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08.07.09 (수)
수요말씀
- 선포일
- 2008.07.09 (수)
첨부 파일
- PDF
20080709-수요말씀.pdf
149.0 KB
<2008년 7월 9일 수요말씀>
주일말씀에 이어 수요말씀을 잠언으로 하다가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할 수 있을 것을 아시고, 각각 그 재능대로 사
명을 맡기셨다.
2. 하나님이 맡기는 사명은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생명에 관한 일이다.
3.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은 그 재능대로 사명을 맡
기셨다.
4. 사명이 곧 축복이며, 형통이다.
5. 하늘의 일을 맡은 자가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기쁨으로 일하지 못하게
된다.
6. 세상 사람들이 어떤 일을 맡겨도 행한 후에 후
하게 보수를 준다. 하물며 하나님이 일을 맡기고 그
것을 행한 자에게 나 몰라라 하든지, 일 끝나고 수
고했다고 말만 하고 끝나겠느냐.
7. 영원한 이상세계 천국 인이 되었고, 구원을 받
은 자들이 되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
고, 시대 신부들이 되었으니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님과 함께 구원받지 못한 자를 구원시키도록 힘써
복음을 전해주어라. 또 구원 길을 가다가 환난이나,
삶의 여러 고통이나, 형제들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세상으로 나간 자나, 힘이 없어서 못 따라가는 자들
이 있으면 하나님과 주의 손발이 되어 그들을 찾아
생명 길로 가게 해주어야 한다. 이는 구원받은 자들
로서 당연히 하나님과 주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8. 있는 자들을 밤낮 관리하다가 보면, 눈에 보이
지 않는 자들을 신경 쓰지 못하게 된다.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고, 생명들을 관리하시는 하나님이 섭리
에서 나간 자들을 찾아오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셨고, 예수님도 알았기 때문이다.
9. 하나님도 주님도 생명들을 귀히 보시고, 섭리에
서 나간 자들과 사망권 속에 빠져 묶여서 못 오는
자들을 우리의 육을 통해 이끌어내려고 말씀하신 것
이다.
10. 섭리의 집을 나간 양들이 돌아왔다. 이같이 일
주일 정도 수고하면 찾아올 수 있다. 어느 계곡에
서 있다가 왔는지 알고 보니, 역시 섭리의 집을 나
간 양들 집에 있다가 온 것이다. 역시 혈통은 못 속
인다.
11. 죽은 양들 집에 있지 않고, 산 양들 집에 있다
오니 다행이다. 그 잃은 양도 찾아야 한다. 집을 나
간 양은 같은 족속끼리 모여 다닌다. 한 곳에서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으면 몇 마리씩 찾을 수 있다.
12. 찾아온 양은 전보다 배나 잘해주어야 정을 떼고
나간 마음이 근본적으로 희망을 가지며 돌아오게 된
다.
13. 아무리 신경 써서 잘해줘도 맘에 들지 않아 하
는 이유는 그 심정을 모르고 대하기 때문이다. 심정
모르고 대하면 아무리 진수성찬을 대접하고, 꽃방석
에 앉게 해줘도 그 마음은 천국이 안 되는 것이다.
14. 어린 양들아. 물 좋고, 경치 좋고, 산 좋은 데
가 흔치 않다.
15. 사람 마음 못 고친다. 좋은 대로 대해주며 사는
것이다. 때가 되면 참 목자가 나타난다.
16. 2007년 8월이었습니다. 같이 있던 옆 사람들
이 이리와 하이에나처럼 너무 나를 괴롭혀서 정말
생지옥 고통을 받았다. 예수님께 말하니 “사람 성
격 금방 못 고친다. 네가 성격 고쳤으니 그저 좋은
대로 대해주어라. 여기서 이들과 얼마나 살겠느
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웃으면서 좋은
대로 대해주었더니 내 마음이 편했습니다. ‘내가
너와 얼마나 살겠느냐. 마음 착한 내가 좋은 대로
대해주고 가야지.’하며 매일 예수님이 귀띔해준 말
을 암기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밤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고 있었습니
다. ‘일찍 자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데 왜 잠이
안 오지? 이상하다.’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데리러 오시고, 섭리의 영들이 나를 데리러 왔는데
몰랐던 것입니다. 뜬눈으로 있다가 잠이 들었을 때
새벽에 홀연히 나를 데리러 온 자가 있었습니다. 긴
긴 한 세월이 가도록 참고 기다리던 날이 왔습니다.
지옥문을 열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거기 있는 동안 370번의 많은 말씀 중에 마지막
날의 말씀은 “앞으로도 아무 걱정 마라.”였습니
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날 있다고 한 말
이 생각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17. 섭리의 모든 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니 들어
요. 자기를 대하는 자들이 다 심정 맞춰서 못 대해
줍니다. 첫째, 상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
신들은 이미 닦여졌기 때문입니다. 셋째, 어린아이
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속마음을 자
꾸 이야기해줘야 됩니다. 본인이 말을 안 해서 심정
못 맞춰 주는 것은 말하지 않은 자의 책임입니다.
말해주었는데도 마음을 맞춰주지 않는 것은 성격과
인격 때문입니다.
18. 성격 때문에 부딪히는 일들은 집에서 부모 형제
들 사이에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며 교회에서 형제들
끼리, 혹은 지도자들과 일어나는 일입니다. 정치·
사회·직장·학교에서도 서로 성격과 감정 때문에
심정이 부딪히고, 마음에 고통들을 겪고 사는 것입
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절대 성격이 강하면 안 됩니
다. 성자의 성품, 성령님의 성품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과 예수님
이라면 어떻게 행할까?’ 생각하고 대해야 됩니다.
19. 성격이 강하면 아이들을 못 기릅니다. 기르다
죽입니다. 잃은 양만 찾는데 힘쓰기보다 양이 왜 집
을 나갔는지, 그 심리를 잘 파악해야 근본문제를 해
결할 수 있습니다.
20. 예수님이 양 비유를 든 것은 “양같이 다루
라.”함입니다. 모르면 양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지
요.
21. 신령한 자들은 상대의 마음을 잘 압니다.
22. 영적인 자들은 상대의 심리를 압니다.
23. 양이 집을 나갈 때는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갔
다가 안 들어오고, 먹을 것이 없으면 초장을 떠납니
다. 양은 순진해서 인도해줘야 움직입니다. 양은 목
자가 무서우면 떠납니다. 지도자는 자신이 무서운
자인 줄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따르는 자들은 그것
이 아닙니다. 지도자들도 과거에 성장할 때, 섭리에
서 무서운 마음과 두려움 마음을 가지고 웅크리고
컸습니다. 지도자들이 어느 때는 무섭고, 맘에 안
들었을 것입니다. 과거를 잊지 말고 깨달으면서 지
도해줘야 됩니다. “나도 그같이 컸으니, 너도 그같
이 기를 거야.” 하면서 대하면 비인격입니다.
24. 공의롭게 대해야 됩니다. 말도 행실도 부드럽게
해야 됩니다. 섭리 뒤에 있는 자들을 먹다만 음식처
럼 대하면 안 됩니다. 밥도 위에서부터 먹으면 아래
밥이 남고, 밑에서부터 먹으면 위 밥이 남는 것입니
다. 먹다 만 찬밥 취급하면 절대 안 됩니다. 전체를
똑같이 대해줘야 됩니다. 잘못했다고 야단치면 놀라
서 생각을 깊이 하고, 충격 받고, 사고가 돌아갑니
다. 다시 돌이키게 해주려면 갖은 속을 썩여야 됩니
다. 성격 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 사람을 사람으로 다루면 실패합니다. 동물로
보고 다뤄야 됩니다. “사람이 왜 저리 못하느냐.
다 큰 자가 정말 기대 어긋나게 하네.”라며 속상해
서 말을 하게 됩니다. 동물로 보면 ‘동물이니 못한
다.’ 생각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동물이 알아듣게
해주려면 얼마나 신경 써서 해줘야 되겠어요? 어려
워도 동물로 보고 다뤄야 사람을 잘 다룰 수 있습니
다.
호랑이를 막 다뤄 봐요. 물려 죽습니다. 얼마나
잘해야 안 물리겠어요? 고로 사람을 동물로 보고 다
루면 성공합니다. 양같이 보고, 사자같이 보고, 뱀같
이 보면 극히 조심해서 다룰 것입니다. 어떤 자는
소같이 보고 대하면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
을 동물로 보고 대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정
성이 들어가야 하고, 마음을 다해야 하고, 목숨을
다해 대해줘야 동물과 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정성 없이 대하지 말고, 말 못하는 동물
이라 생각하고 깊이 조심하여 다루라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주인이 알아서 해줘야지, 동물 자체로는
못합니다. 이는 지능이 낮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서 사람을 동물로 보고 대하면 화도 안 나고, 이해
도 되고, 이상적으로 가르쳐 다스린다고 말씀해주셨
습니다.
동물은 사람이 잘못하면 물고, 도망치고, 따르지
않습니다. 잘해주면 졸졸 따라다닙니다. 동물에게는
잘해주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사람도 잘해주면 그
것이 사랑입니다.
“사람을 동물로 보고 대하라. 그러면 이상적이
다.” 깨달았어요?
고로 성경에서도 사람을 양으로 보라고 했습니
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성격을 동물로 비유하여
말했습니다. 사람을 애완용 동물로 보고 대하든지,
강아지로 보고 대하든지, 각종으로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해야 됩니다. “얘는 양 같
다. 얘는 이리 같다. 얘는 사슴 같다. 얘는 소 같
다.”각종으로 파악하면 다 나옵니다.
지도자들도 소 같은 성격을 가진 자가 있고, 양
같은 성격을 가진 자가 있고, 말·기린·곰·돼지·
닭·오리·토끼·사자·호랑이·코끼리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교역자들도 그러하고, 교인들도 그러하니
사람마다 잘 파악하여 그 동물을 대하듯 대해주면
이상적입니다. 집안의 자녀들이나 형제들도 다 그같
이 보고 다스리면 전보다 이상적일 것입니다.
거울을 보면 자기가 무슨 동물같이 생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성격을 보면 어떤 동물을 닮았
는지 자신을 알잖아요? 성경에서도 사람의 성격이
동물과 같이 개성적으로 여러 가지이니, 알고 그 동
물 대하듯 대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1장 1-9절에 이상세계가 오면 양 같
고, 소 같고, 뱀 같고, 염소 같은 성격을 가진 자들
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며 서로 해하지 않
고 산다고 했습니다. 성격과 행실이 그 동물과 같다
고 비유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날 때
동물로 태어난다는 말을 하는데 들어보았지요? 사람
이 동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면, 영도 육도 태어나는 것은 한 번에서
끝납니다. 그 후에는 “거듭난다. 변화된다.”고 합
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못 받았으니 제대로 알지 못
하고 “사람이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것
입니다. 모르면 천 년, 2천 년, 3천 년이 넘도록 알
때까지 모르고 가르칩니다. 구시대 주관권에서는 그
주관권밖에 모릅니다. 다른 주관권을 가야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는 “하나님은 보이게 오신다.”는 교
리를 가지고, 2000년 역사가 흘렀어도 지금까지 동
일하게 모르고 외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오셔서 어떻게 인
간들과 대화하면서 뜻을 펼 수 있습니까? 절대 불가
능합니다. 이 세상은 육의 세상입니다.
마태복음 2장 6절을 보면 “너희를 다스리는
자는 너희 가운데서 나온다.”고 말씀했습니다. 메
시아를 기다리던 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왔습니
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이 오신다고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
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오시면 주일에 나타나 설교
를 하시겠습니까? 주일 단상에서 예수님이 설교하시
던가요?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설교한 것을 성경에
서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목사들이나
사명자들을 시켜 설교하십니다.
예수님도 육신이 있을 때만 직접 나타나 설교했
습니다. 죽은 후에는 육신이 나타나 설교한 일이 없
었습니다. 육신을 가진 보낸 자를 통해 설교하게 하
십니다. 육 있는 자가 설교를 해야 사람들이 들을
수 있지요. 예수님이 영의 재림을 하였지만, 아무리
원해도 직접 나타나 설교해주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인 고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주
실지라도 들을 수가 있어야지요. 육신 있는 자를 통
해 계시하여 말씀하시고, 신령하고 사명을 받은 자
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이 오셨지만 하나님이 직
접 나타나 설교하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셔도 사람들
이 못 알아들으니 육신 있는 예수님을 통해 지혜와
총명과 모략의 하나님의 신이 강림하여 말씀하셨습
니다. 예수님의 그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제사장의
말씀 같지 않고, 권세 있고 세력 있다고 말했습니
다.
예수님이 다시 영으로 강림하셨어도 영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영들과 육신
없는 영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이 있는 자들에게
는 육신 있는 자를 먼저 깨닫게 하여 그를 통해 역
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그 시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다면 그 즉시, 새 역사 하나님의 뜻을 폈을
것입니다. 종의 굴레를 벗어나 그 엄한 율법에서 벗
어났으며, 4000년 동안 구약시대에 원했던 희망이
모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구약 4000년 역사는 희망을 기다리는 역사였
고, 신약역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희망을 이
루어주는 역사였습니다. 신약 2000년 역사는 희망
을 기다리는 역사였고, 성약 1000년 역사는 하나님
과 예수님이 사명자를 통해 희망을 이루어주는 역사
입니다. 이 말은 내가 만든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행하시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초등학생도 말을 해주
면 다 이해를 하고 이치가 맞는다고 합니다.
현실의 희망은 미래에서 이루어지고, 과거의 희
망은 현실에서 이루어지듯이 구약의 희망은 신약시
대에 이루어졌고, 신약의 희망은 다음 시대인 성약
시대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스승
이 되어 가르쳐주신 것들이 바로 지금 말한 이 같은
이치를 가르쳐준 것입니다.
흔히 설교자들은 머리를 기름 짜듯이 짜내서 설
교들을 합니다. 왜 머리를 깎고, 옷을 찢으며 설교
를 만들어 하지요? 자기 것도 아니고, 자기 생명을
다스리는 역사도 아닌데 하나님과 예수님께 달라고
해서 청지기처럼 듣고 전해주면 되지 않겠어요? 앞
으로 참 설교자들이 되려면 주인에게, 그리고 주인
이 쓰는 사람들에게 달라고 하여 받아서 그 말씀을
전해주면 그것이 때에 맞는 산 설교가 되어 듣는 자
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유대종교, 회교, 천주교, 개신교
각 교파들과 이방종교인 불교 등 지구상의 각 종교
들을 보면 자기 주관권을 벗어나기 전에는 다른 새
로운 것을 모릅니다. 자기 주관권만 알게 되는 것입
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종교 일을 하려면 종
교 공부를 해야 하고, 법관이 되려면 법 공부를 해
야 된다. 각 교파를 돌아보며 어떻게 가르치고, 어
떻게 종교를 운영하는지 보고 배우러 가자.”고 하
여 산에서 기도하다가 30대 초반에 서울을 중심해
서 각 종교를 돌아 다녀보았습니다. 절도 가보고,
감리교, 성결교, 장로교를 중심하여 개신교 80여개
교파를 돌아다니면서 중심 교리를 들어보았습니다.
이때 선생은 예수님으로부터 30개론을 다 배운 후
였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묻기를 “다 돌아다니면서 들
어보고, 또 들어보니 어떠냐?”고 하였습니다. 이에
내가 보기에는 그 말이 그 말같이 한결 같이 동일하
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재림에 대한 것도, 부활에 대
한 것도, 공중에서 휴거되어 지상천국을 이룬다는
것도, 말세에 관한 교리도 모두 비슷하고, 혀끝에
조금씩 돌려서 말하는 표현만 다르지 특별히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종교의
주인, 메시아인 내가 네게 가르친 말이 근본이 아니
냐? 내가 살았을 때 이미 가르친 말들을 보라. 그
말씀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 것뿐이다.”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배운 30개론은 이미 성경에 있는 말씀
을 예수님이 가르친 대로 구체화 시키고, 체계화 시
킨 것입니다. 구약 말씀도 모두 읽어보면 우리가 배
운 것들이 그대로 나옵니다.
새로운 진리란, 새롭게 올바로 깨달은 말씀입니
다. 그 말씀을 이해가 빨리 되고, 인식이 되도록 그
림도 그리고, 도표로 나타낸 것입니다. 더 잘 알고,
더 잘 믿기 위해 그같이 만든 것이며 말씀이 어려워
서 그림 도표로 그린 것입니다. 그림이나 도표에 있
는 것들은 만물로서 실체로 존재하지만, 너무 크니
축소시켜 그려서 강의실에서 보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연 속에서 직접 만물들을 보라고 하
시면서 설교했지요. 이해가 빠르고 가슴에 와 닿는
설교입니다. 선생도 만물 속에 묻힐 때, 만물을 보
이면서 설교를 할 때 더 실감을 느낍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나오는 비유들을 실체 만물로 보면
실감이 있습니다. 성지땅 월명동이 일반 교회보다
더 좋은 이유는 자연 성전이기에 자연을 통해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실감나게 느껴지고 깨달아지기 때
문입니다. 그러니 일반 건물 성전보다 분위기가 죽
여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의 말씀을 예수님께 직접 배웠지만,
선생은 이미 기성교회에서 종전에 배운 말씀이 머릿
속에 있는 고로 생각이 깊었습니다. 배우면서 누구
한테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다른 자들에게 묻지 말라고 말씀하
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스승한테만 묻고 배우라고
하시며, 믿고 안 믿는 것은 네 자유고, 네가 나를
신임해주는 인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배우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배워도 과연 내가 새로운 것을 배워서
뭘 한단 말일까? 예수님 말씀은 맞는데 왜 종전에
2000년 동안 기독교가 배우고, 알고, 체계화 해놓
은 대로 가르치지 또 변동하려고 할까? 나만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것인가? 나 혼자서 배우고 살란 말일
까? 예수님께 배운 후에 이같이 사람들에게도 가르
쳐주란 말일까? 실상은 성경의 근본 말씀이 이렇다
는 말일까?’하며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처음 배울 때 그야말로 혼돈되었지
요? 선생은 결국 배우고, 오늘날같이 세계를 가르치
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앞으로 가르치는 자
들이 될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지금도 선생같이 가
르쳐주는 선생들이 되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옛 시대와 같이 배우고 살면 되지, 이렇게 다
시 배워야 되나...’ 하며 생각이 깊던 어느 날, 하
나님은 가슴 뜨끔하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20대 때, 월명동 승마장이 있는 횟골에서 어머
님은 밭을 매시고, 나는 6월 땡볕에 풀을 베어다 인
삼밭에 퇴비하려고 풀 작업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집에서 싸온 점심밥을 쉬지 않게 하기 위해 시원하
게 손목만한 고욤나무 그늘에다 놓고 풀을 베어 날
랐습니다. 그 고욤나무는 지금도 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밥을 먹으려고 하니 밥이 뜨끈뜨
끈 했습니다. 일부러 시원한 그늘에다 놓고 갔는데
땡볕에 뜨거운 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시간
이 흐르니 그늘이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던 것입니
다. ‘이것이 당연한 것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이 같은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이 하찮은 고욤나
무 그늘도 때가 되면 돌아가거늘, 나 여호와의 말씀
은 시대 따라 높이지 않겠느냐.”
이때는 30개론 말씀 중에 핵심인 부활, 휴거,
지상천국, 말세, 창조하신 목적들을 배운 때였습니
다. 이 같은 말씀을 들었으나 여전히 산에 가서 기
도하고, 또 들에 나가면 땡볕에서 일이나 하니 막막
했을 때였습니다. 앞날에 무엇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 같은 말씀을 배운다는 말도 듣지 못했기에
‘아... 예수님께 배우면 모두 이같이 배우는 구
나.’ 생각만 했습니다.
이 날 고욤나무 밑에서 혼자 점심밥을 먹으면서
곰곰이 생각하기를 ‘하나님도 예수님도 시대에 따
라 말씀의 차원을 높이시는구나. 나와 같이 하늘 앞
에 배우고자 하는 자들만큼은 다 깨우쳐주시며, 이
시대 뜻을 펴기 위해 말씀의 차원을 높이신다.’고
깨달았습니다. 시대가 성장하고, 지능이 발달됨에
따라서 때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도 차원을 높여가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할 기회
만 있으면 내가 배운 것을 전해주는 것이 나의 사명
임을 확실히 깨닫게 된 날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배우고 섭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걱
정 마요. 결국 선생같이 쓰여지니 여러분들의 몸을
철강같이 만들고, 온전한 정신을 만들어 희망에 차
서 살기 바랍니다. 조금 있으면 때가 되었을 때 곧
임무를 줄 것입니다. 백 배, 천 배 일들을 맡길 것
입니다. 몸이 열 개씩 있어도 부족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쓰시려고 말씀으로 가르쳐놓
았으니, 말씀을 다시 귀히 보고 머릿속에 그 근본을
확실하게 새겨놓아 청중이 모여도 당황하지 않고 말
씀을 전해줄 수 있어야 됩니다. 요즘 계속 가르쳐주
는 말씀을 잘 배워야 됩니다. 여러분들 앞에 청중은
밀려오는데 배운 것이 없으면 뭘 가르쳐 주겠습니
까?
준비만 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씁니다.
항상 쓰기에 합당한 자가 없다고 한탄하시는 하나님
이시니, 자기를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 자로 매일
만들어요. 이론과 정신으로만 만들지 말고 섭리에서
실천하면서 만들기를 바랍니다.
선생도 산에서 기도하고, 월명동 산골짜기에서
이 말씀 배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몸이 닳도록 쓸 테니 부디 건강을 위해 몸을 신경
쓰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몸이 열 개 있어도 부
족할 정도로 30년 동안 썼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메시아나 선지자, 사사,
중심인물들과 같이 육신 있는 자를 보내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어 지도자
로 삼아 쓰셨습니다.
쓰기에 합당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합당한 자는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씁니다. 하나님은 IMF가 없어
요. 지구 세상에서 제일 큰 기업입니다. 생명 구원
의 역사가 얼마나 큽니까? 수십억이 북적대는 종교
기업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방세계까지 쓰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재강림하셔도 육신을 통해 뜻을
펴나갑니다. 이 세상은 영들의 세상이 아닙니다. 육
들이 사는 세상이므로 영들은 영으로서 육신들을 도
우며 일을 합니다. 돕는 것도 실상, 속 시원히 보이
지도 않습니다. 하나님도 돕고, 예수님도 돕고, 성령
님도 감동을 준다는 것을 믿을 뿐이지 보여서 사람
보듯이 따라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안 보이니 믿다가 신앙 길을
돌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선생도 보이다가 해외선교
나가고 안 보이니 믿고 따르다 교회 안 나오는 자들
이 많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시 왔으니 안 나오는
자들에게 선생이 다시 나오라고 했다고 전해주면서
어서 오라고 기쁜 소식을 전해줘 봐요. 오라고 해도
안 온다면 자기 갈 길을 부지런히 가라고 해요.
기도를 많이 해야 안 보여도 자꾸 믿어지고 체
험을 하면서, 신앙이 굳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
서 하나님이 보낸 자를 만나서 믿어야 어느 시대든
지 속이 시원하고, 죽은 신앙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안 보이니
답답하지요? 말을 직접 못 들으니까 답답하지요?
보이는 것은 잘 믿어지지요? 선생님을 직접 못 보았
어도 한국에 온 것 믿어지지요? 그러나 직접 음성을
못 들어 답답하지요? 말씀이라도 들으니 덜 답답하
지요.
선생도 여러분들같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여러분들 안 보여서 답답해요. 기도하면 보이는 것
같이 느껴지니 신령한 기도를 합니다. 안 보이는데
굳이 보려고 눈 피곤해하며 마음 애탈 것은 없습니
다. 안 될 때 방법을 달리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 가까이 와 있으니 덜 답답하고, 또 말씀을
하게 되니 그래도 덜 답답합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다고 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어서
도 못 보냐고 하면 “육이 안 죽어도 그 영으로는
보나 영이 보았기 때문에 육신은 모른다. 영이 보면
되었지 법칙에 어긋나게 육이 보려고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체를 못 보았지만 영을 통해 물어보
면 속 시원히 알 수는 없어도, 대강은 알 수가 있습
니다.
왜 하나님에 대하여 이같이 알려고 하는지 알아
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생생하게, 실감나게 가르
쳐주고 증거하여 하나님을 믿게 하려 하는 것입니
다. 사람들의 심리가 보이면 안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이끌려 따라 갑니다. 불교는 형상을 만들어 놓
고 숭배하니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훨씬 더 많이 믿
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여도 상식으로 깨달아 봐요. 하
나님은 얼굴 하나에 눈 두 개, 입 하나, 코 하나, 귀
둘, 손과 발이 있으며 남성이신 하나님입니다. 인간
들이 추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 모양과 형상
이 다른 하나님이십니다. 인간 모양의 형상이지만
우리가 추상하고 상상한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존재하신다. 안 보이는데 존
재하신다. 우리 인생들의 마음과 같이 존재하신
다.”고 하며 구구 나름 말이 많지요. 하나님은 인
간의 형체와 같이 영체로서 그 형상을 가지고 확실
하게 존재합니다.
야곱도 하나님을 보고 성경에 이같이 말했습니
다. 야곱이 사탄 같은 형 에서에게 쫓겨 외로운 땅
으로 도망가다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사다리가 땅에
서 하늘까지 닿았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내리
고 그 위에 하나님이 서서 말씀하시기를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네 누운 곳은 너와 네 자손
에게 주리라.” 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뒷모습을 보았고, 아브라함도
낮에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는 몰랐으나 본 후에 알
게 되었고, 사도요한도 하늘 문이 열렸을 때 하나님
이 보좌에 앉아 있고 무지개가 보좌를 두른 것을 보
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형상, 모양, 생김새에 따라
사람을 창조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걱정 말아요. 안 보여도
해줄 것은 다 해주십니다. 사람들이 보면 하나님은
일을 더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
습니까?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각 사람들을 쳐
다보며 살피십니다. 직접 살피기도 하시고, 사람을
통해 살피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 쓰여지는 손과 발이 되어야 하고, 귀
한 몸이 된 것을 감격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낙심
은 금물입니다.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합니
다. 서로 화목하여 긍휼히 여기며, 인자한 마음으로
대하고, 하나님과 주의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피차 대해야 합니다. 화평과 사랑과 위함의 천국이
일어나고 찾은 양을 위해 예수님처럼 기뻐 잔치하며
즐거워하고, 부지런하여 열심을 다하는 지체들이 되
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