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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08.11.30 (일)

2008년 12월~2009년 12월 주일.수요말씀

선포일
2008.11.3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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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0일 유혹과 꾐에 빠지지 말라 2008년 12월 3일 유혹과 꾐에 속지 말라 2008년 12월 7일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주가 되고 주님이 된다 2008년 12월 10일 오직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한 분 뿐이다 2008년 12월 14일 주가 너에게 원하는 것을 알고 깨달아라 2008년 12월 17일 기쁜 크리스마스 하나님과 주가 너에게 원하는 것을 알고 살아라 2008년 12월 21일 기쁜 크리스마스 2008년 12월 24일 기쁜 크리스마스 2008년 12월 25일 기쁜 크리스마스 2008년 12월 28일 하나님이 행하신 지난날을 잊지 말고 생각하라 2008년 12월 31일 기도와 말씀, 뜻과 사연 2009년 1월 4일 (새롭게 변하라) 2009년 1월 7일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실천하여 변화를 받아라) 2009년 1월 11일 (나는 너를 믿어주는데 너는 나를 믿어주지 않느냐) 2009년 1월 14일 (내 말을 꼭 믿으라) 2009년 1월 18일 (알고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관리하기 쉽다) 2009년 1월 21일 (내게 잘 배우고 잘 가르쳐라) 2009년 1월 25일 (진리와 증거의 영, 성령) 2009년 1월 28일 (성령 충만) 2009년 2월 1일 (하나님의 뜻 / 징조와 표적과 계시 / 타고난 자) 2009년 2월 4일 (타고난 자만 할 수 있다 / 그 재능대로 맡겨라 / 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로다) 2009년 2월 8일 (인생의 삶과 영원한 길 / 자기 몫이 있다) 2009년 2월 11일 (세상은 버려도 주님은 버리지 않으신다 /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 위함이다 / 주님 따라 영생길을 가기 위함이다) 2009년 2월 15일 (천국을 위한 선한 싸움) 2009년 2월 18일 (천국을 위한 선한 싸움) 2009년 2월 22일 (오직 독생자 예수님) 2009년 2월 25일 (오직 독생자 예수님) 2009년 3월 1일 (기름을 준비하여라) 2009년 3월 4일 (그런 즉 깨어 있으라) 2009년 3월 8일 (우리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2009년 3월 11일 (우리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2009년 3월 15일 (예비해 놓고 있으라 정말 생각지 않은 때 주님이 오신다) 2009년 3월 18일 (내 말을 듣고 예비하라) 2009년 3월 22일 (갖춰야 주를 맞는다) 2009년 3월 25일 (이와 같이 이러하다) 2009년 3월 29일 (회개하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 2009년 4월 1일 (회개하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 2009년 4월 5일 (주인이여 1년만 참으소서) 마지막으로 연기했다) 2008년 4월 8일 (주인이여 1년만 참으소서)마지막으로 연기했다) 2009년 4월 12일 부활절 말씀 (육이 영으로 부활했다) 2009년 4월 15일 (육이 영으로 부활했다) 2009년 4월 19일 (인생 앞에는 두 길이 있다. 한 길만이 갈 길이다.) 2009년 4월 22일 (인생 앞에는 두 길이 있다. 한 길만이 갈 길이다.) 2009년 4월 26일 (네 몸은 피로 값을 주고 산 내 것이다) 2009년 4월 29일 (너희 몸은 너희 몸이 아니다. 생명을 주고 산 주의 몸이다.) 2009년 5월 3일 (내 말은 생명이니 지켜라(주님의 마지막 경고의 말씀) 2009년 5월 6일 (정말 시간을 아껴라) 2009년 5월 10일 (자기가 동의하지 않는 한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2009년 5월 13일 (불법을 행하는 자들) 2009년 5월 17일 (예수님을 모르는 자 실패한다) 2009년 5월 20일 (모르면 망한다) 2009년 5월 24일 (어제는 예비하고 오늘은 맞는다 ) 2009년 5월 27일 (기도는 애인이다.사랑이다.주님이다) 2009년 5월 31일 (분쟁하는 자는 황폐하게 된다) 2009년 6월 3일 (자기가 한 말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2009년 6월 7일 (왜 기도를 해야 되는가) 2009년 6월 10일 (기도하라) 2009년 6월 14일 (주님께 딱 붙어살 때다.) 2009년 6월 17일 (주님께 딱 붙어 살 때다) 2009년 6월 21일 (주일말씀 내 영을 부어 주리라) 2009년 6월 24일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2009년 6월 28일 (은혜와 목적) 2009년 7월 1일 (하나님의 심판의 이치) 2009년 7월 5일 (주님의 계시의 말씀) 2009년 7월 8일 (말씀의 불 받고 주님 심정 알고 대하라) 2009년 7월 12일 (계산하고 살며, 이렇게 살아라) 2009년 7월 15일 (그 여자, 그 남자) 2009년 7월 19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2009년 7월 22일 (1.나 여호와는 처음과 나중이다 2. 첫사랑을 찾아라) 2009년 7월 26일 (이기는 자, 그 대가와 축복) 2009년 7월 29일 (빼앗기지 말아라) 2009년 8월 2일 (하나님은 합당한 것만 들어주신다 / 절대적이어야 절대적이다) 2009년 8월 5일 (방심하고 태만하면 실패한다) 2009년 8월 9일 (마음의 계시다 /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2009년 8월 12일(마음이 계시다.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2009년 8월 16일 (진실로 주 하나님을 불러야 응답하신다) 2009년 8월 19일 (첫 사랑을 지속하여라) 2009년 8월 23일 (영으로 행해야 할 수 있다 / 영적인 자만 주님의 재림을 맞는다) 2009년 8월 26일 (영으로 하라) 2009년 8월 30일 (용서는 있으나 연기는 없다) 2009년 9월 2일 (용서는 있으나 연기는 없다 / 너그럽게 대해 주어라) 2009년 9월 6일 (속지 마라. 주께 맡겨라. 겸손하라 / 수시로 감사하고 기도하라) 2009년 9월 9일 (자기가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행하라) 2009년 9월 13일 (1. 나를 따르라. 생명이 보화다. 전도하라 2. 때를 지켜야 때에 맞는 것을 얻는다 3. 지금은 전도할 때다. 성령을 받을 때다. 주님의 재림을 맞기 위해 마지막으로 준비할 때다) 2009년 9월 16일 (속히 생명들을 구하여라. 마지막 순간만 남았다(내 말은 생명이니 지켜라) 2009년 9월 20일 (기도는 행사가 아니다. 생활이다.) 2009년 9월 23일 (매일 의를 행하여 의인이 되어라 / 세상 순간 누리다가 영원한 세상 빼앗기지 말아라) 2009년 9월 27일 (육의 세계는 육으로, 영의 세계는 영으로 영들과 싸워라) 2009년 9월 30일 (영적싸움) 2009년 10월 4일 (1.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표적이 일어난다 2. 보이는 사람 중심 말고, 자기 육신과 생각을 중심 말고, 자기 영이 오직 주님과 의논하여 행하라) 2009년 10월 7일 (너희 영과 육이 주님을 중심하고 중심을 잃지 말아라) 2009년 10월 11일 (1. 이 시대도 노아와 롯 시대처럼 그와 같이 그러하다 2. 지체하지 말아라. 주가 독촉하시고 이끌어 내실 때 속히 행하라) 2009년 10월 14일 (지금 이 시대는 어느 시대쯤 되었는가?) 2009년 10월 18일 (주의 이름을 불러라) 2009년 10월 21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009년 10월 25일 (극히 나와 생명을 구하자 / 내가 너와 함께 하련다) 2009년 10월 28일 (극히 나와 생명을 구하자 / 내가 너와 함께 하련다) 2009년 11월 1일 (그 날에는 다 표가 나고 다 드러난다. 어서 회개하고 갖출 것을 예비하라) 2009년 11월 4일 (국도 지옥도 들어가 봐야 그제서 알게 된다) 2009년 11월 8일 (주님의 성찬 예식의 뜻과 의미) 2009년 11월 11일 (성만찬식과 동시성 역사) 2009년 11월 15일 (영과 육, 불가능한 것이 없다 영과 육,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 2009년 11월 18일 (자기 책임과 능력 / 능력 주시는 자에 의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2009년 11월 25일 (말을 지켜 행하라) 2009년 11월 29일 (주가 찾으실 때까지 찾고 응답하실 때까지 불러라) 2009년 12월 2일 (내가 너를 찾고 부르니 너도 나를 찾고 불러서 나와 일체 되어 살자 2009년 12월 6일 나도 용서 너도 용서다 2009년 12월 9일 용서하면 네가 살리라 2009년 12월 13일 알고 행하라 2009년 12월 16일 주께 묻고 행하라 2009년 12월 20일 사랑의 크리스마스 내 아들을 진정 사랑하라 2009년 12월 23일 사랑의 크리스마스 내 아들을 사랑하라 2009년 12월 24일 사랑의 크리스마스 2009년 12월 25일 사랑의 크리스마스 2009년 12월 27일 처음부터 나중까지 행하시는 주님 2009년 12월 30일 나 예수는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다 2009년 12월 31일 송구영신 말씀 <2008년 11월 30일 주일말씀> 유혹과 꾐에 빠지지 말라 (주제는 미리 말하지 마시고, 본문을 설교하면서 주제가 나올 때 그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보에도 미리 넣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 문 잠 언 7장 21~27절 잠 언 6장 25~28절 마태복음 22장 11~13절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그 사람을 알게 되고 따를 수 있 고, 그 사람이 시키는 것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고 알며 그 말씀 하심을 들어야만 무엇을 해야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모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모아 생명의 말 씀을 듣겠습니다. 2008년도 표어는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해야 말씀을 받고 듣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들을 때는 꼭 기도하고 들어야 깨닫게 됩니다. 선생도 주님이 말씀하시고 영계에서 어떤 장면을 보 여 줘도 기도를 많이 해야 깨닫게 됩니다. 자정 넘어 새벽 일찍 기도를 할 때 은밀하게 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고향 근처 교촌리에서 진산까지 길 좌측에 질서정연하게 노상음식점 수백 개가 있는데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군밤도 굽고 있고, 붕 어빵도 굽고 있고, 즉석에서 고급 빵도 만들고, 부침개, 국수, 만두, 돼지고기, 쇠고기 등 음식들이 푸 짐하게 보였습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여 침이 꿀떡 넘어갔습니다. 맨 앞에는 우리가 평소 먹는 음식들이 있었고, 점점 뒤로 갈수록 고급 음식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너무 먹고 싶어서 평소같이 그중 한 집에 들어가 군밤을 사려 하니 군밤을 구워 파는 사람이 말하기를 생각보다 그렇게 맛있지 않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당신이 장사하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되겠냐고 하 니, 취미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먹고 싶어서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곳에서 파는 붕어빵을 보니 더 맛있게 보여 그곳으로 갔습니다. 끝없는 음식점들이 있어 ‘이렇게 가다가는 내 갈 길 못 가겠다. 안 되겠다.’ 하고 발길을 돌려 다 른 길로 빠져 내 갈 곳을 가고 있었습니다. 홀로 가는데 다섯 살 정도 되는 한 남자 아이가 나를 따라오 면서 빵도 먹고 싶고, 저 음식들을 먹고 싶다고 하며 사 달라고 졸라 댔습니다. “나도 안 먹고 간다. 너는 나를 늘 따라다녀서 알지? 그냥 가자.” 하니 그 아이는 나에게 “돈이 없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내 호주머니에서 돈 한 주먹을 끄집어내니 겨우 50원, 10원짜리였습니다. 마치 생시 같았습니다. “음식 먹을 돈은 있는데 돈이 없어 안 사 먹는 것이 아니다. 갈 길을 가야 해. 나 따라가려면 음식 먹고는 못 따라온다.”고 하며 돈을 주지 않으니 아이는 “배고파도 따라갈래요.” 했습니다. 둘은 손을 잡고 월명동 내 고향을 향해 걸었습니다. 갈 길을 가니 배고픈 것도, 먹고 싶은 마 음도 잊고 기쁘게 갔습니다. 이 장면은 말씀의 계시입니다. 이 장면을 가지고 주일말씀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 기도 안 하면 깨닫 지를 못합니다. ‘무슨 뜻이지?’ 생각하고 있지요? 이 내용이 주일말씀이랍니다. 교역자들과 여러분들 은 이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 시대 이 주일에 우리 모두에게 어떤 말씀을 어떻게 전해 주실지 알 고 말씀을 전해 주고 듣고 있습니까? 말씀을 받으려면 기도하고, 기도하여 말씀의 한 장면을 받으면 그 근본을 깨달아야 되고, 깨달은 것 은 음식을 잘 만들듯이 주님이 원하는 대로 말씀으로 잘 만들어야 됩니다. 말씀은 혼자 만들 수 없습니 다. 역시 기도하면서 주님과 같이 만들어야 됩니다. 음식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말씀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은 음식이라는 것을 보여 준 묵시라고 생 각할 수 있습니다. 육적으로 생각하면 그 같은 생각이 들겠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은 신령함으로 분별합니다. 오늘 주제를 말씀하겠습니다. “유혹과 꾐에 빠지지 말라.” 주제 말씀을 듣고 나니 계시의 방향을 깨닫겠지요? 방향을 깨달았어도 그 근본에 해당되는 여러 가지 말씀을 들어 봐야 하나님과 주님이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알게 되고,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바울 선생은 자기 제자 디모데에게 각종 세상 유혹을 이기고 신앙생활에 있어 어떻게 살라고 철저하 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평소 만났을 때나 편지로 이야기를 해 주어 자신의 입장을 잘 이해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같이 여기고 사랑해 주며 살면서 함께 복음의 일 을 했습니다. 바울은 각 교회들을 디모데를 가르치듯 가르치며 철저히 말씀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고로 세상 유혹과 꼬임을 이기게 하고, 환난과 핍박을 이기게 하여 잘 성장시켰습니다. 바울이 직접 못 갈 때는 대신 디모 데를 보내어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가르쳐 주고 문제를 해결하게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 선생의 둘도 없는 신복이었습니다. 교회들은 디모데를 대할 때 마치 사도 바울을 만난 것같이 대해 주었습니다. 귀히 가르쳐 주어 기르면, 그에게 사명을 주어 자기 몸같이 귀히 쓰게 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나 사도 요한을 중심하여 열두 제자에게 철저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르는 자들에게 유혹과 꼬임에 들지 말라고 철저히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래야 잘 성장하고 세상에 뺏기지 않습니다. 제자를 기르려면 책망하면서 무섭게 가르쳐야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사랑의 유혹과 꼬임에 속지 말고 빠지지 말라고 하시면서, 거기 빠지든지 속든지 넘어가면 죽는다고 더 이상 말할 수 없도록 엄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가르쳤는데도 유혹과 꼬임에 넘어가 이성으로 범죄하고, 결국 그 영과 행실이 죽어 하나님의 이상의 삶에서 죽었습니 다.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역대의 왕들도, 선지자들과 사사들과 중심인물들도 모두 악한 자의 꼬임과 유혹, 세상 삶의 유혹, 적들의 꼬임과 유혹들을 무섭게 방지하고 가르쳐 지키게 했습니다. 시편 1편을 보면 “정말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힘과 능으로 안 될 때 꼬입니다. 유혹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입니다. 고로 유혹과 꼬임은 극약입니다. 사약입니다. 극약을 먹고 안 죽을 자가 없듯이, 유혹과 꼬임에 들면 거기 안 빠질 자가 없 습니다. 주님은 “마음에도 음란한 마음을 먹지 말라. 마음에도 간음하지 말라.”고 철저히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완전한 구원의 말씀이었습니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회개해야 사망에서 나온다.”고 철저하게 가 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외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에 해당되는 것까지도 완벽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론적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실제 행동하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로 선생도 주님께 배울 때, 유혹이나 꼬임에 빠지지 않도록 아예 그렇게 하지 못할 산속에 데려다 놓고 철저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유혹과 어려움을 이기는 데 정말 몸부림쳤습니다. 유 혹하고 꾀는 자가 없어도 홀로 자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꼬임에 들지 않고 철저하게 살기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 귀신, 악령들의 유혹이 많았습니다.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여기 와 있느냐. 네 가 스스로 하는 일이다. 네가 필요 없는 고생하는 것이다. 집에 가서 농사짓고, 교회 꼭꼭 다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곳에 있는 것은 네가 사서 고생하는 것이다.” 하며 나를 꾀었습니다. 그 말을 들어 보니 정말 귀가 솔깃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네가 여기서 내게 배우고 나가면 큰 역사의 일을 한다.’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단받고 나가면 100명 정도 되는 교회 하나 맡기려고 한다고 그 정도라도 한마디만 해 주 었어도 그 희망으로 다 이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전혀 없었고, ‘원하면 다만 내가 너를 가르 쳐 준다.’고만 하였기에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목회할 것도 아닌데 어느 정도만 배우고 끝나자. 이 고생을 해 가면서 굳이 여기서만 배운다고 배워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때 사탄과 귀신들은 나도 모르게 은밀히 내 스스로를 통해 유혹하고 꾀기 시작했습니다. “뭐 하러 여기서 이 고생하면서 무엇을 배운다고 하느냐. 네 스스로 생각이야. 그리고 신학교 가서 배우든 지, 못 가면 책을 사다 보든지, 정당하게 집에서나 집 근처에서 기도하여 예수께 배우든지 해야지. 귀신 들이나 마귀들이 사는 산골짜기에 사느냐.” 하며 유인하고 꾀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사탄과 귀신들인데, 왜 귀신들 사는 곳에 있느냐고 천사처럼 탈을 쓰고 내 마음을 유혹했습 니다. 보이면 들통 나니까 나타나지도 않고 내 마음만 유혹했습니다. 그때 나는 사탄과 귀신들이 주는 생각인지도 몰랐습니다. ‘집에 가도 그렇고, 산에 있어도 그렇다. 가끔 주님이 와서 나를 가르쳐 주면 그저 좋다.’ 생각하고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내 마음을 스스로 강하게 하고, 사탄인지 귀신인지 몰라도 혼자 이기면서 크게 했던 것입니 다. 앞날에 어떻게 한다는 코치를 해 주지 않았으나 주님을 믿는 대로 희망이 생기고, 또 의심하면 실망 이 생겼습니다. “네 믿음대로 하라. 네 믿음대로 돼라.”는 성경말씀대로였습니다. 여러분들도 각각 인생이 성장할 때 이같이 크고 있을 것입니다. 절대 주만 믿고 살아야 됩니다. 주님 은 우리의 희망이며, 주님을 따르는 만큼 하나님이 함께해 주십니다. 산에서 혼자 있을 때 별 파란만장 한 일들이 많았고, 하늘의 응답을 못 받으니 ‘이렇게 살다가 끝나려나?’ 하면서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주님만이 앞날에 나를 어떻게 쓸 것을 아시고 은밀히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나와 같이 이 말씀을 듣는 자들도 그러하니 ‘절대 앞날에 희망의 날이 있다.’ 생각하기를 바랍니 다. 환난과 고통, 곤고와 인생의 막막한 처지를 겪고 있으면서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어도 주님 은 그 나름대로 뜻이 있어 역사하며 가시니 걱정 말고 신앙생활만 몰두하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련히 알아서 해 주겠느냐.” 말씀해 주셨으니, 이를 좌우명으로 삼고 절대 하나님만 의지하고 행해야 됩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행할 뜻을 미리 다 이야기해 놓 고 행한 일이 없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 주 시고 노심초사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어 주는 신임이 중요합니다. 의심 없이 행해야 됩니다. 의심하여 행치 않으면 스스로 넘어집니다. 믿고 행하는 만큼 같이 행해 주 십니다. 사람들과 있을 때 사람을 통해 사탄이 역사하여 약하게 하고, 사탄이나 귀신이 역사 안 해도 사 람들의 무지함으로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상처를 주어 넘어지게 하고 믿음을 상실하게 하는 일도 있습니 다. 이에 굳세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절대 의지해야 됩니다. 선생이 있으니까 믿어요. 해 줄 테니 까 믿어요. 그동안도 기도해 줘서 받고 이겼지요? 또 하나는 자기 홀로 있어도 사탄과 귀신이 침범하여 유혹합니다. 안 보이니까 사탄의 마음인지, 귀 신이 하는 짓인지 모릅니다. 기도하여 물리치고 굳세게 해야 됩니다. 오직 하나님과 주님만 의지하고 이 겨야 됩니다. 사탄과 귀신이 유혹하거나 꾀거나 역사함이 없는데도 스스로 자포자기를 하게 되고, 다른 길로 가고 싶고,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절대 하나님과 주님만 의지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임해 주고 주님을 절대 믿어 줘야 됩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선생도 모를 때는 모르고 대하니까 그때는 하나님과 주님을 찾고 가면 됩니다. 오직 하나님과 주님으로 이기는 것입 니다. 자신도 자신을 모릅니다. 고로 절대 믿음으로 터널을 지나가야 됩니다. 이런 때는 하루에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을 1000번, 2000번 부르며 기도해요. 이것이 승리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기도할 때 “절대 하나님도 주님도 나 안 버리지요? 감사합니다. 나에게 희망의 날이 있음을 믿습니 다!” 하며 이같이 긍정적으로 기도하면 즉시 그러하다고 응답이 옵니다. 이 응답은 절대 사탄과 마귀가 안 줍니다. 자기 스스로의 응답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간구하니 마귀도 귀신도 절대 틈을 못 탑 니다. 선생도 과거에 이같이 이겨 왔습니다. 표상자를 따라 하도록 답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같이 이기고 갑니다. 내가 어려운 고통을 당하니 기도하며 내 스스로 답이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 님이 말씀하시기를 “절대 믿고 가는데 꼭 내가 응답해야 믿느냐. 그런 때는 자기가 긍정적으로 생각함 이 답이다.” 했습니다. 선생이 몰라서 못 알아준 것도 후에 알면 다 책임지고 해 줍니다. 일반 사람들처럼 슬그머니 그냥 넘 어가지 않습니다. 지금껏 여러분들을 위해 살아왔고, 수십만 번씩 여러분들 잘되라고 기도해 주고, 잘못 한 죄까지 내가 했다고 생각하며 대신 회개해 주었는데 내가 모르고 잘못 대해 준 것이 있는데 그것을 말 안 하고 그냥 지나가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선생은 여러분들을 믿고 여러분들은 나를 믿지 않아요? 누가 어떤 유혹을 해도 서로 믿음으로 사탄 도, 귀신도, 악평자도, 행악자도 이기고 가야 됩니다. 믿습니까? 혹여 형제들이 모르고 괴롭혀도 하나님 과 주님은 다 아시고, 선생도 있으니 후에 다 말씀하여 제대로 증거해 주고 말해 줄 것입니다. 걱정 말 아요. 오늘은 유혹에 대하여 말씀하며, 주님이 나를 가르쳐 보여 준 묵시를 자세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혹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을 통해 유혹을 하고 꼬임에 들어가게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먹고 입고 자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니 돈과 명예와 사랑, 좋은 집과 환경, 미와 좋은 물건들에 유혹되어 빠지게 됩니다. 물건을 가진 자가 유혹하고 꾑니다. 우리 인생이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되고, 옷도 입어야 되고, 잠도 자야 되고, 명예와 직책도 있어야 됩니다. 또한 사랑, 돈, 물건, 아름다움도 필수품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주셨고, 이것을 쓰면서 살라고 하였습니다. 공의를 벗어나서 행할 때 유혹된 것입니다. 사람은 더 맛있게 먹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생리적인 현상이며 심리입니다. 더 맛있게 먹으려면 더 비싼 음식을 먹어야 됩니다. 더 좋은 환경에 가야 비싼 음식이 있습니다. 인생들의 이러한 심리를 알기 에 더 좋은 환경에 더 좋은 음식과 옷으로 즐비하게 차려 놓고 오라고 합니다. 선생에게 보인 계시대로 갈수록 더 좋은 음식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음식을 파는 자들은 서로 자기 것이 맛있다고 유혹하며 꾀었습니다. 정말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 이겼습니다. 먹을거리 시장 의 끝없는 음식들을 보고 있으면 더 좋은 것으로 먹고 싶고, 그것에 길이 들면 먹는 데 유혹되어 살아갑 니다. 개인도 길들이기 달렸습니다. 각 나라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먹는 데 쾌락을 두고 사는 나라도 있습니다. 한국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사 주는데, 이웃 나라 중국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식사를 대접해 줍니다. 먹고 남는 음식이 많이 쌓여 있어야 기분 좋아 만족해합니다. 짐승을 보아도 각각 다릅니다. 뛰어노는 데 낙을 두는 노루와 사슴이 있고, 먹는 데 낙을 두는 돼지 가 있고, 잠자는 데 낙을 두는 곰이 있고, 일하는 데 낙을 두는 소가 있습니다. 야수들은 사냥하는 데 낙을 두고 삽니다. 동물의 왕국에 나오지요?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어떤 자는 돈 벌어서 먹고 사는 데 낙을 두고 삽니다. 이는 먹는 것에 빠져 유 혹받고 꼬임에 들어 사는 인생입니다. 빠진 자는 모릅니다. 안 빠진 자가 압니다. 어떤 자는 먹는 것보 다 좋은 집에 사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삽니다. 평생 좋은 환경과 좋은 집을 자기의 신앙같이 여기고 삽니 다. 주님은 나에게 “먹는 것이 뭐가 그리 중하냐. 집이 뭐 그리도 중하냐. 너는 모른다. 내게 듣고 가르 쳐 주라.”고 하며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 주셨습니다. 월명동 27평 어머니와 사는 집이면 족합니다. 그 것도 시간이 없어서 잘 수가 없습니다. 1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 넘어서까지 산골이나 굴속이나 노상 에서 새우잠을 자며 살았습니다. 다리 밑에서 거지들과 자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펴는 데는 지 장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리 좋은 집에서 1년이라도 살아 본 역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사정을 너무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서 살아도 마음이 편해야 천국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함께 살아 줘야 천국 이요, 최고의 삶입니다. 가난하게만 살라는 말이 아니고, 초막이나 초가집에서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리하여 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집이나 먹는 것에 유혹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잠에 유혹되고 꼬임에 빠져 사는 자가 있습니다. 큰일을 하려면 절대 잠 많이 자고는 못합니다. 선생 도 극적으로 행할 때는 3시간 자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수시로 감행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 는데 잠이 문제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작은 일입니까? 자기를 영원한 멸망의 세계 인 지옥에 안 가도록 길을 주기 위해 대신 죽어 주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작은 일이며 쉬운 일입니 까? 선생은 지옥을 뼈저리게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러분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더 뼛속 깊이, 머릿속 깊이, 마음속 깊이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내게 잘못한 형제들을 더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는 깊은 신앙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두에게 선물이 될 것이고 희망일 것입니다. 지옥에 갔다 온 후에 지옥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자기에게 아무리 잘못하고 악한 일을 행하고 손해를 끼쳤어도 지옥만은 보낼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옥은 절대, 어느 누구 도 보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진실로 이런 마음을 먹고 살아야 자기도 지옥에 안 갑니다. 지옥은 하나님과 주님을 안 믿어서 가는 곳이지만, 형제들을 보고 아무리 잘못한 자일지라도 “지옥에 갈 놈!”이라고 저주하면 안 됩니다. 하나 님과 주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안 듣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 하시고 잘 들어주시는 기도는 “내가 잘못했습니다. 다 용서해 주겠습니다.”라는 기도입니다. 이는 서 로가 사는 기도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지옥 같은 고통을 통해서 저 무형세계 지옥을 깨달아야 됩니다. 알아야 됩니다. 이 세 상에서는 영의 세계 지옥을 마음으로는 체험하여도 육신으로 체험하기는 어렵습니다. 영계는 영이라 죽 지 않으니 풀무불 속에 들여보내어 그 태양같이 뜨거운 고통을 영원히 받게 합니다. 육신은 불 속에 들 어가면 죽습니다. 화재가 났을 때 그 뜨거운 불 속에서 몸이 타다 나온 자는 지옥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선생이 지옥을 체험하였기에 지옥에 대해서 말해 줄 수가 있습니다. 모두 배워야 됩니다. 오늘은 유 혹과 꾐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배우고 절대 넘어가지 말기 바랍니다. 넘어가면 지옥으로 삶이 기울어집니다. 다음은 입는 옷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됩니다. 돈을 벌면 먹는 것도, 잠도, 좋은 집도, 좋은 차도, 명예도 아니고 좋은 옷을 중심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심리를 알고 더 좋은 옷, 더 멋있는 옷, 더 비 싼 옷들을 시장에나 거리에 즐비하게 만들어 놓고 유혹합니다. 옷의 유혹과 꼬임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옷이 날개라고 합니다. 좋은 옷 을 입으면 정말 날아다니게 됩니다. 돋보이고 이상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옷을 입고 다니라고 옷을 만들게 했습니다. 자기에 맞게, 무리하게 행치 말고 입으면 됩니다. 무리하게 하면 그것이 유혹된 것입 니다. 꼬임 받은 것입니다. 옷에 낙을 누리며 살고, 먹는 데 낙, 잠자는 데 낙, 명예의 낙, 사랑의 낙... 모두 끝이 없습니다. 돈 없는 자는 이런 곳에 안 빠집니다. 유혹도 꼬임도 안 받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인간들이 행하는 의를 행실의 옷으로 보십니다. 천국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빛 난 옷을 입고 다닙니다. 어떤 천사나 천인들은 드레스같이 길고 땅에 끌리는 옷을 입고 다닙니다. 이 세 상에는 그같이 빛나고 좋은 옷이 없으며 만들 수도 없습니다. 삶의 의의 옷을 깨끗이 입고 살아야 됩니다. 영계로 각자 인생들의 그 영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어떤 자는 거지 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어떤 자는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고, 어떤 자는 세마포 옷을 입 고 다니고, 어떤 자는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 사람의 행실에 따라 입고 다닙니다. 선생도 옷에 대하여 많이 말해 주었지요? 자기 분수에 맞게 입어야 합니다. 돈이 있는데도 너무 옷에 신경 쓰지 않고 입고 다니면 안 됩니다. 무리하게도 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헐한 맛에 비싼 옷 한 벌 살 돈으로 양복 다섯 벌을 7만 원씩 주고 샀습니다. 색깔별로 입으 니까 좋은데 무릎이 나오고, 엉덩이가 나오고, 옷이 늙은 뱃가죽처럼 늘어져 곧 품위가 없어졌습니다. 다섯 벌 헐하게 사느니 아예 좋은 옷 한 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그 후에 보다 비싼 것으로 한 벌 사게 됐습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보다 나은 옷을 입기 위해서입니다. 입는 자마다 각자 장단점이 있겠지만 보는 자들이 여러 가지 눈으로 그릇 보고 오해도 합니다. 그래 도 공적인 자들은 하나님과 주님과 따르는 자들을 위해 품위 있게 사 입으라고 했습니다. 외국의 뒤떨어 진 나라의 옷들을 열 벌 사느니 한 벌 사서 좋은 옷으로 입어야 됩니다. 헐한 옷은 입다 보면 기분이 나 빠서 못 입습니다. 날마다 해어지니까 못 입고 결국 찢어 없애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는 자들은 반드시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평소 때 입 지 않는 옷으로 성의(聖衣)처럼 입어야 되고, 보통 때 입는 옷보다 돈을 더 주더라도 자기 능력껏 보다 좋은 옷, 정장을 입고 단상에 서야 됩니다. 단상에 서는 자들은 옛날 제사장과 같은 자들입니다. 평소 화장실 다니고 부엌에서 입던 옷을 입고 단상에 서면 본인부터가 기분이 나쁘고, 보는 자들에게도, 하나님 앞에도 절대 예의 없는 일입니다. 완 전히 구분되어야 됩니다. 선생은 평소에 입는 옷을 입고는 절대 단상에 서지 않습니다. 입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온 옷도 단 상에 서면 안 된다고 합니다. 화장실에서 배설물을 닦던 손으로 음식을 만들면 기분 좋고 맛있을까요? 선생은 절대 왼손으로만 사용하고 오른손은 깨끗하게 사용합니다. 기도해 줄 때와 하나님과 주님이 주시 는 글을 받아 쓸 때는 오른손을 사용합니다. 교역자들은 단상용 옷, 평소 옷, 무대 옷을 각기 입어야 되 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자들은 그 입으로 욕하거나 악평하면 안 됩니다. 구분되어야 됩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버릇을 못 고쳐 꼭 욕을 하려면 수술하여 자기 입 옆에 입을 하나 더 만들어서 그 입을 욕 하는 데 쓰든지 해야 됩니다. 교역자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치는 자들은 성경말씀대로 한 입에서 저주와 축복이 같이 나오면 안 되며, 쓴물과 단물이 같이 나오면 안 됩니다. 천국을 보면 천사들은 자기 사역대로 옷을 입습니다. 옷 색깔도, 모양도 사명에 따라 다릅니다. 옷만 보아도 천사나 사역자들의 임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도 일을 하는 데 따라서, 어디에 가느냐 에 따라서 그 위치에 갈 때마다 거기에 맞게 옷을 입고 갑니다. 하늘나라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알고 행해야 됩니다. 세상에서도 그 사명의 위치에 따라 각자 옷을 입습니다. 섭리인들도 구분하여 옷을 입고 사명을 하도 록 해야 됩니다. 교역자들 본인의 힘으로 정성껏 사서 입기 힘들면 교회나 지역에서 사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회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집회하러 다니는 사명자도 꼭 신경 써서 옷을 입고 다니도록 이미 선생님은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임금의 아들 혼인잔치에 초청받고 축복해 주려 가는 자가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임금 이 그를 보고 왜 예복을 입지 않고 성의 없고 예의 없이 왔느냐고 물으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임 금은 쫓아냈습니다. 옷에 꼭 신경을 써야 됩니다. 예복은 평소에는 안 입습니다. 예식 때만 입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고 그 말씀을 외치는 자가 옷 신경, 행동 신경을 쓰지 않고 의의 옷을 입고 나가지 않 으면 혼인잔치에서 쫓겨난 자와 같이 대함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단상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 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이에 신경 써서 사는 것을 모르고 지적하는 자들은 이쪽 면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대 옷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기에 꼭 신경 써야 됩니다. 섭리 무대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 는 자들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쓰기에 모두 선생이 사 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지 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임금들 앞에 나가서 춤을 추고 노래하려 해도 악기를 사 주고 좋은 옷을 입고 나가는데, 하나님 앞에 나가 영광을 돌리는 자들은 앞으로 교단에서 신경 써서 해마다 예산에 넣기 바랍니다. 예술을 하는 자로서 기술은 있는데 옷이 없어 못 하는 자가 있으면 시키기만 하지 말고, 보기만 하지 말고 지원해 주 고 사 입혀 행사에 임하게 해야 됩니다. 1999년 독일에서 문화교류를 할 때 섭리사람들이 무대에서 잠옷 같은 옷을 입고 나와 공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일반인들이 관중석에 꽉 찼는데, 허름한 옷을 입고 나온 제자들을 보고 내 낯이 너무 뜨겁고 부끄러웠습니다. 무대 의상으로 입은 줄 알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저게 뭐냐.” 하며 나를 책망하셨습니다. “하늘 낯이 있는데 저 모습을 보니 네 마음 좋으냐.” 너무 죄송하여 마음이 심히도 괴로웠습니다. 끝나고 나서 왜 그같이 옷을 입고 무대에 섰냐고 하니 옷이 없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시장에 나가 옷을 보았는데 독일은 날씨가 안 좋으니 환한 옷이 별로 없었습니다. 날씨부터 좋게 해 줘야 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어 결국 유럽은 날씨 천국이 되었습니다. 독일 에는 곧 동남아의 환한 옷과 밝은 옷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옷들을 사 준 후 무대에 다시 세우고 문화교류 활동을 하게 하니 정말 기분이 좋고 은혜가 되었습 니다. 무대 옷을 입고 수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더니 너무 좋아들 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섭리세계는 무대와 단상의 옷들을 모두 신경 쓰라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모르면 하는 자들을 보았을 때 마음에 거슬립니다. 하나님 앞에 가 보아야 알겠어요? 다음은 새벽잠의 유혹에 빠지면 안 됩니다. 젊은이들이 잠 꼬임에 빠져 살면 안 됩니다. 사탄과 귀신 들은 새벽에 유혹하고, 스스로도 신경 안 쓰니 잠 유혹에 빠집니다. 체질적으로 심리적으로 습관이 되면 성공길이 막히게 됩니다. 칼날같이 정신을 세우고 일어나야 됩니다. 기도하고 자면 그 시간에 일어나게 됩니다. 일어나는 것은 자기 책임입니다. 근신하여 기도하고, 기 도하는 시간에는 부지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남들처럼 똑같이 살면 그 사람같이 됩니다. 더 잘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은 매일 자기가 다스려야 됩니다. 정상을 넘은 잠은 건강에 해롭고, 잠을 제대로 못 자도 건강에 해롭습니다. 주관하고 다스려야 되지, 그냥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매일 1시간 덜 자고 기도해 봐요. 1 년이면 365시간인데 얼마나 더 잘된 것이 있는지 후에 확인해 보세요. 똑같은 위치에서 같은 말을 듣고 살아도 덜 자고, 덜 먹고, 덜 입고 갈 길을 부지런히 간 자가 앞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는 것에 유혹되면 안 됩니다. 천국에는 노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재미있 게 하면서 낙을 누리고 기뻐하며 삽니다. 어린아이나 노는 것입니다. 일한 만큼 쉬고 놀아야 됩니다. 그 냥 놀고먹으면 안 됩니다.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오락에 놀고, 지나친 운동에 놀고, 거리에서 놀고, 여행하며 놀고, 취미에 놀고, 할 일 없다고 지나 치게 노는 자는 노는 것에 빠진 자들입니다. 후에는 자기 인생을 후회하며 울고, 땅을 치고, 통곡하게 됩니다. 다 허무한 삶입니다. 시간 낭비, 돈 낭비입니다. 시간은 돈보다 더 위력 있고 가치 있는 것입니 다. 각각 쪼개어서 부지런히 일해야 됩니다. 선생이 일일이 물어볼 것입니다. “나는 너를 위해 이같이 시간을 써서 아까운 인생 늙으면서 몸부림 쳐 기도하고 말씀 받아 주어 살게 해 주었는데, 너는 네 일만 하고 살았느냐. 그러고 어떻게 구원을 제 대로 이룰 수 있느냐. 놀았느냐.”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게 하며 살고, 주님을 위해 살았는지 꼭 확인할 것입니다. 주님은 달란트를 맡겨 놓고 때가 됐을 때 꼭 확인합니다. 실적을 보이지 못한 자는 버렸습니 다. 쫓아냈습니다. 직을 거두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자는 하나님도 주님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천국에서도 땅에서도 때가 되어 받는 날에는 상상을 못할 만큼 받게 됩니다. 수고의 백 배, 천 배를 줍니다.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하기를 바랍 니다. 사탄과 귀신들은 하나님의 일을 망치게 하려고 인생들을 유혹하여 놀게 하려고 얼마나 역사하는지 알아야 됩니다. 매일 일하고, 매일 밤에 오늘 일 모두 해냈다고 기도하며 자기가 보고해야 됩니다. 천사가 가지고 곧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자기 그날 할 일을 다 하면 얼마나 보람 있는지 압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인생의 보람이 무엇이냐. 하나님께 받은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보람은 그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보람으로 연결됩니다. 놀면 절대 희망 도 꿈도 못 이룹니다. 인생, 어렸을 때부터 다 고쳐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그 모습으로 살게 되고, 가정에도 희망이 없습니다. TV에 빠지지 말고, 컴퓨터 오락에 빠지지 말고, 세상 온전치 못한 것에 빠지지 말라고 주님은 말씀을 했으니 못 들었다고 핑계 대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릇된 곳에 빠지고 하늘이 지적하는 곳에 빠지면 천국에는 시간이 늦어 못 가고, 의가 모자라 못 가고, 자격 부족으로 못 가고,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데 못해서 못 가게 됩니다. 주님은 이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을 입장 곤란하다고 제대로 안 가르쳐 주어 그들이 잘못하면 결국 내가 책임을 져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고로 일일이 가르쳐 주고 주님이 명한 일을 생생하게 전해 줍니다. 부모들도 자녀들이 속 썩이지 않도록 다 크기 전에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잘 지도해야 됩니다. 가르 쳐 줘야 됩니다. 안쓰럽다고 그냥 놓아두면 희망이 없습니다. 유초등부와 중고등부는 모두 철저히 말씀에 순종해요. 알겠지요? 안 하면 불순종자입니다. 안 고치면 성년이 되어도 지장이 있고, 인생 실패하게 됩니다. 부모 말도 안 듣고, 선생 말도 안 들으면 하나님과 주님의 말도 안 듣는 자입니다. 말 안 들으려면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말만 들으면 그날 인생이 달라지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대해 주심도 다릅니다. 하루 승리하고, 일주 일 승리하고, 한 달 승리하며 계속하여 1년 승리하는 것입니다. 매일 자기 삶에 승리해야 됩니다. 자기도 제대로 못 살면서 열심히 하는 자를 지적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말씀의 화살이 하나님께로부터 날아갑니다. 자기 눈 속에 들보가 들어 있으면서 남의 눈 속의 티를 지적하는 자는 현대판 바리새인이며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유초등부와 중고등부를 만나면 다 물어볼 것입니다. 말씀 듣고 말씀대로 살았냐고 물어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지키며 사는 자의 하나님입니다. 살기 힘들다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 결국 하나님 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화가 되어 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자는 화가 와도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십니다. 대학부, 청년부, 가정국, 장년부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사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모든 자들을 위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오직 하 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삶의 어려움과 신앙을 하면서 환난, 핍박, 억울함을 받으니 담대히 행하여 모두 하나 되어 행해야 됩니다. 그동안 천국길을 가다가 환난과 핍박 때 사망길로 돌아간 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들이 다시 돌 아온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우리가 승리하면 그들도 살릴 수 있습니다. 신앙이 산 자라야 신앙이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랑의 유혹과 꼬임에 빠지지 말아야 됩니다. 사랑의 유혹은 사탄과 귀신들의 꾐을 받아 빠지게 되 고, 자기 스스로 약해서 빠지게 되고, 상대가 유혹하고 꾀어 빠지게 됩니다. 아담 하와 때부터 사랑의 유혹과 꼬임에 빠졌습니다. 세상의 문명 문화가 발달할수록 사랑으로 유혹 하는 나이는 낮아지고 나이가 먹을수록 늘어납니다. 이성의 사랑은 어느 민족, 어느 곳에서나 어떤 사람 에게든지 다 닥쳐옵니다. 이는 모두 사랑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유혹은 10대 중반부터, 특히 2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가장 많습니다.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까지도 유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사랑의 유혹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오직 스스로 이기고, 사랑의 주관과 꼬임을 받지 말아야 됩니다. 사랑 유혹에 빠지지 않는 자는 사랑을 다스리는 자입니다. 사랑뿐 아니라 어떤 것이든지 거기에 빠지면 그것을 못 다스립니다. 사랑은 일순간에 빠집니다. 정신 을 다스려야 되고 사고를 달리해야 됩니다. 깊은 함정에 빠지면 자기 힘으로는 못 나옵니다. 남녀가 서 로 사랑하여 같이 빠지는 것도 있고, 그중 하나가 먼저 꾀어 유혹되어 빠지게도 됩니다. 다 사탄과 귀신 들이 개입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길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귀신들은 자신들이 타락하였기에 사람 들을 타락시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는 사랑의 타락을 하여도 죄인지 몰랐고 회개도 안 했습니 다. 사람이 무엇을 먹으면 죽는지 알아야 안 먹고, 안 죽게 됩니다. 모르는 자는 사탄이 꾀기 더 좋고, 더 타락시켜 하나님의 이상적인 뜻을 깨부숩니다. 우리는 알고 사니 젊은 자들이 살아서 사랑으로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기성은 사랑의 문제를 답을 못 주니, 젊은 자들을 모두 타락시켜 사탄이 점령하여 교회에 젊은이들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의 법을 정말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은 아름다 운 에덴동산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고통을 주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꼬이고 타락시킨 천사를 저주하 시고, 아담과 하와의 후손 때까지 고통을 받게 했습니다. 그 자녀는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타락을 가르치고 알게 하였으니 우리는 사랑의 유혹을 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주 님만 사랑하며 성장해야 됩니다. 다 성장하면 때가 되어 남녀 사랑의 축복을 해 주십니다. 사랑으로 타 락하면 하나님은 사랑에 타락되지 않은 자를 그 면에 쓰게 됩니다. 타락하면 하나님과 주와 멀어집니다. 다윗 왕은 남자가 있는 우리아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그 여자의 남편을 위험한 전쟁터에 가서 죽게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형벌을 받고 기도하여 다시 용서받았습니다. 사람이 손을 안 대도 하나 님은 이성의 범죄 하면 낱낱이 다 손을 대십니다. 요셉은 사랑의 유혹에서 이겼습니다. 이겼는데도 옥에 갇혀 고통을 받았습니다. 결국 옥에서 왕의 수 종자를 만나 왕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그 나라 문제를 풀어 주는 자가 되어 큰 사명을 얻고 총리로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젊었을 때 산에 들어가 있으니 사랑의 유혹을 안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노방 전도를 다니게 될 때 사람을 만나니 정신적으로 유혹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스렸습니다. 이미 그때 타락을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빠지지 말고 다스려야 됩니다. 사랑의 유혹에 대해서 알아야 안 빠집니다. 사 랑을 지키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호기심의 사랑을 버려야 됩니다. 성장하면 어렸을 때 호기심을 받을 때보다 훨씬 더 이기기 쉽습니 다. 사랑에 빠져 본 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한 번 빠지면 나오 기 힘들다는 것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사랑, 주님 사랑하고 가면 안 빠집니다. 사랑해도 보 통으로 사랑하며 가니 사랑의 유혹이 왔을 때 빠지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해야 됩니 다. 사랑의 범죄는 회개하여도 그 대가로 손해가 되고 형벌도 받게 됩니다.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고, 남 자는 여자를 유혹합니다. 천사는 다 기록하여 그 행위를 날마다 하나님께 올립니다. 정말 근신하고 살아 야 됩니다. 교역자들은 제대로 가르쳐 줘야 됩니다. 사랑으로 타락하면 그 사람은 사탄권에 뺏긴 것입니 다. 본인이 회개하여 다시 정신 차리고, 주님 말씀대로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충성하며 살아야 됩니다. 완벽하게 행동하면 사탄도, 어떤 여자도, 어떤 남자도 유혹하지 못합니다. 호기심에 좋아하면 유혹에 빠집니다. 사랑에 빠지지 않은 자를 주님은 ‘사랑의 금메달자’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목에 금메 달을 걸고 다니고, 약장(훈장)도 달고 다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타락하지 말라. 타락하면 죽는다. 이성적 행위를 하면 죽는다.”고 가르쳐 주시고 엄히 명했습니다. 주님은 마음으로 이성적 생각을 하고 음욕을 품으며 음란한 마음을 먹어도 간음이라고 엄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약한 자 관리해 주다가 사랑에 빠지고, 전도하다가 빠지고, 외롭다고 같이 놀아 주다가 빠지고, 가까 이 지내다가 빠지고, 결혼한 자들이 다른 자들에게 빠지고, 결혼한 남자한테 빠지고, 세상 사람들이 돈 준다고 빠지고, 좋은 차 사 준다고 빠지고, 생활비 준다고 빠지고, 집 사 준다, 방 구해 준다고 빠집니 다. 특히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한 자들이 골 빈 짓들을 하면, 실상 자격을 상실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회개하고, 이제 충성으로 이전보다 10배나 더 잘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하늘을 위해 약속한 것에 자격을 상실한 자입니다. 누가 보아도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 고 회개하고 충성해야 됩니다. 주님을 실망시키면 자기도 사랑에 실망하고 맙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너는 그 사람만 사랑하고 나 그만 사랑해.” 하면 어쩌려고 합니까?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지 않으면 못 가고, 주님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못 갑 니다. 사랑에 타락한 자들은 사탄이 개입하니 정말 문제입니다. 일단 회개하고 사명직에서 물러나서 회 심하고 완전하게 결심하고 상한 주님 마음을 돌이켜 놓은 후에 다시 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물을 받지 않으시며 듣는 자와 따르는 자들에게 은혜가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돈에 빠지지 말고 신앙에 빠져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섭리사에 돈이 되어 주시 니, 하나님께 신앙의 근본을 지키고 살아 그 의로 욥과 같이 축복받고 살기 바랍니다. 돈 있어도 땅 있어도 다 못 쓰고 갑니다. 돈도 제때 못 쓰면 과일처럼 썩는 것입니다. 명예나 각종 유혹에 들지 말고 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잘 믿고 사는 것이 명예입니다. 세상 명예에 욕심 부리지 말 고 다윗같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대명예로 삼고 살아야 됩니다. 정말 꼭 들을 말이 있습니다. 우리를 악평하고 비난하는 자들의 유혹과 꼬임에 한 명도 빠지지 말기 를 바랍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섭리를 악평하고 선생을 악평하는 자들의 유혹이나 꼬임에 절대 빠지지 말아요. 이런 자는 하나님과 주님을 악평하는 자나 똑같은 자들입니다. 목숨 걸고 밤낮 주만 좇고 하나 님을 사랑하고 가는 자를 누구든지 악평하는 자는 사탄의 유혹과 꼬임에 빠진 자들이고 선하지 못한 가 인 같은 자들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들이라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새벽에 보인 교촌리에서 진산까지 늘어선 노점 먹을거리 유혹의 한 장면을 보고, 이같이 주님과 영적 인 음식으로 만들어 글로 썼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 중에 계시를 받았을 때 이같이 깨닫고 보면 엄청난 세계가 있습니다. 계시를 받았어도 깨달아야 됩니다. 유혹과 꼬임에 빠지지 않기를 빕니다. 모두 각각 기도하며 매일 빠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빠진 자 는 빨리 나오지 않으면, 마치 사슴이 올무에 걸렸을 때 뒤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올무 주인이 나타나 몽 둥이로 쳐 죽여 데리고 가듯이, 사탄이나 유혹한 자가 결국 자기 쪽으로 끌고 갑니다. 사기꾼들이나 모함자들에게 꼬임 받지 말고, 사랑·물질·먹는 것·입는 것·잠·환경·TV·컴퓨터 놀이에 꼬임 받지 말고, 노는 것에 꼬임 받지 말고, 끼리끼리 모여 사는 곳에 꼬임 받지 말고, 각종 문제들에 꼬임 받지 말라고 주님은 급히 말씀을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꼬임을 받아 예수님을 팔았고, 사울 왕은 사탄과 악령들의 꼬임을 받아 하나님이 사랑하 는 다윗을 미워하고 갖은 악평을 했습니다. 악인은 먼저 괴롭히나, 후에는 아벨의 역사가 승하게 되고 결국 땅은 의인이 하나님과 일체되어 통치하게 됩니다. 잠언 7장을 보면 하나님은 솔로몬을 통해 꼬임 받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꾀는 자는 그냥 안 되니까 반드시 거짓말을 하든지 10배, 100배 보태어서 말합니다. 새도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피해 날아갑니다. 하물며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들인데 새보다 나아야 되지 않겠어요? 세상에도, 우리 삶의 주변에도 사탄 들과 귀신들과 악한 자들과 유혹하는 자들이 그물을 치고 다니니 속지 말고 피하라고 오늘 말씀해 주었 습니다. 선생은 기도하느라 저녁밥도 안 먹고 그날 자정까지 기도하고 다시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하였기에 먹을거리 시장의 유혹을 피했습니다. 또 군밤 장수가 실상 밤이 생각보다 호기심보다 맛이 없다는 고백 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기 생활로 이기는 것입니다. 좋은 꿈과 계시만 받으려 하지 말고 평소 생활의 승리를 해야 됩니다.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은혜와 그 말씀과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과 그 생명의 말씀이 충만하 고,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2008년 12월 3일 수요말씀> 유혹과 꾐에 속지 말라 본 문 히브리서 13장 5절 디모데후서 3장 2절 디모데전서 6장 10절 디모데전서 6장 17절 요한계시록 12장 9절 (천하를 꾀는 사탄)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그 은혜와 사랑하심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잘 있었어요?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모르면 필요 없는 일에 수고하고 갖은 해와 고통들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서 죽음까 지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우고 깨달아 세상 각종 유 혹이나 꼬임에 빠져 고통 받지 말라고 오늘밤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선생을 좋아하는 자가 되려면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해야 됩니다. 가르쳐 줘도 정신 차리고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주님을 믿어도 화를 받고 갖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이 세상과 여러분들의 실정을 훤히 아시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를 믿고 따르는 자들 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져 고통 받지 말라고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유혹의 그물에 걸려 따라가는 자는 몰라서 좋아하며 희망을 이룬다고 가지만 이를 지켜보시는 주님과 아는 자들은 안타까워 애간장이 탑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몰라서 손해 본 것이 평생 잊지 못할 정도 로 머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몰라서 유혹되어 행한 일로 인하여 지금도 큰 여파가 있어 아직도 영향 을 받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유혹에 빠져 가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나 축복으로 생각하며 가니 문제입니 다. 바울 선생은 신앙의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것에 족하고 신앙 을 중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특히 인생 막바지에 돈 사랑, 자기 사랑하지 말며 특히, 말세 때는 더하니 극히 조심하라고 간절하고 엄격하게 가르쳤습니다. “디모데야, 너는 거기에 유혹되지 말고 영원한 희망 인 오직 복음에 전념하라. 그리고 명예나 각종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거기 안 빠지고 믿음 이 파선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울 선생은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등 모든 교회들에게도 한결같이 세상 물질과 명예와 먹고 입고 사는 데 유혹 들지 말고 순리로 살며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위해 복음과 신 앙에 충만하여 주님의 뜻을 세상에 펴 나가 구원하는 일에 전념하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철저히 가르치고 행하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굳건하게 세운 교회들로서 병들지 않고 잘 성장하여 교회가 계속해서 날로 부흥되고 번창케 되어 그 수가 날로 많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섭리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과 멸망으로 가는 인생들에게 구원받아 천국으로 가라고 주님은 복음을 주셨는데 세상 재물과 물 질로 유혹되어 종교가 기업들이 된 교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름도 날리고 한때 경제 왕국을 만들었던 종교들이었으며 교회들도 휘황찬란하게 크고 멋있게 지어 굉장했건만 당세에 무너져서 뜬구름같이 교회 도 사라지고 청중도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신앙에만 몰두하였기에 점점 창대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 다. 신앙의 본질은 참되신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으로 개인 한 명, 한 명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해 주는 것 입니다. 이를 못해 주면 지도자를 잘못 만나 영과 육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게 잘 가르쳐 주어 구원을 얻게 해야 됩니다. 이는 참된 자입니다. 이를 축소시켜 볼 때, 어떤 개인도 하나님을 섬기고 주를 따라 그 뜻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 물질이나 명예나 돈이나 어떤 환경에 몰두하면 그 신앙은 결국 파선되게 됩니다. 신앙의 본질은 구원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나라든 가는 방향대로 그쪽밖에 못 갑니다. 주님은 나를 가르쳐 이르기를 “절대 경제의 왕국을 이루지 말고 내 뜻을 이루는 신앙의 왕국을 이루 라.”고 했습니다. 고로 신앙의 부자가 되게 하는 데 전력을 쏟아 왔습니다. 고로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모두 이기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하나님의 뜻을 개인이나 교회가 이루어 나가는 것이며 오직 거기 몰두하여야 미래에 영원한 천국을 확신할 수 있고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향한 뜻을 이루게 됩니다. 사람이 하 나님께 정신을 몰두하고 주의 말씀을 좇아 행하면 다 먹고 살고 입고 살며 단잠을 자고 살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신앙에 실패하여 구원받지 못하면 세상 재물을 모두 자기 것으로 가지고 산다 한들 무슨 소 용이 있습니까? 지옥에 가면 하루도 안 가서 재물에 대한 것은 전혀 생각나지도 않으며 필요도 없습니 다. 지옥에 가서 생각하면 인생이 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최고의 삶임 을 깨닫게 됩니다. 고생하며 살아도 오직 그 길이 더 이상 없는 길임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전도하는 자는 지옥으로 가는 자를 빼내어 나오는 위대한 영웅적인 사명자들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 깨달아진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메시아가 아니고서는 지 옥을 오지 않게 할 자가 세상 어느 누구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옥의 1분의 고통은 마치 1년이 나 되듯이 지겹고 지루했습니다. 산지옥과 영혼의 지옥을 겪고 나니 섭리사람들에게 특히 말씀을 뼛속 깊이, 골속 깊이 전해 줘야 됨을 100배나 더 깨달았기에 신경 써서 영계에서 받아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 다. 말씀에 약하거나 확실하게 전해 주지 못하면 영양가 없는 음식을 먹는 자와 같아서 결국 영도 육도 약해지고 정신도 죽어 신앙이 병들게 되고 확실하게 말해 주지 않아 제 갈 길로 가게 되어 결국 구원까 지 상실됩니다. 과거 기성교회에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말씀을 전하는 자가 말씀을 불같이 전해 주지 못하여 모두 신앙들을 파선하여 그 영혼이 산 시체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모스서 8장 11-13절을 보면, 젊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여 비틀거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육계 지옥인 인생의 극적인 고통들을 육으로 체험하고 각종 고통을 당해 보았을 것입니 다. 돌이켜 회개하고 주를 부르고 하나님을 찾아 몸으로 벗어났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받는 지옥의 고통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육신이 마음과 같이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는 열심히 기도하고 회 개하고 돌이켜 행하면 고통의 때가 되었을 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지옥은 한 번 가면 벗 어날 수가 없고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영계 지옥에 갔다가 회개함으로 나온 자는 성경상에 어느 누구 도 없습니다. 지옥을 체험하면 회개가 얼마나 귀하고 중한 것인지 알게 되고, 회개하라고 기회를 주심이 얼마나 감 사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과 주님이 기회를 주시니 감사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생되고 고통을 겪는 것은 지옥에서 받는 고통의 만 분의 일도 안 되니 그럴수록 기도하고 더 주님을 찾고 완전한 신앙을 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됩니다. 고통을 통하여 깨닫고 회개하는 기회를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이 최고로 할 일입니다. 회개하면 고통도 해결되고, 자기 운 명을 좌우하는 신앙의 정신도 온전히 살아나고 만들어져 세상에 살 때 위험한 고통과 사망의 골짜기를 벗어나 살게 됩니다. 신앙의 승리자는 영원한 승리자입니다. 주님은 지옥에 간 자들을 보고 어떤 자들이 왔는지 말하지 말고 자세히 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 님과 주님을 믿지 않아서 온 자들이 많지만 하나님도 주님도 믿고 한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자들이 사랑의 유혹에 빠져서 신앙을 파선한 자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또한 세상 물질과 돈과 재물을 중심 하여 살다가 신앙을 제대로 못하여 온 자들이 많았고, 신앙보다 세상에 치우쳐 살다가 지옥에 온 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신앙을 전문하지 못하고 마음과 뜻을 다하지 못하여 형식으로 제 마음대로 살면서 진 실함과 진정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자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지옥에서 갖은 고통을 겪고 배웠으니 더욱 애절하게 말씀을 전해 주고, 지옥의 사실을 절실히 몸소 겪어 보았으니 그 지옥의 고통을 모두 느끼도록 확실하게 말씀을 전해 주어 그 누구도 지옥에 안 가도록 해야 되겠다고 수백 번이나 결심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예전보다 더 심정 쏟아 말씀을 전해야 됨을 깨닫고, 정말 절실히 배우고 전하 자. 점점 더 많은 생명들을 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섭리사에서 과거 열심히 했던 자들이 신앙을 파선하고 귀신들과 사탄들을 따라다니면서 검은 옷을 입 고 흉측하게 이리저리 몰려와 어느 때는 나에게 반말을 해 가면서 악평들을 하고 가는 자도 있었습니다. 어떤 자는 자유롭게 사는 것이 자기 낙이라고 하며 빈정대는 자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사탄과 귀신의 꼬임을 받은 자는 그들과 몰려다니면서 육신을 쓰고 사람을 통해 섭리사 사람들을 유 혹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철저히 이 사실을 가르쳐 주어 속지 말게 하겠다고 결심하였기에 오늘도 심정 쏟아 간절히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어떤 유혹도 받지 말고 근신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유혹은 자기 정신이 약하고 몰라서 스스로 유혹되기도 하고, 상대로부터 유혹되기도 합니다. 사탄과 귀신들은 유혹하는 데 꼭 동참합니다. 유혹된 육신들을 보면 마음이 섬뜩하고 무서운 마음이 들게 합니 다. 자기가 그 면을 좋아하여 생각하게 되니 사탄이나 사람들이 그 면으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모르면 꼬 임 받고 유도하는 대로 점점 끌려갑니다. 이미 유혹과 꼬임을 받고 끌려가는 자가 있기로 주님은 아시고 말씀으로 급히 전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앞으로 세상 어떤 것에도 유혹과 꼬임에 들지 말고, 말 로 홀리는 것에 유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혹할 때 유혹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며 꽈배기 엿가락같이 꼬입니다. 유혹은 유도한다는 말입니다. 유인하여 듣는 자가 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냥은 안 넘어가니까 좋게 유인을 합니다. 자기가 잘못된 것을 모르고 자기 사고를 말하여 상대도 그같이 믿게 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주님과 선생과 일체된 자들 은 유혹이나 꼬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유혹할 때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주님의 뜻이라고 하고, 혹은 선생이 시킨 일이라며 꿈에 계시했다고 하면서 유인하고 꼬입니다. 아무도 이에 속지 말기를 바랍니다. 자기 혼자 스스로 유혹 되어 누구를 좋아하는 것도 자기가 기도하여 그 응답으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는 것으로 자체로 생각하면 서 행합니다. 말씀을 벗어나서 행함이 불법입니다. 자기 정신이 좋아서 행하면서 무지로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면 누가 꼬여 말할 때마다 거기에 끌려 행하게 됩니다. 빠지지 않은 자는 옆에서 쳐다보면 잘 알게 되기에 능히 끌어낼 수 있습니다. 새가 그물에 걸리고, 물고기가 그물과 미끼에 걸리고, 짐승이 올무에 걸리듯 걸립니다. 걸리고 그제 야 깨닫고 벗어나려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로 주님은 미리 말씀하시며 걸린 자와 빠진 자를 도와주고, 본인도 어서 나오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했는데도 못 나오면 사망으로 점점 깊이 빠져 더 손해 가고, 지상 지옥으로 간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유혹하고 꼬일 때는 작은 돈 들여서 많은 돈을 번다고 유인합니다. 피라미드 조직이나 다단계 에 대하여 선생은 이미 알고 못 하게 했습니다. 유익을 본 자는 몇 명뿐이고, 손해 본 자는 수백 명이었 습니다. 결국 수천만 원씩 빚을 지게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기꾼들의 유혹과 꼬임은 그 수단이 능숙하여 앞질러 행합니다. 모두 욕심 부리지 말고 그날 일용할 양식에 족하면, 그 같은 유혹이나 꼬임에 안 넘어갑니다. 돈 투자하지 않고 몸으로만 때운다면 그래도 시간만 탕진하고 몸만 피곤하고 끝날 것입니다. 사기 당해서 신앙도 인생의 삶도 해를 당하여 해동네에 살던 자인데 달동네에서 갖은 고통을 겪고 사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선생도 26세 때 사기 당하고 이를 통하여 정신을 항상 사기꾼을 생각하니까 안 당합니다. 결국 사기 꾼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기에 하나님은 사기 당하고 너무 원통해하는 자를 아시고 사기한 자를 그 행위 대로 갚아 주시고 그에게 갈 것을 사기 당한 자에게 주십니다. 선생도 사기를 당하고 하늘과 땅의 깊은 뜻을 더 깨닫고 더 잘되는 길을 찾아 살았기에 낙심치 않고, 그로 인하여 너무 원통하여 더욱 열심히 행함으로 인생의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에게 사기를 친 자가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여 제자들이 찾아가 보았더니 그는 세상에서 찾을 수가 없 는 자가 되었습니다. 60세 때 죽었다고 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작고 큰 사기꾼들이 더 활기를 띠고 행하니 말씀 듣고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 는 자가 사기 치고, 친구나 혹은 믿는 자들이 더 사기를 잘 칩니다. 믿어 주니까 사기 치기 쉽습니다. 돈뿐만 아니라 각종으로 자기 유익한 대로 사기 치고 유혹합니다. 역시 모르면 또 속는 것입니다. 욕심 부리면 백 번 속고도 또 속는 것입니다. 선생은 사기 당하고 너무 원통하고 갖은 고생을 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주님을 더 가까이하고 하나님 을 더 잘 믿게 되었습니다. 더 잘하니 사기 당한 것의 10배, 100배 더 받았습니다. 사기도 모르면 당하 는 것이라고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혹도 꼬임도 모르면 당하고 나서 억울하고 원통하여 얼마나 괴로워하며 후회를 하는지 압니까? 당 하지 않도록 미리 가르쳐 주니 정말 심각하게 듣고 배워야 됩니다. 홀로 어느 한 곳을 가고 있었습니다. 산 중턱에 휴게소가 있고 한 남자가 열심히 무엇을 만들고 있었 습니다. 가만히 쳐다보니 나무뿌리로 호랑이 형상을 조각한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작품을 완성하여 만지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석이 있었는데 눈에 띄게 좋은 것이었습니다. 보기 드 문 자연석이었고 호감이 갔습니다. 그 자연석은 마치 다섯 손가락을 쫙 편 손같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대로 그것을 팔라고 하였더니 너무 특이하여 안 판다고 했습니다. 나무뿌리로 만든 호랑이 조각은 몇만 원에 팔겠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헐했습니다. 그건 안 사고 자연석을 사겠다고 하 며 값 먼저 알아보자고 하니, 30만원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영계라 값이 세상보다 헐하다고 생각하 면서 값만 물어보고는 사지 않겠다고 말하니 사 가라고 유인했습니다. 깎아 줄 테니 사 가라고 했지만 결국 거절했습니다. 그 옆에는 죽은 꿩 두 마리가 있기에 어떻게 잡았냐고 물으니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내 생각하기를 ‘저 꿩도 콩을 파서 독약을 넣어 유인하여 먹게 하여 잡았구나.’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비유한 것입니 다. 동물도 유인하여 유혹하여 속여 잡고, 사람도 유혹하고 꼬여서 잡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에서 내려 오다 깨 보니 기도할 시간, 새벽이 되었습니다. 호랑이 조각도, 자연석도 모두 내가 좋아하니 좋아하는 것으로 유인하였지만 거기 빠지지 않고 꼬임 에 들지 않았기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영계나 육계나 자기 좋아하는 대로 꼬이고 유인하여 스스로 거기 빠지고 주관을 받는다고 보여 준 계시입니다. 꿩도 그냥은 잡을 수가 없으니 꿩이 좋아하는 콩을 이용하여 약을 넣어 먹게 하여 잡습니다. 인생들 을 꼬이고 유혹하는 자들도 그러합니다. 세상 물질, 명예, 사랑, 각종 놀이나 하나님이 보실 때 합당치 않은 것들에 상대로부터든지 자기 스스로든지 유혹되면 꿩같이 됩니다. 꿩은 반항과 불순종의 동물로 그 같은 자들을 보여 주는 계시입니다. 이날 낮에 누가 나를 유혹했습니다. 도와주겠다고 하며 경호도 해 주고 보호해 주겠다고 했으나 계시 를 받았기에 절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은 이미 주님의 말씀으로 계시를 받았 으니 앞으로 유혹에 넘어가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받은 자는 지혜를 받은 자이므 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됩니다. 단상의 말씀은 하나님과 주님의 계시입니다. 유혹에 대한 계시는 항상 주지 않습니다. 한 번 계시의 말씀을 들으면 1년, 10년, 평생 근신하며 항상 사용해야 됩니다. 어떤 일이 있으면 무조건 좋아 따라가 지 말고 목사님께 물어보고, 평소 말씀 들은 것을 생각하며, 또 기도하여 일주일 동안 주님께 물어 답을 받고 행해야 되는데 그냥 제멋대로 행하니 사기도 당하고 속아서 돈과 각종 재물에 손해를 보게 되는 것 입니다.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면 유혹 당했는지, 꼬임에 들었는지 다 알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쓰면서 정말 이 말씀을 듣고 섭리인 모두 유혹받지 않고 꼬임에 넘어가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탄은 천하를 꾀는 자인데 이 말씀을 듣고도 또 유혹에 끌려가면 참으로 걱정된다며 기도했습니다. 또 약한 자들을 꼬여 가면 너무 불쌍하고 처참하다고 기도했습니다. 누구든지 영계로 보아야 그 불쌍하고 처참한 실상들을 더욱 확연히 알게 됩니다. 말씀은 각자 자기를 보고 하나님과 주님이 하시는 말인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너무 걱정 말아라. 내가 있지 않느냐. 말씀은 전쟁터의 포탄과 같이 될 것이다.” 했습니 다. 이 순간, 하늘이 떠나가는 큰소리가 들리면서 전투기 3대가 날아가더니 멀리 적진지에 포탄을 퍼부었 습니다. 많은 적들이 그 포탄 화염에 날아가고 진지도 뒤집어 놓았습니다. 멀리서 보니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도망가고 있는데 포탄을 계속 퍼부으니 불바다가 되어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눈을 떠 보니 주님의 말씀을 받아쓰고 있었습니다. 포탄은 말씀이요, 비행기는 사람 이요, 비행기 조종사는 단상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적들은 천하를 꼬이는 사탄들과 귀신들이 며, 꼬이고 유혹하러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유혹을 이겨야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고, 주님이 범사에 함께 역사하시고 희망을 이루게 해 주십니 다. 해됨도 상함도 없이 영원한 영생길로 가게 됩니다. 유혹받지 않으려면 정확히 무게를 달아보듯 달아보고, 자로 정확히 재 보고, 순금인지 아닌지 전문인 들에게 확인해 보고, 하나님 앞에나 주님 앞에 가져가는 선물처럼 확인해 보아야 됩니다. 지도자들은 정말 제대로 배우고 행해야 됩니다. 지도자가 속거나 유혹되면 따르는 자도 다 속는 것입 니다. 선생도 이제 불쌍하다고만 생각지 않고 정확히 무게를 달아보고, 자로 재 보고, 쪼개 보고 믿을 것입니다. 믿어 주는 것은 좋은데 확인하고 믿어 줘야 됩니다. 확인도 않고 불쌍하다고 믿어 주니 속고 실수하 는 것입니다. 고로 꼭 확인하고 행해야 됩니다. 확인은 한 센터뿐 아니라 동서남북 다 확인해 보아야 됩 니다. 믿기만 하지 말고 먼저 철저히 확인을 해야 됩니다. 다른 자들에게 꼭 물어보아야 됩니다. 그러면 유혹과 꼬임에 들지 않고 사기도 안 당하고 속지도 않습니다. 10대 20대 어렸을 때는 모르니 잘 속고 잘못된 길을 갑니다. 알면 어린아이도 안 속는 것입니다. 모 를수록 잘 속고, 믿을수록 속으니 성장하면서 자꾸 배우고 신경을 쓰고 범사에 근신을 지켜야 됩니다. 말씀을 듣고 배웠어도 계시를 받았어도 늘 범사에 ‘유혹과 꼬임’이라는 단어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그 것으로 투시를 해야 됩니다. 말씀은 빛이라 다 드러납니다. 속고 유혹된다는 것은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모르기 때문이며 평소에 좋지 못한 버릇들로 인하여 스스로 유혹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지혜가 충만하기를 늘 기도해야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속지 않고 유혹이나 꼬임에 빠지지 않으면 손해가 안 갑니다. 돈 많은 자도 신앙 이 좋은 자도 유혹과 꼬임에 빠지고 사기 당하면 빈털터리가 됩니다. 사랑도 한 번 유혹 당하면 지금까 지 지켜 오고 쌓은 공적이 한꺼번에 다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속이고 유혹하는 사탄도 나쁘지만 속은 자도 나쁜 자입니다. 정신이 썩어 살아 있지 못하니 방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이 전하시는 집중적인 말씀을 듣고 이제는 더 이상 유혹되어 손해 당하지 말고 고통 받지 말아야 됩니다. 섭리인들이 세상에서 유혹되는 것도 있고, 섭리 안에서 유혹되어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이를 깨닫고 정신 차려 행해야 됩니다. 정신이 살아나려면 기도하고, 신경 써서 근신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정 신이 산 자가 자기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도적이 자기 집에는 안 온다고 생각하고 단속하지 않고 근신하지도 않고 살면 도적맞는 것입니다. 모르는 자는 정말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어 봐요. 어미 닭이 시장에 가면서 병아리들한테 내 다리를 보이기 전에는 절대 문을 따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 다. “그 누가 엄마라는 소리를 해도 엄마 다리를 보여 주기 전에는 절대 그 누구도 문 따 주지 말아라. 문 따 주면 너희를 다 잡아먹는다.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 사 올 테니 누가 맛있는 것 준다 해도 절대 문 따 주지 마.” 엄마가 시장에 간 틈을 타 여우가 와서 문을 따 달라고 하니 병아리들이 발을 보여 주면 문 따 준다 고 했습니다. 이에 여우가 다리를 보여 주니 병아리들이 말하기를 “이 잡놈아, 너 여우지?” 하며 속지 않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장에 갔다 와 보니 방문 앞에 여우가 오래 앉아 있다가 잠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장에서 사 온 방망이로 머리통을 마구 때리니 쭉 뻗어 죽었습니다. 엄마 닭이 “닭다리 내놔.” 하고 안 가르쳐 줬으면 병아리들이 몰라서 다 잡아먹혔을 것입니다. 병 아리들은 엄마가 사 온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앞으로도 엄마가 없을 때 문 따 주면 죽어요. 전에 엄마 말 듣지 않은 병아리들은 다 여우와 늑대가 잡아먹었어요.” 하며 감사해했습니다. 어미 닭은 선생님이고, 병아리들은 여러분들입니다. 이와 같이 늘 교육시켜야 됩니다. 사탄도 인사탄 도 주님의 탈을 쓰고 나타납니다. 선생의 탈을 쓰고 나타납니다. 인간 이리, 인간 늑대, 인간 뱀 같은 자들에게 속으면 망합니다. 주님의 손과 선생의 손과 그 음성이 아니면 절대 마음 문을 따 주지 말아야 됩니다. (* 왜 어미 닭과 병아리로 비유했을까요? 교역자들도 생각해 보시고,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도 한번 물어보세요. 선생님이 닭띠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한 부자 청년에게 “네게 있는 것을 내게 내놓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 달동네에서 못 먹어 고생하는 네 형제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미 청년이 물질에 유혹되어 빠진 것을 아시고 구원시키려 했지만 주님의 말을 안 듣고 순종치 않았습 니다. 이 시대도 순종하는 자만이 유혹에 들지 않고, 유혹에 들었어도 나오는 것입니다. 돈과 금, 명예와 사랑, 먹고 입고 마시는 것과 세상에서 낙이라고 하는 것들은 세상에서는 대단하고 빛이 나며 그 값도 엄청납니다. 그러나 영계로 보면 대단하지 않고 그렇게 위대하고 아름답지도 못합니다. 영계로 보면 흙 덩어리로 보입니다. 그같이 보아야 안 빠집니다. 천국에 대하여 성경에 나온 말씀을 들었지요? 이 지구 세상에 있는 황금 덩어리를 다 모아도 천국에 있는 건물 한 채만큼도 안 됩니다. 천국의 보물은 세상의 보물과 비교할 때 질도 다르고, 빛도 다르고, 값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고, 영원한 것도 다릅니다. 세상의 것은 쇳덩이같이 무겁지만 천국의 것은 가볍습니다. 세상 사람 육의 무게는 무겁고 천국 영의 사람은 가볍듯이, 하늘나라 보물은 큰 것을 차고 다녀도 무겁지 않은데 세상 것은 금 덩어리도 쇳덩어리 도 조금만 크면 무거워서 차고 다니지를 못합니다. 겨우 한 돈, 다섯 돈 정도를 차고 다닐 수 있으며, 힘 좋은 자는 스무 돈쯤 차고 다닙니다. 가치 있는 영혼과 육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 앞에 일체되어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몸 자체가 하늘의 빛나는 다이아몬드이고 천국의 황금 덩어리입니다. 깨달았어요? 인간이 죄 가운데 사망권에 살면 하나님과 주님이 보실 때 무가치입니다. 의인이 되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며 가치 있게 살면 천국의 다이아몬드 같은 육신입니다. 주 안에서 써야 몸도, 돈도, 황금도 가치 있고 빛이 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경제 불황으로 인하여 여러 유혹이 많으니 유혹에 들어 가지고 있는 것들 빼앗기지 말라 고 주님은 당부하시며 마지막으로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그 사랑하는 자들에게 “오늘도 내일도 염려 말아라.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 준비해 놓았으 니 가까이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앙에 몰두하여라. 깨어 있어라. 우는 사자들이 삼킬 바를 찾고 다니듯 마귀와 악한 자들 이 유혹할 자를 찾고 다닌다. 걱정된다. 정신들을 차려라. 지금까지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기 도하고, 말씀과 신앙에 몰두하라. 너희 각자를 위해 생활 속에 늘 도울 테니 나를 찾고, 속아서 다른 사 람을 좇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아리들은 정말 닭다리를 잊지 마요. 말씀을 들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분별함과 판단력이 충만하고, 성령의 감동에 주님 의 말씀이 어디 가나 함께하여 지켜 주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잘 가고 다음에 또 만나요. <2008년 12월 7일 주일말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주가 되고 주님이 된다 본 문 에베소서 4장 1-6절, 4장 11-12절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과 평안을 빕니다. 한 주일동안 하나님의 뜻 속에 살며, 어려운 가운데 자기 인생들을 사느라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힘 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굳건히 하여 하나님의 뜻 속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현재도 미래도 그 얼마나 희망과 보람된 삶인 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믿음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잘 믿고 주를 사랑하며 사는 자들을 갖은 핍박과 거짓으로 악평하 며 사는 자들을 볼 때, 주님을 좇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더욱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섭리 모든 자들에게 일생동안 너무도 필요한 교육 설교를 해준다고 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듣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습니다. 수요일에 유혹과 꼬임에 들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 지요?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는 시간에 선생도 같이 그 말씀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주님이 한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큰 나무에 코끼리만한 크기의 괴물 같은 황소 한 마리의 고삐를 바짝 쪼여 매놓고, 천사 같은 한 사 람이 손으로 그 고삐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소가 사납게 눈을 부릅뜨며 나와 사람들을 떠받으려고 몸부 림을 치며 나를 쳐다보기에 내가 가서 머리통을 쥐어박았더니 다리를 더 구르면서 혈기를 냈습니다. 소는 사람이요, 의인들을 괴롭히는 악한 자를 말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악한 자들이 떠받고 괴롭히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주신다는 계시였습니다. 시편 22편에 다윗은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다.”고 말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소는 그 시대 다윗 왕을 괴롭히던 악한 사울 왕을 비롯한 모든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늘 참고 원수를 사랑 하며, 악한 자들로부터 핍박과 억울함을 받아도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좇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 가 되었습니다. 결국 사울과 다윗을 괴롭히던 자들은 이웃나라 블레셋 민족과의 전쟁 중에 그 죄 값으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평화의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폈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전념하고 몰두하면, 더 깊은 것들을 깨닫고 신령한 눈을 뜨게 되어 앞날과 현실의 상 황들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교육 설교를 해준다고 했지요? 기대하고 듣고, 평생 그같이 알고 살 아야 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주가 되고 주님이 된다.”입니다. 말씀을 시작하겠습 니다. 바울 선생은 하나 되지 못한 분열된 에베소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 갇힌 자 된, 나 바울 이 너희를 권고하노라. 너희가 주의 부르심을 입었으니 모두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과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행하라. 성령도 하나, 주도 하 나, 하나님도 하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주님이 각 사람에게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로, 혹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 안에서 서로 봉사하고 성도들을 온전케 해주고 그리스도 의 몸이 되어 살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주님이 바울을 통해 말씀하신 깊은 말씀입니다. 바울을 통해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님께서 말씀하신 깊고 깊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도 이 말씀을 풀어주며 전해주신 말씀을 듣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 주 안에서 갇힌 자 된 선생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부름을 받아 섭 리 역사로 왔습니다. 부름을 받은 자는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겸손해야 되고 온유해야 되고 오래 참아야 되며,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서로 심정을 알아주 며, 평안과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께서 말씀을 주어 그동안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한 것을 이제 힘써 지켜 야 됩니다. 아멘!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모두 각각 한분으로 범사에 하나 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 되지 않 는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님의 바깥에 있는 자입니다. 주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우리는 만물을 주관 하고 다스리고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주님의 뜻을 펴며 주님의 몸이 되어 살도록 개성대로, 그 그릇대 로, 수고하고 충성하는 대로 사명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관리하는 자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중고등부 교사와 유초등부 교사들로 주었습니다. 이는 주를 믿고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영광을 돌리며 성령의 감동 속에 시대의 뜻을 펴면서 굳건하 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며,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살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주님을 알고 주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온전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성 장된 자로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어린아이같이 모르고 살아서 세상 모든 유혹에 빠져 세상의 그릇된 교 훈과 풍조와 교리에 빠져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주님에 대하여 온전히 배웠고 성경을 더욱 온전히 배웠으니, 말로만 증거하고 가르 치지 말고 행함으로 가르쳐 그들로 행하게 해야 됩니다. 말로만 가르치면 듣는 자도 말로만 가르치고 따 라옵니다. 행동으로 참고 견디며 온유함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며 의의 삶을 살면서 몸 으로 전해야 이를 보고 따르는 자들도 몸으로 가르치면서 따라온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갖은 해를 주어 손해를 보게 만들고, 온갖 미움과 거짓으로 음모하여 괴롭히는 원 수에게 해를 주지 않고 참고 산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애간장을 태워봐야 압니다. 마치 지 옥에서 고통을 겪으며 참는 것과 같습니다. 40일을 금식하며 배고픔을 참는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산 자들은 속에서 심정이 타고 애간장이 타는 고통을 각각 겪었을 것입니다. 집에서 나 생활 가운데 모두 겪어보았지요?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속상하고 화날 때 참는 것은 정말 힘들지요? 못 참고서 폭발하여 서로 싸우게 되고, 서로 토라지게 되고, 말도 않고 더 화가 나서 떨어져 나가 살기 도 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했습니다. 주님은 말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손해를 주는 주님의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그 원수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원수였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는데 손해 를 주는 원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말씀을 전하여 믿게 하고 행하게 하여 구원을 시 켜 지상천국을 이루며 살아왔는데,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을 갖은 모함과 거짓으로 음모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자들이 그 말을 믿게 하였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통하고 화가 나고 분노가 치솟고 참을 수 없는 일이겠습니까? 정말로 나쁘고 악한 자들이며, 죄인 중에 최고 죄인들이고, 사탄과 귀신같은 자들로 주님에게 악질적인 말들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멸할 수 없어 그냥 있는 줄 아느냐. 아버지께 기도하여 하 늘의 천사를 보내어 너희를 다 멸할 수 있건만, 그같이 하면 원수들로 인하여 일어난다고 한 선지자들의 예언이 어떻게 이뤄지겠느냐.”하였습니다. 주님은 참고 견딤으로 원수를 저주하며 멸하지 않았습니다. 이같이 행하시고 “너희도 원수를 사랑하 라. 해를 주지 말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만이 그 정신이 우리의 정신 이 되고, 우리 몸이 주님의 몸이 되어 쓰이며 살게 됩니다. 악한 자와 악평 자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그 말을 믿고 버리지 않고 가슴에 두고 사는 자는 악한 자 의 몸이 되어 사는 자입니다. 사탄과 가인의 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머리에 두고 마 음에 두고 사는 자는 주님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입니다. 택한 자요,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지금도 악한 자, 악평 자, 거짓말을 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두고 사는 자는 그 악한 자의 몸 이 되어 날마다 사는 자입니다. 어서 버리고 선한 자가 말한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머리와 마 음에 두고 실천하며 살아서 주님의 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님은 주님의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주님의 몸이 되어 참고 견디며 겸손히 온유한 마음으로 화평하 게 사는 자를 구원하며 그 영만 천국에 데리고 가십니다. 고통스러워도 생명 길로 가서 영원한 천국을 꼭 가야 됩니다. 악평과 거짓과 음모와 분쟁과 미움으로 의로운 자들을 괴롭히고 해하며 살다가 영원한 흑암의 세계 지옥으로 가는 자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요, 불행한 자요, 저주받은 자요, 미련한 자이 며 괴로운 자입니다. 선생이 영계 지옥의 고통을 겪으면서 주님께 말하기를, 세상 그 어떤 죄를 내게 지었어도 용서해주어 지옥만은 오지 않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를 해하지 않는 자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든지 이 시대 복 음을 전하여 이 지옥을 못 오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주님을 쳐다보았을 때 깊이 주님의 그 마음 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 지옥에 못 오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며 만민을 위해 지옥 고통의 십자가를 져주어 영생 길, 천국 길을 열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 그같이 해주었는데도 주 님을 믿지 않으니 그것을 제일 큰 죄로 보았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과 주님을 안 믿는 자가 갑니다. 믿고 회개한 자는 가지 않습니다. 고로 하나님과 주님 을 안 믿는 죄가 어떤 죄보다 크고도 큰 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지옥을 안 보내려면 그를 대신 하여 지옥 고통의 십자가를 져 줘야 됨을 깨닫고 깨달았습니다. 지옥을 안 보내려면 그들을 위해 지옥 같은 마음의 십자가, 삶의 십자가를 참고 대신 져 주고 죽어줘야 됨을 깨달았습니다. 바울 선생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주님과 같이 매일 나는 죽노라.”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매일 죽어 주어야 자기와 그를 사망의 길로 가지 않게 하고 생명의 길로 가게 합니다. 복음을 전해주고, 가르쳐주 고, 관리해주고, 참아주고 인내하며, 지옥의 고통을 대신 받아줘야 자기도 그들을 살립니다. 생명의 길 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살아줘야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고생 되어도 생명 길로 가는 종교입니다. 주님부터가 그렇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상 은 악하고 죄인들의 세상이므로 그같이 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선생은 이 모든 것을 깨닫고 주님께 고백하고 그같이 주의 몸으로 매인 몸이 되어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고통과 수고와 몸부림을 쳐야 자기 원하는 것이 얻어지듯이 신앙세계 안에서도 그러합니 다. 괴롭다고 혈기난다고 원수에게 해를 주었으면 심판 날에 심판을 받고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어 하나 님과 주님이 원하시는 영광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원수들이 해를 주며 갖은 거짓과 음모로 죄인 취급하여 죽였지만 대신 십자가를 져주어 살렸 습니다. 안 믿는 자들과 죄인들만을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자 모두를 위해, 만민을 위해 져주었습니다. 그의 공로로 주를 믿으면 그로 구원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온 세상을 복음의 세계로 펴 나가게 되었습니다. 영광의 길을 갔습니다. 십자가 무한 영광의 길 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와서 천년동안 왕 노릇 하면서 지상천국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희망으로 주 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을 부르사 지상천국에 참예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영의 세계 영들에게 강림이 있고, 육의 세계에 강림이 있습니다. 재림은 영적과 육적 으로 있습니다. 주님의 강림은 처음과 나중이라고 배웠습니다. 처음도 주님의 육으로 강림하셨고, 나중 도 주님의 영으로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강림을 맞는 자들입니다. 처음에는 주님이 강림하시고, 두 번째는 시대가 다르니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은 시대가 달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 음과 나중입니다. 다만 우리는 강림을 맞는 자들입니다. 주님 외에 주라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 에게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주관권의 주인 입장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선생도 산에 있을 때 주님이 오셔서 강림에 대하여 가르쳐주었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 는 자들이 너무 많아 청중이 따라간다고 주님께 물으니 “어찌 내가 아닌데, 예수가 아닌데 내가 될 수 있느냐. 말도 아닌 말에 귀가 솔깃하느냐. 너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너라고 하면 네가 인정해주겠느 냐. 다른 자는 제 2의 네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이 초림주도 나고 재림주도 나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같이 말씀하시어 세상에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이 다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재림 때도 주님이 이같이 영으로 올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다 시 온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면 그의 몸이 된 자들로서 바울 선생이 말씀한 자 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이 다 사라지게 기도했습니다. 60~70년도 최고 혼란한 때 잘못 된 종교를 알고 다 사라지게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배워 20년이 넘고 30년이 되도록 가르쳐주고 외치며 사니, 그 같은 종교들이 다 사라지고 이제는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주님을 빛나게 모시며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 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에 제대로 듣고 배우고 있습니다.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구약 때 아브라함을 보고 “주여”라고 부르며 ‘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3장 5-6절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라고 했습니다. 또 창세기 23장 14-15절에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는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주인을 높인 말이 되기도 하고, 신앙적으로 보면 중심 인물이니 그들 앞에 세운 그 당세의 주인이 되었기에 “주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 대에서는 아브라함을 보고 ‘주’라고 안 불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부르며 중심자로 부릅니다. 그 사람의 자녀들만이 그를 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라 부르지, 다른 사람은 그렇게 안 부릅니다. 자 녀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나 그 아버지인 할아버지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들’로 부릅니다. 이 때는 오히려 그를 보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들 ----> 아버지 ----> 할아버지 (아버지) <---- (아들) 각 신흥종교들을 보면 그 종교를 시작한 자들을 보고 “주여”하며 메시아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들에게만 해당되는 주인이지 다른 자들에게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자를 주인으 로 여기고 ‘아버지’, 혹은 ‘주여’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낳은 부모를 아버지라 부르며 부모님 부르 듯 했습니다. 이와 같이 보다가 그를 온 인류가 기다리는 성경에 나오는 재림주 메시아로 보고, 예수님이 다시 온 다는 성경의 주인공으로 보고 가르쳐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에서 당세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온 세상 사람들의 아버지로 가르친다면 믿겠습니까? 혹시 양자로 가면 아버지라 부를 것 입니다. 이치를 깨달았지요? 메시아로 보고 따라갔는데 모두 그 안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섭리에 일찍 온 자들은 한국에 30여명의 재림주가 나타났다고 늘 가르쳐주어 배웠습니다. 늦게 온 자 들은 이제 그들이 다 사라져서 지금은 구경도 못합니다. 박물관에도 기념으로 진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르니 그 시대에는 듣는 자들이 혼돈되어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주님을 따라 다녔기에 안 따라 갔지요. 주님은 산 기도를 할 때 나를 가르쳐주시면서 “기도하라. 그래야 내가 빛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 를 알고 기도했더니 결국 다 없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주님만이 알파와 오메가임을 확실히 믿고 가야 됩니다. 처음도 주님, 나중도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집에 열 명의 아들이 있어 자기를 낳은 자를 아버지로 보고, 자기 주인으로 보고 “주여”라고 부를지라도 집안에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숙모, 삼촌들은 자기가 부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안 부릅니다. 할아버지는 “내 아들아. 이리 와. 이것 좀 해. 요강 좀 비우고, 청소 좀 하여라. 어찌 애 들만 시키느냐.”하고, 할머니는 “딸아. 오늘 산에 가서 나물 좀 뜯어 보리밥을 하여 비벼 먹자.”고 합니다. 누구든지 주님 예수님 앞에는 신앙의 부모가 못 됩니다. 주님의 자녀입니다. 지체밖에 안 됩니다. 본 문 말씀대로 사도, 혹은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밖에 안 됩니다. 그것도 충성하여 주님이 사명을 주 어 된 것입니다. 주님만이 온 인류의 신앙의 부모가 되시고 주님이 되십니다. 구약에서는 다윗 왕이 하나님을 부를 때 ‘주여’, 혹은 ‘주 하나님’으로 가장 많이 불렀습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의 시 첫 장부터 나옵니다. 오직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이라고 하며, 천상천하 천국 과 온 우주와 땅의 주인으로 불렀고 구원자로 불렀습니다.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어 범사에 돕고 늘 함께 행하여 다윗이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록 해놓고 시로 읊어 놓았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의지하면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혼자 가도 청중이 가도 하나님과 주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과 주님이 늘 함께 하여 표적이 일어나 가슴이 뜨겁게 깨달아져 늘 기록할 것이 있고, 간증하고 외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부를 때 ‘주여, 주 하나님’으로 불렀다고 했는데 시편을 찾아보겠습니다. (시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방패가 되어주시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고 기록하지 않습 니다. (시 7: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환난 때에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할 때, 결국 하나님밖에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시 44:2) 『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서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나이다』 (시 44: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시 45: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나이다』 하나님이 행한 것임을 확실히 알고 영광 돌렸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행하니 사람만 중심합니다. 하 나님은 그같이 생각하는 자는 미련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쓰기에 사람의 몸과 마음만 잠깐 쓰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므로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시 44: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 셨나이다』 우리 대적들과 나의 대적들 사탄들에게서 하나님이 10년 동안 나와 여러분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시 44:18) 『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모두 섭리 길에서 떠나지 말아야 됩니다. 주님의 길에서 떠나지 말아야 됩니다. 이외에도 시편이나 구약 성경에 하나님을 주로 부른 것이 많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주여”라고 많이 불렀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선 생은 예수님을 보고 “주여” 라고 제일 많이 불렀고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 다』 모든 자들이 주님을 제대로 몰랐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어보았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확실히 알고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같이 주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할 뿐 아니라 그 주님만 주 인으로 구세주로 모시고 그의 몸이 되어 살아야 완전한 신앙이 됩니다. 그 터전 위에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야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이 못 뺏어가고, 악한 자들도 못 뺏어가고 계속 번창하고 창대케 됩니다. 전도하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확실히 가르쳐줘야 됩니다. 그 나머지 말씀은 이를 빛나게 하는 말씀 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관리해주시고, 그 사람도 신앙의 뿌리가 확실히 박혀 믿음이 무너지거나 깨지지 않고 변함없는 마음과 믿음으로 굳건히 살게 됩니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 지 아니하리이다』 사람들이 악평 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불신하여 시대의 운명이 기울어지자, 주님은 이방에 나가 복 음을 펴시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 와 발길을 옮기셨을 때 베드로는 막았습니다. “주여 가면 안 됩니 다.”하며 막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길이라도 마지막으로 가서 만민을 살려야 되는데, 사탄이 베드로를 통해 막는 것을 아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시며 물리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십자가 길을 가셨습니다. 결국 만민을 대신하여 죽어주어 생명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탄은 이방에서 복음을 펼 때도 주님의 길을 막았으며, 또 시대의 운명이 기울어져 조건을 세우고 구원하러 가는 길도 제자를 통해 막았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 시며 사탄도 그 주관 받는 베드로도 책망하시고 생명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도 이 같은 때가 많습니다. 하늘 뜻을 몰라서 막아 선생을 넘어지게 할 때도 있습니 다. 몰라서 사탄과 귀신의 주관을 받고 행하는 자들을 물리치고 담대히 행해야 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생각하고 사랑해서 행한 일입니다. 섭리사도 선생을 생각하고 사랑하여 무지로 행하면 사탄과 귀신이 그 를 통해 역사하여 말실수하게 하고 가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물질 손해도 갑니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을 따르던 자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주여”라고 부르듯, 이 시대 는 선생을 그같이 부르면 안 됩니다. 구약시대가 아닙니다. 또 하나님을 “주여”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는데 선생을 감히 그같이 부르면 안 됩니다. 아버지는 집안의 어른이요, 집안 대통령입니다. 나라의 어른이 아니고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 앞 에 자기 아버지를 이 나라의 국부요 대통령이라 하며, 자기 어머니를 이 나라 국모라 하면 대통령이 웃 고 국모도 웃을 것이며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는 나를 기절하여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할 것입 니다. 이제 섭리사에 매일 청중이 밀려오고 매일 생명들이 전도되어 오니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서 하고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말을 잘 써야 합니다. 선생을 보고 섭리역사를 시작한 창시자라고 하 여 주인이라고 하며 “주여”하는 자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선생을 보고 말씀의 주인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말씀을 듣고 “주여”라는 말이 나와도 꼭 주님이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단상에서 말씀 전하는 자가 잘 전하여 은혜와 진리가 가슴에 화산처럼 폭발하여 정신이 없어도 “주 여”라는 단어는 단상에서 말씀을 전한 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받은 선생에게 가는 것도 아닙 니다.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부르면서 감사하다고 해야 됩니다. 인간은 보이는 자만 집중하고 생각하고 쳐다봅니다. 그런 자는 육적인 자입니다. 영적인 자는 영이 되시고 안 보이는 주님을 중심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영적인 신앙인입니다. 선생은 초창기 때부터 ‘나는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신랑 되시는 주님을 맞아 신부로서 만족하고 산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나의 선생이 되어 무엇이든지 물으면 늘 성 경을 중심하여 가르쳐주셨고, 그 배운 것을 30년 동안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음모하는 자들은 선생을 다른 잘못된 종교처럼 선생을 메시아로 가르친다고 누명 씌우고 공격해왔습니다. 가정의 부모는 될지라도 천주의 신앙의 부모요, 근원자 메시아는 주님이라고 늘 가르쳐왔습니다. 바 울 선생을 통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듯이 “너희를 사도나, 선지자나, 복음 전하는 자나, 목사나, 교사 로 보낸 것은 나의 몸이 되어 내 뜻을 펴려 함이다.”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펴고 주님의 몸이 되어 산 다고 하여도 내 몸이 주님은 아닌 것입니다. 선생은 주님을 맞은 자입니다. 여러분들도 똑같습니다. 선생이 18~20세 때 부흥집회에 많이 참석했습니다. 선생의 고향인 금산읍에서 진산 쪽으로 오면 금성 면이 있습니다. 금성교회 부흥집회 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월명동 고향에서 그곳까지는 왕복 10km정도 되지요. 낮 집회에도 밤 집회에도 모두 참석했습니다. 그때 부흥강사 목사님은 윤석주 목사님이었습니다. 설교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주셨 다는 내용이었고, 실감나게 가슴에 와 닿도록 제스처를 잘 쓰면서 죽는 시늉까지 내면서 말씀을 전했습 니다. 사람들은 가슴이 뜨거워져 모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들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고통의 모습이 강하게 스쳤습니다.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설교자를 통해 주님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여자들은 단상에 올라가서 목사님 발을 잡고, 두루마기 겉옷을 잡으면서 “주여, 주여!”하며 울었습니다. 말씀에 감동되어 목사님을 주님 같이 보고 그같이 한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 있다가 목사님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발목을 놓고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주님이 사람을 쓰고 나타나면 그 사람을 “주여!”하며 좇게 되고 잡게도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를 쓰고 환상으로 보이면 그를 끌어안고 “주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가 주님은 아닙니다. 잘못되 면 그를 주님같이 보며 따라다니게 됩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실 때 예수님을 주님으로 볼 줄 알아야 되고, 그가 사랑하여 주님이 쓰는 사명자들과 충성자들을 보고 “주여”로 부르면 안 됩니다. 주님만을 주님으로 불러야 됩니다. 주님이 사람들을 쓰 고 역사하면 보이는 것이 사람이니까 사람을 “주여”라고 부르며 따라간다고 예수님은 가르쳐주었습니 다. 신흥종교들을 보면 새롭게 열심히 하고 전도를 많이 하니 주님이 함께 하여 구종교들이 핍박하고 무 시해도 크게 하고 창대케 해줍니다. 이같이 주님이 역사해주시면 사람들은 그 지도자를 주님같이 보고 따라갑니다. 주님이 그 지도자에게 역사하면 주님과 같이 보이나, 그는 주님이 쓰는 자입니다. 제자요, 사도요, 선지자요, 목사요, 전도사들입니다. 주님은 이를 산에서 기도할 때 가르쳐주셨기에 10, 20대에 이미 알고 “주여, 주여”하며 재림주라고 하는 곳에 안 빠졌던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여, 주여”하게 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부르지도 않고, 예 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며 주님이 가르치는 교리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도 멀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흥종교들의 문제입니다. 오늘 주님은 교육 설교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되려면 세계 기독교 전체의 머리가 되어야 합니 다. 그래야 ‘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지체입니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이 요,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머리라면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모든 교파들은 지체입니다.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외에도 각 교파가 많습니다. 주님 앞에 모두 지체들이며. 각 개인도 지체들입니다. 고로 선생은 주님께 배우고 영계에서 보고 배워, 나를 따라오는 자들에게 줄반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전체 회장 있고, 주님은 우리의 대장되시고, 하나님은 그 위의 존재자이십니다. 말씀을 잘 이해하겠어요? 선생의 존칭은 선생, 혹은 총회장 목사님, 혹은 문화 선교의 총책으로 총재입니다. 이외에 다른 이름 은 공식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없습니다. 다른 이름을 부르는 자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 다. 항상 그같이 부르고 써야 됩니다. 달리 부르는 자들은 나를 이상하게 만들어 모함하려는 자들로 보 겠습니다. 이 말씀은 교리처럼 30개론에서 가르쳐주기 바랍니다. 역사 공부 중에서도 2000년대부터 예수님의 강 림시간으로 가르치면 됩니다. 모르고 “주여, 주여”하며 재림주라고 뒤에서 속닥거리는 것 때문에 전도 가 100명 될 것인데 10명도 채 안된다고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주님도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사람의 몸을 쓰고 나타나 역사하십니다. 그렇다고 주는 아닙니다. 모두 쓰고 나타나서 말씀도 전하게 하고, 전도도 하며 각종 표적이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오늘 본문처럼 살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베소서 4장 11-12절로 주님이 우리에게 사도, 선지자, 복음을 전하는 자, 목사, 교사 로 세운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해주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며,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려 함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빛나게 하고 높이 튼튼하게 세우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자기를 통해 나타나면 자기를 세우지 말고 주님을 세우고 높이 증거 해야 됩니다. 주님이 한 뜻이 있어 자기를 통해 나타나면 자기를 세우고 스스로 높아지면 안 됩니다. 따르는 자들도 그를 중심하 면 주님은 멀어집니다. 결국 인간을 중심한 역사가 되고 교파가 됩니다. 구원까지 상실됩니다. 1982년도 섭리를 시작했을 때 일입니다. 어떤 자가 자기 삼촌이 아프다고 하여 종로에 있는 을지병 원에 갔습니다. 가보니 암으로 죽음을 앞에 놓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안 믿기에 신앙을 넣 어주고 기도해주려고 말을 꺼내었더니, 기도해달라고 나를 데려간 그의 엄마가 옆에서 기도받기 싫다고 했습니다. 아픈 자는 그 엄마의 남동생이었습니다. 기도만 해달라고 하여 간신히 기도만 해주었습니다. 기도할 때 곧 죽는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기도를 하고 병원 3층에서 내려오는데 통로에 앉아있던 어 떤 중년 남자가 갑자기 나를 보고 “주님!”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 앞을 지나갈 때 내 다리를 꼭 끌 어안았습니다. 그때 나는 당황하여 할 말이 없어 속으로 ‘내 다리 내 놔. 내 다리 내 놔.’하며 왜 이 러냐고 하였습니다. ‘미친 사람이구나.’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쳐다보기에 쑥스러웠습니다. 그는 나에게 기도 좀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주었습니다. 이 아픈 자를 주님이 낫게 해달 라고 하며, 네 믿음대로 원하는 대로 나으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물어보니 교통사고로 7년 동안 고생하고 있는데 정말 낫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말하기를 여기 앉아 있는데 순간 쳐다보니,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데리고 자기 앞으로 오기에 예수님을 끌어안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 해달라고, 주여 나를 고쳐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내 몸을 쓰고 주님이 오셨구나. 암에 걸린 그가 기도받기 꺼려하고 주님을 영접하 기 싫어하니 이에게 주님이 와서 역사가 일어났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아픈 자에게 “3일 안에 집에 돌아가리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층을 내려오는데 또 한 사람이 나를 보고 발을 잡고 기도해달라고 하여 기도해주고 왔습 니다. 그들은 주님을 보았는데 선생은 주님을 전혀 못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여, 주여”한다고 자기를 중심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주님을 보고 하는 것입 니다. 이를 바로 깨닫고 가르쳐주며 신앙을 바로 넣어주어야 주님의 몸을 우리 몸을 통해 세우고 나타내 게 됩니다. 주님이 뜻이 있어 순간 그를 통해 역사함을 깨닫고, 사람은 주님께 순간순간 쓰여 지는 몸인 것을 깨닫고 주님을 중심해야 됩니다. 약한 자, 아픈 자를 위해 기도해줄 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이런 때 사탄이 그를 통해 나타나 ‘내 가 주다. 메시아다. 재림주다.’합니다. 주님이 쓰고 가면 사탄이 틈타게 됩니다. 사탄이 역사하여 그 같은 느낌이 와도 오직 주님만 중심하면 됩니다. “내가 바울이다. 성령이다. 예수다.”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속지 마요. 잠깐씩 쓰임 받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봉사하라고 세웠다. 주께서 쓰셨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종교들은 이를 모르고 지도자를 보고 “주여, 주여”하고, “재림주다. 메시아다.”하며 따라갑니다. 하나님이 역사하 시고 주님이 역사하시면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메시아다”하고 말하게 됩니다. 주님은 신앙적 신랑이요, 그를 맞은 자는 신부입니다. 찬송가에도 신랑 되신 예수님이 나오고, 성경 에도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했습니다. 열 처녀 중에 다섯은 슬기 있고, 다섯은 미련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볼 때, 이를 모르는 자가 미련한 자입니다. 그릇된 종교를 이단이라고 잔인한 말을 붙이기보다 주님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전도되면 잘 가르쳐줘야 됩니다. 지도자가 잘못 가르쳐주기 때문에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입 니다. 바울 선생은 이런 것들을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흔적을 몸에 가졌다.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라.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한다. 사나 죽으나 주님만 위해 행하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가 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다.”라고 했습니다. 유대 종교인 들이 예수님은 인간이라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했기에 그에 해당되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 도가 하늘로부터 온다고 하며 하나님이 온다고 믿었고, 여인에게서 난 자는 주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 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 여인의 몸을 통해 육신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를 부인 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어떤 교파든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중심하며 믿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온전한 종교가 아니며 이단입니다. 사도요한이 말한 대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사는 자들은 사도, 혹은 선지자, 목사들입니다. 그것도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살아야 됩니다. 어떤 곳에도 어떤 말에도 속지 않도록 예수님이 확실히 가르쳐주 셨습니다. 초창기 때도 늘 “주님이 근본자다.”하며 나를 가리켜 그 지체로 역사하였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종시대 같이 보는 자가 아직도 많습니다. 누구든지 주인의식을 가지고 선생도 그같이 대하되 주님 안 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따라야 됩니다. 주 안에 지체이며, 주 안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목회자들과 각종 개성의 사명자들을 대해야 합니다. 모두 이를 인식하고 사명들을 행해야 됩니다. 섭리의 모든 자들에게 가르쳐주었으니 오늘 말씀한 것을 항상 30개론 중 하나로 꼭 전체를 가르쳐줘야 됩니다. 각 교회는 목사님들이 책임지고 강사들과 교인들 에게 가르쳐주며, 종교인들이 그릇 생각하는 것도 가르쳐줘야 됩니다. 오늘은 주님이 교육 설교해주신다고 하여 이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개혁 자이면서도 그 시대 선지자입니다. “지옥은 있다.”라는 책을 쓴 자와 “천국은 정말 있다.”라는 책을 쓴 자들은 두 감람나무로 주 앞에서는 시대 중심인물이고 선지자라고 주님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는다고 하였지요. 역사적으로 우리는 중심인물들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현실에서 가장 큰 것은 말씀을 제대로 알고 시대에 따라 제대로 주님을 믿고 그날그날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잘못 가르쳐주면 그 따르는 자들까지 다 잘못되어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잘 가르쳐주어 주 님을 잘 믿게 해주면 그 시대 하나님이 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은 여러분들에게 신앙 하나는 제대로 넣어주고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선생이 모르면 제자도 모르는 것입니 다. 주님께 날마다 배워야 됩니다. 우리는 한 가정을 이룬 섭리사요, 한 시대를 이룬 자들이 되었고 주님을 중심하여 복음 선교회를 이 루었습니다. 시작도 주님이 하였고 끝도 주님이 인도해가십니다. 부흥되고 창대케 되려면 주님을 잘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존귀히 모셔야 됩니다. 주를 메 시아로 잘 가르쳐 구원의 필요성을 갖게 해주고, 말씀을 잘 전하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도록 해주고 역사하게 해줘야 됩니다. 주님이 수시로 역사하여 병도 낫게 해주고 만사형통하게 되도록 해줘야 축복을 받고 잘 되니 모두 밀려옵니다. 모두 주의 몸으로 쓰이고 주님이 자기와 동행하며 살도록 주님의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며 실천으로 가르치며 나갈 때 주님은 수시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걱정 말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 되 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면 족한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가르쳐서 혼돈되는 자가 없게 해야 하며, 혼돈되 어 잘못된 종교에 따라가지 않게 해줘야 됩니다. 항상 말 한 마디 실수 없이 행해야 되고, 단상에 서는 자들은 실력 많이 쌓아야 되고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님의 사랑하심과 그 진리가 충만하고 범사에 형통하길 축 원합니다. 아멘. <2008년 12월 10일 수요말씀> 오직 하나님도 성령도 주도 한 분 뿐이다 본 문 에베소서 4장 1-6절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며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기를 빕니 다. 성경의 본문 말씀을 중심하여 핵심적인 말씀들을 해주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오직 하나님도 한 분, 성령도 한 분, 예수님도 한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말씀은 하나님도 하나로 역사하시 고, 주님도 성령님도 하나로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다르게 역사하지 않으시고, 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데 다르게 역사하지 않 으시며, 한 주님이 역사하는데 뜻이 다르게 역사하여 혼돈되게 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유일신 성령님의 역사는 동일하기 때문에 이로써 같은 성령의 역사인 지 분별하고 판단하게 되며 다른 신들과 귀신이나 사탄의 역사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역사인지 알려면 역시 동일한 역사를 하는가 보면 됩니다. 주님은 항상 처음에서 나중까지 동 일한 역사를 하십니다. 이에서 벗어나면 자기주관이나 사탄주관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겪어보고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해석해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 곳 성령의 역사가 다르고, 저 곳 성령의 역사가 다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역 사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성령이 행하시므로 그 질과 근본이 같고 동일합니다. 가령, 똑같은 것인데 바 울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베드로에게는 저렇게 말하지 않고 동일하게 말하여 하나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성령의 역사는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그 중 한 편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싸웁니다. 혹은 같 은 성령의 역사인데 몰라서 싸우기도 합니다.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해하기도 하며 서로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성령에 감동이 되면 모두 하나가 되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모두 하나가 됩니다. 하나 님도 어떤 뜻을 펴셨을 때 근본은 한 방향으로 역사하십니다. 뜻 안에서 개성에 따라 행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처음부터 나중까지, 시작에서 끝까지 동일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예수님도 그러합니다. 삼위는 하나이므로 하나님의 역사도, 성령의 역사도 주님의 역사도 결 국 하나입니다. 성령이 하시든지, 주님이 행하시든지 이는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이므로 동일합니다. 가령, 하나님께 기도하여 받은 말씀은 구약이고 예수님께 받은 말씀은 신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로부터 나오는 말씀은 항상 동일합니다. 성령으로 감동받아 받은 말씀도 주님께 다시 받으면 항상 그 말 씀이 동일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은 삼위일체로 하나이십니다. 인간의 육과 정신과 영은 일체입니다. 자기 몸입니다. 그러나 자기 한 몸이라도 육 다르고, 정신 다 르고, 영의 생각이 다릅니다. 고로 바울 선생이 말한 대로 서로 싸우고 곤고해한다고 했습니다. 모두 자 기 마음과 육신이 하나 되지 않고, 영도 하나 되지 않을 때 곤고하고 답답하지요? 육은 체질에 배어 있는 대로 육 편한대로 살려고 하고, 정신은 정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영은 하나 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자기 마음은 자기 생각을 중심하여 생각합니다. 모두 살면서 겪어보아서 알 지요? 세 사람이 같이 살 때 의논하여 행하면 생각과 행동을 같이 하게 되며 같은 시간에 먹게 되기에 마음 과 몸이 싸우거나 곤고하지 않고 좋고 기쁩니다. 그러나 각각 생각하고 행동하면 불편하고 곤고하고 마 음이 기쁘지 않습니다. 성령이나 하나님과 주님이 함께 하시면 몸도 정신도 영도 하나 되게 합니다. 성 령님도 하나님도 주님도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절대 주를 메시아로 믿고 사는 자는 주와 하나 된 자 요, 성령과 하나님과 하나 된 자입니다. 주님과 하나 되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닙니다. ‘하나’라는 것은 두 개인데 하나로 만든 것입니다. 두 개의 물체를 한 개로 만든 것입니다. 비유컨대 금 3돈, 은 1돈 - 이 두 덩이를 용광 로에 녹여서 반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같이 금 같은 그리스도와 은 같은 우리가 하나 되어 한 몸이 되 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서로 한 몸입니다. 주님과 사랑과 진리와 은혜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 되어 주님의 생각과 행동으로 삶을 사는 것이 주와 하나 된 삶이요, 주와 하나 된 신앙인입니다. 질이나 모양이 하나 되지 못한 부분들을 하나 되도록 깎고 만들고 녹여서 만들어야 됩니다. 말씀도 주님과 하나이어야 하고, 은혜와 그 방법도 하나이어야 합니다. 주와 같이 가려면 핍박과 환난과 고통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주와 하나 되었다고 고통이나 환난이 없 지는 않습니다. 고통은 죄 값으로 오기도 하지만, 주님과 하나 되어 살수록 의로 인하여 세상 악에서 오 는 고통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뜻을 크게 행할수록 바람과 파도는 더 크고 거세기도 합니다. 바람과 파 도가 크고 거세지만 주와 일체되었기에 더 힘을 받고 이길 수 있으며 더 큰 것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과 하나 되려면 먼저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 뜻은 성경에 써놓았습니 다. 그리고 사명자들을 통해 외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깨닫고 행하며, 사명자들로 가르치고 외치 는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행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주님과 날마다 더욱 하나 되어 살게 됩니 다. 우리가 주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나, 충만하게 살지는 못합니다. 주님이 만족하게 살지를 못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각각 사정이 다르겠지만 모르기 때문이고, 약하기 때문이며, 몸부림치며 노력하면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주님은 머리이고 자기는 지체라고 생각하면서 날마다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아야 됩니다. 떨 어지면 우리 영은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육도 살았으나 실상 주님이 보실 때는 사망권에 사 는 몸으로 생명권에서 죽은 몸이 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와 합하고 하나가 되어 살아야 됩니 다. 그래야 하나님과 하나 된 자이며, 성령으로 하나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를 구주로 믿고 사는 교회와 교파들은 주님이 하나이듯이 하나 이어야 됩니다. 개성과 사명대로 각각 사명을 주어 보다 많은 생명들이 듣고 따라오게 하였기로 해석이 달라도 모두 주님의 몸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장로교는 칼뱅의 예정론을 중심하여 “하나님이 예정해놓았으니 안 믿으면 손해다. 비유컨대 임금의 아들 혼인 잔칫집에 오라고 초청하고 예정해놓았으니 안 가면 그 날 먹고 즐기지 못하여 손해다. 고로 가야 된다.”며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강조합니다. 이 말씀에 따라 자기도 택했다고 하면서 특별인 으로 생각하며 믿게 하는 교리가 있습니다. 이 확실한 선택의 말씀이 좋아 믿기도 했습니다. 이에 다른 자들은 “왜 나는 예정하지 않았냐”고 반발하게 되는 자도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주님은 또 다른 말씀 을 중심한 교리 역사를 폈습니다. 감리교는 성경에서 있는 대로 만민의 구원을 외칩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해주 신다. 하나님만 믿고 그가 보낸 메시아 주님만 믿으면 된다.”고 합니다. 절대 예정을 외치는 자들은 “아니다. 다 예정된 것이 아니고 혼인 잔칫집에는 임금이 특별히 초청한 자만 있었다. 이와 같이 하나 님이 택한 자가 따로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민족만 택하여 섭리했다.”고 하면서 말합니다. 이 말도 맞습니다. 그 잔치에는 처음에 특별히 초청된 엘리트와 젠틀맨처럼 멋있는 자들이 있었습니 다. 그러나 이들이 다 오지 않으니 결국은 아무나 임금의 아들 혼인잔치에 오라고 했습니다. 결국 택한 자들이 다 오지 않으니, 만인들을 택하여 올 수 있는 길을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책임을 못한 자들 대신, 다른 자들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이끄시는 복음의 역 사는 점진적으로 확장해갔습니다. 고로 신약 때 예수님은 “다 오라.”하시며 어느 누구에게든지 구원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보고 역사를 펴면 모순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이스라엘 민족만 택하여 섭리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니, 이방 민족에게 역 사를 펴셨습니다. 고로 지금은 세계 어느 민족이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해 나가셨습니다. 예수 님도 처음에는 하나님이 택한 자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내 떡을 개들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하시며, 본래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 오고 불신하니 이방으로 가 구원역사를 폈던 것입니다. 개신교 장로교의 절대 예정론도, 감리교의 만민구원 예정론도 모두 개성만 다르지 메시아는 예수님이 며 구원자는 예수님입니다. 천주교는 처음 행한 것만을 주장하니 보수주의 할아버지주의가 되고, 개신교 나 기타 교파들은 보다 진보적이고 자유주의 아버지주의 파들이 된 것입니다. 개혁된 개신교의 성결교회도 같은 주님을 메시아로 믿되, 절대 성결을 중심하는 교파입니다. 주님도 절대 성결을 말씀했습니다. 거듭나야 된다는 교리가 있습니다. 한 교파에서 다 못 가르치니, 주님의 말 씀을 교리로 묶어 개성대로 가르치는 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그 개성대로 교리를 따라가기도 하지만 양 을 각각 인도하시는 참 목자는 주님이십니다. 루터는 기독교 전체에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며 그 역시 주님이 세 상에 계셨을 때 가르쳐주신 말씀을 가르쳐 개혁역사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명을 받아 행하였습니다. 역시 근본은 한 하나님이 행하셨으며 주님은 새로운 역사를 낳았습니다. 결국 개신교는 주님이 낳은 것 입니다. 보수주의든지 진보주의든지 시대에 따라 외친 것이고, 복음을 펴며 그 시대에 구원역사를 해왔던 것 입니다. 특히 천주교는 사도들이 주님이 살았을 때 행하신 삶과 신앙을 그대로 전수받아 1600년 동안 행 하여 온 역사입니다. 그러다가 머리 되시는 주님께서 더 새롭게 이상적으로 많은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 루터와 칼뱅을 사역자로 쓰며 개신교를 낳아 그 역사를 다양하게 폈습니다. 결국 온 세계에 복음을 넣어 수십억, 수백 억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로 천주교와 개신교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두 감람 나무 역할을 해왔습니다. 계시록 11장 4절을 보면 주 앞에 모셔 서있는 두 감람나무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스가랴 4장 3절에 주발 우편과 좌편에 있는 두 감람나무도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들을 말합 니다. (계 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슥 4:3)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 이다 하고』 크게 보면 구약 4000년과 신약 2000년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역사로써 하나님 앞에 모셔 섰는 두 감 람나무 역할을 해온 것입니다. 구약은 모세가 율법을 중심하여 4000년간 보다 외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 며 모셔 왔고, 신약은 예수님을 중심하여 2000년간 보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며 모셔왔습니다. 확대시켜 역사적으로 볼 때입니다. 축소시키면 시대마다 민족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각각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이를 깨달아야 됩니다. 주님은 확대시켜 보고 축소시켜 보라고 했습 니다. 이 모든 이치를 깨닫고 주님께서 각 시대 사명자들에게 주신 말씀과 시대 사역이 주님 안에서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라.’했습니다. 어른들에게 나가는 설교가 다르고, 청년들에게 나가 는 설교가 다르고, 중고등부나 유초등부들에게 나가는 설교가 다른 것입니다. 같은 성령 안의 역사와 주 님 안의 역사이지만 시대가 발달함에 따라 종교인들이 성장함에 따라 말씀의 차원이 점진적으로 다릅니 다. 구시대는 이 같은 주님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신시대를 박해하고 죽이고 막고 이단시하기까지 했습 니다. 무지하기 때문이었으며 주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지, 오해, 미움으로 인한 것으로 주님과 일체되지 못했기 때문이며 자기중심으로 주님의 뜻을 벗어나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으로 인하여 새로운 교파나 역사가 일어나도 인간을 통해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약하고 모순도 많고 체계가 잡혀 있지 않습니다. 마치 집을 다시 짓는 것과 같고 논밭을 새로 개발하여 만드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미 체계가 잡히고 완성된 집을 본 자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집을 보는 것과 같아서 비웃기도 하고, 이해도 안 해주고, 반대도 하고, 막기도 합니다. 예수님 때도, 사도시대 때도, 루터와 칼뱅시대 때도, 각 교회의 교파가 생길 때도 그러했습니다. 개 인도 어떤 일을 해나가며 성공하기 전에는 처음에 다 그같이 대하고 겪습니다. 별들의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하늘의 별이 빛을 내며 별이 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립 니다. 태안에서 어린아이가 잉태되어 한 세월을 보내어 태어나고 또 그 어린아이가 인생의 빛을 볼 때 까지는 수십 년이 걸립니다. 이와 같이 별이 태어나는 것도 성운 속의 수소와 헬륨이 모여 수축 회전에 의하여 마치 태속의 아이처럼 인력이 점점 커지게 되고, 핵융합 작용이 일어나 균형을 이루어 어린아이 같이 성장되어 정상이 되면 별이 되어 빛나게 됩니다. 그 기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이 오랜 시간이 걸 립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40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선생이 유럽에 갔을 때 기도하는 기간 중에 구원은 같다고 하며 독일 루터가 개혁한 기념관에서 서로 화합했습니다. 한 인생도, 한 종교도, 한 교파도, 교회도 빛을 발할 때까지는 별이 빛을 발하듯이 오랜 시간이 걸립 니다. 별이 얼마나 뜨거운 가에 따라 파란빛, 혹은 붉은빛, 혹은 노란빛을 내며 그 빛이 다르듯 교회와 각 개인도 얼마나 뜨거운 정신과 실천으로 뛰느냐에 따라 신앙의 빛이 납니다. 뜨거운 빛을 내는 별은 파란빛을 냅니다. 붉은빛을 내는 별들은 온도가 낮은 별들입니다. 유다서 1장을 보면 타락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사망권에 사는 자들을 흑암에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했 습니다. 그같이 말씀하심은 별들도 그 핵이 탈 것이 다 타면 식어서 빛을 내지 못하고 빛이 없는 어두 운 우주 속에 묻혀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들도 하나님과 주를 떠난 자는 사랑도 믿음도 말씀도 다 식어서 열을 내지 못하고 흑암에 사는 자가 되어 빛을 잃은 별같이 됩니다. 뜨거운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각자의 가슴과 영혼에 공전 과 자전을 일으켜 뜨겁게 타서 새벽별같이 빛을 발해야 되겠습니다. 나이 먹어 힘이 없어도 정신은 얼 마든지 식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하나님과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같이 빛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자뿐 아니 라 주께 충성하고 열심히 하는 자들은 모두 별처럼 수십억 년씩 빛이 나고 그 영혼이 영원히 빛납니다. 나이 먹었다고 쉬지 말고 30대, 40대, 50대, 60대들이 뛰면 더 크게 뛰고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별도 클수록 더 뜨겁게 타고 빛을 냅니다. 이와 같이 나이 먹은 자들이 더 아는 것이 많고 가진 것도 많아서 더 큰 빛을 내고 가슴이 크게 타며 일하게 됩니다. 선생이 20대 때 주님은 우주의 별들에 대해 가르쳐주시면서 어떤 별은 뜨거운 별, 어떤 별은 바위만 있는 별, 어떤 별은 얼음만 있는 별, 어떤 별은 별 보잘 것 없는 암석·모래·쇳덩어리 별이라고 했습니 다. 선생이 만든 도표 중에 별들의 도표가 있습니다. 거기 별들은 지구에 비해 별 볼일 없는 세계라고 써 놓았습니다. 별들을 다 모아도 지구만큼 산소도 없고, 물도 없고, 나무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고, 사람 도 없습니다. 이 같은 별에 대한 연구는 이미 35년 전에 끝났습니다. 지구에 대한 연구도 끝났습니다. 사람과 지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것을 알고, 천국과 인생, 하나님과 주님과 인생, 성령의 역사 등 그 연구만 연속하며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최고의 연구요, 최고의 삶입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면 우주는 하나님을 위해 만들었고 지구를 위해 만들었으며, 지구는 하나님을 위해 만들었고 사람을 위 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창조를 했다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하나님과 그 보낸 메시아를 믿고 사느냐, 안 믿고 사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됩니 다. 이는 마치 태속에서 여자 염색체가 남자 염색체를 만나고 못 만남에 따라 생명이 결정되는 것과 같 습니다. 지구라는 태에 난자 같은 우리 인생들이 정자 같은 하나님을 만나 믿고 사랑하며 그 보낸 주를 믿으므로 구원받은 생명이 되어 영의 생명으로 태어나 천국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역은 각각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세계를 연구합니다. 신앙인들은 영적 세계와 신앙의 세계, 하나님과 인생, 주님과 나에 대한 것들을 연구합니다. 과학자들은 달나라에 가서 달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이미 달에 대해 더 연구 할 것이 없다고 끝낸 지 20년이 됐습니다. 또 화성에 대하여 연구합니다. 연구하나마나 선생이 볼 때 특 별한 것이 없습니다. 우주를 연구하다 보면 끝이 없고 머리가 희어집니다. 아폴로와 같은 우주선과 인공 위성을 만들어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행여 우주에 살 곳이 있는지 찾지만 지구 외에는 인간이 가서 살 곳이 없습니다. 지혜로 깨닫고 영으로 가보아 깨닫고 끝나야지 직접 가서 다 배우려면 거기에 일생을 다 바쳐야 됩 니다. 궁금하면 과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통해 배우면 됩니다. 신앙은 인생들에게 필수요, 영원한 것입니 다. 우주 위에 있는 하늘나라 외에는 영으로 가서 살 곳이 없습니다. 우주에 영적세계가 있지만 육신이 가서 살 곳은 전혀 없습니다. 영원히 살 곳인 천국만을 위해 지구에서 살 동안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 최고 삶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처럼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 축복을 위해 살아야지요. 오늘은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하나라고 배웠습니다. 한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님이 여러 가지로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말씀하겠습니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육신이 죽으면 영이 된다고 하고 혹은 신이 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혹은 인생들이 믿을 신이 많다고 하며 각종 우상을 섬깁 니다. 천신, 칠성신, 단군신, 바다의 용왕신 등 각 나라마다 섬기는 신이 많고, 한 나라 안에서도 섬기 는 신이 많습니다. 그에 따른 책들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신과 대화’라는 책도 있습니다. 별의 별 신들을 유일신으로 보고, 별의 별 책들이 다 나와 있습니다. 모두 그 신들이 최고의 신이라고 하며 믿고 따릅니다. 우주도 하나, 하늘나라도 하나, 지구도 하나, 한국도 하나, 자기도 하나이듯이 전지전능하시며 하늘 나라를 가지고 계시고 천지를 창조한 신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 잡신들입 니다. 다른 신들이 최고라면 왜 하나님이 내리는 재앙이나 심판을 못 막겠습니까? 그 따르는 자들이 자기 신께 간구하여 막아야지요. 지옥도 안 가게 막고, 이상세계 천국도 가지고 있어야 자기를 믿는 자들을 그곳으로 가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하나님 외에 천국을 가지고 있는 신은 없습니다. 다른 신들은 자기 하나 편히 살 오두막만한 천국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탄과 귀신들은 하나님을 믿고 주를 믿는 자들을 꼬일 때 변장하고 나타나서 자기들도 신중의 신이 라고 합니다. 천국이 있다고 하여 그들을 따라가 보면 빙빙 돌다가 결국 지옥으로 가면서 “우리 천국은 지옥이야. 겨울철에는 추운 것보다 뜨거운 곳이 천국이잖아.”합니다. 사탄도, 인사탄들도 그러합니다. 잡신은 기간이 끝나면 행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사망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만일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거기 절 하며 천하의 유일신으로 보는 자들은 3~4대까지 복을 주지 않고 저주 아래 살 것이며 섬김을 받는 신은 영원한 지옥에 넣겠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지체가 있되 머리는 하나이듯 하나님도 오직 한 분입니 다. 이스라엘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신 바를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아. 나를 버리고 도끼로 나무를 베어다 목공소 조각가들이 깎고 만들어 겉에 금으로 바르고 장식을 한 것들을 섬기면서 복을 달라고 하느냐. 철과 나무와 각종 흙으로 구워 만든 것들이 어찌 말을 할 수 있으며 어찌 사람보다 낫겠느냐. 왜 그것들에게 절하며 무서워하느냐. 그것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만드 는 공장에 가보아라. 참으로 미련하고 우둔하다. 만일 내게로 돌아오지 않으면 이방나라에 너희를 붙여 다 잡아가서 당세동안 고통을 주게 하리라.” (예레미야 10:1-5)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 려워 말라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 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 을 주지 못하니나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사람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외친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바벨론에 붙여 당세에 갖은 고통을 겪게 했습니다. 이같이 유일신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심판할 때 막지 못했습니 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이스라엘에 군대를 보내어 모두 잡아다 지옥의 고통을 주었고, 우상의 선 지자들도 죽여 그 시체를 흩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들로 인하여 그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면서 “내가 어찌 내 어미의 태에서 나와 갖은 고생과 수욕으로 슬픔의 날을 보내는고.”하 며 탄식했습니다. 시대가 악하면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도 같이 고생하며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따르는 자들이 책 임을 못하면 그 시대 사명자도 같이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따르는 자들을 철저히 다스려야 됩니다. 오 직 하나님만이 한 분밖에 없는 유일신입니다. 성령님도 한 분밖에 없는 감동의 신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이 말씀하시기를 “왜 너는 나를 깨닫고 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고로 그때부터 성령의 시도 쓰고, 매일 7백 번 이상 부르면 서 나와 섭리사의 모든 자들을 감동시켜 하나님과 주를 잘 섬기고, 믿음을 굳세게 하고, 환난을 이기고, 매일 하나님과 주님을 존경하고 존귀히 여기며 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도 찾아야 역사하듯이 성령 님도 그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설처럼 여신들을 만들어 섬깁니다. 천신 여신, 땅을 주관하는 여신, 바다를 주관하 는 여신, 우주를 주관하는 여신들을 만들어 내세우고 섬기고 따르나 우주가 하나이고 하늘나라가 하나이 듯 성령은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여신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성령도 오직 하나입니다. 속지 말기를 바 랍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삼위일체의 존재자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듣는 자도 목마른 자도 생명수를 받으라.”했습니다. 성령이 너 희를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모성신입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눅 12: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또 성령은 진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으니 모두 찾아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 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 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일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마지막으로 주도 하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냈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 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에 구원자는 많다고 서로 말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최종 구원자는 예수님 한 분으로 말씀했습니다. 처음도 나중도 예수님이요, 초림주도 재림주도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맞는 자입니다. 신 부입니다. 주님 안에 전도하며 주님의 손발이 된 구원자들입니다. 어떤 종교든지 자기를 보고 ‘주’라고 하면 속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 집의 아들딸들에게 해당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불과합니다. 주님과 같이 모든 자의 신앙의 부모가 될 수 없고, 온 인류가운데 하나 님이 보내신 ‘주’가 되는 자는 예수님 외에 없습니다. 이 기본을 평생 동안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됩 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입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낳은 자에게 육적 부모가 되며, 자기가 전도한 자 에게 잠깐 신앙의 부모가 될 뿐입니다. 주님은 나를 가르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자기를 주라고 하며 재림주라고 가 르친다.”고 20대 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선무당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더니 한국에는 이 같은 자, 저 같은 자들이 그러하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찾아가보니 정말 사람들이 그 를 재림주라고 하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초림주도 재림주도 오직 예수님입니다. 초림 때는 예수님의 육신이 오고 재림 때는 예수님의 영이 온다고 배웠지요? 삼위일체이신 주님 외에는 세상 어느 역사에도 구원자는 없습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나 중심인물들을 뽑아 줄반장처럼 세우셨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유일신이신 하나님과 일체된 그 보낸 메시아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구원자입니다.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지 않은 자는 구속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자는 둘이 없습니다. 다만 그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해주고 관리해주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회개한다고 해서 회개가 되고 죄가 청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 해 구원하라고 보낸 한 사람이 그 죄인들을 위해 죄를 대신하고 용서해주고 하나님께 죄를 회개해주고 대신 죽어 피를 흘려주어야 합니다. 그 피 값으로 생명은 생명으로 대신하도록 구원의 법을 정해놓으셨 기에 그 법에 의하여 인간들이 죄를 지었을 때 메시아 예수를 절대 믿고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회개를 받 아주시는 하나님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 구원자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어떤 자도 메시아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메시아는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예 수님이 그 사역자로 보내어 일하는 자는 선지자나 사도, 목사나 전도자들입니다. 다 주님의 지체들입니 다. 예수님은 구약 때부터 하나님이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메시아입니다. 지체가 머리되신 주님과 일체되 지 않으면 변질되고 결국 제 갈 길을 가게 됩니다. 주님이 보낸 자는 작든지 크든지 지체들입니다. 이들은 주님과 항상 하나 되어 그 가르침에 따라 가 르쳐줍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 되듯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항상 성경을 본바탕으로 하여 가르쳐 주고 그 본바탕의 말씀을 더 이상적으로 요리하여 빛나게 할 뿐입니다. 같은 집을 짓되 옛날보다 더 아 름답게, 더 멋지게, 더 튼튼하게, 더 살기 좋게, 더 값있게 짓듯이 말씀과 신앙의 삶을 주안에서 그같이 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24장 25-28절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 메시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가 지 말라.”고 했습니다. 안 믿을지라도 호기심에라도 가서 구경하지도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 24:25-28)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 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 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놓으면 다른 종교나 이상한 곳에 가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이단이 나 잘못된 종교에 빠지지 않고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하는 곳에 가지 않도록 확실하게 가르쳐주었기에 그 제자들은 현혹되지 않고 유혹되지 않았습니다. 더러 그 중에 유혹된 자들은 영원히 멸망으로 가고 말았 습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에게 유혹되어 따라가면 주님은 말도 못하고 심정만 태우고 탄식하며 쳐다본답니 다. 주께서 길러주고, 위험한 죽음에서 구원해주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돕고 사랑해주었는데 사탄에 유 혹된 다른 자를 따라가기도 합니다. 그런 자를 보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무리 말하여도 영이라서 육신들이 내 말을 못 알아 듣고 계속 사망의 길로 가는구나. 그것을 보면 마치, 어렸을 때부터 기른 애인이 커서 다른 남자에게 가 는 것과 같아서 심정이 타고 애간장이 타는 것이다. 고로 확실한 말씀을 가르쳐줘야 된다.”고 했습니 다. 그러므로 오늘 밤 이같이 가르쳐주시며 이 말씀을 섭리의 교리로 삼으라고 심각히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칠 때 계속 가르쳐줘야 됩니다. 이제는 은혜의 30개론을 또 만드는 것입니다. 이 교리를 들 으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할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새로 나오는 30개론같이 체계화하여 가르쳐줘야 됩니다. 20년 전에 서로 자기가 따라가는 자가 메시아라고 하여 따라간 자들이 있었습니다. 종전의 말씀으로 는 그들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을 아무리 믿게 해도 안 되었습니다. 재림주가 이미 땅에 와서 역 사를 펴고 있으니 선생에게도 같이 한 번 가보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나도 ‘주님이 그같이 오나?’하고 따라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서 나에게 가르친 말씀을 제자들에게도 가르쳐주어 그 생명의 말씀으로 근본을 깨닫고 따라가지 않았기 에 결국 섭리 역사를 세운 것입니다. 30개론 말씀이 없었으면 모두 모르니까 자기가 믿는 대로 따라가 섭리사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같은 열풍을 일으키는 곳은 우리 민족 속에는 없어졌습니다. 그 속 에서 우리 섭리사는 성장해오면서 많은 오해도 받고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적으로 근본 말씀을 체계화시켜 모순 없이 하여 모든 자들에게 시대의 위대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시대와 같이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또 일으켜주면서 시대 잠자는 종교와 젊은 이들을 깨워줘야 되겠습니다. 먼저는 근본이 되신 하나님을 깨닫고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체도 더 새롭게 더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종교의 생명은 구원입니다. 구원자를 확실히 깨우쳐주는 것이 교리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래야 하 나님과 주님이 불같이 역사하여 우리가 힘을 받게 됩니다. 그래야 사탄이 침범하지 않고 잘못된 종교에 빠지지 않습니다. 복음서를 잘 읽어보고 사도들이 쓴 성경을 반복하여 읽어보아야 말씀을 깊이 듣게 되 며 영혼의 양식이 충만케 됩니다. 완벽한 신앙의 삶을 살지 않으면 주가 와도 가도 모릅니다. 온전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전도된 자들은 전도자가 부모로서 잘 되도록 돕고 관리해줘야 됩니다. 우리는 작은 부모요, 주님은 전체의 부모가 되고 주가 됩니다. 잘 가르쳐줘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깨어 기도에 힘쓰며 끊임없어야 됩니다. 12월은 매듭짓는 달입니다. 꼭 한 명씩 전도하고 주님의 생신에는 영광을 돌리기 바랍니다. 말씀 마 칩니다. 시 한 편 읊어주고 마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주님을 믿고서 뜻대로 성령의 감동에 살면은 천국가 영원히 살도록 하나님 축복해 줬으니 그보다 영원한 축복이 있으랴 모두 안녕히 가세요. <2008년 12월 14일 주일말씀> 주가 너에게 원하는 것을 알고 깨달아라 본 문 요한복음 14장 25-26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김을 즐거워하며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에 오늘도 주님 의 사랑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거룩한 날을 맞은 자들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여러분들 마음에 평화를 위해 주님이 오셨습니다. 주님을 맞고 모셨으니 마음속에 그 평화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12월은 주님의 탄신의 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신 역사적인 축제의 달입니다. 그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의 대상이며, 사랑의 실존체인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마치 신랑을 기다리 는 신부에게 한 남자를 보내듯이 온 인류의 사랑의 대상이며, 구원의 대상이신 주님을 이 땅에 보내어 실체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당세에 육신으로 나타나서 직접 말을 해주어 하나님을 확신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금년도 크리스마스 표어는 ‘기쁜 크리스마스’입니다. 모두 앞에 써 붙여 놓아 알지요? 아직도 써 놓지 않은 교회가 있습니다. 게으른 교회입니다. 제목을 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교단을 통해 이미 광 고했습니다. 모두 했지요? 써 놓은 교회는 부지런한 교회입니다. 왜 기쁜 크리스마스일까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지 말고 말씀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를 사망과 죄에서 구원해줄 메시아를 보내주셨으니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를 진정 맞아야 기쁜 자가 됩니다.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기쁘고, 졸릴 때 잠을 자야 기쁘고, 좋은 것을 자기 것으로 해야 기쁘고, 자기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기쁘듯이 주님을 맞아야 기쁜 것입니다. 둘째, 맞은 후에는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야 기쁜 것입니다. 셋째, 주님과 같이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나라인 천국에 가서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게 되니 기쁜 것 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쁜 크리스마스’라고 제목을 주면서 말씀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자기 분위기로 즐깁니다. “1년을 보내고 연말에 쉬고 즐기니 기쁘 다.”, “애인과 같이 즐기니 기쁘다.”, “해마다 연말 분위기에 친구들과 먹고 즐기니 기쁘다.”라고 하며 가지가지 자기 기분에 맞게 크리스마스를 이용하여 즐깁니다.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니 주님 의 심정을 답답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온 인류의 구원과 평화와 지상천국을 위해 보내주신 주님의 탄일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주님을 맞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죄를 짓고 이때를 더욱 욕되게 하는 자들은 해마다 행 하시는 연말심판에 해당되는 자들입니다. 심판을 받을 때는 이를 알고 후회하며 고통과 괴로움에 탄식하 게 됩니다. 주님을 맞지 못하고서는 마음에도 육신에도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 해를 멋있게 매듭을 지으려면, 연말의 한 달 중 2주 만이라도 하나님께서 기쁘시도록 회개할 것은 회개한 후에 정말로 주를 좋아함으로 기쁘게 맞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행하여 공적을 세우며 영광 돌 려야 됩니다. 12월을 잘못 보내면 1년을 잘 보낸 자도 끝이 안 좋아 1년 동안 수고한 것에 대한 결실을 제대로 못 보고, 그 복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1년 동안 제대로 못했을지라도 끝에 가서 마지막 남은 2주 동안 잘하면, 뜻을 돌이키사 그동안 수고 한 것들과 못한 것을 다시 채워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한 해의 시작도 마지막도 정말 잘해야 됩니다. 모든 일도 마찬가지로 시작과 끝을 잘해야 합니다. 하 나님은 처음과 나중까지 완벽하게 행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 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2주 동안 하루하루 공적을 쌓고, 회심하고, 정성스럽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와 함께 살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란 그 보내신 메시아를 기쁨으로 맞고 사랑하며, 하나님과 주님 께 감사드리고 자기의 인생이 주님의 것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약함을 위해 기도해주고, 나눠주고, 긍휼히 여기고, 생명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여 주님과 하나 되게 해주고, 특히 약한 자를 관리해주고, 잃은 자를 찾아주고, 연말 때 유혹되어 사탄들과 인사탄 들에게 끌려가는 자들을 잡아주면서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각자 행한 모든 일을 보시고 하나하나 축복과 대가를 주십니다. 기쁜 크리스마스를 먼저 깨닫고 그 뜻을 알고, 마지막 남은 2주를 어떻게 살라고 이같이 말씀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올해 연말과 크리스마스에 대해 말씀하며 어떻게 살라고 방향을 잡아주고 이에 중심하며 살라고 말씀을 해준 것입니다. 지금부터 금주 말씀의 전초를 하겠습니다. 말씀을 짧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전하는 짧 은 말씀은 마치 푸른 정원에 그림 같은 작은 집과 같아서 간단하기는 한데, 웅장함과 풍부함이 없습니 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일일이 말을 해줘야 깨닫고, 속 시원하게 무슨 말인지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씀 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선생이 여러분들을 직접 대면하여 전하면 말 대신, 제스처로나 언변의 능력으로 더 큰 성령의 감동이 임하여 짧은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게 해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니 구체적으로 세밀하 게 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 하나도 빠지지 말고 세밀히 전해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간단한 말씀을 듣다 보면 구체적인 것을 들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좌우하는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간단하게만 전해 버릇 하면 자꾸 더 간단하게만 전해져서 결국 하나님도 간단하게만 말씀을 주어 나중에는 말씀의 빈곤이 들게 됩니다. 최고 간단한 말씀은 잠언으로 전하지만 깊은 것은 잘 모릅니다. 언제 어떤 처지로 썼는지 알아야 읽 고 감동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몇 개의 잠언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밥도 간단하게만 먹어 버릇하면 부식도 몇 가지만 만들어 먹게 되고, 또 밥도 한 번에 해서 아침에서 저녁까지 먹게 되는 게으른 인생이 되고 맙니다. 간단하고 편하게 하기 위해 점점 상에 차려놓고 먹지 않고 방바닥에서 먹게 되고, 그러다가 거지같이 살게 되고, 그러다가 아예 부엌에서 먹게 되고, 그러다 가 몇 수저만 뜨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에 라면하나 끓여 먹고 말게 되고, 나중에는 한꺼번에 두 끼씩 먹게 됩니다. 만사의 모든 일이 자기 편하게 간단하게 하면 결국 이같이 됩니다. 우리의 생활은 우리가 직접 해왔 기에 모두 압니다. 주님은 이를 지적하시며 고치라고 말씀했습니다. 편한 것만 생각하면 하던 일을 점점 줄여서 안 하게 되고, 생각도 않게 되고, 점점 퇴보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성에 있을 때보다 말씀을 훨씬 더 많이 듣고 풍부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깊이 듣지 않고 조금씩 겉으로 듣는 자들은 신앙이 아주 약해지고 결국 파선되고 맙니다. 지도자들은 말씀을 깊이 알고 전해야 됩니다. 듣는 자들은 다 느낍니다. 말씀을 깊이 깨닫고 이해하고 전하면 그만큼 튼튼해진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부인이 사랑하는 남편에게 식사를 만들어줄 때 영양가 있는 곡식 한 가 지라도 더 넣어서 맛있게 밥을 지어주어 건강하게 살도 찌고 튼튼케 해주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선생도 말씀의 부식 하나라도 더 받아 전해주며, 영양가 있는 말씀 하나라도 더 받아 전해주기 위해 힘들지만 깊은 기도를 하여 주님께 말씀을 받아 맛있게 요리하여 빠진 것 없이 전하려 합니다. 그 때 할 말은 그 때 꼭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옛날에 가난하게 살 때, 매일 먹던 것이 맛없는 보리밥이었습니다. 부식은 고추장과 간장뿐이 었고, 어느 때는 된장국이 전부였습니다. 매일 똑같은 것을 먹으니 질리고 밥 먹을 때가 되어도 먹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죽기 싫으니 밥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왜 우리 어머니는 매일 똑같은 것만 맛없게 차려 주지.’하고 부엌에 뛰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첫째, 가난하니까 재료가 없어 차릴 것이 없었습니다. 둘째, 풍부한 시장은 15km나 떨어져 있어 멀 고, 돈도 없었습니다. 먹는 것 너무 맛이 없으니 결국 설탕을 사다가 밥 말아 먹었습니다. 밥맛이 없다 고 하면 어른들은 밥 말아 먹으라고 합니다. 물에다 밥을 넣어 반죽하여 먹는 것입니다. 정말 밥맛이 없 을 때는 물에 말아 먹으면 물맛 때문에 조금 맛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이 가난하면 말씀의 음식을 차릴 것이 없고 풍부하지가 못합니다. 없으니까 잘 살 수 도 없고, 재료도 없는데 맛있게 차릴 수가 없듯이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만날 그 말씀을 전해야 됩니 다. 매일 새로운 말씀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압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많이 알아야 많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풍부하게 음식을 먹지 못하면 몸이 쉽게 늙고, 약해지고, 건강을 잃게 됩니다. 먹을 때가 되어도 먹을 마음도 없고 기쁨도 없어집니다. 먹는 것이 낙이라는 말이 있지요? 심령의 양식인 말 씀을 풍부하게 들음으로 심령의 낙을 누려야 됩니다. 우리가 듣는 말씀은 음식으로 말하면 진수성찬이고, 뷔페식 음식입니다. 집으로 말하면 100평, 200평 집에 정원은 월명동같이 넓은 풍부한 말씀입니다. 월명동 운동장 한 바퀴가 450m입니다. 잔디밭 호수까 지 한 바퀴 돌려면 대강 600m가 될 것입니다. 둥그레 산 팔각정, 대둔산 전망대, 장수바위, 성황당, 가 는 골, 아버지 산소, 왕바위로 한 바퀴 돌려면 3km에 가까울 것입니다. 성지땅 월명동 같이 풍부하게 말씀할 수 있도록 주님께 조르고 간구하여 말씀을 받아서 요리하여 전 하는 것입니다. 각 나라의 TV 프로그램을 보면 맛있는 음식집들을 소개하지요? 그것을 볼 때는 정말 가 서 먹고 싶지요? 하나님의 말씀도 그같이 맛있고 영양가 있는 근본의 말씀을 주려고 간절히 몸부림쳐 기 도하여 주께 말씀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선생은 작은 것은 작은 개성대로 좋아하지만, 내 몸이 작아서인지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 것을 좋아 하듯이 큰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다스리고 주께 받은 사명을 하다 보니, 장소도 커야 되고 가진 것도 많이 가져야 풍부하게 나눠주게 된다고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도 많이, 충분히, 풍부하게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배울 때도 말씀을 풍부하게 배우기 시작했던 것 입니다. 2007년 6월에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게 많이 배워라. 사람이 배운 것이 없으면 내놓을 것 이 없다.”고 했습니다. “청중은 기다리는데 선물을 사다가 답례하며 그들의 희망을 이루어주겠느냐. 옷이나 과일을 사다가 나누어주겠느냐. 무엇으로 기다리는 자들의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게 하며, 심 령에 희망을 기쁘게 채워주겠느냐. 그렇다고 네 몸만 보여주면서 희망을 이루어주겠느냐. 몸도 만나고, 영원한 희망을 주고, 각자에게 최고의 희망을 주는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러니 하나님과 내가 인생들에게 원하는 말씀을 배우고, 선물로 가르쳐주면 그것같이 인생 각자에게 큰 선물은 없다.”고 말 씀하셨습니다. 고로 그동안 부지런히 배우고 그 선물을 모두에게 주어 심령의 갈등이 없어지고 심령이 살아 기뻐하 며 하나님과 주님과 더 일체되게 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선물을 주셨으니, 곧 말씀 입니다. 이 선물은 육도 영도 잘되게 하고 형통하게 해줍니다. 말씀을 통해 운명이 좌우됩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은 지금부터 하는 말씀을 잘 듣게 하려고 전하는 과정의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주께 받은 오늘의 말씀을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하나님과 주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각자에게 무 엇을 원하시는지, 자기에게 원하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 꼭 깨닫고 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이 각각 하나님과 주님께 무엇을 원하는지는 하나님도 주님도 이미 알았답니다. 때가 되면 해줄 테니 걱 정 말고 염려 말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낙심도 말고 영광 돌리며 희망으로 형제들과 우애 있게 살라고 했 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다 전했습니다. 간단하고 가슴에 느껴지고 짧으니 좋지요?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을 충분히 풍부하게 못 깨닫겠지요? 이같이 짧게 하는 말씀은 정원 없는 15평 아파 트나 20평 집과 같습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여러분들이 원하는 소원을 알았으니 너희도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는 것을 기도하고 근신하고 생각하여 꼭 아는 것이 큰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하나님과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 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미 말씀으로도 나갔습니다. 그같이 알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요? 깊은 기도를 하고 알려고 몸부림쳐서 알았습니다. 각자의 것은 각자 자 신이 지난날을 생각하면 제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자기 인생들을 살아왔기에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앞날에 희망을 가지고 있으니, 각자 알려고 기도하고 생각하면 알게 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우리 인생들이 그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그 일을 해주는 삶을 살아야 우리 가 하나님께 원하는 것도 기뻐하시며 더욱 빨리 이루어주시고 새로운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 말 씀이 금주에 주신 말씀입니다. 한 번 더 구체적으로 자세히 말해주겠습니다. 현재 주님을 사랑하며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고 있는 자들에게 더 새롭게 해주기 위해 지금 자신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모 두 기도하며 삶 가운데 생각하고 연구하여 알고 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두고 기도하면 성령이 너희를 깨닫게 해주고 생각나게 해준 다고 했습니다. 알겠지요? 말씀을 들을 때 번뜩 생각나는 자도 있고 깨달아지는 자도 있지만, 주님의 원 하시는 것을 깨닫기 위해 기도하며 생각할수록 더욱 뜨겁게 생각이 나도록 성령님이 감동 감화를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각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몇 가지씩 있으니 꼭 알아야 됩니다. 어떤 자에게 는 “너는 이런 것은 꼭 고쳐라. 그리고 이같이 하라.”고 말씀하시며, 어떤 자에게는 “네가 이것을 꼭 하라. 너밖에 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며, 어떤 자에게는 “이번에 교회 왔으니 꼭 신앙생활 잘하여 죽을 때까지 해라. 이번에 못하면 너 살 동안에 다시는 기회가 없다. 그러면 구원 못 받고 결국 지옥으 로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자에게는 “네가 섭리를 위해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야 되겠다.”고 말씀하시고, 어떤 자에게는 “네가 소질과 재능이 있으니 사람들이 이해 못해주어 힘들지만 하나님을 위해 너를 위해 이 일을 해야 되겠다.”고 말씀하시며, 어떤 자에게는 “너는 왜 내 일을 하다가 말았느냐. 쉬고 있느냐. 노느냐. 낙 심하고 있느냐. 전에 하던 일을 하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빨리 찾아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자에게는 “경제 가뭄이 들었어도 괜찮으니 걱정 말고 행하라.”고 말씀하시며, 어떤 자에게는 “이 일은 선생이 할 일이 아니다. 네가 있으니 네가 하라.”고 말씀하시며, 어떤 자에게는 “섭리의 학 자가 되어 이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며, 어떤 자에게는 “네가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 내 가 원하는 일이니 지체 말고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각자의 개성과 재능대로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실행하라고 했습니다. 잘 생 각하고, 거듭 확인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깨닫기 쉽게 말하였기에 잘 분별하고 감을 잡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원하는 일을 해야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되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게 되고, 보람 있는 자입니다. 축복의 삶입니다. 이는 기쁨의 삶입니다. 이는 이상적인 지상천국의 삶입니 다. 지금보다 더 새로운 삶, 변화의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더 찾아 살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감동시키고 자기가 할 기미를 보여주시고 연결을 시켜주실 것입니다. 각자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에게 사명을 줍니다. 빨리 찾아야 됩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마치 우연처럼 답을 만나게 되고, 기 미를 보여주고, 깨닫게 해줍니다. 주님은 사명자에게 보여주고 깨닫게 해줍니다. 특히 중고등부들은 인생을 본격적으로 출발하여 살기 전에, 하나님과 주님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꼭 먼저 알고 가야 됩니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잘 깨닫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깨달으라고 많이 기도해줄게요. 꼭 깨닫고 찾아야 됩니다. 대학부들은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이 자기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알고 가야 됩니다. 대학부들은 이미 인생을 출발하여 달리고 있으니, 모르고 달리면 정말 헛길로 가서 많은 것이 결국 헛수고가 됩니 다. 그러므로 더욱 걱정되어 더 많이 기도해주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더 기도하고 더 깨달으려 해야 됩니다. 그것을 깨닫고 공부도 하며, 이를 위해 같이 뛰어 야 됩니다. 다니엘 선지자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을 깨달으려 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 어 21일 만에 깨달았습니다. 청년부들에게 말합니다. 사회에 묶여 한참을 살아가니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이 자기에게 원하는 일을 깨닫고 알아야 됩니다. 하루가 아쉬운 때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살면 참으로 아깝고 아쉬운 인생들 을 살게 됩니다. 인생과 삶의 핵을 잃고 사는 자들이 됩니다. 걱정이 되니 선생도 매일 기도해주겠습니 다. 가정국들은 이미 삶 가운데 깊이 들어와 자기 뿐 아니라 자녀들을 거느리고 키우며 살고 가정의 운명 을 짊어지고 살기에, 그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자기에게 원하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고 더욱 그 방향에 맞춰 살아야 됩니다. 12월은 모두 꼭 알고, 새롭게 새해를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며 둘이 상의하면 더 빨리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셨으니 이제부터 더 마음을 새롭게 하며 더 변화를 받도록 하나 님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가정국은 더 걱정되어 더 기도해줄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 하실 때가 기회니, 이때 열심 내어 해야 됩니다. 다음은 장년부입니다. 장년부들은 나이층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가정의 장남과 같으니 누구보 다 더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인생을 매듭짓는 자들도 있고, 한참 뛰고 있는 50대, 40대, 30대도 있습니다. 이때 자기를 향한 하나님과 주님의 뜻을 다시 새롭게 찾아내고, 각자에게 원하 시는 것을 깨닫고 살아야 된다고 주님은 오늘 주일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원해도 할 수 없다.”하지 말고 그 원하는 대로 해야 인생을 멋있게 살게 되며, 희 망과 이상으로 잘 매듭짓게 되고, 결실할 수 있고, 보람 속에 살 수 있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찾아야 됩 니다. 삶의 고통 속에서도 이를 찾아야 새 희망의 길이 열립니다. 이를 발견해야 됩니다. 그래야 대희망 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장년부들은 더 기대를 걸고 더 기도해주겠습니다. 여러분들 먹는 과일‘배’를 생각하면 무엇이 생각나지요? 시원한 것과 차가운 것이 생각나지요? 그 것 말고 다른 것이 또 생각 안 나요? ‘자기 배’요? 그것 말고요. ‘배 농사짓는 과수원지기?’ 그것도 아닙니다. ‘까치’생각 안나요? 까치는 배가 맛있어서 배 밭에서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때 지나면 못 먹습니다. 날짐승에게도 제철과일이라고 모두 따 가면 배 하나를 먹을 수 없기에 배를 먹기 위해 배 밭 을 떠나지 않습니다. 말씀도 때가 있어 한 때입니다. 한 주일이 지나면 그 말씀은 안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 깨달 으라.”라는 말씀은 섭리사 30년 만에 처음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언제 이 같은 말씀했습니까? 주님이 처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그 말씀 같으나 다 다릅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듯 다릅니다. 여 자와 남자의 기본은 사람의 형태로 같지만, 구조가 다르듯이 말씀도 그와 같습니다. 같은 과일이지만, 배 다르고 사과 다릅니다. 기본은 같지만 맛이 다릅니다. 같은 주를 믿어도 말씀은 지도자에 따라 다르 고, 사명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그 차이가 많으며, 느낌도 감동도 다릅니다. 다음은 사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과하면 뭐가 생각납니까? 말해 봐요. 맞춘 자는 지식을 가진 자 입니다. 학자 같은 자들입니다. “사과하면 역시 나다. 사과가 좋아서 매일 먹으니까 사과에 대해서 잘 안다. 사과하면 사과 원산지 인 대구 생각이 난다.”고 하며 각자 말할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사과의 생김새도 다르고, 맛도 다르 고, 느낌도 다릅니다. 일본 사과도 맛있으나 비싸지요. 토질대로 관리하는 대로 과일 맛이 다르고 사과 맛도 다릅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인생은 각자 정 신과 마음을 관리하는 것에 따라 아름다움도, 인생 맛도, 품위도, 권위도 다르고 사명도 다르니 신경 써 서 잘 관리해야 되겠습니다. ‘사과’하면 만유인력의 법칙의 창시자 영국인 뉴턴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사과를 많이 먹어서 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사과를 많이 취급한 과수원지기도 아니었습니다. 최 고 곤고에 빠지고 낙심했을 때, 그 자리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 보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뉴턴은 1642년 영국 잉글랜드 동부지역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규모의 지주였으 며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그가 말을 배울 무렵, 그를 할머니의 손에 맡기고 재혼을 했습 니다. 어머니도 괴로운 인생길을 가니 그 품에서 기쁨으로 살 처지가 못 되니 뉴턴은 늘 혼자 사과나무 밑에서 어머니 품처럼 여기고 놀았습니다. 파란만장하게 자라서 몸부림쳐 대학을 졸업하고 다니며 희망과 꿈에 그리던 석사학위 과정을 들어가 려할 때였습니다. 때마침 그 지역에 흑사병이 너무 심하게 일어나서 대학이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희망 은 낙심으로 돌아가서 고향으로 돌아와 삶의 곤경에 더욱 부딪혀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렸을 적 놀던 사과나무 밑에 가 있을 때 사과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저것이 바로 내 인생이야. 내 인생이 저 꼴이야. 저 사과와 같이 내 희망이 땅에 떨어졌구 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왜 사과가 옆으로 안 떨어지고 직선으로 떨어졌을까?’하고 영 감이 스쳐 생각한 끝에 인류과학의 흐름을 꺾고, 완전히 바로 바꿔놓는 만유인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낙심하고 있던 그 자리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곳에서 자신이 어떤 낙심과 고통의 경지에 처했을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주가 원하시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깨달으면 즉시 뉴턴같이 머리가 찡하고 가슴이 찡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곤고한 가운데 극적인 곳에서 희망을 주고 깨우쳐주셨습니다. 뉴턴은 박사의 길을 희망을 이루 는 길로 생각하였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희망이 일어났습니다. 영국에서 새로운 정신과 이상의 신앙을 가진 청교도인들은 갖은 핍박과 종교 박해로 인해 쫓겨서 죽 음과 싸우면서 결국 미국이라는 넓은 땅으로 가게 되었고,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콜럼버스는 70일의 항해로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는 아메리카 신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새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희망에 차서 새롭게 하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에 대 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을 깨달아야 새로운 희망이 생겨 그 일을 하므로 소망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새로 운 것을 성경에서도 발견하고, 우리 삶 속에도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더 깊이 발견해야 됩 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축복으로 주신 것들이 너무 많은데,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각자에게 너무너 무 많습니다. 성경에서도 아직도 발견할 말씀들이 많습니다. 새로 배우고 발견한 것들은 점점 더 밝혀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15년, 20년, 30년, 40년, 50년, 혹은 60년 이상을 살았지만 아직도 자기에게 향 한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선생은 이를 더 발견했기에 더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모두 발견해야 됩니다. 그 발견은 뉴턴이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하듯이,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지구가 돌고 있다고 하며 천동설의 주장을 깨듯이, 또한 콜럼버스가 70일의 항해 끝에 신대 륙을 발견하며 천동설을 수정하였듯이, 청교도들이 미국의 새로운 땅을 찾았듯이, 루터와 칼뱅이 종교의 새로운 개혁을 깨닫고 개혁하였듯이,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였듯이 큰 일이 되고 새로운 전환이 되고 희망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자기의 모순도 발견하고 할 일도 발견해야 됩니다. 이태리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발명하여 우주를 관찰하였고, 지구를 중심하여 행성들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는 태양을 중심하여 도는 행성임을 발견하고 이를 발표하였고, 우상의 나라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했습니다. 종전에 천동설을 받아들이고 믿던 종교 지도자들은 갈릴레이가 주장한 지동설을 주장하는 학자마다 종교 재판하여 거꾸로 매달아 갖은 고통을 주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지식과 지혜가 있 어야 될 종교 지도자들이 더 빨리 알고 전하라고 하나님이 깨우쳐주고 도와주어 알게 해줬는데, 이같이 미련하고 가혹한 행위를 하였으니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과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은 받아들이면 서, 자기들이 섬기는 유일신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 이태리 사람이 주장하는 과학자의 말은 안 받아들였 습니다. 이것이 썩은 정신들에게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무지와 미워함으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섬기는 자에게 우주 법칙의 원리를 주시겠습니까? 비행기도 하나님을 믿는 나라 미국 목사의 아들인 라이트 형제가 발명했습니다. 세계적인 미술가 미 켈란젤로, 피카소,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두 예수님의 제자로 독실한 신앙인이었으며,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도 신앙의 나라 미국 사람입니다. 기차를 발명한 스티븐슨 역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미국의 신앙인입니다. 자동차 역시 하나님을 믿고 사는 미국의 포드가 발명했습니다. 이밖에도 너무 많아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들로 삶의 이상적인 것들을 깨닫게 해주시고 핵심을 보며 살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향한 그 원하는 것을 깨닫고 발견해야 됩니다. 주님은 생명의 말씀과 구 원, 천국과 생명의 귀함, 하나님과 더 이상적인 영의 세계를 발견하고 가르쳐 영원함을 주셨습니다. 이 역사 끝의 시대에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에 대하여 그 뜻과 세계들을 새롭게 발견해야 됩니다. 옛 것을 가지고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자기도 초벌구이만 하면 질그릇밖에 안 됩니다. 또 구워야 완전한 도자기그릇이 되고 작품이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육도 영도 더 새롭게 연속 변해야 완전해집니다. 섭리를 위해 더 이상적인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고, 섭리의 모든 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됩니다. 어떻 게 하면 만 명 10만 명을 전도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100만 명을 전도할 수 있는지 기도하면서 찾고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교회가 부흥이 안 됩니다. 과거의 것은 이미 찾아 먹고 사용했습니 다. 새롭게 또 찾아내야 되고 발견해야 됩니다. 많은 생명들이 새롭게 하나님 앞으로 오도록 발견하고 찾아내야 새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과 주가 자기에게 원하는 것을 알고 깨달아라.” 그리고 “새롭게 찾을 것을 찾고 발견하여라.”입니다. 하나님과 주에 대해서도 하늘나라에 대해서도 정말 새롭게 발견하여야 될 것이 많습니다. 새롭게 찾 아야 새 희망으로 살 수 있습니다. 새롭게 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찾아 발견하라고 주는 말씀입니다. 아 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주님의 사랑하심과 구원하심의 그 기쁨이 성령의 감동감화 역 사하심 속에 말씀을 듣고 보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2008년 12월 17일 수요말씀> 기쁜 크리스마스 하나님과 주가 너에게 원하는 것을 알고 살아라 본 문 요한복음 14장 25-27절, 6장 27-29절, 6장 36절 로 마 서 12장 2절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성령의 감동 속에 오늘도 말씀을 듣고 충만하기를 빕니다. 안녕하세요. 기쁜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연속되는 말씀은 뒤에서 하고, 먼 저 주님의 성탄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라고 하였 습니다. 기쁜 크리스마스를 맞아 각자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해보아야 기쁜 크리스마스가 될 것입 니다. 어느 해보다도 정신적 변화와 실체적 육적인 변화를 하여 행실 함으로 맞아야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 어 맞는 자도, 주님도, 주를 보내신 하나님도 영광이 될 것입니다. 모두들 자기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생일에 축하해주는 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축하하는 자 도, 생일을 맞은 자도, 부모님도 기쁘겠는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도 무엇을 어떻게 해드 릴 때 기뻐하시는지 더 이해할 수 있으며, 성탄을 축하하면서 기쁨으로 맞고 더 이상적인 것입니다. 자기 생일날 자기 원하는 것을 해주고 원하는 대로 해주면 서로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생일날 케잌 과 미역국만 먹여주고 먹는 것만 맛있게 먹여주고 끝났다면 먹는 것에는 만족하고 기쁘지만, 다른 소원 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마도 만족한 생일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맛있게 같이 먹고 생일을 통해 원했던 것이 이루어져야 근본적으로 마음에 기쁜 날이 될 뿐 아니라, 생일이 아닌 평소에도 인생이 기쁘고 즐겁고 희망에 찰 것입니다. 모두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도, 인류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보내신 주님도 그 마음이 같습니다. 그러면 다시, 주님의 오심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우리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생일을 축하하듯이 축하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세상에서 그냥 살다 갈 우리 인생들에게 오셔 서 죄를 가르쳐주시고,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도록 하나님이 보내어 오신 주님을 맞이했 습니다. 이처럼 주를 맞은 자들이 그의 나심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을 알고 대해야 하며, 메시아로 오신 주님을 진정으로 맞아야 맞는 자도, 오신 주님도 기쁜 것입니다. 이때를 중심하여 주님이 각자 인생들에게 원하시는 것을 해드려야 합니다. 성탄 때뿐 아니라 범사 에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몸이 되어주면 주는 항상 기뻐하시며, 그 사람을 통해 육신의 일 을 하게 되므로 주님께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실 것입니다. 또한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주님도 기쁠 것입니다. 주님의 성탄 날, 다른 자와 즐기고 먹고 마시고 사랑한다면 주님은 그를 볼 때 기분도 나쁘고 그를 외면할 것입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주님을 제대로 맞지 못한 자는 내년에도 역시 힘듭니다. 2008년 주 님의 성탄을 맞아 주님의 마음에 들게 행하고, 이 기쁜 때를 통해 꼭 주님 바라는 대로 하여 새해에도 새로운 역사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 가서 주를 맞는다고 하는 자는 마치, 새벽 4시에 기도를 하는 자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새벽 4시 기도를 정확히 실수 없이 하려면 적어도 새벽 3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 야 정확히 준비되어 겨우 4시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선생도 새벽 3시 기도를 하려면 2시 30분경에는 일어나야, 준비하고 겨우 3시 기도를 들어갑니다. 3 시에 본격적으로 깊은 기도를 들어가려면 꼭 2시에 일어나야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풍부하게 하려면 풍부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새해를 제대로 맞기 위해서는 주님의 성탄과 연말을 기쁨으로 영광을 돌리며 제대로 맞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성탄과 연말을 생명의 말씀에 따라 잘 보내면 새해 기분부터가 다를 것입니다. 아직도 사망 길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성탄 때 못 돌아오면 2009년 새해에도 ‘새 롭게 변화’하는 역사에 참예하지 못하고 사망에 묶여 살게 되어 운명이 안타깝게 돌아가고 맙니다. 이 에 대하여 주님은 분명히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말하노니 정녕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와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듯 우리도 썩지 않는 사랑 의 유향을 드리고, 변치 않는 황금과 같은 마음을 드리고, 몰약과 같은 감사의 제물을 꼭 드려야겠습니 다. 1년에 한 번씩 오는 크리스마스에 감사를 형식으로 드리면, 천사가 다 보고하여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지 못합니다. 엽전 두개라도 정성으로 드렸던 성경의 과부같이 모두 진정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가 진 것이 없지만 진실로 감사함으로 동전두개 드리는 여인을 보고, 주님은 가슴 뜨겁게 감격하여 모두에 게 이 여자와 같은 마음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행해야 될 일입니다. 선생의 생일 때도 모두 잊지 않고 축하하는데, 이제 더욱 주님의 성탄에 신경을 써야 되겠습니다. 주 님께 바쳐진 예물들은 각 교회에서 복음만을 위해 공적으로 쓰여 지도록 주님이 원하시니, 그같이 하기 바랍니다. 크리스마스는 분위기로만 보내지 말고, 실체적 주님이 원하시는 말씀을 중심하여 역사가 일어나야 됩 니다. 그같이 하지 않고 분위기로만 끝나면 얻는 것도 주는 것도 별로 없고, 신년뿐 아니라 범사에 삶의 기쁨이 연속되지 못합니다. 생일을 맞아 축하하는 자들이 생일 맞은 자의 마음을 알아줘야 본질적인 기쁨과 이상이 마음속에 풀 리고, 기쁨이 오게 되고, 걱정도 염려도 풀어지게 됩니다. 각 인생들을 향한 주님의 걱정을 풀어줘야 자 기 인생문제도 풀어지게 됩니다. 기쁨의 크리스마스가 되기 위해 기쁜 크리스마스이브 말씀을 미리 준 것입니다. 못 다한 말씀은 크리 스마스 때 또 하겠습니다. 이어서 금주 말씀을 하겠습니다. 금주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과 주님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깨달아라.”입니다. 주 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을 너희가 알기까지 내 심정의 답답함이 그 어떠하겠느 냐.”고 했습니다. 고로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항상 그래왔듯이 하나님은 사람이 말하듯이 “이같이 하여라. 저렇게 하여라.”하며 속 시원하게 직 접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도 역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지금까지 그렇게 역사를 폈더 라면 모든 역사적 상황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은밀히 실바람 치듯, 눈을 깜박 거리듯, 개미가 옷깃을 스치듯, 혹은 콧김이 몸에 스치듯, 혹은 볼펜 끝만큼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죽음이 코앞에 닥쳐와도 조금만 느낌이 올 뿐이었습니다. 왜 확실히 안 가 르쳐주시는지 시험에 들기도 했으나 주님을 원망할 수 없었고, 그저 일을 당하고 울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명자와 보낸 자들을 통해 하나님과 주님은 확실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가 외칠 때 성령 으로 느끼도록 감동을 주며 뜨끔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잘 알지 못하고 행하여 화도 당하 고, 고생도 하게 되고, 갖은 고통도 받기도 했습니다. 단상에서 말씀을 전할 때, 확실하게 말해주는 데도 깨닫지 못하니 정말 답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로 먼저 확실히 가르쳐 깨닫게 하여 단상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을 알도록 현 실과 앞날의 말씀을 세밀히 받아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더욱 확실히 알도록 한 가지씩 말씀 해주겠습니다. 모두 자기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보낸 자, 곧 예 수님 자신을 절대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주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 하심을 믿는 것이 원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제자들은 ‘영생이란, 그 보낸 자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고 따르는 것이 영생입니다. 또 주님이 보낸 자의 말씀을 믿는 것이 영생의 길 로 가는 것이며, 주님이 우리들에게 원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 원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낮이매 지금은 일을 할 때다. 어서 열심 히 일하는 것이 내 원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제자들은 근본을 잘 몰랐습니다. 근본은 주님이 죽기 전에 같이 빨리 일하여 복음을 전하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그 말씀의 근본을 깨달았습니다. 이 시대도 주님이 말씀으로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역사하실 때 부지런히 복음의 일을 해야 됩니 다. 선생도 나이 먹어 늙으면 여러분들과 같이 하지 못합니다. 인생 젊었을 때가 낮이니, 모두 어서 일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또 하나,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시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일반사람들은 하나님과 주님이 말씀하셔도 마음에 약간 느끼기만 하고 개미가 등 뒤에 붙어 기어가듯 알지, 확실히 속 시원히 모릅니다. 선지자나 그 일에 사명을 주어 보낸 자들이 하나님과 주님께로부터 확실히 받아, 그 육신이 전해야 사람들도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있을 때 일을 하는 것이 낮과 같은 것입니다. 만사에는 때가 있습니다. 때 지나면 못합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철에 과일을 못 땁니다. 때 지나면 여건도 환경도 뒤바뀌고, 사명자도 사라져서 낮과 같이 확실히 알고 행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일할 때입니다. 그동안은 선생이 없어서 정말 어떻게 일해야 할 줄 몰랐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 같았습니다. 확실히 말해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주님을 알고 대언하는 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았을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가 충만하고, 말씀으로 방향을 잡고 새롭게 변화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더 욱 새 것을 얻어 환난기에 못 받은 것을 얻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될 때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하던 일을 쉬지 말고, 지체 말고, 연속하라.”고 했습니다. 역시 말씀을 말합니다. 성경 속에서 새로운 말씀을 깨닫고 찾아내는 대로 시대의 위력이 되고, 새롭게 힘을 얻게 되고, 이상적 인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은 너무도 많은 것들을 새로 발견할 수 있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계속해 서 점진적으로 밝혀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말씀을 전하면, 오히려 섭리에 오지 않은 타 교회들이 그 말씀을 전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하 나님과 주님께 말씀을 받아 사명을 하는 것처럼 행합니다. 섭리를 나간 자들은 30년 동안 우리가 전한 말씀들 가운데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만 가르쳐주고 전 한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자신들의 모순을 지적한 것은 가르치지 않고, 인기적인 말씀들만 사람들에 게 가르쳐왔습니다. 태양아 멈추어라, 각종 비유말씀, 30개론에 나오는 말세론, 부활론, 휴거론 등 예술 문화까지 모두 다 가져다 쓰면서 섭리는 모순이라고 합니다. 모두 잘못된 사고들입니다. 이치에 맞는 대로 성경을 보아야 모두 듣고 기이히 여기고 진리를 찾아 말씀의 양식을 구하러 옵니 다. 말씀이 기갈일 때, 성령의 역사 속에 계속 주님께 말씀을 받아 성령의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새 로운 말씀을 기대하기 바랍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세계를 밝힐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주님과 일체된 신앙을 근본으로 해야 됩니다. 말씀을 근본으로 하여 모두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오래된 지도자들이 말씀의 근본을 모르기 때문에 분위기로나, 방법론으로나, 어떤 인간의 육적 인 인성의 방법으로만 일들을 몰고 나갑니다. 지도자들이나 오래된 자들에게 말씀의 근본을 물어보면 모르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는 다 배 웠다고 하며 건성으로 듣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근본을 깨닫고 일하지 않고 경험이나 환경, 혹은 분위기, 혹은 흐름과 처세 등 그때그때 방법론을 써서 대책 없이 한 방향만 보며 갑니다. 오래되면 말씀을 그냥 흐름으로만 들어보고 “말씀이 이렇구나.”하고 판단합니다. 감히 하나님의 묵 시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해버리고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합니다. 또한 결혼한 가정국과 섭리의 어른들이 말씀을 깊이 안 듣고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좋은 대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선생은 다 알고 있습니다. 말씀을 깊이 안 듣고 건성으로 듣다가 방향을 몰라서 사망과 음부의 길로 미끄러져 갈 때, 그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하면 듣고 깊이 생각하고 말씀의 근본을 깨닫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로 주 신 근본의 말씀과 각자 할 일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말씀을 잘못 깨달으면 자기 나름대로 다른 길로 가 게 됩니다. 법칙을 떠나서 가다가는 우주에 길 잃은 별처럼 큰 혜성에 부딪혀 깨지게 됩니다. 말씀의 근본을 제대로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과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각각 원하고 바 라는 것입니다. 물론 잘하는 자들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어 말씀하니, 말씀을 듣고 새롭게 변 화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온 자들과 젊고 어린 신앙인들은 말씀을 깨달으려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고 듣습니다. 말씀을 듣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종도, 청지기도, 회사 직원도 오래되면 요령으로 합니다. 하나 님 앞에는 요령이나 꾀를 부려 적당하게 하면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가가게 되면 머리털 하나만큼이라 도 의를 생명시하고 귀히 여기게 됩니다. 범사에도 꼭 그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말씀을 깊이 들어 근본을 깨달아야 튼튼하고 단단한 월명동 성전의 돌같이 됩니다. 약한 돌들은 돌조 경이 무너졌을 때 과감하게 다 갈았습니다. 힘들지만 튼튼하고 웅장한 돌들을 사다가 다시 쌓았습니다. 선생이 약한 돌을 갈듯이, 약한 자들을 교체한다고 했을 때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돌같이 많은 자 들이 갈렸습니다. 모두 흔들리는 마음 없이 완벽한 믿음을 지키기 원합니다. 믿음이 한 홀이라도 흔들리면 하나님 앞에 불의가 됩니다. 깊이 근본의 말씀을 듣고, 더욱 믿음을 굳세게 하며, 행함이 더욱 담대하고 굳건해야 됩 니다. 주님은 나에게 “계획한 일을 달성하려면 내적인 섭리 안에서만 해서는 안 되고, 외부에 이미 준비된 덩어리들과 함께 해야 된다. 그러려면 내가 그들을 연결시켜 줄 테니 그들과 하나 되어 하면 나와 계획 한 일들이 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주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깨닫고 주님과 의논하니 “그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니 내적으로 섭리 안에서만 하면 안 되고, 외부와 연결하여 줄 테니 하나 되어 하 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일은 주일에 말씀한 것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자체로 만들어서는 늦어서 안 되고, 이미 만들어진 덩어리와 연결되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 분들도 그같이 선교를 해야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더 크게 역사를 하려면 절대 새롭게 단장 하여 새로운 역사를 일으켜야 됩니다. 말씀부터 우리만 주장하지 말고 같이 주장하게 해야 됩니다. 주님 은 알고 주장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만들어서는 늦어서 할 수 없답니다. 이미 만들어진 세계와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준비된 자들 을 찾으면 전도하기 쉽습니다. “새 것을 발견하라.” 이것이 하나님도 주님도 원하는 것입니다. 구교와 신교가 하나 되어 그 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가 되었습니다. 세계 유명한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세상에 없는 것을 발명하여 많은 사 람들이 따라가게 하는 표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새롭게 발견하고 만들어내야 됩니다. 그래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따라옵니다. 복 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주님을 만나 새로운 것을 배워 가르쳤기에 색다른 복음을 세계적으로 역사를 크 게 펴왔던 것입니다. 새롭게 주님을 발견하고, 이 시대 새롭게 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발견해야 됩 니다. 주님은 종전보다 성경 근본의 진리를 폭넓게 가르치며 새롭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 때 문에 모두 이같이 역사를 펴왔던 것입니다. 주님은 벌써 말씀부터 새롭게 변화를 하도록 가르쳐주고 계 십니다. 또 새로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부담 없이 의식 않고 외칠 수 있도록 새롭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 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에 놀라운 위대한 말씀을 많이 주어 배웠으니 이 말씀이 또 전 해지면 더 큰 섭리역사에 표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또 다른 방법으로 해야 됩니다. 한 교회 100, 200, 300명은 종전같이 하면 힘들게 부흥이 됩니다. 1000, 2000, 3000명이 되려면 더 새롭게 해야 됩니다. 새로운 발견을 해야 됩니다. 말씀은 주님 이 새롭게 얼마든지 주십니다. 복음뿐 아니라 모두 더 이상적인 것으로 새로운 발견을 해야 됩니다. 복음은 방송을 통해 전하는 일 과 이미 만들어진 덩어리와 하나 되는 일이 있으며, 인터넷 복음 등 책과 문서를 통해 전하는 일이 있습 니다. 또한 사도 시대처럼 성령의 역사가 있고, 이방으로 뻗어가는 복음의 역사가 있습니다. 섭리는 현재 해외에 있는 교회들을 신경 써 조직을 갖추고 선교사들을 충분하게 준비하여 보내고, 해 외교회를 계속 돕고 살피고 관리하고 지원해야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정교회로 뻗어가야 되고, 교단 이 체계화되며, 실력자들을 양성하는 교육과 강의할 지도자 양성이 필요합니다. 어떤 한 사람이 인터넷에 춤을 춰 올려놓아도 10만, 20만 명씩 회원들이 모여 보게 됩니다. 섭리인들 도 그같이 여러 방법으로 확장해나가며 이 시대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특성과 개성들을 발휘하여 자기 팬클럽을 만들어 복음의 말씀을 한 마디씩 잠언같이 전해 주고 서서히 신앙을 넣어주면 몇 천 명씩, 혹은 1만 명씩, 10만 명씩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인은 만들기 어렵지만, 신앙심만 넣어주고 회원을 만들기는 쉬운 것입니다. 그 중에서 또 뽑아 가르 치면 심지가 곧은 신앙인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특수작물 농사짓듯 복음의 역사를 펴왔습니다. 고로 알차기는 하였지만 숫자는 적었습 니다. 11월초 설교 중에 벼가 논에서 익어 한참 쌀알이 될 때는 물을 충분히 대줘야 되듯이, 충분한 말씀을 줘야 생명이 결실할 때 충만한 생명의 농사를 짓는다고 했지요? 그 논 벌판을 다시 기도 중에 보니, 벼 가 다 익었고 논바닥에는 물도 다 뺐습니다. 논밭을 보니, 벼가 풍작을 이루어 벼이삭이 황금을 이뤘습 니다. 시범단지 같이 무르익은 곡식들은 너무 보기 좋아서 낫을 대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벼들은 큰 벌판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섭리사 신앙의 생명의 결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벼는 잘 익었는데 낫질을 못하여 벼들을 멋있게 베지 못하고 일부는 막 헝클어지게 베어 놓았습니다. 멋있게 추수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성경대로 곡식이 익었으니 추수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휘둘러 익은 곡식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생명들을 비유하여 곡식으로 보여줌은 성경대로 계시입니다. 추수를 잘해야 되고 타작도 잘하여 곡간에 잘 거둬들여야 됩니다. 전에는 해외에서 기도 중에 섭리사를 보면 곡식이 제대로 익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지 도 않고, 알곡이 제대로 영글지 못한 것을 늘 보았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선생과 같이 생명의 농사를 짓고, 주님이 생명말씀의 물과 퇴비를 하고 가꾸어 이같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과일나무에 물과 거름만 많이 주고 관리만 한다고 과일이 많이 맺는 것이 아닙니다. 품종이 안 좋은 나무는 아무리 수고하고 관리를 해도 열매를 별로 맺지 못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많은 관리와 퇴비를 아끼지 않고 했지만, 열매는 별로 열지 않고 결국 주인을 실망시킨 안 좋은 나무들 도 있습니다. 충성하고 열심히 하는 자들에게 물과 퇴비를 아끼지 않고 해줘야 됩니다. 모두 다뤄보면 압니다. 주 님과 같이 그 행하는 만큼 대해줘야 됩니다. 그래야 수고가 헛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사명을 찾아 일을 해야 됩니다. 자기 위치를 떠나서 다른 사람이 일하는데 가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면 안 됩니다. 자기 사명 받은 것만 하면 됩니다. 사람의 각 지체와 같이 자기 위치에서 맡은 일에 충성하면 부딪힐 시간도 없고 싸울 시간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같이 일도 안하면서 일하는 자들에게 가서 거치는 돌이 되면 주님께 책망받기만 합니다. 자 기에게 준 사명을 아는 것이 또한 주님이 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모두 놀지 말고 각자 자기에게 맡긴 일을 찾아 자기 위치로 가서 충성으로 일하라.”입니다. 그 래야 서로 마음도 몸도 부딪히지 않습니다. 지체가 각각 자기 위치에 있는데 왜 부딪히겠습니까? 천사장 루시엘도 자기 위치를 떠나 타락된 것입니다. 말씀 듣고 구원만 받고 끝나지 말고, 열심히 하여 공적이 있어야 그 영이 빛나고 그 공적의 대가를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도 모든 자들을 볼 때 공적이 있는 자들에게 눈이 가게 됩니다. 충성과 진실로 열심히 하는 자들은 낙심하지 말고 더 충성으로 하기 바랍니다. 그 대가를 절대적으로 받는 날이 옵니다. 사람에게 하면 못 받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입니다. 과거 10개월 동안, 여러분들을 전혀 한 명도 못 보고 말 한마디 통하지 못할 때, 기도로 오직 주님과 통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될 때 얼마나 답 답한지, 의사소통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또 주님의 의사를 인생들에게 전해주는 것을 주 님이 그 얼마나 좋아하는 일이며, 인생들에게 그 얼마나 필요한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고로 말씀 을 세밀히 구체적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야 실감이 납니다. 현실감이 있습니다. 주님의 의사는 기도로 깨닫게 되며, 충성으로 열심히 일할 때 더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를 깨닫고 주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속 시원히 말해주니 주님도, 전하는 자도, 듣는 자도 얼마나 좋습니까? “이 얼마나 생명적인 일이랴.” 주님은 더욱 가르쳐 행하게 했습니다. 기도해도 답 못 받고, 답답한 일과 각종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도 누구에게 말 못하고, 주님 뜻대로 산다고 해도 주님은 확실한 말도 없고, 꿈에라도 말 안 해주니 정말 답답하지요? 시험들 때 많지요? ‘왜 주님은 말을 안 하실까. 왜 답이 없으신가.’합니다.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과 법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 게 그같이 해오셨습니다. 사람들끼리 통하듯, 인간이 하나님과 주님과 통하고 말을 척척해왔으면 지구는 벌써 지상천국이 됐을 것입니다. 하늘의 법과 인간의 법은 전혀 다릅니다. 만일, 하나님도 주님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언제든지 말이 통하고 볼 수 있으면, 누구나 전능자를 사람처럼 대하게 됩니다. 사람끼리도 자주 만나면 자기 입장으로 대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택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모세는 나와 대면하고 통하지만 너희는 꿈이나 환상으로 간접적으로 통하지 않느냐. 왜 모세가 하는 일을 너희가 주관하려 하느냐.”하며 책망했습니 다. 그 시대의 중심자나 선지자, 하나님이 보낸 사역자들만 하나님과 통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그 시대 모세만이 시내산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또 백성들에게 어떻 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는 의논하고 말씀하시고 앞날의 일 들과 뜻을 먼저 밝히어 말해주고 외치게 했습니다. 그 말을 믿는 자는 피하여 살게 하였으나, 믿지 않는 자는 각종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언을 하지 않고 나쁜 예언하니, 그 시대 왕들이 잡아다가 고 통을 주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도 시대가 악하면 전하기도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 운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자들의 입장입니다. 주님도 귓속말로 복음을 전하고 다니셨습니다. 지금도 말씀을 받아도 비유로 말하고 어느 때는 돌려서 말합니다. 세상과 민족에 되어지는 일들을 보 면, 그 행한 대로 받고 있음을 말씀을 듣는 자들은 모두 깨닫고 압니다. 고로 귀 있는 자는 성령의 교회 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그를 사랑해도 금방 나타나 말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을 깨닫고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됩니다. 평소 기도했던 것이 말씀 때 답으로 나옵니다. 이런 귀한 생명의 말씀을 수박 겉핥기로 들으면 자기가 기도하고 원한 것에 대한 답을 못 찾고 다른 길로 가다가 결국 일을 당하게 됩니다. 섭리사 모든 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찾도록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해야 됩니다. 선생도 더욱 기도에 집중하고 몰두하여 나의 것도 알고 여러분들 각자의 것 도 알도록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전해줄 테니, 깨닫고 희망으로 열심히 하면 그 희망이 다 이루어집 니다. 대학부가 없는 교회들은 있는 교회에서 전도해주고, 청년부가 약한 교회도 전도에 집중해주기 바랍니 다. 교역자들은 누구나 능숙하게 강의할 줄 알아야 되고, 늘 연구하고 노력하며 부지런히 각 분야를 살 펴 관리해야 됩니다. 교단도 앉아서 행정만 만지지 말고, 각 교회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가보고 확인하여 직접 눈으로 보면서 해야 됩니다. 많은 자들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몇 명만 배치하여 알차게 해야 일이 잘 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모두 세밀하게, 새롭게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자기에게 원하는 것을 찾아 야 됩니다. 선생도 과거에 찾았기에 이 일을 해온 것입니다. 새로 전도된 자들과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통해 하나님이 새로 보내준 자들과 주님이 인도한 자들을 한 명, 한 명 잘 살피고 귀히 여겨주며, 인적사항을 파악하여 잘 가르치고 세밀한 관리를 해주며 새롭게 이상적으로 해줘야 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기도하여 온 자들을 세밀하게 알고 파악한 후에 대해주지 못하고 귀히 여기지 못하 여 가버린 자들도 많습니다. 기회는 한 번이며, 눈물로 기도하면 다시 한 번 더 주기도 합니다. 전도가 되어도 감당을 못하면 모두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정말 배워야 합니다. 기도하고 수고하여 새 로운 생명들이 왔으면 감당하여 천사같이 대해주고 능히 다스리고 관리를 해야 됩니다. 손님 맞듯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동반자나 선생을 맞듯이 하며 말씀을 더 깊이 근본으로 잘 설명해줘야 됩니다. 초신앙인들은 기도하게 하고, 말씀을 읽게 하고, 찬양하고, 서로 어울리게 해주고, 어떻게 지내는지 무리하지 않게 심방도 해줘야 합니다. 그 사정을 알아야 관리를 잘해줄 수 있는 것입니 다. 오래 되었다고 신경 안 써주면 일꾼들이 없어집니다. 오래된 자 놀지 말아요.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이 원하는 일들입니다. 깊이 말씀을 듣고 자신이 행함으로 이것이 나에게 주님이 원하는 것임을 깨닫고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 일을 찾으면 교역자와 의논하면서 하나 되어 하고, 자기가 못하는 일은 서로 분담해서 해야 됩니다. 책임을 맡은 자가 사명만 가지고 안 하거나, 해도 효과가 없으면 다른 것으로 일을 맡기고 다른 자를 세워줘야 됩니다. 섭리 온 지 오래되고 선배라고 말하기 곤란하다고 그냥 놓아두면 전체 조직에 문제가 생기고 주님께도 손해입니다. 고로 각자 자기에게 주님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해야 됩니다. 오래된 자들 과 세운 자들은 새로 온 자들과 모든 교회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모두 새롭게 희망을 가지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하고, 부지런하고, 희망차고, 낙심 말고, 염려도 말고, 주님의 것이 되어 기쁨으로 마음 꺾이지 말고 살기를 바랍니다. 기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의 평강을 빌며, 주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모두 감사 와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감동감화가 충만하기를 빕니다. 할렐루야. 아멘. <2008년 12월 21일 주일말씀> 기쁜 크리스마스 본 문 누가복음 2장 8-14절 마태복음 2장 11절 우리를 구원하여 하늘나라 천국으로 오도록 구주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의 생신을 축하합니다. 진실로 감격 감사하며 기쁜 크리스마스입니다. 선생님을 만나 주님의 말씀 전해 들으면서 같이 맞게 되었으니 나도 여러분들도 더욱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늘 표적을 보여주시면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모두 함께 만났 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특히 환난 중에 하나님과 주님이 우리를 더욱 사랑하여 주시고 함께하여 어려운 고통 중에서 도와주시는 것을 더 알게 됩니다. 앞날을 위한 연단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 꼭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장소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여 살려주신 것을 수십 번 이상 직접 이 몸으로 겪었습니다. 누구보다 더 겪으니 어느 때는 야속하기도 하고, 내게 죄가 많아서 그 런 것인지도 생각했으나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죽을 고비를 겪어보거나, 죽는 고통을 당해본 자만이 더욱 확실히 알게 됩니다. 나 한 사람을 가르쳐 표상으로 이 말을 해주시므로 우리 섭리사 모든 자들도 과거 죽음의 장소에서 살려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깨닫게 되었고, 환난과 고통 중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더욱 함께 하심을 절실히 알게 되 었고, 그 은혜를 갚도록 감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 큰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은혜도 모르고 살았다 면 그 얼마나 할 일을 못한 자가 되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섭리를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 산에서 기도할 때도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기 어 려운 환경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순간에도 주님은 친히 나타나셔서 위로해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인생을 가르쳐주시며 나와 같이 인생을 구원하는 일을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낮에는 전도하 러 다녔습니다. 어려운 고통 중에 주님은 더욱 함께하시고, 위로하시고, 큰일을 맡기시고, 역사하셨습니 다. 1978~1999년까지 공적 역사를 펼 때도 날마다 어려운 일들에 부딪히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환경의 어 려운 문제, 먹고 입고 사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거리에 나앉게 되고, 따라오는 자들은 어 디 함께 들어가서 예배드릴 곳이 없었습니다. 거지같이 살면서도 주님은 앞날의 희망을 가슴에 태풍같이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을 한 방에 다 모아놓고 주님께 들은 앞날의 희망 이야기를 해주면 제자들은 “선생님, 우리는 큰 것을 원치 않고 이 같이 사는 것이면 족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들은 앞날에 이같이 클 것을 아예 생각지 못하고, 또 이렇게 될 것이 감히 믿어지지 않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었습니다. 선생도 주님이 말을 해서 믿어졌고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희망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되 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이 환난 때, 또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섭리 모든 사람들을 한 교회같이 작게 보 시면서 “앞날에 태풍 치는 좋은 큰 역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역시 주님의 말씀이니 믿고 희망에 차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옛날에 따르던 제자들같이 여기서만 족하다고 하지 말고 태풍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주님 의 말씀을 희망차게 여기고, 그렇게 될 것을 믿기 바랍니다. 현재에 있는 섭리사 사람들은 그 큰 구름에 묻혀 여기저기 한 명씩 보일 것입니다. 1999년 이후 해외선교를 할 때도 여러 환난과 고통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주님은 전쟁터에서 함께 하 셨듯이 환난이 심할수록 더욱 함께하시고 역사해주셨습니다. 인생의 갖은 고통들과 섭리에 오는 고통들 을 받고 겪으면서 주님이 사랑하심을 더 알게 되었고, 함께 돕고 동행하심을 깨닫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추울수록 부모님은 더 따뜻한 옷을 사주고, 따뜻한 방을 마련해주고, 뜨겁게 해줍니다. 하나님과 주 님은 부모님보다 수천 배 더 신경 쓰고 함께 해주십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닥칠수록 하나님은 더 역 사하시고 기적을 보여 행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큰 인물 욥은 가장 고통을 받을 때, 친구들을 포함하여 모든 자들이 죄 값으로 하나님께 형벌 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축복 받은 것까지 다 빼앗겼습니다. 욥은 극심히 몸이 아팠으며 각종 가혹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가장 부끄러운 위치에 처해 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소 자기 신앙의 힘으로 넘어지지 않고 굳건하게 지탱해나갔습니다. 욥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 외에는 빼앗아 갈 자가 없었습 니다. 또 하나님께 죄를 져서 큰 형벌을 받을만한 것이 없는 것을 잘 알기에 자포자기를 하지 않았습니 다. 결론은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의 뜻이면 때가 되어 가져가시고, 때가 되면 또 주실 것이라고 믿었 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자기가 이 같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고, 자신의 죄를 더욱 회개하며 하나 님을 절대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최고 고통 가운데 처했을 때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 그제야 말씀하시기를 “너는 대장 부처럼 담대하라. 누가 이치를 벗어나서 말들 하느냐.”하며 욥을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고 말씀하셨습니 다. 할렐루야~ 아멘! 알고 보니 사탄들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환난 중에 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욥은 사탄을 굴복시키고,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자신의 신앙을 시인하며, 더 완전한 신앙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큰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전보다 배나 더 축복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고난이나 환난 때 하나님은 더욱 함께하 십니다. 이로 인해 욥은 후손 만대에 인내하는 표상의 인물이 되었고, 하나님 앞에 이같이 행한 자가 있 다고 우리를 교훈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 중심인물들이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행한 일들을 성경을 통해 볼 때마다 환난과 어려운 때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더욱 알게 됩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믿고 사랑하는 자들이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더 나타나시어 함께 한 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지난날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주님을 대하고, 의 미 있게 기쁜 크리스마스를 맞아야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날 버리셨구나. 주님이 날 멀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하여 신앙을 버리는 자들이 종교인들 중에 정말 많습니다. 어려운 일과 고통의 세계를 통해 큰 역사가 일어난 것을 다시 깨닫고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여러 환난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주님을 따르고 신앙을 지켜 사망권으로 가지 아니하 고 이 해 기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었으니 주님은 우리를 보고 기뻐하신답니다. 믿음을 저버린 자들을 주님이 보실 때는 슬픔이요, 탄식하시며 미련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맞아 그의 몸이 되어주고 주님의 것이 되어 줄 때, 근본적으로 피차 기쁜 크리스마스가 됩니 다. 올해는 더욱 주님의 것이 되어주는 크리스마스가 되는 것입니다. 주를 기쁘게 해줘야 기쁜 일이 있 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노래도 불러주고 춤도 춰주며 예술로 영광 돌려도 그가 주님의 것이 되어주지 않 으면 순간의 기쁨인 것입니다. 오늘 처음 와서 이 말씀을 듣는 자들도 이같이 주님의 것이 되어줘야 하나님과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 고 좋아하십니다. 또한 하늘의 것이 되었으니 전심으로 관리해주십니다. 진실로 돕고 함께하십니다. 주님은 중심인물도 선지자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행하시는 근본 목적을 이루기 위 해, 구약 4000년 동안 선지자나 중심인물들로 펴오던 뜻을 더욱 이상적으로 이루는 근본 역사를 위해 약 속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보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더 좋은 구원을 위해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낸 것입니다. ‘너희도 내 아들같이 나 하나님을 대하고 살라.’고 하여 보낸 것입니다. 결국 그로 인 하여 아들로서 하나님을 대하며 구원의 역사를 실현시켰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주님이 기준을 세우신 대로 주님을 신랑으로 대하면서 신부입장에서 살라고 했습니다. 메시아는 온 세상 모두에게 다 필요합니다. 그로 인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구원의 혜택을 보 고, 하늘의 나라 천국도 가게 되고, 희망의 복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시대마다 보낸 사명자들은 복의 근원이 되어주었고, 그 말씀에 따라 그가 세운 기준과 사명대로 따르는 자들도 역사를 폈습니다. 아브라 함 때는 그로 말미암아 믿음의 조건대로 복의 근원이 되어주었습니다. 다윗 때는 그로 말미암아 복이 좌 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하나님을 믿기보다 그 보낸 자를 통해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사명자인 그 와 말씀하시며 역사를 펴나가고자 뜻을 정하였기 때문이고, 무질서하신 하나님이 아니신 연고입니다. 그 리고 땅에 있는 사명자가 땅에 사는 자들과 같은 사람이기에 사람들에게 하늘의 말씀을 전할 때 말이 통 하고, 하나님께 듣는 대로 전하여 사람들이 듣고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영의 세계가 아닙니 다. 육의 세계인고로, 하나님은 육신 가진 자를 보내어 그를 중심하여 말씀하시고 관리하시며 그 뜻을 펴나가십니다. 주님도 그 하시는 일들과 정한 일들을 사람에게 맡기십니다. 사람끼리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고, 같은 사람들이니 마음대로 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기에 사람을 써서 구원역사를 하십니다. 물론 천사들에게 사 명을 주어 쓰지만 우리와 통하지 못하니 그들은 영들을 관리하고 대화하며 영적인 일을 하는데 씁니다. 천사들은 천사끼리 잘 통하고, 우리 영들하고도 잘 통합니다. 육을 통해 자주 대화하면 자기 영과 친 해져 대화도 잘하고 꿈에도 자주 보입니다. 이와 같이 영은 영끼리 잘 통하고, 육은 육끼리 잘 통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주님도 사명자를 보내어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내게 말씀을 주시면서 “내 말 못할 것을 네가 대신하는 것이니 신경 써 세밀히 전하라.”고 했습니다. 주님 원하시는 말씀을 사명자가 제대로 못 전해주면 주님은 답답하여 애간장이 탑니다. 제 때 제 말씀을 못 들으면 신앙이 약해져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신앙이 넘어집니다. 말씀을 잘 들어 신앙이 반석같이 굳건하며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이므로 화려하게 나셨어야 되는데, 사람의 생각과 달리 마구간 초라한 곳에서 서민 같이 태어나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4000년 동안 선지자들로 메시아를 보낸다고 대망으로 외치게 하셨는데, 보낼 때는 정말 초라하게 보냈습니다. 모든 자들이 와서 맞고 기뻐해야 되었건만, 소수의 사람들만 보고 갔습니다. 천사들이 “너희를 위해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고 하여 양치는 목동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가서 축하하며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여 멀고 먼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와서 예수님께 경 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것을 확실하게 역사에 남기며 근거를 남겼습니 다. 반면에 박사들로 인하여 헤롯왕이 예수님이 나신 것을 알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왕이 나셨다고 하니 시기 질투를 했습니다. 결국 헤롯왕은 음모하여 군사를 보내어 예수님이 나신 시기의 두 살 아래 사내아 이를 다 죽이도록 했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일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왜 동방의 박사들이 헤롯에게 말하게 하였을까? 박사 들이 헤롯에게 들러 문제를 일으키게 하셨을까?’하며 이해가 안 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모를 때는 이해 안 되는 것이 수천가지입니다. 박사들이 헤롯왕에게 들르니 이를 알고 천사로 계시하게 하여 예수님을 애굽으로 즉시 피하게 하셨 고, 하나님이 헤롯왕을 죽여 없앨 때까지 애굽에서 살게 했습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하나님에 대해 모르면, 그까짓 보물을 가지고 오다가 박사들 때문에 예수님이 죽을 고비를 겪고 고통을 받으면서 애굽 으로 가게 되었다며 박사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풀면 욕 얻어먹을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어련히 알고 행하시겠어요? 시대가 악하니 의인들이 고통입니다. ‘박사들이 보물을 가지고 헤롯에게 안 들르고 그대로 별빛만 보고 예수님을 찾아갔다면, 헤롯이 아 무 것도 몰라서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 않았을 텐데... 괜히 거기 들렸다. 무지한 짓 했다. 박사들이 헤롯 에게 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셨으면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무서운 일이 안 생겼을 텐데 왜 하나님 은 그냥 놓아두셨을까? 하나님이 보실 때 구세주가 죽을까 가슴 조이는데 왜 가만히 계셨을까? 박사들이 무지했는가? 몰라서 그랬는가? 박사 때문에 예수님 죽을 뻔했다. 박사들 때문에 예수님이 애굽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며 선생도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이 물었습니다. 요즘 말로 ‘누구 때문에 선생 고생한다. 누구 때문에 섭리사 큰일 났다.’하는 격입니다. 가정에서 도 ‘누구 때문에 이같이 되었다.’고 하며 싸웁니다. 이런 일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동방박사들이 그 까짓 보물을 가지고 갔기에 하마터면 메시아가 죽을 뻔했습 니다. 헤롯왕은 이를 알고 군대를 보내어 그 지경에 사는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참으 로 섬뜩한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자기 잘못으로, 혹은 서로의 실수로 섬뜩한 일을 많이 당했지요? 꿈처 럼 잊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셨을까?’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릅니다. 모 르면 원망, 짜증, 불평을 해대며 ‘너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로 성경을 가르칠 때는 하나님의 심정과 근본의 뜻을 풀어줘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 때문에 할 일을 안 하지 않습니다. 할 일을 하셨는데, 무능하고 악한 자로 인하여 문 제가 생기면 즉시 계시하여 옮기고 피하게 하며 알아서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그때그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폈는지,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시면 이 세상이 악해서 어떻게 대할 줄 아시고, 이미 선지자로 예언하기를 ‘애굽 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함이라.’하였고(호11:1), 또 ‘그가 나시면 라마에서 크게 통곡하 는 소리가 날 것이다.’했는데(렘 31:15) 이는 헤롯이 아이들을 죽여 라헬도 그 자식이 죽었기에 애곡하 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들을 이루었습니다. 또 생각하기를 ‘왜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지?’합니다. 하나님이 죽인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악해서 악한 놈이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못 죽이게 하지 않으셨지?’합니 다. 인간들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무력으로 행하면 이 세상은 금방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 같이 세상이 악한대로 몰라서 고통을 받으니 모두 신중히 해야 됨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 은 뜻을 펴십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롯왕을 만나고 가므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건이 일어나고, 예수님은 구사일생으로 애굽으로 피신하는 일이 생기고, 그 지경에 사는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은 다 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일 어났습니다. ‘왜 하나님은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뵙기 전에 헤롯왕에게 들르게 하셨을까? 왜 그냥 놔두셨을까?’생각하는데, 하나님이 후에 행하신 일을 보면 의문점이 풀립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첫째, 헤롯은 결국 병들어 죽었습니다. 둘째, 그 악한 시대를 심판하셨습니다. 셋째, 선지자들로 예언하신 성경 말씀을 이루었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경륜의 뜻을 모두 알게 해주었습니다. 다섯째, 왕이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지만 하나님이 계시하여 피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일개 민족이 행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당하지 못한다 는 것을 후대에 모두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옛적부터 지금까지 그같이 해 오심을 모두 깨달으라고 오늘도 섬세히 말씀으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추격하던 왕이 죽었습니다. 누가 죽였습니까? 악한 헤롯왕이 예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병으로 쳐 죽였습니다. 의인에게 고통을 주고 죽이려 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도 그같이 역사해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성경에서 찾아낼수록 말씀이 깊이 있게 받아들여지고, 말씀의 능력을 받고, 전 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말하는 김에 한 마디 더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 외에는 경호해주고 보호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시무시한 헤롯왕은 칼을 찬 군대들을 무수히 도적같이 보내어 그 지역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를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때 예수님도 100% 죽은 것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이를 알고 안쓰럽고 슬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천사의 한 마디 계시로 피하여 안전한 곳에 가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전지전능하신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그동안 그같이 대해주셨고, 앞으로도 역사해주십니다. 선생에게도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겪으므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어려울 때 안 도와준다고 하며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주 님도 항상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육계에서 죽었다고 해서 안 도와준 것이 아닙니다. 또 영계가 있습니 다. 오늘 말씀은 참으로 깊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겉으로 들으면 생활 속에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이 안 도와주신다고 시험에 들고, 영생 길을 포기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도우셨는지 생각하면서 절 대 하나님과 주님을 깨닫기 바랍니다. 다윗도 그같이 죽음 직전에서 하나님이 도왔습니다. 다윗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증거 했 습니다. 선생도 베트남 전쟁 때, 그리고 섭리사 30년 동안 각종 어려움과 죽음 직전에서 하나님과 주님 이 구원해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깨달아 야 됩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잡아 죽이려다가 결국 자기가 죽었습니다. 남 잡이는 자기 잡이가 되고 맙니다. 헤 롯왕도 남을 잡으려다가 자기 잡이가 되었습니다. 남을 쫓지 말고 자기 죄나 회개해요.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정녕코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애굽에서 크다가 헤롯이 죽은 후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헤롯이 죽이려던 자가 그같이 크고 있는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같이 비밀로 행하시니, 굳이 말씀하시지 않는 것까지 너무 알려고 하지 않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타나 역사를 펴나갈 때 ‘그 예수가 안 죽었구 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속에 살아도 고통이 오고, 뜻 밖에 살아도 고통이 옵니다. 그러나 뜻 속에 살면 끝까지 가는 자는 영원한 구원을 얻고, 뜻 밖에 살면 영원한 형벌을 받아 인생 영원히 망하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세밀히 하니 말씀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모두 세밀히 말씀해줘야 하나님도 주도 제대로 압니다. 하나 님의 뜻과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각자 하나님을 잘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게 되고, 속도 안 썩 고, 고민 걱정도 안 하게 됩니다. 고로 말씀을 깊이 있게 해주며 이해되게 해주려고 늘 기도하고 몸부림 을 치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나면서부터 죽음이 따랐습니다. 사탄이 알고 악인을 쓰고 역사했습니다. 사탄은 항상 최악 질적인 존재라 악인들을 통해 각종으로 거기에 맞는 자들을 쓰고 나타나 의인들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온 자들을 괴롭히고 갖은 고통들을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막고, 서로 미워하게 하여 서로 싸 우게 함으로 목숨을 빼앗아갔습니다. 절대 믿음으로 절대 주를 따라 살지 못하면 사탄과 악한 자들에게 끌려가 영혼을 빼앗겨 영원한 고통 의 세계, 지옥으로 가니 그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우리가 주를 맞고 주께 마음과 몸을 드리며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어떤 유혹도 이기고 끝까지 절대 주를 따라 살면, 천국을 향해 가서 영원히 기쁨으 로 살게 됩니다. 사랑 때문에, 그까짓 돈 때문에, 그까짓 좀 편한 것 때문에 하나님도 주님도 버리고 세상으로 발길을 돌립니까? 주님은 내게 갖은 고통과 역경, 사탄의 세계와 지옥의 세계까지 겪게 하며 주님의 진리를 배우고 생 명의 길과 천국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알지 못하는 이들을 깨우쳐 주어라. 내가 하듯 너도 전심으로 이들을 가르쳐주고, 악마들에 대해 가르쳐주고, 그들의 정체와 모든 것들을 가르쳐 유혹 에 들지 않게 해주고, 생명권에 살게 해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각종 유혹인 먹는 것, 입는 것, 집과 환경, 명예와 권세, 돈과 각종 물질들은 알고 보 면 아무 것도 아니니 신앙에 몰두시켜 살게 하라.”고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나 민족들은 돈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하십니다. 온 세계 경제를 볼 때, 하나님은 그 행위대로 갚아주시며 대하고 있습니 다. 보여주지 않고 겪지 않았으면 이 같은 시대의 일을 할 수가 없었고, 내 자신도 감당 못하여 못했을 것입니다. 평생 가야 될 생명의 길이니 확실히 배우고 듣고 알고 가야지, 시원찮게 알고 가면 가다가 맙 니다. 신앙을 확실히 가르쳐주고 인도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영원한 것과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 다. 그 나라를 온전하게 가르치고, 하나님과 주님을 온전하게 가르쳐주어 믿고 구원 받게 해주고, 넘어 지지 않도록 확실한 말씀을 전해주어 영생 길을 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선생도 주님으로부터 확실한 말씀을 배우지 못했으면 기성교회에 있을 때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하고 한계에 이르러 회의를 느끼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0대 초반에 이미 신앙의 맛을 잃어버 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 깊이 기도생활을 하였고, 성경을 보다 확실히 깨닫고 신앙을 불붙이기 시 작했던 것입니다. 영생의 말씀이 구원을 좌우하며, 앞날에 천국과 지옥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여러분들은 확실한 말씀을 들었기에 이같이 싱싱한 신앙인들이 되어 사탄과 악인들이나 악평자들의 유혹에도 지금껏 넘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초신앙인들은 말씀을 잘 새겨듣고, 교회에서 잘 배우고, 성 경을 매일 보아야 됩니다. 매일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불러서 왔으니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 기 책임은 자기가 하며 영광을 돌리고 믿음을 굳건히 해야 됩니다. 믿음이 확실한 자들이 기도해주면 그 믿음의 의로 병든 자도 일어나고 약한 자도 굳건하게 됩니다. 말씀의 근본을 가르쳐줘야 스스로 신앙이 크고 뿌리박고 잘 성장되어 거목이 됩니다. 약한 자들에게 생 명의 말씀을 잘 전해줘야 굳세게 됩니다. 말씀이 약하면 늘 관리해줘야 겨우 신앙을 지킵니다. 기쁜 크리스마스를 중심하여 뿌리 깊고 반석 같은 신앙인이 되도록 결심해야 되겠습니다. 관리도 해 주고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스스로 열심히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기쁜 크리스마스에 주님도 기뻐하십 니다. 죽은 신앙은 다시 신경 써 2배, 3배 노력하고 기도하고 관리해야 살아납니다. 모두 주를 믿기만 하는 신앙생활에 만족하기보다, 주의 일을 무엇이든지 개성대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신이 굳건하게 됩니 다. 공적이 있어 땅에서도 하늘나라에서도 축복을 받게 됩니다. 새벽기도 중에 주님이 물으시기를 “하나님과 세상... 너는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두에게 전해주면 안다.”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두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 주님과 세상...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 대답했습니까? 각자 대답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주겠습니다. “하나님을 온 세상과 바꾸겠느냐. 너를 구원할 주님이신데, 만 일 너에게 세상을 다 준다고 하면 바꾸겠느냐. 하나님과 주님을 절대 믿고 사랑하고 살면 온 세상을 가 진 것보다 나으니라.”했습니다. 바꾸는 자는 사망과 멸망으로 가는 육과 영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나를 버리고 세상을 향해 가느냐. 앞날의 형벌을 생각지 않느냐. 온 세 상을 갖는다면 평소보다 하루에 밥을 3배나 더 먹겠느냐. 옷을 세 벌, 네 벌씩 입고 다니겠느냐. 잠을 몇 배 더 잘 수 있겠느냐. 집이 많다고 곳곳마다 몸을 찢어 다 사용하면서 살 수가 있겠느냐. 고급 신발 을 다섯 켤레씩 신고 다닐 수가 있겠느냐. 시계를 열 개씩 차고 다니겠느냐. 실상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아도 나이 들면 그도 병들게 된다. 아무리 세상에서 누리고 살았어도 하나님과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으면 잠깐 인생을 살다가 죽은 후에는 영원한 고통의 세계에 가서 영원히 고통 받고 살지 않느냐.” 주님의 말씀이 맞지요? 흔히 사람들은 육신은 죽어 지옥에 안 가니까 괜찮다고 합니다. 잘못 생각하 지 말아요. 육신이 영과 같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육은 세상에서 죽어 못 가지만, 그 정신 이 영과 일체되어 갑니다. 지옥에 가보아야 알겠어요? 영은 제 2의 육과 같습니다. 잠잘 때 꿈속에서 고통을 받아 보았지요? 그와 똑같이 육신이 느끼듯 느 낍니다. 꿈에 물귀신과 악마들과 밤새도록 싸우고 뱀이 몸을 칭칭 감고 고통 받으면 육신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꿈에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 육신도 똑같이 느껴 땀을 흘리며 무섭고 잠자기 싫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이 받으면 육신은 죽어 세상에서 없어졌어도 육과 같이 세상에서 받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 고통도 수천 배로 강하게 느껴 받게 됩니다. 결국 이같이 될 것인데, 세상을 준다면 하나님과 바꾸겠 습니까? 하물며 온 세상도 아니고, 순간 자기 좋은 것과 바꿉니까? 정말 앞날을 모르는 자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중에 섭리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자꾸 세상으로 간다고 기도할 때 이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나 여호와를 세상과 바꾼 자들이다. 너무 걱정 말고 기도해주어라.”했습니다. 하 나님을 세상과 바꾸면 그날부터 멸망의 길로 가는 자입니다. 옛날, 나와 같이 될 자들입니다. “세상을 너에게 다 준다 해도 주님과 바꾸지 말라.”고 한 말을 알아야 됩니다. 모르면 그까짓 사랑 과 물질 때문에 신앙을 팔고, 주를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사망 길을 따라갑니다. 세상 사랑과 돈과 명예 때문에 하나님을 버린 자들이 되며 그것들과 하나님을 바꾼 자가 됩니다. 모두 “지옥은 있습니다.”는 책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읽어봤지요? 말로는 “하나님을 안 버려요. 주님 안 버려요.”하면서 이미 위치를 떠난 자는 그 하찮은 것으로 하나님과 바꾼 자라고 했습니다. 얼 마나 비극입니까? 얼마나 무지한 자입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택하고, 주를 택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자를 택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 이 지은 세상에 살 때 자기에게 해당되는 일용할 양식을 받고 보람 있게 살게 해줍니다. 영계에서 보면 하나님을 차지한 자가 세상을 차지한 자입니다. 세상에 자기 좋아하는 각종 작은 것 때문에 주를 버리고 하나님을 멀리한 자들은 세상 작은 것을 가 지고 하나님과 바꾼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배신 죄를 지은 자로 보십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자 기를 구원할 자 주님도 무시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지극히 업신여긴 자가 되므로 중형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쉬지도 못하고 사망으로 계속 미끄러져 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 기를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네 목숨과 바꾸지 말라.”했습니다. 주님이 40일 기도를 하실 때 사탄이 나타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했습니다. “네가 내게 엎드려 경배 하면 세상을 다 주겠노라.”하였으나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사단아 물러가라. 나는 하나님만 경배하 고 섬기느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마치 제 것같이 여기며 감히 하나님의 아들에게 사기 치느 냐고 꾸짖었습니다.(마 4:9-10) 세상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바꾼 자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금덩어리 1000톤을 주고, 좋은 궁궐을 주고, 좋은 차 100대를 주고, 돈도 1000억을 주고, 세상의 미인 만 명을 줄 테니 네 생명과 바꿀래?”하면 그러자고 하겠어요? 대답하면 그 자리에서 죽어 1원 한 푼도 못 쓰고 죽을 것입니다. 세상 사랑이나, 물질이나, 어떤 명예나, 세상의 어떤 것 때문에 하나님과 주님을 믿다가 안 믿고 제 갈 길을 가는 자는 마치, 자기 목숨의 영원한 생명을 물질과 바꾼 자와 똑같은 자입니다. 바꾸면 곧 죽 은 자가 됩니다. 자기 좋아하는 것과 하나님을 바꾼 자가 됩니다. 고로 사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자는 말하기를 “나는 세상도 얻고 하나님도 버리지 않는다. 주도 믿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하기에 괜찮은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영계에서 보면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주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이 사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고로 생명 에 대하여 잘 따져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생각은 같지 않습 니다. 같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수준이 같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같다 고 생각하며 그같이 신앙생활을 하면 사망 길로 가게 됩니다. 선생도 섭리사 사명을 하기 전에 주님도 잘 믿고 하나님도 더 잘 전하기 위해 내 생각을 중심하고 아 나운서를 하겠다고 위치를 떠났습니다. 그때 나 스스로 너무 잘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교역자도 듣는 자 들도 좋은 생각이라고 하여 10년 정도 산 기도를 하다가 중단하고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아나운서 하겠다 고 세상으로 방향을 틀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정한 날에 죽음의 사고로 매를 맞고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의학적 으로 볼 때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잘못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여 다시 살았습니다. 알고 보니 주님이 나에게 계획한 일을 떠나, 내 원하는 것과 하나님을 바꾸고 주님과 바꾼 것이었습 니다. 그것을 하면서 주님을 더 잘 믿고 사랑하며 하나님과 주님을 더 잘 전한다고 했는데도 하나님이 내게 뜻을 세운 법과 다른 길을 간 것입니다. 배신이었으며, 세상에 나 좋아하는 것하고 하나님과 주님 을 내가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냥 보아서는 큰 죄가 아닌 것 같지요?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죄는 하나님이 보 아야 됩니다. 일단 내 생각으로 흐르면 하나님을 판 자요, 주님을 자기 좋아하는 그것과 바꾼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 영혼은 실상 죽은 자로서 사탄의 세계, 멸망의 세계로 간 자입니다. 누구든지 섭리사 사람은 동일합니다. 겪은 자만 압니다. 말씀도 근본을 알려면 예수님이 자기에게 대 하는 것을 잘 보고서 판단해야 됩니다. 선생은 다른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더 잘 믿고, 더 많은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했습 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좋은 생각 같지요? 선생도 그같이 생각했는데 주님께 매를 맞고 돌아와서 그제 야 깨달았습니다. 위치를 떠나면 타락이요, 불신입니다. 본래 가야할 길은 주님과 같이 이 섭리역사를 펴며 많은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구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같이 세밀하게 가르쳐줘야 주님 뜻대로 살며 구원에 착오 없게 해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고 생되지만 자신이 직접 생활 속에 겪으면서 정말 세밀하게 잘 전해줘야 됩니다. 일획도 착오 없이 가르쳐 줘야 됩니다. 죄인데 아니라고 하여 그가 회개치 않으므로 죄가 있어 사망으로 가면 가르친 자가 책임을 져야 됩니다. 30개론 말씀도 모순된 것을 다 고쳐 가르쳐야 됩니다. 특히 근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르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설교 때 자세히 가르쳐주시니 정말 제대로 알고, 외치고, 주장하고, 확실히 가르쳐주어 말씀의 불을 받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아직 섭리사가 체계화 되지 않았을 때부터 가르쳤기에 착오도 있고, 또 가르치다 보면 선생이 직접 감독을 못하니 가르치는 자가 흐름 따라 보태어 전하므로 선을 넘게 가르치는 것이 많습니다. 완전하게 고쳐야 됩니다. 요즘은 말씀시대이니, 단상의 말씀을 잘 듣고 중심해야 됩니다. 시대 따라 말씀의 차원을 높이고 방 향도 이리저리 돌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30개론의 근본은 성경 말씀을 보다 근거 있게 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성경 말씀을 한데 묶어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 이 같은 말씀을 성탄 주일을 맞아 해주는지 주님이 심정을 알겠어요? 제대로 알고 크리스마스를 맞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쁜 크리스마스이니 예수님에 대하여 기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부를 때 주님, 어느 때는 그리스도, 메시아 등으로 부릅니다. 설교 때 잘 듣고 같은 주님을 두고 부르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그 당세 이스라엘 사람이나 그 주변나라 사람들만 직접 눈으로 보았지 그 후로는 그 육을 본 자가 없습니다. 특히 십자가에 죽은 후에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후 디베랴 바닷가에 서 나타나셨을 때, 또 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집에 가서 읽어봐요. 예수님의 영을 본 것입니 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영으로서 세 번째 나타났습니다. 제 자들과 이야기하고 조반도 먹었다고 했습니다. 영도 먹고, 말하고, 육신보다 실감 있게 더 많은 일들을 합니다. 영이 음식을 먹으면 육계의 음식은 실제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죽기 전에는 육으로 나타나셨고, 그 후부터는 제 2의 육인 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같이 보면 주님이 다시 강림한 것입니다. 재림한 것이 되기도 하고, 재림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이 오셨을 때가 초림이고, 다시 영으로 오셨을 때가 영의 재림입니다. 육은 첫 번째이고, 영은 두 번째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이 살았다고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영이 온 것을 재림으로 안 봅니다. 주님은 그 후로 2000년 동안 육이 아닌 영으로 계속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 기간은 또 하나 의 주님의 영 재림기간입니다. 환상이 아니고 실체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도 바울 선생도 모두 한결같이 ‘말세’라고 하면서 “곧 주가 오신다. 도적같이 오신다. 어느 날에 오실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하며 강조하여 외쳤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사람들이 기다리는 재림으로 따지면 아직도 안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은 계속 곧 오신다고 했을까요? 왜 긴장하라고 했을까요? 육으로 다시 오심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으로서 각 사람마다 신앙의 기간 때 찾아오셨습 니다. 재 강림하신 영으로 도적같이 오셨습니다. 시대마다 해당되고, 각 사람마다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가정에 열 명의 자녀가 있는데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르기를 “곧 결혼하니 결혼 준비 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자녀들은 늘 긴장하여 깨어 소망으로 준비했습니다. 부모는 20년 동안 결혼이 임박하다고 말했습니다. 열 아들딸들이 모두 나이가 차면 결혼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결혼 날이 가깝다 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2000년 동안 계속 “주님이 곧 오시니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시대마다 각 인생들은 100년을 살고 가는데, 자기가 살아있는 시대에 주님은 복음으로, 혹은 영으로 도적같이 수시로 오시기에 늘 “주님이 오시니 깨어 있으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영으로 직접 오시고, 말씀을 통해 오시고, 육신끼리는 말이 통하니 전도자들을 보내십니다. 도적같이 오신 것입니다. 2000년대 재림을 두고 말하기도 했지만, 실상 재림이 이루어진 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그동안 계속 영으로 나타난 것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선생도 예수님의 육신을 본 것이 아니라 수십 번이나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본 것입니다. 주님이 이를 가르쳐주시고 자세히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또 붓도 주어 이 말씀을 도표로 그리고, 말씀의 붓을 잡 아 글을 쓰고, 말씀을 주어 역사하셨습니다. 주님을 맞은 것이 구원이요, 휴거요, 거듭남이요, 심판을 면한 것이요, 부활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육이 아닌 영을 맞은 것도 재림한 주님을 맞은 것입니다. 선생은 주님의 영을 직접 만났으므로 확실한 주로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얼굴도 못 보고 사진으로만 보니까 잘 안 믿 어졌습니다.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을 상상하면서 그렸구나. 예수님이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어떻게 보았단 말이야?’했습니다. 주님의 실제 육을 보고 그린 그림은 없습니다. 주님의 영을 실체로 보면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다릅 니다. 예수님은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를 입고 계십니다. 어느 때는 천사들같이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 날 때도 있습니다. 이 영체 얼굴을 보다가 일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실감이 나지 않았 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영인체 사진을 보면 실감이 납니다. 그렇다고 영계에서 본 것같이 빛나게 안 나왔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 기도하기를, 생시 때의 육을 보고 싶다고 하였더니 살았을 때같이 그 육신의 모습 을 꿈에도 보고 기도할 때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실 때 육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실감 있었습니다. 옷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영인체가 육신보다 알아 보게 더 큽니다. 한번은 회골에서 일하고 월명동 집에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70년도에 월명동 새집을 짓고 난 후였습 니다.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불이 켜지지 않은 방문을 열었더니 예수님이 환히 보이면서 “네가 하나님 께 기도한 것 때문에 왔다.”고 하시면서 선연하게 사람처럼 나타나셨습니다. 불을 켜니 안 보여서 다시 불을 껐습니다. 내 마음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갑자기 너무 졸려 잠이 들었을 때 주님은 훤히 다시 나타나셔서 내 인생의 앞날 진로에 대 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결국 내 인생을 주님께 드리고 죽도록 주님만 따라다닌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이 참으로 크고도 컸습니다. 내 인생에 큰 약속이었습니다. 본인이 원하고 좋아서 말해야 합니다. “너 나 따라다녀.”하며 예수님은 그같이 말하지 않으십니다. 자유를 주십니다. 각자의 몸이니 억압으로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 고백할 것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먼 저 좋아서 말을 해야 됩니다. ‘왜 주님이 먼저 말하지 않으시지?’하며 기다리면 하대명년입니다. 어느 때는 힘들다며 주님의 말 안 듣고 딴 길을 갈 때, 예수님은 얼굴을 안 보이시고 몸만 보이며 이 야기하셨습니다. 내가 마음을 돌이키고 울면서 화해하고 이야기하면 직접 얼굴을 정면으로 보이시며 이 해시켜주며 말씀해주셨습니다. 나는 주님이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습니다. 욕심도 없고, 명예도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따르는 자 들 온전하게 가르쳐 주님과 하나 되게 하여 구원하는 것이 최고 목적입니다. 잘못 가르치고, 신앙을 제 대로 관리해주지 못하고, 수고가 헛되게 하면 선생의 운명도 같은 처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이 고, 여러분들은 육과 같은 처지입니다. 주님은 구원주이기에 좋아하기도 하지만, 늘 동행해주시기에 좋아합니다. 특히 선생이 주님을 왜 좋 아하는가 하니, 외롭고 쓸쓸하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내가 책임질게. 걱정 마.”하며 안심시켜주시 고, 내가 고통당할 때 아무도 못 올 곳까지 오셔서 위로해주시고 도와주시며, 홀로 산에 있을 때에 낮에 도 사람처럼 나타나셔서 말해주시고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처했을 때도 책임지고 하나님께 이야기해서 살려주고, 편하게 해주시고, 너무 정이 들어서 좋습니다. 주님도 나를 사랑하고 좋아하니 주님 때문에 오죽하면 결혼을 안했겠어요? 예수님은 하라고 했어도 결국 안 한다고 나의 진정을 털어 놓으니까 결국 주님은 “그러면 나도 부담이 안 되고 편하다.”고 했 습니다. 정말 주님을 좋아하는 자임을 알고 주님도 좋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믿기만 하지 말고 좋아서 사랑해야 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해외 선교를 할 때도 기도하면 “이 같은 일이 일어날 테니 이같이 하라.”고 했습니 다. 또 홀로 공원에 있으면 “내가 너와 함께한다.”말씀하시며 “뜻 없는 곳에 필요 없이 왔겠느냐. 후 에 더욱 알게 되리라.”하며 확신을 주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요즘은 때가 때이니만큼 은혜의 말씀으로 중심을 두고 역사를 펴자.”고 하시 며 “30개론도 모순된 것은 다시 교정하고 근본으로 더욱 세밀하게 가르쳐줘야 된다. 설교도 세밀하게 자세히 해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내 역사가 아니고 신랑 되시는 주님의 역사이니, 신부는 주님이 시 키는 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세히 말해주지 않으면 자기 식으로 말씀을 듣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니, 전하는 자는 천천히 자 세하게 잘 전해줘야 됩니다. 아직도 자기의 주관을 넣어 설교하는 자가 있습니다. 듣는 자도 자세히 들 어야 됩니다. 똑같은 설교를 들어도 자기 주관에 따라 근본과 달리 그릇 되게 생각하는 자도 있습니다. 고로 문제가 생깁니다. 정말 잘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커가면서 더 구체적으로 알고 살아가듯이, 섭리역사도 커가면서 모순과 잘못된 것들을 고 치며 더욱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주장도 확실히 알고 주장해야 됩니다. 실천도 알고 실천해야 됩니다. 교회를 10년씩 다녔어도 예수님을 영으로 한 번도 못 본 자가 많고, 20년씩 다녔어도 못 본 자가 많 습니다. 못 보았어도 본 자들이 말하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못 보아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에 해줄 것을 다 해주시고 도울 것을 다 도와주십니다. 정말 보고 싶으면 주님께 보고 싶다고 사연을 말하면 보 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뜻이 있어야 보여주십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며 돕는 것을 보여주는 것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못 볼 때는 사진으로 보듯이, 예수님의 영인체 사진을 선물로 주셨으니 사진을 통해 주님을 보기 바랍니다. 주님이 느낌으로 느껴질 때 오시기도 하지만, 깨닫도록 계시만 해줄 때가 많습니다. 꿈에도 생시에도 상 징적으로 나타나 보일 때가 있습니다. 기쁜 크리스마스에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듯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해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 거에 함께 하시던 주님은 지금도 여전하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항상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요, 주님이십니다. 말씀을 주고 깨우쳐주지만 천사도 주님도 거의 안 보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깨닫게 하여 전달하게 하시니 이를 깨닫고 늘 감사하며 이치를 깨달아 살아야 됩니다. 요즘 구체적인 말씀 듣고 오히려 ‘의아하다. 혼돈된다.’하지 말고, 그동안 제대로 몰랐던 근본의 말씀을 깨닫고, 때와 시기를 따라 합당하게 말씀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비밀 된 것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또 하실 것입니다. 모두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자기 신앙들을 자세히 검토하고 날마다 고치고, 더 이상적인 삶과 구원을 위해 몸부림치며 행해야 됩니다. 말씀이 온전하게 선포되어도 자신들이 행하지 를 못하니 항상 자기 수준의 길만 가게 됩니다. 이 때 못 고치면 힘듭니다. 월명동도 다섯 번이나 다시 쌓았습니다. 앞산 중간의 돌 조경도 너무 초라하여 무너뜨리고 다시 웅장 하게 쌓은 것입니다. 결국 전체가 아름답고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무너뜨리고 돌의 일부를 실 어다 버릴 때, 모두 이해를 못하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돌로 다시 쌓아 놓으니 튼튼하고 마음이 놓이고 안심하고 마음대로 가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모두 정말 잘했다고 했습니다. 섭리사 말씀도 흠 없이 완전하게 교정하고, 체계 있게 해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옷차림 교정, 말하는 것 교정, 태도 교정, 잘못된 사고 교정, 옛날 하던 방법과 모순된 것 교정, 체계 교정하면 값이 빛나고 모든 보는 자들이 밀려오고 존경합니다. 기쁜 크리스마스에 기쁜 말씀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구주를 보내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항상 도우시고 지켜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으로 섭리사 모든 자들과 온 인류에게 충만하고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 다. 아멘. <200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메시지> 기쁜 크리스마스 먼저 주 그리스도의 평강을 빕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로 약속한대로 온 인류를 구원하도록 하나님이 사랑하는 구원자 예수님을 이스라 엘 민족 베들레헴 한 마을에 보내셨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 땅에 평화를 주시고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과 희망을 주시고 구원해주신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온 세계 섭리 교회와 각 개인 모두 주님을 진실로 믿고 사랑하며 기쁨과 감격으로 주님을 맞게 되었 습니다. 올해는 더욱 의미 깊은 기쁜 크리스마스입니다. 주님이 나로 섭리를 시작하신지 30년이 되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동안의 환난과 핍박과 여 러 유혹들과 고통들을 모두 이길 수 있도록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섭리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키시 고, 진리와 사랑과 은혜로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각 교회와 각 개인들을 은혜와 사랑으로 이끌어 오시고 동행하시며 지금까지 역사해오셨습니다. 모두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주님처럼 세상 끝 날까지 변 함없이 갈 것을 더욱 다짐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그 어떤 교파보다도 파란만장한 고통과 어려움과 심정의 쓰림도 많았지만, 끝까지 믿 음을 지키고 참고 견디며 오신 섭리의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정말 장하고 훌륭하다고 칭찬합니다. 주 님 역시 무엇보다도 이를 기뻐하십니다. 선생이 아직 가지 않은 나라들까지 복음이 들어가 열심히 하는 여러분들과 아직 얼굴을 직접 보지 못 한 세계 각 나라 여러분들 더욱 반갑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맞아 평강을 빕니다. 크리스마스의 뜻은 그리스도의 미사, 예배이며 그리스어의 크리스토스(그리스도)와 라틴어의 미사라 는 단어에서 유래되어 왔습니다. 결국 그리스도 예수를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기쁨으로 예배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 근본은 메시아를 맞고, 그 말씀대로 그 정신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범사에, 삶 속 에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도 몸도 영도 드리고, 감사와 사랑도 드리는 것 입니다. 주님의 것으로 드려야 주님도 우리를 위해 주십니다. 이로 인하여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는 것입 니다. 그리스도 주님은 온 만민에게 오셨습니다. 모두 맞을 수 있도록 개인, 가정, 민족, 온 세계에 이 복 음을 전해줘야 됩니다. 평화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특히 올해 처음 섭리에 와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는 여러분들은 올해 주님을 꼭 맞고 영생과 희망의 길을 가며, 행복하고 영원한 빛 가운데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섭리사 모두는 주님을 맞음같이, 주님이 살아생전 말씀하신 그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여 제 2의 주님 이 되어서 형제들을 돕고 화평케 하기 바랍니다. 특히 불쌍한 자, 눌린 자, 뒤에서 소외감을 받는 자들 과 더욱 함께하여 평화와 이상을 주러 오시고 구하러 오신 주님의 손발들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경제난을 겪고 찬바람이 차갑게 스치며 고난들을 당하고 있지만, 주님의 사랑과 긍휼히 여기시는 정 신을 개인도 교회도 서로 실천하며 온 교회가 하나 되어 화평하기를 주님도 선생도 진정 바랍니다. 실천 하는 교회, 실천하는 자에게 주님은 더욱 옆에 다가와 손을 잡고 동행하십니다. 구주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 세세토록 영광 돌리며,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을 진정 기쁨으로 맞 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보호와 감동 역사하심이 온 교회와 가정과 개인과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2008년 12월 25일 성탄예배> 기쁜 크리스마스 본 문 누가복음 2장 8-14절 마태복음 2장 1-15절 할렐루야! 기쁜 크리스마스입니다.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구주를 보내어 우리가 그를 맞을 수 있도록 성령님이 복음으로 감동시키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전 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율법을 중심하여 점진적으로 4000년 동안 구원역사의 뜻을 펴오셨습니다. 선지자들로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구할 메시아를 보내주신다고 최고 희망의 말씀을 해주시고 약속했습니다. 때가 되어 그 약속대로 아무도 모르게 다윗왕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메시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니 천사를 보내어 여러 징조와 표적을 보이시며, 베들레헴의 들판 목자들에게 너희들을 위해 구주가 왔다고 알려주셨고, 천사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습니다. 또한 동방의 멀고 먼 나라 박사들에게도 알려주어 육지에서 제일 귀한 황금, 산에서 제일 귀한 유향 과 몰약을 아기 예수님께 드리러 왔습니다. 모두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고 귀한 보물을 바쳤습니다. 우리 도 주님께 경배하면서 귀한 것을 바쳐 영광 돌리기를 바랍니다. 박사들보다도 우리는 더 행복한 자들입니다. 주님을 맞고 구원을 받고 사니 주님의 것이 내 것이 되 었고, 내 것을 주님께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서로 헤어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까지 함께 할 우리들입 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천국에 예비한 것을 생각하면 감히 상상하지 못합니다. 천국의모든 것들은 구 원을 받고 주님의 것이 된 자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를 말해주겠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큰 다이아몬드는 ‘컬리넌’으로 530캐럿이 됩니다. (정확히 530.20) 물방울 형태이며 영국 여왕의 대관식 때 사용되는 여왕봉에 세팅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탁구공보다 조금 큰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보통 다이아몬드 반지는 1~3캐럿입니다. 하늘나라 다이아몬드는 보통 축구공만 하다고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선생이 옛날에 말씀을 받을 때도 보았습니다. 빛에 반사되니 너무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오면 그 행한 대로 주시려고 주님은 이같이 큰 다이아몬드를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어려워도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며 끝까지 주를 시인하고 인정해주었다고 감 격해하시며 각각 주신답니다. 결혼하기 전, 신랑은 신부에게 주려고 아무도 몰래 귀하고 귀한 각종 보석 이나 신부가 좋아할 것을 사 놓았다가 하나하나 줍니다. 신부가 받으면 감격해하는 모습과 자기도 주면 서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를 위해 그같이 하심을 확실히 믿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것은 작고, 가짜가 많고, 가져 보았자 손가락에 끼고 다니면 누가 손가락 잘라 갈까 불안 하고, 껴 보았자 잠깐입니다. 천국에서는 너무 커서 가지고 다니지 못하고 자기 집에 두고 봅니다. 도둑 은 영원히 없어 불안함도 없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에서 다이아몬드와 보석 없다고 슬퍼하지 말고 주님께만 가 봐요. 원하면 목이 부러질 정도로 큰 보석으로 목걸이를 해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의가 빛나고 행실이 빛나는 것이 보석입니다. 다시 본문 말씀 듣겠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위해 구주를 보냈으니 곧 그리스도 예수 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을 30세까지 준비하여 보냈건만, 하나님을 믿는 유대 종교인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몰랐습니다. 의식하고, 믿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무시하고, 욕을 하고, 악평하고, 불신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 들을 막았습니다. “이단이니 따르지 말라.”하며 전력을 다해 막으면서 “적그리스도다 가지 말라. 사 람이 구세주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 구원자다.”하며 이론을 대면서 일제히 거부하고, 복음을 전 하지 못하도록 복음 전하는 곳마다 쫓아다니면서 악평하고 막았습니다. 제자들은 보고 듣고 행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실히 알고 깨달았으니, 그들이 아무리 막아도 예 수님을 따랐습니다. 구약의 율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미 정신과 사고 에서 불신하고 보니, 예수님이 아무리 하나님을 전하고 표적을 일으키며 옳은 말을 해도 믿지 않았습니 다. 직접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줘도 마귀와 귀신이 한다고 생각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따라가도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 자체를 불신하였고, 그 따르는 자들도 이상하다며 미친 자들 취급을 했습니다. 미친 자들이 성한 사람을 두고 미친 자 취급을 하고 대한 것입니다. 정신병 자들을 취급하는 병원에서 의사가 미친 환자에게 주사를 놓으러 왔는데, 미친 청년이 의사의 주사를 빼 앗아 의사보고 “네가 미쳐서 멀쩡한 나에게 주사를 놓는다.”하며 의사를 묶어놓고 주사를 놓아주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같은 일을 당한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사람이 그릇 생각하고 사고하면 안 믿어집니다. 고로 주님은 그들뿐 아니라 믿고 따르 는 자들에게까지 마음 놓고 할 말을 할 수 없어, 말을 돌리어 사랑과 은혜와 복음만을 중심하기도 했습 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유대 종교인들은 복음의 발길을 막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복음 을 전했으나 그들이 너무 막으니 수고의 대가를 제대로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제자들이 유대 종교인들로 부터 갖은 두려움과 공포를 겪으며 사는 것을 볼 때 주님은 참으로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결국 주님은 유대 종교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소돔, 고모라성보 다 더 불신하는 자들이니라.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하시면서 이방 땅으로 갔습니다. 이미 주님은 이들을 두고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의 아들 혼인잔치에 택한 자들을 모두 오 라고 했더니 오지 않고, 오히려 오라고 한 자들까지 때리고 죽이며 갖은 고통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다시 아들을 위해 전에 택하지 않은 자들 중에 아무나 오라고 했습니다. 이 비유대로 이제 이스라엘 민족의 택한 자들 말고, 아무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이방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 혼인잔치에 모두 오게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이 방세계에서 보다 마음을 놓고 근본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방에서 돌아와 본래 택한 자들과 만민을 위해 구원의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고로 구원 의 역사는 끊임없이 펼쳐 나갔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바로 제자들에게 영으로 나타나셔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 며 흩어진 제자들을 꽁꽁 묶어 곧이어 성령의 역사 사도시대를 불붙여 나갔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영으 로 재강림 하시어 2000년 동안 지금까지 역사해 오셨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예수님의 육신이 세상에 오신지 2000년 만에 주님을 맞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당세 때도 주님이 말씀하심에 따라 사도 베드로가 기록했습니다. “너희들은 주의 날이 더디 온 다고 말하지 말라.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에 오래 참아야 되지 않겠느냐. 주의 날의 하루는 너희 날의 천년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2000년은 하늘의 날로 2일입니다. 아직도 주의 복음을 듣지 못하였거나, 들었어도 믿지 않고, 구원의 길을 잘못 찾아 우상이나 섬기고 인간을 구원주로 섬기며 사는 이방종교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구주를 믿게 된 것이 너무 큰 기적입니 다. 믿고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알아야 됩니다. 한 번 신앙이 무너진 자가 다시 믿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형벌을 받고 4년, 7년, 혹은 10년 후에야 다시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자도 있고, 평생 다시는 기회가 안 오는 자도 있습니다. 신앙 뿐 아니라 자기가 하던 일을 한 번 손 놓고 안 하면 다시 하기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한 번 폐하면 다시 하기가 어렵습니다. 첫사랑을 버리면 다시 찾기 힘들고, 한 번 리듬이 깨지면 다시 찾기 힘듭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몸을 조정해가면서 해야 됩니다. 섭리사 떠나간 자들은 다 이유가 많지만, 다시 돌아온 자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주님을 버리면 안 됩니다. 힘들어 한 번 신앙을 버리든지 어떤 일로든지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음을 저버리면, 주님은 이를 배신으로 보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업신여긴 것으로 보고 천법에 의해 주 님은 그에게서 돌아서 버리십니다. 다시 주님이 그를 쳐다볼 때까지는 오랜 세월이 갑니다. 다시 찾는다 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을 버리는 자는 자기 영원한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자들입니다. 선생은 겪어서 알고 법을 받아서 압니다. 주님이 늘 말씀하시면서 “어려워도 참고 견디는 것이 낫 다. 한 번 믿음을 잃고 다시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했습니다. “다시 얻는다 해도 본래같이 되기 힘들고, 다른 사명의 위치에서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버리면 안 됩니다. 버리는 자는 자기 영원한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자입니다. 성경 말씀 그대 로 영계로 보면, 그 영도 육과 똑같이 되어 갑니다. 주님을 버려놓고 곧 돌아와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연과 어떤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음을 굳건히 해야 됨을 깨닫고, 또 한 번 다짐하는 기쁜 크 리스마스가 되라.”고 주님은 무엇보다도 다이아몬드 같은 성탄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나에게도 뜻을 통한 고통을 당하면서 신앙이 흔들릴까봐 말씀하십니다. “신앙만 안 버린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여도 주님을 믿고 100% 믿음의 조건을 세워 믿음에 흔들리 지 말라. 극적인 환경과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가 너무도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네가 신앙을 굳세게 지키고, 걱정 말고 하나님과 나를 의지하여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시며 나도 나타나 과 거 죽음에서 구원한 것 같이 할 테니 믿음의 표상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나와 같이 막다른 환경에 처하게 될지라도 절대 믿음을 굳세게 하여야 그 믿음의 조건으 로 인하여 어떤 어려움에도 하나님과 주님이 구원해주십니다. 막연하게 겉 신앙 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 삶 속에 영으로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도록 그 주님을 보고 믿고 하여야 믿음이 더욱 확실합니다. 2000년 전, 옛날 주님만 생각하면 까마득하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지금 우리 옆에 영으로 오신 주님을 보아야 됩니다. 사도바울도 주님을 영으로 자주 보고 영적 신앙이 되었기에 그같이 신앙이 강했습니다. 사도들도 공생애에 주님을 직접 육으로 보았을 때보다, 오히려 죽은 후 예수님이 바닷가에 영으로 나 타나 본 후부터 더 신앙에 근본의 불이 붙었습니다. 또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사도바울은 충격 받고 무릎 꿇고 회개함으로 거듭 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머릿속에 율법이 가득 차 자기를 그릇 사고하게 하였어도 일순간 다 집어던지 고 체면과 자신의 입장을 다 버리고 유대인들에게 가서 외쳤습니다. 주님의 육신을 직접 보았어도 핍박 만 하고 안 믿었던 바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도 주님이 자주 나타나 그 영체를 보았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시어 역사하면서 영으로 보고 느껴 제자들은 가슴에 불이 붙었고, 신앙이 금강석 같이 더욱 강해지고, 의심할 바 없이 확실히 주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모두 뜨겁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섭리사도 이 시대 지금 역사하시는 주님의 영을 모시고, 보고, 몸소 체험하고 가야 더 새 롭게 됩니다. 선생도 주님이 영의 몸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므로 옛날 유대 땅에 나타나신 상상적인 주님의 모습을 믿었던 것과 전혀 다르게 굳세게 믿고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체험하고 만져보면서 믿어야 세상 유혹도 이기고, 가슴에 불이 타며, 믿음을 굳세게 하고, 실감 있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더욱 기쁜 크리스마스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십니다. 꿈으로, 환상으로, 느낌으로 나타나시며 깨닫게 하시고, 말씀으로 도 나타나십니다. 나타나 있어도 안 보이니 믿음의 눈과 깨달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각 교파마다 교리도 개성적으로 특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넓게 많이 전하려는 비밀의 역사 입니다. 우리 섭리사는 선생이 조건을 세우고 사명을 받은 대로 주님을 신랑으로 보고 모십니다. 신부의 조건을 세웠기에 신부로서 자격을 갖추고 신랑 되시는 주님을 맞아 사는 신부의 삶입니다. 그러니 어느 교파 누구보다 더 주님과 가까이 하며, 세상에 눈 팔지 말고 가야 됩니다. 흔들리지 말라고 더욱 이에 해당되는 굳건한 말씀을 주었습니다. 선생이 나타나면 주님이 가려집니다. 주님은 안 보이시고 말도 안 통하니 우선 보이는 자를 중심하게 됩니다. 교역자들이나 선생이 보낸 자들이 중심되어 나타나면 안 보이는 선생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선 생도 내가 나타나면, 내가 사랑하고 생명시하는 주님의 사명이 가려지기 때문에 결국 내가 손해입니다. 늘 주님을 증거하고 가르쳐야 나도, 듣는 모든 자들도 주와 일체됩니다. 매일 주님을 부르고 주님을 중심하지 않으면, 주님을 맞은 보이는 선생에게 눈이 돌아갑니다. 어디까 지나 주님은 주님이고, 선생은 주님이 보낸 사명자입니다. 주님의 신부된 것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 습니다. “너희는 신부요. 나는 신랑이라.”고 마태복음 25장 1~13절까지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인정하는 신부가 되어야 됩니다. 세례요한도 “너희는 신랑 예수님을 신부로서 맞아라. 나는 구경하는 자로서 만족하다.(요3;29)”했습니다. 주님은 신랑 되는 자기를 뺏기지 않도록 하라고 제자들 에게 말했습니다. 신랑을 맞았으니 주님은 먹고 마시자고 하시며, 시대 생명수 말씀을 마시게 하고 시대 말씀의 양식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주님을 최고 가까이 모시고 사는 신부로서 신앙생활을 해야 만족합니다. 종 입장의 신앙이나 형제 입장의 신앙보다 사랑하는 신부 입장의 신앙을 가져야 기쁜 삶을 살게 됩니다. 2009년도 표어가 무엇이냐고 주님께 물었을 때, 몇 시간 동안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며칠 기도하여 또 물었습니다. 역시 말씀이 없었습니다. 2009년은 표어 없이 이것저것 다 하면서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더니 그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마음이라는 뇌에 말씀하셨습니다. ‘새롭게 변화하는 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멋있고 희망 있는 말이었습니다. 이미 그동안 말씀으 로 새롭게 해왔습니다. 항상 말하기를 전부터 주님은 은밀히 그 일들을 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 약 시대 때 신약 역사를 내적으로 은밀히 해오셨습니다. 하나님, 예수님도 항상 이같이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너무 기대가 큰 해입니다. 제목을 보면 거의 압니다. 2008년도는 ‘기도와 말씀의 해’였습니다. 겪어 보니 정말 기도 많이 하고, 말씀도 그같이 새롭게 많이 줄지 몰랐을 것입니다. 무엇을 새롭게 하실까요? 안 보이던 것들이 새롭게 보일 것이고, 보다 많은 생명들이 의식 없이 오도 록 이미 말씀도 새롭게 해왔습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말씀 따라 섭리사는 흘러갑니다. 때를 따라 동 쪽으로, 남쪽으로, 서쪽으로, 여러 방향으로 역사를 펴나갑니다. 말씀이 선포되면 그 말씀대로 새롭게 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2009년 예고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우리 섭리사는 올해 주님의 오심을 30번째 맞게 되었습니다. 처음 삼선교에서 작은 케이크 하나 사다 놓고 주님의 성탄을 기쁨으로 맞던 생각이 납니다. 그 때는 몇 십 명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끝까지 오지 못하고 몇 명만 따라왔습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은 너무 크고 겨울이라 추워서 갈 수도 없습니다. 자연성전은 겨울철에는 교회로 사 용하지 못하니 본 교회에서 모여야 합니다. 겨울에는 왔다 갔다 하면 위험하니 모두 신경 쓰지 않게 하 기 바랍니다. 크리스마스에 자연성전에는 기본 트리 장식만 해놓고 각 교회마다 환경대로 개성에 따라 꾸며놓고 주 님을 맞으니 너무나 알찬 분위기입니다. 월명동은 춥다고 기본 장식만 하게 했습니다. 각 교회에서 장식 하여 기쁘게 성탄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월명동에 왜 트리 안했냐고 교단을 오해하지 않기 바랍 니다. 각 교회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좋은 행사 때마다 뵈던 사람이 안 보이면 심정에 충격을 받고 교회에 나와 있는 자들도 안 보인다고 하십니다. “이 쓰린 마음과 심정 을 누가 아느냐. 겪은 자나 안다. 행사 때 생명들을 좀 신경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눈에 제 일 띄는 트리라고 하십니다. 새로 온 사람들은 새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주님의 눈에 확 띄고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웃어주시며 “나와 친구도 되고 사랑하는 자도 되어 평생 동행하고, 하늘나라까지 꼭 와~”하십니다. 이 말을 신입생들에게 전해주라고 했습니다. 또 모든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1년 동안 신앙 지키고, 관리하고, 전도하고, 목회하며 시험에 들었 으나 끝까지 믿음을 지켜 기쁘다. 그런 너희들을 칭찬한다.”고 웃으시면서 전해주라고 했습니다. 아멘! 계속해서 연말로 이어지는 기간이니 사고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못한 것 다 하고, 밀린 일들을 끝내 야 합니다. 조직하는 것도 지도자들이 안 하면 할 자가 없으니 힘들지만 의논하여 어서 서둘러 하기 바 랍니다. 우리가 할 일을 빨리 빨리 안 하는 것을 주님이 보시면 얼마나 답답해하시는지, 서 있다가 그냥 가버리십니다.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영들은 답답하게 하지 않고 즉시즉시 움직여 행하기 때 문입니다. 어느 날 새벽말씀 중에 80여개 잠언을 말씀했습니다. 대부분의 잠언이 “일을 할 때 어떻게 하라.” 는 잠언인데 그 중 한 잠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칼같이 행하고, 불같이 뜨겁고 돌같이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강물같이 유유히 흐르며, 바람같이 거침없이 행하고, 저 하늘의 구름같이 막힘없이 달리고, 화산처럼 말씀을 뜨겁게 입에서 뿜어내고, 마음 은 별같이 총명하고, 태양같이 빛을 잃지 말고, 밀림의 왕인 사자같이 담대하고, 기치를 벌인 군사 같으 나 마음은 물같이 부드럽고, 사막의 낙타같이 건강하여 끊임없이 앞을 향해 가고, 차고도 뜨겁게 행하는 자를 나는 좋아한다.” 주님의 마음을 털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도 사랑하는 자의 성격과 마음 같지 않으면 안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새롭게 맞으며 더욱 이같이 원하심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멘. 때가 때이니만큼 주께서 말씀하심을 다 말할 수가 없으니 희망을 가슴에 뜨겁게 품고, 개인마다 서로 화목하고, 섭리사가 교회적으로 서로 평화로우며, 서로 심정을 알아주고 정이 있는 섭리사가 되기를 원 합니다. 섭리사 민족마다 한 덩어리가 되어 화합하고 하나 되어야 앞으로 큰 역사를 합니다. 서로 믿고 위해주며, 화평과 사랑과 서로 존경함이 없이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없는 것입니 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받게 되고, 하나님도 주님도 함께 그 세계에 임재하십니 다. 또한 그들의 몸을 쓰고 주님의 뜻을 펴십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사랑으로 강림하시고, 절대 믿어야 믿음으로 강림하시고, 화평과 서로 우애해야 그 같은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강림하십니다. 주님이 오셨어도 유대종교와 같은 꼴이 되면 안 됩니다. 입 으로만 “주님, 오시옵소서.”한다고 오시는 주님이 아닙니다. 흠 없이 만들어놓고, 주님의 마음을 가져 야 주님이 오십니다. 잠언의 묵시를 쓸 때는 그 단계까지 행하고 살아야 그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쁜 크리스마스인 데, 왜 기쁜 크리스마스입니까? 그렇게 사는 자만이 왜 기쁜지 압니다. 농사를 처음 지어 보는 자에게 씨앗을 주면서 잘 가꾸면 인생 기쁜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가 꾸고 수고했더니 황금벌판을 보게 되었고, 추수하여 먹고 마시고 여러 가지로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니 ‘이래서 기쁜 날이 있다고 하였구나.’알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하는 자와 내 말을 지키는 자가 기쁨의 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환난과 핍박 이 있고, 갖은 악평으로 수군수군하며 비방하여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그렇게 큰 지장이 없 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야기 들어봐. 농사를 짓는 사람이 누가 칭찬 안 해주고 욕하고 악평하고 미워한다고 자기 농 사를 안 짓겠느냐. 기분이 나빠서 그렇지, 자기 희망을 이루며 자기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남들이 어 떻게 한다고 해서 자기 농사짓는데 그렇게도 큰 지장이 있겠느냐. 퇴비가 있고 가물지 않으면 큰 지장이 없는 것이다. 누가 칭찬한다고 농사 잘 짓겠느냐. 자기 희망이고, 자기 생계문제인데 누가 욕하고 비방 한다고 농사 안 지을 자가 있겠느냐.”했습니다. “섭리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기 구원받는 일이고 축복받는 일이니 누가 칭찬한다고 해서 신앙생활 하고, 미워하고 악평한다고 해서 안 할 일이 아니다. 자체 안에서 돌아가는 일이므로 밖에서 환난과 핍박이 오고 미워하고 음모하면 할수록 더 정신 차리고 잘하게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선생도 과거에 ‘나를 위해 소망과 희망으로 목숨 걸고 하는 일이고, 농부가 농사짓듯 이 영원한 희망을 이루기 위해 신앙의 삶을 사는데 누가 핍박하고 욕을 하고 악평하고 미워한다고 해서 안 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해왔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의 말씀 들으니 그러하기에 지난날 삶 도 그렇게 살아온 것을 더욱 깨달았습니다. 타인들이 말하는 것은 제 것이 아니므로 그같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날 물론 사명이 있기에 해오기도 했지만, 편안했으면 태만하여 이같이 못했을 것입니다. 환난·핍박·미움과 역경을 받은 만큼 더 뛰고 긴장하여서 이같이 해 온 것입니다. 먹장구름이 끼고 태풍 예고가 있어야 더 초인이 되어 일하게 됩니다. 환난이 몰아치고, 외부 모든 사 람들이 우리를 모질고 가혹하게 대함으로 섭리사 우리들이 주님의 일을 더 불붙여 하게 하였고, 더 결심 하고 행하게 하였습니다. 주인 앞의 종은 칭찬해주지 않고 욕하고 미워하면 제 것이 아니므로 일도 조금 하고 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아들은 누가 욕을 하거나 미워하거나 막아도 제 일이기 때문에 기어이 하는 것 입니다. 섭리사는 하나님이 이 시대 주님을 통해 준 역사로 우리들 모두의 것입니다. 모두 각자의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수고하고, 우리가 받고 얻고 갑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신부가 신랑의 것이 자기 것이 된 것 같이, 주님의 것이 우리 신부들의 것이니 누가 무슨 말을 하거나 밖에서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우리들 끼리 서로 칭찬해주며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해야 됩니다. 주인 되는 자끼리 칭찬하고 용기를 줘야 합니다. 또 하나님도 주님도 칭찬하시며, 막지 않고 우리에 게 사명을 주셨으니 좋아하고 만족하며 열심히 해야 됩니다. 가나안 복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살던 땅이었기에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자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섭리사는 우리 것입니다. 섭리사 모든 자들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꾸준히, 구름 같이 거침없이, 칼 같은 마음으로 화산같이 뜨겁게 폭발하듯 말씀을 외치며, 대지의 바람같이 거침없이 달리고, 태양같이 빛을 잃지 말고, 사막의 건강한 낙타처럼 꾸준하게 행하고, 밀림의 왕 사자처럼 담대 하게 행하며, 어느 때는 얼음같이 차갑게, 어느 때는 불같이 뜨겁게 행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굴 하지 말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새롭게 좋은 날이 올 것이니 모두 화목하게 원망 없이 기쁨과 희망으로 날마다 주님 모시고 사는 시 대 신부의 사명을 다하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기쁜 크리스마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니 모두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크리 스마스는 ‘예배’라는 뜻이라고 했지요? 기쁜 예배가 되었지요? 알아야 더욱 은혜가 됩니다. 말씀 마치 겠습니다. <축도> 구주를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며, 주님을 진정 모시고 살기를 원하는 저희들이 되도 록 성령의 감동감화 역사하심이 말씀을 들은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기를 삼위의 이름으로 빌고 축원합니 다. 아멘. <2008년 12월 28일 주일말씀> 하나님이 행하신 지난날을 잊지 말고 생각하라 본 문 출애굽기 19장 3-6절 신 명 기 7장 18-21절 주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모두 기쁜 크리스마스로 잘 지냈어요? 선생도 정말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기도와 말씀의 해였던 올 한해도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으며 목적지인 마지막 주일까지 왔습니다. 할 렐루야! 목적지까지 왔으니 지난날 하나님이 주님과 함께 어떻게 우리를 도우시고 능력으로 행하여 여기 까지 왔는지, 또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 각각 뒤돌아보며 회상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행한 일은 은밀히 행하시기에 우리가 잘 모르지만 지난 일을 생각할 때 깨달을 것이며, 또 겪었기에 생각나고 깨달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기적이요, 감격이요, 기쁨입니다. 섭리 안에서도 각각의 사명이 다르고, 온 길도 다릅니다. 하지만 자기 앞에 험한 바다의 풍랑들을 다 헤치며 각종 고통들을 겪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시간, 모두 각자 지난날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몇 가지 잊어지지 않는 큰일들이 머리에 번득번득 떠오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해내신 후에 ‘내가 너희를 어떻게 인도했 는지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이기도 합니다. 선생도 지난날을 생각하니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서로 만나면 말해주겠습니다. 그동안 모두 간절히 선생을 위해 자기 생명같이 기도를 해주어, 하나님께서 나를 뜻 있는 곳으로 이끄시며 그 원하는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극한 고통 중에 기도할 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지난날을 잊지 말고 생각하라. 다 시 할 수도 없는 역사다.” 했습니다. 지난날, 죽음과 여러 고통에서 능력으로 표적을 보이며 역사해오셨습니다. 정말 다시 재연할 수 없는 역사이니 말할 것은 간증하고 전하여 은혜를 나누므로 기적으로 더욱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 님을 더 알게 될 것입니다. ‘미래도 지난날같이 함께 할 것이니 정말 지난날을 잊지 말고 어떻게 도왔는지 생각하라.’고 했습 니다. 그래야 힘을 받고 희망이 생깁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여러분들 모두에게도 똑같이 하신 말씀입 니다. 과거 죽음과 여러 가지 고통에서 은혜로 역사하시며, 오히려 더 기쁨으로 역사하셨고, 원수의 목전에 서 상을 베푸시고, 하나님도 주님도 더 가까이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생각하니 현실의 여러 고통과 실망스러운 환경과 눈앞에 닥치는 환난 중에서도 감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더욱 믿을수록 걱정도 두려움도 절망도 몰아내며 굳건한 믿음으로 날마다 희 망의 노를 저을 수 있었습니다. 소식 한 마디 전할 수 없었던 암흑의 기간 한 때에도 나와 함께 해주셨 듯이, 또 과거에 섭리 모두와 함께 해주셨듯이, 여전히 함께 해주시고 계심을 확실히 믿음으로 걱정과 염려를 하지 않고 더욱 감사와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나라의 종이 되어 각종 참혹한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이끌 어내려고 하였으나 바로 왕이 내보내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결 국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고, 하나님이 표적을 일으켜 가로막힌 홍해를 건너 신광야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종을 벗어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엄청난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대 모든 자손들에게도 하나님이 이같이 역사하신다는 절대적인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 같은 입장과 같이 섭리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살았으며, 특히 올해 나와 우리 모두는 이 같은 노정을 겪어 왔습니다. 환난과 여러 고통 속에 서로 혼돈 속에 있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그동안 생명의 말씀으로 선악을 분 별케 하며 심령의 새로운 희망을 일으켜 모두들 생명력 있게 살아나게 해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새 로운 희망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도와 말씀’이라는 금년도 주제를 주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약속 대로 이루어주신 한 해였습니다. 믿음과 화합으로 하나 되어 기도하여 섭리사 옛것을 장사지내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 심령이 살아나서 환난 가운데 잃어버린 생명들을 찾아 모아 함께 기뻐하며 역사를 펴며 가게 했습니다. 또한 많 은 생명들을 전도하여 주의 전을 가득 차게 했습니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선생과 같이 있지 못하는 동안 손이 돌아가지 않은 부분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고쳐나갔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성령님의 역사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게 되었고, 미래를 위해 더욱 구체적으로 교정하고 세밀히 근본의 말씀으로 빛나게 했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맞추어 한 해 동안 말씀으로 마음과 삶을 새롭게 다졌고, 기도함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표적들을 일으켰습니다. 사연도 많았으나, 이로 인하여 하늘 뜻을 더욱 굳건하게 하였고, 하나님이 우리 와 함께해 오심을 깨닫고 보면서 모두 생명의 역사를 펴왔습니다. 말 못하는 좋은 일들도 앞날에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얻었습니다. 사람이 고통과 각종 아픈 사연들을 겪으며 깊어져야 뜻도 깊고,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정도 드는 것 입니다. 지난날, 서로 선생과 얽힌 사연 곡절도 많았고, 고통·환난·핍박·여러 어려움 속에 가지가지 사 연이 많았습니다. 사연 때문에 지난날의 일들은 잊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고, 정도 사랑도 깊어지며, 섭리역사에 주님은 더욱 함께 하셨습니다. 고향이 정이 들고 잊어지지 않고 좋은 것은 사연이 많아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사연 뿐 아니라, 고생과 여러 어려운 사연 곡절을 많이 겪으며 그곳에서 컸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모정과 사랑은 그로 인해 겪은 사연이 많아서입니다. 부부사이에도 애인과도 고통스럽고 고생 했던 사연들이 많기에 정이 가고, 무엇보다도 사랑을 하게 되고, 그리워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과 사연이 많아야 좋아서 버리지도 않고 끝까지 사랑해주십니다. 성지 땅에 어떤 나무를 캐다 심는데도 사연 깊은 나무일수록 뜻도 깊고 가치도 더 있는 것입니다. 교 역자들은 모두 배우고 가르쳐줘야 됩니다. 성지 땅의 돌이나 나무들도 사연 따라 의미도 가치도 크고 이 야깃거리가 많아, 들으면 더욱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더욱 감사하며, 우리에게도 그같이 역사 하심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삶속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역사하신 사연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도 그러 합니다. 환경과 장소도 사연이 많아야 이야깃거리가 많고, 들으면 은혜가 많은 것입니다. - 월명동도 선생의 할아버지가 그 산골로 살러 온 사연이 있습니다. 고종 왕 때, 국난을 당하지 않았 으면 할아버지가 그 산골로 살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다. 궁궐에서 여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 은 서울이나 공주에서 태어나 그곳에 고향을 두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연 없는 뜻이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연 때문에 섭리사에 왔는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은혜가 될 것입니다. - 월명동 하나님의 야심작 정이품 소나무도 사연이 있습니다. 미국 순회 가면서 한 아름씩 되는 나무 를 일곱 그루 심어놓고 갔는데, 순회하고 와보니 안타깝게도 다 죽었습니다. 정말 실망이었습니다. 죽은 원인을 알고 보니, 나무가 커서 옮길 중장비가 없어 소나무를 캐놓고 시간이 지난 후에 옮겨 심었기에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제 때를 못 맞춰서 행하면 될 일도 안 됩니다. 소나무 죽은 것에 쇼크를 받고 다시 정성 스레 3년 동안 기도하고 가꾸고 준비해놓았던 소나무를 할 수 없이 그곳에 가져다 심게 되었습니다. 이 는 지도자들을 상징한 나무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야심작에 심게 되었고, 야심작 돌들이 4번이나 무너졌으나 가지하나 상함이 없이 그 극한 환난을 피해 살았던 나무로 표적의 소나무입니다. 굳건하고 싱싱하게 야심작 정이품 소나무로 풍경 을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 ‘자연성전’이라고 새긴 돌도, 앞산 정상에 있는 돌도, 기타 소나무들과 세워진 돌들도 다 사연이 깊습니다. 낙타바위에도 사연이 많습니다. 자연성전 안, 북쪽 돌 틈에 예쁜 소나무도 사연이 많고, 폭포 수 돌 사이에 소나무도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라고 새긴 돌도 깊은 사연이 있어 그 글을 새겼습니다. 약수 샘도 사연이 깊어, 듣고 알고 먹으면 더 치료함을 받는 표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초가집 돌도 사연이 깊습니다. 성전 안, 분재 소나무도 독특한 사연이 있습니다. - 운동장에 제일 큰 느티나무도 사연이 깊습니다. 링거주사 600병을 맞고도 다 죽어 갔습니다. 선생 이 유럽에서 선교를 하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1시간가량 어머님께 들러 인사하고 나오는데 관리 자가 말하기를 느티나무가 도저히 살기 힘들다고 하여 기도해주고 갔습니다. 그러므로 살아난 느티나무 입니다. 그때 안 왔으면 죽었을 것입니다. 선생이 돌 하나를 땅바닥에서 주워 선물로 주더라도 의미와 사연 없이 값없이 주지 않습니다. 월명동 의 모든 돌과 나무들도 사연이 있습니다. 선생님 어머니가 살고계신 청기와 집도 사연 속에 그곳에다 집 을 지었는데, 하물며 여러분들에게 사연이 없겠습니까? 호수 정자와 둥그레 산 정자도 사연이 너무도 깊 습니다. 지난날 모든 고통·고민·걱정 속에 핍박과 갖은 어려움을 받던 여러분들... 많이 겪고 받을수록 사연이 많아 빛나고, 더욱 값비싼 자들이 되고, 그 사연만큼 하나님도 주님도 더욱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 청기와 집 옆에 용트림나무도 故임 영철 목사의 사연이 담긴 소나무입니다. 모두 알고 봐야 은혜가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큰 바위 얼굴도 50년 전부터 사연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주도 뜻있는 곳에 사연 을 만드십니다. - 선생도 많은 사연 곡절을 겪으며 눈물겨워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사연 곡절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갓난아이 때부터 말 못할 많은 사연이 있었고 30세부터 복음을 전하면서 그 짧은 3년 동안 강물 같은 사 연, 바다 같은 사연, 각종 각색의 대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그 말씀들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우리에게도 그같이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도 섭리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겠습니까? 섭리 역사를 펴기 전의 사연들도 그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섭리한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고, 주님이 역사하여 행하심 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때, 하늘만 보며 벽만 쳐다보고 있을 때 선연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와 대화하자.” 주님 의 음성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평생 대화의 길을 찾고, 말씀을 더 깊이 희망으로 깨달았습니다. “하 루하루 주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자.”는 음성을 듣고 극적으로 외롭고 쓸쓸한 때 수십 만 번 기도하게 되는 사연을 낳았습니다. 환난으로 인하여 평소에 상상할 수 없는 말씀들을 깨닫게 되었고, 인내함으로 더욱 표적의 역사를 펴 기도 했습니다. 사사건건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고, 깨달아 보는 것입니다. 말한 것을 통해 말 못한 사연들을 깨달아야 더 깊은 사연을 깨닫고, 깊은 하나님의 뜻도 알게 되고, 선생의 심정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만 들으면 심령의 뜨거움과 감동이 덜합니다. 그 말을 통해 깊이 마음속에 있는 것도 깨달아야 뜨거운 은혜를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섭리의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히 행하십니다. 온전하게 한 일인데 누가 오해하고 누 명을 씌워도 은밀하게 행한 뜻이기에 말을 못합니다. 이를 모르고 사탄의 주관을 받은 무지한 자들은 힐 문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사연을 깨트리려 하는 자들입니다. 때가 되면 무지가 드러납니다. 이 해는 어느 해보다 말 못할 사연이 많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주님과 더 정이 들고, 하나님께 더 가 까이 다가가 사랑을 받은 해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고 기억하게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어려운 때 같이 고생하고 환난과 남모르는 고통을 받으며 사연이 많은 자들이 훨씬 더 정 이가고 기억됩니다. 그들이 고통을 당할 때나 시험에 들 때마다 더 기도도 해주게 되고 돕게 됩니다. 사 연이 깊어야 뜻도 깊은 것 입니다. 뜻 있는 곳에 같이 겪고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경들이 선생을 위한다고 빙자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목숨 걸 고 선생과 일하던 자들을 책망하고 억울한 말을 하고 “선생을 고생시켰네. 막았네.” 각종 말들을 합니 다. 회개치 않으면 부끄러워 선생님의 얼굴을 못 봅니다. 눈으로 보았어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뜻을 모르 면 감히 말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알고 주장하라.’ 하셨고, ‘내 허락 없이 말하지 말라.’하십니 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받고 자기 선조들이 살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니, 타 족속들이 살고 있기에 그들과 싸웠습니다. 싸우는 자들을 쳐 죽이고 쫓아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연과 뜻을 모르는 자들은 여호수아서를 읽고 “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불쌍한 원주민들을 그리 죽이고 쫓아냈느냐. 그 같은 하나님과 성경을 못 믿겠다.”고 하며 안 믿는 자들도 많습니다. 사연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는 무지함 때문입니다. 남의 나라에 끌려가서 종 살이 하고 돌아왔는데, 자기 땅과 집에 다른 족속이 살면 안 쫓아냅니까? 자기들은 집과 나라는 고사하 고, 동전하나라도 누가 자기 것을 가져가면 대판 싸우는 양심들입니다. 자기 눈에 들보는 안 보이고, 남 눈에 티는 지적하는 자들입니다. 자기를 볼 줄 모르는 자는 다른 사람을 볼 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뜻을 펴고 행 하시니 사람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믿지 않고 남의 나라 땅을 제 땅이라 하며 400년이나 살 았으니, 주인이 오면 그동안 잘 썼다고 감사하며 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선생도 10년 만에 와보니 많이 변했습니다. 고로 하나님과 주님은 나를 통해 여호수아 때같이 한 해 동안 의로 싸워 말씀으로 사탄들과 육적인 마음과 자기를 중심하는 마음과 귀신들을 마음에서 다 쫓아냈습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선생의 뜻이 무엇인지 그 행함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들은 섭리사의 종들입니다. 종들은 욕심이 많습니다. 자기 주관이 많습니다. 모두 기도조건을 세워주므로 민족을 불안하게 하고 화평치 못하게 하는 사탄과 귀신들을 다 물리쳤습 니다. 섭리나라의 화평을 깨트리는 사탄, 귀신, 인사탄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다 물리쳐 없애도록 하나님은 그 천사들을 보내어 그동안 역사해오셨습니다. 싸움과 다툼과 미움과 시기, 분노와 혈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방해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사자들은 그냥 두고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그 역시 지금껏 한 해가 다가도록 역사해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너희가 애굽의 종 되었던 때, 그곳에서 내가 너희를 어떻게 이끌어내 었는지 잊지 말고 생각하라.”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사탄과 마귀와 귀신·자기중심·인사탄들의 종 되었 던 곳에서 하나님이 이끌어내시고, 각종 환난에서 이끌어 내주신 이 한 해를 잊지 말고 기억하며 감사해 야 되겠습니다. 선생은 누구보다 애굽의 세계가 끔찍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옛것은 모두 새것에 옮기지 말고 버리고, 새 것은 새 것과 하나로 꿰매라.” 고 했습니다. 바울 선생은 새로운 것으로 가고 옛것은 버리자고 하며 율법아래서 벗어나라고 말했습니 다.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자들은 아직도 율법 속에 옛것에 매여 사는 자들입니다. 시체를 장사하듯이, 옛것은 장사지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해주신 과거의 일들을 정말 잊지 말아라. 그같이 또 돕고 역사할 테니 정말 잊지 말 아라.”말씀하셨습니다. 지난날 함께하신 것을 기억하며 하나하나 감사하고 꼭꼭 이야기를 해야 앞으로 도 그같이 또 도와준다고 한 말씀입니다. 사람도 지난날 해준 것을 잊지 않고 감사해야 또 해주는 것입 니다. 그리고 썩은 행실이나 썩은 마음이나 옛것의 죄들은 회개하여 모두 버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새해 와 묶은 해의 전환점에 있습니다. 전환할 때 옛 것을 못 버리고 버릴 것을 못 버리면, 새로운 천리마의 섭리열차로 갈아타지 못하게 됩니다. 옛 짐을 짊어진 자들은 새로운 섭리열차에 타지 못하도록 주님이 천사들에게 지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하였지만 주님은 “내 생일 전에 돌아오게 하라.”했습니다. “돌아오지 않은 자는 새롭게 가는 새해에도 같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같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 로 보면 육은 따라 오는 것 같은데 영은 구속되어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곧 살았다 하고, 따라 온다고 하나 따라오지 못하는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육계로 보면 속기도 하지만, 영계로 보면 그 실상이 모두 다 드러납니다. 알곡으로 보이든지, 쭉정이 로 보이든지, 잡초로 보이든지, 활엽수로 보이든지, 상록수로 보이든지, 과일나무로 보이든지, 실존의 현상을 보여줍니다. 고로 새롭게 되기 위해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행실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영계에서는 자기 이름을 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아도 보는 자가 보는 순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생명의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영계 한 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 위치에 가니 나와 있었습니다. “너를 위해 기도하는데 얼굴만 떠오르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불 렀다.”하며 쳐다보니 즉시 기억이 났습니다. “너 위해 기도하는데 어떻게 지내냐.”물으니, 그가 말하 기를“교회 안 나오다가 선생님이 꿈에 나타나 교회 나오라고 하여 지금은 나옵니다.”하였습니다. 생시 에 직접 알아보니 안 나오다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각자 구원이며,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곁눈 팔지 말고 자기를 위해 달려야 됩니다. 사탄보다 늦게 가면 사탄의 종이 되어 사탄을 따라다녀야 됩니다. 주님은 “너희 의가 저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자가 누가 자기 마음 거슬리는 일이 있다고 자기 노선에서 벗어나 다투고 싸우 면 더 이상 뛰지 못하여 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위해 부지런히 뛰어야 됩니 다. 원통하고 후회스럽고 분통한 것은 상을 얻을 것인데 곁눈 팔고 다툼으로 인하여 얻지 못한 것입니 다. 자신이 모르고 행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겠습니까? 영계로 보면 성경에서 말한 그대로입니다. 바울 선생은 “곁눈 팔지 말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 상을 얻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상은 노트나 금메달이나 금일봉에 속한 세상 경주장 입장으로 생각하면 절 대 안 됩니다. 구원의 상이며 선의 상입니다. 구원의 상은 곁눈 팔지 않고 열심히 뛰는 자들만 받았습니다. 곁눈 팔고 옆의 사람과 싸우고 다투는 자들은 제대로 못 뛰어 상을 얻는 자가 없었습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나의 달려올 길을 다 달려 왔으니 이제 나를 위해 구원의 면류관이 준비됐다.”고 했습니다. (딤후 4:7-8)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 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 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한 해 동안 이 해가 다 가는 오늘까지 여러 핍박과 고통과 오해와 원통한 일과 미움을 받으면서 섭리 사를 부지런히 뛰고 관리하고 외치며 달려온 여러분들... 참으로 잘했습니다. 승리한 자들이며 대단한 자 들입니다. 각자 참고 견디며 기도한 보람이 있고, 주님이 돕고 선생님도 기도한 보람이 있습니다. 그 수 고가 헛되지 않고 영원하며, 이미 구원이라는 빛 가운데 주님과 일체되어 사는 자들입니다. 주와 함께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한 해 동안 환난과 각종 경제난과 환경의 어려움 속에 심신이 힘든 대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입지 도 못하면서 약한 몸으로 관리하고, 가르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구제하며, 단상에서 외치고, 약한 자들을 돌아보고, 거리로 돌아다니면서 섭리를 증거하며 각종 각 분야들의 환난도 이기고 굳건하게 하느 라 수고들 많았습니다. 더위와 추위 속에 잠도 못 자면서 기도하고, 잃은 양들과 많은 생명들을 돌아오게 하여 주와 동행케 하며, 어린 신앙인들을 위해 열심히 뛰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예술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섭리를 증 거한 섭리 예술인들과 교단을 중심한 각 기관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해놓고도 말 못할 일들이 있지요? 하나님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아시고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십 니다. 서로 몰라 아픔도 고통도 주었고, 잘하자고 한 것인데 형제들이 오해도 하여 마음 아프고 심정타 는 억울함과 분통한 일들을 겪으면서 온 것들이 하나님의 뜻 속에 큰 사연을 낳아 더 큰 뜻과 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 기도하게 되었고, 주님이 더 큰 사랑으로 더 귀히 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고생 되어도 생명 길로 가므로 육도 영도 살아야 됩니다. 사탄과 귀신들은 우리의 화목을 더욱 깨트리게 하고, 형제들의 우애를 파괴하게 했습니다. 맨 마지막 에 멸망을 받는 자는 사탄이요, 귀신들입니다. 항상 근신함으로 믿음을 굳세게 하고, 우애와 화평과 오 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위해주며, 충성으로 주권을 삼고 행해야 됩니다. 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하심에 감사하고 그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영원하기를 빌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주님이 범사에 늘 우리와 동행하심에 감사드리며 주를 향한 사랑이 영원해야 되겠습니다.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축도> 한 해 동안 여러 고통과 핍박과 환난 중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사 그 뜻대로 우리들의 희망을 이루 어주시고 각종 은혜와 사랑과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신 성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께 감사하며, 이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니다. 아멘. <2008년 12월 31일 수요말씀> 기도와 말씀, 뜻과 사연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주님의 사랑으로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금년도 마지막 날이면서 마지막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자에게는 할 말 도 많고 지난날의 사연도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우리들에게 그러하십니다. 올 한 해 동안 하늘에 얽힌 사연도 많았고, 선생님과의 사연도 많았습니다. 환난과 풍파와 갖은 고통 들을 마음에 많이 겪으며, 몸소 어려운 일들을 많이도 겪은 한 해였습니다. 모두 주님을 중심하여 선생 과 함께 잘해보자고 한 일들로 인하여 서로 심정의 쓰라린 일들이 많고도 많았으며, 사연과 우여곡절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오해와 아픔은 쉬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생을 사랑함이 거짓 없는 고로, 말씀을 통해 이 해가 가 기 전에 풀어지고 이제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되었으니 보람 있고 선생도 기쁩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진정 한없이 사랑해주시고 긍휼히 여기신 은혜이며,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의 역사이며, 간절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끊임없이 역사 해주신 결과입니다. 다함께 말해볼까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진실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한 목소리로 말해보도록 하겠 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주님.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원하는 것을 주셔서 진실로 감사합니다.” 하늘과 땅의 사연곡절들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성령님의 감동으로 더욱 생각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 고 서로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면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겪을 때는 가슴 아프고, 서로 오해도 하고, 심정 태우며 애간장 태웠습니다. 또 서로 원망했던 일들 과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 쉬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우연이 아닌 하늘의 사연과 땅의 사연이 있었던 것을 알고는 울다가 오히려 웃기도 했습니다. 몰랐을 때 불행했던 일도 알고 나서는 행복한 사연 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행위에 따라 어련히 알아서 하셨겠느냐.”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주님이 사랑하는데 해를 주겠느냐. 그러니 「주님 나 사랑해요?」라고 묻지 말라.”했습니다. 몰라서 그렇지 싸우는데도 사연이 있고, 고난과 억울함을 받는데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하늘사연이 있었던 것을 다 겪어 보았습니다. 무지 속에 상극하지 말라고 이미 배웠습니다. 생활 속에서 늘 말씀을 잊지 말고 호흡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자기를 위한 일인데 몰라서 싸우고, 그 후에 그로 인하여 잘되면 그에게 미안하여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가 되어 회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연 속에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사연이 함께 있어, 성령의 감동의 역사가 일어났던 일들이 한 해 동 안 너무 많고도 많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한 해를 회상하며 매듭짓는 마지막 말씀으로 하려합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주님을 믿는 자들로 인하여 마음 아픈 사연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2008년이 넘은 오늘까지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선조들이 그 시대에 주님의 마음을 너 무 아프게 하고 주님을 믿는 자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며 가혹한 짓들을 하였기에 선조들의 죄를 회개 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괴로워 양심상 주님을 사랑하며 무엇을 해달라고 감히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죄만 회개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성장하여 철이 들면 어렸을 때와 달리 부모를 대하듯, 신앙의 어른이 된 자라면 자기 선조들이 행한 잘못까지 하나님과 주님께 회개해야 됩니다. 사람 도 그 사람에게 꺼리는 것이 없어야 마음에 거리낌 없이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실 때 마음에 거리낌 없이 살아야 마음껏 사랑하게 되고, 구할 것도 떳떳하게 구하게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고 삽니다. 그 죄가 후손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 죄를 지은 자신에게는 그 여파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죄에 대해서 모르니, 회개하여 용서를 받은 자 가 그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용서받는 것처럼 기쁜 일이 없고, 회개하여 죄를 씻어 없앨 때처 럼 기쁜 일도 없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죄 지은 것만큼은 다 회개하여 용서받음으로 죄보따리를 지고 새로운 해를 맞는 자 가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짤막한 공생애 3년 동안, 행복한 일들과 마음 아픈 일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펴면서 있었던 일들, 혹은 홀로 가시면서 있었던 일들, 이방인들과 얽힌 일들, 그리고 그 시대 반대하고 괴롭히던 종교인들과 얽힌 일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2000년 동안 그 사연에 얽힌 이야기들이 결국 설교가 되고 생명의 말씀이 되어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사연이 없었더라면 주님을 사랑하더라도 이야깃거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4000년이나 희망으로 기다렸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인생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지상에 천국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일 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했건만,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취급하 고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은 AD 70년에 피로 물든 강산으로 변해버렸고, 이스라엘 민족은 마치 쇠고랑을 찬 한 여인처 럼 애처롭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운명의 길을 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의 앞날을 보시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하였건만, 너희는 원치 아니하였노라.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민족이 모두 흩어져 이웃나라에 묶여 끌려간다.”고 했습니다. (마 23:37-39)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 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결국 그 말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보낸 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느 시대든지 누구 나 망하고 민족도 망한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느냐고 물었지만 “너희는 알 바 아니다. 개국 이래 이 같 은 환난이 없을 것이다.”말씀하시고 슬퍼하시며 마음속에 홀로 눈물의 강을 흘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사랑하는 제자들이 당할 일들을 생각하시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직도 자기 선생이 가는 길을 모르고 있는 것을 보시고 답답한 심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알면 불안하고 걱정하니 말을 안 해준 것입니다. 홀로 고독한 마음을 겪으시며, 오직 이 모든 일을 아시 는 하나님께만 기도하며 속이야기와 사연들을 털어 놓으셨습니다.(마 24장) 주님에게는 이 같은 사연곡절이 많고도 많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자들이 주님이 세상에 살 아계셨을 때 어떻게 살다가 가신지 모르고 믿으면, 깊이 사랑할 수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 예수님 살아생전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집에 얽힌 사연도 참으로 깊습니다. 이는 2000년 역사를 두고 말하는 사연이 되어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었고, 주님을 다시 깊 이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그 가정을 부러워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 시대에 그같 이 행하십니다. 향유 옥합을 쏟아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긴 마리아를 쳐다보며, 가룟유다 는 마치 주님의 심정이나 안다는 듯이 “아니, 그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얼마나 좋으냐.”하며 마리아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보시고 가슴속에 묻힌 사연을 말씀하시며 “실상은 나의 죽음을 위해 하는 일이다. 이 여인이 한 일을 이 복음이 가는 곳마다 말하여 교훈하여 마 리아와 같은 자들이 일어나게 할 것이다.”했습니다.(요 12:1-8) 주님의 말씀대로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 옥합을 부은 이야기는 2000년 역사를 두고 말씀하 여 모든 자들로 은혜와 감동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게 했을 뿐 아니라, 많은 자들이 주를 위해 젊음의 향 유를 쏟아가면서 주님을 따르게 했습니다. 선생도 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젊음의 향유 옥합을 주님께 드려 쓰시게 했습니다. 깊은 사연을 남긴 성경을 자세히 읽고 깨달으려 기도해야 자신에게 할 일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이 순 간에도 자세히 들어야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한 과부의 헌금은 주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였고, 누구든지 헌금하는 자들은 이 같은 마음으로 하라 고 산 교훈을 주었습니다. 가난했던 사연의 헌금이 이같이 2000년이나 두고 말하게 될 일이었음을 그 과 부는 몰랐을 것입니다.(눅 21:1-4) - 한 소경이 예수님을 보고 자기 좀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어, 주님은 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 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결국 나았습니다.(요 9:1-7) 이 기적의 사연은 너무도 기이하고 깊은 사연이며, 주님의 오묘하심과 능력을 보게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영적 소경들과 치유가 전혀 불가능하여 희망이 없는 자도 주를 부르고 찾으면, 어느 시대 누구든 지 그같이 된다는 희망의 사연을 주었고 고침을 받게 했습니다. 소경은 앞날에 그 같은 뜻이 있을 것을 후에 가서야 깨닫고 과거의 사연을 풀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 말씀을 상기하며 믿는 자들에게 신기하 고 기이한 병 고침의 역사가 연속되고 있습니다. -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나사렛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주 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능히 고쳐줄 것을 믿는 자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 중 한사람이 주님께 감사하다고 하였을 때 “너만 나았느냐.”물으니 “모두 다 나았습니다.”했습니다. “그런데 그 들은 왜 안 왔느냐. 어디로 갔느냐.”물었습니다.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한국의 속담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열의 하나’의 감사를 받으시며 그를 축복해주셨습니다.(눅 17:11-19) 고침을 받은 열 명 중에 한 사람만 주님께 감사하므로 십일조가 생각나게 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도 감사는 하는 자만이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만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감사하는 자 에게 더 축복하심을 교훈하시며, 하늘의 비밀과 은밀한 사연을 남기셨습니다. - 주님은 사마리아 땅에 가시어 몇 마디의 대화 속에 자기를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임을 깨닫는 우물 가 여인으로 인하여 유대종교인으로부터 받은 답답한 심정의 한을 푸는 사연을 남기는 날이 되었습니다. “너희도 이같이 나를 깨달으라.”는 주님의 속심을 외치게 했습니다.(요 4장) 이 시대도 모두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처럼 주님을 확실히 믿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확실히 모르 고 믿으면 주님과 정이 안 듭니다. 사연이 깊을 수 없습니다. 사연은 그와 고생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함께 겪으면서 생기는 것입니다. -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 로는 속 시원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곳은 깊은 사연의 자리가 되었고, 주님을 깨닫지를 못하는 자들의 심령의 눈을 뜨게 하는 말씀의 사연을 남겼습니 다.(마 16:13-20) 주님은 “너희도 이같이 화끈하게 나를 깨닫고 믿으라.”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동안 주님과 같이 겪 은 지난날의 사연을 풀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깨달아야 지난날 사연들이 풀립니다. - 세례요한과 얽힌 사연은 심정답답하게 제 주관대로 믿거나 자기를 중심하는 자들에게 교훈을 준 사 연으로써, 주님과 일체되지 못하고 답답하게 누구를 맞을지 모르고 사는 신앙인들을 가슴 뜨끔하게 깨우 치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또한 주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고, 증거의 사명을 제대로 하도록 사명자들을 교 훈하는 깊은 말씀의 사연을 남기게 하여 시대마다 외치게 했습니다. - 엄청난 사연이 담긴 골고다 십자가의 사연들은 주님을 따라 믿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충격과 슬픔과 가슴의 한을 갖게 하며, ‘너희도 너희끼리 무지 속에 이같이 형제들을 미워함으로 고난을 주지 말라.’ 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에 따른 주님의 말씀을 역사로 남기며 구원의 길로 가는 사연을 남기게 했습니 다. 하지만 2000년 동안 같은 주님을 믿으면서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싸웠습니다. 혈기에 가득 차서 주를 죽이듯이 믿는 자들끼리 죽이고 싸우며 신앙전쟁들을 해왔습니다. 선생도 여러분들에게 말했습니다. 기 성들이 나를 미워하고 시기질투하고 악평하듯이 여러분들끼리 같은 선생을 따르면서 그 같이 하지 말라 고 했는데도 서로 미워하고 악평하며 싸웠던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세는 고통스럽고 마음이 아팠지만, 결국 그 같은 사연으로 지구촌에 주님을 믿고 따르는 역 사는 인파의 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도 몰랐을 때는 그같이 싸우며 오해했지만, 사도 시대같이 서 로 하나 되어 온 세상을 복음으로 번창하고 창대케 해야 됩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육신이 살아있을 때 마음껏 하지 못한 일을 다시 영으로 오시어 2000년 동안 믿고 따르는 자들을 통해 기어이 구원의 역사를 폈습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채 하나님을 믿던 유대종교인들의 후손들 앞에 주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의젓하고 떳떳하게 역사를 보여주어 그들을 무색하게 했습니다. 주님은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시고, 살아있을 때 자신을 대하던 그 사연에 대해 침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은밀히 그 사연을 말해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2000년 동안 역사를 펴시면서 받은 모든 사연들을 가슴에 품고서 자기를 믿어주고 신임하며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들과 자신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음을 전하고 인생을 바치며 사는 구원 받은 자들을 위해 그 있을 처소를 상상할 수 없이 다 준비해놓 고 다시 오셨습니다. 그 나라의 문이 우리 앞에 가까이 와 있으며 주님은 곁에서 우리들이 하는 일을 보 고 계신답니다. 준비하고 예비하고 미련 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될 한 때를 우리는 보내고 있습니다. 구약역사의 사연들은 큰 사연들만 말해도 수백 개나 됩니다. - 고통을 통해 축복 받은 요셉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3년 동안 감옥에서 고통 을 받으면서도 낙심치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살았습니다. 요셉이 어렸을 때부터 호랑이 같고 야수 같은 배다른 형제들이 그를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계속 미움 을 받다가 결국 이웃나라에 팔려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억울한 이성의 누명까지 쓰고 3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충성하였습니다. 결국 그 옥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연이 있었으니, 왕의 번민을 풀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여 그 시대 민족의 문제를 풀어주었고, 왕의 다음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무시하고 미워하고 가혹하게 대한 형제들이 놀라 평생 우러러 섬기게 한 사연이 되었고, 자기를 억울하게 한 자들을 마음대 로 대할 수 있는 권력을 하늘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제야 지난날에 자신이 당한 사연을 풀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이 있어 나를 이렇게 이끄신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감격해 한없이 울기도 했습니다. 파란만장한 요 셉의 삶과 같이 고통을 겪지 않은 자는 말 못할 그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고통과 억울함 속에 하 나님의 깊은 뜻이 들어 있었고, 세상은 그같이 대하여도 하나님은 절대 그렇지 아니함을 알게 되었습니 다. 요셉의 형제들도 요셉을 통해 극심한 흉년으로 인하여 닥칠 삶의 고통을 피해 살게 되는 운명으로 가 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한 족속과 민족을 이루어 다시 돌아와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게도 되었던 것입 니다. 하나님의 뜻 속에 사는 자들은 다 이 같은 사연이 있음을 믿고, 담대하고 떳떳하게 어떤 환경에서 도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한 주님을 믿는 자들이 교파가 다르다고 서로 이단시하고 미워하고 가혹하게 대하던 이 시대도 마치 배다른 요셉을 대하듯 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주님이 사랑하니 결국은 대역사를 이루어가게 했습 니다. 이단시하고 미워했던 자들이 결국은 주님을 더 바로 알고 더 증거하며 구원을 받고 보람 있게 살 아가도록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 다윗에게도 사연곡절이 많습니다. 사울 왕으로부터 갖은 고통을 받았지만,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맡기기 위한 사연을 낳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을 때는 지난날 사울 왕에게 받던 사연들이 다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알고 의문을 풀었고 시편에 기록했습니다. - 요나가 받은 고통의 사연은 결국 니느웨 성에 살고 있는 12만 명을 회개시켜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 함이었습니다. - 모세의 사연곡절 고통들은 결국 하나님의 민족을 자기 땅으로 인도해 내기 위한 역사적인 사연 때 문이었습니다. - 에스더가 왕후가 된 사연은 실상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사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 없는 자기 민족을 모두 죽이려 했던 하만을 죽게 할 자는 왕후 에스더가 아니면 할 자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왕의 부인이 되어 사는 입장이 아니라 억울하고 원통한 민족의 한을 푸는 뜻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에스더는 기도함으로 민족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 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구를 위해, 민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면 꼭 해주십니다. 악한 자로 인하여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놓인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 로 세운 은밀한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이 시대도 하나님이 그같이 사명들을 준 것은 자기 백성을 구하고 자기 사랑하는 자를 구하라고 하신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사연이 있어 자신을 그 같은 위치에 세운 것은 사명을 하는 자 밖에는 아무도 모릅 니다. 오직 그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주님도 함께하며 역사하십니다. 절대 자랑 말고, 알아달라고 말해도 안 됩니다. 말하는 자들은 사탄이 주관하는 자입니다. 정말 사명을 받은 자는 절대 말하지 않는 자입니다. ‘여호와 이레. 준비해놓으셨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뜻 있는 자를 그 뜻대로 쓰십니다. 쓰임 받는 것도 복입니다. 선생이 홀로 가는 곳 같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미리 여기저기 필요한 자들을 사연 깊 이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프랑스·이태리·독일·스페인·영국·미국 등 각 나라에 갔을 때, 이미 하나님은 주님과 함께 가장 필연적인 통역관들을 15년 전부터 준비해놓으셨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선생님이 왔을 때 통역하려고 이같이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통역하 면서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나라에 복음을 넣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연들이 다 풀 려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펴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는 곳마다 미리 다 준비해놓 고 행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이같이 준비해놓으셨는데 내가 안 왔으면 절 대 안 될 뻔 했다.’는 말이 절로 입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겪고 왔을 것입니다. 지난날을 모두 회고해보고 현실을 생각하며 쳐다보면 이 말씀 과 일체가 될 것입니다. 말씀이 끝나면 모두 자기의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은혜 나누는 시간을 갖기 바랍 니다. (수요예배 후에 이 말씀에 따라 간증하는 시간을 갖고, 교회별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에 밤 11 시부터 전체 생방송으로 이어집니다.) 사연곡절 끝에 미리 준비해놓으신 자들을 보면 하나님께 쓰여 질 때까지, 선생에게 쓰여 질 때까지는 ‘왜 내가 여기에 와서 이렇게 외롭게 살지?’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기도는 했어도 이같이 홀로 외 롭게 살려고 기도하지는 않았는데... 꼭 선생님 만나게 기도했는데, 왜 내가 광야 같은 이곳에 와서 쓸쓸 하고 처량하게 있게 되었지?’하며 날마다 밤이 깊도록 생각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와 “이 밤중에 누구야?” 하며 문을 열고 어둠 속에 음성을 들어보았더니, 설교 때 듣던 음성... 그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참으로 놀랄 일이지요? 사연이 풀 리는 감격의 눈물이 선생에게도, 그에게도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때는 자기 홀로 소쩍새처럼 살고 있는데 선생이 거쳐 가다가 그 마을에 살러왔다고 하니, 놀라 지 않을 수가 없어 감격해 울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왜 내가 넓은 땅을 두고 여기 와서 살게 되었 나?’ 사연을 풀지 못하고 살았지만, 선생을 만나고 깊은 사연임을 그제야 깨닫고 흐느끼며 하나님께 감 사했습니다. 준비된 자들이 없었더라면, 선생도 실상은 광야에서 길 잃은 양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내 옆에 계시면서 “걱정 마.” 단 세 마디로 나의 모든 것을 다 풀어주는 열쇠였습니다. 뜻 을 따라 가보면 구사일생으로 그곳에 한명씩 와 있을 때도 있었고, 아무도 없을 때는 그곳에 사는 자를 연결시켜 사연의 주인공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도 없이 정말 나 홀로 있을 때는 주님이 곁에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 네 옆에 있다. 아무 걱 정 말아라. 나 있으면 됐잖니. 너는 공포에 싸여 있느냐. 어떻게 인생들을 대하고 죄인들을 다루는지 모 두 자세히 보고 겪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 이것이 지금 네가 꼭 해야 될 내가 원하는 일이다.”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어서 주님이 자주 내게 와서 도우셨습니다. 선생이 여러분을 위해 기 도한 것도 주님이 나를 살피듯, 환난 중에 잘 살펴주었다고 했습니다. 또 주님은 “네 몸에는 아무 해를 주는 자가 없을 테니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말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주님과 얽힌 사연과 선생과 얽힌 사연 속에 지난날들을 추억하고 회상하며 금년도 마지막 밤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특히 선생이 한국에 없는 동안, 그리고 각 나라 순회를 못하는 동안 모두 각자 맡은 일들을 하느라 정말 수고들 많았습니다. 자기만이 자기가 겪은 고통을 알고, 오직 하나님과 주님만이 자세히 아십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해줘도 그 심정을 몰라줍니다. 알아주기 원하고 심정을 풀려면 그 사연을 주님께 이 야기하고 하나님께 이야기하기를 바랍니다. 선생을 만나서 이야기해주면 듣겠지만, 일일이 안 들어봐도 기도하면서 다 겪고 마음에 느껴옵니다. 선생이 더 많은 고통도 겪고 일을 했기에 잘 압니다. 나무 한 그루 심는데 얼마나 힘들고 수고를 해야 되는지, 전도 한 사람 하기 얼마나 힘든지, 가르치고 관리하는데 얼마나 애로가 많고 심정이 상하는지, 먹고 살면서 십일조하고 헌금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씀 전하고 섭리 일하면서 외부 사람들로 핍박 받고 억울한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심정이 상하고 화가 나고 울화통이 터지는지, 또 같은 섭리 길을 가면 서도 심정 몰라주고 고통 주는 자들로 얼마나 심정이 상하고 애간장이 탔었는지 다 압니다. 가정국들이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며 하늘 가정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다 압니다. 좋은 사연들을 만나면 다 풀어지는 날이 또 옵니다. 그런 가운데 믿음을 버리지 않고 신앙을 지 키며 주님을 사랑하고 온 사연들로 인하여 결국 주님과 정이 들게 되고, 더 큰 사랑을 받게 된 동기가 되고, 선생과도 더 가깝게 된 것입니다. 예술 하는 자들도 무대에 설 때까지 얼마나 준비하며 숨은 수고가 많은 지 짐작이 아니라 해봐서 그 심정을 다 압니다. 목회자들의 심정도 압니다. 선생도 목회를 하고 있으니 그 심정을 알고 꼭꼭 기도해줍니다. 놀지 말 고 열심히 해야 됩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춥고 배고픈 고통을 겪고 사는 자들과 희망조차도 잃고 사는 자들, 가정 핍박을 받 는 자들, 모두 겨울이 지나가듯 어려움이 지나가게 되고, 봄이 오면 왜 이 같은 사연들이 있었는지 깨닫 고 웃을 날이 꼭 옵니다. 핍박과 어려움 중에 주님은 더 역사하십니다. 앞날에 희망을 이룬 후에는 모두 사연들이 됩니다. 선생도 산 속에 있을 때,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헐벗고 잘 곳 없어 사경을 헤매던 길고 긴 몸부림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주와 같 이 많은 생명들을 하나님께 돌리며 섭리사를 폈을 때는 ‘이러므로 과거에 이 같은 사연들이 있었구 나.’하며 다 풀리고, 그 사연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섭리 모든 자들은 낙심도, 의심도, 좌절도, 포기도 말고 감사하며 힘을 얻으라고 주님이 이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를 선생도 깨달았기에 담대히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일 을 해야 됩니다. 일해야 존재합니다. 어젯밤 꿈 이야기 하나하고 말씀 계속 하겠습니다. 꿈에 숲 속에 지은 허술한 집 앞을 지나가게 됐습니다. 그 마당과 정원을 보니 “놀자”판이었습니 다. 옆 사람을 보고 “이 누구네 집이요? 집을 보아하니 먹고 살기도 어려운 가난하게 사는 집 같은데, 이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어 논단 말입니까?”했더니,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이 집 유명한 집인데 집 주인 몰라요?”했습니다. 여러분, 이 집이 누구네 집 같습니까? 대답 좀 해봐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노는 것을 보니 놀부 그 녀석 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아련히 떠올라 “아 주머니, 혹시 놀부네 집이 아닙니까?” 했더니, “아시는구먼. 놀부네 집 맞습니다. 놀부네 집에 왔으니 놀아야지요.”했습니다. 이에 나는 “이 길로 가서 우리 큰 어머니가 아파 기도해주러 갑니다. 전에는 이 길이 없었는데, 놀부네 집 때문에 큰 길이 났네요.”했더니 “요즘 노는 자들이 많아 길을 넓게 닦았 어요.”했습니다. 대청에서는 음식들을 차려놓고 먹고 놀고 있었습니다. 쳐다보니 세상에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세상 에 있을 때 술 마시며 잘 놀던 자들이 거기 다 모여 먹고 마시며 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를 보고 인 사를 하며 어서 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갈 길이 바쁘다고 거절하며 다른 허술한 건물을 들여다보았습니 다. 거기에는 섭리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습니다. 누구라고는 이름을 말할 수는 없는데 거기 올 자들 이 아닌데 꽤 와서 놀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까이 가니 그 중에 일부가 알아보고 “선생님이 여기 올 줄은 몰랐어요.”하며 깜짝 놀라 슬 슬 빠져나갔습니다. 몇 명이 남아서 하는 말이 “요즘 쉬고 있어요.”했습니다. “왜 쉬느냐. 노느냐.” 물었더니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 말이 자기를 두고 말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다시는 놀부네 집에 안 가 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선생은 그 길을 따라 내려가 아파서 다 죽어가는 큰 어머니를 찾아가 기도해주어 다시 살아나게 해주 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놀부네 집 앞 길로 오면서 보니, 역시 놀부네 집은 노는 자들로 차고 넘쳤습니 다. 요즘 경제가 죽어 있는데 놀부네 집만 사람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곳에 섭리사 사람들은 보이지 않 았습니다. 경제가 어려워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할 일은 있습니다. 일은 찾으면 있고, 해야 할 일이 제대로 보입니다. ‘사연’하면, 자연성전을 건축할 때 하나님의 야심작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심작에 대한 사연 은 깊고 깊으며 고통도 많았습니다. 네 번이나 무너졌을 때는 마음 쓰라린 고통의 사연밖에 없었지만, 다섯 번째 쌓아놓았을 때는 네 번이나 무너진 사연을 깨닫게 되었고, 모두 기뻐 좋아하면서 그제야 과거 의 고통을 다 떨쳐 없애고 기쁨의 대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10년이 지난 오늘도 그 사연을 회상하 며 그곳을 생각할 때 기쁨이 떠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사연들을 잊으면 하나님도 주님도 열심히 역사를 안 하십니다. - 한번은 눈코 뜰 새 없이 성지땅 작업을 하는데 범석 목사가 “선생님, 다름이 아니고 아랫마을 상 래 형 땅으로 길을 넓히면서 우리가 도랑도 손질해준다고 약속했었죠? 며칠 전부터 약속대로 포크레인을 내려 보내 물 내려가는 도랑 좀 손 봐달라고 계속 전화가 오네요. 특별히 손 댈 것은 없는데 말을 계속 하니 잠깐 가서 해줘야 되겠네요. 며칠 전에도 지금까지 안 했느냐고 독촉이 와서 말다툼을 했네요.”했 습니다. 할 수 없이 바쁜 일을 중단하고, 500m 중 말거리 들어가는 먼 곳까지 포크레인을 몰고 갔습니다. 포 크레인은 먼 길을 가면 기계에 무리가 많이 갑니다. 그렇다고 한 번 쓰는데 비싼 차를 불러 실어 나를 수도 없었습니다. 선생도 같이 내려가서 도랑을 넓게 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실상은 많은 양의 물이 내 려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만 도랑을 넓힐 필요는 없었습니다. 일을 다 하고 마지막 손질을 하는데 포크레인 기사가 “선생님! 돌 하나가 긴 것이 걸리는 데 빼볼까 요?”하기에 “적당히 하고 어서 가서 일해야지.”했습니다. 그런데 또 “돌 길이가 긴 것 같은데 빼볼 까요? 말까요?”했습니다. 순간 마음이 감동되어 “네 마음대로 해.”하고, 5분 쯤 지나니 돌 하나를 뺐다고 하며 들고 보여주 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갖다 세우면 되겠다.”하니, 기사는 “어차피 빈 차로 가니까 하나들고 가면 그래도 기름 값이 되잖아요.”하며 껄껄 웃었습니다. 일하는 자들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그냥 버리고 가려다가 모두 좋아하기에 “이왕 빼냈으니까 가지고 어서 가자.”하고 같이 왔습니다. 결국 운동장에 갖다 놓고 “오늘 품삯이야. 그래도 공은 안 쳤네.”하며 모두 좋아했습니다. 돌이 별로 안 커서 세워도 본때는 안 나지만, 세울 곳에 세우면 괜찮겠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 다시 보니 사람 지체의 한 부분으로 보여 깜짝 놀랐습니다. 그 돌이 예사롭지 않기에 큰 돌 위에 올려놓고 모두 보게 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대로 “이곳 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 신을 벗으라.”하는 말씀이 머리에 ‘찡’ 생각나면서 이곳이 하나님의 거룩 한 땅임을 더 깨닫게 되어, 상징 돌로 놓고 보게 하고 있습니다. 이 돌은 여러분들도 모두 잘 알지요? 처음에 길 닦으라고 산을 조금 주고는 기어이 도랑 내달라고 한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제자들만 가서 일을 해주었더라면 이 같은 사연이 없었을 것인데, 화가 복이 되게 한 사연을 만든 것입니다. 후에 알고 보면 고통의 사연들로 인하여 기쁨의 사연을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이 일을 말해주시며 “모두 이와 같이 뜻이 얽혀 하나님도 주도 도우니 희망으로 하 라.”고 했습니다. - 월명동에 돌을 쌓기 위해 처음에는 충북 단양에 돌을 사러 갔다가 6개의 돌을 사 놓았습니다. 돌 값이 너무 비싸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돌을 사다 쌓으랴.’염려가 되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면서 주님께 사연을 고했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보고 단양에 사놓은 돌을 실어 오라 고 하여 실어왔는데, 예감이 이상하여 확인해보니 그중에서 제일 좋은 돌이 안 왔습니다. 숫자는 맞는데 좋은 돌과 비슷한 작은 돌로 바꾸어 실어 보냈던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이번에는 내가 바쁘지만 왕복 5시간을 걸쳐 단양으로 갔습니다. 마당에 내가 처음에 샀던 돌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꿔 실어 보낸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래서 사진 찍어 놓은 것을 보여줬더니, 그래도 양심을 속이면서 아니라고 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주인과 같이 꿩고기를 시켜 먹었습니다. 선생이 꿩을 잡아 잘 대접하니, 마지막에는 주인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음에 오면 좋은 돌을 값을 헐하게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나를 속였으니 다음에는 이곳에 안 옵니다.”하고, 그 후로 13년이 넘도록 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도하는 중에 꿈에 앞산 야심작 정상에 손가락 돌을 보여주어 그 돌이 있는 곳을 찾아가 돌들 이 있는 보령 돌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돌을 산 것이 사연이 되었고, 그 돌 하나를 가지러 갔을 때 그 돌로 연결되어 솔로몬이 레바논의 백향목을 베어다 성전을 짓듯이 그곳에서 많은 돌 을 가져다 자연성전 조경을 했습니다. 단양에서 나를 속이고 서운하게 하는 사연 때문에 보령으로 방향을 돌리어 사연 있는 역사가 일어나 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야속했던 일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모두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으니, 오직 감사하면서 하기를 바랍니다. 형제가 속이고 거짓말해도 ‘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하고 가야 됩 니다. 각종 사연에 얽힌 섭리역사 일들은 끝이 없습니다. 금년도는 기도와 말씀의 해였습니다. 어느 해보다 선생님으로 인하여 기도를 많이 하고, 사연 깊은 말씀도 많이 한 해입니다. 이로 인하여 선생도 스무 달 동안 60만 번의 기도와 감사를 함으로 과거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께 각각 기도와 감사를 했으니 180만 번이 됩니 다. 사연이 없이는 이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의 사연을 두고 온 양떼들이 걱정이 되어 기도하게 되 었고, 나와 같이 육들도 영들도 모두 세상 넓은 곳에 갇혀 사는 것을 보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 다. 이들을 자유롭게 해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며 주님 입장에서 기도를 생명시 했습니다. 복 음의 사슬에 묶이니 이 같은 기도를 하게 되었고, 여러분들도 각자 기도함으로 신앙들이 살아난 사연이 되었습니다. 영의 세계를 보았기에 기도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주님은 내가 극한 상황에 처할수록 더욱 기도하게 하심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온 지구상 모든 인생들을 하나님이 그같이도 돕고 사랑하시는데 한 번도 감사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살아가니, 깨달은 자가 대신 감사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지옥의 고통을 받고 지옥으로 가는 생명들을 보고 밤낮으로 기도를 안 할 수 없었습 니다. 기도하면 영들이 생명권으로 나오는 것이 보이니 기도를 안 할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기도로 민족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기도하고 한국에 와서 말씀을 외치니 모두 살아 나고, 꿈에나 기도 중에 보이던 자들이 다시 교회에 나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사연이었습니다. 내가 고통을 받으므로 고통 받는 자들의 심정을 알고 기도해줄 수 있었습니다. 나와 섭리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루에 수천 번씩 기도했습니다. 감사치 않으면 역경 과 환난 중에 사탄의 주관을 받고 스스로 넘어지고, 하나님과 주님의 기대와 나를 기다리는 섭리 모든 자들의 기대도 깨어지니 늘 감사가 끊어지지 않게 했던 것입니다. 감사해야 감사할 일이 계속 생기는 것 입니다. “외롭다. 쓸쓸하다. 나 같은 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하지 말고 그런 때 기도하고 감사하며 지구촌 에 둘도 없는 사연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지구촌에 없는 표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대로 해줄 테니 다 기도하라.”하시며 기도에 대한 필요성과 그 본질을 가르쳐주 셨습니다. 그같이 기도하지 않았으면 선생은 또 다른 길을 갔을 것입니다. 모두 소쩍새처럼 목 놓아 밤 을 지새우면서 작년에도 금년에도 기도하였기에 새롭게 희망의 해를 맞게 된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모 두 견디며 사망으로 가지 않게 되었고, 영원히 지옥으로 갈 자들도 생명 길로 끝까지 오게 된 사연들이 뜻과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2008년 <기도와 말씀>이란 주제를 받을 때도 사연이 있었으니,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기 바랍니 다. 2007년 12월 어느 날, 나를 조사하는 자들이 “내년도 2008년에 그 단체의 주제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조사에 해당도 안 되는 것을 왜 묻습니까? 알 수 없어 대답을 못하겠습니다.”했더 니, 그들이 내 말을 듣고는 한 번 물어본 것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주제는 누가 정했냐고 물었습니다. 내 가 정했다고 하니, 그럼 지금 하나 정해 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정신이 없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납니다.” 했더니, 그 중에 한국말 통역하는 조사원이 “그리 생각 안 나면 하나님의 법을 전하는 해라고 하지요?”했습니다. 이에 나는 “하나님의 단체인데 그렇게 아무렇게나 방향을 정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줘야 주제를 정하지요.”했더니, 다음에 조사하러 올 때 그것도 생각을 해놓고 물을 때 대답해달라고 하며 떠났습니다. 침실에 돌아와 ‘왜 그들이 내년도 주제까지 조사하지?’생각하고 너무 걱정이 되어 기도하고 주님께 물었더니 그제야 정신이 나서 깨달아졌습니다. “한국에서 달력에다 넣고 섭리전체 방향 잡으려고 누가 누가 부탁하여 그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한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잠깐 무지 속에 상극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암시를 주셔서 그들의 입을 통해 말씀의 해라고 했는데, 선생이 그들을 오해하고 대화하므로 하늘이 주신 말씀을 눈치 채지 못한 것입니다. 이를 알고 기도하여 주님의 심정과 한국 제자들의 심정을 깨달았으니 ‘기도와 말씀의 해’라고 하자고 주님께서 말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같이 하며 기도와 말씀을 중심해야 될 해라고 하여서 2008년은 기 도와 말씀의 해가 된 것입니다. 주제에도 사연이 얽혔습니다. 내년은 <새롭게 변화>하는 해입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새롭게 해야 변화가 일 어납니다. 이미 금년도에 내년을 위해 새롭게 방향을 잡고, 부활의 신앙들을 말씀으로 넣어주어 모두 살 아나게 했습니다. 살아난 우리는 이제 새롭게 함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새롭게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희망의 해가 될 것입니다. 2009년은 ‘기축년 소띠의 해’입니 다. 새롭게 일을 하며 주인의 손에 이끌려 자기 마음과 전도자들의 논밭을 잘 갈아서 각자 풍작을 이루 어야 되겠습니다. 농사도 새롭게 지어야 희망차서 피곤치 않고 지겹지 않습니다. 우리 영들도 더욱 변화를 받아야 하늘나라를 능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를 받지 않은 보 통 영은 하늘나라를 천사들처럼 순간 갈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로는 지구궤도를 벗어나 우주를 비행할 수 없습니다. 새롭게 우주선으로 만들어 변화를 받아야 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영도 더 새롭게 변화 를 받아야 태양계를 벗어나고 은하수계를 벗어나고 우주를 벗어나 하늘나라까지 능히 갈 수 있는 것입니 다. 2008년에 복음으로 갇힌 자 된 선생을 위해 온 세계 모든 섭리인들이 기도해주어 정말 고맙고, 말씀 을 듣고 지키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그 대가와 사연을 통해 새해에는 하나님의 뜻이 더욱 온전히 이루 어지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희망들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새롭게 홀연히 변화가 일어나기를 빕니다. 할렐루야! 아멘. 모두 좋은 꿈꾸고 새로운 날, 새 아침을 맞기를 축원합니다. <2009년 1월 4일 주일말씀> 새롭게 변하라   본 문 로 마 서 12장 2절 고린도전서 15장 51-55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새해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올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은 혜가 성령의 감동에 충만하여 모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해에는 꼭 계획한 것이 있으니 새롭게 변화하여 큰 변화의 역사를 펴자.”고 했습니다. 새해 첫날, 모두 좋은 꿈을 꾸었습니까? 꿈도 자기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꿔지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 의 뜻대로 살면 좋은 꿈이 꿔집니다. 좋은 꿈이 안 꿔져도 현실이 곧 꿈입니다. 꿈은 생시의 반응입니다. 꿈은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작용이며 현상입니다. 잠잘 때 뇌에서 생각한 것 이 현실같이 보여서 꿈을 꾸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꿈이 꿔집니다. 하늘의 뜻 있 는 사건을 꿈에 계시해주기도 합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그 생각이 잠잘 때도 그대로 꿈으로 반영되어 복잡한 꿈이 꿔지는 것입니다.   새해 아침에 생각대로 좋은 꿈을 못 꾸었다고 희망의 기대가 어긋났습니까? 주님은 “꿈보다 현실이 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꿈은 못 꾸었어도 생시에 잘하면 최고이며, 소원을 성취한다고 했습니 다. 생시에 자연을 통해 계시 받고 징조로 받는 것이 더 확실하며, 이치에 따라 즉시 보여주고 계시해주 는 것이 더 확실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자연계시를 제일 많이 주십니다. 그때그때 꿈으로 계시하려면, 사람이 잠을 자야 되 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 순간순간 깨닫도록 계시해주십니다.   좋은 꿈만 꾸었다고 다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생시에도 마음만 기쁘게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 으면 마음만 기쁜 데서 끝나고 얻지 못하듯이, 좋은 생각만을 하고 좋은 꿈만 꾸면서 실천하지 못하면 마음만 기쁘고 그저 꿈으로 기쁘고 마는 것입니다. 잠자기 전 기도할 때 꼭 필요 없는 꿈을 꾸지 않도록 기도하고, 사탄과 귀신에게 유혹되는 꿈을 꾸지 않 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계시하실 것이 있으면 확실하게 보여주고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 고 자야 그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말을 해야 확실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비디오 촬영을 할 때 확실하게 녹음하고 제대로 찍어야 제대로 보이고 들리듯이, 확실하게 말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장의 편지를 썼는데,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도 쉽게 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게 전달해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집에 삽을 빌리러 갔다가 다른 이야기만 하고 삽 이야기를 제대로 못하면 삽을 얻을 수 없습니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니 주인이 제대로 몰라서 주지 않는 격입니다. 형제끼리도 자기 의향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상대의 말을 들을 때는 확실히 듣고 이해해야 됩니다. 여건상 확실히 못하는 말도 많은 것을 알아야 됩니다.   생시 때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자는 잠잘 때 영도 육체를 벗어나서 필요 없이 꿈속에서 기분 나쁜 곳으로 돌아다닙니다.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면 절대 안 됩니다. 꼭 필요한 일 만 하고, 자기 앞날을 생각하며 필요 없는 일은 다 잘라버려야 됩니다. 정신이 썩어 살면 필요 없는 것 에 시간을 쓰고 인생을 쓰면서 삽니다. 알고 보면 필요 없는 시간에 빠져 사는 자가 많습니다.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꿈을 꾸었어도 생시에 겪어보면 별 것도 아닌 일들이 많습니다. 꿈 때문에 괜한 걱정에 불안했던 일이 많습니다. 꿈에 혼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보면 생시보다 훨씬 더 두렵게 나타나고 걱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꿈보다 현실을 더 중하게 보고 깨달아야 됩니다. 새해에 좋은 꿈을 못 꾼 자들은 기대에 어긋났다며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늘 말씀으로 올해의 꿈 을 줄 테니 말씀 따라 삶으로 새롭게 변화하여 희망을 이루는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새롭게 변화하여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하겠습니다. 본문 로마서 12장 2 절 말씀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올해의 주제가 여기서 왔습니다. 사람은 지난날보다 새롭게 하기 원하고, 변화를 원하고, 더 새로운 것을 얻기 원합니다. 새롭게 마음먹 고 변화하지 않으면 지난날의 것을 또 반복하게 되고, 발전도 없고 희망도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올해는 더 잘하여 희망을 이루며 살겠다고 모두 다짐들을 했을 것입니다. 뉴스에서도 보았지요? 새해, 새아침에 해 뜨는 광경을 보려고 수백만 명이 높은 산으로 올라가고, 바다로 몰려들었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는 목적은 한 해 동안 잘되도록 염원하려는 것입니다. 자기 소원이 성취되기를 마음으로 빌기 위 함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태양이 하나님이나 되는 듯이 쳐다보며 자기 소원하는 바를 빕니다. 실컷 제 마음대로 살다가 순간 분위기를 타서 빈다고 자기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 모든 자들이 다 태양을 보면서 빌 것입니다. 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그렇게 한다고 그리도 귀한 복 을 쉽게 주실까요? 복은 받기도 어렵고, 주기도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피곤한 인생을 삽니다. 먼 거리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찾아가 해 뜨는 광경을 지켜보니 말입니다. 뉴스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인생 피곤하게 사는구나.’생각했습니다. 조은소리 맨 앞장에 항상 찬란한 태양이 있지요? 이는 하나님을 상징한 것입니다. 모두 알지요? 올해 자기 희망과 소원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루어드려야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 님과 주님 앞에 마음을 새롭게 하고, 생각을 새롭게 하며 새롭게 실천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 야 희망이 이루어지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민족도 하나님의 뜻대로 새롭게 온 국민성이 변하고 부활되어야 경제 위기와 각종 어려운 일들이 해결됩니다.   그 해 자기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것들은 자기 수고에 달렸겠지만, 큰 희 망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축복해주셔야 만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육신은 실천해야 실천한 것을 인정받지만, 정신은 하겠다고 결심하고 생각한 것이 생각으로서 실천한 것 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짐하고 결심해야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법을 들어봐요.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해도 살인한 자가 됩니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죄가 되 어 죄인으로서 간음한 자 취급을 받습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 뜻대로 새롭게 하겠다고 결심만 해도 마음 은 이로 인하여 의인으로 변화를 받은 자가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듣는 대로 그에 따라 새롭게 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영계에서 보면 결심할 때 사탄 어둠의 주관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변화를 받고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결심만 하고 아직 육으로 실천하지 못했어도 마음은 행하였기에 사망에서 벗어나게 되고 변화를 받은 자 가 됩니다. 성경 그대로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사망권에 있고, 사랑하면 빛 가운데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영계를 못 보아도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대로 되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하나님은 역사하시 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시고, 주님은 그 마음과 함께 하십니다.   마음으로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의가 된다고 했습니다. 믿고 결심하면 육은 쉽게 행하여 변화를 받게 됩 니다. 로마서 10장 10절을 보면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행동하면 구원에 이른 다.’고 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선한 사람이요, 나쁘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악한 사람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마음의 법을 정해놓으셨기에 마음에 결심만 하여도 영계에서 보면 생명권의 빛 가운데 나와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음으로 새롭게 결심하고 자기 마음을 고하기만 하여도 사탄이 떠나가고,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하늘에 속한 마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마음이 부활된 자가 되고, 산 자가 됩니다. 마음이 휴거된 자가 됩니 다. 이와 같이 생각부터 새롭게 해야 변화가 됩니다.   생각에는 육적인 생각이 있고, 영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육적인 생각은 이 세상에 속한 생각으로서 자기 육에 속한 생각들입니다. 영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속한 생각으로서 주님을 위한 생각들입니다. 하 나님께 속한 영의 생각을 하려면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됩니다. 육에 속한 생각들은 무지로 인하여 자기 행함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생각하고 행할 때가 많습니다. 육에 속한 생각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며 명예와 물질에 속한 것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떠나 행하는 세상의 썩을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했습니다. 그러면 영에 속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들입니다. 이는 썩지 않는 영에 대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이며 영에 속한 썩지 않는 것들이란 -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 전도하는 일, 증거 하 는 일, 관리하는 일, 성장시키고 신앙이 죽지 않게 붙잡아주는 일, 형제를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구제하고 화평케 하며,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행하며, 온유와 겸손, 오래 참음과 청결한 마음, 충성함, 부지런함, 서로 위로함과 감사와 기쁨, 우애함과 긍휼히 여김과 자비, 의로움과 선한 말, 절제함, 절대적 믿음과 주를 사랑함과 진실함입니다. 세상에 속한 일이며 육에 속한 썩는 것들이란 - 우상을 숭배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생각과 행 실, 혈기와 분노와 교만, 시기와 질투, 거짓과 음모, 오해와 각종 악한 생각, 이성적인 것, 욕심과 물질 과 명예, 의심하는 것과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것, 미움과 악평과 각종 해를 주는 생각들입니다. 이는 귀신들에게 속하고 악에 속하였기에 사탄들이 주관하게 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마음에 곤고함도 없어지고, 빛으로 나오게 되고, 더 좋은 구원의 삶을 얻게 됩니다. 마음만 먹고 행동을 안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마음의 행위대로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형제들도 그같이 대하며 살라고 했습 니다. 정신이 생명입니다. 정신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삶도, 천국도, 지옥도 좌우되니 정신이 얼마나 중요합니 까? 정신에 속한 자는 영에 속한 자요, 사망을 벗어나 생명권에 사는 자입니다. 무엇을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가 있어야 될지, 성령님도 주님도 생각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정신이 썩으면 육신도 썩는 행실을 하고 영도 썩게 됩니다. 생각에 따라 이같이 인생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일순간 마음이 지옥이 되고 천국이 됩니다. 생각에 따라 힘이 오 고 힘이 빠집니다.   생각이 성령에 사로잡혀 살아야 되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야 되고,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자기 인생을 구원해주신 주님을 늘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생각에 사탄과 귀신이 침범하지 않고 희망에 불타며, 때가 되면 계절처럼 복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을 잘못하고 행하면 엄청난 손해요, 마음에 고통을 겪게 되고, 걱정·근심·염려의 함정에 빠지 게 됩니다. 한 번 생각을 잘못하면 자살해서 죽고, 인생을 포기한 채 살게 되기도 합니다. 약한 생각을 가지고는 험한 세상에서 강하게 살 수 없으니, 시험에 들지 않게 늘 기도하여 하나님과 주님의 손에 늘 보호받고 성령의 감동 속에 살아야 됩니다.   생각이 잘못되어 행실까지 잘못하게 된 썩은 인생들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 성은 멸하였고, 니느웨성은 생각이 잘못되어 있으니 회개하라고 요나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 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기에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 심판하지 않 았습니다. 지금도 그와 같이 하십니다. 생각이 그 얼마나 크고 훌륭한가에 따라 그 인생은 가치 있고, 위대하고, 하나님이 보기에도 좋아하십니 다. 한 번 잘 생각하고 잘 행하면 많은 유익이 오고, 행복이 옵니다. 주님은 율법시대 때보다 더 완전하게 사람의 마음과 그 생각까지 보시고 지적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멀리한다고 생각하여 무지로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불신하며 갖은 악한 일로 대 했습니다.   주님은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들을 행한다.”고 설교하시며, “마음에 악이 있는 자는 악한 말을 하 고, 마음이 선한 자는 선한 말을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마 12:34-35). 그리고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을 두고 말씀하시기를 “회칠한 무덤과 같으니 겉으로는 아 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마 23:27). 어떤 자는 마음이 엉겅퀴와 잡초가 무성한 풀밭 같고, 어떤 자는 가시나무 같고, 어떤 자는 썩은 물 같 고, 어떤 자는 염소·이리·늑대·야수 같고, 어떤 자는 돌 같고, 길바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 하시며 주님은 그 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완악한 마음, 딱딱한 마음, 강퍅한 마음, 욕심과 분쟁하는 마음, 악평하는 마음, 훼방하는 마음, 각종 악하고 거짓된 마음들을 갖가지로 파헤치고 지적하시며 어느 시대 사람들이든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거듭나고 부활된 산 자가 되라고 지금도 외치는 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그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고,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하늘나라를 유업 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 말씀을 듣지 못하는 지구촌의 어느 누구라도 다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그 행위대로 다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하나님을 믿지 않아 말씀을 못 들으니 모른다고 해서 행한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 겠습니까? 한 번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믿든지 아니 믿든지 모두에게 해당됩니 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부터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나님과 주님이 올해에 주시는 복을 감당하 며 받고 누리게 됩니다. ‘기술이 없고, 힘이 없고, 몰라서 마음속에 썩는 생각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시대 새 일을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로 우리가 먼저 해야 될 일들을 자세히 말씀했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내놓을 것이 없다. 고생되어도 배우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배우면 영원히 유 익하도록 써먹을 수 있습니다. 깊은 말씀이요, 마음을 잡아주는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입니다. 금보다 더 귀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앞에는 마음이 진실 되고 거짓이 없어야 하고 의로워야 한다, 화평과 긍휼함 과 자비한 마음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과 끝까지 오래 참음과 서로 이해하고 절제하는 마음과 약한 자 들을 돕는 마음과 자기 일에 충성하는 마음과 부지런하고 깨끗한 마음과 믿음의 굳건함과 기쁨과 청결과 사랑으로 서로 위해주고 존경하고 우러러 보는 마음과 칭찬하는 마음과 너그럽고 솔직한 마음과 형제들 의 옳은 일을 믿어주는 마음과 감사와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이 하나 되어 행하고 자기 육적인 생각을 중심하여 행치 말고 머리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의논하여 행하라.”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막고 악평하며 행치 말고, 모두 제대로 알고 주장하고 서로 화평으로 하나 되어 행하라. 늘 쳐다보고 있다. 때가 급한 줄을 모르느냐. 왜 내가 너희보다 더 애 를 태워야 되느냐. 나의 말을 너희 가슴에 받아들이고 확실하게 행할 때까지 내 심정이 얼마나 답답한지 아느냐.” 했습니다. 주님의 심정에 병이 나게 하는 자는 불효하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자기 마음을 새롭게 단호 하게 결단하며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인 분복을 이 해에 매일 받 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하나의 습관이 되면 자기의 나쁜 생각을 자신이 싫어하면서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도 습관이 되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뇌에 나쁜 생각들이 저장되어 있으니 좋은 생각을 함으로 나쁜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디 있냐고 주님께 물으니 “인간의 뇌에 있다.”고 했습니다. 뇌에서 생각이 작용합니 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행하여 느낄 때, 뇌에서 생각하고 결정을 합니다. 눈으로 잘못된 것을 보면 마 음을 버리게 되고, 자꾸 보므로 뇌에서 그 같은 것들만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을 생각지 않게 됩니다. 나쁜 것을 보면 안 됩니다. 필요 없는 것을 보면 뇌에 저장되어 그쪽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은 조금이고, 세상을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으면 되겠어요?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 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롬 1:28) 여호와를 생각지 않으니 헛된 일을 하여 고통을 받게 되고, 자기 행위로 인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은 헛된 시간 보내지 말고 성경을 보고 말씀을 다시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그러 므로 자기 정신을 다스려야 됩니다. 잘못된 마음을 다 자르고 끊고 없애야 됩니다. 자기 마음에 습관이 된 강한 줄은 잘 안 끊어집니다. 습관이 들어서 몇 년씩, 혹은 몇 십 년이 가도 못 끊게 됩니다. 습관으 로 체질에 배어버렸기에 좀처럼 자기 생각의 버릇들을 고치지 못합니다. 흔히 술 담배가 습관이 되어 체질에 배면 좀처럼 안 고쳐집니다. 건강 안 좋아져 끊으려 해도 잘 못 끊 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좋지 못한 생각과 행실과 습관들도 좀처럼 잘 안 고쳐집니다. 단호하게 끊고 자르고 고쳐야 됩니다.   주님이 기회를 주시고 말씀을 주셨을 때 고칠 것을 못 고치면 지상에서도 지옥의 고통이요, 죽은 후에도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도 안 고쳐집니까? 고치면 마음 천국이 이루어지고, 또 주님은 좋아 사랑하면서 준비한 것을 다 주십니다. 그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보고 외치는 것입니다. 호리라도 남김없 이 다 고쳐야 주십니다. 자기의 소원을 주님은 가지고 계십니다. 아무리 마음에 습관이 되었어도 자기 앞날에 고통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다 고칠 것입니다. “하늘나라 는 하나님이 보실 때 호리라도 죄가 있으면 못 들어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후에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고칠 수 있을 때, 기회가 왔을 때 즉시 고쳤을 것입니다. 호리라도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 은 자는 천법을 범한 자가 되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이 예비한 것도 받지 못합니다.   주님은 “좋은 것은 아예 삶으로 체질을 만들고, 나쁜 것은 즉시 끊고 자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먼 저 마음을 먹고 결단하여야 주님도 성령님도 함께 하여 가슴에 은혜가 불붙게 되어 사망에서 생명권으로 온전하게 나올 수 있게 됩니다. 변화된 자가 되어 날마다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10년, 20년, 30년 동안 체질이 되어 못 고치는 습관도 기도하고 간구하면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체질이 된 나쁜 것들은 마음과 행실의 습관이 되어 못 고치는 병들이니, 중한 병을 고치듯 생각하면서 고쳐야 됩니다.   잘못된 것을 못 고치는 자들은 병들어 늘 병원 생활을 하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인생을 제대로 못 사 는 자들과 똑같은 자들입니다. 건강이 복이 되듯이 신앙의 건강이 복입니다. 단 하루만 생각을 잘못하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못 고치면 고칠 때까지 자기에 게 주신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해에는 속히 자기를 자세히 살피며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온전히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발을 씻으라.”하며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어떤 자는 발만 씻어도 될 자 가 있고, 어떤 자는 얼굴만 씻어도 될 자가 있고, 어떤 자는 몸 전체를 씻어야 될 자도 있습니다. 말씀 의 뜨거운 물로 깨끗이 씻고, 묵은 때도 시원하게 밀기를 바랍니다. 때가 되었는데 애벌레가 나비로 새롭게 변화하지 못하면 안타깝게도 애벌레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 리도 각자 새롭게 변화할 때가 되었는데 육적인 생각에 처해 살기만 하고 새롭게 변하지 못하면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자로 끝나고 말게 됩니다. 새롭게 변한 자와 변하지 않은 자는 구별된 다른 세계에 살게 됩니다. 변화된 자는 하늘나라에 가기 전 에 그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삶속에서도 주님과 같이 그 뜻을 행하면서 기쁨의 삶이 이루어집니 다. 변화된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다릅니다.   주님은 “새롭게 변화되어 나와 같이 먹고 마시자.” 했습니다. 양과 염소의 삶이 다르고 신부와 형제와 종의 삶이 다르듯이, 새롭게 변화된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의 삶이 다릅니다. 희망도 다르고 삶도 다릅니다. 마치, 사슴과 늑대·여우·이리의 삶이 다르듯 다르고 사람 의 삶과 짐승의 삶이 다르듯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과 주를 믿는 자의 삶과 안 믿는 자의 삶이 다르듯 다릅니다.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의 삶과 안 믿는 자의 삶은 너무 차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은 후에도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시험을 보았을 때 어떤 자는 많은 점수 차이로 떨어지고, 어떤 자는 적은 점수 차이로 떨어집니다. 적은 차이로 떨어진 자는 더 아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점수 차이가 많이 나든지 적게 나든지 모두 똑같이 떨 어진 자 취급을 받고 한 곳으로 갑니다.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을 보면 ‘많은 자가 달음질을 하나, 상을 받는 자는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민족도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형통합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서로 싸우고 분쟁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물건도 새롭게 생각하고 더 좋게 만들어야 사용하는 자들이 많이 사갑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된 자들은 상을 받는 자들입니다. 모두 범사에 신경 써서 생각하며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여 희망찬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도 한 단계 더 하려면 더 몸부림쳐 강행해야 됩니다. 처음에는 힘들 어도 계속 해버릇 하면 전보다 더 하게 되고, 습관이 되어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의 삶도 더 새롭 게 하려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자꾸 해버릇하고 강행하면 훨씬 더 힘을 받고, 하나님과 주님도 더 역사하 시고, 성령님이 감동을 일으켜 후에는 오히려 힘이 안 듭니다.   고무풍선은 클수록 더 무거워져서 안 뜰 것 같아도 공기가 많이 들어있어서 공중에서 더 잘 날 수가 있 습니다. 더 큰일을 해야 더 힘을 받는 것입니다. 작은 비행기는 가벼워서 더 잘 뜨고, 큰 비행기는 크고 무거워서 잘 안 뜰 것 같아도 클수록 더 안전하고 잘 납니다. 공중의 별들도 클수록 인력을 더 작용하는 운동을 하여 공중에서 힘을 받아 안전하게 운행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더 많은 일을 하면 힘들 것 같 아도 희망이 크므로 정신과 마음에 더 큰 힘이 생깁니다. 월명동도 작게 정원처럼 만들었다면 작아서 희망이 별로 없었을 것이며, 큰 힘과 은혜를 못 받았을 것입 니다. 많은 자들이 함께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크고 웅장하게 행하니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도 그만큼 더 함께 하여 우리가 힘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체적으로도 크게 하니 더 큰 힘들이 솟아나게 된 것입니 다. 이처럼 일의 근본을 알아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말씀도 조금 듣는 것과 시간을 내어 풍부하게 듣는 것은 다릅니다. 힘을 받고 은혜를 받는 것에 크게 차이가 납니다.   새롭게 생각해야 됩니다. 큰일을 하는 자들은 똑같은 사람이지만 남들보다 10배 20배 힘든 일을 해냅니 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힘든 일을 했지? 나는 작은 일을 해도 힘들여 겨우 했는데...’하고 생 각하게 됩니다. 큰일은 해봐야 압니다. ‘작은 교회를 끌고 가도 목회하기 힘든데 큰 교회를 어떻게 이 끌고 가지?’생각하지만 큰 교회는 큰 힘을 받아 더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를 작은 배로 가는 것은 힘들어도 군함으로 가는 것은 힘들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기를 축원합니 다. 새롭게 마음먹고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행하려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더 큰 마음을 먹고 행하면 더 큰 힘을 받아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울수록 주님도 성령님도 더욱 다스려주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가까이 하면 일도 많지만, 더 사랑의 목자가 되어주시고 신랑이 되어 다스려주십니다. 주님은 꼭 수시로 맡긴 일을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천사를 통해 보고받기도 하시고, 순간 오셔서 보고가기도 하시고, 멀리서 쳐다보기도 하십니다. 자기 생각이 엄청난 삶을 좌우합니다.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됩니다. 생각이 생 명의 근원지입니다. 새롭게 결심한 자들은 이미 생각으로 실천한 자입니다.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 자입 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옵니다. 아직도 변화하지 못한 자는 말씀을 들으면서 새롭게 살겠다고 하나님 앞 에 결심하기 바랍니다. 고백하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약속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관리하는 천사가 여러분들이 하는 대로 그때그때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키며 역사하십니다. 범사에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홀연히 변화합니다. 하나님도 주 님도 새해에는 이같이 살라고 하셨기에 우리가 이같이 살면 꼭 역사하십니다. 개인이나 섭리사적으로 새롭게 변화한 자에게 약속대로 새로운 것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새롭게 변화 할 것만 보시지 않습니다. 그동안 기도한 것들도 받게 될 것입니다. 받는 자만 알게 됩니다. 받는 자는 알고 기뻐할 것입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할 것입니다. 지난날 소쩍새 슬피 울던 사연들을 다시 생각할 것입니다. ‘아... 이런 날을 위해서였구나.’생각할 것입니다.   주님이 새해 말씀을 통해 희망의 꿈을 주시는데도 세상으로 흘러가 주님을 멀리하거나 저버리고, 혹은 힘들다고 하며 새롭게 실천하지 못하는 자는 이 해에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함으로 후에 후회하고 땅을 치 며 통곡할지라도 이미 때를 놓쳐 받지 못합니다. 이미 말씀을 듣고 순종한 자가 자기 받을 것까지 다 받고 누리기 때문에 후회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주 님이 말씀하신 대로 달란트를 남기지 못한 자의 것을 빼앗아 잘한 자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사명을 하지 못하면 그 자리는 행한 자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꼭 행할 일이기 때문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의 설교로만 생각하면 자기 손해입니 다. 말씀은 실제 하나님이 행하실 것과 계획하신 일을 선포하시며 “지켜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섭리사 전체에게 행하실 일을 구상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멋있는 월명동 작품 이 나오듯 나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이미 다 준비해놓으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 일을 실천하시며 말씀 하시니 기대에 어긋나게 하지 말고 꼭 행해야 됩니다. 한 남자가 자기 사랑하는 애인에게로 떠나면서 곧 가겠다고 전화하듯이, 이미 하나님과 주님은 우리 쪽으로 오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속히 생각을 새롭게 하면서 뜻 쪽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행해야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는 믿음이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임하는 자요, 하나님과 주님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해주는 자를 정말 믿어주는 자입니 다. 환난 속에 원통했던 일들과 마음속에 담아두고 말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고통들과 우리의 눈물을 보시 고, 우리를 위해 계획해놓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의 꿈이요, 희망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과 주님은 10개월 동안이나 말씀을 들려주며 준비해오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새롭게 해오 는 단계를 거쳐 새로운 주관권으로 나와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각자 쉽게 새롭게 생각하고 변할 수 있습 니다. 각자 자기를 위해 새롭게 변할 것이 무엇인지 기도하고 날마다 생각하며, 하나하나 마음에 새롭게 결심하며 행하기를 바랍니다. 굳건한 마음과 강한 마음과 부지런한 마음으로 실천해야 됩니다. 끝까지 확인하며 온전하게 행해야 됩니 다. 사랑과 화평과 희망의 생각을 잃으면 안 됩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바꾸고 실천하면 주님은 더욱 손 을 잡아주시며 “걱정 말라. 염려 말라.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날마다 일어날 것입니다.   육적인 생각은 걱정과 염려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낳아 늘 자기를 따라다녀 무거운 죄 짐이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염려를 맡기고 기도하면 다 사라집니다. 걱정하는 만큼 그런 일도 안 오고, 만일 온다 해도 살지를 못합니다.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바닷물이 육지에 와서 살지 못하니 바다 속에만 안 들어가 면 파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하면 세상 파도에서 벗어납니다. 염려할 것이 아닌데 주를 멀리한 까닭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선생도 돕고 함께 할 테니 원망 없이 화평과 사랑으로 서로 위해주고 돕고 이 끌어주고 이해하고 기쁨으로 격려하며 하나 되어서 희망찬 꿈을 마음에 가득히 품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목적지에 다 와서 지쳐 쓰러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서 할 때입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하여 서로 희망을 이루는 해입니다.   <축 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늘 함께 하고, 성령님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더욱 함 께 함으로 새롭게 생각하며 날마다 변화가 일어나기를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1월 7일 수요말씀>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실천하여 변화를 받아라                본  문   요한복음  2장 1-11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아무리 새해를 맞고 살아도 사람은 똑같은 환경과 똑같은 현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밤과 낮이 교차되고, 모든 환경은 동일합니다. 마음의 변화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야 새 힘을 얻게 되고, 새 희망이 마음속에서 솟아나고, 홀연히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새롭게 변화하자고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시며, 말씀과 여건으로 역사해주시니 말씀을 잘 듣고 깨닫기 바랍니다. 각자 개성마다 새롭게 변화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섭리 역사도 그러 합니다. 말씀을 듣고 본인 것은 본인이 깨닫고 행해야 합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께서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고 제자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라서 모두 걱정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예수께 포도주가 모자라다고 말하니 예수님은 “내가 포도주 모 자란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포도주는 실상, 잔칫집에 상관된 문제입니다. 어머니들은 어디를 가도 걱정을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저가 말하는 대로 행하라.”고 단단히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하인들에 게 말하기를 “저기 비어 있는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채우라.”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다 채우니 “그럼 이제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어라.”했습니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꽉 채운 물은 주님의 능력으로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아멘! 하인들은 주님이 시키는 대로 연회장에게 포도주를 갖다 주었고,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은 감탄 하면서 신기해하며 잔칫집 신랑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것을 먹이고 후에 떨어지면 보다 못한 것을 주는데,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것을 두었도다. 이 어찜이뇨.”하며 물로 된 포도주가 정 말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신랑 집에서 미리 만들어놓았다가 내놓은 줄 착각하고 좋아했습니다. 실상, 잔칫집에 온 손님인 예수님이 일순간에 능력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표적이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거기에 맞는 많은 표적을 일으켜 모두에게 새로운 기 쁨의 희망을 주셨고, 문제를 풀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새롭게 함으로 모두 변화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우리 앞에 걱정할 것이 있어도 주님만 초청해 와서 그 자리에 참여하게 하면, 지옥 같은 문제라 할지라 도 능력으로 천국이 되도록 변화를 일으켜주십니다. 고로 주님이 우리와 늘 동행하도록 모시고 다니면서 어떤 걱정도 할 것 없이 감사와 사랑으로 살면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저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했듯이, 우리도 성령께서 감동을 주어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표적을 일으키셨듯이, 이 시대 섭리사와 개인들에게도 표적을 일으켜주십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시 새롭게 변화하여 기쁨이 충만하 게 되며 잔칫집 분위기가 뒤바뀌듯 섭리 역사도 뒤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같은 역사가 이 해를 중심하여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지난해도 계속 역사가 일어났지만 깨닫지 못한 자는 몰랐습니다. 모르는 자는 기쁨이 없습니다. 아는 자는 기쁘고, 힘을 받고, 변화하여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시대의 뜻을 펴나갑니다. 이날, 주님은 포도주 표적으로 인하여 생명의 말씀도 전하시어 말씀의 포도주 표적이 일어나게도 했습니 다. 사람들은 ‘어떻게 물을 가지고 포도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생각합니다. 주님께 묻기를, 너무 엄청난 일이기에 믿는 자만 믿고 안 믿는 자는 속 시원히 안 믿어지니 모두들 다 믿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마디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월명동 샘물에 약을 탄 것도 아닌데 병 낫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먹으 면 죽을 자도 병이 나아 살아나지 않느냐. 귀머거리, 아토피, 암, 정신병, 각종 병들이 다 낫지 않았느 냐.”했습니다. 샘물이지만 믿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도 주님도 표적을 일으켜주셨고, 지금도 계속 그와 같이 표적을 일으키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아멘! 가나 혼인잔치 때는 딱 한 번 이 같은 표적이 일어났지만, 월명동에서는 몇 십 년 동안 계속 표적이 일 어나고 있습니다. 선생도 작년에 의학적으로 꼭 수술해야 될 것인데 기도하고 월명수 한 컵 먹고 100% 나았습니다. 말씀에 해당되는 날이 되니, 이를 증거 하기 위해 말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어떤 자는 월명동 물을 전혀 안 먹고 월명동만 왔다 갔는데 병이 나은 일이 있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자 기가 식당을 하는데 모두 데리고 오라고 하여 선생과 같이 30여 명이 수원에 가서 불고기를 먹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 같이 가서 먹은 자들은 기억이 날 것입니다. 그저 월명동을 돌아다니고만 왔는데도 병이 나았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게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에 가서 치료도 하고 약을 먹었어도 낫지 않았는데 월명동에 갔다가 나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역사하신 능력의 표적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고, 계획적으로 능력을 주어 예수님이 나타나 행하시는데 물이 포도주로 변하 지 않겠습니까? 잔칫집이 초상집이 되게도 하시고, 전쟁터가 되게도 하시고, 천국이 되게 하실 수도 있 습니다. 못할 일이 없습니다. 선생이 외국에 있을 때, 얼굴도 안 보고 이름만 불러주며 기도만 했는데도 그 무서운 아토피가 낫기도 했고 각종 병들이 나았다고 했지요? 이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표적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뜻이 있으면 매순간마다 행하십니다. 사람이 표적을 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주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 도 없는 일들을 하십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나님이 행해야 믿습니다. 신의 행함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 영이 행하여 표적이 일어나도 육적으로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능력 을 주시는 자가 행하면 역시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가나 혼인잔치 표적뿐 아니라, 주님은 약 한 봉지 안 주고도 “너는 내가 능히 이 일 행할 것을 믿는 대 로 나으라.”하여 문둥병자와 혈루병자와 각종 병에 걸린 자들이 다 나았습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이같이 행할 수 있으랴.’하며 주님을 의심하지 말고 성경을 보고 믿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인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인지 잘 분별하고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병 고치는 표적도, 생활의 표적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사람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을 행하 십니다. 사람이 앞에 있어 눈을 뜨고 보았는데도 안 보이게 할 때가 있고, 어느 때는 사람이 다 포기했 을 때 행해놓으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초능력자가 자기 힘으로 열차를 끌고 간다면, 안 보고는 안 믿어질 것입니다. 사람이 한 일이라도 안 보고는 안 믿어지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쉽게 믿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해를 시 켜주어라. 그러면 믿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하찮은 물맷돌 하나를 던져 대국의 군대가 모두 도망가게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 나가 싸워 한 명도 때려죽인 일이 없는데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성 밖에서 다 시체가 되어 죽어 있기도 했습 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지금도 이와 같이 행하십니다. 올해도 여러 가지 새로운 변화의 표적이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가나 혼인잔치 때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되고 믿어집니까? 사도바울 선생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가져다가 그것을 병든 사람에게 얹었을 때 병이 낫기도 했습니 다. (행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또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습니다. (마 9:20-22) 『[20]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 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 14:36) 『[36]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 으니라』 흙만 눈에 발랐어도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요 9:6-7)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 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 같은 역사는 그동안 섭리사에서 많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같이 계속 역사하고 계십니다. 가나 혼인잔치 때 처음보다 후에 주님이 만든 더 좋은 포도주가 나오듯이, 섭리사 후반기부터 주님이 주 신 새 포도주와 같은 말씀이 나오는 표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새롭게 하여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생각하고 행하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나에서 포도주 표적이 일어나듯이, 섭리사도 말씀으로 인하여 생각지 못한 표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이 날의 말씀이 머리에 ‘찡’하고 생각날 것이며 깨달아질 것입니다. 주님이 표적을 일으키실 때 제자들은 그를 믿었습니다. 주님이 표적을 일으키시면 우리들은 더욱 주님을 믿을 것이며, 선생이 주님과 함께 일함을 믿을 것입니다. 주님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더욱 표적이 일어납니다. 때가 되어야 표적이 일어납니다. 주께서 함께 해야 표적이 일어납니다. 끝까지 하나 되어 따라와야 큰 표적을 보게 되며, 생각지도 않은 표적을 보게 됩니다. 어떤 표적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믿음으로 보고, 주께서 말씀하심을 듣고 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실제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지금부터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잠언으로 주신 말씀을 한 절, 한 절 전해주겠습니다. 잠언을 풀어서 설명해주면 권위가 사라집니다. 새로 번역된 성경을 보면 단어를 빨리 이해할 수 있도록 알아듣 기 쉽게 번역이 되었지만, 말씀의 권위가 삭감된 부분이 많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지킬지니라』하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참말로 말하노 니 내 말을 지켜야 합니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말씀하였으니 모두 지킬지니라』라고 한 말도 『모두 지켜야 합니다』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이 권장하는 말로 표현되었기에 권위의 말씀이라는 느낌이 사라지게 됩니다. 같은 의미의 말일지라도 “예.”라고 한 말이 다르고, “응.”이라고 한 말이 다릅니다. 책 한 권의 글을 다 써놓고 끝에 가서 한 글자만 잘못 쓰면 내가 주체가 아니라 남이 쓴 것이 되어 버립 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하다고 말해놓고, 끝에 가서 “저가 그러했다.”고 하면 자기가 한 것이 남 이 한 것이 됩니다. 끝에 가서 반드시 “내가 그러했다.”고 해야 자기 책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심정을 쏟아 “하라!”고 명령하신 말은 바꾸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됩니다. 설교할 때, 성경을 제대로 세밀하게 풀어 전하는 것도 새롭게 생각할 일이고 새롭게 변화할 일입니다. 새 번역 성경을 읽는 자들은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읽어야 됩니다. 이제 잠언으로 하나, 하나 말씀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며 듣기 바랍니다. 어떤 잠언은 설 명하며 쓴 것도 있지만, 어떤 잠언은 설명하면 선생이 쓴 것 같아서 토를 안 달고 그대로 쓴 것도 있어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그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쓴 것이 있습니다.  1. 가르쳐주고 이해를 시키면 안 믿을 것도 믿어진다.     - 예수님의 말씀 (그렇게 말을 해줘도 주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을 안 믿는다고 하니 이 같은 잠언을 주셨다.)  2. 이해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살지 말고, 배우고 이해하여 믿고서 기쁘게 살아라.  3. 자기 것은 이해하면서 내 것은 이해 못하느냐. 자기 것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다. - 하나님과 예수님 의 말씀  4. 인간이 사는 세상이 있으니,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시는 세상이 있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이해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5. 하나님이 사는 세상은 영의 세상이니, 너희도 영으로만 올 수 있는 세상이 아니겠느냐. 고로 오고 싶으면 영에 대해 배우고, 신경 써서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6. 전능하신 하나님을 육으로 이해하면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영으로 이해해야 많이 이해할 수 있 다.  7. 하나님을 조금만 이해하면 조금만 믿어지고, 조금 믿어진 것을 가지고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크게 행하심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그 나라도 갈 수 없게 된다.  8. 이해란 「그 행하신 자의 심정과 처지와 입장을 안다」함이다. 「믿고 인정한다」함이다. 이해를 시 키는데 있어서 그에 필요한 비유나 실제 있었던 것들을 말해주면서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하면 쉽게 믿 어진다. 고로 많은 상황들을 비유로 이해하게 해주신다.   9. 자기 입장만 이해하고 상대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 되어 같이 존재할 수 없는 자요, 자기 주관권 안에서 자기에 속한 것에서만 갇혀 사는 자다. 10. 이웃과 형제들의 행함을 이해해야 자기의 것도 이해받아 그 뜻도 반영시켜 이해해주는 것이다. 11. 하나님과 주님의 행하심을 이해하는 만큼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님도 함께 해주신다. 12. 자기가 이해하지 못할 때, 어리석게 자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13. 사람이 행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찌 감히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14. 하나님의 행하심이 이해되지 않아도 믿고 따라가면 전혀 손해가 없다. 15. 주님이 사명을 주어 주님의 행하심을 행하여도 그가 주님이 아님을 깨달아야 된다. 16. 사명을 준 자에게 주님은 그를 통해 자신이 행하듯 행하신다. 17. 주가 보낸 자의 말을 듣고 행함도 주님의 말을 듣고 행함과 다름없다. 18. 여기서는 귀해도 저기서는 흔하다. 인색하게 살지 마라. (여기는 세상, 저기는 천국을 말한다.) 19. 세상에는 보물도 귀하고, 의인도 귀하고, 아름다운 자들도 귀하다. 그러나 천국에는 다 보물이고, 다 의인들이고, 다 아름다운 자들이다. 20. 세상에서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이나  무엇이든지 얻으려면 몸부림을 쳐야 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 런 것들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칠 것이 전혀 없다. 하나님과 주님이 다 해놓으셨기에 천국에 가서는 하나 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며 쓰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하나님과 주님께 감사한지 제대로 알면, 천국에 가기 전부터 세상에 살면서 죽는 날까지 주의 일에 충성하며 살 것이다. 21. 사람이 일생동안 살면서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하늘나라에 가도 과분하여 몸 둘 바를 모른다. 천국은 인간이 전혀 상상할 수 없게 창조된 나라로서 감사함으로 영원토록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낙으로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22. 세상에 좋은 것이 있는데, 이는 아는 자만 평생 누린다. 평생 누려도 못 다 쓰고 아쉬워하며 가는 데, 어떤 자는 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는다. 하늘나라도 아는 자만 찾고 누리다가 죽은 후에 그 나라로 가게 된다. 모르는 자는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다가, 죽어서도 또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간다. 고로 불 쌍하니 가르쳐주고 이해를 시켜주어라. 23. 인생은 많이 알고 사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조금 알고 살다가 죽는다. 24. 많이 알고 사는 자는 하나님을 많이 알고 사는 자다. 25. 세상은 자기가 평생 좋아하는 대로 살아도 하나님을 떠난 삶이니 결국 후회와 허무한 삶이다. 이는 이 세상에서 끝나버리고 마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고 하 늘나라 천국의 삶으로 연속되므로 허무하거나 변화무쌍하지 않다. 26. 인생이 날로 늙고, 변하여 죽고 없어지니 허무하다고 하는 것이다. 늙지도 않고, 변함도 없고, 죽지 도 않으면 허무하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주님과 함께 살면 하나님처럼 영원하다. 인 간은 육신인 고로 한계가 있게 창조해놓으셨다. 27. 영원한 나라인 하늘나라가 있기에 세상은 잠깐 살고 끝나는 곳으로 창조하시고, 인간도 그렇게 창조 하셨다. 28. 인간을 중심하여 사용하는 존재물들과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들은 몇 년, 혹은 1년, 혹은 한 달, 하루, 한 시간, 혹은 순간 있다가 없어진다. 고로 더욱 허무를 느끼고 사는 것이다. 29. 때가 되면 늙어 죽을 육도 하나님을 믿으므로 영으로 거듭나 변화되면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된 다. 늙기 전에, 죽기 전에,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을 믿고 그가 보낸 메시아를 믿고 살아야 허무한 삶을 벗어나 살게 된다. 30. 오늘 새롭게 생각하고 살면 오늘 변화가 일어난다. 31. 종전보다 더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려면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실천해야 된다. 그러면 누구든지 당장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을 중심한 삶은 인생 허무가 없는 삶이다. 32. 누구나 먼저 새롭게 생각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 먼저 해나가야 된다. 하나씩, 하나씩 끊 임없이 꾸준히 해야 된다. 33. 한 번에 새롭게 할 일을 깨달아도 실천할 때는 한 번에 못한다. 날마다 잊지 말고 하는 것이다. 매 일 행하는 자가 큰일도 할 수 있다. 34. 누구든지 자기를 새롭게 만드는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주관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올해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희망은 못 이루며 달리기만 하게 된다. 하나님도 주님도 명 한 일이니 잘 되려면 실천하라. 35. 날마다 새롭게 생각하고 행하면 새롭게 할 일들이 번개처럼 척척 떠오른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된다. 36. 사람은 그 일을 해야 그 일에 대하여 좋은 생각이 나고, 할 일들이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37. 새롭게 하려면 먼저 마음에서 새로운 생각을 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행동을 해야 되고, 그 다음에 는 얼마나 변화가 되었는지 확인해보고 계속 구상하며 하늘 뜻에 맞춰 가야 된다. 38. 정신적 변화는 육체적 변화를 일으킨다. 39. 누구든지 새롭게 변화해야 될 필요성을 깨달아야 된다. 깨달은 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가치를 깨닫고 밤낮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40. 자기를 위한 변화뿐 아니라, 따르는 자들과 이 시대를 위한 변화와 하나님과 주님을 위한 변화까지 해당된다. 41. 새롭게 한 일과 종전에 한 일은 너무도 차이가 많아 마치, 하늘과 땅 같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롭게 해야 얻게 된다. 새롭게 하는 것과 새롭게 하지 않는 것은 성공과 실패요, 희망과 절망이 다. 42. 전보다 새롭게 해야 같은 환경에 살아도 새로운 세계에 온 것처럼 기쁨으로 새 힘을 내어 새로운 마 음으로 지치지 않고 살게 된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되지 못하면 땅바닥에 남아 겨울철에 달달 떨며 몸 부림을 치는 고통을 받게 되듯이, 새롭게 변화되지 못한 자는 남아서 마지막 대 환난 때 긴긴 고통을 받 게 된다.  43.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하는 자만이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간다. 44.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몰라서 종전의 삶의 수레 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정신의 핸들을 과감하게 돌려야 된다. 육적인 길에서 영적인 길로 진입하 여 달려야 된다. 45. 새롭게 되어야 할 것도 계절처럼 때가 돌아와야 할 수 있다. 46. 새롭게 해야 될 때가 되면 모든 환경이 계절처럼 오게 되고, 모든 여건이 오도록 하나님이 역사해주 신다. 주와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차근차근 하면 된다. 47. 그렇게도 새롭게 되기를 원하여 그 때가 왔으니, 열심과 충성으로 감사 감격하면서 힘들어도 해야만 한다. 48. 새롭게 해야 다시 하고픈 마음이 생기고,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49. 하나님도 주님도 새롭게 하기를 늘 명하시고 원하신다. 행하면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50.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섭리적으로, 시대적으로 종전에 하던 일이 끝나면 당연히 다시 새로운 것으로 새롭게 하신다. 새롭게 할 때 힘을 주시고,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신다. 주님이 외치실 때 정신 차리고 하지 않으면 안타깝게 못하게 된다. 그러면 영원히 끝나버리는 것도 있다. 후에 다시 기회가 와도 3배나 힘들여야 겨우 하게 된다. 51. 새롭게 생각하고 실천하여 변화의 표적이 일어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념을 가지고 각오를 해야 된다. 하기만 하면 상상도 못하는 것을 얻고, 희망찬 이상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낙심은 금물이다. 과거에 갖은 고생을 하며 여러 고통을 겪고, 험난한 길을 참고 견디며 온 것을 생각하고 꼭 행해야 된 다. 모든 것을 이때에 얻기 때문이다. 52. 옛 것과 헌 것을 주고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바꾸지 않으면 그 작은 낡아진 배로는 새로운 삶의 바다를 항해하지 못한다. 큰 새 배로 부디 바꿔야 된다. 그냥 가다가는 결국 큰 파도에 부딪혀 상상도 못하는 고통을 받게 되고, 파선까지 당하여 운명을 달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에 눈을 떠 과감하게 행해야 된다. 53. 희망은 앞에 있고, 절망은 우리 바로 뒤에 있다. 앞으로 새롭게 가야 된다. 54. 사람은 좋은 일도 갑자기 당하면, 놀라고 당황하여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하게 된다. 하나님 과 주님은 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모든 자들을 위해 주는 것이다. 55. 세상에 그렇게 호기심에 불타던 것도 얻은 후에는 오래 가지 못하고, 생각과 같지 않아 버리게 되 고, 또 다른 것을 찾는다. 또 다른 것을 찾아 얻은 후에도 그것도 아닌 것을 깨닫고 버리고, 또 다른 것 을 찾는다. 이렇게 하다가 결국 이상적이고 좋은 것을 얻게 된다. 새로운 것을 찾는 자만이 얻게 된다. 56. 자기 지능대로 얻게 된다. 57. 큰 것을 얻으려면 마음을 크게 하고, 행동을 크게 하고, 계획을 크게 해야 된다. 58. 어렸을 때 얻은 것과 성장하여 얻은 것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59. 어렸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이 얻고, 컸을 때는 어른과 같이 얻는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큰 것을 얻듯이, 하나님과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 큰 것을 얻게 된다. 60. 하나님이 보고 행하는 것과 인간이 보고 만족하게 행하는 것은 그 얼마나 다르겠느냐. 생각도 다르 고 행함도 다르다. 61. 아이들의 만족이 어른들의 만족이 될 수 없고, 인간의 만족이 하나님의 만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62. 인간들은 하나님이 만족하게 생각하는 것을 감히 생각조차도 못한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인간이 순종하면 하나님은 만족하다고 하신다. 63. 인간이 최선을 다해 만들었어도 하나님은 그 집에 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만든 집에 사신다. 64. 인간이 하나님이 시킨 일에 충성하고 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신다. 65. 만일 하늘나라가 인간이 생각한 대로 만들어졌다면, 인간들이 가서 살기에는 합당할지언정 하나님이 살기에는 합당치 못할 것이다. 이는 짐승들이 자기 주인 좋으라고 만든 집에 그 주인이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주인은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살 것이다. 인간과 하나님도 이와 같다. 66. 인간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 안에서 구상하고 생각한다. 인생들이 답답하다고 해서 하나님은 그 비 밀 된 천국을 다 보여주지 않으시고, 다만 선지자나 사명자들을 통해서 조금씩 보여줄 뿐이다. 67.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행하라. 사람이 듣는 것도 반복해서 계속 들으면 나중에는 귀에 안 들어오 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꾸 반복하면 지겹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새로운 것에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새로운 힘을 받게 된다. 68. 스타라도 반복하면 인기가 떨어진다. 69. 반복되는 TV 화면만 쳐다보는 할 일 없는 자들은 그것들을 보다가 제 때를 못 맞추고 늦어서 천국 문이 닫혀 결국 지옥으로 내려간다.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영원히 억울한 것이다. 필요 없는 시간을 쓰 지 말고 새롭게 하라. 70. 새롭게 하지 못하고 반복하는 것은 ‘한계에 달했다.’함이요, ‘더 이상 자본이 없다.’함이다. 71. 새롭게 하지 못하는 자는 희망을 두고 갈만 한 곳이 없는 자이며, 죽음에 이르러 신음하는 자다. 72. 예수님은 혼인잔칫집에 가서 새롭게 하여 대 인기를 끌고, 화제를 낳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하셨 다. 주님도 표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성경에 이 사건이 기록되지 않았으며 2000년의 역사가 흘러올 동 안 주님의 그 위대함을 증거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행위대로 자기의 증거를 받는 것이다. 73. 천국을 앙망하고 희망하는 자는 천국을 못 보았어도 있다고 믿으며 긍정하지만, 관심이 없는 자나 자신이 없는 자는 부정하게 된다. 지옥도 자신이 가야 할 입장 같으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 인간의 편 한 심리다. 74. 새롭게 하지 않으면 이제는 힘들어서 못한다. 새롭게 하면 쉽고, 힘도 훨씬 덜 든다. 75. 새롭게 해야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젊은 인생들을 몰려오게 한다. 그래야 주님도 와 보시라고 하 여 표적의 역사의 발길을 돌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76.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하자.”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이미 하늘은 내적으로 행하시고 계심을 깨달아 야 된다. 새롭게 새 희망으로 살고 싶은 자들은 전도하고 열심을 다하고 자기 생각대로 생각지 말고, 오직 말씀을 중심하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자기중심이 되어 그 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하면 어지러워서 결국 자기만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에 따라 새로운 마음으로 따라와야 됩니다. 모두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안녕. <2009년 1월 11일 주일말씀>   나는 너를 믿어주는데 너는 나를 믿어주지 않느냐 (해석 : 주님은 너를 믿어주는데 너는 내가 너를 위해 행하는 일을 왜 믿어주지 않느냐. -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본 문 마태복음 17장 14-20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하지요? 경제 불황으로 걱정되어 말씀하셨는지, 혹은 혹독한 추위에 몸조심하라고 말씀하셨는지, 특별히 추운 겨울이 없는 나라들은 아마 우리에게는 다른 말씀을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꿈에서나 생시에 기도할 때에 주님의 말씀하심을 보면, 한 마디 말씀입니다. 그 한 마디 말씀만으로는 충분히 깨닫지 못하니 풀어서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믿어주는데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왜 믿어 주지 않느냐.”    이 한 마디 말씀을 듣고서는 주님의 마음을 충분히 깨달을 수 없고, 어떠한 의미와 뜻으로 그 말씀을 하셨는지 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믿어주는데 너희는 내가 너를 위해, 혹은 너희를 위해 행하는 일을 믿어주지 않는구나.” 하신 말씀으로 핵심은 알지만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지 못하겠지요?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하니 서로 믿어줘야 되지 않겠냐.” 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믿어주시는데,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 을 확실히 믿어주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마음이 아픈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어떠합니까? 대답해 봐요. 나의 마음 과 느낀 것이 같았는지 보겠습니다. 선생은 이 말씀을 듣고서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여 머리를 둘 수 없 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믿어주시면 우리도 주님을 믿어줘야 되지 않겠어요? 주님을 메시아로 믿어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메시아임을 믿지 않는 자가 여기 있어서 말 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풀어줘야 깨닫게 됩니다.    영계에서 들을 때, 듣는 자는 한 마디로도 다 압니다. 그러나 같이 듣지 못한 자는 모릅니다. 영계에서 는 육계에서 보는 것보다 상상 못하게 지혜로 즉시 깨달아지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척척 깨달아지고, 무 슨 의미로 말씀하셨는지 그에 해당되는 성경 말씀도 일순간에 다 생각나면서 충분히 뜻을 알게 됩니다. 영계에서 보면 사람들의 마음도 알게 되고,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그 사람의 이름을 다 알게 됩니 다.    주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너희는 내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인 것은 믿는데, 생활 속에서 너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해주고, 섭리적으로 전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도와주고, 때마다 기도하면 마음으 로 응답해주었던 것들을 해결해주었는데, 내가 행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어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정말 해주실까?’의심하기도 하고, 혹은 환난과 여건과 상황들을 생각하면서 걱정·근심·염려들 만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믿지 못하니 걱정과 근심과 염려만 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와 뜻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면서 주님은 이에 해당되는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면서 “보라. 내가 살아있었을 때도 제자들과 그 시대 모든 자들을 책망하고 꾸짖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행하는 일인데 어찌 의 심하느냐. 사람을 믿어주지 않아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하나님과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어떠하겠느냐.” 했습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17장 14-20절을 보면, 한 사람이 주님께 와서 무릎 꿇고 엎드려 말하기를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들인데,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나이다. 너무 불쌍하여 보다 못해 기대를 걸고 주님의 제자들을 찾아왔으나 고치지 못하였 나이다.”하며 애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참으리요. 아이 를 이리로 데려오라.”하시고 아이에게 붙어있는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그 시로 아이가 나 았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제자들은 민망하여 “어찌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여 병을 고치지 못했나이까? 무슨 원인입니까?” 하고 물으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저 곳으로 옮기리라.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제자들도 주님과 같이 할 수 있는데 믿고 행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직접 행 해야 할 수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믿고 행하면 주님이 능력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그러나 능력을 주셨으니 행하면 된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믿어주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구나. 도대체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야 되느 냐. 얼마나 참고 참아야 되겠느냐.”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믿어주고, 하나님이 보낸 구 세주임을 믿고,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여 표적을 일으키면서도 주를 증거 하기를 얼마나 더 참아야 되겠 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28-33절을 보면, 베드로가 주님을 보고 “주여, 만일 주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 라 하소서.”하고 청했습니다. 이에 주님이 “오라.”고 허락하시니 베드로가 좋아서 바닷물 위로 걸어 주님께 갈 때, 바람을 보고 의식하여 바다에 빠졌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소리를 지르며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니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이끌어주셨습 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며 꾸짖으시고 “파도 여 잔잔하라. 바람도 고요하라.”명하니 곧 잔잔하고 고요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의심하여 빠진 것입니다. 배에 있는 자들은 주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 로소이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으로 볼 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임을 의심했 음을 알 수 있고, 바람과 파도를 다스리심을 몰랐고, 하나님이 보낸 자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보고 믿음이 적은 자라고 하심은 - 베드로가 이를 제대로 확실히 알았으면, 주가 파도 를 꾸짖고 바람을 잔잔케 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고 의식하지 아니하여 물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옛날 그 시대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믿어주었는데, 제자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완전히 믿지 못하 고 의심했던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살고, 같이 생활한 제자들이 그같이 하지 못하여 꾸짖은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를 믿는데, 너희는 내가 너희를 위해 행하는 일을 앞에 놓고 확실히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에 나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을 주로 믿지만 이 같은 일을 정말 해주실까? 함이고, 또 특별한 공적도 없는데 기도대로 정말 그 큰일을 해주실까? 함에서 믿어지지 않은 것입니다.”하며 섭리 모든 사 람들의 심정과 마음을 주님께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간질병으로 고생하던 자와 그 아버지는 무슨 공적이 있어 고쳐주었느냐. 불쌍히 여 겨달라고 간절히 간구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인생들을 구원하라고 하셨으니 구원한 것이 아니었느냐.”말 씀하셨습니다. 병들어 쓰러져 있는 자를 공적 때문에 고쳐줌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고쳐주시 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됩니다.  간절히 기도함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나 억울한 일들을 간구하여, 주님이 응답하신 것은 해주시니 끝까 지 조금도 의심 없이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응답으로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고로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주님이 꼭 해주실 것을 믿어줘야 됩니다.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과 주님이 행하심을 의심하면 책망을 받습니다. “사람을 안 믿어줘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너를 구원하는 자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행하심을 안 믿으면 어떠하겠느냐.”고 주님은 말 씀하셨습니다. 의심했는데도 이루어지면 본이 되지 못하므로 제대로 간증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53-58절을 보면, 주님은 무리들과 제자들을 가르치신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들은 자들이 놀라서 “이 같은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하고 말했 습니다. 그리고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형제들도 우리와 같이 있지 않느냐.”하며 지극히 인 간적으로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예수님은 많은 능력을 행치 않으 셨습니다.    믿어야 능력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의심하면 표적을 행하여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면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를 거는 격과 같아서 많은 표적을 행치 않으십니다.  병을 고치거나, 일어날 수 없는 각종 일을 일으키는 것만이 표적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능력과 실력을 보이는 것도 표적입니다. 지혜의 말씀, 깨닫게 하는 말씀, 감동의 말씀이 표적입니다. 말씀할 때 깨닫게 되고, 몸과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모두가 표적임을 알아야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병도 고쳐지고, 말씀을 전할 때 듣고 감동되어 어 떻게 하겠다고 마음을 돌이키고 결심하여 해주겠다는 표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 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하나님이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알아야 됩니다.    첫째,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어 사람들이 이 를 듣고 지킴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 뜻대로 살며, 하나님이 보낸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그 이름으로 하 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의인이 되어 의를 행하며 그 뜻대로 살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둘째, 세상에서 예수님을 중심하여 그 뜻대로 살면서 하나가 되어 지상에서 마음천국과 육신의 천국을 이루며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존귀히 여기면서 주와 함께 사는 삶을 누리게 하심입니다. 미움과 다툼 과 해됨 없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선의 세상, 하나님의 세상이 되어 땅에서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뜻대로 살면 육신으로서 천국을 이루며, 그 영혼까지 천국의 삶을 살게 됩 니다.    셋째, 세상에서 육신과 영혼이 의롭게 살면서 육신은 때가 되어 하나님의 법칙대로 죽어 땅에 묻히고, 그 영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고 영광 돌리며 주와 함께 영원토록 살게 하기 위 함입니다. 이러 뜻으로 하나님은 주님을 보낸 것입니다.  주님이 병을 고쳐주시고, 말씀을 하시고, 각종 표적을 보이며 행하심은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 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믿게 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입니다. 선지자들로 예언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온 것을 알아야 더 이 상 기다리지 않고 주 앞에 죄를 고백하며 구원을 이루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죄를 청산하고 사 해주심을 믿고 행해야 더 이상 사탄의 주관을 받지 않고 속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절대 믿어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주님이 표적을 일으키심은 주님을 더 확실히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임을 알고, 보통사람들이 못하는 일을 행해야 하나님께로부터 온 구세주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 약시대에 「그가 자기 백성들의 약한 것을 고치신다.」고 한 예언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 30:26)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주님은 “너희는 내가 표적을 일으키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나를 믿지 않는 연고로 인하여 표적을 일으 킨다.”고 했습니다.   (요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표적을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느냐. 표적만 보러 다니느냐. 악한 시대일수록 표적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안 보고도 믿는 자는 참으로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 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 라』    예수님이 주님인 것을 믿는 자들은 그로 인하여 계속 바라는 것을 얻었습니다. 우리들이 처음 교회에 올 때 많은 체험을 했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표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는 예 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하기 위해 주님이 일으켜주신 표적입니다. 그 후에 말씀의 표적으로 역사하셨습니 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나 주님이 보내신 자들을 통해 하나님과 주님이 표적을 일으켜주심은 하나님과 주님 이 보내심을 믿으라고 함입니다. 표적은 「하나님과 주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안 보여도 꼭 함께 하시므로 표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어 인도함을 알게 하기 위해 홍해바다를 모세의 지팡이로 치니 밤새도록 바람이 불어 새벽에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이에 모세가 이끄는 자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보낸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신광야에서 아말렉 족속들과 싸울 때도 모세의 손이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항상 이겼습니다 (출17;8-16). 이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그 시대 구원자로 보내심을 더욱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 어린 다윗 왕을 통해 사울 왕 앞에서나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표적을 보이신 것도 하나님이 다윗과 함 께 한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린 다윗에게 왕의 사명을 주어 하나님이 보냈다는 것을 믿 게 하기 위해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여러분들 각자에게 표적을 보이심은 하나님과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것을 보이는 일입니다. 고 로 믿으라고 그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알고 믿겠습니까? 지난 30년 동안 섭리사에 수백 번의 큰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예수님의 표적은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임을 증거 하는 증표이며, 하나 님이 함께 하시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수백 번의 표적을 보아 왔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와주신 증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믿어도 우리가 주님을 안 믿으면 주님의 심정이 상하고 마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안 믿으면 속도 상하시고 자존심도 상하시고 싫기도 하지만, 안 믿는 자에게 손해가 갑니다. 안 믿으니 자기는 다른 길로 가게 되므로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또 범사에 어떤 어려움에서도 구원받 지 못하고, 급기야 영원한 영혼의 구원까지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표적을 보고 말씀을 듣고도 안 믿으면, 걱정하고 염려하시어 책망하기도 하시고 꾸짖 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또 각자 인생들을 범사에 돕고 함께 해주심을 오늘부터 더욱 확실하게 믿고 살아야 구원이 이루 어집니다.    간절히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을 믿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는 간질병에 걸린 환자와 같이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꼭 이루어주심을 확실히 믿으라고 오늘 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절대 믿지 않으니 불안하여 넘어지고, 걱정·근심·염려로 인하여 간질환자가 불과 물에 넘어지듯 하는 것 입니다. 남들에게는 “걱정 마. 주님이 꼭 해주실 거야. 믿음을 굳건히 해야 돼.”라고 하면서 자기 믿 음은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립니 다.  흔들림은 사탄과 귀신의 주관을 받은 것입니다. 고로 간질병자와 같이 좌우로 쓰러지게 됩니다. 또한 믿음이 적은 연고입니다. 조금만 믿으면 이리저리 흔들거립니다.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면 간질병자 믿음 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두에게 물으십니다. “언제까지 완전한 믿음이 없는 너를 보고 참아야 되겠느냐.”    “얼마나 더 참아야 되겠느냐. 작년까지는 참았지만 이 해부터는 새롭게 변화하라. 그래야 믿음으로 인 하여 개인 희망도 이루어지고, 섭리 전체가 원하는 희망도 이루어진다.”고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 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네가 믿음이 없는 연고로 간질병자를 못 고치듯이, 흔들리는 간질병자와 같은 네 믿음도 못 고친다.”고 했습니다. 절대 믿고 행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기를 주관하는 귀신과 마귀들을 다 꾸짖어 쫓아내야 됩니다. 그리하면 좌우로 흔들리는 자기 믿음의 병이 즉시 고쳐집 니다.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르니 ‘나 같은 자도 주님이 함께 하시나?’하며 필요 없는 생각을 하므 로 스스로 귀신들의 주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되어야 불경기를 이 기고, 시험과 환난도 이깁니다.    마태복음 21장 18-22절을 보면, 주님은 길가의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함을 보시고 열매가 없다고 한 마디 하시며 책망했습니다. “이제부터 네가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하리라.”했더니 즉시 죽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놀라니 “너희도 나와 같이 믿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고, 이 무화과나무 표적보 다 더 큰 표적도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일을 하는지 역사의 교훈이 되기도 했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와 같이 신앙의 열매가 없으면 주님에게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실망을 줍니다. 선생 도 모두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 테니, 선생에게도 실망을 주는 자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믿어주시듯이, 우리도 어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님이 우리를 믿어주듯 주님을 믿어 야 걱정·근심·염려가 없고, 해됨이 없으며, 주님이 단호히 기쁨으로 행하여 기도의 응답을 주어 희망을 이루어주십니다. 믿음을 새롭게 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섭리사 근본 교리는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을 절대 믿는 것과 그가 보내신 단 한 분밖에 없는 메시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과 성령님을 감동의 신으로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절대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섭리사의 교리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다 풀어 속 시원히 알아도 구세주 예수님을 절대 믿고 일체되어 살지 못하면 구원을 받 지 못하므로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자기 배우자에 대해 다 알아도 그와 일체되어 살지 못하면 사랑의 기쁨도 희망도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백도, 인물도, 외모도 상관없습니다. 믿음은 자기의 의지입니다. 믿음은 아는 데서 더 생 기게 되고 확고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니 의심 없이 더 믿어지게 되었고, 설 명을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모순 없이 해주니 기성교회에 다닐 때는 안 믿어지던 것들이 믿어지게 되었 고, 하나님과 주님도 더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해란, 아는 데서 옵니다. 설명을 자세히 해주면 이해가 됩니다.  마태복음 21장 28-32절을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는데 맏아들에게 이르 되 너는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또 작은 아들을 불러 오늘은 너도 포도 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니 싫소이다 했다. 저녁 때 아버지가 큰 아들을 보고 포도원에 가서 일했냐고 물 으니 안 했다고 하고, 둘째에게 오늘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니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했다고 했다. 이 둘 중에 누가 더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둘째 아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과 주님께는 한다고 말해놓고 안 하고, 세리와 창기들은 안 한다고 했으나 실상은 했으니 이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주의 뜻대로 한다고 해놓고 안 한 자들은 들어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한다고 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말만 하고 실제로 행치 않은 큰 아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주님을 따 른 자들은 안 한다고 했으나 뉘우치고 행한 작은 아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세리들은 하나님을 안 믿겠다 고 하며 육적으로 인생을 살다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뉘우쳐 회개하고 믿고 따랐습니다.    이 시대도 믿고 행하겠다고 한 자들이 안 하고, 오히려 못하겠다고 한 자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못하겠 다고 한 자들이 오히려 섭리 일을 믿고 행했습니다. 주님이 허락한 것을 믿음을 지키고 행했습니다. 주 님을 믿어준 자들로서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믿어야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믿었다는 것은 이미 마음으로 믿음의 행실을 했다는 것입니다. 조건을 지 출했다는 것입니다. 고로 믿으면 역사가 일어나고, 마음에서 걱정이 떠납니다. 믿음은 정신적으로 행동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끼리도 안 믿어주면 행치 않습니다. 하나님과 주님도 믿어줘야 그것을 의로 여기시어, 공의롭게 조 건을 행한 자에게 조건의 역사를 하십니다. 이것이 천륜의 법칙입니다. 돈도 백도 없으니 믿음이라도 있 어야 되지 않습니까? 필요한 것은 주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으면 절대 흔들림 없이 믿기만 하면 실행하여 주십니다. 일이 크든지 작든지 다 실행하여 주십니다.    기도는 일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일하는 만큼 일이 표가 나게 해지듯이 기도하는 만큼 된다는 것입 니다. 하고 안 함은 자유의지이고, 주를 믿고 안 믿음도 자유의지입니다.  믿음도 일입니다. 믿은 만큼만 일이 됩니다. 믿음은 위력입니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자는 전쟁터에서 큰 포탄을 가진 자와 같고, 작은 믿음을 가진 자는 전쟁터에서 소형 무기를 가진 자와 같습 니다. 작은 믿음은 실천이 잘 안 되고, 실천하더라도 어린아이가 행하듯 약하게 하게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오셨고, 주님이 보낸 사명자도 옵니다. 주님이 보낸 사명자도 주님과 일체되면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이 행하는 일도 하게 됩니다. 표적도 일어납니다. 주님이 사명을 주어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것도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고로 주님이 함께 하여 표적을 일으켜주신 것 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를 믿는 자도 나를 믿는 자요, 그를 불신하는 자는 나를 불신하는 자로서 심판을 받는 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이 보낸 대행자가 주님은 아닙니다. 주님의 사명을 받고 행하여도 주님이 행함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언제까지 내가 해줘야 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사명을 주었다. 사탄을 멸하여 땅에 떨어지게 하고, 고통당하는 자를 고쳐주고,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너희를 괴롭히 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된다. 그리하면 간질환자가 낫듯이 나으리라.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시켜 라. 내가 사명을 주었으니 대행하여라.”    또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각자에게 소질과 재능을 주어 낳기 전부터 하나님이 택하였으니, 주님 이 주신 사명을 대행하여라. 언제까지 너희 믿음 없음을 참으리요. 너희가 컸으니 믿음이 충만하여 행하 라. 다윗처럼 행하고, 여호수아처럼 행하고, 중심인물들처럼 행하고, 주님의 제자들처럼 행하고, 주님과 같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어서 행하여라.”  하나님과 주님이 보낸 자들임을 알게 하기 위해 표적을 일으키시고, 사명을 실행해야 되기에 계시록 11 장 말씀과 같이 여러 가지 표적을 일으켜 따라오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믿고 행하는 만큼 큰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으면 시동 이 걸리지 않은 기계나 차와 같아서 쓸 수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으로 감동되어 말씀의 불로 뜨거워져서 개성대로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들이 되기 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믿음도 확실하게 들어가고,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의 은 혜가 충만해야 됩니다. “나는 너희를 믿어주는데 너희는 왜 나와 같이 믿어주지 않느냐.”말씀하신 마음 아픈 주님의 심정을 뜨겁게 깨닫고, 이제 절대 믿고 실천하여 마음속의 근심과 염려들을 꾸짖어 귀신과 사탄을 몰아내듯 쫓 아내고, 간질병자가 나음을 받고 기뻐하듯이 믿음의 치유를 받아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언제까지 네 흔들리는 믿음을 참고 보리요.”라고 말하지 않게 해야 되겠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 때도 주님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믿음으로 행하여 모든 자들로 하나 님의 아들임을 믿게 했습니다. 주님은 “그같이 믿고 행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정받는 믿음 이 표적을 일으킵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위해 주님을 절대 믿는 믿음을 조건을 세우니, 주님은 그 능력을 행하여 고쳐주셨 습니다. 중풍병자를 메어오니 그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사명을 준 자들을 믿어주고 따라야 표 적이 일어납니다. 불신하거나 의심하면,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사탄과 귀신들이 그를 주관하게 됩니다.    진리를 주장하고 주님을 증거 하며 행하면, 늘 작고 큰 표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표적을 보 여주시어 그 사명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수십 번씩 보고 겪어 왔습니다. 의심 없이 믿고 따르라고 보 여주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망으로 가서 지옥으로 가게 되고,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주와 함께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영적인 무 기가 있어야 사탄도, 귀신도, 악한 자들도, 환난도, 어려운 일들도, 시험들도 물리치고 사랑과 화평과 기쁨의 이상세계에 살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절대자로 믿어도 생활 속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 것을 하나님과 주께서 해주실 것을 믿으라고 오늘 이 같은 말씀을 한 것입니 다.  사랑하시니 범사에 사람을 통해 해주시고, 하나님과 주님은 안 보이시지만 직접 행하십니다. 감사하고 감격하며 기도의 능력으로 악의 세력들을 이기며 나가야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기를 축원합 니다. 아멘.   <2009년 1월 14일 수요말씀> 내 말을 꼭 믿으라 본 문 마태복음 17장 20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이번 주는 주님께서 “나는 너를 믿어 주는데, 너는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며 슬퍼하신다고 말씀했 습니다.  이 말을 듣고 너무 괴롭고 가슴이 아파서 밥을 못 먹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주님이신데, 나를 구원하신 자의 마음이 아프게 믿어 주지 않았으니 얼마나 죄송한지 머리를 들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사랑하는 만큼 믿어 줘야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말을 믿고 지킨다.”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행한 일을 믿어라. 내가 너를 믿은 것같이 너도 나를 믿고 행하니 오늘도 표적이 일어나지 않더냐.” 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돈보다 더 좋 고, 금은보석보다도 더 좋은 것이 겨자씨만 한 믿음입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기는 믿 음의 표적이 일어나니, 그 믿음으로 어떤 병도 나을 수 있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4-20절을 보면, 예수님께 한 아비가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했 습니다. 그 아비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었기에 주님은 즉시 그 아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가진 자는 산을 옮기듯 역사를 일으킵니다. 오늘은 그 겨자씨만 한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주님의 말씀하심을 꼭 말해 줘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가 보내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들이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다면 정말 난처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민망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보시고 “내가 이 꼴을 보고 얼마나 더 참아야 되겠느냐.” 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너희가 나 를 믿고 겨자씨 한 알만큼만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을 제대로 배워 여러분들 각자에게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도 없다.”고 책망하신 말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니, 이 시대 우리들에 게 주님은 다른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믿어 주는데 너는 나를 믿어 주지 않느냐.”고 하신 말씀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긴다.」는 말은 겨자씨같이 그 작고 작은 믿음도 없다는 말 이 아닙니다. 겨자씨가 얼마나 큰지 보았는데, 볼펜 끝으로 종이에 콕 찍었을 때 크기만 합니다. 볼펜 끝을 종이에 콕 찍어 보세요. 정말 작지요?  이보다 더 작은 씨가 무슨 씨이지요? 말해 보세요. 여러분들 씨입니다. 바로 인간의 씨, 곧 유전자입니 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지만, 이 씨가 자라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만물의 영장이 됩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자들 중에 지극히 작은 씨로써,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지구촌을 뒤덮는 큰 나무들을 자신을 믿는 자들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작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절대 믿고 행한다면 큰 자가 됩니다.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도 없습니까? 이같이 작은 믿음도 없이 이 밤에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피곤함과 추위를 이기며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다는 말은 이 작은 씨만큼도 믿음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 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은 절대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이라도 절대적인 믿음을 말합 니다. 주님은 절대적인 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이상 없는 온전한 믿음을 말 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이라도 온전한 믿음을 가지면 산을 옮기는 표적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이 제 이해가 됐지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온전히 섬겨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라.” 했습니다. 이 역시, 다른 말로 하면 겨자씨 한 알만 한 온전한 섬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6-24절에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기를 원할진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 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 청년에게는 겨자씨만 한 믿음이었습 니다. 이 청년은 겨자씨 한 알만큼도 주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없었기에 자기라는 산을 주님께 옮기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행하심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자들은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는 자들입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믿고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란 알고 보면 대단한 믿음이요, 완전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천국은 겨자씨같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절대 나를 메시아로 믿고 온전히 믿고 섬 기고 사랑해야 마음천국이 이루어지고, 신앙의 천국이 삶 속에서 늘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못 깨달았을 때는 ‘우리가 주님을 믿는데 그까짓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도 없다니, 주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 아니고 내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안 일어나는 것을 보니 나에게도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 의 표적을 못 일으키는 자는 누구든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주님은 “자세히 설명을 해 줘야 이해가 간다. 고로 새롭게 생각하고 말씀을 자세히 전해 줘야 다시 새 롭게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 다. “나는 너희를 믿어 주는데, 너희는 나를 안 믿어준다.”고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믿어 주실 때 조금만 믿어 주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 믿음과 같이 산 믿음으로 완전하고 온전하게, 모순 없이 흠 없이 확실하게, 빈틈없이 믿어 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주님은 우리들에게 “내가 너희를 믿는 것같이 너희는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온전하고 확실하게 주님을 믿어 주었습니까? 한번 생각해 봐요. 믿어 주었으면 산을 옮 기는 표적이 일어나 표상이 될 것이고, 안 믿어 주었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 다. 산을 옮기는 표적이 안 일어났으면 절대적으로 온전하게 주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어 온 지난날의 일들을 모두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기적이 일어난 일들을 보면, 온전히 믿었 을 때입니다. 복음을 믿고 따라온 자들은 모두 겨자씨 한 알만 한 온전한 믿음이 있어, 자기라는 산을 옮겨 주님께로 온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9-10절을 보면, 사람을 산으로 비유했습니다. (계 17:9-10) 『[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 속하리라』  우리는 말씀을 듣고, 또 어떤 일을 놓고 “주여,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창자가 입으로 올라올 정 도로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때 “정말 믿습니다!”라는 것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을 말합 니다. 그러나 순간만 가지는 믿음입니다. 가다 보면 식고 변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이루어 주실 때까지 어떤 어려움이 와도 계속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과 주님을 인정 하고 믿어야 되는데, 믿어졌다가도 안 믿어져 흔들리게 됩니다. 어느 때는 믿어지다가 또 안 믿어져 의 심하게 되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며 믿음이 갈대같이 좌우로 흔들흔들거립니다. 시간이 흘러도 절대적 인 믿음을 가지고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요셉은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곡식 단에게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도 여러 고통을 겪으며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외국 감옥에 가서 3년 동안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낙 심치 않고 절대 흔들림 없이 계속 하나님을 믿고 행했습니다. 꿈을 꾼 후로부터 13년이 흘렀을 때, 애굽 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17세에 꿈을 꾸고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형제들과 아버지의 꿈도 이 루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꿈으로 계시한 것을 믿고 가면 꼭 이루어지니, 늘 이야기하며 희망으로 가야 됩니다. 설교 를 통해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도 믿고 가면 꼭 이루어집니다. 안 믿으면 실천하지 않게 되므로 이루어지 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믿었으면 한 달이고, 1년이고, 3년이고 절대적으로 온전하게 믿어야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납니다. 고로 끝까지 온전한 믿음으로 견뎌야 큰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납니 다. 병이 낫는 표적이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믿고 견뎌야 겨자씨 한 알만 한 온전하고 완 전한 믿음으로 인하여 건강의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납니다. 어떤 일이든지 예수님의 뜻이면, 우리가 믿었던 것과 간구했던 것들을 절대적으로 믿고 끝까지 가야 됩 니다. 겨자씨 믿음은 절대적 믿음, 온전한 믿음, 굉장하고 위대한 믿음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나 하늘나라에서는 절대적 믿음만이 통하고 존재합니다. 그 믿음만이 산 믿음으로서 겨자씨같이 웅장하게 성장합니다. 크고 큰 나무가 되어 웅장함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어떤 사물을 들어 말씀하실 때, 그 사물에 그 같은 특성이 있기에 그것을 들어 말씀하십니다. 많고 많은 씨들 중에서 왜 그 작은 겨자씨를 들어 말씀하셨는지 생각해 봐요. 겨자씨는 작지만, 그 씨가 크고 자라면 다른 씨의 나무보다 크게 자랍니다. 겨자씨가 자라면 아무도 예상치 못한 놀랄 나무가 되듯 이,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가지면 놀랄 만한 결과의 표적이 일어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나는 너를 믿어 주는데, 너는 내가 너를 믿어 주는 것처럼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고 하 신 말씀을 듣는 즉시 그 말씀을 깨닫고 절대 믿기로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떤 문제가 와도 절대 믿기로 했습니다. 그 같은 온전한 믿음만이 산을 옮기는 표적을 일으킵니다.  그같이 믿으니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면 주님도 기쁘고 자기도 기뻐 잔치하게 됩니 다. 의심하므로 슬퍼하여 초상집이 되게 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뻐 잔칫집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책망이 없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온전히 믿지 않으면 감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책망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책망하십니다. “나는 주로서 약하고 의심 많고 온전치 못한 너희들을 믿어 주는데, 왜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 예수여, 예수여.’ 하면서도 나를 믿어 주지 않느냐. 이런 꼴을 언제까지 참고 참으리요.” 하십니다.  사람 같으면 자기는 믿어 주는데 상대가 한 번만이라도 자기를 안 믿어 주면, 덜컥 화를 내면서 “나도 너 안 믿어.” 하고 돌아설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우리를 또 믿어 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 께해 주십니다. 그 사랑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모두 이같이 행하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올해는 반드시 모두 자기가 자기에게 표적을 일으켜 새롭게 믿고 변화하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2009년 은 ‘새롭게 변화하는 해’입니다. 절대 믿음과 온전한 믿음, 주님과 같은 완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 다. 우리는 성경 역사상 최고 믿음의 존재자이신 주님의 믿음의 자손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성경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믿음의 표적을 일으키셨고, 가장 많은 표적을 일으키셨습니다.  한곳에서 열 명의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셨고, 중풍병자와 간질병자와 귀머거리들을 고치셨습니다. 그 밖에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환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나인 성에서 과부 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물 위로 걸어 다니시고, 많은 자들에게 붙어 다니는 귀신과 사탄들을 쫓아내시며 인류를 구원하는 믿음을 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5-13절을 보면, 한 백부장이 예수께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고 말하니 백부장은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나이다. 말씀만 하 시면 나을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하인을 고쳐 주시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만한 믿 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동서로부터 많은 자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 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가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 니다.  왜 백부장이 행한 일을 보시고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연관이 되고 해당이 되니 말씀하신 것입니다. 백부장이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을 가졌으니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절대적인 믿음이었으 며, 의심 없는 완벽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이 같은 믿음을 가졌기에 천국에 갔다고 했습니다. 절대적인 믿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졌기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2절을 보면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로서, 주님을 메시아로서 온전히 믿고 따르지 않으므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온전하고 완전하게 믿지 않고 세상에 속한 자손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고로 온전히 믿어야 산을 옮기는 구원의 표적이 일어납니다. 온전히 믿게 해 줘야 됩니다.  바깥 어두운 곳이란, 지옥을 말합니다. 이 지옥은 온전히 주를 믿지 않으므로 구원받지 못하여 지구 바 깥에 있는 고통의 세계에 가서 지옥사자들로부터 갖은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풀무불 속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지옥사자들에게 별의별 고통을 다 받고 이를 갈며 슬 피 웁니다. 온전히 주님을 믿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지옥의 사자들은 이렇게 괴롭히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자기가 괴롭히던 자들을 데리고 영원한 불바다, 지옥으로 갑니다. 그 지옥사자들도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영원한 고통 을 받게 됩니다. “온전하고 완전하게 믿지 않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도 일어나지 않고,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기도 한 다.”고 주님은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자기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믿어 줘야 그를 구원해 주십니다. 안 믿어 주면 주 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건져 낼 수가 없습니다. 이를 비유로 말한다면, 주님의 팔에 온전히 매달린 자만 구원받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온 몸과 양손과 양발 모두 주님께 매달려야 주님 품에 이끌려 그곳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 떤 자가 한 손만 매달리면 순간은 나오다가 손에 힘이 풀려 놓치게 되고 결국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 다.  완전히 주님을 끌어안고 매달리는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 한 큰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온전한 믿음뿐 아니라 온전한 사랑을 가진 자입니다. 사랑하다가 미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일부만 실천하고 마 는 것은 온전한 실천이 아닙니다. 그러면 완성하지 못한 믿음입니다.  온전한 진리여야 온전한 생명의 존재자가 됩니다. 주님은 온전하십니다. 일부만 주님이 아니라 완전한 주님이십니다. 온전한 부활을 해야 됩니다. 원수를 온전히 사랑해야 됩니다. 아주 사랑해야 원수를 사랑 하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여 주라. 헐벗었거든 입혀 주라. 그리하면 원수의 목전 에서 네게 상을 베풀어 주리라.” 했습니다. 새벽기도 중에 온 말씀이었습니다.  이같이 온전하려면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실천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왜 이같이 말씀하셨을까요? 해 보셨기 때문입니다. 해 본 자, 실천자만이 그 일을 표현 할 수 있고 글로도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기 쉽다고 하는 자는 제대로 행치 않고 사는 자요, 주님의 뜻대로 살기 어렵다고 하는 자는 제대로 행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입으로 행하는 자는 쉽다고 하고, 몸으로 행 하는 자는 어렵다고 합니다.  주님의 행하심이 온전히 믿어지는 자는 행복한 자요, 믿어지지 않는 자는 불행한 자입니다.  주의 뜻대로 신앙생활 하기 쉽다는 자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마음만 기쁘게 사는 자로서 꽃만 무성한 신앙인이요, 실천하면서 몸부림과 눈물로 사는 자는 열매가 무성한 신앙인입니다. 이들은 곧, 주님이 말 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주님의 사도들은 주님을 따라다니며 책망도 많이 받았습니다. 주님은 믿음에 대한 것과 여러 가지 주님 의 뜻대로 못 한다고 책망하며 꾸중하셨습니다. 책망받고 꾸중 들을 때는 심하다, 서운하다 했지만 주님 이 돌아가신 후에 깨달았습니다. 모두 울고 슬퍼하면서 주님께서 살아생전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하면서 너무 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생명을 내걸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한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때부터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주님의 심정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표적이 일어났습니 다. 산을 옮기는 역사들이 일어나 다시 뭉쳐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내걸고 자기 선생이 가신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신약의 역사가 펼쳐져 왔습니다.  결국 세상의 어떤 환난이나 핍박은 이들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온전히 살아나신 대로 모두 살 아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니, 세상이 점점 뒤바뀌어 오늘날 온 지구촌을 주님의 세상으로 만들게 되었습 니다.  역시 주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은 위대합니다. 세상 산을 옮기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고 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정녕코 그 행하신 역사를 이루고야 마십니다. 주님도 역시 그러하십니다. 인간 스스로의 역사는 다 무너지고, 하나님과 주님이 일으키신 역사는 점점 창대케 되어 갑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거의 다 순교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던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홀로 외롭게 살면서 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로 인하여 주님은 그의 영을 천국으로 데려가 천국의 비밀을 보이시고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깊은 말씀을 하시며 “내가 다시 온다. 너희는 알라. 천국이 이같이 있고, 하나님도 존재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불바다 지옥도 있다.”고 하시며, 주님을 믿지 않고 살다가 죽은 자들이 간 곳도 보이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힘내서 열심히 온전한 신앙을 하라고 확실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천국에 대하 여 의심하는 자들에게 요한계시록을 읽게 하여 그 세계에 대해 알게 해 주었습니다. 요즘은 사명자를 통 해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을 써 모두 보게 하여 천국이 있음을 더욱 확실히 알게 해 주고 있습니 다.  성경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 자는 말씀을 받은 자입니다. 그 말씀을 전하면 듣는 자가 생명의 말씀인 고 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되고 감동이 일어납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행하심과 주님의 행하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겨자씨 같은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들은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나게 합니다.  모두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한 말을 우리가 읽고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읽을 때 주님은 말씀으로 깨달아지게 하면서 대화하십니다. 성경말씀은 주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주시는 엄청 난 양의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를 읽는 자는 주님께서 3년 동안 하신 설교를 다 듣는 자입니다. 신약성경을 다 읽는 자는 주님과 제자들의 설교를 다 들어 보는 자입니다.  성경을 통한 계시는 문학적 계시요, 특별계시입니다. 구원길을 가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하루에 성경 열 장은 읽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루에 열 장을 읽더라도 3개월이 넘어야 성경을 한 번 봅니다. 빨리 보면 성경을 일주일에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열 장이 많으면 일곱 장 읽고, 일곱 장이 많으면 세 장 읽고, 세 장이 많으면 한 장이라도 매일 꼬박꼬박 읽어야 됩니다.  기도는 빼놓는 날이 없어야 됩니다. 감사기도, 사고 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 건강 기도, 자기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자기 친구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에 수십 통씩, 혹은 스무 통, 열 통씩 엄청난 시간을 내서 대화하면서 주님과는 하루에 한 번도 제대로 기도로 대화하지 않고 산 다면 죽은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은 시들거리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지옥에 가지 않게 구원해 놓으셨는데 그같이 성의 없이 살면 주님이 좋아하실까요? 구 원이 얼마나 어려운지, 육신 구원도 어렵지만 영혼 구원은 메시아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 다. 주님이 한 번 구원해 주었으면 자기가 책임을 지고 하늘나라까지 가야 됩니다.  성경이 안 믿어지면 안 읽게 됩니다. 믿어지도록 본인이 노력해야 됩니다.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밥을 먹고 씹듯이 천천히 하나하나 의미와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한 장 가지고 온종일 묵상하며 읽고, 한 절 가지고 온종일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요, 주님입니 다.  매일 감사기도를 수십 번씩 해 봐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먼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 니다. 생활 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해 준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생각나지 않으면 하나님 믿게 되어 감사하고, 건강하여 감사하고, 사고 안 나게 해 주어 감사하고, 자꾸 해 주실 것을 감 사하고, 자기를 생각해 주고 사랑해 주어서 감사하고,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천사를 보내어 보호 해 주시니 감사하고, 말씀을 주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귀신과 마귀를 쫓아내게 하 심을 감사하고, 부지런과 열심으로 살게 해 주어 감사하고, 수시로 만물로나 말씀으로 생활 가운데 깨닫 게 해 주시니 감사하다고 기도해 봐요.  이 같은 감사의 기도를 꼭 해야 됩니다. 감사기도를 안 해 버릇하면 죽을 때까지 못 하고 죽는 것입니 다.  주님은 “너는 누구에게 배우고 신앙생활 하느냐. 네 지도자는 누구이며, 목사는 누구냐.”고 물을 것 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같이 가르치지 않으셨으니, 다시 새롭게 배우고 기도해야 됩니다. 믿고 구하는 것은 다 준다고 했으니 매일 달라고 기도하고 꼭 간구해야 우리가 받을 것을 뺏기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가르칠 선생을 제대로 만나야, 주님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주님을 제대로 믿게 하여 하나 되게 해 줍니다. 잘못 가르치거나 실력이 없어 못 가르쳐 주기에 안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젊은이들은 신앙생활을 잘 안 하고 의심도 많아 안 된다고만 합니다. 잘 가르쳐 주면 젊은이 들이 더 잘 믿고 일도 더 잘합니다. 성경의 주인이신 주님이 가르쳐야 잘 가르쳐 주십니다.  절대 믿고, 완전한 믿음으로 기도하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배웠으니 이제 예전과 달리 새롭게 생각하 고 행함으로 믿음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표적을 일으키는 믿음이 없이는 우리가 현재까지 올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험한 세계를 이기고 사탄과 마귀를 물리치며 병을 이기고 고치며 신앙을 유지하며 갈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하 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에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살아가고 있는 자도 많습니다. 육이 그러한 자도 있고, 신앙은 거의 그러합니다. “그만하면 됐다.”고 주님이 말씀하실 정도로 해야 됩니다. 주님의 웃는 얼굴은 안 보여도 마음으로 “그만하면 됐어.” 하는 소리가 들려야 됩니다.  지금은 모두 온전하고 완전하게 자기 일을 해야 됩니다. 시원찮게 하면 그동안 한 일이 수포로 돌아갑 니다. 끝까지 해야 됩니다. 안 믿어 주면 사람도 일을 하지 않듯이, 주님도 자신을 안 믿어 주면 안 해 주시고 그에게 오시지도 않습니다. 믿어 주면 자꾸 일할 것을 주십니다.  과수원지기는 과일 농사를 잘 지어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이야기를 하면 귀가 솔깃합니다. 농사짓는 자, 장사하는 자, 사업하는 자, 돈을 버는 자에게 각각 성공하는 비법을 말해 준다면 모두 귀가 솔깃하 여 잘 듣고 마음도 즐겁고 기뻐서 실천해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모두 하다가 못하겠다고 포기합니 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고 몸이 아름다워져 몸값이 금값이 된다고 하면, 건강한 자들의 몸매를 보고 좋아 서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몇 주일 하다 말고, 몇 달 하다 맙니다.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것 입니다. 마음은 호기심이 가도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로 성공하는 자는 많지 않은 것입니 다. 실천자는 위대한 자입니다.  <유초등부들>도 어렸을 때부터 실천해 버릇해야 됩니다. 누가 안 시켜도 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시켜도 안 하니 실망했습니다. 쳐다볼 때마다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르쳐 줍니다. 이제 하나님이 시키 시고 주님이 시키셨으니 이제는 해야 됩니다.  <중고등부들>은 정말 실천해 버릇해야 됩니다. 꾸준히 계속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것입니 다. 자기가 자기를 만들기 위해 행하는 자는 앞질러 가는 자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행 해야 됩니다. 선생도 그리했습니다. 실천하는 자는 위대한 대걸작품을 만드는 데 시작한 자입니다. 성공 의 길을 떠난 자입니다. 하는 것이 자본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대하게 매일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주님도, 옆에 있는 천사도 그냥 두고 보고 있지만 않습니다. 돕고, 함께하시고, 지혜도 주시고, 힘도 주십니다.  대학부·청년부·가정국·장년부 모두 실천해야 됩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실천 해야 됩니다. 하겠습니까? 아멘! 믿고 실천하면 산을 옮기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생은 모두 개인전입니다. 각자 자기 몸을 자기가 유능하게 부지런히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보는 자들도 희망을 가지고 도와주고 따라 줍니다. 자기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선진국만큼 행해야 됩니다. 신앙의 선배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선배만큼 행해야 됩니다. 선배가 되면 말로만 하는 관이 들어갑니다. 주님은 그같이 가르치지 않 으셨습니다. 후배가 잘 몰라도 제대로 가르쳐 주며 함께 행하며 일해야 됩니다.  재미있는 놀이에 빠지거나, 거기에 시간을 쓰면 안 됩니다. 시간을 금같이 쓰지 않는 자는 성공하지 못 합니다. 시간을 뺏기면 거의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런 시간 있으면, 그 귀한 시간을 주님을 위해 바쳐 귀한 것을 얻도록 해야 됩니다. 매일 시간을 뺏기면 매일 제대로 안 됩니다. 유초등부·중고등부·대학부· 청년부·가정국·장년부 모두 값없이 쓰는 시간들을 이제부터 모두 잘라 버리고 귀하게 써야 됩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변화하는 해입니다. 주님이 언제 방문하실지 모릅니다. 왔다 가셔도 모릅니다. 주님이 목표를 주셨으니, 그대로 매일 살아야 표적이 일어납니다.  지도자가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해야 됩니다. 지도자는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혹은 실력은 있는데 간판이 없다고 해서 자르면 절대 안 됩니다. 간판 없어도 잘하는 자들을 꼭 챙겨 주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견제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너무 많아 줄여서 잠언으로 말하겠습니다. 1. 세상에서 주님의 일같이 중요한 일은 없다. 2. 주님 말씀대로 살아야 그 계획대로 하늘나라까지 갈 수 있다. 3. 주님께 맡겨 버리고 감사하며 그 삶을 사는 것이다. 4. 자기 삶으로는 하늘나라를 얻을 수 없다. 5. 주님께 맡기고 살면 삶이 쉽고, 자기가 가지고 살면 자기 사고의 삶이라 어렵다. 6. 사랑하는 자끼리도 삶을 맡기고 살면 서로 기쁘고 가볍고 쉬운 것이다. 7. 목자의 말을 잘 듣는 양은 푸른 초장에서 새로운 꼴을 많이 뜯어 먹을 수 있다. 8. 주님을 이해할 때까지 고통이다. 이는 자기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9.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 남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님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10. 자기의 한 가지 일을 안 이루어 준다고 주님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섭섭하게 생각한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만큼밖에 생각하지 못하겠느냐. 주님은 이왕이면 그것뿐 아니라 몇 가지 같이 더 이루어 주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범사에 수십 번씩 감사하여라. 11. 쉬운 길만 찾아가지 마라. 고생되어도 생명길을 가야 된다. 12. 우선 가기에는 좋은 길이 달지만, 후에는 쓴 것이다. 13.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지만, 미래에 가서는 손해다. 14. 하나님은 우선만 생각하고 행하지 않으신다. 미래를 보시고 그 일을 해 주셔도 그 일로 인하여 다른 해가 오지 않는지 보시고 적절할 때 완벽하게 해 주신다. 15. 사람들은 우선 편한 길로 가나, 주님은 고생이 되어도 근신하면서 생명길로 가게 하신다. 생명길로 가야 영원한 기쁨의 천국길이기 때문이다. 16.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와 희망으로 살아라. 17.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자다. 18. 주님은 자신이 한 말을 믿고 따라오는 자를 보고 기뻐하시고, 그를 좋아하시며, 그에게 표적을 은밀 히 보여 주시며 역사하신다. 그에게 무엇을 해 줄까 늘 생각하신다. 19. 뒤에서 묻혀 열심히 하는 자들과 실력자들을 교역자가 챙겨 주지 않으면 주님 눈에 거슬린다. 언제 까지 외면하고 먹다 만 찬밥 취급을 하려느냐. 20. 어린 신앙인들에게는 어느 때는 영적으로만 가르쳐 주고 어느 때는 육적으로만 가르쳐 주다가, 성장 한 후에는 영육 다 가르쳐 주면 다 믿고 육도 영도 같이 부활되어 더욱 빛나고 새롭게 변화된다. 21. 영적인 자는 영에 대한 말씀을 잘 믿고 따르지만, 육적인 자는 믿기보다 오히려 듣는 대로 의심한 다. 이런 자들은 육적인 것들을 가르쳐 뿌리내리고 꽃이 되게 한 후에 크고 단단한 것들을 가르쳐 줘야 된다. 22. 성장에 따라 어린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일을 시키듯이, 신앙인들도 그와 같이 해야 된다. 23. 어린 신앙인들은 성경에 있는 아무리 좋고 기적적인 말씀을 들어도 마치, 어린아이가 좋은 음식이 있어도 못 먹듯이 먹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먹는다. 때가 되면 단단한 음식도 먹고 싶어 먹듯이, 신앙이 성장하면 성경의 단단한 말씀도 듣고 믿음으로 영과 육이 강하게 자라난다. 꼭 구분하여 쪼개서 가르쳐 줘야 한다. 24. 점진적으로 가르쳐 줘야 잘 믿는다. 이것이 순리이며, 이해도 잘된다. 25. 독특하게 성경에 있는 것을 말하면 생소하게 생각하고 안 믿는다. 세상에 그같이 일어난 일들을 이 야기해 주고 성경에 있는 것도 말해 주면 다 믿게 된다. 26. 사람들은 어떤 자가 많이 행한다고 하면 안 믿는데,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것을 보면 그가 행한 것 도 믿게 된다. 주님은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냄새나는 시체를 살리셨다. 이 말을 들으면 믿기보다 자기가 안 보았을 때 옛날에 행한 일이니 그 말을 듣는 즉시 ‘어떻게 살렸지?’ 하며 의심 먼저 하게 된다. 지 금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데서 그 같은 역사가 많이 일어난다. 그것을 먼저 이야기해 주면 쉽게 믿어진 다. 산을 옮기는 믿음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도 배워야 된다. 커야 된다. 27.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표적은 크기 때문에 안 믿어지고, 작은 냇물이 갈라지게 했다면 작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해가 되면 홍해바다가 갈라진 것도 믿어지지만, 이해가 안 되면 냇물이 갈라지 게 했다고 해도 안 믿어지는 것이다. 28.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해 주는 일과 주님의 행하심을 믿게 해 주는 일은 너무도 큰일이다. 안 믿는 다고 그 사람을 책망하고 무시하지 마라. 믿어지게 자세히 설명해 주는 너에 따라 믿어지고 안 믿어지니 네 책임이다.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과 주님이 행한 것뿐 아니라 결국 하나님과 주님을 잘 믿고 못 믿는 운명을 좌우시킨다. 선생 된 자의 책임이 크니, 선생이 되어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배우고 가르 쳐 주어라. 29. 사역자는 주의 뜻을 잘 배우고 잘 가르쳐 줘야 배우는 자가 잘 성장하는 것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 한 자는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니, 가르치지 말고 먼저 배워라. 30.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안 믿으면 구원의 표적도 능력도 행치 않으신다. 31. 지금도 지구 세상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안 믿으니 모를 뿐이다. 32. 하나님이 전 세계에 행하시는 일이기에 믿으나, 안 믿으나 모든 인생들에게 해당되므로 안 믿으면 시대 하나님의 방향을 몰라 결국 자기만 손해다. 33. 하나님과 주님의 행하심을 믿고 싶지만, 안 믿어지니 안 믿고 산다. 믿음이 잘못 성장해서 그런 것 이다. 지도자도 책임이다. 34. 가르치는 자가 잘못 가르쳐 주면 신앙도 버리게 된다. 35. 자기는 성장하여서 잘 믿어진다고 해서 어린 신앙인들에게 막 가르치면서 믿으라고 하면 안 믿는다. 36. 어린 신앙인에게는 성경의 쉬운 것을 먼저 가르쳐 믿게 하고, 그같이 작은 것만 믿고 행하게 하여 라. 그런 후에 성장하면 그때 그 성장한 믿음대로 가르쳐야 된다. 어린 신앙인들을 막 가르치는 것은 목 욕탕의 뜨거운 물에 어린아이를 집어넣는 격이다. 37. 주님은 “네 믿음대로 행하고 되어져라.”고 말씀하셨다. 38. 믿을 자도 잘못 말하면 안 믿는다. 오히려 의심하고, 전하는 자까지 우습게 보고, 이상하게 보게 된 다. 39. 아기에게는 “젖 먹으러 가자.”고 해야 따라가고, 어른에게는 “밥 먹으러 가자.”고 해야 따라간 다. 40. 의심하는 자는 주님이 행한 일도 안 믿지만, 믿는 자는 아직 행치도 않은 일도 주님이 행하심을 절 대 믿는다. 41. 네가 믿기 전부터 하나님의 뜻인 것은 행해 오고 계신다. 네가 믿음으로 너도 그 기쁨에 참예하게 되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네게도 기적이 일어난다. 42. “네가 지금껏 주님이 네게 행한 크고 작은 일까지 믿느냐?” “아멘!” “그러면, 앞으로도 네게 크고 작은 일을 행할 것과 더 큰 일을 행할 것을 믿겠느냐?” “믿습니다!” “믿으면 내가 행한다.” 43. 주가 행한 일을 믿지도 않고 주만 믿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여 산을 옮기 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느냐. 한 번 생각해 보아라. 알고 믿고, 알고 주장도 하여라. 44. 믿음은 서로의 신용이다. 네가 믿음이 없다고 해서 나까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45. 나를 믿는다면, 내가 행한 것도 믿으면서 나를 믿어라. 그래야 네가 참으로 내 제자가 되어 너도 나 와 같이 행하면서 실체를 가르쳐 줄 수 있다. 46. 믿음이 없이는 기쁘게 하지 못하고, 사망으로 가는 생명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47. 믿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다. 48. 믿음의 축복, 믿음의 자본, 믿음의 보화, 믿음의 능력, 믿음의 주권이다. 이것 없이는 나와 동행하 지 못한다. 믿음이 이같이 크고 위대함을 알고 모두 갖도록 하라.   <2009년 1월 18일 주일말씀>   알고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관리하기 쉽다   본 문 야고보서 3장 1-5절 누가복음 6장 27-30절, 40절 마태복음 7장 28-29절   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평강을 빕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줄 때 보람이 있고, 배울 때 보람이 있고, 실천할 때 보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이 제자들을 가르친 것을 보면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주셨고, 말씀하신 즉시 이해되고 감동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은 복잡하게 가르치는 것을 안 좋아하십니다. 핵심을 잘 가르쳐 하나님 을 믿고 섬기며 순종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절대 믿고 사랑하며 사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몸소 행하시면서 그 환경에서 보이며 가르쳐주셨습니다. 성경말씀대로 그같이 행하면서 성경을 보면 빨리 이해되고, 감동과 함께 얻어지게 되고, 살아 역사하시 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주님의 심정과 말씀이 전하는 자의 입에서 줄줄 나오게 됩니다.   무슨 음식을 먹으면 어디 건강에 좋은지 구분되어 있듯이, 말씀의 내용에 따라 정신적 변화와 행실의 변 화가 각각 다르게 일어납니다. 자기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병이 오듯이, 말씀도 잘못 가르치면 신앙에 병이 들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실지 모두 궁금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8-29절에 『주님의 말씀은 그 시대에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말씀보다 권세 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말 씀을 통해 신앙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문제를 풀어주시고, 속도 시원하고, 영혼도 신령하고 건강하게 해주 실 것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성장된 자는 성장된 자에 해당하는 대로 가르쳐줘야 되고, 그에 해당하는 사명과 일을 주고, 그에 맞게 대하도록 신경 써서 살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하지 않으면 대함을 받는 자는 정말 기분이 나쁘고 싫은 것입니다. 합당하게 구분하여 그 사람에 맞게 대해줘야 됩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행하여 자신도 변화를 일으키고, 상대도 변화시키기를 축원합니다. 이와 같이 이치에 따라 행하는 자는 지도자로서도 잘하는 것이며, 성장하는 자들도 잘 성장하게 됩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대하면 처세를 제대로 못하는 자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대해주면 이치에 맞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사람은 꼭 분별하고 그에 맞게 대해줘야 됩니다. 상대가 제대로 제 위치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 주 님의 말씀을 그 입장에서 생각하며 전해주고 대해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점진적으로 가르치며 대해 주면 됩니다.   사람을 제대로 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며 대함을 받으려 하 고, 또 자기 생각으로만 받아들입니다. 대함을 받는 자들도 이같이 하면 안 됩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 과 주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배우고, 온전하게 살아야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지고 잘 되고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하고 바르게 교육한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말씀은 완전하 지만, 예수님이 와서 보니 유대종교인들은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외식과 형식으로 이론적으로만 외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책망하시며,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라고 채 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몸소 실천하시면서 새 시대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펴가니 외식적인 구시대 종교인들은 정 신과 행실이 썩은 죽은 자들인 고로, 주님의 행하심을 반대하고 막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실체로 말씀을 행하시면서 제자들을 실습시키며 뜻을 펴나갔습니다. 제대로 가르치고 이끌어가니 따라오는 자들 을 잘 관리하고, 쉽게 인도하며 다스린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했 습니다(마 11:28). 성경을 잘못 가르쳐주고 인생을 잘못 가르쳐주면, 잘못된 연고로 인하여 관리하고 이끌어가기 힘듭니다. 잘못된 것은 다시 가르쳐줘야 됩니다. 잘못 알고 살면, 모르고 살기에 사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도 더 받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유대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잘못 가르치고, 행치 않으면서 형식과 외식으로 가르치니 답답했습니다. 주님이 오신 후, 그 가르침과 권세 있는 말씀을 듣고 많은 자들이 따 랐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잘 가르쳐줘야 되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어디까지 행하시는지 제대로 가르쳐 줘야 됩니다. 잘못 인식 시켜주면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동물도 잘 가르치고 잘 훈련시 키면, 동물 서커스단이 되어 사람과 같이 행동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가르치면, 듣는 자들이 처음에는 모두 좋아서 잘 따라올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믿고 살아보고 그러하지 않음을 알게 될 때, 따라가다가 실망하고 말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해준다고 성경을 통해 가르치는 자들은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가르치는 자들입니 다. 「하나님이 절대 예정해놓으셨으니 다 해주신다.」고 가르치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분담을 무시 하고 「하나님과 주님이 다 주관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이같이 가르치는 자들은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교파라도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 면 구원받지 못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구원받는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에 대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멸망 길은 크고 넓어 그곳으로 가는 자가 많고, 생명 길은 좁고 협착하 여 찾는 자가 적다.”고 했습니다.   (눅 13:24)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하나님은 100개 중에서 90개 정도를 해주십니다. 나머지 10개 정도는 인간이 해야 됩니다. 10개는 아주 적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는 100%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주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 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형제들도 그같이 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 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성장하면 인간의 일은 하나님께 미루지 말고 인간이 거의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100개의 힘이 있는데, 10개만 해도 된다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 순리요, 진리였습니다. 그 같이 안 했으면 예수님도 세상에 계셨을 때,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하나님의 뜻을 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체제와 법도를 보아도 어린아이 때는 부모가 거의 다 해줍니다. 그러나 성장하 면 자신이 거의 다 해야 됩니다. 더 성장하면 누구 쳐다볼 것 없이 자신이 다 행합니다. 이와 같이 신앙 세계도 신앙이 어렸을 때는 하나님이 거의 다 해주시지만, 성장하면 본인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보람 있고 기쁘고 즐겁고, 자기 행한 일이 남아지게 됩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해준 것은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씻겨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옷을 빨아 입히 는 일입니다. 남는 것이 있다면, 몸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커서 행한 일은 자신이 행한 것이므로 남 는 것이 많습니다. 성장할수록 본인이 해야 그 공적이 남아 빛나게 되고, 죽은 후에도 빛이 나게 됩니 다. 신앙세계도 그러합니다.   예수님 시대도 제자들이 예수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어린아이같이 크다가, 주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예 수님을 따라서 역사를 메고 책임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고로 사도의 역사가 그 시대에 살아남아진 것입 니다. 자기 자신이 해야 공적도 남아지고, 표가 나게 섭리사에 길이 남아집니다. 모두 이같이 가르쳤기에 가르 친 자가 함께 있지 않을 때에도 각자 자기 책임들을 다하여 섭리사가 더 창대하게 커왔던 것입니다. 과거 우리가 기성에 있을 때는 「믿기만 하면 된다. 다 예정해놓았기에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배워 왔습니다. 결국 그렇지 않았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는 말을 믿었으나 그대로 안 되니 신앙을 떠나 사회로 나가게 되 었습니다. 거기서 열심히 하니 교회에 다닐 때보다 더 잘되어 좋아했습니다. 그중에 일부는 섭리사에 와 서 인간이 책임분담을 해야 할 일 10%와 하나님이 해야 될 일 90%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인간의 책임분담 10%, 즉 인간에게 해당되는 100%를 위해 열심히 뛰고 달려 신앙의 굶 주림 없이 새로운 희망으로 새롭게 변화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미 예전에 믿음 들이 파선되어 교회를 안 다녔을 것입니다. 열심히 해야 주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여 힘을 주십니다. 잘 가르쳐야 자신도 잘 되고, 듣고 배운 자도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지고 잘 성장하여 구원을 상실하지 않 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또 들어보겠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께 다 맡기고 가만히 있다가는 굶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행하자.”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열심히 믿고 행하면, 자신의 의지로 인하여 하나님이 돕는다고 생각하면서 행하므로 못할 일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행하면, 하나님과 주님께서 약속대로 필 요한 만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할 일이 인간보다 수십억만 배 많으십니다. 고로 인간들이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도 우시고, 거기에 신경 쓰며 시간을 보내지 않으십니다. 선생도 내 할 일은 여러분들이 할 일보다 수백 배 더 많습니다. 내 할 사명도 많기에 여러분들이 스스로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다 해주지 못할 뿐 아니 라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다 해주면 로봇의 삶이 되고, 식물인간의 삶 이 되는 것입니다.   남이 해주기만을 바라며 피동적으로 살면, 하나님이 주신 삶의 희로애락의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일로 인하여 낙을 누리고, 보람을 느끼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각자 맡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이는 성경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할 일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존재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실 사명과 할 일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기쁨입니다. 상호존재하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물은 귀합니다. 가뭄이 들었을 때, 누가 물 지원을 해준다는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느니, 열심히 땅을 파고 샘을 파야 됩니다. 어디든지 땅속에는 물이 있으므로 파면 솟아납니다. 누가 해줄 것으로만 생각하고 기다리다가 안 해주면, 결국 자기만 갖은 고통을 겪고 실망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삶은 위대한 삶입니다. 이같이 샘을 파는 자만이 가물어도 물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을 주시고, 깊은 곳에 물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인간의 책임분담으로 깊이 파기만 하면 물 이 나옵니다. 가뭄 때 비오기만 기다리다가 곡식이 말라 죽게 되고, 사람도 목이 타 결국은 죽게 됩니 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이같이 살아보았습니다. 누가 도와줄 것만 기대하고 믿으면 안 됩니다. 능력이 있 는데도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는 만큼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기에게 주신 복도 빼앗 깁니다. 천국에서도 모두 가만히 있지 않고 부지런히 자기 사명을 합니다. 잘못 가르쳐주면 잘못 알고 잘못된 길을 가며 고생만 합니다.   자기가 할 일인데 ‘하나님이 해주신다. 주님이 다 해주신다.’하면서 그것만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실 망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했을 것인데 못하여 일을 당했구나.’하고 후회하며 가르친 자를 원망 하고 싸우기까지 하게 된다고 주님은 오늘 특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그같이 가르쳐주지 않았을지라도 그같이 그릇 사고하는 자들도 다시 새롭게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야고보서 3장 1-5절을 보면, 야고보가 선생 된 자는 책임이 크고, 잘못 가르쳐주면 죄도 크니 선생 되기를 원치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선생은 많으나, 오직 하나뿐이라고 자신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그 시대에 성경을 가르치던 유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을 두고 하나님과 율법을 가르치는 선 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제대로 못 가르쳐주었고,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죽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그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쳐주시니, 몇 명 안 되는 자들로 역사를 시작했지만 그 제 자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펴서 그 시대를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역사는 점점 커져서 환 난·핍박·갖은 고통을 받아가면서도 지구촌에 신약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유대종교인들은 외식과 형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습니다. 큰 소리들만 쳤고, 전통과 조상들의 유전만 따지고, 모세의 율법만 딱딱하게 외치며, 권위주의에 가득 차 권위에 꽉 찬 신앙만 하였습니다. 고로 인생들을 제대로 구원시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해주지 못하였으 므로 예수님 당세 때, 구약종교는 4000년이나 되었지만 큰 역사를 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제대로 알고 가르쳐왔기에 어려운 환난을 이기고 신앙을 지켜 왔던 것입니다.   구시대 유대율법주의자들은 6000년 역사와 전통만 자랑하였지, 2000년의 기독교 역사와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인간들이 각자 자기 책임의 사명을 다하 면서 하나님과 주님의 뜻을 펴 시간이 갈수록 더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도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잘 가르쳐주고 행하게 하도록 해야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펴나가며 신앙이 죽지 않고 절대적인 구원을 받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못 가르쳐주면 절 대로 신앙이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고, 주님이 원하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제대 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을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바르게, 세밀하게, 자세히 가르쳐주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속 시원히 행해야 이 시대에도 새롭게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들도 더 굳건하게 서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배우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고 살면, 평생 그릇되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님은 성경을 복잡하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이 메시아이심을 올바로 가르쳐 주어 믿게 하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절대 순종하며 영광 돌리고 형제들을 화목하게 대하고 사 랑하면서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복잡한 것을 가르치다 보면, 근본의 주님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여 인생들을 구원하실 주님에 대해 잘 모르고 그와 하나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가 되도록 일체만 시켜주 면 됩니다.   지도자들은 잘 들어요. 요즘 경제난 때문에 힘들고 피곤한데 너무 시간을 빼어 강의만 하면 안 됩니다. 직장에 갔다 오면 피곤합니다. 공부하면 피곤합니다. 그러니 꼭 필요한 시간만 내어 요지만 말해줘야 됩 니다. 필요 없이 많은 시간을 들여 강의하면 오히려 지루해 합니다. 그리고 틈이 있어서 교회에 기도하 러 오려고 하다가도 오지 않습니다. 중고등부들도 꼭 필요한 시간만 내어 강의해주고 보내야 됩니다. 강의는 절도 있게 하고, 규모 있게 해 야 됩니다. 만일, 놀고 할 일이 없는 자가 있다면 꼭 붙잡아 가르쳐주면 좋지요.   주님은 억지로 자신을 믿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스스로 알고 싶어 하고,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 니다. 사랑도, 믿음도, 주를 위해 하는 일들도, 전도도, 헌금도 모두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을 원하십니 다. 본인이 자진해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안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 해주신다면 구원 못 받을 자도 없고, 천국에 못 갈 자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는 자는 적고 지옥에 가는 자는 많으니, 그 원인은 본인이 자기 책임분담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행하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렵습니까? 모두 겪어보았지요?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 할 일들을 해보았지요? 너무나도 실천하기 힘들지요? 하지만 행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행해야 사망에서 나옵니다. 행해야 꿈과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말로만 하면 말로만 이루어집니다.   사막을 홀로 외로이 고통을 겪으며 가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타를 타고 그곳을 횡단하던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와서 당신을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하며 갔습니다. 사막을 홀로 걷던 자는 가다가 힘드니 가던 길을 멈추고 온종일 타들어가는 땡볕에서 그 사람의 말을 생 각하며 희망을 걸고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밤이 돌아와 그곳을 지나가던 사 자 떼한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잘 가르쳐주지 못하니 안 죽을 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사막의 모래 위를 홀로 힘들게 걸어가니 위로할 겸, 누가 도와줄 것이라고 자기 생각으로 잘못 가르쳐줘서 죽게 한 것입니다. “힘들지만 열심히 가야 합니다. 가면 갈수록 희망이 옵니다.”하고 제대로 가르쳐주고 갔으면, 그는 가던 길을 열심히 가 서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인생들이 이와 같으니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가르쳐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먹기에는 감보다 곶감이 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 주님이 다 해주신다.”고 하며 좋게만 가르칩니다. 순간 듣는 자는 기쁘고 좋지만, 결국은 안 좋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최선을 다하 라고 바르게 가르쳐주면 자신도 성공 길을 가게 되고, 하나님과 주님도 돕고 함께 하십니다. 본인이 열 심히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행해야 그 행위대로 하나님과 주님도 역시 열심히 해주십니다. 주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는 처음에는 듣기 힘들고 마음에 쓴 말씀이지만, 제대로 된 가르침입니다. 제대로 한 말은 쓰지만, 지키면 제대로 희망이 이루어집니다. 고 생이 되어도 생명 길을 가야 된다고 수없이 말했지요?   주님은 또 이같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백지와 펜과 물감을 갖다 놓고 구상을 하고 있었다 하자. 글을 쓸까? 그림을 그릴까? 몇 시간씩 구상을 하는데 구상이 나오지 않겠느냐. 그러나 행하지 않고 계속 구상만 하고 있으면, 생각난 것들이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지지 않겠느냐. 잘하든지 못하든지 행해야 된다. 안 하면 하루가 가도, 한 달이 가도, 1년이 가도, 평생이 가도 결국 아무 것도 못 쓰고 못 그리는 것이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하라. 행하면서 고치고, 또 구상도 하며 멋있게 하는 것이다.”   시도, 잠언도, 그림도 행해야 구상이 글로, 그림으로 나옵니다. 우리 모두 구상만 하지 말고 행해야 됩 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행해야 됩니다. 행하면서 고치게 되고, 발전하게 되고, 꿈을 이루게 됩니다. 자기 생각들을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잘못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잘못 됩니다. 잘못 가르쳐주면 잘 못 행하게 되어, 생명들을 지도하고 관리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사고가 잘못되어 있으면 자기 몸이지만 제대로 다스리고 관리하기 힘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알고, 바로 배우고, 바로 가르쳐주고, 바로 행해야 힘들지 않고 쉽게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배울 때 는 힘들고, 가르칠 때는 힘들지만 올바르게 배우고 가르쳐야 결국은 힘들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알고 가르치고, 알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온전하게 신앙을 만들고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 행해야 됩니다. 섭리사는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주었기에 그만큼 행하여 오늘 여기까지 신앙을 해올 수 있었습니다. “더 잘 알고 가르쳐주고, 더 새롭게 배우고 행하여 변화가 되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들을 행할 때,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쉽게 해버리면 안 됩니다. 뒷일 을 생각하면서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자기 쉬운 대로만 행치 말 아야 합니다.   섭리에서 중직을 맡은 자들은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쉽게만 일하지 말고, 섭리 전체를 생각하고 하나님 과 주님을 생각하며 행해야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행해야 됩니다. 원수는 사랑하되, 원수의 말을 듣고 끌려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향해 그 은혜로 끌려 행해 야 됩니다. 담대하게 행해야 합니다. 다윗이 항상 어떤 환경과 어떤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행하니, 하 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그에게 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고, 주리면 먹여주고, 입을 것이 없으면 입을 것을 주어라. 그리하 면 원수의 목전에서 네게 상을 베풀어주리라.”했습니다.   주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가르치고 말씀하십니다. 고로 주님께 성경을 배우고, 주님과 같이 실천해야 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제일 좋아하시고,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감히 거짓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한다고 해놓고 못하는 것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거짓말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아니고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합니다. 주님 앞에 약속한 것도 지켜야 거짓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과는 약속했어도 상황에 따라 행하면 됩니다. 인간을 중심하지 말고 하 나님을 중심해야 됩니다.   주님의 한 마디 말씀도 참으로 큰데, 오늘도 몇 가지를 말씀해주십니다. 거짓말하는 자와 참말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중 누구의 말이 매끄럽고 믿어질까요? 거짓말은 만들기 때문에 매끄럽지만, 참말은 그대로 하니 더 이상 다른 말이 없습니다. 참말은 자기가 행한 대로 거칠든 지, 구부러졌든지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자의 말이 매끄럽게 다듬어져서 처음에는 믿어지 나, 나중에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며 그 행위대로 대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의 편이 아닙니다. 참말의 편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다 용서해주십니다. 그런데 회개한 후에도 회개한 대로 살기가 힘듭니다. 천국은 어느 시대, 언제, 누가 갈지라도 흠이 있으면 절대 못 갑니다. 그 흠은 회개로 없애고, 행함으로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와 삶을 통해 자기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실상 거의 다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를 아시기에 “더욱 열심히 해야 된다. 새롭게 하라. 말씀을 듣고 마음과 생각을 더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 으라.”고 말씀하시며, 부족한 부분을 미리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께 나아와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하고 물으니, 이에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 해주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백 구십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했습니다. 남을 용서해주는 만큼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나 주님 앞에 용서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용서한다면 더 많이 용서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이같이 수십 번의 엄청난 용서 는 인간의 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법입니다. 지켜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잘못을 반복하면 계속 용서하기 힘들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고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잘못을 행하고 피해를 주면, 화가 나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가령, 일찍 일어나라고 했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다섯 번, 열 번씩 일어나지 않고 계속 게으르게 행한다 면 용서해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하기보다 포기해버릴 것입니다. 한 번 약속한 것을 여러 번 번 복하며 행하지 않거나 실수를 반복하면 용서하지 못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사람은 한 가지만 행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가지를 행하며 삽니다. 행하다 보면 이것도 실수하게 되고, 저것도 실수하게 됩니다. 또 형제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각자 서로에게 잘못하게 되니 실상, 그 행위에 따라서는 각각 한두 건들입니다. 그같이 생각하면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고 반복해서 자꾸 안 한다고 해놓고 하고, 한다고 해놓고 안 하면 주님께 책망을 받습 니다. 자신들이 온전하게 살려고 결심하고 생각을 굳히면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한 건을 가지 고 계속 잘못했을 때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이 어떤 한 건을 가지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자기에게 잘못하는 것이 아니고, 한 번이나 두 번 잘못하고 실수하게 되니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고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사백 구십 번을 반복해서 잘못한 것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자기에게 잘못했으면 서툴러서 그랬으니 용서해주고, 몰라서 그같이 행하였으니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고로 늘 실수하지 않고 온전한 사고를 가지고 행하도록 잘 가르쳐줘야 됩니다.   우리끼리 일어나는 일을 보아도 한 건을 가지고 반복하여 잘못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 하나 혹은 저것 하나 잘못을 하게 됩니다. 그같이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건씩 됩니다. 이를 깨닫고 자기 입장을 생각하 면서 형제의 심정도 알고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됩니다. 이 같은 자 들은 천국의 마음을 가졌기에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온전히 행한 일도 형제가 오해하여 큰 죄나 지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형제를 죄인 취급하는 자도 있습니 다. 이런 때는 죄인 취급을 당하는 자가 무지한 형제들을 용서해야 됩니다. 용서하고 자기는 주님을 따 라 급히 사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라면, 횟수에 상관없이 용서해줘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도 살아납니다. 그래야 그를 향한 희 망을 이룹니다. 주님은 내게 “나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는데 너는 왜 형제의 잘못을 한두 번만 용서해주 고 마느냐. 나와 같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근본을 깨닫고 이제 그같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주님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 용서해주어서 그가 낙심하지 말게 하고, 다시 잘하여 사탄의 나라 지옥에 가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용서하게 되지만, 자기 마음을 가지면 용서해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해주 면 마음이 천국입니다. 용서받은 자의 마음이 기쁘듯, 용서해준 자의 마음도 그같이 기쁜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자기를 죽이려는 적을 용서해주고 적을 쏴 죽이지 않으니, 평생 그 기쁨이 마음속에 있으므 로 기쁩니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자기를 죽이러 오는 적을 먼저 보았다고 마구 총을 쏴서 죽 이면 속이 시원하고 훈장도 타니 그때는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해주고 자기도 살고 적도 살아 평화 롭게 끝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주님도 가르친 대로 행했으니 잘했다고 칭찬하며 기뻐하십니다. 자기 도 생각할 때마다 기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와 부딪히고 싸우며, 더러는 많은 해를 준 원수 같은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 다. 그래도 주님을 믿고 주를 사랑하려면 원수까지 사랑해야 됩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살다가는 주님 앞 에 갈 수 없습니다. 원수도 주님의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자기 마음에 용서할 마음이 없으 면 주님을 보고 용서해주고, 하나님을 보고 용서해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 크고, 사망으로 가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더 큽 니다.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무엇이든지 말씀에 순종하면서 가야 합니다. 말씀은 어렵지만 지킨 만큼 꼭 축복해주십니다. 믿습니까?   성경 말씀은 모두 좋은 말씀입니다. 지키려면 정말 어렵고, 또 어렵습니다. 그래도 지키는 자가 되어야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 극한 환난과 핍박과 억울함을 받으면서 죽음을 앞에 놓 고서도 가르치고 외치셨기에 심정의 말씀이 더욱 불같이 나왔고, 몸소 겪으니 모든 세상을 아시고 확실 하게 가르치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겪어야 알게 되고, 겪으면서 외쳐야 가슴에 불이 붙어 깊은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체험 신앙 입니다. 입술 신앙이 아닙니다.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말고 가야 됩니다. “겪고 제대로 가르쳐야 머리에 사고가 제대로 들어가 제대로 행하게 되고, 관리하기 쉽다.”고 말씀했 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주리면 먹이고, 헐벗으면 입혀주어라. 그리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 어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를 행하는 자가 생명의 주관권에 들어가 사는 자입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면, 가르치는 자가 책 임을 져야 합니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가르치면 안 됩니다. 오직 주의 가르침에 따라 온전히 배우고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축 원합니다. 아멘. <2009년 1월 21일 수요말씀> 내게 잘 배우고 잘 가르쳐라   본 문 마태복음 23장 1-12절 히브리서 5장 12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선생에 대하여, 그리고 지도자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가르 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온 백성들은 구약 4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었 습니다. 고로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율법의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서기관들과 바 리새인들이 모세 율법의 선생들이 되어 사람들을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간단한데, 이 십계명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은 이 율법을 중심하여 조항을 붙여 가르쳤습니다. 율법을 613개 조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중 적극적인 조항 248개, 소극적인 조항 365개로 분류하여 가르쳤는데, 248개 조항은 사람의 지체 수를 맞추어 만든 것이 고, 365개 조항은 1년 365일에 맞추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율법 선생들은 이 많은 것을 가르치며 끝없이 변론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가르침 을 보면 그들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도 그 같은 변론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들과 선 생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필요 없이 이것저것 복잡하게 가르치는 것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배우는 자가 지겹게 생각하고, 핵심의 말씀도 흐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의 가르침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선생이라고 하고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이 가르치는 말은 듣고 행 하되, 절대 그 행위는 본받지 말라. 선생이라고 하며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이 말만 하고 자신들은 행치 않는다.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 주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론이 많고 변론은 많으나 행치 않으니, 할 일이 없어 말만 하고 있다고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며 가르 쳐 주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선생이라고 하고 지도자라고 하는 저 율법 지도자들은 모세의 위치에 모세처럼 앉아 서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들에 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는 보이려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만 나타내고 보이려 하니, 참으로 잘못되 었으며 외식과 형식적인 자들인 고로 절대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 이라는 뜻입니다. “너희 선생은 오직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오직 하나이시니,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한 분뿐이다. 또한 너희는 지도자라 칭함도 받지 말라. 지도자는 오직 하나이니 그리스도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자로서 모든 것에 대한 랍비요, 지도자라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이르시기를 “너희는 말씀을 행하면서 가르쳐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큰 자라면 너 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역시, 그 가르치심이 율법 선생들 같지 않았습니다. 권세 있고 세력 있는 말씀을 하시는 선생으 로서 참랍비요, 참지도자였습니다. 이 시대도 주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들이 주님을 절대 선생으로 알고 지도자로 알아 그 가르침을 제대로 배워야 하건만, 그렇지 못하여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예수님 시대의 바리 새인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같이 성경을 복잡하게 수백 가지로 가르치고 있다고 책망하십니다.   또 말만 하고, 따르는 자들에게만 짐을 묶어 어깨에 지우고, 문안받기 좋아하고, 자기는 한 손가락이라 도 움직여 도우려 하지 않고,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많은 자들 앞에 칭찬받기 좋아하는 신앙들을 책 망하십니다. 이처럼 지금도 하나님께 보이려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만 보이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섭리사에 있는 자나, 기성에 있는 자나,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는 자들 모두를 보시며 시대를 지적하고 말씀으로 책 망하시니 모두 고쳐야 합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자신들을 돌아보며, 주님의 제자로서 호리라도 모순 없 이 행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선생이다. 지도자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지체에 머리가 하나이듯이, 우리의 선생과 지도 자는 하나입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작게는 우 리 섭리사에도 선생과 지도자는 하나뿐입니다. 만일 형제들 중에 큰 자라면, 따르는 자들을 섬기며 그들 을 위해 살아 주는 것입니다. 크고자 하면 낮아집니다. 부지런히 행하면 형제 가운데 큰 자가 됩니다.   누구든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신약성경을 자세히 보면서 ‘이 시대도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가?’ 보고, ‘자신도 그같이 행하는가?’ 항상 보아야 합니다. 못하는 것이 있으면 즉시 고치고 순종하며 살아야 주 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선생이 모르니 따르는 자들도 모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을 믿게 하는데, 성경을 복잡하게 이론을 만들어 가르쳐 변론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어떠하기 때문에 우리의 구세주이신지 가르쳐 믿고 사랑하게 하면 됩니다. 그가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30개론도 결국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주님이 메시아이심을 가르치는 말 씀입니다. 잘못 가르쳐 주면, 잘못 알고 잘못 사고를 하여 행해도 잘 안 되고 더 고통만 겪는다고 했습 니다. 잘 가르쳐 주어야 잘하게 되고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에 대한 가르침은 세상 학문을 가르쳐 주는 세계와 너무나도 다릅니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감동이 되지 않고 믿을 마음이 없어 믿지 않게 되면, 그 영혼이 영원한 사망으로 가게 되고 그 육신도 세상에서 하나님과 구원주를 떠나 살기에 고통을 받으면서 지상의 사망권 속에 살게 됩니다.   본인 책임도 크지만 가르친 자의 책임도 너무 큽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생 된 자들이 심판도 크니 너희는 선생 되기를 원치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도 잘 가르쳐 주고, 하나님과 예수님도 잘 가르쳐 주고, 개인들의 문제도 정말 잘 가르쳐 줘야 합니 다. 잘못 가르쳐 주면 실패하고 망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잘 가르쳐서 하나님과 주님을 잘 믿고 살게 해 주면, 그를 가르쳐 주고 인도한 자의 그 의는 크고, 어디 비할 바 없이 좋은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말한 것을 행하면서 가르치는 자는 큰 자이고, 행치 않고 가르치는 자는 작은 자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행하면서 가르쳐 주어야 생명력이 있고, 듣는 자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이 잘 배운 후에 가르쳐 주 고 전해야 됩니다. 아무나 주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잘 배우고, 성 령의 능력을 받아 자기가 먼저 감동을 받고 뜨거운 자가 되어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듣는 자도 감동 받아 마음이 뜨겁고,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받게 되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움직이며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감동과 은혜가 없는 자는 말씀을 전하여도 듣는 자에게 감동이 없고 은혜도 없습니다. 대개, 신앙이 오래되고 나이 들어 행동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신앙인들과 기도하지 않고 행하는 자들은 말씀을 외치고 가르쳐 주어도 지식으로 깨닫기는 하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없고 은혜가 없습니다.   그런 자들을 통해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이 재미가 없고, 힘이 없고, 세상과 사탄과 핍박과 싸워 이길 힘 이 없고, 신앙과 희망까지도 흔들리게 됩니다. 고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이 말씀에 감동을 받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도록 기도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야 됩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자가 말씀을 전하면, 그 전한 자에 따라서 듣는 자도 믿음에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각 교회도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목사님들이 얼마나 성령의 감동과 은혜 가운데 외치고 가르치느냐 에 따라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 보면 차가운지 뜨거운지 듣는 자들은 가슴으로 느낍니 다. 이는 물을 마셔 보면 차가운지 뜨거운지 알고, 전문가들은 안 마셔 보아도 차가운지 뜨거운지 미지 근한지 알듯이, 같이 이야기만 해 보면 다 압니다. 주님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면 그 입 에서 토해 버린다고 했습니다.   (계 3:15-16)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 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 를 토하여 내치리라』 그러니 열심히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온 교회는 자기 목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해 줘야 됩니다. 그래도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하여 기도하고, 사명을 맡은 목사들은 가슴에 불을 붙일 기회를 얻기 위해 단상 에서 내려와 준비를 해야 됩니다. 불이 없는 자는 불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 을 순종하고 사니, 구했을 때 그것이 뜻이라면 후히 주십니다. 고로 간절히 구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가슴이 뜨겁고 감동이 되어야 주의 뜻을 좇아 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가르쳐야 성령께서 친히 가르칠 것을 가르치게 하십니다. 그래야 신령한 자가 되어 주님도 그 입을 통해 뜨겁게 외치게 해 줍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확실하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지근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앙을 가진 자들은 모두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세계를 가르치는 선생이나 박사나 지도자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신임을 못 받 은 자들도 많았습니다. 후대에 제대로 가르치는 자들로 그 모순을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우주론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을 주장하며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주기적으로 돈다고 가르쳤습니다. 가르치는 자만 그같이 가르쳤지,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 구가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를 중심하여 여러 학자들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해 왔어도 2000년 동안이나 이 이론을 믿지 않았습니다. ‘천동설’이라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갈릴레이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하니 그제야 믿었습니다. 갈릴레이는 태양을 중심하여 지구가 돌고 주변의 행성들도 돌고 있다고 지동설을 주장하고 가르쳤습니다. 결국 그 이론은 실제로 맞는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약 2000년 만에 그릇된 사고와 이론이 깨졌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태양이 돌다가 멈추었다.’고 하는 성경 여호수아 10장에 있는 말씀에 따라 더욱 천동설을 교리화하였기에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전하게 말하는 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갖은 모략을 하여 고통을 주고 무식하다고 하고 무시했습니다. 기독교는 천동설을 주장했지만, 결 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여호수아 10장에 ‘태양이 멈추었다.’는 비진리를 현재까지 계속 주장하며 표적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우리가 이에 대한 진리를 주님께 배우고 제대로 가르치니 이단시해 왔습니다. 소경이 눈뜬 자를 인도하고 지적하는 격이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으면 어린아이라도 따라가지를 않습니다. 이 미 40년 전부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지구에 살고 있으면서도 “지구는 네모나게 생겼다. 고로 끝은 낭떠러지니 멀리 여행 가지 마라. 끝까지 가다가 떨어져 죽을라.” 하는 식으로 알고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 이후, 2000년 동안 성경에 대하여 제대로 모르고 가르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주님께 배우고 성경에 있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면, 모두 배척하고 무시했습니다. 태양이 지구처럼 빠르게 공전과 자전을 한다고 보고, 태양이 멈추었다고 합니다. 또 6000년 전에는 사람 들이 969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금 낼 돈이 없을 때, 주님의 말씀대로 돈을 문 물고기를 낚시로 낚아서 세금을 냈다고 성경을 풉니다(마 17:24-26).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 육체가 살아서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성경을 풀어 이 세상에서 구원받는 자들 도 육체가 죽었어도 다 살아나 하늘나라로 가는 것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같이 풀면, 성경에 예 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이 틀리다고 하는 것인 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로 성경을 푸는 것인 줄을 모릅니다. 주님도,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썩는 양식과 썩어 없어지는 육신을 위해 살지 말라.”고 하였고, “영 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은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간다.”고 수십 군데 나옵니다. 육적인 자는 육신만 중 심하여 생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요 6:27, 고전 5:5, 고전 15:50-54, 갈 6:8, 벧전 1:23, 벧전 3:18, 벧전 4:6, 벧후 1:4)   아담 하와를 인류의 조상으로 가르치며, 인류가 시작된 지 6000년밖에 안 되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 다. 이렇듯 성경을 초등학교 교과서만큼도 못하게 권위 없이 가르쳤으니, 가르치는 자가 얼마나 잘못 가 르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3만 년 전에 조상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보고 배웁니다. 자연이 기록하고 있으며, 실제로 새 겨져 있는 모든 근거를 중심하여 밝힌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지구에 생명체가 생긴 것은 36억 년이 되었 다 하고, 사람의 역사는 300만 년으로 보고, 사람이 불을 사용한 것은 40만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 계산하는 것과 학교에서 계산하는 것이 너무 다르니, 하나님은 믿지만 성경이 안 믿어지 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고 ‘신앙의 조상’이라고 가르치면 아무 모순도 없고 의심 없이 믿게 됩니다. 하나님은 6000년 전부터 아담과 하와를 중심하여 종교를 시작했다고 우리는 이미 배워 왔습니 다. 역시 한 분밖에 없는 선생이 되신 주님께 배운 것입니다. 여호수아 10장에 태양이 멈추었다는 말씀도 주께서 선생이 되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미 내가 20대 초 반에 배운 것입니다. ‘인류 창조 역사가 6000년밖에 안 되었다’, ‘6000년 전에는 사람들이 900세 이상 살았다’, ‘태양이 멈췄으니 얼마나 기적이냐’, ‘고기가 돈을 가지고 다니니 얼마나 신기하냐’고 합니다. 만일 고기가 돈을 물고 다닌다는 식으로 성경을 푼다면, 요즘은 경제가 불황으로 어려우니 고기 잡으러 다니려고 난 리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하기야 성경을 제대로 못 풀고 살아도 오직 하나님만 잘 믿고, 주님만 메시아로 믿고 살면 구원받는 데 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자가 있기에 모르는 자는 예수님 시대와 같이 아는 자를 배척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 대한 해석을 다 잘해도 하나님과 주님을 제대로 못 믿고 살면 구원을 받 지 못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들어 봐요. 그런데 성경을 현실과 실제와 어긋나게 이치에 맞지 않게 가르치면 믿어지지 않고 억지가 되어, 전지전 능하신 하나님까지도 이치에 맞지 않게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을 잘못 가르치면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게 되고, 천국도 이와 같이 이치에 안 맞게 꿈에 불과한 세계인 것처럼 생각되니 확신이 없어 안 믿어 지게 됩니다. 성경을 이치에 합당하게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아니하므로 구원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더 이론에 맞게 가르치는 이방종교나 우상종교로 가거나, 아예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 믿게 되는 문 제들이 생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종교와 우상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얼마나 속 이 상하시겠습니까? 성경을 현실에 확인된 것과 다르게 가르치면 ‘메시아도 인간들이 믿어서 만든 것이 아니냐.’ 하는 생 각이 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에 맞지도 않는데 어찌 절대적인 진리야?” 하며, 하나님과 주님을 제대로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하면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가르치면 어떤 것을 믿겠습 니까? 천동설을 주장했을 때 성경을 썼기에 성경에 태양이 멈췄다고 한 것을 설명해 주고 이해시키면 됩 니다. 진리는 모순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도 이해를 하고 확실히 알게 될 때, 제자들이 믿고 따랐습니다. 주님이 부활했을 때도 자세히 설명해 주니 제자들도 주님이 영으로 부활한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성경말씀이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틀리게 가르칠 때, 저 또한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믿게 되었고, 성경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수없이 다시 읽으면서 주님께 성경이 왜 현실과 다르냐고 가르쳐 달라고 간구하여 주님이 쉽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고로 주님도, 성경도 확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선생이 되어 성경뿐 아니라 내 인생도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 주어 믿게 되었고, 영계도 가 르쳐 주어 그때부터 의심 없이 배웠습니다. “후에는 너도 선생의 선생이 되어 알지 못하는 자들을 가르 쳐 주라.”고 말씀하시어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고로 여러분들도 모두 배워 이치에 맞고, 학교에서 배운 것과도 같으니 의심 없이 믿고 따라왔던 것입니 다. 이는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살과 가죽이 하나 되어 부활하여 군대가 되듯이, 과학과 종교 이론이 하나 되어 말씀에 세력이 있고 권세가 있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은 육적 지식이요, 종교는 영적 지식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일체되어야 곤고함이 없는 것 입니다.   초창기에 성경공부를 할 때는 여기서 다 가르치니 많은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닐 필요 없다고 하면서 모두 학교를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성경을 너무 과학적으로 가르치기보다 신앙적으로 가르 쳐 주었습니다. 학문도 실상은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니 학교는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문의 세계로 갈 자라면 그쪽만 몰두하여 배워야 되지만, 자기가 인생을 살 때 꼭 필요한 것만 배우고 잘 살면 됩니다. 자기 사명인 것만 전문적으로 배워 사명에 충실하면 됩니다. 자기가 쓰여지는 데 대하 여 배우고 유능하게 쓰이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깨닫겠지요? 인생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 없는 것을 배우며 아깝게 시간을 낭비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신앙도 기본은 다 배워야 되지만, 전문 과목들은 전문적으로 하는 자나 배우면 됩니다.   잘 안 믿어질 때는 성경을 깊이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토대로 배우면 하나님도 주님도 잘 믿어지고, 더 욱 의심 없이 절대로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성경은 하나님과 나에 대해 증 거한 것이니 잘 가르치라.”고 했습니다(요 5:39). 성경을 복잡하게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복잡하게 이론을 늘어놓으면서 머리 아프게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보면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내게 배우라. 내 짐은 쉽고 가벼우니라.”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어떤 성경의 의문이나 안 믿어지는 것도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섭리사에는 표적적인 자들이 많습니다. 말씀은 제대로 모르면서도 주님은 믿고 사랑하며 지금까지 도 교회에 잘 다닙니다. 정말 표적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본인도 배울 것을 제대로 바르게 배워야 모 르는 자들을 속 시원히 가르쳐 줄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5장 5절에 아담은 930세를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너무 신기한 일이지만, 내가 생각할 때 정말 솔직히 말해서 의심스럽고 안 믿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면서 직접 본 것도 아니고, 확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어쩔 수 없었는지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 니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조금 더 성경을 읽어 내려가니 더 안 믿어지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27절을 보 니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고 했습니다. 더 기가 막혀 안 믿어졌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믿고 살지만, 나는 현실과 비교해서 확인하고 믿었습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마음 도 달라서인지 나는 도저히 안 믿어져 주님께 오래 기도하며 물었습니다. 혹시 성경에 숫자를 잘못 쓴 것이 아닌가도 생각했습니다. 믿어 보려고 여러 가지로 해석했지만, 나 좋은 대로 믿는 것 같아서 안 되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주님은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시대에 계산법으로 나이를 계산했기에 그같이 산 것이다. 이 시대로 계산하면, 이 시대 사람이나 그 시대 사람이나 비슷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나이를 계산하느냐가 문제입니다. 6000년 전에 나이를 계산하는 것과 달력이 나온 후에 365일을 1년으로 계산하는 법이 다릅니다. 옛날에 달력이 나오기 전에는 달을 보고 계산하였던 것을 역사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6000년 전 옛날 아담 때는 하루해가 짧았던 것이 아닙니다. 인생 일생은 약 100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 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된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돈 많은 자들은 오래 살기 위해 불로초와 산삼뿐 아니 라 별의별 좋은 약을 몇천 만 원, 혹은 몇 억씩 주고 사 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았는데도 100년도 못 살고 다 죽었습니다. 더 살아야 100년을 조금 넘게 살다가 죽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너만큼은 오래 살아야 된다.’고 할 하나님의 사람들도 100년 조금 넘게 살다 죽었습니다. 주님은 오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매일 건강관리를 하면서 시간을 부지런히 몇 배나 더 쓰면 서 살면 몇백 년 산 것이나 다름없고, 일도 몇백 년 한 만큼 해 놓는다.”고 했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살아도 90세가 넘으면 늙어서 오장육부의 기능이 약해져서 먹지도 못하고, 매일 죽는 길 을 급히 가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20세 전의 매일 커 가는 자들을 제외하고, 20세가 넘은 자들은 매일 늙어 갑니다. 예전에는 단상에서 말씀을 전하던 젊고 멋있고 예쁜 남녀 목사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지 않습니다. 외국으로 선교를 나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앙이 죽어 교회를 안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내내 그 목사 님들인데 늙어서 젊고 멋있고 예쁜 얼굴들이 아저씨같이 아줌마같이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더 예뻐 보이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부모님들도 자세히 보면 날마다 늙어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자세히 안 보면 모릅니다. 모든 것을 자세 히 보아야 확실히 알게 됩니다. 교회 안에도 창문을 꼭 닫아 놓았어도 자세히 보면, 바람이 늘 불고 있 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은 눈으로 안 보이니까 이 시간, 시험하고 확인해 볼까요? 얇은 휴지 한 장을 꺼내 보아요. 자~ 그럼 넓이 2cm, 길이 10cm로 쭉 찢어서 손으로 들고 있어 봐요. 바 람이 불지요. 휴지는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정말 바람은 불지요? 공기는 숨을 쉬고 있습니다. 자세히 모든 것을 살피면 확인이 됩니다. 성경도 자세히 보면 잘못 가르치는지, 제대로 가르치는지 확실 히 알게 됩니다. 자세히 민감하게 보아야 영계도 알고, 주님이 스쳐 가심을 알게 됩니다. 말씀도 민감하 게 들어야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을 받고 깨닫게 됩니다.   누구든지 인생 100년밖에 못 산다고 생각하고 보다 젊었을 때, 더 늙기 전에 힘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주님이 맡기신 일들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을 받고 가면 주님이 틀어서 망신만 당하고 자기 자리를 뺏기고 후회만 합니다. 선생이 어렸을 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50세만 넘으면 늙어서 죽기 시작했습니다. 60세가 넘도록 살면 오 래 산다고 했고, 70세가 되면 장명이라고 하며, 요즘의 90세 먹은 자같이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더 오래 사니, 더 주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늘나라를 위해 공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건강하기 위 해 몸 관리 열심히 해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중심해서 인생에 해당되는 모든 것을 잘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무신론자들과 같이 인생 의 이론을 잘못 가르쳐 주면 하나님까지 부인하게 되고, 신이 없다고 하게 됩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성 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 아니고 인간만 중심하는 인본주의 가르침입니다. 민주주의는 하나님을 중심하 여 가르치고, 신의 존재를 시인하는 가르침입니다. 어느 민족이든 잘못 가르쳐 주니 잘못되어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믿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사는 미국이나 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등 기타 기독교 선진국들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살도록 잘 가르쳐 주었기에 잘살고, 문화예술도 번창하고, 사람들도 사회도 20~30년 발달되어 살고 있습니다.   한국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개신교가 들어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잘 가르쳐 주었기에 미신신앙과 우상종교에서 모두 벗어나 이같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에 가서 대화하더라도 그 나라의 국교는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불교라고 하면 말도 않고, 기 독교라고 하면 “정말?” 하면서 우러러보며 좋아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믿느냐에 따라 평가됩니다. 성경도 인생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성경을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서 더 온전히 믿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 것은 말씀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며, 말씀에 불을 붙여 비 전을 심어 주지 못하니 믿다 말고 세상 사랑과 물질과 명예에 빠지고, 곤고함을 해결 못 하고, 말씀이 이치에 안 맞는 것과 같이 미래의 천국도 의심하며 메시아의 존재도 인간이 믿어 만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잡을 수 있는 이상적인 말씀이 없고,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빠져 드는 세상 유혹들을 관리하며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흑암 속에서 인생길을 찾는 자들에게 복음의 밝은 불을 비춰 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둠 가운데 발의 등불이 되도록 강하게 비춰 줘야 되고, 희망을 얻도록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 위대한 말씀을 듣 고, 자기도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가르쳐 줘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최고의 희망으로 여기며 살게 해 줘야 됩니다. 같은 말씀을 가르쳐도 각각 그 사람에 맞게 가르쳐 인생길을 바로 찾아 살게 해 줘야 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잘 가르쳐 놓으면 사고가 온전해져 스스로 잘하게 됩 니다.   인생을 잘못 가르쳐 주면 사망으로 가게 되고 생명길을 잃게 됩니다.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천국과 지 옥을 앞에 놓고 가는 인생들에게 정말 제대로 가르쳐 줘야 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시대 생명 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외쳐야 됩니다. 그래야 새롭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고, 비전이 생겨 모두 길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주님도 축복해 주십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7일 만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잘 안 믿습니다. 지구 역사만 해도 45억 년이라고 배워 그 사고가 머리에 꽉 찼는데, 7일 만에 창조했다면 믿지를 않습니다. 믿고 안 믿는 것은 자기 자유의지라 어쩔 수가 없지만, 성경을 풀어 주면 좋아서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든지 의심하면 안 믿어집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실상은 인간들이 의심해서 안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 하루를 인간의 날 1000년으로 계산해도 창조 7000년입니다. 7000년이 7일보다는 더 믿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안 믿을 때는 더 이해되도록 자세히 설명하면 다 믿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주를 창조할 때 하늘나라까지 창조한 것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하늘나라가 창조된 것과 지상이 창조된 연대가 같다는 것입니다. 모두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 았어요? 창세기에는 하늘나라 천국을 창조한 것에 대해 한 절도 나오지 않고, 천국에 대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 습니다. 오직 우주와 지구 창조에 대해서만 나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보이는 우주세계와 하늘나라 천 국을 같이 창조했다면 하늘나라의 존재 연대도 우주의 기원과 같다는 결론을 가져오게 됩니다. 먼저는 신령한 세계요, 다음은 육 있는 세계입니다.   천국은 상상도 못 하게 우주와 지구가 창조되기 이전에 창조된 것을 오늘은 조금이나마 알고 지나가고, 다음에 더 배우겠습니다. 물과 불이 없으면 사람만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들과 돌까지 존재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에 오직 한 분밖에 없으신 랍비시요, 곧 참선생이십니다. 고로 근본을 가르쳐 주시며 속 시원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속 시원하게 배워야 속 시원하게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섭리에서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은 정말 자기 마음대로 가르쳐 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지도자라고 하며 “이같이 해. 저같이 해.” 하여 문제가 생긴 것은 책임을 져야 됩니다.   교회 공금도 잘 관리해야 됩니다. 공금을 마음대로 내주거나 쓰게 하면 안 됩니다. 공금을 내준 자도, 쓴 자도 책임지고 흠 없이 해야 됩니다. 공적인 일에 책임을 맡은 자는 책임을 지고 일해야 됩니다. 하 나님의 것이니 그 누구든지 공적으로만 써야 됩니다. 하늘의 돈은 귀히 아깝게 생각하면서 써야 됩니다. 삭개오는 사람의 돈을 부당히 쓰고 안 갚을 때는 4배를 갚겠다고 주님께 고백하였습니다(눅 19:2-10). 잘 가르쳐 잘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이 지구촌을 자주 오고 가신다고 생각하며, 자기를 늘 쳐다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항상 예비하고 준비하라. 성경의 약속대로 할 때가 된 것을 믿어야 한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더욱 충만하고, 주 그리스도 사랑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 사하심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안녕. <2009년 1월 25일 주일말씀> 진리와 증거의 영, 성령   본 문 요한복음 15장 23-27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명절로 인하여 이동하느라 바빴지요? 한국을 비롯한 몇 나라들은 음력으로 설을 쇱니다. 명절 때문에 기 쁜 사람도 있겠지만, 슬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가 되시고, 주님은 우리의 사랑 하는 자가 되어 주시니 항상 이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됩니다. 부모가 없다고 슬퍼하고 마음 아파할 것 없습니다. 그 슬픔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주님은 기쁨의 날을 계 획하고 계십니다. 저도 지난날 슬픈 날이 있었지만, 그 슬픔으로 인하여 내 인생이 주님의 뜻을 이루도 록 주님은 각종으로 표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지난해는 고향과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외롭게 명절을 맞았는데, 올해는 한국에 들어와 10년 만에 처음 으로 여러분과 함께 명절을 맞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되지요? 본문 말씀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주님은 그 육신이 제자들과 이별하게 될 것을 아시고, “걱정마라. 오히려 너희에게 더 좋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깊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너희도 나도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에게 무고히 많은 미움을 받아왔다. 실상,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다. 저들은 내 아버지께서 「왜 너희는 나를 그렇게도 미워했느냐?」하면 「언제 감히 미워했나이까?」할 것이다. 이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낸 자를 미워한 것이 나를 미 워한 것이니 너희들에게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저들에게 아무도 말하지 못한 무지와 죄를 말하지 않았으면 저희가 죄 없으련만, 온전한 말씀을 듣고 아버지를 보았어도 미워하는도다. 이는 율법 에 기록된 대로 저희가 연고 없이 무고히 나를 미워하였다 함이 응하였느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할 것이요. 너희도 처 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 하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와 너희들을 미워하고 죽이는 자들은 자기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 내가 너희들에게 미리 말함은 그때를 당하면 생각나게 하려 함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앞 날에 있을 일과 과거에 당하신 일들을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과 주님이 보내어 일하는 자들을 미워하는 자는 역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보내어 일하라고 한 자를 누가 미워하면, 바로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이후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며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고, 말씀대로 제자들과 이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임하여 주님을 자세히 증거 하게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은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이 메시아임을 더 확실히 알게 해주었고, 더 확실하 게 주님을 증거 하게 하여 더욱 사명감이 불타게 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더 욱 하나 되었고, 복음의 역사가 이방으로까지 강물처럼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구세주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이 다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친 히 말씀하신 것을 주님은 이루셨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도 하나님은 약속대로 2000년 동안 이루어오셨고, 주님도 그를 믿는 자들과 함께 이루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 하신 일은 성경에 기록된 것뿐만이 아닙니다. 아담 이후 6000년 동안 상상도 못하게 모든 자들에게 역사해오셨습니다. 각 나라, 온 세계 각 개인에게 행하신 일은 너무도 많 고 많아서 세상 어느 누구도 다 말할 수 없고, 각자 자신에게 행해주신 일들도 자기가 죽는 날까지 다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많고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각자에게 행한 일들을 하나하나 다 감사하다고 말할 수 없고, 모든 자들에게도 다 증거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인·가정·민족·세계에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며, 범사에 감사하 고 영광 돌리고 많은 자들에게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도리이며, 또 책임을 다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에는 특히,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신 것만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나라를 도왔다 는 성구는 찾아볼 수 없지요?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도와주었다는 성구도 없지요? 성경에는 이스라 엘 민족만 도우시고, 그들에게만 기적을 행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듯이, 이 시대 우리들도 사랑해주시며 역사해오셨습니다. 그 시대에 하 나님이 사랑하고 도왔던 자들도 함께 하여 이 시대 사람을 돕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도 각 나라와 개인들을 돕고 함께 해주시며 역사해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구 세상 모든 인생들과 각 민족에게 성경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이 역사해 오신 것을 절실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이 우리도 돕고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두 집에 가서 가 만히 생각해 봐요. 또 지금 이 시간에도 생각해 봐요. 그동안 각 개인·가정·민족에게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이 돕고 함께 하신 일이 무엇인지 회상해보기 바랍니다. 알면 더 역사해주십니다. 모르는 자에게 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너희 전쟁의 날이나, 환난의 날에나, 죽음의 날에 돕지 않았으면 호흡을 하는 자들이 없고, 살아있는 자들이 없다.”고 주님은 확실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2절을 보면, 택한 자들을 위하여 죽음의 날과 전쟁의 날과 환난의 날들을 감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 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들로부터 믿지 않는 자들까지 도우시고, 그 생명들을 생각하시어 고 통과 죽음들을 감해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가정과 민족과 세계 환난의 날을 위해, 또 자기 환난의 날을 위해 열심으로 기도해야 됩니 다. 가정도, 민족도, 섭리도 자기같이 사랑하며 삶을 살아야 됩니다. 가정이나 민족이나 섭리가 죄를 지 으면, 마치 자기가 지은 것처럼 회개하고, 걱정되는 일과 환난이 있으면 자기 걱정과 환난으로 생각하며 기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의 기도를 꼭 들어주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말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여러분들과 각 가정과 나라들을 위해 역사해 오신 것을 여러분들이 직접 말하면 다른 자들도 깨닫고 알게 되니, 지난날들을 열심히 생각 하며 감사해야 됩니다. 그래야 새롭게 변화하는 해가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알거나, 멀리 하늘나라에 계시는 멀고 먼 하나님으로만 알지 말아야 합니다. 나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 작은 일도 큰일도 돕고 신경 쓰시는 하나님, 사람보다 더 가깝고 사랑해주 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됩니다. 사람은 자기 원하는 일이나 어려운 일을 말하지 않으면 못해주고, 아예 관심이 없는 자도 있습니다. 하 나님은 절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심을 확실히 알고 믿어야 됩니다. 이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오 래 믿었어도 막연히 믿고 조금만 알면 이는 마치, 세숫대야에 들어가 목욕하는 자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 는 자입니다.   사람도 아닌 하나님이 자기 민족과 가정과 각 개인들을 돕고 함께 해주셨는데, 도움을 받은 자가 모르면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지 않는 자는 받고도 죄를 지은 자가 됩니다.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생명에 관한 것이나 어떤 어려움에 처해서 도와야 할 때는 하나님 자신의 일, 주 님 자신의 일을 하듯이 행해 오셨습니다.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자에게 더욱 함께 해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어떤 환난과 어려움일지라도 공중에 바람이 지나가듯 아무도 막을 수 없이 행하십니 다.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그의 몸이 되어 그의 일을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행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생활하면서 제자들이나 세리들과 창 기들, 그리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사는 자들과 세상에서 버림받고 사는 자들과 희망 없이 가난 속에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과 병들어 고통당하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사랑하는 대 상이 되어주며, 구원을 위해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 하나님을 믿게 함으로 구원을 시켜주셨습니다. 그러 므로 그 영혼이 사망권에서 나오고, 고통 받는 데서 건강하게 되어 자유로운 영혼과 몸이 되게 하셨습니 다. 지금도 주님은 이 같은 일을 우리와 모든 자들에게 사명자들을 통해 행하시고, 또 직접 행하기도 하십니 다.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주님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사랑하여 생명들이 위험할 때 항 상 구원하시고, 건강문제나 고민·걱정·염려를 당한 자들을 이끌어내 주시며 영으로서도 밤낮으로 작고 큰일들을 도우시며 바쁘게 우리들을 관리하십니다.   눈에는 안 보여도 주님을 부르고 찾으면 일순간에 오셔서 역사하기도 하시고, 오시지 않고도 옆 사람을 통해 돕게 하시고, 자신에게 깨닫게 하여 이기게 하시고, 수천 가지 방법으로 돕고 행하십니다. 이같이 돕고 함께 하는데도 인생들은 늘 걱정과 염려를 하고, 사고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평소 주 님의 말씀대로 “너희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큰일은 도와준 것이 금방 생각나고 깨달아 알게 되지만, 작은 일은 도와줘도 잘 모릅니다. 어떤 환경 속 에서도 도와주었으면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다 큰 것으로 알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 환경에서는 그 환경 에서 돕고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령, 혼자 밤길을 갈 때 꼭 누구를 보내줘서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에 사람을 보낼 수 없는 처지 라면 자신의 마음을 담대하게 해주심으로 도우시고, 천사도 동행하게 하십니다. 또 어느 때는 거기 있는 자를 통해 돕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마음속에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어느 때는 힘든데 자기를 위로할 자가 없어 힘들어 할 때 깨닫게 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힘내.” 할 때도 있고, 어느 때는 꿈으로 보여 걱정이 안 되게 해주시고, 어느 때는 한 입 먹을거리를 주면서 주 님이 챙겨주심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 환경에서는 그 환경에 해당되게 돕기 때문에 별 표가 안 납니다. 작지만 그 환경 때문에 그만큼 밖에 못 도와주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환경 때문에 그만큼 밖에 못 도와주었어도 해결되니, 작지만 감사 하고 기뻐하며 영광 돌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겪고, 이에 해당되는 말씀을 받았어도 말로 깨우쳐주기 정말 힘든 이야기입 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 한 번 더 이야기해주겠습니다. 때는 가을이었습니다. 산에서 기도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지금도 포도가 있을까?’하고 숲속 이곳저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때가 지나 반쯤 물기가 빠진 마른 포도송이 몇 개를 찾아 따먹게 되었습니 다.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너무 양이 적어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서는 환경 상 더 이상 포도를 찾을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환경 따라 주시는 것이니 「줄 수 없는 것을 주 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미련을 두고 1시간 동안 더 사방을 돌아다녔는데, 마른 포도 한 알을 더 찾지 못했습니다. 그 환 경에서는 없어서 더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환경에서 최고로 도와주신 것입니다. 철이 지나 마른 작은 포도를 찾아 먹게 했어도 그 환경에서 최고로 주신 것을 깨닫고, 여러분들도 그같이 환경 따라서 주기에 작은 것을 주었어도 큰 것으로 알고 주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심정 모르면 주님께 붙은 지 체가 아닙니다. 지체는 같이 느낍니다.   - 하나 더 이야기할까요? 들으면 모두 주님의 사랑에 가슴 뜨끔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의 일 입니다. 극적인 어려움 속에 정말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면서 보내던 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먹는 것도, 그 어떤 것도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생각도 없이 살 때였습니다. 내 그릇에 밥과 국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국을 떠주는 아주머니가 국을 세 번, 네 번 저었는데 건더기 가 뜨지 않았습니다. 이 날은 고깃국이었습니다. 다시 저으니 수제비만한 고기가 한 덩이 떴습니다. 그 것을 내 국 그릇에 넣어주었습니다. ‘아무리 저어 봐도 더 없구나.’하는 소리가 번개처럼 선연하게 들려왔습니다. 주님의 심정의 소리였습 니다. 사랑이 가득한 소리였습니다. 식사를 갖다 놓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같이 너를 사랑하는데 내 심정 아느냐. 내 앞에서 무슨 한숨을 그리 쉬느냐.”했습니 다. “이 환경에서는 더 건더기를 찾을 수가 없구나.”하셨습니다.   참 지극히도 챙겨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으니 주님이 그같이 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도와주니 걱정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주님은 나 를 도와주셨습니다. 감사하지요? 그때부터 나의 한숨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세상 그 아무도 네게 안 와도, 내가 오면 최고다.’하는 주 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지극히도 챙긴다.」는 시를 머릿속에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주님은 모든 인생들을 지극히도 챙겨주십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항상 불만입니다. 챙긴다는 말 을 깨달았지요? 작아도 큰 것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주 시어 그 환경에서 우리들이 처한 어려움과 각종 처지에서 최고로 도우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생각을 새 롭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주님은 그같이 해주셨습니다. 모두 주님이 이같이 역사하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동안 이같이 역사하신 주님의 심정과 사랑을 모르는 자들도 이제 알았으니, 감격하며 주님에 대해 다시 새롭게 생각하고 대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챙겨주십니다. 작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모래밖에 없는 사막에서는 모래 중에 큰 것 하나를 쥐어 주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이왕 도울 바에야 돌을 주워 주시지.’합니다. 큰 것을 받아야만 큰 것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그 시대, 그 환경에서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주시는지 깨달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받고도 고맙다고 하지 않고 작다고만 합니다. 없을 때는 없는 대로 도우시고, 있으면 있는 대로 그때 더 크게 도우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그같이 행하십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한숨 쉬면 안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 주관권이고, 불만과 한숨과 원망들은 사탄 주관권의 세계입니다.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나 죄 값 받는 거야.’하기 시작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좌절까지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하나님과 주님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서운함과 섭섭한 마음은 독약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과 주님 앞에서도 절대 그같이 생각 말아 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그 같은 마음이 생기면 간절히 기도하여 순리적으로 자기도 자기 것 을 얻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남처럼 자기도 똑같이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개성대로 자기 위치에서 자기 사명하고 살면 됩니다. 자기가 구하지 못해서 못 받는 것도 있고, 또 자기에게는 다른 것을 주기 때문에 못 받는 것도 있습니다. 많이 맡은 자는 많이 해야 되고, 적게 맡은 자는 적게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받아 크게 하고, 자기는 적게 받아 작게 밖에 못한다고 비교하면서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감사하며 하나 되어 하지 않으면 주님의 심정을 모르는 자요, 지체가 주님과 붙어 있지 않은 자입니다. 가르쳐주었으니 알고 기쁨으로 행하기를 바랍니다.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과 주님이 행하시는 일이 다르고, 성 령께서 행하시는 일이 다릅니다. 하나로 역사하시나 행하시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애인같이 챙기시고, 부모가 자녀를 챙기듯이 돕고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가르쳐주십니다. 살아서 복음을 전하실 때와 같이 성경대로 말씀을 확실하게 가르쳐주시고,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다 말할 수 없으니 4복음서를 잘 읽어보기 바랍니다. 소경과 앉은뱅이들과 각종 병으로 아픈 자들이 주 님을 쫓아다니면서 낫기를 구했을 때 “네가 원하는 대로 낫기를 원한다.”고 하시며 낫게 해주셨습니 다. 하고자 하는 자에게 해주셨습니다.   지금 이시대도 그러합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지키려 심혈을 기울이는 자와 순종하는 자를 챙기시 고, 그와 동행하시며 사랑해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책임의식을 느끼고 주님의 일을 자기 일같이 행하며 사명에 충성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 니다. 말만 하지 않고 직접 행하며 형제들을 자기 몸같이 아끼고 돌아보며 화평케 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며 낙심치 않고 부지런히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겸손으로 행하며, 형제들을 자기 보다 높게 여기고, 위해주고 섬겨주는 주님의 마음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같이 사는 자들을 보고 주님 은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실천하는 본을 보여주셨으니, 우리는 그대로 해야 됩니다.   “어떤 환난과 고통이 와도 낙심치 말고 끝까지 하라. 뜻이 있어 받아야 되고, 또 환난을 받는 만큼 돕 고 함께 한다. 이 후에는 다 갚아주고, 그로 인하여 신앙이 더 빛나게 되고, 생명 길을 가는 기회가 되 게 하는 것이니 감사하며 가야 앞에서 기다리는 주님을 만나 동행하게 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으니, 그 수고가 헛되지 않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행해야 됩니다. “영 원한 하늘나라를 상속받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해야 된다. 너희가 고통 받는 것을 알고 있고, 이에 어떻 게 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니 이를 믿고 어느 때든지 같이 열심히 해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 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낙심하고, 실패하고, 자포자기 하고, 믿음을 파선하게 됩니다.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오 직 주님이 해주심을 깨닫고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 말을 믿고 말씀 따라 실천하며 살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쓰이는 지체입니다. 항상 주님께 쓰이는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신앙으로 붙 은 지체이면, 주님의 마음과 같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한 번은 주님을 믿는 자와 주님을 믿지 않는 자, 두 형제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주님께 말씀드렸습니 다. “주님. 한 형제가 있는데 그는 주님을 믿고 사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른 형제의 마음을 거스 르면서 미워하며 화평하지 못하게 지냅니다.”   이에 주님은 “내게 붙은 지체가 아니므로 그러하다. 나는 그같이 가르치지 않았는데, 그같이 한다.”고 하며 노여워하셨습니다. “형제에게 미움을 받고 심적 고통을 받는 자가 신앙생활을 하면, 차라리 내 맘 에 들게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교훈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심정 상한 한 형제를 다시 만나 주님이 하신 말씀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차라리 당신 이 주님을 믿으면 잘할 사람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보고, 주를 믿으면서도 그같이 사는 형제와 같지 않 고 잘할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또 당신이 주님을 믿기 원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자기 심정을 잘 안다며 교회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눈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핑 도는 모습이었습니 다.   이 말씀을 듣고 모두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주님께 붙지 않은 자는 구원에 지장이 생깁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주님께 붙은 지체가 아닙니다. 주님의 몸과 하나 되어 붙은 몸이라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23절을 보면, 그리스도께 붙은 자가 주와 같이 휴거 되며 데려감을 받는다고 했습니 다. (고전 15:22-23)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 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 되듯이, 주님께 붙어 하나 된 자가 그와 함께 휴거 되어 새로운 세계로 가서 살 게 됩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은 수천 가지라서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용서해주시고, 심판도 하시고, 책망 도 하시고, 잘했다 칭찬도 해주시고, 화목과 축복을 주시며, 치료하시고, 위로하시고, 동행하십니다. 그 리고 교만한 자, 시기 질투하는 자,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용서치 않는 자, 외모만 치중하고 형식에 치우치는 자, 의심하는 자,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한 자들을 책망하시며 행한 대로 대해주십니다. 주님이 열심히 하는 자들에게 전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름이 없고 소문이 안 났어도 열심히 봉사 하며 충성하는 자를 내가 안다. 살아서 동행하며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니, 사람들은 몰라줘도 나는 다 안다. 천사들을 통해 보고 받고 알고, 또 직접 보고 안다. 그러니 죽도록 열심히 하라. 사람이 못 챙기 면 때가 되었을 때 내가 꼭 챙긴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행하는 일들과 주님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두고두고 말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 고 주님에 대하여 더욱 새롭게 생각하고 주님을 대해야 감격하게 되고, 심령의 변화와 삶의 변화가 일어 나게 됩니다. 다음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말하겠습니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은 많고도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진리의 성령이 증거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 장 13절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 도다.」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는 「성령 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가르쳐주실 때 “성부는 아버지 같고, 성자는 아들 같고, 성령은 어머니 같다. 모두 한 성령 안에 하나다. 성부, 성자, 성신은 한 지체와 같다.”고 했습니다. 신학에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나누기도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역의 존재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후에는 성령이 증거하며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감동시키시고, 움직이게 하시고, 행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명하시고, 예수님은 가르쳐주시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어 행하게 해주십니다. 각각 나누어 행하시지만, 어느 때는 주님이 다 행하기도 하십니다. 인간의 몸과 정신과 영은 각각 존재하고 있지만 일체이듯이, 성부 성자 성령도 일체 이시면서 각각 존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뜻 있는 일을 행하실 때는 하나님이 명하시고, 주님은 가르쳐주시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어 일 하게 하십니다. 감동으로 말씀하시는 성령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의 감동이 없으면 행 해지지 않습니다. 성령은 감동을 일으켜 할 수 있도록 움직여주시고, 감동으로 깨닫게 해주시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감동의 신입니다. 모두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보았지요? 성령에 감동되면 가기 싫은데 가고 싶어져 시동이 걸린 자동차처럼 쉽게 가집니다. 가보면 생각한 것이 행해집니다. 성령은 감동 감화의 존재이십니다. 성령은 깨닫게 해주 고, 생각나게 해주고, 깨달음으로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몸이 뜨겁게 되는 징조가 일어나고, 몸에 진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영의 눈이 열려 신령 한 세계를 보게 되기도 합니다. 성령에 감동되어 교회에 오기도 했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영의 세계도 가게 되고, 하나님의 뜻 있는 곳으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성령의 역사로 사도의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을 보면, 스데반 은 순교 당시 성령에 충만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그 당시에 옳고 그른 것을 담대히 외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12절을 보면,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주님의 사도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둘 때 그들이 사도들을 모아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같이 표적을 행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하여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죽여서 버린 자,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이룬다. 예수는 너희가 버렸지만, 건축자들이 가장 귀히 쓰는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며 담대히 외쳤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진 리에 대하여 담대하게 외치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자는 내가 제대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동이 걸리 지 않은 자동차를 쓸 수 없듯이,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받아 움직이고 행동해야 쓸 수 있다고 주님은 말 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감동과 감화를 충만하게 받을수록 자기 스스로 원하여 행해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알아서 주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성령님이 친히 오셔 서 감동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됩니다. 성령의 이론을 가르쳐주면 행하는 자만이 직접 겪게 되고, 실제로 이루어져 느끼고, 마음에 깨닫고 몸에 와 닿아 제대로 알게 됩니다. 모두 가르쳐주었으니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게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누가 말하기를 “나도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싶으니,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가서 불을 붙이고 와 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을 붙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때가 되어야 하니, 사도시대 때처럼 열심히 기도하며 기다려라.”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사도시대 때도 때가 되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어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을 간구하고 원해야 됩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가 없으면 답답하고, 몸이 무겁고, 마음도 무겁습니 다.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게 되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병 고치는 역사도 일어나고, 화목하고, 서 로 유유상종하며 돕고,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서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서 행 하게 되고, 가슴이 뜨겁고, 기쁘고, 즐겁고, 희망에 벅차고, 능히 행해지고, 믿어지고, 낙심도 걱정도 사라지고, 주님과 일체되고, 고난과 역경도 이기게 되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되고, 얼굴에 근심이 사라지고 빛이 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는 능히 못할 일이 없습니다. 자신이 못하는 일을 간구하면, 성령님이 어떤 자에게 감동 을 주어 대신 행하게 해주십니다. 원수의 마음도 감동하게 하여 자신이 말로 해도 안 될 때 기도하면 성 령님이 감동시켜주어 이루게 해주십니다. 또 로마서 8장 26절 말씀과 같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 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여 역사해주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 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이외에도 여러 수천 가지로 역사하십니다.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곤란한 때도 주님께 기 도하면, 성령이 감동으로 역사하여 마음을 녹여주고 감동시켜 그 원하는 대로 해주시기도 합니다. 성령의 감동은 크게 혹은 작게 일어납니다. 어느 때는 태풍처럼, 어느 때는 봄바람처럼, 어느 때는 실바 람처럼 은은히 은밀히 역사하십니다. 자기 심령의 기준에 따라 강하게, 혹은 약하게 역사하십니다. 합심하여 함께 기도할 때, 찬양할 때, 말씀을 들을 때, 간절히 함께 하나 되어 일할 때, 전도할 때, 성 경 볼 때, 말씀을 다시 읽어볼 때, 말씀을 전할 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주님의 모든 일을 할 때 마음 과 몸을 뜨겁게 역사하시며 도와주십니다. 또 홀로 외로이 인생의 길을 갈 때, 위험한 길을 갈 때, 두려 움 속에 처했을 때, 고독하고 쓸쓸할 때, 걱정할 때 성령은 바람처럼 스쳐 행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3절-13절을 보면, 주께서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느니라. 육은 육의 부모가 낳았지만 성령으 로 난 것은 영이니, 니고데모야~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이리저리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성령으로 난 자는 사람들이 보아도 모른 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났습니다. 이는 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들어도 예수 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육을 통해 말씀하심을 모두 기이히 여기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육적 인 말이 아니고 영적인 말인 고로, 잘 몰랐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육적인 생각이 아닌, 영으로 생각해야 잘 안다고 했습니다.   영에 대해 모르면 영에 대한 지식도 없고, 영의 은혜도 모릅니다. 육에 대해 모르면 육이 제대로 가치 있게 보람 있게 살지 못하듯이, 영도 그러한 것입니다. 육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두고 살게 했습니다. 육이 오직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의 뜻을 따라 살다가 죽으면, 그 영은 하늘나라에 가서 하늘나라 천국을 천국으로 두고 살게 했습니다. 영에 대하여 배우고 늘 생각해야 됩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를 받고 성령과 일체되어야 변화를 받고 더욱 거듭나게 됩니다. 말씀하였으니 성령이 역사하시고 더욱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음식도 먹어봐야 느끼고 알듯이 성령을 받고 감동을 받을수록 알게 됩니다.   오늘은 성령에 대하여 특별히 말씀했습니다. 성령에 대하여 간구하고 기도해야 성령님도 더욱 역사하십 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도 잘 부르고, 기도할 때 주님도 잘 찾는데, 성령을 잘 찾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 문입니다. 기도할 때 찾으며 간구해야 됩니다. 성령님이 감동시켜 달라고 구해야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 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을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기에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자들을 고쳐주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죄를 생각나게 해주시고, 회개하도록 감동시키시고, 성결케 해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시며, 해야 될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 있는 일과 주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마음을 감동시켜 행하게 하십니다. 믿어주고 잡아당겨 갈 곳을 가게 하시고, 안 갈 곳은 못 가게 감동시켜 주십 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구심력과 원심력 작용을 합니다. 돛에 바람이 닿아 배를 밀어 끌고 가듯이, 마음의 돛 은 성령의 바람으로 끌고 갑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명하여 “가라”고 한 일들이 나와 있으니 몇 구절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행 10:19-20)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행 11: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이밖에도 사도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행한 일들이 사도행전에 많이 나와 있으니 찾아서 읽어보기 바랍니 다. 우리는 하나의 사역을 받으면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명을 받아 행하면 주님 이 함께 하여 그 사역을 하게 되고, 성령의 사명을 받고 행하면 성령같이 감동을 주며 행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명을 행하는 것입니다. 흔히 잘못되면 ‘내가 성령이다. 내가 예수다.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합니다. 선을 벗어나면 악이 되 듯이, 진리를 벗어나면 탈선자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됩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의 지체가 되고, 그의 사역자가 되어서 쓰여집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 있는 자입니다. 바로 알고 행해야 사람 들도 걱정 안 하고, 성령님도 걱정 안 하고, 주님도 하나님도 걱정을 안 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성령님이 행하시므로 자기가 행할 뿐이니 그 사람은 성령이 아니라 쓰이는 자입니다. 칼이 부엌에서 사람 손에 쓰여지면 무도 자르고 김치도 자르며 각종 재료들을 필요한 대로 자릅니다. 그 렇다고 칼이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알고 살아야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제대로 성령께 쓰이는 자가 됩니다. 주님께 쓰여지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일을 하여도 주님이 될 수 없습니다. 사역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행해야 더 역사하시고, 더 온전한 말씀을 깊이 퍼부어 주십니 다.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일체가 되어 여자가 남자 하는 일을 똑같이 하여도 지체로 볼 때,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 하는 일을 똑같이 하여도 지체로 볼 때,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단지 그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것이 이치요, 진리입니다.   주님은 철저히 처음부터 이같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주님이 될 수 없고, 성령이 충만하여 행한다 해도 성령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앞에도 가지 말고, 나와 같이 행하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주님 옆에 서 살려고만 해도 주님이 마시는 쓴 잔을 마셔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마시는 똑같은 쓴 잔 을 마시고 그 삶을 감히 똑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 그릇과 사명에 따른 쓴 잔을 마 시고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만민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쓴 잔을 똑같이 마실 수가 없습니 다. 주님은 주님이고, 우리는 우리 위치에서 주를 따라가면서 겨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갑니다. 그 리고 자기 위치에서 겨우 형제들의 십자가를 대신 지어주고 갈 뿐입니다.   이를 알고 행하면 큰 자요, 따르는 자를 잘 인도할 자요, 복 있는 자요, 주님이 좋아하고 기뻐할 자입니 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항상 주님을 등 뒤에 따르게 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게 됩니다. 구세주, 메시아, 재림주이신 주님은 이 사명을 팔지도 않고 주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들과 가르치는 자들은 잘 가르쳐줘야 됩니다. 잘 가르쳐줘야 세상 유혹에 들어가지 않고 빠지지도 않습니다.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아 아버지가 되어도 자기 자녀 앞에나 아버지이지, 자기 아버지 앞에는 아버지가 될 수 없고 아들일 뿐입니다. 이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께 배워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시고, 늘 배우고 알라고 하시고, 모르면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하시고, 주께 묻고 자세히 배우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이 배우지 않으 면 내놓을 것이 없으니 배우라.”고 하시며 “내게도 배우고, 세상 상식도 배우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깨닫고 배웠어도 성경에 그같이 주님이 말씀하셨는지 보고, 이치에 합당한지 확인해보고, 실 천하고 말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11장 29-30절을 보겠습니다. (마 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 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처럼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은 쉽고 가볍습니다. 고로 주님처럼 잘 가르쳐주면 쉽게 잘하게 됩니다. 어렵게 가르쳐주고, 자기 주관과 이상한 변론과 이론을 붙여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비유를 들 어 먼저 비유를 말해주시고, 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쉽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비유 를 잘못 들어 말하면 본 성경말씀도, 주님의 말씀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많이 나왔으니 꼭 읽어보기 바랍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참으로 많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지만, 모르고 살고 있으니 더 자세히 듣고 더욱 성령의 은혜를 덧입어 행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여야 더욱 시대의 눈을 떠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뜻을 깨닫고 행할 수 있고, 자신도 모든 것을 이기고 은혜로 살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축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며 주의 말씀과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 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1월 28일 수요말씀> 성령 충만 본  문  사도행전 10장 38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 끝까지 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나오고, 예수님에 대하여 나오고, 성령님에 대하여 나옵니다. 예배 마치고 마지막 축복기도를 할 때 성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성령의 감동 감화 하심과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축원한다고 하지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해주시고, 어려움을 도우십니다. 그런데 쪼개서 본 다면 하나님과 성령님은 부모 같은 존재자이시고, 예수님은 아들 같은 존재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직접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며,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고 도우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그의 몸을 통해 실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행하심과 능력과 구원해주심을 보게 하여, 우리는 가상적으로 알던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나 선지자들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내 가 보낸 자는 내 아들이니, 너희는 그 말을 들으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라.』고 했습니다.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냈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 고 구원을 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4장 13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버지가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고 뜻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 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친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많이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도 가르쳐주셨습 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아버지께로서 온 하나님의 영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계시록 22장 17절을 보면, 사도요한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요한의 영이 천국에 가서 보고 말씀한 것입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하나님께로 나오시는 진리 의 성령이 오셔서 나를 증거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행한 잘못된 일도 말해줄 것이니, 너희도 나를 증거 해야 할 것이다.(요 15:26-27)”라고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 모두 허전하고 쓸쓸하고 슬픔에 젖어있을 것을 아시고, 주님은 가시기 전에 “너희는 내가 없더라도 흩어져서 각각 행하지 말고, 먼저 모여서 기도하여라.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낼 것이니 기다리라.”고 미리 가르쳐주시어 그 말씀에 따라 제자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절기인 오순절 때였습니다.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의 몸에서 해방되었음을 기념하는 날인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제자들이 모두 모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모인 장소에 가득하게 되었고 마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 니다. 이 같은 성령의 역사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자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에 각자 다른 곳에서 온 자들이 모두 그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신기하고 놀랍게 생각했습니다(행 2:1-13).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제자들의 믿음이 더욱 굳건하게 되었고, 능력을 받게 되었으며, 주님을 더욱 확실 히 알게 되었고, 예언도 하고, 병들도 고쳐주며 각종 기적의 소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슬픔과 걱정이 떠나고, 희망과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세에 내 영을 모든 자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고 꿈을 꾸며,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며, 많은 징조들 을 보게 된다.』고 말씀하신 대로 역사하신 것입니다(행 2:14-22, 욜 2:28-29). 이 꿈들은 평소에 꾸는 사몽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이시는 영적 꿈입니다. 또 평소에 하던 말과는 다른 신기한 방언이 나왔습니다. 영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영에 의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예언도 하는데 이는 어떤 통계에 의한 예언도 아니었고, 신접한 자들이 예언하는 예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예언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성령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받아 보았습니까? 받아본 자들은 성령의 은혜와 감동을 받았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지요? 몸이 뜨거워지고, 영의 눈이 떠져 영의 세계의 일부 가 보이고, 꿈도 꾸고, 환상도 보고, 영도 보고, 천사도 보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강한 바람 소리도 들어보고, 각종 은혜를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성령은 꼭 기도할 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아무 때든지 목적이 있으면 은혜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가슴이 뜨겁든지, 신체의 한 부분이 뜨겁게 느껴오든지, 마음 이 감동되어 생각하지도 않은 지혜로운 말이 나오고, 상대를 감동시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크게 마음에 감동이 되어 즉시 몸에 느낌이 오고, 기쁘고, 행실의 변화가 오고, 말의 변화가 와서 방언이 나옵니다. 담대해지고, 부지런해지고, 성경을 보고 싶고, 말씀을 전하고 싶고, 기도 하고 싶고, 찬양하고 싶고, 전도하고 싶고, 성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을 받으면 평소처럼 지내지 못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살아보아야 평소에 얼마 나 육적으로 살았는지, 얼마나 몰랐는지, 무지 속에 살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로서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 상에 계셨을  때도 하나님이 예수님께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셔서 모든 착한 일을 행하시고, 온전한 진리를 행하시고, 마귀와 귀신에게 억눌린 자들을 구원하시고, 마귀들을 멸하시고, 또 각종 표적을 행하 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을 보면,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 곧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오 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예언대로 행하셨습니다. 성경에 다 쓸 수 없 어서 못 썼지 주님은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행하셨고 제자들도 행했습니다. 예수님 당세 에도 예수님은 말씀의 불로 세례를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 곧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하는 성령의 세례를 주셨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고로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임이 불 세례, 성령 세 례가 되었습니다. 근본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깨끗케 해주며, 각종 은혜를 받는 성령 강림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예수님이 크게 행하신 것만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제자들도 말씀대로 해야 되었건만, 크게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 표적이 많이 없었습니다. 고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어찌 하여 산을 옮기는 믿음이 없어 귀신을 쫓아내며 어린아이를 고쳐주지 못하였느냐.”하고 책망하셨습니 다. 주님이 하늘나라에 가신 후, 제자들에게 영으로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성령이 임하면 너희 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어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주셨듯이 제자 들에게도 부어 주시어, 주님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과 복음을 증거 하듯이 제자들은 주님을 증거하며 사 탄과 환난과 핍박을 이기고 물리쳤습니다. 또한 많은 표적이 일어나고, 병 고침의 표적이 일어나 새롭게 부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능력을 받고 새롭게 변화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섭리사에도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을 받지 않은 자는 없습니다. 신앙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성령의 역사와 은혜로 신앙을 지켜오며, 수많은 표적과 체험을 얻고, 은혜 가운데 살아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밖에서는 바람이 부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으나, 문을 닫아 놓은 방안에서나 교회 안에서는 못 느낍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고기압과 저기압이 서로 운동하고 있으므로 바람은 이리저리 불며 이동합니다. 확 인하려면 휴지를 찢어 공중에 매달아놓으면 공기가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크게 일어날 때도 있고, 평소에 방안에서나 실내에 공기와 바람이 이동하듯이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게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신에 의해 은혜 가운데 움직여도 잘 표가 안 납니다. 신경 안 쓰면 모릅니다. “자세히 하나님의 행하심을 살펴야 알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 니다. 성령의 역사를 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거나, 몸이 뜨거울 때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가운데 살 때도 다 하나 님의 역사입니다. 여름철에는 더욱 더운 것을 느끼지요? 겨울철에는 춥지요? 추울 때도 태양이 비춰주기 에 얼어 죽지 않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환난 때나 어려울 때나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 과 주님이 역사하고 계시므로 우리의 육과 영이 사망으로 묻히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더 기도하고 은혜 속에 살려고 할 때, 성령의 역사를 더욱 받아 강하게 느껴집니다. 성령이 역사 하시면 방언을 하게 되고,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통역을 해야 알기에 통역하는 은사도 주십 니다. 어떤 때는 자신이 자기가 방언하는 것을 통역하면서 알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인데, 이때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능력들을 행하게 됩니다. 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데, 결국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임하여 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이는 말씀의 능력을 받아 지혜의 말씀을 하고, 어떤 이는 지식의 말씀을 하고, 어떤 이에게는 믿음을 확실하게 갖게 해주고, 어떤 이는 병을 고치고, 어떤 이는 능력을 행하고, 어떤 이는 영을 분별하고, 어떤 이는 방언을 하고, 어떤 이는 방언을 통역하게 하시며 역사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성령의 은혜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주었습니다. 모두 읽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은 각자 개성과 사명대로 임하여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성령은 하나님의 선 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님과 같이 역사하실 때와 은혜를 주실 때는 외면하고, 끝난 후에 그제야 알게 됩니다. 그러 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동안 선생이 없을 때도 집회를 통해 하나님은 행해오셨습니다. 같이 참여 해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줄 때 받아야 되고, 성령이 역사하실 때 받아야 됩니다. 더 표가 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원하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해야 됩니다. 일하는 대로 하 나님은 역사하시고, 구하고 바라는 대로 더욱 역사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 30-32절을 보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 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하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을 말합니다. 사람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받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하 나님을 훼방하며 거역하는 것이므로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방 해하는 죄를 ‘훼방 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심은 성령에 충만하여 행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했습 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거역한 자가 된 것입니다. 고로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하시며 말씀 끝에 성령 훼방 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이 그 말씀을 하시다가 다른 말씀을 하신 것 같아도 같은 뜻으로서 ‘이와 같이 이 러하다.’는 뜻에서 한 말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지혜를 받아 깨달으려고 간구하며 성경을 세밀하게 보 아야 주님이 말씀하신 영의 말씀과 육적인 깊은 말씀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지식의 말씀이며 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말씀으로 신령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지식 의 하나님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진리를 말하는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진리가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리는 흠도 점도 모순도 없는, 인간을 구원하게 하는 생명의 말 씀입니다. 진리대로 행해야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되고, 사망에서 나오게 되고, 영생의 세계, 곧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살게 됩니다. 비진리를 주장하던 유대 종교인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진리를 전하는 예수님과 사도들을 이단의 주 관권에 가두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 제자들을 옥에 가두고, 사도바울을 옥에 가두었습 니다. 하나님도, 선지자들도, 주님도, 제자들도 진리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전한 진리를 잘 알고 전 해야 됩니다. 진리는 하나님입니다. 진리를 전하여 받아들인 곳과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새롭게 변화된 세계가 되고, 새롭게 변화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나 사도시대 때나 사람들은 진리를 불신하고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구원받을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매일 묵상하고 좋아하며 진리를 사모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사망을 벗어나 빛 가운데 살게 되고,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 가운데 살게 되고, 성령의 감동 속에 살게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차가운 교회, 차가운 자가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는 늘 잘되고 부흥이 됩니다. 목사님들과 지도자들이 성령에 충만해야 따르는 자들도 은혜를 받고 잘하게 됩니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먹는 음식과 같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매일 음식을 먹지 않는 자와 같습니다. 결국 며칠 못 가서, 몇 주 못 가서 힘이 없어 영이 쓰러지고, 육적으로 삶이 흘러 가 쓰러지게 됩니다. 될 수 있으면, 할 수만 있으면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교회는 주님의 전이며, 하나님의 전입니다. 말씀을 외치는 자의 말을 직접 들어야 더 힘을 받고, 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특별한 사연이 없는 자는 교회에 나가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기본적인 음식만 먹지 말고, 더 먹고 싶으면 간식을 해야 됩니다. 육적인 간식은 잘하는데, 신앙의 간식 들은 안 합니다. 설교 외에도 자신이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고, 알고, 배우고, 실천해야 됩니다. 성경을 안 읽는 자는 자기 신앙의 무기가 녹이 슨 것으로 꿈에 보일 것입니다. 또 음식을 먹어도 차린 것 없이 별 맛도 없는 것을 먹는 것으로 꿈에 보일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꼭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성경을 안 읽으면 말씀을 들어도 생소하기만 하고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단상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성경을 이해하고 말씀을 전해야 능력이 있고, 듣는 자들에게 더욱 은혜를 주게 됩니다. 선생도 성령의 은혜로 지금까지 주님을 믿고, 또 일을 해왔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지식과 지혜의 잠언을 쓰고, 말씀도 하고, 각종 은사를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은혜 받은 것만 생각 하며 간증하고 말하지 말고, 현재도 성령의 은혜를 받고 은혜 가운데 외치고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야 듣는 자도, 자신도 성령의 은혜에 더욱 충만하게 살게 됩니다. 성령의 은혜로 행하지 않으면, 육적인 생각으로 치우쳐 살게 됩니다.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전하지 말아 야 합니다. 또 신앙생활을 틀에 박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행해야 뜨겁게 살게 됩니다. 새롭게 변화하여 살게 됩니다. 늘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라고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먼저, 성령으로 기도하게 해달라고 한 후에 기도하기 바랍니다. 성령에 대해 더욱 알려면 성경을 읽고, 성령이 역사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신경 써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성령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병도 고쳐주고,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믿 는 자들이 날로 많아졌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많은 자들을 전도하려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들에게 임하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가슴에 불이 붙어 모두 전도하여 교회가 차고 넘칩니다. 성령이 임하면 주님을 더 깨닫게 되고, 믿음이 굳건해져 하나님을 더 믿게 됩니다. 각자에게 주시는 성 령의 역사는 자신들이 책임을 하여 행해야 됩니다. 각자 받고 느껴야 됩니다. 성령은 성결의 영이시라, 자기에게 임하여 함께 하시다가도 깨끗한 삶을 살지 않으면 떠나가십니다. 회개하고 다시 잘하겠다고 결 심하고 행해야 다시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신입니다. 추상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실체적으로 조건을 세우며, 늘 성령의 은혜 가 운데 살도록 구체적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성령님의 행하심을 보고 자기가 능력이 있어 행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쓰이는 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역을 주어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자를 통해 하 나님도 주님도 역사하시어 병도 낫게 해주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십니다. 본인이 그만큼 사명 을 받았으니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마치, 기계의 전기와 같아서 기계에 전기를 연결하면 소리가 나면서 가동되듯이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임하면 사람의 마음과 육신에 작용이 일어나 시작하고 움직이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말도, 행실도, 마음도, 손끝도 뜨겁게 되고, 가슴이 뜨겁게 되며, 아픈 곳도 뜨겁게 되 고, 주위가 훈훈할 때가 있고, 감동되고, 잊어버린 것들이 생각나게 되고, 깨달아지고, 하고 싶은 마음 이 생깁니다. 또 어느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가기 싫은 마음이 들어 안 가게 되므로 사고 당할 것을 당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불조심하게 되고, 차 조심하게 되고, 계단을 조심해야 겠다는 영감이 오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생각나서 기도해주게 되고, 거리에서 만나게 되어 신앙 이야기 를 하여 다시 교회에 오게 하고, 문제를 알게 되어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성령님의 행하심은 하나님의 영이 행하시는 것으로 우연처럼 행한 것 같으나, 은밀히 하나님과 주님이 함께 행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니 이를 깨닫고 자세하고 세밀하게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이 행하실 때, 깨닫고 같이 행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개성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 사람의 입장에 따라, 이치에 따라, 수천수만 가 지로 행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너희가 그냥은 내 마음도 모르고,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자신을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도 모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기도로써 같이 대화도 하고, 평소에도 서로 이야기하며 통하고, 시대 일을 하자.”고 하며 성령에 대해 말씀해주 셨습니다. 성령에 대해서도 각종 이론과 변론을 하며 복잡하게 가르쳐줄 것 없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성 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주님의 역사입니다. 삼위일체의 역사로 같 은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주님도 지켜주시고, 전능자 하나님도 지켜주십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듯이 성령, 곧 하 나님의 영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그동안도 지켜주셨는데, 이제 와서 버리 시겠습니까? 농사짓는 주인이 농사를 다 지어 가는데 곡식들을 버리겠습니까? 과수원 주인이 열매가 익 어 가는데 과수원의 열매들을 버리겠습니까? 자녀를 기르는 부모가 자식들을 잘 길러오다가 중간에 버리 고 달아나겠습니까? 옛날보다 더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역사하시며 함께 하니, 우리도 전보다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믿 고 순종하며 가야 됩니다. ‘혹시 나 버렸나? 혹시 주님이 나 잊었나? 관심 없나? 성령님의 영이 떠나셨 나? 혹시 우리가 잘못되었나?’하며 의심으로 대하지 말고, 잘못했으면 회개하고 자세히 이야기해야 됩 니다. 그러면 혹여 주님이 멀어졌어도 일순간에 가까이 와주십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가까이 해주십니 다. 같은 사람들끼리도 심리적으로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상대가 생각하는 것이 직접 이야기해보면 다릅니다. 혹시 어떤 문제가 있으면 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시며,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생각과 마음과 긍휼하심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도 주님도 그러하심을 알고 살기 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은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행해야 맘에 들어 하시고, 답답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십 니다. “이것을 항상 생각하며 살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성령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개성대로 역사하시기를 빕니다. 말씀하셨으니, 기도할 때 더욱 성령이 충만하도록 간구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아멘! 모두 잘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 만나요. 안녕~ <2009년 2월 1일 주일말씀> 하나님의 뜻 징조와 표적과 계시 타고난 자 본 문 마태복음 26장 25절, 에베소서 1장 3-5절 마태복음 19장 11절, 마태복음 25장 15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새롭게 변화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새롭게 변화하려면,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 에 감동되어 새롭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올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잘되고 형통하기를 축원합 니다. 지금은 개인이나 가정으로나 민족으로나 세계나 경제의 극심한 가뭄이 들어 모두 걱정도 많고 고생들이 많은 것을 압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살기 힘드니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고 개인, 가정, 민족, 세계, 섭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에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의 감동으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 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다.” 사람들은 ‘축복’ 하면 선뜻 물질, 명예, 돈, 잘사는 것, 잘되는 것들만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각 과 하나님의 생각은 너무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말씀을 들었으니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래 야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새롭게 변화가 됩니다. 사람들은 마치 식물들이 땅에 뿌리를 박고 살듯이 보이는 물질세계에 뿌리를 박고 삽니다. 그러하기에 ‘축복’ 하면 물질, 명예, 돈, 사랑, 환경 등 각종 좋은 것들만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은 ‘너희 생각과 내 생각이 정말 다르다.’고 하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간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다면 하나님의 근본 말씀을 배울 필요도 없고 다시 말씀 해 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뜻과 인간들이 생각하는 뜻이 같았다면 그동안 인간 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기에 이 세상은 벌써 이상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곧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영원토록 가는 축복입니다. 주님의 뜻대 로 살아야 구원을 얻고, 영의 몸이 천국에 가서 영원토록 기쁨으로 하나님과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한 것입니다. ‘뜻’이란 무엇인지 빨리 이해하려면 자기 입장과 바꿔서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뜻대로 되 기를 원하지요? 자기 뜻이란, 자기 생각을 말하며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뜻을 이해하 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면 됩니다. 인간에게 각자 자기 뜻이 있듯이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의 목적, 마음, 계획, 원하시는 일’을 말합 니다. 하나님에게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모든 것을 통찰하시고 세우신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뜻대 로 살아야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대로 그 원하시는 대로 사는 자가 곧 하나님의 축복 을 받고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나라를 근본으로 하여 사람이 지상에서 메시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 뜻을 펴면 서 살다가 그 영이 하늘나라에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개성대로 그 뜻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재능대로 사명대로 타고난 대로 해당되는 뜻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그 뜻의 프로그램에 따라 매일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자라면 그 에게 자기 생각과 원하는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사 랑하는 자에게 자기를 맡기고 그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든지 공통적인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메시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고 섬기며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말씀은 다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살아 계실 때부터 하 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이 되기를 원하시며 그 뜻을 이루며 사셨고 그 뜻을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계획을 세워 놓고 자기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고 원합니다. 자기 뜻대로 해 준다 해도 하 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실망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시험 에 들고 하나님을 멀리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중심으로 자기 뜻만 이루고 사는 자들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지만 후에 가서는 많은 손해가 오고 많은 고통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꽃같이 살피시며 사랑하시는데 어련히 알아서 해 주시겠습니까? 현재 입에는 쓸지라도 절대 믿고 뜻대로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단것만 좋아하면 당뇨병에 걸리듯이 인생 삶도 그 러한 것입니다. 제 마음대로 사는 자는 그 육도 영도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할 자입니다.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해야 사망의 생각에서 변화를 받아 사망에서 나오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영원한 천국에 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 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뜻과 자기가 원하고 바라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자기 뜻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 때, 아예 자기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노아,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등 하나님이 보낸 중심인물들과 선지자들, 사사들과 사도들은 모두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기에 천국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는 자는 어디를 가도 자기 뜻대로 살 자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뜻을 버 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사는 자는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 나님의 뜻대로 안 되면 늘 슬퍼하며 끝내 그같이 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같은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야 됩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사는 자들과 자기 원하는 대로만 사는 자들은 정말 문제가 큰 자 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 달라고 해 놓고 어떤 것이 이루어졌을 때 자기 뜻대로 안 되었으면 실망 을 합니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사는 자는 자기 홀로 사는 자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자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사는 자는 자기 홀로 사는 자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과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다.” 주님은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삶 가운데 잊지 말고 살아야 사망의 길로 가지 않게 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성경의 역사만 보아도 하나님은 원하시는 뜻을 위해 6000년 동안 섭리를 펴 오셨습니다. ‘뜻’은 ‘하나님의 섭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섭리역사란 하나님의 뜻의 역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그때그때 알지 못하니 주님을 중심하여 살면서 항상 그 뜻대로 살도록 기도하며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중심하고 사는 자는 하나님이 잘해 주셔도 자기 원하는 것과 다르니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자 신의 뜻과 같으니 좋아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손해가 가도 해를 받아도 고통을 받아도 억울해도 무조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생명 길을 가게 됩니다. 결국 다 잘되게 됩니다. 잠깐의 과정만 보고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보아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과정은 힘들기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는 그제야 이해하 고 칭찬하고 좋아합니다. 결국 되어질 것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가 힘들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은 그 뜻 대로 역사해 오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행한 자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십자가의 고통을 받고 죽을지언정 자신과 만민과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뜻하 신 대로 살았습니다. 제자들도 그 뜻대로 사니 환난과 핍박과 갖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자기 뜻대로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그 같은 핍박과 고통들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고통도 없고 편하고 매일 기쁘기만 하고 외로움도 쓸쓸함도 없다고만 생각하면 이는 잘 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역사를 보면 중심인물들도 선지자들도 사사들도 사도들도 그 시대를 따르는 자들 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록 더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영원토록 받고 사는 길로 갔습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영원한 상속이 었습니다. 더 높은 산에 오를수록 힘들고 더 많은 공적을 쌓을수록 더 수고가 있듯이 영원한 것을 얻으 려면 더 수고하고 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구원자이신 주님도 그같이 살다가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그같이 살다가 결국 하늘나라를 상속받아 살고 있습니다. 2000년 동안 주님을 좇아 살면서 하나님과 주님의 뜻대로 살아 구원받은 자들은 다 이같이 했 습니다. 현재의 고난과 고통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난으로 인한 영광입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판단할 능력이 없으며 모든 사람들을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고로 배워야 됩니 다. 뜻을 모르기에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합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은 판단을 꼭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그 상황과 처지를 겪어 본 자가 아니면 모릅니다. 겪어 보고 배운 자만이 압니다. “이러쿵저러쿵 말하면서 어떤 일이든지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이 큰 죄다. 그 죗값은 그에게로 간다.” 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영적으로 육적으로 꿰뚫어 보시는 주님은 “너희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 라. 다만, 내게 맡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각자 말씀을 중심하여 더욱 깨 닫고 우리에게 향한 주님의 뜻을 알고 늘 살아야 되겠습니다. 뜻대로 사는 그 속에 하나님이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귀하고 중한지 사람들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 명예, 돈, 권세, 땅 과 집, 보석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도 귀하고 큰 것입니다. “뜻대로 행치 않았으면 궁궐을 지어 놓았어도 버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뜻대로 한 것은 초가 집이라도 큰 뜻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인 섭리가 큰 것을 알기 바랍니다. 소돔 땅은 그 시대 최고 발달된 도시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심판하여 없애 버리셨습니다. 뜻이 있는 세 명만 피하여 살게 했습니다. 식물처럼 땅에 붙어사는 사람들은 땅의 것만 좋아합니다. 뿌리는 땅에 박고 머리는 하늘로 솟아 열매를 열듯 하늘의 뜻에 정신도 행실도 뿌리를 박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살면 그 영혼은 뿌리 뽑힌 과일나무와 같습니다. 모두 노트에 멋있게 그리고 크게‘뜻’자를 써 보세요. 모두 빠짐없이 다 써 보세요. ‘성경’을 한마디로 축소시켜 쓴다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 한마디 속에 구원이 들어 있고 천국이 들어 있고 진정한 사랑이 들어 있고 절대적 순종이 들어 있습니다. 긍휼함과 위함과 용서, 기도와 감사, 기쁨과 희망과 승리, 힘과 능력, 표적과 징조, 건강과 소원, 성공과 꿈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얻기 위해 수고와 노력을 하며 환난과 핍박, 억울함과 고난, 굶주림과 가난, 아픔과 고통들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참으로 귀하고 중하니 하나님의 뜻을 마치 사랑하는 애인처럼 주님처럼 큰 보물덩어리처 럼 생각하고 끌어안고 살아가야 됩니다. 사탄과 마귀를 물리치고 오직 주와 동행하며 살아가야 됩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그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자는 뜻있는 곳에 가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며 다윗 이 찬양했듯이 우리를 뜻있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늘 찬양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쉬운 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멀더라도 뜻있는 곳으로 가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노아도 모두 거쳐 갔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 왕도 에스더도 이사야, 다니엘, 에스겔 선지자도 모두 험하지만 뜻길을 통과하고 갔습니다. 하나님도 뜻있는 곳을 꼭 거쳐 가십니다. 주님이 세상에서 복음을 펴실 때도 지금도 뜻있는 곳과 뜻있는 사람들에게 거쳐 가시며 역사하십니다. 뜻은 마치 설계도와 같아서 뜻있는 곳에 각종 징조가 일어나고 각종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은 자신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어떤 고통이 있어도 담대히 하나님의 뜻길을 가셨 고, “너희도 힘들지만 이 생명의 뜻길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뜻길은 하늘나라로 연결되어 있습 니다. 절대적인 구원의 길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로 가라고 주님은 성령으로 감동시켜 말씀 하시고 단상의 말씀으로 외쳐 주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수시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뜻하신 바, 뜻길로 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영원히 누릴 것을 받게 되고 그동안 역사해 오신 하나님과 주님의 수고와 우리의 수고 가 헛되지 않고 100배 1000배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받아 세상에서 형통하고 천국에 가서 사는 데까지 뜻을 계획해 놓 으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인지 다시 확인하고 정확히 보고 분별하고 해야 됩니다. 뜻이 아닌데 뜻인 줄 알고 행하여 물질 손해도 많이 있었음을 알아야 됩니다. 기도하고 확실한 응답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됩니다. 뜻을 알았으니 이제 다른 말씀을 하겠습니다. 주님은 만물을 보이시고 사람들을 통해 보이시며 우리와 대화하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 시지만 우리들에게 직접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씀하시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전하여 알게 하십니다. 일일이 말씀하지 않으시고 만물을 통해 또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좋고 나쁜 것들을 보게 하시며 그로 인 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화재나 참사를 당한 것이나 각종 좋고 나쁜 징조들을 여러 번씩 거듭 보여 주십니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치고 죽은 자들을 보게 함으로 ‘잘못하면 너도 이와 같이 이 렇게 된다.’고 누구든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한 사건을 가지고 각자 자기 행위에 따라 깨닫도록 계시하시며 ‘이를 교훈 삼고 조심하라.’고 하십니 다. 하나님과 주님은 그 원하는 것을 분명히 보여 깨닫게 하시며 그 뜻을 전달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구경하는 데서 끝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좋고 나쁜 것을 보면 깨닫고 충격을 받으면서 며칠 동안은 긴장하고 조심도 하고 열심히 하기도 하다가 며칠이 지 나면 곧 긴장을 풀고 깨우쳐 준 것을 지키지 않는다. 고로 사고를 당하고 좋은 것을 얻을 기회를 놓치고 혹은 죽기도 하고 평생 고생하기도 하고 몇 년씩 고통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좋은 것을 깨달았으면 끝까지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너 이같이 하라.” 하고 말씀하시면 우리가 억지로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깨달아 자원하여 스스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주님이 영의 몸이라고 하지만 지구촌에 사는 68억의 인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매일 빠짐없이 낱낱이 다 말해 주려면 어떻게 관리하시겠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같이 복잡한 방법으로 관리하시겠 어요?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방법으로 인생들을 관리하십니다. 여러 가지 전할 것들을 징조로 보여 주시 고 지구촌의 사람들이 순간 모두 깨닫도록 계시하며 말씀하십니다. 계시인데 남이 당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며 관심 없이 본다면 자기가 사고를 당할 때 피하지를 못합니 다. 차를 타면 차 조심, 불을 다룰 때는 불조심, 길을 갈 때는 길 조심 하며 자기가 행하는 대로 극히 조심해야 됩니다. “각자 자기 일은 자기가 조심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촌에 일어나는 일들을 뉴스를 통해 일순간 사람들의 눈에 직접 보이시며 각자에게 민족들에게 책임 자들에게 깨닫게 해 주고 계십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깨닫게 해 주시며 주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깨 우쳐 전달하십니다. 어떤 징조나 뉴스로 보이지 않으실 때는 양심이나 마음으로 직접 깨닫도록 성령으로 순간 역사하십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보여 주시며 깨닫게 함으로 그에 해당되는 자에 게 그때마다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은‘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계시하십니다. 천둥 벼락을 치면서 일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이나 중심인물들에게도 만물을 보이시고 징조들을 직접 보이 시며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외치라.”고 했습니다. 모두 에스겔서를 읽어 보아요. 주님도 설교하실 때 만물을 들어 직접 보이며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같은 이치로 말씀하시고 깨우쳐 주시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동안 모두 신앙생활을 하든지 안 하든지 만물이나 사람들을 통해 또 말씀을 통해 알고 깨달았을 것입 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살아도 자기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그 말씀을 받 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일을 놓고 한 건을 꼭 깨닫게 해 주기 위해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씩 표적을 보여 깨닫 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깨닫고도 귀히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너는 이것을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선물도 헌금도 강제로 하지 않고 고맙고 감사해서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제 깨달았으니 모든 일을 할 때 자원하여 스스로 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길을 제대로 온전하게 가게 됩니다. 사랑도 의무적인 사랑은 죽은 사랑입니다. 사명도 의무적으로 하면 억지가 됩니다. ‘스스로 하는 것이 란 순리를 말하며 자기 책임을 다하는 선한 행실이다.’라고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억지로 하거나 누가 시켜서 하면 오래 못 갑니다. 스스로 하는 자는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자입니다. 자의로 하는 자는 영원까지 갑니다. 반드시 만물로 사람들로 보여 주는 표적을 통해 말씀하여 깨우쳐 주시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고 주님이 직접 해 주신 말씀이니 알고 근신하고 생명시하여 지켜야 됩니다. 이 모든 계시는 믿는 자에서부터 안 믿는 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뉴스를 통해 만물을 통해 그때그때 표적과 사건을 보여 깨닫게 해 주는 것입 니다. 배우고 깨달아 알면 늘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도 주님도 표적을 보이시며 깨닫도록 전달하셨는데 우리가 행치 않으면 표적을 보아도 관심이 없 어서 못 깨닫고 그냥 지나가다가 일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말씀을 들었으니 이제 이와 같은 것들을 더 섬세히 보고 듣고 깨달아야 됩니다. 또 주님께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옆의 사람들도 깨우쳐 줘야 됩니다. 이제 이 모든 말씀을 깨달을 만큼 했습니다. 말씀한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생활 속에 항상 실천하며 더 연구하고 더 공부해야 됩니다. 설교만 듣고 그냥 지나가면 생각했을 때만 도움이 되고 맙니다. 마음에서 잊으면 실천하지 못합니다. 늘 생각나도록 적어 가지고 다니며 매일 외우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 명까지 희생시키시며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죽지 않게 행하라.’고 하신 뜻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제 또 다른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어느 날, 주님은 나의 마음을 아시고 내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스스로 이같이 된 것이 아니다. 네 스스로 원해서 이 같은 길을 가느냐. 이는 자의로 하는 일이 아 니다. 네가 원해서 여기까지 왔느냐.” 지금부터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모두 깨닫도록 구체적으로 풀어서 말씀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 속에서부터 남자로 여자로 아예 타고난다. 이와 같이 인생들도 누구나 타고나는 것 이다. 부모의 성격도 형상도 타고나듯이, 사람의 재능도 하나님의 모든 예정함도 타고난다.”고 했습니 다. 주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만물들도, 산도, 강도, 냇물도, 바다도, 지구도, 해와 달과 별들도 애초부터 타고난다. 어떤 사명자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 처음부터 예정되어 태어난다. 선지자를 원한다고 해서 사 람들이 만들 수 있겠느냐. 구세주가 필요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만들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옛날부터 뜻을 정하시고 구세주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이미 메시아 예수님을 예정해 놓으 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수천 년 전부터 메시아를 보낸다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약 700년 전부터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아가 온다.’고 예언했습니 다(사 11장). 결국 메시아는 이새의 자손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메시아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예정되어 메시아로 타 고났습니다. 선지자들도, 사사들도, 사도들도, 중심인물들도, 왕들도, 영웅열사들도 모두 그 소질과 재 능과 사명들을 타고났습니다. 타고나서, 개발하고 노력하여 만들어 행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타고났습 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타고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노력하여 만든 것 같고,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할 것입니다. 메시아로 아예 타고난 주님과 같이 같은 이치로 모두 타고납니다. 바울 선생도 이 깊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자기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태초로부터 예정했음을 깨닫고 감사하며 고통도 기뻐함으로 받았습니다. 이 예정에 대해 성경에 확실히 말씀했습니다. (갈 1:15)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사람이 노력하면 다 된다고 말하며 큰소리를 칩니다. 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이 절대적이 라면 모두 원하고 열심히 하는데 왜 모두 명예를 얻지 못하고 왜 모두 재벌이 되지 못하며 왜 모두 대통 령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노력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부자가 된 사람보다 더 많이 일을 했어도 부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만일, 모두 자기 원하는 대로 되도록 그냥 놔두었으면 다 주권자가 되어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 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예정해 놓고 각각 재능을 주어 재능대로 만족하면 서 살게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자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아무리 수고 해도 그 사람을 못 따라가겠지요?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은 각각 피부색과 성격과 얼굴과 몸의 생김새를 타고납니다. 만든다고 되겠습니 까? 각각 개성미가 있습니다. 저마다 타고나는 것이 각각입니다. 하나님이 신비하고 오묘하게 각자의 육 과 영에게 입력시켜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질서 있게 살고, 개성대로 즐거워하며 자기만족을 누리면서 살라고 이같이 뜻을 정하셨습니다. 사람이 타고난 것을 노력하여 이루어지게 한 후에 노력하면 다 된다고 합니다. 에디슨도 인간의 노력 99%라고 하였지만 하나님께로 타고나지 않았으면 99% 노력했어도 발명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타고나고 예정된 자가 99% 노력하였기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99% 노력한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가 여자 구조를 타고나지 도 않았는데 임신하여 배가 불룩해서 다닐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여자로 타고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셨고, 지금도 수시로 말씀하십니다. (욥 38: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이 저마다 노력하면 결국 타고난 것이 개발되어 그로 삶을 찾아 성공하게 되고, 그 길을 가게 됩니 다. 타고나서 노력하여 된 것인데,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바가 아니면 못 한 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고통의 길도, 역경의 길도 사명과 함께 타고나서 가는 것이다. 하 나님의 뜻이 예정되어서 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력으로 못 살고 마음대로 안 된다고 말들 하면서 살지요? 타고난 자는 하나님이 더욱 함께하여 하게 됩니다.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타고나야 그 재능으로 소질로 정신으로 하게 됩니다. 서로 타고난 것 을 가지고 개인, 가정, 민족, 세계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자기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기라.”고 했습니다. 각자 타고난 재능들이 있습니다. 너무 무리하게 사명을 맡지 말고 재능대로 해야 됩니다. 목회가 재능인 지 직장생활이 재능인지 강사가 재능인지 전도하는 것이 재능인지 행정 보는 것이 재능인지 집회 다니는 것이 재능인지 충성이 재능인지 정치하는 것이 재능인지 사업하는 것이 재능인지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 하고 기도하여 새롭게 변화받기를 축원합니다. 타고난 자, 예정된 자는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달리 봅니다. 생각도 행함도 다릅니다. 타고났는데 책임 을 못하면 제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재능을 가지고 타고났는지 궁금하여 사주팔자를 보고 싶고 신앙상태가 심하게 안 좋을 때는 점이라도 봐서 은근히 알고 싶고 자기에게 무엇이 예정되어 태어났는지 정말 답답하고 궁금할 것입 니다. 그래서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손금도 보고, 어떤 때는 ‘왜 나는 별것도 없지?’ 하기도 하지요? 또 어떤 때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쳐다보며 관상을 볼 때도 있지요? ‘새해가 되었는데 올해 운수가 어떨까? 은근히 꿈으로 오려나? 누가 말해 주는 사람이 없을까? 재미로 살짝 사주팔자 한번 볼까?’ 하면서 정말 보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사주팔자 보면서 조잡스럽게 살 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기 바랍니다. 그래야 크게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물으라. 내가 너희를 창조하고, 예정하고, 재능들을 주어 세상에 나게 하였으니 내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물에 대해서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내게 물으라.” 했습니다. 기도하며 물어보세요. 하지만 은밀한 것들은 하나님도 예수님도 숨기십니다. 지금은 타고난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들으며 깨닫고 있습니다. 먼 훗날에 될 일을 미리 알아도 안 되고, 만일 모르더라도 하나님은 그 일을 하도록 은밀히 여건을 틀어 인도해 주십니다. 인간의 각 지체들이 온몸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듯이 하나님은 인간이 각 지체들처럼 예정을 입고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게 했습니다. 한 몸을 위해 각 지체로 작고 크게 예정되어 태 속에서부터 태어났 습니다. 어떤 자는 눈에 확 띄게 눈, 코, 입, 귀와 같이 태어나고 어떤 자는 머리같이 태어나고 어떤 자 는 손같이 어떤 자는 발같이 태어나고 어떤 자는 살같이 부드럽게 태어나고 어떤 자는 뼈같이 단단하게 태어나고 어떤 자는 뇌같이 태어나고 어떤 자는 속에 있는 지체처럼 사명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 다. 그러므로 정말 모두 다 귀한 것입니다. 모든 지체 중에 작은 손가락 하나만 없어도 그 사람은 불구 취급 을 받습니다. 그러니 지체 중에 크고 작은 어느 지체를 막론하고 다 귀합니다. 사명이 작다, 재능이 작 다, 작은 예정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작게 보면 안 됩니다. 발이 머리처럼 커도 안 되고 손가락이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를 모르고 ‘저 사람이 하는 일이 작다. 혹은 크다.’ 하면 이치에 어두 운 자입니다. 가정으로나 교회로 볼 때나 종교적으로 볼 때나 민족적으로 볼 때나 세계적으로 볼 때도 서로 존중히 여 기고 위해 주며 그 지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도와주면서 상호 존재하며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이 모든 인생들에게 사명을 주고 예정하여 재능들을 주어서 세상에 보내 놓고 원하시는 일이고 주님도 이같이 원하시기에 그에 따라 도우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인력으로 못 하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며 주 안에서 예정을 입은 대로 그 재능대로 해 달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바랍니다. 일찍부터 노력하여 개발하지도 않고, ‘나는 특별히 타고난 것이 없다.’고 불만 불평하는 자도 많습니 다. 인간이 타고난 것은 각자 개성대로 노력을 해야 됩니다. 타고나고 예정된 것을 개발해야 무엇을 타 고났는지 알게 되고 타고난 것을 가지고 살아야 개성대로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뛰어나게 눈에 띄게 재능을 개발하여 행하는 자들만 쳐다보고 부러워 말고 자기에게도 재능을 주고 예정 해 놓으셨으니 그것이 자기에게 맞고 기쁘고 만족한 것을 깨닫고 노력하고 개발하여 살기를 바랍니다. 예정 속에 노력, 타고난 것을 개발하고 노력해야 함을 잊지 말고 이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구약말씀 속에 신약시대가 예언된 것처럼 구약 같은 육신에게 자기 삶을 표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 다. 고로 육적 형상을 보고도 그의 삶과 마음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너무 왜곡 되게 사용하고 말합니다. 고통 받고, 환난 받고, 자기 뜻대로 안 되었다고 울지 말고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늘의 뜻대로 가 는 삶입니다. 다 타고난 길, 예정된 길 가느라 그 같은 고통의 길을 가게 되고, 쓸쓸하고 외로운 길을 가게 되고, 사망길도 가게 되고,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웃고 울며 간다고 생각하고 오직 주님 모시고 사 랑하며 긍지와 자부심과 희망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끝에 가서는 충격 받고 좋아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주팔자 안 좋다, 별 볼일 없다, 손금도 별로다, 태몽도 별로 안 좋다 해도 신경 쓰지 말기 바 랍니다. 하나님과 주님 믿고 살면 구원받고 영원히 잘되는데 그보다 더 좋은 사주팔자가 어디 있습니까? 손이나, 얼굴이나, 발바닥에 예정이 다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마음에도 새겨 있고, 영에도 새겨 있습니 다. “저는 사주팔자가 안 좋으니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 운을 타고난 자는 영원한 운을 타고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천운을 타고난 자들 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운을 타고난 것이 작은 일입니까? 한 주권자를 모시고 섬겨도 대운을 타고났다 고 합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운을 타고났으니 그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귀한 것인 줄 모르는 자는 땅의 식물처럼 땅 귀한 것만 알고 사는 자들입니 다.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을 사랑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얼마나 대운을 타고난 것인지 하늘 나라에 가 보기 전에는 근본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도 일부밖 에 모릅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사랑해 주는 것만 큰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사 랑이 있는데 세상에서 허무하게 끝나고 썩어 없어지는 육체만 사용하고 끝나렵니까? 영원히 사랑하며 살 도록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며 위대하게 써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랑의 기대가 어긋나 낙심하 도록 주님은 틀어 버리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랑하며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은혜 가운데 순종하며 성령님의 감동 속에 사는 자 는 사주팔자가 최고 좋은 자입니다. 이는 예정된 것이며 타고난 재능입니다. 고로 실천해야 됩니다. 믿 습니까?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타고나게 한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야 운이 따릅니다. 그동안 섭리사에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들과 예정한 것들을 위해 청춘이 늙도록 개발하고 실천하며 살아왔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정말 수고 많았고 고생들도 많았습니다. 정말 행복한 자들입니다. 얼마나 축복입니까? 과거에 눈앞이 캄캄할 때 새벽별이 비추이며 아침이 오고 낮이 왔습니다. 앞이 캄캄해도 기도하며 낙심 말아요. 하나님께 말하고 형제들에게도 말해요. 타고난 자는 다른 사람이 노력해도 못 따랍니다. 키도, 몸도, 소질도, 재능도 예정된 것이니 못 따라가 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저마다 타고난 것들은 하나님과 주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며 황금 보따리입니다. 그러니 새롭게 생각하고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더 부지런히 행하여 새롭게 변화받기를 축원합니다. 할렐 루야~ 아멘!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사랑과 은혜와 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2월 4일 수요말씀> 타고난 자만 할 수 있다 그 재능대로 맡겨라 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로다 본 문 마태복음 19장 11-12절 마태복음 25장 14-15절 요한복음 7장 28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마태복음 19장 11-12절을 보면, 주님은 “아무나 못 하고 타고나야 하늘을 위해 산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첫째, 부모로부터 타고나야 하고 둘째,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 스스로 본인이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고자란, 수절(守節)하는 자로 주님처럼 바울처럼 사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것을 말하며, 하늘을 위해 가정을 꾸리지 않고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듣고 누구든지 자기 행위와 사명에 따라 교훈도 삼고, 계시도 받게 되고, 깨닫 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여도 그 이야기를 통해 ‘너도 깨닫고 이같이 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온 세상 이야기를 하여도 각자에게 해당되지 않으면 말씀해 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각각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대로 깨우쳐 주 십니다.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깨닫고 생각나게 해 주었으면 행하는 것은 자신이 해야 됩니다. 힘에 겨 울 때는 간구하면 하나님도 도와주시고 성령님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깨닫기 어려우니 자세히 설명해 주고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말해 줘야 이해 가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말과 전혀 달라서 꼭 배우고 깨달아야 됩니다. 얼마나 귀한지, 인 간이 10년 동안 말한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더 귀합니다.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주지도 않고, 들어도 실천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최 고의 학문이고 지식이며 최고의 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행하시는 일과, 어떻게 섭리해 가 시는지 말씀하십니다. 은밀한 것은 ‘갑’ 이야기를 두고 ‘을’ 이야기만 해 줍니다. 그리고 “귀 있는 자는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어느 때는 토끼 이야기를 하면서 사슴을 깨달으라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왜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시지 않느냐고 하면, 주님은 “하나님과 주님에 대하여 신경 쓰고 사랑하며 진실하게 사는 자들은 깨닫게 된 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듣고 깨닫고 알면 안 될 자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기 전에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먼저 깨닫고 들으라고 이같이 말씀했습니다. 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대로 말하면 30초나 1분이면 끝납니다. 그러나 그같이 한마디만 하면 모두 깨닫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절입니다. 말씀하신 것을 말할 테니 들어 봐요.   『인간은 타고난다.』 총 일곱 자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1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토대로 대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깨달으려면 간단한 잠언으로 하여도 80개 이상이 나옵니다. 설교로 하면 2~3시간을 해야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해당되는 말을 해야 되고, 성경에 있는 말씀과 하 나님이 해 오신 일을 말해야 되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다 말해야 되고, 현실에 그같이 일어난 일과 그동안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 줘야 이해가 됩니다. 지식이 있어 여러 가지를 알아야 모르는 자에게 잘 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해 주려면 한참 걸 리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니 지루하다 하지 말고 잘 들어요. 별것도 아닌 책 한 권도 읽으려면 날 을 새워야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자기의 앞날을 알고, 자기 소질과 재능과 관상과 예정까지도 알 고, 자기 사명을 아는 데 거울이 됩니다. 나침반이 되고, 저울 역할을 해 주고, 컴퓨터 역할을 해 줍니 다. 『인간은 타고난다.』 이 한마디 하나님의 말씀은 한 보따리입니다. 한마디가 아니고 한 보따리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한마디지만 너희에게는 한 보따리다. 풀어 보면 한마디 속에 수십 가지, 수백 가 지가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도 표> 인간의 천 마디 말을 하나님은 한마디로 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간단하게 한마디로 합니다. 세상은 복잡 하게 합니다. 많이 배운 자는 문법을 써서 간단하게 합니다. 그러나 듣는 자가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필요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삽니다. 흔히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주님도 꼭 필요한 말만 하십니다. 한 시간 기도한 후에 말하면 한마디로 말씀하십니다. “걱정 마.” 하 시든지, “알았어.” 하시든지, “낙심 말고 기도 열심히 해.” 하시든지, 혹은 “하지 마.”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같이 꼭 필요한 한마디만 하십니다. 어느 때는 “사랑한다.”, “자세히 보아라.”, “꼭 해야 된다.”, “나 네 옆에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나오니 읽어 보기 바랍니다. 『사람은 타고난다.』 이 말씀의 보따리를 끌러서 잠언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보따리가 있습니 다. 『징조와 계시다.』 이는 하나님도 주님도 만물이나 사람을 통해 징조를 보이며 계시하시고 말씀을 깨우쳐 준다는 말씀입니다. 이 두 보따리를 끌러서 잠언으로 말씀하겠습니다.   1. 인생은 남자로 여자로 타고나듯이 타고난다.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하여 되지만, 이는 남자가 여자의 일을 하고 여자가 남자의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2. 사람이 하늘로부터나 땅으로부터 타고나서 저마다 노력하고 개발하여 그같이 된 것이다. 그러나 타고 나지도 않았는데 노력하여 그같이 되었다고 한다.   3. 무엇을 타고났는지, 살다 보면 자기 소질과 재능과 사명들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이끌어 행하신다. 하 늘을 위해 홀로 사는 것도 타고나야 하게 된다. 억지로 하지도 말고 시키지도 말아라.   4. 늙기 전에, 늦기 전에 자기가 타고난 것을 부지런히 개발하고 노력하며 저마다 그 일을 하면 하나님 이 주신 복을 누리고 산다.   5. 타고난 것이 자기에게 복이다.   6. 만물들도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돌로, 흙으로, 나무로, 동물로, 식물로 타고나고 물과 불로, 사람 으로, 하늘로, 땅으로 처음부터 타고난다.   7. 산을 바다로 만들기 힘들고, 지구를 태양으로 만들 수도 없고 필요도 없으니 그대로 개성대로 더 개 발하여 쓰는 것이다.   8. 냇물을 강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강물을 냇물로도 만들 수 없다. 그 개성대로 아름답게 창조하였 으니 내를 좋아하면 냇가로 이사하여 살고, 강을 좋아하면 강가로 가서 사는 것이다.   9. 명승지도, 아름다운 산도, 좋은 자리도 태초부터 태어난 것이다. 이를 주인들이 개발하기도 하여 모 두를 위해 쓰게 하는 것이다.   10. 사람도 저마다 하늘의 사명과 땅의 사명을 가지고 과학·예술·종교·정치·학문적 인물들로 각각 태어 난다.   11.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12. 인간은 저마다 각 지체와 같이 타고났기에 다 귀하다. 어느 지체도 자기만이 최고라고 할 수 없다.   13. 하나님은 타고난 자를 불러서 역사를 시작하신다.   14. 아브라함, 모세, 다윗은 아예 타고났다. 이미 내정(內定)하시어 그 환경에서 기르고 만들어서 때가 되니 역사를 시작하셨다. 선지자들과 사사들과 중심인물들도 마찬가지다.   15. 앞날을 알기 위해 인간이 선지자를 만들 수 없다. 구원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인간이 메시아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이미 태초부터 예정해 놓으셨다.   16. 만일 인간이 노력하고 원한다고 해서 다 된다면 모두 재벌가가 되고 명예자와 권력자가 되었을 것이 다.   17.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못 하게 해 놓으셨다. 타고난 자 안에서 살게 하셨다.   18. 자기가 타고난 대로 해야 체질에 맞고, 좋고, 만족하고, 온 세상 지체의 형상이 맞아 전체가 어우러 져 조화로운 세계가 된다.   19. 타고나서 노력하여 행하는 자만 부러워 쳐다보며 살지 말고, 자기도 지체 중에 한 지체로 태어나듯 타고났으니 자기 것에 만족하며 살아라.   20. “손발이 얼마나 피곤한지 아느냐. 쑤시고 아프면서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온몸을 위해 살아 야 한다. 발은 온몸을 싣고 다니는 역할을 평생 해 줘야 된다. 손은 온몸을 씻어 주고, 평생 일하면서 먹여 주며 헤쳐 나가야 되고, 원하는 것을 만들어 줘야 되는 큰 사명자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겨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지체도 그러하고 사람들도 그러하다.   21. 큰 자는 작은 자가 되고 싶고, 작은 자는 큰 자가 되고 싶어 안달들을 한다.   22. 큰 자가 되면 작은 자들을 위해 울며 살아야 되고, 자기 할 일 때문에 지쳐서 울고 산다.   23. 모세는 하나님께 “왜 이 백성들이 할 일을 내가 해야 됩니까? 내가 낳았습니까? 나는 못합니다.” 하며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타고났으니 하나님은 그에게 힘을 주시면서 “나와 같이 애굽에도 가고 바 로 왕에게 가자. 가서 내 백성들을 빼내 오자. 네 백성이 아니라 내 백성이다.”라고 하셨다.   25. 타고난 자는 뛰어나서 날고 긴다.   26. 타고난 자를 쳐다보아라. 자세히 보아라. 너무나도 기발하다. 잘하기도 한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 다. 박수 쳐 주고 칭찬도 해 주어라.   27. 예수님이 얼마나 잘하시고 잘하셨는지 그 업적을 보아라. 건성으로 보고 행치 말고 자세히 좀 보아 라. 무슨 말씀을 어느 단계에서 하셨는지 생각 좀 깊이 하고 성경을 읽어 보아라.   28. 타고난 자를 따라가려고 눈, 코, 입을 고쳐 대고 온몸을 고쳐 댄다.   29. 자연석을 가지고 인조석으로 만들면 그 가치가 하락한다. 자연히 놓고 본다면 자연히 좋아한다.   30. 강변 돌 아래쪽을 위쪽으로 엎어 놓으면 아래쪽도 반질반질하게 되듯이, 사람도 운동하고 만들면 온 지체가 아름답고 멋있게 자연스럽게 타고난 듯이 만들어진다.   31. 타고난 자는 어디 가도 타고난 재능대로 살아간다. 주님도 타고난 자라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32. 자기는 타고난 것이 없다고 하나님과 부모를 원망하지 말아라. 다 타고났으니 개발하고, 또 자기가 이미 행하고 산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여라.   33. 타고난 자, 사명자가 그 위치에서 해야 잘되고 형통한다.   34. 타고나고 예정되지도 않았는데 욕심 부려서 일을 하면 힘들고, 수고만큼 얻 는 것도 없다. 주님도 타고난 재능대로 맡기라고 말씀하셨다.   35. 어떤 자는 남자를 여자로 개발하여 쓰고, 또 어떤 자는 여자를 남자로 개발하여 쓴다. 이와 같이 타 고나지도 않고 예정에도 없는 것을 개발하며 인생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남자가 아이를 잉태할 수 없듯 이, 한계에 이를 때는 못하고 말게 된다.   36. 타고난 자는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고, 그만한 생각과 능력이 있기에 하게 된다.   37. 타고난 자도 어렸을 때는 크게 못 한다. 때가 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찍부터 개발하고 노력해야 된다. 못한다고 구박 말아라.   38. 인생 억지로 살지 말고 타고난 대로 살아라.   39. 사람이 타고난 자기 것도 다 먹지 못하면서 남의 것까지 가져다 먹으면서 자기 타고난 것을 썩혀 버 린다.   40. 사람들은 타고난 것인지, 스스로 개발한 것인지 잘 모른다.   41. 타고난 자는 재능도 모양도 다 갖춰졌으니 이런 자를 찾아서 더욱 개발하여 쓰도록 하여라. 타고난 자라도 커야지 하니 먼저 하는 자가 무시 말아라.   42. 타고난 것을 예정으로, 혹은 사명으로 보는 것이다.   43. 타고난 소질과 재능대로 쓰지 않고 달리 쓰면 만족하지 못하여 제 갈 길로 간다.   44. 저마다 타고났는데 자기 타고난 것만 시키면서 쓰면 싫어한다. 타고난 대로 각각 일을 시키면서 서 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하면 잘한다.   45. 타고난 자를 주인들이 찾고 다닌다. 써먹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보시고 사람들을 보 내 주어 귀히 쓰게 하신다. 그때까지 준비하고 예비하여라.   46. 재능을 타고나도 길이 없으면 못 가니, 길을 닦으려고 타고난 자는 놀지 말고 어서 길을 닦아라.   47. 어떤 사명으로 태어났는지 기도하여라. 하나님과 주님께 물어보아라. 쓰려고 말씀해 주시고 은밀하 게 이끌어 주기도 하신다.   48. 자기가 타고나고 예정된 사명이나 잘하여라. 고달프고 힘들게 남이 타고나서 하는 것까지 하지 말아 라.   49. 외모 보고 무시하고 없이 여기지 말아라. 하늘로부터 타고나서 그가 해야 너에게도 유익이 되니 칭 찬하여 도와주어라.   50. 어떤 자는 잘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 꼴을 못 보고 경계하며 같이 일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지한 연 고다. 이런 자는 주님이 다 아시고, 준 것 마저 빼앗아 가신다. 이 잠언을 깨닫고서 회개하고 행하여라.   51. 섭리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고 주님이 감독자이시니, 제 것같이 하지 말고 타고난 자를 앞세우고 해 야 책망받지 않는다.   52. 타고난 자는 사람들이 우러러본다고 해서 교만하게 되면 주께서 낮추신다.   53. 타고난 자, 사명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으면 운명이 바뀌기도 하고, 책망도 받고, 고통도 주 신다.   54. 타고난 자는 그것에 타고나지 않은 자를 위해 서로 살아 주어야 서로 잘되고 기쁘고 만족하며, 하나 님도 주님도 좋아하시고 보람 되게 여기신다.   55. 타고난 자는 그것에 타고나지 않은 자를 위해 살도록 하였으니 시기도 질투도 하지 말고, 돕고 함께 해야 자기 유익이 많다.   56. 타고난 자, 예언된 자, 사명자, 그가 행해야 속 시원하게 한다.   57. 월명동도 지역적으로 타고나고 예정되었기에 개발하니 빛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어느 곳보 다 귀히 쓰여지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58. 마귀로 귀신으로 타고난 것도 아니고 예정되지도 않았는데 왜 마귀와 귀신들이 하는 일을 하고 미움 받느냐. 마귀 짓은 마귀나 하는 것이다.   59. 하늘로부터 타고나서 그같이 했는데 사람들은 왜 자기 식으로만 하느냐고 꾸짖고, 막고, 비판하고, 악평하고, 무시하고, 배척한다. 하나님의 일을 거슬러서 심판을 받을 자들이다.   60. 타고난 자, 예정된 자, 사명 받은 자끼리 서로 이해해 주고 도우며 살아야 된다.   61. 타고난 자, 사명 받은 자는 애굽의 느고 왕처럼 하나님의 명을 받고 행한다. 그러므로 이를 거슬러 행하면 요시야 왕처럼 생명의 해를 받아 목숨만 잃게 된다.   62. 타고나고 사명 받고 예정된 자가 자기 위치에서 일하지 않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은 마치 밥그릇이 화 장실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는 자가 제자리에 갖다 놓아 제대로 쓰여지게 해야 된다.   63. 어떤 자는 돌로 태어났는데 모래가 없다고 다 부수어 모래로 사용한다. 모래가 필요하면 바닷가의 모래를 가져다가 써야지, 돌을 깨서 모래로 사용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 돌도 버리고 미련한 짓을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 버리지 말고 잘 파악하여 개발하여 써야 된다. 그 방면에 타고난 주인이 개발해 야 된다.   64. 자기를 개발해 달라고 아무에게나 맡기지 말아라. 사람들은 자기 하는 일에 억지로 자기 좋아하는 대로만 개발해 주려고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기가 깨닫고 개발해야 된다. 또 그것에 타고난 자에게 맡겨야 된다.   65. 말씀도 시로, 잠언으로, 설교로, 혹은 노래로 타고나 사명을 한다. 분별하여 전해 줘야 빛이 난다. 또 보고 듣는 자도 감동받고 은혜가 충만하게 된다.   66. 사람들은 자연도 아름답게 타고난 것이 좋다며 구경 다닌다.   67. 사람도 타고나고 예정되고 사명 받은 자가 뛰어나게 보이고 감동도 주는 것이다. 주님은 “아버지 여, 원하는 대로 예정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셨다.   68. 저마다 그 몸과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이 어떤 재능을 주고 타고나게 하여 예정하여서 사명을 주셨는 지 자세히 보고 깨닫고 알아야 된다.   69. 혼자 다 타고나면 인생 100년 짧아서 못하고, 사명 기간 20~40년 동안에는 못한다.   70. 어떤 자는 예쁘게, 어떤 자는 귀엽게, 어떤 자는 아름답게, 어떤 자는 우아하게, 어떤 자는 고귀하 게, 어떤 자는 세련되게, 어떤 자는 귀티 나게, 어떤 자는 풍성하게, 어떤 자는 얌전하게, 어떤 자는 순 진하게, 어떤 자는 솔직하게, 어떤 자는 지혜롭게, 어떤 자는 지적으로, 어떤 자는 인자하게, 어떤 자는 덕 있게 태어난다. 어떤 자는 날카로운 인상으로, 어떤 자는 험하고 무서운 인상으로 태어나 강한 곳에 쓰이기도 한다. 또 근엄하게, 튼튼하게, 무게 있게, 가볍게, 믿음직스럽게 태어난다. 성경에 주님이 말 씀하신 대로 여우같이, 염소같이, 야수같이, 사슴같이, 늑대같이, 뱀같이, 사자같이, 호랑이같이, 독수 리같이 각종 만물들의 특성같이 태어나 그 인상을 준다. 길고 짧게, 둥둥하고 홀쭉하게 각자 다 특성들 이 있고 장단점들이 있다. 선하고 착하고 진실하게 쓰여지면 최고다. 생긴 것보다 꿀맛이면 좋아하고, 생긴 것보다 개떡 맛이면 사람들도 주님도 안 좋아한다.   71. 관상, 수상, 인상, 사주팔자를 보면서 여기저기 눈치 보며 다니지 말아라. 주님은 마음에 있는 것들 이 행실로 나타나고, 인상으로 나타나고, 성격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쳐 주셨다. 엉겅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겠느냐. 모두 사람의 인상과 형상, 마음 상과 정신 상태를 보고 팔자를 봐 준 것이다. 고로 “고치 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72. 하나님도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속과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고 하셨다.   73. 사람의 눈을 잘 보라고 하셨다. 다윗의 눈이 사무엘 선지자의 눈에 띄어서 하나님께 왕으로 추천되 었다.   74. 사울 왕은 인상이 교만하고 과격하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관상이었다. 덩치는 좋은데 덩칫값 을 못했다. 또 과거 은혜를 잊고 현실만 보고 행하는 상이고, 사람들을 볶아 먹는 상이었다. 그렇게 살 다가 운이 돌아가 자기 성질을 남한테 다 화풀이하고, 더 화풀이할 자가 없으니 자기에게 하고 죽은 팔 자였다. 그리고 자기 혼자 다 하는 독재주의 사주팔자였다. 부려먹기 좋아하는 관상이라 다 부려먹고, 혈기 나는 대로 참지 못하고 칼이든 돌이든 집어던지는 인상이 얼굴에 꽉 차 있는 자였다. 정말 타고났 다. 그런 주권자에게 백성들이 눌려 살았으니 너무나도 괴로웠던 것이다.   75. 다윗은 순수하고 착하고 온순한 상이었다. 손재주가 있어서 물맷돌로 잘 사용했고, 문학을 타고나서 시도 잘 썼고, 예술을 타고나서 노래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뤘다. 노력 형, 꾸준한 형, 부지런한 형이었 다. 키는 작고, 용맹스럽고, 눈은 별같이 빛나고, 영웅적 기질을 타고났고, 카리스마 성격도 타고났다. 얼굴은 평화로운 상에다가 잘 웃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영적인 것을 타고나서 땅보다 하 늘을 좋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기질이 탁월했다. 또한 국운을 타고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평화롭게 이끌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타고나서 끝까지 실천한 위대한 자였다. 가문도 잘 타 고났기에 가문도 빛내게 된 것이다.   76. 정신도 육도 타고난 자가 있고, 겉은 뛰어나게 타고나지 못했으나 정신을 뛰어나게 타고난 자도 있 다.   77. 말은 타고났는데 행동은 타고나지 못하여 말만 잘하는 자도 있다.   78. 너도 나도 장단점을 타고났다. 좋은 것만 사용하고 개발하여 쓰고 나쁜 것은 버리자.   79. 타고난 것을 해야 개인·가정·민족·세계적으로 빛나고 하늘까지 가게 된다.   80.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였으니 하나님을 믿고 그 보낸 주님을 믿고 살도록 타고났다. 그러나 인간이 책임을 하지 못한 무지로 인하여 우상을 섬기고, 신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주님을 믿 지 않고 살 뿐이다.   ‘사람은 타고난다.’는 말씀을 잠언으로 들으니 이제 타고난 것을 깨닫고,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과 노력과 사명까지 깨달았습니까? 몇 마디만 더 한다면 ‘원숭이가 사람 되었다’는 말은 믿지 말아요. 원숭이는 처음부터 원숭이로 타고 났고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으로 타고났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발달되지 못했기에 인간을 가장 많이 닮 은 원숭이처럼 짐승처럼 살았을 뿐입니다. 사람으로 타고났기에 점점 역사가 흐르니 인간을 따라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타고났기에 어릴 때는 비슷하다가 점점 시간이 흐르면 원숭이가 사람을 못 따라오듯이, 그것에 타고나지 못한 자가 타고난 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달걀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 는 말도 다 헛소리입니다. 또 ‘사람이 하면 다 된다’는 말을 합니다. 99% 노력도 하지만 타고나지 않은 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 결국 자포자기하게 하고 실망만 시키는 말입니다.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다단계 일을 하여 돈 번다고 하다가 망하고 실패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남이 한다고 해서 다 따라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인 것은 해야 되지만 사람에게 휩쓸려 가면 안 됩니다.   타고난 만큼 하면 됩니다. 못다 쓰고 죽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런 때 혼자 먹다가 못다 먹고 버리 지 말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눠 먹고 도우며 살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제자들이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 은 각종 환난과 고통과 난리가 일어나며 거짓 그리스도까지 나타나니 속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 고 환난 후에 인자가 온다고 하시며 인자는 ‘하나님이 인 치신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징조와 계시에 대하여 핵심만 잠언으로 말하고 마치겠습니다.   1. 인간이 책임분담을 못하여 지금도 하나님은 깨달으라고 세계적으로 징조를 보이신다. 하나님을 생각 지 않고 땅의 것만 생각하며 물질과 경제와 돈만 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말세에는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자기만 사랑한다고 성경을 통해 말세의 현상과 징조들을 말했다.   3. 죽기 전이 개인의 말세다. 죽기 전 말세에 돈과 자기만 사랑하고 있다. 그때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 다. 죽기 전에 꼭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 그와 같이 세상 말세에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있 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 그래야 그 영혼이 하나님과 주님께 연결되어 하늘나라에 가서 땅의 것보다 수십억만 배 좋고 완전하게 실체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게 된다.   4. 하나님은 사람이 징조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보이신다. 그러므로 깨닫고 하나님께로 오게 하신다.   5. 하나님도 주님도 어떤 징조를 일순간, 혹은 장기간 보이시며 사람이 직접 고통도 겪게 하여 깨우쳐 주어 하나님의 뜻에 돌아오게 하신다.   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온 세계 누구에게나 다 해당된다. 고로 겪게 하고, 눈으로 직접 보게 하고, 마음에 깊이 깨닫게 하신다. 행하는 것은 자신들이 해야 된다.   7. 돈을 사랑하고 자기만 사랑하는 자는 개인의 말세를 맞은 자다.   8. 하나님을 사랑하고 좇으면 거기서 말세를 맞지 않고 연속 하나님의 뜻 속에서 진행하게 하신다.   9. 하늘나라에는 거할 곳이 많다. 하나님께 다 있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아야 된다.   10. 재물과 돈과 세상에 깊이 체질들이 배어서 하나님의 것을 깨닫고 사랑하고 행하려면 쉽지 않다. 그 러므로 환경과 여건을 틀어 오래도록 물질의 가뭄이 들 것을 알아야 된다.   11. 주를 사랑하며 자기보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 범사에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안 주시면 하 나님이 일을 못 하기 때문이다.   12. 주님은 징조를 보이며 말씀하신다. 일순간에 보여 주어 일순간에 온 세계 68억의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신다. 성령의 감동과 양심으로 사람의 정신에 전달하신다.   13.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때는 징조를 안 보이시고도 일순간 양심으로 마음으로 깨닫도록 전달하 신다.   14.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으로 깨닫거나 주님이 나타나 말씀해 주실 것만 기도하며 바라지 말아라. 인생 들 거의 모두에게 마음으로 징조를 보게 하면서 응답하신다.   15.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각각 개성대로 말씀하시고, 여건을 틀고 감동을 주면서 행하심을 깨닫고 살아라.   16. 꼭 먼 데까지 가서 앞날을 가 보고 그제야 믿고 행치 말고, 가 보지 않았어도 미리 깨우쳐 준 대로 믿고 행하여라.   17. 말세란, 인간들의 때가 끝났으니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하는 때다. 성경에 예언한 대로 주님이 행하 시는 때다. 경성하고 깨어 준비하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봐야 된다. 그래야 주를 맞는다.   18. 사람을 통해 하는 일도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님과 주님이 하시는 일을 어떻 게 알겠느냐. 이 외에도 많지만 삶 속에서 더 공부하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빕니 다.   <축 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성령 안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2월 8일 주일말씀> 인생의 삶과 영원한 길 자기 몫이 있다   본 문 요한복음 14장 1-6절, 14-15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도 주님이 전해주시는 이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을 보겠습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제자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간절히 말씀하시듯이, 이 시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니 귀를 기울여 듣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 말라면 안 하 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또한 자신들도 근심하지 아니하므로 애간장을 태우며 속을 안 썩이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지고 사는 자들도, 없는 자들도, 10대들도, 청년들도, 어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근심·걱정·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현실과 앞날에 대해서, 또 선생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하늘나라 가 정말 있는지, 자기는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별의 별 걱정과 근심들을 다 합니다. 그런 자는 쉽게 늙 고, 마음에 병이 들고, 육신의 병까지 들게 됩니다. 주님이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순종하는 것이 곧 고치는 약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보낸 나 예수를 절대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주님을 안 믿으면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듯이 삼위일체가 되시는 주님도 절대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약 해서 무엇을 해주시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믿어라.” 말씀하심에 따라 의심 없이 믿기를 축원합니다.   의지는 믿음에서 옵니다. 믿음에 따라 의지가 생깁니다. 절대 믿음으로 절대 의지하게 됩니다. 믿음에 따라 구원도 달라집니다. 의지가 강할수록 근심이 사라지고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인생 에게 큰 힘입니다. 굳건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이 아닌 메시아이니 절대 믿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구원받는데 있어서 예수님을 메시 아로 믿는 것은 잘 믿습니다. 자기의 어떤 문제를 두고 주님께 기도하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절대 해 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안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문제가 어렵게 되면 ‘내가 할 일이야.’하고 자기가 하려고만 합니다. 주님을 절대 믿고, 절대 의 지하고, 절대 해주실 것을 믿고, 근심하지 말고 살라고 했습니다. 믿고 살았는데 안 되었다고 낙심 말고 끝까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얻는 길’입니다. 삶속에 고통·염려·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주님께 간절히 구하고, 주님이 그 뜻대로 해주실 것을 절대 믿 고 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알겠습니까?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을 보겠습니다.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기서 ‘처소’는 영원히 거할 수 있는 하늘나라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처소, 곧 각자의 집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주실 처소를 직접 만들러 가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에도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과 같이 “약속대로 너희를 위해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고 그 책의 저자를 통해 확실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자세히 책을 쓰게 하였습니다. 이미 우리도 전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아는 바이지만 천국은 큰 세계입니다. 히브리서 8장 5절을 보 면, 땅에 있는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양이며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히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세상에도 사람마다 자기 집이 있듯이 천국에도 각자 집이 있습니다. 세상의 집은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자기가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집은 그 사람의 공적에 따라 주님이 약속대로 예비하여 지어놓으 십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을 아시고 뜻을 아시니 그에게 맞게 100% 마음에 들게 지어주십니다.   세상의 집은 돌, 철, 시멘트, 흙, 나무, 벽돌로 짓지만 하늘나라는 금과 각종 빛난 보석으로 집을 짓습 니다. 세상의 집처럼 값이 없고 빛도 나지 않는 허술한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집이 없습니다. 흙이 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집에 살 정도의 사람은 아예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행한 대로 준다」는 말씀대로 주십니다. 금보다 못한 나무집이나 돌집이나 흙집을 지어서 주지 않으십 니다.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천국도 빈부의 격차가 있는 세계가 되고, 천국 같지 않으며, 그 세계의 일 부는 이 세상과 같을 것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의 보석집과 같이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빛나고 찬란하게 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하여 영이 빛이 나서 천국에 가야 됩니다. “천국은 가 봐 야 알지...”하고 말하는 사람도 못 간다고 봐야 됩니다. 호리라도 문제가 있으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삶을 하늘나라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바울 선생은 하늘나라에 대하여 보고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라.”고 했습니다. 또 “나는 날마다 주를 위해 죽노라.”하고 말했습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못된 성격과 성질을 죽이고, 혈기와 악한 마음을 죽이고, 세상으로 가는 마음을 죽이고, 육성을 죽이고, 사람의 생각을 죽이고,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모두 그같이 살라고 했습니다.   제 성질대로 살고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한 명도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자기의 육과 영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육신이 죽으면 육체만 땅에 남고 하늘나라에 못 가는 것이지, 그 마음과 생각은 세상에서 행했던 행실 그대로 자기 영체가 하늘나라에 가져갑니다. 고로 완전히 회개하고 완전히 의를 행하여 천사의 마음과 주님의 성품과 어린아이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 다. 그 마음을 갖지 못하면 그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 때 죽으면 유전죄가 있어도 유전죄를 인 정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없어져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잠재해 있는 유전죄를 범하므로 자신이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을 메시아로만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절대 순종하여 화 평케 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하고, 참고 견디고, 의를 행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됩 니다. 땅에서도 육신을 가지고 주안에서 천국같이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땅에서 천국이 거의 좌우됩 니다. 주님은 “땅에서 뜻이 이루어져야 하늘나라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못 가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은 불바다 지옥 은 아니지만 천국에서 볼 때는 지옥으로 봅니다. 그곳에서 지옥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예 주님 의 말씀처럼 잘하여서 천국으로 가야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주님은 한마디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 고 형제를 사랑하고 살아야 된다.」 성경을 보면 천국에 갈 자들의 기준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일반 책 읽듯이 그냥 읽기만 합니다. 세상의 책들은 지식과 상식을 써 놓았고,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써 놓았습니다. 성경은 인생들의 영원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생을 구원하시는 메시아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며, 천국을 어떻게 찾아오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명대로 사는지 말했고, 수한 전에 죽는 하늘의 뜻있는 자에 대해 말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 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나옵니다. 또 지옥은 어떤 자들이 가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선지자 들을 통해,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 확실히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과 주님의 음 성과 같이 귀히 보고 읽어야 됩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천국에 집을 예비해 놓으시고 다시 와서 우리를 영접하여 하늘나라로 데리고 간다고 말씀하셨습 니다. ‘다시 온다’는 말은 주님이 꼭 재림하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날이 아주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 날과 그 시는 몰라도 주님께 기도하면 어느 정도 가 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뿐 아니라 직접 천국을 구경시키고 책을 쓰게 한 자들을 통해 주님이 지금 이 시대에 제일 급히 하 고 싶은 한마디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느 정도인지 말하면, 마치 해산하는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가 되어 더 이상 거동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는 정도 와 같이 임박했다는 말씀으로 표현되었습니다(살전 5:3).   또 다른 말로 깨우쳐 달라고 하였더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는 항상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징조가 보이지 않느냐. 이와 같이 내가 임하기 전에도 성경에 이미 말한 대로 징조가 일어나지 않 겠느냐. 세상에 징조가 일어나 너희가 쳐다볼 때 내가 임할 것이며, 너희의 마음과 몸을 마지막으로 단 장할 때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징조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 였더니, 이에 주님은 “너희가 알고 판단할 일이다. 하늘 편은 항상 계시나 징조를 보일 일이 있으면 보 여 주기만 한다. 보고 깨닫는 것은 너희가 해야 되지 않겠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징조들을 보았습니까? 하나님도 주님도 계획적으로 징조들을 보이는데 사람들은 답답하고 무 지하게 생각해 버립니다. “계절에 따라 태풍이 불었구나.”, “지구 온난화 현상이야.”, “요즘 같은 때는 모두 돈을 사랑하니 경제 흉년이 들고 가뭄이 든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두 징조들입니 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징조가 무슨 징조인지, 너희 신앙의 급수대로 지혜대로 깨달으라. 내 말을 항상 심각하게 잘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3절을 보면 “너희가 천기는 분별하면서 어찌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라고 주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징조는 ‘예비하라’는 뜻입니다. ‘피하라’는 경고입니다.   모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살전 5:1-5)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 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해산하기 전에 산모는 아픔과 고통이 와서 괴로워합니다. 임신했을 때의 고통은 많습니다. 음식을 제대 로 먹지 못하는 고통, 몸이 무거운 고통, 배가 나오는 고통 등 여러 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다 아이 를 낳기 전에는 태 속의 아이가 나오려 움직이고 방향을 트니 아픈 고통이 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오 실 때도 세상의 징조로 인하여 세상 모든 자들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 자들은 직접 고 통을 겪게 됩니다.   주님은 성경에 예언하신 말씀대로 오시지, 절대 뒤바뀌어서 오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천사장 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오시지, 천둥 번개를 치면서 오시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시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대로 오십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불 고, 그 나팔 소리를 듣는 자들만 알고 주를 맞을 것입니다.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 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 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어느 날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말한 것은 하나님도 나도 다 책임을 지고 이룬다. 그 러니 꼭 성경대로 살아라.” 또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중심인물들이 말한 것까지 하나님은 다 책임 을 지고 이루시니 꼭 성경대로 절대 믿고 행해야 된다. 고로 율법의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다 이룬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통해 깨닫고 듣게 됩니 다. ‘회개하라.’, 혹은 ‘기뻐하라.’, 혹은 오늘 말씀처럼 ‘근심하지 말라.’, ‘혹은 형제를 사랑 하라.’하며 자기 마음 상태와 행위에 따라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이 말씀은 30개론 중에서 계시론에 나옵니다. 배우기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오는 계시는 문학적 계시요,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직접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특별계시에 속합니다. 어느 때는 만물을 자세히 보면서 성경처럼 보고 행할 때 만물로도 들려옵니다. 만물은 인간을 중심하여 실체로 존재하게 해놓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개체이며 하나님의 창조 작품입니다. 만물은 자연계시를 보 일 때 사용합니다. 어느 때는 꿈을 통해 보이며 깨닫게 해주십니다. 환상·이상·비몽사몽간에 보이는 것은 초자연적인 계시 입니다. 주님이 직접 환상이나 꿈으로 안 나타나도 상징적으로 다른 자로 나타나 어떤 상황을 보이며 말 씀하여 깨닫게 해주시고 사라지기도 하십니다.   지금은 재림에 대해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해놓지도 않은 자들이 세상에 나타나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며 유혹합니다. 그들 을 따라가지도 말고 속지도 말기 바랍니다. 주님은 천국에 올 자들을 위해 각자의 집을 만들어 놓으셨습 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은 주님이 아닙니다. 성경에 그들이 다시 온다는 말은 기록되 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져주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 흙이나 나무 나 벽돌로 지은 하찮은 집 한 채씩도 지어주지 못했습니다. 세상 실력도 없는데 어떻게 하늘나라의 실력 을 행사하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하나 구원받기도 힘들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구원하고 남들도 구원해야 남에게 복음을 전해줄때 전하는 만큼 힘을 얻고, 은혜를 받고, 더 좋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더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도 재림하지 않으신 예수님이신데 왜 예수님은 가시면서 곧 온다고 하 셨습니까? 사도들도 왜 그같이 말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재림을 쪼개 서 보아라. 말씀은 항상 짝지어 한다고 말한 것을 깨달으라. 2000년 있다가 올 것인데 곧 온다고 하였겠 느냐. 내가 말한 대로 십자가에 죽은 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쪼개서 보면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3일 후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셨지만 처음 에는 몰라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방에 모여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영으로서 육신 같은 실존체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주님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항상 같이 있지 않고 때에 따라 나타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영으로 나 타나 전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밧모 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 영계로 천국을 보여주시고 천국의 실태를 모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000년 동안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상상해서 꾸는 꿈이 아닙니다. 실체가 나타나 보이니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평생 보고 싶어도 못 본 자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다시 온다고 말씀하신 후에 1차 2000년 동안 나타나셨고, 또 제 2차 재림하십니다. 복 음을 땅 끝까지 전하시고,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하면 너희를 데리러 온다.” 고 했습니다. 그동안 죽은 자들은 영계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가 주님을 한번이라도 보았냐고 물으니, 53년 살도록 딱 한번 보았다고 했습 니다.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아주 억울한 일을 당하여 수천억 문제가 생겼는데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 얼굴을 보고 한시간만에 3천억에 해당되는 억울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지금은 잘 지내냐고 물으니, 금전적으로 또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같이 해결된 것을 아느냐고 했더니, 아무튼 신기하고 기뻤 다고 했습니다. 그도 교회는 다닙니다. 그에게 말하기를, 주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절대 해결이 안 될 일 이었으니 감사하며 은혜의 삶을 살아야 된다고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제야 확실하게 깨 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은밀히 행하시는 주님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뼈저리게 감사하지 못합니다. 정말 확실히 알고 감사하며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이 또 오셔서 돕고 함께 하십니다. 아 무리 주님이 어려움을 도와주었어도 자기가 열심히 해서 된 것으로 알거나 사람들 때문에 된 것으로 압 니다. 주님이 사람을 통해 도와주시고, 보낸 자와 사명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이 무엇을 해 주면 모두 자기 때문에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는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입니다. 큰 죄를 짓게 되는 자입니다.   주님이 음성으로나 영으로 나타나시는 것을 작은 일로 보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나 주님 꿈을 자주 꾸는 것으로 알고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한번이라도 예수님을 꿈에 보았거나, 자기를 찾아 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모두 옆을 보고 앞뒤를 돌아 봐요. 꿈에서라도 예수님을 본 사람이 많아요? 적어요? 주님을 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와서 무슨 말을 하고 가셨느냐, 또 어떤 임무를 주셨느냐 가 중요합니다. 잘 생각해 봐요. 선생이 20대에 주님이 나타나신 후에 옛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게 되었고, 또 다시 만났을 때 월명동에 자연성전을 짓게 되었고, 붓을 주어 책을 쓰고 30개론을 받게 되었고,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을 만나면 큰 표가 납니다.   주님이 혼을 내러 오셨든지, 혹은 자포자기한다고 위로하러 오셨든지, 혹은 잘한다고 칭찬하러 오셨든지 주님의 발걸음은 정말 귀한 방문입니다. 진실로 감사해야 됩니다. 선생도 여러분들의 집을 방문하기 어 려운데 예수님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여러분 집에 선생이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30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도 집을 방문하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교회에 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주님의 계획에 따라서 다니니 또 갈 것입 니다. 주님을 꿈에서나 환상으로나 기도 중에 못 보았어도 오십니다. 그러나 영이시기에 와도 가도 모릅니다. 쳐다만 봐도 큰 것입니다. 예수님은 청중이 모일 때 거의 나타나십니다. 한 명이나 두 명쯤은 볼 때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천사를 보내어 보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한눈에 전 세계를 보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직접 교회에 나타나 왔다가 가기도 하십니다. 말씀으로 나타나기도 하시고, 기도 중에 나타나 기도 하시고, 홀로 위험할 때 동행하기도 하십니다.   직접 못 보았어도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못 본 자는 이와 같이 나타나심을 알아야 됩니다. 본인만 못 보았지, 주님이 오신 것을 느낌으로 깨닫고 감사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4~6절을 보겠습니다.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 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세상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제자와 선생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내가 가는 길을 알아야 된다.’는 격으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르친 것이 인생길이다. 생명의 길이다. 내가 길이다. 그대로 살면 내가 간 곳 에서 만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의 실체가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행실이 생명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 행하심이 길 이었습니다. 그 생각하심이 생명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오직 주님 만 따라가야 됩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길로 가는지만 생각하고 좇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위치에서 시 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선생을 따라가는 길이며 선생과 동행하는 자들입니다. 육신이 어디로 가는 것 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따라 올바른 인생길과 생명길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습니까?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를 보면 길이 많습니다. 길로 가야 편합니다. 무고히 길을 막는 자같이 큰 죄인이 없다고 말들 합니다. 길은 아무도 막지 못하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인생길도, 하나님 과 예수님의 사명을 받고 가는 길도 막으면 큰 죄입니다.   산길은 많지 않고, 절벽에는 겨우 하나밖에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길이 있듯이 주님은 인생길이 되 었다고 했습니다. 그 길은 주님 자신의 길이 되었고, 주님의 말씀하심이 인생길이 되었습니다. “멸망길은 넓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좁은 생명길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주님을 찾는 자들은 적습니다. 주님을 찾도록 전도하여 그 길로 가게 해 줘야 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특히 ‘길’에 대한 묵시의 말씀입니다. 잘 들어 봐요. 어느 날 큰 바위 산을 올라갔는데 내려오는 길이 없어서 막다른 골목에 처했습니다. 올라갔던 길로 내려 오면 되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길이 없어서 절벽을 내려다보니 도저히 생명이 위험해서 갈 수 없었습니다. 너무 막막해서 걱정하고 있는데 ‘늦더라도 길을 찾아 길로 가야 된다. 그 절벽으로 내려가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현기증이 나서 서있는데 “내가 길이다. 생명이다. 진리다.”라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주님이 이 절벽에서 길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고 주님께 길을 물었습니다. 이 순간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길이었습니다. 그 절벽에서 뒤로 물러나 길을 찾으니 크고도 큰 바위 사이로 길이 보였습니다. 순간 쉽게 내려오게 되 었습니다.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님을 찾는 것이 길이었습니다. 길은 가까이 있는데 도마처럼 육적 인 길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오죽 길을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인생길입니다. 주님은 그때그때 삶의 문제 속에 길이 되십니다. 삶 가운데 길이 막혔을 때 ‘어 떻게 할까?’하며 다른 궁리를 하거나 다른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면 생명의 길이 되시고 말씀의 길이 되시는 주님께서 “이같이 하라.”며 꿈으로나 상황으로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총동 원하여 알려주십니다. 그러면 절벽에서라도 길을 찾아 쉽게 내려오는 것과 같이 쉽게 길을 찾게 됩니다. 늦더라도 길을 찾아 가야합니다. 길이 막혔다고 그제야 길을 닦으면 바윗길도, 산길도, 인생길도 고생만 하게 됩니다. 또 그 길은 올바른 방향도 아니며 헛수고만 하게 됩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생명길이며 삶 의 길입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혀 한계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길을 닦듯 하지 말고, 이미 나 있는 절벽의 길과 같은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내 진로는 뭐지?’하며 고민하지요? 정말 답답하고 걱정되지요? 주님께 백번이고 천번이고 물어봐야 됩니다. 주님이 시키는 그 길이 아니면 바위 절벽에서 내려올 길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사 람들이 따라오면 꼭 생명길이 되시는 주님께 붙여줘야 됩니다. 자기가 끌고 다니면 자기가 그 생명들을 책임져야 됩니다. 자기가 구원시킬 수 있습니까? 선생도 여러분들을 인생의 길이 되신 주님께 모두 데려다가 자기 애인보다, 어느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 랑하면서 살라고 묶어놓았으니 영원히 헤어지지 말고 주님과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 쳐준 것을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지난 날 주님의 은혜를 잊고 현실에 또 달라고만 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니 이 같은 사고 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됩니다. 길이 막히면 급한 자는 가시덤불이나 잡초 밭이나 절벽을 헤치고 갑니다. 그러다가 큰 고통을 당하게 되 며 10배나 더 힘들어 애를 먹고 괴로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늦더라도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길로 가면 쉽습니다.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해야 됩니다. 또 처음에는 안 되는 일도 끝에 가면 되기도 하니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인생들이 각자 삶의 막다른 곳에 부딪힐 때 급하다고 해서 자기를 중심하여 다른 길로 가지 말고, 주님 을 찾고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하여 그 길로 가야 됩니다. 길로 가야 제 시간에 제 갈 길을 가서 목적을 달성하여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길도 아닌 가시덤불이나 절벽으로 가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새롭게 닦아서 가면 소원을 성취 하지 못하고 고생만 합니다. 전쟁터에서 길을 잘못 들면 적들의 소굴로 가게 되어 많은 생명을 잃게 됩 니다. 신앙길과 인생길을 잘못 가면 사탄의 세계와 악의 세계로 가서 멸망과 실패를 맛보며 세상의 삶속 으로 가게 됩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생명길로 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보낸 모세를 따라가야만 자기 민족의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가서 하나님의 뜻 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모세를 따라가지 않고 악평하고 불평한 자들은 광야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 다. 시대마다 주님이 보낸 사명자들을 따라가야 하나님과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됩니다. 삶의 길에 대한 것은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성경을 자 세히 상고해야 됩니다. 그리고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지 않으면 하늘이 틀어버려 안 됩니다. 주님의 길은 욕심이 없는 길이며 공의와 화평과 사랑의 길입니다. 긍휼함을 가지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위해주며, 절대 믿음을 가지고 행하며, 시기 질투가 없고, 자기 사명에 만족하고 충실하며, 주를 의지함으로 끝까지 가며, 약속을 지키고, 말조 심하고, 함부로 형제들을 판단하지 않으며, 악평과 이간질과 음모함과 거짓으로 거스르는 일들이 없습니 다. 이와 같이 행하지 않는 길은 사탄의 길입니다. 무지의 길입니다.   겸손과 순종, 온유와 절제, 화평과 기쁨, 희생과 봉사, 전도와 가르침, 기도와 감사, 찬양의 일들이 주 님이 가신 생명길입니다. 이외에도 손님을 대접하고, 없는 자를 먹이고 입혀 주고,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고, 형제를 사랑해주고 칭찬해주고 긍정해주고 고마워해주는 일들이 주님이 가신 생명길입니다. 주님 을 사랑한다면 이 같은 삶의 길을 가야 됩니다. 한번은 영계의 어떤 마을에 갔더니, 마을 청년이 바닷가로 가는 길이 없다고 하면서 큰 바위 밑을 산짐 승 오소리같이 파서 겨우 구멍을 뚫고 빠져 나갔습니다. 나는 도저히 그 길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는 자들도 다 그 구멍으로 오소리처럼 박박 기어 들어가 흙투성이를 하고 가야되는데 안 되겠다 생각하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주님이 삶의 길이니 주 님을 불러 가면서 길을 찾았습니다. 그 순간 옆을 보니 바위 사이로 1m 넓이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짐승 처럼 가지 않아도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바닷가로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이 마을에 살면서 왜 짐승같이 사느냐고 물으니, 길을 찾아서 갈 수도 있지만 머리가 안 돌 아가서 자기가 바위 밑으로 길을 파서 다녔다고 했습니다. 길을 두고 왜 사서 평생 고생을 하느냐고 하 며 길로 가면 쉽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연석을 많이 채취하는 자였는데 자연석을 보물처럼 숨겨 놓았습니다. 내가 자연석 전문가라 고 했더니 잘 믿지 않으면서 자기 잘난 체만 했습니다. 결국 그가 숨겨 놓은 자연석들을 보게 되었습니 다. 막상 보니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작품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작품이 없어 내가 사갈 것이 없다고 하니, 김이 빠진 듯이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청년에게 힘들게 길도 아닌 길을 닦지 말고 있는 길을 찾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 영계의 마을을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이에 교훈을 얻고, 여러분들에게 그 청년처럼 짐승 다니는 곳으로 다니며 힘들게 살지 말고 옆에 쉬운 길을 찾으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훈과 묵시입니다. 각자 인생의 삶속에 쉬운 길, 있는 길 로 가면 됩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면 쉽습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쉬운 길이며 있는 길인 주님을 찾고, 믿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의 뜻대 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힘든 길입니다. 주님께 묻지 않고 자기 스스로 찾아간 길은 사망의 길이 되기도 하고, 실패의 길이 되기도 하고, 손해의 길이 되기도 하고, 후회의 길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월명동에 가서 길로 안 다니고 횟골, 가는골, 감람산에 다녀 봐요. 얼마나 힘든가요? 이미 다녀보았을 것입니다. 인생길도 주님 떠나 다녀보면 상처투성이가 되어 결국 그 길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나오지 않는 자는 뱀과 짐승을 만나 사망길로 가게 되고 사탄들 속에 가게 됩니다. 사망길은 가면 갈수록 돌아 오기 어렵고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길은 조금 잘못 들었을 때는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많이 잘못 들면 오다가 기름이 떨어지고, 힘이 떨어 지고, 먹을 것이 떨어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길에서 서있기만 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알고 가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며 후회할 것입니다.   모두 어렸을 때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길을 가야 됩니다. 자기마다 타고난 재능과 개성을 가지고 가야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10대이든 어른이든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한 길을 가든지, 자기의 방법으로 길을 닦으면서 가게 됩니다. 길을 닦다가 힘들어서 못가고 늦어서 못가고 말게 됩니다. 이미 닦아 놓은 길, 곧 주님을 찾아서 그 길을 가야 되며 주님이 사람마다 허락한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그것이 주님이 뜻길 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15절을 보겠습니다. (요 14:14-15)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길로 가면서 주님의 이름 으로 주님께 구하면 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주셨듯이 또 주십니다. 주님께 구하여 받아서 쓰고, 주님 을 위해 일해야 됩니다. 우상이나 각종 신상들에게 구해서 받으면 우상들을 위해 일해 줘야 됩니다. 꼭 하나님과 주님께 구하고 받아 써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을 가지고 주를 위해 쓰게 되고, 자기를 위해 보 람 있게 쓰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시행하리라.」 하였으니 얼마나 큰 약속입니까? “너희가 없는 것은 구 하지 않은 연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구해야 됩니다. 사랑하니 원하기만 하지 말고 구해야 됩니 다. 받기 원하는 자가 구해야 주고 싶지, 구하지도 않고 원하기만 하면 주지 않습니다.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모두 구해야 됩니다. 개인의 것도 구하여 받아 풍부히 쓰고, 주님의 일도 풍부히 하기를 축원합니 다. 아멘.   마지막으로 말씀할 테니 잘 들어 봐요. 오늘 영계의 한 지역을 홀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길옆에서 여기저기 맛있게 음식들을 먹고 있었 습니다. 나도 배가 고파서 먹는 곳에 가서 지켜보았습니다. 모두 먹느라고 바빴습니다. 같이 먹고 싶고, 또 조금이라도 주면 먹으려고 했지만 주지를 않았습니다.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 가 먹으면 부족하게 먹게 되고, 먹는 자들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각자 자기 몫이 있어 자기 것을 먹어야 양껏 만족하게 먹을 수 있어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깨달아졌습니다. 여기 먹는 데 있어 봤자 주지도 않지만 줘도 얻어먹는 거지같을 것이고, 또 내가 먹으면 모두 부족하겠고, 각자의 몫을 빼앗아 먹는 것 같아서 결국 내 갈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네 몫도 있다. 앞으로 가 보아라.”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렇지. 저들도 있는데 내 것도 있겠 지.’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정자 좋고 물 좋은 곳에 내가 먹을 것들이 있었습니다. 내 체질에 맞는 산나물과 잡 곡밥이 있고, 짜고 맵지 않게 만든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이 음식이 내 몫인 것을 알았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깨달음으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도 저마다 자기 몫인 밥도, 옷도, 잘 곳도 부모님이 마련해 주듯이 인생들에게도 하나님이 각 자에게 먹을 복도, 사명 복도, 입고 사는 복도, 집도, 환경도 주셨다. 그러니 자기 몫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기웃거리지 말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곳에 가서 인생 푸념하며 곤란하게 하지 말고, 시기도 질투도 하지 말고, 욕심도 내지 말아라. 자기에 맞게 그동안 수고한 그 행위에 따라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그들이 먹고 마시니 누구한테 누구 어떻다고 말하지 말아라. 자기도 가다 보면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으니 자기 것이나 먹고, 입고, 자고, 누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환난과 고통에 참여하지도 않고 그때는 저가 죗값을 받는다고 하고, 환난이 지나고 그가 축복을 받 으면 시기 질투하며 어쩌고저쩌고 말들 합니다. 이는 못된 마음이며 마귀의 마음이니 다 고쳐야 새롭게 변화됩니다. 주님은 영계에서 이 같은 현상을 보이시면서 섭리인들과 세상을 깨우쳐 주라고 했습니다. “절대 남의 것을 넘볼 것 없고, 욕심낼 것도 없고, 이유 붙여서 이러니저러니 하지 말아라. 잘못하면 하늘로나 땅으 로 책망 받게 된다. 고통도 고생도 자기 사명과 자기 몫이 있으니 남의 것을 자기가 손대며 참견하지 말 고 기도해주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사람들의 모순은 자기 일이나 할 것이지, 사명을 받고 행하는 것인데 모르고 참견하여 일하는 자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수고하고 열심히 하여 고통을 겪은 후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인데 그것을 시기 질투하고 자기도 끼어서 먹고 마시려 합니다. 그 사람의 것은 사명에 따라 따로 있으니 칭 찬하고 축복을 빌어줘야 됩니다. 그리고 섭리의 일을 할 때 근본도 모르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니다 하며 제 생각대로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를 보고 잘못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항상 뜻대로 해 달라고 해 놓고, 무슨 일을 하면 자기 주관을 주장합니다. 평생 그같이 하다 보면 구원길도 벗어나고 주님의 뜻 을 벗어나서 살다가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시켜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니 뜻대로 해 달라고 해야지, 왜 이러쿵저러쿵 합니까? 몰 라서 사탄이 개입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여 잘되게 해주면 혈기를 부리면서 왜 이같이 했냐고 합니다. 오 직 주 뜻대로 해야 됩니다. 자기의 몫이 있으니 자기 것이나 챙겨먹으라고 했습니다. 자기 몫이 있는데 곤란하게 다른 사람의 것을 얻어먹으면 안 됩니다. 그같이 하면 주는 자도 부족하고 얻어먹는 자도 부족하여 서로 배를 채울 수 없 습니다. 늦더라도 자기 것이 있으니 자기 몫을 받고 살아야 됩니다. 자기 몫의 환난과 고통도 있고 각종 축복도 있습니다. 남의 것은 체질적으로 사명적으로 자기에게 맞지 않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말씀 마치겠습니다. 말씀에 따라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 도> 주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말씀을 듣고 길이 되신 주님을 길로 알고 찾고 구하 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게 주실 것을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2월 11일 수요말씀> 세상은 버려도 주님은 버리지 않으신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 위함이다 주님 따라 영생길을 가기 위함이다   본 문 마태복음 21장 42절 (참고 : 시편 118장 22절) 요한복음 17장 14-17절 요한복음 10장 28절, 12장 25절   먼저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요한복음 17장 14~15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따르는 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기에 세상이 나와 너희를 미 워한다.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너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렇다고 너희 를 세상에서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환난과 고난과 억울함을 받아도 예수님이 가신 길이 악에 빠지지 않는 길입니다.   이어서 요한복음 17장 16~17절을 보겠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같이 너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도다. 아버지의 말씀 은 진리니라.」라고 하시며 「모두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예수님께 속한 자들은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로 미움을 받고 갖은 고통을 받으며 살 았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을 항상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믿지 않은 자들은 유대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외식과 형식으로 믿었으며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이들에게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하고 억울하게 하니, 이 길을 면케 해 달라고 원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 니다. 따르는 제자들도 모두 고통의 길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벗어나는 길은 영생 이 없는 세상길이었기에 예수님도 따르는 자들도 그대로 고통의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은 영생길이었습니 다. 어느 시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똑같습니다. 세상이 악하므로 악으로 대하는 자들을 막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받으면서 하늘길을 가게 했습니다. 주님이 가신 영생길 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 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도 세상이 미워하고 억울하게 하고 아무리 핍박하여도 세상으로 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세상이 가는 길이 따로 있고 주님과 그 믿는 자들이 가는 길이 따로 있었습니다. 하늘길 과 세상길이 따로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계획적으로 잔인하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영생길을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영생길로 갔습니다. 좁은 길, 곧 영원한 구원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이 가신 그대로 복음을 펴면서 세상이 주는 고난·핍박· 억울함·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특히 제자들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제자들 중에 어떤 자들도 그 고통에서 빠지지 않고 하늘나라까지 영생의 길을 갔습니다. 베드로와 사도 요한에서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명도 그 고통과 핍박에서 빼 주지 않고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영원한 영생길, 하늘에 속한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세상길, 곧 사망과 멸망의 길로 가는 것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고난길을 피하게 해 달라고 하였지만 누구 한 명도 그 고난을 피해 세상길로 가지 못하 게 하여 주님이 가시는 길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으로서 그 시대의 죄를 대신하였고, 따르는 자들도 죄가 없었으나 그 시대의 죗값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길로 갔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누구나 똑같습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주님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하시며 죽음으로 영원한 영생길을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마 10:38-39)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요한복음 17장 15절 말씀대로 이 길을 가시는 목적은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난길과 억울한 길을 가는 것은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하기 위함입니다. 고통스럽다고 세상길로 가서 악에 빠지면 다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 길은 지옥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고자 하면 더 죽게 되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 님과 예수님을 위해 죽고자 할 때 그 길은 주님이 가신 영생의 길로서 영혼이 살고 신앙이 사는 길’이 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므로 예수님도 제자들도 그같이 고통을 받고 그들의 죄를 대신하고 영생길로 가게 되었습니 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자신들의 죗값으로 그 같은 고통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땅에 있으면 싸워서 빼앗았으리라.」 하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길만 가셨습니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 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 한 것이 아니니라』 모두 악에 빠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가신 좁은 길을 가야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고통의 길이라 도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사탄은 항상 미워하는 자를 통해 역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주 님의 뜻도 아닙니다. 마귀의 세력이 행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버려도 주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안 버리고 주님이 버리 면 영생이 없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버리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육과 세상에 속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늘에 속해서만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미워하는 자들은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시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악한 가인이 선한 아벨을 미워하듯이, 세상은 언제나 하늘에 속한 자들을 미워했습니다. 어떤 환난이 오고 핍박이 와도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핍박과 고통으로 인하여 더욱 하늘의 것으로 보전되기를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절대 요동함이 없어야 되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서로 원망 없이 사랑하며 예수님의 새 계명을 꼭 지켜야 됩니다. 내가 요동치 않음같이 모두 요동하지 않기를 기도 합니다.   언제나 자기 죄는 자기가 눈물로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평생 남아 자기에게 사탄이 역사하 게 합니다. 사도들과 에스더는 자기 민족과 시대의 죄를 회개하였고, 요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죄를 회 개시켰고, 예수님은 그 시대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앞날을 아시고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기도 하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을 갖은 핍박과 누명으로 억울하게 하며 결국 죽음까지 내몰고 제자들을 핍박한 죄로 주 후 70년 만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역사를 보아도 엄청난 고통들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핍박하는 자들을 보시고, 의인 아벨을 죽인 죄부터 제사장 사가랴가 흘린 피까지 땅에서 흘린 의로운 피의 값을 다 감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 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 말씀대로 모두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향한 죄와 무지한 죄를 모두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야 죄인들과 같이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속히 곧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루도 잊지 말고, 막연한 믿음에서 벗 어나 정말 예비하고 기도하여 깨어 있어야 될 때입니다.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예비 하여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고 그 말씀에 따른 삶을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얼마나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사셨는지, 성경을 읽어도 그 근본을 뼈저리게 느끼 지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글로는 마음의 고통과 현실의 수많은 일들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도 겪으며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3년 동안 계속 쫓기며 갖은 고난을 받으면서 뜻을 펴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받은 고통들을 어느 시대 누구든지 받아 보아야 예수님 시대에 받은 고통들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게 됩니다. 영생의 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가지 않으면 ‘왜 영 생길이 이같이 고통스럽지? 이 길이 아닌가?’ 하며 가다가 맙니다.   이 세상의 악한 자들로 인하여 받는 고통은 지옥의 고통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지옥은 한순간도 못 견 딥니다. 고로 이 세상에서 고통을 받아도 영생길로 가야 됩니다. 악으로 인하여 잠시 핍박과 고통을 피 하려고 세상으로 가면, 도리어 영생길을 잃고 영원한 고통의 세계인 지옥으로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천국으로 가는 영생의 길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 다. 죽고자 하면서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 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세상을 포기하고 살아야 영생길을 갑니다.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며 세상의 고통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가 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길을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영광의 길을 가는 때가 가까웠다.」고 수없이 말씀하셨 습니다. 고난의 길이 천국으로 가는 영원한 영생의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 이 그 길로 와서 모두 구원받고 하늘나라의 영광에 살 것을 아셨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 다. 예수님이 갖은 고통을 겪더라도 그 길을 가지 않으셨으면 그 시대가 하나님의 뜻을 불신한 연고로 그 시 대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었습니다. 본래 예정된 길은 아니었지만 시대가 악하게 행함으로 고난의 구 원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하게 사는 자들을 보시고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행위대로 받는 길로 갈 뿐입니 다. 예수님은 우리가 늘 선하게 살기 원하고, 또 구원길을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키기 힘들다고 마음대로 사니, 그렇게 사는 자들을 막고 못 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 기 책임이 크고도 큽니다.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면 안 됩니다. 소돔 땅의 롯과 같이 죽음을 피해 예수님만 향해 굳건히 가야 될 때입니다. 세상 미련을 두고 뒤돌아본 롯의 아내는 죽었습니다. 심판 때와 보통 때는 다릅니다. 사람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심판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그 악한 자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는 구원길이라면 아무리 험하고 고생되어도 그 길을 가 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따르는 자들과 함께 얼마나 위대한 길을 가셨는지 그 길을 가 보는 자만 알게 됩니다. 얼마 나 극심한 고통과 고난과 억울함을 당하고 사셨는지, 어느 시대 누구든지 그같이 당하며 살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는 그 고난에 참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는다.”,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기 위함이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모두 가야 되기 때문이다.” 모두 예수님이 말씀하심을 깨닫고 살기 바랍니다. <2009년 2월 15일 주일말씀> 천국을 위한 선한 싸움   본 문 요한복음 18장 35-36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의 편이 되어 주시어 싸워 이기 게 함으로 나라를 세워 살게 해 주셨습니다. 다윗 왕 때도, 여호수아 때도, 히스기야 왕 때도 대적하는 나라들과 맞서 군사들은 활과 칼을 가지고 나가 싸워 피를 흘리며 전쟁하였습니다. 이같이 하여 승리하 고 나라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펴며 살았습니다. 구약시대에는 4000년 동안 이 같은 역사로 섭리해 오셨 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신약시대부터는 전쟁도, 육적인 싸움과 다툼도 절대적으로 못 하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일지라도 육적인 싸움을 할 때는 돕지 않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선으로 대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러 오지 않았다. 하늘나라에 있다. 그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에 가 기 위해 선한 싸움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선한 싸움을 하는 자들입니다. “악을 선으로 대하고, 원수를 사랑 하고, 진리를 행하며, 화평케 하고, 서로 위해 주고 섬겨 주며, 미워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때 리면 맞을지라도 같이 육적인 싸움을 하지 말아라. 억울하게 하고 해를 주고 핍박하고 괴롭힐지라도 싸 우지 말고, 그들과 같이 미워하지 말아라. 싸우는 자들과 같이 싸우면 결국 패한 자가 되어 하늘나라를 빼앗긴다. 선으로 싸워 하늘나라를 세우고 빼앗아야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을 보면,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의로 승리하여 빼앗아 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후부터 전 체가 그같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나의 나라는 가다가 없어질 이 세상이 아니고, 또 내 나라를 이 땅에 세 우러 오지 않았다. 만일 이 세상 같았으면 이 세상식으로 따르는 자들과 함께 싸워서 이 세상에 내 나라 를 세우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나라를 세우려면 육적인 싸움을 해야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자기 개인·가정·민 족적인 나라를 세우려고 정신적, 육적, 물질적, 명예적으로 전심을 다해 싸움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를 메시아로 믿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상속하게 해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고로 예수 님은 세상 법으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의 법과 진리로 가르치시고 그 말씀대로 살게 했습니다. 하나 님의 뜻대로 살게 하여 천국을 자기 나라로 삼고 살게 해 주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무력으로 예수님을 대할 때 베드로는 화가 나서 검을 빼 싸웠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검을 쓰면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시며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자들이 예 수님을 위해 싸워 줘도 선한 싸움이 아니면 못 하게 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5~36절을 보겠습니다. 유대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을 때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기를 “실상은 네 나라 사람들 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이 세상에 속했으면 나를 따르는 수많은 자들이 나를 대적하는 자들과 능히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이 시대를 살면서 예수님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싸움과 무력으로 이 세상 에 어떤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이 가신 생명길을 목적하고 살아야 됩니다. 의와 선 으로 살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환난과 핍박과 갖은 고통들을 사랑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 하고 천국을 침노하여 자기 나라로 삼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시어 천국에서 오셨습니다. 천국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자가 없고, 어떻게 천국 에 가는지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일생 동안 가르쳐 주셨습 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섬기고, 형제들을 사랑하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성결하게 행하고, 계명을 지키고, 인자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긍휼 을 베풀고,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며, 화평케 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반대하고 핍박하고 거스르고 미워하는 자를 용서하며, 악을 선으로 대하며 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같이 함으로 선한 싸움을 하여 이겨야 천국에 갈 수 있고 그 나라를 상속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천국 은 ‘선으로 침노하여 차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사는 자들과 같이 마음을 먹고 행해야 천국에 들어가 살 수 있습니다.   개인·가정·민족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나라를 세우는 자들은 세상과 싸움을 합니다. 전쟁과 물질의 싸움, 권력의 싸움, 명예의 싸움, 혈과 육에 속한 싸움들을 합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가 목적이 아니고 세상이 목적인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도 우리의 싸움은 이 세상에 속한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두움에 속해 사는 마귀들을 물리치는 싸움이며, 믿음과 선과 말씀으로 악에 속해 사는 자 들과 싸워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 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예수님은 「모두 신앙 안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나를 위해 죽고자 하면 살고, 자기를 위 해 살고자 하면 오히려 죽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38-39). 세상을 포기해야 예수님과 더욱 하나 되어 목숨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선으로 싸워 이겨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세상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아니라 하 늘나라를 차지하려는 선한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이 뭐 그리 중하고 귀한 것이냐. 환경이 운명을 좌우하느냐. 운명은 몸 과 마음이 좌우한다. 몸과 마음이 중하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환경은 때가 되면 안 고 가지도 못하고, 지고 갈 수도 없다. 인생 끝나면 환경도 이 세상도 다 버리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오직 의를 행한 마음과 영만 가지고 간다. 그러니 귀한 몸을 가지고 의와 영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은 살고 나면 잠깐입니다. 모두 과거를 돌아보세요. 20년씩, 30년씩, 혹은 50년 이상 살았어도 지나간 날들이 잠깐이듯이 앞으로 4~50년 더 살아도 그때 가서 보면 지난날이 잠깐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 보내신 메시아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아서 그 영이 의로 단장하여 하늘나라로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를 몰라 서 세상에서 보이는 데 빠져 먹고 입고 세상만 위해 살다가 일생을 마치고 허무하게 끝나고 맙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가질 것을 다 가져도 마음이 괴로우면 지옥인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환난 과 핍박과 억울함이 있어도 마음이 기쁘면 천국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뜻을 모를 때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괴로워 지옥입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의 뜻을 깨닫 고 알게 되면 괴로운 마음이 떠나가고 마음이 기뻐 천국이 됩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생각지 않고 자기 뜻대로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워 지옥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 생명 길로 가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기뻐 천국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자들이 그 뜻을 몰라서 자기 뜻대로만 생각하면 마귀와 귀신들이 와서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네 마음에 귀신을 쫓아내면 하늘나 라가 네 마음에 임하여 기쁘다.」고 했습니다(눅 11:20). 재물, 돈, 환경, 자기 뜻대로 하여 천국이 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 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는 우리는 환난 중에도 그 뜻을 알고 살 아야 마음이 괴롭지 않고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며 환난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세 상이 버리고 배척했지만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버림을 받은 그 길이 예수님을 중심하여 가니 천국 의 생명길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보고 몹쓸 자라고 하며 죄인 취급하여 버렸지만 예수님은 결 국 주춧돌이 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면 예나 지금이나 극한 환난과 핍박이 더 일어났습니다. 보다 악 편 은 보다 선 편을 막고 공격하게 됩니다. 보다 뒤떨어진 시대는 보다 앞선 시대를 막고 거부했습니다. 종 교뿐 아니라 다 그러했습니다. 축구 선수들을 보아도 잘하는 자를 상대가 총력을 기울여 막고 태클을 겁 니다. 모두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최고의 목적입니다. 구원길을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뜻을 알고 따라가 야 괴롭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당하는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워 못 삽니다. 의를 위해 당하고, 예수님을 위해 당하고, 생명길과 천국길을 가면서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핍박을 당해도 기뻐하 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마 5:11-12)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바울과 실라, 그리고 베드로는 복음 때문에 억울하게 옥에 갇혔지만 예수님의 뜻을 알고 생명길을 가는 것이기에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수님으로부터 더 깊은 말씀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따르고 믿 는 자들에게 더 깊은 말씀을 전해 주어 구원을 더욱 확실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들이 기뻐 찬양한 것은 옥의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관광을 가 본 자들은 알겠지만 감옥은 지 옥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위해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생명길을 가게 되니 마음이 천국이기 때문에 기뻐 찬양한 것이었습니다. 환난과 핍박과 억울함을 받아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 곧 생명길을 가기에 기쁜 것이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들도 환경이 안 좋고, 삶이 어렵고, 여러 환난이 있다고 그로 인하여 고통스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늘의 생명길을 가니 어떤 일이 있어도 기뻐하며 가야 됩니다. 그럴수록 자신들을 더 돌아 보고 고치고, 더 기도하고 새롭게 되고 변화를 받아 확실한 생명길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가니 마음이 천국 되어 살아야 됩니다. 의와 사랑과 진리와 인내로 악과 싸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나라를 상속받아야 됩니다. 감사하며 믿음에 굳건하게 서서 흔들림 없이 진실하게 예수님 의 뜻대로 의롭게 사는 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입니다. 하늘나라를 침노하는 승리의 생활입니 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고 핍박하고 억울하게 한 자들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흑암의 세계로 가고 맙니다. 이 세상은 하늘나라를 위해 사는 자들을 받아 주지 않습니다. 이는 세상이 자기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 뜻대로 사는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받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좇고 따르는 우리는 세상에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세상은 오히려 가혹하게 대하고 더 배척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살기 때문에 우리의 위로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위로해도 오히려 심정이 상합니다. 일생 동안 부지런히 마음과 뜻을 다해 살아야 하늘나라에 가서 생각할 때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하게 됩니다. 자기가 자기 삶을 살아야 됩니다. 누가 대신 못 해 줍니다. 매일 부지런히 낙을 삼고 자기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가르쳐 주시고 대신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가르침을 받고 자기 것은 각 자 자신들이 했습니다. 안 하면 안 한 만큼 손해이고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하신 말씀들이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그대로 행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성령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육신이 태어났듯이 영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신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예 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육신이 부모로부터 태어나듯이, 영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 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과 성령을 체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것이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난 자는 성령으로 행하게 됩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생각과 삶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와 다릅니다.   육으로 난 자는 육으로만 행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난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으로 행합니다. 성령으 로 난 자라야 예수님의 뜻을 알고 행합니다. 성령으로 난 자와 육으로 난 자는 뜻이 달라서 싸웁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역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거듭나 살지 않으면 역 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구원을 받아 거듭난 자가 되고, 하나님 의 성령으로 거듭나 산 영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려면 예수님을 메시 아로 믿고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가신 고난길을 가면서 천국을 침노하는 삶을 살며 선한 싸움을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 나 라가 됩니다. 악과 싸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생명길, 영생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영생길을 가니 기뻐하며 살아야 됩니다. 악에 속한 자들은 멸망 길을 가면서 기뻐하며 살고 있습니다. 환난과 고통들은 예수님께 위로받고, 같이 환난을 당하는 자들끼리 예수님의 뜻을 알고 위로해 줘야 됩 니다. 그래야 괴로운 마음이 풀립니다. 자기 직분을 행하며 화평으로 하나 되고, 서로 원망하지 말고, 자기 일에 충성해야 될 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의로 싸워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이 좁은 길, 곧 생명의 길로 갑니다. 이 좁은 생명의 길을 가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모두 가르쳐 주었으니 몰라 서 못 했다고 하지 말고 진실로 잘 듣고 행해야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내던지고 잔인하게 해도 놀라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 면 세상에 묶여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버려야 더욱 예수님께 붙어 그 길을 가게 됩니 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보낸 자를 따르는 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와 같았습니다. 구약의 모 세 시대에도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이 보낸 모세를 더욱 믿고 따라감으로 자기 선조들이 살던 땅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세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한 가정에서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한 사람이라도 밤낮 집을 지키면 도둑을 맞지 않습니다. 또 식 구들 중에 괴롭지만 어느 한 사람이 밤낮 불조심하며 관리하면 화재로 인하여 재난을 받지 않게 될 것입 니다.   우리도 각 교회와 섭리역사에 있어서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한 명이라도 희생하고 몰두하면 환난과 고통 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꼭 그같이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희생하시니 생명길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가신 후에 사도들이 모두 목숨을 걸고 순교하면서 복음으로 살았기에 결국 신약의 생명 역사가 오늘날까지 펼쳐져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니 새싹이 나서 많은 결실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의 밀알은 예수님 자신을 말한 것입니다. (요 12:23-25)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 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 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오늘 말씀은 우리의 나라는 세상이 아니다. 그러니 육의 싸움을 할 것 없다. 선한 싸움, 곧 예수님의 뜻 과 말씀대로 살아 천국의 나라를 빼앗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힘들어도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사 랑과 화평과 기쁨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세상에 속해 살지 말고, 참고 견디며 의를 위해 사는 것이 선한 싸움을 하여 이긴 자가 되어 하늘나라를 빼앗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잠언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1. 하나님과 주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었다고 생각할 때 마음은 괴로운 지옥이 된다.   2. 하나님과 주의 뜻에 맞지 않을 때 마음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   3. 누구든지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의 마음과 일체되어 산다면 마음이 천국이다.   4. 자기가 영원히 거할 곳이 세상이라면 세상을 위해 싸워야 되고, 하늘나라라면 하늘나라를 위해 싸워 야 된다.   5. 예수님이 다스릴 나라는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절대 세상 과 싸우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시며 막으셨다. 세상과 싸우는 일은 절대 필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셨다. 예수님은 천국을 다스리는 자이시므로 그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라고 말 씀하셨다. 진리와 사랑, 선과 공의, 평화와 용서로 대하며 원수를 위해 기도해 주고 가난한 자를 도우 며, 서로 화평케 하고 참고 견디며,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두려워 섬기고 감사하며, 굳건한 믿음 으로 진실하게 거짓 없이 살라고 하셨다. 이는 그렇게 사는 자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시기 위함이었다.   6. 자기 좋은 대로만 생각하고 해석하지 말아라.   7.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자기 좋은 대로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계시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현 실과 어긋나게 된다.   8. 예수님은 살고자 하면 죽게 되고, 죽고자 하면 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영적인 주 뜻대로 하면 살 것이요, 육적인 자기 뜻대로 하면 죽을 것이라는 말이다. ‘죽는다’는 것은 ‘안 된다’, 혹은 ‘영이 죽는다’, 혹은 ‘육이 죽는다’ 함이다.   9. 사람들은 모두 고통과 염려 속에 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잘된다고만 생각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기에 안되는 일이 누구나 많은 것이다.   10. 예수 안에 사는 자들에게는 자기 원하는 것이 안 되었든지 되었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되 었느냐가 문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 생명의 삶이다. 주님이 가신 구원의 좁은 길의 삶 이다.   11. 자기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생각하지 말아라. 자기 원대로 안 되는 것이 실상 하나님의 뜻인 것이 훨씬 많다. 이는 인간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12. 사람이 열심히 하여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것이 훨씬 많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된다면 하나님 의 뜻을 제대로 펼 수 없다.   13.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면 부정하고 사는 것보다 삶에 보람이 있을 뿐이지, 긍정적인 사고를 한 다고 해서 다 자기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14. 세상의 많고도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원하는 대로 된다면 세상 체제와 질 서의 균형을 잃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펼 수가 없다.   15.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 뜻대로 하시고, 나머지는 인간들의 자기 수고의 뜻대로 되게 하셨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자기 원하는 대로 못 하게 하셨으니, 이는 온 세상 전체의 균형을 잡으시기 위함이다.   16. 사람은 자기 고통을 벗어나려고 항상 희망적인 생각과 사고들로 긍정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좋 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실제와 다른 것이 너무도 많다.   17. 자기가 원하는 대로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라.   18. 자기 좋은 쪽만 생각하면 하나님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19. 주님을 믿고 구원받고 사랑하고, 또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자들이 자기 좋은 쪽으로만 원하고 생각하고 살면 주님이 자기를 위해 해 주시는 좋은 쪽은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주님이 그를 사랑하여 주님이 원하는 좋은 쪽으로 해 주시면 사람은 자기 원대로 안 되었다고 실망하게 된다.   20. 예수님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육이 살면 영이 죽는다는 말씀이었다. 항상 예수님은 영 때문에 걱정하셨다. 영이 죽으면 영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육신이 살아 있으나 날마다 스스로 육신을 죽이고 영을 위해 산다고 했다.   21. 주님은 영을 구원하여 그 영을 하늘나라에 보내기 위해 오셨다. 육은 구원받으나, 못 받으나 인생 일평생 8~90년 살다 끝난다. 영이 구원받아야 영원히 살게 되고, 육도 세상에서 살 동안 잘되고 형통하 여 주의 뜻을 좇을 수 있다.   22. 꿈으로 어떤 계시를 받으면 영적인 것인데 육적으로 해석한다. 영이 살아서 온 것이고 영에 관한 것 인데 육이라고 잘못 해석한다. 계시는 올바로 오지만, 사람들은 흔히 자기 좋은 대로만 육적으로 해석한 다.   23. 신앙적이고 영적인 일인데 모르고 육적으로 생각하면 육적인 일들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 야 아닌 것을 알게 된다.   24. 영이 영원하고 중한 것이다. 누구든지 영이 살지 못하면 그 수고는 헛되다. 신앙으로 육만 살아 있 으면 안 된다. 반드시 영이 부활되어 살아야 한다. 영이 잘되기를 바라며 영을 위해 항상 힘써야 된다.   25. 주님 좋은 대로 해 달라고 기도해 놓고, 그 뜻대로 해 주시면 자기 희망이 깨졌다고 한다. 이는 주 님의 뜻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께 맡겨 버리고 살아 야 주의 뜻대로 됨을 깨닫고 기뻐한다.   26.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지 상관없다. 주님이 그에게 원하는 것만 해 주시면 되는 것이다. 자기 가 원한다고 해서 세상이 원하는 대로 절대 해 주지 않으신다.   27.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네게 어떻게 했든지 상관없는 것이다.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 다. 내가 네게 해 줄 것만 해 주면 되지 않느냐.” 하셨다.   28.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며 악행을 저지른 유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행한 것은 주님의 행하심 이 아니었다. 주님은 그 시대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 해 줄 것을 다 해 주셨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 은 주님이 해 주실 것만 해 주시면 만족하게 생각하면서 좇고 따라야 된다. 세상이 가는 길과 주님을 따 라가는 길은 다르다. 고로 세상과 싸울 일이 없는 것이다. 부지런히 하늘의 생명길을 가야 될 때다.   29.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천릿길을 가야 될 사람이기에 날씨가 좋으나 나쁘나 가야 된다.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걸어가야 되기에 걷는 데서 힘이 든다. 날씨가 나쁘면 더 힘들기는 하지만 하나님도 주님 도 더 함께하시니 더 좋은 것이다.   30. 구원의 길이요, 주님과 함께 고난에 참예하는 길이요, 영원히 살 길이다. 어떤 어려움도 고통도 다 이기면서 기쁨으로 갈 길이다.   31. 세상의 사망길을 가는 자들도 기뻐하며 가는데 주님을 따라 영생길을 가는 자들이 기뻐하며 가야 되 지 않겠느냐.   32. 자기 원하는 대로 살면서 주님 뜻으로 알고 가는 자는 누가 막을 수도 없는 무서운 길을 가는 자다. 갈 길을 다 간 후에야 사망길임을 알게 된다. 미리 확인하고 가라. 보기에는 좋으나 사망길이고, 보기에 는 험하고 좁으나 생명길이다. 말씀을 듣고 자기의 길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라. 지금은 확인을 할 때다.   33. 길을 잘못 가는 것을 알았으면 다시 바른 길을 찾아 가면 된다. 인생길도 그러하다.   34. 인생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절대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한 영생길이 있고, 자기를 중심한 세상길 이 있다.   35. 오른쪽은 하늘 백성들이 가는 영생의 길이고, 왼쪽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멸망의 길이다. 생명길을 가기 때문에 세상길을 가는 자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이다.   36. 예수님은 “내가 인생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길을 가는 자는 예수님이 말 씀하심을 읽고 행하며 그를 구원자로 믿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와 더불어 사는 자다.   37. 악인들이 의인들에게 해를 주는 것은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니다. 이는 악한 자 의 뜻이다. 그로 인하여 의인들이 더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하는 것은 하나님께 향한 뜻이다.   38. 세상 편이 미워한다고 해서 하늘 편이 세상 편과 싸우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다.   39. 주님이 정말 사랑하는 자들이 세상길로 가면 가는 길이 끊어지게 하여 결국 가지 못하게 하신다. 말씀 잘 들었습니까? 정확하게 말씀을 전하고 정확하게 들음으로 온전히 깨달아 새롭게 거듭나고 변화되 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와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성령 안에서 충만하기를 축원합니 다. 아멘. <2009년 2월 18일 수요말씀> 천국을 위한 선한 싸움   본 문 마태복음 22장 37-40절 요한 1서 3장 10-15절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 가운데 살면서 고통을 받는 만백성을 구원시켜 하늘나라를 가게 하심이 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은 너무도 많지만 핵심을 보면 첫째, 죄에 대하여 가르쳐주어 죄를 회개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마다 죄에서 벗어나 그 영과 육이 자유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으시며 오직 그만 섬겨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라고 하시며, 내 말을 믿고 구원을 받고 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셋째, 사랑에 대하여 가르쳐주셨습니다. 자기에게 해를 주더라도 절대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잘못이 있 으면 용서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를 마음으로나 행실로나 미워하면 살인한 자가 되고, 살인한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 행실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진실 로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주님의 마음에 큰 도였습니다.   넷째, 걱정·염려·근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게 맡기고 하나님께 내 이름으로 기도하여 그 없는 것을 육 도 영도 얻으라고 했습니다.   모두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가르치셨는지 잘 보기 바랍니다.   요한 1서 3장 10-15절의 본문 말씀을 듣겠습니다. 역시 사랑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결국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의를 행하지 않는 자나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가인같이 형제를 미워함으로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4장 1~12절을 보면, 가인은 악한 자에 속하여 그 아우를 미워하여 죽였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자 기 행위는 악하고 아우 아벨은 의롭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미워합니다. 종교세계도 어느 시대든지 그러했습니다. 섭리 안에 서도 그러합니다. 이들은 가인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한다 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도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자들이 예수님과 그 따르는 자들을 미워함을 보시 고 가인 같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르는 자들도 외식과 형식으로 말로만 형제를 사랑하 지 말고 행실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 이 시대나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가인처럼 형제를 미워하며 혈기방장하게 행하는 자는 살 인자로 취급하시며 그런 자는 사망에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회개치 않으면 마귀와 귀신이 그들을 계속 주관하며 사망에서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미워함으로 마음에 살인하면 마귀가 그 속에 있어 그를 주관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법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 으로 들어간 줄을 알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같이 사랑이 큽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 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구원받지 못하니 저주를 받게 됩니다.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러합 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떠한 미움과 고통을 주어도, 억울함과 원통함을 주어도, 해를 당했어도 바울 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하며 원수든지 미워할 자든지 그들과 같이 싸우지 않고 왔던 것입니다. 자기를 미워한다고 해서 같이 싸우며 화를 내고 분노하면서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영생의 길을 포기함으로 영원히 손해를 보며 사는 미련한 자입니다. 영원한 생명길인 천국길을 가야지, 왜 화를 내고 원통해하며 가인처럼 분을 내고 미워하며 같이 싸웁니까? 영생길만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 라 사망권 가운데 마귀에게 속함으로 자신의 육신도 지옥이 되고, 마음도 영도 괴로운 지옥이 되는 것입 니다.   절대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대로 그 말씀대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만 따라가는데 마음 과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 주며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앞만 향해 가야 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섭리 안에서도 모두 그같이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기뻐 좋아하시고 그를 사랑해 주십니다. 흔히 섭리 온지 오래된 자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싸움을 합니다. 누가 잘못했느니, 누구 때문에 선생이 이같이 되었다고 하며 섭리사에 극적으로 해를 줍니다. 이 같은 자들은 예수님께 속하지도 않았고, 나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은 자들입니다. 계속 그러면 예수님은 행위대로 해 준다고 말씀하셨습 니다.   자기에게 해를 주고 미워하는 자들과 싸울 힘이 없어 못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 하나님의 자녀 가 되었으니 화평케 살아야 자녀에서 버림받지 않고 그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같은 삶을 이미 오래 전에 어렸을 때부터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야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따라가지 못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며 형 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할 것이 있기에 미워하고, 후에는 회개하여 예수님을 따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탄이 한번 사망으로 끌고 가면 쉽게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행위대로 행하십니다. 전쟁에서나, 환 난중에서나, 삶속에서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의 법을 지켜야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면 이는 최고 법을 범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죄가 있는 사랑이므로 하나님과 주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함으로 살인한 자 는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는 마음을 쏟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미워함으로 이미 사망에 속해 있기 때문 입니다.   가정에서도 형제를 미워하여 싸우면서 부모는 사랑한다면 오히려 책망을 받고 그 사랑은 부모가 받지 않 을 것입니다. 섭리 안에서도 형제끼리 이러하든지 저러하든지 오해하고 미워하고 싸우면서 선생을 사랑 한다면 그 사랑은 사망에 속한 사랑이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과 그 따르는 자들을 미워하고 무지 로 오해하여 몰라서 싸우고 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어도 마귀의 주관권, 곧 사망권에 속하 여 참된 사랑이 되지 못하였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의인 아벨을 죽인 죄로부터 그 시대 의인들이 흘린 모든 핏값을 그 시대에 형 제를 미워하고 죽인 자들이 다 담당하라.」고 하였습니다(마 23:35). 너무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 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들은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섭리에서도 그같이 행한 자들은 다 해당됩니다. ‘라가’라는 말은 조롱하고 욕을 할 때 사용하는 경멸 적인 말을 뜻합니다. 욕하는 교역자는 자격이 없으니 모두 교회에서 내보내야 됩니다. 육은 살았다 하나, 영은 죽은 자들입니 다.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니 나의 일도 할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위해 자기를 위해 참고 견디면서 예수님의 뜻만 따르며 가면 기뻐 희망에 벅찬 것입니다. 이같이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화평케 하면서 사랑하면 더 크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를 더욱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제대로 성장할 수 없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사랑을 많이 받으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실천하여 형제를 너그러이 대하고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차가운 자가 됩니다. 냉랭한 자가 됩니다. 말세 때는 사랑이 식는다고 했 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사랑의 나라 천국을 마음으로도 누리지 못합니다. 원통한 마음이 있어도 예수님 뜻을 알고 사랑으로 풀고,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듯이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따라서 부지런히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가 갈 길이 아닌데 싸우면서 그 길을 가려고 하면 해가 됩니 다. 우리가 갈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데 그 길로 가지 않고 남아서 필요 없 이 모여 싸웁니다. 그 땅을 차지하려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망의 땅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은 살지 못할 땅입니다.   우리가 싸우면서 갈 곳은 오직 하늘나라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화평으로 대하고, 선과 공의로 대하며, 주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기도하고 찬양해야 됩니다. 이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이같이 천국을 침노하며 부지런히 가야 될 때입니다. 같은 섭리사 형제끼리 싸움을 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모르고 오해하여 아군에게 총을 쏘는 자와 같습니다. 알면 전혀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오직 마귀들과의 싸움입니다. 마귀들은 기도할 때 우리를 방해하니, 기도하기 전에 먼저 예수의 이름으로 몇 분 동안 기도하면서 마귀 를 쫓아내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를 보호하는 천사가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했기에 마귀와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리고나서 기도해야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형제를 미워하기보다 자기 죄에 대하여 낱낱이 기도하여 용서를 받아야 됩니다. 자기 것을 먼저 해 결해야 됩니다. 그리고 형제·가정·교회·섭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기도해 줄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민족과 세계까지 감동되어지는 대로 성령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항상 그럭저럭 해 버릇하면 절대 안 됩니다. 눈물로 간절히 해야 됩니다. 눈물의 기도는 꼭 하나 님께 상달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원통하고 괴로운 것과 사정들을 다 고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고하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성령님 과 삼위일체이시며, 또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 보혈로 우리의 생명들을 사셨으니 그 이름으로 기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 많습니다. 알아도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시 대 때도 그러했습니다. 우리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더 많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길, 그 역사가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왔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와 천국역사의 구원길로 가는 신약역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뿐 아니라 지구 세상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은 이같이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예 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고난에 참예하고 환난과 핍박에 참예하며 가는 길이 영광과 기쁨의 길입니다. 옛 날에는 모두 순교하면서 갔습니다. 지금은 고난과 고통을 받으며 희생하면서 참고 견디며 주님만 향해 가는 것이 순교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이제 모두 자기 위치로 돌아가 자기 할 일을 충성으로 하기 바랍니다. 선생도 주님이 명하신 길을 가기 바쁩니다. 각 교회 교역자들과 모든 자들은 가인과 같은 자들의 말을 듣지 말고, 오직 교단과 일체되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일체되어 자기 신앙을 충실히 해야 될 때입니다. 아무 말도 듣지 말고 오직 예수 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으며 가야 됩니다. 선생의 이름을 대며 그릇된 것을 주장하고 자기 뜻대로 설득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지 않기를 바 랍니다. 내 명예를 손상시키는 자들입니다. 나를 위하지 말고 오직 주를 위해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형제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미워하면 살인자가 되어 사망에서 마귀의 주관권에 산 다. 지금도 이 같은 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형제들을 모여들게 하여 누가 잘못했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잘못된 위선자들이다. 섭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는 자들이다. 미혹하는 자들이다. 그들을 따르지 말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섭리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사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사랑은 위선자의 사랑이므로 안 받으신 다. 그는 형제를 미워함으로 사망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욕하고 경멸하는 지도자들은 사명이 상실된 자들입니다. 회개치 않는 자는 가인 같은 자로서 악을 행하여 섭리 생명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고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미워함으로 생명을 죽인 죗값을 시대의 것까지 담당해야 됩니다.   우리 안에서 늘 평화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늘 우리끼리 싸움을 하니 우리가 기도하고 원하는 대로 안 해주시는 것입니다. 잘되려고 싸움하면 안 됩니다. 잘되려면 절대 화평해야 됩니다. 형제끼리 원수 맺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평강이 충만하여 서로 모두 화목하기를 빕니다. <2009년 2월 22일 주일말씀> 오직 독생자 예수님   본 문 요한복음 3장 16-17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독생자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모 르는 자들이 있으니 잘 인식하고 이해하고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만 인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인성이신 신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질그릇에 보화가 담겼다.」고 말했습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하늘의 사람으로서 보화입니다. 그 보화가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육신을 쓰고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의 영과 육신이 다르듯이 예수님은 세 상 사람과 다릅니다. 하늘나라는 영의 세상으로서 이 세상과 다르듯이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 다. 어떤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아이를 낳아 그 나라 국적으로 올려놓고 살면, 아이는 그 나라 사람 같지 만 실상 그 씨를 볼 때 그 나라 사람이 아니고 본국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하늘나라에서 오셔서 이 세상 에서 그와 같이 살다가 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 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나라 천국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근본을 제일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깨우쳐 다시 생각나 게도 하시고, 또 이 시대에 직접 말씀하기도 하시니 계속 들어 보기 바랍니다. 깨닫고 알고자 열심히 기 도하면 성경을 통해 깨닫게 해 주십니다.   산기슭에 물이 흐르고 포도나무가 뻗어 올라가서 잘 익은 크고도 큰 포도송이가 몇 송이 열려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옆에도 나무를 감고 올라가 포도송이가 몇 송이 크게 열려 있는데 그 열매는 아직 익지 않았 습니다. 내가 다른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이때, “왜 저 포도송이를 따 먹지 않느냐.” 하기에 쳐다보니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포도 알 하나를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산에 열린 포도는 먼저 보고 따 먹는 자가 주인이 기에 일어나 포도나무 밑에 가니 포도송이가 잡힐 정도로 손에 닿았습니다. 이때 말씀이 들려오기를 “나는 땅의 씨가 아니다. 하늘의 씨다.” 하였습니다. 내가 듣고도 무슨 말인 지 모르고 있으니 반복하여 “나는 땅의 씨가 아니다. 하늘의 씨다.”라고 들려왔습니다. 이때 비로소 ‘아,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세상 사람이 아니고 하늘의 사람이라는 말이구나.’ 하며 가슴 에 확 와 닿게 깨달아졌습니다.   ‘아! 이 포도나무 열매는 집 포도나무의 것이 아니라 산 포도나무의 것이듯이, 예수님도 세상 사람이 낳은 자가 아니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낳으신 하늘나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심을 더욱 깨닫게 하시는 구나.’ 하고 깨달아지면서 성경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 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이 성경구절이 생각나게 해 주시면서, 예수님은 세상에서 났지만 하늘나라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하 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 타내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땅에서 났지만 나는 하늘나라에서 났나니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어찌 하 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 했던 말이 생각나지 않느냐.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아브라함보다 먼저 하늘에 있었느니라.』 하고 이미 예수님이 세상에 살아 계셨을 때 하신 말씀이 떠오 르며 이같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빌립은 그 당시 예수님의 영체를 보지 못하고 육신만 보니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영의 세계에서 예수님을 보고 “그는 전지전능하신 자라.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한 말씀 이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삼위일체이며 인간으로서 삼위일체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평생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 신 말씀이 모두 떠올랐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어 누가복음 1장 26절 이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장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네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온 백성을 구 원할 자를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또 요셉에게도 나타나 “너는 마리아 데려오기 를 두려워 말라. 마리아를 통해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나니 사람이 잉태한 것이 아니로다.” 하 며 하나님이 명하신 바를 알려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을 만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하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장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이 말을 믿고 사가랴의 집에 가서 그 아내 엘리사벳에게 문안할 때 엘리사벳이 말하기를 “복중의 아이가 뛰노는지라,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 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람이 낳은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며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아담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함으로 죄의 자손을 만들었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보내시어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대속물로 드려 그를 메시아로 믿는 자는 그 핏값으로 속죄되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을 보면 형제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볼 때는 독자가 아닙니다. 이는 세 상 사람들이 따지는 혈통적인 독자가 아니고 하늘나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인 것을 더욱 말해 주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사명으로 볼 때 독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십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를 사명으 로 따지면 그 사명이 독생자와 같이 인식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볼 때도 이 같은 인식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오신 독생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인류의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아브라함·모세·이사야·에스겔·다니엘 등 각 시대의 중심인물이나 선지자들은 땅에서 난 자들입니다. 모 세는 구약의 메시아가 아니라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자기 백성을 이끌어 육적인 구원을 받게 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의 독생자, 메시아가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선지자·사도·사사·목사·교사들로서 그때그때 쓰임을 받는 예수님의 사역자들입니 다. 예수님이 이들과 함께하여 예수님의 일을 하니 상징적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이에 사람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사명을 하여도 예수님의 사역자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통해 다 행하시나, 예수님의 뜻을 얼마나 알고 행하느냐에 따라 더욱 함께하시며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삼위일체로서, 만왕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재하십니 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너희가 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고 따르면 나의 제 자요, 혹은 형제요, 혹은 친구요, 혹은 하늘의 백성이요, 혹은 나의 신부로다.” 하시며 여러 가지 입장 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땅의 씨가 아니다. 하늘의 씨다. 세상 사람들처럼 땅의 순리대로 사람이 낳듯 낳은 것 이 아니니, 하나님이 죄 없는 자를 죄 있는 자같이 보내어 그들의 죄를 대신하게 하여 세상을 구원하게 하신 것이다. 모두 내가 한 말을 다시 인식하고 깨닫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모두 읽어 보겠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육신을 입고 나타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니 영광이요 진리요 은혜이며, 독생자의 영광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시대 종의 역사가 끝나고 아무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조건을 세우거나 충성하지 못하여 아 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나 충성이 필요 없이 본래부터 하나님의 품속에서 난 하나님의 아들입니 다. 조건을 세우고 충성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는 것이라면 ‘인간들도 조건을 세우고 충성하면 된 다.’는 말이 되기도 하기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약역사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따른 자들은 아들과 같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종은 아들이 하는 일을 모른다고 하시며, 육의 법 안에 갇혀 있는 자 들에게 말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충성하고 잘하면 종이 양자가 되기도 하고, 충성하면 더 좋은 직책을 받기도 합니다. 예수님 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시니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며 구세주이십니다.   요한1서 4장 15절을 보겠습니다. (요일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 에 거하느니라』 인간들의 법과 하나님의 법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이 세상에 쓸 때는 시대에 따라 차원을 높 이시고 달리하십니다. 구약시대와 예수님이 오신 후의 법이 달랐습니다. 인간의 법은 한계에 처한 법이며 하나님의 법은 무한한 법으로서, 예수님은 하늘의 법을 이 세상에서 쓰 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오셨기에 하늘의 법을 쓰고 그같이 행하면서 구원역사를 펴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한계를 정하시고 그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법은 하늘의 뜻대로 무한히 행 하게 하셨습니다.   고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서 병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들을 살려 주시고, 바다 위로 걸어 다니시고, 파도를 명하여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또 인간으로서는 죄를 사 할 수 없는데 메시아로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어 영원히 죄 없게 해 주시고, 인간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마귀와 귀신을 마음대로 주관하시고 쫓아 내주셨습니다. 또 그가 축복을 주시면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무 때든지 하나님의 뜻에 의해 행하셨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 를 저주하여 죽이시고, 물을 명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전지전능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면 모세 때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히스기야 왕 때 이스라엘 민족의 어느 한 명도 나가 싸운 자가 없는데 18만 5천 명의 대군을 하룻저녁에 성 밖에 서 멸하여 없애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만 행하시는 능력이며 하늘 법입니다.   땅에서 달리는 차들은 땅이 없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공중으로 날아다니니 땅이 없어 도 상관이 없습니다. 절벽이나 밀림의 제재를 받지 않고 상공으로 날아다니듯이 하나님의 법은 이 세상 의 법과 달리 제재도 받지 않으며, 그 차원도 수억만 배 다릅니다. 하늘나라의 영들은 이 세상까지 순간 이동하여 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역자로서 우주를 지나 이 세상을 매일 왔다 갔다 합니다.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빛으로 가도 150억 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하늘의 법과 하늘의 영들이 행하는 것은 인간들은 배우지 않으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식하듯이 하면 성경을 천 번 읽어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의 능력과 신의 능력으로 행하셨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도 사람들이 사명을 받고 자기 능력으로 스스로 하는 것 같아도 영의 눈을 떠서 보면 예수님이 다 행하시어 고쳐 주십니다. 만일 사람이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병든 자들을 보고 불쌍해서 다 손대어 고쳐 줄 것 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모두 행하시는 것입니다. 뜻도 보시고, 믿음도 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지 보시고, 때와 시기를 따라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100% 예수님이 행하십니다. 천사들은 시중을 들어 줍니다. 인간은 예수님이 행하실 것을 절대 믿고 간절히 기도해 주는 것뿐입니다. 병을 고 쳐 주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일도 그러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어도 영적인 소경이니 보이는 자만 중심하여 기도 해준 사람에게만 감사하다 고 하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제부터 각자 주님께 기도하여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예수님이 보이지 않지만 직접 손대어 고쳐 주심을 알고 고쳐 달라고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병을 고쳐 달라는 간구뿐 아니 라 모든 일도 그와 같이 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원하고 간구하는 대상체입니다. 보는 것만 중심하는 자는 육적인 신앙인입니다. 기도는 늘 해주 니 여러분들이 직접 예수님께 기도하여 고쳐 달라고 해야 됩니다. 무엇을 해 달라고 해야 됩니다. 사람 만 의지하면 될 것도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알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하면 속는 것이고, 더 은혜를 받지 못하 는 것입니다.   월명동 운동장에 세워 놓은 돌도 어디서, 어떻게, 어떤 사연으로 가져온 것인지 모르면 알지 못하는 자 가 전하여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사연으로 돌을 가지고 왔다고 하는 말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동네논 에서 주인이 주어 빼 온 것을 확실히 알면 누가 달리 말할 때 올바로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독생자이심을 그저 막연히 알기만 해서는, 잘 모르는 자들이 이상하게 말하면 그 말을 믿고 신 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여 그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고 예수 님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형제나 자녀 취급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절대 근본으로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수많은 말씀 가운데 이 말씀도 기록했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삼위일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삼위일체가 되십니다. 땅의 인간들과 상관없 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를 더욱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라는 성경의 한마디 말씀을 통해 다시 완전히 인식 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나는 땅의 씨가 아니다. 하늘의 씨다.” 하시면서 “이 말씀을 너희들 각자에게 해 주 는 말씀으로 알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왔고 인간처럼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알라.”고 했습니다. 이를 알고 기도해야 성경대로 예수님이 더욱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마귀 가 빼앗아 갑니다. 깨닫는 것이 큰일입니다. 믿습니까? 이제 알겠지요?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고 했습니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예수님이 이 세상 사람처럼 여자의 몸을 통해 태어났기에 예수님을 세상 사람과 같이 인식하고 있는 자 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극에서 주역을 맡아 영어도 유창하게 하고 한국말도 유창하게 하면서 연기를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 사람으로 분장을 한 외국 사람이었습니 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의 몸을 통해 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 이 세상 사람처럼 땅에 있지 않으시고, 그 영이 본국 인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나에게 다시 보여 주시어 자세히 보았는데 이 세상사람 같지 않게 그 얼굴 이 빛났습니다. 그 입은 옷을 보니 세상의 옷을 입지 않고 빛나고 찬란한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 모 습으로 손을 흔들면서 “내가 또 온다.”고 하시며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오셨던 하늘 나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20대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전도하고 가르치면서 지금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열심히 하늘의 일을 해 온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셔서 이같이 많이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전도할 때도 예수님이 늘 함 께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늘 함께한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와 늘 함께하십니다.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그 아들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와, 독생자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아멘. <2009년 2월 25일 수요말씀> 오직 독생자 예수님   본 문 마태복음 24장 29-31절, 37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고린도전서 15장 47-56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그동안 말씀한 것과,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께 듣는 자들의 머릿속에 말씀이 잘 들어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성경에서 내가 설교하고 말씀했듯이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를 많이 읽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 또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과 이야기를 해 주면 사과 이야기만 해야지, 다른 과일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시면서 “그날 계시한 말 씀은 한 가지니 내가 말한 말씀만 해야 머릿속에 쏙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짝 지어 나간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짝을 지어 나간다는 말은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항상 짝을 지어 나간 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4복음서를 읽어 보니 정말 그러했습니다. 단상에 서는 목회자들이나 가르치는 자 들과 지도자들도 이같이 해야 됩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여러 가지를 말하면, 듣는 자의 머릿 속에 잘 들어가지도 않고 잘 기억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불필요하게 여러 가지를 말하는 것을 정말 안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구절은 너무 많으니 모두 집에 가서 찾아 읽어보기 바랍니다. 신학생들도 설 교를 들으면 집에 가서 성경을 많이 찾아보고 연구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2000년 동안 우리 가운데 영으로 왔다 갔다 하시며 역사하신 예수님을 우리는 맞 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땅에서 말씀을 통해 이루는 휴 거가 아니라, 지금 말씀하시는 마지막 공중 휴거, 재림에 대해서는 그 날과 그 시를 아무도 알지 못합니 다. 그러므로 섭리사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 빛 가운데 살라고 그동안 가르쳐 왔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실 때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한다고 했습니 다. 또 나팔소리가 날 때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2000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 살다가 죽은 자들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자들과 환난과 핍박을 받으 면서도 마귀들과 악한 자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들과 마귀에게 짐승의 인 666을 맞지 아니 한 자들입니다.   <재림과 휴거에 대한 이해> 오늘 본문 말씀에도 나오듯이 말씀을 듣고 변화하라고 했습니다. 금년도에 예수님은 “너희는 말씀을 듣 고 새롭게 생각하고 다 변화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와 소홀히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임박하게 앞두고도 변화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올해 말씀의 총 제목은 「새롭게 변화하라」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은밀히 말합니다. 그동 안 우리가 배워 온 일반적인 재림은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에 대해 잠자는 자를 깨워 주기 위한 것이었습 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부활이고, 혹은 거듭난 것이며, 혹은 구원이며, 혹은 지구 공중에서 맞는 하나 의 휴거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구약에 비해 신약인들은 모두 거듭난 자들이고 구원받은 자들이며 부활된 자들이고 휴거된 자들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이 휴거는 천사장이 나팔을 불며 예수님이 마지막 공중 재림하실 때의 휴거는 아 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영과 함께 지상에서 이루는 휴거요 부활이요 거듭남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지상에서 육신을 가진 자의 마음천국과 삶의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으면 부 활하리라. 무덤에서 살아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24-29). 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 말을 믿고 거듭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1-15). 이를 볼 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하나의 휴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2000년 동안 신약역사는 땅에서 휴거를 해 왔고, 구원을 이루어 왔고, 거듭나 왔고, 부활되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시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도 부활 되고 거듭나 예수님과 함께 공중으로 올라가 거기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했습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부는 것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할 일이고,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으니 잘못 가르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많은 말씀을 하지 않고 오직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을 맞기 위해 깨어 있으라고만 했습니다. 산에서 기도생활을 할 때 예수님은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내가 다시 온다.”고 하셨기에 예 수님의 마지막 재림 때는 이와 같이 온다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공중 휴거는 예수님이 오시면 지구 공중에서 육신이 산 채로 올라가지 않고 영으로 휴거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 다 나온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육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고 했습 니다(고전 15:50). 이미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영적 부활을 말했고,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영과 육이 사망권에서 나오는 거듭나는 부활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2000년 동안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자들이 영적으로 부활되어 그 영들이 살아나고, 또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도 주를 맞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예수님과 천 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구 공중이 아닙니다. 대기권 안에 오염된 이 지구 주관권에 속 한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세계를 보고 셋째 하늘에 있는 천국에 대한 말을 했습니다(고후 12:1-4). 그곳은 하 나님이 살고 계시는 나라입니다. 우주 안에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우주 바깥의 세계입니다. 첫째 하늘 은 ‘지구’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음천국과 복음의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하늘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둘째 하늘의 천국에 대하여 예수님께 물으니,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맞고 휴거되어 거기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이라고 했던 곳이 우주 안에 있는 천국, 즉 둘째 하늘의 천국이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정말 신기하고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도 알고자 했는데 다만 지구 공중이 아니라고만 가르 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마지막 재림의 때 휴거란, 사람의 육이 휴거되어 지구 공중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때가 되니 그곳이 둘째 하늘, 곧 우주의 천국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모두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가 쓴 ‘정말로 천국은 있습니다’라는 책을 보면, 둘째 하늘 공중에 천국이 있다 고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시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어 쓴 것입니다.   우리는 특히 지난 30년 동안 예수님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섬기며 신부로서 단장하는 신앙을 가르쳐 왔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실상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의 때를 전초해오고 준비 해왔던 것입니다. 다른 어떤 종교인들은 재림주가 왔다고 하며 그를 따라가 역사를 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믿고 따르며 흔들림 없이 예수님의 신부들로서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정말 꼭 붙잡아주셨기에 그들 에게 딸려 가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산에 있을 때도 예수님은 많이 나타나시어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승천 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보이시면서 “내가 또 이렇게 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재림에 대해 잠을 자지 않고 귀를 기울여 왔습니다. 예수님이 사명자들을 통 해 말씀하신 것을 배우고 늘 전했습니다. 또 그동안 사람들이 메시아가 왔다고 했어도 구경하러 가지도 말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잡아 주어 다른 종교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재림에 대하여는 그 날과 그 시를 아무도 알지 못하니 그동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사도 시대에도 예수님이 곧 오신다, 속히 오신다고 하였는데 그 말씀은 무슨 뜻이었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2000년 동안 늘 개인에게 나타나 역사하고, 대 집회를 할 때도 와서 역사하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재림 때만 기다리지 말고 준비하고 예비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흠 없이 깨끗하게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날과 그 시는 모르지만 재림이 얼마나 가까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미 말씀에도 나갔지만 해산하는 여자가 마지막 진통을 할 때와 같이 가까웠고, 타국에 있는 자가 온 다고 하여 전화를 해 보니 이미 출발하여 전화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이 가까웠고, 밤길에 보이지는 않지 만 인기척이 나듯이 가까웠다. 이제 말로는 더 가까웠다고 표현할 수 없이 가까웠다. 재림의 재난과 환 난이 이미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번개가 쳤을 때는 이미 너 있는 곳에도 빛이 온 것을 알아라. 소리만 조금 늦게 들릴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빛에 있는 자에게는 그 날이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살전 5:4). 고로 예수님이 말씀하시어 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나에게 책 한 권을 주었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제목의 책으로 겉표지에 ‘토마스 주남 씀’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책을 밤새도록 읽어보았습니다.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썼기에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 이 내게 깨우쳐 주신 말씀이 이 책에 많이 나와 있다고 하며, 이 책이 너무 좋으니 모두에게 성경과 같 이 가르쳐도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슴 뜨겁게 이같이 깨우쳐 주셨습니다. “네가 10년 전에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내게 말했을 때, 내가 쓰고 있으니 쓰지 말고 쓰려거든 구원에 대하여 글을 쓰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쓰고 있다고 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를 깨닫고 너무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읽어 보 라고 말씀하셨기에 계속 읽어 보고, 곧바로 여러분들에게도 이 책을 사 보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주남이 쓴 책뿐만 아니라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가 쓴 책도 보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어 이에 눈을 떠 보라고 한 것입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을 보니 이미 1996년부터 7년 동안 예수님이 직접 천국을 보여 주시며 쓰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예 수님이 직접 자세하게 보여 주시고 하나하나 확인하시면서 쓰게 하였기에 확실하고도 자세하게 나와 있 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성경에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2절에 예수 님이 「내가 땅에 있는 것을 말하여도 안 믿는데 하늘에 있는 것을 말하면 믿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을 보면 첫째, 천국은 실제로 있다. 둘째, 지옥은 있다. 셋째,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섭리의 목사들도 이 책을 소설책 읽듯이 한 번 읽고 만다고 예수님은 지적하셨습니다. “성경도 깊이 읽지 않고, 너희는 나에 대한 인식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며 책망하셨습니다. 고로 다 시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재림을 준비하라고 예수님이 사람을 통해 쓰신 책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하여 자세히 썼 으니 가지 말아라. 또 천국이 이같이 있으니 잘 믿고 오라. 내가 곧 간다.」고 하셨습니다. 또 “마지막 으로 린다를 통해 전한 말을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니 심정 깊이 읽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 다.   예수님은 “지옥과 천국에 대해 확실히 가르쳐 주면서 심정 태우며 내가 곧 재림하니 빨리 준비하라고 했는데도 지도자들이 너무 관심이 없구나. 그러니 대충 읽다가 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음이 너무 상했 다.”고 했습니다. 이에 나는 이 죄인이 문제이니 용서해 달라고 하며 깊은 사연의 기도를 했고 회개를 했습니다. 기도 중 에도 예수님은 모두 정신들이 빠져 살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상하게 한 일들을 모 두 회개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영이 살아 있으면 충격을 받고 깨달아 변화가 일어납니다. 육적인 자들이기에 그러합니다. 한 사람을 만나서 말씀 을 전하더라도 육적인 자가 하면 안 됩니다. 영이 살아 있어 정말로 변화를 받은 자가 말씀을 전해야 됩 니다. 고로 아무나 말씀을 전하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신학도 개강을 중지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이 책을 읽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교단도 소식이 없습니다. 이 책을 특별히 읽고 가 르쳐 줘야 됩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늘 백성에서 끊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선지자들이 본 것이 환상이나 이상을 본 것 같은데 어떤 것이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너희가 볼 때는 환상같이 보이지만 가서 만져 보면 실체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밤에 보니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서 있는 자가 있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 와 백마가 있기로 이들이 무엇이냐고 천사에게 물으니, 하나님께서 이 땅이 평안한지 살피라고 보내신 자들이라고 했습니다(슥1:8-11).그들은 하늘에서 온 사자와 말이었습니다.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나 라에 존재하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하늘나라에는 백마, 홍마, 청마, 자마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예전부터 영들을 만져 보면 살도 만져지고 다 만져진다고 늘 가르쳐 주었지만 여러분들은 영계를 가지 못하니 모두 아리송하게 생각했습니다. 영들은 키가 큽니다. 천사들도 너무 큽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간혹 말해 왔지만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보이는 사람만 중심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 동안 사람의 육신을 쓰고 나타나 역사하신 예수님만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각종 사명자들과 부흥강사들을 쓰고 늘 나타나 일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목사나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을 쓰고 역사하시지만 그 사람이 예수님 은 아니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님보다 사람을 더 중심하면 우상을 섬기는 것이고, 인간을 신격화 하는 것입니다.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가 쓴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라는 책도 2002년도에 섭리 사람들이 많이 보고 너 무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잘 보고 간증하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자들이 영적인 성장을 하려면 영적 인 말씀을 많이 읽어 봐야 하고, 영적 사명자들이 쓴 글들을 많이 읽어 봐야 합니다. 30개론도 이제 말씀으로 나가니 단상의 말씀을 중심해야 됩니다. 금년도 주제처럼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해야 변화가 일어나 예수의 재림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지도자들과 오래된 자들 중에 말씀을 깊이 안 보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자들은 변화가 없습니다. 지극히 육적인 자들로서 영이 살았다 하나 죽 은 자들이기에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보낸 마지막 선지자를 통해 한 말을 모두에게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린다 뉴커크와 토마 스 주남을 통해 예수님이 재림하여 오셔서 어떤 자를 신부로 데려가 휴거시키시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재 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듣고 복사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여러 번 읽고 자신이 예수님의 어느 법에 걸리는지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하신 말씀을 듣겠습니다. (‘린다 뉴커크’가 말한 28개 항목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가세요. <2009년 3월 1일 주일말씀> 기름을 준비하여라   본 문 마태복음 25장1-13절   주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어떻게 하여야 예수님이 하시는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을 마음 깊이 잘 듣고, 감동되어 행할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육에 속하고 세상에 속하여 사는 자는 아무리 긴박한 말씀과 좋은 말씀을 해 주어도 그 말씀이 마음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영에 속 하고 나 예수에게 속한 자는 늘 기도하고 구하여 영적인 자가 됨으로 말씀을 잘 듣고 귀를 기울이기에 말씀이 깊이 들려 성령에 감동되어 실천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많이 배워 알라고 많이 가르쳐 주면 어떤 것이 그날 말씀하신 계시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 가지만 가르쳐 주고 끝날 것이니 이제는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야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이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을 수 있는지 자세히 말씀해 줄 것이니 잘 들 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열 명의 처녀들이 신랑을 맞기 위해 기다렸는데 다섯 명은 맞고, 나머지 다섯 명은 미 련하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맞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실상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준비하면 맞을 수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재림을 맞지 못하게 됩니다. 기다리던 신부가 신랑을 맞지 못하면 버림을 받고 인생이 슬픔으 로 끝나고 말게 되듯이,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주님을 맞고 모시지 못하면 육과 영혼이 영원히 슬픔으 로 끝나고 말게 됩니다.   세상에서 신랑이 신부를 맞고 신부가 신랑을 맞고 살면 육신이 죽을 때까지 갖가지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한평생 살게 됩니다. 주님을 맞고 살게 되면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이 영원토록 하늘나라 천국에서 살 게 됩니다. 하늘나라는 공기로 호흡하지 않습니다. 영의 몸이기에 공기와 상관없이 살고, 그 어떤 것도 썩는 것이 없고 죽는 것도 없습니다. 나무나 생물들도 죽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창조한 육신 세상으로서 자기 영과 함께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성장하 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 천국을 모르고 하나님과 예수님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세상에서 끝나 고 마는 이 세상이 마치 천국이나 되는 것처럼 전부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해 놓고 살아도, 아무리 자기가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을 누리며 원하는 대로 살아도 이 세상 은 천국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고 했습니 다. 곧 하늘나라를 보고 말한 것입니다. 자, 이제 본문에 나온 주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복음을 전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4000년 동안 너희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선지자 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 주 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들은 마치 열 명의 처녀들과 같다고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은 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나머지 미련한 다섯 처녀처 럼 메시아를 기다리기는 했는데 맞지 못했습니다. 특히 구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그릇된 사고와 교만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이단시하고 죄인이다, 혹은 적 그리스도다, 혹은 사람이 무슨 인간을 구원시킬 수 있느냐, 혹은 그렇다면 네가 하늘에서 왔다고 하는 것이냐 하면서 예수님을 맞지 못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못 맞은 자들입니다. 기름은 성령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을 보면, 성령을 기름 붓듯이 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신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는 신랑 되시는 주님을 맞았습니다. 지극히 육적으로 생각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사도 요한, 사도 바울 등 많은 제자들과 그 시대 신앙생활을 하지 않던 이방인들은 예 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이 맞다.”고 하며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고 착하게 산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죄도 회개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신, 성령이 함께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으 니 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그리하 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못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물이었습니다. 구시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불신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로 물 로 거듭날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먼저 물로 거듭남을 받고, 또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 주님은 말씀의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꿈에 계시로 보일 때도 말씀을 들으면 목 욕하는 것이나 폭포수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거듭나야 됩니다.   그 시대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또 회개하고, 형제들 을 서로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어린아이같이 따라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성령 을 기름 붓듯 해 주심으로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 당세에 이 비유의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 깨달았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보이셨고 사람 들도 그 모습을 다 보았지만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니 성령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영의 눈과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여 믿지 못한 것입니다.   또 이어지는 말씀을 듣겠습니다. 2000년 동안 신약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회개하고 서로 화평케 하며 살았습 니다. 예수님께 순종한 자들에게는 성령이 물 붓듯이 역사해 주셨고, 예수님의 말씀은 물과 같이 역사했습니 다. 고로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맞고 신부로서 신랑을 맞은 다섯 처녀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 님을 믿어도 제대로 믿지 못하고 형식으로 믿는 자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미련하여 신 랑을 맞지 못한 나머지 다섯 처녀와 같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대마다 사역자로 보낸 자들을 통해 주님을 맞게 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예수님이 사람을 통해 행하시는 것을 모르고 유대인들처럼 또 거부하고 불신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우리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나타나셨지만 그들은 외면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시어 우리를 통해 복음을 전했지만 역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물과 성령 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갖은 핍박을 받으며 나를 따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모두 잘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5장 5절에 신랑이 더디 오니 모두 졸고 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 예수님이 오신다고 말씀하신 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부터 역사를 펴 오시 면서 지금까지 계속 예수님을 맞는 역사를 해 왔습니다. 현 시대까지 해 왔습니다.   꼭 마지막 재림만 기다리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인생은 자기 사는 기간이 있으므로 자기가 이 땅에서 사는 기간 안에 신앙의 처녀들로서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이 기간은 우리가 생각 하는 것만큼 길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부지런히 행하며 살아도 부족합니다. 2000년 동안 각 시대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고 죽은 자들은 영계에서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에 예수 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 주님을 맞기 위해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 림하실 때 천사장이 나팔만 불면 이들은 다 일어나 부활이 됩니다. 특히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한 자들과, 우상을 절대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자들과, 환난과 핍박에 굴하 지 않은 자와, 마귀에게 굴하지 않은 자와, 충성한 자들의 영이 부활됩니다.   이들이 먼저 부활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맞게 됩니다. 이 공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중이 아니고 예수님 이 예비하신, 본래 존재하는 둘째 하늘의 공중 천국입니다. 이곳은 우주 안에 있는 천국으로서 여기서 천 년 동안 주님과 함께 혼인 잔치를 하게 됩니다(계 20:4-5).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재림을 맞고 살았던 자들도 열 처녀 중 다섯 처녀와 같이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 주님을 맞고 재림 때 휴거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혈과 육은 하늘 나라에 가지 못한다고 했으니 역시 영이 변화되어 휴거됩니다.   미련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지 못한 자들은 지상에 남아 환난과 마귀들 속에 살아야 됩니다. 성 경말씀대로 천 년이 다 차도록 영이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2000년 동안 예 수님의 마지막 재림 때까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지 못하고 기다리는 기간과 같습니다. 깨닫겠어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열 처녀 모두 신랑을 맞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모두 신랑이 온 것은 보았는데 다 맞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 의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첫째, 그 시대에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 신은 일체이시므로 성령을 받은 자는 성자가 온 것을 성령으로 알게 됩니다. 고로 주님이 도적같이 오셔 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재림 시대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메시아로 시인해야 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진정으로 슬피 울며 자기 지은 죄를 깊이 회 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형제들과 화해하고 화평하며 주의 말씀에 충성하며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임박하게 앞두고 선지자 토마스 주남을 통해 쓴 글과 사명자 린다를 통해 전한 말씀대 로 자기에게 특히 해당되는 것을 회개하고 행해야 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회개할 것이 다 나와 있 지만 범위가 넓어서 외우기 힘듭니다. 린다를 통한 말씀은 이 시대 사람들이 재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간단하게 전한 말씀이니, 복사해 놓고 잊지 말고 그대로 기도하며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에게도 “내가 한 말이니 이대로 꼭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속히 전해 주 라.”고 하여 전해 준 것입니다. 이같이 하면 물 붓듯 부으시는 성령의 기름을 받아 이 시대에 신부들로 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게 됩니다. 우리 섭리사는 지난 30년 동안 깨어 있는 신앙을 해 왔기에 그날이 도 적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자들이 신랑이 늦게 오니 졸고 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마치 먼 길 간다고 새벽 일찍 깨워 놓았을 때, 순간 바로 안 가면 또 잠을 자는 격과 같습니다. 일찍 깨운 자는 그만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새벽 3시와 4시부터 일찍 깨운 자는 부엌에 나가서 밥을 하고 짐을 싸는 일을 해야 되 기 때문입니다. 늦게 깨운 자는 옷 입고 자기 짐 챙기고 따라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주님이 오신다고 30년 전부터 외쳤습니다. 우리는 이제 듣고 외칩니다. 만일 선생도 30년 전부 터 재림에 대하여 마음 설레게 외쳤으면 모두 거기에 몰두하느라 섭리역사를 이같이 키우지 못했을 것입 니다. 주님은 재림에 대해 외치지 못하게 하시고, 영과 육의 준비로 공적을 세우고 전도만 하게 하셨습니다. 신약 때 오신 초림주도 제대로 맞지 못하고 어떻게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먼저 나 를 맞는 일을 하라.”고 예수님이 나를 가르쳐 주시어 여러분들을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먼저 이 세상에 살면서 생활 가운데 예수님을 맞고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마지막 주의 재림을 맞을 수 있습니다. 먼저 삶 속에 변화가 일어나고 마음과 행실이 변화된 자가 깨어 주의 재림을 맞을 수 있습니 다. 여러분들이 먼저 행하고 그같이 가르쳐 줘야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일찍 들은 자들은 졸고 자고 있습니다. 늦게 들은 자들은 이제 더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그대로 준비하여 예수님을 맞으면 됩니다. 잠도 일찍 깼을 때 할 일을 안 하면 졸고 또 자게 됩 니다. 섭리역사는 지난 30년 동안 환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가정과 민족에서, 또 종교적으로 모진 핍박들을 당함으로 신앙의 잠을 잘 틈이 없었습니다. 맞지요? 고난으로 인하여, 세상이 버림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더 찾게 되고 하나님을 더 찾고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금 년도 말씀과 같이 새롭게 속히 변화해야 됩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 방은 자기가 깨끗이 청소해야 됩니다. 방 청소, 부엌 청소, 응 접실 청소, 화장실 청소, 정원 청소가 각각 다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몸을 씻어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 고, 옷을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고, 마음을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고, 행실을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고, 입과 말을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고, 눈이 제대로 보는 것이 다르고, 귀가 제대로 듣는 것이 다르고, 입 이 제대로 전하는 것이 다릅니다. 회개도 분명 마음 회개가 다르고, 행실 회개가 다르고, 영적 회개가 다르고, 형제들과 맺힌 것을 푸는 회개가 다르고, 민족 회개가 다르고, 섭리사 회개가 다릅니다.   자기가 지은 죄는 진정 회개한 것만 없어집니다. 그러나 육적으로 생각하면 생각나지 않습니다. 깨닫고 슬피 울며 통회 자복해야 알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에 깊이 들어가서 하나하나 회개하는 것이라고 했습 니다. 회개되었는지는 예수님이 깨닫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었어도 깨끗이 씻지 않으면 몸은 더러운 것입니다. 그러니 각 항목마다 조목조목 깨끗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정결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절대 신부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마지막 재림을 맞기 위해 지난 30년 동안 육신이 영과 함께 지구 라는 공중에서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펴 온 구원역사를 더욱 새로운 차원으로 하면서 왔다. 곧 이같 이 해 온 것이 아니냐. 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른 것이 구원이요 부활이요 거듭난 것이요 하나의 휴거 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이 지구 공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펼쳐져 왔습니다. 또 우리 섭리사는 주를 믿고 이 세상에서 구원받고 거듭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이를 더욱 확실하게 전해 왔습니다.   이제는 오늘 말씀과 같이 마지막 약속대로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을 맞는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해 재림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듯이, 말씀을 듣고 물로 거듭나고 회개함으로 물 붓듯 부으시는 성령의 기름을 받고 주님을 맞아야 됩니다. 깨끗해야 하나님의 거룩한 신이 임합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 앞에 인도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온전히 깨닫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에 발맞추 어 가야 됩니다. 기도 중에 보니, 밭에는 밀과 보리가 있는데 푸른 빛과 노란 빛이 섞여 익어 가고 있었고 논에는 벼가 무성하게 자랐으나 이삭들이 다 못 커서 작았습니다. 모두 지금의 광경을 보여 준 것입니다. 교역자들과 지도자들이 더욱 힘써 기도하고 열심히 해야 됩니다.   섭리에서 순수한 자들은 밭의 밀과 보리처럼 무르익어 가고 있으나 오래된 자들이 오히려 벼는 컸는데 벼 이삭들이 무르익지 못하고 이제야 이삭이 올라오는 것도 많았습니다. 빨리 깨닫고 어린아이와 같이 행해야 됩니다. 변화에 발맞춰야 됩니다. 말씀에 따라 호흡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따라 행해야 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자는 마귀의 유혹을 받기 때 문입니다.   주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기름 부음이 이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강림 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자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3월 4일 수요말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본 문 마태복음 25장 13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지난 주일에는 열 처녀에 비유하여 재림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 하여 신랑을 맞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모두 잘 들었지요?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는 주님을 맞는 자로서 정말 꼭 필요한 말씀이니 깨닫게 해 주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흔히 잠에서 깨어 있으라고 할 때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인들은 신앙의 잠을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근본은 예수님을 맞는 데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도 깨어 있어야 신랑을 맞는다고 결론지어 말씀했고, 깨어 있어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수 있다고 결론적으로 묵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잘 들어 봐요. 그동안 예수님은 선생을 통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며 여러분들이 신앙의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게 해 왔습니다. 그래도 신앙의 잠을 자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깨어 있으라.”는 말 씀만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늘 “내가 말한 것을 풀어 속 시원히 말해 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만 믿고 신앙생활만 한 다고 해서 깨어 있는 자가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깨어서 날마다 거기 해당되는 행실을 하면서 사는 자’가 깨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12절까지는 신랑을 맞기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는 신부에 대해 말씀하면서 13절에는 깨 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했으면서 마지막 한 가지, 신랑이 온 것은 보았는데 기름을 준비하 지 못하여 맞지를 못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도 직접 복음을 전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았어도 맞지 못했습니 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했으며 이방인들도 예수님에 대하여 소문을 듣고 얼굴 을 보기도 했지만, 깨어 있지 못하여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지도 않고 그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에 대하여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구시대에 매여서 신앙의 잠과 자기 주관의 잠에서 깨어 나지 못했습니다. 형식과 외식과 온전치 못한 교리로 인하여 신앙의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새롭게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으니 변화를 받지 못했고 예수님에 대하여 깨 어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외친 대로 회개한 자들은 물 같은 말씀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영이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들도 말씀을 듣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육이 태어나 듯이 영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이 변하여 새 영이 되는 것입니다. 믿고 행하며 따라야 거듭나고 부활됩니다.   지금까지 2000년 동안 메시아에 대하여 깨어 있는 자만 주님을 맞았습니다. 말만 깨어 있으면 안 됩니 다. 거기에 대해 목숨을 다해 몰두하는 자가 깨어 있는 자입니다. 주를 믿고 신앙생활만 한다고 해서 깨 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영적인 현상을 보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계 3:1)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 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주로, 자신을 통치하는 왕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과 삼위일체의 존재자 로 믿고 예수님과 일체되어 살면서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사는 자가 깨어 있는 자 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주이십니다. 나머지는 주를 믿게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선지자, 사도, 사 사, 중심인물들이 곧 주를 믿게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신앙으로 깨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자들을 근본적으 로 깨어 있다고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마 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완전하고 온전하게 주님을 최고로 생각하고, 삶을 주님께 맡기고 자기를 중심하며 살지 않고 주 뜻대로 만 사는 삶이 근본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삶과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란, 세상 누구보다 주님을 중심한 삶을 말합니다. 누구보다도 주님을 가장 근본으로 놓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중히 여기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오직 주님만 위해 사는 삶을 말합니다. 선생이 늘 가르쳐 준 대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과 주님만 사랑하며 살고 형제들에게도 그같이 대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곧 오시는 재림에 대해 온전히 깨어 있는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깨어 있는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섭리사는 선생부터 시작하여 특별히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모시는 삶에 몰두하여 살아왔습니다. 그 러므로 더욱 주님을 맞아야 됩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사명자를 통해 말씀한 것들(28개 항목)을 말씀 중에 전해 주었지요? 하나하나 듣고, 복사하고, 기록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각자에게 한 말이니 꼭 행하라고 했습니 다. 모두 수시로 보면서 하나하나 회개하고, 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야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생명과 바꿀 수 없는 말씀입니다. 정신 차리고 긴장하며 깜짝 놀라 주를 대하는 것이 모든 자의 도리입니다. 선생이 말해도 이제 긴장도 안 합니다. 예수님의 심부름꾼의 말을 안 들으면 그를 보내 주신 주님의 말씀도 안 듣는 자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는 자만 그 말씀(28개 항목)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지난 30년 동안 예수님께서 선생을 통해 가르 쳐 오고 성경 여기저기에 나온 말씀을 집중적으로 요약하여 한눈에 보이도록 주님이 사명자를 통해 새롭 게 전해 주신 말씀입니다. 긴장하고 정신 차려 잘 보고 하나하나 회개하여 마지막 재림을 준비하라고 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풀어 줄 때 빨리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 다음 말씀을 하면 깨닫고 속 시원히 행할 수가 있 습니다. 가물 때 물을 주면 그 순간 빨리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육적인 자는 선생이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전해 주어도 빨리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동안 신앙의 잠을 자고 육적인 신앙생활을 해 왔 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육적인 것이 무엇이고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됩니다. 영에 속한 자는 신령한 자로서 예수님과 일 체된 자입니다. 육에 속한 자는 세상과 보이는 사람을 중심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항상 영이시니 우리가 잘 볼 수 없습니다. 보이는 사명자와 사역자들을 통해 행하십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나 사명자가 아니 면 나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할 길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명을 주어 행하는 자라도 예수님에 대하여 깨어 있지 않고 항상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놓는 생각이 깨어 있지 않으면 제 스스로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님이 행하신 것을 아는 자는 주님에 대하 여 깨어 있는 자입니다. 선생의 시에서도 늘 말했듯이 주님이 오셨다 가셔도 모릅니다. 영의 눈을 떠서 보면 매사에 주님이 행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감동되게 하여 주님의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지난주에는 교역자들이 모여 말씀을 듣고 회개기도 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그중에 여자 목사님 한 분이 교역자 모임을 오는 길에 순간 영의 눈을 떠서 보았는데, 사람들이 모여 회개기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이 오셔서 한 사람씩 손도 잡아 주시고 안아 주시며 은혜를 주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나, 혹은 몇 사람의 사명자에게 보여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전체에게 말하여 깨우쳐 주라고, 보여 주고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 다.   예수님을 믿는 온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말씀하실 때도 사명자나 선지자들에게만 재림에 대하여 보여 주 시고 깨우쳐 주신 후에 그들로 전체에게 외치게 하십니다. 온 세계 모든 자들에게 일일이 다 보여 주지 않으시고, 사명자들에게만 보이고 깨우쳐 주어 사명자들을 통해 듣게 하십니다. 사람에게 많은 지체가 있지만 눈으로만 보고 전달하여 온 지체가 알게 되고, 혹은 머리로 깨닫고 외쳐 온 지체가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온 지체 중에 눈이나 마음과 같은 사명을 하는 자를 깨닫게 하여 외치게 함으로 온 지체가 알고 행하게 하십니다.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 놓고, 주님은 지켜보십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지요? 그러 므로 깨어 있어 듣고 순종하라. 주님이 자기에게 특별히 보여 주신 것은 전체에게 말해 주라고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자기만 보고 말라고 보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본 자가 사명자이니 실감나게 외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 자의 책임분담 입니다. 선생도 이 일에 책임자이니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잘 듣고 깨달아 본래대로 외쳐 주는 것입니 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오늘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깨닫고 알게 해 주고 있으니 잘 듣기 바랍니다. 깨어 있는 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해야 실감나고, 능력 있고, 생명력 있고, 가슴에 와 닿게 사실적으로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주님께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 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자. 결혼에 깨어 있는 것이란, 결혼에 대해서만 밤낮으로 생각하고 매일 결혼할 대상만 생각하며 매일 결혼에 해당되는 것만 준비하고 행하는 일이다. 이것이 결혼에 대해 깨어 있는 자다. 이와 같이 나의 재림에 깨어 있는 자는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까지 지금부터 재림을 매 일 생각하고, 주 예수만 그리워하고, 기도하고, 외치고, 성경 보고, 매일 재림에 해당되는 말씀을 듣고 소식을 듣고 깨끗이 사는 자다.”   깨어 있는 자란 무엇인지 더욱 깨닫고 알았을 것입니다. 섭리사 각 분야에 해당되는 대로 거기 깨어 있 어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실수 없이 하게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자니 공부하는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시험공부에 깨어 있어야 시 험에 들지 않고 제대로 공부하여 합격 합니다. 일반 공부는 학생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일반 공 부만 해서는 시험에 깨어 있는 자가 아닙니다. 운전하는 자는 운전을 하되, 특별히 사고에 깨어 있어야 사고 나서 다치지 않고 안타깝게 죽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삶에 늘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자기 집에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니 손님에 대하여 깨어 있어야 천사 같은 귀한 손님을 알고 맞게 됩니 다. 모르면 언제 왔다 갔는지 모릅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너희 집에도 귀한 사람이 왔다 갔지?” “아니. 안 왔다 갔는데...” “우리 집에도 왔다 갔으니 너희 집에도 안 갔을 리가 없는데...” “아! 며칠 전에 길에서 누구를 만나기는 했어. 그 사람이 무슨 손님이야. 그냥 아는 정도의 사람이 야.” “야~ 친구야. 너는 정말 사람을 볼 줄 몰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구나. 나는 그 사람에 대해 깊 이 보고 집에 초대해서 잔치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이런 집에 산다고 하면서 80평짜리 집 한 채를 나에 게 줬어. 그래서 나는 다음 달에 이사 가게 되었어.”   이와 같이 모르고 못 맞지 말고 주님의 재림에 대해 깨어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어야 압니다. 주님이 누구를 통해 오셨다 가셨는지 깨어 있지 않으면 모릅니다. 주님은 꼭 사람을 통해 먼저 오셨다 가십니 다. 마지막 재림을 준비할 때를 위해서 2000년 동안 예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해 오셨습니다. 이제는 주님 께서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직접 오십니다. 지난 30년 동안 선생을 통해, 혹은 여러분들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 주님의 역사이 니 주님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했어도 우리는 몰랐습니다. 악평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는 주님이 마지막으로 오실 때 맞지 못합니다. 그같이 영적으로 어두운 자가 어떻게 주님을 맞을 수 있 겠습니까. 다시 말씀을 듣고 변화해야 됩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면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야 됩니다. 신령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됩니다. 성경말씀을 자세히 세밀하게 읽어야 주님이 역사하여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 하신 말씀을 근본 으로 깨닫게 하시고, 천사장이 나팔을 불며 재림하시는 역사를 깨닫게 하시고, 그 날이 도적같이 오지 않게 빛에 속한 자가 되게 해 주십니다. 신약성경을 다시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회개에 깨어 있어야 됩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알고 회개해야지 누가 알고 회개합니까. 사람에게 지은 죄는 사람에게 회개하여 용서받고, 하나님과 주님께 지은 죄는 하 나님과 주님께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된다고 늘 가르쳐 왔습니다. 이는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고로 선생은 섭리사를 펴 오다가 여러분들이 할 일을 못한 것과, 선생이 시킨 것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 로 행한 것을 속상하지만 다 용서해 준다고 했습니다. “네가 형제의 죄를 용서한 것같이 나도 너를 용 서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했습니다.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주님께 할 일을 못 한 것은 회개하여 그 죄를 용서받아야 되기에 반드시 회 개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에게 잘못한 것도 회개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용서받을 곳 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그저 오신다고 나가 맞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에 따라 “어린아이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진정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 슬피 울며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하나 기억나는 대로 회개해야 됩니다. 겉으로 육적으로 회개할 때는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 생각나지도 않고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하나하나 사 정을 고하면서 영적인 심정으로 깊이 들어가 기도하면 다 기억이 납니다. 주님은 그 사정도 이해하시고, 죄를 위해서 오셨고, 보혈을 흘려 대신 죽어 주셨으니 진정 회개하면 용 서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꼭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용서하시면 그 증 표로 우리를 깨닫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회개에 대하여 분명 이치를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몸 씻는 것 다르고, 옷 갈아입는 것 다르고, 방 청소 다르고, 화장실 청소 다르고, 부엌 청소 다르고, 정원 청소 다르고, 쓰레기통 비우는 것 다르듯 이 행실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 영으로 지은 죄, 십계명을 범한 죄가 다르고 이성의 죄, 전도하 지 못한 죄, 주님을 최고 중심하여 살지 못한 죄, 믿지 못하고 행한 죄, 사명자를 막고 하나 되지 못한 죄가 다 다릅니다, 진정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며칠 동안 기도해 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절대 믿지 못한 죄, 형제들을 미워하여 싸운 죄, 주님을 멀리한 죄, 세상을 좋아한 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한 죄, 헌금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 시기 질투한 죄 모두 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시기 질투를 당한 자는 몰라도 시기 질투를 한 자 는 압니다. 고로 자신의 죄는 자신이 회개해야 됩니다.   이 같은 죄를 짓고도 모르는 자가 있기로 선생이 직접 편지하여 말하려 하니 주님은 “말씀이 나갔으니 스스로 알게 하라.”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음모한 것, 욕한 것, 은혜의 생활을 하지 못한 것, 관리를 게을리 한 것,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신경 쓰지 않은 것, 그럭저럭 행하며 사명을 소홀히 한 것, 자기 교회를 잘 지키지 못하고 생명들 을 강하게 다룬 것, 설교할 때 심혈을 기울여 하지 않은 것, 화목하지 않은 것, 탐내고 욕심 부린 것, 이웃과 형제를 무시한 것, 교만한 것 등 아직도 수십 가지나 회개할 것이 더 있습니다. ‘구원의 말씀’에서도 죄의 종류에 대해 100가지 이상 말하며 지적했습니다. 다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 야 성령의 기름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십니다. 그래야 영이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영이 다시 태어납니다. 그 상태의 영으로는 절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합니다.   회개만 한다고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따라 행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으로 우리들 의 영이 새롭게 태어나야 됩니다. 이러한 자가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자입니다. 지도자라고 하면서 더 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지도자가 소경이니 따르는 자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지도 큰 죄입니다. 지도자가 무지하면 따르는 자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를 영적으로 보면 마귀가 주관하고 따라다닙니다. 이를 영의 눈을 떠 보는 자는 말도 못 해 줍니다. 말해 주어도 ‘네가 잘못되었다.’고 하기에 좋은 것만 말해 주는 것입니다. 미가야 선지 자처럼 불길한 예언을 하면 불신하기 때문입니다.(대하18장)   모두가 다 알라고, 주님이 말해 주라고 하여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선생에게는 욕하지 않고 선생은 불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적인 자는 이렇게 말씀을 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설교도 3~5시간씩 해 오면서 말씀을 많이 알려 주었습니다. 듣는 자는 귀가 닳고, 전하 는 자는 혀가 닳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재림에 깨어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도 항상 예수님이 선생을 통해 전해 주신 말씀을 듣고 모진 환난 속에서도 잘 따라왔듯이, 지금 또 당하는 극한 환난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말씀을 듣고 굳세게 서야 합니다. 금년도에 예수님이 은 밀히 주신 총 주제 『새롭게 변화하라』는 말씀처럼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됩니다.   우리는 환난을 받고 고통을 당해 왔지만 행복한 자들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주님을 맞도록 마음에 근신하고 긴장하여 행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은 환난이 없으니 일반 신앙에 만 족하며 때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눈을 뜬 자가 인도하면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두 시대의 눈을 뜨기를 축원합니다. 2007년에는 섭리 모든 자들에게 1년 동안 말씀을 한마디도 전할 수 없었고, 또 소식도 들을 수 없었습니 다. 그때 선생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감히 아는 자가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한 부자가 지옥에 가서 지옥의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 이 소식을 자기 형제들에게 전하여 절대 지옥에 못 오게 해 달라고 애원했는데 마치 그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한마디만 소식을 전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전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에 대해 한마디 소식이라도 듣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마디 소식도 못 들었습니다. 그때 이미 예수님은 사명자를 통해 말씀으로 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부자 식구들처럼 받 아들이지 않으니 못 전한다고 했습니다.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지옥에 가면 누구든지 오고 가는 소식을 전혀 전하지 못합니다.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한마디만 전해 달라 고 하여도 그 같은 하나님의 법이 없기에 전하지 못합니다. 지옥에 가면 왜 지옥에 갔는지 한마디로 훤 히 알게 됩니다. 선생은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깨달았고,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 을 전하는 것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과 같은 것임을 영원히 귀하게 깨달았습니다. 모든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줘야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할 말을 사 랑하는 자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선생은 정말 깨달았습니 다. 1년 동안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지옥의 고통을 영으로 육으 로 받았습니다.   지옥에 대해 말할 테니 들어 봐요. 지옥은 소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천 년이 가도 희망이 없으니 좌절과 불행 속에서 절망의 고통이 뇌 속과 뼛속을 불태웁니다. 고통을 받으며 사형장에 서 있는 것이 연속되는 세계입니다. 실 한가닥만큼도 돕는 자가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만일 지옥에서 만 년 있다가 나갈 수 있다고 하면, 오로지 그 희망에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하 지만 지옥에 가면 1억 년을 있어도 나간다는 희망이 머리카락 하나만큼도 없습니다. 그러니 좌절과 절망 뿐이며 만 가지가 다 고통입니다.   찬송가에 나온 대로 ‘나의 기쁨과 나의 소망은 오직 주님’입니다. 이 찬송가를 자기 것으로 삼고 불러 야 됩니다. 지상에서 주님만이 희망인데 주님을 잃었기에 지옥에 가서 희망이 끝난 것입니다. 지옥에 간 자는 1억만 년이 가도 희망이 없습니다. 육신이 살았을 때 자기의 희망인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찾지 않고 믿지 않습니다. 인생의 희망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기쁨도 주님뿐입니다.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라는 희 망을 잃으면 사는 그곳이 산 지옥입니다. 그때 주님께 내가 지금 지옥 견학을 왔는지, 영원한 지옥에 왔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육신이 지옥에 왔는지, 영이 왔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지옥의 고통을 받으니 내 영이 지옥에 왔구나. 육신도 고통을 받으니 지옥은 틀림없구나.’ 했습니다. 희망이 없으니 한마디로 말 해서 막연했습니다.   지옥은 위로자가 없습니다. 지옥은 후회만 하는 세계입니다. 지옥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또 믿어도 회 개하지 않은 자가 가는 곳입니다. 지옥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만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곳이 아 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완전히 행해야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지옥은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갑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절대 믿지 않은 자들이 갑니 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고,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지옥과 천국으로 운명이 좌우됩니다. 지옥에 간 부자와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하나의 비유가 아닙니다. 예수님 이 실제로 보시고 저 지옥에 가지 말라고 특별히 생중계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었어도 형식적으로 믿은 자들은 믿고도 행하지 않은 자와 같이 제대로 믿지 않은 죄로 지옥 에 간다고 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가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옥이 있는지 몰라서 온 자들 은 너무 후회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대해 미리 알면 갈 자가 없습니다. 지옥에서는 세상에서 지은 죄보다 수천만 배나 더 그 대가를 받으니 너무나도 원통해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니 지옥에 가지 않도록 지상에 살아 있을 때 조금이라도 죄를 지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삭개오처럼 회개해야 됩니다. 죄를 지으면 삭개오처럼 4배나 갚으면서 회개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지옥은 성경에서 말한 것보다 실제로 겪으면 수만 배나 더 고통스럽게 존재합니다. 지옥의 사자들은 인 간이 세상에 살 때 죄를 짓게 한 후에 지옥으로 끌고 와서는 왜 죄를 지었냐고 거짓말을 합니다. 지옥의 마귀들이 하는 말은 천 가지가 다 거짓말입니다. 참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 말하려면 지옥 마귀들의 행위를 알고, 지옥에 간 자들과 같이 고통을 겪고 말하 는 것이다. 너는 말씀할 때 그 처참함을 말해 주어라. 영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말해 주어라. 지 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생활 속의 고통도 하나의 지옥인 것을 가르쳐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주님께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외치겠다고 했습니다. 지옥 론을 읽어도, 천국론을 읽어도, 지옥에 갔다 온 자가 말해도 모릅니다. 겪어야 와 닿습니다. 육적 지옥 을 겪은 자는 지옥에 대해 제대로 가슴 뜨겁게 가르쳐 주며 계속 말해 줄 수 있습니다. 반드시 보고 겪 은 자가 말을 해야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도록 깨어 있어 주님을 맞아야 영원한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휴거되지 못하면 지상에 서 대환난을 받아 죽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7년에 나는 섭리를 위해 주님의 한마디 말씀도 전해 줄 수 없으니 주님이 누구를 통해 말씀 좀 외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내가 너 대신 사람을 통해 전해 주고 있지만 막고 무지로 대한 다.”고 했습니다. 이에 기도만 했던 것입니다. 기도에 깨어 있는 자는 매일 깊이 기도하게 되고, 수시로 기도하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매일 이같이 하는 자는 기도에 깨어 있는 자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그것에 매일 몰두하는 자’라고 주님은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신앙에 깨어 있는 것과 주님의 재림에 깨어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냥 건강관리 하는 것과 암에 걸리지 않게 그 병에 집중하여 신경 쓰는 것은 다릅니다. 수시로 자가 검 진을 해 보고, 신경 써서 주기적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직접 의사에게 가서 검사를 받고, 기도해 보는 것 이 암이 발생하지 않도록 깨어 있는 자입니다. 그같이 하지 않은 자들은 안타깝게 암으로 죽었습니다.   도적을 안 맞게 깨어 있는 자는 밤낮으로 도적을 살피는 자입니다. 이론적인 지식으로만 말하며 살피면 안 됩니다. 경보기도 설치해 놓고, 이상한 사람이 담장 밖에 있으면 나가서 확인하고, 설치해 놓은 모니 터를 늘 쳐다보고, 밤에 수시로 옥상에 올라가서 지켜봐야 됩니다. 도적이 이를 밖에서 보면 ‘이 집은 마치 155마일 국경을 지키듯이 철통같이 몰두하여 지키네.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 달 내내 빠짐없이 지 키니 도저히 들어갈 수 없겠다.’ 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방심하면 실패합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일인데 실패한 일이 많습니다. 모든 일을 긴장하고 해야 됩니 다.   도적은 어느 날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으로 가장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도적에 온 신경을 쓰면서 어떤 사람이라도 도적같이 인식하고 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예전에 우리 집에 물건을 파는 장사꾼처럼 가장하고 들어온 사람이 도적질해 갔다고 말하면서 손에 몽둥이를 들고 꼬치꼬치 물으 며 따지니, 도적은 이 집 주인은 도적에 정말 깨어 있어서 잘못하면 잡히겠다고 생각하여 슬그머니 나가 려고 대문으로 갔습니다. 주인은 눈치를 채고 문을 잠그고 이상하다고 신고하여 파악하니 도적이 맞았습 니다. 그 도적은 결국 잡히고 말았습니다.   섭리역사 모든 일을 이같이 깨어서 해야 됩니다. 도적은 여러 가지로 침투해 옵니다. 마치 사기꾼처럼 은밀히 접근하며 수십 가지 수법으로 다가옵니다. 한 가지에만 깨어 있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이 깨어 있으라. 주님은 도적같이 오십니다. 여러분들이 이와 같이 주님의 재림에 깨어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자는 맞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2000년 동안 사람들을 통하여 오시기도 하고 꿈속에서나 기도 중에 직접 오시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선생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는 데 있어서 육적으로 신앙의 예행 연습을 해 온 것입니다. 선생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면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선생은 늘 말할 때마다 “예수님, 예수님”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선생님, 선생님”만 했습니 다. 이제는 선생이 늘 말해 온 대로 자꾸 “예수님, 예수님” 하고 불러야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은 영체라서 안 보이시고, 또 절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다니십니다. 천사도 그러합니다. 영 으로 볼지라도 얼굴은 잘 안 보여 주시고 몸만 보이시거나 뒷모습만 보이십니다. 꿈에 나타나실 때도 다 른 사람으로 보여 나타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안 보여도 늘 기도하고 깨닫고 찾고 진실로 간구해야 됩니다.   어느 때는 사람을 쓰고 나타나시고, 어느 때는 깨달음으로 나타나시고, 어느 때는 말씀으로 나타나십니 다. 어떤 자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열심히 전하니 받아들이며 내 얼굴이 예수님 영인체 사진의 얼굴과 닮아 보인다고 하면서 내 얼굴을 더욱 꿰뚫어 보았습니다. 주님에 대해 전하니 주님은 또 쓰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제는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날 때 공중에서 오시는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님을 맞 게 하기 위해 주님은 2000년 동안 기도 중에, 혹은 꿈에, 혹은 사람을 통해 나타나시며 역사해 오셨습니 다. 이제 주님을 직접 부르면서 영이 깨어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 일에 몰두하여 집중하며 신앙생활 을 할 때입니다. 섭리역사는 그동안 영적으로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영에 어둡지 않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어느 시간에 올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집이 비었을 때, 잠을 잘 때, 낮이라도 도적에 신경 안 쓰고 살 때 사람을 시켜서 들 어오고 무력으로 들어옵니다. 잠을 안 자고 누워서 눈만 뜨고 있어도 안 됩니다. 매사에 각자 인생에서 도 늘 깨어 살아야 됩니다. 지금은 주님이 오신다고 영계에 눈을 뜬 사명자들을 통해 책이나 인터넷의 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해 주었는데도 태만하게 살겠습니까? 『그런즉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잘 들 어 봐요. 주님이 곧 오신다는 말이 어느 정도인지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차의 시동을 걸어 놓은 상태와 같다고 했습니다. 버스나 자가용 으로 어느 곳에 가기 전에 먼저 차의 시동을 걸지요? 주님의 재림이 그 상태와 같다고 했습니다. 천사장 이 나팔을 불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만 빛에 속한 자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에 잠을 깨워 주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님이 어디 갔다 오시는데 아들과 딸이 전화하여 “어디까지 오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어디 까지라고 말할 수 없이 바로 집 앞이기에 “다 왔다. 문 따 놓아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도 마 음 문을 따 놓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곧 오신다고 했습니다. ‘곧’이란, 1년인지 2년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또 다른 말씀으로 우리에게 이같이 비유하여 깨닫게 하셨으니, ‘곧’이라는 말은 더 이상 가까웠다고 표현할 수 없는 단 어라고 했습니다. 또 들어 보겠습니다.   셋째, 볼펜을 쓰는데 글씨가 가늘어졌습니다. 잉크가 다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시대 사람들과 섭리 사람들이 무엇인가 착각하고 살 고 있다.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당황할 것이다.” 했습니다.   넷째, “새벽별이 뜨니 아침이 가깝지 않았느냐. 마치 새벽별이 빛을 잃는 시간과 같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했습니다.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령의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다섯째, “타향 땅에 간 자가 어느 쪽이 동쪽인지 알기 위해 동서남북을 쳐다보니 특히 한쪽이 다른 쪽 보다 환하게 보였다. 이와 같이 주님의 재림의 쪽을 밝고 환하게 말씀으로 비추고 있으니, 그런즉 재림 의 빛이 비취는 쪽에 깨어 재림을 준비하고 예비하라.” 했습니다.   지구상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의 마지막 재림에 대하여 전하는 말씀과 주님이 사명자들을 통해 말 해 주시는 쪽을 모두 주시해야 될 때입니다. 기독교는 30년 전부터 주님이 곧 오신다고 하면서 기도하며 재림을 준비해 왔습니다. 잘했습니다. 그러 나 너무 오랫동안 예수님이 안 오시니 그중에 더러는 재림에 대해 잠을 자고 있습니다. 너무 일찍 준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열렬합니다. ‘재림’이라는 단어만 외우고 있으면 안 됩니다. 재림에 대하여 어떻게 준비하라고 주님이 말씀해 놓고 가셨으니 성경을 다시 읽고 깨달아야 됩니다. 말씀을 듣고 결혼하는 신부가 날마다 신랑 맞을 준비를 하 듯이 해야 됩니다.   손님을 맞듯이 주님을 맞는 것이 아닙니다. 맞고 따라가야 되기에 세상 미련 없이 준비를 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할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맞고 따라갔습니다. 모세는 손님같이 들르지 않았습니다. 도적같이 온 모세의 말을 듣고 따라갔습니다. 하나 님은 보이지 않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오직 신앙으로 예비하여 주님을 맞고 따라가는 것이니, 세상을 끊고 육적 인 삶을 끊고 오직 영적인 삶을 해야 됩니다. 롯은 하나님이 소돔 땅에 보내신 천사를 맞고 그 딸들과 함께 소알 성만 쳐다보고 끝까지 가서 죽음을 피해 살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미련을 가지고 뒤돌아보다 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달려갈 곳을 위해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빌 3:12-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 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말씀을 듣고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주님은 나에게 세상의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 고 했습니다.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시대적으로 보아도 주님이 오신다고 한 때가 2000년이 지났고, 햇수 로는 2009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으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온다고 성경에도 나와 있고, 선생을 통해 설교 때도 너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외국에 가서 20년 있다가 온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듯이 주님은 우리들이 생각한 것보 다 빨리 재림으로 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하는 자들은 준비가 안된 자들이고, 생 각보다 늦게 왔다고 하는 자들은 준비하고 기다린 자들입니다.   섭리사는 늘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신부같이 준비시키며 살아왔으니 누구보다도 부끄러움 없이 마지막 준비를 하고 맞아야 됩니다. 섭리사는 한 지체와 같아서 그래도 선생의 말을 듣고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빨리 전달되고 빨리 행해지는 편입니다. 주님께서 재림과 말세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신 말을 사명자들을 통해 급히 전해 주면, 사람들은 “또 말세라고 하네. 시한부 종말론적 신앙이야.” 하면서 듣지 않습니다. 특히 재림에 대한 말을 하면 시한 부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하며 또 이단시합니다.   그들은 마귀의 주관 속에 삽니다. 예수님을 위해 인생을 바치면서도 주님의 재림과 상관없이 세상을 벗 삼아 천국으로 여기고 사는 자들인 고로 재림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꺼려하 고 좋아하지 않고 헐뜯는 데 빠져 사는 자들입니다. 큰 죄인들이기에 비웃고 비판하며 주님의 재림을 막 고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재림을 악평하든지 외면하든지 소홀히 하는 자들로서 마귀의 주관을 받고 방해 하므로 시대 주님의 말씀의 방향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에 주님은 “사람들이 말로는 깨어 있다고 하지만 육과 혼과 영이 모두 선지자나 사명자들을 통해 세 계 곳곳마다 전한 재림에 대한 말씀을 듣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깨어 준비하지 못하고 있 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깨어 있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하여 날마다 생각하고 행하고 준비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오늘 이에 대하여 특별히 말했으니 섭리인들은 일절 깨어 있는 자가 되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된 자들이라면 주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첫째로는 말씀을 듣고 온전하게 인식 해야 사고가 뒤바뀌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신앙의 잠을 안 자고 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사 장이 마지막 나팔을 불 때 주님이 오신다는 재림에 대해서는 아직도 깨어 있지 않은 자가 많습니다. 그 러므로 모두 말씀을 듣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꼭 변화를 받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그 주간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해야 됩니다. 그 말씀에 해당되는 것을 미루고 다른 것 먼저 행하면 안 됩 니다. 믿고 행해야만 구원이 이루어지며 산 자가 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 한된 시간 안에 물에 뛰어 들어가 빨리 깨끗이 닦고 정결하게 해야 됩니다. 물은 곧 말씀입니다. 지금 전하는 말씀을 꼭 듣고 행해야 됩니다.   섭리 사람들이 빠른 구름이 되어야 하건만, 흔히 지도자들과 섭리에 일찍 온 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변화 에 늦습니다. 체면을 차리느라 늦는 것인지, 나이가 먹어 고정관념에 차서 늦는 것인지, 살과 뼈가 신앙 적으로 굳어져서 늦는 것인지, 게을러서 늦는 것인지, 육적이라 늦는 것인지, 기도하지 않아서 늦는 것 인지, 예수님과 떨어져서 늦는 것인지, 선생과 10년 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감각이 떨어져 늦는 것인지, 열정이 식어서 늦는 것인지, 거듭나지 못하여 영이 다시 성령으로 나지 않아서 늦는 것인지, 정신만 살 아 있고 행하지 않아 늦는 것인지, 말씀의 은혜를 못 받아서 늦는 것인지, 1년 동안 말씀을 듣고서도 못 깨달아서 늦는 것인지, 혹시 외부에서 가만히 들어온 삯꾼 목자여서 늦는 것인지, 마귀 주관을 받아서 늦는 것인지, 다른 곳에 빠져서 늦는 것인지, 신앙의 잠을 자고 재림의 잠을 자고 있어 늦는 것인지, 죄 짐이 무거워서 늦는 것인지 큰 문제가 있다고 주님은 나로 지적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온전케 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에 눈을 뜬 빠른 구름들에게 맡긴다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설교 내용은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섭리사 사람들은 모두 선생만 맞고,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 불 때 오시는 예수님을 맞지 않으려고 했습니 까? 지난 30년 동안 그토록 애태우며 말씀을 외친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으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외치니 안 받아들여서 여러분들에게 외쳐 왔다고 한 설교를 못 들어 보았 습니까?   신앙생활을 5년 이상, 10년 이상, 15년 이상, 20년 이상 해 온 자들이 자기 죄도 깨끗이 회개하지 못하 고, 영적인 세계를 한 번도 접촉해 보지 못하고, 성령의 뜨거운 불도 못 받아 보고, 슬픔과 탄식으로 눈 물을 흘리면서 개인과 가정과 민족을 위해 한 번이라도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고, 주님의 심정을 한 번도 제대로 못 느껴 보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고통도 못 느껴 보고, 주님이 늘 사랑해 주시고 어려 운 것을 처리해 주신 것도 못 느껴 그 도를 행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주님이라는 포도나무와 하나 되었다 고 할 수 있습니까. 구원받았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같은 자들에게는 절대 배우거나 지도받으면 안 되니, 반드시 물어보고 신앙의 지도를 받아야 배움을 받는 자들도 신앙이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제대로 믿고 제대로 행하는 자만 구원에 들어가며 주님의 마 지막 재림을 맞고 휴거가 됩니다.   주일은 자기의 날이 아니니 자기 시간을 쓰면 안 됩니다. 십계명을 보면 주일은 엄격히 하나님의 날이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날입니다. 주일에 놀러 다니고, 필요 없이 사람들을 만나 식사나 하고, 누 구 관리한다며 이유를 달고 시간을 내어 만나러 다니면서 자기의 시간으로 다 쓰고 삽니다. 인간들만 생각하고 하나님과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면 누구 손해입니까? 주일은 온전하게 지키라고 했습 니다. 주일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써야 됩니다. 안식일에 특별히 구해야 될 양은 구해 내야 되지만 거룩한 주일은 각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써야 됩니다.   TV를 보고 오락을 즐기며 각종 대중매체에 젖어 주일을 보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제대로 하 지 않고 세상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니 잘해야 됩니다. 선생은 하루에 세상 신문이 나 TV를 몇 초 동안 보는지 알아요? 하늘나라 주님의 상황을 보고 그 소식을 들어야 됩니다. 주님은 “너희가 제대로 하는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것으로 끝난다.”고 했습니다. 늘 말씀해 주었지요? 영계에서 보면 좁은 길로 가는 자는 가끔 한 명씩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온 세 계를 다 보고 말씀한 것입니다. 온전하게 하는 자만이 천국길로 갑니다. 그저 위로받기 위해서, 안심하 기 위해서, 의지하기 위해서,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자는 결국 신앙생활을 안 하는 자 와 똑같습니다.   섭리역사 30년 동안 각자 해 온 신앙들을 보면 신앙의 잠에서 제대로 깨어 있는 자들도 있고 그저 따라 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재림에 대해 근본적으로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너무 이 르다고 생각합니까? 금년도 주제와 같이 주님이 새롭게 말씀하시니 새로운 마음과 사고를 가지고 새롭게 인식하여 정말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자가 공항으로 가는데 차 속도를 100km/h로 가다가 시간이 늦어 비행기를 못 탈 것 같으면 120km/h에 놓고 밟아야 됩니다. 이는 상식입니다. 선생이 운전해서는 안 되니 이제는 예수님이 운전하시어 150~200km/h에 놓고 달립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이 같은 주제를 주님께서 은밀히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깨어 있으라는 말을 깨닫 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 것이 있으니 믿고 따라와요.   주님은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그 대신 너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버리지 않으리라.” 하 셨습니다. 이 말을 믿고 희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전도도 하고, 가르치고, 회개를 시키고, 죄를 멸해야 됩니다. 선생은 어느 날 새벽 이같이 주님께 매달리며 기도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 집에 들렀다가 가시듯이,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는 세리 삭개오 집에 들렀다가 회개를 시 키고 가시듯이, 주님을 잃고 허탈감에 빠져 바닷가에서 뉘 볼까 외롭고 쓸쓸하게 있는 제자들에게 들렀 다 가시듯이, 희망을 잃고 버림받고 사는 문둥병자 앞에 멈춰 고쳐 주시듯이,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시 듯이, 간음하다가 잡혀 죽을 자에게 나타나 마치 은인이나 되는 듯 살려 놓고 가시듯이, 갈릴리 바닷가 에서 주님을 기다리며 인생 희망에 차 있는 자들에게 들렀다 가시듯이, 주님만 부르며 살았는데 세상이 버린 나와 우리들에게도 들렀다 가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세상에 계실 때 생각이 나서 감동이 되었다는 듯이, 그 마음을 알아준다고 즉시 응답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도 거쳐 갔지만 그래, 내가 꼭 거쳐 갈 테니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온 세계 섭리를 살피시어 외롭고 쓸쓸하고 허탈한 자들과 마음이 아픈 자들과 주님만 사모하며 사는 자들에게도 꼭꼭 들렀다가 가시라고 간절히 슬피 울며 간구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그들도 사랑하여 거쳐 갈 테니, 내가 주는 말씀을 생명시하며 안 보여도 나 예수를 중심하라.”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서로 싸우지 말고 화목하여라. 마귀 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아니하였으니 사람을 통해 역사하며 세상에 다니면서 인 치러 다닌다. 나의 말 을 명심하고 깨닫고 행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게 두고 떠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살기 바랍니다. 자, 이제 모두 안녕히 가세요.   <광 고> 영적인 역사를 한다고 하며 교회에서 소리 지르고 시끄럽게 떠들며 기도하면 안 되고, 산으로 새벽 2~3 시에 기도하러 다니면 안 됩니다. 또 육적 휴거라고 하면서 각종으로 혼잡하게 하지 말기를 각 교회에 광고합니다. 성령은 질서의 신입니다. 요란하고 혼잡한 곳에는 사탄과 마귀와 귀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선생은 다 보고 말합니다. <2009년 3월 8일 주일말씀>   우리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본 문 요한계시록 19장 11-16절 요한계시록 17장 13-14절 디모데전서 6장 15절 마태복음 23장 37절   <만왕의 왕 주님의 다스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먼저 주님께 말씀을 주셔서 진정 감사하다고 한 후에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 오늘도 말씀 주셔서 듣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잘 듣겠습니 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천천히 하겠습니다. 귀한 말씀을 한마디라도 제대로 전하지 못할까 정말 두렵고도 걱정이 됩니다. 왕의 명령을 전하는 신하처럼 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전해 주 시는 생명의 말씀인 줄 알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전심으로 전하겠습니다. 잘못 전달하면 그 죗값 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전하겠습니다.   바다에 수백 가지 종류의 고기가 있어도 먼저는 한 종류만 보여 주면서 거기에 대해 말하고 가르쳐 줘야 확실히 압니다. 이것저것 한꺼번에 말하면 들어도 잘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도 잘 깨닫게 하기 위해 묵 시해 주신 말씀 중에서 한 가지에 대한 것만 말해 주고 그 방향만 전해 주겠습니다. 주님도 세상에 계실 때 씨 뿌리는 비유를 들어 마음밭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그 한 가지만 집중하여 말 씀하셨습니다. 고로 듣는 자들이 듣고 다 깨달았으니 그 말씀에 권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설교는 어린아이도 어른도 각각 그 마음 개성대로 잘 깨닫게 지금도 그같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 다. 그러므로 처음에 저 같은 수준 낮은 사람도 잘 이해하고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능력이 있으시고 전 능하시므로 누구든지 말씀을 귀히 여기고 듣고자 하고 깨달으려 하면 다 깨닫게 해 줍니다.   주님의 말씀을 단돈 만 원짜리로 생각합니까? 백만 원, 혹은 천만 원, 혹은 1억으로 생각합니까? 여러분 들은 말씀을 어느 정도 가치로 생각하고 들으려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가치를 두는 대로 그만큼 깨닫게 해 주시고 유익하게 해 주신다고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정신 상태가 썩은 자는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 주님의 말씀을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 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실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히 여기느냐 에 따라 지옥으로, 혹은 천국으로 가게 되며 휴거되느냐, 안 되느냐가 좌우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항상 최우선으로 하고 살라고 했는데 모두 기억하고 있지요? 이는 성경의 수백 곳에 강조된 말씀 으로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먼저 생각하면 내게 합당치 않 다.」고 했습니다. 애인, 물질, 보물, 귀중품, 집, 땅, 작품 등 그 어느 귀중한 것도 주님보다 더 사랑 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자는 주님께 합당하지 않은 자입니다. 말씀 들을 때는 듣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들어야 되고, 삶 속에서도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다른 일 은 그 다음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먹고 입고 사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무시하는 자이며 주님께 가까이 가지 못할 자입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구해도 주님은 우선으 로 해 주지 않으십니다.   이제부터 본 말씀에 들어갑니다. 오늘은 깨어나 보니 새벽 5시가 넘었습니다. 기도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오늘은 기도도 못 하 고 다 끝났다.’ 하고 나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어젯밤 12시 를 넘기고 새벽이 다 되도록 성경을 보며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늘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이치’라고 잠언으로 깨우쳐 말씀하셨지만, 또 주님의 말씀 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자, 늦었으니 오늘은 할 수 없다. 끝났다.’고 하며 계속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슬쩍 눈을 감았을 때 월명동 다리골의 경사진 옛날 밭 같은 장면이 보였습니다. 한 사람이 굵은 자갈돌이 깔린 그 경사진 곳을 잘 내려오다가 순간 가만히 서 있으니, 자갈이 그 사람의 몸무게 중량에 눌려 그만이야 자갈돌이 미끄러져 내려와 그는 10m 이상 굴러갔습니다. 그 사람은 충격을 받고 놀랐습니다. 또 쳐다보니, 다른 한 사람이 잘 내려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살살 잘 내려오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랬더니 앞 사람과 같은 식으로 또 넘어져서 주저앉은 채로 큰 돌과 함께 미끄러져 내려와 그 앞에서 먼 저 구른 사람과 아찔하게 부딪칠 뻔했습니다. 먼저 구른 자와 부딪쳐 큰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순간 보인 계시의 환상이었습니다. 간절히 주께 물으니 “늦어도 벌떡 일어나 기도해야 되지 않겠느냐. 늦었다고 해서 꼭 가야 될 곳을 아주 안 가고 말려느냐.” 하며 머리에 생생하 게 깨달음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눈을 뜨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늦은 대로 기도를 해야지. 가다가 돌길 경사진 곳에서 멈춰 서 있으면 미끄러져 넘어지고 다치듯이, 인생은 멈추지 말고 늦으면 늦은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가야 한다. 신 앙도 인생도 걷다가 멈추면 넘어져 다치게 된다.”고 말씀하시며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때 성경 다니엘서의 말씀들이 순간 떠오르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또 비유로 깨닫게 하시기를 “얼음이 얇게 언 호수는 걷다가 서 있으면 무게 중량으로 그 자리의 얼음이 깨져 깊은 호수에 빠지듯이, 세상을 부지런히 뛰고 달리면서 섭리 인생을 살아야 세상에 빠지지 않는 다.”고 하셨습니다. 벌떡 일어나 주님이 온 것같이 급히 양치질과 세수만 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니,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이 오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내게 그 같은 환상을 보여 순리적으로 일어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이 다 되도록 성경을 보며 주님이 깨우쳐 주신 글을 쓰느라 늦게 잠을 잤기에 늦게 일어난 것을 이해하시고 늦게 오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자고 깨는 것을 다스리고 계심이 깨달아지면서 절로 찬송가가 내 입에서 흘러나와 부르기 시작했 습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로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 주는 날 항상 돌보시 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주는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내 육과 영이 흐느껴 감격해 울며 7~8번을 불렀습니다. ‘주님이 이같이 다스리시는구나. 자고 깨는 것까지 다스려 주시는구나. 잠들면 누가 깨워 주는 자도 없 고, 시계도 나를 깨워 주지 못하고, 깊은 새벽 피곤하여 잠든 나를 깨워 달라고 해도 깨워 줄 사람이 없 는데, 과연 주님이 이같이 나를 다스리는구나.’ 하며 감격하여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세상 왕들은 체계적으로 주권과 권력과 계급주의로 다스린다. 그러면서 개인 하나하나를 다스리지 못 하지 않느냐. 하지만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는 나는 나를 믿고 좇는 그 백성들을 한 명, 한 명 자세 히 직접 다스린다.”고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안에 품듯이 다스린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23장 37절 에 있는 말씀으로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모두 읽어 보겠습니다.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 였도다』   또 우리가 그동안 설교 가운데 많이 듣던 요한계시록 19장 11~16절의 말씀이 훤히 떠올랐습니다. 또 읽 어 보겠습니다.   (계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 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 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 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역시 설교 중에 많이 한 말씀들이 떠올랐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3~14절도 읽어 보겠습니다.   (계 17:13-14) 『[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 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님인 것을 다 알지요? 마귀들은 예수님을 불신하는 자들을 통해 주를 따르는 자들 과 싸우기도 하고, 혹은 마귀들이 직접 주를 따르는 자들과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만왕의 왕 이고 만주의 주시라 이긴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만왕의 왕으로 믿고 메시아로 믿고 따라야 마귀를 이기고, 그 짐승들의 인을 맞지 않게 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뜻을 불신하는 자를 통해 역사하여 넘어지게 하고 결국 마귀들의 인을 맞게 합 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꼬이고 이단이라 하며 자기 말을 듣고 따라가게 하는 것도 마귀에게 인 맞 았기 때문입니다. 절대 주님만 믿고 그 말씀대로 어떤 환난이라도 이기고 가면 마귀에게 인 맞지 않습니 다.   오직 주님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주님만 의지하면 짐승들에게 인 맞지 않습니다. 짐승의 인을 맞으면 휴거 자격이 상실됩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같이 오직 주님을 자기와 1:1로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포도나무에 포도나무 가지를 접 붙이듯이 하나 되어야 됩니다. 저는 주님을 가르쳐 주는 소개자, 중보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심부름꾼 입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말했습니다(딤전 6:15). 바울의 신앙이 반석 같은 이 유는 주님만이 자기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라 보고 마음에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신앙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계를 보고 확실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눅 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절대적으로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우리의 영원한 통치자로 마음에 모시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와 귀신을 이길 수 있고, 그 주관을 받아 악평하는 자들까지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원한 통치자로 모셔야 됩니다. 세상의 왕들이 여러분들의 잠을 깨워 줍니까? 사사건건 위험할 때, 어려울 때, 죽기 몇 초 전에, 억울함 을 당할 때, 모든 인생 문제에 신경 써 줍니까? 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왕들이 여러분들을 기쁘게 해 주고, 마음천국을 만들어 주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해 줄 수 있습니까? 전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 세상 어떤 왕이라도 이 세상의 체제로는 개인이나 민족을 천국으로 만들어 다스리지 못한다고 30년 동안 외쳐 왔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시는 일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하늘나라 법으로 행하신다고 확실하게 말해 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를 깨달았기에 새로운 대통령이 될 때마다 큰 희망과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은 그때마다 ‘이제 내 문제와 우리 사회 문제가 풀리고 잘되겠지. 나라가 잘살게 되겠지.’ 하며 기대 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큰 기대를 걸고 희망을 품지만, 후에 가서는 희망은 커 녕 후회하고 실망했습니다.   신앙의 지도자들도 그렇습니다. 절대 주님과 일체된 자라야 희망을 주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해 줍니 다. 희망을 걸었다가 결국 희망대로 안 되면 다 필요 없다고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만왕의 왕이라고 믿어 온 대로 방향을 100% 주님께 돌리고 살아야 됩니다. 주님만이 온 인류의 왕이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희 망을 이루어 주시고, 내 고향의 희망과 민족의 희망도 이루어 주시는 존재자로서 유일무이한 전능자라고 믿고 외쳐 왔던 지난 30년이었습니다. 사람이 다스리면 불안해서 어떻게 마음 놓고 살 수 있겠습니까. 완전한 전능자이신 주님이 다스리셔야 지옥으로 안 가고 천국으로 갑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니 오직 주님을 다스리는 자로 섬기고 모셔야 됩니다.   지금도 나의 왕 중의 왕, 영원한 왕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듣고 우리의 통치자와 왕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주님임을 알고 모셔야 됩니다. 그래야 마귀를 이기고 그놈의 짐승들의 인을 맞 지 않습니다. 그래야 주님이 자고 깨는 것을 다스려 주시며 삶을 맡기는 대로 다스려 주십니다. 평화의 통치자와 주권자는 오직 전능하신 주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또 말씀을 듣겠습니다. 세상 왕들은 피라미드 조직처럼 아랫사람들을 직위 계통대로 다스립니다. 임기 기간 중에 일일이 한 사 람씩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임기 기간에 한 사람당 1분씩만 시간을 내준다고 해도 그만큼 의 시간이 없어 불가능합니다. 고로 세상의 왕들은 개인을 일일이 다스리지 못합니다. 교회의 목사님들도 교인 몇 백 명을 일일이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말씀으로 도우시면서 수시로 도적같이 가셔서 도우시고 다스 리십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일일이 다스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절대 불가능입니다. 결혼을 했든지 안 했든지 자 기 사랑하는 애인 한 사람도 다스리기 힘듭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힘이 없어 못 하고, 자기 살기 어 려워서 못 하고, 몰라서 못 하고, 능력이 없어서 못 합니다. 또 영혼 문제와 마귀 문제로 인하여 못 합 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 하나도 제대로 못 다스립니다. 가령, 어떤 한 사람 있다면 백 명이 그를 다스려도, 천 명이 그를 다스려도 그 한 사람의 영혼과 육신을 제대로 못 다스립니다.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 순종하며 저를 따라와도 제가 다스리기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를 다스려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책임은 자기가 다스려야 됩니다.   주님은 능히 지구에 사는 사람 68억 명을 하루에 만날 수 있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존재자입니 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게 맡기면 주님으로서 다 다스려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구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지 한번 들어 봐요.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거리는 150억 광년입니다. 이 거리는 빛으로 가도 150억 년이 걸립니다. 그러니 지구에서 하나님이 계신 천국까지는 얼마나 더 멀겠습니까. 그런데 영으로 가면 순간 갈 수 있습니다. 그동안 주님은 늘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즘 새롭게 가르치는 말씀도 있지만 예전부터 가르친 말씀도 다시 생각나도록 말해 줄 테니 잘 들어 봐요. 전에 들 은 것이 생각날 것입니다.   산에 있을 때 주님은 영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영계는 생각한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했습니다. ‘영은 생각한 곳에 순간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말씀을 듣고 일반적으로 부 활된 영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온전한 영으로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참고 자료 있음.) 이같이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다스려야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그같이 빠른 주님이 왕으로서 다스려야 위 급한 때 충분히 구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스리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통해 다스리기도 하십니다. 인간끼리는 서로 말이 통하니까 사명자들에게 계시하시고 깨 닫게 하여 외치게 하십니다. 그리고 돕기도 하십니다. 또 인간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감동시켜 행하십니 다. 그러나 사명자들에게만 맡기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해 행하는 것만으로는 안되니 주님은 일 일이 때와 시간에 따라 개인과 가정, 모임과 집회 때 방문하시면서 직접 다스리십니다. 저도 목사님이나 책임자에게 맡겨 놓고 그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나는 나대로 주님의 뜻을 따라 밤낮 으로 기도하며 각종으로 다스립니다. 이와 같이 주님도 사명자들에게 육적인 것을 맡기시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치 암탉이 병아리 품듯이 철저하게 다스리십니다. 또 만왕의 왕으로서 천사들을 통해 다 스리시고, 주님이 직접 일일이 다스리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자세히 말씀해 주어 아예 인식을 시켜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안 믿으면 다스려 주고 싶지 않다. 이를 안 믿는 자는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자요, 혹은 마귀와 귀신의 왕들을 자기 마 음에 다스리는 자로 삼고 사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셨을 때 사람의 마음을 마귀와 귀신들이 다스리는 것을 보시고 그 마음속의 마귀와 귀 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천국이 되었고, 믿고 깨달은 자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계를 보고 사탄과 마귀들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읽어 보 겠습니다.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만왕의 왕을 절대 믿고 그 백성이 되어야 마귀들에게 다스림을 받지 않고 마귀들과 상관없는 자가 됩니 다. 마귀가 다스리면 결국 지옥의 백성이 되어 꼭 지옥으로 가야 됩니다. 정말 그들의 인을 맞으면 안 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자기 뜻대로 살면서 형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형제를 힐문하고 미워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마귀들이 하는 짓을 보면, 사람들을 계속 힐문하며 하나님께 일러바쳤습니다. 욥의 경우도 마귀가 계속 힐문하였고 하나님께 일러바쳤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 형제들을 밤낮 참소하던 자들이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 던 자가 쫓겨났고』   섭리에서도 마귀의 주관을 받으면 무지로 형제들을 자꾸 참소합니다.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억울하게 당 하는 자들은 실상 속 이야기를 안 해 줍니다. 나도 알고 주님도 그렇지 않음을 알아주시니 억울하지만 믿음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고 악평한 자는 그 힘든 회개를 해야 됩니다. 주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백성은 사랑의 사람이어야 됩니다. 형제들을 왜 참소합니 까. 실상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게 일러바치고 관청에 일러바칩니다. 잘못한 자가 있어도 용서해 주고, 그를 위해 주님께 기도하면서 꼭 용서해 달라고 밤낮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자기 죄도 용서받습니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그 행실을 보고 더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18장 21-35절을 보면,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있는데 갚 으라고 하니 갚을 길이 없다며 땅에 엎드려 울고 탄식하였습니다. 이에 주인은 그를 용서해 주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종은 용서를 받은 후에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만나서 그 목을 잡고 갚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빚진 자가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면서 갚을 길이 없다고 하니, 관청에 신고하여 옥에 갇히게 했습 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 주고 용서해 준 그 종의 주인에게 이 사실을 다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이럴 수가 있느냐고, 화가 나서 그 종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나도 용서하니 너도 용서해야지. 네가 동료를 용서하지 않으니 나도 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그 종을 가두었습니다.   1달란트는 1데나리온의 6000배로, 자기는 60만 배를 용서받았으면서 자기에게 잘못한 자는 60만 분의 1 도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참고 자료 있음.) 어서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해 줘야 됩니다. 자기는 하나님과 주님께 100만 배 용서받은 것이 있다고 보 고, 어서 형제들을 용서해 줘야 됩니다. 이것이 주님이 다스리는 자의 행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 가 다스리는 자입니다. 말씀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마귀가 짐승의 인 666 수를 손이나 이마에 인 치고 맙니다. 이는 영원히 지 워지지 않습니다. 칼로 살가죽을 벗겨 내도 그 인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손에 인을 맞으면 손을 끊어 내 도 안 됩니다. 내가 산에 있을 때 주님께 묻기를 “마귀는 666 인을 친다면 주님의 백성은 완전수인 777 인을 맞겠네 요.” 하니, 주님은 웃으시면서 “그 말도 이치가 맞는 말이야.”라고 했습니다. 7수는 하늘수입니다. 아무리 6으로 7을 공격해도 1이 남고, 666이 777을 공격해도 111이 남습니다. 도표에도 이 이치가 나와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통해 다스리게 하기도 하시지만 사명자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일일이 수시로 도적같이 오 셔서 주님으로서 해 줄 것을 해 주시고 도적같이 가십니다. 이렇게 마지막 재림 전에도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아야 산 신앙인이며 빛에 속해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이 오시는 것을 꿈속에서나 기도 중에 보았을 것입니다. 못 본 자는 말씀을 들을 때 깨 닫고 마음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말씀하시고, 도와주시 며 각종으로 행하심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신경 써야 알게 됩니다. 관심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의 백성이라야 주님이 다스려 주십니다. 왕 중의 왕, 전능하신 존재자이신 주님이 다스리시니 얼마 나 마음이 놓이고 좋습니까? 주님은 말씀으로 더욱 확실하게 다스려 주시니 얼마나 더 좋습니까? ‘세상 이 버려도 나는 너희를 안 버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감사하고 감격하고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 며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살아야 됩니다. 주님은 재림 때만 천사장 나팔과 함께 도적같이 오시지 않습니다. 이 순간 지금도 여러분 각자에게 도적 같이 오십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주님은 시대마다 사명자들을 통해 모든 자들에게 도적같이 계속 찾아 오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섭리사 30년 동안 각 개인과 가정에 찾아오셨고, 집회 때와 새벽 때마 다 도적같이 오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가 늘 말해 주었는데도 모르는 자는 신경을 쓰지 않아 몰랐던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바닷물이 멈추 게 하시고, 비가 쏟아지게 하시고, 우리가 모인 장소만 비가 안 오게 하시면서 각종 기적을 수천 번이나 일으켜 주셨습니다. 또 말씀으로 늘 가르쳐 주시고 관리하시면서 만왕의 왕으로서 만주의 주로서 우리를 다스리셨습니다. 사람을 쓰고 다스리니 그 사람이 능력을 받고 그같이 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따르면 안 됩니 다. 모든 것은 주님이 행하십니다. 주님이 최우선입니다. 주가 쓰는 자는 청지기로서 인간적으로 주님 다음으로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을 하나의 신앙 체험으로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주의 재림을 맞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날 새벽, 주님은 ‘그 사람이 피곤한 것에 따라서 이해하시어 잠도 늦게 깨우시고 늦게 심방 오시고, 또 피곤치 않을 때는 일찍 깨우면서 그같이 자세히 모든 것을 주님이 직접 손수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묻는 시간을 따져 보니 이 세상 시간으로 40초 정도였습니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기도하게 그냥 두고 떠나신 것 같아서 가시냐고 기도 중에 물으니, 가물가물 가시는 느낌만 왔습니다. 순간 방이 썰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역시 주님은 머리카락만큼도 안 보이시 며 이 같은 말씀만 나에게 남겨 놓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어 보니 주님의 말씀이 맞지요? 찬송가 390장(새 찬송가 390장, 이전 찬송가 444장)을 모두 불러 볼까요? 늘 주님이 다스리시는 것을 시 인하며 찬양해야 됩니다. 지도자들 중에 어떤 자들은 따르는 자들이 자기 마음에 안 들고, 혹은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함부로 대 하기도 합니다. 무력으로 다스리고, 욕하면서 ‘왕따’시켜 버리고, 무관심해 버리고, 무안을 주고, 인 상 쓰면서 말하고, 무섭게 대하고, 냉랭하고 인정 없고 썰렁하고 껄끄럽게 대하고, 싫어하고, 부담스럽 게 여기고, 밥 먹으러 갈 때도 안 데려갑니다. 이같이 당하는 자들은 ‘선생님은 저렇게 안 하실 것인 데...’ 하며 울고 갑니다. 주님은 교역자들과 관리자들과 각종 책임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다스리는 방식이 아니 다. 자기 인성의 방식이며 나의 심정과 일체되지 못하고 마귀의 주관을 받으면서 다스리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그같이 하면서 선생도 이같이 했다고 강조하여 말한다고 합니다. 다 아니까 말씀합니다.   주님과 같이 긍휼과 자비와 사랑으로 대해 주고, 긍정적으로 겸손하게 위해 주며 순리로 다스리라고 했 습니다. 그동안 나로 주님이 본을 보여 준 것같이 해야 됩니다. 계속 이어서 주님이 다스리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내일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겠다고 하며, 이 날은 오후 5시부터 기도했습니다. 긴 시간 동안 기도하는 중 에 언제 잠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깨어 보니 새벽 1시 15분 전이었습니다. 너무 일찍 일어나 면 기도하다가 졸리니 눈만 뜨고 ‘일어날까, 말까? 앞으로 한 시간은 여유가 있으니 잠은 안 자도 누워 있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잠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있다가 순간 백짓장처럼 얇은 잠이 스르르 왔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들 중에 몇 명이 나타나서 영계의 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습니다. ‘다행히 잠은 안 들었다.’ 그런데 아직도 40분이 남았으니 잠시 눈만 뜨고 누웠는데 또 스 르르 눈이 감겼습니다. 또 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역시 여러분들 중에 한 명이 보였습니다. 순간 있다가 사라져 눈을 떠 보니 아직 30분 정도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눈을 감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내가 자기에게 잘못을 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 니다. 나는 그에게 잘못한 것이 없으니 내 마음이 꺼리지 않았습니다. 고로 그와 나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한마디 말도 안 했습니다.   그는 전에 한 번 보았던 사람인데, 지금 관직에 있습니다. 그는 나를 쳐다보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 습니다. 그런데 내가 자기에게 뭔가 잘못한 것이 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고, 무언으로 그 마음이 내 마음에 전해 오고 있었습니다. 참다못해서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눈치만 주지 말고 말해 보십시오. 내가 지나가는데 인 사를 안 했습니까? 법으로 당신에게 어긋나게 한 일이 있습니까? 내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며 그에게 속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인상도 변하지 않고 계속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으로 그를 보니, 내가 지금 무엇인가 그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렇게 나를 쳐다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식으로 대하고 있으니 그 장면이 스 르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깨어 보니 새벽 2시 15분 전이었습니다. 평소에 정한 시간대로 일어났다고 하며 씻고 기도에 들 어갔습니다. 먼저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는 기도를 하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 다. “주님, 어제는 새벽 5시가 넘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 40초쯤 말씀을 듣고 내일은 일찍 일어난다고 약속했기에 아까부터 일어났지만 선잠 들면서 2시를 맞췄습니다. 어제 기도 중에 주님이 언제 또 오실지 물었습니다. 한 20일 후에는 올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이 깨달음만 주셔도 감사합니다. 어제 5시에 일어났어도 주님이 번개처럼 오셨다 가셨는데, 오늘부터 새벽 2시에 꼭꼭 21일을 기도하면 10초라도 오 시겠습니까?”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전에 꿈에 본 환상들을 말했습니다. 나 : “주님, 섭리 사람들이 나를 따라 2시에 기도하는지, 그 영들이 보였습니다.” 주님 : “그들은 육체를 이탈하여 온 영이 아니고 너 깨달으라고 보여 준 것이다.” 나 : “아! 천사가 그같이 깨운 것이지요?” 주님 : “그것이 아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준 것이다.” 이에 나는 ‘주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다른 먼 곳에서 나를 보시고 새벽기도 시간에 늦지 않도록 그같이 보여 주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맨 마지막에 본 환상이었는데, 어떤 관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나타나 내가 자기에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듯이 계속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해도 가지 않고 쳐다보 기에 참다못해 내가 당신에게 인사를 안 하지도 않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특별히 흠 잡힐 일을 하 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냐고 해도 계속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지요?” 이 물음에는 대답이 없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 분은 평소에 나를 해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를 무례하게 대할 때가 있었는데 그 분이 나를 불러서 “내 밑에 있는 자들이 몰라서 무례히 말할 수도 있으니 내게 말하세요. 저도 교회를 수십 년 동안 다녔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걱정 마세 요. 그리고 내 밑의 사람인데 무례했으면 이해하세요.” 했습니다. 이에 나는 “당신을 통해 주님이 나 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하니, 그는 웃으면서 “그래요?” 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 다.   옛 생각이 나서 다시 주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분을 쓰고 한 번 나타났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왜 그 분이 내 꿈에 나타났습니까.” 주님은 그제야 대답하셨습니다. “꿈으로 그를 통해 내가 아까부터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난처하고 창피하고 죄송해서 더 묻지 못하고 주님께 죄를 지었으니 죄송하다고 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 중에 주님은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내가 처음 잠에서 깬 시각부터 와 계셨는데 내가 또 자니, 나를 깨우기 위해 3번이나 환상 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 어제 일찍 일어나겠다고 말하였기에 오신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도록 주님이 함께해 주시어 일찍 일어난 것인데 평소 시간처럼 2시에 맞춰 일어나려고 2시만 기다리니, 주님이 잠을 다스려 주러 온 것이라고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일어나라.” 하지 않으시고, 무엇을 보여 스스로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의로운 방법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깨닫고 실력대로 행하게 하십니다. 이를 알고 30분 동안 회개기도를 하고 다시 주님께 가셨냐고 물으니,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회개 하니 그 회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용서해 달라고 하니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어 회개하니 얼마나 좋으냐. 내가 용서해 주니 네 마음에 꺼림 없이 얼마나 좋으냐. 너도 모든 자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며 모두 그같이 하라.”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죄를 회개하면 이 세상 누구도 사해 줄 자가 없다. 오직 나 외에 누가 있겠느냐. 죄를 어디 서 사함 받겠느냐. 모르는 자들에게 가르쳐 주어라. 회개하지 않아서 죄 짐을 짊어지고 다니면 결국 육 이 죽을 때까지 죗값으로 고통 받고, 죄 때문에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 받지 않느냐. 회개하면 천국에 가건만 죄 때문에 지옥 간다. 늘 단상을 통해 가르쳐 주며 외쳐도 회개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고,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서 그 좋은 회개를 안 한다.” 이 말씀을 듣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어제 제가 늦게 일어났지만 40초라도 제게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5시에 일어났으니 주님께 너무 죄송하여 앞으로 20일이 지나면 오실까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또 오실 것이라 고는 100만 분의 1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환상을 보고도 전혀 주님 생각을 하지 못했 습니다.”   이에 주님은 “내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도적같이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어제 일찍 못 일어나서 후회하며 할 일을 못 했다고 낙담하여 또 다시 기회를 주러 온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에 못했어도 진정 회개하고 뉘우치면 이같이 다시 기회를 주시는 주님이심을 깨닫고 여러분들도 다시 하기 바랍니다. 주님의 다스리심은 너무나도 인자하시며 사랑 자체입니다. 모두 이같이 해야 됩니 다. 주님 : “사람들은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내가 도적같이 온다는 말만 중심하며 평소에 내가 오고 가는 것을 모르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같이 2000년 동안 왔다 갔는데도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면서 하 나의 신앙 체험으로만 생각하는 잘못되고 무서운 인식들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전해 주어라. 너희에게는 지난 30년 동안 너를 통해 말씀하며 섭리를 펴면서 도적같이 왔다가 가지 않았느냐. 그런데 모두 너만 보고 좇지 않았느냐.”   나 : “내가 그렇게도 주님이 오셨다고 이야기를 해도 육적이라서 나만 따랐으니 주님 앞에 정말 민망했 습니다.”   주님 : “이제 금년도 말씀의 총 주제처럼 말씀을 듣고 새롭게 인식하고 변화를 받게 하자.”   나 :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 : “이같이 내가 네게 전혀 생각지도 않은 때 오듯이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오리라.”   요즘은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줄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오셔서 모든 택한 자들에게 회개할 기회 를 주시고 친히 기다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회를 주었을 때 근신하며 신앙의 잠을 깨우고 회개해야 합 니다. 지금은 회개하는 자의 회개를 받는 때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 “사람들은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구나. 죄를 용서받는 것이 얼마나 좋 은 것인지 모르는구나. 회개할 기회가 지나가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다. 네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 을 때 네가 회개하니 기쁘고 마음천국이지 않느냐. 그 좋은 것을 오늘 더욱 깨닫게 하였으니 깊이 전해 주어라.”   주님이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의 심정을 다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 “사람이 죄를 지으면 육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영도 같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영과 혼과 육이 흠 없이 깨끗하게 나의 강림을 맞아야 된다.” 나 : “마음으로만 죄를 짓고 행실하지 않으면 육은 죄를 안 짓는 것이지 않아요?” 주님 : “그것은 세상이 따지는 법이 아니냐. 내 비유를 들어 보아라. 네가 미워하는 자가 있어 바가지 로 물을 떠다가 뿌리니 그가 놀라고 옷이 흠뻑 젖어 손해를 입었다고 하자. 네 육도, 바가지도, 물도 다 공범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냐. 바가지는 육이요, 물은 마음이요, 육은 영과 같다. 고로 육이 죄를 지 으면 마음도 영도 공범으로 보고, 심판할 때 같이 심판한다. 그러니 회개할 때 마음과 행실과 영을 따로 나누어 골라서 회개하지 말고 다 깨끗이 해야 된다.”   나 : “주님 큰일 날 뻔했습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마음은 원치 않는데 육신이 사망을 좇아 행하였다고 하며, 어느 때는 육신만 죄를 짓고 어느 때는 행실을 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음욕을 품 어 마음만 죄를 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 “육신이 죄를 지을 때 마음이 어디 도망갔다가 오느냐. 마음과 영이 육체를 이탈하여 도망갔다 오느냐. 다 공범이다. 연대죄를 모르느냐. 자기가 죄를 안 짓고, 조상들이 죄 짓는 것을 못 보았어도 그 연대에 사는 자는 연대죄와 유전죄가 있지 않느냐. 아담 안에 있는 자는 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산 자가 아니냐. 고로 아담에게서 벗어난 자가 되어 천국에 가 있지 않 느냐. 모두 듣고 새롭게 변화하자.”   나 : “예. 그런데 이 많은 자들이 언제 다 죄를 회개합니까?”   주님 : “회개할 기회를 온 세상에 주고 섭리에도 주었으니, 급히 말씀을 듣고 회개함으로 흠 없는 신부 가 되어 나의 재림을 맞자.”   이날 주님은 못 보았지만 다른 자를 쓰고 나타나신 것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또 그 말씀을 들었습니 다. 그리고 나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언제 가셨는지 감히 묻지 않고 계속 기도만 했습니다. 이날 주님과 대화를 나눈 시간을 따져 보니 이 세상 시간으로 30분 정도 된 것 같았습니다. 역시 주님은 섭리사와 온 인류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십니다. 나를 항상 다스리시고 나 를 항상 거느리셨습니다. 때때로 울기도 하고 때때로 웃기도 합니다.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그 러나 주님이 다스리시니 기쁘고 즐겁습니다. 오늘은 이같이 주님이 다스리신다는 것만 말씀했습니다.   몇 가지 정리하는 말씀을 하고 마치겠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재림만 잘 맞으려고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앞두고 우리에 게 계속 도적같이 오셨다 가시는 주님을 깨어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재림 때도 깨어 주님을 맞 을 수 있고, 천사장의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우주 공중에서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눈에 안 보여도 오셨다가 가십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보여 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모두 보기는 힘드니 보는 것만 중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주님이 안 오실 거야.’ 하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새벽기도 때 교회에 나가지 못하면 집에서라도 꼭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은 거의 그때 오십니다. 새벽기 도 때도 오시지만 낮에 우리를 도우실 때도 오십니다. 평소 생활 가운데 오십니다. 그러나 대개 주님이 오셨다 가신 후에 알게 됩니다. 이런 자는 재림 때도 주님이 오셨다 가신 후에 알게 됩니다.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됩니다. 한 신입생의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왕복 60km여서 새벽 3시에 집에서 기도하는데 주 님이 오셔서 “3시 조건기도를 세워라. 심방 시간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이 산에서 기도할 때, 평소에도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마지막 재림과 같이 중히 여기고 맞 았습니다. 주님은 “그같이 나를 맞아야 된다.”고 하시며 “너와 같이 모든 자들도 그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섭리역사는 주님이 일으키신 역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소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고도 하나 의 신앙 체험으로만 봅니다. 정말 모릅니다. 내가 산에서 기도할 때 주님은 내게 그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나 환상 아니다. 실체가 온 것이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지구상의 그 많은 사람들을 두고 왜 나에게 오셨냐고 하며, 개인적으로 찾아오실 수 있냐고 의심하며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아니다. 준비되면 이렇게 도적같이 온다. 마지막 재림 때만 오지 않고 이같이 오다가 마 지막 재림 때가 되면 다시 온다. 평소 도적같이 오는 나를 맞아야 천사장이 나팔을 부는 재림 때도 나를 맞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꼭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는 데 있어서 철저하게 예행 연습을 하며 실제로 맞듯이 산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는 실전입니다. 그동안 섭리는 나를 중심하여 늘 주님을 맞는 역사를 펴 왔습니다. 그래서 섭리인들은 말씀을 잘 이해시켜 주기만 하면, 마치 한 지체 와 같이 어떤 사람들보다 잘 따라 행합니다. 주님은 섭리인들 중에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찾아가서 그 할 일을 도와주고 가신다고 했습니다. 정말 감사하며 모든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심정을 알아주어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저는 세상에 살 때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늘의 구름을 보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주님만 찾고 주님만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산에 가서 조용히 기도하며 준비하게 하신 후에 주 님은 저에게 도적같이 오셨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재림 전에 맞은 주님이었습니다. 이것도 주님을 맞은 하나의 재림입니다. 저는 이를 누구보다 크게 깨달았기에 지금까지 주님이 써 주신 것입니다.   2000년 동안 주님은 개인에게나 교회에나 집회 때마다 준비된 자들에게 도적같이 오셨습니다. 그러하기 에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다시 온다.”고 했고, 사도들도 “그가 곧 온다.”고 했습 니다. 그러나 2000년 동안 예수님을 기다리던 자들은 마지막 재림 때만 생각하며 늘 오시는 주님에 대해 서는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정말 주님을 맞을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십니다. 이 주님을 평소에 맞고 그의 신부가 되어 같이 살아야 천사 장이 나팔을 불면서 주님이 오실 때 신앙의 잠을 자지 않고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를 가르 쳐 주셔서 30년 동안 외쳐 왔습니다. 이해하고 깨달았을 줄 압니다. 그래서 그동안 마지막 재림보다 평 소 늘 오시는 주님을 잘 맞아야 한다고 외쳐 신앙의 잠을 깨워 온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섭리역사는 주 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는 데 첩경을 평탄케 해 왔습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깨어 있는 자가 되어 빛 가운데 거하게 되므로 주님이 오시기 전에 압니다. 주님을 기 다리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기뻐해야 그에게 주님이 오십니다. 열심히 하다가 한눈팔고 중단하고 서 있으 면 넘어집니다. 환난과 핍박과 시험이 와도 중단하면 안 됩니다. 보다 얇은 얼음 위에 계속 서 있으면 중량에 눌려 얼음이 깨져 거기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 누구 쳐다볼 것 없이, 어떤 문제와 이유를 대지 말고 신앙을 연속해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맡기신 후에 우리가 해 놓았는지, 이것만 보십니다. 해 놓고 주님을 만났을 때 그동안 애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주인을 오해하고 자기 할 일을 하지 못했습 니다. 고로 쫓겨났습니다. 갈 곳까지 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쳐다봐야 됩니다. 할 일은 꼭 해야 됩니다.   (빌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 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 라』   (딤후 4:7-8)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 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 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꼭 용서해 주라’고 주님은 이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자기도 주님께 용서받았으니 용서해 줄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해 줘야 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더욱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절대 자기를 다스리시는 자로 마음에 모시고 살아야 합 니다. 그래야 사탄과 마귀가 마음에 오지 못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5분 정도는 먼저 주님의 이름으로 마 귀와 귀신을 쫓아내고 기도에 들어가야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고 나가라고 했는데도 안 나갈 때는 옆에 있던 천사가 마귀를 보고 “너희들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했는데도 못 들은 체할 거냐?” 하며 끌어냅니다. 목사님이나 관리하는 자들이 자기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다스려 주시니 늘 자기를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새벽에 늦게 일어났어도, 혹은 너무 일찍 일어났어도 다시 잠자지 말고 꼭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은 어 느 날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났다고 했을 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늦게도 일어나고 일찍도 일어나는 것이 이치다. 시간에 인색하지 말아라. 나와 함께하면 나이 를 먹었어도 피곤하지 않고, 함께하지 않으면 젊은 사람이라도 피곤하다. 피곤한 것만 따지지 말고 주님 의 능력과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믿으라." 말씀을 줄 때 정말 잘 듣고 믿고 행해야 됩니다. 또 회개하는 기회를 주었을 때 꼭 회개해야 되고, 영과 육과 마음의 죄를 꼭 회개해야 됩니다. 고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하라.’고 주님은 늘 말씀하 셨습니다.   각 교회와 개인들은 말씀을 중심하여 급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히 질서 있게 행해야 됩니다. 어떤 사 람은 너무 영적으로 치우쳐 “여기 주님이 오셨다. 저기 주님이 오셨다. 내 말 들어.” 하고 수군수군하 며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보면 답답하니 신앙의 잠을 자는 자들에게 한마디씩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 친 자들이 있으니 경계하고, 오직 단상의 말씀을 듣고 정신 차리고 자신들이 행하면 됩니다. 또 너무 육 적으로 치우쳐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자들도 있으니 정말 말씀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됩니다. 주 님이 다스리시니 그것을 중심하기 바랍니다.   각 나라 지도자들도 먼저 기도하기 위해 모여야 됩니다. 태만하면 안 됩니다. 말씀이 나갔는데도 태만하 여 행하지 않으면 그때 주시는 것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주님이 각자에게 직접 하신 말씀임을 인식해야 됩니다. 각 나라도 모임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각 나라들은 모두 행하기 바 랍니다. 한국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뿐 아니라 일반 신앙인들도 모여 기도하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서로 똘똘 뭉쳐 생명들을 관리하며 행해 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20년 동안 섭리역사를 준비할 때부터 생활 속에서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아 살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와 같이 섭리역사 30년 동안에도 말씀 따라 행하고 전도하면서 생활 가운데 도적같이 오시 는 주님을 맞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생활 가운데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으며 살았어도 어떤 사람은 ‘하나의 신앙 체험인가?’, 혹은 ‘꿈을 꾸었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만왕의 왕이 오시는데도 그같이 맞으니 신앙이 힘들거나 죽어서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섭리역사는 신앙들이 살아서 주를 맞는 연습을 실제로 하면서 왔습니다. 마지막 재림 때 는 한 번입니다. 그 때를 위해 주님은 경고까지 해 주시며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으니, 실수하 여 맞지 못하면 후회할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는다고 해서 다른 이상한 종교들처럼 집을 팔고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정기적금을 깰 필요도 없습니다. 논밭을 팔고 집을 팔면서 시한부 종말론적 종교인들처럼 무지하게 행하 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이 재림 준비가 아닙니다. 세상의 것을 멀리하고 주 안에서 절대적으로 사는 것이 재림에 대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 앞에 할 일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며 살고, 형제들과 맺힌 것을 풀고, 기 도하고, 주님이 말씀하시고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먼저 말씀을 듣고 거듭나 성령으로 영이 다시 태어나 도록 하고, 서로 용서하고, 부지런하고, 말씀을 꼭꼭 잘 듣고, 들었으면 실천하고, 실천하여 새로운 삶 의 부활을 이루고, 어린 신앙인들을 잘 관리하고, 전도하고, 마음과 행실을 단장하고, 영을 단장하면 됩 니다. 주님이 곧 재림하신다고 해서 사업 때문에 갈 곳이 있는데 안 가면 안 됩니다. 갈 곳은 가면서 신앙에 깨어 살면 됩니다. 삶을 중지하는 사람은 마치 화장실을 가는 것을 중지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섭리역사 가 주의 강림의 주관권에 들어왔으니 이에 해당되는 삶을 근신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학교에 안 가면 안 됩니다. 자기가 실력이 없으면 못 가고 돈 없으면 못 가더라도, 꼭 갈 수 있고 가야 하는 사람이 안 가면 안 됩니다. 이는 주님을 맞는 준비가 아닙니다. 회사도 가고 아르 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어서 먹어야 쓰러지지 않고 힘을 내어 회개도 하고 교회에 올 때 차비로 쓸 수 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야 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자기도 다스리고 이웃과 형제도 잘 다스려야 됩니다. 요동하거나 혼란이 있으면 안 됩니 다. 주님이 다스리시니 말씀대로 행하기 바랍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니 즐겁고 평안할 것입니다. 그렇다 고 긴장을 풀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방심하면 절대 안 됩니다. 늘 근신해야 됩니다.   어제 주님이 오셨으니 오늘 새벽에는 안 오실 줄 알았는데 도적같이 또 오셨듯이, 자기 생각대로만 생각 하면 평소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도 못 맞고 재림 때도 못 맞습니다. “생각지 않은 때 온다.”고 주님 은 나에게 그 실상과 실체를 보이시고, “이를 모두가 깨닫게 해 주라.”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100만 분의 1까지도 주님이 다스리십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도록 늘 애원하고 기도하며 진정 원해야 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주의 다스리심에 깨어 있는 자입니다. 주님이 다스려 주시니 자기를 목사님이나 책임자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욱 주님께 매달리고 주님을 자기를 다스리는 왕으로 삼아야 수억 배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자기 주관대로 행하면 서 사는 자는 주님의 다스림의 주관권 밖에 사는 자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 각각에게 그 다스리심을 행하기 위해 찾아가십니다. 주님이 자기에게 오신다는 것 이 얼마나 큰일인지 그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아는 자에게 주님은 또 가십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대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와 사랑과,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다스리심과 은 혜와,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3월 11일 수요말씀> 우리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본 문 마태복음 16장 26절 마태복음 7장 16-20절   먼저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우리의 육신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육신이 주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해야 영도 육신과 같이 구원을 이루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육 이 제 원하는 대로 살면 그 영도 육과 같이 사망에서 나오지 못하므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하 여 계속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먼저 육신의 삶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육이 귀한 세상이고 하늘나라는 영이 귀한 세상이다. 이 세상은 육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 고, 하늘나라는 영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고 하 지 않았느냐.”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육의 세상입니다. 육신이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먹고, 입고, 집을 짓고, 생활하며 살아갑 니다. “세상에서는 육신을 가지고 살기에 자기 육의 몸이 귀하듯이 하늘나라에서는 영을 가지고 살기에 자기 영의 몸이 귀하다.”고 했습니다.   영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하늘나라가 있어도 거기 가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 영을 세상에서 육과 같이 살 때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육이 죽은 후에 때가 되면 만들어 놓은 영 으로 하늘나라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그 뜻대로 살 때 마음천국이 되고 육도 복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육신이 하나 님과 주님을 믿으며 의롭게 살았으니 그 영도 육과 같이 의로운 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육신의 삶 그대 로 영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땅에서부터 하나님과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좋아하고,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 절대 순종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 드리며 살아야 됩니다. 육신이 세상에 살 때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주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육신의 생이 끝날 때까지 주님과 한 몸같이 일체되어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 고 살아야 됩니다. 이같이 하면 영도 육과 같은 현상의 영이 되어 주님과 일체되고 하늘나라 백성이 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육이 죽은 후에나, 혹은 육이 살았을 때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주님의 재림을 맞게 됩니다. 이미 죽은 자는 그 영이 다시 온전한 영으로 부활되어 휴거되고, 산 자들은 육신이 영으로 홀연히 변하 여 휴거됩니다.   자기 육이라도 자기 영의 상태가 어떠한지 잘 볼 수 없습니다. 자기 육의 상태가 곧 자기 영의 상태입니 다. 자기 육이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구원받아 주님과 일체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면 자기 영도 그와 같이 의로운 자로 구원받은 자가 되어 산 영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태복음 7장 16~20절을 보겠습니다. 좋은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는 나쁜 열매가 열리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육은 나무와 같고, 영은 열매와 같은 격입니다. 육신의 나무가 선하고 착하고 좋아야 영의 열매도 좋고 아름답게 됩니다. 나무와 열매는 각각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육과 영을 한 몸같이 봐야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자기 육신의 마음과 행실이 영의 마음과 몸으로 그대로 흡수되고, 영은 그것을 그대로 가 지고 갑니다. 다만 죽은 시체만 가지고 가지 않는 것입니다. 주인이 육과 같은 나무만 남겨 놓고 영과 같은 열매만 따 가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로 들어오는 영양기와 나무 안에 있는 모든 진액들이 열매로 가서 그것이 커 아름다운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영이 육신의 수고와 노고, 행실과 공적, 사랑과 모든 성품을 다 흡수하여 크고 자라서 가지고 가게 됩니다. 육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합니다. 오직 신령한 몸만 하늘나라에 간다고 사도 바울도 주님의 가르침과 계시를 받고 말하였습니다(고전 15:31-53). 육이 악한 자는 그 영도 똑같습니다. 육의 마음은 영의 마음이고, 육의 모습은 영의 모습입니다. 육의 모든 공적을 영도 주인이 되어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육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면 영도 그와 같습니다. 불신의 육은 곧 불신의 영으로서 그 영도 육과 같이 행합니다. 고로 육이 죽은 후에 그 영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육신의 행실은 나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행실이 나쁜데 마음은 선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행실은 마음과 영의 반응이기에 영도 똑같습니다. 닭이 달걀을 낳고, 사슴이 사 슴을 낳고, 호랑이가 호랑이를 낳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행실에 따라 영도 낳음을 받는 것입니다. 육이 하나님과 주님과 일체되어 그 계명대로 살아 온전한 자가 될 때 그 영도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주 님의 온전한 참영이 되어 살게 됩니다. 고로 주님은 우리의 육을 보시고 “온전하여라. 마음도 온전하여 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의 말씀과 가르침을 보면, 우리들의 영을 보고 형제를 사랑하고 구제하라고 하 지 않으셨습니다. 4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형제를 용서하되 마음도 함 께 용서해 주어라. 그리하면 너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기도 해 주어라. 형제를 구제해 주고 긍휼히 여겨 주어라. 주린 자를 먹여 주고 헐벗은 자를 입혀 주고 도와 주어라. 악하게 하지 말아라. 정결 하라. 거룩하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 하고 형제들도 그같이 대하며 살라.」고 했습니다.   또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 외식과 형식을 버리고 회개하여 천국을 맞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육신은 나무와 같고 영은 열매와 같다고 하신 말씀 입니다. 이 세상은 육신의 세상이기에 주님은 육을 철저히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면 그 영은 자동적으로 온전한 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세상은 육신이 귀한 세상’이라고 가르 쳐 주시며 이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영의 상태를 보려고 하다가 안 보이면 잘 안 믿게 되고 부정하게 된 다. 육신은 제2의 영과 같다. 고로 육은 보이는 영이나 다름없으니 네 육을 보고 영의 상태를 알라.”고 실감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늘 육신을 영과 같이 신경 쓰면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영의 세계와 천국이 있는 것을 믿기는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 다. 육신의 세계가 있듯이 영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의 세상이 아닙니다. 육신의 세상이므로 영은 육신을 쓰고 삽니다. “육은 보이는 영이고, 영은 안 보이는 제2의 육으로 생각하라.”고 주님은 가르쳐 주셨고, 이에 대하여 늘 말씀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영의 법을 정하시어 육이 영을 잘 못 보게 창조하셨습니다. 육신이 신령하면 신령한 영의 눈을 떠 영을 볼 수도 있습니다. 속사람 영은 겉사람 육과 그 형상과 모양이 비슷합니다. 물론 기본 구조는 같습니다. 육의 지체와 비슷 하되, 다만 영으로 존재하는 영체일 뿐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영은 자기 육신을 닮았습니다. 그러니 안 보이는 영만 보려 하지 말고 육신을 보면 됩니다.   자기 육신을 거울로 자세히 보면, 어느 때는 자기 영의 현상이 순간 보이면서 ‘내 영도 이같이 생겼겠 지?’ 하며 스쳐 갑니다. 육은 나이 들어 늙었지만 영은 육이 젊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꿈에 자기 영을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는 자기 육신의 현상으로 보이는 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기 도를 많이 하고 생활하면 꿈에 육체를 이탈하여 활동하는 영을 볼 수 있고, 보면 바로 영인 줄 압니다. 영의 모습은 육신이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행하여 일체되어 사는 기준에 따라 좌우됩니다. 깊은 기도에 들어가 영계를 체험할 때 육체는 땅에 두고 영으로 갑니다. 꿈에 자기 영이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대부분 자기 육신이 꿈으로 현상되어 보입니다. 진짜 영의 모습은 육신이 꿈으로 현상되어 보이 는 모습과 전혀 다릅니다. 영은 육신을 닮기는 했지만 전혀 색다릅니다. 그리고 대개 자기 육보다 어립니다. 영을 보면 느낌도 다르고 ‘내 영이구나.’ 하고 즉시 감지하고 깨닫게 됩니다. 자기 영을 본 사람이 있 습니까?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왜 예수님은 세상에 살아 계셨을 때 영에 대해서는 많이 말씀하시지 않았지?’ 하며 예수님께 많이 묻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신약전서를 읽으면서 ‘영적 인 주님이신데 왜 영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시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은 육신을 귀히 여기는 세상이며 육을 중심하여 영이 사는 세상이므로 육을 통해 영 이 성장되고 육의 구원이 곧 영의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찌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겠느냐. 땅에 있는 것을 말하여도 믿지 않거늘 하늘에 대하여 말하면 믿겠느냐. 먼저는 육이요, 다음은 신령한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신앙의 삶과 육신의 행실을 정말 다르게 하고 살고 있었습 니다. 신앙과 육신의 삶이 일치되어 살지 못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른 신앙을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육 신의 행실과 신앙의 삶이 일치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또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의 문제는 육의 문제에서 옵니다. 육이 사망에서 생명으 로 온전히 나와야 됩니다. 영도 육을 따라 나옵니다. 고로 예수님은 육신의 병이 있는 자들을 고쳐 주시 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육신이 제대로 행하고 살아야 영도 살기에 「거듭나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라.」 하고 외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자세히 듣고 물 같은 말씀으로 다시 인식하여 “행실아, 새 롭게 거듭나라.” 함입니다.   물은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육이 변화되어 거듭나야 됩니다. 회개하여 행실도 마음도 거듭나 야 됩니다. 그리하면 그 영도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 육신과 함께 하나님과 주님과 일체되어 의롭게 살 아갑니다. 「너희는 이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 빛이 되어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며 살라. 먼저 는 육이다.」라고 했습니다. 육신을 버리고 영만 의롭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행위는 하나님과 주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선 하게 살든지 착하게 살든지 그냥 내버려 두고 영만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구원받아 살면 육도 영도 구원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인들을 보면 교회나 그 속에서는 열심히 하지만 생활이 변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이나 정말 제대로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산 자들은 육신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어 살았습니다. 육신의 삶 이 변화되지 못했는데 영만 구원받고 사는 자는 없습니다. 육과 영이 일체였습니다. 손으로 이웃 형제를 도와 무거운 것을 들어다 주었으면 손만 의로운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발도 하고, 머리도 하고, 몸도 같이 한 것입니다.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육이 하면 마음도 한 것이 고 영도 한 것이다. 이를 깨달으라. 고로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육신에 대하여 철저히 가르쳐 준 것이 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멀리하라’는 말은 세상에 나가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좋은 집 을 모두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을 1순위로 하고 모든 것을 쓰고 살라’는 말입니다.   『육신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말고, 세상을 제일주의로 두지 말고, 세상에 뿌리박아 빠져 살지 말 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그 몸을 가지고 와서 마음과 입으로만 ‘주여, 주 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살다가 와서 예배하고 주를 맞으라.』는 것입니다. 『주 뜻대 로 세상을 살다가 그 깨끗한 육신을 가지고 와서 주께 예배 드리고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어 디서나 주의 말씀을 떠나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됩니다.   세상을 살아도 주의 법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다스리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것들 을 좋아하며 거기에 빠져 살면 세상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제일로 하며 사는 사람은 세상에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욕과 물질에 빠져 먹고 마시는 데 모든 소망을 두고 살면 안 됩니다. 주의 뜻 대로 사는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고 사는 사람이며 세상을 이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면류관을 주고 천국을 상속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이기고 사는지, 지고 사는지 말씀을 들으면 이 순간 다 분별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꼭 이겨야 됩니다.   ‘먹지 말라’는 말은 먹을 것을 아예 외면하고 굶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의와 공의로 다스리며 주님 이 세상에서 본을 보이신 것과 같이 살라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주님은 “나의 말을 알고, 말하는 그 심정을 알라.”고 하시며 “그러므로 이 말씀을 다시 하는 것이 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이 무엇이냐. 나와 동행하면서 내 뜻대로 말씀대로 순종 하면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스리는 것이다. 육신이 세상에 빠져 육적으로만 살기 때문에 말한다. 신앙은 죽어 있고, 설교 때만 나를 생각하며 입으로만 나를 찾는구나. 육신은 육신대로, 신앙은 신앙대 로 살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외식하는 신앙인이 아니냐. 육의 멸망은 영의 멸망이다. 육신을 따라 영도 똑같이 행한다. 가령 육신이 간음할 때, 영이 그것이 싫다고 해서 육체를 이탈하겠느냐. 영도 육과 일체 되어 행한다. 이처럼 육이 죄를 지으면 영도 같이 죄를 짓는다. 고로 육의 죄는 영의 죄다. 마음의 범죄 도 육과 영의 죄가 된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어떻게 세상을 살았는지 4복음서를 자세 히 읽어 보아라. 그리고 너희들 각자에게 계시하고 깨우쳐 주는 것을 이해하고 근본을 깨닫고, 또 늘 잊 지 않게 가르쳐 주어라.”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말하겠습니다. 주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악하게 하는 자들의 행실을 멀리하고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르치셨습 니다. 지금 우리들도 그같이 살아야 됩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악을 멀리하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육적 행위를 멀리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스불론과 납달리를 다니시며 궁핍한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을 위해 살면 희망이 없으니 그 삶을 멀리하고, 육신이 하나님을 믿고 내 말을 듣고 새롭게 말씀대로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희망 에 찬 삶을 현재도 이루며 영원히 이룬다고 했습니다. 거친 세상에 사는 자들을 거친 세상과 환경에서 이끌어 좋은 환경에서 살도록 이동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 환경에 살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멀리하게 가르쳐 주셨고, 그 위치에서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 면서 마음 천국과 삶의 천국을 누리며 주와 함께 하나님을 믿고 살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심방하면서 관리해 주셨습니다. 또 창기들과 세리들과 아픈 자들과 세상이 버린 자들을 가까이하시며 그 들의 삶을 정화시켜 주시고 거듭나게 해 주셨습니다.   환경 탓하지 말고 자기 위치에서 주님을 모시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야 됩니다. 세상을 끌고 가면서 살아 야 합니다. 세상에 끌려 다니면서 살지 말라고 그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도 육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성령과 동행하면 세상을 이기고 다스리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세상과 물질을 다스리며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많은 것을 얻었어도 그것에 빠 지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물질·사랑·명예·예술 등 세상 것에 빠지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다스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계명대로 사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멀리하는 것으로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다스리면서 살라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건만(창 1:28),세상에 빠져서 살고 끌려 다니면서 살고 있으니 축복이 아니고 고통입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물에 빠져 죽으니 물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육이 세상에 빠져 영이 구원을 상실하니 세상을 멀리하라는 말임을 이해해야 뒵니다. 만일 수영하지 못하여 물을 다스리지 못하고 빠져 죽는 사람을 보 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구해 내든지,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 물을 다스리게 해 줘 야 됩니다. 무조건 수영하지 못하게 물에서 나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빠져 죽으니 물을 멀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영을 잘하더라도 물만 사랑하면서 인생이 거기에 빠져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당 히 하며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수영하지 못하는 자는 빠져 죽으니 절대 거기서 나오라. 물을 멀리하라. 수영을 배우고 다스려야 거기 빠져 죽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세상을 너무 좋아하여 육신이 거기 빠져 죽고 영혼까지 빠져 죽는다. 그러 니 거기서 나오라는 것이다”라고 주님은 애타게 말씀하십니다.   인생들은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 3년 계속해서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며 거기 빠져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 천국을 간다는 말입니까. 자신들 도 잘 알 것입니다. 육신은 육신 나름대로 그 원하는 대로 살고, 때가 되면 신앙에 몰두하는 인생은 참 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주님과 일체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후 6:14-15)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이는 지구 세상 바깥으로 나가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따라 행하지 말고 주의 뜻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정욕과 욕심과 혈기와 각종 호색을 즐기며 육신에 속해 육적으로 살지 말고, 육이 신 앙에 속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법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바울 선생을 통해 주님은 육에 속해 살지 말고 세상만 좋아하며 살지 말라고 끝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육이 사망권에 속하여 죽으면 영도 죽기 때문에 그같이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을 통해 주님은 살 아 계셨을 때 못다 한 말을 깊고도 깊게 전해 주셨습니다. 고로 육신으로 살지 말라고 편지로 계시의 말 씀을 전하여 외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 역시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과 생활하는 모든 것을 오직 주를 위 해 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멀리하라는 말을 다시 잘 들어 보기 바랍니다. 잘못 알고 이해하지 못하면 고통을 받고 오히려 주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할 것도 못 하게 됩니다. 돈을 멀리하면 먹을 것도 못 사 먹고, 옷도 못 사 입고, 잘 곳도 마련하지 못하고, 굶게 되고, 꼭 가야 할 곳도 못 가고, 차비가 없어 교회에도 못 나오게 됩니다. 육신이 이같이 되면 육으로는 신앙생활을 제 대로 할 수 없습니다. 고로 영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돈이 세상에서 판을 치고 사람들을 끌고 다녀도 절대 돈을 우선으로 하여 거기 빠지지 말고 다스 려야 됩니다. 오직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여 근본을 두고 살고, 돈과 다른 것들은 하나의 생활의 쓰임으 로 여기고 살아야 됩니다. 돈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도 그같이 해야 육도 영도 주님의 재림을 앞 두고 준비하여 깨어 있는 주님의 신부가 됩니다. 신랑을 맞을 자격이 됩니다. 세상에서 돈이 귀하기는 하지만 돈이 생명은 아닙니다. 이 세상은 돈을 신격화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경제 가뭄이 들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너 무 좋아하는 자들은 마치 간음하듯 사랑하며 사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돈을 줍니 다.   먹는 것을 멀리하면 배고파서 육신이 쓰러집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마치 간음하듯 먹는 것을 너무 좋아 한다고 했습니다. 먹는 것이 신격화되었습니다. 먹는 낙으로 살다시피합니다. 이것이 체질에 배여 살아 가고 있습니다. 먹는 것을 천국으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는 것을 중심하는 개인·가정·민족들은 정말 무섭게 이것들을 제일주의로 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꿈에 큰 돼지가 나를 쫓아다녔습니다. 나를 먹을 음식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 시대가 돼지처 럼 그같이 생각하고 산다는 계시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어느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북경 옥중에서도 “먹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고 하셨습 니다. “이 나라와 섭리를 위해 기도하여라. 나와 대화하자. 모든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라. 영을 위 해 살고 의를 행하며 살아라. 이때가 어느 때인지 아느냐.” 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빵 하나, 어느 때는 공깃밥 한 그릇 겨우 먹을 때였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서 언제 나는 이보다 낫게 먹느냐고 먹는 것에 신경을 쓸 때였습니다. 정말 제대로 먹지 못하여 먹는 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먹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 하셨습니다. 아 무것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곧 오시는 것을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중하지 않다는 말입 니다. 부자가 지옥에 갔을 때처럼 지옥의 고통을 받는 심정이었습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청하 기를, 세상에 있는 가족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이 지옥에 안 오도록 제발 한마디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도 그 부자와 같은 심정으로 내 가족들과 또 내 가족과 같은 섭리 사람들에게 그 부자보다 더한 말 한 마디를 꼭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깨달았는데 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더 지옥의 고통이었습니다. 한마디만 해 주면 되는데 그 한마디도 못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 한마디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는 사람은 지금 손들어 봐요. 말해 주지 않으려다가 말해 줍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는 이 한마디였습니다. 내가 20대에도 주님은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가 문제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도 똑같 이 말씀하심은 “육으로 살지 말라.” 함입니다. 사람이 잘 먹고 살려면 그만큼 육에 몰두하며 시간을 투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배고픈 자는 배고플수록 가난한 자는 가난할수록 더 채우려 신경 쓰게 되고, 잘 먹는 자는 잘 먹을수록 부유한 자는 부유할수록 더욱 거기에 빠져 신경 쓰며 먹는 데 낙을 누리고 먹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 마리아 집에 가셨을 때 정성스레 대접하는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드셨습니다. 음식 한 가지만도 족하니 마리아같이 말씀을 듣자고 했습니다(눅 10:38-42). 예수님은 먹을 겨를도 없이 말씀만 전하셨습니다. 음식을 잡수시기는 했지만 거기에 중심을 두지 않으셨 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하셨고, 생명을 구원하는 데 말씀과 뜻을 제일주의로 하셨습니다. 평 생 이같이 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이라도, 또 어떤 환경에서도 나와 같이 살자. 너희는 나를 최고로 중심하고 나에게 초점을 맞춰 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이하며 애인처럼 일체되어 사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으로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 14:1-5)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 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주님은 약속대로 주를 믿고 절대시하는 사람들을 위해 천국에 황금과 보석으로 된 집을 마련해 놓으셨습 니다. 우리가 조건을 세우지 못하여 못 가면 누가 가서 살겠습니까? 빈집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세상만 가까이하고 좋아하며 빠져 살지 말라. 지금 때가 되어 너희를 데리러 왔는데 준비되지 않은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 어서 회개하고, 제발 세상 좀 그만 사랑하고 나 사랑하면서 순종해. 나에게 붙어야 한다. 천사장이 나팔 불면 휴거하자고 너희들에게 왔다 갔다 하는 요 즘 나의 심정을 제발 깨달아라. 지금부터라도 천국을 좋아하고, 나를 최고로 중심하고 사랑하며 하나님 을 좋아하면서 살아라.”   마지막 한 번이라도 원칙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주님이 오실 때 데려가 주십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라 사람들은 더 먹고, 더 입고, 더 자고, 더 돈을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땅·집·명 예·예술·공부·사업 등 각종 취미와 노는 것에 빠지고 이성과 사랑에 빠져 자기 심리와 개성과 자기 좋아 하는 대로 기뻐하며 거기 빠져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온종일 자기중심의 삶입니다.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저 때가 되면 그때그때 조 금 부르고, 힘들 때 부르고, 기도 조금 하고, 주님이 사명자를 통하여 급한 소리를 하시는데도 말씀을 귀히 듣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또 교회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주님이 첫 번째로 들어가지 못하게 대한다고 합니다. 자기의 삶을 한번 생각해 봐요. 그러니 주님은 “내가 어떻게 그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겠느냐.” 했습니다. “이런 사람도 말씀을 듣고 지금부터 새롭게 하여 나와 일체되어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잘 하면 천국에 갈 자들인데 못하여 지옥으로 가니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는데 결혼을 앞두고 만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 와 사귀는 3년 동안 여자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돈 제일주의, 먹는 것과 입는 것 제일주의, 예술과 명예 제일주의, 자신만 제일주의, 환경 제일주의, 집 제일주의, 공부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남자가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3년 동안 전혀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남자 를 앞세워 자랑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상 남자는 말도 못 할 정도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 다. 명예와 권세까지 가지고 있으며 세상 그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는 세상을 너무 좋아하며 살면서 어려울 때만 남자를 찾고 눈에 보일 때만 조금 신경 썼습니다. 여 자가 결혼할 남자보다 다른 것을 제일주의로 생각하며 남자는 열 번째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좋아 하지 않으니 어떻게 이 여자와 결혼하여 살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할 수 없이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모든 것을 깨우쳐 주고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간을 주었습 니다. 이 여자는 오직 남자만을 위해 살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최고 첫 번째에서 열 번째까지 남자에 맞추어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남자가 사는 곳으로 데려가지 않는 것입니 다. 그런 여자와 산다 해도 인격 때문에 그 나라에서는 못 삽니다.   여러분들도 주님 앞에 이와 같습니다. 그 여자와 같이 여러분들도 이제야 정신 차리고 오직 주님만을 위 해 살겠다고 열심히 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할지 걱정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고 싶은 모든 것과 하고 싶은 모든 것을 구하기 전에 주님은 이미 아시고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에 금과 보석으로 된 집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세상 것보다 수십만 배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육신이 세상에서 못 쓴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세상에서 절제하며 하나님과 나를 맘껏 섬기다가 하늘나 라에 와서 영원히 쓰고 하고 싶은 것을 하여라. 너희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너희를 데리러 온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비하신 것을 우리가 좋아서 쓰는 것을 보면서 주님은 기 뻐하십니다. 그 기쁨을 누리십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나라는 환경뿐 아니라 먹는 것도 세상 것에 감히 비교할 수 없이 맛있는 것들이 많다. 영원토록 맛있게 먹으며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식사 때가 되어 식기도를 한 후에 주님도 같이 먹자고 하니, 주님은 “육의 음식은 육이나 맛있지 영은 맛없다. 영은 하늘나라의 것을 먹어야 제 맛을 느낀다. 그러니 어서 맛있게 먹어.”라고 했습니다. 감격 하여 눈시울을 적시며 진리를 깨닫게 하여 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는 성경에 기록된 것 외에도 너무 많은 것이 있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자가 이 세상에서 귀히 쓰던 귀중품을 죽을 때 천국으로 가져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모두 몇 가지는 꼭 가지고 갈 것입니다. 그 러나 천국에 가서는 너무 부끄러워서 천국에 간 그날 바로 버릴 것입니다. 버리려 해도 쓰레기통이 없어 서 못 버립니다. 버리지 못하고 영원히 짊어지고 머리에 이고 다녀야 됩니다. 그래서 다 버리고 영만 온 전하게 보물로 만들어 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육이 귀하듯 하늘나라에서는 영이 귀하다.』고 주님은 오늘 새벽에 깨우쳐 말씀해 주셨습니 다. 그 말씀을 풀어 여기까지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기도 끝나고 피곤하여 누워 있는데 한 계시를 보았습니다. 어머님이 나타나시더니 내 앞에서 보따리를 끌렀습니다. 먼 나라에서 돌아왔다고 하며 이것을 먼 나라에서 구해 왔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보따리를 푸니, 고구마 뿌리 넝쿨에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고구마가 열 개쯤 소담스럽게 달려 있었습니다. “야~ 많이 열렸다.” 하며 또 다음 보따리를 풀었는데 역시 거기도 고구마 뿌리 넝쿨에 줄 줄 매달리듯이 열 개 이상의 큰 고구마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생시에도 보기 드문 뿌리 열매였습니다. 어머님께 이 귀한 것을 어떻게 구했으며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가지고 왔냐고 물으면서, 그 두 개의 열매 넝쿨을 양손에 쥐고 “귀하다. 정말 귀하다.” 하며 잠에서 깼습니다.   이것이 무슨 계시인지 생각하면서 기도하니 주님은 “새벽기도 때 깨닫게 해 주지 않았느냐.” 하고 대 답하셨습니다. 이때 “이 세상은 육이 귀한 세상이고 하늘나라는 영이 귀한 세상이다.”라고 깨우쳐 주 셨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육도 의롭게 살면서 주님의 계명을 절대 지켜 구원받아야 영도 그같이 된다.’는 깨달음이 들면서 열 매가 주렁주렁 열린 두 개의 고구마 넝쿨 중에 하나는 육에 속한 계시고, 또 하나는 영에 속한 계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육이 잘되어야 영도 잘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의 부모로서 나의 어머니로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육도 영도 주 안에서 잘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육도 영도 잘되어야 구원이다.’ 라고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북경에서 올 때 그 많은 것 중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못하고 몸만 가지고 왔습니다. 주님은 “죽을 때도 이같이 영만 가지고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다만 먹은 것을 내 몸에 가지 고 왔습니다. 그 먹은 것이 몸속에서 변화되어 살과 영양분으로 가지고 왔고, 말씀을 받은 것은 머리에 담고 마음에 담아 왔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육에 속한 모든 것들은 하늘나라에 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다만 육이 행한 것 을 영이 가지고 갑니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육이 행한 것들은 홀연히 영으로 변화되어 영의 몸으로 가 지고 갑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말씀과 생각은 가지고 갑니다. 선한 마음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육 이 행한 모든 것을 가지고 갑니다.   이같이 주님은 “육신 세계의 것을 하늘나라로 가지고 가는 길이 있다면 영을 위해 쓰고 하늘나라를 위 해 쓰는 것이다. 음식은 못 가지고 와도 음식을 먹으면 살이 되어 가지고 올 수 있듯이, 이 세상에서 하 늘나라를 위해 쌓은 의와 공적도 하늘나라에서 집이나 보물로 변화되어 영원히 자기가 쓰게 해 놓았다. 그러나 썩은 시체는 마치 배설물같이 버리고 간다.”고 했습니다. 고로 ‘주의 강림에 특히 영과 혼과 영이 흠 없이 나타나라.’고 한 것입니다(살전5;23). 육도 마음도 영도 모두 일제히 깨끗하고 정결하고 단장된 자가 되어야 평소 때도, 마지막 재림 때도 제대로 주를 맞 게 됩니다.   육이 죄를 지으면 마음도 죄를 짓게 되고 영도 죄를 짓게 됩니다. 육이 의를 행하면 마음도 영도 의를 행한 자가 됩니다. 육과 마음과 영은 하나입니다. 그 행위를 회개하여 의인도 되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악인도 되는 것입니다. 육이 주님과 하나 되면 영도 그러합니다. 마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육이 주님의 애인이 되고 신부가 되 었다면 그 마음과 영도 그러합니다. 영의 상태는 육신의 상태를 보면 압니다. 이로서 영혼의 구원문제도 알게 되고 천국으로 갈 사람인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를 자세히 가르쳐 주시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육의 행실을 잘 보아라. 보면 알 수 있으니 나의 법에서 벗어났으면 회개하고 고쳐라. 오늘날 나를 믿는 자들이 입으로만 믿고, 몸은 따로 제 마음 대로 세상적인 삶을 산다. 고로 그 영도 똑같다. 육의 행위에 따라 마음도 그같이 되고 영도 그러하다. 세상에서 막 살던 그 몸을 제물로 드리니 잘 받겠느냐.”고 했습니다. 제물이 몸과 마음과 영이므로 흠이 있으면 안 받으시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깨끗 한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 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 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에서 쓰는 몸과 예배 때 제물로 드리는 몸이 각각인데 하나님과 주님이 받으시겠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마 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는 다니는데 세상의 삶과 신앙의 삶을 각각으로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금의 역할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한 몸이니 세상에서 살든지, 주님 안에서 살든지 똑 같아야 됩니다. 주님은 철저히 육의 행실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영도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행위를 고치고 보다 온전해지면 자기 영도 그만큼 온전해집니다. 육신의 행위가 온전해지면 꿈속 에서나 기도 중에 보다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고, 보다 깨끗한 집에 있고, 보다 깨끗한 환경에 있는 것 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해야 육도 마음도 영도 홀연히 변화가 일어납니다. 금년도 총 주제와 같이 섭리의 모든 자들이 정녕코 변화를 이룰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행하지 못하면 마음도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행동하지 못한 자는 죽은 신앙이 며 죽은 영입니다. 사망권에 있는 영입니다. 고로 주님은 정말 온전하게 행하셨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 록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며 온전한 말씀을 늘 전하셨습니다. 온전한 삶에서 생명의 말씀이 솟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은 빛나고 광명한 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바울은 눈이 부셔 서 예수님을 쳐다볼 수 없어 쓰러졌습니다. 주님의 육신도 찬란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기에 그 영도 해같이 빛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아야 됩니다. 그래야 천적, 마귀와 귀신들이 가까이하지 못하고 그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 마귀와 귀신들이 우리에게 감히 666인을 치지 못합니다. 누가 늘 시켜서는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말씀을 듣고 하고 싶어 하고, 휴거되어 천국에 가려 고 결심하고 행해야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주님이 친히 함께하시어 온전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행한 자는 육도 빛나고 영도 빛났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정신이 썩으면 육도 썩고 영도 썩는다.”고 주님은 철저히 나를 깨우쳐 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에 놓고 깨어 행해야 됩니다. 이때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압니까? 말씀이 없으면 몰 라서 못 합니다. 세상에 빠져 살지 말고 주님과 같이 세상을 다스려야 됩니다. 주께서 기회를 주셨으니 지금의 기회가 지나면 더는 없습니다. 지난날 삶을 생각해 봐요.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살진 않았는지 생각해 봐요. 정말 좋아했지요? 모두 한 두 가지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행하고 먹고 마신 후에 그제야 주님을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하면서 삶은 먹고 마시고 세상의 것들을 즐기며 살면 안 됩니다. 이는 주님을 제일주의로 하는 삶이 아 닙니다. 주님의 일을 먼저 하고, 주님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입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살다 보면 세상을 사랑할 시간이 없어서 못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기에 시간을 다 씁니다. 육신은 물질계이기 때문에 하다 보면 체질화되어 후 에는 정말 세상을 떼지 못하고 거기에 시간을 다 쓰고 삽니다. 다스려야 됩니다. 먹고 입고 자고 행하는 것 외에도 가지가지 모두 다스려야 됩니다. 세상보다 천국을 더 좋아해야 천국에 갑니다. 천국에 데려다 놓아도 세상에서 살듯 하면 미쳤다고 다 싫 어하고, 예수님께 보고하고, 신고하고 쫓아냅니다. 그러면 다른 세상으로 가서 살아야 되는데 지옥에서 도 다른 것을 더 좋아하며 살고 싶어도 사랑하고 좋아할 대상이 없어서 못 합니다. 사랑받는 대상도 없 고 먹는 것과 즐기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과 같이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영계 세상에는 어떤 세계를 가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온전히 살다가 천국에 가면, 오직 천국만이 하나님의 법에 의해 주님의 뜻 속에서 그 나라 뜻 에 따라서 최고의 영화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천국에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노는 것들이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좋은 것들만 있습니다. 그것을 즐 깁니다. 그러나 세상처럼 무질서의 세계가 아닙니다. 질서 있게, 성결하게, 거룩하게, 뜻있게, 존경스럽 게, 권위 있게, 아름답게, 의롭게, 사랑스럽게, 기쁘게, 꺼림 없이, 보기 좋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과 함께하는 세계로 창조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배워야 됩니다. 주기도를 보면 ‘하늘나라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 다. 땅에서도 기도하며 그같이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 아야만이 하늘나라에 가서 천 배 만 배 맘에 들어 하며 기쁘게 살게 되고 영의 체질에 맞게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지금 말씀으로 관리하시고 다스리십니다. 말씀을 생명시하고 지켜야 주님과 일체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한 것을 정리해서 머릿속과 마음속에 쏙 들어가게 해 주겠습니다.   <핵심 정리> 세상은 육신이 귀한 세상입니다. 고로 육신이 세상에 속하여 세상을 사랑하며 육신대로 살면 영도 육과 일체되어 똑같은 자가 됩니다. 고로 육도 영도 사망권에서 계속 살게 됩니다. 나무와 돌을 옮겨다가 월명동에 갖다 심고 쌓듯이, 육신이 주님의 주관권으로 와서 참포도나무와 접붙이 듯이 주님과 하나 되어 그 주관권에서 주님을 머리로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영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구원받은 영으로서 주와 하나 되고 참영이 되어 세상에서 살다가 때가 되면 휴거되어 하늘나라에 가게 됩니다.   육과 마음과 영은 한 몸입니다. 따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고로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육신의 행실을 지적하시며 고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육신의 세상입니다. 육신이 귀한 세계입니다. 천하를 주 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입니다. 육신이 죽으면 영의 성장이 멈추고, 그동안 육을 중심하여 한 것을 기준 하여 지옥이나 천국으로 결정됩니다. 육신을 통해 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보이는 영만 보려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은 마치 육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육신이 선하면 영도 선하고, 육신의 행실이 썩어 있으면 정신도 영도 썩은 자입니 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의식 없이 살다가 그 육을 가지고 주님께 예배합니다. 육도 영도 신령 과 진정으로 살지 못하다가 와서 예배하면 하나님과 주님이 안 받으십니다. 세상을 다스리며 주 안에서 깨끗하게 살다가 와서 그 몸과 영으로 예배해야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육은 제 맘대로 미워할 사람들 다 미워하고 할 짓 다 하면서 신앙은 경건한 척했습니다. 고로 주님은 꾸짖고 심판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이 그러합니다. 영육을 깨끗하게 해야 됩니다. 재림 때는 육과 마음과 영이 깨끗해야 휴거됩니다. 삶을 깨끗이 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맞아야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디를 가도 자기 몸 하나 금빛 찬란하게 만들고 챙기라.”고 했습니다. 또 “환 경이 뭐 그리 중하냐. 먹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 나중에는 가지고 가지도 못한다. 오직 몸을 빛나게 하 면 자기 영도 빛난다.”고 했습니다. 자기 몸을 건강하게 하고, 신앙을 보석같이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영도 그같이 됩니다. 육신의 행실 과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행실로 바뀌지 않고서는 그 영은 절대 사망권에 처한 영이 되어 구원이 상실됩 니다. 30년 동안 섭리사의 교리는 ‘실천’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행하라!”고 했습니다. 육적인 변화와 영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됩니다. 먼저는 육 있는 자요, 다음은 신령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고로 계시에 두 개의 고구마 넝쿨에 달린 열매들을 보이셨습니다. 이는 육적 인 것과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육이 신앙의 불구자면 영도 그러하다고 선지자들도 외치고 구약 때 하나 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을 읽어 보면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육신의 행실과 마음을 계속 지적하시며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모두 깨닫고 주님을 맞는 데 있어서 육신과 행 실을 거룩하게 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절대 주님과 일체되어야 합니다.   육신이 행한 것은 일체(一切)영이 가지고 하늘나라로 갑니다. 악한 자는 그 영이 악하여 사망으로 갑니 다. 먹는 것은 못 가지고 가도 먹고 살을 찌워서 가지고 갈 수 있고, 치약과 칫솔을 못 가지고 가도 그 것으로 이를 닦아 깨끗이 하여 가지고 갈 수 있고, 책은 못 가지고 가도 머리에 외워서 가지고 가는 것 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에 갈 때는 육은 못 가지고 가기에 육신의 것을 다 소화하고 흡수하여 영이 그 공적 을 가지고 갑니다. 음식을 먹고 살찌우고 나머지는 배설물로 버리고 가듯이, 육도 배설물같이 버리고 영 만 간다고 주님은 이치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외국에서 자기 나라로 돌아올 때는 과일을 못 가지고 옵니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에 공항에서 막습니 다. 그러니 실컷 먹고 영양가를 몸에 흡수하여 가지고 오면 됩니다. 이와 같이 육과 육의 것은 하늘나라 에 못 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육의 행실과 의는 일체(一切) 영이 가지고 갑니다. 육의 공적은 영의 살과 뼈가 되어 가지고 갑니다. 육의 행실로 인하여 자기 영이 성장하고, 때가 되면 정화되어 선으로 가지고 갑니다. 휴거도 이 같은 이치로 말했습니다. 육신이 홀연히 변화하여 썩지 않는 영으로 살아나 휴거된다고 했습 니다. 음식을 먹으면 홀연히 변화하여 예쁘고 부드러운 살이 됩니다.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내용이 변화 하여 머릿속에 녹화되고, 행실로 변화하여 행동하게 됩니다.   주님은 세상의 것을 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너 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꼭 이해하고 들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각자의 체질에 맞게 집도 환경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웅장하고 신비하고 아름답게 꾸며 놓으셨으니, 천국으로 가 는 조건을 세우고 외롭지만 주님과 하나 되어 살다가 후에 천국에 와서 영원히 누리라고 했습니다.   월명동을 개발하기 전에 섭리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전도도 안 하면서 다른 데 가 서 욕먹고 제재받으며 놀지 말고 참아라. 실컷 놀고, 뛰고, 공을 찰 수 있게 만든 곳에서 와서 아무 제 재 받지 말고 놀아라.” 했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며 놀지 않고 참고 섭리를 뛰던 자들은 월명동에 와서 보람 있게 뛰놀게 되었습니다. 주님도 하늘나라를 다 준비해 놓으시고 데리러 오셨는데 세상을 너무 좋아하며 거기에 빠져 사는 우리의 육신들을 보고 한탄하시며 “마지막으로 준비하라고 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겠지요?   섭리사는 빨리 빨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약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판 이 식어 버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가야 됩니다. 주님 앞에 낙심하면 순위가 바뀝니다. 절대 주님을 신임 해야 됩니다. 정리가 되었지요? 설교 때마다 말씀한 것을 반복하여 말해 주지 못하니 말씀을 계속 반복하여 보기 바랍 니다. 주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크십니다. 주님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행 하는 자와 동행하십니다. 또 수시로 도적같이 오셨다가 가십니다. 안녕~ 모두들 잘 가고 또 만나요. <2009년 3월 15일 주일말씀>   예비해 놓고 있으라 정말 생각지 않은 때 주님이 오신다   본 문 마태복음 24장 40-51절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주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다뤄야 될 것인지를 먼저 엄히 말씀하 셨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꼭 들어야 된다. 그리고 성경도 본 후에 말씀을 들어야 나의 마음과 일체되고, 책망 을 받지 않고, 제대로 재림을 예비하게 된다. 또 내가 준 원본의 말씀은 건드리지 마라. 토를 달지 말고 내가 주는 말씀의 원본 그대로를 전해 주고 기록도 하라.” 주님은 주님이 주신 원본 말씀에 대하여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원본은 건드리지 말아라. 원본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아라.”   사도 요한이 묵시의 말씀을 기록할 때 엄히 말씀하셨듯이 나에게도 말씀하시며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계시록 22장 19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천국에 오는 것을 제하여 버린다 고 했습니다.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 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너무나도 두렵고 더 이상이 없는 대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주님의 원본 말씀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가는 전화번호와도 같고 주소와도 같은 말씀 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더해도 안 되고 빼도 안 됩니다. 그 러면 하늘나라를 제대로 찾아갈 수가 없어서 다른 길로 가게 됩니다. 다른 길로 가서 구원을 받지 못하 므로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감을 제한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도 자기가 말한 것을 듣고 전하는 사람이 제 감정대로 더하거나 빼서 전하면 너무도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자기의 어떤 좋은 세계에 오지 못하도록 제하여 버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원본 말씀과 성경 말씀을 제 마음대로 빼거나 더해서 전하면 천국에 들어감을 제하여 버린다는 말씀을 깨달아야 됩니 다. 30개론 말씀도 선생이 가르쳐 근본을 인식시키는 것과 여러분이 가르치는 것을 비교해 볼 때 너무 차이 가 나게 가르치는 것이 많습니다. 어떤 것을 너무 부각시키거나 더해서 가르치는 것이 많습니다. 주님을 근본으로 한 말씀인데 말씀을 받아 와서 가르치는 자를 부각시키면서 가르칩니다. 그것도 원본에 더해서 가르치는 것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선생이 직접 가르치면 주님에 대해 제대로 증거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고, 말씀 중에 주님이 나타 나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가르치면 내가 나타나게 가르칩니다. 말씀을 받아 온 사역자를 통 해 주님이 역사하시니 눈에 보이는 자를 중심하게 됩니다. 육적인 사람들입니다. 단상에서 목사님들이 말씀을 잘한다고 해서 목사님 중심하면 되겠습니까. 말씀의 원본자는 주님이십니다. 그 다음은 받아서 쓰고 만든 자입니다. 그 다음은 외치는 자이며 듣는 자, 실천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받아 오는 자도 절대 믿어 줘야 합니다. 모세같이 귀한 역할을 하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주시는 자는 말씀의 주인이시며 그 말씀대로 이끌어 가고 목적을 이행할 전지 전능하신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늘 생각해야 됩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말씀의 원본자이신 주님을 범사에 기억하고 생각하며 ‘이래서 이 말씀을 주셨구나.’하고 감사하고 고마워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은지 주님과 일체되지 않은 자는 정말 모릅니다. 왜 중매한 사람만 좋아합니까. 중매한 사람 때문에 대상자와 살게 되었다고 중매자를 대상자보다 더 가까이하면서 살면 대상자가 어떻게 생각 하겠습니까. 모세와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과 주님이 귀히 보셨기에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또 실력이 있어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택하였기에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받은 자의 말을 안 들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제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아 주는 사역자를 말씀의 원본자이신 주님보다 더 귀히 여기니 말씀을 받아 주는 자가 그들의 잘못을 고쳐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귀히 여김을 받는 자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입니다. 다른 사 람은 못 합니다. 항상 원본을 더욱 빛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설교하는 사람이 해야 되지만 원본을 더하 거나 빼면 안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깨닫겠습니까.   주님은 “이 시대도 네게 준 말을 다른 말로 바꾸거나 빼지 말고 전하고 기록하라. 다만 원본을 놓고 그 말씀의 근본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로는 설명을 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주님의 원본 말씀이고 어디까지가 사람이 깨닫고 설명하는 말씀인지 궁금할 것입니 다. 설명하는 것도 주님이 원본을 주시어 그것을 지혜와 성령의 감동으로 비유를 들거나 다른 말로 감동 시켜 하게 하시니, 사람을 통해 하는 말씀도 제대로 전하면 다 귀한 것입니다. 말씀의 원본을 더하거나 빼거나 손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첫째, 주님이 쓰시는 문법과 문자의 근본을 알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님은 과연 어떻게 그것을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말씀하시면 책 한 권도 한마디로 줄여 잠언으로 짧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천 마디 물음에 한마디로 짧게 대답하셔도 천 마디 물음에 대한 답이 되게 대답하십니다. 고로 단어를 만들어도 다른 말이 됩니 다.   말씀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해, 또 문법을 어느 정도 전지전능하게 쓰시는지 알게 하기 위해 원본을 손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 말씀의 원본을 손대면 말씀의 본질과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성경은 원본 말씀이니 그대로 전하되 설명해 주라고 했습니다. 고로 원본 말씀을 읽고 싶은 사람은 성경 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목숨 걸고 고통을 겪으며 순교해 가면서 기록한 말씀이다. 또 극한 환난 가운데 옥중에서, 혹 은 산속에 들어가 굶고 쓰러지면서 기록한 말씀이다. 그런데 왜 제 생각대로 빼고 더하여 가르치느냐. 편한 시대에 살면서 편히 방 안에서 성경도 주일말씀도 다시 읽어 보지 않느냐. 성경은 나에 대해서 말 했는데 왜 나를 알려고 힘써 읽지를 않느냐. 나에 대해서 알려면 읽어라. 읽을 때는 집중하여 깊이 읽어 야 깨달아진다.”   주님이 사명을 주어서 쓴 책도 한두 번 읽고 끝납니다. 모든 것을 건성으로 합니다. 완벽하게 행하시는 주님은 그런 사람을 신부로 삼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주님의 음성이 글과 겹쳐 마음에 들려야 성경 원본을 깨달아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천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하시며, 실천할 때 주님이 도우시고 함께하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원본을 깨달아야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주님이 행하신 일이며 하나님과 주님의 사명을 받은 자들이 행한 일이기에 원본을 읽고 깨달아야 사명을 주신 하나님과 주님에 대하여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원본의 말씀을 귀하게 보고 생명시해야 됩니다. 근본으로 보고 전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잘못 풀어 잘못 전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동안도 주님이 확실히 깨우쳐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될 수 있는 한 저 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주장하고, 확인하고 말해야 됩니다. 듣는 자는 말씀을 잘 이해해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에 대한 깊은 것을 몇 시간 동안 말한 후에 정말 잘 알아들었는지 다시 확인해 보았을 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행하는 것을 많이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섭리 사람들도 마 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원본 말씀의 핵심만 전하려다가 잘못 전한 것이 있으니 계속 교정하면서 말씀을 전 하고 있습니다. 가장 근본은 ‘주님만이 구원주이시다.’,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된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사해 주신다.’, ‘유일신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님은 삼위일체 다.’, ‘주님이 재림하신다. 인간은 재림주가 될 수 없고, 다만 선지자와 사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위해 보낸 사역자들이다.’입니다. 이외에도 많지만 원본 말씀에 절대 어긋나면 안 됩니다. 부활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마귀에 대하여 주님이 말씀하신 원본 말씀과 표적들은 절대 그대로 전하고 다만 풀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그렇게 짧고 간단하게 썼느냐고 주님께 물었을 때 원본 말씀만 연결하여 쓰다시피 했다고 했습니다. 또 주님이 일일이 다 코치하고 인도하여 썼다고 했습니다. 20대에 산에서 주님의 원본 말씀을 꼭 듣고 싶다고 했을 때 주님은 “성경을 내 음성같이 듣고, 내가 설 교하는 것같이 외쳐 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니, 성경을 읽다가 감동되어 감격해 울면서 예수님의 음성을 깨달은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성경은 내 원본 말씀이다. 원본만 기록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토를 달지 않고 기록된 말씀 입니다.   이제 말씀에 대해 이해를 했을 것입니다. 성경 원본을 제대로 풀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근본을 제대 로 알고 해석하고 전해야 주님과 일체되고 신앙이 생명권에서 주님의 시대 역사를 펴 나가게 되는 것입 니다.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또 어떤 교파가 살아서 주님과 함께 열정적으로 시대에 맞는 뜻을 펴는지 말씀을 들으며 지켜보기 바랍니다. 주님이 비유를 들어 하신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열 명의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 차(茶)를 대접했다. 차를 대접한 자는 손님들에게 차의 맛이 어떤지, 무슨 차 같은지 물었다. 모두 대답하기를 맛이 텁텁하다고 하며 무슨 차인지 모르겠 다고 했다. 이들이 차를 많이 안 마셔 봐서 모르겠느냐. 차의 종류를 몰라서 모르겠느냐. 모두 생각해 보아라. 또 그 집의 다른 사람이 손님들에게 차 한 잔씩을 대접하고 차 맛이 어떤지, 무슨 차 같은지 물 었다. 이에 손님들은 차 맛은 쌈박하고, 매실차라고 대답했다. 전의 것은 모르고 후의 것은 아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한 가지 종류의 차를 타 줘야 즉시 알고, 맛도 한 가지로 동일하게 느끼지 않겠느냐. 이 시대 말씀도 그렇게 전해야 되고, 행함도 생각도 그렇게 해야 된다. 시대가 급하니 속히 깨닫도록 깨우 쳐 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너무 합당하여 소름이 끼칩니다. 오늘의 원 말씀을 듣겠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 마태복음 24장 40~41절을 보겠습니다. (마 24:40-41)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 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흔히 사람들은 이 말씀을 두고 믿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데려가지 않는다는 식으 로 풀어 전하는데, 이 말씀은 누구를 두고 말한 것이냐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자들을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 데려가는 2:1의 비율이라는 말이 아니고, 데려가는 사 람도 있고 버림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마태복음 24장 42~44절을 보겠습니다. (마 24:42-44)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날 재림 때에 버림을 받는 자들은 신앙이 깨어 있지 못하고, 완전하게 준비하고 예비해 놓고 살지 않 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완전하게 예비한 자만이 내가 도적같이 와도 맞을 수 있다. 너희가 정말 생각지 않은 때에 온다. 그러 므로 깨어 완전하게 준비하고 있으라. 정말 그리해야 나를 맞는다. 깨어 준비한 자에게는 도적같이 아니 올 것이다. 그래도 그날에는 도적같이 나타날 것이다. 모두 놀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말한 그대로다. 생각나고 깨달을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5~51절을 보겠습니다. (마 24:45-51)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 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서 주인이 원하는 대로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이며, 주인이 올 때에 종 이 그같이 하는 것을 보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양식은 말씀입니다. 그 시대에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알지 못하는 자는 버림을 받는 자가 됩니다. 말씀을 주님같이 보고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받게 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주일말씀과 수요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자기 얼굴의 눈·코·입·귀와 같이 귀하 고 목숨과 같이 귀합니다.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온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좋아하며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와서 이를 보고 엄히 때리고 벌을 주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 “속히 곧 오신다.”, “더 여유가 없다.”고 하며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이 시간마저 끝이 다가온 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늘 긴장하여 준비하고 예비하는 사람을 주님은 이 시대 에 최고로 좋아하십니다.   *“때가 되어 마지막 말씀을 선포한다고 해서 하늘만 쳐다보며 천사장의 나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아라. 역사는 과정이다. 과정 속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그동안 외친 말이 기억나지 않느냐. 과정 없 이는 목적지를 갈 수가 없고, 과정 없는 역사는 없다. 역사는 동시성이라고 한 말을 잊었느냐. 잊지 말 고 늘 생각하며 말씀을 들어야 된다. 지금은 재림을 곧 앞에 두고 마지막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과정 중에 재림을 준비하고 행하라는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이 그 날을 위한 지금의 자격자가 되는 것이다. 과 정 중에 깨끗이 회개하고 정결케 행하며 늘 주님을 맞아 살아야 한다. 이런 사람이 역사는 동시성이라는 말씀과 같이 그 날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게 되는 것이다. 재림 전에 주를 맞고 산 자가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고 주님이 도적같이 오실 때에도 부활되고 휴거되어 주를 맞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 이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깨달았습니까? 주님 말씀의 원본은 꼭 쓰고 외우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하겠습니다. (‘*’ 표시한 부분의 말씀을 다시 외쳐 주어라.) 이제 어떻게 이 말씀을 생활 속에서 더욱 깨닫고 실천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앞에서 마시는 차를 두고 비유한 말씀을 들었지요? 한 가지 종류의 차를 타 주면 누구든지 무슨 차인지 그 맛과 종류를 금방 알 듯이,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전지전능하 게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래서 원본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말고 전해 주고, 이에 설명하는 것은 더 해 줄 수도 있고 덜 해 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는 것이 곧 설교이며 주님의 원본 말씀입니다. 모두 신약성경을 20독 이상 정독하도록 해요.   여러분들도 말을 조리 있게 하고 강의도 잘하려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배워야 합니다. 저도 처음에 는 말을 더듬기도 하고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했는데 주님께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세상 말을 하기는 쉬운데, 하늘 말을 조리 있게 감동을 주며 제대로 깨닫게 해 주고 은혜를 주면서 하기 는 어렵습니다. 하늘 말은 감동으로 해야 됩니다. 주님은 “자세히 해야 알아듣고, 그 해당되는 말만 간 단히 여러 번 해 줘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오늘 말씀을 깨닫도록 더욱 자세히 말씀하겠습니다. 원본 성경 말씀은 머릿속에 넣고 꼭 잊지 말고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원본 말씀을 모르거나 정신에서 잊어버리고 말씀을 듣는 자는 마치 목적지를 잊고 가는 자와 똑같아서 방황하며 그 수고는 헛수고가 됩 니다.   「평소에 주님을 맞은 자가 마지막 재림 때 휴거되어 주님을 맞는다」는 축소된 말씀을 꼭 외우고 들어 야 됩니다. 역사는 동시성이듯이 평소 주님을 늘 맞는 역사가 마지막 재림 때도 주님을 맞는 역사가 됩 니다. 마지막 재림 전에 주님이 어떻게 나타나시는지 먼저 말씀하겠습니다. 알아야 평소에 주님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꿈에 나타나기도 하시며, 혹은 새벽이나, 기도 중에나, 낮에 생활할 때나, 밤길을 갈 때 나타나 기도 하십니다. 반드시 뜻이 있어 나타나십니다. 나타나시면 얼굴만 비치고 그냥 가지 않으십니다. 우리 의 행함을 보시든지, 어떤 것을 깨우쳐 주시든지, 어려운 문제를 도와주시든지 표를 내고 가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관심 없이 보거나, 하나의 환상같이 보고 말하거나, 하나의 체험으로 보고 끝나거나, 신앙이 잠자는 상태와 정신이 썩은 상태로 보면 그냥 보고 지나치게 됩니다. 주님이 깨우쳐 주신 것도 못 깨닫고 말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근신해야 합니다. 또 주님을 보면 실제 온 것같이 귀히 맞고 간 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늘 회개하며 깨끗한 마음과 행실로 감격하면서 실제로 주님을 맞듯이 재림을 예비해야 됩니다. 특별히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보면 그 곳에 갔다 왔어도 그것을 못 보고 오듯이, 주님에 대하여 신경을 쓰고 살며 깨어 기도하고 근신해야 주님이 오심을 알게 되고 깨닫게 하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요즘 주님은 수시로 도적같이 오고 계시니 정말 내가 말한 것을 믿기 바랍니다.   어느 때는 실제로 보이게 오시기도 하지만, 거의 모습을 안 보이시고 기도 가운데 깨닫게 해 주고 가십 니다. 또 성경을 읽을 때 오셔서 자기 문제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오셔서 깨닫게 하시고, 집 회 때나 예배 때 오시고, 형제를 용서해 줄 때 오시고, 일할 때나 생활 속에 오시고, 찬양하고 전도하며 강의할 때 오시고, 새벽에 오시고, 구제할 때 오시고, 원수를 사랑할 때 오시고, 감사할 때 오시고, 위 험할 때 오시고, 사고 직전이나 사고 났을 때 오시고, 심판할 때 오십니다. 이렇게 그 언제라도, 알 수 없이 24시간 속에 도적같이 오십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꼭 알고 대화를 해야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때 빨리 자기가 할 말을 해야 됩니다. 주님은 “네 시간은 네 시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순간 만나는 시간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자기 시간으로 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평소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줄 알아야 재림 때 휴거되는 자격을 갖추어 천사장이 나팔 을 불 때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부활되고 휴거되어 주님을 맞아 천 년 동안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기쁨으 로 살게 됩니다. “꼭 꿈으로나 환상으로만 계시를 받으려고 하지 말아라. 평소에 지혜로 계시가 전달된다. 이는 머릿속 에, 뇌 속에 어떤 깨달음이 오고 그 현상이 꿈에 보이듯 느껴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서 7장 1~15절을 보면, 다니엘 선지자는 뇌로 계시를 받고 번민했습니다. (단 7: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큰 짐승 네 마리가 뇌에 스쳐 보였습니다. 이에 번민하니, 해석해 주는 천사가 네 마리의 큰 짐승은 네 왕을 말하는 것으로 각각 보인 모양에 따라 그와 같음을 말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뇌로 어떤 현상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낮에 현장에서 사건이 닥쳐오는데 그날 밤에 잠자는 중에 꿈으로 전달하면 늦어서 안되기에 즉시 뇌로 계시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만물을 보여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계시를 하십니다. 주님의 계시는 다양합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로 도적같이 역사하니 깨어 있어야 안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말씀은 안 하셔도, 알고 맞는 자는 주님이 자기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즉시 깨달아집 니다. 영계에서나 육계에서나 특별히 주님을 실체로 만나면 말이 필요 없이 줄줄 주님의 마음이 전해져 깨닫게 됩니다.   천국은 말이 없어도 거의 서로 전달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 를 하고 싶으면 입이 있으니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오시면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을 무언으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주님은 문제가 있고 고민이 있고 걱정이 있는 자에게 사람을 통해 나타나셔서 인성과 신성으로 충분히 말씀하시고 계시하실 때가 많습니다. 신성이란 주님이 사람을 통해 원본대로 말씀하시는 것이고, 나머지 는 감동으로 그를 설득하면서 보낸 자로 말하게도 하신답니다. 이는 ‘인성’이라고도 합니다. 주님이 이같이 깨우쳐 주실 때 깨닫고 즉시 돌이키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단상에서 제가 직접 말씀을 전할 때 설교를 많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어느 때는 천둥 번개 치듯이 전하고, 어느 때는 물 흘러가듯이 전하고, 어느 때는 주님의 웃음을 나로 보여 주시 고, 어느 때는 주님의 모습을 느끼게 하시고, 어느 때는 그 음성을 느끼게 하며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저뿐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다른 자들을 통해서도, 전도자들을 통해서도 많이 역사하시면서 나타나십니 다.   평소 깨어 있는 자로서 정신이 살아 있는 자가 주님을 맞게 됩니다. 평소에 주님을 맞고 만나고 교통하 면서 같이 사는, 살아 있는 생명권의 신앙생활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 오 시는 주님을 맞는 데만 신경 쓰면 안 됩니다. 평소에도 못 맞으면 마지막 재림 때도 제대로 못 맞는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미리 완전히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이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주님을 맞지 못하고 마지막 재림만 기다리고 살면 무슨 맛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무슨 멋으로 인 생을 살아갑니까.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만 막연히 기다리며 희망으로만 살지 말라고 지난 30년 동안 외쳐 왔던 말씀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지금 신부로서 늘 주님을 맞고 살아야 한다.」고 30년 동안 외쳤던 말씀을 잘 듣고 주님과 같이 살아 온 자들은 주님의 재림을 더욱 잘 맞을 자들입니다. 평소에 늘 주님을 맞고 사는 것도 하나의 주님의 재 림을 맞은 자라고 그동안 가르쳐 왔습니다. 흔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마지막 재림만 기다리고 희망하면서 현실에는 그냥 주님을 믿고 사는 정도입 니다. 현실이 재림보다 더 중합니다. 주님을 맞는 준비를 하다가 주님을 만나 맞고 이야기하며 어떻게 오시나 물어도 보는 것입니다. 결혼을 준비할 때 신랑이 신부를 수시로 찾아오는 격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나 사명자들로 노여워하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마저도 들 을 때만 생각하고 평소에는 잊고 삽니다. 평소에 주님을 제일주의로 하고 일체되어 살면 그같이 말씀하 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평소 때나 재림 때 주님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말씀할 테니 잘 듣기 바랍니 다.   첫째, 자기가 지은 모든 죄를 낱낱이 회개해야 됩니다. 저에게 잘못한 것은 제게 고하고, 그 잘못을 다 시 행하지 않고 제가 시킨 대로 했으면 용서한다고 한 대로 용서받은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과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마음 상하게 불순종한 것들을 깨끗이 회개해야 됩니다.   셋째,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범한 것이 죄입니다. 한다고 하고 안 한 것도 죄지만, 할 것을 안 한 것도 죄라고 주님은 말씀하셨 습니다. 죄에 대하여 알고 회개하여 깨끗하고 정결케 해야 됩니다. 회개하고 또 그 일을 행하면 또 더러 워진 것입니다. 회개했으면 안 해야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제 시간에 일어나 기도하는 중에 보니, 내가 씻은 욕조의 물이 깨끗했습니다. 기도 끝 나고 피곤하여 말씀을 안 보고 운동도 안 하고 잠을 잤더니, 그 욕조가 또 보이면서 깨끗한 물이 더러워 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깨달으라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옷을 많이 빨아 봤지요? 이 말씀은 이미 ‘구원의 말씀’에도 나간 말씀입니다. 흰옷이라도 빨아서 물을 짜면 빨아진 옷에서 구정물이 나옵니다. 완전히 빨아질 때까지 구정물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완전히 회개하지 않으면 자기 입을 통해 자꾸 원망이 나오고, 그 사람에 대해서 또 말 이 나오고, 거짓말도 나오고,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옵니다. 이는 아직 완전히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옷을 빨 때 더 이상 구정물이 안 나와야 완전히 빨아진 것입니다. 구정물이 나오듯이 입에서 자꾸 더러 운 말이나 거짓말이나 원망이나 용서가 안 된 말이 나오면 구정물이 나오는 덜 빨아진 옷과 같습니다.   주님은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고 원본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2;34,마15;18). 이로써 그 사람이 완전히 회개되었는지 알게 되고, 자신이 깨끗이 회개되었는지 알게 되니 모두 깨닫기를 바랍니 다. 완전히 빨아진 옷은 아무리 옷을 물에 넣었다 짜도 깨끗한 물이 나오듯이, 입에서 더러운 말과 용서하지 않은 말이 전혀 나오지 않고 선한 말만 나와야 진정 회개한 사람입니다. 그는 진정 형제를 용서한 사람 입니다. 그 형제야 어떻게 하든지 용서해 주는 사람은 평소에 주님을 맞고, 재림 때도 주님을 맞을 사람 입니다. 나를 재판한 자들이 주님을 잘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니 주님은 나의 기도를 침묵으로 듣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회개했는데 정말 회개되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위를 보며 깨닫고,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고 깨달으라고 옷 빠는 이야기를 해 준 것입니다. 죄는 마치 자기 몸에 붙어 있는 시한폭탄과 같아서 빨리 회개하고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다 되었을 때 폭발하여 다치거나 죽게 됩니다. 지금은 마지막 재림 때 주님을 맞는 자가 되려면 평소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마치 녹이 슨 철과 같아서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해도 곧 떨어집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철을 불에 넣어 녹을 깨끗이 벗겨 내야 됩니다. 이는 회개를 깨끗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마치 철을 용광로에 녹여 다시 뽑아내면 새 철이 되듯이, 성령으로 영이 다시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영이 거듭난다는 말은 자기 본래의 영을 없애고 새 영이 난다는 말이 아닙니 다. 비유컨대, 처음에 광석을 캐내면 금, 은, 동, 철이 섞여 있습니다. 이것을 용광로에 녹이면 분류가 되어 순금만 남습니다. 이와 같이 잡철을 다 버리고 순금만 남게 하듯이, 육으로 받은 영의 사고와 생각과 행실이 성령으로 거 듭남을 받아 완전한 것만 남게 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었습니까? 영이 성령으로 다시 나면 하나님의 신과 일체됩니다. 금과 금이 일체되듯 합니다.   지금까지 회개는 평소 때나 재림 때나 주님을 맞는 데 준비하고 예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회개한 자는 주님과 일체되어 살아야 됩니다. 어디를 가도 주님을 1순위로 놓고 대하며 모시고 섬기고 말씀 따라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자는 것도 주님의 일 먼저 하고 해야 됩니다. 생활하는 모든 것에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왕 중의 왕이시며 하나님과 삼위일체의 존재자이신데 그냥 옆에 있게 놔두고 자기 것 먼저 하고 해질 무렵에 주님 것 조금 하면 되겠습니까. 정말 너무하는 형식적인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중 심으로 일을 하다가 주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그냥 끝난답니다.   주님의 일과 주님을 제일주의로 하면서 살면 세상에 빠질 시간이 없고 세상을 좋아할 시간이 없습니다.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자가 시킨 일만 하고 그만 따라다니면 자기 시간을 쓸 시간이 없습니다. 이와 같 이 주님이 시키신 일만 하다 보면 세상에 쓸 시간이 없습니다. 먹을 시간도 없고 잠잘 시간도 모자랍니 다. 해 본 사람은 압니다. 주님을 제일주의로 대하고 섬기고 위하고 모시며 그 일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해야 됩니다. 주님이 지상에서 우리에게 그만큼 해 주셨고, 천국에도 우리를 위해 수천 배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우리들을 위해 대신 죽어 주시고 지옥에 안 가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행실은 절대 순종하고, 마음은 즐거움과 기쁨과 진정 충성된 마음으로 하고, 목숨을 다해 끝까지 하 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라는 말씀에 대해 이같이 더욱 깨닫게 해 주셨 습니다.   사람들은 끝까지 하지 못하고 반쯤 가다 말고, 조금 가다 말고, 어떤 사람은 거의 다 가서 원하는 것이 안되니 포기하기도 합니다. 끝까지 가야만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국까지 끝 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야 평소나 재림 때나 주님을 맞도록 내정되어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재림에 대하여 사명자를 통해 전하신 말씀을 잘 듣고, 주님의 원본 말씀을 지켜 행하고, 주일말 씀과 수요말씀을 실천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깨어 있는 자 로서 평소에 오시는 주님을 귀히 맞고, 재림 때 주님을 맞고 부활되어 휴거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천국이 좁거나 준비한 것이 모자라서 제한하는 세계가 아니다. 많은 자들이 휴거되기를 원한 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휴거될까?’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말고 완전히 예비해 놓고 주님을 기다리면서 말씀대로 살면 됩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강조하신 원본 말씀을 알려면 성경을 읽어 봐요. 너무 많습니다. 화목하라. 각자에게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부지런히 행하여 남겨라. 형제를 용서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악평하지 말아라. 형식 신앙 하지 말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님을 최고 사랑하여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거짓말 하지 말아라. 약속을 지켜라. 서로 위해 주고 섬겨 주어라. 없는 자가 있으면 나눠 먹고, 주린 자가 있으면 먹여 주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을 보면, 주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해 주는 것이 곧 내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내가 옥에 갇혔을 때 가혹하게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했습 니다. 이에 “주여, 언제 주께서 옥에 갇혔었나이까.” 하고 물으니, “나를 믿고 사는 내 사랑하는 자 들과 가난하고 헐벗고 잘 곳이 없는 자, 업신여김을 받는 자, 환난을 당하는 자, 낙심하는 자, 충성자, 혹은 하고자 하나 아파서 못 하는 자들이 옥에 갇힌 것과 같이 고생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안 해 준 것이 곧 내게 안 해 준 것이다. 너희들은 염소와 같이 내 말을 안 듣는 고집 세고 교만한 자들인 고로 저기 좌편에 서라. 심판이다. 영원한 형벌의 길로 가라. 그러나 저들은 평소에 나를 대하듯 형제들을 대 한 양 같은 자들이니 오른편에 서라.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일들을 꼭 하면서 살아야 평소에 주님을 맞고 예비한 자로서 마지막 재림 때 주님을 맞을 자격 자들입니다. 말씀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영이 새롭게 거듭나서 주님을 깨끗이 맞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부활되고 휴거되어서 평소 보던 주님을 맞고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비유를 들어 오늘 주님의 원본 말씀을 더욱 실감나게 깨닫게 해 주겠습니다. 국가 대표 선수들을 뽑거나 모델, 기술자, 교육자 등 각종 필요한 사람을 뽑을 때는 뽑는다고 말했을 때 부터 면접하고, 훈련하고, 생활 속에 행하는 것을 보고, 면담하고, 수련하고, 여행하면서 과정 중에 하 는 것을 보고 미리 뽑아 놓습니다. 그러다가 행사 당일에 사전 프로그램대로 심사하고 발표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평소에 주님을 맞고 생활하는 것을 주님은 정확히 공의롭게 보시고 뽑으십니다. 이렇 게 과정 중에 뽑아 놓은 자가 거의 주님의 재림 때 부활되고 휴거되어 맞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을 두고 시대마다 주님의 재림을 외치는 사명자들을 통해 주님이 곧 오신다고 전하여 준비하며 살 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재림을 맞는 모든 자들에게 공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같이 하다가 죽은 자들은, 살았을 때 주님을 맞고 대한 행위에 따라 재림 때가 되면 현재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영으로 다시 부활되어 주를 맞게 됩니다. 만일 재림 시대에 사는 자들에게만 “준비하라. 예비하라. 내가 곧 온다.”고 하여 이들만 주님을 맞으면 공의가 아닙니다. 어느 시대든지 개인마다 주 님의 재림이 곧 시작된다고 깨우쳐 주어 준비하고 예비하며 살게 한 것입니다. 예비하다가 죽은 자는 재 림 때 다시 새로운 영으로 부활됩니다.   과정 가운데 뽑고 내정되기 때문에 우리 섭리역사는 지난 30년 동안 기성보다 더 새롭게 말씀을 전하면 서 주님을 다시 보고 정신 차리고 맞아 살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짝사랑하게 하지 말아 라. 주님을 눈앞에 두고, 보이는 나만 보지 말아라. 주님을 맞고 나와 같이 해야 된다.」고 가르친 것입 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성경대로 살아 보라고 하니 모두 나를 볼 때 주님같이 보기도 한 것입니다. 주님 이 시키는 대로 살면 주님이 그 사람과 동행하기 때문에 그 얼굴이 주님의 모습으로 비쳐 보이는 때가 많습니다. 거지에게도 주님의 얼굴이 비쳐 보일 때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주님의 뜻대로 사는 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적과 기적과 표적이 일어나는 것도 주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모세도 선지자들도 사도들도 그러했습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대로 사니 주님이 함께하는 것임을 알고 대해 주며, 본 주인이 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도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하신다는 뜻이었고, 예수님이 삼위의 한 존재자 로 오셨다는 것을 알라는 뜻이었습니다. 흔히 신앙인들은 평소 때 주님이 나타나시는 것을 하나의 환상이나 꿈이나 체험으로 생각하고 스쳐 지나 갑니다. 평소에 나타나신 그 주님이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도 오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같은 주님이고 전지전능하신 같은 주님인데 왜 그같이 대하지요? 이는 대하는 자의 무지이며, 주님의 심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같이 대하니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성령으로 영이 거듭나지 못하고, 신앙의 변혁이 일어나지 못 하여 보통 생활을 하게 되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무는 신앙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서야 재림 때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알고 준비된 몸으로 부활되어 맞을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만전을 기하고 갖춘 자 만이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시동이 걸려 부활이 되고 연속 휴거가 되어 주님을 맞게 되는 것입니 다. 할렐루야~ 아멘!   1978~1979년에 기독교에서는 특히 주님이 곧 재림하신다며 떠들썩했습니다. 이때는 부흥 강사들의 초청 집회만 가면 목사님들이 숨넘어가는 소리들을 하면서 주님이 곧 오신다고 했던 때였습니다. 이보다 10년 전에도 기독교인들은 세상 말세라고 하면서 곧 주님이 오신다고 하며 소란했습니다. 석막리 사람들도 말세라고 하여 돼지와 소도 잡아먹었습니다. 그때 아랫집 남 집사님의 아버지가 저를 보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안 갔습니다. 안 속은 것입니다. 자기가 메시아라고 하는 신흥종교들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속지 말아라. 또 그들이 가르치는 대로 천사장이 나팔을 불면 주님이 곧 오신다는 것을 저들처럼 가르치지 말고, 그동안 산에서 가르쳐 준 부활과 구원과 거듭나는 것을 가르쳐 주어라. 또 육신을 쓰고 살면서 육으로 주님을 맞는 휴거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말세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도 주님의 말씀을 못 듣고 배운 것이 없었으면 아마도 기성의 목사님들처럼 똑같이 주님이 곧 오 신다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면서 외쳤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같이 외쳤으면, 특히 학생들과 젊은 청 년들은 마음이 조급하고 민감하여 내가 외친 후에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주님이 오시지 않으니 이 분의 말은 신빙성이 없고 주님이 함께하여 외친 말이 아니라고 하며 따라오다가 그때 그때 나갔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따라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후 30년이 넘었는데도 주님은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한참 재림을 외칠 때는 기성 교회에 젊은이들 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달리 주님이 오지 않으시니 거기에만 희망을 두면서 교회를 다 니던 자들이 더 이상 안 다니게 되었고,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나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에 젊은이 들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럴 줄 아시고 산에서 나에게 가르쳐 준 말씀을 하나하나 외치며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말씀(30개론)을 배웠지요? 그로 인하여 말씀을 받은 저를 보고 ‘정말 주님께 받았 구나.’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 지금까지 주님을 믿고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성경말씀(30개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식을 잘못 하고 배운 자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 님은 지적하셨습니다. 머리에 인식을 잘못한 것도 교정하고, 잘못 인식하여 잘못 가르친 것도 교정하라 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귀하고 중한 생명의 말씀이면 말씀을 주신 주님이 귀하니 주님과 일체되어야 합니다. 받아 온 자 는 심부름꾼입니다. 심부름은 조건을 세우면 자격자가 되어 주님이 사명을 맡겨 주십니다. 조건을 세우 기도 정말 힘들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받아 온 사람을 귀하다고 하며 말씀의 주인으로 보면 절대 안 됩니다. 받아 온 자는 심부름의 주인입니다. 말씀을 이루시는 주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이것 이 머릿속에 꽉 차도록 배워야 됩니다. 가르치는 자도 그같이 해야 됩니다.   성경말씀(30개론)은 다 귀하지만 몇 가지만 다시 생각하라고 말하겠습니다. 기성 교회에서는 ‘부활’ 하면 육신이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가르치고 외칩 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이 죽으면 다시 살겠구나.’ 하는 희망을 줍니다. 만일 사람이 예수 님을 믿다가 죽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육신이 부활된다고 합니다. 고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 나왔으니 육으로 믿든지, 영으로 믿든지 부활된다는 것은 믿어야지요. 가르쳐야 되지요. 그 러나 주님은 나에게 요한복음 5장 24-29절 말씀을 깨우쳐 주시면서 이 말씀을 교리로 가르치라고 했습니 다.   (요 5:24-29)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 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이며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말씀하 시니 그때 들은 자는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하나님이 예수님께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 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하여 어느 시대 누구든지 주님을 믿는 것이 부활이라고 가르치면서 영적 부활도 되고, 육 신으로는 행실의 부활도 되어 영육이 사망권에서 나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보다 사망권인 구약시 대에서 보다 생명권인 신약시대 예수님께로 나오는 것이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구시대는 마치 무덤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 믿는 자들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 져 있기에 무덤 속에서 죽은 자들과 같다고 가르쳤습니다. 육이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는 부활보다,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 때 부활된다는 것보다 지금 주님을 믿으 면서 영으로 부활되고 육의 행실과 삶이 변화되어 사망권에서 나오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님이 가르치 게 하시어 그같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모두 배우지 않았습니까? 육이 삶의 부활을 하여 사망권에서 나와야 영도 육과 일체되어 빛 가운데 나와 주님과 함께 삶 속에서 뜻을 펴며 전도하며 공적을 세우며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같이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마지막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때에 깨어 주님을 맞는 데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배운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배운 말씀은 주님을 맞는 데 첩경을 평탄케 해 온 생명의 말씀이었습니 다.   본문에 나온 성경말씀을 중심하여 사는 것이 우리의 영과 육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것이 며,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될 절대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로 이 말씀을 이 시대에 외치게 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불신하지 않고 여러분들처럼 따라왔으면 지금 듣는 긴박한 재림의 말씀도 같이 듣고 깨어 준 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창 밖을 보면 이 시급한 때에 시대의 깊은 잠들만 자고, 재림에 대해 말하면 ‘또 말세냐?’ 합니다. 때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삶의 부활을 영육으로 해 왔기에 신앙이 살아 더욱 신앙의 잠을 자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전할 때마다 항상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주님을 믿어야 된다. 너희도 나와 같이 주 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전해 주는 자는 항상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그중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만 중심하여 온 자들도 있습니다. 이같이 그릇된 자들은 말씀 을 듣고 새롭게 변화하여 주님을 맞기 위해 예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고(思考)가 잘못되면 꼭 사고(事故)를 내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은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초림도 재림도 한 분이 하십니다. 초림주가 재림주가 된다 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져 주시고, 성경에 다시 온다고 예언하시고 기록해 놓고 가신 자가 성경대로 또 오신다고 가르쳐 왔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이 부활되고 육의 삶이 부활되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와야 마지막에 주님이 오실 때에 부활되고 휴거 되는 자격자가 됩니다. 주님의 재림만 기다리며 그 때 부활할 것만 기다리면 준비가 안되어 주님을 절대 맞을 수 없습니다. 다음은 주님이 ‘구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것을 말씀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교회 에 다니는 자들은 모두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며 교회만 왔다 갔다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사도행전 4장 12절,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 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하고』   이 몇 구절만 가지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 말씀만 성경 에 기록되어 있고, 주님이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 말씀대로만 해도 구원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기본입니다. 주님은 이를 중심하여 더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 다.   「회개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욕하지 마라. 긍휼히 여겨라. 내 말을 믿고 나 보내신 하나님을 믿어라.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모든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라. 네게 잘못한 자를 용서하라.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구제하는 데 써라. 믿기만 하고 행치 않으 면 죽은 자다. 환난과 핍박을 이겨라. 율법을 더 완전하게 지키고 내가 말한 모든 말씀을 지켜 구원을 얻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해야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기에 섭리역사는 그같이 구원 을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만 믿고 살면 정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고로 주님은 섭리역사에 나로 말씀하시기를 “내 계명을 지키고 순종해야 구원받고 거듭난다. 거듭나야 구원받는다.”고 하시며 그같이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힘들지만 연속 행하면서 그 환난 속에서도 생명권 안에 살아온 것입니다.   이같이 살아야 재림 때 부활되어 휴거됩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제대로 구원받은 자 안에 서 휴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은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 믿으니 교회에 다니지 요. 천국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됩니다. 좁은 생명의 구원길은 가끔 한 명씩 가고 있는 것 을 주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저만 알라고 보여 준 것이 아니니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동안 애태우며 같 이 고생했으니 같이 천국 가자고 외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믿으면서 불만 불평하고, 수군수군 악평하고, 헐뜯고, 원망하면 안 됩니 다. 신광야에서 모세를 원망한 자들은 멸망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모세 때처럼 원망하 면 그같이 됩니다. 주님이 사명자를 통해 말씀하시는데 원망하고 따르지 않으면 주님을 그같이 대한 것 으로 보시고 모세 때같이 그 행위대로 대해 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아무리 원해도 자신들이 이 말씀을 듣고 스스로 하지 않으면 도무지 어쩔 수가 없다.”고 하시며 “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신경 써 주어라. 그러면 내가 도와 회개하게 하여 온전케 해 주 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영혼들을 세상으로 떠나가게 하고, 주님을 믿는 자들까지 못 믿도록 동기 부여를 한 자들은 결국 그 생명을 대신하여 구원에서 제거됩니다.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자를 시험에 들게 하여 섭리에서 나가게 한 자들은 자기 생명을 멸망시키는 자들입니다. 애타게 외칠 때 깊이 듣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을 보면, 누구든지 사람을 실족시키면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 는 것이 났다고 했습니다.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 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그런 자들은 그 영혼이 육신과 꼭 하나 된 자로서, 지난 수요일에 말씀이 나간 대로 나쁜 육의 나무가 좋은 영의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예비된 자가 되지 못하여 주님의 재림 때에 부활되지 못합니다. 서로 돕고 약자를 도와주면서 주님의 인정을 받고 살 때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늘 말씀한 대로 ‘너희를 인도하는 자를 소홀히 여기지 마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나갔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다 아시고 감동으로 말씀하게 하십니 다. 다음은 ‘말세와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흔히 ‘말세’ 하면, 마지막 주님의 재림 때만 말세라고 하며 세상의 말세는 2000년이라고 합니다. 말세 때는 하나님이 세상을 불로 다 멸하여 세상이 없어진다고 가르치고, 말세는 세상의 끝이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문자적으로 보고 가르치니 주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가르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역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말세란 ‘전환’이라고 했습니다. 「말세는 마치 계절처럼 시대마 다 온다. 신약역사도 구약역사와 같이 끝이 있다. 하지만 전환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불로 멸하시는 것 이 아니라 말씀으로 심판하신다. 또 그 행위에 따라 부분적으로 지진·불·가뭄·홍수·태풍·질병·해충·경 제·추위·더위·전쟁 등 각종 재해로 심판하신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있다. 주님이 재림하셨을 때 휴거되지 못한 자들 은 지상에 남아 환난을 받고, 천 년이 찰 때까지 지상의 역사는 계속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같이 주님을 믿는 것이 하나의 부활이요, 구원이요, 거듭남이요, 마음천국과 지상천국이요, 지구 공중 에서 육신을 쓰고 휴거를 이루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주님이 오시면 주님을 믿다가 순교한 자들과 짐승의 인을 맞지 않 은 자들과 환난 핍박을 이긴 자들과 성결하게 산 자들이(계20:4)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대로 부활되고, 살아 있는 자는 육신이 영으로 홀연히 변하여 휴거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모두 30년이나 배웠습니다. 생 각납니까?   주님은 특히 성경말씀을 현실의 삶 속에서 지키며 살라고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음과 행실과 육신이 더욱 신앙의 잠을 자지 않게 되었고, 영도 육과 함께 새롭게 되어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므 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고 신앙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셨을 때도 항상 육신과 마음과 행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영이 긍휼히 여 기라. 네 영이 구제하라. 네 영이 네 가진 재물을 나누어 주라.」고 그 영의 행위를 지적하며 고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의 행위 그대로 영은 행합니다. 육신이 변하지 않은 자는 영도 변하지 않고 사망권에 있습니다. 꿈 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보세요. 빛난 영과 빛난 육으로 보이는지, 그냥 보통으로 보이는지, 어 둠 속에서 돌아다니는지, 그 입은 옷도 보면서 확인해 보세요.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으려면 육신이 완전히 변하여 거듭나야 됩니다. 그래야 영도 새롭게 거듭나서 주님의 재림을 맞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숫자 제한 없이 못 맞습니다. 주님은 요즘 나가는 말씀을 제대로 안 받아들이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가룟 유다처럼 말씀에 손을 대며 빼고 더하고 건드리며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조건을 가 지고 들어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면 그들의 영이 보입니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이유도 대지 말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변화해야 됩니다. 기성은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지, 깨어 재림의 설교를 하고 있는지, 집회를 하고 있는지 창을 열고 내다보세요. 빛에 속해 있는 자들에게만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30년 전에도 주님이 곧 오신다고 숨넘어가게 외쳤으니 지금은 정말 외칠 때가 아니겠습니 까.   우리는 때가 되어 정말 새롭게 하라고 주님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늘 깨어나는 말씀을 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2007년부터 주님은 은밀히 재림에 대해 저에게 암시하시면서 고통 중에 극적으로 깨우쳐 주셨 습니다. 「배워야 내놓을 것이 있다. 나와 대화하자. 먹는 것과 고통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기도하 라. 기도해야 신령하여 나의 뜻을 깨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주님은 시대를 깨우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음식 종류에 따라서 먹는 대로 영양가가 몸에 흡수되어 건강이 좌우되듯이, 말씀을 듣는 대로 마 음이 좌우되고 행실이 좌우됩니다. 말씀을 잘 전하고, 잘 인식하고, 잘 믿고 행해야 될 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그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양식은 말 씀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전하는 자도 복이 있고 듣는 자도 복이 있습니다.   만일 주인이 더디 온다고 생각하는 자는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산다고 했습니다. 그 러다가 생각지 않은 시간에 주인이 와서 엄히 때리고 쫓아내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 쫓겨난 곳은 지옥이라고 항상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이 늦게 온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 마귀의 주관을 받아서 하는 말입니다. 주님은 사명자들로 급히 곧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은 원본이니 빼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자가 데려감을 당하는지 여쭈었더니 ‘먼저 회개하여 깨끗이 하고 예비하고 기다린 자’라고 했습니다. 어서 빨리 잘못을 먼저 회개하고 행 위를 고쳐야 됩니다.   “너희 중에 먼저 회개하고 고치는 자가 섭리에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1999년도에 했습니 다. 예전에 섭리역사를 불평하고 불만하며 저를 원망한 사람들 중에서 말씀을 듣고 먼저 회개하고 돌이킨 사 람들이 많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가게 되었는데 실상은 주님이 쫓아낸 것입니다. 이제 누구 이야기도 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떠하다고 말할 시간이 없고, 다른 사람 짐 싸 줄 시간도 없습니다. 자기 짐을 부지런히 챙겨야 될 때입니다. 또 수십 가지를 빨리 회개하고 고쳐야 합 니다. 하루가 급하니 빨리 말씀 따라 행할 때입니다. 주께 들은 비밀의 말씀들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1~5시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신다고 하면, 3시까지 만 말씀하시며 나머지 시간에는 심정으로만 전달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자에게만 그 깊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늦게 깨워 놓았으니 이제 잠자면 안 됩니다. 기성은 일찍 깨워 놓아서 또 잠들을 자는 것 같습니 다. 모두 깨워 줘야 됩니다. 주님이 깨워 주셔야 일어나는 새벽잠이니, 인색하게 시간을 쓰지 말고 스스 로 일어나 예비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정말 주님이 도적같이 오셨다 가십니다. 정신이 살아 있는 자는 알고 예비하고 기다려 주님이 오심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직접 나타나시고, 혹은 계시로 나타나시고, 혹은 사람을 보내어 나타나시고, 혹은 꿈에 나타나시 고, 혹은 상징적으로 나타나시고, 혹은 깨달음으로 나타나십니다. 이때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지 못 하면 마지막 재림 때 자격이 없는 자들이 됩니다. 오늘은 평소 때도 못 맞으면 재림 때도 맞을 수 없다고 여러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땅의 것도 안 믿는데 하늘의 것을 믿겠느냐. 보이는 부모에게도 순종하지 못하는데 안 보이는 하나님 을 모시고 순종하겠느냐. 보이는 네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겠느냐. 보이 는 선생하고도 화목하지 못하면서 주님과 화목하며 하나 되겠느냐.” 하고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평소에 나를 맞지도 못하면서, 똑같은 그인데 더 엄격한 재림 때는 맞을 수 있겠느 냐. 뽑을 자는 큰 행사 전에 과정 가운데 이미 다 뽑아 놓고 그 날에 발표하듯이, 재림 전에 뽑아 놓고 그 날이 되면 부활시켜 휴거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중심자를 뽑을 때는 미리 정하시고 키우시고 의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 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도 주님도 항상 미리 행하십니다. 우리도 미리 행하는 것이 최고 지혜입니다. 천적 마귀의 인을 맞으면 끝납니다. 마귀와 귀신이 오면 느낍니다. 자기 생활과 말하는 것을 보면 압니 다. 수시로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됩니다. 666 인을 치는 짐승들은 천하의 천적입니다. 이것들이 우 리의 원수입니다. 정말 마귀의 인을 맞지 않도록 마귀의 주관을 받지 말아야 됩니다. 아직은 인 맞지 않 았다고 생각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미 주관을 많이 받으니 절대 근신해야 됩니다. 평소에 주님을 맞는 신앙생활을 늘 해야 됩니다. 과정 중에 모든 것이 좌우됩니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 가 날 때는 전혀 준비하지 못합니다. 3년을 준비해도 부족합니다. 매일 쉼 없이 표 나게 준비하고 예비 해야 됩니다. 오늘의 주제 말씀은 ‘생각지 않은 때 주님이 오시니 예비하라.’입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말씀을 전 했습니다.   주님을 절대 믿고 사는 것이 부활이며 하나의 휴거라고 할 수 있듯이, 평소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깨어 맞는 것도 주님의 재림을 맞는 휴거로 보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말은 주님이 맡긴 개성의 센터에서 왕 같은 사명을 한다는 말입니 다. 영계에 가서 주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말은 주님과 일체되어 주님의 일을 하는 그 일 에 있어서는 누구나 ‘제2의 주’라는 말입니다. 내 말을 정말 잘 이해해야 됩니다. 주님은 나를 이 같은 이치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즘도 섭리 안에서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형제들을 헐뜯거나 자기들끼리 뭉치고 이러 쿵저러쿵하면 정말 안 될 때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내가 가르쳐 준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 냐.”고 말씀하시면서, 욥기 40장 10~14절 말씀을 주시면서 “이같이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늘 지옥에서 파견 나와 여러분들을 꼬이고 주관하려 하니, 천적 마귀의 주관을 받지 않도록 꼭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고 기도해야 됩니다. 자꾸 마귀의 주관을 받고 시대 말씀을 불신하면 마귀는 여 지없이 666 짐승의 인을 칩니다. 그때는 회복이 안 됩니다. 정말 지옥은 이 세상 어떤 죄를 지은 자라도 갈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지은 수십억 배의 고통을 영원히 받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 세계를 갔다 온 자가 외쳐야 신앙이 살아나고, 마귀를 천적으로 여기 고, 주의 말씀을 간절히 전하게 됩니다.   사명자들은 별의별 지옥의 고통을 다 체험하며 연단받고 주님의 뜻에 따라 외칩니다. 말로는 그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이 시대 말씀을 귀히 듣지 않으면 말씀이 끊어집니다. 말씀을 못 들으면 늘 금식 하는 자와 같습니다. 주님은 말만 하면 모른다고 하시면서 속심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너랑 같이 천국 가서 살자고 십자가를 대신 져 사망으로 못 가게 해 주고, 또 생명의 길이 되어 주고, 또 천국을 다 예비해 놓았으니 오기만 하면 되는데도 왜 오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어서 자기도 예비하고, 복음을 전해 줘야 됩니다. 전도하지 않은 죄도 큰 죄입니다. 전도해야 전도하지 않은 죄가 없어집니다. 저도 이를 깨닫고 수만 명을 전도하겠다고 주님께 약속하고 30년 동안 쉼 없이 외쳐서 주님과 함께 섭리세계를 이같이 이끌어 온 것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정말 부지런히 관리해야 됩니다. 이제 시간이 더 없습니다. 주님을 제일주의로 두고 살아야 세상에 빠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면 시간이 없어서 세상에 빠질 수도 없습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뛰어 본 자들은 그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자게 됩니다. 자기를 최우선으로 두면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세상에 빠집니 다. 주님의 일을 할 시간도 없고 주님을 생각할 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선생을 통해 주님은 수십 가지를 보여 주시면서 이같이 살라고 모두에게 말씀을 외쳤건만 행치 않는 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는 다 고쳐야 됩니다. 그래야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예비하여 주님을 맞게 됩니다. 이 시대의 때에 맞는 말씀을 들어야 예비할 수 있습니다.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평강이 성령 안에 충만하기를 빌며, 성삼위 되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3월 18일 수요말씀> 내 말을 듣고 예비하라 본 문 마태복음 24장 44절 주님의 평강과 은혜가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매사에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날 말씀을 쓰다가, 어떤 내용을 잘 깨우쳐 주기 위해서는 어떤 비유를 써야 되느냐고 주님께 물으 며 기도할 때였습니다. 이때 깨달아지기를, ‘비유를 합당하게 쓰지 못하면 비위가 상하니 합당한 것을 비유로 들어 말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에 합당한 비유를 들지 않으면 그 글을 보거나 그 말을 듣게 되었을 때 비위가 상하고 심정이 상한다 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 성경에 주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역시 정말 합당 하고 이치에 맞았고, 비유한 것을 깊이 생각할수록 왜 그 비유를 드셨는지 근본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머릿속에 연상되어 그 현상들이 영상으로 보였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이 더욱 떠올랐습니다. 주님은 “비유뿐 아니라 나의 말을 제대로 전해 주지 못해도 비위가 상하며 심정이 상한다.”고 하셨습 니다. 사람들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 말을 윗사람들이 자꾸 해 대면 비위가 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는 주 님도 저도 같이 심정이 상하고 비위가 상합니다. 평소에 혼자 있을 때나 끼리끼리 뭉쳐 있을 때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말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님의 재림 때입니다. 완벽히 고쳐야 더 이상적 인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비위가 상해서 못 먹는 음식이 있지요? 한국 사람들에게는 대만의 두부나 유럽의 치즈가 그 렇습니다. 또 외국인들은 한국의 된장, 솥에 끓인 누룽지, 오징어를 비위가 상해서 못 먹는 사람들이 많 습니다. 자기가 좋다고 해서 남에게도 좋은 음식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정말 정확하고 확실하게 전해 줘야 됩니다. 주님은 “속 시원히 내 말 좀 해 달라.”고 하시며 30대 때부터 나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전도할 때나 말씀을 전할 때 확실하게 깨우쳐 주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확실하게 성경말씀을 실천하고 확실하게 전하니 전도가 잘되고 은혜의 불이 붙었습니다. 말의 위력, 말의 능력, 말의 표적이 일어나야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확실히 전할 때 능력이 생기고 표적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실천하며 확실하게 전하는 교회는 표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어 요즘도 말씀을 전할 때마다 큰 표적들이 일어나 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먼저 그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심령이 감동되어 행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군 중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사도들도 주님을 따라 그 같은 역사를 일으켰습니 다. 이 시대도 주님의 심정을 확실히 알고, 또 시대에 합당한 말씀을 확실히 알고 능력 있게, 확실하게, 속 시원하게 전해 주어 심령에 불을 붙여 부흥시켜 온 것입니다. ‘시대의 말씀을 가지고 불을 붙이는 자가 누구인가.’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비유가 합당하지 않으면 비위가 상하듯이 그 시대에 맞는 말씀과 제때 합당한 말을 해 주지 못하면 비위 가 상합니다. 말을 이치에 맞지 않게 함부로 하는 자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위가 상하게 하고 마음 이 상하게 합니다.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들으시는 주님도 마음이 상한다고 하셨습니다. 화날 때나 몰라서 말을 할 때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물 퍼내듯 한바탕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답답한 것이 뚫리고, 숨통이 트일지는 몰라도 그것을 회개하려면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 때는 쉽습니다. 그러나 별 의식이 안 되던 것도 회개할 때는 갖은 몸부림을 쳐야 됩니 다. 회개했어도 정말 회개가 되었는지 궁금하고 확실히 알 수 없으니 고통입니다. 화나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을 무조건 기도하면서 주님께 말하고 풀어야 됩니다. 주님과 기도로 풀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답답한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여도 풀리지 않아서 너무 답답하여 주님께 기도했더니 확실하 게 답을 깨닫게 해 주시어 모두 풀렸다고 기뻐하며 편지가 오기도 했습니다. 주님이 풀어 주셔야 속이 근본으로 풀립니다. 어느 날 주님은 나에게 “너는 나를 따라가면서 넓은 길로 가는 자들에게 왜 자꾸 네 가슴 아픈 이야기 를 하느냐. 나와 동행하면 나와 대화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속상하다고 사람들 에게 말하지 말고, 또 사람들이 말한다고 거기에 대답하지 말고 나와 대화하며 가야 된다. 속상하다고 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싸우면 근본이 풀리겠느냐. 오히려 더 죄만 짓게 된다. 나와 대화해야 근본이 풀리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이다.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느냐. 네가 그렇다면 아직도 진정 용서하지 않았거나 내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한 것이 무슨 말인지 연상이 됩니까? <실상 도표> “나와 대화하자.”(주님과 대화) 이 상황을 영계로 보면 이와 같습니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궁금한 것을 묻기에 대답해 주었습니다. (삽화 들어감) 주님 : “세상 사람들과 속상한 이야기 하지 말아라. 나와 같이 가는데 나와만 대화해야 되지 않겠느 냐.”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때부터 일절 속상한 것을 사람들과 말하지 않고 주님과 대화하며 나머지 속에 있 는 것들도 풀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람들을 만나면 속상한 이야기 자꾸 꺼내지 말고, 혹여 그들이 꺼내도 말을 돌려 주님과 이 야기해야 됩니다. 주님과 좁은 길을 가고 있으니 주님과만 대화하면서 기쁨으로 감사하며 주님께 빠져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부의 도리입니다. 누가 위로한다고 해도 심정만 상하여 모두 일절 끊고, 교회에 다니라고만 말해 주었습니다. 모두 이같이 하는 것이 주님을 맞는 자로서 준비하고 예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팔방미인이라도 말할 때 험한 말을 불쑥불쑥 하면 “저 여자 보통이 아니네. 직업 따라 말한다더니만 뻔하구먼.” 합니다. 얼 굴이 그럭저럭 생겼을지라도 천사같이 말하면 “겉으로 보기보다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 하면서 자꾸 그 말을 듣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곧 앞에 놓고 정말 이제부터는 섭리 전체가 세계적으로 은혜 있고 덕이 되는 말만 하며 다 고쳐야 됩니다. 지난날 주님이 나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도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혀 조심’ 하라고 하지 않았습 니까? 그러나 아직 못 고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로만 들으니 별로라고 생각하고 안 고치는 것입니 까? 주님이 말하라고 엄히 말씀하여 그때그때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고로 내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주님 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입니다. “모두 화목하게 살라고 수백 번이나 말씀했는데도 예사로 생각하고 고치지 않는 자는 결단코 나의 나라 에 들어올 수 없고, 천사장이 나팔 불 때도 부활될 수 없으며 사망으로 갈 자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 습니다. 보이는 형제들과 화목하지 못하면서 전지전능하신 화목의 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신 주님과 어떻게 화 목하게 영원히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배우자와 결혼하기 전에 ‘저 사람과 살면 평생 행복할까?’ 생각하며 갖가지를 확인하고 결혼합니다. 결혼했다가도 말과 행실이 어긋나면 고치라고 하고, 그래도 고 치지 않으면 결국 이혼합니다. 이 세상의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사전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살다가 성격이 안 맞으면 이혼하고 헤어 지지만 주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들과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평생 꿰뚫어 보시고 이상이 없으면 데려가 주십니다. 일단 행할 것을 다 행하고 준비해 놓은 자를 데려가십니다. 비유의 말씀을 하나 듣고, 오늘 말씀을 듣겠습니다. 산 고개를 넘어오는 한 청년을 보고 소방 경찰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넘어온 산에서 아까부터 연기가 나고 있는데 혹시 산불이 나지 않았습니까?” 이에 청년은 “요즘은 봄이라 밭이나 논두렁에 불을 놓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논밭 주인들이 불을 놓은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상 청년은 확실히 알 지도 못하고 제 나름대로 대강 말한 것입니다. 소방 경찰은 “그래요?”하며 조금 마음이 놓여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다음에 다른 한 청년이 고개를 넘어오기에 소방 경찰은 또 물었습니다. “산 너머 연기가 올라오는데 혹시 산불이 나지 않았습니까?” 이에 청년은 “저는 불이 난 것을 못 보았는데, 고개를 넘어와서 쳐다 보니 내가 넘어온 산에서 자꾸 연기가 나는 것을 보니 산불이 난 것 같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소방 경찰이 “논밭에 불 놓은 사람이 없습니까?” 하고 다시 물으니 “제가 올 때는 전혀 없었습니다. 산불 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고 청년은 말했습니다. 그제야 소방 경찰은 대원들을 데리고 산 너머로 갔습니다. 가서 보니 불이 꽤 번져서 산이 타고 있었습 니다. 확실하게 말을 해 줘야 믿고 따릅니다. 시대의 말씀을 누가 깨닫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확실하게 전하 느냐에 따라, 불법으로 인한 생명을 사르는 불이 꺼지고 말씀의 불이 가슴에 붙게 됩니다. 믿습니까? 아 멘. 시대 말씀의 불이 가슴에 붙는 자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자입니다. 나팔을 부는 대로 사명자들이 움 직여야 됩니다. 근무를 서는 사람이 자면 전체가 자는 것과 같습니다. 금주의 말씀에서는 두 사람이 맷돌질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 하는 슬픈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은 둘 중에 한 명만 데려간다는 말이 아 니라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개 이 본문의 말씀을 설교할 때 믿는 사람들 중에서 반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설교하여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주 님의 말씀에 따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는 버림을 받기도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내용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놓입니까? 아직도 마음이 안 놓이는 사람들은 더 열심히 하라는 주님의 경고임을 알고 행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집중해서 먼저 들을 말씀은 ‘예비하라.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간 다.”고 원본의 말씀을 하시며 “너희는 이 비유를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4장 42~43절을 보면,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 만일 도적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도적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했습니다. 도적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아는 자는 사도 바울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어둠에 속하지 않고 빛 에 속한 자입니다. (살전 5:4-5)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여러분들은 주님이 재림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 주님의 재림은 멀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곧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하고 급히 준비하며 사는 자들은 다 빛의 아들이요, 낮에 속하고 주님께 속해 사는 자들입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만 하 면 됩니다. <주님의 말씀> 그러므로 내가 오는 시기를 아는 자는 빛에 속한 자다. 나와 이야기가 통하는 자다. 나의 재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다. (-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날이 내일인지, 모레인지, 한 달 후인지, 1년 후인지, 2년 후인지는 모릅니다. 그날은 아무리 따져도 모르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모릅니다. 그날을 알려고 하지 말고 빛에 속하여 그 날을 예비해야 됩니다.) ‘재림이 임박했다’는 이 시기만 알아도 빛에 속한 자들이다. (-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심혈을 기울여 듣기 바랍니다.) 이제 너희가 할 것은 부지런히 예비하고 준비하는 일이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 나는 너희들에게 가고, 너희는 ‘주여’ 하며 맞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준비하고 기다렸다가 맞는 것이다. 그 동안 말씀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말씀할 것이다. 회개하고, 화목하게 하고, 말을 온전히 하고, 육과 마음과 영을 정결하게 하며 말씀을 행하면서 살아야 된다.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행해야 된다. 하늘나라 천사같이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같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 선지자나 사명자들을 통해 외치는 말씀과 매주 외치는 단상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해야 된다. 예전에는 너희들을 키우고 기르는 기간이라 웬만한 일들은 이해하고 지나갔지만, 지금 너희는 어린아이 가 아니라 장성하였으니 죄가 호리라도 마음과 행실에 남아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이는 눈의 티와 같아 서 너희가 못 견디게 된다. 깨끗이 완전하게 빛나는 흰옷처럼 티도 더러움도 없어야 된다. 이것이 예비 하는 것이다. 너희는 하려고 결심하면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예비하는 자라면 반드시 그날 일은 그날 꼭 한다. 그날 일을 그날 못 하면 일주일, 한 달, 1년씩 밀린 다. 그렇게 밀린 일을 어찌 할 수 있겠느냐. 그날 일은 그날 꼭 하라고 내가 한 말을 읽어 보고 들어 보 았느냐.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어떠한 괴로움과 고통을 당해도 그날 일을 다 하면 보람 있고 족하 다고 한 말이다. 그날 일을 다 한 자는 그날 삶의 승리자인 것이다. 재림을 예비하기 위해 행하는 일들 도 그날 못 하면 기회를 놓쳐 못 하게 된다. 새벽기도 하는 것, 말씀 듣는 것, 전도하는 것, 강의하는 것 등 만사의 모든 할 일을 두고 말한다.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두지 말고 해 지기 전에 그날 풀라고 했는데 해가 바뀌어도 풀지 않는 자는 누 구냐. 그로 인해 해를 받는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 그같이 작은 일도 즉시 순종하지 않으면서 어찌 나의 재림을 맞는다고 준비한다고 하느냐. 모두 풀고 와서 나를 보아라. 그렇게 행하지 않는 자들이 데려감을 받지 못하고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이다. 완전히 예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만이 데려감을 받게 된다. 도둑이나 강도들이 집에 침투하여 오는데도 잠을 자고 있다면, 그 잠 자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도 없는 것이다. 이때에 순종하지 않고 신앙의 잠을 자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 람도 없다. 잠깐 편하게 잠을 자면서 살다가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라. 너희는 지난 30년 동안 시대의 말씀을 들어 왔기에 누구보다도 깨끗한 흰 구름 같은 자들이 되었어야 했 다. 양과 염소가 함께 뛰놀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고, 사자가 어린아이의 손에 이끌린다고 했 다. 모두 하늘에서 하듯이 땅에서도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끌어도 끌려오지 않으니 그 같은 사람을 누가 끌고 가겠느냐. 마귀에게 끌려가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냐. 회개하지 않으면 마귀가 짐승의 인을 칠 것이다. 모두 즉시 회개하여라. 이제는 행위로 회개하 여라. 입술의 회개는 그같이 하겠다는 하나의 약속의 회개가 아니냐. 속된 회개는 없는 것이다. 지옥은 나를 믿었어도 자기 죄를 회개할 기회를 잃은 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전할 때는 어느 한 곳만 보고 그것만 풀어서 주장하거나 전하지 말고, 곳곳마 다 한 말들을 여기저기 모아 읽어 보고 바로 인식하고 행해야 착오가 없다. ‘나의 원본은 손대지 말고 빼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고 믿고 행하라.’ 하였으니 원본의 말씀대로 행해야 된다. 그 행위를 보고 심 판한다. 성경을 읽으려면 자세히 읽으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부활에 대해 근본을 알려면 성경에 나온 부활 에 대한 성구를 다 모아 놓고 읽어 보고 기도해야 부활이 어떤 부활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심판에 대한 것도, 말세에 대한 것도 모두 그와 같이 성경을 보아야 된다. 성경은 모순 없이 쓰고 말했으나 몇 구절만 중심하여 보고 주장하니 서로 싸우고 배척하고 미워하며 다 투는 것이 아니냐. 이 시대 말씀도 그러하다. 성경의 부분적인 몇 절만 성경의 주인이 말한 것이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처음 부터 나중까지, 시작에서 끝까지 모두 동일한 나의 말이다. 이 시대의 사명자나 선지자들로 말하는 나의 말도 모두 동일하게, 그 답이 같게 말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성경을 부분적으로 해석하면 부분적으로밖 에 모른다. 성경에 아담이 930세를 산 것과 므두셀라가 969세를 산 것도 성경의 그 구절만 보고 그 시대의 기록만 보면 의심스럽고 안 믿어지지 않느냐. 계속 읽어 내려가면 답이 나오고 의심할 것이 전혀 없다고 가르쳐 주어 배우지 않았느냐. 성경은 사람이 푸는 것이 아니다. 원본을 읽고 내가 깨닫게 해 줘야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해 알려면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었으니 자세히 읽어 보아라. 잘못 풀었기에 오히려 잘못 가게 되고 잘못 인 식하게 된 것이다. 알고 주장하고 외쳐라. 말씀을 듣고, 성경을 다시 읽어 보고, 그동안의 지난 말씀들을 다시 생각해 보아라. 다른 데 귀를 기울 이지 말고 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날마다 예비하고 행하여라. 지난날 내가 외친 말씀이 생각나지 않느냐. 성경을 읽으려면 자세히 읽어 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를 가르치는 자가 말한 것으로 생각했느냐. 너희가 성경을 읽을 때는 나 예수가 너희에게 직접 말하는 것으 로 생각하고 읽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20년이나 배워서 나가 외치는 말씀을 내가 말한 것으로 믿고 생각 하고 실천했어야 되지 않았느냐. 실천자는 위대한 자라고 내가 칭찬하지 않았느냐. 다시 성경을 자세히 읽어라. 가슴이 뜨겁고 감격하고 뜨거운 눈물이 나올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시 깨닫고 실천하게 되어 나의 재림을 예비하게 될 것이다. 이 시대는 나의 재림을 맞기 전,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마음이 동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나하나 그날그날 나를 맞기 위해 준비하여라.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몇 년도쯤에 간 다고 한 말이 없다. 그 해는 말하지 않았어도 내가 한 말 중에 그 말도 다 들어 있게 말하였느니라. 그 러므로 진정 매일 예비하는 일에 힘써 행하라. 지구도, 너희가 사는 나라도 현실체로 보면 너무 커서 한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한눈에 보고 인식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알고 싶으면, 축소하여 보면 된다고 축소의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무엇이든지 축소해서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너희 인생도 일평생의 결과를 보고 알려면 아직 다 살 아 보지 않아서 잘 이해도 안 가고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일생을 하루로 축소시켜 새벽부터 살아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 하루를 살고, 그 24시간을 따져 보아라. 1. 잠자는 시간 2. 식사 시간 3. 거리를 돌아다니는 시간 4. 공부하는 시간 5. 직장에서의 시간 6. 놀고 쉬는 시간 7.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8. 씻고 닦고 목욕하는 시간 9. 화장하고 몸단장하는 시간 10. 전화하는 시간 11. 책 보는 시간 12. 화장실 가는 시간 13. 자기 취미생활 하는 시간 14.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 15. TV 보는 시간 16. 신문 보는 시간 17. 음악 듣는 시간 18. 운동 시간 19. 시장 보는 시간 20. 식사 준비하는 시간 21. 설거지 시간 22. 글 쓰는 시간 23. 잡 시간 24. 청소 시간 25. 기도 시간 26. 성경 보는 시간 27. 교회 가는 시간 28. 전도하는 시간 29. 강의 시간 30. 말씀 듣는 시간 31. 순회 시간 32. 차 타는 시간 33. 약속한 사람과 만나는 시간 이와 같이 자기가 쓴 시간을 따져 보고 계산해 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과연 하루에 자기 할 일을 빠짐없이 다 했는지 보고, 신앙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썼는지 보자. 거의 먹고 입고 자고, 자기 육의 생 활을 위해 쓰지 않았느냐. 얼마나 나의 재림을 위해 살고 예비하였느냐. 인생, 일평생 살아도 할 일 못 하고 일순간에 지나간다고 이미 도표를 그려 ‘하루 같은 인생살이’라고 배우지 않았느냐. 그 구상이 누구의 구상이냐. 알면 말해 보아라. 너희가 어떤 개인을 따라왔느냐. 그동 안 30개론을 도표로 그려 쉽게 가르쳤다. 모두 나의 구상이며 나의 가르침이었다. 왜 하나의 학문으로만 배우고 끝나 버리느냐. 생활 속에 매일 쓰고 고치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너희를 가르치는 자가 말할 때 누가 가르쳐 주어 ‘축소/확대’를 배웠다고 하였느냐. 축소해서 보면 우 주 세계도 그 이치를 알 수 있지만, 확대시켜 보면 너희는 영원히 모른다. 태양을 중심한 행성이 지구를 중심하여 왜 아홉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지를 너희는 아느냐. 알면 말해 보 아라. 내 말을 내게 배우는 자에게 말해 주었건만 너희가 귀히 여기지 않으니, 이제 그도 말해 주지 않 는구나. 진리가 자기 생명같이 귀한 것인지 알아야 진리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시대 나에 대한 진리의 말 씀이 그 얼마나 중한지 생명같이 여기는 자에게만 주고, 또 귀를 기울여 듣는 자에게만 깨닫게 해 준다. 나의 진리를 깨닫고 받는 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고생을 하며 어떤 고통들을 겪으면서 받고 전하는 지 생각해 보아라. 사도 시대의 것도 보고, 역사의 흐름도 보고, 이 시대도 보아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짐승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재림에 대해 말하자. 역시 축소시켜 말하련다. 불과 얼마 남지 않은 그날을 하루로 축소시켜 보고 살아 보아라. 과연 재림을 위해 예비하고 사는 시간 이 얼마나 되는지 하루로 축소하여 살아 보고 계산해 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더욱 자세히 근접하여 알 게 될 것이다. 몇 년을 준다 해도 너희가 삶을 살다 보면 재림을 준비하는 기간이 아주 적다는 것을 알 아야 된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깨닫고 감사하며 염려를 내게 맡기고 살아라. 세상이 너희를 버려 가슴 이 저리고, 놀라 충격을 받아서 갈 길을 잃어도 나는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살아 있었을 때처럼 환난 중에도 화목하라. 화목하지 않고 싸우고 분쟁하면서 너희 소원을 기도하 면 내가 들어주겠느냐. 서로 돕고 사랑하며 내가 오는 것에 희망을 품고 살아라. 기회를 주고 재촉하여 도 못 하느냐. 내가 너희 기도를 다 듣고 있다. 이루어 주는 것은 때를 정했으니 낙심 말고 기다려라. 옛적에 했듯이 열심히 하고 충성으로 하라. 평소에 나를 맞는 자가 그날에도 나를 맞는다. 섭리역사를 두고 사명자를 통해 처음부터 그같이 말했는 데도, 아직도 내가 짝사랑하게 두는 자가 있으니 안타깝다. 너희는 깨어 있어 이 시대에 일어난 세상의 많은 징조와 표적들과 심판들을 말해 주어 알고 온 사람들이 다. 지금은 재림으로 인한 환난이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지난날 너희에게 내가 행한 일들을 잊지 마라.’ 함이다. 지난날 너희들에게 내가 행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나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고로 ‘지 난날을 잊지 마라.’고 외치게 한 것이다. 사람을 통해 말하면, 왜 그같이 했는지 꼭 생각해야 된다. 아픈 것도, 약한 것도, 너희들이 원하는 모든 것도 진정 내게 고하여라. 내가 실행하리라. 나의 재림을 예비하는 자가 예비하려면 무엇보다도 나를 최고 우선으로 두고 매일 살아야 된다. 그런 자 만이 재림을 맞을 것이다. 먼저 할 일을 꼭꼭 하고, 보통 일은 맨 마지막에 시간이 남으면 하는 것이다. 왜 매일 살고 겪으면서도 모르느냐. 나는 약속대로 너희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천국에 모든 것을 예비해 놓고 왔는데, 너희는 너희 몸 하나도 아직도 제대로 예비하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준비되지 않았기에 나의 긍휼과 자비로 마지막 짧은 연장 시간을 준 것이다. 이것도 그나마 끝이 보이며 다가온다. 너희는 알아라. 내가 너희 각자의 생활 속에 도적같이 가리라. 나 주 예수의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주님이 해 주신 말씀을 잘 들었습니까. 더 이상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원본의 말씀을 쉽게 알아들었을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듣고 당황하지 말고 매일 꼭꼭 행하기 바랍니다. 대만에서는 예배 때 예수님이 한 사람에게 나타나신 일이 있었습니다. 단상의 말씀을 듣기 전에 준비 기 도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들어오셔서 예배 때마다 설교자가 단상으로 가는 노선 그대로 가셔서 단상에 서서 성도들을 쳐다보시면서 “오늘의 말씀은 내가 전하겠다.”고 했답니다. 그 사람이 너무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는데 설교자가 같은 노선으로 단상에 서서 “오늘의 말씀은 내가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것입니다.”라고 특히 강조하며 말씀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날은 특히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모두 가슴 뜨겁게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날 예수님을 본 사람은 평소에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내가 구원을 못 시킨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말씀 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회개기도를 했고, 그 후부터는 말씀을 잘 깨닫고 있다고 합니다. 역 시 주님이 다스려 주십니다. 또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나는 지금 좁은 길을 가고 있는가?’하고 걱정하며 깊은 기도와 회개를 하 며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꿈에 누군가가 자기의 손을 잡고 좁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 다. 평소에 나타나시는 주님을 직접 보든지 못 보든지 느끼고 깨달아 주를 맞고 살기를 바랍니다. 모두 안 녕~ <2009년 3월 22일 주일말씀>   갖춰야 주를 맞는다   본 문 누가복음 17장 22-30절 참 고 마태복음 22장 1-14절   주님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주님은 노아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롯 시대를 말씀하시며,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와 이 시대도 그 러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깨어 있는 자는 빛에 속한 자입니 다. 그들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미리 알고, 급히 예비하고 갖추어 하나님을 맞았습니다.   먼저 노아 시대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노아는 의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 있는 신앙을 하였기에 빛에 속하여 깨어 있었습니다. 고로 하 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어 나의 심판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시대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자들에게는 ‘때가 되어 심판할 테니 어떤 것을 예비 하고 갖추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노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식구들과 함께 희 망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홍수 심판 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 시대 다른 사람들이 노아를 보고 왜 그 같이 하느냐며 물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아는 그들에게 외치기를,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그 뜻대로 살지 않고 세상의 것들만 좋아하며 제 좋아 하는 대로만 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외면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 으니, 회개하고 방주를 만들어 갖춰야 산다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해 주었습니다. 자기와 같이 방주를 만들어 준비하고 갖춰야 심판을 면하고 산다고 방주를 다 만들 때까지 외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사는 것에 빠져서 단 한 명도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아를 비방하고, 반대하고, 핍박하고, 미워하고, 무시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신 대로 정한 때가 되어 그곳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오직 준비하고 갖 춘 노아의 여덟 식구만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강림을 맞이했습니다. 홍수로 인하여 죽은 자들은 방주를 만들어야 할 급절한 그 기간에 갖추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사는 데만 그 시간을 모두 썼던 것입니다. 노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았으면 모두 방주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설교 가운데 “그럴 줄 알았으면 그럴 자가 누가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람은 정말 무지 속에 살아갑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는 먹고 마실 겨를도 없이 방주를 만드는 데 몰두하며 모든 것을 거기에 투자했습니다. ‘방주를 만들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우리의 삶을 통해 짐작이 가고 이해가 가지 않습니까? 항상 어느 시대든지 빛 가운데 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준비하고 갖출 수 있도록 알려 주십니다. 알고 깨달은 자들은 그때 그 기간에 절대 필사적으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 모르는 자 들은 빛에 속한 자가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을 때 듣고 따르면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믿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판이나 재림에 대하여 들었으나 그 기간에 행하지 않는 자는 너무도 안타깝고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는 의롭게 사는 롯이 있었습니다. 롯은 어둠에 살지 않고 빛에 속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강림하시어 천사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성을 하늘의 불과 유황으로 멸할 것이니 날이 새기 전에 피하라.”고 했습니다. 롯이 지체하니 “지금은 지체할 때가 아니다.”라고 외쳤 습니다. 그제야 롯은 절대 믿었습니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부패되고 타락되었음을 롯이 보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달받고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심판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고 노아 시대와 롯 시대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시대도 주님이 곧 오실 때라는 것을 시대를 보면 알고 믿어질 것입니다. 정말 부패되었습니다. 롯은 식구들에게 긴급함을 말해 주어 믿고 따라 행하게 했습니다. 또 사위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사 실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농담한다고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농담 좋아하는 사람은 진실도 농담으 로 압니다. 롯이 전하는 말을 듣고 준비하고 갖추어 피해야 될 때에 먹고 마시고 의심하고, 혹은 농담이 라고 여기며 믿지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은 그만큼 몰랐습니다.   결국 롯과 그의 식구들만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그 성을 빠져나와 천사의 말대로 소알 산으로 가서 살았 습니다. 도적 같은 하나님의 강림을 맞고 산 것입니다. 말씀이 곧 생명이었습니다. 이 시대 주님의 재림 때도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준비할 기회를 준 것처럼 미리 알려 기회를 주어 갖추게 하는 자들도 있고, 롯과 같이 심판 직전에 예고하여 이끌어내 겨우 몸만 살게 해 주는 자도 있습 니다. 재림 때도 그와 같음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동안 우리 섭리역사는 노아 때같이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왔고, 지금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롯과 같이 재림에 대하여 급히 전달받고 재림이 연장된 시간을 보내는 때입니다. 재림이 임박했다고 하는데도 “농 담하네.” 하며 믿지 않고 외면하는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았던 사람들과 똑같은 자들입니다.   동물들도 바닥이 뜨거워지면 지진이 날 것을 느끼고 그곳을 피하여 사는데, 사람들은 신호와 경고를 줘 도 믿지 않고 며칠 더 살다가 잔인한 죽음을 당합니다. 며칠, 몇 달, 몇 년 더 거기 빠져 살다가 그 같 은 결과를 맞게 됩니다. 사람들은 말을 해 줘도 잊어버리기 때문에 주께서 계속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 니다. 한국에서는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 수백 명이 죽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나의 제자 중에 한 명이 그 곳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예감이 이상하여 밖으로 뛰어 나왔고, 뒤에서 바람이 태풍처럼 스치기에 쳐다보니 건물이 폭삭 주저앉고 먼지만 치솟았다고 합니다. 그 옆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에게 이상하니 나가자고 했는데, 그들은 느낌을 받고서도 먹는 것을 다 먹고 나오려다가 참사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판국에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살 때입니까? 이 사건이 스쳐 지나가 깨우쳐 주기 위해 주님은 이 사건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아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입니다. 고로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롯의 아내는 처음에는 믿고 가다가 후에는 의심하여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본 고로 죽었습니 다. 세상에 미련을 두었고 절대 믿음이 없었기에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감히 천사의 말을 소홀히 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 시대도 처음에 말씀을 믿고 가다가 또 세상을 돌아 보고 제 갈 길을 가면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이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절대 믿지 않고 다른 말을 하 는 자는 롯의 아내와 같은 자가 될 것입니다.   사명자로 주님이 하신 말씀을 안 믿는 자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끝까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뛰고 달리며 가야 됩니다. 지난날 뛰지 못한 사람은 배로 뛰고, 뛰던 사람은 시대의 말씀을 듣고 갖추며 뛰고 달려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어느 시대든지 심판하시기 전과 강림하시기 전에 그동안 평소 빛에 속하여 산 자들에 게 반드시 앞날의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외치는 사명자는 그대로 외쳐 주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과 주님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은 빛에 속한 자가 외치는 말을 듣고 같이 행하며 갖추고 따라가면 됩니다.   주님은 노아 시대와 롯 시대를 말씀하시면서, 이 시대도 먹고 마시며 그 시대와 같이 산다고 말씀하셨습 니다. 주님이 살아 계실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그같이 또 말씀해 주십니다. 이사야 11장 1~4절에 하나님이 강림하시면 말씀과 지혜와 지식으로 강림하신다고 한 대로 하나님이 실체 로 강림하시어 예수님을 통해 그 모습을 보이셨으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사 11:1-4)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 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 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롯은 심판하러 온 천사를 보고 사람들에게 그의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 다. 이와 같이 주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씀하시며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같이 말했는데도 보면서도 믿지 않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향해 천사가 급절하게 외쳤듯이, 노아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긴박하게 외쳤듯이, 예 수님도 살아 계셨을 때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말씀을 외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외치셨는지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은 이 시간에 더욱 생각날 것입니다. 수십 가지 비유를 대며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는 임금의 혼 인 잔치에 비유하여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가 있어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청하여 오라 했더니, 모두 자기 생활을 위해 논으로 가고,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가며, 각자의 삶을 제일로 하고 먹고 마시 는 일을 하느라 그 때문에 못 온다고 했습니다. 종들은 임금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에 임금은 “아니, 하루도 못 온단 말이냐?” 하며 노하 여 열 일을 제치고, 올 사람들을 다시 부르기 위해 종들을 다시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나 와도 좋다 고 했습니다. 후에 임금이 청하여 온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이 없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자기 할 일을 우선으로 두지 않고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감격해서 온 것입니다.   혼인 잔칫날 하루도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상 ‘뜻이 없다.’, ‘생각이 없다.’, ‘성의가 없다.’ 는 뜻입니다. 거기에 마음이 없고 무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할 일이 더 급하고 바쁘다.”, “나 살 기 어렵다.”, “죽으려 해도 바빠서 못 죽겠다.”는 말은 삶의 핑계들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그렇게도 청하며 외쳤어도 많은 사람들은 보낸 자를 가혹하게 대하고 비난했습 니다. 그 시대가 다 지날 때까지 그같이 대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가혹하게 대하며 비난해도 주님을 맞아야 세상에서 받는 고통도 없어지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른 자들은 참고 견딘 것입니다.   주님이 정하신 때가 올 것을 사명자는 다 알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주님의 뜻대로 다른 것들만 외치고 갖추며 온 것입니다. 만사에는 때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데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외치는 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구원이 더 중한 것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이같이 급절하게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나올지 몰랐을 것입니다. 모두 놀란 것은 주님 이 미리 가르쳐 주시어 이같이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준다는 것입니다. 놀랄 일이 아닙니까? 주님은 세 상의 인생들이 정말 구원받기 원하십니다. 또 섭리역사를 정말 사랑하십니다. 이를 깨닫고 감사하며 주 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가까이하며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면서 복음을 전하신 3년의 짤막한 기간은 혼인 잔칫날 하루와 같습니다. 주님이 직접 오셔서 지혜와 지식과 능력과 기적을 행하시면서 외치셨는데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세 상에 빠져 살았던 것입니다. 특히 구시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극히 반대하며 막았습니다. 마귀들이 인 을 치고 그들을 써먹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은 주님을 맞았습니 다. 선지자 시대에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행하실 때도 그러했습니다. 모두 무지하여 따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하나님을 믿고 살았던 사람들이 더욱 예수님께 오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 은 종교의 부패, 형식적인 신앙생활, 외식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만 매달려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과 제물을 드리는 것에만 몰두하고 그것을 전부로 알고 살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제물 드 리는 것에만 너무 치중하여 성전에서까지 비둘기와 양과 소를 사고파는 모습을 보시고, 성전에서 장사한 다고 책망하시며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다 내쫓으셨습니다. 기존에 하나님을 믿고 있던 자들은 교리에만 빠졌고, 전통에만 빠졌고, 모세의 율법 이론에만 빠졌고, 형식주의에만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니 외식자들과 형식자들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모두 책망 하셨습니다. 외식과 형식의 썩은 신앙을 가지고 시기 질투하는 못된 자는 엉겅퀴와 가시나무 같은 자들 이라고 책망하시며, 회개하여 좋은 열매를 맺고 거듭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주님을 맞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막았고, 주님과 그 따르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 시대 하나님이 강림하신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며 살았던 자들이 하나님이 인성을 쓰시고 신성으로 나타나셨을 때는 맞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던 이방인들은 세상을 너무 좋아하여 생활에 빠지고, 자기 삶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았기에 그 시대에 주님을 맞지 못한 것입니다. 옛 시대 율법과 교리에 빠지지 않고 형식과 외식에 빠지지 않은 자, 사람을 악평하지 않고 선히 대한 자,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주님을 인정한 자, 어린아이 같은 자들은 주님을 맞았습 니다. 즉 그 시대에 하나님이 주님으로 강림하심을 맞은 것입니다.   주님이 강림하실 이 시대 역시 노아 시대와 같고, 롯 시대와 같고, 예수님 시대와 같습니다. 교리에만 빠져 형식과 외식적인 신앙을 하고 있고, 악평하는 것과 남을 헐뜯는 것을 좋아하며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이방인들은 세상에 빠져 세상 삶의 모든 것들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가고 있 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인정하고 급히 좇는 자들만 주님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 말씀에 “갖춰라.” 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갖추듯이, 결혼하는 신부가 결혼을 위해 생활용품을 갖추고 마음과 몸을 갖추듯이 갖춰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맞는 자들이 가장 먼저 갖출 것은 첫째, 말씀을 잘 듣고 거기 해당되게 마음과 육신의 행실과 영 혼을 갖추는 일입니다. 바울 선생은 제대로 안되니 자기 몸을 스스로 치면서 주님 앞에 복종하게 하며 갈 길을 갔습니다. 그래도 안되는 자는 주님이 그 몸을 쳐서 하게 하기도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마음에 들어야 물건을 사고, 자기 마음에 들어야 자기 사랑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주님도 “내 마음에 들어야 나의 영원한 신부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온 세상을 위해 오지 않으십니다.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자들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어 준비하게 하고, 그것들을 갖춘 신부들만을 데리러 온다고 하셨습니다. 비유컨대, 결혼하는 자가 자기 배우자만 데 리러 오는 격과 같습니다. 들러리들과 구경꾼을 데리러 오는 것도 아니고, 혼인 잔칫날 먹고 마시러 온 그 많은 자들을 데리러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자기를 위해 갖춘 자를 데리러 오십니다. 사랑도, 마음도, 행실도, 해당되는 것을 갖 춘 자들만 데리러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주제로 “갖춰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 다. 신랑을 맞기 위해 그동안 갖춘 자는 신부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들러리와 구경꾼들이며 분위기에 들떠 먹고 마시는 자들로서 한탕 먹는 것만 준비하고 갖춘 자들입니다. 이들은 신부처럼 신랑을 맞기 위해 애 태우면서 사전부터 신랑과 의논하면서 갖춘 자가 아닙니다. 신부는 결혼 전부터 신랑이 원하는 것을 갖추기 위해 놀러 가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 가고, TV 볼 시간 도 없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면서 근신하며 신랑을 맞는 데 해당되는 것만 갖추느라고 한숨 쉬며 몸부림칩니다.   신랑은 신부를 맞기 위해 집을 크게 지어 놓고, “방이 크니 옷장도 갖추고, 너 좋아하는 것과 나 좋아 하는 것을 갖추고, 마음과 행실도 천사처럼, 어린아이처럼 갖춰 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신부는 그것 을 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어 가면서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이같이 갖춘 자를 주님은 데리러 오십니 다. 혼인 잔칫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신랑 앞에 이같이 갖추고 올 자가 있습니까? 오직 신부뿐입니다. 이 시대도 주님을 맞는 자들이 사전부터 무엇을 예비하고 어떤 것을 준비하고 갖추어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하고 고민하니, 주님은 선지자들과 사명자들을 통해 이것저것 자세히도 말씀하시며 이 같은 것을 갖 추라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갖추는 사람들만 도적같이 오시는 그날에 데려가십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의 들러리 격의 삶을 산 자들도 있고, 분위기로 신앙의 삶을 산 자들도 있고, 혼인 잔치에 먹고 마시고 끝날 손님과 같은 자들도 있다고 주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 셨습니다. 빛에 속한 자를 통해 말씀하신 재림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그에 따라 행하기만 하면 됩니 다. 노아가 힘들지만 방주를 만들어 갖춘 것같이 갖추고, 롯이 천사의 말을 잘 듣고 끝까지 가라는 곳까 지 가듯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가다가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 세상을 보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이제 모두 알았으니 갖추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이 늘 말씀해 주시고, 또 우리 가 할 수 있도록 각 교회는 물론 개인이 자고 깨는 것까지 수시로 와서 다스려 주시니 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몇 년 동안 갖추었는지 모두 알 것입니다. 롯은 심판 날 전부터 심판이 있 을 것을 알았지만 그같이 도적같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사전에 느끼고 깨닫고 의로운 삶을 살았습 니다. 그래서 천사가 말했을 때 믿고 따랐습니다. 지금은 재림 전에 최고의 은혜를 주시는 기간입니다. 주님은 최고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은혜를 주실 때 갖춰야 됩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니 능히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을 가지라’고 주님이 나로 시를 써서 주기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자 신이 없는 자는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시들은 묵시들입니다. 자신을 가지고 하면 됩니다. 여러 번 했는데도 안되어, 주님이 이같이 하라고 한 것이 잘 안된다고 주께 여쭈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