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08.06.22 (일)
080622 주일말씀 사람은 희망으로 살아간다
- 선포일
- 2008.06.22 (일)
- 성경 본문
- 로마서 8장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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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2일 주일말씀>
사람은 희망으로 살아간다
본 문 로마서 8장 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잠 언 13장 12절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시 편 146장 5절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소망에 대한 참고 성구 - 시편 71장 5절, 잠언 14장 32절, 베드로전서 1장 21절
성령에 대한 참고 성구 - 에베소서 1장 13절, 4장 30절,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안녕하셨습니까? ‘희망’의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나는 기쁨의 시간이 왔습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깨달음으로 만나고, 감동으로 만나고, 느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 합당치 않은 고로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
지도 않으시고, 우리가 볼 수도 없습니다. 실력이 없어서 못 보는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큰 행사나 예배 때, 그리고 개인 즉, 아브라함이나 모세
에게 나타나셨듯이 나타나기는 하시지만 직접 보여주지는 않으십니다. 안
보여주셔도 하실 일은 다 하시고, 인간이 원했던 것을 그 행한 대로 다 갚
아주십니다.
안 보여주시는 원인이 있다면,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너무 차
이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인간은 죄인들이고, 하찮은 인생들
이라서 안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봐서 뭘 하려고 보려고 해? 감히 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안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신다고 했는데,
왜 안 보여주실까?’ 모두 생각들을 해보았어요?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
랑하셔도 인간은 육의 세계, 하나님은 영의 세계입니다. 고로 한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바닷물과 육지의 한계를 정해놓으셨고, 남자와 여자의 모양
과 형태도 한계를 정해놓으셨기에 남자에게서 여자의 모양을 볼 수 없고,
여자에게서 남자의 모양을 볼 수 없습니다.
육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영체를 보는데 있어서 한계가 너무 높아 아예
못 봅니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는 영의 세계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보
는데 있어서도 그 한계가 높지 않기에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영은 보았어도 육이 모르는 이유는 영만 보았기에 육이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비밀 된 일도 본 자만 알고 못 본 자는 모르듯이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보았다면 영만 알지, 육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육의 세계도 눈을 뜨고 사니 다 볼 수 있지만, 오픈되지 않은 것은 볼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도 영의 눈이 있어서 보면 다 볼 수 있지만, 모두
오픈된 것이 아니기에 못 보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이 보이듯이, 하나님을 청중 가운데서나 혼자 있을 때 육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가 할 일을 한 번 말해
보아요.
엎드려 큰 절을 하며 감격해 우는 자도 있을 것이고, 멍하니 쳐다보며
“하나님~~!”하고 고함을 지르는 자도 있을 것이고, “내가 생각했던 하
나님과 전혀 다르네.”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조금 가까이 해
주면 이성을 잃고 쫓아가서 끌어안고, 옷을 잡아당기고, 발을 끌어당기고,
손을 잡으며, 마치 벌들이 왕벌을 둘러싸듯이 청중들이 하나님의 온몸을
둘러쌀 것입니다. 연속하여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을 사랑하여 같이 살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도 그같이
하니 같이 못 살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가도 군중들이 그같이 할 것
이 아니겠어요? 누가 하나님을 보고서 점잖게 쳐다만 보고 있겠습니까?
역시 전지전능하시고, 천주적인 스타 중에 스타이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보이며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안 보여줘도 만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
시며 얼마든지 그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시고, 그 사랑도 깨우쳐주시고, 또
몸으로 느끼게 해주시고, 감동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 곁에 가까이 오시는 것과 둘째, 우리가 간절히 기
도하든지 신령한 경지에 도달하여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느끼
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도 못 느낀다면 만물을 통해 그와 같이 그러하신
하나님을 느끼고, 감동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느끼고 가까이 체험하는 방법
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1000년 역사 지상천국을 펴기 위해 오셨을지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까지 와서 하나님을 좋아하며 사랑하여도 그 몸을
보여주며 대하지 못하니,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고 이해해야 됩
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유대 종교인들은 성경에 하나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희망으로 삼고 기다리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
랑했던 자들이 하나님이 영체로 오신 것을 알지 못하고, 사람처럼 눈에 보
이게 올 것으로 알았습니다. 눈에 보이게 나타나지 않으니 새로운 세계로
전환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에서 통곡하며 하나님
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한 번 기회를 놓치면 이같이 안타까
운 역사가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원자인 것을 아셨고,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영으로 강림한 것을 아셨고,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행하심과 믿고 따
르는 자들을 통해 행하심을 확실히 아셨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은 모두 영체이기 때문에 영에 대해 모르면 하나
님께서 이 세상에 뜻을 펴시는 것을 모릅니다. 누구든지 한 사람이라도 알
아야 그로 인하여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는 자는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입
니다.
예수님은 신령하시어 영의 하나님이 어떻게 지상에 뜻을 펴시는지 확실
히 알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다리는 자들이 배척하고 이단시
했습니다. 항상 무지하고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을 믿어도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의 새 역사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시작한 새 역사를 모르는 자는 아는 자가 가르쳐주었어
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고 죽이고 멸시했습니다. 알고 따르는
자들만이 예수님과 함께 구원역사를 펴, 2000년 동안 이 세상에 신약역사
하나님의 나라를 만든 것입니다.
이같이 세계적인 역사를 이루었는데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무지한
교리 때문에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고, 보다 사망권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
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아는 자는 따라가고, 모르는 자는 반대하며 막기까
지 하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그 시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를 중심하여
역사를 펴시며, 아는 자들만 시대의 주인들이 되게 하시고, 그 시대 허락한
축복과 혜택을 주셨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알고 따르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오도록
말씀을 전하며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반대하며, 이성을 잃고 행하
므로 그 행위대로 받고 말았습니다. 당세에 몰라서 따르지 못한 자들에게
는 죽은 후에 영으로 기회를 주었습니다.
기다렸던 하나님의 새 역사가 땅에서 이루어져도 당세에 웅장하게 이루
어지지 못하는 원인은 기다리는 자들이 믿지 못하고 따르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고 막으니, 알고 따른 소수의 사람들만 숨기면서 역사를 펴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 때도 기다리던 자들이 모두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웅장한 역사
가 일어나 모두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같이 일어난다고 하며 이
방으로 뜻을 펴 로마까지 즉시 복음을 넣고, 그 복음이 세계로 퍼졌을 것
입니다.
제때 믿고 따른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고, 어떤 어려움과 고
통이 있어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이 이 땅에 역사를 피러 오셨을지라도 눈으로 안 보인
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느끼
고 깨닫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물로 상징적으로 나타나 보이심에 만족하
고 살기를 명심하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뜻에 따라 가끔 본 자들이 있습니다. 보여주니 볼 수 있는 것
이지, 보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을 본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95% 이상 공통점이 있었습
니다. 그 입은 옷과 모양과 형상이, 본 자들의 말은 모두 공통적으로 같았
습니다. 여자 천사와는 옷도 다르고, 느낌도 달랐습니다. 이는 마치 그 분
위기가 젊은 엄마와 그 딸과 분위기가 다르듯 달랐습니다.
선생이 성령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성령의 존재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
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신이지, 어떻게 개성의 존재로서 여성 신이냐
며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경 창세기
에서 요한계시록까지 보면 성령에 대해 나온다.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도 모르느냐?”고 했습니다.
물론 성경을 보면 ‘성령’이라는 단어는 많이 나오지요. 그런데 그 단
어가 ‘여성 신’인지는 모르고, 그렇게 믿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곳에서는 ‘진리’라고 했고(요 15:26, 요 16:13,
요일 5:7), 어떤 곳에서는 ‘신부’라고 했고(계 22:17), 어떤 곳에서는
‘감동의 신’이라고 했기에(마 22:43, 막 12:36, 행 21:4, 벧후 1:21,
계 1:10, 계 4:2)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도 수십 가지로 그 역사하심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는 ‘신부’이며, 우리들에게는 ‘신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대에 따라,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부르는 이치를 깨달
아야 합니다.
‘성령은 여자’라고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나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나와
있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삼위체도 아닌 천사들과 같이 사람을 만들자고 한 말씀이겠습
니까? 삼위체 이신 성령님과 함께 “우리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자, 낳자”고 하신 말씀입니다. 만일 하나님 홀로 이 말씀을 하시고 자신
과 같은 사람을 창조했다면, 하나님은 중성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볼 수밖
에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의 말씀을 하나님도, 예수님도 깨닫게 해주었습니
다. 결혼한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 “우리와 같은 아들딸을 낳자”고 하듯
이, 하나님도 성령님께 “우리와 같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자”고 한 말씀
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여성의 근본 존재, 여 성신이 없었으면 하늘나라에는 여자 천사도 없었
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여자 천사가 천억 명도 넘게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여자 천사들을 본 자들이 많지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땅에 사는 자들은 육이 죽고 영으로 구원받은 후에, 하늘나라에 가서는
천사들과 동등한 급으로 대함을 받고 살게 됩니다. 물론 남자들도 동일하
지요. 이 세상의 남자, 여자는 영계에 가서도 남녀 그대로 존재합니다. 이
것이 순리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전에 힘들 때, 성령님께 여러 가지를 고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죽음
을 면하면서 가는데 힘드냐?’며 엄마처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며칠을 기도하면서 그 말씀하신 바를 깨닫고 앞날에 대해 알았습니
다. ‘내가 죽음을 면하면서 가고 있구나.’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 나를 알고도 부르지 않느냐? 자식
이 엄마를 부르면서 사용하듯이 쓰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
부터는 매일 1000번 이상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감동되어
한 찬란한 광경을 보면서 시를 썼습니다.
<천모(天母)>
저기
노을 속에
묻힌
태양을
보아라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다
세상
어느 누가
저 모습같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자가 있으랴
지구 세상
쳐다보나
감히
아무도
없구나
하늘을
우러러
쳐다본다
천모, 성령님
생각나옵니다
저 모습
아름답고
감동의 신
성령님 같구나
그리고 그 후부터는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게 된 것입니다. 기
도할 때, 하나님과 예수님께로부터 응답이 없으면 성령님께 묻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예수님과 삼위일체이니 같은 이치로 대답해주
십니다.
가정에서도 아버지와 안 통할 때나 형제들과 안 통할 때에는 어머니와
통하듯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안 통할 때에 영의 어머니이신 성령님과 통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자체 신이라면, 하나님과 예수님 2위 체입니다. 하나
님, 성령님, 예수님을 각각 보아야 3위 체입니다. 우리가 간구하는 내용에
따라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께 각각 구해야 합니다.
이제 성령님을 알았으니 가정의 엄마처럼 가까이 대하면서 애로사항이
있으면 말하고, 속이야기도 하세요. 이야기만 하지 말고, 성령님의 부드러
운 성품도 배우고 닮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고, 말씀하신 것이 많은데 그 중에 한 가지를
더 들어볼까요? 성령의 성품과 그 가르침을 배우지 않고서는 여자를 제대
로 다루지 못합니다. 토를 달지 않고 말하면 어렵지만 먼저 들어 봐요.
성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성품을 받지 않고서는 여자를 제대로 못 다룬다.”
집에서도 어머니 성품을 받아야 누나고, 여동생이고, 형수고, 제수고 그
심정을 알고 잘 대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해를 할 수 있겠어요?
남자를 다루려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여자
교역자들은 남자의 성품을 가지고 남자를 다루어야 문제가 안 생깁니다.
남자는 남자의 마음으로 대하고, 여자는 여자의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아버지 성품을 가져야 강한 남자를 다룰 수 있는 것과 같은 이
치입니다.
교역자와 지도자들은 삼위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또 잘 생
활하여 그 성품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모든 이들 또한 그 성품을 받
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받을까요? 그 성품을 달라고 하루에 백 번씩 기도를
하면 “네가 나의 성품을 받으려면 무엇 무엇을 고치라.”고 감동도 주고
깨달음도 주십니다.
또한 정신과 성격을 고쳐야 됩니다. 혈기를 버려야 됩니다. 행실을 고쳐
야 됩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대해주고, 용서와 자비와 화평으로 대해주고,
성령같이 감동을 주며 대해주어야 삼위의 성품을 받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의 성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으니 “엄마가 아이 다루
듯 생명을 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성령의 성품을 받아야
여자의 속마음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남자들은 여자들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결혼한
자들도 모르고, 그저 사랑만 합니다. 사랑을 해도 이혼을 하고 헤어집니다.
그 이유는 심정을 모르고 대하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마음을 잘 아시는 성령의 마음과 성품을 받아야 여자일지라도
여자의 속과 마음을 알고서 사랑과 진실함과 순결로 대해주고, 순리로 다
스린다고 했습니다.
여자에 대해서 적어도 열 가지는 알고 대해줘야 합니다.
1. 여자는 부드럽게 창조하였기에 말도 행실도 부드럽게 다루고 대해줘
야 합니다.
2. 이 지구상에 여자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개성으로 볼 때, 최고 귀
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남자도 개성으로 볼 때, 최고
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개성으로 서로 동등체로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가치 있고 귀한 것을 모르고 대하면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여자는 권력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많습니다. 선생이 일을
맡겨봐서 잘 압니다. 고로 교단도 동일하게 지도자로 일하게 합니다.
예수님 때와 같이 선생은 하나, 나머지는 모두 제자입니다. 여자 나
름이지만 참된 여자는 돈도 금은보화도 다 필요 없고, 오직 마음 알
아주는 것을 귀히 여기며, 진실과 신뢰를 금은보화로 여깁니다.
3. 여자는 미와 선과 아름다움을 생명시합니다. 하나님이 그같이 창조했
기 때문입니다. 개성의 미를 알고 대해주어야 문제가 안 생깁니다.
인격의 대우를 해주며 다스려야 합니다.
4. 여자는 성령의 상징체입니다. 이를 알고 성령님을 생각하며 여자를
대해야 합니다. 집에서 위하고 존경하는 어머니 대하듯, 딸도 그같이
대해줘야 어머니께 꾸중을 안 듣게 됩니다.
선생이 10대 때, 여동생과 말다툼하고 심정에 안 맞게 동생을 대하
였더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남자라서 여자를 몰라.
너는 형들하고 가서 놀든지, 네 아버지한테 가서 같이 일하든지
해.’하며 쫓아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남자는 한 집에 살아도
여자를 모른다. 그러니 같이 살아도 늘 부부싸움하고, 자식 낳아 놓
고서도 이혼까지 하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와 수천 번 싸움을 했어도 이혼하지 못한 이유
는 첫째, 어디 가서 어떻게 이혼을 해야 되는지 몰라서 못했답니다.
알았으면 이혼했을 것인데 모른 것이 복이 되었습니다. 요즘 사람들
은 이혼을 어떻게 하는지 너무 잘 아니 쉽게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과 성령님의 성품을 받으면 이혼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이 순간에도 남자들에게 ‘너는 여자를 모른다.’고 깨우쳐주
시며, 남자들의 가슴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남자라서 여자를
모른다 하지만, 여자들은 왜 같은 여자로서 그 심정과 마음을 몰라주어 싸
우고 토라지게 합니까?
성령님은 남자들보다 같은 여자이면서 여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을
보시고 더 답답하게 여기시며, 제발 정신 차리고 내 성품을 받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섭리 사에 사는 모든 자들은 삼위의 성품을 받고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성품을 받아야 합니다. 가인 성격은 마
치 자기 핸드백이나 주머니 속에 들어간 뱀을 버리듯 버려야 됩니다.
5. 여자는 번성과 사랑과 내적인 일에 중심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였기에
이를 알고, 이에 해당되게 살게 해줘야 합니다. 남성적인 기대를 해
서는 안 됩니다.
6. 여자는 순간 심정이 틀어졌을 때,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기도 합니
다. 그때 ‘아이고 틀렸구나.’생각하고 포기하지 말고, 먼저 마음을
잘 풀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잘합니다.
7. 여자는 권력심은 없지만 질투심이 있습니다. 고로 남들과 비교하면서
대하지 말고, 개성에 따라 각자 잘하는 것을 칭찬해주며 대해주어야
합니다.
8. 여자는 바늘 같아서 작지만 강하고, 환경을 강하게 뚫고 나가기도 합
니다. 여자는 하는데, 남자는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은 전체
적으로 여자들이 관리와 목회를 잘합니다. 엄마처럼 꾸준히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도 잘하는 곳은 남성답게 잘합니다.
9. 여자는 남자보다 결단력이 약하다 하지만, 한 번 결단하면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헌신하면서까지 자신의 인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고로
성장하기까지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10. 여자는 어머니의 마음을 품을 때 큰 능력을 발휘합니다. 고로 성령
의 성품을 받아 성령님이 모든 것을 품듯 품어주며, 사랑과 인격과
덕망을 갖출 때 진정으로 아름다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시간상 더 말하지 못하니 이외에는 모두 생활 속에 배우고, 알고 대해
야 합니다. 성령님에 대하여 잘 알고, 그 성품을 받으라고 여자에 대해 말
씀했습니다.
지금부터는 방향을 돌려 오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사람은 희망으로 살아간다.”입니다. 인생들에게 희망이 어떻게 이루어지
는지 말씀하겠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희망들이 각각 있습니다. 저 사람에게는 희망이지만,
자기에게는 해당되지 않기도 하고, 이 사람의 희망이 저 사람에게는 원치
않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그 희망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의 뜻과 같고, 선생이 원하는 뜻이
라면 다 이루어지도록 늘 기도하니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라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다 이루어집니다. 믿습니까? 할렐
루야~ 아멘.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사랑하는데 안 이루어지겠어요? 이는 예정
되어 있으니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절대 믿기를 바랍니다.
‘종교’에서는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 제일 크고도 큰 희망입니다. 이
는 지구촌의 모든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사도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희망으로 복음을 전하며 살았습니
다. 신약시대 사도들의 희망은 우리들이 기다렸던 재림의 희망과 다른 것
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 이후 4000년 동안,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땅에 오신다는 희
망과 메시아가 온다는 희망으로 살아왔습니다. 종교인뿐만 아니라 정치인,
경제인, 예술인, 과학자들 모든 인생들은 한결같은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동물들도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신약시대 때 예수님이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 제자
들의 희망은 복음을 전하는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자신들
의 선생이 메시아임을 알게 하는 것이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희망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께서 곧 성도들과 함께 강림하시니, 모두 흠 없이 거룩
하게 살다가 맞자고 했습니다.
(살전 3:13)『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신약전서를 보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며 긴박감을 말했습니다.
“전도 많이 하여 보여주자.”는 말은 2000년이 지나면 온다는 말이 아닙
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곧 온다. 도적같이 온다.’는 희망의 말씀을 전하
며 계속 기다렸습니다. 육체 없는 죽은 자들에게도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일부 예수님에 대해 아는 자들은 예수님의 영이 곧 온
다고 믿고 기다렸을 것이고, 모르는 자들은 육이 곧 온다고 믿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신약에 예수님이 곧 온다는 희망의 말들은 그때 당세에 해당되는 말입
니다. 현재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을 염두 에 두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
때 당세에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하루가 급하다며 희망으로 기다리는
그 당세의 사람들에게 사도들은 ‘곧 온다. 도적같이 온다. 육도 영도 혼도
흠 없이 준비하고 맞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같이 외친 자들이 재림을 두
고 말한 것이라면, 그들도 맞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1000년 후에 곧 온다고 한다
면, 누가 그 말을 듣고서 희망을 품고 살겠습니까?
신약시대 사도들이 외친 말씀을 보면 긴박감을 주면서, 기독교는 예수
님이 곧 온다는 희망을 가지고 2000년이나 희망의 복음을 펴오게 했습니
다. 이같이 희망은 기쁨을 주고 힘 있게 해줍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절망
의 말을 하지 말고, 희망의 말을 해줘야 합니다.
희망의 말은 축복의 말입니다. 큰 에너지입니다. 희망이 없는 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됩니다. 우리의 희망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입
니다. 나는 여러분의 희망이고, 여러분은 나의 희망입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그동안 기독교는 희망으로 살아오게 했습니다. 그 희
망은 당세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주관권의 새 역사,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그 희망을 이루며 왔습니다. 예수님 당세에도 예수님을 만
나 희망을 이루고, 또 그 희망은 우리가 이루어 희망의 주인들이 되어 맞
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희망은 사람들에게 큰 힘과 능력을 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바울이 예수님이 곧 온다고 하며 긴박감에 전한
말씀이 이루어졌다면, 그 당세에 예수님이 영으로 나타나 그때그때 말씀대
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신앙들을 유지
하며 살았겠습니까?
예수님은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해서 영으로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나타나 해줄 것을 해주시고, 위로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도 그
시대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나타나 해결해주셨습니다. 이같이 하여 신약역
사가 세계로 뻗어온 것입니다.
선생이 현실에 ‘고통과 어려움을 무엇으로 이겨나가야 합니까?’라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앞날의 희망을 생각하며 희망으로 이겨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말씀하심을 보면 예수님도 희망으로 살았음을 알게 해줍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야곱, 요셉, 노아, 모세, 여호수아, 다윗, 기드온,
다니엘 등 모두 하나님의 뜻을 두고 희망으로 살았습니다.
육계와 영계의 희망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펴는 것이 아니겠어요? 희
망이 없는 자는 희망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예수님
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자는 희망을 달라고 꼭 기도하기를 바
랍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도할 때 응답받으면 그것이 앞날의 희망인 것입니다.
집을 달라고 기도하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각자 현실에서 원하는 것들을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은
때가 되면 앞날에 이루어지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희망을 받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닦으며 튼튼하게 하고, 충신들이 되어서
부지런히 현실에 할 일들을 해야 되겠지요?
희망은 현재의 고통을 이기게 해줍니다. 희망이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
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이 솟고, 힘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예수님도 희망에 대해 말씀하시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오는 영광에 비
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역자는 교인들이 100명, 200명, 혹은 300명이 되기를 희망하
며 살아가고, 어떤 자는 축복 식에 희망을 두고, 어떤 자는 취직에 희망을
두고, 어떤 자는 진학에 희망을 두고 몸부림쳐 기도하고, 어떤 자는 하늘을
만나는 희망을 가지고 몸부림쳐 말씀대로 살아가며, 어떤 자는 작품을 받
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희망을 이루는데 있어서 어떤 고통이 와도 앞날의 희망을 생각하면
기쁘지요? 모두들 앞날에 자기의 희망이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면 현재에
기쁨이 솟아나고,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 자포자기가 되지요?
희망이 이루어질 것인지, 안 이루어질 것인지 어떻게 알까요? 과거에
이루어준 것같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루어줍니다. 그러니 현실에 하나님이
맡긴 일이나 감사하며 충성스럽게 하면 됩니다.
선생은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그 누구보다 ‘예수님의 재림’에 희
망을 두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시고 살며, 그의 일만 하고 사는 것
이 나의 희망이었습니다. 깨끗한 집을 짓고, 넓은 마당에서 사는 것이 희망
이었습니다.
전도의 희망, 섭리의 앞날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
님은 우리 희망의 주인이시니 때가 되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이 크게 다
이루어주십니다. 그 증거로 지난 날 과거를 보여주십니다. 때가 되면 다 이
루어주십니다.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도 때가 되어야 이루어지고, 희망도 때
가 되어야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희망에 불타서 살기도 하고, 희망이 안 이루어진다고 힘 빠져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세요.
지금도 바라던 희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몰라서 못 누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가졌던 미래에 대한 희망은 과거의 미래인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
으며, 이미 때가 되어 지나간 것도 있고, 때가 되어 현실 속에 계속 이루어
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 치고, 환난과 고통을 받더라도
어디 있으나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과 성령님이 역사하여 그 뜻을 펴시
듯이, 희망도 때가 되면 어떤 환경 속에 어떤 고통을 받든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모두 지금 눈을 감고 생각해 봐요. 과거 무엇을 희망했는지... 문제를
알아야 답이 와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은 문제’이고, ‘이루어지
는 것은 답’입니다.
과거에 무슨 희망을 가지고 기도했나요? 어떤 것은 이루어졌고, 어떤
것은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고, 어떤 것은 이미 지나간 것도 있지요? 고로
늘 우리가 원했던 희망을 이루어주신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께 감사 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백 번, 천 번씩 감사하며 살고 있나요? 왜 희망을 이
루어주는데 맥 빠져 살지요? 감사하며 사는 자들은 늘 기쁘지요? 희망이
이루어지니 걱정 말아요.
선생의 과거 희망은 각 나라에 복음의 촛대가 꽂혀 교회가 생기는 것이
었습니다. 희망이 이루어진 나라도 있고, 지금 이루어지는 나라도 있습니
다. 내 희망은 하나님의 희망이고, 섭리 인들의 희망이니 제자들이 모두 복
음을 전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가면 더 크게 이루어질 것
입니다.
지난 1년간 섭리 소식을 못 들었을 때, 섭리인 중에 한 명이라도 만나
서 소식을 들으면 좋겠다고 희망했었는데 이루어졌습니다.
종이와 펜이 내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책으로 쓰기 원했습
니다. 종이와 펜이 없어서 머리에 매일같이 암기했습니다. 고로 종이와 펜
을 희망했습니다. 이제 종이도 펜도 살 수 있으니 나의 희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 오기를 희망했는데 한국에 왔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을 과거에 원했었는데 현실에 이루어졌습니다.
미래의 희망은 현실에서 기도하였으니, 때가 되면 또 이루어질 것입니
다.
현실은 과거의 미래인 고로, 과거의 희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사
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삶의 비바람만 생각하면서 ‘미래에 가면 희망이 이
루어지겠지?’하며, 늘 미래만 지향하고 애간장 태우며 삽니다.
인생에 눈보라가 몰아쳐도 과거의 희망은 때가 되었으니 이루어집니다.
미래의 것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나가며, 현실을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미래의 것도 현실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결국 미래에 가서 이루
어지는 것입니다. 과정에서부터 이루어지고, 결과에 가서도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같이 매일 조금씩 희망이 이루어지고,
혹은 크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자기는 섬에서 안 살겠다고 했는데, 지금 섬에서 나와 살게 되
었으니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과거에 어떻게 살까 걱정했는데,
하나님이 귀히 쓰는 자가 되었으니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제대로 못해서 제대로 희망을 이루지 못한 자는 다시 제대로 하면 이루
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설교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
했는데, 목사가 되어 설교하게 되었으니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희망은 꼭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은 잠깐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희망을 찾아 다른 길로 갑니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온 자가 얼마나 가
슴이 아프고 괴롭겠습니까? 하나님도, 예수님도, 모세도, 선생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그 희망이 자기 소원대로 되게 하기 위해 몸
부림쳐 열심히 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삽니까? 가정에 희망을 두고 살아요? 민
족에 희망을 두고 살아요?
자기를 중심한 육적인 희망이 이루어져도 영원한 희망이 못 되고, 일시
적인 것밖에 안 됩니다. 예수님을 향하고, 그 뜻을 중심한 희망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를 중심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
도 크게 이루어지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작은 희망은 이루어져도 자기에게나 유익합니다. 가정·민족·세계적인
희망을 가슴에 품고 이뤄야 됩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희망이 무엇인
지,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희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이루어야 됩
니다.
희망의 날이 왔는데 현실의 사소한 일과 저마다 삶의 비바람 때문에 낙
심하고 더 이상 안 하든지, 못하든지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거 희
망했던 시대는 맞았지만, 안타깝게도 희망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희망에 대해 생각할 때 큰 폐단을 안고 있습니다. 과거에 희
망을 안고 몸부림쳐 수고하여 희망이 왔으니, 현실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
도 행해야 되는데 행하지 못합니다. 과거에 희망을 위해 기도하고 다짐했
을 때를 까마득하게 잊고, 또 현실에 고통이 있다고 안타깝게 못하는 것이
폐단입니다.
어떤 고통을 받아도 행한 자들은 얼마나 보람이 있습니까? 하나님도 주
도 기뻐하시고, 더 큰 기쁨을 주십니다. 사람은 희망을 이루어야 힘을 받
고, 더 큰일을 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꿈꾸며 목적을 두고 그때까지 참고 사는 동안에
도 뼈를 깎고 뇌에 쥐가 나는 고통을 받아야 되지만, 희망의 날이 왔을 때
희망을 이루는데도 더한 고통을 겪으며 행해야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잡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소원했던 희망의 때가 오면 어떻게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그같
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희망이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자기가 원한 것은 때
가 되면 불의가 아닌 이상, 하나님이 그 희망을 이루게 해주십니다. ‘그런
데 그 희망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희망에 대한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희망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희망이 와도 제대로 희망을 요리해서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희 망>
눈보라치는
인생 겨울에도
행복은 간다
환난 고통
뼈저린
삶 속에서도
나의 희망은
이루어진다
저 가시밭길에
행복은 간다
행복은
아무에게나
주지 않으려
눈보라와 동행하고
몸부림치는
고통의 길로 간다
희망도
아무나 하고
살지 않으려
참고 견디는
자에게로
찾아간다
희망과 행복이 어떻게 오는지 모르면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들
도 자기가 전도하려 했던 자가 전도되었을 때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한 대
로 해주어야 그 희망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도 기쁘고,
전도된 사람도 잘 성장하고, 사탄이 끌고 가지 못합니다.
약속대로 해야 길이 안 막히고, 형통한다고 했지요? 희망을 이루기 위
해서 하나님께 서약하고, 사람들에게 약속했지요? 그 희망을 이루게 되었
으니 약속한 대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희망
입니다. 기다린 희망이 왔건만, 계속 기회를 주었어도 유대 종교인들처럼
무지로 희망을 배척했습니다. 종교는 메시아가 희망이건만, 시대마다 하나
님이 보낸 구원자가 왔을 때 기다리는 자를 맞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역사적인 근거로 볼 때, 이집트 땅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
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구원자를 보내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들의 소
원대로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모세를 파라오 왕의 왕궁에 있
도록 역사하였고, 그 어미를 통해 모세를 교육시키고, 단련하여 담대히 만
들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종이 되어 사는 자신의 민족을 구했지만, 오히
려 기다리던 자를 악평하지 않았습니까?
비단 몇 명이 믿지 못하고 악평했지만, 전체가 믿음의 조건을 세우지
못하고 악평한 것으로 보고 하나님은 구원자를 다른 길로 가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허락한 가나안 땅으로 가지 못하고, 광야로 가서 40년 동
안 고생하며 역사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시대 역시 그러한 곳이 있는지 생각해 봐요. 구원자를 늦게 맞을수
록 개인이나 민족이 그만큼 갖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여 신광야로 인도하였기
에 더 이상 ‘종’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편안해지
니 모세를 원망했지요? 결국 더 좋은 가나안 땅으로 가지 못하고, 지도자
도 갈리고, 따르는 자도 갈리어 여호수아와 그 2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섭리에서도 악평하고 나간 자들은 지도자가 바뀌어 제대로 하는 자를
다시 세웠습니다. 시대의 가나안 복지는 그 시대 하나님의 뜻을 펴는 역사
입니다. 희망이 이루어졌어도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감사하며
가야지, 원망하거나 목숨 걸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희망이 이루어져도 어려운 일이 있으니, 낙심 말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됩니다. 기다리던 희망이 이루어졌는데 무엇이 불만이고 걱정입니
까? 비유컨대, 자기 애인이 전쟁터에서 살아왔는데 쌀 떨어졌다고 걱정하
면 ‘이것이 미쳤나?’할 것입니다.
4000년 동안 종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 종교인들은 메시아
를 보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때가 되어 예수님을 보내주었더니 오히려
불신했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렸지, 나사렛 시골 청년을 기다리지
않았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했지요?
예수님의 설교를 참고하여 본다면 ‘참으로 외식과 형식으로 사는 자들
이요, 시기와 질투와 무지 가운데 사는 자들이여. 회개하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 같은 주제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다리며 맞겠다고 하는 것
입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정신이 썩고, 행실이 썩은 그들에게 나
타나시겠습니까? 정신이 정상이 아닌 여자에게 어떤 남자가 좋다고 그 품
에 안기겠습니까? 하물며 죄와 부패를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
림하시겠어요?
깨끗한 인 구름을 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깨끗하고 성결하고 겸손한
예수님을 구름으로 타시고 하나님은 오셨습니다. 그를 통해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성결하게 행하는 자들을 타고 나타나셨습니다.
외식과 형식으로 살고, 종교 싸움, 교파 싸움을 하고, 스스로 분쟁하며,
시기·질투·무지·혈기·악독·미움·다툼·성냄과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자들이 어떻게 메시아를 맞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는 자
들이 어떻게 외람되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강림하심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시대가 예수님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사랑’이신지 십자가를 지신 그 사상과 마음을 사
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자비와 긍휼, 겸손과 온유, 위함과 화평, 청결과 죄
가 없는 깨끗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그 같은 맘으로 맞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메시아이고,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영계와 육계를 포함하
여 수백억이 넘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꿰뚫어
보시면 다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백 번, 천 번 회개하여 모든 죄를 없
애고, 의를 행하고,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도와주어 산같이 공적을 쌓
고, 수십 년 동안 만전의 준비를 하고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은 20년 동안 기성에서 잘못 들어 잘못 안 것을 다시 배우고 깨닫
고, 성격 고치고, 공적을 산같이 쌓고,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이 시
키는 대로 행하고, 완벽한 애인이 되고 신부가 되어야 예수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맞으러 갔다가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요시야 왕은 희망의 구원자를 원했습니다. 간구한 대로 하
나님이 애굽의 느고 왕을 보내주었건만, 옛날 애굽에 대한 선입견과 피해
의식을 가지고 대하다가 자기의 희망을 이루러 온 느고 왕과 무지로 싸우
다 죽었습니다.
섭리 안에서 자기가 희망했던 것을 이루어주신 전능자 하나님의 생각을
꺾고, 세상으로 나가는 자는 하나님이 자존심이 상하여 그 길을 막습니다.
예술의 세계나 모든 세계가 동일합니다.
섭리 안에서 자기 희망을 이루기를 기도해놓았고 축복해놓았으니, 섭리
안에서 이루기를 바랍니다. 예술의 꿈을 섭리 안에서 이루었다면, 영계와
천국에 가서도 예술을 원하면 계속 쓰여 집니다. 선생도 20대 때, 방송국
에서 쓰여 지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쓰는 자가 되었습니다. 모르면 아무 것
도 아닌 곳에 호기심과 희망을 둡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보낸 자를 맞고 따르며 사는 것이 그 얼마나
복된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자가 가치 있게 사는 자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맞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맞고 사는 자들이 얼마나 복
있고 귀한 자인지, 영계에 가서 지옥의 체험을 하면서 보면 세상 누구도
그와 비교할 수 없이 복을 받고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믿어도, 얼마나 귀한지를 30%밖에 깨닫지 못한 채로 믿고 있으니, 때
에 따라 신앙이 흔들거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희망은 현실에서 이루니, 부지런히 행하여 이루어야 합니다. 미
래의 것도 현실에서 조금씩 이루어지니,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희망과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감동시키시어 낙심치 않게 하시는 성령님을 찾고 간구해야 합니
다. 우리 옆에서 어려울 때마다 함께 하사 손을 잡고 희망을 이루도록 사
랑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맘 변하지 말고 희망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를 읊으며 주일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두메산골
백년도 넘은
초가집에서
호롱불 밝혀놓고
달 등불 아래서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과
오순도순
살아가요
우리보고
가난하다고
수군거리고
눈치해요
그래도
하늘 모시고 사니
희망에 살았어요
언젠가
희망을 이루면
모두들
부러워할 테니
견디며 살았지요
오늘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기다린
희망도
이루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