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06.01.05 (목)
목 새벽말씀
- 선포일
- 2006.01.05 (목)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4장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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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5 목 새벽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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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5일 목요일 새벽말씀(50분)
(말씀) - 47분
할렐루야! 오늘은 1월 5일 목요일 새벽입니다. “주와 함께 전도”가 금년도 표어입니다. 작
년도는 “표적을 일으켜라. 누가? 우리가. 하나님께 보여주자.” 그러면서 했더니 정말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표적을 일으키는 데는 조건을 세울 때 표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전도할 때
전도의 표적이 일어난다. 우리가 전도해야지 하나님이 전도하면 되겠느냐? 그러면 반드시
된다.”
첫째는 자기를 전도해야 됩니다.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께 이끌어 오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를 하나님께 온전하게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자기 먼저 밥을 먹고 옆의 사람에게 밥을 먹
여주고, 자기 먼저 경험하고 믿어보고 성경을 들어보고 옆의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관리가 전도입니다. 자기 관리를 잘해야 됩니다. 혹시 자기가 다른 마음을 먹는가, 자
기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일체되는 생활이 약해졌는가 보아야 됩니다. 자기가 철저하게 주와
하나가 딱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안 이루어지면 안 됩니다. 자기 관리
를 철저히 할 것! 전도에 대한 것을 금년도에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합니다. 새로 온 신입생
들에게는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어야 됩니다. 자기 관리 어떻게 하는가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알면 하니까요. 어린아이라도 알면 하니까요. 자기 관리를 꼭 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4장 18절을 보면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곧 그 말을 듣고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좇으니라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
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리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렇게 나
왔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니까 물론 그랬지만 “나를 따라오너라.”하셨습니다. 자신만만하니
까요. 거기는 경제도, 생활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했을까요? 물론 신앙 생활
이 인간에게 다 필요하다고 하지만, 신앙 생활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어떻게 하려고 그랬을
까요? 그것은 역시 하늘 나라에서, 신앙 안에서 모두가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까? “나를 따
라 오라.”할 때는 신앙 생활만 해결이 된 것이 아니라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들도 따라가야 그것이 관리입니다. 주를 따라가는 것이 인생의 관리입니다. 안 따라가면 관
리가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가다 보면 됩니다. “따라가는 것이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안 따라가면 안 됩니다. 따라서 빨리 해야 됩니다.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빨리 따라
하도록 하라. 그것이 자기 관리다. 그 따라가는 것이 전도다.” 계속 따라오면 말씀을 들으니
까 전도되는 것입니다.
내가 보니까 옛날의 사진들이 있는데, 삼선교 때의 일입니다. 내가 이 사진을 갖다놓고 보
았습니다. 이들이 왜 안 오는가 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도 다 전했습니다. 그리
고 대할 것 다 대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따라오다가 말았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내가 다른 곳에 가 숨어서 예배 드린 것도 아니고, 그들을 떨어트리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
랬습니다. 이것은 81년 사진입니다. 81년도에 찍었습니다. 81년도 몇 월에 찍었는가 보겠습
니다. 글씨는 써있지 않지만 몇 월 달에 찍은 것을 어떻게 아는지 압니까? 옷 입을 것을 보
면 대개 압니다. 무슨 옷을 입었나 보겠습니다. 나야 옷이 없으니까 계절 따라 입지를 못했
지만, 좀 있는 부자 집을 보겠습니다. 부자 집 사람은 배수연 목사입니다. 성산동에 사는 배
수연 목사인데, 이 옷을 보니까 한 4월쯤 되는 것 같습니다. 약간 서늘한 계절입니다. 그렇
지 않으면 12월 달쯤 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알려면 머리에 입력을 시키면 됩니다. 딱 입
력시키면 4월 달로 나옵니다. 감정해 보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기계가 없어도 영을 가지고
다 감정합니다. 그리고 옷입을 것이 전부 그렇습니다. 이렇게 따라오다가 말았다는 것입니
다.
이것은 81년도 3월이 넘습니다. 나는 항상 옷이 똑같습니다. 항상 그 옷입니다. 똑같은 옷
을 입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따라와야 했는데 안 따라왔습니다. 끝까지 따라왔으면 되었습
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계속 따라오면 됩니다. 따라오면 일단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
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듯이 여기는 끝까지 따라오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올 때부터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따라오면 계속 구원받고 구원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라오다가 안 따라오면 구원이 끝나는 것입니다. 밥이 끝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렇든 저렇든 무조건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누가 속상하게 한다고 안
나오고, 누구와 부딪쳐서 안 나오고, 누구 때문에 안 나오고, 나 때문에 안 나오고 여러 가
지가 많습니다. 나 때문에 안 나올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나와야지요. 예수님 때문에 나
오고요.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 믿잖아요. 그래서 따라오면 되는 것입니다. 계속 따라
오는 것입니다. 끝까지 따라오십시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들을 지금도 나오는 사람과 비교를 해서 볼
때 특별히 차이가 없습니다. 김경천 목사도 있고, 배수연 목사도 있고, 장광희 가정국도 있
습니다. 그리고 범석 목사는 사진을 많이 안 찍었습니다. 매일 일하러 다녔기 때문입니다.
도로 공사 일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다 찍혔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따라오다
가 안 따라옵니다. 그런데 다 신앙이 아주 좋았던 사람들인데 따라오다 말았습니다. 신앙이
좋은데 왜 따라오다가 말았을까요? 시험, 어려움, 환난 이런 것으로 인해서 따라오다가 말
았습니다. 늦게까지 따라온 사람들은 1999년도까지 따라왔습니다. 1999년도까지 따라오다
가, 2000년도까지 따라오다가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따라간다고 하면서 가야 됩니
다. 나 따라온다고 하지도 말고 그저 “하나님 따라간다.” 그러면서 따라오면 되지 않습니
까? 나를 보십시오. 나는 누구 따라간다고 안 합니다. “나는 하나님 따라간다. 예수님 따라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잘 안 넘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선생님
따라간다.”하지 말고 “하나님 따라간다.” 그러면 더 좋을 것입니다. “누구 따라간다.”하지
마십시오. 전도자 따라가는 사람은 보면 전도자가 나가면 같이 나갑니다. 그러니까 안 됩니
다. 그 때는 나를 따라간다고 하십시오. 나는 안 나가니까요.
전도할 때에 여러 가지 원리와 비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을 쳐다보면서 자기 관리 하라. 따라가면서 관리를 하라. 집에서 있지 말아라.”입니
다. 며칠 전에도 부산 집회를 했는데, 많이 나왔습니다. 27일 부산에서 2500명 집회를 했습
니다. 부모님들이 200명 이상 왔습니다. 그 때 말씀은 거의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 부디
자녀들도 지켜보고, 오늘 교회에 가서 어떻게 했는가 물어보고, 그러면서 그런 것은 이렇게
해야 되겠다고 자꾸 코치도 해주면서 교회도 다녀라. 보아야 코치하니까. 무조건 가지 말라
고 하지 마라.” 그런 부모님에 대한 말씀으로 말씀이 아주 멋있게 장식되어서 부모님들 한
숨을 돌리게 했습니다. “내가 멀리 있어서 만나지도 못하니까 부모님들이 같이 관리를 좀
해주라. 나는 정신적인 관리를 할테니까 부모님들은 육적으로 관리를 해달라. 자기들이 어
떤 결심을 갖고 따라가는 것은 못 막는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안 다니던 사람들이 다시 또 시작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계속 시작하자.”하고서
말씀 끝나고 몇 명을 만났는데, 오다가 한번 안 오면 쑥스럽고 안 해집니다. 한번 쉬었다가
하면 운동도 안 됩니다. 물론 너무 너무 힘들어서 쉴 때는 쉬어야 됩니다. 그것은 잠깐, 순
간 쉬어야 됩니다. 한 10분은 쉬어야 됩니다. 선수들을 보면 그렇게 운동장에서 볼을 차고
10분에서 15분 쉽니다. 잠깐입니다. 너무 피곤하니까, 그리고 너무 지쳐 있으니까 눈 깜박
할 사이에 쉬는 것입니다. 그 때에 땀 닦고 겨우 물 마시고 갑니다.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잠을 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리 풀고, 운동화 끈 풀어졌는가 보고, 축구화 끈 끌러졌
는가 보고 이런 것 몇 가지만 확인하고 바로 뛰어들어갑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도 교회 다
니다가 지친 사람들은 잠깐, 15분 같이 그저 몇 주 정도 쉰다고 하면서 쉬는 것은 몰라도
그 기간을 조금 넘기면 곤란합니다. 땀이 식어 버리고 ‘아이고!’하고 드러누워 버리면 볼 못
찹니다. 그때는 이미 부드럽게 풀려 버린 근육들이 다시 굳어 버립니다. 땀이 식으면 그렇
습니다. 그 때 다시 들어가서 뛰려면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 그리고 삭신이 쑤시고 아픈
것이 나타납니다. 풀리면 운동할 때 뛰다가 부딪친 것이 그 때부터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
래서 운동할 때는 웬만하면 할 때, 하는 김에 하는 것입니다. 일도 하는 김에 해야지 쉬었
다가 하면 곤란합니다. 웬만하면 하는 김에 그냥 밀어붙이고 해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어
느 때는 또 무력으로 해서 안될 것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세밀하게 판단하고서 움직여야
됩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다가 쉬다가 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꼭 가서 같이
이끌어 내야 됩니다. 다시 몸 풀고, 다시금 또 시작하게끔 해야됩니다. 본인이 뛰어 들어가
기가 힘듭니다. “아이고, 다리가 무거워서 못 뛰겠다. 못 들어가겠다.”합니다. 너무 쉬면 다
리가 무거워서 자꾸 안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소리만 지르고 그럽니다. 그렇게 되면 아예
몇 달을 또 쉬었다가 다시 또 해야지, 그냥은 힘듭니다. 우리 섭리사도 따라오다가 쉬면, 환
난이든지 핍박이든지 어려움이 있어서 너무 오랫동안 쉬면 그냥 주저앉습니다. 그러니까 환
난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계속 연락해주며, “마음놓으면 안 돼.”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
렇게 해야됩니다. “마음놓으면 안 돼.” 계속 그러면서 먹이를 주어야 됩니다. 이야기도 하고
대화도 하며 “오늘 말씀이 어떻게 돌아갔다. 지금 어떻게, 몸의 피곤이 풀렸느냐?”해야 됩
니다. “아직 덜 풀렸어.” “아니, 두 달 동안 쉬었어도 안 풀렸어? 그것 이상하네.” “그런가
봐. 나 좀 이상해진 것 같아.” “빨리 나와. 다음 주에 선생님이 나오라고 한다.”하며 탁탁
끄집어내야 됩니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보니까 “아이고, 나 못 일어나겠다.”합니다. 그 때는
굳어 버린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지쳤을 때 순간만 숨을 돌이켜야지 계속 그러면 굳어버립니다. 선생님을 보
십시오. 나의 쓰는 시간을 보면 거의 순간만 깜박 잠자고 일어나고, “또 뛰자. 힘 왔다.” 그
럽니다. 그렇게 해야지 오랫동안 쉬면 굳어버립니다. 금년도 이야기하지만 굳어버린 것들은
신년도를 통해서 확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지금 벌써 5일이 되었습니다. 이제 시작해야 된
다고 했습니다. 5일 되었으니까 이제 시작해야 됩니다. 이미 1월 1일부터 했습니다. 일단
꼭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굳었던 것, 못했던 것을 시작해야 됩니다. 2005년도를 분석
해 볼 때 사실상 1년 동안 너무 뛰다가 연말에는 지쳤습니다. 선생님부터도 지쳐서 하던 것
중 몇 개 못 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해서 했습니다. 그렇게 꼭 해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2005년도 연말 때는 조금씩 지칩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 때 거의 1천
미터 뛰는데 한 2백 미터 남겨놓고 지쳤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대개 11월부터
지치기 시작합니다. 12월에 지칩니다. 그러다가 하던 것을 못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금년
도에 꼭 해야될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못한 사람들은 그 때 하던 것을 다시 또 해야
됩니다. 꼭 해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금년도 운 타서 하니까 전도하면서, 관리하면
서 해야 됩니다.
전도는 자기 관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예수님께서 두 형제 곧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했더니 배도 그물도 집어던지고 따랐더라”했습니다. 멋있게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론과는 다릅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기 바닷가에서 설
교했습니다. 그런데 육지에서 설교하려니까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얼굴이 안 보이니
까 바다로 배타고 들어가서 있고, 앞을 쳐다보며 외치게 배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될 정도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말씀을 전했을 때의 상황들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러 다녔으나
못 잡아서 허전한 가운데 그물 씻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배를 빌리자고 해서 배를 빌려주었
더니만 그날 청중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베드로도 예수님을 소문 듣고 알았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안 다녔다지만 예수 선생의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예수 선생이라고 하니
까 배를 빌려주었습니다. 배를 빌려주고 거기서 말씀 듣다 보니까 “인생은 마음대로 안 돼.
팔뚝 걷어붙이고 장담해도 마음대로 안 된다니까. 다 천주의 조화가 있고, 다 뜻이 있다.”고
할 때 베드로가 은혜 받았습니다. 그런 말씀은 성경에 안 나와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포함해
서 별 이야기를 다 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를 중심해서 썼으니까요. 이런 사람이
전도될 때가 되었으면 벌써 예수님의 설교부터가 달랐습니다. 나도 누구 하나가 왔으면 설
교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장담하지 마라.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
럴 리가 있느냐? 모두 뜻이 있지. 의문을 못 풀었는데 내 설교를 듣고 의문을 풀지 않았느
냐? 한번 생각해 봐라.”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여러분도 모든 것을 여기 와서 교회 다니다보면 ‘아, 이러려
고 그것이 안 되었구나.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데리고 오려고 나를 이렇게 틀었구나.’하고
압니다. 제일 처음에는 모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선생님을 만나고 봐야 됩니다. “너는 뜻
이 있어서 나 만나고, 뜻이 있어서 이렇게 된 거야.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 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셔서 알았으니까.” “나도 조금 약간은 알았는데, 정말 이렇게까지는 몰랐습니
다.” “그러니까 큰 것으로 보아야 된다. 하나님이 말을 안 하시고 나를 통해서 말씀하니까
전달한다. 귀히 여기고 하늘을 우러러 영광을 돌리며 고마워하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온 지구촌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사로잡으시는 왕 중의 왕이시고, 그리고 근원
자시다.”합니다.
또 하나는 섭리사에 오면서 여러분들이 과거를 자꾸 생각하십시오. 신앙이 떨어졌을 때 과
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주셨나, 과거에 무엇을 하셨나, 선생님이 과거에 어떻게 대
해주었나를 보면 시험든 것도 다시 복직합니다. 선생님부터도 어렸을 때는 ‘나 같은 것도
하나님께서 관심 갖나?’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그 많은 중에서 나를 쳐다보나? 특별히 나는
목사도 아닌데.’ 특별히 목사들만 쳐다보고, 특별히 헌금하는 사람만 쳐다보고 그럴 줄 알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심리적인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심리로 하나님
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인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
때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면 은혜가 안 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제
대로 확실히 알아야 그래야 하나님이 제대로 은혜를 칼날같이 가슴에 꽂습니다. 머리 속에
다 불을 붙여 줍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것을 모두 느껴보지 않았습니까? 온 지구상에 있는 섭리의 모든 나라들,
일본의 섭리에서 뛰고 달리는 모든 지역인 동경이나 오사카나 그렇지 않습니까? 경험해 보
니까 그렇지요? 본인이 확실하게 알고 나갈 때에, 확실함을 갖고 있었을 때 하나님이 역사
하셨지 않습니까? 그렇게 온 것을 선생님은 보낸자로서 알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미국 사람
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맞지요? 한국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나 아시아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개성적으로 다르지만 그 외는 똑
같습니다. 어떤 먹는 것에 있어서 같습니다. 미국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이 다 와서 먹
는데 “미국 사람은 안 된다. 한국 사람은 안 된다.”하지 않습니다. 다 동일하게 아시아에 왔
으면, 역시 지금 독일 사람들도 같이 내 옆에 왔으면 그들은 취침 시간이라고 밥을 안 주지
않습니다. 먹든지 말든지 일단 동일하게 줍니다. 먹는 것을 동일하게 주듯이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개성적으로 대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이러면서 온 지구상
에 하나님께서 대하신 것을 우리가 확실하게 알 때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역사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성서에 대해서 확실하게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역사를 안 하
신 것입니다.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면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기르기만 한 것입니다. 다
독거리고, 기르고, 포대기에 싸서 방안에서 열심히 기르고 그랬습니다. 확실히 모르니까 그
렇게만 길렀습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조금 몰라도 이해하지만 나이가 많이 먹었는데도
모르면 정말로 부모로서 속상한 것입니다. 나이 많이 먹었는데도 모르면 그렇습니다3588.
그와 같이 하나님을 부모로 볼 때 종교들이 그래도 오래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2천 살을 먹
었습니다. 당세에 본인이 신앙 생활하며 2천 살을 먹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종교 기독교인
들이 몇 년 다니다 보면 거기에 해당되는 만큼 영향을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벌써 그만큼
큰 사람들이 아직도 하나님이 말씀한 성서를 깨닫지 못하고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여 바른
행실을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답답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답답함을 많은
것으로 표현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어리지만 시대의 말씀을 갖고 어른인 선생님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종
교의 어른을 보낸 것입니다. 옛날부터 어른을 영감이라고 합니다. 그런 어른을 보내서 모두
가르치게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섭리사 새로운 역사에 온 모든 사람들은 어려도 하나씩 하
나씩 많이 배웠습니다. 내가 가르쳐놓고 보면 10살 짜리나, 20살 짜리나, 7살 짜리나 말씀
하면 일단은 움직입니다. 10살이면 10살만큼 움직이고, 20살이면 20살만큼 움직입니다. 알
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들어야 됩니다. “듣지 않은 것을 어찌 말하리요. 듣지 않았
는데 어떻게 행동하리요.”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렇게 여러 가지로 이치에 맞는 말씀을 외쳤습니다. 베드로를 중심한
모든 사람에게 외쳤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마 그날 베드로 녹이는 것을 목적했을 것입
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기 수제자가 될 것을 아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는 잘 모릅니다. 왜? 메시아라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되어도 다 모릅니
다. 오직 하나님만 전지전능하시고, 신중의 신이기 때문에 다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
마도 그날 예수님을 통해서 베드로를 녹이는데 전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신 것이 틀림없는 것
입니다. 되어진 사실로 볼 때 그렇지 않겠습니까?
베드로는 그날 배도 빌려주고 했기에 자부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배에 타고 말씀을 전
하니까요. 그날 수다한 무리들이 그런 입장의 설교를 들은 것입니다. 설교 내용은 나온 것
이 없습니다. 무슨 말씀을 외쳤는지 특별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다 쓰려면 끝이 없
습니다. 그러나 몇 자라도 써놓았으면, 몇 줄이라도 분명히 써놓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다
만 그저 베드로에게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했습니다. 아마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베
드로만 면담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큰 집회를 했으면 면담자들이 몇 명씩은 있
습니다. 그것이 시대의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맞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렇게 면담을 했는데, 베드로만 면담을 했지 특별히 면담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끝난 다음에
면담한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그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설교 끝나면 면담입니다. 선
생님께서 각 나라 대 집회를 하면 끝난 다음에 면담을 합니다. 그 때 꼭 몇 사람은 만나지
만 많은 사람을 만나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아직까지는 끝까지 거의 다 만나주었지만, 너나
나나 하다보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해주고 싶어도 자를 때는 시험 들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이크를 돌리느라고 그런 것이니까요.
베드로는 면담 가운데 “나는 어제 밤에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데 못 잡았습니다.”했습니
다. 아마 고기가 많이 잡혔으면 그물 씻을 것도 없이 일찌감치 고기만 건져내고 갔을 것인
데, 고기를 못 잡고 있을 때 만나게 되어서 배를 빌려주었고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니까 예
수님의 말씀이 “깊은 데 그물을 던지면 고기를 잡을 것이다. 깊은 데서 그물을 한번 던져
보아라.”하셨습니다. “아니, 깊은 데고 어디고 다 던져보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안 잡혔
습니다.” “바다의 깊은 데 그물을 던져라.” 예수님께서 고기가 있는 곳을 아셨든지 깊은 데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해서 결국 고기를 잡았습니다. 많은 고기를 잡아서 배가
가라앉게 생겼으니까 옆의 배를 불러서 “나를 좀 도와달라.”해서 베드로가 고기 잡는 자들
의 도움을 받았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는 와서 또 예수님께 보고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해서 되었을 때 그 이야기가 얼마나 신기합니까? 그래서 이야기했을 때에 “사
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라.”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했습니다. 무엇인가 느낌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나
는 죄인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각종 각색 모든 것이 있습니다. 본인들이 행한 것을 예수님이 꿰뚫어보기도 했지만, 본인들
이 행한 것은 본인만 알지 누가 압니까? 그래서 “나는 죄인입니다.”했습니다. 아마 호언장
담하며 살았던 것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늘을 모르고 살았던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회
개하고 돌아왔든지 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에 초점을 맞춘 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전도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날 전도되어 말씀 들었는데 베드로만 두드러지게 나왔습니
다. 결국 수제자가 된 상황이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러 갈 때도 이와 같이 멋있고 뜻있게 사람을 찾으면서 전도해야지, 그냥 청
중이 왔다고 다 돌아온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 중의 뜻있는 사람 때문에 청중이 모
였다. 뜻있는 사람 때문에 그 모임이 되었다.’ 이렇게 까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약간 좀
기대에 어긋난 일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어느
때는 보면 2-30명씩 사람들이 왔다 가는데, 결국 한 사람 남고 다 빠져나갑니다. 그 때 금
방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빠져나가서 마지막에 하나 남더라고요. ‘아, 그 때 모든
상황은, 그 집회는 그 한두 명 때문에 한 집회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한 때도 있습니다.
우리 전도하는 사람들이 가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지만 그렇습니다. ‘아, 그 15명이나 되
는데 다 놓쳤네. 한 명밖에 안 남다니. 아, 정말 억울하다.’하지 말고 그 때는 결혼할 때 들
러리로 모두 모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전도하는 사람들도 전도의 법칙
과 이치의 흐름을 알고 해야지, 잘못하면 지쳐 버립니다. ‘아, 내가 잘했으면 10명 다 오게
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로 내가 미쳐. 그 때 내가 열심히 할 것을,
왜 한 사람에게만 집중해서 말씀했을까?’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런 사람에게 결국 나타나서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곱, 요한 이런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중 가운데서 나타난 사
람들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 그러면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에게는
그 후 정말로 그 비유를 들음과 같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바다에 있는 고기를 잡는 어부
였지만 “너는 지금부터 나를 따라다니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하시니 사람들을 전도
해서 하나님께 끌어들이는 그런 어부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어부 제자입니다. 수제자가 되
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을 따랐던 광경이, 전도에 관한 것이 마태복음 4장에 나
와 있습니다. 베드로 전도된 상황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그냥 “나를 따라와라.”해서 따라온
것이 아니라, 그물을 하루아침에 확 버리고 온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왔지
그냥은 못 했을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 돌아오고 역사를 폈던 일이 나옵니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도 그 자리에서 전도되었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날 가장 핵심적인 초
점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베드로였습니다. 그 때에 전도된 사람들이 누군지는 잘 모르지
만, 핵심적인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선생님도 군중 속에 말씀을 하면 그 날 핵심이 누군가 찾습니다. 찾아서 그들이 돌아오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핵심이 어떤 장관이요, 정치인이요 그렇기 보다는 하여튼 핵심자
를 찾아서 그날 역사의 말씀을 전할 때가 있습니다.
금주의 말씀을 들어보고 있습니다. 1월 첫주의 말씀 주간에는 “나와 같이 전도하자. 어떻게
어떻게 하면서 가야 된다.”하면서 예수님이 전도한 것도 보고,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선
생님이 전도한 것도 보고 듣고 하지만, 오늘도 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된다. 카메라
초점 맞추듯이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하더라.” 찍기는 카메라가 다 돌려가며 찍는데, 실
상 그 근방의 배경을 찍는 것은 쫙 크로즈업 시키면서 폭포수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폭포수 때문에 거기를 찍으러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폭포수만 찍는 것이 아니라 폭포수 찍
으러왔어도 전체 배경을 다 비추면서 “이렇게 넓은 땅이 있어도 폭포수는 하나밖에 없다.”
하며 거기에 초점 맞추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반드시 전도하는 자들은, 외치는 자들은 초
점을 맞추어서 외칠 줄 알아야 됩니다. 무조건 허공치게 외치지 말고요. 알겠습니까?
한 마디를 더 굳혀 말하겠습니다. 금주 말씀 가운데 무엇이 있는가 하니, 금년도는 꼭 작년
도에 못한 것을 금년도에 시작해야 됩니다. 못한 것을 그냥 지나가면 안 됩니다. 작년도 너
무 바쁘고 지쳐서 못한 것이 있습니다. 11월, 12월에 막 놓았습니다. 그것을 금년도 시작하
라고 했습니다. 그것 안 하면 안 됩니다. “꼭 하도록 하라.” 그랬습니다. 그것이 초점을 맞
추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아침에 초점 몇 개를 맞추었습니다. “따라가라.”는 초점도
맞추었습니다. “따라가라. 무조건 따라가라. 의심하든지, 이해가 안되든지 무조건 따라가라.”
그렇게 따라와서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이 있습니까? 바짝 따라오다 보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다 보면
“어? 멀리서 보는 것과 달라. 신적인 것이 안 풍겨.” 예수님 제자들이 그럴 때가 있었습니
다. 바짝 따라오다가 그랬습니다. 묻는 상태를 보니까 그런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내가 성
경을 여러 가지로, 수십 가지로 꿰뚫어 보았습니다. 칼날같이, 면도날로 긁듯이 꿰뚫어보았
습니다. 예수님과 멀리 있을 때는 막 우러러보더니 바짝 따라 다니면서는 예수님께 꼬치꼬
치 묻고 그랬습니다. 이것 묻고 저것 묻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멀리 있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짝 따라오면, 아주 바짝 따라와서 근본을 깨닫고 확실히 알고
갈 때는 1백 배, 2백 배 더 크나큰 쇼크적인 큰 사람이 되고 크는데 영향이 좋습니다. 섣불
리 할 사람이 바짝 따라오면 오히려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셨다고 하는데, 예수님을 보니
까 거지들 불쌍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대하는 것만 보고 그리고 모든 책망하는 것을 보니
까 시험 들겠었습니다.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따라가면서 계속 이것을 이해
를 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왜 너는 그런 것을 나에게 안 물어보느냐? 나에게 물어보아야지. 왜
이런 것을 안 물어보느냐?”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묻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선생님, 저는
묻고 싶어도 겁나서 못 묻겠어요.”하는데 “그러나 하나씩 물어보아야지, 그냥 따라가면 안
된다. 이런 것은 이런 뜻이 있고, 이런 것은 이런 뜻이 있다. 궁금하면 많은 사람 앞에 이야
기하면 안 되니까 너만 와라. 내가 가르쳐줄게.” 그럽니다. 그러면서 가르치는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고 “와, 진짜 멋있다. 나는 별 되고 싶다.”고 해서 별이라는 이름
도 많이 짓습니다. 그러나 별에 가서 딱 보면 별 볼일이 없습니다. 아폴로 타고 바짝 가서
보면 별 볼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듯이 그런 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흙
덩어리이고 돌덩어리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참으로 별 볼일 없다. 별을 가보면
별 볼일 없다. 달도 그러하리라. 해도 그러하리라.” 그럽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너무
아름답고 멋있지만, 바짝 가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연구하면 더 신비성을 깨닫
게 됩니다. 해가 비추어서 반사시켜서 그 빛이 오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둔산을 보면 두 가지로 보일 것입니다. 대둔산을 아침에 보면 햇빛이 딱 때려서
하얀 빨래 널은 것 같습니다. 마치 어떤 여인이 흰 빨래를 널어놓은 것 같이 하얗게 보입니
다. 그래서 “대둔산이 흰 바위 덩어리네.”할 정도까지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바짝 가보면
아닙니다. 나무도 많이 있고, 그리고 바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햇빛으로 조명 받
아서 딱 때리는 것입니다. 우리 얼굴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냥 조명 딱 때리면 환하게 비
추지 않습니까? 광채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명 발이라고 모두 그럽니다. “화장 발, 조
명 발, 웃음 발.” 그럽니다. 사람이 화장 발도 있고, 조명 발도 있고, 그리고 웃음 발도 있습
니다. 웃으면 또 빛이 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팍 들어가서 일단 관이 딱 돌아오면
말씀 발이 있어서 말씀의 빛이 납니다. 그래서 지혜 받은 사람은 지혜 빛이 나고, 말씀 받
은 사람은 말씀의 빛이 나고, 온전한 사상을 딱 가지면 얼굴에 또 빛이 납니다. 그러나 이
상하니 사고가 다른 데로 돌아갔으면 빛이 안 나고 어두워집니다. “너는 왜 이렇게 어둡느
냐?”하면 “요즘 제가 햇빛 좀 쐬서요.”하지만 확실히 분별해 보면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습
니다. 관이 돌아가면 얼굴로 금방 압니다. 여러분도 화장 발이 안 되면 웃음 발이라도 하십
시오. 나는 웃음 발이 참 좋습니다. 웃으면 빛이 납니다. 그래서 스마일 운동을 해서 “웃자.
웃자.”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자꾸 웃으면서 설교하라고 합니다. 10대들이나 20대의 젊은이들은 다
웃으면 좋아하는데 어느 때는 웃음을 일부러 안 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하니 잘 봐가
면서 웃어야지, 공연히 웃을 자리도 아닌데 웃으면 말씀이 또 다른 데로 새어나가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요즘은 심각하게 말씀을 합니다. 요즘은 말씀할 때 혹시 잊어버릴까봐 심각하
게 합니다. 지금은 가만히 서서 고개만 다른 데로 돌려도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지금 이 정
도 말씀하게 되면 거의 4차원 세계에 들어가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앞
에 있으면 보였다 안 보였다 합니다.
또 무엇에 초점을 맞추었나 하면, “따르라.”했습니다. “자기가 따르면 자기가 관리된다.” 자
기 관리 좀 하면서 남도 관리해야지, 남 관리만 계속 하다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도 관리를 하면서 하지, 왜 나만 자꾸 이야기하지? 아이고, 모순이다. 모순.”합니다. 그
러니 자기 관리를 꼭 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가 잘하나 못하나 자기를 본다는 것입
니다. 그러니 꼭 자기 관리하면서 하십시오. 그래서 큰 사람들은 옆에다 사람을 세워 놓습
니다. 혹시 무엇을 잘못하나, 뭐하나 자꾸 속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야기할 때도 자기가 잘하나 못하나 잘 모릅니다. 발음 같은 것도 잘 모릅니다. 말은 천천
히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전할 때도 조리 있게 천천히 확실하게 또박또박 해야 됩
니다. 예수님께 어떤 사람이 똑똑하게 말 잘하는 사람이냐고 하니까 또박또박 하는 사람이
똑똑히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어떤 필기체로 막 긁
어서 상대가 몰라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에게 정자로 써서 주는 것이 좋지 않
습니까? 그와 같이 말도 글과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째재거리며 찌꺼분하
게 합니다. 글 쓸 때 찌꺼분하게 씁니다. 그것을 “찌꺼분하다.”고 그냥 표현하는데, 꾀죄죄
하게 글을 씁니다. 한번 자기가 글쓰면서, 필기하면서 누구를 보고 말했는가 보십시오. 꾀죄
죄하게 필기를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냥 끌쩍끌쩍 필기를 하는 사람이 있고, 어
떤 사람은 또박또박 필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조건 다 쓸려고 다 잡아 쓰는 사람이 있
어서 그러면 글씨를 제대로 못 쓰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공자같이 한참 듣다가 한 자나 몇
자를 딱 쓰고 그럽니다. 그리고 잠언식으로 자기 생각만을 잠언으로 써서 남기고 그렇습니
다.
이렇게 여러 가지인데, 선생님은 옛날에 그렇게 했습니다. 석막 교회에서 나만 그렇게 필기
를 했습니다. 설교를 하면 계속 적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가 와서 비웃을 정도였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쓰느냐? 쳐다보고 듣지, 무엇을 그렇게 쓰고 있느냐?” “다 쓰고, 귀한 것은
집에 가서 또 읽어본다.”했습니다. 그런데 그 쓰는 것을 별로 칭찬을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수준이 떨어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보면 “말씀을 듣는 자와 기록하는 자와 실천
하는 자가 복이 있다.”했습니다. 그렇게 쓰니까 정말 복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글쓰는
데 여러 가지로 다 영향이 컸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듯이 선생님은 합니다. 선생님 글이 다
른 사람보다 멋있습니다. 처음에는 안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멋들어지게 글을 씁
니다. 여기 가끔 써서 붙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붙여 놓으면 멋들어지게 씁니다. 지금은
한번에 그렇게 멋들어지게 씁니다. 척척 씁니다. 그림도 멋들어지게 거침없이 그립니다. 말
씀도 거침없이 합니다. 지금은 왜 말씀을 천천히 또박또박 하는가 하니 외국에 있는 사람들
이 동시 통역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때문입니다. 동시 통역을 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잘 이야기를 못 합니다.
오늘 세계 각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 설교할 때 글을 쓰고 있지요? 그리고 컴퓨터로 때
리고 있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말한 것을 다 쓸 수도 없습니다. 핵심만 쓰되, 너무 간략하
게 써도 얼마 안 가서 잊어버리면 모릅니다. 최대로 쓰되, 최하 70%는 써야됩니다. 나머지
30%는 쳐내고 쓴다고 해도요. 그래서 선생님 말씀은 녹음을 해놓으면 최고입니다. 녹음을
해놓으면 다 들어오니까요. 녹화를 해버리면 세밀한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 말이 그 말
같아도 계속 다릅니다. 집을 지을 때 매일 그 일이 그 일 같아도 조금씩 계속 다른 일을 합
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는데 대해서 정성스럽게, 세밀하게 써야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그것
이 수도 생활이 됩니다. 글쓰면서 그것을 통해서 자기 성격, 자기 행동을 매일 고치는 것입
니다. 그래서 글 쓸 때는 너무 잔잔하게 조그맣게 쓰지 말고, 적어도 선생님 제자라면 글씨
도 나를 따르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 중의 하나라도 따라야 됩니다. 정자로 쓰는 것을
하든지, 거의 다 쓰는 것을 따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 필기체를 따르든지 해야 됩니다. 그
러면서 자꾸 쓰기를 바랍니다. 내가 요즘에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렇게 하듯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되게 만들었구나.’합니다. 나는 그 때 교역자가 “무엇을 그렇게 받아썼느냐?”했었습
니다. 그 때는 어렸기 때문에 수준도 낮았습니다. 그 때는 내 나름대로 설교를 들으면서 기
록한 것입니다. 그 기록이 지금은 하나도 없습니다. 없을지라도 지금의 선생님이 되기 까지
는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작년도 못한 것들을 꼭 하라.”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말씀을 쏘았습니다. 초
점을 맞추었습니다. 여러 가지 초점을 많이 맞추었습니다. 어제 밤에 내가 늦게까지 있었습
니다. 1시 가까이 되었을 때 기독교 방송을 딱 보니까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개는 알
지만 ‘요즘은 어떻게 설교하나?’하고 들어보았습니다. 한 15분 정도 들어보니까 아멘 소리
만 들어왔고, 무슨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특별히 간증한 이야기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별
로 들어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멘 소리는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불교 방송을 10분 동안
들었는데, 거기는 이런 설법을 했는데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이 먹고 오래된 스
님일지라도 이제 어린 스님들이 무엇을 깨닫고 열심히 충성스럽게 하면 그 사람을 반드시
우러러 존경해주며 대해 주라. 그렇게 안 하면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들어왔습니다. 들어왔기에 지금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방송에서 한 것은 안
들어왔습니다. 나에게는 아멘한 것만 들어왔습니다. 아멘하고, 마지막에 “어떻게 살기를 바
라는 바입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여자 목사인데 말을 너무 빨리 하고, 그 말이 정확하지를
못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딱 하나 깨달았습니다. “아, 말을 또박또박 해
야 되겠구나. 정확하게도 또박또박 해야 되겠다. 저 여자가 혼자 숨쉴 겨를도 없이 말을 하
는데.”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말을 또박또박해야 됩니다. 그래야 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또박또박 말을 하고, 조리있게 뜻있게 말을 하며, 반드시 설교 가운데 하나님이 꼭 들어가
야 됩니다. 하나님은 바위이십니다. 하나님의 바위가 있습니다. 반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
드시 예수님이 들어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숲과 같은 입장입니다. 반드시 성령님도 들어가
야 됩니다. 감동하시는 성령께서는 물과 같습니다. 이 세 가지는 들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또 자기의 간증도 들어가야 됩니다. 새가 울고, 꽃이 피어 있으면 좋습니다. 아마 자기는 새
나 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자기도 들어가야 됩니다. “나는 여기 와서 이렇게 되었
다. 이렇게 되어서 너무 좋다.”하며 자기가 들어가야 됩니다. 그럴 때 “그래?”해집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예수님에 대해
서 이야기도 하고, 선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받아서 말하
고,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기에 대해서 말해서 꽃이 피고 새가 울면 거기는 천하 일색 다홍치
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됩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전하십시오. “작은 한 사람에게
도 이런 여러 가지를 섞어서 말씀을 전하라. 그러면 거기는 뼈대가 딱 서있다. 주를 증거하
며, 하나님을 증거하며, 성령을 말씀하며, 그를 말씀할 때 자기에게 더 역사를 하시고, 하나
님도 말씀하시더라.”
오늘은 “자기가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아야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역사하신다.” 거기
에도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되었지요? 이만치만 했는데도 40분이라는 시간이 갔습니다. 시
간이 흘러야, 시간을 많이 주어야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천천히 하기 때문에 지금은
보통 30분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천천히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모
든 5일 목요일 새벽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통해 말씀하셨으니 듣고
그대로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어떻게 무엇을 했나에 대해서, 베드로 전도한 상황을
핵심만 간략하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이 시대도 모두 그러함을 깨닫고 느끼며 가게 해주시
옵소서. 내가 말씀을 했어도 잘못 깨달으니 이들 옆에서 들은 자들이 더욱 깨우쳐 주고 가
르치게 해주시옵소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오늘 말씀을 잘 적고, 열심히 적으
라고 했습니다. 보라고 했습니다.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머리로 적지 말고 붓으로 적어라.
머리로도 적어야 되지만 가다보면 잊어버린다.”했습니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을 안 잊어버리
는데 비가 안 오니까 우산을 놓고 왔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머리 속에 다 저장되어 있는
데 가다보면 다른 것으로 인해서 머리 속에 저장한 것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글로
남기면 저장한 것이 남이 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역사를 글로, 책으로 남겼습니다. 지
금은 우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 그리스도
의 사랑하심과 내가 이들을 가르치고 말한 것을 지켜 행함이 충만키를 간절히 간구하고 축
원하옵나이다. 아멘.
. 각 나라를 내가 지켜보면서 계속 말씀을 전하니 이제 또 열심히들 뛰어서 전도된 사람도
튼튼히 굳혀주십시오. 신입생 중에 벌써 시작되어서 전도를 해오는 사람이 있는데 참으로
빠른 구름들입니다. “그리고 자기 관리도 하면서 꼭꼭 하라. 끝까지 따라가야 된다.” 이런
말씀을 하면서 오늘 말씀했으니까 잘 관리하면서 가도록 하십시오. 온 지구상의 각 나라들
이 그래야 됩니다. 요즘은 나라 하나씩 부르지도 못 합니다. 그래도 세계 각 나라를 다 부
르고 있고, 다 쳐다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생각하시려는가?’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지체가 ‘나, 손가락도 생각하나? 나는 한번도 보지도 못하는데 뒤통수를 생각하고 있나?’ 그
러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 그러면 여기서 모든 말씀 마치고 내일 금요일 새벽에 다시 보겠습니다. 여기는 내일은 30
일, 모레는 31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지금 거기는 벌써 5일입니다. 해
가 바뀐 지 5일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 각 나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는 하루 차이
이지만 모두 오늘은 5일, 내일은 6일입니다. 내일 아침에 6일 설교하러 올 테니까 또 내일
아침에 와서 열심히 새벽을 깨워 일어나서 하도록 하십시오. 바이 바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