 없으니까 이유를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냥 무조건 하면 자기가 백성들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니까 불 질러놓고 “기독교인들이 불질렀다. 저런 무서운 놈들이다. 우리가 다 죽이자.”고 사자 굴 속에 갖다놓고, 크로세() 광장에 갖다놓고 막 사자들 풀어놓아 잡아먹게 만들고, 이렇게 핍박, 저렇게 핍박, 잡아죽이고, 뒤에서 죽이고 앞에서 죽이고, 고통 주고 잔인하게 고생시켜서 죽이고, 사자들 쫓아다니면서 잡아먹게 만들고, 별 짓을 다하면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제 그랬습니다. “네로야, 이 놈아! 너는 지옥간 줄로 알아라. 지옥 안 갔으면 내가 기어코 끄집어다가 지옥에다 넣을 것이다. 하나님께 안 물어보고 내가 지옥에다 넣어 버릴거야.”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했느냐 왕실에서 살면서. 내가 너 살던 곳 가봤다. 가보니까 왕실에서 여자들과만 뒹굴고 살았으면서 그 잔인 무도한 짓을 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동물들도 갖다놓고 잔인하게 하면 죄를 받는다고 잠언에 나오는데. 잔인하게 하는 사람은 잔인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동물만 잔인하게 대해도, 잡아먹으라고 있는 동물을 잡을 때도 불쌍한데 같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너와 네 씨족들이 다 지옥에 간 것으로 내가 알고는 있지만.” 그러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덤에 죽는 사람을 계속 묻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묻는 사람들은 안 죽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하나씩 하나씩 빼돌려서 무덤에서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판 곳에 들어가서 살라고 했습니다. 카타콤베가 있잖아요. 내가 가봤습니다. 19키로, 1만 9천 미터 굴속입니다. 그런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1만 9천 미터 입니다. 19키로라고 하더라구요. 1만9천 미터의 무덤입니다. 그 무덤은 우리들의 공동묘지 같은 무덤이 아닙니다. 훨씬 더 사람이 많이 묻히게 해놨습니다. 시체가 거의 닿도록 만들어놨습니다. 서랍같이 만들어놔서 시체가 서로 닿도록 해놨습니다. 내가 그 광장을 봤는데 너무 너무 놀라게 만들어 놨더라구요. 이 그림이 잘 보이지요 설명하겠습니다. 이곳이 시체 넣는 곳입니다. 양쪽이 전부 시체 넣은 관입니다. 제일 처음에 굴을 파고 여기에 관을 만들어 넣어 놓고, 그리고 또 밟고 내려가서 여기에 또 관을 넣고 합니다. 이렇게 꽉 차있습니다. 이 밑에서 쳐다보면 이 길이가 한 20미터씩 됩니다. 그러면 바닥에 통로가 있어서 쭉 갑니다. 이런 연결된 통로가 19키로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인 것입니까 여기서, 이 냄새나는 굴 속에서 사람들이 살은 것입니다. 시체 넣고 봉하고, 시체 넣고 봉하고 그랬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약간 다르게 그리기는 했습니다. 가운데는 하늘과 뚫려져서 공기가 통합니다. 통로로는 사람이 돌아다닙니다. 이렇게 이런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림을 보니 대충 조금은 알겠지요 거기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살았습니다. 교황들은 한꺼번에 각 나라 사람들을 막 잡아들여서 5명, 6명, 7명씩 죽여서 시체를 갖다가 한 자리에서 7명씩 8명씩 묘를 써준 것도 있습니다2974. 거기다 칼로 목을 쳐서 죽인 수녀들도 있는데 시체가 그대로 마른 것이 있습니다. 마치 이집트 피라밋의 미이라와 같이 말라서 그대로 있더라구요. 이런 것을 나로 보게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것을 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로서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아니, 바로 뒤집어엎고, 저주로 때려서 없애버리지 왜 그냥 놔두었습니까 그 의인들을 괴롭히는데 쳐 없애 버리지 왜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었습니까” 항상 나는 그럽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왜 그것을 가만 놔두었습니까 망하게 해서 바로 없애버리지요. 왜 그냥 놔두셨습니까” 그런 문제들이 가장 큽니다. “바로 처리해서 바로 멸망을 시켜 버리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과정, 그런 세상의 악함을 통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고, 또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심판을 했습니다. 결국 심판했습니다. 결국 로마가 망했습니다. 그 망한 장소에다 기독교 왕국을 설립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받고 쓰린 꼴을 받으며 죽은 세계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압니까 “하나님이 계신데 왜 안 도와주시느냐 이렇게 어려운데. 하나님만 위해서 사는데. 이는 마치 자기 애인을 위해서 여자가 같이 사는데 여자가 맞고 있고 고통받고 있어도 가만히 있는 것과 똑같다. 그래놓고서 조금 여자가 이기고 나오면 남자가 가서 취하고 산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오해합니다. 그렇게 되면 확 틀어집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고 끝까지 봐라. 어떻게 그 놈들을 처리하는가 봐라.” 그래서 끝까지 보니까 영원한 지옥을 보낸 것입니다. 끝까지 보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조금 잘못했는데 지옥 보내면 안 되잖아요. 그 행위를 보고, 행위가 죄악이 관영될 때까지 하게 놔두십니다. 그 행위는 하나님께서 여유 있게 잡아놨습니다. ‘여기까지는 설마 사람들의 그 악한 행위가 못 미치겠지.’하고요. 그 행위가 거기 미쳐서 넘어갔을 때는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 행위의 죄악이 관영할 때까지 보는 기간이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고통 속에 말도 못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핍박을 이기는 그런 과정이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각 나라 복음 들어갈 때, 천주교 복음 들어갈 때 계속 죽이고, 완전히 잔인하게 죽여 버리고 싹 멸종을 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또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되니까요. 옛날에는 그렇게 복음 전했는데, 요즘은 “나 좀 전도좀 해주세요.”하는데 왜 안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되지요. “나 좀 전도 좀 해주세요.”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거의 그렇습니다. 그렇게 봐야 됩니다. 나를 끌러 놓으면 나는 그렇게 합니다. 내가 세상 돌아다니면서 뒤집으려고 합니다.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내가 이런 것 끝나면 세계를 향해서 하겠습니다.” 그 때는 그런 전도 잘하는 사람을 데리고 다니고, 그러면서 전도하고, 세계 각 나라는 그 나라와 같이 할테니까 지금부터 하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는 안되니까요. 전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한 나라에서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보면 알잖아요. 전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한 나라들은 내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많이 거기서 거처하면서 계속 전도도 하고 오랫동안 같이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도 안 된 나라는 그렇게 많이 못 합니다. 시간을 안 줍니다. 전도 숫자에 의해서, 그 비율에 의해서 있으니까요. 그리고 한국은 가장 기독교의 핍박도 많았고, 천주교의 핍박이 가장 많이 있었습니다. 아주 희생도 많이 당하고, 순교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너무 상상도 못하게 많았습니다. 지혜롭게 슬기롭게 해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같이 했습니다. 제사도 같이 지내면서, 조상들을 잘 섬겨야 된다고 같이 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 한국에 복음 넣을 때 그렇게 무섭게 넣어주었습니다. 죽이니까요. 죽이고 때리고 그러니까요. “이 놈들이, 다른 종교를 전해 이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 조상을 섬겨야지, 이 놈들. 무식한 놈들.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한다고 해” 그래서 선교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듣습니다. 우리는 모르잖아요. 어떻게 복음이 들어와서 안치되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섭리사의 모든 복음의 과정을 들어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제일 처음에 이 복음을 시작했을 때를 모릅니다. 결국적으로 우리 한국의 평양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옛날에 남한과 북한이 안 갈라졌을 때 평양 쪽으로 와서 거기에 문화 예술이 커지고 정치가 좋아지니까 거기서 복음을 편 것입니다. 다 쫓겨나고 얻어맞았지만, 약을 갖다가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옷도 주고 그랬습니다. “이런 옷을 왜 우리가 입느냐 우리 좋은 한복이 있는데. 이놈들, 아주 원주민들 같은 놈들이구먼. 이렇게 작은 침으로 꾹 찔러서 낫게 해야지, 무슨 주사를 갖고 해 이 무식한 놈들이구먼. 저 놈들 무식하다. 그런데 낫기는 빨리 낫는다. 몸이 빨리 회복되니까 좋기는 좋다. 그런데 침 대롱에다 하는 방법은 없나 주사를 꾹 찌르게.” 그렇게 도와주고, 머슴살이하듯이 종같이 도와주었습니다. 성경을 읽게 해주어야 되는데 안되었습니다. 그 때 살기를 웃기게 살았잖아요. 벽도 못 바르고 흙벽에서 그냥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벽 바르라고 성경을 주었습니다. 성경을 주니까 성경을 안 읽고 이것을 찢어서 다 벽을 발라 놓고서 나중에 읽어본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공경치 않으면 까마귀들이 눈을 빼가리라.”는 것을 보고는 “아, 이것 보니까 좋은 책이네. 아주 극적인 책이네.”했습니다. 또 보니까 “신을 공경하라.”해놓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이렇게 해놨습니다. 이런 것을 읽고 궁금하니까 물어본 것입니다. 그 때 살살 돌려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교리를 제대로 못 내놓지만, 옛날 그 때는 성경도 제대로 못 내놓았습니다. 전혀 불신하니까요. “아, 이것이 누구 섬기라는 거야” “조상들을 섬기면서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도 섬기라는 거야.”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 안 섬겼는데” “아니, 옛날에는 섬겼다. 섬겼었는데 안 섬겨서 이렇게 되었다. 우리 나라도 그렇게 했다. 옛날 조상들은 다 하나님을 섬겼다.” “아, 맞지. 하나님 신을 섬겼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하면서 계속 넣어주고, 친구가 되어 가면서 복음을 넣고 그런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래도 조금 덜했습니다. 핍박이 약간 덜했습니다. 천주교는 너무 너무 십자가를 지는 그런 고통과 죽음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천주교는 아주 상상도 못하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 할아버지 때는 고통 많이 받았지만, 여러분들 아버지 때는 조금 덜하지 않았습니까 문화 혜택이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은 더 덜하구요. 그래서 잘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도 보십시오. 한국이라는 민족을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 각 나라도 보십시오. 옛날에 얼마나 고통 받았는가요. 일본은 원자폭탄이 터졌고, 다 포기했는데 다시 또 일어났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고통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터전 위에서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그 위에 이 부러운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각 나라는 전쟁들을 얼마나 했습니까 우리 한국도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습니까 피바다가 되었고, 수천만 명이, 1천 5백만 명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손해가 가고, 후유증이 상상도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 터전 위에서 오늘이라는 나라가 있고, 오늘의 현실이 있습니다. 옛날의 복음도 그랬고, 종교 역사도 그러했습니다. 다 그 피눈물나는 역사를 겪고 왔습니다. 그래서 점진적으로 좋아졌습니다. 이런 세계를 겪고 왔습니다. 현실을 보십시오. 이제는 육신이 안 죽지 않습니까 “마음으로만 죽어주어라. 마음으로만 죽어주어라.”그래서 마음의 십자가 지고 끝납니다. 그러나 옛날 같으면 그냥 갖다가 죽여 버렸습니다. 예수님 때만 해도, 2천년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면서 자꾸 좋아졌습니다. 천주교 때만 해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개신교 일어났다고 해서, 루터가 종교개혁 일으켰다고 해서 거기 또 신경을 써야 되고, 싸워야 되었습니다. 신교인들, 개혁종교인들과 싸움하고, 울고 짜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안 봐서 얼마나 싸웠는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거기 유럽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더라구요. 전쟁에 환멸을 느끼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엄청난 터전 위에서 개신교가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또 천주교의 퇴폐된 것을 뒤집어야 된다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새롭게 하자.” 그리고 또 달아서 “수고하고 애썼으니까 이제 새롭게 하자. 우리 모두는 무릎도 그만 꿇고,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신앙 생활을 하라.”하시며 평안한 세계를 주었습니다. 고깔 뒤집어쓰고, 남자 여자 못 쳐다보게 만들고, 얼마나 엄청났는지 압니까 시대 맞추느라고 그랬습니다. 시대 사람들이 남녀 부동석이라고 남자와 여자를 같이 못 앉게 하니까 “너희들 종교 하려면 고깔 뒤집어써라. 서로 못 쳐다보게 하라. 책임져라. 그렇게 안 하면 죽인다.” 이렇게 하면서 그 무서운 세계를 겪어 왔습니다. 잔다르크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400년 동안 그를 불신자로 보았는데, 400년 후에 어느 신부가 꿈을 꾸었는데, “나는 억울하게 죽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교황청에 가서 얘기해서 결국 성녀로 추대하고 그랬지 않습니까 400년 후에요. 이런 고통을 받고, 눈물겨운 것을 예수님은 보시며 왔는데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아팠겠습니까 그런데도 개인까지 돌아보시고, 지금도 그 지구상에 있는 그 엄청난 천주교, 개신교를 다 돌아보시면서, 영계까지 돌아보시면서, 우리를 이렇게 살피고 함께 하십니다. 애인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강림했고 하나님의 시대가 왔으니까 늘 살피는데, 우리가 알아서 화끈하게 할 때 예수님께 큰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걱정거리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걱정거리 안되게 할 때 너무 크지 않습니까 이것을 늘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참으로 진짜 대단하시고, 다시 우러러봅니다. 얼마나 심적 고통을 받으셨습니까 십자가 졌을 때같이 계속 고통을 받고 오지 않으셨습니까” 자기 사랑하는 자들을 갖다가 두드려 패고, 애인은 두드려 패고, 찌르고 죽이고 할 때 그것을 뻔히 봤는데요.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가 끊이지 않고 계속 해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섭리사가 오니까 또 섭리사에 강림하니까 섭리사에 또 어려움이 오고 핍박이 왔습니다. “참아라. 너희들이 참고 견디어라. 너희 선지자들도, 전에 있던 사람들도 이렇게 어려움을 당했느니라. 참아라. 모세도 받았다.”하시면서 그 때 당시에 위로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너희 선지자들, 옛날의 사도들이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 성경을 봐라. 이것은 일부 쓰여진 것이다. 일부다.” 천주교에 우리가 안 가봐서 그렇지, 천주교에 가서 들어본 사람들은 너무 엄청난 잔인한 꼴을 다 가르쳐줍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엄청나니까 안 가르쳐줍니다. ‘또 이런 것이 있을까’하며 무서워서 안 다니려고 하니까요. 그런 것을 겪으면서 현시대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에 가니까 예수님이 “천주교를 왜 그렇게 의식하느냐 왜 의식하느냐 내 집인데. 들어가서 기도도 하고 그래라. 무엇을 의식하느냐 참 나쁘다, 너. 왜 거기를 의식하느냐 네가 지도자인데. 네가 의식하면 애들도 다 의식하는데.”그래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책에다 써버렸습니다. “외가집이나 똑같은데. 왜 외가집을 나쁘다고 하느냐 외가집에 대해서 왜 나쁘다고 해 너희 어머니가 외가집에서 쌀 갖다가 너희들 먹이고, 너는 매일 외가집에 가서 누구보다 친해서 자주 다녔잖아. 그런데 왜 나쁘다고 하느냐” 이렇게 천주교도 내내 예수님 것입니다. 천주교라는 것은 “예수님 종교.”라는 그 말입니다. 이름을 그렇게 지어서 천주교, 개신교하면 우리는 완전히 다르다고 아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이름도 다 다른데요. “큰형, 작은형, 자기가 이름이 다르다고 그렇게 의식하고 지내느냐 너희 아버지, 너희 어머니 이름 다르니까 다르게 보겠네. 천주교란 하늘 천자에 주님을 써서 주님의 종교라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과 주님의 종교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되지 않느냐” 그래서 유럽에 가서 내가 알고서 성당에 가서 노래하고, 성당에 가서 지휘하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왔다고 하니까 “으악! 너무 좋다.”하며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가끔 하나씩 이해를 못 하고 “왜 여기서 큰소리치고 그러느냐 너희들 교회에 가서 그래라.”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거기에 있을 때 천주교가 하나 안 된다고 하나되게 해달라고, 교황청에 큰 변혁을 일으켜 달라고 했을 때 서로 하나 되었습니다. 430년 만에 하나 되어서 손잡고 “우리는 구원이 같다. 우리는 한 형제들이다.”하며 그렇게 430년만에 하나되지 않았습니까 애굽 나라에서 400년 만에 서로 하나되듯이요. 지금은 얼마든지 이유를 붙일 수가 있습니다. 서로 구원이 같으니까 의식 없이 할 수 있는데, 지금도 또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섭리사에도 천주교에서 온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큽니까 “기독교는 똑같은 세계다 다 한 형제들이다. 똑같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똑같이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고, 성령님을 믿고 하는데, 무엇이 다르냐 다른 것이 없는데.” 다만 그 시대의 지도자를 하나 더, 나를 중심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그들의 목사들을 중심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뭐가 다릅니까 다른 것이 없는데요. “예수가 나쁘다. 하나님이 나쁘다.”고 그랬습니까 “예수가 실패했다. 예수가 뭐했다.”합니까 우리는 맨날 자랑하고 좋아하는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떳떳하게 전하고, 이 동영상도 보여주고 막 그러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에 나로 인해서 핍박을 받는다.” 나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전하고, 따라오다 보니까 정말로 갖은 욕을 얻어먹고, 비난받게 되고, 나로 인해서 나 때문에 비난받고, “너희 선생은 이렇고 저렇다. 웃기는 놈, 미친 놈을 따라가느냐 너는 또라이다.”하고 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교회 안 나왔을 때는 그들도 손아귀 속에 있던 애들이잖아요. 그런데 여기 오고서는 양이 되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욕하면 회개하느라고 한 달씩 걸리고, ‘이것이 회개되었나’ 확인하기 어렵거든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뒤집어지면 안 됩니다. 이제 뒤집어져서 선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화살이 없는 것입니다. 총을 다 버려서 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냥 참고 견디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이제 그냥 가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총을 버려야, 둘 중의 누구든지 총을 버려야 먼저 아벨이 된다. 하나님은 그 편이 되신다. 총을 버려야 된다. 화살을 버려야 된다. 폭탄을 버려야 된다. 무기를 버려야 된다. 버리는 사람이 아벨이다.” 우리가 버렸잖아요. 버렸으니까 총가진 사람이 대들면 놀랍니다. 너무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평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할 수 없다. 나로 인해서 너희가 그런 고통을 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들이 받는 상이 크다.” 결국 아벨은 총 없는 사람이고, 그리고 해를 안 주는 아벨 편은 아벨 편끼리 갖다놓고 살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받을만하잖아요. 사망에서 나오니까요. 여러분들이 항상 이상 세계를 원했잖아요. 기쁨과 이상 세계를 항상 원해오지 않았습니까 누구든지 그랬습니다. 그 이상세계가 왔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의 구원, 첨단 구원을 받았습니다. 6천년 역사 끝나고 최대의 대우받는 구원 역사에 들어왔으니까 받을만하잖아요. 무엇을 그렇게 칼로 찌르고, 죽이고 합니까 우리 섭리 역사가 오면서 누구 하나를 죽였습니까 우리도 안 죽였지만 우리도 안 죽었습니다. 누가 때려 죽였습니까 미치광이들이 서로, 교회 나오다가 안나오니까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모두 싸우고 패고 했는가는 모르지만 그런 특별한 것들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남을 안 죽이고, 그들도 우리를 안 죽였습니다. 다만 심적 고통이요, 심정의 십자가 역사이니까 심적 고통이고, 정신적 고통이고, 머리 쑤시는 고통이고, 혈기 나고 분노하는 고통이지 사실상 어떤 몽둥이 갖고 싸움한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없었습니다. 순간 애들이 화나서 후닥닥 몇 번 쥐어박고, 때리고 한 이런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요. 이러한 세계를 겪으면서 우리 섭리도 왔는데, 사실상은 피흘린 것은 없었습니다. 피를 흘렸다면 열심히 하다보니까 코피가 나고 그랬습니다. “나로 인해서 너희를 욕하고 거슬리고 악한 말을 했을 때는 복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 영원한 사망의 세계에서 매여서 그들과 같이 살았어야 하는데 벗어나서 새로운 역사에 와서 사니까요. 우리 희망거리는 무엇입니까 “좋은 집을 지어서 좋게 산다.”는 집 짓는 것이 희망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 개발해서 거기서 멋있게 살아보자.” 이런 희망이 아니지 않습니까 영원한 희망입니다. 영원한 희망과 소망을 위해서 의로 투쟁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것은 해볼만 하잖아요. 한 두 명도 아니고요.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제일 처음에 이 복음을 시작할 때는 하나 전했는데 이단 소리 들었습니다. 하나 전했는데요. 왜 그런가 하면, 자기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단의 이자가 다를 이자(異)잖아요. 자기와 사상이 다르고, 자기가 배운 것과 다르니까 이단이라고 금방 해버리더라니까요. “이것 이단 아닙니까 이단의 교리 아닙니까” 그렇게 아무리 잘해도 이단소리를 안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하고 아무리 잘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니 얼마나 잘했습니까 그런데도 이단 소리 들었습니다. 자기와 사상이 다르니까 “아니다.”고 배척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복음 안 전하면 어떻게 합니까 복음을 안 전하면 안전(安全)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려니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듣고서 따라올 사람을 찾아야 되는데, 그 사람을 찾으려면 시간 다 갑니다. 하나씩 확인하려면 시간이 다 갑니다. 어차피 확인하려면 복음을 넣어봐야 하니까요. 그래서 복음을 넣을 때 1차, 2차, 3차, 4차 이렇게 계획적으로 넣어야 됩니다. 그래서 복음 넣을 때는 연구를 해야됩니다. 그러니까 한번에 확 내놓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들어보려고 일부러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와!” 그럽니다. 그럴 때 분별해야 됩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전하는 사람이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이 무엇인가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인데 이것 이단 아니냐’하고서 들어보려고 일부러 “아멘. 아멘. 와, 나는 길을 찾고 다녔어. 나는 길을 찾고 다녔어.”합니다. 그런데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이가 아멘 아멘하는데 약간 수상한데 이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보여주세요.”하고 꿈에 보면 뱀이 막 자기를 물려고 그럽니다. 그러면 ‘아, 안되겠다.’하면서 살짝 모사 써서 서서히 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초근초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음식을 맛있게 먹었어도 체질 법칙에 벗어나면 배탈 나 버린다니까요. 의사들, 그렇지요 의사들은 의학법으로 설교하면 잘 합니다. 의학법으로 같이 하면서 “이와 같이 이러하다. 이와 같이 이러하다.”하면 잘 합니다. 그러니 의학도 같이 가르치면서 다 그렇게 하십시오. 절대적이잖아요. 복음을 전할 때에 1차에 전초를 해야 됩니다. 인사하고, 이야기도 하고요. “너, 나에게 이러는 목적이 무엇이냐” “나,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에이, 나는 사람 사귀기를 싫어해. 나는 환멸을 느꼈어.” “그래 나는 안 사귀어 봤잖아.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나는 너에게 영원히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물질 손해 안 끼친다. 그러면 되었잖아. 그리고 무슨 특별한 정신적인 손해를 끼치면 안 사귀면 되잖아.” “그럼 가까이 지내보자.”하며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너, 내가 더 힘이 되지 않았느냐 뭐, 내가 도울 것이 있느냐” “내가 돈 같은 것 때문에 그러는데, 어떻게 너에게 돈 달라고 할 수 있으며, 네가 돈을 벌 수 있겠느냐” “어 할 수 있지. 너 나 무시하지마. 내가 쌓아놓은 것은 없지만 나를 만나고 잘 될 것이다. 그러면 되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돈은 안 주어도 네가 잘 될 것이다. 어떻느냐” “정말로” “그럼. 사실상 너, 나 만나기 어렵다. 그 많은 중에서 만난 것이다.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알았어” “그러자. 우리 조용한 데서 이야기하자.” 이렇게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복음 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아, 멋있다. 무엇 좀 하나 묻겠습니다.” “왜요” “내가 지금 잠깐 이야기합니다. 여기 학원 만들어 놓고 우리 끼리끼리 모이면서, 모델들 교육도 시키고 재미있게 살려고 합니다. 모델 배우고서 특별히 모델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틈틈이 시간 내서 운동도 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원이 몇 명 안되어서 모집하러 나왔습니다. 아무나 하지 말고, 어느 기준이 되는 사람들만 하자고 해서 한 20명만 모집하러 나왔습니다. 나도 하나만 딱 해갖고 오라고 해서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어디인데요” “저 쪽에 있습니다.” “나, 하고싶습니다. 무엇 무엇 합니까 나는 키만 컸지 모델 전문부터 하고싶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안 하고 그냥 재미로 우리들끼리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고싶으면 모델 활동할 수 있는 길을 또 열어주는 그런 입장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나도 키는 크지 않지만 들어왔습니다.” “아, 좋습니다.” 이러면서 이야기를 해서, 문화와 예술을 밟으면서 서서히 해도 좋지 않습니까 모델 활동하는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잘 하더라구요. 치어들도 하구요. 요즘 치어들이 치어 활동 시대가 아니니까 자꾸 모델로 많이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치어들은 다른 방법으로 또 하면 되잖아요.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라. 지혜롭게 하라. 너희들도 키가 있으니까.” 어떤 사람에게 “너는 키가 작은데 모델 하고 싶으냐”하니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키 작은 모델들로만 단체를 만들었다. 거기 와라. 사회 모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운동도 하고, 재미있게 뛰고 달리면서 같이 돕고, 같이 어울리자. 심심하니까. 같이 어울려 살 때 너무 좋지 않느냐” 그렇게 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할 때 이렇게 여러 가지로 전하도록 하라. 지금은 복음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냐” 누가 계속 나발불고 나쁘다고 해도 참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동네 사람들이 나쁘다고 해도 안 싸웠습니다. 나를 보고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안 싸웠습니다. ‘맞아. 나는 미쳤어. 예수님께 미치고, 하나님께 미쳤어. 진리에 미쳤어. 맞아.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밤이 되면 잠만 자고 술만 먹고 노는 사람들이 알리요.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지.’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내려가면 나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 자네 명석이는 매일 산에 있으면서 기도한다면서 언제 내려왔어” “무슨 산에서 매일 기도해 나, 나무하고 그러는데. 저기 산을 봐. 감람산을 봐. 저기 나무 내가 다 해놨는데. 굴속에 나무를 엄청나게 해놨는데.” “자네가 했어” “기도도 하지. 그럼. 그런데 내가 기도하는데 농사짓는데 큰 피해가 갔어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비 많이 오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런다고 비가 와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하잖아. 자네가 기도한다고 비가 오나” “아니, 옛날 조상들이 하나님께 기우제 지내고 그러면 비가 오지 않았느냐” “아, 그것이야 비가 오지.” “그런데 내가 하는 것은 비가 안 온다고 무시하지 마.” 그리고 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꼭 명심하고 한가지만 듣게 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크는 것을 보라. 어떻게 크는가 보라. 다르게 클 것이다.” “사람들은 다 그런 이야기하지.” “내가 어떻게 크는 것을 앞으로 보라.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르게 크는 것을 봐라. 형님도 모두 같이 볼 것이다. 그 때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사상이 다르다.” “그러면 좋지, 뭐. 큰 사람되면 좋겠어. 그렇게 해. 아니, 말이 많더라구. 명석이는 약간 정신이 좀 이상하다고 하고 하늘과 통한다고 하고 그런다.” “아, 그럼. 하늘과 통하면 너무 좋지 않느냐 나는 윗 사람과도 통한다. 그렇게 통하면 좋지 않느냐 정치인들도 통하고 많이 통한다. 나 말을 안 했지만 솔직히 많은 병든 자 고쳐주고 돌아다니면서 높은 사람들 많이 통하고 있다. 상상도 못하는 사람과 통한다.” “그러느냐 대단하네.” 그런 이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결국 그들이 나에 대해서 깨닫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배우지 않았습니까 “아, 그래도 그놈은 난놈이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들려도 났어. 그 군중 만중이 쫓아다니는 것을 봐. 와, 차가 한번 오면 5천대씩 와. 우와! 났어.” 그럽니다. 그러니 욕을 얻어먹어도, 뭐해도 그렇게 크고 보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합니다. “텔레비전에 나왔대. 우리 마을은 탈렌트로 나오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욕 얻어먹는 사람으로 텔레비전에 나왔대.” 그래도 군중이 모여듭니다. “왜 그렇게 군중이 따라다니고, 모여드느냐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이야” “지금은 외국 가서 한 대. 외국 사람도 엄청나대. 몇 십 개국 나라에 있대. 나기는 났어.”합니다. 결국 옛날에 한 말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런 말을 했어. ‘앞으로 나 크는 것 보라.’고 하더라. 자네에게는 무슨 이야기했어”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비웃지만 언젠가는 나를 보고 존경한다고 그렇게 했다.” “나에게는 이 지역에 큰 사람이 난다고 하더니 자기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다 이야기를 했구먼. 우리만 바보구먼.” 지금은 그럽니다.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동네서 구설수에 오르고, 진산면 금산까지 소문났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을 보십시오.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이요. 결국은 다르게 되었잖아요. 지금은 그런 종교로만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 그림은 다른 전문가보다 훨씬 못 그립니다. 그런데도 내 그림을 알아줍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이 내 그림을 알아주니까 그것이 더 뜨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그림을 알아주니까요. 나를 따르는 사람이 많은데 내 그림을 알아주니까 내가 더 못 그려도 내가 뜨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그려도 더 초상화같이 못 그렸는데도 나를 알아줍니다. 제자들은 초상화같이 잘 그립니다. 나는 그만큼 못 그립니다. 그냥 깔짝 깔짝 그리는데 내 그림을 더 알아준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린 이 그림도 알아줄 것입니다. 여기에 사인만 딱 하면 알아줄 것입니다. 그러면 더 알아줍니다. 다른 사람이 거기에 가서 하루 종일 세밀하게 그려 왔어도 선생님이 그린 이것만 못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사람들이 깔짝 깔짝 해도 큰 사람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뜨잖아요.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석막리 사람들 아무리 누가 그림을 잘 그려도 내 그림만큼 뜨겠습니까 못 뜨지요. 내가 마음먹고 한 시간만 그려보십시오. 내가 마음먹고 한 시간만 정성스럽게 그려보십시오. “한시간은. 아까워서 어떻게 한 시간을 그리느냐 신필로 그리는데. 한시간에 아무리 못 그려도 그래도 10장을 그려놔야지.” 놀면서 그려도 10장은 그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보면 “아, 그림 별 것도 아닌데, 막 추종하고 좋아한다.”합니다. 별 것도 아니라구요 앞으로 1년 가보십시오. 2년 가봐, 3년 가봐, 10년 가봐, 20년 가봐, 50년 가봐, 100년 가봐, 천년 가보십시오. 예수님이 요즘에 그림 한 장만 내놓았어 보십시오. 상상도 못하고 엄청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 내 손을 통해서 그림을 그릴까요 하나님, 내 손을 붙잡고 그림을 그릴까요 내 손을 통해서 지휘를 한번 해볼까요 내 입을 통해서 한번 말씀을 해볼까요 내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호령을 한번 쳐볼까요 예수님, 나를 통해서 시를 한번 읊어볼까요 나를 통해서 나와 같이 한번 꽃을 길러볼까요 표적이 일어나게요.”하니 얼마나 멋있습니까 “나로 인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도 나와 같이 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내가 축복하니까. 남편이 하는 것을 부인이 하면 좋겠다. 부모가 하는 일을 자식도 하면 좋겠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앞질러 가면 안 좋다. 앞질러 가지 마라. 제자가 선생과 같이 하면 만족하다. 그래도 선생은 선생이다. 나와 같이 노래도 하면 좋겠다.”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래하면 내 노래 듣고싶잖아요. 내가 노래를 더 못해도 내 노래 듣고싶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나로 인해서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두 가지 받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수십 가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냥 줄 수는 없으니까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이기면서 가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이 살았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참 수고했습니다. 하나 하나에게 말하는 소리 들어보면 너무 너무 합니다. 내가 하듯이 그랬습니다. 내가 유럽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한 마디만 해줄까요 얼마나 고통스러웠든지 한 마디만 해줄게요. 들으면 여러분들 가슴이 찡할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불렀는데 말을 안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말을 할 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아예 대답하면 안되니까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답 하나 안 하나 나는 이야기했습니다. “참으로 내가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이 때에 내가 부럽습니다.”하며 예수님을 궁금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내가 너무 너무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너무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이 사명을 갖고서도 부러워할 사람이 있습니다.”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구인지 압니까 “거지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나는 거지가 너무 부럽습니다.”했습니다. 왜냐구요 나는 너무 핍박과 고통과 머리 쑤시고, 아프고 몸부림치는데, 거지들은 그런 것 안 하잖아요. 그 머리 썩고, 골 썩고, 심장이 타고, 심장이 불타는 일을 안 당하지 않습니까 나는 나 자신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받는 고통을 쳐다볼 때, 그 악한 자들로 행악자들이 나에게 고통 주는 것을 생각할 때 그랬습니다. 그래서 내가 천년동안 가게끔 잔인하게 글을 썼습니다. 나의 펜 끝은 너무 강하잖아요. 강하게 써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때 받던 것들을 다 같이 읽어보게끔 써놨습니다. 그래서 “거지가 정말 부럽습니다. 지금은 거지 좀 하면 좋겠습니다. 거지들은 아무 고통 안 받으니까요. 그것을 볼 때 거지가 부럽습니다.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로 볼 때는 거지가 뭐가 좋으냐 너도 거지 해봤잖아. 그래도 그 전에는 그런 속 안 썩었잖아. 산에 있을 때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춥고 하니까 집이나 하나 짓고 살면 좋겠다.’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서 그들을 위해서 속을 썩고 고통을 받으니 네가 받는 고통을 통해서 나도 깨달아라.”하셔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괜찮으면 괜찮은데 머리가 쑤시고, 소리가 너무 나서 못 견디겠습니다. 머리에서 너무 소리가 납니다. 귀에서 소리나고 머리에서 소리나고, 하루 종일 벌레가 들어간 것같이 소리가 납니다. 환청이 들리고 계속 들려서 못 살겠습니다. 그래서 심란해서 글을 못 쓰겠습니다. 그래서 그러는 것입니다.” “누가 너에게 속을 썩으라더냐 뭐하러 속을 썩느냐 왜 자꾸 속을 썩이느냐” “자꾸 속썩이는 전화들이 옵니다. 여기서 보고 들어오고, 저기서 보고 들어오고, 법정문제 보고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속을 썩입니다.” “그런 보고 받지 말아라.” “자구 나에게 물어보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지금은 딱 끊어버렸습니다. 그런 것 다 안 받잖아요. 안 받습니다. 그 대신 기도를 해줍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전쟁하는 사람은 거기 전방에서 전쟁을 해야 됩니다. 그 전쟁하는 상황을 그 나라 임금에게 이야기하면 임금이 정신 못 차려서 정치를 못 합니다. 정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들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전쟁하는 사람이 그 앞의 상황 그대로를 임금에게 전해주면 임금이 ‘이것 안되겠다.’하고 군복 입고 막 가고 싶다니까요. ‘나라도 가겠다.’하고요. “백성들 다 군인 만들자.”이렇게 됩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옛날 왕들에게도 밑의 것만 보고하고 위의 것은 보고 안하고 그랬습니다. 다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는 이렇게 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차타고 오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그 아들이 외동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에게 “차사고 났습니다. 조금 어렵습니다.”하니까 그냥 심장마비로 죽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들은 기절했던 것입니다. “병원에 실어다 놨는데 아직 숨을 못 쉬고 있습니다.”했지만 기절했던 것입니다. 살아나 보니 엄마만 죽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극한 상황 가운데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더러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의 소리만 들리게끔 계속 밀어붙이니까 그 소리가 작아졌습니다. 들리기는 들립니다. 삐하고 들립니다. 그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기도를 합니다. 이제는 안 들릴 때까지 글을 씁니다. 깊이 들어가야 되니까요. 여러분들도 아마 환청이 들릴 정도로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심적 고통이요, 정신적 고통입니다. “나로 인해서 핍박받고 고통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 사망의 주관권, 무덤의 주관권을 벗어났으니까요. 이제는 무덤 주관권이 계속 없습니다. 그런 것은 예정에 없습니다. 한번 지나가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지 않습니까 지나가 버리면 그냥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살았으니까요. 죽었을 때는 맥을 못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살았으니까요. 살았으니까 말하잖아요. 살았으니까요. 부활되어서 영이 살았으니까요. 영이 살으니까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영이 사니까 꿰뚫어보지 않습니까 “그러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보람이 있지 않느냐 아무 것도 없이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고통받는 보람이 있지 않느냐” 그냥 목사들 따라다니다가 고통받으면 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오면 핍박을 1백 배, 2백 배, 3백 배 받아도 따라다닙니다. 왜 뭐가 있으니까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야, 저놈들은 어떻게 저렇게 잔인하게 씹고, 1차 2차 3차 방송 나오고 창피를 주고 해도 또 따라 다니느냐”합니다. 물어보면 “어. 나 그분 따라간다. 그 훌륭한 분 따라간다. 아, 그 분이 최고야. 내 인생의 최고야.” “너 돌았느냐” “돌기는 뭐가 돌아 임마. 네가 돌았지.” 이런 하나님의 사상과 정신을 전해주니까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 분은 약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분이 전하는 말씀을 보고 나는 따라간다. 사람이야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지. 사람이 수만 명씩 따라 다니다보면 어려움이 있고, 세계를 지도하다보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있겠지. 그러는 너는 약점 없느냐 너의 눈에 그분에게 티가 있으면 너는 들보가 있다, 이놈아. 양심이 있지. 한번 생각해봐라. 너는 하나님도 믿지 않으면서, 양심이 있어야지. 이놈아. 너는 더 한 놈이야. 하나님도 믿지 않잖아. 그 분은 우리 전체 세계적인 젊은이들을 사망권으로 가는데 촥 생명권으로 인도해서 예수님 믿게 만들고 하나님 믿게 만들어 주었단 말이야. 그러니 그 분이 혹시 잘못되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좋아할 것이 아니냐 네 일이나 잘해! 매달린 돼지가 누워있는 돼지 나물하고 있어” 이러면서 담대하게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로 인해서 핍박받는 것은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 선지자도 이렇게 핍박하였느니라. 하늘의 상이 크다.” 그것은 다 이야기 못합니다. 계속 상을 베풀어주려고 합니다. “환난을 이긴 자에게 욥같이 축복해주시고, 다윗같이 축복해주시옵소서.” 다윗이 얼마나 피눈물나는 고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기름 부은 다윗인데요. 기름 부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만들려니까 그 때에 노골적인 고통을 받으면서 ‘왕이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다. 내가 왕을 할 때는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되겠다. 자기 원수를 사랑해야지 절대 그러면 안되겠다. 백성을 다스려야지, 저것이 무슨 짓이냐’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받으면서 ‘아, 나는 저와 같이 해서는 절대 안되겠다.’ 깨닫고, 자꾸 고통을 받으면서 고통받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야, 섭리 나가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억해주도록 하라. 그리고 다시 오게끔 네가 길도 열어주고 잘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자꾸 인도해주고 그러니까요. 내가 너그러워지니까요. 1차 부활 때 부활이 되어야 됩니다. 1차 부활은 육적 부활이잖아요. 2001년도에요. 그 때 부활이 되어야 영적 부활에 들어갑니다. ‘1차 부활에도 안 살아났는데 영적 부활이 될까’도 걱정이 되고, ‘이치가 그렇구나.’그랬습니다. “그래서 한번 삐끄러지면 참으로 힘들다.” 여러분들은 삐그러지지 말고 열심히 어려운 환난을 이기면서 가야 됩니다. “너희를 위해서 상이 클 것이다. 너희가 참으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을 참은 것이 아니라 무엇을 참았습니까 “하나님을 따라가고, 주님을 따라가고, 이 시대를 따라가니까 보람이 있지 않느냐 따라 갈만하지 않느냐” 어떤 여자가 남자를 따라갈 때 욕을 얻어먹고, 고통받고, 어려움을 받고 그랬습니다. 여자는 사실상 그 남자를 어느 정도 압니다. 무엇을 하는지 압니다. 사실 그 남자는 백마 탄 초인입니다. 왕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저렇게 욕을 해도 따라가네. 저 여자 미쳤구나. 돌았구나.”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까 그 남자가 정권을 잡고 흔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요셉도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은 그렇게 열심히, 지구력 있게 해나가도록 하라.” 그러니까 참는 것이 곧 이기는 것입니다. 핍박과 어려움과 가정의 핍박과 어려움과 개인의 모든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떤 제자가 신입생이 그랬습니다. “저는 핍박받고 어려움이 있고 집에서 혼나고 그렇게 되었으니 그것만 알고 있으십시오. 그러나 선생님께 이야기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길이 여러 수십 개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나올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길을 발견했는데 그 까짓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10대도 안 어립니다. 저는 지금 20대에 접어들지만, 그런 각오가 있습니다.” 그렇게 편지가 왔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이미 내가 알았다. 이미 내가 기도할 때 봤다. 너인지는 못 봤지만 환상으로 보았기에 편지가 올 줄 알았다. 그래서 벌써 기도해버렸다.”라고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이미 내가 알았다. 알아서 벌써 기도하고 끝나 버렸어. 네가 그렇게 담대하고 그랬구나. 가다보면 괜찮을 것이다. 그것도 한 때다. 나도 우리 집에서 그랬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하니까, 모르니까 그렇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하다보면 다 풀린다. 환난도 한 때, 어려움도 한 때, 내를 건널 때도 한 때, 장마철도 한 때, 겨울도 한 때, 여름의 뜨거운 땡볕도 한 때 부모가 나 기를 때도 우리 엄마에게 막 해퍼붓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그 이튿날 가서 “어머니, 마음 아팠어”하면 “얼마나 아파 내가 못해주어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너에게 못해주어서 아팠다. 오죽해야 네가 그렇게 하겠느냐 잘되기를 기도만 해줄게.” 그러셨습니다. 그냥 풀어졌습니다. 부모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그런 것을 다 해소하고, 그 대신 앞으로 잘 하십시오. 열심히 잘하고, 그 전에 투덜대던가, 악평했던 것을 벗어나야 합니다. 악평하는 것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 악평하고서도 회개하고 다시 오면 괜찮습니다. 그러면 살은 것입니다. 그러나 악평하고 안 오면 죽은 것입니다. 악평했어도, 자체에서 악평하고 투덜댔어도 그것을 회개하고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투덜댔어도 잘하면 됩니다. 그래서 내가 그러잖아요. 내가 미리 기도해놨거든요. “얘들이 혹시 악평했어도 너무 힘들고 순간 마음이 뒤집어져서 그러니까 내가 다 용서해줄테니까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렇게 해주십시오. 아예 그렇게 처리를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으니까 여러분들도 꺼림하지 말고 열심히 하고, 악을 쓰고 열심히 해서 핍박받은 것에 보람을 느끼면서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2976.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모두 그렇게 하고,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해주시옵소서. 오늘 여러 종류의 말씀을 했습니다. 성령으로 마음에 감동과 감화를 시켜서 더욱 충만케 해주시옵소서. 주께서 말씀하시어 모든 신약 역사를 보고, 이 시대를 다시 보면서 시대 말씀을 들었으니 모두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다 고통을 받고 환난을 받고 어려움을 받기에 그것은 평생 두고도 이야기를 못 합니다. 그 6년 동안 받은 고통을 다 이야기를 못 합니다. 그로 인해서 “나로 인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또 내가 이들에게 말씀했으니 “나로 인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고, 그리고 상도 크다. 복도 크다. 받아라. 너희가 받고 잘되기를 원한다.”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과 의로우심이 이들에게 충만하고,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함께하며, 그리고 주 예수의 사랑하심과 은혜와 은총이 충만하며, 내가 이들을 모두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고 귀히 여기니 모두 시험들지 말고 하늘 뜻대로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고, 기도한 것을 그대로 받아 복의 근원이 되어주시옵소서. 모든 환난을 이기고, 어려움을 이긴 자들은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나오게 되고, 신약에서 성약으로 나오게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게 되고, 욥과 같은 축복을 받으며, 다윗과 같은 축복을 받으며, 여호수아같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와서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며 그 이스라엘 민족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환난을 이긴 자만이 최고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모두 그리함을 받게 축복해주시옵소서.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충만할지어다. 아멘. . 말씀 마쳤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분에게 안녕을 고합니다. 모두 말씀 잘 새기고, 열심히 애들 관리 잘해주고, 칭찬해주고, 강하게 하지 마십시오. . 각 부서의 조직이 안된 그런 부서는 전부 새롭게 조직하고 그러십시오. 한 3년씩 4년씩 한 사람들은 좀 임무를 바꾸어서 꼭 하도록 하십시오. 내가 여기서 다 아니까요. 다 물어보니까요. 자꾸 늘어지게 하지 말고 빨리 빨리 해주기를 바랍니다. 빨리 못하면 선생님께서 그냥 지시합니다. 컴퓨터 보고 그냥 지시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곤란하잖아요. 여러분들이 기른 사람들, 2세로 기른 사람들을 시켜서 꼭꼭 넣어서 본인들이 반드시 그들과 같이 일도 하면서 내가 주는 임무를 또 하고, 자기는 무엇을 하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대로 결재를 내릴테니까요. 그렇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한 2년씩 하면 다른 사람도 해야지, 자기만 계속 하는 사람들은 안 됩니다. 자기만 하지 말고, 한 2년씩 하면 자기도 좀 다른 사람에게 인계를 하라니까요. 다른 사람을 길러서요. 2년씩 했으면 많이 했잖아요. 그러면 밑의 사람은 계속 2년 동안 컸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시켜야 합니다. 혼자만 하면 안 됩니다. 탁 보면 누가 할 사람이 있잖아요. 누구를 시키면 되겠잖아요. 조금 기른 사람이 없으면 ‘안되겠구나.’하면서 좀 위에 있는 사람들을 시키고, 대리시켜서 그들로 하게끔 해야됩니다. 그런 것을 잘해야 됩니다. 몇 명 되지도 않고 20명, 30명, 10명 되는 그 안에서 그것을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못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도 조직했잖아요. 계속 여호수아 때도 조직하고 모세 때도 조직했습니다. 조직해서 항상 갔잖아요. 여러분들도 조직 안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기서 안녕! 바이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