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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05.03.17 (목)

목 새벽말씀

선포일
2005.03.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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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7일 목요일 새벽말씀 다시금오늘의새벽이돌아왔습니다.여러분들,잘있었어요? 새벽!새벽이라는것을 요즘에 새벽을 얼마나 중요한 시간으로 보내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중요하게, 귀하게 새벽을 보내니까 귀하고 중요한 하늘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쏟아져 오는 것입니다. 항상 조건 반사입니다. 조건을 세워야 거기에 해당되 는 것이 항상 온다는 것입니다. 거저가 없습니다. 온 세계의 각 나라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새벽을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 은 우리가 살았으니까 이제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잠자는 사람은 할 일이 많이 있어도 모르고, 잠은 자는 사람들은 좋은 데서 잠을 자는지 나쁜 곳에서 잠을 자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망권의 삶은 무심하고 한심하고 때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 러다가 잠을 깨고 일어나면 그 때서야 알지요. “하나님이 새벽에 역사 하니 우리도 새벽에 역사하며 일어나 빛을 발하자.” 천국이 와도 어려움이 있다. 이런 환난과 어려움들은 우리 신앙 생활하는 사람도 받고 있지만 신앙 생활 안 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 생활하는데 있어서는 누구든지 사는 데에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받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활하면, 어떤 누구든지 받습니다. 거지도 자기 생활하는 데에 그 나름대로 어려움을 받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자기 생활의 삶 속에서 어려움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어려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없는 것이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덜할 뿐이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천국이 오면 아무 고통도 없다. 희망 소망으로서 기쁨으로만 늘 산다.”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내가 기독교 다닐 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8654. “이 세상은 아예 상관없이 하늘로 올라간다. 공중으로 올라가 버린다. 전혀 근심 걱정이 없다.”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천국으로 오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천국이 오면 그럴 것으로 항상 생각했습니다. 선생은 그렇게 안 가르치고 “천국이 와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결혼하면 모두가 다 기쁨의 세계로만 산다. 결혼하면 늘 사랑의 기쁨과 희락으로만 산다.” 결혼하기 전에 부모들이 반대할 때는 “저 반대만 싹 없어지면 좋겠다. 부모를 떠나 둘이 결혼해서 멀리 떠나버리면 그 고통이 싹 없겠다.”합니다. 그러다 부모를 떠나 버렸으니까, 아예 다른 나라에 가서 사니까 부모가 반대하던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 가서도 생활의 고통, 어려운 고통은 연속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그렇다. 모든 존재 세계를 알고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가다가 그 문제가 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해결한 그것은 안 일어납니다. 부모를 떠났으니까, 부모가 없으니까 부모의 반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상 세계가 이루어질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가는 노정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제 없다. 다 왔다. 산도 없다. 계속 길만 나온다.”했는데, 가다가 산이 나오니까 ‘이 길이 아닌가보다.’하고 그냥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가르쳐주었습니다.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이제 전혀 없다.”했지만 또 있으니까 ‘이 길이 아닌가 보다.’하고 다른 데로 간다니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들으십시오. “그 날에는 모든 것을 다 밝히 말하리라.”하셨습니다. 지상천국은 더 하면 더 좋아진다. “왜 역사를 가는데 이렇게 어려움이 있느냐? 핍박이 있느냐? 고통이 있느냐? 지상 천국인데.”하는데, 그래도 지상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천국입니다. 그래서 지상천국인 것입니다. 천상천국 같으면 그런 것이 없지요.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거기만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지상천국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복지에 갔을 때가 천국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가 천국입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싸웠잖아요. 적이 있었잖아요. 신광야에서도 적이 있었는데 가나안 복지는 적이 더 많네요. “여기 아니다.”하고 그냥 갔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놈의 새끼들, 더 좋은 곳이라 더 좋으니까 더 지랄들 하네.”하며 싸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더 역사 하셨습니다. 더 역사 하시고, 더 함께 하니까 거기서 천국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나안 복지도 지상천국입니다. 다 싸운 다음에, 다 끝난 다음에는 더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를 똑똑히 적어야 됩니다. ‘아하, 과거보다 좋아졌으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천국은 눈보라가 쳐도 재미있다 오늘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섭리인데, 하나님의 역사인데, 기쁨의 역사이고 이상의 역사인데 왜 어째서 이렇게 고통이 있지? 왜 이렇게 환난이 있지? 왜 핍박이 있지?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천국이 되어도 그런 일은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눈보라가 쳐도 재미있다. 너무 즐겁다.” 그랬습니다. “아, 그 때가 되면 너무 좋다. 눈보라가 치고, 비바람이 불고, 차가운 북풍한설이 불어도 재미있다.”했습니다. “계속 떨리는데 무엇이 재미 있느냐? 너무 고통스러운데.” 그런데 스키 타는 사람들에게 가보십시오. 너무 재미있어서 거기서 완전히 미치고 있습니다. 떨면서도 “너무 좋다. 와, 너무 좋다. 한 바탕 더. 한 바탕 더. 한번 더 뛸거야. 한번 더 가야지.”그럽니다. 그렇게 하면서 추위도 이기고 어려움도 이기면서 가는 것입니다. 천국 세계는 그렇습니다. 이제는 깨닫겠지요? ‘아, 그렇구나.’ 내가 늘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 집에서 앉아서 새벽 예배 나올 때 자고 있다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또 졸립니다. 그 때 어떻게 하라고 했지요? 방법이 무엇이지요. 딱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확 일어나 버려야 됩니다. 거기 조는 장소를 떠나 버려야 됩니다. 떠나서 어디로 가지요? 목욕탕에 가야지요. 목욕탕에 가서 막 물을 끼얹어야지요. 그런데도 졸립니까? 그러면 그 때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지 압니까? “아, 잘 뛰쳐나왔다. 지금도 거기 앉아있었으면 계속 졸 것인데.” 5분 졸았는데 교회에 와보니까 5분 설교를 못 들으니까 엄청난 것입니다. 5분 설교를 못 들었습니다. 앞의 5분 설교를 못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계속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묻지 마라.”합니다. “나도 지금 설교 듣느라고 정신 못 차린다.” “아니, 뭘 그러냐? 묻는데 대답 좀 해주지.”합니다. 자기는 그것을 생각치 않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물어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슬럼프에 빠져 있다거나, 엎어져 있다고 할 때는 후닥닥 일어나라.”라고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안 사용합니다. 그 비법을 안 사용합니다. 내가 그것을 수백 번 해본 것입니다. 도(道)라는 것은 하늘로부터도 받지만, 본인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닥닥! 후닥닥! 후닥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려움은 자기로 인해서 온다. 대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자기로 인해서 오는 것이 많습니다. 방법론을 잘못했을 때 자기로 인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치 않습니다. 대개는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오지? 왜 이런 일이 오지?’합니다. 제일 처음에 보면 모든 일이 자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자기로부터 오니까 자기를 딱 보고 자기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늘 살피라.” 철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자기입니다. “너희 자신을 알라. 너희 자신을 알라.” 그것이 철학의 핵심이잖아요. 핵심은 한마디잖아요. 예수님은 “사랑하라.”입니다. 철학은 자기를 내다보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자기를 내다봤잖아요. 자기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항상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자기를 쳐다봐라.”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자기를 쳐다보면서, 자기를 생각하고 뉘우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잘못이 없고, 예수님 잘못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단계까지 가면 그런 것이 없어진다. “오늘날 섭리 역사도 그렇다.” 가나안 복지에서 무엇을 얘기했습니까? 환난, 어려움, 고통 때문에 불만이 왔습니다. 가나안 복지 가기 전에 신광야에서 환난, 고통,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환난, 고통, 아말렉 이런 것 때문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잘 되었으면 불만이 없었을 텐데요. “그러면 못 간다. 거기는 더 큰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못 간다.”하고 거기에다 잘라 놓았습니다. “너는 신광야에서 살아라. 40년 동안.” 말이 그렇지 40년 동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겠습니까? “이들은 이런 상태에서는 못 간다. 이렇게 불만해서는 못 간다. 가나안 복지에는 더 어려운 것이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대신 거기서는 더 많이 받는다.” 그러니까 2세들만 갔습니다. 불만한 사람들은, 여호수아 갈렙을 빼놓고 10명의 지도자들은 현장에서 재앙으로 하나님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복지에 갔습니다. 그런데 더 들고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신광야에 있는 그런 아말랙 7족속은 비교가 안되었습니다. 이것은 족속들이 4배, 5배가 더 있었습니다. 그래도 젊은이들이 그냥 의식 없이 두고 두고 쳐부수었잖아요. 그러니 30여 개 족속이 싹 없어졌잖아요. 그 대신 그 때 부터 적들은 없어졌습니다. 그 때 비로소 적이 없어졌습니다. “과정에 있을 때는 그런 것이 있다. 그리고 완전히 어느 단계까지 가야 그런 것이 싹 없어진다.” 그 때는 어느 정도 없어집니다. 과일을 기를 때도, 곡식 농사를 지어보면 곡식이 거의 익었을 때까지는 해충들이 옵니다. 그 기간을 보면 그렇습니다. 과일들이 거의 익을 때까지, 그 때 까지는 해충이 옵니다. 그 후로는 해충이 없어지더라구요. 그리고 곡식이 거의 익을 때 쯤 되면 잡초가 거의 없어집니다. 거의 없어집니다. 그래서 그 때는 밭을 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주인이 풀을 뜯어 주어도 풀이 또 생깁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기간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말씀 가운데 핵심은, “이런 어려운 것이 반드시 있다. 그것을 너희는 깨닫고 알도록 하라.”입니다. 귀신과 사단을 오는 것은 자기 때문이다. 귀신들 사단들을 잘 모르면 안됩니다. “왜 사단과 귀신들을 안 가두냐? 가두어 놓지.”합니다. 그러나 현재 가두어 놓았습니다. 사단과 마귀 귀신들을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데로 왜 그렇게 오지요?” 그것은 왜 그런가하니, 자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둠은 어둠에다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방안의 불을 끄면 어둠이 싹 들어옵니다. 그 원리나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천상 의롭게 살아야 됩니다. 선하게, 항상 빛 가운데 살아야됩니다. 그러면 어둠은 평생 안 받는 것입니다. 자기가 빛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방안에 불을 끄지 않는 이상 항상 환하잖아요. 낮에는 햇빛으로 환하고, 밤에는 불빛으로 환합니다. 그러나 불을 끄면 어둠이 들어오듯이 여러분이 사단 짓이나 어두운 짓을 하면 사단이 거기는 자기 주관권이기에 그냥 먹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사단의 세계도 우리가 모르고 오해했었습니다. 사단이 돌아다니니까 막 집적거리며 가는데, 물론 욥과 같이 잘 되는 사람도 집적거립니다. 그러나 본인들이 그렇게 할 때에 사단이 자기 주관권에 그냥 자동적으로 통합니다. 파장이 자동적으로 통합니다. 전파를 잡을 때 사이클을 딱 돌리면, 방송 채널을 돌리면, 미국 방송으로 돌리면 계속 하루 종일 미국 방송이 계속 들어옵니다. “그래서 본인이 항상 의롭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의롭게 삶으로 인해서 사단 주관권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듣고 따라 감으로 그 주관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잠을 사단으로 봅시다. 잠 세계를 사단의 세계로 비유를 들어봅니다. “잠은 잠이라는 세계에 가두어 두었다.” 이렇게 서 있을 때는 괜찮은데, 이렇게 꾸벅 꾸벅 졸면 잠의 세계가 그냥 그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잠의 세계에서 나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그 세계는 잠의 세계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의심하면, 의심의 세계에 가두어놓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의심하면 의심이 자기 자체에서 생겨서 의심해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빨간 색은 빨간 색에 가두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넥타이의 파란 색이 빨강이 되면 거기에 빨강이 들어온 것입니다. 선생이 배울 때 항상 그렇게 배운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사탄주관권이다. 그래서 잘못했을 때 회개 안 하면 계속 사단이 먹어 들어갑니다. 사단의 주관권 속에 들어있습니다. 사단은 지금 모릅니다. 걔가 지금 죄를 지은 것을 모릅니다. 그 애 혼자 사단 주관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단들은 모릅니다. 사단이 아직 안 왔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죄를 짓고 있으면 그 사람 자체가 사단 주관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자체가 흑암의 주관권에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흑암권을 심판한다고 딱 모터를 누르면 그 사람까지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들이 보니까 자기들은 1천명이 있었는데 1001명이 죽었네요. “어디에 또 한 명이 있었대?” “아, 지금 심판 받고 죽은 사람이 101명입니다.”방송을 하니 “어? 어디 있었지?” 알고 보니까 의인 중에서 마음 변한 사람이 있어서 거기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빨리 회개하라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빨리빨리 회개하고 뉘우치고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운명이 좌우된다!”하셨습니다. “항상 그것이 그렇게 크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러잖아요. “예수님, 너무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내가 사형선고 받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예수님,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너무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이런 것을 전부 이야기해주겠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내 목숨 갖다 얹어놓고 내가 너를 구했으니까 이제 너 죽으면 나도 죽어.” 그렇게까지 했습니다. 보니까 운명이 그렇게 되었잖아요. 내가 예수님을 증거 안 하면 누가 근본을 모릅니다. 예수님이 나를 증거 않으면 근본을 모르구요. “너무 큰 것이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인줄 알고 듣는 것이 가장 큰것이다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 하나님, 이들이 말씀 들을 때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내 말인 줄을 알고 듣는 것이다.”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씀한 것을 알고 듣는 자들이 가장 말씀을 깊게 듣고, 가장 깊고 좋은 밭에다 씨를 뿌리는 입장과 같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그렇게 못 되어도 누가 압니까? 내가 혼자 해도 내가 누굽니까? 내가 지금 혼자 한다고 해도요. 내 사명 갖고 와서 혼자 그냥 한다고 해도 누굽니까? 그렇지요? 지금은 부활되어서 하나님께서 특별기간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말씀을 꼭꼭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들어야됩니다. 내가 산에서 기도했을 때나, 월남에서 총을 겨누었을 때 그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접 듣고서 실천했기 때문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바위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자들 가운데 가까이 있는 제자나, 멀리 있는 제자들이 말씀을 하면 하나님의 음성으로 안 듣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딱 덮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한번 들어봐라. 말씀을 들어봐라. 하나님 원본을 들어봐라. 너희들, 평생 못 듣는다.”하십니다. 성경에 그랬습니다. “모세에게만 내가 말씀하지, 너희에게는 환상으로 끝난다. 어떻게 평생동안 이 손바닥이 음성을 듣느냐? 못 듣지. 감각이 예리하고, 말초신경까지 동원해봐라. 그 음성이 들리나? 안 들리지.” 제일 큰 것이 그것입니다. 지금은 애인시대라 정말로 웃으면서, 노래하면서, 정말로 기뻐하면서 말씀하지요. 기독교에 가보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이기에 그렇게 웃으면서 못 합니다. 체질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그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말씀 자체가 그러니 안되지요. 시대 자체가 그런데요. “말씀을 들을 때 그렇게 듣도록 하라. 그래야 말씀을 내가 너희에게 해주리라.” 하나님이 지적하시잖아요. “말씀을 들을 때 그렇게 어떻게 듣느냐?” 선생님 앞에 늘 여러분들이 그것을 못 하더라구요. 딱 오면 두려워함으로, 감격함으로, 감사함으로, 고마워함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을 대하는 예화 경기도 광주에 있을 때 목사님 모시는데도 계속 그렇게 했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그렇게 잘 하느냐?”고 그랬습니다. 그 사모에게도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사모님이 하는 말이 “우리 목사님이 보통 해서는 마음에 든다고 안 하는데, 푹 빠졌어. 푹 빠져. 정집사에게 흠뻑 빠졌다니까.”그러더라구요. 무조건 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 하니까요. 다 “네. 네.”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올라온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온 것입니다. 산에 있을 때, 굴에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 추운 곳에서 떨고 그랬습니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안 합니다. 너무 많으니까 아예 꺼내지를 않잖아요. 그 무서운 세계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그 추운 곳에 가서,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달달달달 떨면서도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조금만 춥고, 뭐한다고 하면 달달달달 떨면서 정신을 못 차리잖아요. 상상을 못 합니다. 영하 17도에서 까지도 선생님은 그냥 바깥에서 살았습니다. 영하 17도에서 까지 밖에서 그냥 살았습니다. 수도 생활할 때에 영하 17도에서, 그 때에 내복도 제대로 못 입고 그냥 허름한 것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았지만 사람이 참 엄청난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더라구요. 그렇게 하면서 조건을 세우고서 하나님을 모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환경에서 못 있을 것입니다. 요즘 하루 저녁 대둔산에 가서 기도하고서도 “참으로, 정말로 뼈가 쑤시는 고통을 받고 왔다. 월명동에서 며칠 기도하는데 뼈가 쑤셨다.”하는데 며칠이 아닙니다. 몇 년, 몇 달, 몇 주일 연속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런 기준을 못 세운다고 하잖아요. “나와 같은 기준을 못 세운다. 세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 가는 것입니다. 하늘앞에 기준자의 삶이란.. 그렇게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무섭게 칼날같이 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말씀하시고, 대화를 하시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준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부흥집회들 다녀보았습니까? 들어봤습니까? 들은 이야기들 있습니까? 누가 그런 기준들 세웠다고 합니까? 성경을 그렇게 읽어대면서, 자기를 꼭 죽이는데 참고 견디면서 원수들에게 총 안 쏘고 했다는 이야기 들어봤습니까? 지금도 6년 동안 내가 참고 견디어서 이렇게 희망 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참고 견디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못 참지만 나는 참았습니다. 참고 견디면서 왔기 때문에 그것이 여러분들의 자랑거리인 것입니다. 원수가 쫓아다녀도 참고 견디면서 손을 안 댄다는 것이 그것이 쉬운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을 안하고 왔잖아요. 그냥 부지런히 내가 갈 길만 쭉 빠져 나왔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내가 살아야, 나 머리가 살아야 지체도 살릴 수 있다.”하면서 온 것입니다. 무엇이든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내가 로마에 있을 때입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을 때입니다. 그 때에 내가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모든 카타콤베도 갔다오고, 사도 바울의 감옥도 갔다오고 그랬습니다. 다 구경하고 왔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갔다온 지 1주일 조금 넘어갔을 때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마음이 자꾸 감동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감옥 있는 곳을 한번 더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 내가 갔다왔는데? 비도 줄줄 오는데.’ 비가 오면 거기에 사람들도 별로 없다고 애들이 그랬습니다. “비가 오고 하는데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인데, 비 맞고 가실래요? 지금 밖에 비가 너무 너무 많이 오는데요.” “가자.”하고 마음이 감동되어서 거기에 갔습니다. 설명하는 사람이바울 선생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죽 해주었습니다. 물으니 아는 것 몇 가지를 더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전도하러 갔다가 잡혀서 이리로 들어왔다. 이리로 해서 이리로 들어왔다.” “그러면 이것이 본래부터 감옥으로 이렇게 되었었느냐?” “아니다. 이것이 교회다.” “어? 나는 이제껏 감옥으로 알았다.” “아니다. 이것이 교회였다. 교회 밑의 지하실을 그대로 감옥으로 만들고 이렇게 해놨다.” “아하. 내가 먼저 와서 들었을 때하고는 전혀 다르구나. 그렇다면 이것이 교회였었느냐?” “이것이 기도실이었다. 기도실을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도 바울과 모든 사람들이 거기서 하도 기도를 하니까 거기다 감옥을 만들어 버렸다. 거기다 감옥을 만들었다. 교회를 전부 감옥으로 만들어 교회를 못 오게 하였다. 교회 오는 사람마다 전부 못 나가게 가두어 버렸다.” “야, 잔인하게 했구나. 이제 확실히 느꼈다. 너무 감사하다. 어떻게 아느냐?” 그리고 내려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니까 딱 보이더라구요. 사도 바울이 키가 작습니다. 기도를 할 때 그 때 바로 알았습니다. “내가 엊그제 왔다 갔는데 바울이 ‘다시 와봐라. 다시 좀 나 있는 곳에 와 보라.’고 나를 감동시키고, 주님께서 감동시켜서 다시 내가 오게 되었구나.” 비가 그렇게 억수같이 오는데 사람도 없고 하니 너무 좋았습니다. 기도를 하고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죽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있었느냐?” “여기서 있었다.”며 계속 대화를 했습니다. 바울 선생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 키가 작습니다. 거기서 이렇게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성경에 보면 내가 장로교에서 들을 때 바울이 은혜의 사슬에 매였다고 해석한다. 진짜 쇠사슬에 매였는데도 그렇게 해석한다.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내가 장로교에서 들을 때 바울이 진짜 쇠사슬에 매였는데 은혜의 사슬에 매였다고 이런 식으로 해석했습니다.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기독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우리 형들도 그렇게 가르치고, 목사님들도 그렇다. ‘은혜의 사슬에 사도 바울이 매였었다. 은혜의 사슬에 매였다. 어떤 철고랑이 아니라 은혜의 사슬이다. 그 때 옥에 갇혔을 때 다 나오지 않았느냐?’ 이런 식으로만 계속 이야기했다.” 그 사슬을 보니까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 사슬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보는 그런 사슬이 아닙니다. 개 고리 같이 동그란 사슬이 아니라 전부 함석을 접어서 만든 사슬입니다. 그러니 굉장히 깔끄럽습니다. 구리고 만들었더라구요. 그것을 갖고 벽에다 긁으면 막 긁어집니다. 그리고 큰 산소 용접 통 만한 쇠 덩어리를 갖고 거기에다 묶어 놓았더라구요. 감옥 그 안에서도 또 다른 곳으로 갈까봐서, 도망칠까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곳은 기도하는 장소였습니다. 거기는 물도 있고 그랬습니다. ‘아, 이 물을 먹어가면서 기도를 했구나.’했습니다. 지하실에 물이 나더라구요. 이것을 알고서 바울 선생이 말했습니다. 바울 선생을 묶었던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사슬이 길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변의 벽이 제일 많이 기스가 가있었습니다. 긁혀있고, 잡아당겨 있어서 “이것 어떻게 된 것이냐?”했더니 자기가 그랬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긁었답니다. “답답해서 긁었다.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너무 속이 아파서 긁었다. 억울하니까.” “뭐냐? 무슨 마음먹고 했느냐?” “로마 망한다. 로마는 망한다. 주여, 로마는 망하지요.” 그 얘기였답니다. 그것을 나만 알았습니다. 그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말해야 압니다. 내가 말하면 이 성역 역사에 천년 동안 다 이야기가 됩니다. 그것을 바울 선생 본인이 긁었답니다. 그 글씨가 무슨 글씨인지 해석할 사람이 없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로마는 망한다.” 그 뜻입니다. 결국 그대로 망했잖아요. “이런 역사는 망한다.” 그래서 망했습니다. 망했어도 너무 무섭게 망하지 않았습니까? 아주 망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의인들이 기도를 해도 안될 정도로 망해버렸습니다. 의인의 기도를 들어줄 수도 없을 정도로 망해버렸습니다. 로마는 망해버렸습니다. 망해서 구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네로가 어디 갔겠습니까? 사망, 사단, 귀신들 세계, 멸망의 세계로 전부 가버렸습니다. 내가 거기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 하니, ‘교회를 그냥 옥을 만들어 버렸구나.’입니다. 지하실이 잘 만들어졌는데 그것을 아예 감옥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무엇을 배워도 정확하게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배워야 합니다. 바울이 있었던 내내 그 감옥이 그 감옥이거든요. “내가 지금 춥다. 옷 좀 가져와라.”했거든요. 그러나 그 해에 못 갔습니다. 제자가 둔전둔전하다가 못 갔습니다. 그래서 그 겨울동안 혹사한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일찍 떠나오라고 했는데 안 온 것입니다. 제자도 그렇다니까요. 바울이 아주 귀하게 길렀는데요. 아주 귀하게 기른 제자가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거기서 글을 쓴 것입니다. 그 감옥에서 글쓰면서 계속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옥반장에게 잘 뵈었다는 것입니다. 그 편지가 가게끔요. 전혀 못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편지 써서 보낸 것이 책이 된 것입니다. 거기서 있으면서 그 감옥에서 관리한 것입니다. 모든 각 나라를 계속 관리한 것입니다. 각 지방에 그 동안에 복음 넣은 것입니다. 사람은 면회를 못하니까 옥반장을 통해서, 그 지키는 사람을 통해서 넣어서 보내주고, 넣어서 보내주고 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보내주고, 모르는 척하면서 보내주고 했는데 그것이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관리해서 신약역사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눈물나는 고통을 받으면서 신약 말씀을 거기서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신약 역사를 만들어서 역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에 와서는 거기를 못 벗어나고 그대로 제물 되어서 끝난 것입니다. 거기서는 전부 쪽지로 했답니다. 쪽지 복음입니다. 쪽지로 갖고 와서, 전부 조그만 쪽지로 조그맣게 가지고 왔답니다. 그렇게 해서 역사가 된 것을 우리가 알아야 ‘아, 이렇게 해서 이 말씀이 왔구나.’ 아는 것입니다. 거의 옥중 서신입니다.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전한다.” 옥에서 쓴 것입니다. 바짝 말라 가지고 거기서 기도하며 살은 것입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기도굴에서, 어디 전도 갔다가 와서 기도하는 그곳이 옥이 되어서 거기서 죽은 것입니다. 그 장소가 결국 옥이었습니다. 교회가 결국 옥이 되었다니까요. 감옥이 되었습니다. 이런 성도들, 이런 터전 위에서 신약 역사가 펴왔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일 없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나름대로 조금 어려운 일이 있다고 그냥 정신을 못 차리고, 조금 뭐했다고 “뭐가 이러느냐? 이런 일이 뭐지? 이것이 무슨 성약 역사냐?” 막 그럽니다. “그러면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와 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핍박을 받았느니라.” 대표적인 것만 내가 이야기해줍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과 부딪힘은 작은 것이다 “이런 것을 깨닫고 시대를 가야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을 깨닫고, “아, 이런 세계를 통해서 이렇게 해도 신약 역사는 신약 역사였다. 이렇게 했어도 신약 역사는 신약 역사였다.”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는 거기에 비하면 전혀 다릅니다. 개인의 조그만 문제, 집에서 조금 핍박하는 문제, 돈이 조금 없는 문제, 조금 힘들다는 문제, 옆의 사람과 조금 부딪쳤다는 문제. 그것은 말도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그 문제를 10배, 20배 더 강하게 해버릴 것입니다. 한번 진짜 핍박받아 보라구요. 옆의 사람이 조금만 하면 “언니 때문에 힘들어서 교회 못 간다.”합니다. 옛날에는 칼로 찌르고 막 그래도 교회 다녔잖아요. 그래도 또 갔습니다. 일개 나라가 다 집중해서 “저것을 죽이자.”했어도 그래도 교회 다녔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섭리사 사람들을 보면 아양을 떠느라고, “누구와 부딪쳤습니다. 나는 힘듭니다. 누가 어쨌습니다.”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와 부딪쳐도 “어떻게 나와 부딪칠 수 있느냐?”그런다니까요. 내가 많이 겪었습니다. 집에서 하던 버릇대로 하다가 나한테도 많이 부딪치더라구요. 아마도 선생님이 누군지를 모르는가 봅니다. 스스로 함정을 파지 말아라 섭리사를 나간 사람들은, 나를 확실히 믿은 사람들은 잘 안나갑니다. 절대 안 나갑니다. 나갈 수가 없습니다. 지옥이 있는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간 사람들은 그냥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만 믿습니다. 그러나 알면 무서워서라도 못 나갑니다. 사망의 세계로 가니까 무서워서 못 나갑니다.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이제는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지 않았습니까?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섭리사 뛰면서 조금 어려운 일이 있다고 어렵다고 하고, 애들과 조금 부딪쳤다고 뭐라고 하고, 또 애들이 조금 힘들다고 막 하고, 누구와 부딪쳤다고 하고 그럽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기들이 함정 파는 핍박이고 어려움이지요. 하나님이 말씀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잖아요. “너희들 보라. 너무 위해서 기르니까 너무 습관이 잘못되고, 버릇이 잘못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러면 안 된다. 이제는 그렇게 안 기른다. 너희들을 자립해서 기르고, 지옥을 면하려면 열심히 하라. 천국 생활을 하려면 열심히 하라. 새벽도 깨우고 열심히 하라.” 하나님의 부활역사를 기념하자 그래서 다음 13일 주일은 부활절 주일로 말씀이 나갑니다. 부활시켜 주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기념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1년 동안 기념 행사가 하나도 없잖아요. 무엇이 있습니까? 특별한 것이 없잖아요. 날짜를 정해놓고 꼭꼭 기념행사를 해야 됩니다. 감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일 잔치도 매 해 꼭꼭 하잖아요. 부모 앞에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하면서요. 이와 같이 이제는 어떤 것을 정해놓고 해서 우리 당세 때도 하지만, 후손들은 못 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일 한 것을, 우리 도와준 것을 못 봤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념을 해놔야 후손들도 “우리 선조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우리 후손들이 되었다.”고 천년 동안 감사할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하면서 앞으로 갈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13일은 부활절의 기념 역사를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각 교회마다 전부 다 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모이면 한 명이라도 덜 옵니다. 그러니 각 교회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모이면 많은 경비를 쓰게 되고, 차를 대절하면 끝도 없으니까요. 월명동에서 할 사람들은 월명동에서 하고, 지방의 각 교회에서 하고, “부활의 행사를 하라. 낳는 날이다. 다시 낳았다. 다시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꼭 하도록 하십시오. 오늘은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어보니까 정말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령 골수를 쪼개서 말씀하시는데, “너희들이 핍박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래? 같은 대열의 역사들인데. 너희 바로 앞에 있는 선조들이, 신약 역사의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을 받았다는 거야. 너희는 조금 부딪치고 어려움이 있고, 뭐한다고 해서 그러느냐? 자기 할 일을 못해서 그러는데 그것을 갖고서 그러느냐? 이런 일, 저런 일 모두 그렇다.”고 했습니다. 용서와 사유를 주시고, 이제 역사가 시작되었으니까 핍박과 어려움이 있어도 다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이 오면 어려움은 전혀 일절 없는 세계로 생각합니다. 아니, 겨울이 오면 방안에 있어도 추운데요. ‘겨울에는 방안에 있어도 추운데 어떻게 천국이 될 수 있지?’ 아니 옷을 입어도 춥잖아요. 방안에 있어도 춥고 옷을 입어도 춥잖아요. 히터를 틀어도 춥잖아요. 겨울이 오니까 그 영향을 받고서 그런 것입니다. 그 환난기의 영향과 어려움을 이기면서, 견디면서 열심히 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도 하나님의 천국은 가고 있다. 추워도 계절은 간다. 지금 봄이 왔는데도 춥지 않느냐? 봄이 왔는데도 추운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옛 조상들이 환난을 당한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받는 것은 아주 적은 것인데, 이들 모두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우러러보며 좋아할 줄을 모르니까 그런 일이 너무 너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 잘못으로 일어나니 늘 네 자신을 알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러함을 갖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살게 해주시고, 우리 잘못도 용서해주시고, 잘하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과 은혜가 이들에게 함께 하고,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 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이 우리에게 항상 충만하심을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