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08.12.07 (일)
주일말씀
- 선포일
- 2008.12.07 (일)
- 성경 본문
- 에베소서 4장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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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7일 주일말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주가 되고 주님이 된다
본 문 에베소서 4장 1-6절, 4장 11-12절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과 평안을 빕니다.
한 주일동안 하나님의 뜻 속에 살며, 어려운 가운데 자기 인생들을 사
느라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굳건히 하여 하나님
의 뜻 속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현재도 미래도 그 얼마나 희망과 보
람된 삶인 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믿음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잘 믿고 주를 사랑하며 사는 자들을
갖은 핍박과 거짓으로 악평하며 사는 자들을 볼 때, 주님을 좇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더욱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섭리 모든 자들에게 일생동안 너무도 필요한 교육 설
교를 해준다고 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듣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하나 해주
겠습니다. 수요일에 유혹과 꼬임에 들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지요? 여러분
들이 말씀을 듣는 시간에 선생도 같이 그 말씀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말
씀을 듣는 중에 주님이 한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큰 나무에 코끼리만한 크기의 괴물 같은 황소 한 마리의 고삐를 바짝
쪼여 매놓고, 천사 같은 한 사람이 손으로 그 고삐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소가 사납게 눈을 부릅뜨며 나와 사람들을 떠받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나를
쳐다보기에 내가 가서 머리통을 쥐어박았더니 다리를 더 구르면서 혈기를
냈습니다.
소는 사람이요, 의인들을 괴롭히는 악한 자를 말합니다. 우리를 괴롭히
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악한 자들이 떠받고 괴
롭히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주신다는 계시였습니다.
시편 22편에 다윗은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다.”고 말하며 하
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소는 그 시대 다윗 왕을 괴롭히던 악한 사울 왕을
비롯한 모든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늘 참고 원수를 사랑하며, 악한 자들
로부터 핍박과 억울함을 받아도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좇아 하나님의 마
음에 맞는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사울과 다윗을 괴롭히던 자들은 이웃나
라 블레셋 민족과의 전쟁 중에 그 죄 값으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
은 이스라엘의 평화의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폈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전념하고 몰두하면, 더 깊은 것들을 깨닫고 신령한 눈
을 뜨게 되어 앞날과 현실의 상황들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교육 설교를 해준다고 했지요? 기대하
고 듣고, 평생 그같이 알고 살아야 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주가 되고 주님이 된
다.”입니다.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바울 선생은 하나 되지 못한 분열된 에베소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너희를 권고하노라. 너희가 주의 부르심을
입었으니 모두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과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행하라. 성령도
하나, 주도 하나, 하나님도 하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주님이 각 사람에게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로, 혹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
안에서 서로 봉사하고 성도들을 온전케 해주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살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주님이 바울을 통해 말씀하신 깊은 말씀입니다. 바울을 통해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님께서 말씀하신 깊고 깊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에
게도 이 말씀을 풀어주며 전해주신 말씀을 듣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 주 안에서 갇힌 자 된 선생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부름을 받아 섭리 역사로 왔습니다. 부름을 받은 자는 그 부
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겸손해야 되고 온유해야
되고 오래 참아야 되며,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서로
심정을 알아주며, 평안과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께서 말씀을 주어 그동안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한 것을 이제 힘써 지켜야 됩니다. 아멘!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모두 각각 한분으로 범사에 하나 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 되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님의 바깥에 있
는 자입니다. 주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우리는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주님의 뜻을 펴며 주님의 몸이 되어 살도록 개성대
로, 그 그릇대로, 수고하고 충성하는 대로 사명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관리하는 자로, 말씀을 가르치
는 자로, 중고등부 교사와 유초등부 교사들로 주었습니다.
이는 주를 믿고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영광을 돌리며 성령의 감동 속
에 시대의 뜻을 펴면서 굳건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며,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살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주님을 알고 주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온전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성장된 자로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어린아이
같이 모르고 살아서 세상 모든 유혹에 빠져 세상의 그릇된 교훈과 풍조와
교리에 빠져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주님에 대하여 온전히 배웠고 성경을 더욱 온전히 배
웠으니, 말로만 증거하고 가르치지 말고 행함으로 가르쳐 그들로 행하게
해야 됩니다. 말로만 가르치면 듣는 자도 말로만 가르치고 따라옵니다. 행
동으로 참고 견디며 온유함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며 의
의 삶을 살면서 몸으로 전해야 이를 보고 따르는 자들도 몸으로 가르치면
서 따라온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갖은 해를 주어 손해를 보게 만들고, 온갖 미움과
거짓으로 음모하여 괴롭히는 원수에게 해를 주지 않고 참고 산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애간장을 태워봐야 압니다. 마치 지옥에서 고통
을 겪으며 참는 것과 같습니다. 40일을 금식하며 배고픔을 참는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산 자들은 속에서 심정이 타고 애간장이 타는 고통을
각각 겪었을 것입니다. 집에서나 생활 가운데 모두 겪어보았지요? 작은 일
이나 큰 일이나 속상하고 화날 때 참는 것은 정말 힘들지요? 못 참고서 폭
발하여 서로 싸우게 되고, 서로 토라지게 되고, 말도 않고 더 화가 나서 떨
어져 나가 살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했습니다. 주님은 말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손해를 주는 주님의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그 원수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원수였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는데 손해를 주는 원수였
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말씀을 전하여 믿게 하고 행하게
하여 구원을 시켜 지상천국을 이루며 살아왔는데,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을
갖은 모함과 거짓으로 음모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자들이 그 말을 믿게 하
였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통하고 화가 나고 분노가 치솟고 참을
수 없는 일이겠습니까? 정말로 나쁘고 악한 자들이며, 죄인 중에 최고 죄
인들이고, 사탄과 귀신같은 자들로 주님에게 악질적인 말들을 퍼부었습니
다.
이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멸할 수 없어 그냥 있는 줄
아느냐. 아버지께 기도하여 하늘의 천사를 보내어 너희를 다 멸할 수 있건
만, 그같이 하면 원수들로 인하여 일어난다고 한 선지자들의 예언이 어떻
게 이뤄지겠느냐.”하였습니다.
주님도 참고 견딤으로 원수를 저주하며 멸하지 않았습니다. 이같이 행
하시고 “너희도 원수를 사랑하라. 해를 주지 말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
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만이 그 정신이 우리의 정신이 되고, 우리
몸이 주님의 몸이 되어 쓰이며 살게 됩니다.
악한 자와 악평 자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그 말을 믿고 버리지 않고
가슴에 두고 사는 자는 악한 자의 몸이 되어 사는 자입니다. 사탄과 가인
의 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머리에 두고 마음에 두고 사
는 자는 주님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입니다. 택한 자요, 구원을 받은 자들
입니다.
지금도 악한 자, 악평 자, 거짓말을 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두고
사는 자는 그 악한 자의 몸이 되어 날마다 사는 자입니다. 어서 버리고 선
한 자가 말한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머리와 마음에 두고 실천하
며 살아서 주님의 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님은 주님의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주님의 몸이 되어 참고 견디며
겸손히 온유한 마음으로 화평하게 사는 자를 구원하며 그 영만 천국에 데
리고 가십니다. 고통스러워도 생명 길로 가서 영원한 천국을 꼭 가야 됩니
다. 악평과 거짓과 음모와 분쟁과 미움으로 의로운 자들을 괴롭히고 해하
며 살다가 영원한 흑암의 세계 지옥으로 가는 자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요, 불행한 자요, 저주받은 자요, 미련한 자이며 괴로운 자입니다.
선생이 영계 지옥의 고통을 겪으면서 주님께 말하기를, 세상 그 어떤
죄를 내게 지었어도 용서해주어 지옥만은 오지 않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를 해하지 않는 자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든지 이 시대 복음을 전하
여 이 지옥을 못 오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주님을 쳐다보았을 때,
깊이 주님의 그 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 지옥에 못 오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며 만민을 위해
지옥 고통의 십자가를 져주어 영생 길, 천국 길을 열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 그같이 해주었는데도 주님을 믿지 않으
니, 그것을 제일 큰 죄로 보았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과 주님을 안 믿는 자가 갑니다. 믿고 회개한 자는 가지
않습니다. 고로 하나님과 주님을 안 믿는 죄가 어떤 죄보다 크고도 큰 죄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지옥을 안 보내려면 그를 대신하여 지옥 고
통의 십자가를 져 줘야 됨을 깨닫고 깨달았습니다. 지옥을 안 보내려면 그
들을 위해 지옥 같은 마음의 십자가, 삶의 십자가를 참고 대신 져 주고 죽
어줘야 됨을 깨달았습니다.
바울 선생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주님과 같이 매일 나는 죽노라.”했
습니다. 여러분들도 매일 죽어주어야 자기와 그를 사망의 길로 가지 않게
하고 생명의 길로 가게 합니다. 복음을 전해주고, 가르쳐주고, 관리해주고,
참아주고 인내하며, 지옥의 고통을 대신 받아줘야 자기도 그들을 살립니다.
생명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살아줘야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고생 되어도 생명 길로 가는 종교입니다. 주님부터가 그
렇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상은 악하고 죄인들의 세상이므로 그같이 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선생은 이 모든 것을 깨닫고 주님께 고백하고 그같
이 주의 몸으로 매인 몸이 되어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고통과 수고와 몸부림을 쳐야 자기 원하는 것이 얻어지듯이
신앙세계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괴롭다고 혈기난다고 원수에게 해를 주었
으면 심판 날에 심판을 받고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어 하나님과 주님이 원
하시는 영광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원수들이 해를 주며 갖은 거짓과 음모로 죄인 취급하여 죽였지
만, 대신 십자가를 져주어 살렸습니다. 안 믿는 자들과 죄인들만을 위해 십
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자 모두를 위해, 만민을 위해 져주었
습니다. 그의 공로로 주를 믿으면 그로 구원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온 세상을 복음의 세계로 펴 나가게 되었습니다. 영광의 길을 갔
습니다. 십자가 무한 영광의 길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와서 천년동안
왕 노릇 하면서 지상천국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희망으로 주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을 부르사 지상천국에 참예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영의 세계 영들에게 강림이 있고, 육의 세계에 강림이
있습니다. 재림은 영적과 육적으로 있습니다. 주님의 강림은 처음과 나중이
라고 배웠습니다. 처음도 주님의 육으로 강림하셨고, 나중도 주님의 영으로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강림을 맞는 자들입니다. 처음에는 주님이 강림하시고,
두 번째는 시대가 다르니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은
시대가 달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입니
다. 다만 우리는 강림을 맞는 자들입니다. 주님 외에 주라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에게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주관권의 주인 입장임을 깨
달아야 됩니다.
선생도 산에 있을 때 주님이 오셔서 강림에 대하여 가르쳐주었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청중이 따라간다고 주님
께 물으니 “어찌 내가 아닌데, 예수가 아닌데 내가 될 수 있느냐. 말도 아
닌 말에 귀가 솔깃하느냐. 너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너라고 하면 네가
인정해주겠느냐. 다른 자는 제 2의 네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이
초림주도 나고 재림주도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이같이 말씀하시어 세상에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이 다 잘못 알
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재림 때도 주님이 이
같이 영으로 올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다시 온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면 그의 몸이 된 자들로서 바
울 선생이 말씀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이 다 사라지게 기도했습니다.
60~70년도 최고 혼란한 때 잘못된 종교를 알고 다 사라지게 기도했습니
다. 우리가 배워 20년이 넘고 30년이 되도록 가르쳐주고 외치며 사니, 그
같은 종교들이 다 사라지고 이제는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주
님을 빛나게 모시며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 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된다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에 제대로 듣고 배우고 있습니다.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구약 때 아브라함을 보고 “주여”라고 부르며 ‘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3장 5-6절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라고 했습니다.
또 창세기 23장 14-15절에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는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주인을 높인 말이 되기도
하고, 신앙적으로 보면 중심인물이니 그들 앞에 세운 그 당세의 주인이 되
었기에 “주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대에서는 아브라
함을 보고 ‘주’라고 안 불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부
르며 중심자로 부릅니다.
그 사람의 자녀들만이 그를 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라 부르지, 다른 사
람은 그렇게 안 부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나 그 아버지인 할아
버지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들’로 부릅니다. 이때는 오히려
그를 보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들 ----> 아버지 ----> 할아버지
(아버지)
<----
(아들)
각 신흥종교들을 보면 그 종교를 시작한 자들을 보고 “주여”하며 메
시아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주인이지 다른 자들에게
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자를 주인으로 여기고
‘아버지’, 혹은 ‘주여’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낳은 부모를 아버지라 부
르며 부모님 부르듯 했습니다.
이와 같이 보다가 그를 온 인류가 기다리는 성경에 나오는 재림주 메시
아로 보고, 예수님이 다시 온다는 성경의 주인공으로 보고 가르쳐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에서 당세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온 세상 사람들의 아버지로 가르친다면 믿겠습니까? 혹시 양자로 가면 아
버지라 부를 것입니다. 이치를 깨달았지요? 메시아로 보고 따라갔는데 모
두 그 안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섭리에 일찍 온 자들은 한국에 30여명의 재림주가 나타났다고 늘 가르
쳐주어 배웠습니다. 늦게 온 자들은 이제 그들이 다 사라져서 지금은 구경
도 못합니다. 박물관에도 기념으로 진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르니 그 시
대에는 듣는 자들이 혼돈되어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주님을 따라
다녔기에 안 따라갔지요.
주님은 산 기도를 할 때 나를 가르쳐주시면서 “기도하라. 그래야 내가
빛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를 알고 기도했더니 결국 다 없어졌습니다. 이
제 우리는 오직 주님만이 알파와 오메가임을 확실히 믿고 가야 됩니다. 처
음도 주님, 나중도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집에 열 명의 아들이 있어 자기를 낳은 자를 아버지로 보고, 자기
주인으로 보고 “주여”라고 부를지라도 집안에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숙모, 삼촌들은 자기가 부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안 부릅니다. 할
아버지는 “내 아들아. 이리 와. 이것 좀 해. 요강 좀 비우고, 청소 좀 하
여라. 어찌 애들만 시키느냐.”하고, 할머니는 “딸아. 오늘 산에 가서 나
물 좀 뜯어 보리밥을 하여 비벼 먹자.”고 합니다.
누구든지 주님 예수님 앞에는 신앙의 부모가 못 됩니다. 주님의 자녀입
니다. 지체밖에 안 됩니다. 본문 말씀대로 사도, 혹은 선지자, 전도자, 목
사, 교사밖에 안 됩니다. 그것도 충성하여 주님이 사명을 주어 된 것입니
다. 주님만이 온 인류의 신앙의 부모가 되시고 주님이 되십니다.
구약에서는 다윗 왕이 하나님을 부를 때 ‘주여’, 혹은 ‘주 하나님’
으로 가장 많이 불렀습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의 시 첫 장부터 나옵니
다. 오직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이라고 하며, 천상천하 천국과 온 우주와 땅
의 주인으로 불렀고 구원자로 불렀습니다.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그와 함
께 하지 않을 수 없어 범사에 돕고 늘 함께 행하여 다윗이 가는 곳마다 기
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록해놓고 시로
읊어 놓았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의지하면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혼자 가도
청중이 가도 하나님과 주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과 주님이 늘 함께 하여 표
적이 일어나 가슴이 뜨겁게 깨달아져 늘 기록할 것이 있고, 간증하고 외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부를 때 ‘주여, 주 하나님’으로 불렀다고 했는데 시
편을 찾아보겠습니다.
(시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방패가 되어주시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시 7: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
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환난 때에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할 때, 결국 하나님밖에 피할 곳이 없
었습니다.
(시 44:2) 『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
서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나이다』
(시 44: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시 45: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나이다』
하나님이 행한 것임을 확실히 알고 영광 돌렸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행하니 사람만 중심합니다. 하나님은 그같이 생각하는 자는 미련하다고 하
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쓰기에 사람의 몸과 마음만 잠깐 쓰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므로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시 44: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
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
우리 대적들과 나의 대적들 사탄들에게서 하나님이 10년 동안 나와 여
러분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시 44:18) 『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
나지 아니하였으나』
모두 섭리 길에서 떠나지 말아야 됩니다. 주님의 길에서 떠나지 말아야
됩니다. 이외에도 시편이나 구약 성경에 하나님을 주로 부른 것이 많습니
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주여”라고 많이
불렀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선생은 예수님을 보고 “주여” 라고 제일 많
이 불렀고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모든 자들이 주님을 제대로 몰랐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어보았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확실히
알고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같이 주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
백할 뿐 아니라 그 주님만 주인으로 구세주로 모시고 그의 몸이 되어 살아
야 완전한 신앙이 됩니다. 그 터전 위에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야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이 못 뺏어가고, 악한 자들도 못 뺏어가고 계속 번창하고 창
대케 됩니다.
전도하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확실히 가르쳐줘야 됩니다. 그 나머지
말씀은 이를 빛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관리해주시고, 그 사
람도 신앙의 뿌리가 확실히 박혀 믿음이 무너지거나 깨지지 않고 변함없는
마음과 믿음으로 굳건히 살게 됩니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
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사람들이 악평 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불신하여 시대의 운명이 기울
어지자, 주님은 이방에 나가 복음을 펴시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 와 발길
을 옮기셨을 때 베드로는 막았습니다. “주여 가면 안 됩니다.”하며 막았
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길이라도 마지막으로 가서 만민을 살려야 되는데, 사
탄이 베드로를 통해 막는 것을 아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
지게 하는 자로다.”하시며 물리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십자가 길을
가셨습니다. 결국 만민을 대신하여 죽어주어 생명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탄은 이방에서 복음을 펼 때도 주님의 길을 막았으며, 또 시대의 운
명이 기울어져 조건을 세우고 구원하러 가는 길도 제자를 통해 막았던 것
입니다. 이에 주님은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시며 사탄도
그 주관 받는 베드로도 책망하시고 생명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도 이 같은 때가 많습니다. 하늘 뜻을 몰라서 막아 선
생을 넘어지게 할 때도 있습니다. 몰라서 사탄과 귀신의 주관을 받고 행하
는 자들을 물리치고 담대히 행해야 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생각하고 사
랑해서 행한 일입니다. 섭리사도 선생을 생각하고 사랑하여 무지로 행하면
사탄과 귀신이 그를 통해 역사하여 말실수하게 하고 가는 길을 막는 것입
니다. 물질 손해도 갑니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을 따르던 자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주여”라고 부르듯, 이 시대는 선생을 그같이 부르면 안 됩니다. 구약시
대가 아닙니다. 또 하나님을 “주여”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는데 선생을 감히 그같이 부르면 안 됩니다.
아버지는 집안의 어른이요, 집안 대통령입니다. 나라의 어른이 아니고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 앞에 자기 아버지를 이 나라의 국부요 대통령
이라 하며, 자기 어머니를 이 나라 국모라 하면 대통령이 웃고 국모도 웃
을 것이며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는 나를 기절하여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섭리사에 매일 청중이 밀려오고 매일 생명들이 전도되어 오니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서 하고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말을 잘
써야 합니다. 선생을 보고 섭리역사를 시작한 창시자라고 하여 주인이라고
하며 “주여”하는 자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선생을 보고 말
씀의 주인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말씀을 듣고 “주여”라는 말이 나와도
꼭 주님이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단상에서 말씀 전하는 자가 잘 전하여 은혜와 진리가 가슴에 화산처럼
폭발하여 정신이 없어도 “주여”라는 단어는 단상에서 말씀을 전한 자에
게 가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받은 선생에게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말씀
을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부르면서 감사하다고 해야 됩니다.
인간은 보이는 자만 집중하고 생각하고 쳐다봅니다. 그런 자는 육적인
자입니다. 영적인 자는 영이 되시고 안 보이는 주님을 중심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영적인 신앙인입니다.
선생은 초창기 때부터 ‘나는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신랑 되시는 주님을 맞아 신부로서 만족하고 산다.’고 했
습니다. 주님이 나의 선생이 되어 무엇이든지 물으면 늘 성경을 중심하여
가르쳐주셨고, 그 배운 것을 30년 동안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음
모하는 자들은 선생을 다른 잘못된 종교처럼 선생을 메시아로 가르친다고
누명 씌우고 공격해왔습니다.
가정의 부모는 될지라도 천주의 신앙의 부모요, 근원자 메시아는 주님
이라고 늘 가르쳐왔습니다. 바울 선생을 통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듯이
“너희를 사도나, 선지자나, 복음 전하는 자나, 목사나, 교사로 보낸 것은
나의 몸이 되어 내 뜻을 펴려 함이다.”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펴고 주님의
몸이 되어 산다고 하여도 내 몸이 주님은 아닌 것입니다. 선생은 주님을
맞은 자입니다. 여러분들도 똑같습니다.
선생이 18~20세 때 부흥집회에 많이 참석했습니다. 선생의 고향인 금
산읍에서 진산 쪽으로 오면 금성면이 있습니다. 금성교회 부흥집회 때 참
석하게 되었습니다. 월명동 고향에서 그곳까지는 왕복 10km정도 되지요.
낮 집회에도 밤 집회에도 모두 참석했습니다.
그때 부흥강사 목사님은 윤석주 목사님이었습니다. 설교는 예수님이 우
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주셨다는 내용이었고, 실감나게 가슴에 와 닿도록
제스처를 잘 쓰면서 죽는 시늉까지 내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가슴이 뜨거워져 모두 무릎을 꿇고 울면서 들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고통의 모습이 강하게 스쳤습니다. 가
슴이 뜨거웠습니다. 설교자를 통해 주님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보
이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여자들은 단상에 올라가서 목사님 발을 잡고, 두
루마기 겉옷을 잡으면서 “주여, 주여!”하며 울었습니다. 말씀에 감동되
어 목사님을 주님같이 보고 그같이 한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 있다가 목사
님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발목을 놓고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주님이 사람을 쓰고 나타나면 그 사람을 “주여!”하며 좇게 되고 잡게
도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를 쓰고 환상으로 보이면 그를 끌어안고 “주
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가 주님은 아닙니다. 잘못되면 그를 주님같
이 보며 따라다니게 됩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실 때 예수님을 주님으로 볼 줄 알아야 되고, 그가 사
랑하여 주님이 쓰는 사명자들과 충성자들을 보고 “주여”로 부르면 안 됩
니다. 주님만을 주님으로 불러야 됩니다. 주님이 사람들을 쓰고 역사하면
보이는 것이 사람이니까 사람을 “주여”라고 부르며 따라간다고 예수님은
가르쳐주었습니다.
신흥종교들을 보면 새롭게 열심히 하고 전도를 많이 하니 주님이 함께
하여 구종교들이 핍박하고 무시해도 크게 하고 창대케 해줍니다. 이같이
주님이 역사해주시면 사람들은 그 지도자를 주님같이 보고 따라갑니다. 주
님이 그 지도자에게 역사하면 주님과 같이 보이나, 그는 주님이 쓰는 자입
니다. 제자요, 사도요, 선지자요, 목사요, 전도사들입니다.
주님은 이를 산에서 기도할 때 가르쳐주셨기에 10,20대에 이미 알고
“주여, 주여”하며 재림주라고 하는 곳에 안 빠졌던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여, 주여”하게 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부르지도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
로 기도하지 않으며 주님이 가르치는 교리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도
멀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흥종교들의 문제입니다.
오늘 주님은 교육 설교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되려면 세계 기독
교 전체의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지체입니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요, 우리는 하나
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머리라면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모든 교파들은 지체입니
다.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외에도 각 교파가 많습니다. 주님 앞
에 모두 지체들이며. 각 개인도 지체들입니다. 고로 선생은 주님께 배우고
영계에서 보고 배워, 나를 따라오는 자들에게 줄반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에 전체 회장 있고, 주님은 우리의 대장되시고, 하나님은 그 위의 존재자이
십니다. 말씀을 잘 이해하겠어요?
선생의 존칭은 선생, 혹은 총회장 목사님, 혹은 문화 선교의 총책으로
총재입니다. 이외에 다른 이름은 공식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없
습니다. 다른 이름을 부르는 자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항상 그같
이 부르고 써야 됩니다. 달리 부르는 자들은 나를 이상하게 만들어 모함하
려는 자들로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교리처럼 30개론에서 가르쳐주기 바랍니다. 역사 공부 중에
서도 2000년대부터 예수님의 강림시간으로 가르치면 됩니다. 모르고 “주
여, 주여”하며 재림주라고 뒤에서 속닥거리는 것 때문에 전도가 100명
될 것인데 10명도 채 안된다고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주님도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사람의 몸을 쓰고 나타나 역사하십니다.
그렇다고 주는 아닙니다. 모두 쓰고 나타나서 말씀도 전하게 하고, 전도도
하며 각종 표적이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오늘 본문처럼
살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베소서 4장 11-12절로 주님이 우리에게 사도, 선지자,
복음을 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세운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해주고 그리스도
의 몸을 세우려 함이며,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려 함이며, 그
리스도 예수의 몸을 빛나게 하고 높이 튼튼하게 세우려 함이라고 했습니
다.
주님이 자기를 통해 나타나면 자기를 세우지 말고 주님을 세우고 높이
증거 해야 됩니다. 주님이 한 뜻이 있어 자기를 통해 나타나면 자기를 세
우고 스스로 높아지면 안 됩니다. 따르는 자들도 그를 중심하면 주님은 멀
어집니다. 결국 인간을 중심한 역사가 되고 교파가 됩니다. 구원까지 상실
됩니다.
1982년도 섭리를 시작했을 때 일입니다. 어떤 자가 자기 삼촌이 아프
다고 하여 종로에 있는 을지병원에 갔습니다. 가보니 암으로 죽음을 앞에
놓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안 믿기에 신앙을 넣어주고 기도해
주려고 말을 꺼내었더니, 기도해달라고 나를 데려간 그의 엄마가 옆에서
기도받기 싫다고 했습니다. 아픈 자는 그 엄마의 남동생이었습니다. 기도만
해달라고 하여 간신히 기도만 해주었습니다.
기도할 때 곧 죽는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기도를 하고 병원 3층에서 내
려오는데 통로에 앉아있던 어떤 중년 남자가 갑자기 나를 보고 “주님!”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 앞을 지나갈 때 내 다리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때 나는 당황하여 할 말이 없어 속으로 ‘내 다리 내 놔. 내 다리 내
놔.’하며 왜 이러냐고 하였습니다. ‘미친 사람이구나.’생각했습니다. 사
람들이 쳐다보기에 쑥스러웠습니다.
그는 나에게 기도 좀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주었습니다. 이
아픈 자를 주님이 낫게 해달라고 하며, 네 믿음대로 원하는 대로 나으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물어보니 교통사고로 7년 동안 고생하고 있는데
정말 낫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말하기를 여기 앉아 있는데 순
간 쳐다보니,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데리고 자기 앞으로 오기에 예수님을
끌어안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달라고, 주여 나를 고쳐달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내 몸을 쓰고 주님이 오셨구나. 암에 걸린 그가 기도
받기 꺼려하고 주님을 영접하기 싫어하니 이에게 주님이 와서 역사가 일어
났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아픈 자에게 “3일 안에 집에 돌아
가리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층을 내려오는데 또 한 사람이 나를 보고 발을 잡고 기도
해달라고 하여 기도해주고 왔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보았는데 선생은 주님
을 전혀 못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여, 주여”한다고 자기를 중심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주님을 보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바로 깨닫고 가르쳐주며 신앙을 바
로 넣어주어야 주님의 몸을 우리 몸을 통해 세우고 나타내게 됩니다. 주님
이 뜻이 있어 순간 그를 통해 역사함을 깨닫고, 사람은 주님께 순간순간
쓰여 지는 몸인 것을 깨닫고 주님을 중심해야 됩니다.
약한 자, 아픈 자를 위해 기도해줄 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이런 때 사
탄이 그를 통해 나타나 ‘내가 주다. 메시아다. 재림주다.’합니다. 주님이
쓰고 가면 사탄이 틈타게 됩니다. 사탄이 역사하여 그 같은 느낌이 와도
오직 주님만 중심하면 됩니다.
“내가 바울이다. 성령이다. 예수다.”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속지 마
요. 잠깐씩 쓰임 받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봉사하라고 세
웠다. 주께서 쓰셨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종교들은 이를 모르고 지도자
를 보고 “주여, 주여”하고, “재림주다. 메시아다.”하며 따라갑니다. 하
나님이 역사하시고 주님이 역사하시면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메시아
다”하고 말하게 됩니다.
주님은 신앙적 신랑이요, 그를 맞은 자는 신부입니다. 찬송가에도 신랑
되신 예수님이 나오고, 성경에도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했습니다. 열 처녀
중에 다섯은 슬기 있고, 다섯은 미련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볼
때, 이를 모르는 자가 미련한 자입니다.
그릇된 종교를 이단이라고 잔인한 말을 붙이기보다 주님을 제대로 모르
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전도되면 잘 가르쳐줘야 됩니다. 지도
자가 잘못 가르쳐주기 때문에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이런 것들을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흔적
을 몸에 가졌다.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
리스도의 마음을 가져라.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한다. 사나 죽으나 주님만
위해 행하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가 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
다.”라고 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예수님은 인간이라 그리스도가 아니
라고 말했기에 그에 해당되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하늘로
부터 온다고 하며 하나님이 온다고 믿었고, 여인에게서 난 자는 주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 여인의 몸을 통해 육
신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어떤 교파든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중심하며 믿고 그 이
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온전한 종교가 아니며 이단입니다. 사도요한이 말
한 대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사는 자들은 사도, 혹은
선지자, 목사들입니다. 그것도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살아야 됩니다. 어떤
곳에도 어떤 말에도 속지 않도록 예수님이 확실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초창기 때도 늘 “주님이 근본자다.”하며 나를 가리켜 그 지체로 역사
하였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종시대 같이 보는 자가 아직도 많습니다.
누구든지 주인의식을 가지고 선생도 그같이 대하되 주님 안에서 주인의식
을 가지고 따라야 됩니다.
주 안에 지체이며, 주 안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목회자들과 각종 개성
의 사명자들을 대해야 합니다. 모두 이를 인식하고 사명들을 행해야 됩니
다. 섭리의 모든 자들에게 가르쳐주었으니 오늘 말씀한 것을 항상 30개론
중 하나로 꼭 전체를 가르쳐줘야 됩니다. 각 교회는 목사님들이 책임지고
강사들과 교인들에게 가르쳐주며, 종교인들이 그릇 생각하는 것도 가르쳐
줘야 됩니다.
오늘은 주님이 교육 설교해주신다고 하여 이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종
교 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개혁자이면서도 그 시대 선지자입니다. “지옥은
있다.”라는 책을 쓴 자와 “천국은 정말 있다.”라는 책을 쓴 자들은 두
감람나무로 주 앞에서는 시대 중심인물이고 선지자라고 주님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는다고 하였지요. 역사적으
로 우리는 중심인물들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현실에서 가장 큰 것은 말씀
을 제대로 알고 시대에 따라 제대로 주님을 믿고 그날그날 삶을 사는 것입
니다.
지도자가 잘못 가르쳐주면 그 따르는 자들까지 다 잘못되어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잘 가르쳐주어 주님을 잘 믿게 해주면 그 시대 하나님이 주
시고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은 여러분들에
게 신앙 하나는 제대로 넣어주고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선생이 모르면 제
자도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께 날마다 배워야 됩니다.
우리는 한 가정을 이룬 섭리사요, 한 시대를 이룬 자들이 되었고 주님
을 중심하여 복음 선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시작도 주님이 하였고 끝도 주
님이 인도해가십니다.
부흥되고 창대케 되려면 주님을 잘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존귀히 모셔야 됩니다. 주를 메시아로 잘 가르쳐 구원의 필요성을 갖게 해
주고, 말씀을 잘 전하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도록 해주고 역사하게 해줘
야 됩니다. 주님이 수시로 역사하여 병도 낫게 해주고 만사형통하게 되도
록 해줘야 축복을 받고 잘 되니 모두 밀려옵니다.
모두 주의 몸으로 쓰이고 주님이 자기와 동행하며 살도록 주님의 마음
으로 말씀을 전하며 실천으로 가르치며 나갈 때 주님은 수시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걱정 말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 되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면 족한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가르쳐서 혼돈되는
자가 없게 해야 하며, 혼돈되어 잘못된 종교에 따라가지 않게 해줘야 됩니
다. 항상 말 한 마디 실수 없이 행해야 되고, 단상에 서는 자들은 실력 많
이 쌓아야 되고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님의 사랑하심과 그 진리가
충만하고 범사에 형통하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