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06.01.07 (토)
토 새벽말씀
- 선포일
- 2006.01.07 (토)
첨부 파일
- PDF
20060107 토 새벽말씀.pdf
250.7 KB
* 2006년 1월 7일 토요일 새벽말씀(45분)
(말씀) - 45분
할렐루야! 오늘은 2006년 1월 7일 토요일입니다. 한 해가 서서히 지나가며, 이제 시작한 지
1주일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과거나 현실이나 미래를 볼지라도 우리가 꼭 초점을 맞추어
대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도록 하라. 감사가 항상 적다. 하나님이 주는 것은 많
이 주시는데 받는 것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도 감사하는 사람이 없다.” 그랬습니다. 성서
를 볼지라도 섭리사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감격하며 살았습니다.
선생님이 이 섭리사를 지켜볼지라도 늘 그랬습니다. 감격하며 감사하며 살은 날은 그야말로
재수가 좋게 모든 일이 잘 되었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프로그램이 돌아가더라고요. 그래서
감격하며 감사하라고 그랬습니다.
오늘은 이런 말씀이 흘러갔습니다. 우리가 하늘 앞에 약속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해달라는 것과 하겠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라고 했습니다. 혹시 전도를 약속
했습니까? 혹시 하나님께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주면 이렇게 하겠다고 했습니까? 그것을 안
하면 안 됩니다. 안 하면 일단 인정을 못 받기 때문에 신임을 잃어버립니다. 꼭 하라고 했
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에게 약속하지 아니하였느냐? 나도 너희에게 약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약속한 대로 주는데 너희가 왜 다른 말이냐?” 그랬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해드려야 됩니다. 선생님이나 여러분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힘든 일을 당할 때 “나 이렇게 해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해
주면 이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실전에 가서는 안 한다. 그것을 오늘은 말씀을 외쳐
라.”했습니다.
지금 초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역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약속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켜라.” 해가 될지라도 지키라고 했습니다. 왜 해가 됩니까?
“약속한 것은 해가 될지라도 지켜라. 안 지키면 더 큰 해가 온다.” 그런 말씀입니다. 오늘은
그런 말씀으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약속을 알지요?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꼭 지켜라.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께 약속했으니 안 지키면 하나님을
경히 여기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 약속하고 안 지키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된다.
주께 약속했는데.” 약속대로 꼭 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가 누
구냐? 그를 찾아라. 존귀히 여긴 만큼 해주어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히 여긴
자가 누구냐? 약속해 놓고 하지도 않은 사람들은 그대로 행해주어라. 그대로 대해주어라.”
한다는 것입니다. 친구 사이도, 백성과 주권자인 대통령 사이도 그렇습니다. 대통령만 시켜
주면 이렇게 하겠다고 공약을 내겁니다. 공약을 합니다. 그 공약을 꼭 지켜야 됩니다. 안 지
키면 국민들이 욕을 하고, 각종 각색의 불만 불평이 많습니다.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누가 선거 때 자기를 좀 밀어달라고 해서 해주었는데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새끼 틀렸다.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이다. 못된 놈의 새끼다 다시는 우리가 도와주지 말자.”
그랬습니다. 결국 다시는 계속 국회의원이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안 지켰으니까 우리도
안 지키기 때문입니다. 안 찍어주면 된다고 우리가 안 찍어주어서 안 된 것이 아닙니다. 그
값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찍어주고 안 찍어 주고가 문제가 아니라 찍어주어도 안 됩니
다. 그만큼 못 씁니다. 약속한 것을 안 하면 안 됩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약속하면 국민들이
약속을 다 받습니다. 그것 하나 딱 믿고, 그것 하나 신용장으로 믿고 국민들이 다 해줍니다.
그런데 그래놓고, 약속해 놓고서 다 안 합니다. 그래서 약속한 것은 꼭 해야 됩니다.
선생님부터도 약속한 것은 꼭 합니다. 만나면 “내가 너와 약속한 것이 있느냐?” 그럽니다.
“이런 것 약속했습니다.” “응. 그랬어? 해주어야지. 내가 잊어버려서 못했구나.” 그럽니다.
내가 잊어버린 것을 하나님이 또 해준 것도 있습니다. 다른 복잡한 이야기 말고 그렇게 우
리가 서로 약속한 것을 꼭 지키자는 것입니다. 오늘은 토요일인데, 1주일 동안 약속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 모두 오늘 지키는 날이 되고, 혹여 금년도 시작하면서 약속한 것이 있습니
까? 그것 지켜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금년도 약속한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1월 1일부터
15일까지 하나님께 기쁘게 영광 돌리는 날로 정했습니다. 하나님께 설날 명절로 정했습니
다. 그래서 가까이 되게 했으니 그것을 안 하면 이제는 다음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5
일 동안은 여러분들을 이렇게 잘 풀어놓고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안 하면 다음에
“틀렸다.” 그럽니다.
하늘 섭리사는 이 사람에게 기대를 했는데 이 사람이 안 하면 다른 사람이 꼭 합니다. 그래
서 그 다른 사람이 할 때 이 사람이 너무 부러워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을 보여줍니다. “저
봐라. 네가 안 하니까 저가 하는 것을 봐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결국 레
바논의 백향목을 부러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뜻을 정해놓고
무엇을 하라고 했는데 안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형벌 받고, 형벌 받으면서 레바논
의 백향목을 보니까 너무 엄청났습니다. 그러니까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까지 하게 만들
었습니다. “너희들이 안 해서 내가 그들에게 축복했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 그랬습
니다. 선생님도 보라는 듯이 해줍니다. “이것을 네가 못 해서 이를 축복한 것이다.”라고 직
접 이야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라는 듯이 그럽니다. 아주
쓴 꼴을 보고, 쓰디쓴 꼴을 봅니다. 보여주면서 나중에 가서 미치게 만듭니다. 그러니 여러
분들은 약속한 것은 꼭 지키십시오.
오늘 아침에는 예수님도, 하나님도 “약속한 것을 지키라.”하십니다. 그러면 성령의 이야기는
어떠한지 들어볼까요?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은 본인 책임분담이다. 본인이 약속했으니까
본인 책임분담이다.”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본인이 약속했으니 본인의 책임이지 않느
냐? 그것은 어쩔 수 없다.” 하나님도 약속한 것을 “내가 너와 약속했으니까 주겠다.”하십니
다. 하나님은 약속을 너무 잘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큰 것도 거침없이 약속합니다. 큰 것도
하나님께서는 약속합니다. 약속을 받아주십니다. 그런데 큰 것을 이행하려면 사람이 힘이
듭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계획해 놓고서 계속 해왔습니다. 밀어
붙이고 나오고, 밀어붙이고 나오고 했습니다. “약속대로 해야되지 않겠느냐?” 어제도 누구
와 전화하는데 “너, 나와 이렇게 약속했는데 왜 약속대로 안 하느냐? 약속대로 안 하면 너
지옥 간다.” 그랬습니다. “약속대로 안 하면 너 지옥 간다. 결국 지옥 간다.” “그렇게도 무
섭습니까?” “그렇게도 무섭지. 약속대로 해야지.” “알겠습니다.”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들도 약속대로 안 하면 한 마디로 말해서 사망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입니다. 약속대로 해야
됩니다. 사람이 “이렇게 해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했을 때는 약속대로 꼭 해야 됩니다. 못
했다면 첫 번째는 잘못했다고 기도를 할 것이고, 그리고 진행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
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분명히 했지요?
나는 그 전에 그랬습니다. “나, 지금은 꽉 묶여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노래도 못 합니다.
그래서 한 2년 동안 노래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여튼 내가 마음놓고 노래할 수 있는 장소
만 주시면 내가 늘 노래를 하겠습니다.” 그런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하니까 하
나님께서 말씀 주십니다. 안 하면 안 줍니다. 약속대로 여러분들도 꼭 해야 됩니다. 무엇을
약속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래도 그 약속대로 하면서 자기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
겠지요? “반드시 힘들어도, 어려워도 약속대로 하라. 그러면 잘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에게 구약서부터 구원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내가 강림한다.”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강림했습니다. 약속대로 했습니
다. 그래서 구약에서 약속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나는 매일 찾아봅니다. 혹시 내 시대에 해
당되는가 찾아봅니다. 보면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너희를 위해서 구주를 보낸다. 메시아
를 보낸다. 그리고 십일조를 해봐라. 그러하면 너희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해주겠다.” 말라
기서를 통해서 보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지혜가 없느냐? 구하라. 내가 후히 주겠
다.”했습니다. 훗날에 주겠다고 안 합니다. “후하게 주겠다.”하셨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약
속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창세기서부터 계시록까지 다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안 하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것을 쳐다보고 “어? 이렇게 해준다고 했다. 기도하면 지
혜 준다고 했다.”하고 계속 기도합니다. 기도를 한번 해보십시오. 지혜를 주나 안 주나요.
그렇게 하면 줍니다. 기도한 것만큼 줍니다.
또 “지상에 천국을 일으키겠다.”고 했는데 그 예언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언을 우리가 이루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혁 종교가 있습니다. 바로 루터 이후
400년 동안이 개혁 종교입니다. 개혁해서 한 종교입니다. 개신교라고 합니다. 개신교, 천주
교를 합해서 기독교라고 합니다. 쪼개면 천주교인 카톨릭 그리고 개신교가 있습니다. 우리
는 부모 같은 기독교 그 속에서 또 낳은 성약 역사입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성약 역사입니
다. 성약 복음 역사입니다. 그래서 섭리사라고 여러 가지를 붙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 조상들에게 약속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조상들이 못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안 해주셨습
니다. 약속 안 지킨 것은 누구든지 그것을 조건 세우고 약속을 지키면 다 받는 것입니다.
얼마나 겁납니까? 그것을 알고서 가야 됩니다.
신약 역사에서 신약 사람들에게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이 신약 역사
때 약속했는데 사람들이 그 조건과 그리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못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그것을 제대로 해야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제대
로 해야 이루어집니다.
창조목적 세계가 있는데 인간이 성장하기 전에 타락되었습니다. 제대로 성장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인격 지혜 총명 모략이 하나님같이 성장한 다음에는 제대로 역사가 펴집니다. 그러
나 기독교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했습니다. 지금 현재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성장
시키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가르쳐주고, 그리고 이것 저것 다 제대로 가르쳐주
었습니다. 제대로 했습니다. 제대로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를 제대로 펴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상 6천년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 최첨단으로 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
에 없습니다. 꽃을 길러놓고 계속 1차, 2차, 3차로 보면 봄에는 막 큽니다. 그 다음에 여름
에는 잎이 막 핍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꽃이 핍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곡
식을 심으면 봄에는 씨뿌려서 막 나서 키웁니다. 여름에는 무성합니다. 가을에는 열매 열어
서 거두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었는데 1년 되었을 때는 1년 만큼만 큽니다. 막 성장합니다.
2년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 더 큽니다. 그리고 3년 되었을 때 열매 맺습니다. 이와 같이 우
리들도 구약은 1년생, 신약은 2년생, 성약은 3년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열매를 다
못 맺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했으니 우리는 주인공이니까 최첨단으로 잘해야
됩니다. 이것을 부러워한 것입니다. 옛 선지자들도, 옛날도 다 부러워한 것입니다.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선지자가 되었든지 누가 되었든지 그 시대에 해당되는 일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높은 차원에 태어나면 그 시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가을
시대에 태어나면 어린아이도 가을을 맞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봄에 태어나면 임금이라도
가을을 못 맞고 그냥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태어났느냐의 때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시대의 혜택이라고 그럽니다. 여러분은 가장 시대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습니
다. 왜? 하나님의 보낸자 구원자도 만났지, 대화도 하지, 같이 생활도 하지, 말도 하지 그렇
습니다. 꿈이 아닙니다. 그런 것도 시대의 혜택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아무리 기도를 1백 시
간, 1만 시간해도 못 만났습니다. 때가 아니니까 못 만난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들은 육신은 못 만났지만 죽어서 만나겠지요. 죽은 다음에 만나는 혜택을
받게 됩니다. 그와 같이 다릅니다. 그것을 시대의 혜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임금들
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요즘 전자 제품의 혜택을 다 봅니까? 못 봅니다. 텔레비전을 보았습
니까? 못 보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열차 타고 다녔습니까? 비행기 타고 다녔습니까? 못
했습니다. 그것을 두고 시대의 혜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만 부러워할 것이 없
습니다. 그것을 뭐하러 부러워합니까? “지금의 내가 중요하다. 지금 시대가 중요하다. 현실
이 중요하다.” 이것을 늘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정신 차리고 하면, 10배 1백 배 1천 배 1만 배 1억 배 정신 차리고 하면
그만큼 잘됩니다. 선생님이 그럽니다. “얼마든지 세계를 통솔할 수 있다.” 왜? 그렇게 많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가지고 큰 사람 밑에서 큰마음을 먹
고 크게 크라는 것입니다. 큰 사람의 혜택 보고 살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가
령 개미가 개미에게는 큰 혜택을 못 봅니다. 개미가 다리 아프다고 개미를 올라타고 간다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하고 조금 업고 가다가 말 것입니다.
그러나 코끼리 등을 타고 가면 아마 평생 타고 다녀도 코끼리가 “너, 무거워서 내가 못 다
니겠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 안 합니다. 올라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혜택을
받으면 그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혜택 보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혜
택 보아도 하나님께서 큰 폐 끼쳤다는 소리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십니다. 지구가 돌아가는
데,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는데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무겁다고 합니까? 1만 명 더 있
다고 무겁다고 합니까? 1억이 더 있다고 무겁다고 하겠습니까?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그런 웅장한 세계에 우리가 살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든지 뛰고 달리면서 역사를 펴나
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세밀하신 하나님
입니다.
성경에 예언하고 약속한 것, 모든 선조들에게 약속한 것을 안 지켰지만 그 다음 역사에 지
켰을 때 그 때에 여지없이 하나님께서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구약 때에 약속하고 못한
것을 탕감 받느라고 4천년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있습니다. 탕감이 일단 끝나야 되
니까요. 일단 잘못했으면 그 탕감 기간은 끝나야 되니까요. 그 탕감 기간은 정확하게 정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4천년 끝났으니까 신약 때 약속대로 한 것입니다. 그대로 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약속대로 하는 사람이 이루는 사람인데, 그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생활
을 철저하셨습니다. “예수님이니까. 예수님은 메시아니까.” 그러는데, 예수님께서는 전혀 그
것을 빼라고 하셨습니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내가 언제 메시아라고 특별한 교육받고,
특별한 특수훈련 받았느냐?”하셨습니다. 그렇게 보니까 훌륭한 것을 느꼈습니다. 똑같은 사
람인데 그렇게 하니까 너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때 이미 말했습니다. “엘리야를
봐라. 똑같은 사람인데 왜 엘리야는 저렇게 하느냐? 봐라. 똑같은 사람인데 저렇게 하니까
하지 않느냐? 너희는 똑같은 사람인데 안 하니까 못한다.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저렇게 하지 않았느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로되 비오지 않기를 기도한 즉 비가 안 오고,
또 기도한 즉 비가 오지 않았느냐? 똑같은 사람인데. 너희도 무엇인가 하도록 하라.”하였습
니다. 예수님도 “너희도 하도록 하다. 너희도 하면 된다.”하셨습니다.
요즘 “선생님만 비를 못 오게 한다. 오게 한다.” 이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약속
한대로 하면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 저 비가 안 오게
기도했는데 비가 안 왔는데 그것 맞습니까?”물으면 “맞다.”고 합니다. 맞지요. 인간에게 하
나님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정도의 그런 권세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물 주관을 못 하
느냐? 자기 주관하면 만물 주관하는데. 자기 주관은 자기가 하나님께 말 잘 듣고 잘하고 그
러면, 말 잘 듣고 순종하고 그러면 만물도 순종한다.” 자기가 순종 잘 하고 그러면 순종하
는 것입니다. 어렸을지라도 할 수 있고, 커도 할 수 있고 다 그렇습니다.
약속에 대해서 오늘 초점을 맞추고, 말씀의 중심을 맞추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그런 것이
있습니다. 신약 시대 때도 약속을 했습니다. “메시아를 보내겠다. 역사를 하겠다. 지상에 천
국을 이루겠다. 혼인잔치 역사가 일어난다. 1천년 동안 한다.” 신약 역사가 끝나야 하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신약 때 예수님을 죽이고 해서 시대가 형벌 받는 기간이 있습니다. 2천
년입니다. 그 기간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형벌 받는 기간이 특히 되고, 믿는 사람
에게는 특히 신약 역사의 메시아 맞고 뜻을 펴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시대라도, 똑
같은 기간인데 그렇습니다. 똑같은 기간입니다. 지금 똑같이 1월 7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신 못 차리고 1월 7일의 역사를 막 펴는데, 잘못한 사람들은 감옥에 사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는 감옥, 신약 시대도 성약에 비하면 감옥살이라
고 합니다. 기독교는 현재 사망권의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예수님께 물어보
십시오. 그런가 안 그런가요. 왜? 새로운 역사가 올 때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도 거기 살아
보아서 압니다. 거기 살아 보았습니다. 감옥살이가 확실합니다. 흑암의 세계, 사망권의 세계
를 압니다. 또 하나, 우리의 한 때 두 때 반 때로 1999년도부터 2005년도까지는 흑암 세계
입니다. 무덤의 기간입니다. 그러다 확실히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벗어났습니다. 벗어난 것
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심정 속 썩이고 안타까워서 매일 울고 안 합니다. 기
뻐서 매일 노래합니다. 그 때는 확실히 감옥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구시대는, 신
약 사람들은 지금 흑암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늘 그럽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이 진리가 없었다면, 지금도 저 기성 흑암에서 살았
을 것을. 주 오신 섭리사에 혼인잔치 시작했네. 기다렸던 뭇 사람들 구름 같이 모여오네. 꿈
결 같은 지상 천국은 오늘은 각자 생활 터에서.” 이렇게 하는데 기독교는 전혀 모릅니다.
누가 기독교 안 살아봤습니까? 살아보았습니다. 기독교에서 날고 기게 살았습니다. 그와 같
이 누가 안 살아보았으면 “너는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하지만, 다 살아보았습니다. 오히
려 저희들은 나만큼 그렇게 못 살아보았습니다. 그렇게 기고 날게 그것만 전문 안 했습니
다. 모두 형식적으로만 사니까 안 되지요. 얼마나 형식적으로 사는지 모릅니다. 내가 그것
때문에 같이 못 살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형식으로 사는데 대해서 내가 환멸을 느껴
버렸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렇게 대하나? 아무리 하나님이 말은
안 하지마. 아무리 하나님이 안 보이지만.’ 그 하나님이 보이겠습니까? 안 보이지요. 전지전
능하신 하나님인데요. 일개 나라의 왕도 못 보고서 5년직 대통령의 임기 기간을 보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보겠습니까? 못 보지요. 지금은 텔레비전이라도 있어서 얼굴이라도 비추지
요. 옛날 임금들은 못 보았습니다. 누가 봅니까? 본 사람이 없습니다. 지나가면 얼굴 쳐박으
라고 해서 못 보게 하고, 얼굴 일으키면 “이놈, 역적이다.”하고 죽이고 그랬는데 보겠습니
까? 못 보았지요. 지금은 대통령을 화면으로라도 한번씩 지켜봅니다. 그러나 직접 보기는
어렵습니다. 직접은 못 보지 않습니까? 직접 만나기는 어려우니까요.
왜 못 만날까요? 일부러 피한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안 만난다는 것입니다. 권위 때문에 그
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권위가 아닙니다. 만날 수도 없고, 한번 만나면 계속 또 사람들
을 만나줘야 하니까 피하기도 하고, 곤란하니까 피하기도 합니다. 임금들은 만나면 무엇을
약속합니다. 그것 때문에 잘 안 만납니다. 나부터도 만나면 무엇을 약속합니다. 자꾸 건의하
면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하라. 주실 것이요.”했으니 “구할 것은 구하라. 그러면
해준다.” 그럽니다. 그래서 대통령들도 입장 곤란하면 안 만납니다. “어느 회사의 누가 만나
고 싶다는데요?” “나에게 무엇을 좀 해달라고 하겠지. 못 만난다.”합니다. 친구 사이도 그렇
습니다. 자기에게 무엇을 해달라면 잘 안 만나며 “나, 오늘 바쁜데.”합니다. 만나면 약속하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면 꼭 해줍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못할 것이 없으시고,
다 있으니까 다 약속을 받습니다. 우리들도 약속은 많이 해서 좋았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
는 것을 좋아합니다. 약속 받고 많이 받아서 역사를 펴고, 뜻있게 사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
나 사람들이 약속을 받아도 힘드니까 안 합니다. 약속대로 하기가 사실상은 힘듭니다. 약속
대로 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막상 해보면 힘듭니다. 일을 하다보면 바위 절벽을 기어올라가
기가 힘들듯이 힘듭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기만 하면 그냥 백지 수표가 아니라 현찰 수표라
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했지만, 그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설교할 때에 다 설교하고 감동 감화되
면 “나, 이렇게 하겠습니다.”하는데, 그것이 약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겠습니다.”한 것도
약속한 것입니다. 설교 때 감동 받습니다. “아, 내가 한번 그렇게 해야지. 해야지.” 약속했으
면 해야지요. 그런데 그래 놓고 안 합니다. 7번, 8번 안 합니다. 여러분들이 겪어 보십시오.
언젠가 자기가 무엇을 이렇게 하겠다고 했으면 그것을 해야만 무엇이 이루어져서 다음 코스
로 올라가지, 그렇지 않으면 1년 2년 3년 안 올라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올라
갑니다.
사람마다 개인 단위 노정을 걷는 기간이 있습니다. 개인 노정을 걷는데 어떤 사람은 막 10
년을 투자합니다. 신앙 생활 한 것만 갖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개인 노정의 조건을 세우고
어떤 것을 실천하는데 10년씩 합니다. 개인 노정의 실천과 그리고 그 기간이 있습니다. 그
것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10년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 노정을 또 하는데 그
럭저럭 10년씩 걸립니다. 여러분들 것을 계산해보면 얼마나 걸리며 건너왔는가 다 알 것입
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또 교회 노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민족 노정을 갑니다. 선생님
도 민족 노정이 20년 걸렸습니다. 20년만에 딱 벗어나서 지금 세계 노정 가고 있습니다. 세
계 노정을 가는데 자꾸 민족 노정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누가 합니까? 안 하지요. 벌써
진급되고, 벌써 세계를 휘두르고 가는데요. 그것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고 기도하고, 그것에
희망을 갖고 했으니 안 가지요. 그러니 세계의 노정에 같이 뛰어 들어서 모두 와야지요. 내
가 거기로 자꾸 갈 수 없으니까요.
그 다음에 가서는 세계 노정을 갑니다. 약 30년 40년을 갖고 칠 때, 40년 역사를 치고 보
면 개인 노정에서 너무 많이 10년씩 지나가고, 가정 노정 10년 하면 20년 지나갑니다. 그
리고 민족 노정을 또 10년 하면 30년이라 그렇게 되면 세계 노정을 10년 밖에 못 뜁니다.
그러니까 개인 노정 빨리 벗어나면 세계 노정의 기간이 그만큼 크고, 큰 혜택을 더 보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대로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지금 민족 노정을 끝내고 세계 노정을 같
이 호흡해야 될 때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게 되어 있습
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섭리 온지 15년 되었어도 지금도 개인 노정입니다. 계속 개인주
의입니다. 개인 안에서 개인 신앙하면서 엎어졌다 일어났다, 엎어졌다 일어났다 합니다. 너
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가정을 못 벗어납니다. 매일 가정에 매여서 거기에 맨날 있습니다. 가
정에 잡혀서 그것을 못 벗어나고 매일 속국주의에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
니 얼마나 불행합니까? 월명동 작품 세계를 올라가 보면, 잔디밭 낙타 바위 옆에 “자유와
구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유는 툭 벗어났습니다. 둥그렇게 만들었는데 한쪽이 툭 터진
곳이 있습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속은 동그랗게 만들어 놓았
습니다. 안에서 맨날 도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구속이라는 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것은 선생님이 구상한 것입니다. 그렇게 뚫으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매여서만 계속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기간이 있습니다. 태 안에서 10달 동안
있습니다. 태 안에서 10달 동안 있지 않고 11달, 12달, 13달 되어도 안 나오고 14달 되어
도 안 나오고 17달 되어도 안 나와보십시오. 18달 되어도 안 나와 보십시오. 그러면 걱정됩
니다. 부모도 고통입니다. 그것은 부모도 고통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때에 자기가 탁
탁 벗어나야 됩니다. 그런데 묶여 있습니다. 기독교도 묶여있지 않습니까? 그 주관권에 묶
여있습니다.
그래서 노정을 빨리 빨리 끝내야 됩니다. 개인 노정, 가정 노정, 민족 노정을 빨리 끝내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 세계 노정을 걷고 있습니다. 세계 노정을 지금부터 한 20년 동안 걷
습니다. 부지런히 세계 노정을 걷습니다. 이제 민족 노정을 벗어났습니다. 가정 노정도 다
거쳐왔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노정을 거치면서 멋있게 툭툭 벗어나서 가라는 것입니다.
다 컸으니까요. 민족 노정도 벗어나서 이제 세계 노정을 향합니다. 특히 부활기를 맞고서
지금 세계 노정을 갑니다. 육적 부활기 끝나고, 영적 부활기를 맞고서 이제 세계 노정을 본
격적으로 펴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동안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일을 어떻게 했는가
하니, 부활역사가 끝난 다음에 막 책 쓰고 하면 늦기에 골치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고민
하고 그래도 계속 책 썼습니다3597. ‘스님들은 노느니 염불한다는데 나는 노느니 책 쓰자.’
하고서 계속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책을 써서, 환난기에 책을 써서 큰 일을 해놓았
습니다. 그것은 해놓았으니까 이제 되었다고 하면서 섭리를 마음놓고 폅니다. 계속 말씀을
전파합니다. 공연히 그 때 책 안 써놓았으면 요즘에 책 쓴다고 ‘아이고, 이제 부활기 되었으
니 책 쓴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렇게 못 합니다. 말씀도 못하고 제대로 안 됩니
다. 그러나 그렇게 했기에 그 때 환난기 6년을 다 뛴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나로서는 환난
기 때도 계속 뛴 것입니다. 뛰어서 책 쓰고, 준비하고 예비했습니다.
그 전에 산에서 내려왔을 때도 산 속에 있으면서 준비하고 왔습니다. 한 20년 준비하고 나
와서 공생애를 뛰었습니다. 그런데 부활 생애는 무섭게 한 6년 동안 준비해서 나온 것입니
다. 나머지도 계속 더 하면 안되니까 6년 동안 준비하고 연단 했다가 탁 나와버린 것입니
다. 항상 그래야 새로운 역사를 멋있게 펴고 말씀도 잘 합니다. 책을 썼기 때문에 말을 조
리 있게 하고, 잘하는 것입니다. 책 쓸 때 아주 조리 있게 씁니다. 필요 없는 말은 빼고, 필
요한 것만 딱딱 넣습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말 잘하게 되지 않았느냐?”하십니다. “맞습니
다. 내가 지금은 말을 잘합니다.”합니다. 그 전보다 말을 더 잘합니다. 말씀에 파묻히고, 순
전히 성서에 대한 것만 터득하고, 신령한 세계만 접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
다. 6년 동안 단단히 깊이 하늘과 같이 밀접하게 왔습니다. 나 하나가 살아야 전체를 살리
니까요. 하나가 약해져있으면 전체가 약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6년 동안 환난기도 막 뛰
어버린 것입니다. 6년을 무덤 기간이라고 하면서 안 한 것이 아닙니다. 무덤 속에서도 또
할 일이 있습니다. 무덤이라고 아주 죽은 시체가 아닙니다. 기능만 그 전같이 못했을 뿐입
니다. 그래서 숨어서 해버리고, 또 나가서는 갇혀서 해버리고, 그리고 그런 기회를 통해서
더 좋은 기회라고 해버리고 그랬습니다.
쉽게 말해서 무덤 기간 때는 나와서 운동 못 합니다. 나와서 볼도 못 차고, 거기에 있으면
수영장이 있어도 수영도 못 합니다. 그러니까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계속 수영 연습을 했습
니다. 팔 다리를 저으며 연습했습니다. 그러니까 재미있잖아요.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사람
들은 하고싶어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못 말립니다. 기어코 합니다. 계속 합니다. 방안에서
축구하고, 볼 차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나오면 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했으면 근육이
늘어나고 당겨서 갑자기하면 못 합니다. 이와 같이 “모두 하라. 하라.”했는데, 제자들 만나
보면 안 한 표가 너무 많이 납니다. 안 했습니다. “하라. 자꾸 해야 된다.”했습니다. “그리고
와서는 같이 다니자. 스키장에 못 가면 방에서 스키 연습을 하라. 그리고 스키장에 가면 원
리를 배웠기 때문에 금방 배운다.”했는데 안 했습니다. “해라. 해라.”하니 요즘에야 모두 배
운다고 합니다. 그러나 배우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옆에 가면 참 좋겠다. 같이
살고 싶다.’하는데 실력 있으면 오라는 것입니다. 와서 살라는 것입니다. 누가 못 살게 합니
까? “실력이 있으면 와 보라.” 그러나 1주일 이요, 열흘만 살면 들통납니다. 이제는 실력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을 보십시오. 선생님 설교를 보십시오. 매일 합니다. 매일
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렇다고 한 소리를 또 하면 안 됩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개척하는 교회도 아니고 온 지구상이 ‘내일 아침에는 무슨 말씀이 나올까?’하며 지켜봅니다.
그러니까 끝도 한도 없이 해야될 설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같이 살려면 그만큼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으로 나갑니까? 인물은 거의 똑같습니
다. 그 사람의 그 인물입니다. 얼굴의 아름다움이나 모든 체구는 똑같습니다. 1999년이나
지금이나 키는 똑같고, 얼굴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은 똑같으면 안 됩니다. 말씀
은 맨날 세련되게, 이상적으로 들어보게, 매일 안 적으면 못 견디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내일 아침 말씀 또 들어보아야겠다.’하게 됩니다. ‘내일 아침에는 여기서 하니까 이런 말씀
이겠다.’하지만 천만입니다. 전혀 다른 세계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
도 벌써 알고 확 찌르고 갑니다. “어떻게 알지? 신기하다. 기이하다.”합니다.
오늘은 약속에 대한 말씀을 훑어보는데 끝없는 말씀이 나오지만 핵심만 해서 여러분들에게
과목을 주겠습니다. 가서 생활 가운데 그렇게 하십시오. 오늘 약속한 것을 꼭 찾아보십시오.
그래서 꼭 하십시오. 못 했으면 회개하고, 잘못했다고 하고, 지금부터 하겠다고 하면서 나가
야 됩니다. 약속한 것을 하면 결국 매 맞겠습니까? 안 하면 매 맞지만, 약속한 것을 하면
별 희한한 것을 다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혹시 나에게 약속한 것이 있습
니까? 꼭 약속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약속대로 하십시오. 치어들도, 모
델들도, 가수들도, 그리고 교역자들도, 캠퍼스 지도자들, 청년부 지도자들, 가정국 지도자들,
장년부들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여러분에게 약
속한 것은 꼭 내가 이루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잊어버리지 않게 계속 기도를
하십시오. 생각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약속한 것을 이루어주겠습니
다.
오늘 약속에 대한 것을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고, 깨닫고 하도록 오늘 말씀했습니다. 무엇인
가 빠진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성경을 읽어보도록 하라. 이들이 성경 읽는 데에 약속
들을 많이 해놓고 성경 읽는데 게을리 하고 있다.”하십니다. 오늘의 성경, 여러분이 적어 놓
은 것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성약 성경입니다. 그것을 다시 또 보십시오. 보고 또 보십시
오.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와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꼭 지켜 행하라. 그리해
야 너희가 잘되고 형통하리라.” 성경에 그렇게 썼습니다. 성경 쓸 때 그렇게 썼습니다. 그리
고 여기 약속에 대한 것도 써놓았습니다. “형제들끼리도 약속한 것을 지켜 행하도록 하고,
다 하라.”하십니다. 형제에게 약속하고, 하나님께 약속하기를 “내가 오늘 꼭 전도한다.”고
했는데, 오늘 감동되어서 형제를 만나게 되었으면 “어떻느냐? 혹시 무슨 사연이 있느냐?”하
면 “그렇느냐? 나 사연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멋있게 해야지요. 멋있게 증거도 하고, 멋있
게 복음을 갖고 나가야지요. 자신 없으면 가서 거울 앞에서 연습 많이 하십시오. “형제여.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누구예요?” “잘 모를 것입니다.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내가 시간이 많아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약속을 했습니다. 금년도 꼭 하나
님께 한 생명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도 누가 전도해서 한 생명이 되어서 교회 나오
게 되었습니다. 그런 약속해서 그 약속을 지키러 나왔습니다. 나와서 그 많은 사람 중에 누
구를 할까 했습니다. 나는 모르겠으니 감동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나도 사연 있을 때 전도
되었으니, 사연 있는 것을 풀면서 문제 해결해 주면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으니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혹시 무슨 사연이 있습니
까? 혹시 사연이 없으면 내가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그럽니다.” 그러면 이야기합니다. “속
에 있는 이야기를 빨리 해보십시오. 빨리 대화를 합시다. 혹시 내가 도와줄 것이 있는지 압
니까?” “그렇습니까?” “나 누군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죽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본인은 별 것이 아니라 해도 내가 있잖아요. 구원자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가서 일해주겠
습니까? 이름만 넣고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앞에 이름만 갖다 써주고 “얘, 웬만하
면 해주십시오.” 그러면 끝납니다. 내가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말 갖고 하니까요. 그
러니 여러분들이 나를 믿고 막 가서 열심히, 과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보여줄 것이 있으
니까요. 그 전에 기독교에 있을 때는 보여줄 것이 없었습니다. “와봐라.”할 수 없었습니다.
“와봤다. 그런데 말씀도 없고 별로 재미없더라.” “그래?”하며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서는 “와봐라.”합니다. “우리도 기독교 다녀보았다. 너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
어보았느냐? 이 시대 말씀 들어보았느냐?”할 때 안 들어보았다고 합니다. 들어본 사람 없으
니까요. “들어보았으면 네가 그럴 리가 없다.” 그리고 “들어보고 왔다. 이렇고 저렇더라.”하
면 “네가 제 정신 갖고 못 살은 사람이다. 나처럼 똑똑히 살아봐라. 알았어?” 이야기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너 어디 살아?” “어디 산다.” “그러니까 그렇지. 지역부터도 다르네.”
그래 버리십시오. 공격하면서 빵빵 쑤시고 들어가야 됩니다. 축구도 그렇습니다. 결국 공격
자를 못 막습니다. 공격자는 중학생이고, 방어자는 고등학생이라도 결국 공격자를 못 막습
니다. 공격이 무서운 것입니다. 계속 공격하면서 척척 말씀하고, 전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금년도 약속했습니다. 어떤 것 약속하라고 내가 말했습니다. “금년도 새로운 해를 받아서,
내가 작년도 안 죽고 새로운 해를 받아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새로운 해를 받아서 감사
하다고 전도할 것.” 역시 하나님께서 “암암리에 은밀하게 그렇게 기념으로 전도하면 좋다.”
하신 것입니다. “기념관도 짓지만 그런 것도 큰 기념이 아니겠느냐?” 그랬습니다. “기념관
만 큰 기념이 아니라, 그런 것도 큰 기념이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
야 됩니다. 나도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됩니다.
요즘 보면 연말 연시 때라, 크리스마스 때라 선물들이 꽤 많이 옵니다. 내가 그런 선물들
받으면 좋지요. 그러나 선물 받을 자격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고 선물은 마음에 맞는 것을 좀 해주십시오. 내가 마음에 맞는 것을 투시를 할 줄 모르면,
자신이 없으면 그냥 돈으로 주지요. 10원을 주든지, 20원을 주든지 그것이 더 낫지 않습니
까? 선물들 받으면 10개를 받아도 마음에 맞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하고 싶
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면 좋
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나라에서 선물 사려면 힘듭니다. 너무 비쌉니다. 그렇지 않습니
까? 그러니 그것을 나에게 주면 나는 딱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나는 “무슨 선물을 사야 좋
겠습니까? 어떤 것을 사야 아주 기념이 될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것 가
지고 네 선물 사지 말고, 애들 선물 좀 사주어라. 네가 약속한 것 해주어라.” 그럽니다. 그
러니 그렇게 쓰면 내가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선물 사라고 돈주었는데, 그 애 선
물 좀 사주어라.” 그럽니다. 그렇게 쓰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찌꺼분한 선물 사지 마십
시오. 사람들이 늘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나도 제자들 선물 사주
려고 생각을 까딱까딱하는데요. 제자들은 아무 것이나 받아도 좋아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기 원하는 것을 사주면 더 좋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에게 무엇
을 사주면 좋겠느냐?”하면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하더라고요.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모두 하도록 하십시오. 세계 각 나라
는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1원을 써도 그렇습니다. “1원을 써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모두 모두 모두어서 내가 원하는 그것을 살 수 있습니다. 개인이 주는
작은 돈 갖고는 못 사니까요.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제까지 약속대로 해준 것을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굉장히 많습니다. 꼭 약속대로 하나님은 해주시더라고요. 거창하게, 엄청
나게, 이상적으로 나에게 해주었습니다. 제일 어려운 환경을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또 약속대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꼭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계속 그
자리에 서있습니다. 천사들 보내서 “혹시 오는가 지켜 보라. 거기로 온다고 했으니까 거기
서 지켜 보라.”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못하면 “하나님, 내가 약속한 곳에 못 가니까 그런 줄
아십시오.”라고 통보라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압니다. 약속이라는 철학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약속이라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너와 내가 약속하지 않았느냐?” 라반, 야
곱이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축복하지 않았느냐?” 이것은 꼭 해야 됩니다. 안 하면 그것은
병들은 것입니다. 안 하면 거기에 암의 씨가 하나 떨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크고 있습니다.
성장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암 씨가요. 그러니 그것을 안 하면 안 됩니다. 안 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을 깨우치기도 합
니다. 그것을 안 하면 나중에 큰일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깨우쳐 주고, 감동
시키는데 안 하면 안 됩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꼭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심을 사
역자로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양심이 곧 하나님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양심을 통해서 전달
해서 그에게 “너,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합니다. 그런데 안 하면 나중에는 병으로 때리
고, 그 다음에 가서 매질 당하고, 모든 사람이 알게 되어서 창피 당합니다. 그러니까 약속대
로 꼭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이라는 것은 양심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꼭 그렇게
해나가도록 하기를 바랍니다. 말씀 여기서 마쳐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모든 세계 각 나라 모두가 토요일을 멋있게 준비하여 보내십시오. 그
리고 새로운 내일 주일에 약속대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주일날 모든 여러분들은 새로운 신
입생들을 계속 살펴야 됩니다. 신입생들에게 전화할 때 “잘 지내요.”한다고 안심하지 마십
시오. 말은 다 그럽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그렇게 이야기해야지 어떻게 합니까? 그러
나 선생님 앞에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나, 솔직히 잘 못 지냅니다. 나 좀 잡아 주십
시오.”합니다. “알았다.” 그러면서 기도해주고 그럽니다. 그러면 기도하고 오늘 아침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약속대로 모두 잘하라고
했으니 생각나게 해주시고, 기억나게 해주시고, 행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모든 하나님께
서 약속한 것을 주실 것이니 그대로 살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지상의 천국을 약속하
셨고, 신부들로 약속했으니 그 사명 감당하게 해주시옵소서. 삼위의 능력이 이들에게 함께
하고, 권능과 은혜가 이들에게 충만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 말씀 마쳤습니다. 그러면 내일 주일날 다시 나타나 말씀하겠습니다. 바이 바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