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05.12.03 (토)
토 새벽말씀
- 선포일
- 2005.12.03 (토)
- 성경 본문
- 사도행전 1장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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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2월 3일 토요일 새벽말씀(45분)
(말씀) - 43분
할렐루야. 오늘은 12월 3일입니다. 금주는 사도행전 1장 8절 이하의 말씀을 중심해서 “증
거 하라. 그래야 하나님 역사가 펼쳐나가 우리들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그 뜻대로 지상에서
이상 세계 천국을 이루면서 살 수 있다.” 그런 말씀을 중심해서 출발했습니다. 어제는 요한
복음 4장의 말씀으로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을 처음에 모르고 우물가에서 만났다가 결국
대화 가운데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깨닫고 마을에 뛰어 들어가 증거 했다. 자기가 자기
센터에 가서 증거 했다. 증거를 했더니 예수님이 증거 한 것을 이미 주님으로서 아시고 가
서 복음을 전하셨다.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증거의 전초가 잘 되어서 예수님이 가서 말씀
하니까 ‘말씀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과연 메시아가 왔다.’하고 믿게 되었다.”했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감동되었을 때 바로 증거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야 말씀의 주
인이 나타나서 말씀을 할 때 바로 받아들이고 또 생명의 역사가 거듭 일어나지 않겠느냐?”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요즘에 말씀을 듣고, 지구상에 있는 새로운 생명들이 섭리 나라로 왔습니다.
“와서 말씀을 듣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가서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라. 데리고 와라. 그
러면 내가 다시금 나타나서 말씀을 해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듣고, 보고 ‘과연 네가 나
에게 말한 대로 그러하구나.’하고 수긍하리라.” 그렇게 복음을 전하며 가자는 것으로 서서히
말씀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안무, 말씀의 구상을 그렇게 해오시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 하나 한 생명 한 생명들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그런 사연과 처지가
개성대로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 있었으니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인생을 이렇게 이렇게 사는 가운데 있었는데 이렇게 이렇게 해서 섭리를 오게 되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사해서 표적을 보이시고, 각종 각색으로 깨달음을 주셨다. 이것
은 말씀을 전하는 주인공인 내가 굳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그렇게 깨우쳐
주고, 사생결단하고 기도했을 때 깨우쳐 주시더라. 이미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기다리고 원
하는 자를 보내주었다.’고 했다. 찾고 보니까 그 말씀을 전하더라. 그래서 이가 하나님이 보
낸자로 믿고 따르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증거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시대 때에 모두 증거 하는 것을 못 보았습니까? “모세가 예언하지 않았
느냐? 보니까 그 말을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냐? 모세도 증거 했
다. 너희들은 그런데 얼마나 악발을 쓰고 예수님을 핍박하고 잔인하게 씹고 그랬느냐? 너희
는 살인자들이다. 너희들은 아주 큰 죄를 지어서 너희들이 그 죗값을 다 감당 못하리라. 민
족이 예수님 말씀대로 패망하게 되고, 그 죗값을 다 받지 못해 결국 멸망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한대로 이제 두고 봐라. 그러할 것이다. 네가 죽은 다음에 영계에 가서 보아라. 그
렇지 않겠는가.”했습니다. 그야말로 제자들은 죽어서 육신을 가지고 확인을 못 했지만, 죽은
다음에 역사적으로 볼 때 주 후 70년 경에 이스라엘 민족은 무너나 버렸고 다 바벨론 포로
로 잡혀가 버리고 민족이 다 끝이 났습니다. 종교뿐 아니라 국가까지 그렇게 끝장이 나버리
고 말았습니다. 어느 민족이고 어느 사람이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이 보낸자를 핍박하고
거짓으로 거슬러 악평하면 그들은 멸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증거 하느냐면 모두는 자기 생활을 통해서 어떻게 전도되었는가 그것을 가지고 전하
도록, 오늘 새벽 말씀을 들은 지도자들은 신입생들에게 그렇게 전하라고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면 자기가 한 일이니 확실하게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깨닫
게 해주셨다. 예수님이 나를 깨닫게 해주셨다. 나도 지식이 있고, 나도 분별력이 있는데. 너
희가 내가 깨달은 것을 반대하느냐? 거짓이라고 하느냐?”하고 들이박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도하면 금방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말을 잘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말을
잘 하잖아요. 요리 조리 얼마나 말을 잘 한다고요. 물건 사러 가도 말을 잘 하고, 전도가도
말 잘하고, 설교해도 말 잘합니다. 조목조목 똑똑하게 말 잘하잖아요. 알아야 됩니다. 지식
이 있어야 됩니다. 지식이 있어야 책도 쓰고, 지혜가 있어야 책을 잘 엮어 나갑니다. 시문학
이나 책을 쓰는데 있어서는 지식을 가지고 지혜로 묶어 나가는 것입니다. 먼저 쓸 것은 먼
저 쓰고, 앞에 쓸 것은 앞에 쓰면서요. 여러분들도 선생이 말씀하는 것을 잘 들으십시오. 말
을 잘하면 사람들이 안 믿을 사람도 믿고, 말을 잘못하면 믿을 사람도 안 믿게 되는 것입니
다.
금주 말씀을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너희들이 전도할 때 어떻게 되었나 그것을 이야기
하면서, 믿어진 것을 이야기하면서 하라. 누가 어떻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자기를 무시하면 “왜 나를 무시하고, 내 의견을 네가 무시하느냐?” 그러면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그래서 나도 믿게 되었노라.”하라는 것입니다. 빌립이 전도한 나다
나엘 말하기를 어떻게 이야기했는가 하니 “내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다가 누가 전도해서 내
가 왔는데, 예수님이 쳐다보며 말씀을 하실 때 나에 대해서 너무 잘 말씀하시기에 ‘어찌 그
리 나에 대해서 아십니까?’했을 때 ‘네가 여기 오기 전에 무화과나무 밑에 있을 때부터 내
가 너를 알았다.’하셨다. 그래서 그제서야 이가 보통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낸자가 아니
냐고 했고, 혹은 인생을 구원하러 온 자가 아니냐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노라.”했습니다.(요
1:48) 이와 같이 하면서 간증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 소리를 보십시오. “나는 유대 종교에 있을 때 핍박하던 사람이다. 예수를
핍박하고, 아주 앞장서서 본인은 물론 그를 쫓아다닌 사람까지도 핍박했다. 그러다가 결국
반대하러 갈 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믿고 좇는 사람들 중 죽일 놈은 죽이고 때릴 놈은
때리려고 쫓아가다가 예수님이 나타나서 ‘바울아,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 말을 듣고
쳐다보니까 빛이 비추어서 눈이 멀어 버렸다. ‘네가 눈을 뜨려면 내 제자에게 가서 기도를
받으며 말씀을 들어라.’ 그래서 눈을 뜨려고 가서 말씀 듣다 보니까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확실히 알았다. 누가 깨우쳐준 것이 아니라 내가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하나님이 그러하다
고 깨우쳐주셔서 믿고 따르게 되어서 새로운 역사로 왔는데, 새로운 역사가 맞지 않느냐?
나는 유대 종교에서 율법도 배우고 터득한 사람이다. 너희들 보다 더 많이 율법을 연구했
다.” 그러면서 말씀을 전하고 증거 했을 때 사람들이 보고 깨닫고 쫓아다녔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의 삶을 통해서 증거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기나긴 이야기를 다는 못하지만, 기독교에서 말씀을 제대로 못 전한다는 것을 국
민학교 때부터 깨달았습니다. 잘못 전하고 있다고요. 국민학교 때 무엇을 깨달았느냐고요?
왜 종이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종이
아니니. 형제니. 아들이니.”그랬는데 왜 종이라고 할까 그것부터 생각하면서 ‘잘못 가르치고
있구나. 이것은 유대 종교가 하던 이야기인데 왜 기독교에서도 하나?’생각했습니다. 결국 내
가 말씀을 깨닫고 인봉을 떼었는데, “종 짓을 하니까 종이라 함이 마땅치 않느냐?”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인봉을 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맞다.”고 그랬습니다. “종 짓을 하며
종과 같이 사니까 종이라 스스로 자기를 시인한다.” 그러셨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만히 사람
들을 보십시오. 자기 무지가 자기를 시인하고, 행동하지요. 우리 이 시대의 기독교가 종이라
고 하는 것은 무지해서가 아니라 무지한 것도 있지만 그렇게 살기 때문에, 종과 같이 살기
때문에 종이라고 시인하고 있다는 그 인봉을 떼었습니다.
예수님은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데 구름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자신이 구름에 대해서 말하
기를, 신약 성경에서 구름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구름은 사람이니까 사람을 타고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역사대로 옛날에 해가 동쪽에서 뜨듯이 지금도 동쪽에서 뜬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금도 또 옛날 예수님께 역사하듯이 이 시대 메시아가 나타나면 또
그렇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같이 땅에서 나타나서 시대의 말씀을 가르치고, 구약
말씀을 풀어주며 나타나듯이 신약 말씀 풀어주고 나타나서 주인공이 되어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답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답 갖고 와서 구시대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
쳐주어서 답을 받고 그들을 따라나오게 합니다. 학교에서도 답을 준 자가 선생이 아닙니까?
답을 준 자가 주인공이 아닙니까? 이와 같이 시대의 답을 준 자가 구세주인 것입니다. 그가
구원하고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조리 있게 하면서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야 정치 강연하고, 시대
의 실정을 잘 이야기하며 ‘저 사람이 잘 아니까 저 사람을 찍어주겠다.’하지 않습니까? 대통
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근본을 잘 깨우쳐
주어야 됩니다. 우리는 신앙 세계의 공직자들입니다. 하늘의 공직자들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증거 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을 해야 잘 증거가 되는가 하나님께 말씀 가운데 한번 물어보겠
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이들이 증거를 할 수 있지요? 물론 지금까지 말씀한 것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면 또 무엇을 증거하지요?” “말씀으로는 역사를 증거 해야 된다.”했습니다.
지금 말씀, 역사를 증거 해야 사람들이 꼼짝도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계를 딱 보이
면서 “지금 몇 시야.”할 때는 꼼짝 못하잖아요. “대충 지금 몇 시쯤 되었겠다. 배가 고픈 것
을 보니까 오후 4시 되지 않았겠어?” “아니야, 그것이 아니야. 내 느낌이 한 오후 4시쯤 같
아.” 이렇게 하는 것보다 정확히 해야 됩니다. 지금 구름이 꽉 끼어서 캄캄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여름철인데도 구름이 끼어서 캄캄합니다. “4시 된 것 같아.” “아니
야. 캄캄한 것을 보니까 지금 한 7시 된 것 같아.” 여러 가지로 하지만, 시계를 갖다가 딱
들이대면 오후 1시인데 어떻게 합니까? 비가 오기 직전이기 때문에 캄캄한 것인데요. 캄캄
하다고 해 넘어갔다고 하면 안 되지요. 깊은 산골짜기로 끌고 가보십시오. 구름만 살짝 끼
어도 침침하다고 ‘오후 7시인가?’해집니다. 캄캄하다고 그것을 중심해서 시간 따지면 굴속으
로 끌고 들어가면 “캄캄한 것을 보니까 밤 12시 된 것 같아.” 그럴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까 캄캄한 것을 갖고서 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 지금 서늘한 것을 보니까 오후 해질
무렵이 된 것 같아.”합니다. 그러나 지금 구름이 끼어서 안 보입니다. 해 갖고 대개 안다면
그렇게 모릅니다. 서늘하다고 “오후가 되어서 해 넘어갔네.”한다면, 냉장고 문 열어놓으면
서늘하다고 오후 되었게요. 윗통 벗어서 서늘하면 오후가 되었게요. 그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직 시계 갖고 다니면서 딱 몇 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시간은 1초도 틀리지 않아.” 그
러면서 담대히 이야기할 때는 다릅니다. “아까 텔레비전 방송할 때 정확히 맞추었는데 아직
도 안 틀려. 내 시계가 비싼 시계인데 하루에 몇 초씩 틀리겠어?” 그렇게 말을 하면 사람들
이 “저 시계, 맞아.”하며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를 말하라. 역사는 시간이다.”했습니다. 시간을 확대시킨 것입니다. 역사는
시간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시간을 정확히 시계를 갖고 이야기하듯이 성경의 시간을 딱 갖
다주면서 “지금은 이 때이니 역사가 오지 않았느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시간을 들이
댔습니다. “어찌하여 때를 모르느냐? 왜 때를 모르느냐? 시대를 구분할 줄 모르느냐?” 예수
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아침에 붉고 하면 비가 올 것을 예산하고, 그리고 저
녁 북새가 일면 가물다는 것은 예산하면서 어찌하여 시대 구분을 모르느냐? 그런 것 다 아
는데 왜 시대를 구분 못하느냐?”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독교가 시대 구분을 못 합니
다. 그러니 시계가 없는 것입니다. 시대의 시계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이 차고 다니는 시계
는 있어도요.
지금은 벌써 2천년이 지나갔잖아요. 온 지구상의 어떤 누구에게 물어봐도 2천년은 지나갔습
니다. 그러니까 메시아 올 때는 지나갔잖아요. 그러면 안 오고 끝난 것입니까? 안 올 리가
있나요? 하나님이 도적같이 온다고 했는데요. 도적같이 왔기 때문에 메시아 만나서 말씀 듣
고 따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2천 년도에 온다고 했는데 온 것 같으
냐, 안 온 것 같으냐?” 물어보면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하나
님이 하시는 일이면 왔겠지만, 우리는 못 보았으니 모르겠습니다.”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시대를 그냥 대충만 따져도 시대가 어떻게 된 것을 압니다. 시대란 초를 따지고 분을 따지
는 것이 아니고 벌써 1백년씩 따져나가는데 지금 2천년이 되었으니까요. 2천년 만기가 되
었고, 21세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충 주먹구구식으로 따져도 메시아가 왔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먹구구식으로 따지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30명인데 20명이 밥을
먹었다. 그러면 10명 남았다.”하며 머리로 안 따지고 주먹 갖고 따지는 이것이 주먹구구식
입니다. “아, 10명인데 두 놈에게 내가 선물을 주었으니까 이제 8명 남았다.” 이것이 주먹
구구식입니다. 주먹 갖고 따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먹구구식이라고 합니다. 주먹 가지고,
손가락 가지고 따지는 것입니다. 셈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산 갖고 안 하고, 전자 계산기 갖
고 안하고 손 갖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대단히 큽니다. “그냥 대강 따져도 그렇지 않
느냐?”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정확하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해서 역사 공부를 꼭 가
르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 통과식할 때 역사 공부를 배웠지요? 역사를 통
해서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수학 공식을 통해서 수학의 세계를 따지고 알고요. 대강만 따
져도 아는데 시계를 갖고 딱 들이대니 정확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역사는 시
계다.”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옛날에 어떻게 배웠는가하니 “해는 시간이다.” 그랬습니다. 왜? 해 갖고서 시간을
나누어 놓지 않습니까? 달 갖고서 달을 나누어 놓고요. 보름 컸다가 보름 작았다 하니까 한
달이 되었습니다. 보름 커졌다 보름 작아지면 그것이 한 달입니다. 옛날에는 그 한 달을 한
살씩 계산하고, 어느 때는 달이 커졌을 때 그것을 한 달로 계산하고 그랬 놓고 “960살 살
았다. 930세 살았다.”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에 그렇게 써놓았어도 그렇게 따지는 것
입니다. 옛날에 역사가 흘러간 것을 지금 사람들은 지금 식으로 따지니까 아무리 머리가 발
달되었어도 안 맞는 것입니다. 그것은 계산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시대 발달
된 때에 낳아서 크는 사람들은 머리는 발달되었는데 옛날 역사를 모릅니다. 오히려 멍청한
사람이 더 잘 압니다. 옛날 역사 거기에 접해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아무리 머리가 발달
되어서 살았을지라도 옛날을 경험하지 못하고, 옛날을 이해하지 못하고 산다면 모르는 것입
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구촌의 옛날도 전깃불 켜놓고 살은 것으로 생각하고, 옛날도 잘 살
고 그런 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두 가지로 따집니다. 볼 때 두 가지로 보는 것
입니다. 그래서 계시 받기도 어렵고, 지시 받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렵습니다.
역사 흐름의 보편성으로 볼 때 옛날에는 미개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대개 미개했습니
다. 지금보다 못 살고 미개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노아 시대 때를 이해 못하고, 아브라함
때를 이해 못하는 것입니다. 그 때는 아주 웃기는 시대가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신앙 생활한 것의 한 3년 전으로 올라가 보십시오. 그 때는 조금 약했습니다. 5년 전, 10년
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15년 전 신앙 생활했던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했는
가요? 정말로 웃기게 했습니다. 그와 같이 한 사람의 인생 역사도 그러하지만, 지구촌의 역
사도 그러했고, 섭리 역사도 그러했습니다. 옛날에는 아무래도 어색하고 부족하게 했습니다.
그냥 꼭 쫓아다니며 말씀을 해야만 듣게 되었는데, 지금은 안 쫓아가고 아무도 안 보고서
여기서 마이크 대가리만 갖다놓고 말씀하면 이것을 통해서 다 나가서 다 듣잖아요. 그렇지
요? 얼굴만 고양이 눈깔만한 것이 하나 화면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그것만 찍어 가면 지구
상에 있는 사람들 다 본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두 가지로 보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이라고 해서 아주 또 멍청하지도 않았습
니다. 엄청난 시대가 발달되었는데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그 역사가 웃기게 보이
는 것입니다. 심판 받기 전에는 굉장했었는데요. 그래서 옛날 살았던 것을 발굴하면 지금
사람보다 더 엄청나게 멋있게 문화 예술을 해놓고 살았던 그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옛날
인데, 1천년 전인데 어떻게 이렇게 살았단 말인가?’하는데, 그 때도 그 나름대로 이미 1천
년 이전부터 계속 발달해서 살다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그냥 무너진 상황을 볼 수 있습니
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곳은 1천년 살고, 2천년 살았어도 그냥 곧이곧대로 살아서 미련하게
살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 때는 지금부터 4300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 심판
했다. 지구상을 다 심판했다.”하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어야 심판하지요. 하나님 심판은
안 믿었을 때는 일반 심판 밖에 안 합니다. 성전 안 마당만 심판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
만 심판이 따릅니다. 자기 자식만 뭐라고 하지, 왜 남의 자식을 뭐라고 합니까? 어떤 부모
가 자기 자식에게 뭐라고 하다가 남의 자식에게 가서 “너희들 잘해. 왜 그래? 부모에게 잘
해야지.” 그러면 “아저씨, 아주머니, 뭐하는 거예요?” 그럴 것이 아닙니까? “아니, 우리를
본인들의 자식인줄로 생각합니까? 미쳤어요?” 그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권만 먼저
심판합니다. 성전 밖 마당은 심판치 않고 성전 안 마당만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의 사람은 이방 나름대로 심판을 또 합니다.
이와 같이 노아 시대 때에 전깃불 켜놓고 살은 것도 아니고, 그리고 노아 시대 때에 지금같
이 그 발달되어서 엄청난 배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150톤 되는 배를 만들었다느니
합니다. 그런 배들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안 보았지만 그냥 그 노아 할아버지가 역시
그 정도에서 배를 만들고 끝난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이 무엇을 보면 안 가본 사람들이 자
기 꿈대로, 자기의 예산대로 웅장하게 엄청나게 무엇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환상적으로 계
산하고, 호기심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기심으로 무엇을 계산하게 되면 상상도
못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착오가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생님처럼 완벽하게 생각하고,
똑똑히 생각하고, 또 재어보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냥 그럭저럭하지 않고, 청중을 한번 잘못 가르치면 큰일나기 때문에 가서 재어
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무엇을 하다보면 대충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대충 하면 안 됩
니다. 그러면 어디가도 대충 인간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완벽한 자가 하나님의 완벽한 부분
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증거를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내
가 아니까요. “저 사막 땅에 지구상 개미가 오줌싸는 그 많은 것도 하나님이 다 쳐다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정말로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눈으로 보면 안
보입니까? 다 보이지요. 우리가 볼 때는 이 꽃이 수술도 있고 멋있게 보입니다. 그런데 벌
이 벌 눈으로 볼 때는 이렇게 안 보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꽃 수술, 꽃 수염 이런 것이 다
보입니다. 그러나 벌이 볼 때는 안 보입니다. 만물과 인간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
간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이 정도 보이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이것의 1천 배,
1만 배 세밀하게 보입니다. 별 신기한 것이 다 보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 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입장에서 성경을 풀어야 신비하고 오묘하고 감탄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모든 것을 볼 때 그렇게 보십시오. 개미 이야기를 했는데, 개미를 충분히 그렇게
보고 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미를 보면 다 알잖아요. 개미를 1만 마리를 잡아다가
방에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가 방에서 기어나가는데 그것을 못 봅니까? 한눈에 다
보이지요. 그와 같이 하나님도 이 지구상에 있는 10억이고, 100억이고 간에 다 본다는 것
입니다. 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육신 갖고는 그만큼 밖에 못 보지만, 영이 될 때는 또
엄청난 상황을 봅니다. 영이 되었을 때는 지구촌 바깥에 누구 하나만 나가도 본다는 것입니
다. 우리가 영일 때는 봅니다. 그것도 영이 발달해야됩니다. 멍청한 영이면 1백 명이 나가도
모릅니다. 그런 눈을 가지고 그런 영을 가지고 말씀을 풀고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고 그래야
지, 누가 이런다고 이렇게 하고 누가 저런다고 저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는 하나님 시
중을 들 수가 없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냐? 사람의 사람이냐?” 나를 보고 그랬습니
다. “왜 내가 말했는데 사람의 말을 듣고 또 까딱거려? 다시는 그러지 말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말씀했으면 그대로 진행해 가도록 하라.”했습니다.
오늘 말씀 계속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역사적으로 증거 하라. 이치로 증거 하
라.”하셨습니다. 이미 역사가 갔는데 무엇을 증거 못하고 매일 저벗거립니까? 원래 예수님
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30개론 갖고 가르치느냐? 아니라고 벅벅 우기는 사람에
게는 조금씩 이야기해주지만, 지금 역사 펴고 있는데 무엇을 그래?” 나를 보고 그러셨습니
다. “무엇을 굳이 30개론을 가르치느냐?” 그래서 요즘은 30개론을 그렇게 신경 안 쓰지 않
습니까? 책은 죽게 써놓았는데요. “책은 죽게 30개론을 써놓았는데 그런 이야기하면 어떻게
합니까? 책 쓰기 전에 이야기하지요.” “그것이 아니다. 후대를 위해서 썼지. 후대 사람들을
위해서 책을 쓴 것이 아니냐?”하셨습니다.
초창기 때는 30개론을 왜 그렇게 강하게 가르쳤는가 하면, 역사의 길을 내려고 그런 것입니
다. 도랑을 팔 때 물이 골짜기로 쭉 내려오다가 다른 곳으로 확 꺾으려면 거기를 팍 파야
합니다. 파고서 거기에 확 부딪치면서 돌아오게 만들어야 됩니다. 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는데 남쪽으로 가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꺾는 곳을 두 길이고 석 길이고 팍 파
야 됩니다. 파는 대로 거기서 물이 잡혀서 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미 물길이 잡혀서 갈
때는 팍 파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길이 잡혀서 가니까 이제는 그쪽으로 흘러내려 갑니
다. 물길 잡는 곳만 그렇게 강하게 깊이 파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추상화 그림을 그릴 때
알지요? 내가 사람을 그릴 때 보면 흐르는 선은 흐릿하게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꺾는 곳
만 강하게 딱 붓 점을 주는 것입니다. 음악에서 반 음표를 더 주듯이요. 이와 같이 꺾을 때
만 강하게 하듯이, 성약 역사를 꺾을 때 그렇게 강하게 30개론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
미 꺾어서 가는데 그렇게 강하게 하느냐? 지금 역사가 가고 있는데.” 그런 말씀을 예수님이
나에게 하셨습니다. 코치를 받고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이 시
대가 가고 있기에 누가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콧방귀를 뀝니다. “웃기네, 진짜. 우리는 살아
서 혜택보고, 시대의 성약 말씀의 역사를 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복을 받고 가는데. 복을
받아서 먹고, 누리고 왔는데 무엇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냐? 지랄하고 자빠졌네. 미친놈들.”
합니다. 역사가 가고 있는데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쳤지요. 우리가 겪고 갔는데
아니라고 합니까?
한 남자가 있었는데 어떤 여자를 사랑했는데 그렇게 반대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
자가 그 후에 가서 아기 낳고 크고 아들 딸까지 결혼하고 막 살았습니다. 그래서 한 50세가
되었습니다. 그 때 반대하던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새끼, 우리가 반대해서 결
혼도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남자는 어디 가서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그랬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나는 아들 딸 낳고 벌써
손자까지 보고 있는데.” 그럴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란다고 역사가 아닌가요? 이미 우리
는 역사를 주인공이 되어서 끌고 와서 지금 가고 있고, 세계로 번져 놓았는데요. 세계로 가
버렸는데 그것을 막을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반대만 해보라는 것입니다. 반대하
고 자꾸 핍박해 보십시오. 계속 심판할 것입니다. 계속 역사적으로 심판할 것입니다. 하나님
의 보낸자는 심판권이 있잖아요. 계속 심판하니까 계속 심판 받고 계속 쓰러지지,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 무지한 짓을 하니까요.
이미 역사는 지나갔습니다. 시계가 벌써 12시를 지나서 갔다는 것입니다. 지나가서 벌써 한
바퀴 돌면서 11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보기를 “아직 1시간이나 남
았어.” 그러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벌써 한 바퀴 돌았습니다. 12시가 지나가서, 벌써 11칸
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1시간 가면 이제는 두 바퀴 도는 것입니다. 한 바퀴를 또 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안 갔어. 지금 1시간만 있으면 12
시가 되어서 땡땡 하겠어.”합니다. 그것을 보고 주장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이미 역사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을 믿으면서 “아, 메시아가 온다. 주님
이 온다.”합니다. 이제 믿은 사람이 그럽니다. 이미 믿은 사람들은, 이미 메시아를 기다리고
30년 40년 전부터 막 “주여, 주여.”한 사람들은 이제 끝나고 나가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런
데 요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메시아가 온대. 앞으로 주님이 오신대. 2천 년대에 안 왔는데
이것은 우리 선배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다시금 새로운 역사 앞에 오실 거야.” 이렇게 기다
리고 있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그런 인식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안타깝
지만 역사가 그렇게 가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에 가서 예배 드리고 앉아 있으면 역사 시
작했다는 깨달음을 계속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 왔다는 소리를 계속 하십시오. 왜 안 합
니까? 증거 해야지요. 예수님도 이 역사 안에서 펴고 계시니까 계속 증거 하십시오. 은혜
받았을 때 성령으로 깨우쳐 주십시오.”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하면 역사에 대한 도표가 나와야 되는데, 그것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역
사 도표 만큼은 알아야 됩니다. 역사 도표를 딱 보면, 한 때 두 때 반 때를 들으면 역사가
지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온다는 역사도 지나가 버리고, 지나갔습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이야
기는 살살 도둑놈같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역사 시작합
니다. 일부러 하나님이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하나님께 관심 안 갖고 살다보니까
몰랐습니다. 나는 밥만 먹고 하나님만 찾고, 밥만 먹고 산에 가서 기도하고 계속 그래서 찾
아냈습니다. 그렇게 나만 찾아내면 되었잖아요. 그래서 내 말만 들으면 되지, 지금 산에 가
서 다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쁜 세상에요. 하나만 알면 됩니다. 하나만 잠을 깨면 모든
사람 잠을 잘 깨웁니다. 새벽 기도 갈 때도 그렇습니다. “야, 새벽 기도 갈 시간 되었다. 가
자.”하면 다 깨웁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가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역사에 대해서 증거하고,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꼭 하십시오. 내가 이 시간에 그 필요성을
가르칩니다. 역사가 필요하다고 필요성을 느끼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역사를 가
지고 증거 하면 꼼짝 못한다.”해서 역사 이야기가 나왔던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 긴
(맞는) 것은 기다(맞다).” 지구상에 있는 사람이 다 반대해도, 60억이 다 반대해도 어린 꼬
마가 말할지라도 긴 것은 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결국 이기잖아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아니고,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 “내
가 죽기 전에 보여준다.” 그랬습니다. 그들을 한번 만나서 이야기하며 “이와 같이 그렇게
반대하며 아니라고 했는데, 이렇게 큰 것을 봐라.”했습니다. 그가 나를 보고 그랬습니다. 나
를 떠나가면서 자기가 하는 것이 더 크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하면 더 크니까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다른 교단에 가버렸습니다. 가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사
람도 없었습니다. 저희들이 빠져나가니까 나는 나 혼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3년 있
다가 자기가 한 것이 더 크면 거기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크면 나를 따라온
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약속하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3년 있다가 내가 가보았습니다. 3
년 있다가 가보니까 내가 더 컸습니다. 그래서 따라오라고 했지만 안 따라왔습니다. 왜냐하
면 “이제 여기에 체질이 배여서 못 가겠습니다.”했습니다. 그리고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했
더니 하나님께서 그 교단을 때려부수어 버렸습니다. 다 없애 버렸습니다. 분해시켜 버렸습
니다. 찾아서 데려다가 간증 좀 시키려고 했는데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니까 하나님이 때려부술 수밖에 없게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참고 견디면서 과감하게 약속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예
수님이 나를 가르쳤기 때문에 나와 함께 합니다. 절대적으로 함께 하니까 마음놓고 하는 것
입니다. 그 때 ‘내가 3년 동안 못하면 저 사람을 따라가야 되는데.’했지만 예수님이 눈을 꿈
적이면서 하라고 하셨습니다3467. “저 놈의 새끼, 너 안 믿고 가는 놈, 일부러 그리로 보냈
다. 거기 가서 골탕 좀 먹으라고.” 가보니까 아무 것도 아닌 세계를 따라가더라고요. 그 사
람을 “주여, 주여.”하며 따라가더라고요. 내가 어찌나 우습든지요. 왜 따라가는가 하니 내
옆에 있으면 내가 밥을 못 해주니까요. 밥이 없으니까요. 굶고 하니까요. 거기 가니까 밥을
주니까 밥보고 따라갔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먹는 것 보고 따라가지 말고 나처럼
70일을 굶더라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을지라도 주님을 따라가고 온전하게 길을 가야 됩니
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오늘 토요일 말씀은 이지 가지로 많이 했습니다. 그랬으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오늘 말씀은
“역사로 증거 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따라온다. 오늘 선생이 증거 하듯이 이치로 증거 하라.
말씀에 근거를 놓고 증거 하라.”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전도되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한 것을 가지고 증거 할 때, 하나님이 자기에게 역사 했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저 사람 따라가라. 저 사람 보냈으니까 따라가라.”해서 믿고 따라가는데 그 사람
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라고 하면 본인이 싸우라는 것입니다. “너, 이 자식아. 네
가 나의 인격을 무시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잘 났어? 무엇이 잘났는가 한번 따져보자. 너
나온 대학 나도 나오고, 너 같은 집 나도 갖고서 살고 있다. 네가 무엇이 잘났느냐? 무엇을
아느냐? 뭐 잘났나 한번 보자. 지식이냐? 낯 반데기냐? 몸짱이냐? 우리 내놓고 보자. 한번
벗어봐. 네가 더 잘생겼는가 내가 더 잘생겼는가?” 그렇게 하면서 따지라는 것입니다. 멍청
하게 “너 그러면 내가 이단시 할거야. 그러면 내가 너희 선생 이단시할거야.” 그러면 막 떨
고 그러지 마십시오. 알겠습니까? “야, 이 녀석아. 우리 선생은 이단시해도 이단시한 만큼
하나님께 잘되게 기도해 놓았단다. 그래서 이단 소리 많이 할수록 하나님께 잘되게 해놓았
단다. 그러니까 이단소리 할 때 그렇게 잘 되잖아. 우리 선생을 이단시하고 막 핍박할 때
가장 잘 되었다더라.” 그래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담대하게 증거 해야지요.
나를 보십시오. 기독교가 그렇게 다 반대해도 “예수님은 육신이 살아난 것이 아니라 영이
살아난 것. 그리고 예수님은 죽으러 오지 않고 그 때 당시 기다리던 사람들이 죽였음. 절대
적임. 아니면 내가 지옥 간다. 내가 대신 지옥 갈 테니까. 그러나 너희가 지면 내가 지옥 안
보낼게. 그 대신 내 말씀 믿고 따라와.” 그렇게 가르칩니다. 주인공이니까 얼마나 담대하겠
습니까? 내가 주인공이니까 확실하게 담대하게 가지 않습니까? 그 집이 내 집이니까 내가
주인공 역할을 못 하겠습니까? 그와 똑같습니다. 그리고 지랄들 하면 내가 그냥 하나님께
기도해버립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즉시 이야기하라. 내가 즉시 실천할 테니까.”하
십니다. 나는 밥만 먹고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는가, 밥만 먹고 하나님의 역사를 어
떻게 이상적으로 할까 하는데 그 새끼들은 밥만 먹고 나쁜 짓만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놈들 말 듣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보입니까?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 보내서 계속 문턱에
서 코앞에서 지켜보면서 잘못하면 바늘로 콕콕 찌르는데요. 의인들을 괴롭히는 자는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지만 의인이 되어야 됩니다. 살 때도 힘들고 어렵지만 의인이
되어야 됩니다. 마음 변하지 말고 일편단심 열심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사를
뛰어 나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토요일 말씀을 마칩니다. 내일 또 하늘의 새로운 만남의 말씀이 떨어집니다.
그 말씀 갖고 또 열심히 뛰고 달리자고요.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말씀이
후대 천년까지, 50년, 20년, 1백년 후에, 2백년 후에, 5백년 후에, 80년 후에도 이 말씀을
계속 틀어주면서 듣게 할 것입니다. 열심히 믿고, 새로운 역사를 증거하며 열심히 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아마 그 때쯤 되면 ‘우리 시대를 이렇게까지 안 믿었구나.’하고 느낄 것입
니다. 안 믿었지만 우리가 담대히 밀고 나가서 우리 시대에 시대를 잡았습니다. 오늘은
2005년도 12월 3일입니다. 12월 3일 설교를 여러분이 듣는데,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그렇
게 많아도 우리가 제일 잘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았어도 이렇게 지금 역사가 진행
되고 있습니다. 아주 멋있고 예쁜 놈들, 지식 있는 사람들 이런 엘리트들만 주욱 잡아다가
전부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예술단들은 한 3천명이 모여들어 하나
님의 기쁨조로 삼아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영광 시간 빼놓고 나머
지 가서는 세상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위력을 자랑하고, 선생님을 증거하며 그
렇게 가고있는 실정들입니다. 25년만에 나라는 40개국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리
고 예술을 중심한 평화의 모임이 또 있습니다. 전초의 역사라고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그것까지 합하면 70개 나라를 잡고 나가고 있습니다. 멋있게 역사를 펴고 있습니다. 나는
몇 살이냐고요? 20대 후반입니다. 얼마나 젊습니까? “정말로요?” 벌써 60에 섰습니다. 그래
도 이렇게 정정하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운동하고 열렬하게 뜁니다. 이제 지금 월남전 갔다
오고 30년만에 책을 써서 다 매듭을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책이 금년도 나옵니다. 그렇
게 지금 역사가 가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튼튼한 이런 모습으로 갑니다. 이만큼 생겼으면
이 시대에서는 이 시대 사람 치고 아주 잘생긴 인물이랍니다. 알겠습니까?
바이 바이! 기도해줄까요? 그러면 기도도 해주겠습니다. 여러분들까지 기도해주겠습니다. 앞
으로 3백년, 5백년 후에 태어나서 이 말씀 듣는 사람들까지요.
(기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지금 이 당세 뿐만 아니라 후대에 있는 사람
들까지도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들이 말씀을 듣고 잘 되고 형통케 해주시옵소서. 모두 게
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살고, 나와 같이 이
들도 일할 것이니 열심히 하게 해주시옵소서. 온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 이 시
대에 모두 말씀을 증거하며, 어느 시대든지 나를 증거하고 가르쳐야 내 말씀을 듣고서 모두
하나님을 잘 가르친 것을 듣고 따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삶이 연속되게 해주시옵소서. 오늘
은 토요일이고, 내일 또 새로운 말씀이 나오니 토요일 말씀 들은 것을 가지고 열심히 살게
축복해주시옵소서. 건강케 해주시고, 육신도 건강 영혼도 건강케 해주시옵소서. 내가 건강을
위해 기도하오니 모두 건강해지고 강건해지기를 원하노라. 평강이 이들에게 함께하며, 악인
들이 짓밟힘을 받고 의인들이 항상 꽃을 피우고 튼튼하고 천년이나 묵은 바위 위에 난 소나
무처럼 싱싱하게 해주시옵소서. 내가 이들을 축복하니 모두 잘되고 형통할지어다.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 말씀 마쳤습니다. 내일은 주일날입니다. 여러분들이 또 부지런히 많이 이끌고 주일날 오십
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