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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08.12.31 (수)

수요말씀

선포일
2008.12.31 (수)
성경 본문
마 23: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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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1일 수요말씀> 기도와 말씀, 뜻과 사연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주 님의 사랑으로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금년도 마지막 날이면서 마지막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자에게는 할 말도 많고 지난날의 사연도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우리들 에게 그러하십니다. 올 한 해 동안 하늘에 얽힌 사연도 많았고, 선생님과 의 사연도 많았습니다. 환난과 풍파와 갖은 고통들을 마 음에 많이 겪으며, 몸소 어려운 일들을 많이도 겪은 한 해였습니다. 모두 주님을 중심하여 선생과 함께 잘해보자 고 한 일들로 인하여 서로 심정의 쓰라린 일들이 많고도 많았으며, 사연과 우여곡절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오해와 아픔은 쉬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생을 사 랑함이 거짓 없는 고로, 말씀을 통해 이 해가 가기 전에 풀어지고 이제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되었으니 보람 있고 선생도 기쁩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진정 한없이 사랑해주시고 긍휼히 여기신 은혜이며,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의 역사이며, 간절한 우 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끊임없이 역사해주신 결과입니 다. 다함께 말해볼까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진실로 감 사한 마음을 담아서 한 목소리로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주님.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어 려운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원하는 것을 주셔서 진실로 감 사합니다.” 하늘과 땅의 사연곡절들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성령 님의 감동으로 더욱 생각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면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겪을 때는 가슴 아프고, 서로 오해도 하고, 심정 태 우며 애간장 태웠습니다. 또 서로 원망했던 일들과 하늘 을 쳐다보며 한숨 쉬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우연이 아닌 하늘의 사연과 땅의 사연이 있었던 것을 알 고는 울다가 오히려 웃기도 했습니다. 몰랐을 때 불행했 던 일도 알고 나서는 행복한 사연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행위에 따라 어련히 알아서 하셨겠느 냐.”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주님이 사랑하는데 해를 주겠느냐. 그러니 「주님 나 사랑해요?」라고 묻지 말라.”했습니다. 몰라서 그렇지 싸우는데도 사연이 있고, 고난과 억울 함을 받는데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하늘사연이 있었던 것 을 다 겪어 보았습니다. 무지 속에 상극하지 말라고 이미 배웠습니다. 생활 속에서 늘 말씀을 잊지 말고 호흡하면 서 살아야 됩니다. 자기를 위한 일인데 몰라서 싸우고, 그 후에 그로 인하여 잘되면 그에게 미안하여 얼굴을 제 대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가 되어 회개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연 속에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사연이 함께 있어, 성령의 감동의 역사가 일어났던 일들이 한 해 동안 너무 많고도 많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다 말할 수도 없습니 다. 한 해를 회상하며 매듭짓는 마지막 말씀으로 하려합 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주님을 믿는 자들로 인하여 마음 아픈 사연들이 너무 많 았습니다. 2008년이 넘은 오늘까지도 유대인들은 자신들 의 선조들이 그 시대에 주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고 주님을 믿는 자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며 가혹한 짓들을 하였기에 선조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괴로 워 양심상 주님을 사랑하며 무엇을 해달라고 감히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죄만 회개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이 성장하여 철이 들면 어렸을 때와 달리 부모를 대하듯, 신앙의 어른이 된 자라면 자기 선조들이 행한 잘못까지 하나님과 주님께 회개해야 됩니다. 사람도 그 사람에게 꺼리는 것이 없어야 마음에 거리낌 없이 구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주님이 보실 때 마음에 거리낌 없이 살아야 마음 껏 사랑하게 되고, 구할 것도 떳떳하게 구하게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고 삽니다. 그 죄가 후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죄를 지은 자신에게는 그 여파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죄에 대 해서 모르니, 회개하여 용서를 받은 자가 그 얼마나 행복 한 것인지 모릅니다. 용서받는 것처럼 기쁜 일이 없고, 회개하여 죄를 씻어 없앨 때처럼 기쁜 일도 없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죄 지은 것만큼은 다 회개하여 용 서받음으로 죄보따리를 지고 새로운 해를 맞는 자가 없기 를 바랍니다. 주님은 짤막한 공생애 3년 동안, 행복한 일들과 마 음 아픈 일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복음 을 펴면서 있었던 일들, 혹은 홀로 가시면서 있었던 일 들, 이방인들과 얽힌 일들, 그리고 그 시대 반대하고 괴 롭히던 종교인들과 얽힌 일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 다. 2000년 동안 그 사연에 얽힌 이야기들이 결국 설교 가 되고 생명의 말씀이 되어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되었 습니다. 사연이 없었더라면 주님을 사랑하더라도 이야깃 거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4000년이나 희망으로 기다렸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인생들 을 죄에서 구원하여 지상에 천국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일생을 살아가면 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했건만,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은 AD 70년에 피로 물든 강산으로 변해버 렸고, 이스라엘 민족은 마치 쇠고랑을 찬 한 여인처럼 애 처롭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운명의 길을 가게 되고 말 았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셨을 때 이스라엘 민족의 앞날을 보시 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하였건만, 너희는 원치 아니하였노라. 그러므로 예 루살렘 성전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 고, 민족이 모두 흩어져 이웃나라에 묶여 끌려간다.”고 했습니다. (마 23:37-39)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 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39] 내 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 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결국 그 말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보낸 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느 시대든지 누구나 망하 고 민족도 망한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느냐고 물 었지만 “너희는 알 바 아니다. 개국 이래 이 같은 환난 이 없을 것이다.”말씀하시고 슬퍼하시며 마음속에 홀로 눈물의 강을 흘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 난 후에 사랑하는 제자들이 당할 일들을 생각하시며 안타 까움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직도 자기 선생이 가는 길을 모르고 있는 것을 보시고 답답한 심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알면 불안 하고 걱정하니 말을 안 해준 것입니다. 홀로 고독한 마음 을 겪으시며, 오직 이 모든 일을 아시는 하나님께만 기도 하며 속이야기와 사연들을 털어 놓으셨습니다.(마 24장) 주님에게는 이 같은 사연곡절이 많고도 많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자들이 주님이 세상에 살아계셨을 때 어떻게 살다가 가신지 모르고 믿으면, 깊이 사랑할 수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 예수님 살아생전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집에 얽힌 사연도 참으로 깊습니다. 이는 2000년 역사를 두고 말하는 사연이 되어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었고, 주님을 다시 깊이 생각하게 하였 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그 가정을 부러워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 시대에 그같이 행하십니다. 향유 옥합을 쏟아 주님의 머리에 붓고 발을 씻긴 마 리아를 쳐다보며, 가룟유다는 마치 주님의 심정이나 안다 는 듯이 “아니, 그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얼마나 좋으냐.”하며 마리아에게 핀잔을 주 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보시고 가슴속에 묻힌 사연을 말 씀하시며 “실상은 나의 죽음을 위해 하는 일이다. 이 여 인이 한 일을 이 복음이 가는 곳마다 말하여 교훈하여 마 리아와 같은 자들이 일어나게 할 것이다.”했습니다.(요 12:1-8) 주님의 말씀대로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 옥합을 부은 이야기는 2000년 역사를 두고 말씀하여 모 든 자들로 은혜와 감동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게 했을 뿐 아니라, 많은 자들이 주를 위해 젊음의 향유를 쏟아가면 서 주님을 따르게 했습니다. 선생도 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젊음의 향유 옥합을 주님께 드려 쓰시게 했습니다. 깊은 사연을 남긴 성경을 자세히 읽고 깨달으려 기도해야 자신에게 할 일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이 순간에도 자세히 들 어야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한 과부의 헌금은 주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였고, 누구든지 헌금하는 자들은 이 같은 마음으로 하라고 산 교훈을 주었습니다. 가난했던 사연의 헌금이 이같이 2000년이나 두고 말하게 될 일이었음을 그 과부는 몰랐 을 것입니다.(눅 21:1-4) - 한 소경이 예수님을 보고 자기 좀 불쌍히 여겨달 라고 부르짖어, 주님은 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 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결국 나았습니다.(요 9:1-7) 이 기적의 사연은 너무도 기이하고 깊은 사연이며, 주님의 오묘하심과 능력을 보게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영적 소경들과 치유가 전혀 불가능하여 희망이 없는 자도 주를 부르고 찾으면, 어느 시대 누구든지 그같이 된다는 희망의 사연을 주었고 고침을 받게 했습니다. 소경은 앞 날에 그 같은 뜻이 있을 것을 후에 가서야 깨닫고 과거의 사연을 풀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 말씀을 상기하며 믿 는 자들에게 신기하고 기이한 병 고침의 역사가 연속되고 있습니다. -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나사렛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들을 불쌍히 여기사 능히 고쳐줄 것을 믿는 자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 중 한사람이 주님께 감사하다 고 하였을 때 “너만 나았느냐.”물으니 “모두 다 나았 습니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안 왔느냐. 어디 로 갔느냐.”물었습니다.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한국의 속담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열의 하나’의 감사를 받으시며 그를 축복해주셨습니 다.(눅 17:11-19) 고침을 받은 열 명 중에 한 사람만 주님께 감사하므 로 십일조가 생각나게 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도 감사는 하는 자만이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더 축복하심 을 교훈하시며, 하늘의 비밀과 은밀한 사연을 남기셨습니 다. - 주님은 사마리아 땅에 가시어 몇 마디의 대화 속 에 자기를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임을 깨닫는 우물가 여인 으로 인하여 유대종교인으로부터 받은 답답한 심정의 한 을 푸는 사연을 남기는 날이 되었습니다. “너희도 이같 이 나를 깨달으라.”는 주님의 속심을 외치게 했습니다. (요 4장) 이 시대도 모두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처럼 주님을 확 실히 믿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확실히 모르고 믿으면 주님과 정이 안 듭니다. 사연이 깊을 수 없습니다. 사연 은 그와 고생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함께 겪으면서 생기 는 것입니다. -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속 시원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 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곳은 깊은 사연의 자리가 되었고, 주님을 깨닫지를 못하는 자들의 심령의 눈을 뜨 게 하는 말씀의 사연을 남겼습니다.(마 16:13-20) 주님은 “너희도 이같이 화끈하게 나를 깨닫고 믿으 라.”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동안 주님과 같이 겪은 지난 날의 사연을 풀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깨달아야 지난날 사연들이 풀립니다. - 세례요한과 얽힌 사연은 심정답답하게 제 주관대 로 믿거나 자기를 중심하는 자들에게 교훈을 준 사연으로 써, 주님과 일체되지 못하고 답답하게 누구를 맞을지 모 르고 사는 신앙인들을 가슴 뜨끔하게 깨우치는 교훈을 주 었습니다. 또한 주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고, 증거의 사명 을 제대로 하도록 사명자들을 교훈하는 깊은 말씀의 사연 을 남기게 하여 시대마다 외치게 했습니다. - 엄청난 사연이 담긴 골고다 십자가의 사연들은 주 님을 따라 믿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충격과 슬픔과 가슴의 한을 갖게 하며, ‘너희도 너희끼리 무지 속에 이같이 형 제들을 미워함으로 고난을 주지 말라.’는 교훈을 남겼습 니다. 이에 따른 주님의 말씀을 역사로 남기며 구원의 길 로 가는 사연을 남기게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동안 같은 주님을 믿으면서 서로 의 견이 다르다고 싸웠습니다. 혈기에 가득 차서 주를 죽이 듯이 믿는 자들끼리 죽이고 싸우며 신앙전쟁들을 해왔습 니다. 선생도 여러분들에게 말했습니다. 기성들이 나를 미워하고 시기질투하고 악평하듯이 여러분들끼리 같은 선 생을 따르면서 그 같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서로 미워 하고 악평하며 싸웠던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세는 고통스럽고 마음이 아팠지만, 결국 그 같은 사연으로 지구촌에 주님을 믿고 따르는 역사는 인파 의 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도 몰랐을 때는 그같이 싸우며 오해했지만, 사도 시대같이 서로 하나 되어 온 세 상을 복음으로 번창하고 창대케 해야 됩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육신이 살아있을 때 마음껏 하지 못 한 일을 다시 영으로 오시어 2000년 동안 믿고 따르는 자들을 통해 기어이 구원의 역사를 폈습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채 하나님을 믿던 유대종교인들의 후손들 앞에 주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의 젓하고 떳떳하게 역사를 보여주어 그들을 무색하게 했습 니다. 주님은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쟁을 하는 이스 라엘 민족을 보시고, 살아있을 때 자신을 대하던 그 사연 에 대해 침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 에게 은밀히 그 사연을 말해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2000년 동안 역사를 펴시면서 받 은 모든 사연들을 가슴에 품고서 자기를 믿어주고 신임하 며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을 믿 고 사는 자들과 자신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음을 전하고 인생을 바치며 사는 구원 받은 자들을 위해 그 있을 처소 를 상상할 수 없이 다 준비해놓고 다시 오셨습니다. 그 나라의 문이 우리 앞에 가까이 와 있으며 주님은 곁에서 우리들이 하는 일을 보고 계신답니다. 준비하고 예비하고 미련 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될 한 때를 우리는 보내고 있습니다. 구약역사의 사연들은 큰 사연들만 말해도 수백 개나 됩니다. - 고통을 통해 축복 받은 요셉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3년 동안 감옥에서 고통을 받 으면서도 낙심치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살았습니다. 요셉이 어렸을 때부터 호랑이 같고 야수 같은 배다른 형제들이 그를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계속 미움을 받다가 결국 이웃나라에 팔려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억울한 이성 의 누명까지 쓰고 3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도 충성하였습니다. 결국 그 옥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연이 있었으 니, 왕의 번민을 풀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여 그 시대 민족 의 문제를 풀어주었고, 왕의 다음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 다. 그리고 자기를 무시하고 미워하고 가혹하게 대한 형 제들이 놀라 평생 우러러 섬기게 한 사연이 되었고, 자기 를 억울하게 한 자들을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권력을 하 늘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제야 지난날에 자신이 당한 사연을 풀게 되 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이 있어 나 를 이렇게 이끄신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감격해 한없이 울기도 했습니다. 파란만장한 요셉의 삶과 같이 고통을 겪지 않은 자는 말 못할 그 심정을 알 수 없을 것 입니다. 고통과 억울함 속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들어 있 었고, 세상은 그같이 대하여도 하나님은 절대 그렇지 아 니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도 요셉을 통해 극심한 흉년으로 인하 여 닥칠 삶의 고통을 피해 살게 되는 운명으로 가게 되었 고, 그로 말미암아 한 족속과 민족을 이루어 다시 돌아와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게도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속에 사는 자들은 다 이 같은 사연이 있음을 믿고, 담대 하고 떳떳하게 어떤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한 주님을 믿는 자들이 교파가 다르다고 서로 이단시 하고 미워하고 가혹하게 대하던 이 시대도 마치 배다른 요셉을 대하듯 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주님이 사랑 하니 결국은 대역사를 이루어가게 했습니다. 이단시하고 미워했던 자들이 결국은 주님을 더 바로 알고 더 증거하 며 구원을 받고 보람 있게 살아가도록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 다윗에게도 사연곡절이 많습니다. 사울 왕으로부 터 갖은 고통을 받았지만,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맡기기 위한 사연을 낳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을 때는 지난날 사울 왕에게 받던 사 연들이 다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알고 의문을 풀었고 시편에 기록했습니다. - 요나가 받은 고통의 사연은 결국 니느웨 성에 살 고 있는 12만 명을 회개시켜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함이 었습니다. - 모세의 사연곡절 고통들은 결국 하나님의 민족을 자기 땅으로 인도해 내기 위한 역사적인 사연 때문이었습 니다. - 에스더가 왕후가 된 사연은 실상 자기 민족을 구 원하기 위한 사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 없는 자기 민 족을 모두 죽이려 했던 하만을 죽게 할 자는 왕후 에스더 가 아니면 할 자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왕의 부인이 되어 사는 입장이 아니라 억울하고 원통한 민족의 한을 푸는 뜻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에스더는 기도함으로 민족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유 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구를 위해, 민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면 꼭 해주십니다. 악한 자로 인하여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놓인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운 은밀한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말씀을 들으면 서 이 시대도 하나님이 그같이 사명들을 준 것은 자기 백 성을 구하고 자기 사랑하는 자를 구하라고 하신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사연이 있어 자신을 그 같은 위치에 세운 것은 사명을 하는 자 밖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그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주님도 함께하며 역사하십 니다. 절대 자랑 말고, 알아달라고 말해도 안 됩니다. 말 하는 자들은 사탄이 주관하는 자입니다. 정말 사명을 받 은 자는 절대 말하지 않는 자입니다. ‘여호와 이레. 준비해놓으셨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뜻 있는 자를 그 뜻대로 쓰십니다. 쓰임 받는 것도 복입니다. 선생이 홀로 가는 곳 같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하 나님께서는 미리 여기저기 필요한 자들을 사연 깊이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프랑스·이태리·독일·스페인·영 국·미국 등 각 나라에 갔을 때, 이미 하나님은 주님과 함께 가장 필연적인 통역관들을 15년 전부터 준비해놓으 셨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선생님이 왔을 때 통역하려고 이같이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통역하면서 알 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나라에 복음을 넣게 하였 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연들이 다 풀려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펴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는 곳마다 미리 다 준비해놓고 행하셨 습니다. 어느 때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이같이 준비해놓으셨는데 내가 안 왔으면 절대 안 될 뻔 했다.’ 는 말이 절로 입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겪고 왔을 것입니다. 지난날을 모두 회고해보고 현실을 생각하며 쳐다보면 이 말씀과 일체가 될 것입니다. 말씀이 끝나면 모두 자기의 지난날들을 회 상하며 은혜 나누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수요예배 후 에 이 말씀에 따라 간증하는 시간을 갖고, 교회별로 프 로그램을 진행한 후에 밤 11시부터 전체 생방송으로 이 어집니다.) 사연곡절 끝에 미리 준비해놓으신 자들을 보면 하나 님께 쓰여 질 때까지, 선생에게 쓰여 질 때까지는 ‘왜 내가 여기에 와서 이렇게 외롭게 살지?’하고 생각했습 니다. ‘내가 기도는 했어도 이같이 홀로 외롭게 살려고 기도하지는 않았는데... 꼭 선생님 만나게 기도했는데, 왜 내가 광야 같은 이곳에 와서 쓸쓸하고 처량하게 있게 되 었지?’하며 날마다 밤이 깊도록 생각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와 “이 밤중에 누구야?” 하며 문을 열고 어둠 속에 음성 을 들어보았더니, 설교 때 듣던 음성... 그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참으로 놀랄 일이지요? 사연이 풀리는 감격의 눈물이 선생에게도, 그에게도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때는 자기 홀로 소쩍새처럼 살고 있는데 선생이 거쳐 가다가 그 마을에 살러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가 없어 감격해 울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왜 내가 넓 은 땅을 두고 여기 와서 살게 되었나?’ 사연을 풀지 못 하고 살았지만, 선생을 만나고 깊은 사연임을 그제야 깨 닫고 흐느끼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준비된 자들이 없 었더라면, 선생도 실상은 광야에서 길 잃은 양의 삶이었 습니다. 주님은 내 옆에 계시면서 “걱정 마.” 단 세 마디로 나의 모든 것을 다 풀어주는 열쇠였습니다. 뜻을 따라 가 보면 구사일생으로 그곳에 한명씩 와 있을 때도 있었고, 아무도 없을 때는 그곳에 사는 자를 연결시켜 사연의 주 인공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도 없이 정말 나 홀로 있을 때는 주님이 곁에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 네 옆에 있다. 아무 걱정 말아 라. 나 있으면 됐잖니. 너는 공포에 싸여 있느냐. 어떻게 인생들을 대하고 죄인들을 다루는지 모두 자세히 보고 겪 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 이것이 지금 네가 꼭 해야 될 내가 원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어서 주님이 자주 내 게 와서 도우셨습니다. 선생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한 것 도 주님이 나를 살피듯, 환난 중에 잘 살펴주었다고 했습 니다. 또 주님은 “네 몸에는 아무 해를 주는 자가 없을 테니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말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 습니다. 주님과 얽힌 사연과 선생과 얽힌 사연 속에 지난날들 을 추억하고 회상하며 금년도 마지막 밤 말씀을 듣고 있 습니다. 특히 선생이 한국에 없는 동안, 그리고 각 나라 순회 를 못하는 동안 모두 각자 맡은 일들을 하느라 정말 수고 들 많았습니다. 자기만이 자기가 겪은 고통을 알고, 오직 하나님과 주님만이 자세히 아십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해줘도 그 심정을 몰라줍니다. 알아주기 원하고 심정을 풀려면 그 사연을 주님께 이야기하고 하나님께 이야기하 기를 바랍니다. 선생을 만나서 이야기해주면 듣겠지만, 일일이 안 들 어봐도 기도하면서 다 겪고 마음에 느껴옵니다. 선생이 더 많은 고통도 겪고 일을 했기에 잘 압니다. 나무 한 그 루 심는데 얼마나 힘들고 수고를 해야 되는지, 전도 한 사람 하기 얼마나 힘든지, 가르치고 관리하는데 얼마나 애로가 많고 심정이 상하는지, 먹고 살면서 십일조하고 헌금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씀 전하고 섭리 일하면서 외부 사람들로 핍박 받고 억울한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심 정이 상하고 화가 나고 울화통이 터지는지, 또 같은 섭리 길을 가면서도 심정 몰라주고 고통 주는 자들로 얼마나 심정이 상하고 애간장이 탔었는지 다 압니다. 가정국들이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며 하늘 가정이 되 기 위해 몸부림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다 압니다. 좋은 사연들을 만나면 다 풀어지는 날이 또 옵니다. 그런 가운데 믿음을 버리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주님을 사랑하 고 온 사연들로 인하여 결국 주님과 정이 들게 되고, 더 큰 사랑을 받게 된 동기가 되고, 선생과도 더 가깝게 된 것입니다. 예술 하는 자들도 무대에 설 때까지 얼마나 준비하며 숨은 수고가 많은 지 짐작이 아니라 해봐서 그 심정을 다 압니다. 목회자들의 심정도 압니다. 선생도 목회를 하고 있으 니 그 심정을 알고 꼭꼭 기도해줍니다. 놀지 말고 열심히 해야 됩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춥고 배고픈 고통을 겪고 사는 자들 과 희망조차도 잃고 사는 자들, 가정 핍박을 받는 자들, 모두 겨울이 지나가듯 어려움이 지나가게 되고, 봄이 오 면 왜 이 같은 사연들이 있었는지 깨닫고 웃을 날이 꼭 옵니다. 핍박과 어려움 중에 주님은 더 역사하십니다. 앞날에 희망을 이룬 후에는 모두 사연들이 됩니다. 선생도 산 속에 있을 때,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헐벗고 잘 곳 없어 사경을 헤매던 길고 긴 몸부림의 역사가 있었 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주와 같이 많은 생명들을 하나님께 돌리며 섭리사를 폈을 때는 ‘이러므로 과거에 이 같은 사연들이 있었구나.’하며 다 풀리고, 그 사연들 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 니다. 그러므로 섭리 모든 자들은 낙심도, 의심도, 좌절도, 포기도 말고 감사하며 힘을 얻으라고 주님이 이 같은 말 씀을 주셨습니다. 이를 선생도 깨달았기에 담대히 말해주 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일을 해야 됩니다. 일해야 존재합니다. 어젯밤 꿈 이야기 하나하고 말씀 계속 하겠습니다. 꿈에 숲 속에 지은 허술한 집 앞을 지나가게 됐습니 다. 그 마당과 정원을 보니 “놀자”판이었습니다. 옆 사 람을 보고 “이 누구네 집이요? 집을 보아하니 먹고 살 기도 어려운 가난하게 사는 집 같은데, 이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어 논단 말입니까?”했더니,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 게 “이 집 유명한 집인데 집주인 몰라요?”했습니다. 여러분, 이 집이 누구네 집 같습니까? 대답 좀 해봐 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노는 것을 보니 놀부 그 녀석 집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아련히 떠올라 “아주머니, 혹시 놀부네 집이 아닙니까?” 했더니, “아시는구먼. 놀 부네 집 맞습니다. 놀부네 집에 왔으니 놀아야지요.”했 습니다. 이에 나는 “이 길로 가서 우리 큰 어머니가 아 파 기도해주러 갑니다. 전에는 이 길이 없었는데, 놀부네 집 때문에 큰 길이 났네요.”했더니 “요즘 노는 자들이 많아 길을 넓게 닦았어요.”했습니다. 대청에서는 음식들을 차려놓고 먹고 놀고 있었습니 다. 쳐다보니 세상에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에 있 을 때 술 마시며 잘 놀던 자들이 거기 다 모여 먹고 마시 며 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를 보고 인사를 하며 어서 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갈 길이 바쁘다고 거절하며 다른 허술한 건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섭리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습니다. 누구라고는 이름을 말할 수는 없는데 거기 올 자들이 아닌데 꽤 와서 놀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까이 가니 그 중에 일부가 알아보고 “선생님 이 여기 올 줄은 몰랐어요.”하며 깜짝 놀라 슬슬 빠져나 갔습니다. 몇 명이 남아서 하는 말이 “요즘 쉬고 있어 요.”했습니다. “왜 쉬느냐. 노느냐.”물었더니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 말이 자기를 두고 말한다고 생각하는 자 들은 다시는 놀부네 집에 안 가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선생은 그 길을 따라 내려가 아파서 다 죽어가는 큰 어머니를 찾아가 기도해주어 다시 살아나게 해주었습니 다. 돌아오는 길에 놀부네 집 앞 길로 오면서 보니, 역시 놀부네 집은 노는 자들로 차고 넘쳤습니다. 요즘 경제가 죽어 있는데 놀부네 집만 사람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곳 에 섭리사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어려워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하나님이 자기 에게 맡긴 할 일은 있습니다. 일은 찾으면 있고, 해야 할 일이 제대로 보입니다. ‘사연’하면, 자연성전을 건축할 때 하나님의 야심 작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심작에 대한 사연은 깊고 깊으며 고통도 많았습니다. 네 번이나 무너졌을 때는 마 음 쓰라린 고통의 사연밖에 없었지만, 다섯 번째 쌓아놓 았을 때는 네 번이나 무너진 사연을 깨닫게 되었고, 모두 기뻐 좋아하면서 그제야 과거의 고통을 다 떨쳐 없애고 기쁨의 대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10년이 지난 오늘 도 그 사연을 회상하며 그곳을 생각할 때 기쁨이 떠오르 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사연들을 잊으면 하나님도 주님도 열심히 역 사를 안 하십니다. - 한번은 눈코 뜰 새 없이 성지땅 작업을 하는데 범 석 목사가 “선생님, 다름이 아니고 아랫마을 상래 형 땅 으로 길을 넓히면서 우리가 도랑도 손질해준다고 약속했 었죠? 며칠 전부터 약속대로 포크레인을 내려 보내 물 내려가는 도랑 좀 손 봐달라고 계속 전화가 오네요. 특별 히 손 댈 것은 없는데 말을 계속하니 잠깐 가서 해줘야 되겠네요. 며칠 전에도 지금까지 안 했느냐고 독촉이 와 서 말다툼을 했네요.”했습니다. 할 수 없이 바쁜 일을 중단하고, 500m 중 말거리 들어가는 먼 곳까지 포크레인을 몰고 갔습니다. 포크레인 은 먼 길을 가면 기계에 무리가 많이 갑니다. 그렇다고 한 번 쓰는데 비싼 차를 불러 실어 나를 수도 없었습니 다. 선생도 같이 내려가서 도랑을 넓게 해주는 일을 했습 니다. 실상은 많은 양의 물이 내려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 에 거기만 도랑을 넓힐 필요는 없었습니다. 일을 다 하고 마지막 손질을 하는데 포크레인 기사가 “선생님! 돌 하나가 긴 것이 걸리는 데 빼볼까요?”하 기에 “적당히 하고 어서 가서 일해야지.”했습니다. 그 런데 또 “돌 길이가 긴 것 같은데 빼볼까요? 말까요?” 했습니다. 순간 마음이 감동되어 “네 마음대로 해.”하고, 5분 쯤 지나니 돌 하나를 뺐다고 하며 들고 보여주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갖다 세우면 되겠다.”하니, 기사는 “어차피 빈 차로 가니까 하나들고 가면 그래도 기름 값 이 되잖아요.”하며 껄껄 웃었습니다. 일하는 자들도 모 두 좋아했습니다. 그냥 버리고 가려다가 모두 좋아하기에 “이왕 빼냈 으니까 가지고 어서 가자.”하고 같이 왔습니다. 결국 운 동장에 갖다 놓고 “오늘 품삯이야. 그래도 공은 안 쳤 네.”하며 모두 좋아했습니다. 돌이 별로 안 커서 세워도 본때는 안 나지만, 세울 곳에 세우면 괜찮겠다고 했습니 다. 몇 시간 후에 다시 보니 사람 지체의 한 부분으로 보 여 깜짝 놀랐습니다. 그 돌이 예사롭지 않기에 큰 돌 위 에 올려놓고 모두 보게 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모세에 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대로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 신을 벗으라.”하는 말씀이 머리에 ‘찡’ 생각 나면서 이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땅임을 더 깨닫게 되어, 상징 돌로 놓고 보게 하고 있습니다. 이 돌은 여러분들도 모두 잘 알지요? 처음에 길 닦으라고 산을 조금 주고는 기어이 도랑 내달라고 한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제자들만 가서 일 을 해주었더라면 이 같은 사연이 없었을 것인데, 화가 복 이 되게 한 사연을 만든 것입니다. 후에 알고 보면 고통 의 사연들로 인하여 기쁨의 사연을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이 일을 말해주시며 “모두 이와 같이 뜻이 얽혀 하나님도 주도 도우니 희망으로 하라.”고 했 습니다. - 월명동에 돌을 쌓기 위해 처음에는 충북 단양에 돌을 사러 갔다가 6개의 돌을 사 놓았습니다. 돌 값이 너 무 비싸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돌을 사 다 쌓으랴.’염려가 되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 다. 기도를 계속하면서 주님께 사연을 고했습니다. 그 다 음에 제자들보고 단양에 사놓은 돌을 실어 오라고 하여 실어왔는데, 예감이 이상하여 확인해보니 그중에서 제일 좋은 돌이 안 왔습니다. 숫자는 맞는데 좋은 돌과 비슷한 작은 돌로 바꾸어 실어 보냈던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이번에는 내가 바쁘지만 왕복 5시간 을 걸쳐 단양으로 갔습니다. 마당에 내가 처음에 샀던 돌 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꿔 실어 보낸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진 찍어 놓 은 것을 보여줬더니, 그래도 양심을 속이면서 아니라고 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주인과 같이 꿩고기를 시켜 먹었습니 다. 선생이 꿩을 잡아 잘 대접하니, 마지막에는 주인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음에 오면 좋은 돌을 값을 헐하게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나를 속였으니 다음에 는 이곳에 안 옵니다.”하고, 그 후로 13년이 넘도록 가 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도하는 중에 꿈에 앞산 야심작 정상에 손가락 돌을 보여주어 그 돌이 있는 곳을 찾아가 돌들이 있는 보 령 돌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돌을 산 것이 사연이 되었고, 그 돌 하나를 가지러 갔을 때 그 돌 로 연결되어 솔로몬이 레바논의 백향목을 베어다 성전을 짓듯이 그곳에서 많은 돌을 가져다 자연성전 조경을 했습 니다. 단양에서 나를 속이고 서운하게 하는 사연 때문에 보 령으로 방향을 돌리어 사연 있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 입니다. 처음에 야속했던 일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모두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으니, 오직 감사하면서 하 기를 바랍니다. 형제가 속이고 거짓말해도 ‘다 무슨 사 연이 있겠지.’하고 가야 됩니다. 각종 사연에 얽힌 섭리 역사 일들은 끝이 없습니다. 금년도는 기도와 말씀의 해였습니다. 어느 해보다 선 생님으로 인하여 기도를 많이 하고, 사연 깊은 말씀도 많 이 한 해입니다. 이로 인하여 선생도 스무 달 동안 60만 번의 기도와 감사를 함으로 과거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일 을 했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께 각각 기도와 감사 를 했으니 180만 번이 됩니다. 사연이 없이는 이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의 사 연을 두고 온 양떼들이 걱정이 되어 기도하게 되었고, 나 와 같이 육들도 영들도 모두 세상 넓은 곳에 갇혀 사는 것을 보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을 자유롭 게 해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며 주님 입장에서 기도를 생명시 했습니다. 복음의 사슬에 묶이니 이 같은 기도를 하게 되었고, 여러분들도 각자 기도함으로 신앙들 이 살아난 사연이 되었습니다. 영의 세계를 보았기에 기도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주 님은 내가 극한 상황에 처할수록 더욱 기도하게 하심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온 지구상 모든 인생들을 하나님이 그같이도 돕고 사랑하시는데 한 번도 감사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살아가니, 깨달은 자가 대신 감사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지옥 의 고통을 받고 지옥으로 가는 생명들을 보고 밤낮으로 기도를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하면 영들이 생명권으 로 나오는 것이 보이니 기도를 안 할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기도로 민족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기도하고 한국에 와서 말씀을 외치니 모두 살아나고, 꿈 에나 기도 중에 보이던 자들이 다시 교회에 나와 살아나 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사연이었습니다. 내가 고통을 받으므로 고통 받는 자들의 심정을 알고 기도해줄 수 있었습니다. 나와 섭리와 민족과 세계를 위 해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루에 수천 번 씩 기도했습니다. 감사치 않으면 역경과 환난 중에 사탄 의 주관을 받고 스스로 넘어지고, 하나님과 주님의 기대 와 나를 기다리는 섭리 모든 자들의 기대도 깨어지니 늘 감사가 끊어지지 않게 했던 것입니다. 감사해야 감사할 일이 계속 생기는 것입니다. “외롭다. 쓸쓸하다. 나 같은 자가 세상에 어디 있 어?”하지 말고 그런 때 기도하고 감사하며 지구촌에 둘 도 없는 사연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지구촌에 없는 표 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대로 해줄 테니 다 기도하라.”하 시며 기도에 대한 필요성과 그 본질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같이 기도하지 않았으면 선생은 또 다른 길을 갔을 것 입니다. 모두 소쩍새처럼 목 놓아 밤을 지새우면서 작년 에도 금년에도 기도하였기에 새롭게 희망의 해를 맞게 된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모두 견디며 사망으로 가지 않게 되었고, 영원히 지옥으로 갈 자들도 생명 길로 끝까지 오 게 된 사연들이 뜻과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2008년 <기도와 말씀>이란 주제를 받을 때도 사연 이 있었으니,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기 바랍니다. 2007년 12월 어느 날, 나를 조사하는 자들이 “내 년도 2008년에 그 단체의 주제가 무엇입니까?”하고 물 었습니다. 나는 “조사에 해당도 안 되는 것을 왜 묻습니 까? 알 수 없어 대답을 못하겠습니다.”했더니, 그들이 내 말을 듣고는 한 번 물어본 것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주 제는 누가 정했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정했다고 하니, 그 럼 지금 하나 정해 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정신이 없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납니다.” 했더니, 그 중에 한국말 통역하는 조사원이 “그리 생각 안 나면 하나님의 법을 전하는 해라고 하지요?”했습니 다. 이에 나는 “하나님의 단체인데 그렇게 아무렇게나 방향을 정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줘야 주제를 정하지요.”했더니, 다음에 조사하러 올 때 그것도 생각 을 해놓고 물을 때 대답해달라고 하며 떠났습니다. 침실에 돌아와 ‘왜 그들이 내년도 주제까지 조사하 지?’생각하고 너무 걱정이 되어 기도하고 주님께 물었 더니 그제야 정신이 나서 깨달아졌습니다. “한국에서 달 력에다 넣고 섭리전체 방향 잡으려고 누가 누가 부탁하여 그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한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습 니다. 잠깐 무지 속에 상극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암시를 주셔서 그들의 입을 통해 말씀의 해라고 했는데, 선생이 그들을 오해하고 대화하므로 하늘이 주신 말씀을 눈치 채지 못한 것입니다. 이를 알고 기도하여 주님의 심 정과 한국 제자들의 심정을 깨달았으니 ‘기도와 말씀의 해’라고 하자고 주님께서 말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 기를, 그 같이 하며 기도와 말씀을 중심해야 될 해라고 하여서 2008년은 기도와 말씀의 해가 된 것입니다. 주 제에도 사연이 얽혔습니다. 내년은 <새롭게 변화>하는 해입니다. 사람들은 새롭 게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새롭게 해야 변화가 일어납니 다. 이미 금년도에 내년을 위해 새롭게 방향을 잡고, 부 활의 신앙들을 말씀으로 넣어주어 모두 살아나게 했습니 다. 살아난 우리는 이제 새롭게 함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새롭게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희망의 해가 될 것입니다. 2009년은 ‘기축년 소띠의 해’입니다. 새 롭게 일을 하며 주인의 손에 이끌려 자기 마음과 전도자 들의 논밭을 잘 갈아서 각자 풍작을 이루어야 되겠습니 다. 농사도 새롭게 지어야 희망차서 피곤치 않고 지겹지 않습니다. 우리 영들도 더욱 변화를 받아야 하늘나라를 능히 올 라갈 수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를 받지 않은 보통 영은 하늘나라를 천사들처럼 순간 갈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로 는 지구궤도를 벗어나 우주를 비행할 수 없습니다. 새롭 게 우주선으로 만들어 변화를 받아야 갈 수 있습니다. 우 리들의 영도 더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태양계를 벗어나고 은하수계를 벗어나고 우주를 벗어나 하늘나라까지 능히 갈 수 있는 것입니다. 2008년에 복음으로 갇힌 자 된 선생을 위해 온 세 계 모든 섭리인들이 기도해주어 정말 고맙고, 말씀을 듣 고 지키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그 대가와 사연을 통해 새해에는 하나님의 뜻이 더욱 온전히 이루어지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희망들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새롭 게 홀연히 변화가 일어나기를 빕니다. 할렐루야! 아멘. 모두 좋은 꿈꾸고 새로운 날, 새 아침을 맞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