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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08.06.08 (일)

080608 주일말씀 1 여호와 이레 2 그럴리가 없다

선포일
2008.06.08 (일)
성경 본문
창세기 22장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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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8일 주일말씀> 1. 여호와 이레 2. 그럴 리가 없다 본 문 창세기 22장 1-19절 오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말씀하시며, 이 시대 우리들에게 하실 말씀을 전해주실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에 대하여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부 터 4000년 전 사람으로서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 함의 이름은 ‘아브람’이었고, 그 아내는 ‘사래’였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희 본토를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 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 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이 75세에 자기 아내 사래와 조카 롯 과 따르는 사람들과 목축을 끌고 여러 과정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 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를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할 것이며, 네 자손이 창대케 되어 마치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해주리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신 것은 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여 시대 중심자로 삼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여 모든 자들 의 본이 되게 하므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표상이 되게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또한 그 자손들도 그와 같이 말씀을 순종하며 살므로 그 후손 이 번창케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노아의 아들 ‘함’이 아비에 대한 믿음을 세우지 못하여 역사가 깨졌으므로 믿음 의 조상이 되라고 지어준 뜻이 큰 이름이었습니다. 그 아내 사래도 ‘사 라’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이름을 지어주면 꼭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그 인생이 이름의 뜻대로 되 니, 그렇게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살아야 그 이름과 같이 축복해주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성적 타락과 여러 가지 죄악으로 관영하여 하나님이 그 성을 심판하러 가시는 중에 아브라함이 사는 곳에 들르셨습니다. 하루는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맞은편을 쳐다보고 있는데 사람 셋이 서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인가 가까이 가보니 먼 길을 가는 사람 들 같아서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먼 길을 가느라 피곤한 것 같은데 물을 떠올 테니 발을 씻으시고, 음식도 잡수시고, 쉬었다 가라고 했습니다. 이에 그들이 허락하여 음식을 대접해주었고 그들이 먹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네 아내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 브라함의 장막에 있다고 대답하자 “때가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나도 늙고 아내도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향해 갈 때에 아브라함이 전송을 해주고 있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며 “내가 하는 일을 네게 숨기겠느냐? 너는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너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 니냐? 나의 말씀을 지켜 네 권속들과 자식들이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이 루려 함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이는 “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이 말씀을 지키지 않아 멸망을 받지 만, 너는 잘된다.” 하는 깊은 뜻이 있는 말입니다. 이 시대 우리들도 이와 같음을 알고 말씀을 지켜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 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 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대도, 이 민족도, 섭리 속에서도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니 실상 그 러한지 알아보고 행위대로 심판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9장 1절 이하를 보면 아브라함에게 들렀다가 떠난 자들이 소돔 땅에 나타났을 때 두 명만 나타났는데, 이들은 천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께서 두 명의 천사들과 동행하여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 은 필요한 말씀이 있을 때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면, 창세기 11장부터 25장에 나오니 금 주에 모두 다시 읽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을 특별히 택하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며, 그로 말미암아 민족과 나라들이 복을 받고 심판을 받았는지 그 원인들이 많지만, 특히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이 큰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잘 듣고 우리도 그 같은 마음을 가지고 행하여 이 험난한 시 대에 정말 축복을 받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 창세기 22장 1-19절을 보겠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에 아 브라함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대답하니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에서 그를 번 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예.”하고 두 사환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이 삭이 아버지에게 묻기를, 번제할 나무는 지고 가는데 양은 어디 있냐고 했 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자격이 상실 되었기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깨끗한 양이나 소나 음식을 드렸습니 다. 지금은 예수님을 따라 우리의 몸이 제물이 되어 예배를 드립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께서 지시한 모리아의 한 산에 도착하여 번제 를 드리기 위해 나무를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결국 아들을 묶어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들고 아들을 잡으려 하였습 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 함아. 네 아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 였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수양이 수풀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잡아다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사자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않고 행하였은 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 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 라.”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과 같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독자 아들까지도 제 물로 드리는 절대적 하나님 사랑과 순종심으로 인하여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했던 그곳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는 조건을 세운 역사적인 곳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고, 이 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말입니다. 이후 이곳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시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짓게 되었 습니다. 뜻있는 곳에 뜻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월명동에 자연성전을 지은 것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조건을 세워주었기 때문에 결국 그곳에 하나님 의 전을 세우게 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지시한 땅으로 갔습니다. 복을 받는 지역 으로 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나타나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여러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혹은 감 동을 주고 깨달음을 주어 신앙의 본토를 떠나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 역사 로 오게 하였습니다. 이방의 종교에서 왔든지, 기독교에서 왔든지,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왔 든지 각자의 본토 신앙지를 옮겨 섭리 역사로 오게 하여 왔습니다. 구시대 의 위치에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 의 본토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여 떠나지 않고 섭리사로 출퇴근하는 신앙인 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듯, 큰 뜻이 있어 부른 것 을 깨닫고 즉시 순종하여 행해야 됩니다. 옛 시대는 발전이 없고, 과거 역사를 볼 때 기다리던 이상세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세상 역사도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시대에서 진 행되었습니다. 기성 세계는 발전할 수 없는 옛 습관과 교리에 빠져 노장들 만 모여 삽니다. 답답하니 젊은이들이 같이 생각할 수도 없고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섭리에 오신 어른들은 기성시대이지만 생각도 행동도 젊음의 사고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새 로운 것을 찾고 원하였기에 말씀을 듣고 즉시 신앙의 본토를 떠나온 것입 니다. 초가삼간 집을 때려 부수듯 옛 것을 없애버리고, 시대에 따라 멋있게 새 집을 짓고 살아야 됩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소로와 논두렁길을 넓혀서 자동차가 달리게 하고, 월명동 잡초 골짝을 모두 개발하여 도로를 만들어 자동차를 타고 다니게 하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성전을 만들듯이 모두 옛 것을 새롭 게 해야 됩니다. 가축들도 새 집을 지어주면 미칠 듯이 좋아하고, 산 짐승 들도 옛 것을 벗어나 신천지에 가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경 역사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구시대에 속한 자들이, 새로운 역사를 향해 하나님의 이상적인 뜻을 깨닫고, 또한 사명을 받고 행하는 자들을 무 자비하게 대하고, 심지어는 싸우고 죽이고 악평을 퍼부으며 각종 무지한 행위들을 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구시대 사람들이 몰상식하게 대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 다. 지금도 그같이 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그같이 대하는 자들과 똑같은 자 들입니다. 그러니 발전도 없이 허무하게 살고 있으며, 소망도 희망도 이루 지 못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옛 시대에 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새로운 역사가 이 시대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와 옛 세계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생각과 교리와 사명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어떻게 비교하고, 신약시대와 하나님 이 새로 시작한 새 시대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이 하시는 역사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같은 사람이 행할지라도 시대에 따라 행하므로 옛날에 한 것과 새로운 시 대에 하는 것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집을 짓든지, 말을 하든지, 개발을 하 든지 차원이 다릅니다. 땅값도, 집값도, 화폐율도 옛날과 다르듯이 다른 것 입니다. 1년만 시간이 흘러도 여건이 뒤바뀌는데, 2000년이나 역사가 흘렀으니 하나님이 안 바꾸시겠습니까? 차원을 높이지 않겠어요? 옛날식으로 계속 반복하여 설교를 하고, 행사를 하면 지겹지 않아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 때, 소망과 희망의 삶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늘 새로운 삶을 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구시 대보다 10배 100배 더 얻게 되고, 빨리 발전합니다. 옛날의 마차와 지금 개발한 자동차가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새로운 시대에 와서 살아도 말 씀대로 살아야 구시대에 있을 때보다 날아가듯 다른 것입니다. 구시대는 애벌레와 같은 시대라면, 신시대는 부활된 나비와 같은 시대입 니다. 구시대는 그냥 쇳덩어리라면, 신시대는 필요한 대로 가공하여 새롭게 물건을 만들어 쓰는 것과 같은 시대입니다. 구시대가 희망의 세계라면, 신시대는 그 희망을 이루어 사는 시대입니 다. 구시대가 결혼의 꿈과 희망으로 사는 자와 같은 시대라면, 신시대는 결 혼하여 사는 자와 같은 시대입니다. 구시대가 원주민들의 삶의 시대라면, 신시대는 급속으로 발달된 문명 속에 사는 시대입니다. 구시대가 계란 과 같은 시대라면, 신시대는 부화되어 병아리같이 사는 시대입니다. 또한 구시대가 병아리 같은 시대라면, 신시대는 어미 닭과 같 이 성장한 시대입니다. 구시대는 몸부림치고 발버둥 쳐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늙어 끝나는 안타 까운 운명권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신시대는 새로운 역사, 신천신지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의 말씀대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간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서 이상세계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로운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 수님 때도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새 시대에 사니 기뻐 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면 양이든, 소든, 아들이든 모두 제물로 드리는 자로서 절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를 제물로 드리라’고 하면 서슴없이 행할 자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을 위대하고 존귀히 여기며, 전지전능하신 하나 님을 제대로 알고 섬기며, 극진히 사랑하면서 멋있고 보람 있게 살았습니 다. 이같이 섬기니 인류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회교인들에게도 아브라함이 조상이라고 말하면 좋아합니다. 유대인들이나 기독교 역시 아브라함을 믿 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며 즐거움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하나님의 표상이 되고, 만민의 축복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며 비밀의 말씀도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나 라에 갈 자들이면서도, 이리저리 다른 길로 가면서 믿고 사는 약 빠른 고 양이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호랑이 대우를 받지 못하고, 고양 이 대우만 받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아브라함같이 독자 드리듯 절대 사랑하는 자를 버려라. 또는 재물을 버려라. 친구를 버려라. 네가 가는 길을 버려라. 그 어떤 것도 버리고 나를 좇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겠어요? 대답은 “예! 아멘!”하지만, 막상 죽음 가운데 처하고 현실에 처했을 때 하겠다고 목숨을 던지는 자는 한 명 보았습니다. 실제 죽음을 한 발자 국 앞에 놓고는 평소 영웅 같은 자들도 뒤로 물러갔습니다. 현실 앞에는 평소보다 100배나 강해야 행해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야 그에게 함께 하여 할 수 있게 됩니다. 목숨을 대신하는 자들이 있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하는 자는 아브라함같이 축복을 받습니다. 목숨은 고사하고 “예술로 가지 마라. 그 길 가지 마라, 하지 마라.” 했 는데 일반적인 말들도 실상은 안 듣는 자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다 듣는 다고 약속하고 맹세도 한 자들입니다. 가지 말라는 길을 간 후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자도 있고, 돌아왔어도 신앙의 상이군인 이 되어 돌아온 자도 있고, 돌아왔어도 본래와 같이 쓰지 못하게 되어 가치를 상실하고 돌아온 자도 있습니다. 모두 안타까운 일들 입니다. 배우고 그같이 행해야 자신도 그같이 되고, 그 같은 복을 받는 것 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말 사랑하 는지, 독자보다 더 사랑하는지 시험하시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사 시험해보지 않아도 아십니다. 그런데 왜 굳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까요? 여러분은 알겠어요? 어째서이지 요? 하나님만 알고 그냥 축복해주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그냥 축복해주었다고 할 것입니다. 교훈을 얻지 못하고, 성경에 이야깃거리가 없 는 것입니다. 행한 것이 있어야 이야깃거리가 있어 간증도 하고, 설교도 하 지 않겠어요? 아브라함이 아들을 드리는 위대한 실천을 하였기에 믿음과 그 마음과 행 실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여 모두 보고 인정하며, 그같이 행하였기에 축복 받았음을 알고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마음을 가졌으며,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며 형제를 사랑하는지 하나님은 알지라도 역사에 기록하여 후 대에 보고 알도록 하고, 또 그 시대를 살았던 자들도 실체로 보고 듣도록 하여 인정하고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시지만, 사람들은 실천하는 행위를 보고 인정하기 때문에 필 히 실천시키는 것입니다. 실천시켜봐야 확실히 행하는지, 못 행하는지 알게 됩니다. 충신인지, 아닌지 알게 됩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게 됩니다. 말과 행실이 같은지 알게 됩니다. 이론적 신앙인인지, 실존적 신앙인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야 속지 않고 택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형제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악평도 하고, 억울한 말을 했어도 좋 게 생각하면, 오늘 말씀대로 ‘환난 가운데 사탄들도 형제들도 나를 시험 했구나. 하나님은 주님과 함께 내가 어떻게 이기는지 다 보셨구나.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내 신앙을 측정하셨구나. 모두 이겨 신앙이 죽지 않 고 살았으니 기쁘다.’고 생각하면서 환난 가운데 뜻이 있었다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수만 명이 마라톤을 참가해도 실상 1등은 한 명입니다. 역시 금메달은 한 명이 목에 거는 것입니다. 모두 신앙의 각 종목마다 개성대로 아브라함 과 같은 조건을 행함으로 그에 해당되는 축복도 받고, 모두가 인정하는 신 앙의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하였으니, 또 금메달을 목에 걸도록 끝까지 이 기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조건이 다 갖춰져 있어도 안 합니다. 못 합니다. 이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 끝까지 참지 못하고,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패해봐야 그제서 알고 후회를 합니다. 다시 기회를 주면 처음보다 배나 더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서 행해야 할 수 있는 것입니 다. 가야 할 길이라면 하나님은 기어코 가게하고 맙니다. 억지로 가면 힘든 것입니다.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부정하면 괴롭고, 마음에 즉시 고통이 옵니다. 갈 길이 아닌 길을 가도 마음이 즉시 괴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께서 말씀 하는 것을 깨닫고, 생명의 말씀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아 목에 걸고 행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같이 절대 행하면 하나님은 “알았다” 인정해주시고, 아들대신 예비한 수양을 제물로 드리게 한 것처럼 모든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게 해 주십니다. 그동안 이 같은 일들을 너무 많이 체험했지요? 죽음의 경지에서, 막다른 골목에서, 홀로 막막한 곳에서, 극적인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난 일들을 생 각해봐요. 각자 자신들과 섭리에 행한 일들이니 모두 생각해보면 떠오를 것입니다. 감격 감사한 마음을 항상 잃지 말고, 과거와 같이 또 그 같은 은 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절대 인정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는 얻을 것 이요, 목숨을 아끼면 오히려 잃으리라.”고 했습니다. (마10;39) 급할 때는 한 번 말씀하십니다. 그때 즉시 들어야지, 자기의 생각대로 가다가 더 이상 안 되게 생겼으니 그제야 듣는 자는 하나님과 주의 손발과 척척 맞게 일하지 못할 자입니다. 그렇~게 가지 말라고 했는데 제 갈 길을 가고, 일을 저질러 놓고서는 더 이상 못 가니 돌아와서 그제야 행하는 자들은 앞으로 절대 그같이 하면 큰 일 납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말씀하시면 즉시 순종하고 행해야 됩니다. 말 할 때는 별 것도 아닌 말 같으나, 말씀은 생명과 같아서 점점 다른 길로 갈 때에는 자기 생명까지 위험한 단계에 닥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좋게 만들어주는 황금과 같은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동안 원했던 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즉시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귀한 아들을 주시며 그를 귀히 기르라고 했으면서, 왜 그 아들을 잡아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지?’라고 의 문을 품어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조금이 라도 생각을 한 후에 행해야 될 일이야.’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실수 하지 않으시는 전지전능자이시다.’라고 생각 하며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귀한 자를 바치라고 하니 큰 뜻이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역시 머리가 빨리 돌아가니 총알같이 즉시 움직였습니다. ‘무조건 뜻이 있다. 사랑하는 하나님이 주시 고, 또 그가 데려가니 주인 마음대로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자 에게 드리니 아무 말 없이 순종하여 즉시 행했던 것입니다. 아마‘하나님이 그럴 리가 없으시지.’생각했으면, 아브라함은 더욱 하 나님의 마음을 아는 입장이 되어 더 기쁘게 행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끝난 후에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선생도, 형제도 그럴 리가 없다!’고 생 각했으면 시험에 들지 않고 모두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끝 난 후에 그제야 ‘역시 하나님도, 주님도, 형제도 그럴 리가 없지.’ 생각 하게 됩니다. 끝나기 전에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시험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형제들끼리도 ‘악평하는 자들의 말과 같은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다면 시험기간에 시험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있지.’생각하였기에 시험에 들었던 것입니다. 시험에 들고 얼마나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습니까? 시험에 든 자만 마음이 지옥이 되었고, 옷이 더러워 지듯 신앙이 더러워진 것입니다. 시험이 들면 사탄이 마음속에 들어와 별 오만 가지 장난을 다 쳐놓고 사 라집니다. 이놈의 사탄과 악마를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멸해야 됩니다. 하 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사탄을 멸하러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믿었기에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믿으면 시험에 들지 않지만, 보통으로 사랑하고 보통으로 믿으니 시험이 드는 것입니다. 선생도 여러분들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면 무슨 일이 생겨도 시험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리가 없지.’생각하면서 기도하면 시험 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따라해 볼까요? “하나님이 그럴 리가 없지. 선생님이 그럴 리가 없지. 그 형제가 그럴 리가 없지.” 믿습니까? ‘하나님이 그럴 리가 없으시지.’생각하며 절대 믿고 감사함으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를 오죽이나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시 랴?’ 믿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한 시험 문제의 답은 ‘절대 순종’이며, ‘그럴 리가 없지.’라고 믿은 ‘절대 믿음’과 ‘절대 사랑’ 입니다. 이 시대 우리도 하나님이 주를 통해, 어떤 것을 통해 시험하시고 확인하 실 것이니 절대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 ‘그럴 리가 없지’하고 절대 믿고 절대 순종으로 행해야 걱정 않고 감사하고 기도하며 기쁨으로 이기는 것입 니다. 우리가 시험을 이긴 후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내가 네게 큰 복을 주리 라. 네 씨로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해주리 라. 대적들의 문을 열게 하고, 네 자손들로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네 가 내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말씀하시며, 이와 같이 축복을 받는 것입니 다. 과거에 이같이 행했으므로 하늘의 별같이 많은 생명들이 섭리 역사에 오 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할 때마다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면 과거에 모든 것을 받은 것같이 또 받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도 그럴 리가 없다. 선생님도 그럴 리가 없다. 형제들도 그럴 리가 없다.”믿고, 서로 화목하게 살며,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서로 사랑하 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감화 역사하 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