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07.02.22 (목)
목 새벽말씀
- 선포일
- 2007.02.22 (목)
- 성경 본문
- 야고보서 2장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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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2 목 새벽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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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2월 22일 목요일 새벽말씀(48분)
할렐루야! 오늘은 2월 22일 목요일 새벽입니다. 벌써 2월달도 3분의 2가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금년도
50일이라는 시간이 벌써 지나가고 있습니다. 50일이라는 시간은 얼마입니까? 1년의 6분의 1이 아니겠습니까?
6*6=36이니까 6분의 1이 벌써 지나가버렸습니다. 부지런히 뛰고, 부지런히 우리가 할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새벽을 깨우며 모두 모여들고, 우리 하늘의 사랑하는 자들이 새벽에 말씀을 듣는 시간이 또 되었습니다.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할까요? 야고보서 2장 26절의 행하라는 말씀을 어제 수요일 제단을 통해서 퍼부어 말씀했습니다. 새벽을
깨우며 일어나는 자들은 부지런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한국도 일본도 타이완도 미국도 영국도 그리고
독일도 이태리도 프랑스도 스페인도 그리고 캐나다도 미국도 하와이도 동일합니다. 원래 하와이는 미국과 똑같은
나라인데 하와이 열심히 하라고 내가 하와이를 더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아에 있는 나라들, 뉴질랜드나
싱가폴, 말레이시아, 홍콩, 그리고 대국 중국, 월남 베트남이 있습니다. 필리핀 이런 나라들 그 외의 나라들이 죽
있지만 모든 복음을 펴고 있는 나라들은 새벽을 깨우며 열심히 해야 됩니다. 새벽을 깨우지 않는 자는 엄청난 손해가
갑니다. 새벽말씀입니다. 야고보 2장 26절 말씀을 어제 퍼부어 말씀을 했지만 오늘은 또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첫 번째 새벽에 탁 일어나서 준비했을 때 말씀이 온 것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축구를 하게 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축구선수입니다. 왜냐하면 축구를 한 지가 거의 20년이 되었습니다. 축구를 20년을 했으면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축구할 때마다 관중은 얼마나 많이 거쳐 왔습니까? 축구를 하게 한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몸을 건강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섭리의 모든 자들이 활발하게 뛰어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활발하면
자식들도 활발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게으르면 놔둬버리니까 자녀들도 게으른지 잘 모릅니다. 물론 부모가 게을러도
자녀들이 부지런한 사람이 있지만 전체가 하기 힘듭니다. 부모가 일찍 깨어 일어나야 자녀들도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어렸을 때 어머님이 제일 부지런하다고 했습니다. 일어나면 한 시간쯤 일을 하고 난 다음에 나를 깨운다고 했습니다.
“아니, 어머니는 어머니 할 일 때문에 일찍 일어나지만 나까지 이렇게 깨웁니까?”했더니만 “나는 한 시간 전에
일어나서 일하고서 너희들 깨울 시간이 되어서 깨우는 거야.” “일찍 일어나서 뭐합니까? 할 일도 없는데요.”
너무너무 잠을 못 자서 불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님이 일찍 일어나야 일찍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그 때는
사실상 깨워봤자 특별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가서 무엇이라도 하라.”하지만 시골에서는 날마다 운동을 안 해도
일이 운동이니까 특별한 운동을 안 해도 됩니다. 여러분들도 지도자들이 부지런해야 옆의 사람도 부지런합니다.
지도자가 더 먼저 일어나서 부지런히 뛰고 달려야 됩니다.
내가 운동을 해서 부지런하게 되고, 활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해서 “섭리를 뛰는데 그렇게 하라.”
그렇게 한 것이 새벽에 생각났습니다. ‘축구장에 나가듯이 지금 새벽 기도 하러 뛰어 내려가야지.’했습니다.
축구장에 내가 안 가면 축구를 안 합니다. 옆에서 연습은 해도 축구 게임을 못합니다. 내가 가야 게임이 됩니다.
우리가 새벽에 축구하러 많이 다니지 않았습니까? 축구를 하면서 굉장히 부지런해졌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부지런해졌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도 부지런해졌습니다.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내가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강 고수부지, 또 월명동, 그리고 보라매공원, 각 지역마다 운동하면서 부지런해졌습니다. 지방에 가서
순회했을 때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그랬습니다. 조금 늦게 가면 내가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늦게 가면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됩니다. 학교 공부하러 가고, 직장 간다고 팀이 빠져나가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찍 할수록 시간을 충분히 썼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안합니다. 축구 세계가 아니니까요. 그때
길들여 놓은 것 가지고 지금 써먹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금 운동한다.” 하면서요.
운동하며 볼(ball) 다루듯이 섭리를 다뤄왔습니다. 그래서 볼 욕심이 많습니다. 볼 욕심이 없는 사람들은 선수가
못된다고 했습니다. 코치들이 “볼 욕심이 있어야 한다. 너는 왜 볼 욕심이 없느냐? 저놈 쫓아가서 네가 뺏어 와야
되지 않겠느냐?”합니다. 볼 욕심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볼 차는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철학입니다. 우리들도 볼
다루듯이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길을 들여놨습니다. “그와 같이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래서 볼 찰 때, 달고 나갈 때, 수비를 뚫고 나갈 때 과감하게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기술이 있어야 뚫고 나가는데
뚫고 나가다 보면 뺏기고 그럽니다. 하나가 볼을 달고 나가면 두 명, 세 명이 쫓아가서 대듭니다. 그러면 뺏깁니다.
뺏기게 생겼으면 얼른 뒤로 숏 패스를 하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사람에게 후진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빨리
차버려야 됩니다. 축구하는 모든 원리가 있습니다. 급하다고 차버리면 아웃시켜 버리고, 골도 안 들어가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급해도, 뺏으러 와도 과감하게 파헤치고 달고 들어가서 골인을 넣어야 됩니다.
이와 같이 볼을 잡기만 하면 상대방이 못 차게 뺏어가려고 하고 쫓아다녔습니다. 우리 섭리사도 똑같습니다. 가인들의
세계가 그렇습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가인입니다. “상대편의 세계, 반대하는 세계와 우리는 늘 볼 차는 경기를
한다. 그러니 전체가 기술을 연마하자.” 구기 종목은 혼자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하지 않습니까? 다 잘해야 됩니다.
단체가 팀웍이 잘 이뤄져야 됩니다. 선생님이 있는 곳이나 여러분이 있는 곳이나 교회나 각 예술부나 그리고 가르치는
강사부나 SS나 가정국이나 장년부나 장로단이나 그리고 경제부나 예술부 중에서 각 파트별로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기종목과 같이 팀이 아주 잘 이뤄져야 됩니다. 팀이 흐리멍덩하면 안 됩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할 때 보면 그 팀 모임이 잘 이뤄져야 됩니다. 섭리사의 각 분야마다 교회면 교회, 중고등부 기관은
기관의 팀 모임이 잘 이뤄져야 됩니다. 순회부들은 순회부 팀 모임이 잘 이뤄져야 되고, 전도국은 전도국 팀 모임이
잘 이뤄져야 됩니다. 그 팀 모임에서 항상 서로 찌그락짜그락 하고, 서로 마음에 안 들어서 심정상해서 “여기 못
하겠다.”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편지가 옵니다. “나는 정말 하고 싶은데, 너무 답답해서 못 보겠다. 나는
하고 싶은데, 다른데 가서 뛰고 싶다.”고 그럽니다.
그러니 지도자들은 팀 모임을 잘 이뤄나가도록 하십시오. 대학부도 팀 모임을 잘 이뤄나가야 됩니다. 거기 몇 명들 열
명, 일곱 명, 이 지도자의 팀 모임이 전체를 끌고나갑니다. 그래서 그 팀 모임을 잘 우세하게 만들도록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각 나라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꼭 하십시오. 지금 교육입니다. 팀 모임을 잘 이뤄나가야 됩니다.
그중에서 누가 조금 힘들다면 같이 보조를 맞추고, 나한테 얘기를 하십시오.
나는 항상 어느 팀 모임이 되었든지 거기의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나 없이 결정하고 하는 것은 뒤에 알면 여지없이 다
뭉개버립니다. “사실상 기분 나빠서 못 보겠다. 어떻게 내가 팀 모임의 회장인데, 나를 빼놓고 저희들끼리 속닥속닥
하고 그냥 하느냐?” 그래서 선생님이 그것을 한 다음에는 다 깨트립니다. 무산시켜 버립니다. “기분 나빠서 못
보겠다. 나를 거기에 세워달라고 하고, 나를 초청해서 해놓고서 나를 간판으로만 써먹는다? 이것 안 되겠다.” 나를
쳐다보십시오. 영상으로 나를 쳐다보십시오. 그냥 히적부적하고 넘어갈 사람인가, 좋은 것이 좋지 하고 넘어갈
사람인가 보십시오. 좋은 것이 좋지 하고 넘어갈 것은 또 내가 잘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꼭 봐줍니다. 그
팀장들을 봐줍니다. ‘이것 안 되겠다. 갈아버리자.’ 그리고 다른 나라로 유배를 보냅니다. 불순종했다고, 심기를
건드렸다고요. 옛날에 왕을 거스른 자는 유배 보내듯이 유배를 보내 버립니다. 그러니까 나만 세워놓고 그냥 하지
말고, 나를 허수아비로 쓰지 마십시오. 허수아비는 세워놓기만 하고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팀
모임에 꼭 나와 같이 의논해야 됩니다. 교역자들이 거기서 그럭저럭 의논하고 하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잘 안 되고,
보다 큰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세계 전체를 이렇게 끌고 가는데, 하나님께 안 물어보고 합니까? “오늘 말씀 어디지요?”하고 꼭
물어봅니다. 그런다고 하나님이 “말씀 어디다.” 이렇게 안 합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하나님이 “응. 오늘 말씀은 어디 어디 어디 말씀이고, 이런 말씀이야.”라고 안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씀을 듣는다고 하고, 어떻게 음성을 듣는다고 합니까?” 안 들어도 하나님은 다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리저리 운전을 하십니다. 여러분도 나 안 보인다고 그냥 너희들끼리 결정하지 마십시오. 몇 자 편지를 써서 “오늘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선생님?”해야 됩니다.
팀 모임 중에서 자기와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머릿속에 뭔가 빠진 것이 아닙니까? 머리통에서
무엇인가 빠진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빠진 것입니다. 영적이지 못하고, 정신적이지 못합니다. 육적인 사람들은 내가
천리만리에 있으면 천리만리 있다고만 생각합니다. 그것이 육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다릅니다. 영에 대한
기본을 알지요? 정신의 세계는 거리제한이 없습니다.
나는 정신계에 대해서 초등학교 때 인봉을 뗐습니다. “몸뚱이보다 빠른 것이 있다. 정신이다.” 그리고 또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돈다는데, 정신은 1백 바퀴도 더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계발하자. 이
정신의 세계를 개발하자.” 그래서 항상 생각하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초등학교 때부터 잠언을 쓰게
된 것입니다. 잠언을 많이 썼습니다. 내가 잠언 얘기를 해주면 우리 형수님이 “도련님은 공자 같은 말을 한마디씩
하는데, 큰형한테 들어보지 못한 얘기들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잠언을 써먹었습니다.
이와 같이 정신계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선생님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여러분들을
꿰뚫어보는 데에 10초가 걸립니까, 2초가 걸립니까? 일순간입니다. 그런 것이 있어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는 것하고 다릅니다. 쉬운 얘기로m 나는 파일을 갖다놓고 한 장씩 넘기면서 “얘는 지금 상태가
어떻습니까?”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것이 금방 답을 받습니다. “얘는 어떻습니까? 얘는 어떻습니까?” 그렇게
봅니다. 여러분들은 행정파일을 볼 때 그렇게 못하지요? 하나님께 못 물어보지요? 대답이 없으니까 못합니다.
그러니까 꼭 나도 그 팀 모임의 지도자로 보고, 나에게 얘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이렇게 했는데, 누구를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어보면서 같이 얘기도 하고 의논도 하고 그러면 이상적입니다.
팀 모임이 잘 이뤄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축구를 할 때도 열한 명이 팀 모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잘 이뤄져야 하는데,
그것을 쪼개보면 몇 틀이 있습니다. 머리같은 공격진이 있고, 허리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가서는 최종수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백입니다. 라이트풀백, 레프트풀백은 백들입니다. 라이트윙, 레프트윙은 허리들입니다. 그리고
골키퍼가 있습니다. 몇 조인가 하니, 이렇게 3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골키퍼까지 하면 네 조입니다. 골키퍼, 그
다음에 최종수비이고, 양 옆에는 선수들 라이트풀백 레프트풀백, 그 다음에 허리 라이트윙 레프트윙, 그 다음에
가서는 공격진이 있습니다. 가운데 선들은 거기에 붙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런 팀 모임이 있습니다. 양쪽의 라이트백
레프트백 둘이 한 팀이고, 골키퍼가 한 팀입니다. 골키퍼는 혼자입니다. 그 다음에 라이트윙 레프트윙이 한 팀입니다.
그 팀 모임, 조모임이 잘 이뤄져야 됩니다. 이와 같은 조직으로 여러분들이 되어있는데 그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자기의 책임은 자기가 안 하면 안 됩니다. 물론 옆의 사람이 도와줍니다. 적들에게 상대편에게 밀릴 때는 역시 최종
골키퍼 앞에까지 밀리지 않습니까? 그때는 모두 들어와서 라이트풀백 레프트풀백을 도와줍니다. 허리를 공격진이
도와주기도 하고, 공격할 때는 허리가 도와주기도 하고 이렇게 계속 같이 왔다 갔다 합니다. 축구는 이렇게 같이 하는
것입니다. 따로 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각 팀 모임들이 따로 놀지 말고 같이 뭉쳐서 같이 움직여야
됩니다. 이런 것이 안 되면 재미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새벽에 온 사람은 다 지도자니까 그 팀 모임이 잘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전체가 기대에 어긋남 없이 잘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조직입니다. 조직을 잘 해야
조진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조직은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되십니다. 나도 혼자 안 하고 늘 우리 팀 모임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신, 선생님이 같이 팀 모임이 있어서 거기에서 같이 영적인 세계에 의논하고, 또 선생님도 제자들이
있으면 옆에서 늘 의논합니다. 얘기를 합니다. 자꾸 얘기를 해줍니다. 왜? 지도자는 조금 두려워하는 것도 있고
어려워하는 것도 있고 또 ‘말해서 되는 것인가? 책망 받을 일인가?’해서 잘 얘기를 안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얘기를 꺼냅니다. “이것은 이렇고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고 계속 얘기를 해줍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지도자들은 자꾸 의논하고 그래야 됩니다. 나도 그렇게 의논하는데, 저 밑에 있는 오리발 같은 사람들이
의논을 안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나한테도 의논 안한다. 너희들한테도 의논 안하지만,
나한테도 의논 안 한다. 그래서 내가 생벼락을 때리는 것이다. ‘너 아니면 섭리 못 뛰느냐?’하고 탁 잘라버린다.”
솔직히 말해서 저 아니면 못 뛰겠습니까? 다 뛰지요. 에스더가 그랬습니다. “너희 백성들이 말 안 들으면 다른 길로
갈 길이 있어.” 그랬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다른 길로도 갑니다. 물줄기가 그리로 안 가면 다른
길로 못 갑니까? 다른 길로 파면 갑니다. 그러니까 ‘나 아니면 못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 아니어도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해야 됩니다. 어느 곳이든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팀 모임들을 옮길 때는 같이 옮깁니다. 어느 기관들을 전환시킬 때는 그들 팀 모임이 다른 데서 똑같이 또
일을 해보라고 같이 옮겨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순리적으로 할 때가 있고, 못해서 옮길 때는 하나씩만
빼내버립니다. 그러나 모두 어느 정도 잘 했는데 옮길 때는 그 팀 모임 전체를 다른 데로 옮기는 방향으로 합니다.
옮겨서 거기서 또 한 팀을 만들라고 합니다. 축구도 거기에서 잘하는 사람 몇 명을 빼면 그 팀은 깨져버립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새벽에 일어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에 나에게 축구를 가르친 것은, 지금은 축구를
못하지만 그렇게 축구하듯이 하라는 것이구나.’ 축구는 순간 포착이 아닙니까? 상대 골키퍼 앞에 가서 그냥 바로
내려 차는 것입니다. 뒤에서 쫓아오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순간 테크닉입니다. 볼 차는 것을 볼 때 그런
것을 보는 것입니다. “볼과 인생. 축구와 인생. 그와 같이 그러하다.”
우리 2002년 월드컵 때 하나님께서 함께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나도 월드컵 때 함께 했습니다. 알겠습니까?
월드컵에서 우리가 4강 할 때, 내가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함께 했습니다. 그 다음 월드컵에서는 내가 함께
안했습니다. 이미 내가 함께 못 한다고 예언이 나갔습니다. 왜 못하는가 하니, 함께할 마음이 안 생겼습니다. 왜?
자꾸 나를 미워하고 쫓아내고 그러니까 함께 할 마음이 안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본도 한국도 내가 함께하고 싶지
않다. 16강에 들어가면 내가 죽을 것이다.” 그 정도까지 예언해버렸습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그렇게 하듯이
함께했다. 그 후는 함께 안했다.”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 몇 골 넣은 것도 옆의 제자가 하도 울어댔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민족을 버린단 말입니까? 그러면 나 상처받습니다. 그러면 나도 어린 것이 신앙에 큰 상처를
받겠습니다.”하며 하도 울어대서 “알았어. 그러면 어떻게 이기는가 하니, 저 상대편을 빼야 돼. 레드카드를 줘서
빼내서 이기지, 그냥은 못 이기는 거야. 가나안 복지 점령할 때도 싸울 때 있잖아. 아모리 족속이 알지?”
“알아요.” “그때 하나님께서 일부는 덜어내서 우박으로 때려죽이고, 나머지 갖고 이기듯이 일부는 끄집어내야
이긴다.” 그래서 일부 레드카드 줘서 빼내고서 열 명이 뛰게 만들어서 이겼지 않습니까? 그렇게 이겨도 16강 못
들어가니까 내가 해준 것입니다. “내가 예언했기 때문에 이것은 이기면 안 돼.” 그랬더니 “알았어요.”했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하나님이 함께했을 때하고 함께 안 했을 때하고, 내가 함께 했을 때하고 안 했을 때하고는 차이가
많습니다. 내 얼굴을 쳐다보십시오. 저 사람 말을 하나님이 듣겠나 안 듣겠나요. 하나님께서 저 사람 기도를
들어주겠나 안 들어 주겠나 보십시오. 조건을 세워보십시오.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선생님께
무엇을 부탁하면 들어줄까, 안 들어줄까?’ 무엇을 부탁을 해보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얘 말을
들어줘야 되나요? 얘가 하나님께 나 몰래 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많이 했습니까?” 물어봅니다. 왜? 겁나니까
물어봅니다. 물어보고 모두 결정하는 것입니다. 통하니까 물어봅니다. 전화기는 고장 날 때도 있지만, 내가 하나님께
통하는 것은 고장이 안 납니다. 알겠습니까? 아주 약속을 했습니다. 혹시 내가 고장 나면 하나님께서 찾아와서 나한테
얘기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니까요.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내가 함께할 때 얼마나 큽니까? 그리고 주님이 함께할 때 얼마나 큽니까? 예수님은 항상 나에게
교육했습니다. “내 이름을 이용하지 말아.” 항상 나한테 그랬습니다. “내 이름을 이용하지 말아. 내 이름
이용당하는 것을 내가 너무너무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괘씸하게 생각해. 그 해놓은 것을 다
헐어버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많은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냥 이용해도 말아버리자고 하지만요. 섭리사도 내 이름 이용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좋게, 양심적으로, 정말로 이상 없이 해야 됩니다.
섭리사의 말씀을 갖고 이용하는 다른 종교들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십시오. 내가 딱 심판을 했으니까 무슨 꼴이
일어나나 보십시오. 이렇게 기도해놨습니다. “내 말씀을 이용하는 만큼 전부 우리가 잘 되게 하고, 그리고 깨지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용 못하게요. 독약을 먹듯이 자꾸 먹는 격이 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나 안
되나 보십시오. 선생님 기간 가운데는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약속이 됐기 때문입니다. 조건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일단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지구촌의 조건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든지, 무릎이 아프든지, 배고프고 창자가 마를지라도 끝까지 해서 하나님께 얻어내야 됩니다.
그래놓고 와서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산에서 내가 그렇게 기도 안하고 왔더라면, 오늘날 기름 떨어졌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중에서 비행기에 기름이 떨어졌다고 하면 그냥 추락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산에 있을 때 예수님이 “더
하라. 더 하라. 다 하고 가라. 부속품 다 끼우고 나가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에 나가는 수영 선수나
축구 선수들이 겪어봤기 때문에 실수 안하려고 훈련 외에 더 하는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연습할
것인데.’ 그래서 여러분들이 악을 쓰고 연습하고, 악을 쓰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역사를 펴가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같이 됨이니라.”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센스 있게 재치 있게 볼달고 가는 사람과 같이 욕심 부리지 말고, 사람들한테 패스하고, 자기만 붙잡고 있지
마십시오. 그러면 뺏깁니다. 패스할 때는 얼른 패스해야 됩니다. 왜 그런 이치를 모르고 가느냐는 것입니다.
목사님들끼리도 그 사람과 감정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조건 계속 무시하면 안 됩니다. 무시하니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자기가 해결 못 하는 것을 맡겨서 해결하게 만듭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서로 무시하지 말고, 평소의 감정
갖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서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케 안 하면 복을 못 받습니다.
내가 복덩어리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함께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상호 존재를 하도록 하라.
그래야 된다.”
그리고 각 교회에서 좀 까딱 까딱 말썽부린다고 하는 사람들을 잘해주십시오. 무서워서 잘해주는 것이 아니고, 문제
일으킬까봐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못하지만 하나님께 잘하니까 겁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겁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못하지만 나한테는 잘합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편지 쓰는 것을 더러
보면 알지 않습니까? 지도자들은 그에게 편지 가는 것을 삭감은 안 할 것 아닙니까? “왜 선생님은 나에게는 저
새끼가 이렇게 못하고 저년이 못하는데 선생님은 저렇게 아끼지?” 나한테 잘하니까요. 너한테는 못해도 나한테는
잘하니까 내가 잘해줘야지요. 그렇지요? 너한테 못하니까 내가 “요년, 내가 잘못하게 대해줘야지. 이놈을 잘못하게
대해줘야지.” 그것이 없습니다. 나한테 잘하면 잘 대해줍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 잘 하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잘함을
받는 것입니다.
가라지들을 보십시오. 우리가 저들이 볼 때나 나쁜 놈이지, 하나님이 볼 때 나쁜 놈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이 볼 때 가라지들이 잘 하는가요?” 아닌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일단 우리가 볼 때 그렇습니다. 법을 우리가 아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늘 볼 때, 자기 앞에는 잘못해도 하나님
앞에는 그가 잘하니까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법칙입니다. 법입니다. 이것이 교육입니다.
어젯밤부터 적을 사람은 적으라고 풀어놨습니다. 그 대신 적으면서 아주 머릿속에 꽉꽉 집어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꼭 머릿속에 넣고서 행동하라.” 그랬습니다. 그런 문제들로 흘러갔습니다.
축구에 대해서 서로 팀웍이 이뤄지고, 서로 패스해야 됩니다. 혼자 독불장군하면 매일 볼 뺏깁니다. 나도 축구하면서
선생님이 왕치였습니다. 선생님이 보면 볼도 안 뺏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혼냈습니다. “왜 나의 볼을 안 뺏느냐?
나를 초등학생으로 보느냐? 네가 뺏어봤자 내가 달고 나가. 한번 해봐. 확 밀어봐. 몸싸움도 해보고. 한번 해봐.
너쯤이야 내가 몸싸움할 수 있어.”해서 내 볼을 뺏어가면 “오, 너 꽤 잘 한다. 계속 차.” 그럽니다.
그와 같이 “악착같이 몸싸움을 하라. 윗사람들 의식 말고서 하라.” 그것입니다. “왜 윗사람들을 그렇게
의식하느냐?” 의식을 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반드시 윗사람들은 터치 못하게 하면 안 됩니다.
같이 몸싸움도 하면서, 같이 팀 모임이 되어서 해야 됩니다. 그런데 밑의 사람들은 자꾸 윗사람들을 의식합니다.
조금만 높으면, 조금만 오래됐으면 의식합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절대 윗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같이 더불어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운동할 때 뭐가 있는가 하니, 과격한 것은 하면 안 되고, 다치게 하면 안 되고, 성질을 부려서 하면 안
됩니다. 왜? 화가 나서 하면 운동을 제대로 못합니다. 분노하고 이런 것을 풀라고 운동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쌓인
것을 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푸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하면서 자꾸 풀어야 됩니다. 일하면서 그냥 가면 안
됩니다. 운동은 일하면서 모든 피곤을 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리고 차파티도
하고, 빵파티도 하고, 피자파티도 하면서 자꾸 융화를 일으키면서 그렇게 가도록 하십시오. 내가 지금 여러분 바로
옆에 있지 않습니까? 한 모임의 옆에 있으면서 각 팀마다 지금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자.”
알겠습니까?
그리고 선생님 이름으로 얘기를 하는 것을 꺾지 마십시오. “선생님 이름으로 얘기했는데도 얘가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면 바로 갈립니다. “나를 무시했다. 이래서는 큰일 나겠다.”하고서 선생님께서 바로 바꿉니다. 그래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얘기했는데도 안한다,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얘기했는데도 저들이 말을
안 듣습니다.”했더니 하나님께서 화를 버럭 내면서 “내가 족속을 없애리라.”했습니다. “밑의 족속까지 씨족을
없애리라.”했습니다. 무시했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성경에서 받은 사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구약치를 받은 것이 아니고, 신약치를 받아서, 성약치를 받아서 그래도 덜 합니다. 구약치를 받았으면
원리원칙입니다. 내가 구약치를 받았으면 저 가라지들, 벌써 작전해서 싹 없앴습니다. 왜? 구약치는 이는 이로 갚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로 갚기 때문에 벌써 없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약치 받았기 때문에 애인권의 역사를 받았기
때문에 늘 애인같이 그냥 대해주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이런 것들을 하면서 잘 해나가도록 하라.” 알겠습니까? 그래서 서로서로 하나 되고, 융합되고서
해나가면 금년도 잘 해나가고 멋있게 해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밑의 사람들은 항상 옆의 사람들을 길러줘야
됩니다. 다 개성적으로 길러줘야 됩니다. 이 사람의 재질이, 소질이 무엇인가 빨리 알고 재질대로 바로 맡겨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일을 안 맡기면 나가버립니다. 유능한 사람도 나가버립니다. 알겠습니까? 아주 유능한
사람들이 나가버리면 안되지 않습니까? 한번 꺾이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꺾이면 잘 일어나기 힘듭니다. 나는
마음이 꺾여도 또 일으킬 수 있지만, 여러분들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힘듭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온 말씀이 있습니다. 축구에 대해서는 또 할 테니까 이만큼만 하겠습니다. 축구할 때 보면 과감할
때는 과감하고, 찰 때 차야 됩니다. “차! 차! 차! 차!”합니다. 그 때는 빨리 차야 됩니다. 잘 끌고 갔다가 골키퍼
앞에서 더 좋은 기회를 만들려고 안 차면 안 됩니다. 너무 골키퍼 앞으로 가면 골인 확률이 약합니다. 선생님은
19미터입니다. 19미터에서 제일 골을 잘 넣습니다. 19미터면 가물가물합니다. 페널티 라인 안으로 들어가면 100%
골인된다는 마음이 옵니다. 하도 거기에서 연습을 해대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1년에 2700골씩 넣었으니까 장난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청중이 보는 가운데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축구 선수 중에서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넣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2700골씩 넣었습니다. 어느 때는 2천 골, 1800골 넣었습니다. 장난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돈 내기 했기 때문에 모두 악을 물고 하지 않았습니까? 트로피 갖다 놓고 모두 내기했잖아요? 명예를
걸어놓고 했으니 얼마나 무섭게 했겠습니까? 외부 사람들이 봤을 때 “장난이 아니었구먼. 아, 진짜 악착같이 하네.
그런데 저사람 7번이 뭐하는 사람이야? 10번이 뭐하는 사람이야?” 그랬습니다. 마라도나를 생각하고 애들이 10번을
달아줘서 마라도나 같이 뛰었습니다. 어느 때는 완벽하다 해서 7번 달아놓고 뛰었습니다. 슛팅율 80%, 한참 잘 할 때
90%까지 했습니다. 열 번 차면 아홉 개가 꼭꼭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편에 가서 이겨주고 또 상대편에 가서 또 이겨주었습니다. 그것이 꼭 끝나야만 끝났습니다. 그래서 3시까지
4시까지 했습니다. 그런 기질과 소질을 갖고 섭리 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운동하는 사람들은 그 운동 기질을 갖고
뛰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운동하는 사람들은 어떤 기질들이 있습니다. 나도 운동 기질로 했습니다. 그렇게
운동하고, 또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을 여자들이 좋아더라는 것입니다. 왜? 패기 있고 활발하고 그러니까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 섭리사 전체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설교도 잘 해야 되지만 설교는 설교시간이지
않습니까? 이 시간은 다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평소 때 좋아하게 하려면, 운동할 때 좋아하게 하려면 운동할 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운동을 좋아하면 운동이 끝나면 또 무엇을 갖고 좋아하나? 생활에서 좋아하게 생활 가운데 잘
해야 되겠다.’ 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잘 하게 된 것입니다.
자, 오늘 아침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다가 못하면 내일 새벽에 또 하겠습니다. 또
기다리십시오. 히브리서 11장입니다. 3시에 딱 무릎을 꿇었을 때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다.”
그랬습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말씀을 하면서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다. 왜 영계를 자꾸 보려고
하느냐? 지금 되어지는 사실이 영계이다.” 그랬습니다. 물론 나도 평소에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라.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상이다. 지금 너희들에게 일어나는 상황이 바로 하늘에 있는 상황이다. 영의
실상이 육신의 세계이다. 육이 게으르면 영도 게으르다. 여기서 거짓말한 것들은 영계에서도, 저세상에서도
거짓말하고 돌아다닌다. 육신이 거짓말 하면 영도 거짓말 한다.” 가라지들이나 악한 자들은 그 육신이 거짓말 하듯이
영도 거짓말하고 돌아다닌다는 그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보이는 세계에서 영계의 세계를 헤치면 너무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니 핵심만 하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또 하겠습니다.
“보이는 세계의 일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반응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반응을 어떻게 보느냐? 우리 육신을 통해서
본다.” 알겠습니까? 그 사람을 투시하려면 그 사람의 육신을 보면 그냥 투시가 나옵니다. 그 사람이 마음먹은 것을
육신을 갖고 하니까요. 알겠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을 못 읽습니다. 그 마음 읽기가, 정신을 읽기가 어렵습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은 본인만 압니다. 그것이 행실로는 반드시 나옵니다. “그러니 모든 전체를
그러면서 보도록 하라. 그렇게 대해 주도록 하라. 그렇게 하도록 하라.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다.
영계의 실상이다. 지금 영적인 세계의 실상을 우리가 육계에서 성약역사로 지금 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데
모르느냐? 영계에서 하는 일들을 육계에서 지금 하고 있다. 영적 세계도 지금은 성약 역사를 가고 있다. 어느 곳이나,
중간 영계, 대기소 영계, 낙원영계, 천국영계도 지금 이 세상을 향해서 그런 세계로 가고 있다. 천상천국도
지상천국세계 세계에 반응을 보인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반응을 받고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상당히 어렵지만 오늘 한마디를 이렇게 해놓고 내일 아침에 또 말씀을 연속하겠습니다. 영적인 이야기라 좀
어렵습니다. 알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에다 반응을 자꾸 보인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영적 반응을
육적으로 보이고, 여러분들의 성질 반응이 육신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을 보고서 빨리 하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어떤가 기도할 것도 없습니다. 육신 보고서 빨리 바로 판단하고 탁탁탁탁 움직이십시오. 알겠습니까? “그리고 항상
영감으로 준 것을 무시하지 말고 하도록 하라.” 그래서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상이다.” 이것을 잘 생각하십시오. 무슨 일인가,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잘
판단하고 계속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를 안 하면 얻을 것을 못 얻습니다. 기도를 계속 해 대야 잘됩니다. 나부터도
제자들이 있다고 하면, 그 하는 행위에 따라서 운명을 완전히 좌우시킵니다. 알겠습니까? 아무리 죄를 지었을지라도
잘못을 회개하고 뉘우치고, 그야말로 싸가지 있게 행한다면 정말로 싹이 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나
죄를 짓고 심상히 여기고 “뭐, 살다보면 그렇지.”하는 사람들은 역시 선생님께서 관여를 잘 안합니다. “그러면
혼자 고쳐 봐라. 치러봐라. 얼마나 힘든가.”합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선생님을 안았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 3년 동안 밀어붙이고, 한 7년 동안
밀어붙이면서 계속해서 세상을 점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세계는 하나님의 역사이니까요. 이런 비전을 갖고
열심히 뛰고 달리십시오. ‘언제까지 이렇게 전도할 것인가?’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환난이 일어날 때, 옛날에 1만
명이 안되었을 때 많은 환난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단, 사이비, 교주, 이런 책자들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내가
지방에 순회 갈 때 일개 도시에 열 명이 있고, 다섯 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순회하러 갑니다. 가다가 휴게소에
내려서 보면 책자에 쭉 내 이름이 나왔었습니다. “사이비 집단, 신흥 종교.” 이렇게 나왔습니다. 내가 그 책을
사갖고 와서 애들에게 보면서 “이것 또 나왔다. 좋게만 나오면 이름이 뜨는데. 그런데 내가 이렇게 나쁘게 나왔지만
좋게 나온 사람보다 나는 더 좋다. 왜? 이 사람들은 이 지상에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온
구세주여. 그러니까 나는 이래도 좋아.” 그러면서 계속 밀어붙였습니다. 계속 화가 나서 더 했습니다. 그러니까 화난
만큼 더 의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한참 또 막 크고 있을 때, 몇 천 명 막 크고 있는데 ‘어떻게 만 명을 넘겨볼까?’했습니다. 그
때는 소원이 만 명이니까요.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더욱 어려운 환난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난으로 인해서
만 명이 넘어갔습니다. 그냥은 못 넘어갔습니다. 환난 때문에 넘어갔습니다. 이번에도 ‘오리지널 제자들을 10만 명을
넘기는 계기가 아닌가?’ 그것이 확 와 닿았습니다. “10만을 넘길 수 있는 것으로 앞으로 밀어붙이자. 오리지널
제자들 10만을.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듯이 10만 대군을 만들자. 우리 신앙의 대군을 이 시대에 만들자. 그리고 이
때에 우리 책도 만들고 영화도 만들자. 영화도 만들어서 막 보여주자.”
사람들은 너무 모르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너무 모르니까 우리가 전도하기 쉽고, 단점으로
무엇이 나쁜가 하면 너무 몰라서 나쁜 사람의 유혹을 받으니까 너무 속상하다. 그 대신 그것만 생각하지 말자.
장단점은 다 있으니까. 이 세상을 살아나갈 때 장단점은 다 있다. 마음먹기 달렸다. 좋다. 장단점을 다 엎어버리자.”
그러면서 해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놓고 저가 너무 모르니까 옆의 악평자의 말을 너무 잘 듣습니다. 그 대신
너무 모르니까 모르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이야기하면 또 이리로 솔깃합니다.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늘을 업고 하나님이 역사하니까 우리가 월등한 우선권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길 수 있는 우선권이 있는가 하니,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세상에 보냈으니까 나는 손가락만 까딱 해도 다른
사람이 몸뚱이 까딱하는 것보다 더 봐줍니다. 그것이 우선권이 아닙니까? “너야 이기려고 마음만 먹으면 다 이기지
뭐.” 어디까지 해당되는가 하면, 내가 이기려는 마음을 안 먹어도 이기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니,
세워놓은 조건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안 뛰면 제자들이 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잠자도 역사는
이긴다고 합니다. 내가 다 예언합니다. “이것 앞으로 얼마 안 가면 다 없어져 버리리라.” 그런데 그것이 없어지면
걱정이 됩니다. 왜? 애들이 긴장을 풀면 늘어지는 엿가락을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지금은 엿을 천정에 다 붙여
놨습니다. 추워서 들어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따뜻하면 다 떨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긴장되고
이렇게 뭉칠 수 있는 것은 가라지들 때문에 더 이렇게 뭉쳐지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우리 지도자들이 더 악착같이 하고, ‘아, 언제나 이 세상이 편할까? 언제나?’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내가 월남에 가서 돌아올 때까지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전쟁터에 갔는데 어떻게 편합니까? 다만
전쟁터에서 편하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니까 나는 살아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살아간다고
보여주었습니다. 월남에 있을 때 하늘을 쳐다보면서 “아, 나는 물건이고 무엇이고 다 필요 없다. 옆의 전우들은
텔레비전 사갈까, 녹음기 사갈까 하는데 나는 다 필요 없고 몸뚱이 하나만 갖고 가면 좋겠다.”했을 때 “네가 좋은
것을 구했다. 네가 정녕코 죽지 않고 살아가리라.”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뒹굴었습니다. 첨병도 서고,
누구보다도 자신만만하게 “총 쏴봐. 쏴봐. 너, 쏴봐라.”하면서 내가 팍팍 웃었더니만 적도 웃었습니다. “왜 이것을
가지고 나를 쏘려고 그러느냐.” 적을 잡아 놓고 “쏴봐.”했더니만 안 한다고, 안 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그러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편하게 살려면 하나님이 그렇게 했으니까,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믿고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현실에는 적들이 닥치니까 달랐습니다. 알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갖다 놓고 “절대로 살아가게 만들어 놔라. 이것은 앞날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쳐 가는 역사니까.
그래야 한국에 가서 역사를 펼 때 세계를 뒤집는 역사를 만들 수 있으니까.”하셨던 것입니다.
나를 이렇게 쓸 줄 몰랐습니다. 나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쓸 줄 몰랐기 때문에 ‘월남에서 죽는 것 아닌가?’했습니다.
이렇게 쓸 줄 알았다면 절대 믿고 그냥 거기에서 10배, 100배, 1000배 대갈통 들이대고 쫓아다니면서 해서 <월남전>
책에서 더 인간으로서는 볼 수 없는 그런 것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해도 안 죽으니까 확 밀어붙이고
담대하게 해대기 바랍니다.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니,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보약을 먹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정신의 힘은 한계가 없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끝도 한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밀어붙이면서
열심히 하십시오. 알겠지요?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벽의 말씀을 통해서 뛰고 달리고 열심을 더 감행하게
해주시옵소서. 이들에게 정신의 힘이 들어가고, 정신의 능력과 권능이 들어가며,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옛날 1999년도 환난기 때 ‘아무래도 우리 역사가 무너나겠다.’하고서 걱정들 하면서 안 뛰던
애들이 모두 나가버렸습니다. 환난기를 통해서 내가 모든 것을 보니까 일단 무너졌습니다. 어느 정도 무너졌지만,
다시금 새로 짓는 것을 봤습니다. 이는 마치 월명동에서 돌 조경을 쌓을 때 무너지듯이 무너졌습니다. 또 쌓고 또
쌓고 했더니 결국 더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월명동 돌조경이 결국 세워지듯이, 우리가 무너졌을 때 더
이상적으로 된 것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앞의 사람이 나가니까 ‘아이고, 이제 끝났구나.’하고 또 전도했습니다. 더
좋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또 넘어졌습니다. 또 전도했습니다. 마지막 왔을 때는 더 멋있는 사람이 왔습니다. 영웅
같은 자가 왔고, 선녀 같은 자가 왔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함께하시는 것을 깨닫고 끝끝내 계속
월명동 돌조경이 넘어지면 또 선생님이 쌓듯이 그런 기질을 갖고 연속적으로 하게 해주시옵소서. 첫 번째 볼 달고
가다가 뺏겼으면 두 번째는 악을 먹고 가서 기어코 넣고 오는 그런 기세를 벌이듯이 행하게 해주시옵소서. “너희들이
가는 곳에 기적이 있다. 하나님이 같이 가니까. 왜 조바조바하고, 왜 홀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느냐?”했습니다.
성령의 능력과 권능을 더해 주시옵소서. 말 못하는 자는 내가 보낸 자처럼 말하게 해주시고, 말의 능력이 나가게
해주시고, 말의 권능이 나가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춤을 추는 자, 노래하는 자도 능력이 나가고 은혜가 나가서
불길을 스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뛰고 달리는 자에게 모두 능력과 권능이 충만할지어다. 아픈
자가 있습니까? 병든 자가 있습니까? 건강케 해주시고 강건함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가난한 자가 있습니까? 돈이 없는
자가 있습니까? 돈을 넣어 주시고 역사를 일으켜서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경제의 풍부함을 주시옵소서.
잘 곳이 없습니까? 잘 곳을 주시고, 뛰고 달리게 해주시고, 은혜 가운데 거처지를 더해 주시옵소서. 성부, 성자,
성신의 큰 능력과 권능이 이들과 온 지구촌에 있는 나라들에게 은혜를 더하시옵소서. 환난이 있습니까? 환난 날에
환난을 더욱 힘있게 꺾어나가게 해주시고 이기게 해주시옵소서. 사명을 맡은 자들이 너무 위세를 부린다는 보고들이
자꾸 들어옵니다. 사명 맡은 자들이 너무 강하게 사람들에게 주권을 부린다고 자꾸 편지로 들어오는데, 이들이 그렇게
되면 갈린다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간다고 빨리 고치라고 했습니다. “모두 고치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없이 간다. 왜
사명을 맡고 주권을 부리느냐? 그러면 안 된다.” 주의 인자와 사랑을 주시고 지혜를 주사 판단하고 부지런히 고치고
행하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내가 일일이 다 편지를 쓸 수 없다. 지금 말씀으로 선포했으니 안 고치면 바로 네
직임이 갈려진다.”했습니다. 의와 사랑과 공의를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의 능력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 말씀 마쳤습니다. 열심히 하고, 뛰고 달리고 잘해서 하나로 팀웤 되어서 하라고 했지요? 안녕! 내일 새벽에 말씀을
또 연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