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09.01.04 (일)
2009년 1월~11월 주일수요말씀
- 선포일
- 2009.01.04 (일)
- 성경 본문
- 서 12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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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4일 주일말씀>
새롭게 변하라
본 문 로 마 서 12장 2절
고린도전서 15장 51-55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새해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올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성령
의 감동에 충만하여 모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해에는 꼭 계획한 것이 있으니 새롭게 변화하여 큰 변화의 역사를 펴자.”고 했습니다.
새해 첫날, 모두 좋은 꿈을 꾸었습니까? 꿈도 자기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꿔지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
면 좋은 꿈이 꿔집니다. 좋은 꿈이 안 꿔져도 현실이 곧 꿈입니다.
꿈은 생시의 반응입니다. 꿈은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작용이며 현상입니다. 잠잘 때 뇌에서 생각한 것이 현실같이
보여서 꿈을 꾸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꿈이 꿔집니다. 하늘의 뜻 있는 사건을 꿈에 계시해주
기도 합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그 생각이 잠잘 때도 그대로 꿈으로 반영되어 복잡한 꿈이 꿔지는 것입니다.
새해 아침에 생각대로 좋은 꿈을 못 꾸었다고 희망의 기대가 어긋났습니까? 주님은 “꿈보다 현실이다.”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좋은 꿈은 못 꾸었어도 생시에 잘하면 최고이며, 소원을 성취한다고 했습니다. 생시에 자연을 통해 계시
받고 징조로 받는 것이 더 확실하며, 이치에 따라 즉시 보여주고 계시해주는 것이 더 확실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자연계시를 제일 많이 주십니다. 그때그때 꿈으로 계시하려면, 사람이 잠을 자야 되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지혜로 순간순간 깨닫도록 계시해주십니다.
좋은 꿈만 꾸었다고 다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생시에도 마음만 기쁘게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마음만
기쁜 데서 끝나고 얻지 못하듯이, 좋은 생각만을 하고 좋은 꿈만 꾸면서 실천하지 못하면 마음만 기쁘고 그저 꿈으
로 기쁘고 마는 것입니다.
잠자기 전 기도할 때 꼭 필요 없는 꿈을 꾸지 않도록 기도하고, 사탄과 귀신에게 유혹되는 꿈을 꾸지 않도록 기도해
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계시하실 것이 있으면 확실하게 보여주고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자야 그같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말을 해야 확실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비디오 촬영을 할 때 확실하게 녹음하고 제대로 찍어야 제대로 보
이고 들리듯이, 확실하게 말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장의 편지를 썼는데,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도 쉽게 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게 전달해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집에 삽을 빌리러 갔다가 다른 이야기만 하고 삽 이야기를 제대로 못하면 삽을 얻을 수 없습니다. 확실하게 말
하지 않으니 주인이 제대로 몰라서 주지 않는 격입니다. 형제끼리도 자기 의향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상대의 말을
들을 때는 확실히 듣고 이해해야 됩니다. 여건상 확실히 못하는 말도 많은 것을 알아야 됩니다.
생시 때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자는 잠잘 때 영도 육체를 벗어나서 필요 없이 꿈속
에서 기분 나쁜 곳으로 돌아다닙니다.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면 절대 안 됩니다. 꼭 필요한 일만 하고, 자기 앞날을
생각하며 필요 없는 일은 다 잘라버려야 됩니다. 정신이 썩어 살면 필요 없는 것에 시간을 쓰고 인생을 쓰면서 삽니
다. 알고 보면 필요 없는 시간에 빠져 사는 자가 많습니다.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꿈을 꾸었어도 생시에 겪어보면 별 것도 아닌 일들이 많습니다. 꿈 때문에 괜한 걱정에 불안
했던 일이 많습니다. 꿈에 혼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보면 생시보다 훨씬 더 두렵게 나타나고 걱정이 됩니다. 그러므
로 꿈보다 현실을 더 중하게 보고 깨달아야 됩니다.
새해에 좋은 꿈을 못 꾼 자들은 기대에 어긋났다며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늘 말씀으로 올해의 꿈을 줄 테니
말씀 따라 삶으로 새롭게 변화하여 희망을 이루는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새롭게 변화하여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하겠습니다. 본문 로마서 12장 2절 말씀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올해의 주제가 여기서 왔습니다.
사람은 지난날보다 새롭게 하기 원하고, 변화를 원하고, 더 새로운 것을 얻기 원합니다. 새롭게 마음먹고 변화하지
않으면 지난날의 것을 또 반복하게 되고, 발전도 없고 희망도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올해는 더 잘하여 희망을 이루며 살겠다고 모두 다짐들을 했을 것입니다. 뉴스에서도 보았지요? 새해, 새아침에 해
뜨는 광경을 보려고 수백만 명이 높은 산으로 올라가고, 바다로 몰려들었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는 목적은 한 해
동안 잘되도록 염원하려는 것입니다. 자기 소원이 성취되기를 마음으로 빌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태양이 하
나님이나 되는 듯이 쳐다보며 자기 소원하는 바를 빕니다. 실컷 제 마음대로 살다가 순간 분위기를 타서 빈다고 자
기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 모든 자들이 다 태양을 보면서 빌 것입니다. 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
님께서 인간들이 그렇게 한다고 그리도 귀한 복을 쉽게 주실까요? 복은 받기도 어렵고, 주기도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피곤한 인생을 삽니다. 먼 거리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찾아가 해 뜨는 광경을 지켜보니 말입니다.
뉴스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인생 피곤하게 사는구나.’생각했습니다.
조은소리 맨 앞장에 항상 찬란한 태양이 있지요? 이는 하나님을 상징한 것입니다. 모두 알지요?
올해 자기 희망과 소원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루어드려야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과 주님 앞
에 마음을 새롭게 하고, 생각을 새롭게 하며 새롭게 실천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이루어지고, 꿈
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민족도 하나님의 뜻대로 새롭게 온 국민성이 변하고 부활되어야 경제 위기와 각종 어려운
일들이 해결됩니다.
그 해 자기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것들은 자기 수고에 달렸겠지만, 큰 희망은 전능하
신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축복해주셔야 만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육신은 실천해야 실천한 것을 인정받지만, 정신은 하겠다고 결심하고 생각한 것이 생각으로서 실천한 것으로 하나님
께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짐하고 결심해야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법을 들어봐요.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해도 살인한 자가 됩니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죄가 되어 죄인으로
서 간음한 자 취급을 받습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 뜻대로 새롭게 하겠다고 결심만 해도 마음은 이로 인하여 의인으
로 변화를 받은 자가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듣는 대로 그에 따라 새롭게 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영계에서 보면 결심할 때
사탄 어둠의 주관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변화를 받고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결심만 하고 아직 육으
로 실천하지 못했어도 마음은 행하였기에 사망에서 벗어나게 되고 변화를 받은 자가 됩니다.
성경 그대로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사망권에 있고, 사랑하면 빛 가운데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영계를 못 보아도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대로 되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
시고, 주님은 그 마음과 함께 하십니다.
마음으로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의가 된다고 했습니다. 믿고 결심하면 육은 쉽게 행하여 변화를 받게 됩니다. 로마
서 10장 10절을 보면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행동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선한 사람이요, 나쁘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악한 사람입니다. 이같이 하나
님은 마음의 법을 정해놓으셨기에 마음에 결심만 하여도 영계에서 보면 생명권의 빛 가운데 나와 있는 것을 보여줍
니다.
마음으로 새롭게 결심하고 자기 마음을 고하기만 하여도 사탄이 떠나가고,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하늘에 속한 마음
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마음이 부활된 자가 되고, 산 자가 됩니다. 마음이 휴거된 자가 됩니다. 이와 같이 생각부터
새롭게 해야 변화가 됩니다.
생각에는 육적인 생각이 있고, 영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육적인 생각은 이 세상에 속한 생각으로서 자기 육에 속한
생각들입니다. 영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속한 생각으로서 주님을 위한 생각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의 생각
을 하려면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됩니다.
육에 속한 생각들은 무지로 인하여 자기 행함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생각하고 행할 때가 많습니다. 육에 속한 생각
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며 명예와 물질에 속한 것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떠나 행하는 세상의 썩을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했습니다. 그러면 영에 속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들입니다. 이는 썩지
않는 영에 대한 것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이며 영에 속한 썩지 않는 것들이란 -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 전도하는 일, 증거 하는 일, 관리
하는 일, 성장시키고 신앙이 죽지 않게 붙잡아주는 일, 형제를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구
제하고 화평케 하며,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행하며, 온유와 겸손, 오래 참음과 청결한 마음, 충성함, 부지런함, 서
로 위로함과 감사와 기쁨, 우애함과 긍휼히 여김과 자비, 의로움과 선한 말, 절제함, 절대적 믿음과 주를 사랑함과
진실함입니다.
세상에 속한 일이며 육에 속한 썩는 것들이란 - 우상을 숭배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생각과 행실, 혈기와
분노와 교만, 시기와 질투, 거짓과 음모, 오해와 각종 악한 생각, 이성적인 것, 욕심과 물질과 명예, 의심하는 것과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것, 미움과 악평과 각종 해를 주는 생각들입니다. 이는 귀신들에게 속하고 악에 속하였기에
사탄들이 주관하게 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마음에 곤고함도 없어지고, 빛으로 나오게 되고, 더 좋은 구원의 삶을 얻게 됩니다. 마음만 먹
고 행동을 안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마음의 행위대로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
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형제들도 그같이 대하며 살라고 했습니다.
정신이 생명입니다. 정신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삶도, 천국도, 지옥도 좌우되니 정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정신에
속한 자는 영에 속한 자요, 사망을 벗어나 생명권에 사는 자입니다. 무엇을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가 있어야 될지,
성령님도 주님도 생각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정신이 썩으면 육신도 썩는 행실을 하고 영도 썩게 됩니다. 생각에 따라 이같이 인생의 운명이 좌우됩니
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일순간 마음이 지옥이 되고 천국이 됩니다. 생각에 따라 힘이 오고 힘이 빠집니다.
생각이 성령에 사로잡혀 살아야 되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야 되고,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자기 인생
을 구원해주신 주님을 늘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생각에 사탄과 귀신이 침범하지 않
고 희망에 불타며, 때가 되면 계절처럼 복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을 잘못하고 행하면 엄청난 손해요, 마음에 고통을 겪게 되고, 걱정·근심·염려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한 번 생각을 잘못하면 자살해서 죽고, 인생을 포기한 채 살게 되기도 합니다. 약한 생각을 가지고는 험한 세상에서
강하게 살 수 없으니, 시험에 들지 않게 늘 기도하여 하나님과 주님의 손에 늘 보호받고 성령의 감동 속에 살아야
됩니다.
생각이 잘못되어 행실까지 잘못하게 된 썩은 인생들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 성은 멸하였고, 니느웨성은 생각이 잘못
되어 있으니 회개하라고 요나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
개하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기에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와 같이 하십
니다.
생각이 그 얼마나 크고 훌륭한가에 따라 그 인생은 가치 있고, 위대하고, 하나님이 보기에도 좋아하십니다. 한 번
잘 생각하고 잘 행하면 많은 유익이 오고, 행복이 옵니다.
주님은 율법시대 때보다 더 완전하게 사람의 마음과 그 생각까지 보시고 지적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멀리한다고 생각하여 무지로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불신하며 갖은 악한 일로 대했습니다.
주님은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들을 행한다.”고 설교하시며, “마음에 악이 있는 자는 악한 말을 하고, 마음이 선한
자는 선한 말을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마 12:34-35).
그리고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을 두고 말씀하시기를 “회칠한 무덤과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
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마 23:27).
어떤 자는 마음이 엉겅퀴와 잡초가 무성한 풀밭 같고, 어떤 자는 가시나무 같고, 어떤 자는 썩은 물 같고, 어떤 자
는 염소·이리·늑대·야수 같고, 어떤 자는 돌 같고, 길바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주님은 그 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완악한 마음, 딱딱한 마음, 강퍅한 마음, 욕심과 분쟁하는 마음, 악평하는 마음, 훼방하는 마음, 각종 악하고 거짓된
마음들을 갖가지로 파헤치고 지적하시며 어느 시대 사람들이든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거듭나고 부활
된 산 자가 되라고 지금도 외치는 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그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고,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 말씀을 듣지 못하는 지구촌의 어느 누구라도 다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믿든
지, 안 믿든지 그 행위대로 다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하나님을 믿지 않아 말씀을 못 들으니 모른다고 해서 행한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번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믿든지 아니 믿든지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
부터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나님과 주님이 올해에 주시는 복을 감당하며 받고 누리게 됩니다.
‘기술이 없고, 힘이 없고, 몰라서 마음속에 썩는 생각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시대 새 일을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했
습니다. 고로 우리가 먼저 해야 될 일들을 자세히 말씀했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내놓을 것이 없다. 고생되어도 배우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배우면 영원히 유익하도록 써먹
을 수 있습니다. 깊은 말씀이요, 마음을 잡아주는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입니다. 금보다 더 귀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앞에는 마음이 진실 되고 거짓이 없어야 하고 의로워야 한다, 화평과 긍휼함과 자비한 마
음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과 끝까지 오래 참음과 서로 이해하고 절제하는 마음과 약한 자들을 돕는 마음과 자기
일에 충성하는 마음과 부지런하고 깨끗한 마음과 믿음의 굳건함과 기쁨과 청결과 사랑으로 서로 위해주고 존경하고
우러러 보는 마음과 칭찬하는 마음과 너그럽고 솔직한 마음과 형제들의 옳은 일을 믿어주는 마음과 감사와 기도하
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이 하나 되어 행하고 자기 육적인 생각을 중심하여 행치 말고 머리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과 의논하여 행하라.”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막고 악평하며 행치 말고, 모두 제대로 알고 주장하고 서로 화평으
로 하나 되어 행하라. 늘 쳐다보고 있다. 때가 급한 줄을 모르느냐. 왜 내가 너희보다 더 애를 태워야 되느냐. 나의
말을 너희 가슴에 받아들이고 확실하게 행할 때까지 내 심정이 얼마나 답답한지 아느냐.” 했습니다.
주님의 심정에 병이 나게 하는 자는 불효하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자기 마음을 새롭게 단호하게 결단하
며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인 분복을 이 해에 매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하나의 습관이 되면 자기의 나쁜 생각을 자신이 싫어하면서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습관이
되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뇌에 나쁜 생각들이 저장되어 있으니 좋은 생각을 함으로 나쁜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디 있냐고 주님께 물으니 “인간의 뇌에 있다.”고 했습니다. 뇌에서 생각이 작용합니다. 눈으로 보
고 몸으로 행하여 느낄 때, 뇌에서 생각하고 결정을 합니다. 눈으로 잘못된 것을 보면 마음을 버리게 되고, 자꾸 보
므로 뇌에서 그 같은 것들만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을 생각지 않게 됩니다.
나쁜 것을 보면 안 됩니다. 필요 없는 것을 보면 뇌에 저장되어 그쪽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
간은 조금이고, 세상을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으면 되겠어요?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롬 1:28) 여호와를 생각지 않으니 헛된 일을 하여 고통을 받게 되고, 자기 행위
로 인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은 헛된 시간 보내지 말고 성경을 보고 말씀을 다시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자기 정
신을 다스려야 됩니다. 잘못된 마음을 다 자르고 끊고 없애야 됩니다. 자기 마음에 습관이 된 강한 줄은 잘 안 끊어
집니다. 습관이 들어서 몇 년씩, 혹은 몇 십 년이 가도 못 끊게 됩니다. 습관으로 체질에 배어버렸기에 좀처럼 자기
생각의 버릇들을 고치지 못합니다.
흔히 술 담배가 습관이 되어 체질에 배면 좀처럼 안 고쳐집니다. 건강 안 좋아져 끊으려 해도 잘 못 끊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좋지 못한 생각과 행실과 습관들도 좀처럼 잘 안 고쳐집니다. 단호하게 끊고 자르고 고쳐야 됩니다.
주님이 기회를 주시고 말씀을 주셨을 때 고칠 것을 못 고치면 지상에서도 지옥의 고통이요, 죽은 후에도 지옥의 고
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도 안 고쳐집니까? 고치면 마음 천국이 이루어지고, 또 주님은 좋아 사랑하면서 준비한 것
을 다 주십니다. 그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보고 외치는 것입니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고쳐야 주십니다. 자기의 소
원을 주님은 가지고 계십니다.
아무리 마음에 습관이 되었어도 자기 앞날에 고통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다 고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보실 때 호리라도 죄가 있으면 못 들어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후에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고칠 수 있을
때, 기회가 왔을 때 즉시 고쳤을 것입니다. 호리라도 죄를 범하고 회개치 않은 자는 천법을 범한 자가 되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이 예비한 것도 받지 못합니다.
주님은 “좋은 것은 아예 삶으로 체질을 만들고, 나쁜 것은 즉시 끊고 자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먹
고 결단하여야 주님도 성령님도 함께 하여 가슴에 은혜가 불붙게 되어 사망에서 생명권으로 온전하게 나올 수 있게
됩니다. 변화된 자가 되어 날마다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10년, 20년, 30년 동안 체질이 되어 못 고치는 습관도 기도하고 간구하면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체질이 된 나쁜 것들은 마음과 행실의 습관이 되어 못 고치는 병들이니, 중한 병을 고치듯 생각하면서 고
쳐야 됩니다.
잘못된 것을 못 고치는 자들은 병들어 늘 병원 생활을 하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인생을 제대로 못 사는 자들과
똑같은 자들입니다. 건강이 복이 되듯이 신앙의 건강이 복입니다.
단 하루만 생각을 잘못하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못 고치면 고칠 때까지 자기에게 주신 하
나님의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해에는 속히 자기를 자세히 살피며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온전히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하
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발을 씻으라.”하며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어떤 자는 발만 씻어도 될 자가 있고, 어떤
자는 얼굴만 씻어도 될 자가 있고, 어떤 자는 몸 전체를 씻어야 될 자도 있습니다. 말씀의 뜨거운 물로 깨끗이 씻
고, 묵은 때도 시원하게 밀기를 바랍니다.
때가 되었는데 애벌레가 나비로 새롭게 변화하지 못하면 안타깝게도 애벌레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
새롭게 변화할 때가 되었는데 육적인 생각에 처해 살기만 하고 새롭게 변하지 못하면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자
로 끝나고 말게 됩니다.
새롭게 변한 자와 변하지 않은 자는 구별된 다른 세계에 살게 됩니다. 변화된 자는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그 마음속
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삶속에서도 주님과 같이 그 뜻을 행하면서 기쁨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변화된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다릅니다.
주님은 “새롭게 변화되어 나와 같이 먹고 마시자.” 했습니다.
양과 염소의 삶이 다르고 신부와 형제와 종의 삶이 다르듯이, 새롭게 변화된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의 삶이 다릅니
다. 희망도 다르고 삶도 다릅니다. 마치, 사슴과 늑대·여우·이리의 삶이 다르듯 다르고 사람의 삶과 짐승의 삶이 다
르듯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과 주를 믿는 자의 삶과 안 믿는 자의 삶이 다르듯 다릅니다.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의 삶과
안 믿는 자의 삶은 너무 차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은 후에도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시험을 보았을 때 어떤 자는 많은 점수 차이로 떨어지고, 어떤 자는 적은 점수 차이로 떨어집니다. 적은 차이로 떨
어진 자는 더 아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점수 차이가 많이 나든지 적게 나든지 모두 똑같이 떨어진 자 취급을 받고
한 곳으로 갑니다.
신앙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을 보면 ‘많은 자가 달음질을 하나, 상을 받는 자는 한 사람이
라.’고 했습니다.
민족도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형통합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서로 싸우고 분쟁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물건도 새롭게 생각하고 더 좋게 만들어야 사용하는 자들이 많이 사갑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된 자들은 상을 받
는 자들입니다. 모두 범사에 신경 써서 생각하며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여 희망찬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도 한 단계 더 하려면 더 몸부림쳐 강행해야 됩니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계속
해버릇 하면 전보다 더 하게 되고, 습관이 되어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의 삶도 더 새롭게 하려면 처음에는 힘
들지만 자꾸 해버릇하고 강행하면 훨씬 더 힘을 받고, 하나님과 주님도 더 역사하시고, 성령님이 감동을 일으켜 후
에는 오히려 힘이 안 듭니다.
고무풍선은 클수록 더 무거워져서 안 뜰 것 같아도 공기가 많이 들어있어서 공중에서 더 잘 날 수가 있습니다. 더
큰일을 해야 더 힘을 받는 것입니다. 작은 비행기는 가벼워서 더 잘 뜨고, 큰 비행기는 크고 무거워서 잘 안 뜰 것
같아도 클수록 더 안전하고 잘 납니다. 공중의 별들도 클수록 인력을 더 작용하는 운동을 하여 공중에서 힘을 받아
안전하게 운행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더 많은 일을 하면 힘들 것 같아도 희망이 크므로 정신과 마음에 더 큰 힘
이 생깁니다.
월명동도 작게 정원처럼 만들었다면 작아서 희망이 별로 없었을 것이며, 큰 힘과 은혜를 못 받았을 것입니다. 많은
자들이 함께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크고 웅장하게 행하니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도 그만큼 더 함께 하여 우리가
힘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체적으로도 크게 하니 더 큰 힘들이 솟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일의 근본을 알아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말씀도 조금 듣는 것과 시간을 내어 풍부하게 듣는 것은 다릅니
다. 힘을 받고 은혜를 받는 것에 크게 차이가 납니다.
새롭게 생각해야 됩니다. 큰일을 하는 자들은 똑같은 사람이지만 남들보다 10배 20배 힘든 일을 해냅니다. 그런 사
람들을 보면 ‘어떻게 힘든 일을 했지? 나는 작은 일을 해도 힘들여 겨우 했는데...’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큰일은 해
봐야 압니다. ‘작은 교회를 끌고 가도 목회하기 힘든데 큰 교회를 어떻게 이끌고 가지?’생각하지만 큰 교회는 큰 힘
을 받아 더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를 작은 배로 가는 것은 힘들어도 군함으로 가는 것은 힘들지 않습
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새롭게 마음먹고 새롭
게 생각하고 새롭게 행하려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더 큰 마음을 먹고 행하면 더 큰 힘을 받아 힘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울수록 주님도 성령님도 더욱 다스려주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가까이 하면 일도 많지만, 더 사랑의 목
자가 되어주시고 신랑이 되어 다스려주십니다. 주님은 꼭 수시로 맡긴 일을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천사를 통해 보고
받기도 하시고, 순간 오셔서 보고가기도 하시고, 멀리서 쳐다보기도 하십니다.
자기 생각이 엄청난 삶을 좌우합니다.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됩니다. 생각이 생명의 근원지
입니다. 새롭게 결심한 자들은 이미 생각으로 실천한 자입니다. 생각에 변화가 일어난 자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옵니다. 아직도 변화하지 못한 자는 말씀을 들으면서 새롭게 살겠다고 하나님 앞에 결심하기 바랍니다. 고백하기 바
랍니다. 주님 앞에 약속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관리하는 천사가 여러분들이 하는 대로 그때그때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마음을 뜨겁
게 감동시키며 역사하십니다. 범사에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홀연히 변화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새해에는 이같이
살라고 하셨기에 우리가 이같이 살면 꼭 역사하십니다.
개인이나 섭리사적으로 새롭게 변화한 자에게 약속대로 새로운 것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새롭게 변화할 것만 보시
지 않습니다. 그동안 기도한 것들도 받게 될 것입니다. 받는 자만 알게 됩니다. 받는 자는 알고 기뻐할 것입니다. 주
님을 더욱 사랑할 것입니다. 지난날 소쩍새 슬피 울던 사연들을 다시 생각할 것입니다. ‘아... 이런 날을 위해서였구
나.’생각할 것입니다.
주님이 새해 말씀을 통해 희망의 꿈을 주시는데도 세상으로 흘러가 주님을 멀리하거나 저버리고, 혹은 힘들다고 하
며 새롭게 실천하지 못하는 자는 이 해에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함으로 후에 후회하고 땅을 치며 통곡할지라도 이미
때를 놓쳐 받지 못합니다.
이미 말씀을 듣고 순종한 자가 자기 받을 것까지 다 받고 누리기 때문에 후회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
신 대로 달란트를 남기지 못한 자의 것을 빼앗아 잘한 자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사명을 하지 못하면 그 자리는 행한
자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꼭 행할 일이기 때문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의 설교로만 생각하면 자기 손해입니다. 말씀은 실
제 하나님이 행하실 것과 계획하신 일을 선포하시며 “지켜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섭리사 전체에게
행하실 일을 구상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멋있는 월명동 작품이 나오듯 나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이미 다 준비해놓으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 일을 실천하시며 말씀하시니 기대
에 어긋나게 하지 말고 꼭 행해야 됩니다. 한 남자가 자기 사랑하는 애인에게로 떠나면서 곧 가겠다고 전화하듯이,
이미 하나님과 주님은 우리 쪽으로 오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속히 생각을 새롭게 하면서 뜻 쪽으로 마
음을 새롭게 하고 행해야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는 믿음이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임하는 자요, 하나님과 주님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해주는 자를 정말 믿어주는 자입니다.
환난 속에 원통했던 일들과 마음속에 담아두고 말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고통들과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를 위
해 계획해놓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의 꿈이요, 희망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과 주님은 10개월 동안이나 말씀을 들려주며 준비해오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새롭게 해오는 단계를
거쳐 새로운 주관권으로 나와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각자 쉽게 새롭게 생각하고 변할 수 있습니다. 각자 자기를 위
해 새롭게 변할 것이 무엇인지 기도하고 날마다 생각하며, 하나하나 마음에 새롭게 결심하며 행하기를 바랍니다.
굳건한 마음과 강한 마음과 부지런한 마음으로 실천해야 됩니다. 끝까지 확인하며 온전하게 행해야 됩니다. 사랑과
화평과 희망의 생각을 잃으면 안 됩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바꾸고 실천하면 주님은 더욱 손을 잡아주시며 “걱정 말
라. 염려 말라.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날마다 일어날 것입니다.
육적인 생각은 걱정과 염려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낳아 늘 자기를 따라다녀 무거운 죄 짐이 됩니다. 하나님과 주
님께 염려를 맡기고 기도하면 다 사라집니다. 걱정하는 만큼 그런 일도 안 오고, 만일 온다 해도 살지를 못합니다.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바닷물이 육지에 와서 살지 못하니 바다 속에만 안 들어가면 파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새롭
게 생각하고 변화하면 세상 파도에서 벗어납니다. 염려할 것이 아닌데 주를 멀리한 까닭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선생도 돕고 함께 할 테니 원망 없이 화평과 사랑으로 서로 위해주고 돕고 이끌어주고
이해하고 기쁨으로 격려하며 하나 되어서 희망찬 꿈을 마음에 가득히 품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목적지에 다 와서 지쳐 쓰러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서 할 때입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하여 서
로 희망을 이루는 해입니다.
<축 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늘 함께 하고, 성령님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더욱 함께 함으로 새
롭게 생각하며 날마다 변화가 일어나기를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1월 7일 수요말씀>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실천하여
변화를 받아라
본 문 요한복음 2장 1-11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아무리 새해를 맞고 살아도 사람은 똑같은 환경과 똑같은 현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
고, 밤과 낮이 교차되고, 모든 환경은 동일합니다. 마음의 변화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야 새 힘을 얻게 되고, 새 희
망이 마음속에서 솟아나고, 홀연히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새롭게 변화하자고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시며, 말씀과 여건으로 역사해주시니 말씀을 잘 듣고 깨닫
기 바랍니다. 각자 개성마다 새롭게 변화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섭리 역사도 그러합니다. 말씀을 듣고 본인
것은 본인이 깨닫고 행해야 합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께서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고 제자들
과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라서 모두 걱정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예수께 포도주가 모자라다고 말하니 예수님은 “내가 포도주 모자란 것과 무
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포도주는 실상, 잔칫집에 상관된 문제입니다. 어머니들은 어디를 가도 걱정을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저가 말하는 대로 행하라.”고 단단히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말하기를
“저기 비어 있는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채우라.”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다 채우니 “그럼 이제 떠서 연
회장에게 갖다 주어라.”했습니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꽉 채운 물은 주님의 능력으로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아멘!
하인들은 주님이 시키는 대로 연회장에게 포도주를 갖다 주었고,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은 감탄하면서 신기
해하며 잔칫집 신랑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것을 먹이고 후에 떨어지면 보다 못한 것을 주는데,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것을 두었도다. 이 어찜이뇨.”하며 물로 된 포도주가 정말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신랑 집에서
미리 만들어놓았다가 내놓은 줄 착각하고 좋아했습니다.
실상, 잔칫집에 온 손님인 예수님이 일순간에 능력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표적이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거기에 맞는 많은 표적을 일으켜 모두에게 새로운 기쁨의 희망을
주셨고, 문제를 풀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새롭게 함으로 모두 변화를 일으켜 주셨
습니다.
우리 앞에 걱정할 것이 있어도 주님만 초청해 와서 그 자리에 참여하게 하면, 지옥 같은 문제라 할지라도 능력으로
천국이 되도록 변화를 일으켜주십니다. 고로 주님이 우리와 늘 동행하도록 모시고 다니면서 어떤 걱정도 할 것 없이
감사와 사랑으로 살면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저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했듯이, 우리도 성령께서 감동을 주어 주님이 시
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표적을 일으키셨듯이, 이 시대 섭리사와 개인들에게도 표적
을 일으켜주십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시 새롭게 변화하여 기쁨이 충만하게 되며 잔칫집 분위기가 뒤바뀌듯 섭리
역사도 뒤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같은 역사가 이 해를 중심하여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지난해도 계속 역사가 일어났지만 깨닫지 못한 자는 몰랐
습니다. 모르는 자는 기쁨이 없습니다. 아는 자는 기쁘고, 힘을 받고, 변화하여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시대의 뜻
을 펴나갑니다.
이날, 주님은 포도주 표적으로 인하여 생명의 말씀도 전하시어 말씀의 포도주 표적이 일어나게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물을 가지고 포도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생각합니다. 주님께 묻기를, 너무 엄청난 일이기
에 믿는 자만 믿고 안 믿는 자는 속 시원히 안 믿어지니 모두들 다 믿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마디 해달라고 했습
니다.
이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월명동 샘물에 약을 탄 것도 아닌데 병 낫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먹으면 죽을 자도
병이 나아 살아나지 않느냐. 귀머거리, 아토피, 암, 정신병, 각종 병들이 다 낫지 않았느냐.”했습니다.
샘물이지만 믿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도 주님도 표적을 일으켜주셨고, 지금도 계속 그와 같이 표적을 일
으키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아멘!
가나 혼인잔치 때는 딱 한 번 이 같은 표적이 일어났지만, 월명동에서는 몇 십 년 동안 계속 표적이 일어나고 있습
니다. 선생도 작년에 의학적으로 꼭 수술해야 될 것인데 기도하고 월명수 한 컵 먹고 100% 나았습니다. 말씀에 해
당되는 날이 되니, 이를 증거 하기 위해 말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어떤 자는 월명동 물을 전혀 안 먹고 월명동만 왔다 갔는데 병이 나은 일이 있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자기가 식당을
하는데 모두 데리고 오라고 하여 선생과 같이 30여 명이 수원에 가서 불고기를 먹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 같이 가
서 먹은 자들은 기억이 날 것입니다.
그저 월명동을 돌아다니고만 왔는데도 병이 나았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게 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에 가서
치료도 하고 약을 먹었어도 낫지 않았는데 월명동에 갔다가 나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역사하신 능력의
표적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고, 계획적으로 능력을 주어 예수님이 나타나 행하시는데 물이 포도주로 변하지 않겠습니
까? 잔칫집이 초상집이 되게도 하시고, 전쟁터가 되게도 하시고, 천국이 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못할 일이 없습
니다.
선생이 외국에 있을 때, 얼굴도 안 보고 이름만 불러주며 기도만 했는데도 그 무서운 아토피가 낫기도 했고 각종 병
들이 나았다고 했지요? 이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표적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뜻이 있으면 매순간마다 행하십니다.
사람이 표적을 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주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
들을 하십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나님이 행해야 믿습니다. 신의 행함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 영이 행하여 표적이 일어나도 육적으로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능력을 주시는 자가 행하면 역시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가나 혼인잔치 표적뿐 아니라, 주님은 약 한 봉지 안 주고도 “너는 내가 능히 이 일 행할 것을 믿는 대로 나으라.”
하여 문둥병자와 혈루병자와 각종 병에 걸린 자들이 다 나았습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이같이 행할 수 있으랴.’하며 주님을 의심하지 말고 성경을 보고 믿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인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인지 잘 분별하고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병 고치는 표적도, 생활의 표적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사람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을 행하십니다. 사
람이 앞에 있어 눈을 뜨고 보았는데도 안 보이게 할 때가 있고, 어느 때는 사람이 다 포기했을 때 행해놓으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초능력자가 자기 힘으로 열차
를 끌고 간다면, 안 보고는 안 믿어질 것입니다. 사람이 한 일이라도 안 보고는 안 믿어지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쉽게 믿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해를 시켜주어라. 그러면 믿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찮은 물맷돌 하나를 던져 대국의 군대가 모두 도망가게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 나가 싸워 한 명도 때
려죽인 일이 없는데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성 밖에서 다 시체가 되어 죽어 있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지금도 이와 같이 행하십니다. 올해도 여러 가지 새로운 변화의 표적이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
다.
이제, 가나 혼인잔치 때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되고 믿어집니까?
사도바울 선생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가져다가 그것을 병든 사람에게 얹었을 때 병이 낫기도 했습니다.
(행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또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습니다.
(마 9:20-22) 『[20]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
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
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 14:36) 『[36]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흙만 눈에 발랐어도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요 9:6-7)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
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 같은 역사는 그동안 섭리사에서 많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같이 계속 역사하고 계십니다.
가나 혼인잔치 때 처음보다 후에 주님이 만든 더 좋은 포도주가 나오듯이, 섭리사 후반기부터 주님이 주신 새 포도
주와 같은 말씀이 나오는 표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새롭게 하여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생각
하고 행하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나에서 포도주 표적이 일어나듯이, 섭리사도 말씀으로 인하여 생각지 못한 표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이
날의 말씀이 머리에 ‘찡’하고 생각날 것이며 깨달아질 것입니다.
주님이 표적을 일으키실 때 제자들은 그를 믿었습니다. 주님이 표적을 일으키시면 우리들은 더욱 주님을 믿을 것이
며, 선생이 주님과 함께 일함을 믿을 것입니다.
주님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더욱 표적이 일어납니다. 때가 되어야 표적이 일어납니다. 주께서 함께 해야
표적이 일어납니다. 끝까지 하나 되어 따라와야 큰 표적을 보게 되며, 생각지도 않은 표적을 보게 됩니다. 어떤 표
적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믿음으로 보고, 주께서 말씀하심을 듣고 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
들의 실상입니다. 실제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지금부터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잠언으로 주신 말씀을 한 절, 한 절 전해주겠습니다. 잠언을 풀어서 설
명해주면 권위가 사라집니다. 새로 번역된 성경을 보면 단어를 빨리 이해할 수 있도록 알아듣기 쉽게 번역이 되었지
만, 말씀의 권위가 삭감된 부분이 많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지킬지니라』하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참말로 말하노니 내 말을
지켜야 합니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말씀하였으니 모두 지킬지니라』라고 한 말도 『모두 지켜야
합니다』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이 권장하는 말로 표현되었기에 권위의 말씀이라는 느낌이 사라지게 됩니다. 같은 의미의
말일지라도 “예.”라고 한 말이 다르고, “응.”이라고 한 말이 다릅니다.
책 한 권의 글을 다 써놓고 끝에 가서 한 글자만 잘못 쓰면 내가 주체가 아니라 남이 쓴 것이 되어 버립니다. 처음
부터 끝까지 이러하다고 말해놓고, 끝에 가서 “저가 그러했다.”고 하면 자기가 한 것이 남이 한 것이 됩니다. 끝에
가서 반드시 “내가 그러했다.”고 해야 자기 책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심정을 쏟아 “하라!”고 명령하신 말은 바꾸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됩니다. 설교할 때, 성경을 제
대로 세밀하게 풀어 전하는 것도 새롭게 생각할 일이고 새롭게 변화할 일입니다. 새 번역 성경을 읽는 자들은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읽어야 됩니다.
이제 잠언으로 하나, 하나 말씀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며 듣기 바랍니다. 어떤 잠언은 설명하며 쓴 것
도 있지만, 어떤 잠언은 설명하면 선생이 쓴 것 같아서 토를 안 달고 그대로 쓴 것도 있어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
과 주님이 그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쓴 것이 있습니다.
1. 가르쳐주고 이해를 시키면 안 믿을 것도 믿어진다.
- 예수님의 말씀 (그렇게 말을 해줘도 주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을 안 믿는다고 하니 이 같은 잠언을 주셨다.)
2. 이해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살지 말고, 배우고 이해하여 믿고서 기쁘게 살아라.
3. 자기 것은 이해하면서 내 것은 이해 못하느냐. 자기 것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다. -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
4. 인간이 사는 세상이 있으니,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시는 세상이 있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이해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5. 하나님이 사는 세상은 영의 세상이니, 너희도 영으로만 올 수 있는 세상이 아니겠느냐. 고로 오고 싶으면 영에
대해 배우고, 신경 써서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6. 전능하신 하나님을 육으로 이해하면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영으로 이해해야 많이 이해할 수 있다.
7. 하나님을 조금만 이해하면 조금만 믿어지고, 조금 믿어진 것을 가지고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크게 행하심
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그 나라도 갈 수 없게 된다.
8. 이해란 「그 행하신 자의 심정과 처지와 입장을 안다」함이다. 「믿고 인정한다」함이다. 이해를 시키는데 있어
서 그에 필요한 비유나 실제 있었던 것들을 말해주면서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하면 쉽게 믿어진다. 고로 많은 상황
들을 비유로 이해하게 해주신다.
9. 자기 입장만 이해하고 상대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 되어 같이 존재할 수 없는 자요, 자기
주관권 안에서 자기에 속한 것에서만 갇혀 사는 자다.
10. 이웃과 형제들의 행함을 이해해야 자기의 것도 이해받아 그 뜻도 반영시켜 이해해주는 것이다.
11. 하나님과 주님의 행하심을 이해하는 만큼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님도 함께 해주신다.
12. 자기가 이해하지 못할 때, 어리석게 자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13. 사람이 행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찌 감히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14. 하나님의 행하심이 이해되지 않아도 믿고 따라가면 전혀 손해가 없다.
15. 주님이 사명을 주어 주님의 행하심을 행하여도 그가 주님이 아님을 깨달아야 된다.
16. 사명을 준 자에게 주님은 그를 통해 자신이 행하듯 행하신다.
17. 주가 보낸 자의 말을 듣고 행함도 주님의 말을 듣고 행함과 다름없다.
18. 여기서는 귀해도 저기서는 흔하다. 인색하게 살지 마라. (여기는 세상, 저기는 천국을 말한다.)
19. 세상에는 보물도 귀하고, 의인도 귀하고, 아름다운 자들도 귀하다. 그러나 천국에는 다 보물이고, 다 의인들이
고, 다 아름다운 자들이다.
20. 세상에서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이나 무엇이든지 얻으려면 몸부림을 쳐야 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런 것들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칠 것이 전혀 없다. 하나님과 주님이 다 해놓으셨기에 천국에 가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
하며 쓰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하나님과 주님께 감사한지 제대로 알면, 천국에 가기 전부터 세상에 살면서 죽는 날
까지 주의 일에 충성하며 살 것이다.
21. 사람이 일생동안 살면서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하늘나라에 가도 과분하여 몸 둘 바를 모른다. 천국은 인간
이 전혀 상상할 수 없게 창조된 나라로서 감사함으로 영원토록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낙으로 살 수밖에 없도록 만
들어 놓으셨다.
22. 세상에 좋은 것이 있는데, 이는 아는 자만 평생 누린다. 평생 누려도 못 다 쓰고 아쉬워하며 가는데, 어떤 자는
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는다. 하늘나라도 아는 자만 찾고 누리다가 죽은 후에 그 나라로 가게 된다. 모르는 자는 죽
을 때까지 모르고 살다가, 죽어서도 또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간다. 고로 불쌍하니 가르쳐주고 이해를 시켜주어라.
23. 인생은 많이 알고 사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조금 알고 살다가 죽는다.
24. 많이 알고 사는 자는 하나님을 많이 알고 사는 자다.
25. 세상은 자기가 평생 좋아하는 대로 살아도 하나님을 떠난 삶이니 결국 후회와 허무한 삶이다. 이는 이 세상에서
끝나버리고 마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고 하늘나라 천국의 삶으로 연
속되므로 허무하거나 변화무쌍하지 않다.
26. 인생이 날로 늙고, 변하여 죽고 없어지니 허무하다고 하는 것이다. 늙지도 않고, 변함도 없고, 죽지도 않으면 허
무하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주님과 함께 살면 하나님처럼 영원하다. 인간은 육신인 고로 한계가
있게 창조해놓으셨다.
27. 영원한 나라인 하늘나라가 있기에 세상은 잠깐 살고 끝나는 곳으로 창조하시고, 인간도 그렇게 창조하셨다.
28. 인간을 중심하여 사용하는 존재물들과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들은 몇 년, 혹은 1년, 혹은 한 달, 하루, 한 시
간, 혹은 순간 있다가 없어진다. 고로 더욱 허무를 느끼고 사는 것이다.
29. 때가 되면 늙어 죽을 육도 하나님을 믿으므로 영으로 거듭나 변화되면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된다. 늙기 전
에, 죽기 전에,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을 믿고 그가 보낸 메시아를 믿고 살아야 허무한 삶을 벗어나 살게 된다.
30. 오늘 새롭게 생각하고 살면 오늘 변화가 일어난다.
31. 종전보다 더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려면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실천해야 된다. 그러면 누구든지 당장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을 중심한 삶은 인생 허무가 없는 삶이다.
32. 누구나 먼저 새롭게 생각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 먼저 해나가야 된다. 하나씩, 하나씩 끊임없이 꾸준
히 해야 된다.
33. 한 번에 새롭게 할 일을 깨달아도 실천할 때는 한 번에 못한다. 날마다 잊지 말고 하는 것이다. 매일 행하는 자
가 큰일도 할 수 있다.
34. 누구든지 자기를 새롭게 만드는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주관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올해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희망은 못 이루며 달리기만 하게 된다. 하나님도 주님도 명한 일이니 잘 되려면 실
천하라.
35. 날마다 새롭게 생각하고 행하면 새롭게 할 일들이 번개처럼 척척 떠오른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된다.
36. 사람은 그 일을 해야 그 일에 대하여 좋은 생각이 나고, 할 일들이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37. 새롭게 하려면 먼저 마음에서 새로운 생각을 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행동을 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얼마나 변
화가 되었는지 확인해보고 계속 구상하며 하늘 뜻에 맞춰 가야 된다.
38. 정신적 변화는 육체적 변화를 일으킨다.
39. 누구든지 새롭게 변화해야 될 필요성을 깨달아야 된다. 깨달은 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가치를 깨닫고 밤낮
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40. 자기를 위한 변화뿐 아니라, 따르는 자들과 이 시대를 위한 변화와 하나님과 주님을 위한 변화까지 해당된다.
41. 새롭게 한 일과 종전에 한 일은 너무도 차이가 많아 마치, 하늘과 땅 같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롭
게 해야 얻게 된다. 새롭게 하는 것과 새롭게 하지 않는 것은 성공과 실패요, 희망과 절망이다.
42. 전보다 새롭게 해야 같은 환경에 살아도 새로운 세계에 온 것처럼 기쁨으로 새 힘을 내어 새로운 마음으로 지
치지 않고 살게 된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되지 못하면 땅바닥에 남아 겨울철에 달달 떨며 몸부림을 치는 고통을
받게 되듯이, 새롭게 변화되지 못한 자는 남아서 마지막 대 환난 때 긴긴 고통을 받게 된다.
43.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하는 자만이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간다.
44.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몰라서 종전의 삶의 수레바퀴를 벗어
나지 못하고 산다. 정신의 핸들을 과감하게 돌려야 된다. 육적인 길에서 영적인 길로 진입하여 달려야 된다.
45. 새롭게 되어야 할 것도 계절처럼 때가 돌아와야 할 수 있다.
46. 새롭게 해야 될 때가 되면 모든 환경이 계절처럼 오게 되고, 모든 여건이 오도록 하나님이 역사해주신다. 주와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차근차근 하면 된다.
47. 그렇게도 새롭게 되기를 원하여 그 때가 왔으니, 열심과 충성으로 감사 감격하면서 힘들어도 해야만 한다.
48. 새롭게 해야 다시 하고픈 마음이 생기고,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
긴다.
49. 하나님도 주님도 새롭게 하기를 늘 명하시고 원하신다. 행하면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50.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섭리적으로, 시대적으로 종전에 하던 일이 끝나면 당연히 다시 새로운 것으로 새롭게 하
신다. 새롭게 할 때 힘을 주시고,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신다. 주님이 외치실 때 정신 차리고 하지 않으면 안타깝게
못하게 된다. 그러면 영원히 끝나버리는 것도 있다. 후에 다시 기회가 와도 3배나 힘들여야 겨우 하게 된다.
51. 새롭게 생각하고 실천하여 변화의 표적이 일어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념을 가지고 각오를 해야 된다.
하기만 하면 상상도 못하는 것을 얻고, 희망찬 이상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낙심은 금물이다. 과거에 갖은 고생을 하
며 여러 고통을 겪고, 험난한 길을 참고 견디며 온 것을 생각하고 꼭 행해야 된다. 모든 것을 이때에 얻기 때문이
다.
52. 옛 것과 헌 것을 주고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바꾸지 않으면 그 작은 낡아진 배로는 새로운 삶의 바다를 항
해하지 못한다. 큰 새 배로 부디 바꿔야 된다. 그냥 가다가는 결국 큰 파도에 부딪혀 상상도 못하는 고통을 받게 되
고, 파선까지 당하여 운명을 달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에 눈을 떠 과감하게 행해야 된
다.
53. 희망은 앞에 있고, 절망은 우리 바로 뒤에 있다. 앞으로 새롭게 가야 된다.
54. 사람은 좋은 일도 갑자기 당하면, 놀라고 당황하여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하게 된다. 하나님과 주님은 우
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모든 자들을 위해 주는 것이다.
55. 세상에 그렇게 호기심에 불타던 것도 얻은 후에는 오래 가지 못하고, 생각과 같지 않아 버리게 되고, 또 다른
것을 찾는다. 또 다른 것을 찾아 얻은 후에도 그것도 아닌 것을 깨닫고 버리고, 또 다른 것을 찾는다. 이렇게 하다
가 결국 이상적이고 좋은 것을 얻게 된다. 새로운 것을 찾는 자만이 얻게 된다.
56. 자기 지능대로 얻게 된다.
57. 큰 것을 얻으려면 마음을 크게 하고, 행동을 크게 하고, 계획을 크게 해야 된다.
58. 어렸을 때 얻은 것과 성장하여 얻은 것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59. 어렸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이 얻고, 컸을 때는 어른과 같이 얻는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큰 것을 얻듯
이, 하나님과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 큰 것을 얻게 된다.
60. 하나님이 보고 행하는 것과 인간이 보고 만족하게 행하는 것은 그 얼마나 다르겠느냐. 생각도 다르고 행함도 다
르다.
61. 아이들의 만족이 어른들의 만족이 될 수 없고, 인간의 만족이 하나님의 만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62. 인간들은 하나님이 만족하게 생각하는 것을 감히 생각조차도 못한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인간이 순종하면 하
나님은 만족하다고 하신다.
63. 인간이 최선을 다해 만들었어도 하나님은 그 집에 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만든 집에 사신다.
64. 인간이 하나님이 시킨 일에 충성하고 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신다.
65. 만일 하늘나라가 인간이 생각한 대로 만들어졌다면, 인간들이 가서 살기에는 합당할지언정 하나님이 살기에는
합당치 못할 것이다. 이는 짐승들이 자기 주인 좋으라고 만든 집에 그 주인이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주인은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살 것이다. 인간과 하나님도 이와 같다.
66. 인간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 안에서 구상하고 생각한다. 인생들이 답답하다고 해서 하나님은 그 비밀 된 천국을
다 보여주지 않으시고, 다만 선지자나 사명자들을 통해서 조금씩 보여줄 뿐이다.
67.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행하라. 사람이 듣는 것도 반복해서 계속 들으면 나중에는 귀에 안 들어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꾸 반복하면 지겹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새로운 것에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새로운 힘을 받게 된다.
68. 스타라도 반복하면 인기가 떨어진다.
69. 반복되는 TV 화면만 쳐다보는 할 일 없는 자들은 그것들을 보다가 제 때를 못 맞추고 늦어서 천국 문이 닫혀
결국 지옥으로 내려간다.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영원히 억울한 것이다. 필요 없는 시간을 쓰지 말고 새롭게 하라.
70. 새롭게 하지 못하고 반복하는 것은 ‘한계에 달했다.’함이요, ‘더 이상 자본이 없다.’함이다.
71. 새롭게 하지 못하는 자는 희망을 두고 갈만 한 곳이 없는 자이며, 죽음에 이르러 신음하는 자다.
72. 예수님은 혼인잔칫집에 가서 새롭게 하여 대 인기를 끌고, 화제를 낳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하셨다. 주님도
표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성경에 이 사건이 기록되지 않았으며 2000년의 역사가 흘러올 동안 주님의 그 위대함을
증거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행위대로 자기의 증거를 받는 것이다.
73. 천국을 앙망하고 희망하는 자는 천국을 못 보았어도 있다고 믿으며 긍정하지만, 관심이 없는 자나 자신이 없는
자는 부정하게 된다. 지옥도 자신이 가야 할 입장 같으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 인간의 편한 심리다.
74. 새롭게 하지 않으면 이제는 힘들어서 못한다. 새롭게 하면 쉽고, 힘도 훨씬 덜 든다.
75. 새롭게 해야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젊은 인생들을 몰려오게 한다. 그래야 주님도 와 보시라고 하여 표적의 역
사의 발길을 돌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76.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하자.”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이미 하늘은 내적으로 행하시고 계심을 깨달아야 된다.
새롭게 새 희망으로 살고 싶은 자들은 전도하고 열심을 다하고 자기 생각대로 생각지 말고, 오직 말씀을 중심하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자기중심이 되어 그 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하면 어지러워서 결국 자기만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
다. 말씀에 따라 새로운 마음으로 따라와야 됩니다.
모두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안녕.
<2009년 1월 11일 주일말씀>
나는 너를 믿어주는데 너는 나를 믿어주지 않느냐
(해석 : 주님은 너를 믿어주는데 너는 내가 너를 위해 행하는 일을
왜 믿어주지 않느냐. -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본 문 마태복음 17장 14-20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하지요? 경제 불황으로 걱정되어 말씀하셨는지, 혹은 혹독한 추위에 몸조
심하라고 말씀하셨는지, 특별히 추운 겨울이 없는 나라들은 아마 우리에게는 다른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꿈에서나 생시에 기도할 때에 주님의 말씀하심을 보면, 한 마디 말씀입니다. 그 한 마디 말씀만으로는 충분히 깨닫
지 못하니 풀어서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믿어주는데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왜 믿어주지 않느냐.”
이 한 마디 말씀을 듣고서는 주님의 마음을 충분히 깨달을 수 없고, 어떠한 의미와 뜻으로 그 말씀을 하셨는지 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믿어주는데 너희는 내가 너를 위해, 혹은 너희를 위해 행하는 일을 믿어주지 않는구나.”하신 말씀으로
핵심은 알지만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지 못하겠지요?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하니 서로 믿어줘야 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믿어주시는데,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을 확실히 믿어주지 못한
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마음이 아픈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어떠합니까? 대답해 봐요. 나의 마음과 느낀 것이
같았는지 보겠습니다. 선생은 이 말씀을 듣고서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여 머리를 둘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믿어주시면 우리도 주님을 믿어줘야 되지 않겠어요?
주님을 메시아로 믿어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메시아임을 믿지 않는 자가 여기 있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풀어줘야 깨닫게 됩니다.
영계에서 들을 때, 듣는 자는 한 마디로도 다 압니다. 그러나 같이 듣지 못한 자는 모릅니다. 영계에서는 육계에서
보는 것보다 상상 못하게 지혜로 즉시 깨달아지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척척 깨달아지고, 무슨 의미로 말씀하셨는지
그에 해당되는 성경 말씀도 일순간에 다 생각나면서 충분히 뜻을 알게 됩니다. 영계에서 보면 사람들의 마음도 알게
되고,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그 사람의 이름을 다 알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너희는 내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인 것은 믿는데, 생활 속에서 너희가 어려움을 당
할 때 함께 해주고, 섭리적으로 전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도와주고, 때마다 기도하면 마음으로 응답해주었던 것들을
해결해주었는데, 내가 행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어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정말 해주실까?’의심하기도 하고, 혹은 환난과 여건과 상황들을 생각하면서 걱정·근심·염려들만 한다는 것입
니다. “절대 믿지 못하니 걱정과 근심과 염려만 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와 뜻인지 알겠습니까?
그러면서 주님은 이에 해당되는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면서 “보라. 내가 살아있었을 때도 제자들과 그 시대 모든
자들을 책망하고 꾸짖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행하는 일인데 어찌 의심하느냐. 사람을 믿어주지
않아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하나님과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어떠하겠느냐.”했습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17장 14-20절을 보면, 한 사람이 주님께 와서 무릎 꿇고 엎드려 말하기를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들인데,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나이다.
너무 불쌍하여 보다 못해 기대를 걸고 주님의 제자들을 찾아왔으나 고치지 못하였나이다.”하며 애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참으리요. 아이를 이리로 데
려오라.”하시고 아이에게 붙어있는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그 시로 아이가 나았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제자들은 민망하여 “어찌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여 병을 고치지 못했나이까? 무슨 원인입니까?”하고 물으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저 곳으로 옮기리라.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
라.”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제자들도 주님과 같이 할 수 있는데 믿고 행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직접 행해야 할 수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믿고 행하면 주님이 능력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그러나 능력을 주셨으니 행하면 된다
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믿어주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구나. 도대체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야 되느냐. 얼마나 참
고 참아야 되겠느냐.”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믿어주고, 하나님이 보낸 구세주임을 믿고, 주님의 이름
으로 행하여 표적을 일으키면서도 주를 증거 하기를 얼마나 더 참아야 되겠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28-33절을 보면, 베드로가 주님을 보고 “주여, 만일 주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고 청했습니다. 이에 주님이 “오라.”고 허락하시니 베드로가 좋아서 바닷물 위로 걸어 주님께 갈 때, 바람을 보고
의식하여 바다에 빠졌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소리를 지르며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니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며 꾸짖으시고 “파도여 잔잔하라. 바람도 고요하
라.”명하니 곧 잔잔하고 고요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의심하여 빠진 것입니다. 배에 있는 자들은 주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
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으로 볼 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임을 의심했음을 알 수 있고, 바람과
파도를 다스리심을 몰랐고, 하나님이 보낸 자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보고 믿음이 적은 자라고 하심은 - 베드로가 이를 제대로 확실히 알았으면, 주가 파도를 꾸짖고
바람을 잔잔케 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고 의식하지 아니하여 물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옛날 그 시대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믿어주었는데, 제자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했던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살고, 같이 생활한 제자들이 그같이 하지 못하여 꾸짖은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를 믿는데, 너희는 내가 너희를 위해 행하는 일을 앞에 놓고 확실히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에 나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을 주로 믿지만 이 같은 일을 정말 해주실까? 함이고, 또 특별한 공적도 없는
데 기도대로 정말 그 큰일을 해주실까? 함에서 믿어지지 않은 것입니다.”하며 섭리 모든 사람들의 심정과 마음을
주님께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간질병으로 고생하던 자와 그 아버지는 무슨 공적이 있어 고쳐주었느냐.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절
히 간구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인생들을 구원하라고 하셨으니 구원한 것이 아니었느냐.”말씀하셨습니다.
병들어 쓰러져 있는 자를 공적 때문에 고쳐줌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고쳐주시는 주님의 마
음을 알아야 됩니다.
간절히 기도함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나 억울한 일들을 간구하여, 주님이 응답하신 것은 해주시니 끝까지 조금도 의
심 없이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응답으로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고로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주님이 꼭 해주실 것을 믿어줘야 됩니다.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과 주님이 행하심을 의심하면 책망을 받습니다. “사람을 안 믿어줘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너
를 구원하는 자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행하심을 안 믿으면 어떠하겠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의심했는데도 이루어지면 본이 되지 못하므로 제대로 간증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53-58절을 보면, 주님은 무리들과 제자들을 가르치신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
니다. 그 가르침을 들은 자들이 놀라서 “이 같은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목
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형제들도 우리와 같이 있지 않느냐.”하며 지극히 인간적으로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배척했습
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예수님은 많은 능력을 행치 않으셨습니다.
믿어야 능력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의심하면 표적을 행하여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면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를 거는 격과 같아서 많은 표적을 행치 않으십니다.
병을 고치거나, 일어날 수 없는 각종 일을 일으키는 것만이 표적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능력과 실력을 보이는 것도
표적입니다. 지혜의 말씀, 깨닫게 하는 말씀, 감동의 말씀이 표적입니다. 말씀할 때 깨닫게 되고, 몸과 마음이 뜨거
워지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모두가 표적임을 알아야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병도 고쳐지고, 말씀을 전할 때 듣고 감동되어 어떻게 하겠다
고 마음을 돌이키고 결심하여 해주겠다는 표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하나님이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알아야 됩니다.
첫째,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어 사람들이 이를 듣고 지
킴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 뜻대로 살며, 하나님이 보낸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의인이 되어 의를 행하며 그 뜻대로 살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둘째, 세상에서 예수님을 중심하여 그 뜻대로 살면서 하나가 되어 지상에서 마음천국과 육신의 천국을 이루며 하나
님을 모시고 섬기고 존귀히 여기면서 주와 함께 사는 삶을 누리게 하심입니다. 미움과 다툼과 해됨 없이 서로 사랑
하며 사는 선의 세상, 하나님의 세상이 되어 땅에서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뜻대
로 살면 육신으로서 천국을 이루며, 그 영혼까지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셋째, 세상에서 육신과 영혼이 의롭게 살면서 육신은 때가 되어 하나님의 법칙대로 죽어 땅에 묻히고, 그 영은 구
원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고 영광 돌리며 주와 함께 영원토록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 뜻으로 하나님은 주님을 보낸 것입니다.
주님이 병을 고쳐주시고, 말씀을 하시고, 각종 표적을 보이며 행하심은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믿게 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입니다. 선지자들로 예언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온 것을 알아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주 앞에 죄를 고백
하며 구원을 이루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죄를 청산하고 사해주심을 믿고 행해야 더 이상 사탄의 주관을 받
지 않고 속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절대 믿어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주님이 표적을 일으키심은 주님을 더 확실히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임을 알고, 보통
사람들이 못하는 일을 행해야 하나님께로부터 온 구세주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약시대에 「그가 자기
백성들의 약한 것을 고치신다.」고 한 예언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 30:26)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
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주님은 “너희는 내가 표적을 일으키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나를 믿지 않는 연고로 인하여 표적을 일으킨다.”고 했
습니다.
(요 4: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표적을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느냐. 표적만 보러 다니느냐. 악한 시대일수록 표적을 구한
다.”고 했습니다. “안 보고도 믿는 자는 참으로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주님인 것을 믿는 자들은 그로 인하여 계속 바라는 것을 얻었습니다.
우리들이 처음 교회에 올 때 많은 체험을 했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표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메시
아로 믿게 하기 위해 주님이 일으켜주신 표적입니다. 그 후에 말씀의 표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나 주님이 보내신 자들을 통해 하나님과 주님이 표적을 일으켜주심은 하나님과 주님이 보내심
을 믿으라고 함입니다. 표적은 「하나님과 주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안 보여도 꼭 함께 하시므로 표
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
어 인도함을 알게 하기 위해 홍해바다를 모세의 지팡이로 치니 밤새도록 바람이 불어 새벽에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이에 모세가 이끄는 자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보낸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신광야에서 아말렉 족속들과 싸울 때도 모세의 손이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항상 이겼습니다(출17;8-16).
이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그 시대 구원자로 보내심을 더욱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 어린 다윗 왕을 통해 사울 왕 앞에서나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표적을 보이신 것도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한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린 다윗에게 왕의 사명을 주어 하나님이 보냈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여러분들 각자에게 표적을 보이심은 하나님과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것을 보이는 일입니다. 고로 믿으라고
그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알고 믿겠습니까? 지난 30년 동안 섭리사에 수백 번의 큰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예수님의 표적은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임을 증거 하는 증표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특권입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수백 번의 표적을 보아 왔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와주신 증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믿어도 우리가 주님을 안 믿으면 주님의 심정이 상하고 마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안 믿
으면 속도 상하시고 자존심도 상하시고 싫기도 하지만, 안 믿는 자에게 손해가 갑니다. 안 믿으니 자기는 다른 길로
가게 되므로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또 범사에 어떤 어려움에서도 구원받지 못하고, 급기야 영원한 영혼의 구
원까지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표적을 보고 말씀을 듣고도 안 믿으면, 걱정하고 염려하시어 책망하기도 하시고 꾸짖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또 각자 인생들을
범사에 돕고 함께 해주심을 오늘부터 더욱 확실하게 믿고 살아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간절히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을 믿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는 간질병에 걸린 환자와 같이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꼭 이루어주심을 확실히 믿으라고 오늘도 말씀하시는 것입니
다.
절대 믿지 않으니 불안하여 넘어지고, 걱정·근심·염려로 인하여 간질환자가 불과 물에 넘어지듯 하는 것입니다. 남
들에게는 “걱정 마. 주님이 꼭 해주실 거야. 믿음을 굳건히 해야 돼.”라고 하면서 자기 믿음은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립니 다.
흔들림은 사탄과 귀신의 주관을 받은 것입니다. 고로 간질병자와 같이 좌우로 쓰러지게 됩니다. 또한 믿음이 적은
연고입니다. 조금만 믿으면 이리저리 흔들거립니다.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면 간질병자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두에게 물으십니다. “언제까지 완전한 믿음이 없는 너를 보고 참아야 되겠느냐.”
“얼마나 더 참아야 되겠느냐. 작년까지는 참았지만 이 해부터는 새롭게 변화하라. 그래야 믿음으로 인하여 개인 희
망도 이루어지고, 섭리 전체가 원하는 희망도 이루어진다.”고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네가 믿음이 없는 연고로 간질병자를 못 고치듯이, 흔들리는 간질병자와 같은 네 믿음도 못
고친다.”고 했습니다. 절대 믿고 행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기를 주관하는 귀신과 마귀들을 다 꾸짖
어 쫓아내야 됩니다. 그리하면 좌우로 흔들리는 자기 믿음의 병이 즉시 고쳐집니다.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르니 ‘나 같은 자도 주님이 함께 하시나?’하며 필요 없는 생각을 하므로 스스로 귀신
들의 주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되어야 불경기를 이기고, 시험과 환난도 이깁니
다.
마태복음 21장 18-22절을 보면, 주님은 길가의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함을 보시고 열매가 없다고 한 마디
하시며 책망했습니다. “이제부터 네가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하리라.”했더니 즉시 죽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놀라니
“너희도 나와 같이 믿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고, 이 무화과나무 표적보다 더 큰 표적도 일어난다.”고 했습
니다. 믿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일을 하는지 역사의 교훈이 되기도 했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와 같이 신앙의 열매가 없으면 주님에게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실망을 줍니다. 선생도 모두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 테니, 선생에게도 실망을 주는 자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믿어주시듯이, 우리도 어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님이 우리를 믿어주듯 주님을 믿어야 걱정·근
심·염려가 없고, 해됨이 없으며, 주님이 단호히 기쁨으로 행하여 기도의 응답을 주어 희망을 이루어주십니다.
믿음을 새롭게 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섭리사 근본 교리는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을 절대 믿는 것과 그가 보
내신 단 한 분밖에 없는 메시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과 성령님을 감동의 신으로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절대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섭리사의 교리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다 풀어 속 시원히 알아도 구세주 예수님을 절대 믿고 일체되어 살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므로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자기 배우자에 대해 다 알아도 그와 일체되어 살지 못하면 사랑의 기쁨도 희
망도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백도, 인물도, 외모도 상관없습니다. 믿음은 자기의 의지입니다. 믿음은 아는 데서 더 생기게 되고 확
고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니 의심 없이 더 믿어지게 되었고, 설명을 세밀하고 구체적으
로 모순 없이 해주니 기성교회에 다닐 때는 안 믿어지던 것들이 믿어지게 되었고, 하나님과 주님도 더 믿어지게 되
었습니다. 이해란, 아는 데서 옵니다. 설명을 자세히 해주면 이해가 됩니다.
마태복음 21장 28-32절을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는데 맏아들에게 이르되 너는 오
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또 작은 아들을 불러 오늘은 너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
니 싫소이다 했다. 저녁 때 아버지가 큰 아들을 보고 포도원에 가서 일했냐고 물으니 안 했다고 하고, 둘째에게 오
늘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니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했다고 했다. 이 둘 중에 누가 더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둘째 아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과 주님께는 한다고 말해놓고 안 하고, 세리와 창기
들은 안 한다고 했으나 실상은 했으니 이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뜻대로 한다고 해놓고 안 한 자들은 들어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한다고
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말만 하고 실제로 행치 않은 큰 아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주님을 따른 자들은 안 한다고 했
으나 뉘우치고 행한 작은 아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세리들은 하나님을 안 믿겠다고 하며 육적으로 인생을 살다가 주
님의 말씀을 듣고 뉘우쳐 회개하고 믿고 따랐습니다.
이 시대도 믿고 행하겠다고 한 자들이 안 하고, 오히려 못하겠다고 한 자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못하겠다고 한 자
들이 오히려 섭리 일을 믿고 행했습니다. 주님이 허락한 것을 믿음을 지키고 행했습니다. 주님을 믿어준 자들로서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믿어야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믿었다는 것은 이미 마음으로 믿음의 행실을 했다는 것입니다. 조건을 지출했다는 것
입니다. 고로 믿으면 역사가 일어나고, 마음에서 걱정이 떠납니다. 믿음은 정신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끼리도 안 믿어주면 행치 않습니다. 하나님과 주님도 믿어줘야 그것을 의로 여기시어, 공의롭게 조건을 행한 자
에게 조건의 역사를 하십니다. 이것이 천륜의 법칙입니다. 돈도 백도 없으니 믿음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필요한 것은 주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으면 절대 흔들림 없이 믿기만 하면 실행하여 주십니다. 일이 크든지 작든
지 다 실행하여 주십니다.
기도는 일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일하는 만큼 일이 표가 나게 해지듯이 기도하는 만큼 된다는 것입니다. 하고
안 함은 자유의지이고, 주를 믿고 안 믿음도 자유의지입니다.
믿음도 일입니다. 믿은 만큼만 일이 됩니다. 믿음은 위력입니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자는 전쟁터에서
큰 포탄을 가진 자와 같고, 작은 믿음을 가진 자는 전쟁터에서 소형 무기를 가진 자와 같습니다. 작은 믿음은 실천
이 잘 안 되고, 실천하더라도 어린아이가 행하듯 약하게 하게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오셨고, 주님이 보낸 사명자도 옵니다. 주님이 보낸 사명자도 주님과 일체되면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이 행하는 일도 하게 됩니다. 표적도 일어납니다. 주님이 사명을 주어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
를 믿는 것도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고로 주님이 함께 하여 표적을 일으켜주신 것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를 믿는 자도 나를 믿는 자요, 그를 불신하는 자는 나를 불신하는 자로서 심판을 받는다.”고 주님
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이 보낸 대행자가 주님은 아닙니다. 주님의 사명을 받고 행하여도 주님이 행
함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언제까지 내가 해줘야 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사명을 주었다. 사탄을 멸하
여 땅에 떨어지게 하고, 고통당하는 자를 고쳐주고,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너희를 괴롭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야 된다. 그리하면 간질환자가 낫듯이 나으리라.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시켜라. 내가 사명을 주었으니 대행하여
라.”
또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각자에게 소질과 재능을 주어 낳기 전부터 하나님이 택하였으니, 주님이 주신 사명
을 대행하여라. 언제까지 너희 믿음 없음을 참으리요. 너희가 컸으니 믿음이 충만하여 행하라. 다윗처럼 행하고, 여
호수아처럼 행하고, 중심인물들처럼 행하고, 주님의 제자들처럼 행하고, 주님과 같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어서
행하여라.”
하나님과 주님이 보낸 자들임을 알게 하기 위해 표적을 일으키시고, 사명을 실행해야 되기에 계시록 11장 말씀과
같이 여러 가지 표적을 일으켜 따라오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믿고 행하는 만큼 큰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
은 기계나 차와 같아서 쓸 수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으로 감동되어 말씀의 불로 뜨거워져서 개성대로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
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믿음도 확실하게 들어가고,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의 은혜가 충만해야 됩니다.
“나는 너희를 믿어주는데 너희는 왜 나와 같이 믿어주지 않느냐.”말씀하신 마음 아픈 주님의 심정을 뜨겁게 깨닫고,
이제 절대 믿고 실천하여 마음속의 근심과 염려들을 꾸짖어 귀신과 사탄을 몰아내듯 쫓아내고, 간질병자가 나음을
받고 기뻐하듯이 믿음의 치유를 받아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언제까지 네 흔들리는 믿음을 참고 보리요.”라고 말하지 않게 해야 되겠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 때도 주님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믿음으로 행하여 모든 자들로 하나님의 아들임
을 믿게 했습니다. 주님은 “그같이 믿고 행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정받는 믿음이 표적을 일으킵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위해 주님을 절대 믿는 믿음을 조건을 세우니, 주님은 그 능력을 행하여 고쳐주셨습니다. 중
풍병자를 메어오니 그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사명을 준 자들을 믿어주고 따라야 표적이 일어납니다. 불신
하거나 의심하면,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사탄과 귀신들이 그를 주관하게 됩니다.
진리를 주장하고 주님을 증거 하며 행하면, 늘 작고 큰 표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표적을 보여주시어 그
사명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수십 번씩 보고 겪어 왔습니다. 의심 없이 믿고 따르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망으로 가서 지옥으로 가게 되고,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주와 함께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영적인 무기가 있어야 사탄도,
귀신도, 악한 자들도, 환난도, 어려운 일들도, 시험들도 물리치고 사랑과 화평과 기쁨의 이상세계에 살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절대자로 믿어도 생활 속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 것을 하나님과 주께서 해주실 것을 믿으라고 오늘 이 같은 말씀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시니 범사에 사람을 통해 해주시고, 하나님과 주님은 안 보이시지만 직접 행하십니다. 감사하고 감격하며 기
도의 능력으로 악의 세력들을 이기며 나가야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1월 14일 수요말씀>
내 말을 꼭 믿으라
본 문 마태복음 17장 20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이번 주는 주님께서 “나는 너를 믿어 주는데, 너는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며 슬퍼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너무 괴롭고 가슴이 아파서 밥을 못 먹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주님이신데,
나를 구원하신 자의 마음이 아프게 믿어 주지 않았으니 얼마나 죄송한지 머리를 들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사랑하는 만큼 믿어 줘야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말을 믿고 지
킨다.”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행한 일을 믿어라. 내가 너를 믿은 것같이 너도 나를 믿고 행하니 오늘도
표적이 일어나지 않더냐.” 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돈보다 더 좋고, 금은보석
보다도 더 좋은 것이 겨자씨만 한 믿음입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기는 믿음의 표적이 일어나니, 그
믿음으로 어떤 병도 나을 수 있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4-20절을 보면, 예수님께 한 아비가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
아비에게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었기에 주님은 즉시 그 아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가진 자는 산을 옮기듯 역사를 일으킵니다. 오늘은 그 겨자씨만 한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주님의 말씀하심을 꼭 말해 줘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가 보내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들이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다면 정말 난처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민망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보시고 “내가 이 꼴을 보고 얼마나
더 참아야 되겠느냐.” 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너희가 나를 믿고 겨자씨 한 알만큼만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을 제대로 배워 여러분들 각자에게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도 없다.”고 책망하신 말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니, 이 시대 우리들에게 주님은 다른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믿어 주는데 너는 나를 믿어 주지 않느냐.”고 하신 말씀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긴다.」는 말은 겨자씨같이 그 작고 작은 믿음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
다. 겨자씨가 얼마나 큰지 보았는데, 볼펜 끝으로 종이에 콕 찍었을 때 크기만 합니다. 볼펜 끝을 종이에 콕 찍어
보세요. 정말 작지요?
이보다 더 작은 씨가 무슨 씨이지요? 말해 보세요. 여러분들 씨입니다. 바로 인간의 씨, 곧 유전자입니다. 세상에
서 가장 작은 씨지만, 이 씨가 자라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만물의 영장이 됩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자들 중에 지극히 작은 씨로써,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지구촌을 뒤덮는 큰 나무들을 자신을 믿는
자들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작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절대 믿고 행한다면 큰 자가 됩니다.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도 없습니까? 이같이 작은 믿음도 없이 이 밤에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피곤함
과 추위를 이기며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다는 말은 이 작은 씨만큼도 믿음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은 절대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이라도 절대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주님은 절대적인
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이상 없는 온전한 믿음을 말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이라도
온전한 믿음을 가지면 산을 옮기는 표적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됐지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온전히 섬겨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라.” 했습니다. 이 역시, 다른
말로 하면 겨자씨 한 알만 한 온전한 섬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6-24절에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기를 원할진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 청년에게는 겨자씨만 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겨자씨
한 알만큼도 주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없었기에 자기라는 산을 주님께 옮기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행하심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자들은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는 자들입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믿고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란 알고 보면 대단한 믿음이요, 완전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
물로 드리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천국은 겨자씨같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절대 나를 메시아로 믿고 온전히 믿고 섬기고 사랑해
야 마음천국이 이루어지고, 신앙의 천국이 삶 속에서 늘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못 깨달았을 때는 ‘우리가 주님을 믿는데 그까짓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도 없다니, 주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 아니고 내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안
일어나는 것을 보니 나에게도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의 표적을 못 일으키는
자는 누구든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주님은 “자세히 설명을 해 줘야 이해가 간다. 고로 새롭게 생각하고 말씀을 자세히 전해 줘야 다시 새롭게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나는 너
희를 믿어 주는데, 너희는 나를 안 믿어준다.”고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믿어 주실 때 조금만 믿어 주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 믿음과 같이 산 믿음으로 완전하고 온전하게,
모순 없이 흠 없이 확실하게, 빈틈없이 믿어 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주님은 우리들에게 “내가 너희를 믿는 것같이 너
희는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온전하고 확실하게 주님을 믿어 주었습니까? 한번 생각해 봐요. 믿어 주었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나 표상이 될 것이고, 안 믿어 주었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표적이 안
일어났으면 절대적으로 온전하게 주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어 온 지난날의 일들을 모두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기적이 일어난 일들을 보면, 온전히 믿었을 때입니
다. 복음을 믿고 따라온 자들은 모두 겨자씨 한 알만 한 온전한 믿음이 있어, 자기라는 산을 옮겨 주님께로 온 자들
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9-10절을 보면, 사람을 산으로 비유했습니다.
(계 17:9-10) 『[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
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우리는 말씀을 듣고, 또 어떤 일을 놓고 “주여,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창자가 입으로 올라올 정도로 “믿습니
다!!”라고 말합니다. 그때 “정말 믿습니다!”라는 것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순간만 가지는 믿
음입니다. 가다 보면 식고 변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이루어 주실 때까지 어떤 어려움이 와도 계속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과 주님을 인정하고 믿어야
되는데, 믿어졌다가도 안 믿어져 흔들리게 됩니다. 어느 때는 믿어지다가 또 안 믿어져 의심하게 되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며 믿음이 갈대같이 좌우로 흔들흔들거립니다. 시간이 흘러도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
다.
요셉은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곡식 단에게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도 여러 고
통을 겪으며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외국 감옥에 가서 3년 동안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낙심치 않고 절대 흔들
림 없이 계속 하나님을 믿고 행했습니다. 꿈을 꾼 후로부터 13년이 흘렀을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17세에
꿈을 꾸고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형제들과 아버지의 꿈도 이루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꿈으로 계시한 것을 믿고 가면 꼭 이루어지니, 늘 이야기하며 희망으로 가야 됩니다. 설교를 통해 말씀
하신 주님의 말씀도 믿고 가면 꼭 이루어집니다. 안 믿으면 실천하지 않게 되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믿었으면 한 달이고, 1년이고, 3년이고 절대적으로 온전하게 믿어야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납니다. 고로 끝까지 온전한 믿음으로 견뎌야 큰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납니다. 병이 낫는 표적이 일
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믿고 견뎌야 겨자씨 한 알만 한 온전하고 완전한 믿음으로 인하여 건강의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납니다.
어떤 일이든지 예수님의 뜻이면, 우리가 믿었던 것과 간구했던 것들을 절대적으로 믿고 끝까지 가야 됩니다. 겨자씨
믿음은 절대적 믿음, 온전한 믿음, 굉장하고 위대한 믿음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나 하늘나라에서는 절대적 믿
음만이 통하고 존재합니다. 그 믿음만이 산 믿음으로서 겨자씨같이 웅장하게 성장합니다. 크고 큰 나무가 되어 웅장
함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어떤 사물을 들어 말씀하실 때, 그 사물에 그 같은 특성이 있기에 그것을 들어 말씀하십니다. 많고 많은 씨
들 중에서 왜 그 작은 겨자씨를 들어 말씀하셨는지 생각해 봐요. 겨자씨는 작지만, 그 씨가 크고 자라면 다른 씨의
나무보다 크게 자랍니다. 겨자씨가 자라면 아무도 예상치 못한 놀랄 나무가 되듯이,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가지면 놀
랄 만한 결과의 표적이 일어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나는 너를 믿어 주는데, 너는 내가 너를 믿어 주는 것처럼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을 듣는
즉시 그 말씀을 깨닫고 절대 믿기로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떤 문제가 와도 절대 믿기로 했습니다. 그 같
은 온전한 믿음만이 산을 옮기는 표적을 일으킵니다.
그같이 믿으니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면 주님도 기쁘고 자기도 기뻐 잔치하게 됩니다. 의심하므
로 슬퍼하여 초상집이 되게 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뻐 잔칫집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책망이 없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온전히 믿지 않으면 감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책망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책망하십니다. “나는 주로서 약하고 의심 많고 온전치 못한 너희들
을 믿어 주는데, 왜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 예수여, 예수여.’ 하면서도 나를 믿어 주지 않느냐. 이런 꼴을 언제까
지 참고 참으리요.” 하십니다.
사람 같으면 자기는 믿어 주는데 상대가 한 번만이라도 자기를 안 믿어 주면, 덜컥 화를 내면서 “나도 너 안 믿
어.” 하고 돌아설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우리를 또 믿어 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해 주십니다. 그 사
랑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모두 이같이 행하면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올해는 반드시 모두 자기가 자기에게 표적을 일으켜 새롭게 믿고 변화하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2009년은 ‘새롭게
변화하는 해’입니다. 절대 믿음과 온전한 믿음, 주님과 같은 완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역사상 최고 믿음의 존재자이신 주님의 믿음의 자손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성경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믿음의 표적을 일으키셨고, 가장 많은 표적을 일으키셨습니다.
한곳에서 열 명의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셨고, 중풍병자와 간질병자와 귀머거리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밖에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환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나인 성에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물 위로 걸어 다니시고, 많은 자들에게 붙어 다니는 귀신과 사탄들
을 쫓아내시며 인류를 구원하는 믿음을 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5-13절을 보면, 한 백부장이 예수께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고 말하니 백부장은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나이다.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을 믿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하인을 고쳐 주시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
지 못하였노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동서로부터 많은 자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가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했습니다. 그
리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왜 백부장이 행한 일을 보시고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연관이 되고 해당이 되니 말씀하신 것입니다. 백부장이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을 가졌으니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절대적인 믿음이었으며, 의심 없는 완벽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이 같은 믿음을 가졌기에 천국에 갔다고 했습니다. 절대적인 믿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졌
기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2절을 보면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로서, 주님을 메시아로서 온전히 믿고 따르지 않으므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
니다. 온전하고 완전하게 믿지 않고 세상에 속한 자손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고로 온전히 믿어야 산을 옮기는 구
원의 표적이 일어납니다. 온전히 믿게 해 줘야 됩니다.
바깥 어두운 곳이란, 지옥을 말합니다. 이 지옥은 온전히 주를 믿지 않으므로 구원받지 못하여 지구 바깥에 있는
고통의 세계에 가서 지옥사자들로부터 갖은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풀무불 속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지옥사자들에게 별의별 고통을 다 받고 이를 갈며 슬피 웁니다. 온전히 주님을 믿지 못
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지옥의 사자들은 이렇게 괴롭히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자기가 괴롭히던 자들을 데리고 영원
한 불바다, 지옥으로 갑니다. 그 지옥사자들도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온전하고 완전하게 믿지 않으면 산을 옮기는 표적도 일어나지 않고,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기도 한다.”고 주님은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자기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믿어 줘야 그를 구원해 주십니다. 안 믿어 주면 주님은 공의로
우시므로 건져 낼 수가 없습니다.
이를 비유로 말한다면, 주님의 팔에 온전히 매달린 자만 구원받고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온몸과 양손과
양발 모두 주님께 매달려야 주님 품에 이끌려 그곳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자가 한 손만 매달리
면 순간은 나오다가 손에 힘이 풀려 놓치게 되고 결국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님을 끌어안고 매달리는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 한 큰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온전한 믿음뿐 아니라 온전
한 사랑을 가진 자입니다. 사랑하다가 미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일부만 실천하고 마는 것은 온전한 실천이
아닙니다. 그러면 완성하지 못한 믿음입니다.
온전한 진리여야 온전한 생명의 존재자가 됩니다. 주님은 온전하십니다. 일부만 주님이 아니라 완전한 주님이십니
다. 온전한 부활을 해야 됩니다. 원수를 온전히 사랑해야 됩니다. 아주 사랑해야 원수를 사랑하는 온전한 사랑입니
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여 주라. 헐벗었거든 입혀 주라. 그리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네게 상
을 베풀어 주리라.” 했습니다. 새벽기도 중에 온 말씀이었습니다.
이같이 온전하려면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실천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주님
이 왜 이같이 말씀하셨을까요? 해 보셨기 때문입니다. 해 본 자, 실천자만이 그 일을 표현할 수 있고 글로도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기 쉽다고 하는 자는 제대로 행치 않고 사는 자요, 주님의 뜻대로 살기 어렵다
고 하는 자는 제대로 행하면서 사는 자입니다. 입으로 행하는 자는 쉽다고 하고, 몸으로 행하는 자는 어렵다고 합니
다.
주님의 행하심이 온전히 믿어지는 자는 행복한 자요, 믿어지지 않는 자는 불행한 자입니다.
주의 뜻대로 신앙생활 하기 쉽다는 자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마음만 기쁘게 사는 자로서 꽃만 무성한 신앙인이요,
실천하면서 몸부림과 눈물로 사는 자는 열매가 무성한 신앙인입니다. 이들은 곧, 주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주님의 사도들은 주님을 따라다니며 책망도 많이 받았습니다. 주님은 믿음에 대한 것과 여러 가지 주님의 뜻대로
못 한다고 책망하며 꾸중하셨습니다. 책망받고 꾸중 들을 때는 심하다, 서운하다 했지만 주님이 돌아가신 후에 깨달
았습니다. 모두 울고 슬퍼하면서 주님께서 살아생전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하면서 너무 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
했습니다. 그때부터 생명을 내걸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한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때부터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주님의 심정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산을 옮
기는 역사들이 일어나 다시 뭉쳐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내걸고 자기 선생이 가신 길을 따라갔습니
다. 그렇게 신약의 역사가 펼쳐져 왔습니다.
결국 세상의 어떤 환난이나 핍박은 이들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온전히 살아나신 대로 모두 살아나 하나님
의 뜻을 행하니, 세상이 점점 뒤바뀌어 오늘날 온 지구촌을 주님의 세상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역시 주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은 위대합니다. 세상 산을 옮기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고야 말았습니
다. 하나님은 정녕코 그 행하신 역사를 이루고야 마십니다. 주님도 역시 그러하십니다. 인간 스스로의 역사는 다 무
너지고, 하나님과 주님이 일으키신 역사는 점점 창대케 되어 갑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거의 다 순교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던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홀로 외롭게 살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로 인하여 주님은 그의 영을 천국으로 데려가 천국의 비밀을 보이시고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깊은 말씀을 하시며 “내가 다시 온다. 너희는 알라. 천국이 이같이 있고, 하나님도 존재하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불바다 지옥도 있다.”고 하시며, 주님을 믿지 않고 살다가 죽은 자들이 간 곳도 보이셨
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힘내서 열심히 온전한 신앙을 하라고 확실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천국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에게 요한계시록을 읽게 하여 그 세계에 대해 알게 해 주었습니다. 요즘은 사명자를 통해 ‘천국은 확실히 있다’
는 책을 써 모두 보게 하여 천국이 있음을 더욱 확실히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 자는 말씀을 받은 자입니다. 그 말씀을 전하면 듣는 자가 생명의 말씀인 고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되고 감동이 일어납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행하심과 주님의 행하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겨자씨 같은 믿음을 가진 자입니
다. 이들은 산을 옮기는 표적이 일어나게 합니다.
모두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한 말을 우리가 읽고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읽을 때 주님은
말씀으로 깨달아지게 하면서 대화하십니다. 성경말씀은 주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주시는 엄청난 양의 말씀입니다. 신
약성경 4복음서를 읽는 자는 주님께서 3년 동안 하신 설교를 다 듣는 자입니다. 신약성경을 다 읽는 자는 주님과
제자들의 설교를 다 들어 보는 자입니다.
성경을 통한 계시는 문학적 계시요, 특별계시입니다. 구원길을 가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하루에 성경
열 장은 읽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루에 열 장을 읽더라도 3개월이 넘어야 성경을 한 번 봅니다. 빨리 보면
성경을 일주일에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열 장이 많으면 일곱 장 읽고, 일곱 장이 많으면 세 장 읽고, 세 장이 많으
면 한 장이라도 매일 꼬박꼬박 읽어야 됩니다.
기도는 빼놓는 날이 없어야 됩니다. 감사기도, 사고 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 건강 기도, 자기 죄를 용서해 달라
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자기 친구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에 수십 통씩, 혹은 스무 통, 열 통씩 엄청난 시
간을 내서 대화하면서 주님과는 하루에 한 번도 제대로 기도로 대화하지 않고 산다면 죽은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은
시들거리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지옥에 가지 않게 구원해 놓으셨는데 그같이 성의 없이 살면 주님이 좋아하실까요? 구원이 얼마
나 어려운지, 육신 구원도 어렵지만 영혼 구원은 메시아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한 번 구원
해 주었으면 자기가 책임을 지고 하늘나라까지 가야 됩니다.
성경이 안 믿어지면 안 읽게 됩니다. 믿어지도록 본인이 노력해야 됩니다.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밥을 먹고 씹듯
이 천천히 하나하나 의미와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한 장 가지고 온종일 묵상하며 읽고,
한 절 가지고 온종일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요, 주님입니다.
매일 감사기도를 수십 번씩 해 봐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먼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생활
속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해 준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생각나지 않으면 하나님 믿게 되어 감사
하고, 건강하여 감사하고, 사고 안 나게 해 주어 감사하고, 자꾸 해 주실 것을 감사하고, 자기를 생각해 주고 사랑해
주어서 감사하고,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천사를 보내어 보호해 주시니 감사하고, 말씀을 주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귀신과 마귀를 쫓아내게 하심을 감사하고, 부지런과 열심으로 살게 해 주어 감사하고, 수
시로 만물로나 말씀으로 생활 가운데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하다고 기도해 봐요.
이 같은 감사의 기도를 꼭 해야 됩니다. 감사기도를 안 해 버릇하면 죽을 때까지 못 하고 죽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는 누구에게 배우고 신앙생활 하느냐. 네 지도자는 누구이며, 목사는 누구냐.”고 물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같이 가르치지 않으셨으니, 다시 새롭게 배우고 기도해야 됩니다. 믿고 구하는 것은 다 준다고 했으니 매
일 달라고 기도하고 꼭 간구해야 우리가 받을 것을 뺏기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가르칠 선생을 제대로 만나야, 주님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주님을 제대로 믿게 하여 하나 되게 해
줍니다. 잘못 가르치거나 실력이 없어 못 가르쳐 주기에 안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젊은이들은 신
앙생활을 잘 안 하고 의심도 많아 안 된다고만 합니다. 잘 가르쳐 주면 젊은이들이 더 잘 믿고 일도 더 잘합니다.
성경의 주인이신 주님이 가르쳐야 잘 가르쳐 주십니다.
절대 믿고, 완전한 믿음으로 기도하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배웠으니 이제 예전과 달리 새롭게 생각하고 행함으로
믿음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표적을 일으키는 믿음이 없이는 우리가 현재까지 올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험한 세계를 이기고 사탄
과 마귀를 물리치며 병을 이기고 고치며 신앙을 유지하며 갈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
다. 이 중에서 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에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살아가고 있는 자도 많습니다. 육이 그러한
자도 있고, 신앙은 거의 그러합니다.
“그만하면 됐다.”고 주님이 말씀하실 정도로 해야 됩니다. 주님의 웃는 얼굴은 안 보여도 마음으로 “그만하면 됐
어.” 하는 소리가 들려야 됩니다.
지금은 모두 온전하고 완전하게 자기 일을 해야 됩니다. 시원찮게 하면 그동안 한 일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끝까지
해야 됩니다. 안 믿어 주면 사람도 일을 하지 않듯이, 주님도 자신을 안 믿어 주면 안 해 주시고 그에게 오시지도
않습니다. 믿어 주면 자꾸 일할 것을 주십니다.
과수원지기는 과일 농사를 잘 지어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이야기를 하면 귀가 솔깃합니다. 농사짓는 자, 장사하는
자, 사업하는 자, 돈을 버는 자에게 각각 성공하는 비법을 말해 준다면 모두 귀가 솔깃하여 잘 듣고 마음도 즐겁고
기뻐서 실천해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모두 하다가 못하겠다고 포기합니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고 몸이 아름다워져 몸값이 금값이 된다고 하면, 건강한 자들의 몸매를 보고 좋아서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몇 주일 하다 말고, 몇 달 하다 맙니다.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것입니다. 마음은 호기심
이 가도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로 성공하는 자는 많지 않은 것입니다. 실천자는 위대한 자입니다.
<유초등부들>도 어렸을 때부터 실천해 버릇해야 됩니다. 누가 안 시켜도 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시켜도 안 하니
실망했습니다. 쳐다볼 때마다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르쳐 줍니다. 이제 하나님이 시키시고 주님이 시키셨
으니 이제는 해야 됩니다.
<중고등부들>은 정말 실천해 버릇해야 됩니다. 꾸준히 계속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만들기 위해 행하는 자는 앞질러 가는 자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행해야 됩니다. 선생도 그
리했습니다. 실천하는 자는 위대한 대걸작품을 만드는 데 시작한 자입니다. 성공의 길을 떠난 자입니다. 하는 것이
자본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대하게 매일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주님도, 옆에 있는 천사도 그냥 두고 보고 있지
만 않습니다. 돕고, 함께하시고, 지혜도 주시고, 힘도 주십니다.
대학부·청년부·가정국·장년부 모두 실천해야 됩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실천해야 됩니다.
하겠습니까? 아멘! 믿고 실천하면 산을 옮기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생은 모두 개인전입니다. 각자 자기 몸을 자기가 유능하게 부지런히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보는 자들도 희망
을 가지고 도와주고 따라 줍니다.
자기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선진국만큼 행해야 됩니다. 신앙의 선배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선배만
큼 행해야 됩니다. 선배가 되면 말로만 하는 관이 들어갑니다. 주님은 그같이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후배가 잘 몰
라도 제대로 가르쳐 주며 함께 행하며 일해야 됩니다.
재미있는 놀이에 빠지거나, 거기에 시간을 쓰면 안 됩니다. 시간을 금같이 쓰지 않는 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시
간을 뺏기면 거의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런 시간 있으면, 그 귀한 시간을 주님을 위해 바쳐 귀한 것을 얻도록 해야
됩니다. 매일 시간을 뺏기면 매일 제대로 안 됩니다. 유초등부·중고등부·대학부·청년부·가정국·장년부 모두 값없이
쓰는 시간들을 이제부터 모두 잘라 버리고 귀하게 써야 됩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변화하는 해입니다. 주님이 언제 방문하실지 모릅니다. 왔다 가셔도 모릅니다. 주님이 목
표를 주셨으니, 그대로 매일 살아야 표적이 일어납니다.
지도자가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해야 됩니다. 지도자는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혹은 실력은 있는데 간판이 없다
고 해서 자르면 절대 안 됩니다. 간판 없어도 잘하는 자들을 꼭 챙겨 주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견제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너무 많아 줄여서 잠언으로 말하겠습니다.
1. 세상에서 주님의 일같이 중요한 일은 없다.
2. 주님 말씀대로 살아야 그 계획대로 하늘나라까지 갈 수 있다.
3. 주님께 맡겨 버리고 감사하며 그 삶을 사는 것이다.
4. 자기 삶으로는 하늘나라를 얻을 수 없다.
5. 주님께 맡기고 살면 삶이 쉽고, 자기가 가지고 살면 자기 사고의 삶이라 어렵다.
6. 사랑하는 자끼리도 삶을 맡기고 살면 서로 기쁘고 가볍고 쉬운 것이다.
7. 목자의 말을 잘 듣는 양은 푸른 초장에서 새로운 꼴을 많이 뜯어 먹을 수 있다.
8. 주님을 이해할 때까지 고통이다. 이는 자기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9.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 남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님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10. 자기의 한 가지 일을 안 이루어 준다고 주님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섭섭하게 생각한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만큼밖에 생각하지 못하겠느냐. 주님은 이왕이면 그것뿐 아니라 몇 가지 같이 더 이루어 주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
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범사에 수십 번씩 감사하여라.
11. 쉬운 길만 찾아가지 마라. 고생되어도 생명길을 가야 된다.
12. 우선 가기에는 좋은 길이 달지만, 후에는 쓴 것이다.
13.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지만, 미래에 가서는 손해다.
14. 하나님은 우선만 생각하고 행하지 않으신다. 미래를 보시고 그 일을 해 주셔도 그 일로 인하여 다른 해가 오지
않는지 보시고 적절할 때 완벽하게 해 주신다.
15. 사람들은 우선 편한 길로 가나, 주님은 고생이 되어도 근신하면서 생명길로 가게 하신다. 생명길로 가야 영원한
기쁨의 천국길이기 때문이다.
16.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와 희망으로 살아라.
17.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자다.
18. 주님은 자신이 한 말을 믿고 따라오는 자를 보고 기뻐하시고, 그를 좋아하시며, 그에게 표적을 은밀히 보여 주
시며 역사하신다. 그에게 무엇을 해 줄까 늘 생각하신다.
19. 뒤에서 묻혀 열심히 하는 자들과 실력자들을 교역자가 챙겨 주지 않으면 주님 눈에 거슬린다. 언제까지 외면하
고 먹다 만 찬밥 취급을 하려느냐.
20. 어린 신앙인들에게는 어느 때는 영적으로만 가르쳐 주고 어느 때는 육적으로만 가르쳐 주다가, 성장한 후에는
영육 다 가르쳐 주면 다 믿고 육도 영도 같이 부활되어 더욱 빛나고 새롭게 변화된다.
21. 영적인 자는 영에 대한 말씀을 잘 믿고 따르지만, 육적인 자는 믿기보다 오히려 듣는 대로 의심한다. 이런 자들
은 육적인 것들을 가르쳐 뿌리내리고 꽃이 되게 한 후에 크고 단단한 것들을 가르쳐 줘야 된다.
22. 성장에 따라 어린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일을 시키듯이, 신앙인들도 그와 같이 해야 된다.
23. 어린 신앙인들은 성경에 있는 아무리 좋고 기적적인 말씀을 들어도 마치, 어린아이가 좋은 음식이 있어도 못 먹
듯이 먹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먹는다. 때가 되면 단단한 음식도 먹고 싶어 먹듯이, 신앙이 성장하면 성경의 단단한
말씀도 듣고 믿음으로 영과 육이 강하게 자라난다. 꼭 구분하여 쪼개서 가르쳐 줘야 한다.
24. 점진적으로 가르쳐 줘야 잘 믿는다. 이것이 순리이며, 이해도 잘된다.
25. 독특하게 성경에 있는 것을 말하면 생소하게 생각하고 안 믿는다. 세상에 그같이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 주고
성경에 있는 것도 말해 주면 다 믿게 된다.
26. 사람들은 어떤 자가 많이 행한다고 하면 안 믿는데,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것을 보면 그가 행한 것도 믿게 된
다. 주님은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냄새나는 시체를 살리셨다. 이 말을 들으면 믿기보다 자기가 안 보았을 때 옛날에
행한 일이니 그 말을 듣는 즉시 ‘어떻게 살렸지?’ 하며 의심 먼저 하게 된다. 지금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데서 그
같은 역사가 많이 일어난다. 그것을 먼저 이야기해 주면 쉽게 믿어진다. 산을 옮기는 믿음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도 배워야 된다. 커야 된다.
27.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표적은 크기 때문에 안 믿어지고, 작은 냇물이 갈라지게 했다면 작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
이 아니다. 이해가 되면 홍해바다가 갈라진 것도 믿어지지만, 이해가 안 되면 냇물이 갈라지게 했다고 해도 안 믿어
지는 것이다.
28.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해 주는 일과 주님의 행하심을 믿게 해 주는 일은 너무도 큰일이다. 안 믿는다고 그 사람
을 책망하고 무시하지 마라. 믿어지게 자세히 설명해 주는 너에 따라 믿어지고 안 믿어지니 네 책임이다.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과 주님이 행한 것뿐 아니라 결국 하나님과 주님을 잘 믿고 못 믿는 운명을 좌우시킨다. 선생 된 자의
책임이 크니, 선생이 되어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배우고 가르쳐 주어라.
29. 사역자는 주의 뜻을 잘 배우고 잘 가르쳐 줘야 배우는 자가 잘 성장하는 것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는 제대
로 가르치지도 못하니, 가르치지 말고 먼저 배워라.
30.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안 믿으면 구원의 표적도 능력도 행치 않으신다.
31. 지금도 지구 세상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안 믿으니 모를 뿐이다.
32. 하나님이 전 세계에 행하시는 일이기에 믿으나, 안 믿으나 모든 인생들에게 해당되므로 안 믿으면 시대 하나님
의 방향을 몰라 결국 자기만 손해다.
33. 하나님과 주님의 행하심을 믿고 싶지만, 안 믿어지니 안 믿고 산다. 믿음이 잘못 성장해서 그런 것이다. 지도자
도 책임이다.
34. 가르치는 자가 잘못 가르쳐 주면 신앙도 버리게 된다.
35. 자기는 성장하여서 잘 믿어진다고 해서 어린 신앙인들에게 막 가르치면서 믿으라고 하면 안 믿는다.
36. 어린 신앙인에게는 성경의 쉬운 것을 먼저 가르쳐 믿게 하고, 그같이 작은 것만 믿고 행하게 하여라. 그런 후에
성장하면 그때 그 성장한 믿음대로 가르쳐야 된다. 어린 신앙인들을 막 가르치는 것은 목욕탕의 뜨거운 물에 어린아
이를 집어넣는 격이다.
37. 주님은 “네 믿음대로 행하고 되어져라.”고 말씀하셨다.
38. 믿을 자도 잘못 말하면 안 믿는다. 오히려 의심하고, 전하는 자까지 우습게 보고, 이상하게 보게 된다.
39. 아기에게는 “젖 먹으러 가자.”고 해야 따라가고, 어른에게는 “밥 먹으러 가자.”고 해야 따라간다.
40. 의심하는 자는 주님이 행한 일도 안 믿지만, 믿는 자는 아직 행치도 않은 일도 주님이 행하심을 절대 믿는다.
41. 네가 믿기 전부터 하나님의 뜻인 것은 행해 오고 계신다. 네가 믿음으로 너도 그 기쁨에 참예하게 되고, 그 믿
음으로 인하여 네게도 기적이 일어난다.
42. “네가 지금껏 주님이 네게 행한 크고 작은 일까지 믿느냐?” “아멘!” “그러면, 앞으로도 네게 크고 작은 일을 행
할 것과 더 큰 일을 행할 것을 믿겠느냐?” “믿습니다!” “믿으면 내가 행한다.”
43. 주가 행한 일을 믿지도 않고 주만 믿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여 산을 옮기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느냐. 한 번 생각해 보아라. 알고 믿고, 알고 주장도 하여라.
44. 믿음은 서로의 신용이다. 네가 믿음이 없다고 해서 나까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45. 나를 믿는다면, 내가 행한 것도 믿으면서 나를 믿어라. 그래야 네가 참으로 내 제자가 되어 너도 나와 같이 행
하면서 실체를 가르쳐 줄 수 있다.
46. 믿음이 없이는 기쁘게 하지 못하고, 사망으로 가는 생명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47. 믿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다.
48. 믿음의 축복, 믿음의 자본, 믿음의 보화, 믿음의 능력, 믿음의 주권이다. 이것 없이는 나와 동행하지 못한다. 믿
음이 이같이 크고 위대함을 알고 모두 갖도록 하라.
<2009년 1월 18일 주일말씀>
알고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관리하기 쉽다
본 문 야고보서 3장 1-5절
누가복음 6장 27-30절, 40절
마태복음 7장 28-29절
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평강을 빕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줄 때 보람이 있고, 배울 때 보람이 있고, 실천할 때 보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이 제자들을 가르친 것을 보면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주셨고, 말씀하신 즉시 이해되고 감동되게 가
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은 복잡하게 가르치는 것을 안 좋아하십니다. 핵심을 잘 가르쳐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순종하
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절대 믿고 사랑하며 사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몸소 행하시면서 그
환경에서 보이며 가르쳐주셨습니다.
성경말씀대로 그같이 행하면서 성경을 보면 빨리 이해되고, 감동과 함께 얻어지게 되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주님의 심정과 말씀이 전하는 자의 입에서 줄줄 나오게 됩니다.
무슨 음식을 먹으면 어디 건강에 좋은지 구분되어 있듯이, 말씀의 내용에 따라 정신적 변화와 행실의 변화가 각각
다르게 일어납니다. 자기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병이 오듯이, 말씀도 잘못 가르치면 신앙에 병이
들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실지 모두 궁금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8-29절에 『주님의 말씀은 그 시대에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말씀보다 권세 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신앙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문제를 풀어주시고, 속도 시원하고, 영혼도 신령하고 건강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성장된 자는 성장된 자에 해당하는 대로 가르쳐줘야 되고, 그에 해당하는 사명과 일을 주고, 그에 맞게 대하도록 신
경 써서 살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하지 않으면 대함을 받는 자는 정말 기분이 나쁘고 싫은 것입니다. 합당하게 구분
하여 그 사람에 맞게 대해줘야 됩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행하여 자신도 변화를 일으키고, 상대도 변화시키기를 축원
합니다.
이와 같이 이치에 따라 행하는 자는 지도자로서도 잘하는 것이며, 성장하는 자들도 잘 성장하게 됩니다. 자기 입장
에서만 대하면 처세를 제대로 못하는 자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대해주면 이치에 맞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사람은 꼭 분별하고 그에 맞게 대해줘야 됩니다. 상대가 제대로 제 위치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 주님의 말씀을
그 입장에서 생각하며 전해주고 대해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점진적으로 가르치며 대해주면 됩니다.
사람을 제대로 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며 대함을 받으려 하고, 또 자기
생각으로만 받아들입니다. 대함을 받는 자들도 이같이 하면 안 됩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말씀으로 제대
로 배우고, 온전하게 살아야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지고 잘 되고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하고 바르게 교육한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말씀은 완전하지만, 예수님
이 와서 보니 유대종교인들은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외식과 형식으로 이론적으로만 외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
은 이들을 책망하시며,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라고 채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몸소 실천하시면서 새 시대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펴가니 외식적인 구시대 종교인들은 정신과 행실이
썩은 죽은 자들인 고로, 주님의 행하심을 반대하고 막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실체로 말씀을 행하시면서 제자
들을 실습시키며 뜻을 펴나갔습니다. 제대로 가르치고 이끌어가니 따라오는 자들을 잘 관리하고, 쉽게 인도하며 다
스린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했습니다(마
11:28).
성경을 잘못 가르쳐주고 인생을 잘못 가르쳐주면, 잘못된 연고로 인하여 관리하고 이끌어가기 힘듭니다. 잘못된 것
은 다시 가르쳐줘야 됩니다. 잘못 알고 살면, 모르고 살기에 사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도 더 받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유대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잘못 가르치고, 행치 않으면서 형식과 외식으로
가르치니 답답했습니다. 주님이 오신 후, 그 가르침과 권세 있는 말씀을 듣고 많은 자들이 따랐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잘 가르쳐줘야 되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어디까지 행하시는지 제대로 가르쳐줘야 됩니다.
잘못 인식 시켜주면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동물도 잘 가르치고 잘 훈련시키면, 동물 서커스단이 되
어 사람과 같이 행동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가르치면, 듣는 자들이 처음에는 모두 좋아서 잘 따라올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믿고 살아
보고 그러하지 않음을 알게 될 때, 따라가다가 실망하고 말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해준다고 성경을 통해 가르치는 자들은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하나
님이 절대 예정해놓으셨으니 다 해주신다.」고 가르치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분담을 무시하고 「하나님과 주님
이 다 주관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이같이 가르치는 자들은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교파라도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면 구원받지
못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구원받는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에 대한 말씀도 하셨습니
다. “멸망 길은 크고 넓어 그곳으로 가는 자가 많고, 생명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했습니다.
(눅 13:24)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
리라』
(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하나님은 100개 중에서 90개 정도를 해주십니다. 나머지 10개 정도는 인간이 해야 됩니다. 10개는 아주 적다고 생
각하지만, 인간에게는 100%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주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형제들도 그같이 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
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성장하면 인간의 일은 하나님께 미루지 말고 인간이 거의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100개의 힘이 있는데, 10
개만 해도 된다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 순리요, 진리였습니다. 그같이 안 했으면 예수님
도 세상에 계셨을 때,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하나님의 뜻을 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체제와 법도를 보아도 어린아이 때는 부모가 거의 다 해줍니다. 그러나 성장하면 자신이 거
의 다 해야 됩니다. 더 성장하면 누구 쳐다볼 것 없이 자신이 다 행합니다. 이와 같이 신앙세계도 신앙이 어렸을 때
는 하나님이 거의 다 해주시지만, 성장하면 본인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보람 있고 기쁘고 즐겁고, 자기 행한 일이
남아지게 됩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해준 것은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씻겨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옷을 빨아 입히는 일입니다.
남는 것이 있다면, 몸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커서 행한 일은 자신이 행한 것이므로 남는 것이 많습니다. 성장할
수록 본인이 해야 그 공적이 남아 빛나게 되고, 죽은 후에도 빛이 나게 됩니다. 신앙세계도 그러합니다.
예수님 시대도 제자들이 예수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어린아이같이 크다가, 주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예수님을 따라
서 역사를 메고 책임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고로 사도의 역사가 그 시대에 살아남아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해야 공적도 남아지고, 표가 나게 섭리사에 길이 남아집니다. 모두 이같이 가르쳤기에 가르친 자가 함
께 있지 않을 때에도 각자 자기 책임들을 다하여 섭리사가 더 창대하게 커왔던 것입니다.
과거 우리가 기성에 있을 때는 「믿기만 하면 된다. 다 예정해놓았기에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배워왔습니다.
결국 그렇지 않았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는 말을 믿었으나 그대로 안 되니 신앙을 떠나 사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거
기서 열심히 하니 교회에 다닐 때보다 더 잘되어 좋아했습니다. 그중에 일부는 섭리사에 와서 인간이 책임분담을 해
야 할 일 10%와 하나님이 해야 될 일 90%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인간의 책임분담 10%, 즉 인간에게 해당되는 100%를 위해 열심히 뛰고 달려 신앙의 굶주림 없이
새로운 희망으로 새롭게 변화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미 예전에 믿음들이 파선되어 교회를
안 다녔을 것입니다. 열심히 해야 주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여 힘을 주십니다.
잘 가르쳐야 자신도 잘 되고, 듣고 배운 자도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지고 잘 성장하여 구원을 상실하지 않는 것입니
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또 들어보겠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께 다 맡기고 가만히 있다가는 굶어죽는다.”고 했
습니다. 그러면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행하자.”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열심히 믿고 행하면, 자신의 의지로 인하여 하나님이 돕는다고 생각하면서
행하므로 못할 일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행하면, 하나님과 주님께서 약속대로 필요한 만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할 일이 인간보다 수십억만 배 많으십니다. 고로 인간들이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도우시고, 거기
에 신경 쓰며 시간을 보내지 않으십니다. 선생도 내 할 일은 여러분들이 할 일보다 수백 배 더 많습니다. 내 할 사
명도 많기에 여러분들이 스스로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다 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다 해주면 로봇의 삶이 되고, 식물인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남이 해주기만을 바라며 피동적으로 살면, 하나님이 주신 삶의 희로애락의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일로 인하여 낙을
누리고, 보람을 느끼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각자 맡은 일을 해야 합
니다. 이는 성경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할 일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존재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실 사명과
할 일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기쁨입니다. 상호존재하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물은 귀합니다. 가뭄이 들었을 때, 누가 물 지원을 해준다는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느니, 열
심히 땅을 파고 샘을 파야 됩니다. 어디든지 땅속에는 물이 있으므로 파면 솟아납니다. 누가 해줄 것으로만 생각하
고 기다리다가 안 해주면, 결국 자기만 갖은 고통을 겪고 실망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삶은 위대한 삶입니다. 이같이 샘을 파는 자만이 가물어도 물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을 주시고, 깊은 곳에 물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인간의 책임분담으로 깊이 파기만 하면 물이 나옵니다. 가뭄 때
비오기만 기다리다가 곡식이 말라 죽게 되고, 사람도 목이 타 결국은 죽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이같이 살아보았습니다. 누가 도와줄 것만 기대하고 믿으면 안 됩니다. 능력이 있는데도 가만
히 있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는 만큼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기에게 주신 복도 빼앗깁니다. 천국에서도 모두
가만히 있지 않고 부지런히 자기 사명을 합니다. 잘못 가르쳐주면 잘못 알고 잘못된 길을 가며 고생만 합니다.
자기가 할 일인데 ‘하나님이 해주신다. 주님이 다 해주신다.’하면서 그것만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실망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했을 것인데 못하여 일을 당했구나.’하고 후회하며 가르친 자를 원망하고 싸우기까지 하게 된다고
주님은 오늘 특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그같이 가르쳐주지 않았을지라도 그같이 그릇 사고하는 자들도 다시 새롭게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야고보서 3장 1-5절을 보면, 야고보가 선생 된 자는 책임이 크고, 잘못 가르쳐주면 죄도 크니 선생
되기를 원치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선생은 많으나, 오직 하나뿐이라고 자신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그 시대에 성경을 가르치던 유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을 두고 하나님과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했
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제대로 못 가르쳐주었고,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죽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그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쳐주시니, 몇 명 안 되는 자들로 역사를 시작했지만 그 제자들을 가지
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펴서 그 시대를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역사는 점점 커져서 환난·핍박·갖은 고통을 받아
가면서도 지구촌에 신약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유대종교인들은 외식과 형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습니다. 큰 소리들만 쳤고, 전통과
조상들의 유전만 따지고, 모세의 율법만 딱딱하게 외치며, 권위주의에 가득 차 권위에 꽉 찬 신앙만 하였습니다. 고
로 인생들을 제대로 구원시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해주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님 당세 때, 구약종교는
4000년이나 되었지만 큰 역사를 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제대로 알고 가르쳐왔기에 어려운 환난을 이기고 신앙을 지켜왔던 것입
니다.
구시대 유대율법주의자들은 6000년 역사와 전통만 자랑하였지, 2000년의 기독교 역사와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인간들이 각자 자기 책임의 사명을 다하면서 하나님과 주님의
뜻을 펴 시간이 갈수록 더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도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잘 가르쳐주고 행하게 하도록 해야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펴나가며
신앙이 죽지 않고 절대적인 구원을 받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못 가르쳐주면 절대로 신앙이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고, 주님이 원하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을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바르게, 세밀하게, 자세히 가르쳐주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속 시원히 행해야 이 시
대에도 새롭게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들도 더 굳건하게 서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배우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고 살
면, 평생 그릇되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님은 성경을 복잡하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이 메시아이심을 올바로 가르쳐주어 믿게 하
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절대 순종하며 영광 돌리고 형제들을 화목하게 대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을 원하
십니다.
복잡한 것을 가르치다 보면, 근본의 주님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여 인생들을 구원하실 주님에 대해 잘 모르
고 그와 하나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가 되도록 일체만 시켜주면 됩니다.
지도자들은 잘 들어요. 요즘 경제난 때문에 힘들고 피곤한데 너무 시간을 빼어 강의만 하면 안 됩니다. 직장에 갔다
오면 피곤합니다. 공부하면 피곤합니다. 그러니 꼭 필요한 시간만 내어 요지만 말해줘야 됩니다. 필요 없이 많은 시
간을 들여 강의하면 오히려 지루해 합니다. 그리고 틈이 있어서 교회에 기도하러 오려고 하다가도 오지 않습니다.
중고등부들도 꼭 필요한 시간만 내어 강의해주고 보내야 됩니다. 강의는 절도 있게 하고, 규모 있게 해야 됩니다.
만일, 놀고 할 일이 없는 자가 있다면 꼭 붙잡아 가르쳐주면 좋지요.
주님은 억지로 자신을 믿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스스로 알고 싶어 하고,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도,
믿음도, 주를 위해 하는 일들도, 전도도, 헌금도 모두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본인이 자진해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안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 해주신다면 구원 못 받을 자도
없고, 천국에 못 갈 자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는 자는 적고 지옥에 가는 자는 많으니, 그 원인은 본인이 자기 책임
분담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행하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렵습니까? 모두 겪어보았지요?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 할 일들을 해보았지요? 너무나도
실천하기 힘들지요? 하지만 행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행해야 사망에서 나옵니다. 행해야 꿈과 소망이 이루어집
니다. 말로만 하면 말로만 이루어집니다.
사막을 홀로 외로이 고통을 겪으며 가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타를 타고 그곳을 횡단하던 사람이 말하
기를 “누가 와서 당신을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하며 갔습니다.
사막을 홀로 걷던 자는 가다가 힘드니 가던 길을 멈추고 온종일 타들어가는 땡볕에서 그 사람의 말을 생각하며 희
망을 걸고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밤이 돌아와 그곳을 지나가던 사자 떼한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잘 가르쳐주지 못하니 안 죽을 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사막의 모래 위를 홀로 힘들게 걸어가니 위로할 겸,
누가 도와줄 것이라고 자기 생각으로 잘못 가르쳐줘서 죽게 한 것입니다. “힘들지만 열심히 가야 합니다. 가면 갈수
록 희망이 옵니다.”하고 제대로 가르쳐주고 갔으면, 그는 가던 길을 열심히 가서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인생들이 이와 같으니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가르쳐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먹기에는 감보다 곶감이 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 주님이 다 해주신다.”고 하며 좋게만 가르칩
니다. 순간 듣는 자는 기쁘고 좋지만, 결국은 안 좋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최선을 다하라고 바르게 가르쳐주면 자
신도 성공 길을 가게 되고, 하나님과 주님도 돕고 함께 하십니다. 본인이 열심히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행해야 그
행위대로 하나님과 주님도 역시 열심히 해주십니다.
주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는 처음에는 듣기 힘들고 마음에 쓴 말씀이지만,
제대로 된 가르침입니다. 제대로 한 말은 쓰지만, 지키면 제대로 희망이 이루어집니다. 고생이 되어도 생명 길을 가
야 된다고 수없이 말했지요?
주님은 또 이같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백지와 펜과 물감을 갖다 놓고 구상을 하고 있었다 하자. 글을 쓸까? 그림을 그릴까? 몇 시간씩 구상
을 하는데 구상이 나오지 않겠느냐. 그러나 행하지 않고 계속 구상만 하고 있으면, 생각난 것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가 사라지지 않겠느냐. 잘하든지 못하든지 행해야 된다. 안 하면 하루가 가도, 한 달이 가도, 1년이 가도, 평생이 가
도 결국 아무 것도 못 쓰고 못 그리는 것이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하라. 행하면서 고치고, 또 구상도 하며 멋있게
하는 것이다.”
시도, 잠언도, 그림도 행해야 구상이 글로, 그림으로 나옵니다. 우리 모두 구상만 하지 말고 행해야 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행해야 됩니다. 행하면서 고치게 되고, 발전하게 되고, 꿈을 이루게 됩니다.
자기 생각들을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잘못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잘못 됩니다. 잘못 가르쳐주면 잘못 행하게
되어, 생명들을 지도하고 관리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사고가 잘못되어 있으면 자기 몸이지만 제대로 다스
리고 관리하기 힘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알고, 바로 배우고, 바로 가르쳐주고, 바로 행해야 힘들지 않고 쉽게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배울 때는 힘들고,
가르칠 때는 힘들지만 올바르게 배우고 가르쳐야 결국은 힘들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알고 가르치고, 알고 주장해
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온전하게 신앙을 만들고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 행해야 됩니
다.
섭리사는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주었기에 그만큼 행하여 오늘 여기까지 신앙을 해올 수 있었습니다. “더 잘 알고 가
르쳐주고, 더 새롭게 배우고 행하여 변화가 되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들을 행할 때,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쉽게 해버리면 안 됩니다. 뒷일을 생각하면서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자기 쉬운 대로만 행치 말아야 합니다.
섭리에서 중직을 맡은 자들은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쉽게만 일하지 말고, 섭리 전체를 생각하고 하나님과 주님을 생
각하며 행해야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행해야 됩니다. 원수는 사랑하되, 원수의 말을
듣고 끌려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향해 그 은혜로 끌려 행해야 됩니다. 담대하게 행해야 합니
다. 다윗이 항상 어떤 환경과 어떤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행하니,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그에게 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고, 주리면 먹여주고, 입을 것이 없으면 입을 것을 주어라. 그리하면 원수의 목
전에서 네게 상을 베풀어주리라.”했습니다.
주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가르치고 말씀하십니다. 고로 주님께 성경을 배우고, 주님과 같이 실천해야 됩
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제일 좋아하시고,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감히 거짓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한다고 해놓
고 못하는 것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거짓말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아니고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합니다. 주님 앞에 약속한 것도 지켜야 거짓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과는 약속했어도 상황에 따라 행하면 됩니다. 인간을 중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해야 됩니다.
주님의 한 마디 말씀도 참으로 큰데, 오늘도 몇 가지를 말씀해주십니다.
거짓말하는 자와 참말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중 누구의 말이 매끄럽고 믿어질까요? 거짓말은 만들기 때문에 매
끄럽지만, 참말은 그대로 하니 더 이상 다른 말이 없습니다. 참말은 자기가 행한 대로 거칠든지, 구부러졌든지 그대
로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자의 말이 매끄럽게 다듬어져서 처음에는 믿어지나, 나중에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며 그 행위대로 대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의 편이 아닙니다. 참말의 편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다 용서해주십니다. 그런데 회개한 후에도 회개한 대로 살기가 힘듭니다. 천국은 어느 시대, 언
제, 누가 갈지라도 흠이 있으면 절대 못 갑니다. 그 흠은 회개로 없애고, 행함으로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와 삶을 통해 자기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실상 거의 다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를 아시기에
“더욱 열심히 해야 된다. 새롭게 하라. 말씀을 듣고 마음과 생각을 더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부족한 부분을 미리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께 나아와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하고 물으니, 이에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어라.”하고 말씀하셨습
니다.
사백 구십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했습니다. 남을 용서해주는 만큼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나 주님 앞에 용서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용서한다면 더 많이 용서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이같이 수십 번의 엄청난 용서는 인간의 법이 아니고 하
나님의 법입니다. 지켜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잘못을 반복하면 계속 용서하기 힘들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고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잘못
을 행하고 피해를 주면, 화가 나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가령, 일찍 일어나라고 했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다섯 번, 열 번씩 일어나지 않고 계속 게으르게 행한다면 용서해주
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하기보다 포기해버릴 것입니다. 한 번 약속한 것을 여러 번 번복하며 행하지 않거나 실
수를 반복하면 용서하지 못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사람은 한 가지만 행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가지를 행하며 삽니다. 행하다 보면 이것도 실수하게 되고, 저것도
실수하게 됩니다. 또 형제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각자 서로에게 잘못하게 되니 실상, 그 행위에 따라서는 각각
한두 건들입니다. 그같이 생각하면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고 반복해서 자꾸 안 한다고 해놓고 하고, 한다고 해놓고 안 하면 주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자신
들이 온전하게 살려고 결심하고 생각을 굳히면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한 건을 가지고 계속 잘못했을 때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이 어떤 한 건을 가지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자기에게 잘못하는 것이 아니고, 한 번이나 두 번 잘못하고
실수하게 되니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고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사백 구십 번을 반복해서 잘못
한 것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자기에게 잘못했으면 서툴러서 그랬으니 용서해주고, 몰라서
그같이 행하였으니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고로 늘 실수하지 않고 온전한 사고를 가지고 행하도록 잘 가르쳐줘야
됩니다.
우리끼리 일어나는 일을 보아도 한 건을 가지고 반복하여 잘못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 하나 혹은 저것 하나 잘못을
하게 됩니다. 그같이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건씩 됩니다. 이를 깨닫고 자기 입장을 생각하면서 형제의 심정도 알고
용서해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됩니다. 이 같은 자들은 천국의 마음을 가졌기에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온전히 행한 일도 형제가 오해하여 큰 죄나 지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형제를 죄인 취급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런 때
는 죄인 취급을 당하는 자가 무지한 형제들을 용서해야 됩니다. 용서하고 자기는 주님을 따라 급히 사명의 길을 가
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라면, 횟수에 상관없이 용서해줘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도 살아납니다. 그래야 그를 향한 희망을 이룹니
다.
주님은 내게 “나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는데 너는 왜 형제의 잘못을 한두 번만 용서해주고 마느냐. 나
와 같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근본을 깨닫고 이제 그같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주님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 용서해주어서 그가 낙심하지 말게 하고, 다시
잘하여 사탄의 나라 지옥에 가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용서하게 되지만, 자기 마음을 가지면 용서해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해주면 마음이 천
국입니다. 용서받은 자의 마음이 기쁘듯, 용서해준 자의 마음도 그같이 기쁜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자기를 죽이려는 적을 용서해주고 적을 쏴 죽이지 않으니, 평생 그 기쁨이 마음속에 있으므로 기쁩니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자기를 죽이러 오는 적을 먼저 보았다고 마구 총을 쏴서 죽이면 속이 시원하고 훈장
도 타니 그때는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해주고 자기도 살고 적도 살아 평화롭게 끝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주님도 가르친 대로 행했으니 잘했다고 칭찬하며 기뻐하십니다. 자기도 생각할 때마다 기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와 부딪히고 싸우며, 더러는 많은 해를 준 원수 같은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주
님을 믿고 주를 사랑하려면 원수까지 사랑해야 됩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살다가는 주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원수
도 주님의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자기 마음에 용서할 마음이 없으면 주님을 보고 용서해주고, 하나님을
보고 용서해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 크고, 사망으로 가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더 큽니다.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무엇이든지 말씀에 순종하면서 가야 합니다. 말씀은 어
렵지만 지킨 만큼 꼭 축복해주십니다. 믿습니까?
성경 말씀은 모두 좋은 말씀입니다. 지키려면 정말 어렵고, 또 어렵습니다. 그래도 지키는 자가 되어야 주님의 사랑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 극한 환난과 핍박과 억울함을 받으면서 죽음을 앞에 놓고서도 가르치고 외치셨
기에 심정의 말씀이 더욱 불같이 나왔고, 몸소 겪으니 모든 세상을 아시고 확실하게 가르치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겪어야 알게 되고, 겪으면서 외쳐야 가슴에 불이 붙어 깊은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체험 신앙입니다. 입술
신앙이 아닙니다.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말고 가야 됩니다.
“겪고 제대로 가르쳐야 머리에 사고가 제대로 들어가 제대로 행하게 되고, 관리하기 쉽다.”고 말씀했습니다. “원수
를 사랑하라. 주리면 먹이고, 헐벗으면 입혀주어라. 그리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를 행하는 자가 생명의 주관권에 들어가 사는 자입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면, 가르치는 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가르치면 안 됩니다. 오직 주의 가르침에 따라 온전히 배우고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1월 21일 수요말씀>
내게 잘 배우고 잘 가르쳐라
본 문 마태복음 23장 1-12절
히브리서 5장 12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선생에 대하여, 그리고 지도자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셨습니
다.
예수님은 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온 백성들은 구약 4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고로 종교 지도
자들인 제사장들과 율법의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 율법의 선생들이
되어 사람들을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간단한데, 이 십계명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은 이 율법을 중
심하여 조항을 붙여 가르쳤습니다. 율법을 613개 조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중 적극적인 조항 248개, 소극적인 조
항 365개로 분류하여 가르쳤는데, 248개 조항은 사람의 지체 수를 맞추어 만든 것이고, 365개 조항은 1년 365일에
맞추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율법 선생들은 이 많은 것을 가르치며 끝없이 변론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가르침을 보면 그
들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도 그 같은 변론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종교 지도자들과 선생들이 많습니다. 우리
는 필요 없이 이것저것 복잡하게 가르치는 것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배우는 자가 지겹게 생각하고, 핵심의 말씀도
흐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의 가르침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선생이라고 하고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이 가르치는 말은 듣고 행하되, 절대 그
행위는 본받지 말라. 선생이라고 하며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이 말만 하고 자신들은 행치 않는다.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 주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
다.
이론이 많고 변론은 많으나 행치 않으니, 할 일이 없어 말만 하고 있다고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며 가르쳐 주었습니
다.
또 말씀하시기를 “선생이라고 하고 지도자라고 하는 저 율법 지도자들은 모세의 위치에 모세처럼 앉아서 경문을 넓
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
을 좋아하느니라.”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는 보이려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만 나타내고 보이려 하니, 참으로 잘못되었으며 외식
과 형식적인 자들인 고로 절대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는 뜻입니
다. “너희 선생은 오직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오직 하나이
시니,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한 분뿐이다. 또한 너희는 지도자라 칭함도 받지 말라. 지도자는 오직 하나이니 그리스
도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자로서 모든 것에 대한 랍비요, 지도자라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이르시기를 “너희는 말씀을 행하면서 가르쳐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큰 자라면 너희를 섬기는 자
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역시, 그 가르치심이 율법 선생들 같지 않았습니다. 권세 있고 세력 있는 말씀을 하시는 선생으로서 참랍비
요, 참지도자였습니다.
이 시대도 주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들이 주님을 절대 선생으로 알고 지도자로 알아 그 가르침을 제대로 배워야 하
건만, 그렇지 못하여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제
사장들과 같이 성경을 복잡하게 수백 가지로 가르치고 있다고 책망하십니다.
또 말만 하고, 따르는 자들에게만 짐을 묶어 어깨에 지우고, 문안받기 좋아하고, 자기는 한 손가락이라도 움직여 도
우려 하지 않고,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많은 자들 앞에 칭찬받기 좋아하는 신앙들을 책망하십니다.
이처럼 지금도 하나님께 보이려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만 보이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섭리사에 있는 자나, 기성
에 있는 자나,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는 자들 모두를 보시며 시대를 지적하고 말씀으로 책망하시니 모두 고쳐야
합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자신들을 돌아보며, 주님의 제자로서 호리라도 모순 없이 행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선생이다. 지도자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지체에 머리가 하나이듯이, 우리의 선생과 지도자는 하나입니
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작게는 우리 섭리사에도 선생과 지도
자는 하나뿐입니다. 만일 형제들 중에 큰 자라면, 따르는 자들을 섬기며 그들을 위해 살아 주는 것입니다. 크고자
하면 낮아집니다. 부지런히 행하면 형제 가운데 큰 자가 됩니다.
누구든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신약성경을 자세히 보면서 ‘이 시대도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가?’ 보고, ‘자신도 그같
이 행하는가?’ 항상 보아야 합니다. 못하는 것이 있으면 즉시 고치고 순종하며 살아야 주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선생이 모르니 따르는 자들도 모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을 믿게 하는데, 성경을 복잡하게 이론을 만들
어 가르쳐 변론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어떠하기 때문에 우리의 구세주이신지 가르쳐 믿고 사랑하게 하면 됩니다.
그가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30개론도 결국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주님이 메시아이심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잘
못 가르쳐 주면, 잘못 알고 잘못 사고를 하여 행해도 잘 안 되고 더 고통만 겪는다고 했습니다. 잘 가르쳐 주어야
잘하게 되고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에 대한 가르침은 세상 학문을 가르쳐 주는 세계와 너무나도 다릅니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감
동이 되지 않고 믿을 마음이 없어 믿지 않게 되면, 그 영혼이 영원한 사망으로 가게 되고 그 육신도 세상에서 하나
님과 구원주를 떠나 살기에 고통을 받으면서 지상의 사망권 속에 살게 됩니다.
본인 책임도 크지만 가르친 자의 책임도 너무 큽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생 된 자들이 심판도 크니
너희는 선생 되기를 원치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도 잘 가르쳐 주고, 하나님과 예수님도 잘 가르쳐 주고, 개인들의 문제도 정말 잘 가르쳐 줘야 합니다. 잘못 가
르쳐 주면 실패하고 망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잘 가르쳐서 하나님과 주님을 잘 믿고 살게 해 주면, 그를 가르쳐 주
고 인도한 자의 그 의는 크고, 어디 비할 바 없이 좋은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말한 것을 행하면서 가르치는 자는 큰 자이고, 행치 않고 가르치는 자는 작은 자다.”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행하면서 가르쳐 주어야 생명력이 있고, 듣는 자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이 잘 배운 후에 가르쳐 주고 전해야
됩니다. 아무나 주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잘 배우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자기
가 먼저 감동을 받고 뜨거운 자가 되어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듣는 자도 감동받아 마음이 뜨겁고,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받게 되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움직이며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감동과 은혜가 없는 자는 말씀을 전하여도 듣는 자에게 감동이 없고 은혜도 없습니다. 대개, 신앙이 오래
되고 나이 들어 행동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신앙인들과 기도하지 않고 행하는 자들은 말씀을 외치고 가르쳐 주어도
지식으로 깨닫기는 하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없고 은혜가 없습니다.
그런 자들을 통해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이 재미가 없고, 힘이 없고, 세상과 사탄과 핍박과 싸워 이길 힘이 없고, 신
앙과 희망까지도 흔들리게 됩니다. 고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이 말씀에 감동을 받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
를 받도록 기도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야 됩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자가 말씀을 전하면, 그 전한 자에 따
라서 듣는 자도 믿음에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각 교회도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목사님들이 얼마나 성령의 감동과 은혜 가운데 외치고 가르치느냐에 따라 교
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 보면 차가운지 뜨거운지 듣는 자들은 가슴으로 느낍니다. 이는 물을 마셔 보
면 차가운지 뜨거운지 알고, 전문가들은 안 마셔 보아도 차가운지 뜨거운지 미지근한지 알듯이, 같이 이야기만 해
보면 다 압니다. 주님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면 그 입에서 토해 버린다고 했습니다.
(계 3:15-16)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
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
라』
그러니 열심히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온 교회는 자기 목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해 줘야 됩니다. 그래도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하여 기도하고, 사명을 맡은 목사들은 가슴에 불을 붙일 기회를 얻기 위해 단상에서 내려와 준비를 해야
됩니다. 불이 없는 자는 불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사니, 구했을 때 그것이
뜻이라면 후히 주십니다. 고로 간절히 구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가슴이 뜨겁고 감동이 되어야 주의 뜻을 좇아 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가르쳐야 성령께서 친히 가르
칠 것을 가르치게 하십니다. 그래야 신령한 자가 되어 주님도 그 입을 통해 뜨겁게 외치게 해 줍니다. 차든지 뜨겁
든지 확실하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지근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앙을 가진 자들은 모두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세계를 가르치는 선생이나 박사나 지도자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신임을 못 받은 자들도 많
았습니다. 후대에 제대로 가르치는 자들로 그 모순을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우주론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을 주장하며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주기적으로 돈다고 가르
쳤습니다. 가르치는 자만 그같이 가르쳤지,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를 중심하여 여러 학자들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해 왔어도 2000년 동
안이나 이 이론을 믿지 않았습니다. ‘천동설’이라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갈릴레이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하니 그제야 믿었습니다. 갈릴레이는 태양을 중심하여 지구가 돌고 주변의 행성들도 돌고 있다고 지동설을 주장하
고 가르쳤습니다. 결국 그 이론은 실제로 맞는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약 2000년 만에 그릇된 사고와 이론이 깨졌습
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태양이 돌다가 멈추었다.’고 하는 성경 여호수아 10장에 있는 말씀에 따라 더욱 천동설을 교리
화하였기에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전하게 말하는 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갖은 모략을 하여
고통을 주고 무식하다고 하고 무시했습니다. 기독교는 천동설을 주장했지만, 결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여호수아 10장에 ‘태양이 멈추었다.’는 비진리를 현재까지 계속 주장하며 표적으로 가르쳐 왔습니
다. 우리가 이에 대한 진리를 주님께 배우고 제대로 가르치니 이단시해 왔습니다. 소경이 눈뜬 자를 인도하고 지적
하는 격이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으면 어린아이라도 따라가지를 않습니다. 이미 40년 전부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지구에 살고 있으면서도 “지구는 네모나게 생겼다. 고로 끝은 낭떠러지니 멀리 여행 가지 마라. 끝까지 가다가 떨어
져 죽을라.” 하는 식으로 알고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 이후, 2000년 동안 성경에 대하여 제대로 모르고 가르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주님께 배우고 성경에 있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면, 모두 배척하고 무시했습니다.
태양이 지구처럼 빠르게 공전과 자전을 한다고 보고, 태양이 멈추었다고 합니다. 또 6000년 전에는 사람들이 969세
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금 낼 돈이 없을 때, 주님의 말씀대로 돈을 문 물고기를 낚시로 낚아서
세금을 냈다고 성경을 풉니다(마 17:24-26).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 육체가 살아서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성경을 풀어 이 세상에서 구원받는 자들도 육체가 죽
었어도 다 살아나 하늘나라로 가는 것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같이 풀면, 성경에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이
틀리다고 하는 것인 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로 성경을 푸는 것인 줄을 모릅니다.
주님도,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썩는 양식과 썩어 없어지는 육신을 위해 살지 말라.”고 하였고, “영은 하늘로 올라
가고 육은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간다.”고 수십 군데 나옵니다. 육적인 자는 육신만 중심하여 생각하고 믿는 것입니
다. (요 6:27, 고전 5:5, 고전 15:50-54, 갈 6:8, 벧전 1:23, 벧전 3:18, 벧전 4:6, 벧후 1:4)
아담 하와를 인류의 조상으로 가르치며, 인류가 시작된 지 6000년밖에 안 되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성경을 초등학교 교과서만큼도 못하게 권위 없이 가르쳤으니, 가르치는 자가 얼마나 잘못 가르쳤는지 알 수 있습니
다.
학교에서는 3만 년 전에 조상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보고 배웁니다. 자연이 기록하고 있으며, 실제로 새겨져 있는 모
든 근거를 중심하여 밝힌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지구에 생명체가 생긴 것은 36억 년이 되었다 하고, 사람의 역사는
300만 년으로 보고, 사람이 불을 사용한 것은 40만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 계산하는 것과 학교
에서 계산하는 것이 너무 다르니, 하나님은 믿지만 성경이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고 ‘신앙의 조상’이라고 가르치면 아무 모순도 없고 의심 없이 믿게 됩니다. 하나
님은 6000년 전부터 아담과 하와를 중심하여 종교를 시작했다고 우리는 이미 배워 왔습니다. 역시 한 분밖에 없는
선생이 되신 주님께 배운 것입니다.
여호수아 10장에 태양이 멈추었다는 말씀도 주께서 선생이 되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미 내가 20대 초반에 배운
것입니다.
‘인류 창조 역사가 6000년밖에 안 되었다’, ‘6000년 전에는 사람들이 900세 이상 살았다’, ‘태양이 멈췄으니 얼마나
기적이냐’, ‘고기가 돈을 가지고 다니니 얼마나 신기하냐’고 합니다. 만일 고기가 돈을 물고 다닌다는 식으로 성경을
푼다면, 요즘은 경제가 불황으로 어려우니 고기 잡으러 다니려고 난리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하기야 성경을 제대로 못 풀고 살아도 오직 하나님만 잘 믿고, 주님만 메시아로 믿고 살면 구원받는 데는 지장이 없
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자가 있기에 모르는 자는 예수님 시대와 같이 아는 자를 배척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 대한 해석을 다 잘해도 하나님과 주님을 제대로 못 믿고 살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들어 봐
요.
그런데 성경을 현실과 실제와 어긋나게 이치에 맞지 않게 가르치면 믿어지지 않고 억지가 되어, 전지전능하신 하나
님까지도 이치에 맞지 않게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을 잘못 가르치면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게 되고, 천국도 이
와 같이 이치에 안 맞게 꿈에 불과한 세계인 것처럼 생각되니 확신이 없어 안 믿어지게 됩니다. 성경을 이치에 합당
하게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아니하므로 구원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더 이론에 맞게 가르치는 이방종교나 우상종교로 가거나, 아예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 믿게 되는 문제들이 생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종교와 우상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습니까?
성경을 현실에 확인된 것과 다르게 가르치면 ‘메시아도 인간들이 믿어서 만든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
다.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에 맞지도 않는데 어찌 절대적인 진리야?” 하며, 하나님과 주님을 제대로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하면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가르치면 어떤 것을 믿겠습니까? 천동
설을 주장했을 때 성경을 썼기에 성경에 태양이 멈췄다고 한 것을 설명해 주고 이해시키면 됩니다. 진리는 모순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도 이해를 하고 확실히 알게 될 때, 제자들이 믿고 따랐습니다. 주님이 부활했을 때도 자세히 설명해 주니
제자들도 주님이 영으로 부활한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성경말씀이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틀리게 가르칠 때, 저 또한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믿
게 되었고, 성경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수없이 다시 읽으면서 주님께 성경이 왜 현실과 다르냐고
가르쳐 달라고 간구하여 주님이 쉽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고로 주님도, 성경도 확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선생이 되어 성경뿐 아니라 내 인생도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 주어 믿게 되었고, 영계도 가르쳐 주어 그
때부터 의심 없이 배웠습니다. “후에는 너도 선생의 선생이 되어 알지 못하는 자들을 가르쳐 주라.”고 말씀하시어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고로 여러분들도 모두 배워 이치에 맞고, 학교에서 배운 것과도 같으니 의심 없이 믿고 따라왔던 것입니다. 이는 마
치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살과 가죽이 하나 되어 부활하여 군대가 되듯이, 과학과 종교 이론이 하나 되어 말씀
에 세력이 있고 권세가 있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은 육적 지식이요,
종교는 영적 지식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일체되어야 곤고함이 없는 것입니다.
초창기에 성경공부를 할 때는 여기서 다 가르치니 많은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닐 필요 없다고 하면서 모두 학교
를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성경을 너무 과학적으로 가르치기보다 신앙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학문
도 실상은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니 학교는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문의 세계로 갈 자라면 그쪽만 몰두하여 배워야 되지만, 자기가 인생을 살 때 꼭 필요한 것만 배우고 잘 살면 됩
니다. 자기 사명인 것만 전문적으로 배워 사명에 충실하면 됩니다. 자기가 쓰여지는 데 대하여 배우고 유능하게 쓰
이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깨닫겠지요?
인생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 없는 것을 배우며 아깝게 시간을 낭비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신앙도 기본은 다
배워야 되지만, 전문 과목들은 전문적으로 하는 자나 배우면 됩니다.
잘 안 믿어질 때는 성경을 깊이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토대로 배우면 하나님도 주님도 잘 믿어지고, 더욱 의심 없
이 절대로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성경은 하나님과 나에 대해 증거한 것이니 잘 가르치
라.”고 했습니다(요 5:39).
성경을 복잡하게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복잡하게 이론을 늘어놓으면서 머리 아프게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
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보면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내게 배우라. 내 짐은 쉽고 가벼우니라.” 했
습니다. 그 말씀대로 어떤 성경의 의문이나 안 믿어지는 것도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섭리사에는 표적적인 자들이 많습니다. 말씀은 제대로 모르면서도 주님은 믿고 사랑하며 지금까지도 교회에 잘
다닙니다. 정말 표적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본인도 배울 것을 제대로 바르게 배워야 모르는 자들을 속 시원히 가
르쳐 줄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5장 5절에 아담은 930세를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너무 신기한 일이지만,
내가 생각할 때 정말 솔직히 말해서 의심스럽고 안 믿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면서 직접 본 것도 아니고,
확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어쩔 수 없었는지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조금 더
성경을 읽어 내려가니 더 안 믿어지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27절을 보니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고 했습니다.
더 기가 막혀 안 믿어졌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믿고 살지만, 나는 현실과 비교해서 확인하고 믿었습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마음도 달라서인
지 나는 도저히 안 믿어져 주님께 오래 기도하며 물었습니다. 혹시 성경에 숫자를 잘못 쓴 것이 아닌가도 생각했습
니다. 믿어 보려고 여러 가지로 해석했지만, 나 좋은 대로 믿는 것 같아서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주님은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시대에 계산법으로 나이를 계산했기에 그같이 산 것이다. 이 시대로 계산
하면, 이 시대 사람이나 그 시대 사람이나 비슷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나이를 계산하느냐가 문제입니다. 6000년 전에 나이를 계산하는 것과 달력이 나온 후에 365일을 1년으로
계산하는 법이 다릅니다. 옛날에 달력이 나오기 전에는 달을 보고 계산하였던 것을 역사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6000년 전 옛날 아담 때는 하루해가 짧았던 것이 아닙니다. 인생 일생은 약 100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된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돈 많은 자들은 오래 살기 위해 불로초와 산삼뿐 아니라 별의별 좋은 약을 몇
천 만 원, 혹은 몇 억씩 주고 사 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았는데도 100년도 못 살고 다 죽었습니다. 더 살아야
100년을 조금 넘게 살다가 죽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너만큼은 오래 살아야 된다.’고 할 하나님의 사람들도 100
년 조금 넘게 살다 죽었습니다.
주님은 오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매일 건강관리를 하면서 시간을 부지런히 몇 배나 더 쓰면서 살면 몇백
년 산 것이나 다름없고, 일도 몇백 년 한 만큼 해 놓는다.”고 했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살아도 90세가 넘으면 늙어서 오장육부의 기능이 약해져서 먹지도 못하고, 매일 죽는 길을 급히 가
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20세 전의 매일 커 가는 자들을 제외하고, 20세가 넘은 자들은 매일 늙어 갑니다.
예전에는 단상에서 말씀을 전하던 젊고 멋있고 예쁜 남녀 목사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지 않습니다. 외국으로 선
교를 나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앙이 죽어 교회를 안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내내 그 목사님들인데 늙어서 젊고 멋
있고 예쁜 얼굴들이 아저씨같이 아줌마같이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더 예뻐 보이니 걱정할 것 없습니
다.
부모님들도 자세히 보면 날마다 늙어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자세히 안 보면 모릅니다. 모든 것을 자세히 보아야 확
실히 알게 됩니다. 교회 안에도 창문을 꼭 닫아 놓았어도 자세히 보면, 바람이 늘 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은 눈으로 안 보이니까 이 시간, 시험하고 확인해 볼까요?
얇은 휴지 한 장을 꺼내 보아요. 자~ 그럼 넓이 2cm, 길이 10cm로 쭉 찢어서 손으로 들고 있어 봐요. 바람이 불
지요. 휴지는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정말 바람은 불지요? 공기는 숨을 쉬고 있습니다.
자세히 모든 것을 살피면 확인이 됩니다. 성경도 자세히 보면 잘못 가르치는지, 제대로 가르치는지 확실히 알게 됩
니다. 자세히 민감하게 보아야 영계도 알고, 주님이 스쳐 가심을 알게 됩니다. 말씀도 민감하게 들어야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을 받고 깨닫게 됩니다.
누구든지 인생 100년밖에 못 산다고 생각하고 보다 젊었을 때, 더 늙기 전에 힘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주님
이 맡기신 일들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을 받고 가면 주님이 틀어서 망신만 당하고 자기 자리를 뺏기고 후회만
합니다.
선생이 어렸을 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50세만 넘으면 늙어서 죽기 시작했습니다. 60세가 넘도록 살면 오래 산다고
했고, 70세가 되면 장명이라고 하며, 요즘의 90세 먹은 자같이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더 오래 사니, 더 주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늘나라를 위해 공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건강하기 위해 몸 관리 열심히 해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중심해서 인생에 해당되는 모든 것을 잘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무신론자들과 같이 인생의 이론을 잘
못 가르쳐 주면 하나님까지 부인하게 되고, 신이 없다고 하게 됩니다. 공산주의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
아니고 인간만 중심하는 인본주의 가르침입니다. 민주주의는 하나님을 중심하여 가르치고, 신의 존재를 시인하는 가
르침입니다. 어느 민족이든 잘못 가르쳐 주니 잘못되어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믿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사는 미국이나 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등 기타 기독교 선진국들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살도록 잘 가르쳐 주었기에 잘살고, 문화예술도 번창하고, 사람들도 사
회도 20~30년 발달되어 살고 있습니다.
한국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개신교가 들어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잘 가르쳐 주었기에 미신신앙과 우상종교에
서 모두 벗어나 이같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에 가서 대화하더라도 그 나라의 국교는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불교라고 하면 말도 않고, 기독교라고 하
면 “정말?” 하면서 우러러보며 좋아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믿느냐에 따라 평가됩니다.
성경도 인생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성경을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서 더 온전히 믿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 것은 말씀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며, 말씀에 불을 붙여 비전을 심어
주지 못하니 믿다 말고 세상 사랑과 물질과 명예에 빠지고, 곤고함을 해결 못 하고, 말씀이 이치에 안 맞는 것과 같
이 미래의 천국도 의심하며 메시아의 존재도 인간이 믿어 만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잡을 수 있
는 이상적인 말씀이 없고,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빠져 드는 세상 유혹들을 관리하며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흑암 속에서 인생길을 찾는 자들에게 복음의 밝은 불을 비춰 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둠 가운데 발의 등불
이 되도록 강하게 비춰 줘야 되고, 희망을 얻도록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 위대한 말씀을 듣고, 자기도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가르쳐 줘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최고의 희망으로 여기며 살게 해 줘야 됩니다. 같은 말씀을 가
르쳐도 각각 그 사람에 맞게 가르쳐 인생길을 바로 찾아 살게 해 줘야 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잘 가르쳐 놓으면 사고가 온전해져 스스로 잘하게 됩니다.
인생을 잘못 가르쳐 주면 사망으로 가게 되고 생명길을 잃게 됩니다.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천국과 지옥을 앞에
놓고 가는 인생들에게 정말 제대로 가르쳐 줘야 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시대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
고 외쳐야 됩니다. 그래야 새롭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고, 비전이 생겨 모두 길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주님도 축복해 주십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7일 만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잘 안 믿습니다. 지구 역사만 해도
45억 년이라고 배워 그 사고가 머리에 꽉 찼는데, 7일 만에 창조했다면 믿지를 않습니다. 믿고 안 믿는 것은 자기
자유의지라 어쩔 수가 없지만, 성경을 풀어 주면 좋아서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든지 의심하면 안 믿어집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실상은 인간들이 의심해서 안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 하루를 인간의 날 1000년으로 계산해도 창조 7000년입니다. 7000년이 7일보다는 더 믿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안 믿을 때는 더 이해되도록 자세히 설명하면 다 믿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주를 창조할 때 하늘나라까지 창조한 것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하
늘나라가 창조된 것과 지상이 창조된 연대가 같다는 것입니다. 모두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창세기에는 하늘나라 천국을 창조한 것에 대해 한 절도 나오지 않고, 천국에 대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
직 우주와 지구 창조에 대해서만 나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보이는 우주세계와 하늘나라 천국을 같이 창조했다면
하늘나라의 존재 연대도 우주의 기원과 같다는 결론을 가져오게 됩니다. 먼저는 신령한 세계요, 다음은 육 있는 세
계입니다.
천국은 상상도 못 하게 우주와 지구가 창조되기 이전에 창조된 것을 오늘은 조금이나마 알고 지나가고, 다음에 더
배우겠습니다. 물과 불이 없으면 사람만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들과 돌까지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에 오직 한 분밖에 없으신 랍비시요, 곧 참선생이십니다. 고로 근본을 가르쳐 주시며 속 시원하게 가
르쳐 주십니다. 속 시원하게 배워야 속 시원하게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섭리에서 지도자라고 하는 자들은 정말 자기 마음대로 가르쳐 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지도자라고 하며 “이같이 해.
저같이 해.” 하여 문제가 생긴 것은 책임을 져야 됩니다.
교회 공금도 잘 관리해야 됩니다. 공금을 마음대로 내주거나 쓰게 하면 안 됩니다. 공금을 내준 자도, 쓴 자도 책임
지고 흠 없이 해야 됩니다. 공적인 일에 책임을 맡은 자는 책임을 지고 일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그 누구든
지 공적으로만 써야 됩니다. 하늘의 돈은 귀히 아깝게 생각하면서 써야 됩니다. 삭개오는 사람의 돈을 부당히 쓰고
안 갚을 때는 4배를 갚겠다고 주님께 고백하였습니다(눅 19:2-10).
잘 가르쳐 잘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이 지구촌을 자주 오고 가신다고 생각하며, 자기를 늘 쳐다본다는 것을 깨달아
야 합니다. 주님은 “항상 예비하고 준비하라. 성경의 약속대로 할 때가 된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더욱 충만하고, 주 그리스도 사랑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
만하기를 빕니다. 안녕.
<2009년 1월 25일 주일말씀>
진리와 증거의 영, 성령
본 문 요한복음 15장 23-27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명절로 인하여 이동하느라 바빴지요? 한국을 비롯한 몇 나라들은 음력으로 설을 쇱니다. 명절 때문에 기쁜 사람도
있겠지만, 슬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가 되시고, 주님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되어 주시니
항상 이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됩니다.
부모가 없다고 슬퍼하고 마음 아파할 것 없습니다. 그 슬픔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주님은 기쁨의 날을 계획하고 계십
니다. 저도 지난날 슬픈 날이 있었지만, 그 슬픔으로 인하여 내 인생이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주님은 각종으로 표적
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지난해는 고향과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외롭게 명절을 맞았는데, 올해는 한국에 들어와 10년 만에 처음으로 여러분
과 함께 명절을 맞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되지요?
본문 말씀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주님은 그 육신이 제자들과 이별하게 될 것을 아시고, “걱정마라. 오히려 너희에
게 더 좋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깊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너희도 나도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에게 무고히 많은 미움을 받아왔다. 실상,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 아버지를 미워
하는 것이다. 저들은 내 아버지께서 「왜 너희는 나를 그렇게도 미워했느냐?」하면 「언제 감히 미워했나이까?」할
것이다. 이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낸 자를 미워한 것이 나를 미워한 것이니 너희들에게 심판이 있
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저들에게 아무도 말하지 못한 무지와 죄를 말하지 않았으면 저희가 죄 없으련만, 온전한
말씀을 듣고 아버지를 보았어도 미워하는도다. 이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저희가 연고 없이 무고히 나를 미워하였다
함이 응하였느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할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 하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와 너희들을 미워하고 죽이는 자들은 자기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
내가 너희들에게 미리 말함은 그때를 당하면 생각나게 하려 함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앞날에 있을 일과 과거에 당
하신 일들을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과 주님이 보내어 일하는 자들을 미워하는 자는 역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보내어 일하라고 한 자를 누가 미워하면, 바로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이후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며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고, 말씀대로 제자들과 이별하셨습니
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임하여 주님을 자세히 증거 하게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은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이 메시아임을 더 확실히 알게 해주었고, 더 확실하게 주님을 증거 하게 하여 더욱 사
명감이 불타게 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더욱 하나 되었고, 복음의 역사가 이방으로까지
강물처럼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구세주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
이 다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친히 말씀하신 것을 주님은
이루셨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도 하나님은 약
속대로 2000년 동안 이루어오셨고, 주님도 그를 믿는 자들과 함께 이루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 하신 일은 성경에 기록된 것뿐만이 아닙니다. 아담 이후 6000년 동안 상상도 못
하게 모든 자들에게 역사해오셨습니다. 각 나라, 온 세계 각 개인에게 행하신 일은 너무도 많고 많아서 세상 어느
누구도 다 말할 수 없고, 각자 자신에게 행해주신 일들도 자기가 죽는 날까지 다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많고 많습니
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각자에게 행한 일들을 하나하나 다 감사하다고 말할 수 없고, 모든 자들에게도 다 증거 할 수
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인·가정·민족·세계에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많은 자
들에게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도리이며, 또 책임을 다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에는 특히,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신 것만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나라를 도왔다는 성구는 찾
아볼 수 없지요?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도와주었다는 성구도 없지요?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만 도우시고, 그
들에게만 기적을 행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듯이, 이 시대 우리들도 사랑해주시며 역사해오셨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사랑
하고 도왔던 자들도 함께 하여 이 시대 사람을 돕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도 각 나라와 개인들을 돕고 함께 해주
시며 역사해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구 세상 모든 인생들과 각 민족에게 성경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이 역사해 오신
것을 절실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이 우리도 돕고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두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
봐요. 또 지금 이 시간에도 생각해 봐요. 그동안 각 개인·가정·민족에게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이 돕고 함께 하신
일이 무엇인지 회상해보기 바랍니다. 알면 더 역사해주십니다. 모르는 자에게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너희 전쟁의 날이나, 환난의 날에나, 죽음의 날에 돕지 않았으면 호흡을 하는 자들이 없고, 살아있는 자
들이 없다.”고 주님은 확실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2절을 보면, 택한 자들을 위하여 죽음의 날과 전쟁의 날과 환난의 날들을 감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들로부터 믿지 않는 자들까지 도우시고, 그 생명들을 생각하시어 고통과 죽음들
을 감해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가정과 민족과 세계 환난의 날을 위해, 또 자기 환난의 날을 위해 열심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가정도,
민족도, 섭리도 자기같이 사랑하며 삶을 살아야 됩니다. 가정이나 민족이나 섭리가 죄를 지으면, 마치 자기가 지은
것처럼 회개하고, 걱정되는 일과 환난이 있으면 자기 걱정과 환난으로 생각하며 기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
의 기도를 꼭 들어주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말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여러분들과 각 가정과 나라들을 위해 역사
해 오신 것을 여러분들이 직접 말하면 다른 자들도 깨닫고 알게 되니, 지난날들을 열심히 생각하며 감사해야 됩니
다. 그래야 새롭게 변화하는 해가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알거나, 멀리 하늘나라에 계시는 멀고 먼 하나님으로만 알지 말아야 합니다. 나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 작은 일도 큰일도 돕고 신경 쓰시는 하나님, 사람보다 더 가깝고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됩니다.
사람은 자기 원하는 일이나 어려운 일을 말하지 않으면 못해주고, 아예 관심이 없는 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심을 확실히 알고 믿어야 됩니다. 이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었어도 막연히 믿고
조금만 알면 이는 마치, 세숫대야에 들어가 목욕하는 자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입니다.
사람도 아닌 하나님이 자기 민족과 가정과 각 개인들을 돕고 함께 해주셨는데, 도움을 받은 자가 모르면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지 않는 자는 받고도 죄를 지은 자가 됩니다.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생명에 관한 것이나 어떤 어려움에 처해서 도와야 할 때는 하나님 자신의 일, 주님 자신의 일
을 하듯이 행해 오셨습니다.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자에게 더욱 함께 해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어떤 환난과 어려움일지라도 공중에 바람이 지나가듯 아무도 막을 수 없이 행하십니다.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그의 몸이 되어 그의 일을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행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생활하면서 제자들이나 세리들과 창기들, 그리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사는 자들과 세상에서 버림받고 사는 자들과 희망 없이 가난 속에 굶
주리고 헐벗은 자들과 병들어 고통당하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사랑하는 대상이 되어주며, 구원을 위해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 하나님을 믿게 함으로 구원을 시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사망권에서 나오고, 고통 받는 데
서 건강하게 되어 자유로운 영혼과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 같은 일을 우리와 모든 자들에게 사명자들을 통해 행하시고, 또 직접 행하기도 하십니다.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주님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사랑하여 생명들이 위험할 때 항상 구원하시고, 건강문제
나 고민·걱정·염려를 당한 자들을 이끌어내 주시며 영으로서도 밤낮으로 작고 큰일들을 도우시며 바쁘게 우리들을
관리하십니다.
눈에는 안 보여도 주님을 부르고 찾으면 일순간에 오셔서 역사하기도 하시고, 오시지 않고도 옆 사람을 통해 돕게
하시고, 자신에게 깨닫게 하여 이기게 하시고, 수천 가지 방법으로 돕고 행하십니다. 이같이 돕고 함께 하는데도 인
생들은 늘 걱정과 염려를 하고, 사고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평소 주님의 말씀대로 “너희 스스로 조심
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큰일은 도와준 것이 금방 생각나고 깨달아 알게 되지만, 작은 일은 도와줘도 잘 모릅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도와
주었으면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다 큰 것으로 알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 환경에서는 그 환경에서 돕고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령, 혼자 밤길을 갈 때 꼭 누구를 보내줘서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에 사람을 보낼 수 없는 처지라면 자신의
마음을 담대하게 해주심으로 도우시고, 천사도 동행하게 하십니다. 또 어느 때는 거기 있는 자를 통해 돕기도 하시
고, 어느 때는 마음속에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어느 때는 힘든데 자기를 위로할 자가 없어 힘들어 할 때 깨닫게 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힘내.”할 때도 있고,
어느 때는 꿈으로 보여 걱정이 안 되게 해주시고, 어느 때는 한 입 먹을거리를 주면서 주님이 챙겨주심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 환경에서는 그 환경에 해당되게 돕기 때문에 별 표가 안 납니다. 작지만 그 환경 때문에 그만큼 밖에 못 도와주
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환경 때문에 그만큼 밖에 못 도와주었어도 해결되니, 작지만 감사하고 기뻐하며 영광 돌
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겪고, 이에 해당되는 말씀을 받았어도 말로 깨우쳐주기 정말 힘든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 한 번 더 이야기해주겠습니다.
때는 가을이었습니다. 산에서 기도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지금도 포도가 있을까?’하고 숲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녔
습니다. 그러다 때가 지나 반쯤 물기가 빠진 마른 포도송이 몇 개를 찾아 따먹게 되었습니다.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너무 양이 적어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서는 환경 상 더 이상 포도를 찾을 수 없다.”고 주님은 말
씀하셨습니다. 환경 따라 주시는 것이니 「줄 수 없는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미련을 두고 1시간 동안 더 사방을 돌아다녔는데, 마른 포도 한 알을 더 찾지 못했습니다. 그 환경에서는 없
어서 더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환경에서 최고로 도와주신 것입니다. 철이 지나 마른 작은 포도를 찾아 먹게
했어도 그 환경에서 최고로 주신 것을 깨닫고, 여러분들도 그같이 환경 따라서 주기에 작은 것을 주었어도 큰 것으
로 알고 주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심정 모르면 주님께 붙은 지체가 아닙니다. 지체는 같이 느낍니다.
- 하나 더 이야기할까요? 들으면 모두 주님의 사랑에 가슴 뜨끔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극
적인 어려움 속에 정말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면서 보내던 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먹는 것도, 그 어떤 것
도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생각도 없이 살 때였습니다.
내 그릇에 밥과 국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국을 떠주는 아주머니가 국을 세 번, 네 번 저었는데 건더기가 뜨지 않
았습니다. 이 날은 고깃국이었습니다. 다시 저으니 수제비만한 고기가 한 덩이 떴습니다. 그것을 내 국 그릇에 넣어
주었습니다.
‘아무리 저어 봐도 더 없구나.’하는 소리가 번개처럼 선연하게 들려왔습니다. 주님의 심정의 소리였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소리였습니다. 식사를 갖다 놓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같이 너
를 사랑하는데 내 심정 아느냐. 내 앞에서 무슨 한숨을 그리 쉬느냐.”했습니다. “이 환경에서는 더 건더기를 찾을
수가 없구나.”하셨습니다.
참 지극히도 챙겨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으니 주님이 그같이 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도와주니 걱정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주님은 나를 도와주셨습니다. 감
사하지요?
그때부터 나의 한숨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세상 그 아무도 네게 안 와도, 내가 오면 최고다.’하는 주님의 심정을 깨
닫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지극히도 챙긴다.」는 시를 머릿속에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주님은 모든 인생들을 지극히도 챙겨주십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항상 불만입니다. 챙긴다는 말을 깨달았지
요? 작아도 큰 것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주시어 그 환경에서 우리
들이 처한 어려움과 각종 처지에서 최고로 도우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생각을 새롭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주님은 그같이 해주셨습니다. 모두 주님이 이같이 역사하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동안 이같이
역사하신 주님의 심정과 사랑을 모르는 자들도 이제 알았으니, 감격하며 주님에 대해 다시 새롭게 생각하고 대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챙겨주십니다. 작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모래밖에 없는 사막에서는 모래 중에 큰 것
하나를 쥐어 주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이왕 도울 바에야 돌을 주워 주시지.’합니다.
큰 것을 받아야만 큰 것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그 시대, 그 환경에서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주시는지 깨달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받고도 고맙다고 하지 않고 작다고만 합니다. 없을 때는 없는
대로 도우시고, 있으면 있는 대로 그때 더 크게 도우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그같이 행하십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한숨 쉬면 안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 주관권이고, 불만과 한숨과 원망들은 사
탄 주관권의 세계입니다.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나 죄 값 받는 거야.’하기 시작하
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좌절까지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하나님과 주님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서운함과 섭섭한 마음은 독약 같은 것
입니다. 주님은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과 주님 앞에서도 절대 그같이 생각 말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그 같은 마음이 생기면 간절히 기도하여 순리적으로 자기도 자기 것을 얻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남처럼 자기도 똑같이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개성대로 자기 위치에서 자기 사명하고 살면 됩니다. 자
기가 구하지 못해서 못 받는 것도 있고, 또 자기에게는 다른 것을 주기 때문에 못 받는 것도 있습니다. 많이 맡은
자는 많이 해야 되고, 적게 맡은 자는 적게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받아 크게 하고, 자기는 적게 받아 작게 밖에 못한다고 비교하면서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감사하며 하나 되어 하지 않으면 주님의 심정을 모르는 자요, 지체가 주님과 붙어 있지 않은 자입니다. 가르쳐주었
으니 알고 기쁨으로 행하기를 바랍니다.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과 주님이 행하시는 일이 다르고, 성령께서 행하
시는 일이 다릅니다. 하나로 역사하시나 행하시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애인같이 챙기시고, 부모가 자녀를 챙기듯이 돕고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가르
쳐주십니다. 살아서 복음을 전하실 때와 같이 성경대로 말씀을 확실하게 가르쳐주시고,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다 말할 수 없으니 4복음서를 잘 읽어보기 바랍니다. 소경과 앉은뱅이들과 각종 병으로 아픈 자들이 주님을 쫓아다
니면서 낫기를 구했을 때 “네가 원하는 대로 낫기를 원한다.”고 하시며 낫게 해주셨습니다. 하고자 하는 자에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시대도 그러합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지키려 심혈을 기울이는 자와 순종하는 자를 챙기시고, 그와 동
행하시며 사랑해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책임의식을 느끼고 주님의 일을 자기 일같이 행하며 사명에 충성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말만
하지 않고 직접 행하며 형제들을 자기 몸같이 아끼고 돌아보며 화평케 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며 낙심치 않고 부
지런히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겸손으로 행하며, 형제들을 자기보다 높게 여기고, 위해주고 섬겨주는
주님의 마음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같이 사는 자들을 보고 주님은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실천하는 본을
보여주셨으니, 우리는 그대로 해야 됩니다.
“어떤 환난과 고통이 와도 낙심치 말고 끝까지 하라. 뜻이 있어 받아야 되고, 또 환난을 받는 만큼 돕고 함께 한다.
이 후에는 다 갚아주고, 그로 인하여 신앙이 더 빛나게 되고, 생명 길을 가는 기회가 되게 하는 것이니 감사하며 가
야 앞에서 기다리는 주님을 만나 동행하게 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으니, 그 수고가 헛되지 않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행해야 됩니다. “영원한 하늘나라
를 상속받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해야 된다. 너희가 고통 받는 것을 알고 있고, 이에 어떻게 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니 이를 믿고 어느 때든지 같이 열심히 해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낙심하고, 실패하고, 자포자기 하고, 믿음을 파선하게 됩니다.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오직 주님이 해
주심을 깨닫고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 말을 믿고 말씀 따라 실천하며 살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쓰이는 지체입니다. 항상 주님께 쓰이는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신앙으로 붙은 지체이
면, 주님의 마음과 같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한 번은 주님을 믿는 자와 주님을 믿지 않는 자, 두 형제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한 형제가 있는데 그는 주님을 믿고 사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른 형제의 마음을 거스르면서 미워하며 화평하지
못하게 지냅니다.”
이에 주님은 “내게 붙은 지체가 아니므로 그러하다. 나는 그같이 가르치지 않았는데, 그같이 한다.”고 하며 노여워
하셨습니다. “형제에게 미움을 받고 심적 고통을 받는 자가 신앙생활을 하면, 차라리 내 맘에 들게 한다.”고 말씀하
시면서 나를 교훈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심정 상한 한 형제를 다시 만나 주님이 하신 말씀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차라리 당신이 주님을 믿
으면 잘할 사람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보고, 주를 믿으면서도 그같이 사는 형제와 같지 않고 잘할 사람이라고 하십
니다. 또 당신이 주님을 믿기 원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자기 심정을 잘 안다며 교회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눈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핑 도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모두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주님께 붙지 않은 자는 구원에 지장이 생깁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해
서 주님께 붙은 지체가 아닙니다. 주님의 몸과 하나 되어 붙은 몸이라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23절을 보면, 그리스도께 붙은 자가 주와 같이 휴거 되며 데려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고전 15:22-23)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
요』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 되듯이, 주님께 붙어 하나 된 자가 그와 함께 휴거 되어 새로운 세계로 가서 살게 됩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은 수천 가지라서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용서해주시고, 심판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고, 잘
했다 칭찬도 해주시고, 화목과 축복을 주시며, 치료하시고, 위로하시고,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교만한 자, 시기 질투
하는 자,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용서치 않는 자, 외모만 치중하고 형식에 치우치는 자, 의심하는 자, 차지도 덥
지도 않고 미지근한 자들을 책망하시며 행한 대로 대해주십니다.
주님이 열심히 하는 자들에게 전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름이 없고 소문이 안 났어도 열심히 봉사하며 충성하는
자를 내가 안다. 살아서 동행하며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니, 사람들은 몰라줘도 나는 다 안다. 천사들을 통해 보고
받고 알고, 또 직접 보고 안다. 그러니 죽도록 열심히 하라. 사람이 못 챙기면 때가 되었을 때 내가 꼭 챙긴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행하는 일들과 주님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두고두고 말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주님에 대
하여 더욱 새롭게 생각하고 주님을 대해야 감격하게 되고, 심령의 변화와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다음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말하겠습니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은 많고도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진리의 성령이 증거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 도다.」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
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가르쳐주실 때 “성부는 아버지 같고, 성자는 아들 같고, 성령은 어머니 같다. 모두 한 성령 안에 하
나다. 성부, 성자, 성신은 한 지체와 같다.”고 했습니다.
신학에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나누기도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역의 존재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나라로 올라가신 후에는 성령이 증거하며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감동시키시고, 움직이게 하시고, 행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명하시고, 예수님은 가르쳐주시
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어 행하게 해주십니다. 각각 나누어 행하시지만, 어느 때는 주님이 다 행하기도 하십니다. 인
간의 몸과 정신과 영은 각각 존재하고 있지만 일체이듯이, 성부 성자 성령도 일체이시면서 각각 존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뜻 있는 일을 행하실 때는 하나님이 명하시고, 주님은 가르쳐주시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어 일하게 하십니
다. 감동으로 말씀하시는 성령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의 감동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성령은
감동을 일으켜 할 수 있도록 움직여주시고, 감동으로 깨닫게 해주시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감동의 신입니다.
모두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보았지요? 성령에 감동되면 가기 싫은데 가고 싶어져 시동이 걸린 자동차처럼 쉽게 가집
니다. 가보면 생각한 것이 행해집니다. 성령은 감동 감화의 존재이십니다. 성령은 깨닫게 해주고, 생각나게 해주고,
깨달음으로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몸이 뜨겁게 되는 징조가 일어나고, 몸에 진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영의 눈이 열려 신령한 세계를 보
게 되기도 합니다. 성령에 감동되어 교회에 오기도 했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영의 세계도 가게 되고, 하나님의 뜻
있는 곳으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성령의 역사로 사도의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을 보면, 스데반은 순교 당시
성령에 충만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그 당시에 옳고 그른 것을 담대히 외
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12절을 보면,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주님의 사도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둘 때 그들이 사도들을
모아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같이 표적을 행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하
여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죽여서 버린 자,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
로 병든 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이룬다. 예수는 너희가 버렸지만, 건축자들이 가장 귀히 쓰는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며 담대히 외쳤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진리에 대하여 담대하게 외치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자는 내가 제대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동이 걸리지 않은 자동
차를 쓸 수 없듯이,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받아 움직이고 행동해야 쓸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감동과 감화를 충만하게 받을수록 자기 스스로 원하여 행해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알아서 주님의 뜻
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성령님이 친히 오셔서 감동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됩니다.
성령의 이론을 가르쳐주면 행하는 자만이 직접 겪게 되고, 실제로 이루어져 느끼고, 마음에 깨닫고 몸에 와 닿아 제
대로 알게 됩니다. 모두 가르쳐주었으니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게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누가 말하기를 “나도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싶으니,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가서 불을 붙이고 와서 다른 사람
들에게도 불을 붙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때가 되어야 하니, 사도시대 때처
럼 열심히 기도하며 기다려라.”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사도시대 때도 때가 되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어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을 간구하고 원해야 됩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가 없으면 답답하고, 몸이 무겁고, 마음도 무겁습니다. 성령의 감
동이 충만하게 되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병 고치는 역사도 일어나고, 화목하고, 서로 유유상종하며 돕고, 하
나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서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서 행하게 되고, 가슴이 뜨겁고, 기쁘고, 즐
겁고, 희망에 벅차고, 능히 행해지고, 믿어지고, 낙심도 걱정도 사라지고, 주님과 일체되고, 고난과 역경도 이기게
되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되고, 얼굴에 근심이 사라지고 빛이 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는 능히 못할 일이 없습니다. 자신이 못하는 일을 간구하면, 성령님이 어떤 자에게 감동을 주어 대
신 행하게 해주십니다. 원수의 마음도 감동하게 하여 자신이 말로 해도 안 될 때 기도하면 성령님이 감동시켜주어
이루게 해주십니다. 또 로마서 8장 26절 말씀과 같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여 역사해
주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이외에도 여러 수천 가지로 역사하십니다.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곤란한 때도 주님께 기도하면, 성령
이 감동으로 역사하여 마음을 녹여주고 감동시켜 그 원하는 대로 해주시기도 합니다.
성령의 감동은 크게 혹은 작게 일어납니다. 어느 때는 태풍처럼, 어느 때는 봄바람처럼, 어느 때는 실바람처럼 은은
히 은밀히 역사하십니다. 자기 심령의 기준에 따라 강하게, 혹은 약하게 역사하십니다.
합심하여 함께 기도할 때, 찬양할 때, 말씀을 들을 때, 간절히 함께 하나 되어 일할 때, 전도할 때, 성경 볼 때, 말
씀을 다시 읽어볼 때, 말씀을 전할 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주님의 모든 일을 할 때 마음과 몸을 뜨겁게 역사하시
며 도와주십니다. 또 홀로 외로이 인생의 길을 갈 때, 위험한 길을 갈 때, 두려움 속에 처했을 때, 고독하고 쓸쓸할
때, 걱정할 때 성령은 바람처럼 스쳐 행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3절-13절을 보면, 주께서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느니라. 육은 육의 부모가 낳았지만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니고데모야~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이리저리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성령으로 난 자는 사람들이 보아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났습니다. 이는 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들어도 예수님을 몰랐습
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육을 통해 말씀하심을 모두 기이히 여기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육적인 말이 아니고 영적인
말인 고로, 잘 몰랐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육적인 생각이 아닌, 영으로 생각해야 잘 안다고 했
습니다.
영에 대해 모르면 영에 대한 지식도 없고, 영의 은혜도 모릅니다. 육에 대해 모르면 육이 제대로 가치 있게 보람 있
게 살지 못하듯이, 영도 그러한 것입니다. 육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두고 살게 했습니다. 육이 오직 하나님과 주님
과 성령의 뜻을 따라 살다가 죽으면, 그 영은 하늘나라에 가서 하늘나라 천국을 천국으로 두고 살게 했습니다.
영에 대하여 배우고 늘 생각해야 됩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를 받고 성령과 일체되어야 변화를 받고 더욱 거듭나게
됩니다. 말씀하였으니 성령이 역사하시고 더욱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음식도 먹어봐야 느끼고 알듯이 성령을 받고 감
동을 받을수록 알게 됩니다.
오늘은 성령에 대하여 특별히 말씀했습니다. 성령에 대하여 간구하고 기도해야 성령님도 더욱 역사하십니다. 사람들
은 하나님도 잘 부르고, 기도할 때 주님도 잘 찾는데, 성령을 잘 찾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찾으
며 간구해야 됩니다. 성령님이 감동시켜 달라고 구해야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을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기에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
시고 마귀에 눌린 자들을 고쳐주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죄를 생각나게 해주시고, 회개하도록 감동시키시고, 성결케 해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시며, 해야 될 일을 생각
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 있는 일과 주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마음을 감동시켜 행하게 하십니
다. 믿어주고 잡아당겨 갈 곳을 가게 하시고, 안 갈 곳은 못 가게 감동시켜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구심력과 원심력 작용을 합니다. 돛에 바람이 닿아 배를 밀어 끌고 가듯이, 마음의 돛은 성령의
바람으로 끌고 갑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명하여 “가라”고 한 일들이 나와 있으니 몇 구절만 읽어보도록 하겠
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행 10:19-20)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행 11: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이밖에도 사도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행한 일들이 사도행전에 많이 나와 있으니 찾아서 읽어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의 사역을 받으면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명을 받아 행하면 주님이 함께 하여
그 사역을 하게 되고, 성령의 사명을 받고 행하면 성령같이 감동을 주며 행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명을 행하는 것입니다.
흔히 잘못되면 ‘내가 성령이다. 내가 예수다.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합니다. 선을 벗어나면 악이 되듯이, 진리를 벗
어나면 탈선자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됩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의 지체가 되고, 그의 사역자가 되어서
쓰여집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 있는 자입니다. 바로 알고 행해야 사람들도 걱정 안 하고, 성령님도 걱정 안 하
고, 주님도 하나님도 걱정을 안 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성령님이 행하시므로 자기가 행할 뿐이니 그 사람은 성령이 아니라 쓰이는 자입니다. 칼이 부엌에
서 사람 손에 쓰여지면 무도 자르고 김치도 자르며 각종 재료들을 필요한 대로 자릅니다. 그렇다고 칼이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알고 살아야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제대로 성령께 쓰이는 자가 됩니다.
주님께 쓰여지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일을 하여도 주님이 될 수 없습니다. 사역자에 불
과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행해야 더 역사하시고, 더 온전한 말씀을 깊이 퍼부어 주십니다.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일체가 되어 여자가 남자 하는 일을 똑같이 하여도 지체로 볼 때,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없습니
다. 남자가 여자 하는 일을 똑같이 하여도 지체로 볼 때,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단지 그 일을 한 것뿐입니
다. 이것이 이치요, 진리입니다.
주님은 철저히 처음부터 이같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주님이 될 수 없고, 성령이 충만하여
행한다 해도 성령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앞에도 가지 말고, 나와 같이 행하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주님 옆에서 살려고만 해
도 주님이 마시는 쓴 잔을 마셔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마시는 똑같은 쓴 잔을 마시고 그 삶을 감히 똑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 그릇과 사명에 따른 쓴 잔을 마시고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만민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쓴 잔을 똑같이 마실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주
님이고, 우리는 우리 위치에서 주를 따라가면서 겨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갑니다. 그리고 자기 위치에서 겨우
형제들의 십자가를 대신 지어주고 갈 뿐입니다.
이를 알고 행하면 큰 자요, 따르는 자를 잘 인도할 자요, 복 있는 자요, 주님이 좋아하고 기뻐할 자입니다. 이를 깨
닫지 못하면 항상 주님을 등 뒤에 따르게 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게 됩니다. 구세주, 메시아, 재림주이신 주님
은 이 사명을 팔지도 않고 주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들과 가르치는 자들은 잘 가르쳐줘야 됩니다. 잘 가르쳐줘야 세상 유혹에 들어가지 않고 빠지지도 않습니다.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아 아버지가 되어도 자기 자녀 앞에나 아버지이지, 자기 아버지 앞에는 아버지가 될 수 없고
아들일 뿐입니다. 이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께 배워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시고, 늘 배우고 알라고 하시고, 모르면 성경을 자세
히 읽어보라고 하시고, 주께 묻고 자세히 배우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내놓을 것이 없으니 배
우라.”고 하시며 “내게도 배우고, 세상 상식도 배우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깨닫고 배웠어도 성경에 그같이 주님이 말씀하셨는지 보고, 이치에 합당한지 확인해보고, 실천하고 말해
야 됩니다.
마태복음 11장 29-30절을 보겠습니다.
(마 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
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처럼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은 쉽고 가볍습니다. 고로 주님처럼 잘 가르쳐주면 쉽게 잘하게 됩니다. 어렵게 가르
쳐주고, 자기 주관과 이상한 변론과 이론을 붙여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비유를 들어 먼저 비유를 말해주
시고, 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쉽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비유를 잘못 들어 말하면 본 성경말씀
도, 주님의 말씀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많이 나왔으니 꼭 읽어보기 바랍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참으로 많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지만, 모르고 살고 있으니 더 자세히 듣
고 더욱 성령의 은혜를 덧입어 행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여야 더욱 시대의 눈을 떠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뜻을 깨닫고 행할 수 있고, 자신도 모든 것을 이기고 은혜로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
하심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축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며 주의 말씀과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축원하
옵나이다. 아멘.
<2009년 1월 28일 수요말씀>
성령 충만
본 문 사도행전 10장 38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 끝까지 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나오고, 예수님에 대하여 나오고, 성령님에 대하여 나옵
니다. 예배 마치고 마지막 축복기도를 할 때 성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축원한다고 하지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해주시고, 어려움을 도우십니다. 그런데 쪼개서 본다면 하나님
과 성령님은 부모 같은 존재자이시고, 예수님은 아들 같은 존재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직접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며,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고 도우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그의 몸을 통해 실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행하심과 능력과 구원해주심을 보게 하여, 우리는 가상
적으로 알던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나 선지자들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내가 보낸 자는
내 아들이니, 너희는 그 말을 들으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습니
다.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냈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4장 13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버지가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고 뜻을 이룬
다고 했습니다.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친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많이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아버지께로서 온 하나님의 영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계시록 22장 17절을 보면, 사도요한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요한의 영이 천국에 가서 보고
말씀한 것입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하나님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
셔서 나를 증거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행한 잘못된 일도 말해줄 것이니, 너희도 나를 증거 해야 할 것이다.(요
15:26-27)”라고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 모두 허전하고 쓸쓸하고 슬픔에 젖어있을 것을 아시고, 주님은 가시기 전에 “너희는 내
가 없더라도 흩어져서 각각 행하지 말고, 먼저 모여서 기도하여라.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낼 것이니 기다리라.”고 미
리 가르쳐주시어 그 말씀에 따라 제자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절기인 오순절 때였습니다.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의 몸에서 해방되었음을 기념하는 날
인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제자들이 모두 모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모인 장소에 가득하게 되었고 마
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성령의
역사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자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각자 다른 곳에서 온 자들이 모
두 그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신기하고 놀랍게 생각했습니다(행 2:1-13).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제자들의 믿음이 더욱 굳건하게 되었고, 능력을 받게 되었으며, 주님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
었고, 예언도 하고, 병들도 고쳐주며 각종 기적의 소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슬픔과 걱정이 떠나고, 희망과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세에 내 영을 모든 자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
고 꿈을 꾸며,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며, 많은 징조들을 보게 된다.』고 말
씀하신 대로 역사하신 것입니다(행 2:14-22, 욜 2:28-29).
이 꿈들은 평소에 꾸는 사몽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이시는 영적 꿈입니다. 또 평소에 하던 말과는 다른 신기한 방언
이 나왔습니다. 영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영에 의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예언도 하는데 이는 어
떤 통계에 의한 예언도 아니었고, 신접한 자들이 예언하는 예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예언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성령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받아 보았습니까? 받아본 자들은 성령의 은혜와 감동을 받
았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지요? 몸이 뜨거워지고, 영의 눈이 떠져 영의 세계의 일부가 보이고, 꿈도 꾸고,
환상도 보고, 영도 보고, 천사도 보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강한 바람 소리도 들어보고, 각종 은혜를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성령은 꼭 기도할 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아무 때든지 목적이 있으면 은혜 가운데 역사
하십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가슴이 뜨겁든지, 신체의 한 부분이 뜨겁게 느껴오든지, 마음이 감동되어 생각하지도
않은 지혜로운 말이 나오고, 상대를 감동시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크게 마음에 감동이 되어 즉시 몸에 느낌이 오고, 기쁘고, 행실의 변화가 오고, 말의 변화가 와
서 방언이 나옵니다. 담대해지고, 부지런해지고, 성경을 보고 싶고, 말씀을 전하고 싶고, 기도하고 싶고, 찬양하고
싶고, 전도하고 싶고, 성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을 받으면 평소처럼 지내지 못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살아보아야 평소에 얼마나 육적으로
살았는지, 얼마나 몰랐는지, 무지 속에 살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로서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도 하나님이 예수님께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셔서 모든 착한 일을 행하시고, 온전한 진리를 행하시고, 마귀
와 귀신에게 억눌린 자들을 구원하시고, 마귀들을 멸하시고, 또 각종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을 보면,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 곧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오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예언대로 행하셨습니다. 성경에 다 쓸 수 없어서 못 썼지 주님은 엄
청나게 많은 일들을 행하셨고 제자들도 행했습니다.
예수님 당세 에도 예수님은 말씀의 불로 세례를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 곧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하는 성령의 세례
를 주셨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고로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임이 불 세례, 성령 세례가 되었습니다. 근본
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깨끗케 해주며, 각종 은혜를 받는 성령 강림의 은혜가 있었습니
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예수님이 크게 행하신 것만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제자들도 말씀대로 해야 되었건만,
크게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 표적이 많이 없었습니다. 고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산을 옮기는 믿음이
없어 귀신을 쫓아내며 어린아이를 고쳐주지 못하였느냐.”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이 하늘나라에 가신 후, 제자들에게 영으로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
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어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주셨듯이 제자들에게도
부어 주시어, 주님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과 복음을 증거 하듯이 제자들은 주님을 증거하며 사탄과 환난과 핍박을
이기고 물리쳤습니다. 또한 많은 표적이 일어나고, 병 고침의 표적이 일어나 새롭게 부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능력을 받고 새롭게 변화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섭리사에도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을 받지 않은 자는 없습니다. 신앙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성령의 역
사와 은혜로 신앙을 지켜오며, 수많은 표적과 체험을 얻고, 은혜 가운데 살아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밖에서는 바람이 부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으나, 문을 닫아 놓은 방안에서나 교회 안에서는 못 느낍니다. 우리가 느
끼지 못해도 고기압과 저기압이 서로 운동하고 있으므로 바람은 이리저리 불며 이동합니다. 확인하려면 휴지를 찢어
공중에 매달아놓으면 공기가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크게 일어날 때도 있고, 평소에 방안에서나 실내에 공기와 바람이 이동하듯이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게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신에 의해 은혜 가운데 움직여도 잘 표가 안 납니다. 신경 안 쓰면 모
릅니다. “자세히 하나님의 행하심을 살펴야 알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알라고 말씀하시
는 것입니다.
방언을 하거나, 몸이 뜨거울 때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가운데 살 때도 다 하나님의 역사입
니다. 여름철에는 더욱 더운 것을 느끼지요? 겨울철에는 춥지요? 추울 때도 태양이 비춰주기에 얼어 죽지 않고 살
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환난 때나 어려울 때나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과 주님이 역사하고 계시므로 우리
의 육과 영이 사망으로 묻히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더 기도하고 은혜 속에 살려고 할 때, 성령의 역사를 더욱 받아 강하게 느껴집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방언
을 하게 되고,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통역을 해야 알기에 통역하는 은사도 주십니다. 어떤 때는 자신이
자기가 방언하는 것을 통역하면서 알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인데, 이때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능력들을 행하게 됩니다. 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데, 결국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임하여 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이는 말씀의 능력을 받아 지혜의 말씀을 하고, 어떤 이는 지식의 말씀을 하고, 어떤 이에게는
믿음을 확실하게 갖게 해주고, 어떤 이는 병을 고치고, 어떤 이는 능력을 행하고, 어떤 이는 영을 분별하고, 어떤 이
는 방언을 하고, 어떤 이는 방언을 통역하게 하시며 역사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성령의 은혜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주었습니다. 모두 읽어보기 바랍
니다.
하나님의 영은 각자 개성과 사명대로 임하여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
습니다.
하나님이 주님과 같이 역사하실 때와 은혜를 주실 때는 외면하고, 끝난 후에 그제야 알게 됩니다. 그러니 정말 안타
까운 일입니다. 그동안 선생이 없을 때도 집회를 통해 하나님은 행해오셨습니다. 같이 참여해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
다. 은혜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줄 때 받아야 되고, 성령이 역사하실 때 받아야 됩니다.
더 표가 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원하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해야 됩니다. 일하는 대로 하나님은 역사
하시고, 구하고 바라는 대로 더욱 역사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 30-32절을 보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
는 자니라.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인자
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하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을 말합니다. 사람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받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훼방하며
거역하는 것이므로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방해하는 죄를 ‘훼방 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심은 성령에 충만하여 행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했습니다. 하나
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거역한 자가 된 것입니다. 고로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하시며 말씀 끝에 성령 훼방 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이 그 말씀을 하시다가 다른 말씀을 하신 것 같아도 같은 뜻으로서 ‘이와 같이 이러하다.’는
뜻에서 한 말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지혜를 받아 깨달으려고 간구하며 성경을 세밀하게 보아야 주님이 말씀하신 영
의 말씀과 육적인 깊은 말씀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지식의 말씀이며 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말씀으로 신령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
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진리를 말하는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진리가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리는 흠도 점도 모순도 없는, 인간을 구원하게 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진리대로 행해야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되고, 사망에서 나오게 되고, 영생의 세계, 곧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살게 됩니
다.
비진리를 주장하던 유대 종교인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진리를 전하는 예수님과 사도들을 이단의 주관권에 가
두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 제자들을 옥에 가두고, 사도바울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나님도, 선지자들도, 주님도, 제자들도 진리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전한 진리를 잘 알고 전해야 됩니다.
진리는 하나님입니다. 진리를 전하여 받아들인 곳과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새롭게 변화된 세계가 되
고, 새롭게 변화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나 사도시대 때나 사람들은 진리를 불신하고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구원받
을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매일 묵상하고 좋아하며 진리를 사모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사망을
벗어나 빛 가운데 살게 되고,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 가운데 살게 되고, 성령의 감동 속에 살게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차가운 교회, 차가운 자가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는 늘 잘되고 부흥이 됩니다. 목사
님들과 지도자들이 성령에 충만해야 따르는 자들도 은혜를 받고 잘하게 됩니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먹는 음식과 같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매일 음식을 먹지 않는 자와
같습니다. 결국 며칠 못 가서, 몇 주 못 가서 힘이 없어 영이 쓰러지고, 육적으로 삶이 흘러가 쓰러지게 됩니다.
될 수 있으면, 할 수만 있으면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교회는 주님의 전이며, 하나님의 전입니다. 말
씀을 외치는 자의 말을 직접 들어야 더 힘을 받고, 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특별한 사연이 없는 자는 교회에
나가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기본적인 음식만 먹지 말고, 더 먹고 싶으면 간식을 해야 됩니다. 육적인 간식은 잘하는데, 신앙의 간식들은 안 합
니다. 설교 외에도 자신이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고, 알고, 배우고, 실천해야 됩니다. 성경을 안 읽는 자는 자기 신앙
의 무기가 녹이 슨 것으로 꿈에 보일 것입니다. 또 음식을 먹어도 차린 것 없이 별 맛도 없는 것을 먹는 것으로 꿈
에 보일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꼭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성경을 안 읽으면 말씀을 들어도 생소하기만 하고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단상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성경을 이해하고 말씀을 전해야 능력이 있고, 듣는 자들에게 더욱 은혜를 주게 됩니
다.
선생도 성령의 은혜로 지금까지 주님을 믿고, 또 일을 해왔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지식과 지혜의 잠언을 쓰고, 말씀
도 하고, 각종 은사를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은혜 받은 것만 생각하며 간증하고
말하지 말고, 현재도 성령의 은혜를 받고 은혜 가운데 외치고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야 듣는 자도, 자신도 성령의
은혜에 더욱 충만하게 살게 됩니다.
성령의 은혜로 행하지 않으면, 육적인 생각으로 치우쳐 살게 됩니다.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신앙생활을 틀에 박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행해야 뜨겁게 살게 됩니다. 새롭게 변
화하여 살게 됩니다.
늘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라고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먼저, 성령으로 기도하게 해달라고 한 후에 기도하기 바랍니다. 성령에 대해 더욱 알려면 성경을 읽고, 성령이 역사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신경 써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성령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병도 고쳐주고,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믿는 자들이
날로 많아졌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많은 자들을 전도하려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들에게 임하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야 됩니다. 그래야 가슴에 불이 붙어 모두 전도하여 교회가 차고 넘칩니다.
성령이 임하면 주님을 더 깨닫게 되고, 믿음이 굳건해져 하나님을 더 믿게 됩니다. 각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역사는
자신들이 책임을 하여 행해야 됩니다. 각자 받고 느껴야 됩니다. 성령은 성결의 영이시라, 자기에게 임하여 함께 하
시다가도 깨끗한 삶을 살지 않으면 떠나가십니다. 회개하고 다시 잘하겠다고 결심하고 행해야 다시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신입니다. 추상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실체적으로 조건을 세우며, 늘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도록
구체적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성령님의 행하심을 보고 자기가 능력이 있어 행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쓰이는 자에 불과합니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사역을 주어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자를 통해 하나님도 주님도 역사
하시어 병도 낫게 해주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주십니다. 본인이 그만큼 사명을 받았으니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마치, 기계의 전기와 같아서 기계에 전기를 연결하면 소리가 나면서 가동되듯이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임
하면 사람의 마음과 육신에 작용이 일어나 시작하고 움직이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말도, 행실도, 마음도, 손끝도 뜨겁게 되고, 가슴이 뜨겁게 되며, 아픈 곳도 뜨겁게 되고, 주위가 훈
훈할 때가 있고, 감동되고, 잊어버린 것들이 생각나게 되고, 깨달아지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또 어느 곳으
로 가려고 했는데 가기 싫은 마음이 들어 안 가게 되므로 사고 당할 것을 당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불조심하게 되고, 차 조심하게 되고, 계단을 조심해야겠다는 영감이 오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생각나서 기
도해주게 되고, 거리에서 만나게 되어 신앙 이야기를 하여 다시 교회에 오게 하고, 문제를 알게 되어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성령님의 행하심은 하나님의 영이 행하시는 것으로 우연처럼 행한 것 같으나, 은밀히 하나님과 주님이 함께 행하시
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니 이를 깨닫고 자세하고 세밀하게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
이 행하실 때, 깨닫고 같이 행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개성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 사람의 입장에 따라, 이치에 따라, 수천수만 가지로 행하십니
다.
주님은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너희가 그냥은 내 마음도 모르고, 하나님을 제
대로 모르고, 자신을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도 모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기도로써 같이 대화도 하고, 평소
에도 서로 이야기하며 통하고, 시대 일을 하자.”고 하며 성령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성령에 대해서도 각종 이론과 변론을 하며 복잡하게 가르쳐줄 것 없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성령은 하나님
의 영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주님의 역사입니다. 삼위일체의 역사로 같은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주님도 지켜주시고, 전능자 하나님도 지켜주십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듯이 성령,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그동안도 지켜주셨는데, 이제 와서 버리시겠습니까? 농사짓는 주
인이 농사를 다 지어 가는데 곡식들을 버리겠습니까? 과수원 주인이 열매가 익어 가는데 과수원의 열매들을 버리겠
습니까? 자녀를 기르는 부모가 자식들을 잘 길러오다가 중간에 버리고 달아나겠습니까?
옛날보다 더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역사하시며 함께 하니, 우리도 전보다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믿고 순종하며
가야 됩니다. ‘혹시 나 버렸나? 혹시 주님이 나 잊었나? 관심 없나? 성령님의 영이 떠나셨나? 혹시 우리가 잘못되었
나?’하며 의심으로 대하지 말고, 잘못했으면 회개하고 자세히 이야기해야 됩니다. 그러면 혹여 주님이 멀어졌어도
일순간에 가까이 와주십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가까이 해주십니다.
같은 사람들끼리도 심리적으로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상대가 생각하는 것이 직접 이야기해보면 다릅니다. 혹
시 어떤 문제가 있으면 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시며,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생
각과 마음과 긍휼하심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도 주님도 그러하심을 알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은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행해야 맘에 들어 하시고, 답답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것
을 항상 생각하며 살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성령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개성대로 역사하시기를 빕니다. 말씀하셨으니, 기도할 때 더욱 성령이 충
만하도록 간구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아멘! 모두 잘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 만나요. 안녕~
<2009년 2월 1일 주일말씀>
하나님의 뜻
징조와 표적과 계시
타고난 자
본 문 마태복음 26장 25절, 에베소서 1장 3-5절
마태복음 19장 11절, 마태복음 25장 15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새롭게 변화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새롭게 변화하려면,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에 감동되어
새롭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올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잘되고 형통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은 개인이나 가정으로나 민족으로나 세계나 경제의 극심한 가뭄이 들어 모두 걱정도 많고 고생들이 많은 것을
압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살기 힘드니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고 개인, 가정, 민족, 세계, 섭리를 위해 간절
히 기도했습니다. 이에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의 감동으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다.”
사람들은 ‘축복’ 하면 선뜻 물질, 명예, 돈, 잘사는 것, 잘되는 것들만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
각은 너무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니 자신이 생
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새롭게
변화가 됩니다.
사람들은 마치 식물들이 땅에 뿌리를 박고 살듯이 보이는 물질세계에 뿌리를 박고 삽니다. 그러하기에 ‘축복’ 하면
물질, 명예, 돈, 사랑, 환경 등 각종 좋은 것들만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희 생각과 내 생각이
정말 다르다.’고 하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간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다면 하나님의 근본 말씀을 배울 필요도 없고 다시 말씀해 줄 필요
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뜻과 인간들이 생각하는 뜻이 같았다면 그동안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았기에 이 세상은 벌써 이상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곧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영원토록 가는 축복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구원
을 얻고, 영의 몸이 천국에 가서 영원토록 기쁨으로 하나님과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한 것입니다.
‘뜻’이란 무엇인지 빨리 이해하려면 자기 입장과 바꿔서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뜻대로 되기를 원하지
요? 자기 뜻이란, 자기 생각을 말하며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뜻을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
해하면 됩니다.
인간에게 각자 자기 뜻이 있듯이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의 목적, 마음, 계획, 원하시는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게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모든 것을 통찰하시고 세우신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뜻대로 살아야만이 하나님의 축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대로 그 원하시는 대로 사는 자가 곧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나라를 근본으로 하여 사람이 지상에서 메시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 뜻을 펴면서 살다가
그 영이 하늘나라에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개성대로 그 뜻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재능대로 사명대로 타고난 대로 해당되는 뜻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그 뜻의 프로그램에 따라 매일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자라면 그에게 자기 생각과 원하는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자에게 자기를 맡기고 그가 원
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든지 공통적인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메시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고 말씀에 따라 하나님
을 믿고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고 섬기며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말씀은 다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살아 계실 때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이 되기를 원하시며 그 뜻을 이루며 사셨고 그 뜻을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계획을 세워 놓고 자기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고 원합니다. 자기 뜻대로 해 준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실망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시험에 들고 하
나님을 멀리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중심으로 자기 뜻만 이루고 사는 자들입니
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지만 후에 가서는 많은 손해가 오고 많은 고통도 받게 됩니다. 하
나님이 우리를 불꽃같이 살피시며 사랑하시는데 어련히 알아서 해 주시겠습니까? 현재 입에는 쓸지라도 절대 믿고
뜻대로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단것만 좋아하면 당뇨병에 걸리듯이 인생 삶도 그러한 것입니다.
제 마음대로 사는 자는 그 육도 영도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할 자입니다.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
해야 사망의 생각에서 변화를 받아 사망에서 나오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영원한 천국에 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
람들은 자기 뜻과 자기가 원하고 바라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자기
뜻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 때, 아예 자기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노아,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등 하나님이 보낸 중심인물들과 선지자들, 사사들과 사도들은 모두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기에 천국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는 자는 어디를 가도 자기 뜻대로 살 자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뜻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사는 자는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안 되면
늘 슬퍼하며 끝내 그같이 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같은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사는 자들과 자기 원하는 대로만 사는 자들은 정말 문제가 큰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 달라고 해 놓고 어떤 것이 이루어졌을 때 자기 뜻대로 안 되었으면 실망을 합니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사는 자는 자기 홀로 사는 자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자다. 자기 원
하는 대로 사는 자는 자기 홀로 사는 자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과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다.” 주
님은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삶 가운데 잊지 말고 살아야 사망의 길로 가지 않게 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성경의 역사만 보아도 하나님은 원하시는 뜻을 위해 6000년 동안 섭리를 펴 오셨습니다. ‘뜻’은 ‘하
나님의 섭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섭리역사란 하나님의 뜻의 역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그때그때
알지 못하니 주님을 중심하여 살면서 항상 그 뜻대로 살도록 기도하며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중심하고 사는 자는 하나님이 잘해 주셔도 자기 원하는 것과 다르니 항
상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자신의 뜻과 같으니 좋아
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손해가 가도 해를 받아도 고통을 받아도 억울해도 무조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생명길을 가게 됩
니다. 결국 다 잘되게 됩니다. 잠깐의 과정만 보고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보아야 됩니다. 무엇이든지 과정은 힘들기
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는 그제야 이해하고 칭찬하고 좋아합니다. 결국 되어질
것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가 힘들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은 그 뜻대로 역사해
오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행한 자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십자가의 고통을 받고 죽을지언정 자신과 만민과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살
았습니다. 제자들도 그 뜻대로 사니 환난과 핍박과 갖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자기 뜻대로 살면서 신
앙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그 같은 핍박과 고통들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고통도 없고 편하고 매일 기쁘기만 하고 외로움도 쓸쓸함도 없다고만 생각하면 이는 잘못된 생각
입니다. 성경역사를 보면 중심인물들도 선지자들도 사사들도 사도들도 그 시대를 따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록 더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영원토록 받고 사는 길로 갔습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영원한 상속이었습니다.
더 높은 산에 오를수록 힘들고 더 많은 공적을 쌓을수록 더 수고가 있듯이 영원한 것을 얻으려면 더 수고하고 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구원자이신 주님도 그같이 살다가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그같이 살다가 결국 하늘나라를 상속받아 살고 있습니다.
2000년 동안 주님을 좇아 살면서 하나님과 주님의 뜻대로 살아 구원받은 자들은 다 이같이 했습니다. 현재의 고난
과 고통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난으로 인한 영광입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판단할 능력이 없으며 모든 사람들을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고로 배워야 됩니다. 뜻을 모
르기에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합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은 판
단을 꼭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그 상황과 처지를 겪어 본 자가 아니면 모릅니다. 겪어 보고 배운 자만이 압니다.
“이러쿵저러쿵 말하면서 어떤 일이든지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이 큰 죄다. 그 죗값은 그에게로 간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또 영적으로 육적으로 꿰뚫어 보시는 주님은 “너희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다만, 내게 맡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각자 말씀을 중심하여 더욱 깨닫고 우리
에게 향한 주님의 뜻을 알고 늘 살아야 되겠습니다. 뜻대로 사는 그 속에 하나님이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귀하고 중한지 사람들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 명예, 돈, 권세, 땅과 집, 보석
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도 귀하고 큰 것입니다.
“뜻대로 행치 않았으면 궁궐을 지어 놓았어도 버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뜻대로 한 것은 초가집이라도 큰 뜻
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인 섭리가 큰 것을 알기 바랍니다. 소돔 땅은 그 시대 최고 발달된 도시였지만 하나님
의 뜻이 아니었기에 심판하여 없애 버리셨습니다. 뜻이 있는 세 명만 피하여 살게 했습니다.
식물처럼 땅에 붙어사는 사람들은 땅의 것만 좋아합니다. 뿌리는 땅에 박고 머리는 하늘로 솟아 열매를 열듯 하늘의
뜻에 정신도 행실도 뿌리를 박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살면 그 영혼은 뿌리 뽑힌 과일나무와 같습니
다.
모두 노트에 멋있게 그리고 크게‘뜻’자를 써 보세요. 모두 빠짐없이 다 써 보세요.
‘성경’을 한마디로 축소시켜 쓴다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 한마디 속에 구원이 들어 있고 천
국이 들어 있고 진정한 사랑이 들어 있고 절대적 순종이 들어 있습니다. 긍휼함과 위함과 용서, 기도와 감사, 기쁨
과 희망과 승리, 힘과 능력, 표적과 징조, 건강과 소원, 성공과 꿈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얻기 위해 수고와
노력을 하며 환난과 핍박, 억울함과 고난, 굶주림과 가난, 아픔과 고통들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참으로 귀하고 중하니 하나님의 뜻을 마치 사랑하는 애인처럼 주님처럼 큰 보물덩어리처럼 생각하고
끌어안고 살아가야 됩니다. 사탄과 마귀를 물리치고 오직 주와 동행하며 살아가야 됩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그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자는 뜻있는 곳
에 가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며 다윗이 찬양했듯이 우리를 뜻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늘 찬양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쉬운 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멀더라도 뜻있는 곳으로 가야 됩니다. 아브라함
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노아도 모두 거쳐 갔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 왕도 에스더도 이사야, 다니
엘, 에스겔 선지자도 모두 험하지만 뜻길을 통과하고 갔습니다.
하나님도 뜻있는 곳을 꼭 거쳐 가십니다. 주님이 세상에서 복음을 펴실 때도 지금도 뜻있는 곳과 뜻있는 사람들에게
거쳐 가시며 역사하십니다. 뜻은 마치 설계도와 같아서 뜻있는 곳에 각종 징조가 일어나고 각종 역사가 일어나게 됩
니다.
주님은 자신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어떤 고통이 있어도 담대히 하나님의 뜻길을 가셨고, “너희도
힘들지만 이 생명의 뜻길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뜻길은 하늘나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대적인 구원의 길이
며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로 가라고 주님은 성령으로 감동시켜 말씀하시고 단상의 말씀으로 외쳐 주시고 사
람들로 하여금 수시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뜻하신 바, 뜻길로 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
시는 영원히 누릴 것을 받게 되고 그동안 역사해 오신 하나님과 주님의 수고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100배
1000배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받아 세상에서 형통하고 천국에 가서 사는 데까지 뜻을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인지 다시 확인하고 정확히 보고 분별하고 해야 됩니다. 뜻이 아닌데 뜻인 줄 알고 행
하여 물질 손해도 많이 있었음을 알아야 됩니다. 기도하고 확실한 응답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됩니다.
뜻을 알았으니 이제 다른 말씀을 하겠습니다.
주님은 만물을 보이시고 사람들을 통해 보이시며 우리와 대화하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
들에게 직접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씀하시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전하여 알게
하십니다.
일일이 말씀하지 않으시고 만물을 통해 또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좋고 나쁜 것들을 보게 하시며 그로 인하여 하나
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화재나 참사를 당한 것이나 각종 좋고 나쁜 징조들을 여러 번씩 거듭 보여 주십니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치고 죽은 자들을 보게 함으로 ‘잘못하면 너도 이와 같이 이렇게 된다.’고 누구든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한 사건을 가지고 각자 자기 행위에 따라 깨닫도록 계시하시며 ‘이를 교훈 삼고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주
님은 그 원하는 것을 분명히 보여 깨닫게 하시며 그 뜻을 전달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구경하는 데서 끝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좋고 나쁜 것을 보면 깨
닫고 충격을 받으면서 며칠 동안은 긴장하고 조심도 하고 열심히 하기도 하다가 며칠이 지나면 곧 긴장을 풀고 깨
우쳐 준 것을 지키지 않는다. 고로 사고를 당하고 좋은 것을 얻을 기회를 놓치고 혹은 죽기도 하고 평생 고생하기도
하고 몇 년씩 고통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좋은 것을 깨달았으면 끝까지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너 이같이 하라.” 하고 말씀하시면 우리가 억지로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깨달아
자원하여 스스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주님이 영의 몸이라고 하지만 지구촌에 사는 68억의 인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매일 빠짐없이 낱낱이 다
말해 주려면 어떻게 관리하시겠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같이 복잡한 방법으로 관리하시겠어요? 주님은 전지전능
하신 방법으로 인생들을 관리하십니다. 여러 가지 전할 것들을 징조로 보여 주시고 지구촌의 사람들이 순간 모두 깨
닫도록 계시하며 말씀하십니다.
계시인데 남이 당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며 관심 없이 본다면 자기가 사고를 당할 때 피하지를 못합니다. 차를 타면
차 조심, 불을 다룰 때는 불조심, 길을 갈 때는 길 조심 하며 자기가 행하는 대로 극히 조심해야 됩니다. “각자 자
기 일은 자기가 조심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촌에 일어나는 일들을 뉴스를 통해 일순간 사람들의 눈에 직접 보이시며 각자에게 민족들에게 책임자들에게 깨
닫게 해 주고 계십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깨닫게 해 주시며 주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전달하십니다. 어떤
징조나 뉴스로 보이지 않으실 때는 양심이나 마음으로 직접 깨닫도록 성령으로 순간 역사하십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보여 주시며 깨닫게 함으로 그에 해당되는 자에게 그때마다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은‘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계시하십니다. 천둥 벼락을 치면서 일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십
니다. 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이나 중심인물들에게도 만물을 보이시고 징조들을 직접 보이시며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외치라.”고 했습니다. 모두 에스겔서를 읽어 보아요.
주님도 설교하실 때 만물을 들어 직접 보이며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같은 이치로 말씀하
시고 깨우쳐 주시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동안 모두 신앙생활을 하든지 안 하든지 만물이나 사람들을 통해 또 말씀을 통해 알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과 주님을 믿고 살아도 자기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그 말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일을 놓고 한 건을 꼭 깨닫게 해 주기 위해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씩 표적을 보여 깨닫게 해 주십
니다. 그런데 깨닫고도 귀히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너는 이것을 하라.”고 하지 않으십
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선물도 헌금도 강제로 하지 않고 고맙고 감사해서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제 깨달았으니 모든 일을 할 때 자원
하여 스스로 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길을 제대로 온전하게 가게 됩니다.
사랑도 의무적인 사랑은 죽은 사랑입니다. 사명도 의무적으로 하면 억지가 됩니다. ‘스스로 하는 것이란 순리를 말
하며 자기 책임을 다하는 선한 행실이다.’라고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억지로 하거나 누가 시켜서 하면 오래 못
갑니다. 스스로 하는 자는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자입니다. 자의로 하는 자는 영원까지 갑니다.
반드시 만물로 사람들로 보여 주는 표적을 통해 말씀하여 깨우쳐 주시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고 주님이 직접 해 주
신 말씀이니 알고 근신하고 생명시하여 지켜야 됩니다. 이 모든 계시는 믿는 자에서부터 안 믿는 자들에게 이르기까
지 뉴스를 통해 만물을 통해 그때그때 표적과 사건을 보여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배우고 깨달아 알면 늘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도 주님도 표적을 보이시며 깨닫도록 전달하셨는데 우리가 행치 않으면 표적을 보아도 관심이 없어서 못 깨
닫고 그냥 지나가다가 일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말씀을 들었으니 이제 이와 같은 것들을 더 섬세히 보고 듣고 깨달
아야 됩니다. 또 주님께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옆의 사람들도 깨우쳐 줘야 됩니다.
이제 이 모든 말씀을 깨달을 만큼 했습니다. 말씀한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생활 속에 항상 실천하며 더 연구하고
더 공부해야 됩니다. 설교만 듣고 그냥 지나가면 생각했을 때만 도움이 되고 맙니다. 마음에서 잊으면 실천하지 못
합니다. 늘 생각나도록 적어 가지고 다니며 매일 외우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명까지 희생시키시며 ‘많은 사
람들이 깨닫고 죽지 않게 행하라.’고 하신 뜻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제 또 다른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어느 날, 주님은 나의 마음을 아시고 내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스스로 이같이 된 것이 아니다. 네 스스로 원해서 이 같은 길을 가느냐. 이는 자의로 하는 일이 아니다. 네가
원해서 여기까지 왔느냐.”
지금부터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모두 깨닫도록 구체적으로 풀어서 말씀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 속에서부터 남자로 여자로 아예 타고난다. 이와 같이 인생들도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다. 부모의
성격도 형상도 타고나듯이, 사람의 재능도 하나님의 모든 예정함도 타고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만물들도, 산도, 강도, 냇물도, 바다도, 지구도, 해와 달과 별들도 애초부터 타고난다. 어떤
사명자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 처음부터 예정되어 태어난다. 선지자를 원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만들 수 있겠느냐. 구
세주가 필요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만들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옛날부터 뜻을 정하시고 구세주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이미 메시아 예수님을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수천 년 전부터 메시아를 보낸다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이 태어나기 약 700년 전부터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아가 온다.’고 예언했습니다(사 11장). 결국 메시아는 이새의
자손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메시아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예정되어 메시아로 타고났습니다.
선지자들도, 사사들도, 사도들도, 중심인물들도, 왕들도, 영웅열사들도 모두 그 소질과 재능과 사명들을 타고났습니
다. 타고나서, 개발하고 노력하여 만들어 행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타고났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타고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노력하여 만든 것 같
고,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할 것입니다. 메시아로 아예 타고난 주님과 같이 같은 이치로 모두 타고납니다.
바울 선생도 이 깊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자기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태초로부터 예정했음을 깨닫고 감사
하며 고통도 기뻐함으로 받았습니다. 이 예정에 대해 성경에 확실히 말씀했습니다.
(갈 1:15)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사람이 노력하면 다 된다고 말하며 큰소리를 칩니다. 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이 절대적이라면 모두
원하고 열심히 하는데 왜 모두 명예를 얻지 못하고 왜 모두 재벌이 되지 못하며 왜 모두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것
일까요? 노력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부자가 된 사람보다 더 많이 일을 했어도 부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만일, 모두 자기 원하는 대로 되도록 그냥 놔두었으면 다 주권자가 되어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
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예정해 놓고 각각 재능을 주어 재능대로 만족하면서 살게 했습니다. 아무
리 노력해도 타고난 자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아무리 수고해도 그 사람을 못 따라가겠지요?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은 각각 피부색과 성격과 얼굴과 몸의 생김새를 타고납니다. 만든다고 되겠습니까? 각각 개
성미가 있습니다. 저마다 타고나는 것이 각각입니다. 하나님이 신비하고 오묘하게 각자의 육과 영에게 입력시켜 세
상에 내보냈습니다. 질서 있게 살고, 개성대로 즐거워하며 자기만족을 누리면서 살라고 이같이 뜻을 정하셨습니다.
사람이 타고난 것을 노력하여 이루어지게 한 후에 노력하면 다 된다고 합니다. 에디슨도 인간의 노력 99%라고 하
였지만 하나님께로 타고나지 않았으면 99% 노력했어도 발명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타고나고 예정된 자가 99% 노
력하였기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99% 노력한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가 여자 구조를 타고나지도 않았는
데 임신하여 배가 불룩해서 다닐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여자로 타고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셨고, 지금도 수시로 말씀하십니다.
(욥 38: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이 저마다 노력하면 결국 타고난 것이 개발되어 그로 삶을 찾아 성공하게 되고, 그 길을 가게 됩니다. 타고나서
노력하여 된 것인데,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바가 아니면 못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
다. 또 “고통의 길도, 역경의 길도 사명과 함께 타고나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예정되어서 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력으로 못 살고 마음대로 안 된다고 말들 하면서 살지요? 타고난 자는 하나님이 더욱 함께하여 하게 됩니다. 민
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타고나야 그 재능으로 소질로 정신으로 하게 됩니다. 서로 타고난 것을 가지고 개인, 가정,
민족, 세계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자기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기라.”고 했습니다.
각자 타고난 재능들이 있습니다. 너무 무리하게 사명을 맡지 말고 재능대로 해야 됩니다. 목회가 재능인지 직장생활
이 재능인지 강사가 재능인지 전도하는 것이 재능인지 행정 보는 것이 재능인지 집회 다니는 것이 재능인지 충성이
재능인지 정치하는 것이 재능인지 사업하는 것이 재능인지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하고 기도하여 새롭게 변화받기를
축원합니다.
타고난 자, 예정된 자는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달리 봅니다. 생각도 행함도 다릅니다. 타고났는데 책임을 못하면 제
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재능을 가지고 타고났는지 궁금하여 사주팔자를 보고 싶고 신앙상태가 심하게 안 좋을 때는 점이
라도 봐서 은근히 알고 싶고 자기에게 무엇이 예정되어 태어났는지 정말 답답하고 궁금할 것입니다. 그래서 손바닥
을 들여다보며 손금도 보고, 어떤 때는 ‘왜 나는 별것도 없지?’ 하기도 하지요? 또 어떤 때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쳐다보며 관상을 볼 때도 있지요?
‘새해가 되었는데 올해 운수가 어떨까? 은근히 꿈으로 오려나? 누가 말해 주는 사람이 없을까? 재미로 살짝 사주팔
자 한번 볼까?’ 하면서 정말 보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사주팔자 보면서 조잡스럽게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기 바랍니다. 그래야 크게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물으라. 내가 너희를 창조하고, 예정하고, 재능들을 주어 세상에 나게
하였으니 내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물에 대해서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내게 물으라.” 했습니다.
기도하며 물어보세요. 하지만 은밀한 것들은 하나님도 예수님도 숨기십니다. 지금은 타고난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들
으며 깨닫고 있습니다. 먼 훗날에 될 일을 미리 알아도 안 되고, 만일 모르더라도 하나님은 그 일을 하도록 은밀히
여건을 틀어 인도해 주십니다.
인간의 각 지체들이 온몸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듯이 하나님은 인간이 각 지체들처럼 예정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게 했습니다. 한 몸을 위해 각 지체로 작고 크게 예정되어 태 속에서부터 태어났습니다. 어떤 자는 눈에
확 띄게 눈, 코, 입, 귀와 같이 태어나고 어떤 자는 머리같이 태어나고 어떤 자는 손같이 어떤 자는 발같이 태어나
고 어떤 자는 살같이 부드럽게 태어나고 어떤 자는 뼈같이 단단하게 태어나고 어떤 자는 뇌같이 태어나고 어떤 자
는 속에 있는 지체처럼 사명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모두 다 귀한 것입니다. 모든 지체 중에 작은 손가락 하나만 없어도 그 사람은 불구 취급을 받습니
다. 그러니 지체 중에 크고 작은 어느 지체를 막론하고 다 귀합니다. 사명이 작다, 재능이 작다, 작은 예정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작게 보면 안 됩니다. 발이 머리처럼 커도 안 되고 손가락이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를 모
르고 ‘저 사람이 하는 일이 작다. 혹은 크다.’ 하면 이치에 어두운 자입니다.
가정으로나 교회로 볼 때나 종교적으로 볼 때나 민족적으로 볼 때나 세계적으로 볼 때도 서로 존중히 여기고 위해
주며 그 지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도와주면서 상호 존재하며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모든 인생들에게 사
명을 주고 예정하여 재능들을 주어서 세상에 보내 놓고 원하시는 일이고 주님도 이같이 원하시기에 그에 따라 도우
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인력으로 못 하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며 주 안에서 예정을 입은 대로 그 재능대로 해 달라고 주님의 이름
으로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바랍니다.
일찍부터 노력하여 개발하지도 않고, ‘나는 특별히 타고난 것이 없다.’고 불만 불평하는 자도 많습니다. 인간이 타고
난 것은 각자 개성대로 노력을 해야 됩니다. 타고나고 예정된 것을 개발해야 무엇을 타고났는지 알게 되고 타고난
것을 가지고 살아야 개성대로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뛰어나게 눈에 띄게 재능을 개발하여 행하는 자들만 쳐다보고 부러워 말고 자기에게도 재능을 주고 예정해 놓으셨
으니 그것이 자기에게 맞고 기쁘고 만족한 것을 깨닫고 노력하고 개발하여 살기를 바랍니다. 예정 속에 노력, 타고
난 것을 개발하고 노력해야 함을 잊지 말고 이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구약말씀 속에 신약시대가 예언된 것처럼 구약 같은 육신에게 자기 삶을 표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로 육
적 형상을 보고도 그의 삶과 마음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너무 왜곡되게 사용하고 말합니다.
고통 받고, 환난 받고, 자기 뜻대로 안 되었다고 울지 말고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늘의 뜻대로 가는 삶입니다.
다 타고난 길, 예정된 길 가느라 그 같은 고통의 길을 가게 되고, 쓸쓸하고 외로운 길을 가게 되고, 사망길도 가게
되고,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웃고 울며 간다고 생각하고 오직 주님 모시고 사랑하며 긍지와 자부심과 희망으로 살기
를 바랍니다. 끝에 가서는 충격 받고 좋아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주팔자 안 좋다, 별 볼일 없다, 손금도 별로다, 태몽도 별로 안 좋다 해도 신경 쓰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
님과 주님 믿고 살면 구원받고 영원히 잘되는데 그보다 더 좋은 사주팔자가 어디 있습니까? 손이나, 얼굴이나, 발바
닥에 예정이 다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마음에도 새겨 있고, 영에도 새겨 있습니다. “저는 사주팔자가 안 좋으니 기
도해 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 운을 타고난 자는 영원한 운을 타고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천운을 타고난 자들입니다. 하나
님을 섬기는 운을 타고난 것이 작은 일입니까? 한 주권자를 모시고 섬겨도 대운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운을 타고났으니 그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귀한 것인 줄 모르는 자는 땅의 식물처럼 땅 귀한 것만 알고 사는 자들입니다.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을 사랑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얼마나 대운을 타고난 것인지 하늘나라에 가 보기 전에는
근본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도 일부밖에 모릅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사랑해 주는 것만 큰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이 있는데
세상에서 허무하게 끝나고 썩어 없어지는 육체만 사용하고 끝나렵니까? 영원히 사랑하며 살도록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며 위대하게 써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랑의 기대가 어긋나 낙심하도록 주님은 틀어 버리기도 하십니
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랑하며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은혜 가운데 순종하며 성령님의 감동 속에 사는 자는 사주팔자
가 최고 좋은 자입니다. 이는 예정된 것이며 타고난 재능입니다. 고로 실천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타고나게 한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야 운이 따릅니다. 그동안 섭리사에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들
과 예정한 것들을 위해 청춘이 늙도록 개발하고 실천하며 살아왔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정말 수고 많았고 고생들
도 많았습니다. 정말 행복한 자들입니다. 얼마나 축복입니까?
과거에 눈앞이 캄캄할 때 새벽별이 비추이며 아침이 오고 낮이 왔습니다. 앞이 캄캄해도 기도하며 낙심 말아요. 하
나님께 말하고 형제들에게도 말해요.
타고난 자는 다른 사람이 노력해도 못 따랍니다. 키도, 몸도, 소질도, 재능도 예정된 것이니 못 따라가고 할 수도 없
습니다. 저마다 타고난 것들은 하나님과 주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며 황금 보따리입니다. 그러니 새롭게 생각하고 하
나님과 주님을 위해 더 부지런히 행하여 새롭게 변화받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사랑과 은혜와 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2월 4일 수요말씀>
타고난 자만 할 수 있다
그 재능대로 맡겨라
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로다
본 문 마태복음 19장 11-12절
마태복음 25장 14-15절
요한복음 7장 28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마태복음 19장 11-12절을 보면, 주님은 “아무나 못 하고 타고나야 하늘을 위해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부
모로부터 타고나야 하고 둘째,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 스스로 본인이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고자란, 수절(守節)하는 자로 주님처럼 바울처럼 사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것을 말하며, 하늘을 위해
가정을 꾸리지 않고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듣고 누구든지 자기 행위와 사명에 따라 교훈도 삼고, 계시도 받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여도 그 이야기를 통해 ‘너도 깨닫고 이같이 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온 세상 이야기
를 하여도 각자에게 해당되지 않으면 말씀해 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각각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대로 깨우쳐 주십니다. 생
각나게 해 주십니다. 깨닫고 생각나게 해 주었으면 행하는 것은 자신이 해야 됩니다. 힘에 겨울 때는 간구하면 하나
님도 도와주시고 성령님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깨닫기 어려우니 자세히 설명해 주고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말해 줘야 이해가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말과 전혀 달라서 꼭 배우고 깨달아야 됩니다. 얼마나 귀한지, 인간이 10년 동안 말한 것
보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더 귀합니다.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주지도 않고, 들어도 실천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최고의 학문이
고 지식이며 최고의 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행하시는 일과, 어떻게 섭리해 가시는지 말씀하십니다. 은
밀한 것은 ‘갑’ 이야기를 두고 ‘을’ 이야기만 해 줍니다. 그리고 “귀 있는 자는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어느 때는 토끼 이야기를 하면서 사슴을 깨달으라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왜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시지 않느냐고
하면, 주님은 “하나님과 주님에 대하여 신경 쓰고 사랑하며 진실하게 사는 자들은 깨닫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듣고 깨닫고 알면 안 될 자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기 전에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먼저 깨닫고 들으라고 이같이 말씀했습니다.
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대로 말하면 30초나 1분이면 끝납니다. 그러나 그같이 한마디만 하면 모두 깨닫
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절입니다. 말씀하신 것을 말할 테니 들어 봐요.
『인간은 타고난다.』 총 일곱 자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1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토대로 대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깨달으려면 간단한 잠언으로 하여도 80개 이상이 나옵니다. 설교로 하면 2~3시
간을 해야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해당되는 말을 해야 되고, 성경에 있는 말씀과 하나님이 해 오신 일을
말해야 되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다 말해야 되고, 현실에 그같이 일어난 일과 그동안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 줘야
이해가 됩니다.
지식이 있어 여러 가지를 알아야 모르는 자에게 잘 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해 주려면 한참 걸리는 것입니
다. 믿습니까? 그러니 지루하다 하지 말고 잘 들어요. 별것도 아닌 책 한 권도 읽으려면 날을 새워야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자기의 앞날을 알고, 자기 소질과 재능과 관상과 예정까지도 알고, 자기 사명
을 아는 데 거울이 됩니다. 나침반이 되고, 저울 역할을 해 주고, 컴퓨터 역할을 해 줍니다.
『인간은 타고난다.』 이 한마디 하나님의 말씀은 한 보따리입니다. 한마디가 아니고 한 보따리입니다. 주님이 말씀
하시기를 “한마디지만 너희에게는 한 보따리다. 풀어 보면 한마디 속에 수십 가지, 수백 가지가 들어 있다.”고 했습
니다.
<도 표>
인간의 천 마디 말을 하나님은 한마디로 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간단하게 한마디로 합니다. 세상은 복잡하게 합니다.
많이 배운 자는 문법을 써서 간단하게 합니다. 그러나 듣는 자가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필요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삽니다. 흔히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주님도 꼭 필요한 말만 하십니다. 한 시간 기도한 후에 말하면 한마디로 말씀하십니다. “걱정 마.” 하시든지, “알았
어.” 하시든지, “낙심 말고 기도 열심히 해.” 하시든지, 혹은 “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꼭 필요한 한마
디만 하십니다. 어느 때는 “사랑한다.”, “자세히 보아라.”, “꼭 해야 된다.”, “나 네 옆에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나오니 읽어 보기 바랍니다.
『사람은 타고난다.』 이 말씀의 보따리를 끌러서 잠언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보따리가 있습니다. 『징조와
계시다.』 이는 하나님도 주님도 만물이나 사람을 통해 징조를 보이며 계시하시고 말씀을 깨우쳐 준다는 말씀입니
다. 이 두 보따리를 끌러서 잠언으로 말씀하겠습니다.
1. 인생은 남자로 여자로 타고나듯이 타고난다.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하여 되지만, 이는 남자가 여자의 일을 하고
여자가 남자의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2. 사람이 하늘로부터나 땅으로부터 타고나서 저마다 노력하고 개발하여 그같이 된 것이다. 그러나 타고나지도 않았
는데 노력하여 그같이 되었다고 한다.
3. 무엇을 타고났는지, 살다 보면 자기 소질과 재능과 사명들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이끌어 행하신다. 하늘을 위해
홀로 사는 것도 타고나야 하게 된다. 억지로 하지도 말고 시키지도 말아라.
4. 늙기 전에, 늦기 전에 자기가 타고난 것을 부지런히 개발하고 노력하며 저마다 그 일을 하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고 산다.
5. 타고난 것이 자기에게 복이다.
6. 만물들도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돌로, 흙으로, 나무로, 동물로, 식물로 타고나고 물과 불로, 사람으로, 하늘로,
땅으로 처음부터 타고난다.
7. 산을 바다로 만들기 힘들고, 지구를 태양으로 만들 수도 없고 필요도 없으니 그대로 개성대로 더 개발하여 쓰는
것이다.
8. 냇물을 강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강물을 냇물로도 만들 수 없다. 그 개성대로 아름답게 창조하였으니 내를
좋아하면 냇가로 이사하여 살고, 강을 좋아하면 강가로 가서 사는 것이다.
9. 명승지도, 아름다운 산도, 좋은 자리도 태초부터 태어난 것이다. 이를 주인들이 개발하기도 하여 모두를 위해 쓰
게 하는 것이다.
10. 사람도 저마다 하늘의 사명과 땅의 사명을 가지고 과학·예술·종교·정치·학문적 인물들로 각각 태어난다.
11.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12. 인간은 저마다 각 지체와 같이 타고났기에 다 귀하다. 어느 지체도 자기만이 최고라고 할 수 없다.
13. 하나님은 타고난 자를 불러서 역사를 시작하신다.
14. 아브라함, 모세, 다윗은 아예 타고났다. 이미 내정(內定)하시어 그 환경에서 기르고 만들어서 때가 되니 역사를
시작하셨다. 선지자들과 사사들과 중심인물들도 마찬가지다.
15. 앞날을 알기 위해 인간이 선지자를 만들 수 없다. 구원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인간이 메시아를 만들 수 없는 것
이다. 이미 태초부터 예정해 놓으셨다.
16. 만일 인간이 노력하고 원한다고 해서 다 된다면 모두 재벌가가 되고 명예자와 권력자가 되었을 것이다.
17.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못 하게 해 놓으셨다. 타고난 자 안에서 살게 하셨다.
18. 자기가 타고난 대로 해야 체질에 맞고, 좋고, 만족하고, 온 세상 지체의 형상이 맞아 전체가 어우러져 조화로운
세계가 된다.
19. 타고나서 노력하여 행하는 자만 부러워 쳐다보며 살지 말고, 자기도 지체 중에 한 지체로 태어나듯 타고났으니
자기 것에 만족하며 살아라.
20. “손발이 얼마나 피곤한지 아느냐. 쑤시고 아프면서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온몸을 위해 살아야 한다. 발은
온몸을 싣고 다니는 역할을 평생 해 줘야 된다. 손은 온몸을 씻어 주고, 평생 일하면서 먹여 주며 헤쳐 나가야 되
고, 원하는 것을 만들어 줘야 되는 큰 사명자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겨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
셨다. 지체도 그러하고 사람들도 그러하다.
21. 큰 자는 작은 자가 되고 싶고, 작은 자는 큰 자가 되고 싶어 안달들을 한다.
22. 큰 자가 되면 작은 자들을 위해 울며 살아야 되고, 자기 할 일 때문에 지쳐서 울고 산다.
23. 모세는 하나님께 “왜 이 백성들이 할 일을 내가 해야 됩니까? 내가 낳았습니까? 나는 못합니다.” 하며 도망치
려 했다. 하지만 타고났으니 하나님은 그에게 힘을 주시면서 “나와 같이 애굽에도 가고 바로 왕에게 가자. 가서 내
백성들을 빼내 오자. 네 백성이 아니라 내 백성이다.”라고 하셨다.
25. 타고난 자는 뛰어나서 날고 긴다.
26. 타고난 자를 쳐다보아라. 자세히 보아라. 너무나도 기발하다. 잘하기도 한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박수 쳐
주고 칭찬도 해 주어라.
27. 예수님이 얼마나 잘하시고 잘하셨는지 그 업적을 보아라. 건성으로 보고 행치 말고 자세히 좀 보아라. 무슨 말
씀을 어느 단계에서 하셨는지 생각 좀 깊이 하고 성경을 읽어 보아라.
28. 타고난 자를 따라가려고 눈, 코, 입을 고쳐 대고 온몸을 고쳐 댄다.
29. 자연석을 가지고 인조석으로 만들면 그 가치가 하락한다. 자연히 놓고 본다면 자연히 좋아한다.
30. 강변 돌 아래쪽을 위쪽으로 엎어 놓으면 아래쪽도 반질반질하게 되듯이, 사람도 운동하고 만들면 온 지체가 아
름답고 멋있게 자연스럽게 타고난 듯이 만들어진다.
31. 타고난 자는 어디 가도 타고난 재능대로 살아간다. 주님도 타고난 자라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32. 자기는 타고난 것이 없다고 하나님과 부모를 원망하지 말아라. 다 타고났으니 개발하고, 또 자기가 이미 행하고
산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여라.
33. 타고난 자, 사명자가 그 위치에서 해야 잘되고 형통한다.
34. 타고나고 예정되지도 않았는데 욕심 부려서 일을 하면 힘들고, 수고만큼 얻
는 것도 없다. 주님도 타고난 재능대로 맡기라고 말씀하셨다.
35. 어떤 자는 남자를 여자로 개발하여 쓰고, 또 어떤 자는 여자를 남자로 개발하여 쓴다. 이와 같이 타고나지도 않
고 예정에도 없는 것을 개발하며 인생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남자가 아이를 잉태할 수 없듯이, 한계에 이를 때는 못
하고 말게 된다.
36. 타고난 자는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고, 그만한 생각과 능력이 있기에 하게 된다.
37. 타고난 자도 어렸을 때는 크게 못 한다. 때가 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찍부터 개발하고 노력해야
된다. 못한다고 구박 말아라.
38. 인생 억지로 살지 말고 타고난 대로 살아라.
39. 사람이 타고난 자기 것도 다 먹지 못하면서 남의 것까지 가져다 먹으면서 자기 타고난 것을 썩혀 버린다.
40. 사람들은 타고난 것인지, 스스로 개발한 것인지 잘 모른다.
41. 타고난 자는 재능도 모양도 다 갖춰졌으니 이런 자를 찾아서 더욱 개발하여 쓰도록 하여라. 타고난 자라도 커야
지 하니 먼저 하는 자가 무시 말아라.
42. 타고난 것을 예정으로, 혹은 사명으로 보는 것이다.
43. 타고난 소질과 재능대로 쓰지 않고 달리 쓰면 만족하지 못하여 제 갈 길로 간다.
44. 저마다 타고났는데 자기 타고난 것만 시키면서 쓰면 싫어한다. 타고난 대로 각각 일을 시키면서 서로 한 덩어리
가 되어서 하면 잘한다.
45. 타고난 자를 주인들이 찾고 다닌다. 써먹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보시고 사람들을 보내 주어 귀히
쓰게 하신다. 그때까지 준비하고 예비하여라.
46. 재능을 타고나도 길이 없으면 못 가니, 길을 닦으려고 타고난 자는 놀지 말고 어서 길을 닦아라.
47. 어떤 사명으로 태어났는지 기도하여라. 하나님과 주님께 물어보아라. 쓰려고 말씀해 주시고 은밀하게 이끌어 주
기도 하신다.
48. 자기가 타고나고 예정된 사명이나 잘하여라. 고달프고 힘들게 남이 타고나서 하는 것까지 하지 말아라.
49. 외모 보고 무시하고 없이 여기지 말아라. 하늘로부터 타고나서 그가 해야 너에게도 유익이 되니 칭찬하여 도와
주어라.
50. 어떤 자는 잘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 꼴을 못 보고 경계하며 같이 일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지한 연고다. 이런
자는 주님이 다 아시고, 준 것 마저 빼앗아 가신다. 이 잠언을 깨닫고서 회개하고 행하여라.
51. 섭리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고 주님이 감독자이시니, 제 것같이 하지 말고 타고난 자를 앞세우고 해야 책망받지
않는다.
52. 타고난 자는 사람들이 우러러본다고 해서 교만하게 되면 주께서 낮추신다.
53. 타고난 자, 사명자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으면 운명이 바뀌기도 하고, 책망도 받고, 고통도 주신다.
54. 타고난 자는 그것에 타고나지 않은 자를 위해 서로 살아 주어야 서로 잘되고 기쁘고 만족하며, 하나님도 주님도
좋아하시고 보람 되게 여기신다.
55. 타고난 자는 그것에 타고나지 않은 자를 위해 살도록 하였으니 시기도 질투도 하지 말고, 돕고 함께 해야 자기
유익이 많다.
56. 타고난 자, 예언된 자, 사명자, 그가 행해야 속 시원하게 한다.
57. 월명동도 지역적으로 타고나고 예정되었기에 개발하니 빛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어느 곳보다 귀히 쓰
여지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58. 마귀로 귀신으로 타고난 것도 아니고 예정되지도 않았는데 왜 마귀와 귀신들이 하는 일을 하고 미움 받느냐. 마
귀 짓은 마귀나 하는 것이다.
59. 하늘로부터 타고나서 그같이 했는데 사람들은 왜 자기 식으로만 하느냐고 꾸짖고, 막고, 비판하고, 악평하고, 무
시하고, 배척한다. 하나님의 일을 거슬러서 심판을 받을 자들이다.
60. 타고난 자, 예정된 자, 사명 받은 자끼리 서로 이해해 주고 도우며 살아야 된다.
61. 타고난 자, 사명 받은 자는 애굽의 느고 왕처럼 하나님의 명을 받고 행한다. 그러므로 이를 거슬러 행하면 요시
야 왕처럼 생명의 해를 받아 목숨만 잃게 된다.
62. 타고나고 사명 받고 예정된 자가 자기 위치에서 일하지 않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은 마치 밥그릇이 화장실에 있
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는 자가 제자리에 갖다 놓아 제대로 쓰여지게 해야 된다.
63. 어떤 자는 돌로 태어났는데 모래가 없다고 다 부수어 모래로 사용한다. 모래가 필요하면 바닷가의 모래를 가져
다가 써야지, 돌을 깨서 모래로 사용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 돌도 버리고 미련한 짓을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
버리지 말고 잘 파악하여 개발하여 써야 된다. 그 방면에 타고난 주인이 개발해야 된다.
64. 자기를 개발해 달라고 아무에게나 맡기지 말아라. 사람들은 자기 하는 일에 억지로 자기 좋아하는 대로만 개발
해 주려고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기가 깨닫고 개발해야 된다. 또 그것에 타고난 자에게 맡겨야 된다.
65. 말씀도 시로, 잠언으로, 설교로, 혹은 노래로 타고나 사명을 한다. 분별하여 전해 줘야 빛이 난다. 또 보고 듣는
자도 감동받고 은혜가 충만하게 된다.
66. 사람들은 자연도 아름답게 타고난 것이 좋다며 구경 다닌다.
67. 사람도 타고나고 예정되고 사명 받은 자가 뛰어나게 보이고 감동도 주는 것이다. 주님은 “아버지여, 원하는 대
로 예정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셨다.
68. 저마다 그 몸과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이 어떤 재능을 주고 타고나게 하여 예정하여서 사명을 주셨는지 자세히
보고 깨닫고 알아야 된다.
69. 혼자 다 타고나면 인생 100년 짧아서 못하고, 사명 기간 20~40년 동안에는 못한다.
70. 어떤 자는 예쁘게, 어떤 자는 귀엽게, 어떤 자는 아름답게, 어떤 자는 우아하게, 어떤 자는 고귀하게, 어떤 자는
세련되게, 어떤 자는 귀티 나게, 어떤 자는 풍성하게, 어떤 자는 얌전하게, 어떤 자는 순진하게, 어떤 자는 솔직하
게, 어떤 자는 지혜롭게, 어떤 자는 지적으로, 어떤 자는 인자하게, 어떤 자는 덕 있게 태어난다. 어떤 자는 날카로
운 인상으로, 어떤 자는 험하고 무서운 인상으로 태어나 강한 곳에 쓰이기도 한다. 또 근엄하게, 튼튼하게, 무게 있
게, 가볍게, 믿음직스럽게 태어난다.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여우같이, 염소같이, 야수같이, 사슴같이, 늑대같
이, 뱀같이, 사자같이, 호랑이같이, 독수리같이 각종 만물들의 특성같이 태어나 그 인상을 준다. 길고 짧게, 둥둥하
고 홀쭉하게 각자 다 특성들이 있고 장단점들이 있다. 선하고 착하고 진실하게 쓰여지면 최고다. 생긴 것보다 꿀맛
이면 좋아하고, 생긴 것보다 개떡 맛이면 사람들도 주님도 안 좋아한다.
71. 관상, 수상, 인상, 사주팔자를 보면서 여기저기 눈치 보며 다니지 말아라. 주님은 마음에 있는 것들이 행실로 나
타나고, 인상으로 나타나고, 성격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쳐 주셨다. 엉겅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겠느냐. 모두 사람의
인상과 형상, 마음 상과 정신 상태를 보고 팔자를 봐 준 것이다. 고로 “고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72. 하나님도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속과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고 하셨다.
73. 사람의 눈을 잘 보라고 하셨다. 다윗의 눈이 사무엘 선지자의 눈에 띄어서 하나님께 왕으로 추천되었다.
74. 사울 왕은 인상이 교만하고 과격하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관상이었다. 덩치는 좋은데 덩칫값을 못했다.
또 과거 은혜를 잊고 현실만 보고 행하는 상이고, 사람들을 볶아 먹는 상이었다. 그렇게 살다가 운이 돌아가 자기
성질을 남한테 다 화풀이하고, 더 화풀이할 자가 없으니 자기에게 하고 죽은 팔자였다. 그리고 자기 혼자 다 하는
독재주의 사주팔자였다. 부려먹기 좋아하는 관상이라 다 부려먹고, 혈기 나는 대로 참지 못하고 칼이든 돌이든 집어
던지는 인상이 얼굴에 꽉 차 있는 자였다. 정말 타고났다. 그런 주권자에게 백성들이 눌려 살았으니 너무나도 괴로
웠던 것이다.
75. 다윗은 순수하고 착하고 온순한 상이었다. 손재주가 있어서 물맷돌로 잘 사용했고, 문학을 타고나서 시도 잘 썼
고, 예술을 타고나서 노래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뤘다. 노력 형, 꾸준한 형, 부지런한 형이었다. 키는 작고, 용맹스
럽고, 눈은 별같이 빛나고, 영웅적 기질을 타고났고, 카리스마 성격도 타고났다. 얼굴은 평화로운 상에다가 잘 웃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영적인 것을 타고나서 땅보다 하늘을 좋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기질이
탁월했다. 또한 국운을 타고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평화롭게 이끌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타고나서
끝까지 실천한 위대한 자였다. 가문도 잘 타고났기에 가문도 빛내게 된 것이다.
76. 정신도 육도 타고난 자가 있고, 겉은 뛰어나게 타고나지 못했으나 정신을 뛰어나게 타고난 자도 있다.
77. 말은 타고났는데 행동은 타고나지 못하여 말만 잘하는 자도 있다.
78. 너도 나도 장단점을 타고났다. 좋은 것만 사용하고 개발하여 쓰고 나쁜 것은 버리자.
79. 타고난 것을 해야 개인·가정·민족·세계적으로 빛나고 하늘까지 가게 된다.
80.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였으니 하나님을 믿고 그 보낸 주님을 믿고 살도록 타고났다. 그러나 인간이 책임을 하
지 못한 무지로 인하여 우상을 섬기고, 신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주님을 믿지 않고 살 뿐이다.
‘사람은 타고난다.’는 말씀을 잠언으로 들으니 이제 타고난 것을 깨닫고,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과 노력과 사명까지
깨달았습니까?
몇 마디만 더 한다면 ‘원숭이가 사람 되었다’는 말은 믿지 말아요. 원숭이는 처음부터 원숭이로 타고났고 인간은 처
음부터 인간으로 타고났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발달되지 못했기에 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원숭이처럼 짐승처럼 살
았을 뿐입니다. 사람으로 타고났기에 점점 역사가 흐르니 인간을 따라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타고났기에 어릴 때는 비슷하다가 점점 시간이 흐르면 원숭이가 사람을 못 따라오듯이, 그것에 타고나지 못
한 자가 타고난 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달걀 속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말도 다 헛소리입니다.
또 ‘사람이 하면 다 된다’는 말을 합니다. 99% 노력도 하지만 타고나지 않은 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 결국 자포자기하게 하고 실망만 시키는 말입니다.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다단계 일을 하여 돈 번다고 하다가 망하고 실패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남이 한다고 해
서 다 따라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인 것은 해야 되지만 사람에게 휩쓸려 가면 안 됩니다.
타고난 만큼 하면 됩니다. 못다 쓰고 죽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런 때 혼자 먹다가 못다 먹고 버리지 말고, 있
는 것을 서로 나눠 먹고 도우며 살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제자들이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각종 환난
과 고통과 난리가 일어나며 거짓 그리스도까지 나타나니 속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환난 후에 인자가 온
다고 하시며 인자는 ‘하나님이 인 치신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징조와 계시에 대하여 핵심만 잠언으로 말하고 마치겠습니다.
1. 인간이 책임분담을 못하여 지금도 하나님은 깨달으라고 세계적으로 징조를 보이신다.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땅의
것만 생각하며 물질과 경제와 돈만 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말세에는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자기만 사랑한다고 성경을 통해 말세의 현상과 징조들을 말했다.
3. 죽기 전이 개인의 말세다. 죽기 전 말세에 돈과 자기만 사랑하고 있다. 그때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 죽기 전에
꼭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 그와 같이 세상 말세에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
그래야 그 영혼이 하나님과 주님께 연결되어 하늘나라에 가서 땅의 것보다 수십억만 배 좋고 완전하게 실체로 존재
하는 세계에서 살게 된다.
4. 하나님은 사람이 징조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보이신다. 그러므로 깨닫고 하나님께로 오게 하신다.
5. 하나님도 주님도 어떤 징조를 일순간, 혹은 장기간 보이시며 사람이 직접 고통도 겪게 하여 깨우쳐 주어 하나님
의 뜻에 돌아오게 하신다.
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온 세계 누구에게나 다 해당된다. 고로 겪게 하고, 눈으로 직접 보게 하고, 마음
에 깊이 깨닫게 하신다. 행하는 것은 자신들이 해야 된다.
7. 돈을 사랑하고 자기만 사랑하는 자는 개인의 말세를 맞은 자다.
8. 하나님을 사랑하고 좇으면 거기서 말세를 맞지 않고 연속 하나님의 뜻 속에서 진행하게 하신다.
9. 하늘나라에는 거할 곳이 많다. 하나님께 다 있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아야 된다.
10. 재물과 돈과 세상에 깊이 체질들이 배어서 하나님의 것을 깨닫고 사랑하고 행하려면 쉽지 않다. 그러므로 환경
과 여건을 틀어 오래도록 물질의 가뭄이 들 것을 알아야 된다.
11. 주를 사랑하며 자기보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 범사에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안 주시면 하나님이 일을
못 하기 때문이다.
12. 주님은 징조를 보이며 말씀하신다. 일순간에 보여 주어 일순간에 온 세계 68억의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신다. 성
령의 감동과 양심으로 사람의 정신에 전달하신다.
13.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때는 징조를 안 보이시고도 일순간 양심으로 마음으로 깨닫도록 전달하신다.
14.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으로 깨닫거나 주님이 나타나 말씀해 주실 것만 기도하며 바라지 말아라. 인생들 거의 모
두에게 마음으로 징조를 보게 하면서 응답하신다.
15.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각각 개성대로 말씀하시고, 여건을 틀고 감동을 주면서 행하심을 깨닫고 살아라.
16. 꼭 먼 데까지 가서 앞날을 가 보고 그제야 믿고 행치 말고, 가 보지 않았어도 미리 깨우쳐 준 대로 믿고 행하여
라.
17. 말세란, 인간들의 때가 끝났으니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하는 때다. 성경에 예언한 대로 주님이 행하시는 때다.
경성하고 깨어 준비하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봐야 된다. 그래야 주를 맞는다.
18. 사람을 통해 하는 일도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님과 주님이 하시는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
이 외에도 많지만 삶 속에서 더 공부하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빕니다.
<축 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성령 안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2월 8일 주일말씀>
인생의 삶과 영원한 길
자기 몫이 있다
본 문 요한복음 14장 1-6절, 14-15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도 주님이 전해주시는 이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을 보겠습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제자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간절히 말씀하시듯이, 이 시대 주
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니 귀를 기울여 듣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 말라면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또한 자신들도 근심하지 아니하므로 애간장을 태우며 속을 안 썩이게 되는 것입
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지고 사는 자들도, 없는 자들도, 10대들도, 청년들도, 어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근심·걱
정·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현실과 앞날에 대해서, 또 선생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하늘나라가 정말 있는지, 자기는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별의 별 걱정과 근심들을 다 합니다. 그런 자는 쉽게 늙고, 마음에 병이 들고, 육신의 병까지
들게 됩니다. 주님이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순종하는 것이 곧 고치는 약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보낸 나 예수를 절대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주님을 안 믿으면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듯이 삼위일체가 되시는 주님도 절대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약해서 무엇을 해주시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믿어라.” 말씀하심에 따라 의심 없이 믿기를 축원합니다.
의지는 믿음에서 옵니다. 믿음에 따라 의지가 생깁니다. 절대 믿음으로 절대 의지하게 됩니다. 믿음에 따라 구원도
달라집니다. 의지가 강할수록 근심이 사라지고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인생에게 큰 힘입니다. 굳건하
게 합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이 아닌 메시아이니 절대 믿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구원받는데 있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은 잘 믿습니다. 자기의 어떤 문제를 두고 주님께 기도하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절대 해 주실 것을 믿
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안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문제가 어렵게 되면 ‘내가 할 일이야.’하고 자기가 하려고만 합니다. 주님을 절대 믿고, 절대 의지하고, 절대
해주실 것을 믿고, 근심하지 말고 살라고 했습니다. 믿고 살았는데 안 되었다고 낙심 말고 끝까지 해야 합니다. 이
것이 ‘얻는 길’입니다.
삶속에 고통·염려·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주님께 간절히 구하고, 주님이 그 뜻대로 해주실 것을 절대 믿고 살라고 주
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알겠습니까?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을 보겠습니다.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
게 하리라』
여기서 ‘처소’는 영원히 거할 수 있는 하늘나라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처소, 곧
각자의 집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주실 처소를 직접 만들러 가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에도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과 같이 “약속대로 너희를 위해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고 그 책의 저자를 통해 확실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자세히 책을 쓰게 하
였습니다.
이미 우리도 전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아는 바이지만 천국은 큰 세계입니다. 히브리서 8장 5절을 보면, 땅에 있
는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양이며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히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세상에도 사람마다 자기 집이 있듯이 천국에도 각자 집이 있습니다. 세상의 집은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자기가 짓
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집은 그 사람의 공적에 따라 주님이 약속대로 예비하여 지어놓으십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을 아시고 뜻을 아시니 그에게 맞게 100% 마음에 들게 지어주십니다.
세상의 집은 돌, 철, 시멘트, 흙, 나무, 벽돌로 짓지만 하늘나라는 금과 각종 빛난 보석으로 집을 짓습니다. 세상의
집처럼 값이 없고 빛도 나지 않는 허술한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집이 없습니다.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집
에 살 정도의 사람은 아예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행한 대로 준다」는 말씀대로 주십니다. 금보다 못한 나무집이나 돌집이나 흙집을 지어서 주지 않으십니다.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천국도 빈부의 격차가 있는 세계가 되고, 천국 같지 않으며, 그 세계의 일부는 이 세상과 같을 것
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의 보석집과 같이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빛나고 찬란하게 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하여 영이 빛이 나서 천국에 가야 됩니다. “천국은 가 봐야 알지...”하고 말하는
사람도 못 간다고 봐야 됩니다. 호리라도 문제가 있으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삶을 하늘나라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바울 선생은 하늘나라에 대하여 보고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라.”고 했습니다. 또 “나는 날마다 주를 위해 죽노
라.”하고 말했습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
라』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못된 성격과 성질을 죽이고, 혈기와 악한 마음을 죽이고, 세상으로 가는 마음을 죽이고, 육성을 죽이고, 사람의 생각
을 죽이고, 오직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모두 그같이 살라고 했습니다.
제 성질대로 살고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한 명도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자기의 육과 영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육신이 죽으면 육체만 땅에 남고 하늘나라에 못 가는 것이지, 그 마음과 생각은 세상에서 행했던 행실 그
대로 자기 영체가 하늘나라에 가져갑니다.
고로 완전히 회개하고 완전히 의를 행하여 천사의 마음과 주님의 성품과 어린아이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
을 갖지 못하면 그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 때 죽으면 유전죄가 있어도 유전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없어져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잠재해 있는 유전죄를 범하므로 자신이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을 메시아로만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절대 순종하여 화평케 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하고, 참고 견디고, 의를 행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됩니다. 땅에서도 육신을
가지고 주안에서 천국같이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땅에서 천국이 거의 좌우됩니다. 주님은 “땅에서 뜻이 이루어져
야 하늘나라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못 가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은 불바다 지옥은 아니지만
천국에서 볼 때는 지옥으로 봅니다. 그곳에서 지옥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예 주님의 말씀처럼 잘하여서 천
국으로 가야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주님은 한마디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살아야 된다.」
성경을 보면 천국에 갈 자들의 기준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일반 책 읽듯이 그냥 읽기만 합
니다. 세상의 책들은 지식과 상식을 써 놓았고,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써 놓았습니다.
성경은 인생들의 영원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생을 구원하시는 메시아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
이며, 천국을 어떻게 찾아오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명대로 사는지 말
했고, 수한 전에 죽는 하늘의 뜻있는 자에 대해 말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나옵
니다. 또 지옥은 어떤 자들이 가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 확실히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과 주님의 음성과 같이 귀히 보고 읽어야 됩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천국에 집을 예비해 놓으시고 다시 와서 우리를 영접하여 하늘나라로 데리고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온다’는 말은 주님이 꼭 재림하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날이 아
주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 날과 그 시는 몰라도 주님께 기도하면 어느 정도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뿐 아니라 직접 천국을 구경시키고 책을 쓰게 한 자들을 통해 주님이 지금 이 시대에 제일 급히 하고 싶은 한
마디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느 정도인지 말하면, 마치 해산하는 여
인이 아기를 낳을 때가 되어 더 이상 거동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는 정도와 같이 임박했다는 말씀으로 표현되
었습니다(살전 5:3).
또 다른 말로 깨우쳐 달라고 하였더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는 항상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징조가
보이지 않느냐. 이와 같이 내가 임하기 전에도 성경에 이미 말한 대로 징조가 일어나지 않겠느냐. 세상에 징조가 일
어나 너희가 쳐다볼 때 내가 임할 것이며, 너희의 마음과 몸을 마지막으로 단장할 때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징조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더니, 이
에 주님은 “너희가 알고 판단할 일이다. 하늘 편은 항상 계시나 징조를 보일 일이 있으면 보여 주기만 한다. 보고
깨닫는 것은 너희가 해야 되지 않겠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징조들을 보았습니까? 하나님도 주님도 계획적으로 징조들을 보이는데 사람들은 답답하고 무지하게 생
각해 버립니다. “계절에 따라 태풍이 불었구나.”, “지구 온난화 현상이야.”, “요즘 같은 때는 모두 돈을 사랑하니 경
제 흉년이 들고 가뭄이 든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두 징조들입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징조가 무슨 징조인지, 너희 신앙의 급수대로 지혜대로 깨달으라. 내 말을 항상 심각하
게 잘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3절을 보면 “너희가 천기는 분별하면서 어찌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라고 주님을 말씀하셨습니
다. 징조는 ‘예비하라’는 뜻입니다. ‘피하라’는 경고입니다.
모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살전 5:1-5)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
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해산하기 전에 산모는 아픔과 고통이 와서 괴로워합니다. 임신했을 때의 고통은 많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
는 고통, 몸이 무거운 고통, 배가 나오는 고통 등 여러 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태 속의
아이가 나오려 움직이고 방향을 트니 아픈 고통이 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오실 때도 세상의 징조로 인하여 세상
모든 자들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 자들은 직접 고통을 겪게 됩니다.
주님은 성경에 예언하신 말씀대로 오시지, 절대 뒤바뀌어서 오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천사장의 소리와 하
나님의 나팔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오시지, 천둥 번개를 치면서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
님이 말씀하시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대로 오십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불고, 그 나팔 소리를 듣는 자들만 알
고 주를 맞을 것입니다.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
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
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어느 날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말한 것은 하나님도 나도 다 책임을 지고 이룬다. 그러니 꼭 성경
대로 살아라.” 또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중심인물들이 말한 것까지 하나님은 다 책임을 지고 이루시니 꼭 성경
대로 절대 믿고 행해야 된다. 고로 율법의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다 이룬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하고 말씀하셨습
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통해 깨닫고 듣게 됩니다. ‘회개하
라.’, 혹은 ‘기뻐하라.’, 혹은 오늘 말씀처럼 ‘근심하지 말라.’, ‘혹은 형제를 사랑하라.’하며 자기 마음 상태와 행위에
따라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이 말씀은 30개론 중에서 계시론에 나옵니다. 배우기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오는 계시는 문학적 계시요,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직접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특별계시에
속합니다.
어느 때는 만물을 자세히 보면서 성경처럼 보고 행할 때 만물로도 들려옵니다. 만물은 인간을 중심하여 실체로 존재
하게 해놓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개체이며 하나님의 창조 작품입니다. 만물은 자연계시를 보일 때 사용합니다.
어느 때는 꿈을 통해 보이며 깨닫게 해주십니다. 환상·이상·비몽사몽간에 보이는 것은 초자연적인 계시입니다. 주님
이 직접 환상이나 꿈으로 안 나타나도 상징적으로 다른 자로 나타나 어떤 상황을 보이며 말씀하여 깨닫게 해주시고
사라지기도 하십니다.
지금은 재림에 대해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해놓지도 않은 자들이 세상에 나타나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며 유혹합니다. 그들을 따라가지
도 말고 속지도 말기 바랍니다. 주님은 천국에 올 자들을 위해 각자의 집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은 주님이 아닙니다. 성경에 그들이 다시 온다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
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져주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하찮은
집 한 채씩도 지어주지 못했습니다. 세상 실력도 없는데 어떻게 하늘나라의 실력을 행사하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하나 구원받기도 힘들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에 대하여 제대로 알
아야 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구원하고 남들도 구원해야 남에게 복음을 전해줄때 전하는 만큼 힘을 얻고, 은혜를 받
고, 더 좋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더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도 재림하지 않으신 예수님이신데 왜 예수님은 가시면서 곧 온다고 하셨습니까?
사도들도 왜 그같이 말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재림을 쪼개서 보아라. 말씀은 항상
짝지어 한다고 말한 것을 깨달으라. 2000년 있다가 올 것인데 곧 온다고 하였겠느냐. 내가 말한 대로 십자가에 죽
은 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쪼개서 보면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3일 후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셨지만 처음에는 몰라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방에 모여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영으로서 육신 같은 실존체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주님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항상 같이 있지 않고 때에 따라 나타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영으로 나타나 전도하
셨습니다. 그리고 밧모 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 영계로 천국을 보여주시고 천국의 실태를 모두 기록하게 하
셨습니다.
그리고 2000년 동안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상상해서 꾸는 꿈이 아닙니다. 실체가 나
타나 보이니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평생 보고 싶어도 못 본 자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다시 온다고 말씀하신 후에 1차 2000년 동안 나타나셨고, 또 제 2차 재림하십니다. 복음을 땅 끝
까지 전하시고,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하면 너희를 데리러 온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죽
은 자들은 영계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가 주님을 한번이라도 보았냐고 물으니, 53년 살도록 딱 한번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아주 억울한 일을 당하여 수천억 문제가 생겼는데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 얼굴을 보고 한시간만에 3천억에 해당되는 억울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지금은 잘 지내냐고 물으니, 금전적으로 또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같이 해결된 것을 아느냐고 했더니, 아무튼 신기하고 기뻤다고 했습니다. 그도 교
회는 다닙니다. 그에게 말하기를, 주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절대 해결이 안 될 일이었으니 감사하며 은혜의 삶을 살
아야 된다고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은밀히 행하시는 주님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뼈저리게 감사하지 못합니다. 정말 확실히 알고 감사하며 주
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이 또 오셔서 돕고 함께 하십니다. 아무리 주님이 어려움을
도와주었어도 자기가 열심히 해서 된 것으로 알거나 사람들 때문에 된 것으로 압니다.
주님이 사람을 통해 도와주시고, 보낸 자와 사명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무엇을
해 주면 모두 자기 때문에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는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입니다. 큰 죄를 짓게 되는 자
입니다.
주님이 음성으로나 영으로 나타나시는 것을 작은 일로 보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나 주님 꿈을 자주 꾸는 것
으로 알고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한번이라도 예수님을 꿈에 보았거나, 자기를 찾아 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모두 옆을 보고 앞뒤를
돌아 봐요. 꿈에서라도 예수님을 본 사람이 많아요? 적어요?
주님을 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와서 무슨 말을 하고 가셨느냐, 또 어떤 임무를 주셨느냐가 중요합니
다. 잘 생각해 봐요.
선생이 20대에 주님이 나타나신 후에 옛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게 되었고, 또 다시 만났을 때 월명동에 자연성전을
짓게 되었고, 붓을 주어 책을 쓰고 30개론을 받게 되었고,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큰 표가 납니
다.
주님이 혼을 내러 오셨든지, 혹은 자포자기한다고 위로하러 오셨든지, 혹은 잘한다고 칭찬하러 오셨든지 주님의 발
걸음은 정말 귀한 방문입니다. 진실로 감사해야 됩니다. 선생도 여러분들의 집을 방문하기 어려운데 예수님은 얼마
나 더 어렵겠습니까?
여러분 집에 선생이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30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도 집을 방문하는 것은 힘들었
습니다. 여러분들의 교회에 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주님의 계획에 따라서 다니니 또 갈 것입니다.
주님을 꿈에서나 환상으로나 기도 중에 못 보았어도 오십니다. 그러나 영이시기에 와도 가도 모릅니다. 쳐다만 봐도
큰 것입니다. 예수님은 청중이 모일 때 거의 나타나십니다. 한 명이나 두 명쯤은 볼 때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천사를 보내어 보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한눈에 전 세계를 보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직접 교회에 나타나 왔다가
가기도 하십니다. 말씀으로 나타나기도 하시고, 기도 중에 나타나기도 하시고, 홀로 위험할 때 동행하기도 하십니다.
직접 못 보았어도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못 본 자는 이와 같이 나타나심을 알아야 됩니다. 본인만 못 보았지,
주님이 오신 것을 느낌으로 깨닫고 감사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4~6절을 보겠습니다.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
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세상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제자와 선생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내가 가는 길을 알아야 된다.’는 격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르친
것이 인생길이다. 생명의 길이다. 내가 길이다. 그대로 살면 내가 간 곳에서 만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의 실체가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행실이 생명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 행하심이 길이었습니다.
그 생각하심이 생명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야 됩니다. 그것
이 구원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길로 가는지만 생각하고 좇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위치에서 시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선생을 따라가는 길이며 선생과 동행하는 자들입니다. 육신이 어디로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
씀에 따라 올바른 인생길과 생명길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습니까?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를 보면 길이 많습니다. 길로 가야 편합니다. 무고히 길을 막는 자같이 큰 죄인이 없다
고 말들 합니다. 길은 아무도 막지 못하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인생길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명을 받고
가는 길도 막으면 큰 죄입니다.
산길은 많지 않고, 절벽에는 겨우 하나밖에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길이 있듯이 주님은 인생길이 되었다고 했습
니다. 그 길은 주님 자신의 길이 되었고, 주님의 말씀하심이 인생길이 되었습니다.
“멸망길은 넓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좁은 생명길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주님을 찾는 자들은 적습니
다. 주님을 찾도록 전도하여 그 길로 가게 해 줘야 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특히 ‘길’에 대한 묵시의 말씀입니다. 잘 들어 봐요.
어느 날 큰 바위 산을 올라갔는데 내려오는 길이 없어서 막다른 골목에 처했습니다. 올라갔던 길로 내려오면 되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길이 없어서 절벽을 내려다보니 도저히 생명이 위험해서 갈 수 없었습니다. 너무
막막해서 걱정하고 있는데 ‘늦더라도 길을 찾아 길로 가야 된다. 그 절벽으로 내려가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현기증이 나서 서있는데 “내가 길이다. 생명이다. 진리다.”라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주님이
이 절벽에서 길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고 주님께 길을 물었습니다. 이 순간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이 길이었습니다.
그 절벽에서 뒤로 물러나 길을 찾으니 크고도 큰 바위 사이로 길이 보였습니다. 순간 쉽게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주
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님을 찾는 것이 길이었습니다. 길은 가까이 있는데 도마처럼 육적인 길만 생각한 것이었습
니다. 주님이 오죽 길을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인생길입니다. 주님은 그때그때 삶의 문제 속에 길이 되십니다. 삶 가운데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할까?’하
며 다른 궁리를 하거나 다른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면 생명의 길이 되시고 말씀의 길이 되시는
주님께서 “이같이 하라.”며 꿈으로나 상황으로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총동원하여 알려주십니다. 그러면 절벽에서라도
길을 찾아 쉽게 내려오는 것과 같이 쉽게 길을 찾게 됩니다.
늦더라도 길을 찾아 가야합니다. 길이 막혔다고 그제야 길을 닦으면 바윗길도, 산길도, 인생길도 고생만 하게 됩니
다. 또 그 길은 올바른 방향도 아니며 헛수고만 하게 됩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생명길이며 삶의 길입니다. 어떤 문
제에 부딪혀 한계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길을 닦듯 하지 말고, 이미 나 있는
절벽의 길과 같은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내 진로는 뭐지?’하며 고민하지요? 정말 답답하고 걱정되지요? 주님께 백번이고 천번이고 물어봐야 됩
니다. 주님이 시키는 그 길이 아니면 바위 절벽에서 내려올 길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따라오면 꼭 생명
길이 되시는 주님께 붙여줘야 됩니다. 자기가 끌고 다니면 자기가 그 생명들을 책임져야 됩니다. 자기가 구원시킬
수 있습니까?
선생도 여러분들을 인생의 길이 되신 주님께 모두 데려다가 자기 애인보다, 어느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면서 살
라고 묶어놓았으니 영원히 헤어지지 말고 주님과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준 것을 깨닫고 실천
하며 살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지난 날 주님의 은혜를 잊고 현실에 또 달라고만 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니 이 같은 사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됩니다.
길이 막히면 급한 자는 가시덤불이나 잡초 밭이나 절벽을 헤치고 갑니다. 그러다가 큰 고통을 당하게 되며 10배나
더 힘들어 애를 먹고 괴로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늦더라도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길로 가면 쉽습니다.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해야 됩니다. 또 처음에는 안 되는 일도 끝에 가면 되기도 하니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인생들이 각자 삶의 막다른 곳에 부딪힐 때 급하다고 해서 자기를 중심하여 다른 길로 가지 말고, 주님을 찾고 주님
이 하라는 대로 하여 그 길로 가야 됩니다. 길로 가야 제 시간에 제 갈 길을 가서 목적을 달성하여 성공할 수 있습
니다.
길도 아닌 가시덤불이나 절벽으로 가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새롭게 닦아서 가면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고생만 합니다. 전쟁터에서 길을 잘못 들면 적들의 소굴로 가게 되어 많은 생명을 잃게 됩니다. 신앙길과 인생길을
잘못 가면 사탄의 세계와 악의 세계로 가서 멸망과 실패를 맛보며 세상의 삶속으로 가게 됩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
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생명길로 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보낸 모세를 따라가야만 자기 민족의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모세를 따라가지 않고 악평하고 불평한 자들은 광야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시대마다 주님이 보
낸 사명자들을 따라가야 하나님과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됩니다.
삶의 길에 대한 것은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
야 됩니다. 그리고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지 않으면 하늘이 틀어버려 안 됩니다. 주님의 길은 욕심이 없는 길이며 공의와 화평과 사
랑의 길입니다. 긍휼함을 가지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위해주며, 절대 믿음을 가지고 행하며, 시기 질투가 없고, 자기
사명에 만족하고 충실하며, 주를 의지함으로 끝까지 가며, 약속을 지키고, 말조심하고, 함부로 형제들을 판단하지 않
으며, 악평과 이간질과 음모함과 거짓으로 거스르는 일들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행하지 않는 길은 사탄의 길입니
다. 무지의 길입니다.
겸손과 순종, 온유와 절제, 화평과 기쁨, 희생과 봉사, 전도와 가르침, 기도와 감사, 찬양의 일들이 주님이 가신 생
명길입니다. 이외에도 손님을 대접하고, 없는 자를 먹이고 입혀 주고,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형제를 사랑해주고
칭찬해주고 긍정해주고 고마워해주는 일들이 주님이 가신 생명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 같은 삶의 길을 가야
됩니다.
한번은 영계의 어떤 마을에 갔더니, 마을 청년이 바닷가로 가는 길이 없다고 하면서 큰 바위 밑을 산짐승 오소리같
이 파서 겨우 구멍을 뚫고 빠져 나갔습니다.
나는 도저히 그 길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는 자들도 다 그 구멍으로 오소리처럼 박박 기어 들어가 흙투
성이를 하고 가야되는데 안 되겠다 생각하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주님이 삶의 길이니 주님을 불러 가면서 길을
찾았습니다. 그 순간 옆을 보니 바위 사이로 1m 넓이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짐승처럼 가지 않아도 쉽게 갈 수 있었
습니다. 바닷가로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이 마을에 살면서 왜 짐승같이 사느냐고 물으니, 길을 찾아서 갈 수도 있지만 머리가 안 돌아가서 자기
가 바위 밑으로 길을 파서 다녔다고 했습니다. 길을 두고 왜 사서 평생 고생을 하느냐고 하며 길로 가면 쉽다고 말
해 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연석을 많이 채취하는 자였는데 자연석을 보물처럼 숨겨 놓았습니다. 내가 자연석 전문가라고 했더니
잘 믿지 않으면서 자기 잘난 체만 했습니다. 결국 그가 숨겨 놓은 자연석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막상 보니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작품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작품이 없어 내가 사갈 것이 없다고 하니, 김이 빠진 듯이 힘이 빠져 있
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청년에게 힘들게 길도 아닌 길을 닦지 말고 있는 길을 찾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 영계의
마을을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이에 교훈을 얻고, 여러분들에게 그 청년처럼 짐승 다니는 곳으로 다니며 힘들게 살지 말고 옆에 쉬운 길을 찾으라
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훈과 묵시입니다. 각자 인생의 삶속에 쉬운 길, 있는 길로 가면 됩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면 쉽습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쉬운 길이며 있는 길인 주님을 찾고, 믿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
는 것은 모두 힘든 길입니다. 주님께 묻지 않고 자기 스스로 찾아간 길은 사망의 길이 되기도 하고, 실패의 길이 되
기도 하고, 손해의 길이 되기도 하고, 후회의 길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월명동에 가서 길로 안 다니고 횟골, 가는골, 감람산에 다녀 봐요. 얼마나 힘든가요? 이미 다녀보았을 것입니다. 인
생길도 주님 떠나 다녀보면 상처투성이가 되어 결국 그 길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나오지 않는 자는 뱀과 짐승을
만나 사망길로 가게 되고 사탄들 속에 가게 됩니다. 사망길은 가면 갈수록 돌아오기 어렵고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길은 조금 잘못 들었을 때는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많이 잘못 들면 오다가 기름이 떨어지고, 힘이 떨어지고, 먹을
것이 떨어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길에서 서있기만 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알고 가는 것이 좋았을 것이
라며 후회할 것입니다.
모두 어렸을 때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길을 가야 됩니다. 자기마다 타고난 재능과 개성을 가지고 가야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10대이든 어른이든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한 길을 가든지, 자기의 방법으로 길을 닦으면서
가게 됩니다. 길을 닦다가 힘들어서 못가고 늦어서 못가고 말게 됩니다. 이미 닦아 놓은 길, 곧 주님을 찾아서 그
길을 가야 되며 주님이 사람마다 허락한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그것이 주님이 뜻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15절을 보겠습니다.
(요 14:14-15)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
명을 지키리라』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길로 가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께
구하면 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주셨듯이 또 주십니다. 주님께 구하여 받아서 쓰고, 주님을 위해 일해야 됩니다. 우
상이나 각종 신상들에게 구해서 받으면 우상들을 위해 일해 줘야 됩니다. 꼭 하나님과 주님께 구하고 받아 써야 됩
니다. 그래야 그것을 가지고 주를 위해 쓰게 되고, 자기를 위해 보람 있게 쓰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시행하리라.」 하였으니 얼마나 큰 약속입니까?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않은 연
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구해야 됩니다. 사랑하니 원하기만 하지 말고 구해야 됩니다. 받기 원하는 자가 구해
야 주고 싶지, 구하지도 않고 원하기만 하면 주지 않습니다.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모두 구해야 됩니다. 개인의 것
도 구하여 받아 풍부히 쓰고, 주님의 일도 풍부히 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말씀할 테니 잘 들어 봐요.
오늘 영계의 한 지역을 홀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길옆에서 여기저기 맛있게 음식들을 먹고 있었습니다. 나도
배가 고파서 먹는 곳에 가서 지켜보았습니다. 모두 먹느라고 바빴습니다. 같이 먹고 싶고, 또 조금이라도 주면 먹으
려고 했지만 주지를 않았습니다.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먹으면 부족하게 먹게 되고, 먹는
자들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각자 자기 몫이 있어 자기 것을 먹어야 양껏 만족하게 먹을 수 있어 기뻐하는 것 같았습
니다.
그때 깨달아졌습니다. 여기 먹는 데 있어 봤자 주지도 않지만 줘도 얻어먹는 거지같을 것이고, 또 내가 먹으면 모두
부족하겠고, 각자의 몫을 빼앗아 먹는 것 같아서 결국 내 갈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네 몫도 있다. 앞으로 가
보아라.”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렇지. 저들도 있는데 내 것도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정자 좋고 물 좋은 곳에 내가 먹을 것들이 있었습니다. 내 체질에 맞는 산나물과 잡곡밥이 있고,
짜고 맵지 않게 만든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이 음식이 내 몫인 것을 알았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깨달음으로 주님
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도 저마다 자기 몫인 밥도, 옷도, 잘 곳도 부모님이 마련해 주듯이 인생들에게도 하나님이 각자에게 먹을
복도, 사명 복도, 입고 사는 복도, 집도, 환경도 주셨다. 그러니 자기 몫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기웃거리지
말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곳에 가서 인생 푸념하며 곤란하게 하지 말고, 시기도 질투도 하지 말고, 욕심도 내
지 말아라. 자기에 맞게 그동안 수고한 그 행위에 따라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그들이 먹고 마시니 누구한테 누구
어떻다고 말하지 말아라. 자기도 가다 보면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으니 자기 것이나 먹고, 입고, 자고, 누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환난과 고통에 참여하지도 않고 그때는 저가 죗값을 받는다고 하고, 환난이 지나고 그가 축복을 받으면 시기
질투하며 어쩌고저쩌고 말들 합니다. 이는 못된 마음이며 마귀의 마음이니 다 고쳐야 새롭게 변화됩니다.
주님은 영계에서 이 같은 현상을 보이시면서 섭리인들과 세상을 깨우쳐 주라고 했습니다. “절대 남의 것을 넘볼 것
없고, 욕심낼 것도 없고, 이유 붙여서 이러니저러니 하지 말아라. 잘못하면 하늘로나 땅으로 책망 받게 된다. 고통도
고생도 자기 사명과 자기 몫이 있으니 남의 것을 자기가 손대며 참견하지 말고 기도해주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사람들의 모순은 자기 일이나 할 것이지, 사명을 받고 행하는 것인데 모르고 참견하여 일하는 자가 제대로 일하
지 못하게 합니다. 또 수고하고 열심히 하여 고통을 겪은 후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인데 그것을 시기 질투하고
자기도 끼어서 먹고 마시려 합니다. 그 사람의 것은 사명에 따라 따로 있으니 칭찬하고 축복을 빌어줘야 됩니다.
그리고 섭리의 일을 할 때 근본도 모르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니다 하며 제 생각대로 합니다. 그러면서 하
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를 보고 잘못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항상 뜻대로 해 달라고 해 놓고, 무슨 일을 하
면 자기 주관을 주장합니다. 평생 그같이 하다 보면 구원길도 벗어나고 주님의 뜻을 벗어나서 살다가 끝나게 됩니
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시켜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니 뜻대로 해 달라고 해야지, 왜 이러쿵저러쿵 합니까? 몰라서 사탄
이 개입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여 잘되게 해주면 혈기를 부리면서 왜 이같이 했냐고 합니다. 오직 주 뜻대로 해야 됩
니다.
자기의 몫이 있으니 자기 것이나 챙겨먹으라고 했습니다. 자기 몫이 있는데 곤란하게 다른 사람의 것을 얻어먹으면
안 됩니다. 그같이 하면 주는 자도 부족하고 얻어먹는 자도 부족하여 서로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늦더라도 자기 것이 있으니 자기 몫을 받고 살아야 됩니다. 자기 몫의 환난과 고통도 있고 각종 축복도 있습니다.
남의 것은 체질적으로 사명적으로 자기에게 맞지 않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말씀 마치겠습니다. 말씀에 따라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 도>
주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말씀을 듣고 길이 되신 주님을 길로 알고 찾고 구하는 모든 자
들에게 충만하게 주실 것을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2월 11일 수요말씀>
세상은 버려도 주님은 버리지 않으신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 위함이다
주님 따라 영생길을 가기 위함이다
본 문 마태복음 21장 42절 (참고 : 시편 118장 22절)
요한복음 17장 14-17절
요한복음 10장 28절, 12장 25절
먼저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요한복음 17장 14~15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따르는 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기에 세상이 나와 너희를 미워한다.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너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렇다고 너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기 위함
이 아니다.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과 고난과 억울함을 받아도 예수님이 가신 길이 악에 빠지지 않는 길입니다.
이어서 요한복음 17장 16~17절을 보겠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같이 너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도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
라.」라고 하시며 「모두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예수님께 속한 자들은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로 미움을 받고 갖은 고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세
상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을 항상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믿지 않은 자들은 유대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외식과 형식
으로 믿었으며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이들에게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미워하고 핍박하고 억울하게 하니, 이 길을 면케 해 달라고 원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따르는
제자들도 모두 고통의 길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벗어나는 길은 영생이 없는 세상길이었기에
예수님도 따르는 자들도 그대로 고통의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은 영생길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똑같습니다. 세상이 악하므로
악으로 대하는 자들을 막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받으면서 하늘길을 가게 했습니다. 주님이 가신 영생길이기 때문입
니다. 예수님은 「내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
는 길로 가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도 세상이 미워하고 억울하게 하고 아무리 핍박하여도 세상으로 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
다. 세상이 가는 길이 따로 있고 주님과 그 믿는 자들이 가는 길이 따로 있었습니다. 하늘길과 세상길이 따로 있습
니다.
세상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계획적으로 잔인하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
하시는 대로 영생길을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영생길로 갔습니다. 좁은 길, 곧 영원한 구원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이 가신 그대로 복음을 펴면서 세상이 주는 고난·핍박·억울함·죽음
의 길을 갔습니다. 특히 제자들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제자들 중에 어떤 자들도 그 고통에서 빠지지 않고 하늘나라
까지 영생의 길을 갔습니다. 베드로와 사도 요한에서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명도 그 고통과 핍박에서 빼
주지 않고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영원한 영생길, 하늘에 속한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세상길,
곧 사망과 멸망의 길로 가는 것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고난길을 피하게 해 달라고 하였지만 누구 한 명도 그 고난을 피해 세상길로 가지 못하게 하여 주
님이 가시는 길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으로서 그 시대의 죄를 대신하였고, 따르는 자들도 죄가 없었으나 그 시
대의 죗값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길로 갔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누구나 똑같습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주님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하시며 죽음으로 영원한 영생길을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마 10:38-39)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
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요한복음 17장 15절 말씀대로 이 길을 가시는 목적은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난길과
억울한 길을 가는 것은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하기 위함입니다. 고통스럽다고 세상길로 가서 악에 빠지면 다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 길은 지옥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살고자 하면 더 죽게 되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 죽고자
할 때 그 길은 주님이 가신 영생의 길로서 영혼이 살고 신앙이 사는 길’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므로 예수님도 제자들도 그같이 고통을 받고 그들의 죄를 대신하고 영생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자신들의 죗값으로 그 같은 고통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땅에 있으면 싸
워서 빼앗았으리라.」 하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길만 가셨습니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
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모두 악에 빠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가신 좁은 길을 가야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고통의 길이라도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사탄은 항상 미워하는 자를 통해 역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주님의 뜻도 아닙니다. 마
귀의 세력이 행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버려도 주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안 버리고 주님이 버리면 영생이 없
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버리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육과 세상에 속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늘에 속해서만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미워하는 자들은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시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악한 가인이 선한 아벨을 미워하듯이, 세상은 언제나 하늘에 속한 자들을 미워했습니다.
어떤 환난이 오고 핍박이 와도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핍박과 고통으로 인하여 더욱 하늘의 것으로 보
전되기를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절대 요동함이 없어야 되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서로 원망 없이 사랑하며 예수님
의 새 계명을 꼭 지켜야 됩니다. 내가 요동치 않음같이 모두 요동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언제나 자기 죄는 자기가 눈물로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평생 남아 자기에게 사탄이 역사하게 합니다.
사도들과 에스더는 자기 민족과 시대의 죄를 회개하였고, 요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죄를 회개시켰고, 예수님은 그
시대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앞날을 아시고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을 갖은 핍박과 누명으로 억울하게 하며 결국 죽음까지 내몰고 제자들을 핍박한 죄로 주후 70년 만
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역사를 보아도 엄청난 고통들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핍박하는 자들을 보시고, 의인 아벨을 죽인 죄부터 제사장 사가랴가 흘린 피까지 땅에서 흘린 의로운 피의
값을 다 감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 말씀대로 모두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향한 죄와 무지한 죄를 모두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야 죄인들과 같
이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속히 곧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루도 잊지 말고, 막연한 믿음에서 벗어나 정말 예비
하고 기도하여 깨어 있어야 될 때입니다.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예비하여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
고 그 말씀에 따른 삶을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얼마나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사셨는지, 성경을 읽어도 그 근본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글로는 마음의 고통과 현실의 수많은 일들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도 겪으며 깨
달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3년 동안 계속 쫓기며 갖은 고난을 받으면서 뜻을 펴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받은 고통들을 어느 시대 누구든지 받아 보아야 예수님 시대에 받은 고통들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게 됩니
다. 영생의 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가지 않으면 ‘왜 영생길이 이같이 고통스럽지? 이 길
이 아닌가?’ 하며 가다가 맙니다.
이 세상의 악한 자들로 인하여 받는 고통은 지옥의 고통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지옥은 한순간도 못 견딥니다. 고로
이 세상에서 고통을 받아도 영생길로 가야 됩니다. 악으로 인하여 잠시 핍박과 고통을 피하려고 세상으로 가면, 도
리어 영생길을 잃고 영원한 고통의 세계인 지옥으로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천국으로 가는 영생의 길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고자 하
면서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 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
를 좇을 것이니라』
세상을 포기하고 살아야 영생길을 갑니다.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며 세상의 고통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길을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영광의 길을 가는 때가 가까웠다.」고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고난
의 길이 천국으로 가는 영원한 영생의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그 길로 와서 모두 구
원받고 하늘나라의 영광에 살 것을 아셨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갖은 고통을 겪더라도 그 길을 가지 않으셨으면 그 시대가 하나님의 뜻을 불신한 연고로 그 시대에는 다
른 구원의 길이 없었습니다. 본래 예정된 길은 아니었지만 시대가 악하게 행함으로 고난의 구원길을 가게 된 것입니
다.
예수님은 악하게 사는 자들을 보시고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행위대로 받는 길로 갈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늘 선하게 살기 원하고, 또 구원길을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키기 힘들다고 마음대로
사니, 그렇게 사는 자들을 막고 못 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기 책임이 크고도 큽니다.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면 안 됩니다. 소돔 땅의 롯과 같이 죽음을 피해 예수님만 향해 굳건히 가야 될 때입니
다. 세상 미련을 두고 뒤돌아본 롯의 아내는 죽었습니다.
심판 때와 보통 때는 다릅니다. 사람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심판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그 악한 자들을 심판
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는 구원길이라면 아무리 험하고 고생되어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따르는 자들과 함께 얼마나 위대한 길을 가셨는지 그 길을 가 보는 자만 알게 됩니다. 얼마나 극심한
고통과 고난과 억울함을 당하고 사셨는지, 어느 시대 누구든지 그같이 당하며 살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는 그 고난에 참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는다.”,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기 위함이다.”, “영
원한 생명의 길을 모두 가야 되기 때문이다.” 모두 예수님이 말씀하심을 깨닫고 살기 바랍니다.
<2009년 2월 15일 주일말씀>
천국을 위한 선한 싸움
본 문 요한복음 18장 35-36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의 편이 되어 주시어 싸워 이기게 함으로
나라를 세워 살게 해 주셨습니다. 다윗 왕 때도, 여호수아 때도, 히스기야 왕 때도 대적하는 나라들과 맞서 군사들
은 활과 칼을 가지고 나가 싸워 피를 흘리며 전쟁하였습니다. 이같이 하여 승리하고 나라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펴
며 살았습니다. 구약시대에는 4000년 동안 이 같은 역사로 섭리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신약시대부터는 전쟁도, 육적인 싸움과 다툼도 절대적으로 못 하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일지라도 육적인 싸움을 할 때는 돕지 않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선으로 대하라.” 하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러 오지 않았다. 하늘나라에 있다. 그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에 가기 위해 선한
싸움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선한 싸움을 하는 자들입니다. “악을 선으로 대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진리를
행하며, 화평케 하고, 서로 위해 주고 섬겨 주며, 미워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때리면 맞을지라도 같이 육적
인 싸움을 하지 말아라. 억울하게 하고 해를 주고 핍박하고 괴롭힐지라도 싸우지 말고, 그들과 같이 미워하지 말아
라. 싸우는 자들과 같이 싸우면 결국 패한 자가 되어 하늘나라를 빼앗긴다. 선으로 싸워 하늘나라를 세우고 빼앗아
야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을 보면,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의로 승리하여 빼앗아 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후부터 전체가 그같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나의 나라는 가다가 없어질 이 세상이 아니고, 또 내 나라를 이 땅에 세우러 오지 않
았다. 만일 이 세상 같았으면 이 세상식으로 따르는 자들과 함께 싸워서 이 세상에 내 나라를 세우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나라를 세우려면 육적인 싸움을 해야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자기 개인·가정·민족적인 나라
를 세우려고 정신적, 육적, 물질적, 명예적으로 전심을 다해 싸움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를 메시아로 믿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
원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상속하게 해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고로 예수님은 세상 법으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의 법과 진리로 가르치시고 그 말씀대로 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여 천국을 자기
나라로 삼고 살게 해 주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무력으로 예수님을 대할 때 베드로는 화가 나서 검을 빼 싸웠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검
을 쓰면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시며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싸워 줘도
선한 싸움이 아니면 못 하게 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5~36절을 보겠습니다.
유대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을 때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기를 “실상은 네 나라 사람들과 대제사장
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이 세상에
속했으면 나를 따르는 수많은 자들이 나를 대적하는 자들과 능히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이 시대를 살면서 예수님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싸움과 무력으로 이 세상에 어떤 나라
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이 가신 생명길을 목적하고 살아야 됩니다. 의와 선으로 살며 악을 악으로 갚
지 말고, 환난과 핍박과 갖은 고통들을 사랑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하고 천국을 침노하여 자기 나라로 삼
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시어 천국에서 오셨습니다. 천국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자가 없고, 어떻게 천국에 가는지 아
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일생 동안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섬기고, 형제들을 사랑하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성결하게 행하고, 계명을 지키고, 인자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긍휼을 베풀고, 서로 사랑하
고 위해 주며, 화평케 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고, 반대하고 핍박하고 거스르고 미워하는 자를
용서하며, 악을 선으로 대하며 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같이 함으로 선한 싸움을 하여 이겨야 천국에 갈 수 있고 그 나라를 상속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선으로
침노하여 차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사는 자들과 같이 마음을 먹고 행해야 천국에 들어가 살
수 있습니다.
개인·가정·민족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나라를 세우는 자들은 세상과 싸움을 합니다. 전쟁과 물질의 싸움, 권력의 싸
움, 명예의 싸움, 혈과 육에 속한 싸움들을 합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
가 목적이 아니고 세상이 목적인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도 우리의 싸움은 이 세상에 속한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두움에 속해 사는 마귀들을 물리치는 싸움이며, 믿음과 선과 말씀으로 악에 속해 사는 자들과 싸워 하늘나라를 차
지하는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예수님은 「모두 신앙 안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나를 위해 죽고자 하면 살고,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면 오히려 죽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38-39). 세상을 포기해야 예수님과 더욱 하나 되어 목숨을 얻
는다고 했습니다.
선으로 싸워 이겨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세상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차
지하려는 선한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이 뭐 그리 중하고 귀한 것이냐. 환경이 운명을 좌우하느냐. 운명은 몸과 마음이 좌
우한다. 몸과 마음이 중하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환경은 때가 되면 안고 가지도 못하고, 지고
갈 수도 없다. 인생 끝나면 환경도 이 세상도 다 버리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오직 의를 행한 마음과 영만
가지고 간다. 그러니 귀한 몸을 가지고 의와 영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은 살고 나면 잠깐입니다. 모두 과거를 돌아보세요. 20년씩, 30년씩, 혹은 50년 이상 살았어도 지나간 날들
이 잠깐이듯이 앞으로 4~50년 더 살아도 그때 가서 보면 지난날이 잠깐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 보내신 메시아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
롭게 살아서 그 영이 의로 단장하여 하늘나라로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를 몰라서 세상에서 보이는
데 빠져 먹고 입고 세상만 위해 살다가 일생을 마치고 허무하게 끝나고 맙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가질 것을 다 가져도 마음이 괴로우면 지옥인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환난과 핍박과
억울함이 있어도 마음이 기쁘면 천국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뜻을 모를 때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었다고 생각하면
서 마음이 괴로워 지옥입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알게 되면 괴로운 마음이 떠나
가고 마음이 기뻐 천국이 됩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생각지 않고 자기 뜻대로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워 지옥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 생명길로 가는 것
을 알게 되면 마음이 기뻐 천국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자들이 그 뜻을 몰라서 자기 뜻대로만 생각하면 마귀
와 귀신들이 와서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네 마음에 귀신을 쫓아내면 하늘나라가 네 마음에 임하여 기쁘다.」고
했습니다(눅 11:20).
재물, 돈, 환경, 자기 뜻대로 하여 천국이 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는 우리는 환난 중에도 그 뜻을 알고 살아야 마음이 괴롭지 않고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며 환난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이 버리고 배척했지만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버림을 받은 그 길이 예수님을 중심하여 가니 천국의 생명길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예
수님을 보고 몹쓸 자라고 하며 죄인 취급하여 버렸지만 예수님은 결국 주춧돌이 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면 예나 지금이나 극한 환난과 핍박이 더 일어났습니다. 보다 악 편은 보다 선
편을 막고 공격하게 됩니다. 보다 뒤떨어진 시대는 보다 앞선 시대를 막고 거부했습니다. 종교뿐 아니라 다 그러했
습니다. 축구 선수들을 보아도 잘하는 자를 상대가 총력을 기울여 막고 태클을 겁니다. 모두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
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최고의 목적입니다. 구원길을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뜻을 알고 따라가야 괴롭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당하는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워 못 삽니다. 의를 위해 당하고, 예수님을 위해 당하고,
생명길과 천국길을 가면서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핍박을 당해도 기뻐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
다.
(마 5:11-12)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
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
하였느니라』
바울과 실라, 그리고 베드로는 복음 때문에 억울하게 옥에 갇혔지만 예수님의 뜻을 알고 생명길을 가는 것이기에 찬
양하고 기도하며 예수님으로부터 더 깊은 말씀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따르고 믿는 자들에게 더 깊은 말
씀을 전해 주어 구원을 더욱 확실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들이 기뻐 찬양한 것은 옥의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관광을 가 본 자들은 알겠지만 감옥은 지옥 같은 환
경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위해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생명길을 가게 되니 마음이 천국이기 때문에 기뻐
찬양한 것이었습니다. 환난과 핍박과 억울함을 받아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 곧 생명길을 가기에 기쁜 것이었습니
다.
이 시대 우리들도 환경이 안 좋고, 삶이 어렵고, 여러 환난이 있다고 그로 인하여 고통스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늘의 생명길을 가니 어떤 일이 있어도 기뻐하며 가야 됩니다. 그럴수록 자신들을 더 돌아보고 고치고, 더 기도하
고 새롭게 되고 변화를 받아 확실한 생명길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가니 마음이 천국 되어 살아야 됩니다. 의와 사랑과 진리와 인내로 악과 싸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나라를 상속받아야 됩니다. 감사하며 믿음에 굳건하게 서서 흔들림 없이 진실하게 예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사는
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입니다. 하늘나라를 침노하는 승리의 생활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고 핍박하고 억울하게 한 자들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흑암의 세
계로 가고 맙니다. 이 세상은 하늘나라를 위해 사는 자들을 받아 주지 않습니다. 이는 세상이 자기들의 나라이기 때
문입니다. 하늘나라 뜻대로 사는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받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좇고 따르는 우리는 세상에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세상은 오히려 가혹하게 대하고 더 배
척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살기 때문에 우리의 위로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가는 길
을 모르기 때문에 위로해도 오히려 심정이 상합니다.
일생 동안 부지런히 마음과 뜻을 다해 살아야 하늘나라에 가서 생각할 때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하게 됩니
다. 자기가 자기 삶을 살아야 됩니다. 누가 대신 못 해 줍니다. 매일 부지런히 낙을 삼고 자기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가르쳐 주시고 대신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가르침을 받고 자기 것은 각자 자신들이 했습니다. 안 하면 안
한 만큼 손해이고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하신 말씀들이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그대로 행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는 모두 성령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육신이 태어났듯이 영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신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육신이 부모로부터 태어나듯이, 영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과 성령을 체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것이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난 자는 성령으로 행하게 됩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생각과 삶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와 다릅니다.
육으로 난 자는 육으로만 행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난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으로 행합니다. 성령으로 난 자라
야 예수님의 뜻을 알고 행합니다. 성령으로 난 자와 육으로 난 자는 뜻이 달라서 싸웁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메
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역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거듭나 살지 않으면 역시 하늘나라
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구원을 받아 거듭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 산
영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려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가신 고난길을 가면서 천국을 침노하는 삶을 살며 선한 싸움을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 나라가 됩니다.
악과 싸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생명길, 영생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예수
님이 가신 영생길을 가니 기뻐하며 살아야 됩니다. 악에 속한 자들은 멸망길을 가면서 기뻐하며 살고 있습니다.
환난과 고통들은 예수님께 위로받고, 같이 환난을 당하는 자들끼리 예수님의 뜻을 알고 위로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괴로운 마음이 풀립니다. 자기 직분을 행하며 화평으로 하나 되고, 서로 원망하지 말고, 자기 일에 충성해야 될 때
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의로 싸워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이 좁은 길, 곧 생
명의 길로 갑니다. 이 좁은 생명의 길을 가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모두 가르쳐 주었으니 몰라서 못 했다고 하지 말
고 진실로 잘 듣고 행해야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내던지고 잔인하게 해도 놀라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면 세상에 묶
여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버려야 더욱 예수님께 붙어 그 길을 가게 됩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보낸 자를 따르는 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와 같았습니다. 구약의 모세 시대에도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이 보낸 모세를 더욱 믿고 따라감으로 자기 선조들이 살던 땅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세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한 가정에서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한 사람이라도 밤낮 집을 지키면 도둑을 맞지 않습니다. 또 식구들 중에
괴롭지만 어느 한 사람이 밤낮 불조심하며 관리하면 화재로 인하여 재난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각 교회와 섭리역사에 있어서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한 명이라도 희생하고 몰두하면 환난과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꼭 그같이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희생하시니 생명길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가신 후에 사도들이 모두 목숨을 걸고 순교하면서 복음으로 살았기에 결국 신약의 생명 역사
가 오늘날까지 펼쳐져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니 새싹이 나서 많은 결실을 하게 되었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의 밀알은 예수님 자신을 말한 것입니다.
(요 12:23-25)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
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오늘 말씀은 우리의 나라는 세상이 아니다. 그러니 육의 싸움을 할 것 없다. 선한 싸움, 곧 예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아 천국의 나라를 빼앗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힘들어도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사랑과 화평과 기쁨으로 서
로 사랑하면서 세상에 속해 살지 말고, 참고 견디며 의를 위해 사는 것이 선한 싸움을 하여 이긴 자가 되어 하늘나
라를 빼앗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잠언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1. 하나님과 주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었다고 생각할 때 마음은 괴로운 지옥이 된다.
2. 하나님과 주의 뜻에 맞지 않을 때 마음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
3. 누구든지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의 마음과 일체되어 산다면 마음이 천국이다.
4. 자기가 영원히 거할 곳이 세상이라면 세상을 위해 싸워야 되고, 하늘나라라면 하늘나라를 위해 싸워야 된다.
5. 예수님이 다스릴 나라는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절대 세상과 싸우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시며 막으셨다. 세상과 싸우는 일은 절대 필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
셨다. 예수님은 천국을 다스리는 자이시므로 그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라고 말씀하셨다. 진리와 사랑, 선과 공
의, 평화와 용서로 대하며 원수를 위해 기도해 주고 가난한 자를 도우며, 서로 화평케 하고 참고 견디며,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두려워 섬기고 감사하며, 굳건한 믿음으로 진실하게 거짓 없이 살라고 하셨다. 이는 그렇게 사는
자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시기 위함이었다.
6. 자기 좋은 대로만 생각하고 해석하지 말아라.
7.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자기 좋은 대로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계시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현실과 어긋나
게 된다.
8. 예수님은 살고자 하면 죽게 되고, 죽고자 하면 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영적인 주 뜻대로 하면 살 것
이요, 육적인 자기 뜻대로 하면 죽을 것이라는 말이다. ‘죽는다’는 것은 ‘안 된다’, 혹은 ‘영이 죽는다’, 혹은 ‘육이
죽는다’ 함이다.
9. 사람들은 모두 고통과 염려 속에 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잘된다고만 생각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기에 안되는 일
이 누구나 많은 것이다.
10. 예수 안에 사는 자들에게는 자기 원하는 것이 안 되었든지 되었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되었느냐가 문
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 생명의 삶이다. 주님이 가신 구원의 좁은 길의 삶이다.
11. 자기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생각하지 말아라. 자기 원대로 안 되는 것이 실상 하나님의 뜻
인 것이 훨씬 많다. 이는 인간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12. 사람이 열심히 하여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것이 훨씬 많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된다면 하나님의 뜻을 제대
로 펼 수 없다.
13.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면 부정하고 사는 것보다 삶에 보람이 있을 뿐이지, 긍정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서 다
자기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14. 세상의 많고도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원하는 대로 된다면 세상 체제와 질
서의 균형을 잃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펼 수가 없다.
15.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 뜻대로 하시고, 나머지는 인간들의 자기 수고의 뜻대로 되게 하셨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자기 원하는 대로 못 하게 하셨으니, 이는 온 세상 전체의 균형을 잡으시기 위함이다.
16. 사람은 자기 고통을 벗어나려고 항상 희망적인 생각과 사고들로 긍정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실제와 다른 것이 너무도 많다.
17. 자기가 원하는 대로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라.
18. 자기 좋은 쪽만 생각하면 하나님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19. 주님을 믿고 구원받고 사랑하고, 또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자들이 자기 좋은 쪽으로만 원하고 생각하고 살
면 주님이 자기를 위해 해 주시는 좋은 쪽은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주님이 그를 사랑하여 주님이 원하는 좋은 쪽으
로 해 주시면 사람은 자기 원대로 안 되었다고 실망하게 된다.
20. 예수님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육이 살면 영이 죽는다는 말씀이었
다. 항상 예수님은 영 때문에 걱정하셨다. 영이 죽으면 영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육
신이 살아 있으나 날마다 스스로 육신을 죽이고 영을 위해 산다고 했다.
21. 주님은 영을 구원하여 그 영을 하늘나라에 보내기 위해 오셨다. 육은 구원받으나, 못 받으나 인생 일평생 8~90
년 살다 끝난다. 영이 구원받아야 영원히 살게 되고, 육도 세상에서 살 동안 잘되고 형통하여 주의 뜻을 좇을 수 있
다.
22. 꿈으로 어떤 계시를 받으면 영적인 것인데 육적으로 해석한다. 영이 살아서 온 것이고 영에 관한 것인데 육이라
고 잘못 해석한다. 계시는 올바로 오지만, 사람들은 흔히 자기 좋은 대로만 육적으로 해석한다.
23. 신앙적이고 영적인 일인데 모르고 육적으로 생각하면 육적인 일들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야 아닌 것
을 알게 된다.
24. 영이 영원하고 중한 것이다. 누구든지 영이 살지 못하면 그 수고는 헛되다. 신앙으로 육만 살아 있으면 안 된
다. 반드시 영이 부활되어 살아야 한다. 영이 잘되기를 바라며 영을 위해 항상 힘써야 된다.
25. 주님 좋은 대로 해 달라고 기도해 놓고, 그 뜻대로 해 주시면 자기 희망이 깨졌다고 한다. 이는 주님의 뜻과 다
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께 맡겨 버리고 살아야 주의 뜻대로 됨을 깨닫
고 기뻐한다.
26.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지 상관없다. 주님이 그에게 원하는 것만 해 주시면 되는 것이다.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세상이 원하는 대로 절대 해 주지 않으신다.
27.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네게 어떻게 했든지 상관없는 것이다.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네게
해 줄 것만 해 주면 되지 않느냐.” 하셨다.
28.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며 악행을 저지른 유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행한 것은 주님의 행하심이 아니었
다. 주님은 그 시대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 해 줄 것을 다 해 주셨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주님이 해 주실 것
만 해 주시면 만족하게 생각하면서 좇고 따라야 된다. 세상이 가는 길과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다르다. 고로 세상과
싸울 일이 없는 것이다. 부지런히 하늘의 생명길을 가야 될 때다.
29.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천릿길을 가야 될 사람이기에 날씨가 좋으나 나쁘나 가야 된다. 아무리 날씨가 좋
아도 걸어가야 되기에 걷는 데서 힘이 든다. 날씨가 나쁘면 더 힘들기는 하지만 하나님도 주님도 더 함께하시니 더
좋은 것이다.
30. 구원의 길이요, 주님과 함께 고난에 참예하는 길이요, 영원히 살 길이다. 어떤 어려움도 고통도 다 이기면서 기
쁨으로 갈 길이다.
31. 세상의 사망길을 가는 자들도 기뻐하며 가는데 주님을 따라 영생길을 가는 자들이 기뻐하며 가야 되지 않겠느
냐.
32. 자기 원하는 대로 살면서 주님 뜻으로 알고 가는 자는 누가 막을 수도 없는 무서운 길을 가는 자다. 갈 길을 다
간 후에야 사망길임을 알게 된다. 미리 확인하고 가라. 보기에는 좋으나 사망길이고, 보기에는 험하고 좁으나 생명
길이다. 말씀을 듣고 자기의 길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라. 지금은 확인을 할 때다.
33. 길을 잘못 가는 것을 알았으면 다시 바른 길을 찾아 가면 된다. 인생길도 그러하다.
34. 인생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절대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한 영생길이 있고, 자기를 중심한 세상길이 있다.
35. 오른쪽은 하늘 백성들이 가는 영생의 길이고, 왼쪽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멸망의 길이다. 생명길을 가기 때문에
세상길을 가는 자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이다.
36. 예수님은 “내가 인생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길을 가는 자는 예수님이 말씀하심을 읽고
행하며 그를 구원자로 믿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와 더불어 사는 자다.
37. 악인들이 의인들에게 해를 주는 것은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니다. 이는 악한 자의 뜻이다.
그로 인하여 의인들이 더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하는 것은 하나님께 향한 뜻이다.
38. 세상 편이 미워한다고 해서 하늘 편이 세상 편과 싸우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다.
39. 주님이 정말 사랑하는 자들이 세상길로 가면 가는 길이 끊어지게 하여 결국 가지 못하게 하신다.
말씀 잘 들었습니까? 정확하게 말씀을 전하고 정확하게 들음으로 온전히 깨달아 새롭게 거듭나고 변화되기 바랍니
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와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성령 안에서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2월 18일 수요말씀>
천국을 위한 선한 싸움
본 문 마태복음 22장 37-40절
요한 1서 3장 10-15절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 가운데 살면서 고통을 받는 만백성을 구원시켜 하늘나라를 가게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은 너무도 많지만 핵심을 보면
첫째, 죄에 대하여 가르쳐주어 죄를 회개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마다 죄에서 벗어나 그 영과 육이
자유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으시며 오직 그만 섬겨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라고
하시며, 내 말을 믿고 구원을 받고 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셋째, 사랑에 대하여 가르쳐주셨습니다. 자기에게 해를 주더라도 절대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용서하
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를 마음으로나 행실로나 미워하면 살인한 자가 되고, 살인한 자는 영생
이 그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 행실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는 주님의 마음에 큰 도였습니다.
넷째, 걱정·염려·근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게 맡기고 하나님께 내 이름으로 기도하여 그 없는 것을 육도 영도 얻
으라고 했습니다.
모두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가르치셨는지 잘 보기 바랍니다.
요한 1서 3장 10-15절의 본문 말씀을 듣겠습니다.
역시 사랑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결국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의를 행하지 않
는 자나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가인같이 형제를 미
워함으로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4장 1~12절을 보면, 가인은 악한 자에 속하여 그 아우를 미워하여 죽였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자기 행위는
악하고 아우 아벨은 의롭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미워합니다. 종교세계도 어느 시대든지 그러했습니다. 섭리 안에서도 그러합
니다. 이들은 가인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
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도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자들이 예수님과 그 따르는 자들을 미워함을 보시고 가인 같
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르는 자들도 외식과 형식으로 말로만 형제를 사랑하지 말고 행실로 사랑하
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 이 시대나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가인처럼 형제를 미워하며 혈기방장하게 행하는 자는 살인자로 취
급하시며 그런 자는 사망에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회개치 않으면 마귀와 귀신이 그들을 계속 주관하며 사망에서 살
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미워함으로 마음에 살인하면 마귀가 그 속에 있어 그를 주관하게 됩니다. 하
나님과 예수님의 법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기 바란다」
고 했습니다. 이같이 사랑이 큽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고 말했습니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구원받지 못하니 저주를 받게 됩니다.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러합니다. 그러
므로 사람들이 어떠한 미움과 고통을 주어도, 억울함과 원통함을 주어도, 해를 당했어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하며 원수든지 미워할 자든지 그들과 같이 싸우지 않고 왔던 것입니다.
자기를 미워한다고 해서 같이 싸우며 화를 내고 분노하면서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영생의 길
을 포기함으로 영원히 손해를 보며 사는 미련한 자입니다. 영원한 생명길인 천국길을 가야지, 왜 화를 내고 원통해
하며 가인처럼 분을 내고 미워하며 같이 싸웁니까? 영생길만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권 가운데 마귀에게 속
함으로 자신의 육신도 지옥이 되고, 마음도 영도 괴로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대로 그 말씀대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만 따라가는데 마음과 뜻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 주며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앞만 향해 가야 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섭리 안에서도 모두 그같이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기뻐 좋
아하시고 그를 사랑해 주십니다.
흔히 섭리 온지 오래된 자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싸움을 합니다. 누가 잘못했느니, 누구 때문에 선생이 이같이 되었
다고 하며 섭리사에 극적으로 해를 줍니다. 이 같은 자들은 예수님께 속하지도 않았고, 나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은 자들입니다. 계속 그러면 예수님은 행위대로 해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에게 해를 주고 미워하는 자들과 싸울 힘이 없어 못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화평케 살아야 자녀에서 버림받지 않고 그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같은 삶을 이미 오래 전에
어렸을 때부터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야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따라가지 못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할 것이 있기에 미워하고, 후에는 회개하여 예수님을 따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탄이 한번 사망으
로 끌고 가면 쉽게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행위대로 행하십니다. 전쟁에서나, 환난중에서나, 삶속에서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의 법을 지켜야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면 이는 최고 법을 범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죄가 있는 사랑이
므로 하나님과 주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함으로 살인한 자는 하나님을 제대로 사
랑하는 마음을 쏟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미워함으로 이미 사망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형제를 미워하여 싸우면서 부모는 사랑한다면 오히려 책망을 받고 그 사랑은 부모가 받지 않을 것입니
다. 섭리 안에서도 형제끼리 이러하든지 저러하든지 오해하고 미워하고 싸우면서 선생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사망
에 속한 사랑이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과 그 따르는 자들을 미워하고 무지로 오해하
여 몰라서 싸우고 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어도 마귀의 주관권, 곧 사망권에 속하여 참된 사랑이 되지
못하였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의인 아벨을 죽인 죄로부터 그 시대 의인들이 흘린 모든 핏값을 그 시대에 형제를 미워하
고 죽인 자들이 다 담당하라.」고 하였습니다(마 23:35). 너무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
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들은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
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섭리에서도 그같이 행한 자들은 다 해당됩니다. ‘라가’라는 말은 조롱하고 욕을 할 때 사용하는 경멸적인 말을 뜻합
니다.
욕하는 교역자는 자격이 없으니 모두 교회에서 내보내야 됩니다. 육은 살았다 하나, 영은 죽은 자들입니다. 죽은 자
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니 나의 일도 할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
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위해 자기를 위해 참고 견디면서 예수님의 뜻만 따르며 가면 기뻐 희망에 벅찬 것입니다. 이같이 하면서 하
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화평케 하면서 사랑하면 더 크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
를 더욱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제대로 성장할 수 없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사랑을 많이 받으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실천하여 형제를 너그러이 대하고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차가운 자가 됩니다. 냉랭한 자가 됩니다. 말세 때는 사랑이 식는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사랑의 나라 천국을 마음으로도 누리지 못합니다.
원통한 마음이 있어도 예수님 뜻을 알고 사랑으로 풀고,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듯이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따라서 부
지런히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가 갈 길이 아닌데 싸우면서 그 길을 가려고 하면 해가 됩니다. 우리가 갈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데 그 길로 가지 않고 남아서 필요 없이 모여 싸웁니다. 그 땅을 차지
하려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망의 땅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은 살지 못할 땅입니다.
우리가 싸우면서 갈 곳은 오직 하늘나라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화평으로 대하고, 선과 공의로 대하며, 주를 사랑하
고 감사하며, 기도하고 찬양해야 됩니다. 이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이같이 천국을 침노하며 부지런히 가야 될 때입
니다.
같은 섭리사 형제끼리 싸움을 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모르고 오해하여 아군에게 총을 쏘는 자
와 같습니다. 알면 전혀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오직 마귀들과의 싸움입니다.
마귀들은 기도할 때 우리를 방해하니, 기도하기 전에 먼저 예수의 이름으로 몇 분 동안 기도하면서 마귀를 쫓아내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를 보호하는 천사가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했기에 마귀와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리고나서
기도해야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형제를 미워하기보다 자기 죄에 대하여 낱낱이 기도하여 용서를 받아야 됩니다. 자기 것을 먼저 해결해야 됩니
다. 그리고 형제·가정·교회·섭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기도해 줄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민족과 세계까지 감동되
어지는 대로 성령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항상 그럭저럭 해 버릇하면 절대 안 됩니다. 눈물로 간절히 해야 됩니다. 눈물의 기도는 꼭 하나님께 상달됩
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원통하고 괴로운 것과 사정들을 다 고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고하면 해결되지 않습니
다. 오직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삼위일체이시며, 또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 보혈로 우리의 생명들을 사셨으니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 많습니다. 알아도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도 그
러했습니다. 우리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더 많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길, 그 역사가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왔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와 천국역사의 구원길로 가는 신약역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 길로 가는 것입
니다. 우리뿐 아니라 지구 세상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은 이같이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고난에 참예하고 환난과 핍박에 참예하며 가는 길이 영광과 기쁨의 길입니다. 옛날에는 모두 순교하면서 갔습니다.
지금은 고난과 고통을 받으며 희생하면서 참고 견디며 주님만 향해 가는 것이 순교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이제 모두 자기 위치로 돌아가 자기 할 일을 충성으로 하기 바랍니다. 선생도 주님이 명하신 길을 가기 바쁩니다.
각 교회 교역자들과 모든 자들은 가인과 같은 자들의 말을 듣지 말고, 오직 교단과 일체되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일체되어 자기 신앙을 충실히 해야 될 때입니다. 아무 말도 듣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마음
을 쏟으며 가야 됩니다.
선생의 이름을 대며 그릇된 것을 주장하고 자기 뜻대로 설득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명예를 손상시키는 자들입니다. 나를 위하지 말고 오직 주를 위해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형제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미워하면 살인자가 되어 사망에서 마귀의 주관권에 산다. 지금도
이 같은 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형제들을 모여들게 하여 누가 잘못했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잘못된 위선자들이다.
섭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는 자들이다. 미혹하는 자들이다. 그들을 따르지 말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섭리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사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사랑은 위선자의 사랑이므로 안 받으신다. 그는 형제
를 미워함으로 사망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욕하고 경멸하는 지도자들은 사명이 상실된 자들입니다. 회개치 않는 자는 가인 같은 자로서 악을
행하여 섭리 생명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고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미워함으로 생명을 죽인 죗값을 시대의 것까지 담
당해야 됩니다.
우리 안에서 늘 평화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늘 우리끼리 싸움을 하니 우리가 기도하고 원하는 대로 안 해주시는 것
입니다. 잘되려고 싸움하면 안 됩니다. 잘되려면 절대 화평해야 됩니다. 형제끼리 원수 맺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평강이 충만하여 서로 모두 화목하기를 빕니다.
<2009년 2월 22일 주일말씀>
오직 독생자 예수님
본 문 요한복음 3장 16-17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독생자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모르는 자들이 있
으니 잘 인식하고 이해하고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만 인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인성이신 신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질그릇에 보화가 담겼다.」고 말했습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
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하늘의 사람으로서 보화입니다. 그 보화가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육신을 쓰고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의 영과 육신이 다르듯이 예수님은 세상 사람과 다
릅니다. 하늘나라는 영의 세상으로서 이 세상과 다르듯이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서 아이를 낳아 그 나라 국적으로 올려놓고 살면, 아이는 그 나라 사람 같지만 실상 그
씨를 볼 때 그 나라 사람이 아니고 본국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하늘나라에서 오셔서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이 살다가
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나라
천국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근본을 제일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깨우쳐 다시 생각나게도 하시고,
또 이 시대에 직접 말씀하기도 하시니 계속 들어 보기 바랍니다. 깨닫고 알고자 열심히 기도하면 성경을 통해 깨닫
게 해 주십니다.
산기슭에 물이 흐르고 포도나무가 뻗어 올라가서 잘 익은 크고도 큰 포도송이가 몇 송이 열려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옆에도 나무를 감고 올라가 포도송이가 몇 송이 크게 열려 있는데 그 열매는 아직 익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른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이때, “왜 저 포도송이를 따 먹지 않느냐.” 하기에 쳐다보니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포도 알 하나를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산에 열린 포도는 먼저 보고 따 먹는 자가 주인이기에 일어나 포도나무 밑에
가니 포도송이가 잡힐 정도로 손에 닿았습니다.
이때 말씀이 들려오기를 “나는 땅의 씨가 아니다. 하늘의 씨다.” 하였습니다. 내가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있으
니 반복하여 “나는 땅의 씨가 아니다. 하늘의 씨다.”라고 들려왔습니다. 이때 비로소 ‘아,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태
어났지만 세상 사람이 아니고 하늘의 사람이라는 말이구나.’ 하며 가슴에 확 와 닿게 깨달아졌습니다.
‘아! 이 포도나무 열매는 집 포도나무의 것이 아니라 산 포도나무의 것이듯이, 예수님도 세상 사람이 낳은 자가 아
니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낳으신 하늘나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심을 더욱 깨닫게 하시는구나.’ 하고 깨달아지면
서 성경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이 성경구절이 생각나게 해 주시면서, 예수님은 세상에서 났지만 하늘나라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
라』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땅에서 났지만 나는 하늘나라에서 났나니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어찌 하나님을 보
여 달라고 하느냐」 했던 말이 생각나지 않느냐.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아브라함보다 먼저 하
늘에 있었느니라.』 하고 이미 예수님이 세상에 살아 계셨을 때 하신 말씀이 떠오르며 이같이 깨닫게 해 주셨습니
다.
빌립은 그 당시 예수님의 영체를 보지 못하고 육신만 보니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영의 세계에서 예수님을 보고 “그는 전지전능하신 자라.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한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삼위일체이며 인간으로서 삼위일체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평생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말씀이 모두 떠올랐습니
다.
계속해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어 누가복음 1장 26절 이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장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네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온 백성을 구원할 자를 낳
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또 요셉에게도 나타나 “너는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마리아를
통해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나니 사람이 잉태한 것이 아니로다.” 하며 하나님이 명하신 바를 알려 주었습니
다.
마리아는 요셉을 만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하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장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이 말을 믿고 사가랴의 집에 가서 그 아내 엘리사벳에게 문안할 때
엘리사벳이 말하기를 “복중의 아이가 뛰노는지라,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람이 낳은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며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아담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함으로 죄의 자손을 만들었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품속에 있는 독생
자를 보내시어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대속물로 드려 그를 메시아로 믿는 자는 그
핏값으로 속죄되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을 보면 형제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볼 때는 독자가 아닙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따지는 혈통적인 독자가 아니고 하늘나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인 것을 더욱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명으로 볼 때 독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십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를 사명으로 따지면
그 사명이 독생자와 같이 인식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볼 때도 이 같은 인식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
님의 품속에서 오신 독생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인류의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아브라함·모세·이사야·에스겔·다니엘 등 각 시대의 중심인물이나 선지자들은 땅에서 난 자들입니다. 모세는 구약의
메시아가 아니라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자기 백성을 이끌어 육적인 구원을 받게 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
과 같은 하나님의 독생자, 메시아가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선지자·사도·사사·목사·교사들로서 그때그때 쓰임을 받는 예수님의 사역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이들과 함께하여 예수님의 일을 하니 상징적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이에 사람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사명
을 하여도 예수님의 사역자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통해 다 행하시나, 예수님의 뜻을 얼마나 알고 행하느냐에 따라
더욱 함께하시며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삼위일체로서, 만왕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재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너희가 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고 따르면 나의 제자요, 혹은 형
제요, 혹은 친구요, 혹은 하늘의 백성이요, 혹은 나의 신부로다.” 하시며 여러 가지 입장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땅의 씨가 아니다. 하늘의 씨다. 세상 사람들처럼 땅의 순리대로 사람이 낳듯 낳은 것이 아니니, 하
나님이 죄 없는 자를 죄 있는 자같이 보내어 그들의 죄를 대신하게 하여 세상을 구원하게 하신 것이다. 모두 내가
한 말을 다시 인식하고 깨닫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모두 읽어 보겠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육신을 입고 나타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니 영광이요 진리요 은혜이며,
독생자의 영광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시대 종의 역사가 끝나고 아무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조건을 세우거나 충성하지 못하여 아들이 된 것
이 아닙니다. 조건이나 충성이 필요 없이 본래부터 하나님의 품속에서 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조건을 세우고 충성
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는 것이라면 ‘인간들도 조건을 세우고 충성하면 된다.’는 말이 되기도 하기에 그럴 수 없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약역사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따른 자들은 아들과 같이 취급
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종은 아들이 하는 일을 모른다고 하시며, 육의 법 안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르
쳐 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충성하고 잘하면 종이 양자가 되기도 하고, 충성하면 더 좋은 직책을 받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시니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며 구세주이십니다.
요한1서 4장 15절을 보겠습니다.
(요일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
라』
인간들의 법과 하나님의 법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이 세상에 쓸 때는 시대에 따라 차원을 높이시고 달리
하십니다. 구약시대와 예수님이 오신 후의 법이 달랐습니다.
인간의 법은 한계에 처한 법이며 하나님의 법은 무한한 법으로서, 예수님은 하늘의 법을 이 세상에서 쓰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오셨기에 하늘의 법을 쓰고 그같이 행하면서 구원역사를 펴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한계를 정
하시고 그 안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법은 하늘의 뜻대로 무한히 행하게 하셨습니다.
고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서 병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들을 살려 주시
고, 바다 위로 걸어 다니시고, 파도를 명하여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또 인간으로서는 죄를 사할 수 없는데 메시아로
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어 영원히 죄 없게 해 주시고, 인간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셨
습니다. 마귀와 귀신을 마음대로 주관하시고 쫓아 내주셨습니다. 또 그가 축복을 주시면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무
때든지 하나님의 뜻에 의해 행하셨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여 죽이시고, 물을 명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
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전지전능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면 모세 때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히스기야 왕 때 이스
라엘 민족의 어느 한 명도 나가 싸운 자가 없는데 18만 5천 명의 대군을 하룻저녁에 성 밖에서 멸하여 없애 주셨습
니다. 이는 하나님만 행하시는 능력이며 하늘 법입니다.
땅에서 달리는 차들은 땅이 없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공중으로 날아다니니 땅이 없어도 상관이 없
습니다. 절벽이나 밀림의 제재를 받지 않고 상공으로 날아다니듯이 하나님의 법은 이 세상의 법과 달리 제재도 받지
않으며, 그 차원도 수억만 배 다릅니다.
하늘나라의 영들은 이 세상까지 순간 이동하여 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역자로서 우주를 지나 이 세
상을 매일 왔다 갔다 합니다.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빛으로 가도 150억 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하늘의
법과 하늘의 영들이 행하는 것은 인간들은 배우지 않으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식하듯이 하면 성경을 천 번 읽어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의 능력과 신의 능력으로 행하셨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도 사람들이 사
명을 받고 자기 능력으로 스스로 하는 것 같아도 영의 눈을 떠서 보면 예수님이 다 행하시어 고쳐 주십니다. 만일
사람이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병든 자들을 보고 불쌍해서 다 손대어 고쳐 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모두 행하시는 것입니다. 뜻도 보시고, 믿음도 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
지 보시고, 때와 시기를 따라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100% 예수님이 행하십니다. 천사들은 시중을 들어 줍니다. 인
간은 예수님이 행하실 것을 절대 믿고 간절히 기도해 주는 것뿐입니다. 병을 고쳐 주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일도 그
러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어도 영적인 소경이니 보이는 자만 중심하여 기도 해준 사람에게만 감사하다고 하며 영
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제부터 각자 주님께 기도하여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예수님이 보이지 않지만 직접 손대어
고쳐 주심을 알고 고쳐 달라고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병을 고쳐 달라는 간구뿐 아니라 모든 일도 그와 같이 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원하고 간구하는 대상체입니다. 보는 것만 중심하는 자는 육적인 신앙인입니다. 기도는 늘 해주니 여러분들
이 직접 예수님께 기도하여 고쳐 달라고 해야 됩니다. 무엇을 해 달라고 해야 됩니다. 사람만 의지하면 될 것도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알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하면 속는 것이고, 더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
다.
월명동 운동장에 세워 놓은 돌도 어디서, 어떻게, 어떤 사연으로 가져온 것인지 모르면 알지 못하는 자가 전하여 전
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사연으로 돌을 가지고 왔다고 하는 말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동네논에서 주인이 주어 빼 온
것을 확실히 알면 누가 달리 말할 때 올바로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독생자이심을 그저 막연히 알기만 해서는, 잘 모르는 자들이 이상하게 말하면 그 말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
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여 그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고 예수님과도 멀어지게 됩니
다. 형제나 자녀 취급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절대 근본으로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수많은 말씀 가운데 이 말씀도 기록했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
라』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삼위일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삼위일체가 되십니다. 땅의 인간들과 상관없이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를 더욱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
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라는 성경의 한마디 말씀을 통해 다시 완전히 인식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나는 땅의 씨가 아니다. 하늘의 씨다.” 하시면서 “이 말씀을 너희들 각자에게 해 주는 말씀으로 알
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왔고 인간처럼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알라.”고 했습니다.
이를 알고 기도해야 성경대로 예수님이 더욱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마귀가 빼앗아
갑니다. 깨닫는 것이 큰일입니다. 믿습니까? 이제 알겠지요?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고 했습니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예수님이 이 세상 사람처럼 여자의 몸을 통해 태어났기에 예수님을 세상 사람과 같이 인식하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극에서 주역을 맡아 영어도 유창하게 하고 한국말도 유창하게 하면서 연기를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
에는 한국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 사람으로 분장을 한 외국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의 몸을 통해 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
며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 이 세상 사람처럼 땅에 있지 않으시고, 그 영이 본국인 하늘나라로 가셨습
니다.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나에게 다시 보여 주시어 자세히 보았는데 이 세상사람 같지 않게 그 얼굴이 빛났습니
다. 그 입은 옷을 보니 세상의 옷을 입지 않고 빛나고 찬란한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으로 손을 흔들면서
“내가 또 온다.”고 하시며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오셨던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20대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전도하고 가르치면서 지금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열심
히 하늘의 일을 해 온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셔서 이같이 많이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전도할 때도 예수님이 늘 함께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늘 함께한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와 늘 함께하십니다.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그 아들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와, 독생자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예수
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2월 25일 수요말씀>
오직 독생자 예수님
본 문 마태복음 24장 29-31절, 37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고린도전서 15장 47-56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그동안 말씀한 것과,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께 듣는 자들의 머릿속에 말씀이 잘 들어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성경에서 내가
설교하고 말씀했듯이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를 많이 읽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 또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과 이야기를 해 주면 사
과 이야기만 해야지, 다른 과일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시면서 “그날 계시한 말씀은 한 가지니 내가 말한
말씀만 해야 머릿속에 쏙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짝 지어 나간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짝을 지어
나간다는 말은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항상 짝을 지어 나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4복음서를 읽어 보니 정말 그러했습니다. 단상에 서는 목회자들이나 가르치는 자들과 지도자
들도 이같이 해야 됩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여러 가지를 말하면, 듣는 자의 머릿속에 잘 들어가지도 않고
잘 기억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불필요하게 여러 가지를 말하는 것을 정말 안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구절은 너무 많으니 모두 집에 가서 찾아 읽어보기 바랍니다. 신학생들도 설교를 들으면
집에 가서 성경을 많이 찾아보고 연구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2000년 동안 우리 가운데 영으로 왔다 갔다 하시며 역사하신 예수님을 우리는 맞고 살았습
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땅에서 말씀을 통해 이루는 휴거가 아니라, 지금 말
씀하시는 마지막 공중 휴거, 재림에 대해서는 그 날과 그 시를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섭리사는 신앙생활
을 열심히 하여 빛 가운데 살라고 그동안 가르쳐 왔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실 때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또 나팔소
리가 날 때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2000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 살다가 죽은 자들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자들과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마귀들과 악한 자들에게 굴
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들과 마귀에게 짐승의 인 666을 맞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재림과 휴거에 대한 이해>
오늘 본문 말씀에도 나오듯이 말씀을 듣고 변화하라고 했습니다. 금년도에 예수님은 “너희는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
각하고 다 변화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와 소홀히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임박하게
앞두고도 변화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올해 말씀의 총 제목은 「새롭게 변화하라」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은밀히 말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배
워 온 일반적인 재림은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에 대해 잠자는 자를 깨워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부활이고, 혹은 거듭난 것이며, 혹은 구원이며, 혹은 지구 공중에서 맞는 하나의 휴거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구약에 비해 신약인들은 모두 거듭난 자들이고 구원받은 자들이며 부활된 자들이고 휴거된 자들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이 휴거는 천사장이 나팔을 불며 예수님이 마지막 공중 재림하실 때의 휴거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영과 함께 지상에서 이루는 휴거요 부활이요 거듭남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지상에서 육신을 가진 자의 마음천국과 삶의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으면 부활하리라. 무
덤에서 살아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24-29). 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 말을 믿고 거듭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1-15). 이를 볼 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하나의 휴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2000년 동안 신약역사는 땅에서 휴거를 해 왔고, 구원을 이루어 왔고, 거듭나 왔고, 부활되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시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도 부활되고 거듭나 예수님과 함
께 공중으로 올라가 거기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했습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부는 것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할 일이고,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으니 잘못 가르치
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많은 말씀을 하지 않고 오직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을 맞기 위해 깨어 있으라고만 했습니
다.
산에서 기도생활을 할 때 예수님은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내가 다시 온다.”고 하셨기에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 때는 이와 같이 온다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공중 휴거는 예수님이 오시면 지구 공중에서 육신이 산 채로 올라가지 않고 영으로 휴거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
다. 이는 오늘 본문에 다 나온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육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고전 15:50). 이
미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영적 부활을 말했고,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영과 육이 사망권에서 나오는 거
듭나는 부활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2000년 동안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자들이 영적으로 부활되어 그
영들이 살아나고, 또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도 주를 맞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
에서 예수님과 천 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구 공중이 아닙니다. 대기권 안에 오염된 이 지구 주관권에 속한 곳이 아
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세계를 보고 셋째 하늘에 있는 천국에 대한 말을 했습니다(고후 12:1-4). 그곳은 하나님이 살고
계시는 나라입니다. 우주 안에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우주 바깥의 세계입니다. 첫째 하늘은 ‘지구’라는 것을 다 알
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음천국과 복음의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하늘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둘째 하늘의 천국에 대하여 예수님께 물으니,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
서 주를 맞고 휴거되어 거기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이라고 했던 곳이 우주 안에 있는 천국, 즉 둘째 하늘의 천
국이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정말 신기하고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도 알고자 했는데 다만 지구 공중이 아니라고만 가르쳐 주셨습니
다. 우리는 그동안 마지막 재림의 때 휴거란, 사람의 육이 휴거되어 지구 공중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때가 되니 그곳이 둘째 하늘, 곧 우주의 천국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예수
님이 모두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가 쓴 ‘정말로 천국은 있습니다’라는 책을 보면, 둘째 하늘 공중에 천국이 있다고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시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어 쓴 것입니다.
우리는 특히 지난 30년 동안 예수님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섬기며 신부로서 단장하는 신
앙을 가르쳐 왔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실상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의 때를 전초해오고 준비해왔던 것입니다.
다른 어떤 종교인들은 재림주가 왔다고 하며 그를 따라가 역사를 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믿고 따르며 흔들
림 없이 예수님의 신부들로서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정말 꼭 붙잡아주셨기에 그들에게 딸려 가지 않은 것
입니다.
내가 산에 있을 때도 예수님은 많이 나타나시어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보이시면서 “내가 또 이렇게 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재림에 대해 잠을 자지 않고 귀를 기울여 왔습니다. 예수님이 사명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배우고 늘 전했습니다. 또 그동안 사람들이 메시아가 왔다고 했어도 구경하러 가지도 말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잡아 주어 다른 종교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재림에 대하여는
그 날과 그 시를 아무도 알지 못하니 그동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사도 시대에도 예수님이 곧 오신다, 속히 오신다고 하였는데 그 말씀은 무슨 뜻이었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2000년 동안 늘 개인에게 나타나 역사하고, 대 집회를 할 때도 와서 역사하지 않았느
냐.” 하셨습니다. 재림 때만 기다리지 말고 준비하고 예비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흠 없이 깨끗하게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날과 그 시는 모르지만 재림이 얼마나 가까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미 말씀
에도 나갔지만 해산하는 여자가 마지막 진통을 할 때와 같이 가까웠고, 타국에 있는 자가 온다고 하여 전화를 해 보
니 이미 출발하여 전화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이 가까웠고, 밤길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기척이 나듯이 가까웠다. 이제
말로는 더 가까웠다고 표현할 수 없이 가까웠다. 재림의 재난과 환난이 이미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번개가 쳤을 때는 이미 너 있는 곳에도 빛이 온 것을 알아라. 소리만 조금 늦게 들릴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빛에 있는 자에게는 그 날이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살전 5:4). 고로 예수님이 말씀하시어 전하는 것입니
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나에게 책 한 권을 주었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제목의 책으로 겉표지에 ‘토마스 주남
씀’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책을 밤새도록 읽어보았습니다.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썼기에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내게 깨우
쳐 주신 말씀이 이 책에 많이 나와 있다고 하며, 이 책이 너무 좋으니 모두에게 성경과 같이 가르쳐도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슴 뜨겁게 이같이 깨우쳐 주셨습니다. “네가 10년 전에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내게 말했을
때, 내가 쓰고 있으니 쓰지 말고 쓰려거든 구원에 대하여 글을 쓰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쓰고 있다고 한 책이 바
로 이 책이다.”
이를 깨닫고 너무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읽어 보라고 말씀하
셨기에 계속 읽어 보고, 곧바로 여러분들에게도 이 책을 사 보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주남이 쓴 책뿐만 아니라 메어
리 캐더린 백스터가 쓴 책도 보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어 이에 눈을 떠 보라고 한 것입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을 보니 이미 1996년부터 7년 동안 예수님
이 직접 천국을 보여 주시며 쓰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책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자세하게
보여 주시고 하나하나 확인하시면서 쓰게 하였기에 확실하고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성경에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2절에 예수님이 「내
가 땅에 있는 것을 말하여도 안 믿는데 하늘에 있는 것을 말하면 믿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을 보면 첫째, 천국은 실제로 있다. 둘째, 지옥은 있다. 셋째,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
러나 섭리의 목사들도 이 책을 소설책 읽듯이 한 번 읽고 만다고 예수님은 지적하셨습니다. “성경도 깊이 읽지 않
고, 너희는 나에 대한 인식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며 책망하셨습니다. 고로 다시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재림을 준비하라고 예수님이 사람을 통해 쓰신 책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하여 자세히 썼으니 가지 말
아라. 또 천국이 이같이 있으니 잘 믿고 오라. 내가 곧 간다.」고 하셨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린다를 통해 전한 말
을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니 심정 깊이 읽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과 천국에 대해 확실히 가르쳐 주면서 심정 태우며 내가 곧 재림하니 빨리 준비하라고 했는데도 지
도자들이 너무 관심이 없구나. 그러니 대충 읽다가 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음이 너무 상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나는 이 죄인이 문제이니 용서해 달라고 하며 깊은 사연의 기도를 했고 회개를 했습니다. 기도 중에도 예수님
은 모두 정신들이 빠져 살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상하게 한 일들을 모두 회개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영이 살아 있으면 충격
을 받고 깨달아 변화가 일어납니다. 육적인 자들이기에 그러합니다. 한 사람을 만나서 말씀을 전하더라도 육적인 자
가 하면 안 됩니다. 영이 살아 있어 정말로 변화를 받은 자가 말씀을 전해야 됩니다. 고로 아무나 말씀을 전하고 다
녀서는 안 됩니다. 신학도 개강을 중지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이 책을 읽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교단도 소식이 없습니다. 이 책을 특별히 읽고 가르쳐 줘야 됩
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늘 백성에서 끊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선지자들이 본 것이 환상이나 이상을 본 것 같은데 어떤 것이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너희가 볼 때는 환상같
이 보이지만 가서 만져 보면 실체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밤에 보니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서 있는 자가 있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이들이 무엇이냐고 천사에게 물으니, 하나님께서 이 땅이 평안한지 살피라고 보내신 자들이라고 했습니다(슥
1:8-11).그들은 하늘에서 온 사자와 말이었습니다.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하늘나라에는 백마, 홍마, 청마, 자마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예전부터 영들을 만져 보면 살도 만져지고 다 만져진다고 늘 가르쳐 주었지만 여러분들은 영계를 가지 못하니 모두
아리송하게 생각했습니다. 영들은 키가 큽니다. 천사들도 너무 큽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간혹 말
해 왔지만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보이는 사람만 중심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 동안 사람의 육신을 쓰고 나타나 역사하신 예수님만 인
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각종 사명자들과 부흥강사들을 쓰고 늘 나타나 일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목사나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을 쓰고 역사하시지만 그 사람이 예수님은 아니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
님보다 사람을 더 중심하면 우상을 섬기는 것이고, 인간을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가 쓴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라는 책도 2002년도에 섭리 사람들이 많이 보고 너무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잘 보고 간증하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자들이 영적인 성장을 하려면 영적인 말씀을 많이 읽어 봐
야 하고, 영적 사명자들이 쓴 글들을 많이 읽어 봐야 합니다.
30개론도 이제 말씀으로 나가니 단상의 말씀을 중심해야 됩니다. 금년도 주제처럼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해야 변
화가 일어나 예수의 재림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지도자들과 오래된 자들 중에 말씀을 깊이 안 보는 자들이 많습니
다. 그런 자들은 변화가 없습니다. 지극히 육적인 자들로서 영이 살았다 하나 죽은 자들이기에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보낸 마지막 선지자를 통해 한 말을 모두에게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린다 뉴커크와 토마스 주남을
통해 예수님이 재림하여 오셔서 어떤 자를 신부로 데려가 휴거시키시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재림을 앞두고 마지막으
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듣고 복사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여러 번 읽고 자신이 예수님의 어느 법에 걸리는지 자
세히 보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하신 말씀을 듣겠습니다.
(‘린다 뉴커크’가 말한 28개 항목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가세요.
<2009년 3월 1일 주일말씀>
기름을 준비하여라
본 문 마태복음 25장1-13절
주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어떻게 하여야 예수님이 하시는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을 마음 깊이 잘 듣고, 감동되어 행할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여
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육에 속하고 세상에 속하여 사는 자는 아무리 긴박한 말씀과 좋
은 말씀을 해 주어도 그 말씀이 마음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영에 속하고 나 예수에게 속한 자는 늘 기도
하고 구하여 영적인 자가 됨으로 말씀을 잘 듣고 귀를 기울이기에 말씀이 깊이 들려 성령에 감동되어 실천하게 된
다.”고 했습니다.
많이 배워 알라고 많이 가르쳐 주면 어떤 것이 그날 말씀하신 계시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 가지만 가
르쳐 주고 끝날 것이니 이제는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야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이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을 수 있는지 자세히 말씀해 줄 것이니 잘 들으라고 하
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열 명의 처녀들이 신랑을 맞기 위해 기다렸는데 다섯 명은 맞고, 나머지 다섯 명은 미련하게 기름
을 준비하지 못하여 맞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실상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준비하면 맞을 수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재
림을 맞지 못하게 됩니다. 기다리던 신부가 신랑을 맞지 못하면 버림을 받고 인생이 슬픔으로 끝나고 말게 되듯이,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주님을 맞고 모시지 못하면 육과 영혼이 영원히 슬픔으로 끝나고 말게 됩니다.
세상에서 신랑이 신부를 맞고 신부가 신랑을 맞고 살면 육신이 죽을 때까지 갖가지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한평생 살
게 됩니다. 주님을 맞고 살게 되면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이 영원토록 하늘나라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하늘나라는
공기로 호흡하지 않습니다. 영의 몸이기에 공기와 상관없이 살고, 그 어떤 것도 썩는 것이 없고 죽는 것도 없습니
다. 나무나 생물들도 죽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창조한 육신 세상으로서 자기 영과 함께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성장하는 세계입니
다. 그러나 하늘나라 천국을 모르고 하나님과 예수님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세상에서 끝나고 마는 이 세상이 마치
천국이나 되는 것처럼 전부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해 놓고 살아도, 아무리 자기가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을 누리며 원하는 대로 살아도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곧 하늘나라를 보고
말한 것입니다.
자, 이제 본문에 나온 주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복음을 전하
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4000년 동안 너희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
이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들은 마치 열 명의 처녀들과 같다고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나머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메시아를 기다리기는
했는데 맞지 못했습니다.
특히 구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의 그릇된 사고와 교만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이단시하고 죄인이다, 혹은 적그리스도다,
혹은 사람이 무슨 인간을 구원시킬 수 있느냐, 혹은 그렇다면 네가 하늘에서 왔다고 하는 것이냐 하면서 예수님을
맞지 못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못 맞은 자들입니다. 기름은 성령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을 보면, 성령을 기름 붓듯이
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신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는 신랑 되시는 주님을 맞았습니다. 지
극히 육적으로 생각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사도 요한, 사도 바울 등 많은 제자들과 그 시대 신앙생활을 하지 않던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말씀
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이 맞다.”고 하며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고 착하게 산 자들은 예수님
의 말씀에 따라 죄도 회개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신, 성령이 함께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으니 물로 거
듭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그리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
다. 그렇지 않으면 못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물이었습니다. 구시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불신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로 물로 거듭날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먼저 물로 거듭남을 받고, 또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 주
님은 말씀의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꿈에 계시로 보일 때도 말씀을 들으면 목욕하는 것이나 폭포수에 있는 것으로 보
이기도 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거듭나야 됩니다.
그 시대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또 회개하고, 형제들을 서로 사랑
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어린아이같이 따라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성령을 기름 붓듯 해 주심으로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 당세에 이 비유의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 깨달았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보이셨고 사람들도 그 모
습을 다 보았지만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니 성령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영의 눈과 마음의 눈을 뜨지 못
하여 믿지 못한 것입니다.
또 이어지는 말씀을 듣겠습니다.
2000년 동안 신약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회개하고 서로 화평케 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께 순종한 자들에게는 성령이 물 붓듯이 역사해 주셨고, 예수님의 말씀은 물과 같이 역사했습니다. 고로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맞고 신부로서 신랑을 맞은 다섯 처녀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제대로 믿지 못
하고 형식으로 믿는 자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미련하여 신랑을 맞지 못한 나머지 다섯 처녀와 같
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대마다 사역자로 보낸 자들을 통해 주님을 맞게 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예수님이 사람을 통해
행하시는 것을 모르고 유대인들처럼 또 거부하고 불신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우리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나타나셨지만 그들은 외면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시어
우리를 통해 복음을 전했지만 역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습
니다. 우리들은 갖은 핍박을 받으며 나를 따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모두 잘했습니다. 성
도들의 인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5장 5절에 신랑이 더디 오니 모두 졸고 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 예수
님이 오신다고 말씀하신 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부터 역사를 펴 오시면서 지금까지 계속
예수님을 맞는 역사를 해 왔습니다. 현 시대까지 해 왔습니다.
꼭 마지막 재림만 기다리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인생은 자기 사는 기간이 있으므로 자기가 이 땅에서 사는 기간 안
에 신앙의 처녀들로서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이 기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습
니다. 이 땅에 살면서 부지런히 행하며 살아도 부족합니다.
2000년 동안 각 시대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고 죽은 자들은 영계에서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에 예수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 주님을 맞기 위해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천사장이 나
팔만 불면 이들은 다 일어나 부활이 됩니다. 특히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자들과, 우상을 절대 섬기지 않
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자들과, 환난과 핍박에 굴하지 않은 자와, 마귀에게 굴하지 않은 자와, 충
성한 자들의 영이 부활됩니다.
이들이 먼저 부활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맞게 됩니다. 이 공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중이 아니고 예수님이 예비하신,
본래 존재하는 둘째 하늘의 공중 천국입니다. 이곳은 우주 안에 있는 천국으로서 여기서 천 년 동안 주님과 함께 혼
인 잔치를 하게 됩니다(계 20:4-5).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재림을 맞고 살았던 자들도 열 처녀 중 다섯 처녀와 같이 성령
의 기름 부음을 받아 주님을 맞고 재림 때 휴거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혈과 육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고
했으니 역시 영이 변화되어 휴거됩니다.
미련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지 못한 자들은 지상에 남아 환난과 마귀들 속에 살아야 됩니다. 성경말씀대로
천 년이 다 차도록 영이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2000년 동안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 때
까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지 못하고 기다리는 기간과 같습니다. 깨닫겠어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열 처녀 모두 신랑을 맞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모두 신랑이 온 것은 보았는데 다 맞지는 못
했습니다. 이유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첫째, 그 시대에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신은 일체이
시므로 성령을 받은 자는 성자가 온 것을 성령으로 알게 됩니다. 고로 주님이 도적같이 오셔도 맞을 수 있는 것입니
다. 여러분들은 지금 재림 시대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메시아로 시인해야 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진정으로 슬피 울며 자기 지은 죄를 깊이 회개해야 됩니
다. 그리고 형제들과 화해하고 화평하며 주의 말씀에 충성하며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임박하게 앞두고 선지자 토마스 주남을 통해 쓴 글과 사명자 린다를 통해 전한 말씀대로 자기에게
특히 해당되는 것을 회개하고 행해야 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회개할 것이 다 나와 있지만 범위가 넓어서 외우
기 힘듭니다. 린다를 통한 말씀은 이 시대 사람들이 재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간단하게 전한 말씀이니, 복
사해 놓고 잊지 말고 그대로 기도하며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에게도 “내가 한 말이니 이대로 꼭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속히 전해 주라.”고 하여 전해
준 것입니다. 이같이 하면 물 붓듯 부으시는 성령의 기름을 받아 이 시대에 신부들로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게 됩니
다. 우리 섭리사는 지난 30년 동안 깨어 있는 신앙을 해 왔기에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자들이 신랑이 늦게 오니 졸고 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마치 먼 길 간다고 새벽 일찍 깨워
놓았을 때, 순간 바로 안 가면 또 잠을 자는 격과 같습니다. 일찍 깨운 자는 그만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새벽
3시와 4시부터 일찍 깨운 자는 부엌에 나가서 밥을 하고 짐을 싸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늦게 깨운 자는 옷
입고 자기 짐 챙기고 따라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주님이 오신다고 30년 전부터 외쳤습니다. 우리는 이제 듣고 외칩니다. 만일 선생도 30년 전부터 재림에
대하여 마음 설레게 외쳤으면 모두 거기에 몰두하느라 섭리역사를 이같이 키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재림에 대해 외치지 못하게 하시고, 영과 육의 준비로 공적을 세우고 전도만 하게 하셨습니다. 신약 때 오신
초림주도 제대로 맞지 못하고 어떻게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먼저 나를 맞는 일을 하라.”고 예
수님이 나를 가르쳐 주시어 여러분들을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먼저 이 세상에 살면서 생활 가운데 예수님을 맞고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마지막 주의 재림을 맞을 수 있습니다.
먼저 삶 속에 변화가 일어나고 마음과 행실이 변화된 자가 깨어 주의 재림을 맞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행
하고 그같이 가르쳐 줘야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일찍 들은 자들은 졸고 자고 있습니다. 늦게 들은 자들은 이제 더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그대
로 준비하여 예수님을 맞으면 됩니다. 잠도 일찍 깼을 때 할 일을 안 하면 졸고 또 자게 됩니다.
섭리역사는 지난 30년 동안 환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가정과 민족에서, 또 종교적으로 모진 핍박들을 당함으로 신
앙의 잠을 잘 틈이 없었습니다. 맞지요? 고난으로 인하여, 세상이 버림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더 찾게 되고 하나님을
더 찾고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금년도 말씀과 같이 새롭게 속히 변화
해야 됩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 방은 자기가 깨끗이 청소해야 됩니다. 방 청소, 부엌 청소, 응접실 청소,
화장실 청소, 정원 청소가 각각 다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몸을 씻어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고, 옷을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고, 마음을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고, 행실을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고, 입과 말을 깨끗케 하는 것이 다르
고, 눈이 제대로 보는 것이 다르고, 귀가 제대로 듣는 것이 다르고, 입이 제대로 전하는 것이 다릅니다. 회개도 분명
마음 회개가 다르고, 행실 회개가 다르고, 영적 회개가 다르고, 형제들과 맺힌 것을 푸는 회개가 다르고, 민족 회개
가 다르고, 섭리사 회개가 다릅니다.
자기가 지은 죄는 진정 회개한 것만 없어집니다. 그러나 육적으로 생각하면 생각나지 않습니다. 깨닫고 슬피 울며
통회 자복해야 알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에 깊이 들어가서 하나하나 회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회개되었는지는
예수님이 깨닫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었어도 깨끗이 씻지 않으면 몸은 더러운 것입니다. 그러니 각 항목마다 조목조목 깨끗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정결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절대 신부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마지막 재림을 맞기 위해 지난 30년 동안 육신이 영과 함께 지구라는 공중에
서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펴 온 구원역사를 더욱 새로운 차원으로 하면서 왔다. 곧 이같이 해 온 것이 아니냐.
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른 것이 구원이요 부활이요 거듭난 것이요 하나의 휴거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이 지구 공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펼쳐져 왔습니다. 또 우리 섭리사는 주를 믿고
이 세상에서 구원받고 거듭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이를 더욱 확실하게 전해 왔습니다.
이제는 오늘 말씀과 같이 마지막 약속대로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을 맞는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해 재림에 대하여 말
씀을 듣고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듯이, 말씀을 듣고 물로 거듭나고 회개함으로 물 붓듯 부으시는 성
령의 기름을 받고 주님을 맞아야 됩니다. 깨끗해야 하나님의 거룩한 신이 임합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 앞에 인도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온전히 깨닫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에 발맞추어 가야 됩니
다.
기도 중에 보니, 밭에는 밀과 보리가 있는데 푸른 빛과 노란 빛이 섞여 익어 가고 있었고 논에는 벼가 무성하게 자
랐으나 이삭들이 다 못 커서 작았습니다. 모두 지금의 광경을 보여 준 것입니다. 교역자들과 지도자들이 더욱 힘써
기도하고 열심히 해야 됩니다.
섭리에서 순수한 자들은 밭의 밀과 보리처럼 무르익어 가고 있으나 오래된 자들이 오히려 벼는 컸는데 벼 이삭들이
무르익지 못하고 이제야 이삭이 올라오는 것도 많았습니다.
빨리 깨닫고 어린아이와 같이 행해야 됩니다. 변화에 발맞춰야 됩니다. 말씀에 따라 호흡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듣
고 따라 행해야 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자는 마귀의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주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기름 부음이 이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자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3월 4일 수요말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본 문 마태복음 25장 13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지난 주일에는 열 처녀에 비유하여 재림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신랑을
맞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모두 잘 들었지요?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는 주님을 맞는 자로서 정말 꼭 필요한 말씀이니 깨닫게 해 주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흔히 잠에서 깨어 있으라고 할 때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인들은 신앙의 잠을 자
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근본은 예수님을 맞는 데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도 깨어 있어
야 신랑을 맞는다고 결론지어 말씀했고, 깨어 있어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수 있다고 결론적으로 묵시의 말씀을 전
했습니다.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잘 들어 봐요.
그동안 예수님은 선생을 통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며 여러분들이 신앙의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게 해 왔습니다.
그래도 신앙의 잠을 자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만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늘 “내가 말한 것을 풀어 속 시원히 말해 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만 믿고 신앙생활만 한다고 해서 깨어
있는 자가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깨어서 날마다 거기 해당되는 행실을 하면서 사는 자’가 깨어 있는 자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12절까지는 신랑을 맞기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는 신부에 대해 말씀하면서 13절에는 깨어 있으라
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했으면서 마지막 한 가지, 신랑이 온 것은 보았는데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맞지를 못
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도 직접 복음을 전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았어도 맞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
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했으며 이방인들도 예수님에 대하여 소문을 듣고 얼굴을 보기도 했지만, 깨어
있지 못하여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지도 않고 그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에 대하여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구시대에 매여서 신앙의 잠과 자기 주관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습
니다. 형식과 외식과 온전치 못한 교리로 인하여 신앙의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 예수님과 제자들
이 새롭게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으니 변화를 받지 못했고 예수님에 대하여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외친 대로 회개한 자들은 물 같은 말씀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영이 거듭
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들도 말씀을 듣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육이 태어나듯이 영이 다시 태어
나는 것입니다. 영이 변하여 새 영이 되는 것입니다. 믿고 행하며 따라야 거듭나고 부활됩니다.
지금까지 2000년 동안 메시아에 대하여 깨어 있는 자만 주님을 맞았습니다. 말만 깨어 있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
대해 목숨을 다해 몰두하는 자가 깨어 있는 자입니다. 주를 믿고 신앙생활만 한다고 해서 깨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영적인 현상을 보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계 3:1)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주로, 자신을 통치하는 왕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과 삼위일체의 존재자로 믿고 예
수님과 일체되어 살면서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사는 자가 깨어 있는 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이 구원주이십니다. 나머지는 주를 믿게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선지자, 사도, 사사, 중심인물들이 곧 주를 믿게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신앙으로 깨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자들을 근본적으로 깨어 있
다고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마 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완전하고 온전하게 주님을 최고로 생각하고, 삶을 주님께 맡기고 자기를 중심하며 살지 않고 주 뜻대로만 사는 삶이
근본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삶과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란, 세상 누구보다 주님을 중심한 삶을 말합니다. 누구보다도 주님을 가장 근본
으로 놓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중히 여기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오직 주님만 위해 사는 삶을
말합니다. 선생이 늘 가르쳐 준 대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과 주님만 사랑하며 살고 형제들에게도 그같이
대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곧 오시는 재림에 대해 온전히 깨어 있는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깨어 있는 자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섭리사는 선생부터 시작하여 특별히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모시는 삶에 몰두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주님을 맞아야 됩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사명자를 통해 말씀한 것들(28개 항목)을 말씀 중에 전해 주었지요?
하나하나 듣고, 복사하고, 기록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각자에게 한 말이니 꼭 행하라고 했습니다. 모두 수시로 보면
서 하나하나 회개하고, 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야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생명과 바꿀 수 없는 말씀입니다. 정신 차리고 긴장하며 깜짝 놀라 주를 대하는 것이
모든 자의 도리입니다. 선생이 말해도 이제 긴장도 안 합니다. 예수님의 심부름꾼의 말을 안 들으면 그를 보내 주신
주님의 말씀도 안 듣는 자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는 자만 그 말씀(28개 항목)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지난 30년 동안 예수님께서 선생을 통해 가르쳐 오고 성
경 여기저기에 나온 말씀을 집중적으로 요약하여 한눈에 보이도록 주님이 사명자를 통해 새롭게 전해 주신 말씀입
니다. 긴장하고 정신 차려 잘 보고 하나하나 회개하여 마지막 재림을 준비하라고 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풀어 줄 때 빨리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 다음 말씀을 하면 깨닫고 속 시원히 행할 수가 있습니다. 가물
때 물을 주면 그 순간 빨리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육적인 자는 선생이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전해 주어도
빨리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동안 신앙의 잠을 자고 육적인 신앙생활을 해 왔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육적인 것이 무엇이고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됩니다. 영에 속한 자는 신령한 자로서 예수님과 일체된 자입니
다. 육에 속한 자는 세상과 보이는 사람을 중심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항상 영이시니 우리가 잘 볼 수 없습니다. 보
이는 사명자와 사역자들을 통해 행하십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나 사명자가 아니면 나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할 길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명을 주어 행하는 자라도 예수님에 대하여 깨어 있지 않고 항상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놓는 생각이 깨어
있지 않으면 제 스스로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님이 행하신 것을 아는 자는 주님에 대하여 깨어 있는 자입니다.
선생의 시에서도 늘 말했듯이 주님이 오셨다 가셔도 모릅니다. 영의 눈을 떠서 보면 매사에 주님이 행하십니다. 우
리의 마음이 감동되게 하여 주님의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지난주에는 교역자들이 모여 말씀을 듣고 회개기도 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그중에 여자 목사님 한 분이 교역자 모
임을 오는 길에 순간 영의 눈을 떠서 보았는데, 사람들이 모여 회개기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이 오셔서 한 사
람씩 손도 잡아 주시고 안아 주시며 은혜를 주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나, 혹은 몇 사람의 사명자에게 보여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전체에게 말하여 깨우쳐 주라고, 보여 주고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온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말씀하실 때도 사명자나 선지자들에게만 재림에 대하여 보여 주시고 깨우쳐
주신 후에 그들로 전체에게 외치게 하십니다. 온 세계 모든 자들에게 일일이 다 보여 주지 않으시고, 사명자들에게
만 보이고 깨우쳐 주어 사명자들을 통해 듣게 하십니다.
사람에게 많은 지체가 있지만 눈으로만 보고 전달하여 온 지체가 알게 되고, 혹은 머리로 깨닫고 외쳐 온 지체가 알
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온 지체 중에 눈이나 마음과 같은 사명을 하는 자를 깨닫게 하여 외치게 함으
로 온 지체가 알고 행하게 하십니다.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 놓고, 주님은 지켜보십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지요? 그러므로 깨어 있
어 듣고 순종하라.
주님이 자기에게 특별히 보여 주신 것은 전체에게 말해 주라고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자기만 보고 말라고 보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본 자가 사명자이니 실감나게 외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 자의 책임분담입니다. 선생도 이 일에
책임자이니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잘 듣고 깨달아 본래대로 외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오늘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깨닫고 알게 해 주고 있으니 잘 듣기 바랍니다. 깨어 있는 자가 주
님의 말씀을 받아 전해야 실감나고, 능력 있고, 생명력 있고, 가슴에 와 닿게 사실적으로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주님께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자. 결혼에 깨어 있는 것이란, 결혼에 대해서만 밤낮으로 생각하고 매일 결혼할
대상만 생각하며 매일 결혼에 해당되는 것만 준비하고 행하는 일이다. 이것이 결혼에 대해 깨어 있는 자다. 이와 같
이 나의 재림에 깨어 있는 자는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까지 지금부터 재림을 매일 생각하고, 주 예수만 그리워하고,
기도하고, 외치고, 성경 보고, 매일 재림에 해당되는 말씀을 듣고 소식을 듣고 깨끗이 사는 자다.”
깨어 있는 자란 무엇인지 더욱 깨닫고 알았을 것입니다. 섭리사 각 분야에 해당되는 대로 거기 깨어 있어야 일을 제
대로 할 수 있고, 실수 없이 하게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자니 공부하는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시험공부에 깨어 있어야 시험에 들지 않
고 제대로 공부하여 합격 합니다. 일반 공부는 학생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일반 공부만 해서는 시험에 깨어
있는 자가 아닙니다. 운전하는 자는 운전을 하되, 특별히 사고에 깨어 있어야 사고 나서 다치지 않고 안타깝게 죽지
도 않습니다.
주님은 “삶에 늘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자기 집에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니 손님에 대하여 깨어 있어야 천사 같은 귀한 손님을 알고 맞게 됩니다. 모르면
언제 왔다 갔는지 모릅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너희 집에도 귀한 사람이 왔다 갔지?”
“아니. 안 왔다 갔는데...”
“우리 집에도 왔다 갔으니 너희 집에도 안 갔을 리가 없는데...”
“아! 며칠 전에 길에서 누구를 만나기는 했어. 그 사람이 무슨 손님이야. 그냥 아는 정도의 사람이야.”
“야~ 친구야. 너는 정말 사람을 볼 줄 몰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구나. 나는 그 사람에 대해 깊이 보고 집에
초대해서 잔치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이런 집에 산다고 하면서 80평짜리 집 한 채를 나에게 줬어. 그래서 나는 다
음 달에 이사 가게 되었어.”
이와 같이 모르고 못 맞지 말고 주님의 재림에 대해 깨어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어야 압니다. 주님이 누구를 통해
오셨다 가셨는지 깨어 있지 않으면 모릅니다. 주님은 꼭 사람을 통해 먼저 오셨다 가십니다.
마지막 재림을 준비할 때를 위해서 2000년 동안 예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해 오셨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천사장
이 나팔을 불 때 직접 오십니다.
지난 30년 동안 선생을 통해, 혹은 여러분들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 주님의 역사이니 주님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했어도 우리는 몰랐습니다. 악평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주님이 마지막으로
오실 때 맞지 못합니다. 그같이 영적으로 어두운 자가 어떻게 주님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씀을 듣고 변화해
야 됩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면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야 됩니다. 신령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됩니다. 성경
말씀을 자세히 세밀하게 읽어야 주님이 역사하여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 하신 말씀을 근본으로 깨닫게 하시고, 천사
장이 나팔을 불며 재림하시는 역사를 깨닫게 하시고, 그 날이 도적같이 오지 않게 빛에 속한 자가 되게 해 주십니
다.
신약성경을 다시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회개에 깨어 있어야 됩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알고 회개해야지 누가 알고
회개합니까. 사람에게 지은 죄는 사람에게 회개하여 용서받고, 하나님과 주님께 지은 죄는 하나님과 주님께 회개하
여 용서를 받아야 된다고 늘 가르쳐 왔습니다. 이는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고로 선생은 섭리사를 펴 오다가 여러분들이 할 일을 못한 것과, 선생이 시킨 것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행한 것을
속상하지만 다 용서해 준다고 했습니다. “네가 형제의 죄를 용서한 것같이 나도 너를 용서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
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했습니다.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주님께 할 일을 못 한 것은 회개하여 그 죄를 용서받아야 되기에 반드시 회개해야 된
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에게 잘못한 것도 회개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용서받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
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그저 오신다고 나가 맞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따라 “어린아이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진정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 슬피 울며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하나 기억나는 대로 회개해야 됩니다. 겉으로 육적
으로 회개할 때는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 생각나지도 않고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하나하나 사정을 고하면서 영적인
심정으로 깊이 들어가 기도하면 다 기억이 납니다.
주님은 그 사정도 이해하시고, 죄를 위해서 오셨고, 보혈을 흘려 대신 죽어 주셨으니 진정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
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꼭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용서하시면 그 증표로 우리를 깨닫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회개에 대하여 분명 이치를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몸 씻는 것 다르고, 옷 갈아입는 것 다르고, 방 청소 다르
고, 화장실 청소 다르고, 부엌 청소 다르고, 정원 청소 다르고, 쓰레기통 비우는 것 다르듯이 행실로 지은 죄, 마음
으로 지은 죄, 영으로 지은 죄, 십계명을 범한 죄가 다르고 이성의 죄, 전도하지 못한 죄, 주님을 최고 중심하여 살
지 못한 죄, 믿지 못하고 행한 죄, 사명자를 막고 하나 되지 못한 죄가 다 다릅니다,
진정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며칠 동안 기도해 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절대 믿지 못한 죄, 형제들을 미워하여 싸
운 죄, 주님을 멀리한 죄, 세상을 좋아한 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한 죄, 헌금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 시기 질투한
죄 모두 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시기 질투를 당한 자는 몰라도 시기 질투를 한 자는 압니다. 고로 자신의 죄는 자신
이 회개해야 됩니다.
이 같은 죄를 짓고도 모르는 자가 있기로 선생이 직접 편지하여 말하려 하니 주님은 “말씀이 나갔으니 스스로 알게
하라.”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음모한 것, 욕한 것, 은혜의 생활을 하지 못한 것, 관리를 게을리 한 것,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신경
쓰지 않은 것, 그럭저럭 행하며 사명을 소홀히 한 것, 자기 교회를 잘 지키지 못하고 생명들을 강하게 다룬 것, 설
교할 때 심혈을 기울여 하지 않은 것, 화목하지 않은 것, 탐내고 욕심 부린 것, 이웃과 형제를 무시한 것, 교만한 것
등 아직도 수십 가지나 회개할 것이 더 있습니다.
‘구원의 말씀’에서도 죄의 종류에 대해 100가지 이상 말하며 지적했습니다. 다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야 성령의 기
름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십니다. 그래야 영이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영이 다시 태어납니다. 그 상태의 영으로는 절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합니다.
회개만 한다고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따라 행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으로 우리들의 영이 새
롭게 태어나야 됩니다. 이러한 자가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자입니다.
지도자라고 하면서 더 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지도자가 소경이니 따르는 자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지도 큰 죄
입니다. 지도자가 무지하면 따르는 자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를 영적으로 보면 마귀가 주관하고 따라다닙니다. 이를 영의 눈을 떠 보는 자는 말도 못 해 줍니
다. 말해 주어도 ‘네가 잘못되었다.’고 하기에 좋은 것만 말해 주는 것입니다. 미가야 선지자처럼 불길한 예언을 하
면 불신하기 때문입니다.(대하18장)
모두가 다 알라고, 주님이 말해 주라고 하여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선생에게는 욕하지 않고 선생은 불신하지 않기 때
문입니다. 하지만 육적인 자는 이렇게 말씀을 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설교도 3~5시간씩 해 오면서 말씀을 많이 알려 주었습니다. 듣는 자는 귀가 닳고, 전하는 자는 혀
가 닳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재림에 깨어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동안도 항상 예수님이 선생을 통해 전해 주신 말씀을 듣고 모진 환난 속에서도 잘 따라왔듯이, 지금 또 당하는 극
한 환난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말씀을 듣고 굳세게 서야 합니다. 금년도에 예수님이 은밀히 주신 총 주제 『새
롭게 변화하라』는 말씀처럼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됩니다.
우리는 환난을 받고 고통을 당해 왔지만 행복한 자들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주님을 맞도록 마음에 근신
하고 긴장하여 행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은 환난이 없으니 일반 신앙에 만족하며 때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눈을 뜬 자가 인도하면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두 시대의 눈을 뜨기를 축원합니다.
2007년에는 섭리 모든 자들에게 1년 동안 말씀을 한마디도 전할 수 없었고, 또 소식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선생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감히 아는 자가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한 부자가 지옥에 가서 지옥의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 이 소식을 자기 형제들에게 전하여 절대 지옥에
못 오게 해 달라고 애원했는데 마치 그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한마디만 소식을 전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전하지 못하
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에 대해 한마디 소식이라도 듣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마디 소식도 못 들었습니다.
그때 이미 예수님은 사명자를 통해 말씀으로 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부자 식구들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니 못 전한
다고 했습니다.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지옥에 가면 누구든지 오고 가는 소식을 전혀 전하지 못합니다.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한마디만 전해 달라고 하여도
그 같은 하나님의 법이 없기에 전하지 못합니다. 지옥에 가면 왜 지옥에 갔는지 한마디로 훤히 알게 됩니다.
선생은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깨달았고,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
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과 같은 것임을 영원히 귀하게 깨달았습니다.
모든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줘야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할 말을 사랑하는 자에
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선생은 정말 깨달았습니다. 1년 동안 아무 소식
도 듣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지옥의 고통을 영으로 육으로 받았습니다.
지옥에 대해 말할 테니 들어 봐요. 지옥은 소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천 년이 가도
희망이 없으니 좌절과 불행 속에서 절망의 고통이 뇌 속과 뼛속을 불태웁니다. 고통을 받으며 사형장에 서 있는 것
이 연속되는 세계입니다. 실 한가닥만큼도 돕는 자가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만일 지옥에서 만 년 있다가 나갈 수 있다고 하면, 오로지 그 희망에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옥에
가면 1억 년을 있어도 나간다는 희망이 머리카락 하나만큼도 없습니다. 그러니 좌절과 절망뿐이며 만 가지가 다 고
통입니다.
찬송가에 나온 대로 ‘나의 기쁨과 나의 소망은 오직 주님’입니다. 이 찬송가를 자기 것으로 삼고 불러야 됩니다.
지상에서 주님만이 희망인데 주님을 잃었기에 지옥에 가서 희망이 끝난 것입니다. 지옥에 간 자는 1억만 년이 가도
희망이 없습니다. 육신이 살았을 때 자기의 희망인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찾지 않고 믿지 않습니다. 인생의 희망
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기쁨도 주님뿐입니다.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라는 희망을 잃으면 사는 그곳이 산 지옥입
니다.
그때 주님께 내가 지금 지옥 견학을 왔는지, 영원한 지옥에 왔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
습니다. 육신이 지옥에 왔는지, 영이 왔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지옥의 고통을 받으니 내 영이 지옥에 왔구나. 육
신도 고통을 받으니 지옥은 틀림없구나.’ 했습니다. 희망이 없으니 한마디로 말해서 막연했습니다.
지옥은 위로자가 없습니다. 지옥은 후회만 하는 세계입니다. 지옥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또 믿어도 회개하지 않은
자가 가는 곳입니다. 지옥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만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완전히 행해야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지옥은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갑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절대 믿지 않은 자들이 갑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고,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지옥과 천국으로 운명이 좌우됩니다. 지
옥에 간 부자와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하나의 비유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보시고 저 지옥에 가지
말라고 특별히 생중계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었어도 형식적으로 믿은 자들은 믿
고도 행하지 않은 자와 같이 제대로 믿지 않은 죄로 지옥에 간다고 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가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옥이 있는지 몰라서 온 자들은 너무 후회
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대해 미리 알면 갈 자가 없습니다. 지옥에서는 세상에서 지은 죄보다 수천만 배
나 더 그 대가를 받으니 너무나도 원통해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니 지옥에 가지 않도록 지상에 살아 있을 때 조금이라도 죄를 지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삭개오처럼 회개해야 됩
니다. 죄를 지으면 삭개오처럼 4배나 갚으면서 회개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지옥은 성경에서 말한 것보다 실제로 겪으면 수만 배나 더 고통스럽게 존재합니다. 지옥의 사자들은 인간이 세상에
살 때 죄를 짓게 한 후에 지옥으로 끌고 와서는 왜 죄를 지었냐고 거짓말을 합니다. 지옥의 마귀들이 하는 말은 천
가지가 다 거짓말입니다. 참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 말하려면 지옥 마귀들의 행위를 알고, 지옥에 간 자들과 같이 고통을 겪고 말하는 것이다.
너는 말씀할 때 그 처참함을 말해 주어라. 영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말해 주어라. 지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
면서 겪는 생활 속의 고통도 하나의 지옥인 것을 가르쳐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주님께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외치겠다고 했습니다. 지옥론을 읽어
도, 천국론을 읽어도, 지옥에 갔다 온 자가 말해도 모릅니다. 겪어야 와 닿습니다. 육적 지옥을 겪은 자는 지옥에 대
해 제대로 가슴 뜨겁게 가르쳐 주며 계속 말해 줄 수 있습니다. 반드시 보고 겪은 자가 말을 해야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도록 깨어 있어 주님을 맞아야 영원한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휴거되지 못하면 지상에서 대환난을
받아 죽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7년에 나는 섭리를 위해 주님의 한마디 말씀도 전해 줄 수 없으니 주님이 누구를 통해 말씀 좀 외쳐 달라고 기
도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내가 너 대신 사람을 통해 전해 주고 있지만 막고 무지로 대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기도만 했던 것입니다.
기도에 깨어 있는 자는 매일 깊이 기도하게 되고, 수시로 기도하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매일 이같이 하는 자는
기도에 깨어 있는 자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그것에 매일 몰두하는 자’라고 주님은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신앙에 깨어 있는 것과 주님의 재림에
깨어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냥 건강관리 하는 것과 암에 걸리지 않게 그 병에 집중하여 신경 쓰는 것은 다릅니다. 수시로 자가 검진을 해 보
고, 신경 써서 주기적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직접 의사에게 가서 검사를 받고, 기도해 보는 것이 암이 발생하지 않도
록 깨어 있는 자입니다. 그같이 하지 않은 자들은 안타깝게 암으로 죽었습니다.
도적을 안 맞게 깨어 있는 자는 밤낮으로 도적을 살피는 자입니다. 이론적인 지식으로만 말하며 살피면 안 됩니다.
경보기도 설치해 놓고, 이상한 사람이 담장 밖에 있으면 나가서 확인하고, 설치해 놓은 모니터를 늘 쳐다보고, 밤에
수시로 옥상에 올라가서 지켜봐야 됩니다. 도적이 이를 밖에서 보면 ‘이 집은 마치 155마일 국경을 지키듯이 철통
같이 몰두하여 지키네.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 달 내내 빠짐없이 지키니 도저히 들어갈 수 없겠다.’ 하고 포기할 것
입니다.
방심하면 실패합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일인데 실패한 일이 많습니다. 모든 일을 긴장하고 해야 됩니다.
도적은 어느 날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으로 가장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도적에 온 신경을 쓰면서 어떤
사람이라도 도적같이 인식하고 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예전에 우리 집에 물건을 파는 장사꾼처럼 가장하
고 들어온 사람이 도적질해 갔다고 말하면서 손에 몽둥이를 들고 꼬치꼬치 물으며 따지니, 도적은 이 집 주인은 도
적에 정말 깨어 있어서 잘못하면 잡히겠다고 생각하여 슬그머니 나가려고 대문으로 갔습니다. 주인은 눈치를 채고
문을 잠그고 이상하다고 신고하여 파악하니 도적이 맞았습니다. 그 도적은 결국 잡히고 말았습니다.
섭리역사 모든 일을 이같이 깨어서 해야 됩니다. 도적은 여러 가지로 침투해 옵니다. 마치 사기꾼처럼 은밀히 접근
하며 수십 가지 수법으로 다가옵니다. 한 가지에만 깨어 있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이 깨어 있으라.
주님은 도적같이 오십니다. 여러분들이 이와 같이 주님의 재림에 깨어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자는 맞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2000년 동안 사람들을 통하여 오시기도 하고 꿈속에서나 기도 중에 직접 오시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
안 선생을 통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는 데 있어서 육적으로 신앙의 예행연습을 해 온 것입니다. 선생의 말
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면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선생은 늘 말할 때마다 “예수님, 예수님”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선생님, 선생님”만 했습니다. 이제는 선생이
늘 말해 온 대로 자꾸 “예수님, 예수님” 하고 불러야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은 영체라서 안 보이시고, 또 절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다니십니다. 천사도 그러합니다. 영으로 볼지라
도 얼굴은 잘 안 보여 주시고 몸만 보이시거나 뒷모습만 보이십니다. 꿈에 나타나실 때도 다른 사람으로 보여 나타
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안 보여도 늘 기도하고 깨닫고 찾고 진실로 간구해야 됩니다.
어느 때는 사람을 쓰고 나타나시고, 어느 때는 깨달음으로 나타나시고, 어느 때는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어떤 자
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열심히 전하니 받아들이며 내 얼굴이 예수님 영인체 사진의 얼굴과 닮아 보인다고 하면서
내 얼굴을 더욱 꿰뚫어 보았습니다. 주님에 대해 전하니 주님은 또 쓰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제는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날 때 공중에서 오시는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님을 맞게 하기 위해
주님은 2000년 동안 기도 중에, 혹은 꿈에, 혹은 사람을 통해 나타나시며 역사해 오셨습니다. 이제 주님을 직접 부
르면서 영이 깨어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 일에 몰두하여 집중하며 신앙생활을 할 때입니다. 섭리역사는 그동안
영적으로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영에 어둡지 않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어느 시간에 올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집이 비었을 때, 잠을 잘 때, 낮이라도 도적에 신경 안 쓰고 살 때 사람을 시켜서 들어오고 무력으로 들어옵니
다. 잠을 안 자고 누워서 눈만 뜨고 있어도 안 됩니다. 매사에 각자 인생에서도 늘 깨어 살아야 됩니다.
지금은 주님이 오신다고 영계에 눈을 뜬 사명자들을 통해 책이나 인터넷의 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해 주었는
데도 태만하게 살겠습니까? 『그런즉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잘 들어 봐요.
주님이 곧 오신다는 말이 어느 정도인지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차의 시동을 걸어 놓은 상태와 같다고 했습니다. 버스나 자가용으로 어느
곳에 가기 전에 먼저 차의 시동을 걸지요? 주님의 재림이 그 상태와 같다고 했습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가 다
가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만 빛에 속한 자는 그 날이 도적같
이 임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에 잠을 깨워 주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님이 어디 갔다 오시는데 아들과 딸이 전화하여 “어디까지 오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어디까지라고 말할
수 없이 바로 집 앞이기에 “다 왔다. 문 따 놓아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도 마음 문을 따 놓으라.”고 했습니
다.
예수님은 곧 오신다고 했습니다. ‘곧’이란, 1년인지 2년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또 다른 말씀으로 우리에게 이같
이 비유하여 깨닫게 하셨으니, ‘곧’이라는 말은 더 이상 가까웠다고 표현할 수 없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또 들어 보
겠습니다.
셋째, 볼펜을 쓰는데 글씨가 가늘어졌습니다. 잉크가 다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시대 사람들과 섭리 사람들이 무엇인가 착각하고 살고 있다. 말씀을 듣고 깨달으
면 당황할 것이다.” 했습니다.
넷째, “새벽별이 뜨니 아침이 가깝지 않았느냐. 마치 새벽별이 빛을 잃는 시간과 같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했습
니다.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령의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다섯째, “타향 땅에 간 자가 어느 쪽이 동쪽인지 알기 위해 동서남북을 쳐다보니 특히 한쪽이 다른 쪽보다 환하게
보였다. 이와 같이 주님의 재림의 쪽을 밝고 환하게 말씀으로 비추고 있으니, 그런즉 재림의 빛이 비취는 쪽에 깨어
재림을 준비하고 예비하라.” 했습니다.
지구상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의 마지막 재림에 대하여 전하는 말씀과 주님이 사명자들을 통해 말해 주시는
쪽을 모두 주시해야 될 때입니다.
기독교는 30년 전부터 주님이 곧 오신다고 하면서 기도하며 재림을 준비해 왔습니다. 잘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
동안 예수님이 안 오시니 그중에 더러는 재림에 대해 잠을 자고 있습니다. 너무 일찍 준비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
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열렬합니다.
‘재림’이라는 단어만 외우고 있으면 안 됩니다. 재림에 대하여 어떻게 준비하라고 주님이 말씀해 놓고 가셨으니 성
경을 다시 읽고 깨달아야 됩니다. 말씀을 듣고 결혼하는 신부가 날마다 신랑 맞을 준비를 하듯이 해야 됩니다.
손님을 맞듯이 주님을 맞는 것이 아닙니다. 맞고 따라가야 되기에 세상 미련 없이 준비를 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
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할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맞고 따라갔습니다. 모세는
손님같이 들르지 않았습니다. 도적같이 온 모세의 말을 듣고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지만 실상은 하나
님을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오직 신앙으로 예비하여 주님을 맞고 따라가는 것이니, 세상을 끊고 육적인 삶을 끊
고 오직 영적인 삶을 해야 됩니다. 롯은 하나님이 소돔 땅에 보내신 천사를 맞고 그 딸들과 함께 소알 성만 쳐다보
고 끝까지 가서 죽음을 피해 살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미련을 가지고 뒤돌아보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달려갈 곳을 위해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빌 3:12-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말씀을 듣고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주님은 나에게 세상의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고 했습니다.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시대적으로 보아도 주님이 오신다고 한 때가 2000년이 지났고, 햇수로는 2009년이 되었습니
다. 그리고 이미 말씀으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온다고 성경에도 나와 있고,
선생을 통해 설교 때도 너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외국에 가서 20년 있다가 온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듯이 주님은 우리들이 생각한 것보다 빨리 재
림으로 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하는 자들은 준비가 안된 자들이고, 생각보다 늦게 왔다고 하
는 자들은 준비하고 기다린 자들입니다.
섭리사는 늘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신부같이 준비시키며 살아왔으니 누구보다도 부끄러움 없이 마지막 준비를 하고
맞아야 됩니다. 섭리사는 한 지체와 같아서 그래도 선생의 말을 듣고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빨리
전달되고 빨리 행해지는 편입니다.
주님께서 재림과 말세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신 말을 사명자들을 통해 급히 전해 주면, 사람들은 “또 말세라고 하
네. 시한부 종말론적 신앙이야.” 하면서 듣지 않습니다. 특히 재림에 대한 말을 하면 시한부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하며 또 이단시합니다.
그들은 마귀의 주관 속에 삽니다. 예수님을 위해 인생을 바치면서도 주님의 재림과 상관없이 세상을 벗 삼아 천국으
로 여기고 사는 자들인 고로 재림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꺼려하고 좋아하지 않고 헐뜯
는 데 빠져 사는 자들입니다. 큰 죄인들이기에 비웃고 비판하며 주님의 재림을 막고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재림을
악평하든지 외면하든지 소홀히 하는 자들로서 마귀의 주관을 받고 방해하므로 시대 주님의 말씀의 방향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에 주님은 “사람들이 말로는 깨어 있다고 하지만 육과 혼과 영이 모두 선지자나 사명자들을 통해 세계 곳곳마다
전한 재림에 대한 말씀을 듣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깨어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깨어 있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하여 날마다 생각하고 행하고 준비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오늘 이에 대하여 특별히 말
했으니 섭리인들은 일절 깨어 있는 자가 되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된 자들이라면 주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첫째로는 말씀을 듣고 온전하게 인식해야 사고가
뒤바뀌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신앙의 잠을 안 자고 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장이 마지막 나팔을 불 때
주님이 오신다는 재림에 대해서는 아직도 깨어 있지 않은 자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말씀을 듣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꼭 변화를 받는 해가 되어야 합니다.
그 주간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해야 됩니다. 그 말씀에 해당되는 것을 미루고 다른 것 먼저 행하면 안 됩니다. 믿고
행해야만 구원이 이루어지며 산 자가 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물에 뛰
어 들어가 빨리 깨끗이 닦고 정결하게 해야 됩니다. 물은 곧 말씀입니다. 지금 전하는 말씀을 꼭 듣고 행해야 됩니
다.
섭리 사람들이 빠른 구름이 되어야 하건만, 흔히 지도자들과 섭리에 일찍 온 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변화에 늦습니
다. 체면을 차리느라 늦는 것인지, 나이가 먹어 고정관념에 차서 늦는 것인지, 살과 뼈가 신앙적으로 굳어져서 늦는
것인지, 게을러서 늦는 것인지, 육적이라 늦는 것인지, 기도하지 않아서 늦는 것인지, 예수님과 떨어져서 늦는 것인
지, 선생과 10년 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감각이 떨어져 늦는 것인지, 열정이 식어서 늦는 것인지, 거듭나지 못하여
영이 다시 성령으로 나지 않아서 늦는 것인지, 정신만 살아 있고 행하지 않아 늦는 것인지, 말씀의 은혜를 못 받아
서 늦는 것인지, 1년 동안 말씀을 듣고서도 못 깨달아서 늦는 것인지, 혹시 외부에서 가만히 들어온 삯꾼 목자여서
늦는 것인지, 마귀 주관을 받아서 늦는 것인지, 다른 곳에 빠져서 늦는 것인지, 신앙의 잠을 자고 재림의 잠을 자고
있어 늦는 것인지, 죄 짐이 무거워서 늦는 것인지 큰 문제가 있다고 주님은 나로 지적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온전케 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에 눈을 뜬 빠른 구름들에게 맡긴다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설교 내용은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섭리사 사람들은 모두 선생만 맞고,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 불 때 오시는 예수님을 맞지 않으려고 했습니까? 지난
30년 동안 그토록 애태우며 말씀을 외친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으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외치니 안 받아들여서 여러분들에게 외쳐 왔다고 한 설교를 못 들어 보았습니까?
신앙생활을 5년 이상, 10년 이상, 15년 이상, 20년 이상 해 온 자들이 자기 죄도 깨끗이 회개하지 못하고, 영적인
세계를 한 번도 접촉해 보지 못하고, 성령의 뜨거운 불도 못 받아 보고, 슬픔과 탄식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개인과
가정과 민족을 위해 한 번이라도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고, 주님의 심정을 한 번도 제대로 못 느껴 보고, 또 예수님
의 십자가 죽음의 고통도 못 느껴 보고, 주님이 늘 사랑해 주시고 어려운 것을 처리해 주신 것도 못 느껴 그 도를
행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주님이라는 포도나무와 하나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구원받았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
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같은 자들에게는 절대 배우거나 지도받으면 안 되니, 반드시 물어보고 신앙의 지도를 받아야 배움을 받는 자들도
신앙이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제대로 믿고 제대로 행하는 자만 구원에 들어가며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고 휴거가
됩니다.
주일은 자기의 날이 아니니 자기 시간을 쓰면 안 됩니다. 십계명을 보면 주일은 엄격히 하나님의 날이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날입니다. 주일에 놀러 다니고, 필요 없이 사람들을 만나 식사나 하고, 누구 관리한다며 이유를
달고 시간을 내어 만나러 다니면서 자기의 시간으로 다 쓰고 삽니다.
인간들만 생각하고 하나님과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면 누구 손해입니까? 주일은 온전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주일
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써야 됩니다. 안식일에 특별히 구해야 될 양은 구해 내야 되지만
거룩한 주일은 각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써야 됩니다.
TV를 보고 오락을 즐기며 각종 대중매체에 젖어 주일을 보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제대로 하지 않고 세
상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니 잘해야 됩니다. 선생은 하루에 세상 신문이나 TV를 몇 초 동안
보는지 알아요? 하늘나라 주님의 상황을 보고 그 소식을 들어야 됩니다.
주님은 “너희가 제대로 하는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것으로 끝난다.”고 했습니다.
늘 말씀해 주었지요? 영계에서 보면 좁은 길로 가는 자는 가끔 한 명씩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온 세계를 다 보
고 말씀한 것입니다. 온전하게 하는 자만이 천국길로 갑니다. 그저 위로받기 위해서, 안심하기 위해서, 의지하기 위
해서,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자는 결국 신앙생활을 안 하는 자와 똑같습니다.
섭리역사 30년 동안 각자 해 온 신앙들을 보면 신앙의 잠에서 제대로 깨어 있는 자들도 있고 그저 따라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재림에 대해 근본적으로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까? 금년
도 주제와 같이 주님이 새롭게 말씀하시니 새로운 마음과 사고를 가지고 새롭게 인식하여 정말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자가 공항으로 가는데 차 속도를 100km/h로 가다가 시간이 늦어 비행기를 못 탈 것 같으면
120km/h에 놓고 밟아야 됩니다. 이는 상식입니다. 선생이 운전해서는 안 되니 이제는 예수님이 운전하시어
150~200km/h에 놓고 달립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고 이 같은 주제를 주님께서 은밀히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깨어 있으라는 말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 것이 있으니 믿고 따라와요.
주님은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그 대신 너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버리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을 믿고 희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전도도 하고, 가르치고, 회개를 시키고, 죄를 멸해야 됩니다.
선생은 어느 날 새벽 이같이 주님께 매달리며 기도했습니다.
베다니 마리아 집에 들렀다가 가시듯이,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는 세리 삭개오 집에 들렀다가 회개를 시키고 가시듯
이, 주님을 잃고 허탈감에 빠져 바닷가에서 뉘 볼까 외롭고 쓸쓸하게 있는 제자들에게 들렀다 가시듯이, 희망을 잃
고 버림받고 사는 문둥병자 앞에 멈춰 고쳐 주시듯이,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시듯이, 간음하다가 잡혀 죽을 자에게
나타나 마치 은인이나 되는 듯 살려 놓고 가시듯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을 기다리며 인생 희망에 차 있는 자들
에게 들렀다 가시듯이, 주님만 부르며 살았는데 세상이 버린 나와 우리들에게도 들렀다 가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세상에 계실 때 생각이 나서 감동이 되었다는 듯이, 그 마음을 알아준다고 즉시 응답
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도 거쳐 갔지만 그래, 내가 꼭 거쳐 갈 테니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온 세계 섭리를 살피시어 외롭고 쓸쓸하고 허탈한 자들과 마음이 아픈 자들과 주님
만 사모하며 사는 자들에게도 꼭꼭 들렀다가 가시라고 간절히 슬피 울며 간구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그들도 사랑하여 거쳐 갈 테니, 내가 주는 말씀을 생명시하며 안 보여도 나 예
수를 중심하라.”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서로 싸우지 말고 화목하여라.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아
니하였으니 사람을 통해 역사하며 세상에 다니면서 인 치러 다닌다. 나의 말을 명심하고 깨닫고 행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게 두고 떠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살기 바랍니다.
자, 이제 모두 안녕히 가세요.
<광 고>
영적인 역사를 한다고 하며 교회에서 소리 지르고 시끄럽게 떠들며 기도하면 안 되고, 산으로 새벽 2~3시에 기도하
러 다니면 안 됩니다. 또 육적 휴거라고 하면서 각종으로 혼잡하게 하지 말기를 각 교회에 광고합니다.
성령은 질서의 신입니다. 요란하고 혼잡한 곳에는 사탄과 마귀와 귀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선생은 다 보고 말합니
다.
<2009년 3월 8일 주일말씀>
우리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본 문 요한계시록 19장 11-16절
요한계시록 17장 13-14절
디모데전서 6장 15절
마태복음 23장 37절
<만왕의 왕 주님의 다스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먼저 주님께 말씀을 주셔서 진정 감사하다고 한 후에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 오늘도 말씀 주셔서 듣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잘 듣겠습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천천히 하겠습니다. 귀한 말씀을 한마디라도 제대로 전하지 못할까 정말 두렵고도 걱정이 됩
니다. 왕의 명령을 전하는 신하처럼 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전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인 줄
알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전심으로 전하겠습니다. 잘못 전달하면 그 죗값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전하겠습니
다.
바다에 수백 가지 종류의 고기가 있어도 먼저는 한 종류만 보여 주면서 거기에 대해 말하고 가르쳐 줘야 확실히 압
니다. 이것저것 한꺼번에 말하면 들어도 잘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도 잘 깨닫게 하기 위해 묵시해 주신 말씀 중에서
한 가지에 대한 것만 말해 주고 그 방향만 전해 주겠습니다.
주님도 세상에 계실 때 씨 뿌리는 비유를 들어 마음밭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그 한 가지만 집중하여 말씀하셨습니
다. 고로 듣는 자들이 듣고 다 깨달았으니 그 말씀에 권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설교는 어린아이도 어른도 각각 그 마음 개성대로 잘 깨닫게 지금도 그같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저 같은 수준 낮은 사람도 잘 이해하고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능력이 있으시고 전능하시므로 누구든지 말씀
을 귀히 여기고 듣고자 하고 깨달으려 하면 다 깨닫게 해 줍니다.
주님의 말씀을 단돈 만 원짜리로 생각합니까? 백만 원, 혹은 천만 원, 혹은 1억으로 생각합니까? 여러분들은 말씀을
어느 정도 가치로 생각하고 들으려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가치를 두는 대로 그만큼 깨닫게 해 주시고 유익하
게 해 주신다고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정신 상태가 썩은 자는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 주님의 말씀을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실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히 여기느냐에 따라 지옥으로, 혹은
천국으로 가게 되며 휴거되느냐, 안 되느냐가 좌우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항상 최우선으로 하고 살라고 했는데 모두 기억하고 있지요? 이는 성경의 수백 곳에 강조된 말씀으로 주님
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먼저 생각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애인,
물질, 보물, 귀중품, 집, 땅, 작품 등 그 어느 귀중한 것도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자는
주님께 합당하지 않은 자입니다.
말씀 들을 때는 듣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들어야 되고, 삶 속에서도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다른 일은 그 다음으
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먹고 입고 사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무시하는 자이며
주님께 가까이 가지 못할 자입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구해도 주님은 우선으로 해 주지 않으십니다.
이제부터 본 말씀에 들어갑니다.
오늘은 깨어나 보니 새벽 5시가 넘었습니다. 기도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오늘은 기도도 못 하고 다 끝났
다.’ 하고 나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어젯밤 12시를 넘기고 새벽이 다 되
도록 성경을 보며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늘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이치’라고 잠언으로 깨우쳐 말씀하셨지만, 또 주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자, 늦었으니 오늘은 할 수 없다. 끝났다.’고 하며 계속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슬쩍 눈을 감았을 때 월명동 다리
골의 경사진 옛날 밭 같은 장면이 보였습니다. 한 사람이 굵은 자갈돌이 깔린 그 경사진 곳을 잘 내려오다가 순간
가만히 서 있으니, 자갈이 그 사람의 몸무게 중량에 눌려 그만이야 자갈돌이 미끄러져 내려와 그는 10m 이상 굴러
갔습니다. 그 사람은 충격을 받고 놀랐습니다.
또 쳐다보니, 다른 한 사람이 잘 내려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살살 잘 내려오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랬더니 앞
사람과 같은 식으로 또 넘어져서 주저앉은 채로 큰 돌과 함께 미끄러져 내려와 그 앞에서 먼저 구른 사람과 아찔하
게 부딪칠 뻔했습니다. 먼저 구른 자와 부딪쳐 큰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순간 보인 계시의 환상이었습니다. 간절히 주께 물으니 “늦어도 벌떡 일어나 기도해야 되지
않겠느냐. 늦었다고 해서 꼭 가야 될 곳을 아주 안 가고 말려느냐.” 하며 머리에 생생하게 깨달음의 음성이 들려왔
습니다.
“눈을 뜨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늦은 대로 기도를 해야지. 가다가 돌길 경사진 곳에서 멈춰 서 있으면 미끄러져 넘어
지고 다치듯이, 인생은 멈추지 말고 늦으면 늦은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가야 한다. 신앙도 인생도 걷다가 멈추
면 넘어져 다치게 된다.”고 말씀하시며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때 성경 다니엘서의 말씀들이 순간 떠오르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또 비유로 깨닫게 하시기를 “얼음이 얇게 언 호수는 걷다가 서 있으면 무게 중량으로 그 자리의 얼음이 깨져 깊은
호수에 빠지듯이, 세상을 부지런히 뛰고 달리면서 섭리 인생을 살아야 세상에 빠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벌떡 일어나 주님이 온 것같이 급히 양치질과 세수만 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니,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이 오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내게 그 같은 환상을 보여 순리적으로 일어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이 다 되도
록 성경을 보며 주님이 깨우쳐 주신 글을 쓰느라 늦게 잠을 잤기에 늦게 일어난 것을 이해하시고 늦게 오신 것이었
습니다.
주님이 자고 깨는 것을 다스리고 계심이 깨달아지면서 절로 찬송가가 내 입에서 흘러나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로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 주는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주는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내 육과 영이 흐느껴 감격해 울며 7~8번을 불렀습니다.
‘주님이 이같이 다스리시는구나. 자고 깨는 것까지 다스려 주시는구나. 잠들면 누가 깨워 주는 자도 없고, 시계도 나
를 깨워 주지 못하고, 깊은 새벽 피곤하여 잠든 나를 깨워 달라고 해도 깨워 줄 사람이 없는데, 과연 주님이 이같이
나를 다스리는구나.’ 하며 감격하여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세상 왕들은 체계적으로 주권과 권력과 계급주의로 다스린다. 그러면서 개인 하나하나를 다스리지 못하지 않느냐.
하지만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는 나는 나를 믿고 좇는 그 백성들을 한 명, 한 명 자세히 직접 다스린다.”고 주
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안에 품듯이 다스린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23장 37절에 있는 말씀
으로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모두 읽어 보겠습니다.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
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또 우리가 그동안 설교 가운데 많이 듣던 요한계시록 19장 11~16절의 말씀이 훤히 떠올랐습니다. 또 읽어 보겠습
니다.
(계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
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
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
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역시 설교 중에 많이 한 말씀들이 떠올랐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3~14절도 읽어 보겠습니다.
(계 17:13-14) 『[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
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
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님인 것을 다 알지요? 마귀들은 예수님을 불신하는 자들을 통해 주를 따르는 자들과 싸우기
도 하고, 혹은 마귀들이 직접 주를 따르는 자들과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시라 이
긴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만왕의 왕으로 믿고 메시아로 믿고 따라야 마귀를 이기고, 그 짐승들의 인을 맞지 않게 됩니다. 마귀
는 예수님의 뜻을 불신하는 자를 통해 역사하여 넘어지게 하고 결국 마귀들의 인을 맞게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
들을 꼬이고 이단이라 하며 자기 말을 듣고 따라가게 하는 것도 마귀에게 인 맞았기 때문입니다. 절대 주님만 믿고
그 말씀대로 어떤 환난이라도 이기고 가면 마귀에게 인 맞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주님만 의지하면 짐승들에게 인 맞지 않습니다. 짐승의 인을
맞으면 휴거 자격이 상실됩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같이 오직 주님을 자기와 1:1로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포도나무에 포도나무 가지를 접붙이듯이 하
나 되어야 됩니다. 저는 주님을 가르쳐 주는 소개자, 중보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고 말했습니다(딤전 6:15). 바울의 신앙이 반석 같은 이유는 주님만이
자기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라 보고 마음에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신앙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계를 보고 확실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눅 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절대적으로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우리의 영원한 통치자로 마음에 모시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
귀와 귀신을 이길 수 있고, 그 주관을 받아 악평하는 자들까지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원한 통치자로 모셔
야 됩니다.
세상의 왕들이 여러분들의 잠을 깨워 줍니까? 사사건건 위험할 때, 어려울 때, 죽기 몇 초 전에, 억울함을 당할 때,
모든 인생 문제에 신경 써 줍니까? 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왕들이 여러분들을 기쁘게 해 주고, 마음천국을 만들어
주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해 줄 수 있습니까? 전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 세상 어떤 왕이라도 이 세상의 체제로는 개인이나 민족을 천국으로 만들어 다스리지 못한다고 30년 동안
외쳐 왔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시는 일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하늘나라 법으로 행하신다고 확실하게 말해 왔습니
다.
어렸을 때부터 이를 깨달았기에 새로운 대통령이 될 때마다 큰 희망과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이제 내 문제와 우리 사회 문제가 풀리고 잘되겠지. 나라가 잘살게 되겠지.’ 하며 기대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대
통령이 바뀔 때마다 큰 기대를 걸고 희망을 품지만, 후에 가서는 희망은 커녕 후회하고 실망했습니다.
신앙의 지도자들도 그렇습니다. 절대 주님과 일체된 자라야 희망을 주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해 줍니다.
희망을 걸었다가 결국 희망대로 안 되면 다 필요 없다고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만왕의 왕이라고 믿어 온 대로 방
향을 100% 주님께 돌리고 살아야 됩니다. 주님만이 온 인류의 왕이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희망을 이루어 주시고,
내 고향의 희망과 민족의 희망도 이루어 주시는 존재자로서 유일무이한 전능자라고 믿고 외쳐 왔던 지난 30년이었
습니다.
사람이 다스리면 불안해서 어떻게 마음 놓고 살 수 있겠습니까. 완전한 전능자이신 주님이 다스리셔야 지옥으로 안
가고 천국으로 갑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니 오직 주님을 다스리는 자로 섬기고 모셔야 됩니다.
지금도 나의 왕 중의 왕, 영원한 왕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듣고 우리의 통치자와 왕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주님임을 알고 모셔야 됩니다. 그래야 마귀를 이기고 그놈의 짐승들의 인을 맞지 않습니다. 그래야 주
님이 자고 깨는 것을 다스려 주시며 삶을 맡기는 대로 다스려 주십니다. 평화의 통치자와 주권자는 오직 전능하신
주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또 말씀을 듣겠습니다.
세상 왕들은 피라미드 조직처럼 아랫사람들을 직위 계통대로 다스립니다. 임기 기간 중에 일일이 한 사람씩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임기 기간에 한 사람당 1분씩만 시간을 내준다고 해도 그만큼의 시간이 없어 불가능
합니다. 고로 세상의 왕들은 개인을 일일이 다스리지 못합니다.
교회의 목사님들도 교인 몇 백 명을 일일이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말씀으로 도우시면서 수시로 도적같이 가셔서 도우시고 다스리십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일일이 다스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절대 불가능입니다. 결혼을 했든지 안 했든지 자기 사랑하는
애인 한 사람도 다스리기 힘듭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힘이 없어 못 하고, 자기 살기 어려워서 못 하고, 몰라서 못
하고, 능력이 없어서 못 합니다. 또 영혼 문제와 마귀 문제로 인하여 못 합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 하나도 제대로
못 다스립니다.
가령, 어떤 한 사람 있다면 백 명이 그를 다스려도, 천 명이 그를 다스려도 그 한 사람의 영혼과 육신을 제대로 못
다스립니다.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 순종하며 저를 따라와도 제가 다스리기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만왕의 왕이신 주
님이 우리를 다스려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책임은 자기가 다스려야 됩니다.
주님은 능히 지구에 사는 사람 68억 명을 하루에 만날 수 있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존재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게 맡기면 주님으로서 다 다스려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구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지 한번 들어 봐요.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거리는
150억 광년입니다. 이 거리는 빛으로 가도 150억 년이 걸립니다. 그러니 지구에서 하나님이 계신 천국까지는 얼마
나 더 멀겠습니까.
그런데 영으로 가면 순간 갈 수 있습니다. 그동안 주님은 늘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즘 새롭게 가르치는 말
씀도 있지만 예전부터 가르친 말씀도 다시 생각나도록 말해 줄 테니 잘 들어 봐요. 전에 들은 것이 생각날 것입니
다.
산에 있을 때 주님은 영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영계는 생각한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했습니다. ‘영
은 생각한 곳에 순간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말씀을 듣고 일반적으로 부활된 영으로는 안 됩니다. 주
님이 다시 온전한 영으로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참고 자료 있음.)
이같이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다스려야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그같이 빠른 주님이 왕으로서 다스려야 위급한 때 충
분히 구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스리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통해 다스리기도 하십니다. 인간끼리는 서로 말이 통하니까 사명자들에게 계시하시고 깨닫게 하여 외
치게 하십니다. 그리고 돕기도 하십니다. 또 인간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감동시켜 행하십니다.
그러나 사명자들에게만 맡기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해 행하는 것만으로는 안되니 주님은 일일이 때와
시간에 따라 개인과 가정, 모임과 집회 때 방문하시면서 직접 다스리십니다.
저도 목사님이나 책임자에게 맡겨 놓고 그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나는 나대로 주님의 뜻을 따라 밤낮으로 기도하
며 각종으로 다스립니다. 이와 같이 주님도 사명자들에게 육적인 것을 맡기시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치 암탉
이 병아리 품듯이 철저하게 다스리십니다. 또 만왕의 왕으로서 천사들을 통해 다스리시고, 주님이 직접 일일이 다스
리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자세히 말씀해 주어 아예 인식을 시켜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안 믿으면 다스려 주고 싶지 않다.
이를 안 믿는 자는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자요, 혹은 마귀와 귀신의 왕들을 자기 마음에 다스리는 자로 삼고 사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셨을 때 사람의 마음을 마귀와 귀신들이 다스리는 것을 보시고 그 마음속의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천국이 되었고, 믿고 깨달은 자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계를 보고 사탄과 마귀들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
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만왕의 왕을 절대 믿고 그 백성이 되어야 마귀들에게 다스림을 받지 않고 마귀들과 상관없는 자가 됩니다. 마귀가
다스리면 결국 지옥의 백성이 되어 꼭 지옥으로 가야 됩니다. 정말 그들의 인을 맞으면 안 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자기 뜻대로 살면서 형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형제를 힐문하고 미워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마귀들이 하는 짓을 보면, 사람들을 계속 힐문하며 하나님께 일러바쳤습니다. 욥의 경우도 마귀가 계속 힐문하였고
하나님께 일러바쳤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 형제들을 밤낮 참소하던 자들이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
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섭리에서도 마귀의 주관을 받으면 무지로 형제들을 자꾸 참소합니다.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자들은
실상 속 이야기를 안 해 줍니다. 나도 알고 주님도 그렇지 않음을 알아주시니 억울하지만 믿음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고 악평한 자는 그 힘든 회개를 해야 됩니다.
주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백성은 사랑의 사람이어야 됩니다. 형제들을 왜 참소합니까. 실상은 자
기가 생각한 대로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게 일러바치고 관청에 일러바칩니다. 잘못한 자가 있어도 용서해 주
고, 그를 위해 주님께 기도하면서 꼭 용서해 달라고 밤낮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자기 죄도 용서받습니다. 주
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그 행실을 보고 더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18장 21-35절을 보면,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있는데 갚으라고 하
니 갚을 길이 없다며 땅에 엎드려 울고 탄식하였습니다. 이에 주인은 그를 용서해 주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종은 용서를 받은 후에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만나서 그 목을 잡고 갚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빚진
자가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면서 갚을 길이 없다고 하니, 관청에 신고하여 옥에 갇히게 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 주고 용서해 준 그 종의 주인에게 이 사실을 다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
은 주인은 이럴 수가 있느냐고, 화가 나서 그 종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나도 용서하니 너도 용서해야지. 네가 동료
를 용서하지 않으니 나도 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그 종을 가두었습니다.
1달란트는 1데나리온의 6000배로, 자기는 60만 배를 용서받았으면서 자기에게 잘못한 자는 60만 분의 1도 용서하
지 않은 것입니다.(참고 자료 있음.)
어서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해 줘야 됩니다. 자기는 하나님과 주님께 100만 배 용서받은 것이 있다고 보고, 어서 형
제들을 용서해 줘야 됩니다. 이것이 주님이 다스리는 자의 행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다스리는 자입니다.
말씀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마귀가 짐승의 인 666 수를 손이나 이마에 인 치고 맙니다. 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
니다. 칼로 살가죽을 벗겨 내도 그 인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손에 인을 맞으면 손을 끊어 내도 안 됩니다.
내가 산에 있을 때 주님께 묻기를 “마귀는 666 인을 친다면 주님의 백성은 완전수인 777 인을 맞겠네요.” 하니, 주
님은 웃으시면서 “그 말도 이치가 맞는 말이야.”라고 했습니다. 7수는 하늘수입니다. 아무리 6으로 7을 공격해도 1
이 남고, 666이 777을 공격해도 111이 남습니다. 도표에도 이 이치가 나와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통해 다스리게 하기도 하시지만 사명자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일일이 수시로 도적같이 오셔서 주님으
로서 해 줄 것을 해 주시고 도적같이 가십니다. 이렇게 마지막 재림 전에도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아야 산 신앙
인이며 빛에 속해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이 오시는 것을 꿈속에서나 기도 중에 보았을 것입니다. 못 본 자는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마음으
로 느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말씀하시고, 도와주시며 각종으로 행하심을 보
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신경 써야 알게 됩니다. 관심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의 백성이라야 주님이 다스려 주십니다. 왕 중의 왕, 전능하신 존재자이신 주님이 다스리시니 얼마나 마음이 놓
이고 좋습니까? 주님은 말씀으로 더욱 확실하게 다스려 주시니 얼마나 더 좋습니까? ‘세상이 버려도 나는 너희를
안 버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감사하고 감격하고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며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살아야
됩니다.
주님은 재림 때만 천사장 나팔과 함께 도적같이 오시지 않습니다. 이 순간 지금도 여러분 각자에게 도적같이 오십니
다. 지난 2000년 동안 주님은 시대마다 사명자들을 통해 모든 자들에게 도적같이 계속 찾아오셨다고 가르쳐 주었습
니다. 또 섭리사 30년 동안 각 개인과 가정에 찾아오셨고, 집회 때와 새벽 때마다 도적같이 오셨다고 가르쳐 주었습
니다.
제가 늘 말해 주었는데도 모르는 자는 신경을 쓰지 않아 몰랐던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바닷물이 멈추게 하시고,
비가 쏟아지게 하시고, 우리가 모인 장소만 비가 안 오게 하시면서 각종 기적을 수천 번이나 일으켜 주셨습니다. 또
말씀으로 늘 가르쳐 주시고 관리하시면서 만왕의 왕으로서 만주의 주로서 우리를 다스리셨습니다.
사람을 쓰고 다스리니 그 사람이 능력을 받고 그같이 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따르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주님이 행하십니다. 주님이 최우선입니다. 주가 쓰는 자는 청지기로서 인간적으로 주님 다음으로 존경해 주는 것입
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을 하나의 신앙 체험으로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주의 재림을 맞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날 새벽, 주님은 ‘그 사람이 피곤한 것에 따라서 이해하시어 잠도 늦게 깨우시고 늦게 심방 오시고, 또 피곤치 않
을 때는 일찍 깨우면서 그같이 자세히 모든 것을 주님이 직접 손수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묻는 시간을 따져 보니 이 세상 시간으로 40초 정도였습니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겠다고 다짐
했습니다. 내가 기도하게 그냥 두고 떠나신 것 같아서 가시냐고 기도 중에 물으니, 가물가물 가시는 느낌만 왔습니
다. 순간 방이 썰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역시 주님은 머리카락만큼도 안 보이시며 이 같은 말씀만 나에게 남겨 놓
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어 보니 주님의 말씀이 맞지요?
찬송가 390장(새 찬송가 390장, 이전 찬송가 444장)을 모두 불러 볼까요? 늘 주님이 다스리시는 것을 시인하며 찬
양해야 됩니다.
지도자들 중에 어떤 자들은 따르는 자들이 자기 마음에 안 들고, 혹은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
다. 무력으로 다스리고, 욕하면서 ‘왕따’시켜 버리고, 무관심해 버리고, 무안을 주고, 인상 쓰면서 말하고, 무섭게 대
하고, 냉랭하고 인정 없고 썰렁하고 껄끄럽게 대하고, 싫어하고, 부담스럽게 여기고, 밥 먹으러 갈 때도 안 데려갑니
다. 이같이 당하는 자들은 ‘선생님은 저렇게 안 하실 것인데...’ 하며 울고 갑니다.
주님은 교역자들과 관리자들과 각종 책임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다스리는 방식이 아니다. 자기 인성
의 방식이며 나의 심정과 일체되지 못하고 마귀의 주관을 받으면서 다스리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그같이 하면서
선생도 이같이 했다고 강조하여 말한다고 합니다. 다 아니까 말씀합니다.
주님과 같이 긍휼과 자비와 사랑으로 대해 주고, 긍정적으로 겸손하게 위해 주며 순리로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그동
안 나로 주님이 본을 보여 준 것같이 해야 됩니다.
계속 이어서 주님이 다스리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내일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겠다고 하며, 이 날은 오후 5시부터 기도했습니다. 긴 시간 동안 기도하는 중에 언제 잠
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깨어 보니 새벽 1시 15분 전이었습니다. 너무 일찍 일어나면 기도하다가 졸리니
눈만 뜨고 ‘일어날까, 말까? 앞으로 한 시간은 여유가 있으니 잠은 안 자도 누워 있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잠
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있다가 순간 백짓장처럼 얇은 잠이 스르르 왔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들 중에 몇 명이 나타나서 영계의 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습니다.
‘다행히 잠은 안 들었다.’ 그런데 아직도 40분이 남았으니 잠시 눈만 뜨고 누웠는데 또 스르르 눈이 감겼습니다.
또 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역시 여러분들 중에 한 명이 보였습니다. 순간 있다가 사라져 눈을 떠 보니 아직 30분 정
도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눈을 감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내가 자기에게 잘못을 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잘못한 것이 없으니 내 마음이 꺼리지 않았습니다. 고로 그와 나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한마디 말도
안 했습니다.
그는 전에 한 번 보았던 사람인데, 지금 관직에 있습니다. 그는 나를 쳐다보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런데 내가 자기에게 뭔가 잘못한 것이 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고, 무언으로 그 마음이 내 마음에 전해 오고 있었
습니다.
참다못해서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눈치만 주지 말고 말해 보십시오. 내가 지나가는데 인사를 안 했습
니까? 법으로 당신에게 어긋나게 한 일이 있습니까? 내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
다.” 하며 그에게 속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인상도 변하지 않고 계속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으로 그를 보니, 내가 지금 무엇인가 그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잘못
한 것이 없는데 그렇게 나를 쳐다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식으로 대하고 있으니 그 장면이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깨어 보니 새벽 2시 15분 전이었습니다. 평소에 정한 시간대로 일어났다고 하며 씻고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는 기도를 하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어제는 새벽 5시가 넘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 40초쯤 말씀을 듣고 내일은 일찍 일어난다고 약속했기에
아까부터 일어났지만 선잠 들면서 2시를 맞췄습니다. 어제 기도 중에 주님이 언제 또 오실지 물었습니다. 한 20일
후에는 올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이 깨달음만 주셔도 감사합니다. 어제 5시에 일어났어도 주님이 번개처럼 오
셨다 가셨는데, 오늘부터 새벽 2시에 꼭꼭 21일을 기도하면 10초라도 오시겠습니까?”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전에 꿈에 본 환상들을 말했습니다.
나 : “주님, 섭리 사람들이 나를 따라 2시에 기도하는지, 그 영들이 보였습니다.”
주님 : “그들은 육체를 이탈하여 온 영이 아니고 너 깨달으라고 보여 준 것이다.”
나 : “아! 천사가 그같이 깨운 것이지요?”
주님 : “그것이 아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준 것이다.”
이에 나는 ‘주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다른 먼 곳에서 나를 보시고 새벽기도 시간에 늦지 않도록 그같이 보여 주셨구
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맨 마지막에 본 환상이었는데, 어떤 관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나타나 내가 자기에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듯이
계속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해도 가지 않고 쳐다보기에 참다못해 내가 당신
에게 인사를 안 하지도 않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특별히 흠 잡힐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냐고 해도 계속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지요?”
이 물음에는 대답이 없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 분은 평소에 나를 해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
를 무례하게 대할 때가 있었는데 그 분이 나를 불러서 “내 밑에 있는 자들이 몰라서 무례히 말할 수도 있으니 내게
말하세요. 저도 교회를 수십 년 동안 다녔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걱정 마세요. 그리고 내 밑의 사람인데 무례했
으면 이해하세요.” 했습니다. 이에 나는 “당신을 통해 주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하니, 그는 웃으면서 “그래
요?” 하며 의아하게 생각했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옛 생각이 나서 다시 주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분을 쓰고 한 번 나타났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왜 그 분이 내 꿈에 나타났습니까.”
주님은 그제야 대답하셨습니다.
“꿈으로 그를 통해 내가 아까부터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난처하고 창피하고 죄송해서 더 묻지 못하고 주님께 죄를 지었으니 죄송하다고 하며 기도했
습니다. 기도 중에 주님은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내가 처음 잠에서 깬 시각부터 와 계셨는데 내가 또 자니, 나를 깨우기 위해 3번이나 환상을 보여 주
신 것입니다. 또 어제 일찍 일어나겠다고 말하였기에 오신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도록 주님이 함께해 주시어 일찍
일어난 것인데 평소 시간처럼 2시에 맞춰 일어나려고 2시만 기다리니, 주님이 잠을 다스려 주러 온 것이라고 깨닫
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일어나라.” 하지 않으시고, 무엇을 보여 스스로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의로운 방법
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깨닫고 실력대로 행하게 하십니다.
이를 알고 30분 동안 회개기도를 하고 다시 주님께 가셨냐고 물으니,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회개하니 그 회
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용서해 달라고 하니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어 회개하니 얼마나 좋으냐. 내가 용서해 주니 네 마음에 꺼림 없이 얼마나 좋으냐. 너도 모든 자
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며 모두 그같이 하라.”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죄를 회개하면 이 세상 누구도 사해 줄 자가 없다. 오직 나 외에 누가 있겠느냐. 죄를 어디서 사함 받겠
느냐. 모르는 자들에게 가르쳐 주어라. 회개하지 않아서 죄 짐을 짊어지고 다니면 결국 육이 죽을 때까지 죗값으로
고통 받고, 죄 때문에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 받지 않느냐. 회개하면 천국에 가건만 죄 때문에 지옥 간다. 늘 단
상을 통해 가르쳐 주며 외쳐도 회개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고,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서 그 좋
은 회개를 안 한다.”
이 말씀을 듣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어제 제가 늦게 일어났지만 40초라도 제게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5시에 일어났으니 주님께 너무
죄송하여 앞으로 20일이 지나면 오실까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또 오실 것이라고는 100만 분의 1도 생
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환상을 보고도 전혀 주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내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도적같이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어제 일찍 못 일어나서 후회하며 할
일을 못 했다고 낙담하여 또 다시 기회를 주러 온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에 못했어도 진정 회개하고 뉘우치면 이같이 다시 기회를 주시는 주님이심을 깨닫고 여러분들도 다시 하기
바랍니다. 주님의 다스리심은 너무나도 인자하시며 사랑 자체입니다. 모두 이같이 해야 됩니다.
주님 : “사람들은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내가 도적같이 온다는 말만 중심하며 평소에 내가 오고 가는 것을 모르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같이 2000년 동안 왔다 갔는데도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의 신앙 체험으로만 생
각하는 잘못되고 무서운 인식들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전해 주어라. 너희에게는 지난 30년 동안 너를 통해 말씀하
며 섭리를 펴면서 도적같이 왔다가 가지 않았느냐. 그런데 모두 너만 보고 좇지 않았느냐.”
나 : “내가 그렇게도 주님이 오셨다고 이야기를 해도 육적이라서 나만 따랐으니 주님 앞에 정말 민망했습니다.”
주님 : “이제 금년도 말씀의 총 주제처럼 말씀을 듣고 새롭게 인식하고 변화를 받게 하자.”
나 :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님 : “이같이 내가 네게 전혀 생각지도 않은 때 오듯이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오리라.”
요즘은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줄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오셔서 모든 택한 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친히 기다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회를 주었을 때 근신하며 신앙의 잠을 깨우고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은 회개하는
자의 회개를 받는 때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 “사람들은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구나. 죄를 용서받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
르는구나. 회개할 기회가 지나가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다. 네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을 때 네가 회개하니 기쁘
고 마음천국이지 않느냐. 그 좋은 것을 오늘 더욱 깨닫게 하였으니 깊이 전해 주어라.”
주님이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의 심정을 다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 “사람이 죄를 지으면 육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영도 같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영과 혼과 육
이 흠 없이 깨끗하게 나의 강림을 맞아야 된다.”
나 : “마음으로만 죄를 짓고 행실하지 않으면 육은 죄를 안 짓는 것이지 않아요?”
주님 : “그것은 세상이 따지는 법이 아니냐. 내 비유를 들어 보아라. 네가 미워하는 자가 있어 바가지로 물을 떠다
가 뿌리니 그가 놀라고 옷이 흠뻑 젖어 손해를 입었다고 하자. 네 육도, 바가지도, 물도 다 공범으로 죄를 지은 것
이 아니냐. 바가지는 육이요, 물은 마음이요, 육은 영과 같다. 고로 육이 죄를 지으면 마음도 영도 공범으로 보고,
심판할 때 같이 심판한다. 그러니 회개할 때 마음과 행실과 영을 따로 나누어 골라서 회개하지 말고 다 깨끗이 해야
된다.”
나 : “주님 큰일 날 뻔했습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마음은 원치 않는데 육신이 사망을 좇아 행하였다
고 하며, 어느 때는 육신만 죄를 짓고 어느 때는 행실을 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음욕을 품어 마음만 죄를 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 “육신이 죄를 지을 때 마음이 어디 도망갔다가 오느냐. 마음과 영이 육체를 이탈하여 도망갔다 오느냐. 다
공범이다. 연대죄를 모르느냐. 자기가 죄를 안 짓고, 조상들이 죄 짓는 것을 못 보았어도 그 연대에 사는 자는 연대
죄와 유전죄가 있지 않느냐. 아담 안에 있는 자는 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산
자가 아니냐. 고로 아담에게서 벗어난 자가 되어 천국에 가 있지 않느냐. 모두 듣고 새롭게 변화하자.”
나 : “예. 그런데 이 많은 자들이 언제 다 죄를 회개합니까?”
주님 : “회개할 기회를 온 세상에 주고 섭리에도 주었으니, 급히 말씀을 듣고 회개함으로 흠 없는 신부가 되어 나의
재림을 맞자.”
이날 주님은 못 보았지만 다른 자를 쓰고 나타나신 것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또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
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언제 가셨는지 감히 묻지 않고 계속 기도만 했습니다. 이날 주님과 대화를 나눈 시간을 따져
보니 이 세상 시간으로 30분 정도 된 것 같았습니다.
역시 주님은 섭리사와 온 인류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십니다. 나를 항상 다스리시고 나를 항상 거느
리셨습니다. 때때로 울기도 하고 때때로 웃기도 합니다.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스리시니
기쁘고 즐겁습니다.
오늘은 이같이 주님이 다스리신다는 것만 말씀했습니다.
몇 가지 정리하는 말씀을 하고 마치겠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재림만 잘 맞으려고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앞두고 우리에게 계속 도적
같이 오셨다 가시는 주님을 깨어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재림 때도 깨어 주님을 맞을 수 있고, 천사장의 나
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우주 공중에서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눈에 안 보여도 오셨다가 가십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보여 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모두
보기는 힘드니 보는 것만 중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주님이 안 오실 거야.’ 하고 생각
하지 말기 바랍니다.
새벽기도 때 교회에 나가지 못하면 집에서라도 꼭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은 거의 그때 오십니다. 새벽기도 때도 오
시지만 낮에 우리를 도우실 때도 오십니다. 평소 생활 가운데 오십니다. 그러나 대개 주님이 오셨다 가신 후에 알게
됩니다. 이런 자는 재림 때도 주님이 오셨다 가신 후에 알게 됩니다.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됩니다.
한 신입생의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왕복 60km여서 새벽 3시에 집에서 기도하는데 주님이 오셔
서 “3시 조건기도를 세워라. 심방 시간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이 산에서 기도할 때, 평소에도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마지막 재림과 같이 중히 여기고 맞았습니다.
주님은 “그같이 나를 맞아야 된다.”고 하시며 “너와 같이 모든 자들도 그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섭리역사는 주님이 일으키신 역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소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고도 하나의 신앙 체험
으로만 봅니다. 정말 모릅니다.
내가 산에서 기도할 때 주님은 내게 그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나 환상 아니다. 실체가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그때 나는 지구상의 그 많은 사람들을 두고 왜 나에게 오셨냐고 하며, 개인적으로 찾아오실 수 있냐고 의심하
며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아니다. 준비되면 이렇게 도적같이 온다. 마지막 재림 때만 오지 않고 이같이 오다가 마지막 재림 때
가 되면 다시 온다. 평소 도적같이 오는 나를 맞아야 천사장이 나팔을 부는 재림 때도 나를 맞을 수 있다.”고 했습
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꼭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는 데 있어서 철저하게 예행연습을 하며
실제로 맞듯이 산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는 실전입니다. 그동안 섭리는 나를 중심하여 늘 주님을 맞는 역사를
펴 왔습니다. 그래서 섭리인들은 말씀을 잘 이해시켜 주기만 하면, 마치 한 지체와 같이 어떤 사람들보다 잘 따라
행합니다.
주님은 섭리인들 중에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찾아가서 그 할 일을 도와주고 가신다고 했습니다. 정말 감사하
며 모든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심정을 알아주어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저는 세상에 살 때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늘의 구름을 보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주님만 찾고 주님만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산에 가서 조용히 기도하며 준비하게 하신 후에 주님은 저에게 도적같이
오셨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재림 전에 맞은 주님이었습니다. 이것도 주님을 맞은 하나의 재림입니다. 저는 이를 누
구보다 크게 깨달았기에 지금까지 주님이 써 주신 것입니다.
2000년 동안 주님은 개인에게나 교회에나 집회 때마다 준비된 자들에게 도적같이 오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다시 온다.”고 했고, 사도들도 “그가 곧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 동안
예수님을 기다리던 자들은 마지막 재림 때만 생각하며 늘 오시는 주님에 대해서는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정말 주님
을 맞을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십니다. 이 주님을 평소에 맞고 그의 신부가 되어 같이 살아야 천사장이 나팔을
불면서 주님이 오실 때 신앙의 잠을 자지 않고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를 가르쳐 주셔서 30년 동안 외
쳐 왔습니다. 이해하고 깨달았을 줄 압니다. 그래서 그동안 마지막 재림보다 평소 늘 오시는 주님을 잘 맞아야 한다
고 외쳐 신앙의 잠을 깨워 온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섭리역사는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는 데 첩경을 평탄케 해
왔습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깨어 있는 자가 되어 빛 가운데 거하게 되므로 주님이 오시기 전에 압니다. 주님을 기다리고 사랑
하고 좋아하고 기뻐해야 그에게 주님이 오십니다. 열심히 하다가 한눈팔고 중단하고 서 있으면 넘어집니다. 환난과
핍박과 시험이 와도 중단하면 안 됩니다.
보다 얇은 얼음 위에 계속 서 있으면 중량에 눌려 얼음이 깨져 거기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 누구 쳐다볼 것 없이,
어떤 문제와 이유를 대지 말고 신앙을 연속해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맡기신 후에 우리가 해 놓았는지, 이것만 보십니다. 해 놓고 주님을 만났을 때 그동안
애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주인을 오해하고 자기 할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고로 쫓겨났습니
다.
갈 곳까지 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쳐다봐야 됩니다. 할 일은 꼭 해야 됩니다.
(빌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딤후 4:7-8)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
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
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꼭 용서해 주라’고 주님은 이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자기도 주님께 용서받았으니 용서해 줄 사람을 진심으로 용
서해 줘야 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더욱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절대 자기를 다스리시는 자로 마음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과 마귀가 마음에 오지 못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5분 정도는 먼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고 기
도에 들어가야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고 나가라고 했는데도 안 나갈 때는 옆에 있던 천사가 마귀를 보고
“너희들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했는데도 못 들은 체할 거냐?” 하며 끌어냅니다.
목사님이나 관리하는 자들이 자기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다스려 주시니 늘 자기를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새벽에 늦게 일어났어도, 혹은 너무 일찍 일어났어도 다시 잠자지 말고 꼭 기도해야 됩니다. 주님은 어느 날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났다고 했을 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늦게도 일어나고 일찍도 일어나는 것이 이치다. 시간에 인색하지 말아라. 나와 함께하면 나이를 먹었어도
피곤하지 않고, 함께하지 않으면 젊은 사람이라도 피곤하다. 피곤한 것만 따지지 말고 주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라."
말씀을 줄 때 정말 잘 듣고 믿고 행해야 됩니다. 또 회개하는 기회를 주었을 때 꼭 회개해야 되고, 영과 육과 마음
의 죄를 꼭 회개해야 됩니다. 고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하라.’고 주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각 교회와 개인들은 말씀을 중심하여 급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히 질서 있게 행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영적으로 치우쳐 “여기 주님이 오셨다. 저기 주님이 오셨다. 내 말 들어.” 하고 수군수군하며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
는 사람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보면 답답하니 신앙의 잠을 자는 자들에게 한마디씩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자들이
있으니 경계하고, 오직 단상의 말씀을 듣고 정신 차리고 자신들이 행하면 됩니다. 또 너무 육적으로 치우쳐 자기 나
름대로 해석하는 자들도 있으니 정말 말씀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됩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니 그것을 중심하기
바랍니다.
각 나라 지도자들도 먼저 기도하기 위해 모여야 됩니다. 태만하면 안 됩니다. 말씀이 나갔는데도 태만하여 행하지
않으면 그때 주시는 것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주님이 각자에게 직접 하신 말씀임을 인식해야 됩니다.
각 나라도 모임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각 나라들은 모두 행하기 바랍니다. 한
국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뿐 아니라 일반 신앙인들도 모여 기도하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
도자들이 서로 똘똘 뭉쳐 생명들을 관리하며 행해 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20년 동안 섭리역사를 준비할 때부터 생활 속에서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아 살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와 같이 섭리역사 30년 동안에도 말씀 따라 행하고 전도하면서 생활 가운데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는 데 주
력해 왔습니다.
생활 가운데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으며 살았어도 어떤 사람은 ‘하나의 신앙 체험인가?’, 혹은 ‘꿈을 꾸었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만왕의 왕이 오시는데도 그같이 맞으니 신앙이 힘들거나 죽어서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
다.
지난 30년 동안 섭리역사는 신앙들이 살아서 주를 맞는 연습을 실제로 하면서 왔습니다. 마지막 재림 때는 한 번입
니다. 그 때를 위해 주님은 경고까지 해 주시며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으니, 실수하여 맞지 못하면 후회할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는다고 해서 다른 이상한 종교들처럼 집을 팔고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정기적금을
깰 필요도 없습니다. 논밭을 팔고 집을 팔면서 시한부 종말론적 종교인들처럼 무지하게 행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것
이 재림 준비가 아닙니다. 세상의 것을 멀리하고 주 안에서 절대적으로 사는 것이 재림에 대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 앞에 할 일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며 살고, 형제들과 맺힌 것을 풀고, 기도하고, 주님
이 말씀하시고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먼저 말씀을 듣고 거듭나 성령으로 영이 다시 태어나도록 하고, 서로 용서하
고, 부지런하고, 말씀을 꼭꼭 잘 듣고, 들었으면 실천하고, 실천하여 새로운 삶의 부활을 이루고, 어린 신앙인들을
잘 관리하고, 전도하고, 마음과 행실을 단장하고, 영을 단장하면 됩니다.
주님이 곧 재림하신다고 해서 사업 때문에 갈 곳이 있는데 안 가면 안 됩니다. 갈 곳은 가면서 신앙에 깨어 살면 됩
니다. 삶을 중지하는 사람은 마치 화장실을 가는 것을 중지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섭리역사가 주의 강림의 주관권에
들어왔으니 이에 해당되는 삶을 근신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학교에 안 가면 안 됩니다. 자기가 실력이 없으면 못 가고 돈 없으면 못 가더라도, 꼭 갈 수 있고
가야 하는 사람이 안 가면 안 됩니다. 이는 주님을 맞는 준비가 아닙니다. 회사도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어서 먹어야 쓰러지지 않고 힘을 내어 회개도 하고 교회에 올 때 차비로 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말씀대
로 행하며 살아야 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자기도 다스리고 이웃과 형제도 잘 다스려야 됩니다. 요동하거나 혼란이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니 말씀대로 행하기 바랍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니 즐겁고 평안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긴장을 풀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방심하면 절대 안 됩니다. 늘 근신해야 됩니다.
어제 주님이 오셨으니 오늘 새벽에는 안 오실 줄 알았는데 도적같이 또 오셨듯이, 자기 생각대로만 생각하면 평소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도 못 맞고 재림 때도 못 맞습니다. “생각지 않은 때 온다.”고 주님은 나에게 그 실상과 실체
를 보이시고, “이를 모두가 깨닫게 해 주라.”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100만 분의 1까지도 주님이 다스리십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도록 늘 애원하고 기도하며
진정 원해야 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주의 다스리심에 깨어 있는 자입니다. 주님이 다스려 주시니 자기를 목사
님이나 책임자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욱 주님께 매달리고 주님을 자기를 다스리
는 왕으로 삼아야 수억 배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자기 주관대로 행하면서 사는 자는 주님의 다스림의 주관권 밖에
사는 자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 각각에게 그 다스리심을 행하기 위해 찾아가십니다. 주님이 자기에게 오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그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아는 자에게 주님은 또 가십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대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와 사랑과,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다스리심과 은혜와, 성령님
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3월 11일 수요말씀>
우리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본 문 마태복음 16장 26절
마태복음 7장 16-20절
먼저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우리의 육신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육신이 주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해야 영도 육신과 같이 구원을 이루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육이 제 원하
는 대로 살면 그 영도 육과 같이 사망에서 나오지 못하므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하여 계속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먼저 육신의 삶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인식하
고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육이 귀한 세상이고 하늘나라는 영이 귀한 세상이다. 이 세상은 육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고, 하늘나라
는 영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주님은 말
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육의 세상입니다. 육신이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먹고, 입고, 집을 짓고, 생활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
서는 육신을 가지고 살기에 자기 육의 몸이 귀하듯이 하늘나라에서는 영을 가지고 살기에 자기 영의 몸이 귀하다.”
고 했습니다.
영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하늘나라가 있어도 거기 가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 영을 세상에서 육과 같이 살 때 하늘
나라에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육이 죽은 후에 때가 되면 만들어 놓은 영으로 하늘나라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그 뜻대로 살 때 마음천국이 되고 육도 복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육신이 하나님과 주님을
믿으며 의롭게 살았으니 그 영도 육과 같이 의로운 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육신의 삶 그대로 영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땅에서부터 하나님과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좋아하고,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 절대 순종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
드리며 살아야 됩니다. 육신이 세상에 살 때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주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육신의
생이 끝날 때까지 주님과 한 몸같이 일체되어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이같이 하면 영도 육과 같은 현상의 영이 되어 주님과 일체되고 하늘나라 백성이 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육이
죽은 후에나, 혹은 육이 살았을 때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주님의 재림을 맞게 됩니다. 이미 죽은 자는 그 영이
다시 온전한 영으로 부활되어 휴거되고, 산 자들은 육신이 영으로 홀연히 변하여 휴거됩니다.
자기 육이라도 자기 영의 상태가 어떠한지 잘 볼 수 없습니다. 자기 육의 상태가 곧 자기 영의 상태입니다. 자기 육
이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구원받아 주님과 일체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면 자기 영도 그와 같이 의로운 자
로 구원받은 자가 되어 산 영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태복음 7장 16~20절을 보겠습니다. 좋은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는 나쁜 열매
가 열리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육은 나무와 같고, 영은 열매와 같은 격입니다.
육신의 나무가 선하고 착하고 좋아야 영의 열매도 좋고 아름답게 됩니다. 나무와 열매는 각각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육과 영을 한 몸같이 봐야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자기 육신의 마음과 행실이 영의 마음과 몸으로 그대로 흡수되고, 영은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갑니
다. 다만 죽은 시체만 가지고 가지 않는 것입니다. 주인이 육과 같은 나무만 남겨 놓고 영과 같은 열매만 따 가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로 들어오는 영양기와 나무 안에 있는 모든 진액들이 열매로 가서 그것이 커 아름다운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영이 육신의 수고와 노고, 행실과 공적, 사랑과 모든 성품을 다 흡수하여 크고 자라서 가지고 가게 됩니다. 육
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합니다. 오직 신령한 몸만 하늘나라에 간다고 사도 바울도 주님의 가르침과 계시를 받고 말하
였습니다(고전 15:31-53).
육이 악한 자는 그 영도 똑같습니다. 육의 마음은 영의 마음이고, 육의 모습은 영의 모습입니다. 육의 모든 공적을
영도 주인이 되어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육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면 영도 그와 같습니다. 불신의 육
은 곧 불신의 영으로서 그 영도 육과 같이 행합니다. 고로 육이 죽은 후에 그 영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육신의 행실은 나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행실이 나쁜데 마음은 선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
다. 육신의 행실은 마음과 영의 반응이기에 영도 똑같습니다. 닭이 달걀을 낳고, 사슴이 사슴을 낳고, 호랑이가 호랑
이를 낳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행실에 따라 영도 낳음을 받는 것입니다.
육이 하나님과 주님과 일체되어 그 계명대로 살아 온전한 자가 될 때 그 영도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주님의 온전
한 참영이 되어 살게 됩니다. 고로 주님은 우리의 육을 보시고 “온전하여라. 마음도 온전하여라.”라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의 말씀과 가르침을 보면, 우리들의 영을 보고 형제를 사랑하고 구제하라고 하지 않으셨습
니다. 4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형제를 용서하되 마음도 함께 용서해 주어라. 그리
하면 너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기도해 주어라. 형제를 구제해 주고 긍휼
히 여겨 주어라. 주린 자를 먹여 주고 헐벗은 자를 입혀 주고 도와주어라. 악하게 하지 말아라. 정결 하라. 거룩하
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고 형제들도 그같이 대하며 살라.」고 했습니다.
또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 외식과 형식을 버리고 회개
하여 천국을 맞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육신은 나무와 같고 영은 열매와 같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육신의 세상이기에 주님은 육을 철저히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면 그 영은 자동적으로
온전한 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세상은 육신이 귀한 세상’이라고 가르쳐 주시며 이같이 말씀하
신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영의 상태를 보려고 하다가 안 보이면 잘 안 믿게 되고 부정하게 된다. 육신은
제2의 영과 같다. 고로 육은 보이는 영이나 다름없으니 네 육을 보고 영의 상태를 알라.”고 실감나게 가르쳐 주셨습
니다. 그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늘 육신을 영과 같이 신경 쓰면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영의 세계와 천국이 있는 것을 믿기는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육신의
세계가 있듯이 영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의 세상이 아닙니다. 육신의 세상이므로 영은 육신을 쓰고 삽니
다. “육은 보이는 영이고, 영은 안 보이는 제2의 육으로 생각하라.”고 주님은 가르쳐 주셨고, 이에 대하여 늘 말씀
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영의 법을 정하시어 육이 영을 잘 못 보게 창조하셨습니다. 육신이 신령하면 신령한 영의 눈을 떠 영을 볼
수도 있습니다.
속사람 영은 겉사람 육과 그 형상과 모양이 비슷합니다. 물론 기본 구조는 같습니다. 육의 지체와 비슷하되, 다만
영으로 존재하는 영체일 뿐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영은 자기 육신을 닮았습니다. 그러니 안 보이는 영만 보려 하지
말고 육신을 보면 됩니다.
자기 육신을 거울로 자세히 보면, 어느 때는 자기 영의 현상이 순간 보이면서 ‘내 영도 이같이 생겼겠지?’ 하며 스
쳐 갑니다. 육은 나이 들어 늙었지만 영은 육이 젊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꿈에 자기 영을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는 자기 육신의 현상으로 보이는 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
고 생활하면 꿈에 육체를 이탈하여 활동하는 영을 볼 수 있고, 보면 바로 영인 줄 압니다. 영의 모습은 육신이 하나
님과 주님을 믿고 행하여 일체되어 사는 기준에 따라 좌우됩니다.
깊은 기도에 들어가 영계를 체험할 때 육체는 땅에 두고 영으로 갑니다. 꿈에 자기 영이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대부
분 자기 육신이 꿈으로 현상되어 보입니다. 진짜 영의 모습은 육신이 꿈으로 현상되어 보이는 모습과 전혀 다릅니
다. 영은 육신을 닮기는 했지만 전혀 색다릅니다. 그리고 대개 자기
육보다 어립니다.
영을 보면 느낌도 다르고 ‘내 영이구나.’ 하고 즉시 감지하고 깨닫게 됩니다. 자기 영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왜 예수님은 세상에 살아 계셨을 때 영에 대해서는 많이 말씀하시지 않았지?’ 하며 예수님께 많이
묻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신약전서를 읽으면서 ‘영적인 주님이신데 왜 영에 대해
서 많이 말씀하시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은 육신을 귀히 여기는 세상이며 육을 중심하여 영이 사는 세상이므로 육을 통해 영이 성장되고
육의 구원이 곧 영의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찌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겠느냐. 땅
에 있는 것을 말하여도 믿지 않거늘 하늘에 대하여 말하면 믿겠느냐. 먼저는 육이요, 다음은 신령한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신앙의 삶과 육신의 행실을 정말 다르게 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신앙
과 육신의 삶이 일치되어 살지 못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른 신앙을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육신의 행실과 신앙의 삶
이 일치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또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의 문제는 육의 문제에서 옵니다. 육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온전히 나
와야 됩니다. 영도 육을 따라 나옵니다. 고로 예수님은 육신의 병이 있는 자들을 고쳐 주시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육신이 제대로 행하고 살아야 영도 살기에 「거듭나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하고 외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자세히 듣고 물 같은 말씀으로 다시 인식하여 “행실아, 새롭게 거듭나라.” 함입니다.
물은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육이 변화되어 거듭나야 됩니다. 회개하여 행실도 마음도 거듭나야 됩니다.
그리하면 그 영도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 육신과 함께 하나님과 주님과 일체되어 의롭게 살아갑니다. 「너희는 이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 빛이 되어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며 살라. 먼저는 육이다.」라고 했습니다.
육신을 버리고 영만 의롭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행위는 하나님과 주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선하게 살든지
착하게 살든지 그냥 내버려 두고 영만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구원받아 살면 육도 영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인들을 보면 교회나 그 속에서는 열심히 하지만 생활이 변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나 정말
제대로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산 자들은 육신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어 살았습니다. 육신의 삶이 변화되지 못했는데
영만 구원받고 사는 자는 없습니다. 육과 영이 일체였습니다.
손으로 이웃 형제를 도와 무거운 것을 들어다 주었으면 손만 의로운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발도 하고, 머리도 하
고, 몸도 같이 한 것입니다.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육이 하면 마음도 한 것이고 영도 한 것이다. 이를
깨달으라. 고로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육신에 대하여 철저히 가르쳐 준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멀리하라’는 말은 세상에 나가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좋은 집을 모두 버리라
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을 1순위로 하고 모든 것을 쓰고 살라’는 말입니다.
『육신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말고, 세상을 제일주의로 두지 말고, 세상에 뿌리박아 빠져 살지 말라.』는 것입니
다.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그 몸을 가지고 와서 마음과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살다가 와서 예배하고 주를 맞으라.』는 것입니다. 『주 뜻대로 세상을 살다가 그 깨끗한 육신을 가지고
와서 주께 예배 드리고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어디서나 주의 말씀을 떠나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
의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됩니다.
세상을 살아도 주의 법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다스리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것들을 좋아하며
거기에 빠져 살면 세상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제일로 하며 사는 사람은 세상에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욕과 물질에 빠져 먹고 마시는 데 모든 소망을 두고 살면 안 됩니다. 주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고
사는 사람이며 세상을 이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면류관을 주고 천국을 상속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이기고 사는지, 지고 사는지 말씀
을 들으면 이 순간 다 분별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꼭 이겨야 됩니다.
‘먹지 말라’는 말은 먹을 것을 아예 외면하고 굶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의와 공의로 다스리며 주님이 세상에서
본을 보이신 것과 같이 살라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주님은 “나의 말을 알고, 말하는 그 심정을 알라.”고 하시며 “그러므로 이 말씀을 다시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
다.
주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이 무엇이냐. 나와 동행하면서 내 뜻대로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스리는 것이다. 육신이 세상에 빠져 육적으로만 살기 때문에 말한다. 신앙은 죽어 있고, 설교 때만
나를 생각하며 입으로만 나를 찾는구나. 육신은 육신대로, 신앙은 신앙대로 살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외식하는 신앙
인이 아니냐. 육의 멸망은 영의 멸망이다. 육신을 따라 영도 똑같이 행한다. 가령 육신이 간음할 때, 영이 그것이 싫
다고 해서 육체를 이탈하겠느냐. 영도 육과 일체되어 행한다. 이처럼 육이 죄를 지으면 영도 같이 죄를 짓는다. 고
로 육의 죄는 영의 죄다. 마음의 범죄도 육과 영의 죄가 된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어떻게 세상을 살았는지 4복음서를 자세히 읽어 보아
라. 그리고 너희들 각자에게 계시하고 깨우쳐 주는 것을 이해하고 근본을 깨닫고, 또 늘 잊지 않게 가르쳐 주어라.”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말하겠습니다.
주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악하게 하는 자들의 행실을 멀리하고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그같이 살아야 됩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악을 멀리하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육적 행위를 멀리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스불론과 납달리를 다니시며 궁핍한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을 위해 살면 희망이 없으니 그 삶을 멀
리하고, 육신이 하나님을 믿고 내 말을 듣고 새롭게 말씀대로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희망에 찬 삶을 현재도 이루
며 영원히 이룬다고 했습니다.
거친 세상에 사는 자들을 거친 세상과 환경에서 이끌어 좋은 환경에서 살도록 이동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 환경에
살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멀리하게 가르쳐 주셨고, 그 위치에서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면서 마음 천국과 삶의
천국을 누리며 주와 함께 하나님을 믿고 살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심방하면서 관리해 주셨습니다. 또
창기들과 세리들과 아픈 자들과 세상이 버린 자들을 가까이하시며 그들의 삶을 정화시켜 주시고 거듭나게 해 주셨
습니다.
환경 탓하지 말고 자기 위치에서 주님을 모시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야 됩니다. 세상을 끌고 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끌려 다니면서 살지 말라고 그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도 육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성령과
동행하면 세상을 이기고 다스리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세상과 물질을 다스리며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많은 것을 얻었어도 그것에 빠지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물질·사랑·명예·예술 등 세상 것에 빠지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다스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계명대로 사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멀리하는 것으로서 주님이 원하
시는 삶입니다. 다스리면서 살라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건만(창 1:28),세상에 빠져서 살고 끌려 다니면서 살고 있
으니 축복이 아니고 고통입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물에 빠져 죽으니 물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육이 세상에 빠져 영이 구원을 상실하니 세상을 멀리하라는
말임을 이해해야 뒵니다. 만일 수영하지 못하여 물을 다스리지 못하고 빠져 죽는 사람을 보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구해 내든지,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 물을 다스리게 해 줘야 됩니다. 무조건 수영하지 못하게 물
에서 나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빠져 죽으니 물을 멀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영을 잘하더라도 물만 사랑하
면서 인생이 거기에 빠져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하며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수영하지 못하는 자는 빠져 죽으니 절대 거기서 나오라. 물을 멀리하라. 수영을 배우고 다스려야 거기 빠져 죽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세상을 너무 좋아하여 육신이 거기 빠져 죽고 영혼까지 빠져 죽는다. 그러니 거기서 나오라는 것
이다”라고 주님은 애타게 말씀하십니다.
인생들은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 3년 계속해서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며 거기 빠져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 천국을 간다는 말입니까. 자신들도 잘 알 것입니다. 육신은
육신 나름대로 그 원하는 대로 살고, 때가 되면 신앙에 몰두하는 인생은 참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주님과 일체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후 6:14-15)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
찌 사귀며』
이는 지구 세상 바깥으로 나가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따라 행하지 말고 주의 뜻대로 살라는 말입
니다. 정욕과 욕심과 혈기와 각종 호색을 즐기며 육신에 속해 육적으로 살지 말고, 육이 신앙에 속해 하나님과 그리
스도의 법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바울 선생을 통해 주님은 육에 속해 살지 말고 세상만 좋아하며 살지 말라고 끝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육이 사망
권에 속하여 죽으면 영도 죽기 때문에 그같이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을 통해 주님은 살아 계셨을 때 못다 한
말을 깊고도 깊게 전해 주셨습니다. 고로 육신으로 살지 말라고 편지로 계시의 말씀을 전하여 외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 역시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과 생활하는 모든 것을 오직 주를 위해 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멀리하라는 말을 다시 잘 들어 보기 바랍니다. 잘못 알고 이해하지 못하면 고통을 받고 오히려 주의 뜻을 이
루지 못합니다. 할 것도 못 하게 됩니다.
돈을 멀리하면 먹을 것도 못 사 먹고, 옷도 못 사 입고, 잘 곳도 마련하지 못하고, 굶게 되고, 꼭 가야 할 곳도 못
가고, 차비가 없어 교회에도 못 나오게 됩니다. 육신이 이같이 되면 육으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고로 영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돈이 세상에서 판을 치고 사람들을 끌고 다녀도 절대 돈을 우선으로 하여 거기 빠지지 말고 다스려야 됩니
다. 오직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여 근본을 두고 살고, 돈과 다른 것들은 하나의 생활의 쓰임으로 여기고 살아야 됩니
다. 돈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도 그같이 해야 육도 영도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준비하여 깨어 있는 주님의 신
부가 됩니다. 신랑을 맞을 자격이 됩니다.
세상에서 돈이 귀하기는 하지만 돈이 생명은 아닙니다. 이 세상은 돈을 신격화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뭐든
지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경제 가뭄이 들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너무 좋아하는 자들은 마치
간음하듯 사랑하며 사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돈을 줍니다.
먹는 것을 멀리하면 배고파서 육신이 쓰러집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마치 간음하듯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습
니다. 먹는 것이 신격화되었습니다. 먹는 낙으로 살다시피합니다. 이것이 체질에 배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는 것을
천국으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는 것을 중심하는 개인·가정·민족들은 정말 무섭게 이것들을 제일주의로 하
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꿈에 큰 돼지가 나를 쫓아다녔습니다. 나를 먹을 음식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 시대가 돼지처럼 그같이 생
각하고 산다는 계시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어느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북경 옥중에서도 “먹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고 하셨습니다. “이 나
라와 섭리를 위해 기도하여라. 나와 대화하자. 모든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라. 영을 위해 살고 의를 행하며 살아
라. 이때가 어느 때인지 아느냐.” 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빵 하나, 어느 때는 공깃밥 한 그릇 겨우 먹을 때였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서 언제 나는 이보다
낫게 먹느냐고 먹는 것에 신경을 쓸 때였습니다. 정말 제대로 먹지 못하여 먹는 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때였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먹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이 곧 오시는 것을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중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부자가 지옥에 갔을 때처럼 지옥의 고통을 받는 심정이었습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청하기를, 세상
에 있는 가족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이 지옥에 안 오도록 제발 한마디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도 그 부자와 같은 심정으로 내 가족들과 또 내 가족과 같은 섭리 사람들에게 그 부자보다 더한 말 한마디를 꼭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깨달았는데 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더 지옥의 고통이었습니다. 한마디만 해 주면 되
는데 그 한마디도 못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 한마디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는 사람은 지금 손들어 봐요.
말해 주지 않으려다가 말해 줍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는 이 한마디였습니다.
내가 20대에도 주님은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가 문제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도 똑같이 말씀하심은
“육으로 살지 말라.” 함입니다. 사람이 잘 먹고 살려면 그만큼 육에 몰두하며 시간을 투자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배고픈 자는 배고플수록 가난한 자는 가난할수록 더 채우려 신경 쓰게 되고, 잘 먹는 자는 잘 먹을수록 부
유한 자는 부유할수록 더욱 거기에 빠져 신경 쓰며 먹는 데 낙을 누리고 먹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산다.”고 말씀하
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 마리아 집에 가셨을 때 정성스레 대접하는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드셨습니다. 음식 한 가지만도 족
하니 마리아같이 말씀을 듣자고 했습니다(눅 10:38-42).
예수님은 먹을 겨를도 없이 말씀만 전하셨습니다. 음식을 잡수시기는 했지만 거기에 중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
직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하셨고, 생명을 구원하는 데 말씀과 뜻을 제일주의로 하셨습니다. 평생 이같이 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이라도, 또 어떤 환경에서도 나와 같이 살자. 너희는 나를 최고로 중심하고 나에게 초점을 맞춰
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이하며 애인처럼 일체되어 사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으로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 14:1-5)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
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
옵나이까』
주님은 약속대로 주를 믿고 절대시하는 사람들을 위해 천국에 황금과 보석으로 된 집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가 조건을 세우지 못하여 못 가면 누가 가서 살겠습니까? 빈집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세상만 가까이하고 좋아하며 빠져 살지 말라. 지금 때가 되어 너희를 데리러 왔는
데 준비되지 않은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 어서 회개하고, 제발 세상 좀 그만 사랑하고 나 사랑하면서 순종해. 나
에게 붙어야 한다. 천사장이 나팔 불면 휴거하자고 너희들에게 왔다 갔다 하는 요즘 나의 심정을 제발 깨달아라. 지
금부터라도 천국을 좋아하고, 나를 최고로 중심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살아라.”
마지막 한 번이라도 원칙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주님이 오실 때 데려가 주십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라 사람들은 더 먹고, 더 입고, 더 자고, 더 돈을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땅·집·명예·예술·공부·사
업 등 각종 취미와 노는 것에 빠지고 이성과 사랑에 빠져 자기 심리와 개성과 자기 좋아하는 대로 기뻐하며 거기
빠져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온종일 자기중심의 삶입니다.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저 때가 되면 그때그때 조금 부르고,
힘들 때 부르고, 기도 조금 하고, 주님이 사명자를 통하여 급한 소리를 하시는데도 말씀을 귀히 듣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또 교회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주님이 첫 번째로 들어가지 못하게 대한다고 합니다. 자기의 삶을 한번
생각해 봐요. 그러니 주님은 “내가 어떻게 그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겠느냐.” 했습니다. “이런 사람도
말씀을 듣고 지금부터 새롭게 하여 나와 일체되어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잘하면 천국에 갈 자들인데 못하여 지옥
으로 가니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는데 결혼을 앞두고 만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와 사귀는 3
년 동안 여자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돈 제일주의, 먹는 것과 입는 것 제일주의, 예술과 명예 제일주의,
자신만 제일주의, 환경 제일주의, 집 제일주의, 공부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남자가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3년 동안 전혀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남자를 앞세워
자랑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상 남자는 말도 못 할 정도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명예와 권세까지
가지고 있으며 세상 그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는 세상을 너무 좋아하며 살면서 어려울 때만 남자를 찾고 눈에 보일 때만 조금 신경 썼습니다. 여자가 결혼할
남자보다 다른 것을 제일주의로 생각하며 남자는 열 번째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니 어떻게 이
여자와 결혼하여 살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할 수 없이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모든 것을 깨우쳐 주고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간을 주었습니다. 이 여
자는 오직 남자만을 위해 살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최고 첫 번째에서 열 번째까지
남자에 맞추어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남자가 사는 곳으로 데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와 산다 해도 인격 때
문에 그 나라에서는 못 삽니다.
여러분들도 주님 앞에 이와 같습니다. 그 여자와 같이 여러분들도 이제야 정신 차리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열심히 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할지 걱정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고 싶은 모든 것과 하고 싶은 모든 것을 구하기 전에 주님은 이미 아시고 우리를 위해 하늘나
라에 금과 보석으로 된 집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세상 것보다 수십만 배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육신이 세상에서 못 쓴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세상에서 절제하며 하나님과 나를 맘껏 섬기다가 하늘나라에 와서 영
원히 쓰고 하고 싶은 것을 하여라. 너희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너희를 데리러 온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비하신 것을 우리가 좋아서 쓰는 것을 보면서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 기쁨을 누리십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나라는 환경뿐 아니라 먹는 것도 세상 것에 감히 비교할 수 없이 맛있는 것들이 많다.
영원토록 맛있게 먹으며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식사 때가 되어 식기도를 한 후에 주님도 같이 먹자고 하니, 주님은 “육의 음식은 육이나 맛있지 영은 맛없다. 영은
하늘나라의 것을 먹어야 제 맛을 느낀다. 그러니 어서 맛있게 먹어.”라고 했습니다. 감격하여 눈시울을 적시며 진리
를 깨닫게 하여 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는 성경에 기록된 것 외에도 너무 많은 것이 있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자가 이 세상에서 귀히 쓰던 귀중품
을 죽을 때 천국으로 가져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모두 몇 가지는 꼭 가지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는 너
무 부끄러워서 천국에 간 그날 바로 버릴 것입니다. 버리려 해도 쓰레기통이 없어서 못 버립니다. 버리지 못하고 영
원히 짊어지고 머리에 이고 다녀야 됩니다. 그래서 다 버리고 영만 온전하게 보물로 만들어 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육이 귀하듯 하늘나라에서는 영이 귀하다.』고 주님은 오늘 새벽에 깨우쳐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
을 풀어 여기까지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기도 끝나고 피곤하여 누워 있는데 한 계시를 보았습니다. 어머님이 나타나시더니 내 앞에서 보따
리를 끌렀습니다. 먼 나라에서 돌아왔다고 하며 이것을 먼 나라에서 구해 왔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보따리를 푸니, 고구마 뿌리 넝쿨에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고구마가 열 개쯤 소담스럽게 달려 있었습니다.
“야~ 많이 열렸다.” 하며 또 다음 보따리를 풀었는데 역시 거기도 고구마 뿌리 넝쿨에 줄줄 매달리듯이 열 개 이상
의 큰 고구마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생시에도 보기 드문 뿌리 열매였습니다.
어머님께 이 귀한 것을 어떻게 구했으며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가지고 왔냐고 물으면서, 그 두 개의 열매
넝쿨을 양손에 쥐고 “귀하다. 정말 귀하다.” 하며 잠에서 깼습니다.
이것이 무슨 계시인지 생각하면서 기도하니 주님은 “새벽기도 때 깨닫게 해 주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때 “이 세상은 육이 귀한 세상이고 하늘나라는 영이 귀한 세상이다.”라고 깨우쳐 주셨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육도 의롭게 살면서 주님의 계명을 절대 지켜 구원받아야 영도 그같이 된다.’는 깨달음이 들면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두 개의 고구마 넝쿨 중에 하나는 육에 속한 계시고, 또 하나는 영에 속한 계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육이 잘되어야 영도 잘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의 부모로서 나의 어머니로 꿈에 나타나셨
습니다. 육도 영도 주 안에서 잘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육도 영도 잘되어야 구원이다.’라고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북경에서 올 때 그 많은 것 중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못하고 몸만 가지고 왔습니다. 주님은 “죽을 때도 이같이
영만 가지고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다만 먹은 것을 내 몸에 가지고 왔습니다. 그 먹은 것이
몸속에서 변화되어 살과 영양분으로 가지고 왔고, 말씀을 받은 것은 머리에 담고 마음에 담아 왔습니다. 무슨 말인
지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육에 속한 모든 것들은 하늘나라에 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다만 육이 행한 것을 영이 가
지고 갑니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육이 행한 것들은 홀연히 영으로 변화되어 영의 몸으로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머
릿속에 말씀과 생각은 가지고 갑니다. 선한 마음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육이 행한 모든 것을 가지고 갑니다.
이같이 주님은 “육신 세계의 것을 하늘나라로 가지고 가는 길이 있다면 영을 위해 쓰고 하늘나라를 위해 쓰는 것이
다. 음식은 못 가지고 와도 음식을 먹으면 살이 되어 가지고 올 수 있듯이,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를 위해 쌓은 의와
공적도 하늘나라에서 집이나 보물로 변화되어 영원히 자기가 쓰게 해 놓았다. 그러나 썩은 시체는 마치 배설물같이
버리고 간다.”고 했습니다.
고로 ‘주의 강림에 특히 영과 혼과 영이 흠 없이 나타나라.’고 한 것입니다(살전5;23). 육도 마음도 영도 모두 일제
히 깨끗하고 정결하고 단장된 자가 되어야 평소 때도, 마지막 재림 때도 제대로 주를 맞게 됩니다.
육이 죄를 지으면 마음도 죄를 짓게 되고 영도 죄를 짓게 됩니다. 육이 의를 행하면 마음도 영도 의를 행한 자가 됩
니다. 육과 마음과 영은 하나입니다. 그 행위를 회개하여 의인도 되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악인도 되는 것입니다.
육이 주님과 하나 되면 영도 그러합니다. 마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육이 주님의 애인이 되고 신부가 되었다면 그 마
음과 영도 그러합니다. 영의 상태는 육신의 상태를 보면 압니다. 이로서 영혼의 구원문제도 알게 되고 천국으로 갈
사람인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를 자세히 가르쳐 주시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육의 행실을 잘 보아라. 보면 알 수 있으니 나의 법에서
벗어났으면 회개하고 고쳐라. 오늘날 나를 믿는 자들이 입으로만 믿고, 몸은 따로 제 마음대로 세상적인 삶을 산다.
고로 그 영도 똑같다. 육의 행위에 따라 마음도 그같이 되고 영도 그러하다. 세상에서 막 살던 그 몸을 제물로 드리
니 잘 받겠느냐.”고 했습니다.
제물이 몸과 마음과 영이므로 흠이 있으면 안 받으시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깨끗한 제물로 드
리라고 했습니다.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에서 쓰는 몸과 예배 때 제물로 드리는 몸이 각각인데 하나님과 주님이 받으시겠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마 5:4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는 다니는데 세상의 삶과 신앙의 삶을 각각으로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금의 역할과 빛
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한 몸이니 세상에서 살든지, 주님 안에서 살든지 똑같아야 됩니다. 주님은
철저히 육의 행실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영도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행위를 고치고 보다 온전해지면 자기 영도 그만큼 온전해집니다. 육신의 행위가 온전해지면 꿈속에서나 기도
중에 보다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고, 보다 깨끗한 집에 있고, 보다 깨끗한 환경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해야 육도 마음도 영도 홀연히 변화가 일어납니다. 금년도 총 주제와 같이 섭리의 모
든 자들이 정녕코 변화를 이룰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행하지 못하면 마음도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행동하지 못한 자는 죽은 신앙이며 죽은 영입
니다. 사망권에 있는 영입니다. 고로 주님은 정말 온전하게 행하셨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며 온전한 말씀을 늘 전하셨습니다. 온전한 삶에서 생명의 말씀이 솟아난 것입니
다.
그러므로 그 영은 빛나고 광명한 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바울은 눈이 부셔서 예수님을
쳐다볼 수 없어 쓰러졌습니다. 주님의 육신도 찬란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기에 그 영도 해같이 빛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됩니
다. 그래야 천적, 마귀와 귀신들이 가까이하지 못하고 그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 마귀와 귀신들이 우리에게 감
히 666인을 치지 못합니다.
누가 늘 시켜서는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말씀을 듣고 하고 싶어 하고, 휴거되어 천국에 가려고 결심하고
행해야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주님이 친히 함께하시어 온전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행한 자는 육도 빛나고 영도 빛났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정신이 썩으면 육도 썩고 영도 썩는다.”
고 주님은 철저히 나를 깨우쳐 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에 놓고 깨어 행해야 됩니다. 이때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압니까? 말씀이 없으면 몰라서 못 합
니다. 세상에 빠져 살지 말고 주님과 같이 세상을 다스려야 됩니다. 주께서 기회를 주셨으니 지금의 기회가 지나면
더는 없습니다.
지난날 삶을 생각해 봐요.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살진 않았는지 생각해 봐요. 정말 좋아했지요? 모두 한두 가지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행하고 먹고 마신 후에 그제야 주님을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하면서 삶은
먹고 마시고 세상의 것들을 즐기며 살면 안 됩니다. 이는 주님을 제일주의로 하는 삶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먼저
하고, 주님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입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고 살다 보면 세상을 사
랑할 시간이 없어서 못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기에 시간을 다 씁니다. 육신은 물질계이기 때문에 하다 보면 체질화되어 후에는 정말 세
상을 떼지 못하고 거기에 시간을 다 쓰고 삽니다. 다스려야 됩니다. 먹고 입고 자고 행하는 것 외에도 가지가지 모
두 다스려야 됩니다.
세상보다 천국을 더 좋아해야 천국에 갑니다. 천국에 데려다 놓아도 세상에서 살듯 하면 미쳤다고 다 싫어하고, 예
수님께 보고하고, 신고하고 쫓아냅니다. 그러면 다른 세상으로 가서 살아야 되는데 지옥에서도 다른 것을 더 좋아하
며 살고 싶어도 사랑하고 좋아할 대상이 없어서 못 합니다. 사랑받는 대상도 없고 먹는 것과 즐기는 것이 하나도 없
습니다.
세상과 같이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영계 세상에는 어떤 세계를 가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온
전히 살다가 천국에 가면, 오직 천국만이 하나님의 법에 의해 주님의 뜻 속에서 그 나라 뜻에 따라서 최고의 영화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천국에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노는 것들이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좋은 것들만 있습니다. 그것을 즐깁니다. 그러
나 세상처럼 무질서의 세계가 아닙니다. 질서 있게, 성결하게, 거룩하게, 뜻있게, 존경스럽게, 권위 있게, 아름답게,
의롭게, 사랑스럽게, 기쁘게, 꺼림 없이, 보기 좋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과 함께하는 세계로 창조되어 있습
니다.
세상에서도 배워야 됩니다. 주기도를 보면 ‘하늘나라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땅에서도 기
도하며 그같이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만이 하늘나라에 가서
천 배 만 배 맘에 들어 하며 기쁘게 살게 되고 영의 체질에 맞게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지금 말씀으로 관리하시고 다스리십니다. 말씀을 생명시하고 지켜야 주님
과 일체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한 것을 정리해서 머릿속과 마음속에 쏙 들어가게 해 주겠습니다.
<핵심 정리>
세상은 육신이 귀한 세상입니다. 고로 육신이 세상에 속하여 세상을 사랑하며 육신대로 살면 영도 육과 일체되어 똑
같은 자가 됩니다. 고로 육도 영도 사망권에서 계속 살게 됩니다.
나무와 돌을 옮겨다가 월명동에 갖다 심고 쌓듯이, 육신이 주님의 주관권으로 와서 참포도나무와 접붙이듯이 주님과
하나 되어 그 주관권에서 주님을 머리로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영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구원받은
영으로서 주와 하나 되고 참영이 되어 세상에서 살다가 때가 되면 휴거되어 하늘나라에 가게 됩니다.
육과 마음과 영은 한 몸입니다. 따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고로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육신의 행실을 지적하시며
고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육신의 세상입니다. 육신이 귀한 세계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
입니다. 육신이 죽으면 영의 성장이 멈추고, 그동안 육을 중심하여 한 것을 기준하여 지옥이나 천국으로 결정됩니
다.
육신을 통해 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보이는 영만 보려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은 마치 육의 그림자와 같
습니다. 육신이 선하면 영도 선하고, 육신의 행실이 썩어 있으면 정신도 영도 썩은 자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의식 없이 살다가 그 육을 가지고 주님께 예배합니다. 육도 영도 신령과 진정으로
살지 못하다가 와서 예배하면 하나님과 주님이 안 받으십니다. 세상을 다스리며 주 안에서 깨끗하게 살다가 와서 그
몸과 영으로 예배해야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육은 제 맘대로 미워할 사람들 다 미워하고 할 짓 다 하면서 신앙은 경건한 척했습니다. 고로 주님은
꾸짖고 심판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이 그러합니다. 영육을 깨끗하게 해야 됩니다. 재림 때는 육과 마음과 영이 깨끗해
야 휴거됩니다. 삶을 깨끗이 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맞아야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디를 가도 자기 몸 하나 금빛 찬란하게 만들고 챙기라.”고 했습니다. 또 “환경이 뭐 그리
중하냐. 먹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 나중에는 가지고 가지도 못한다. 오직 몸을 빛나게 하면 자기 영도 빛난다.”고
했습니다.
자기 몸을 건강하게 하고, 신앙을 보석같이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영도 그같이 됩니다. 육신의 행실과 마음이 주
님의 마음과 행실로 바뀌지 않고서는 그 영은 절대 사망권에 처한 영이 되어 구원이 상실됩니다.
30년 동안 섭리사의 교리는 ‘실천’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행하라!”고 했습니다. 육적인 변화와 영적인 변화를 이
루어야 됩니다. 먼저는 육 있는 자요, 다음은 신령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고로 계시에 두 개의 고구마 넝쿨에 달린 열매들을 보이셨습니다. 이는 육적인 것과 영
적인 것을 말합니다. 육이 신앙의 불구자면 영도 그러하다고 선지자들도 외치고 구약 때 하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을 읽어 보면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육신의 행실과 마음을 계속 지적하
시며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모두 깨닫고 주님을 맞는 데 있어서 육신과 행실을 거룩하게 하고, 말씀
에 순종하고, 절대 주님과 일체되어야 합니다.
육신이 행한 것은 일체(一切)영이 가지고 하늘나라로 갑니다. 악한 자는 그 영이 악하여 사망으로 갑니다. 먹는 것
은 못 가지고 가도 먹고 살을 찌워서 가지고 갈 수 있고, 치약과 칫솔을 못 가지고 가도 그것으로 이를 닦아 깨끗이
하여 가지고 갈 수 있고, 책은 못 가지고 가도 머리에 외워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에 갈 때는 육은 못 가지고 가기에 육신의 것을 다 소화하고 흡수하여 영이 그 공적을 가지고
갑니다. 음식을 먹고 살찌우고 나머지는 배설물로 버리고 가듯이, 육도 배설물같이 버리고 영만 간다고 주님은 이치
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외국에서 자기 나라로 돌아올 때는 과일을 못 가지고 옵니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에 공항에서 막습니다. 그러니
실컷 먹고 영양가를 몸에 흡수하여 가지고 오면 됩니다. 이와 같이 육과 육의 것은 하늘나라에 못 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육의 행실과 의는 일체(一切) 영이 가지고 갑니다. 육의 공적은 영의 살과 뼈가 되어 가지고 갑니다. 육의
행실로 인하여 자기 영이 성장하고, 때가 되면 정화되어 선으로 가지고 갑니다.
휴거도 이 같은 이치로 말했습니다. 육신이 홀연히 변화하여 썩지 않는 영으로 살아나 휴거된다고 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 홀연히 변화하여 예쁘고 부드러운 살이 됩니다.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내용이 변화하여 머릿속에 녹화되고,
행실로 변화하여 행동하게 됩니다.
주님은 세상의 것을 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꼭 이해하고 들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각자의 체질에 맞게 집도 환경도 만들어 놓으
셨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웅장하고 신비하고 아름답게 꾸며 놓으셨으니, 천국으로 가는 조건을 세우고 외롭지
만 주님과 하나 되어 살다가 후에 천국에 와서 영원히 누리라고 했습니다.
월명동을 개발하기 전에 섭리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전도도 안 하면서 다른 데 가서 욕먹고 제
재받으며 놀지 말고 참아라. 실컷 놀고, 뛰고, 공을 찰 수 있게 만든 곳에서 와서 아무 제재 받지 말고 놀아라.” 했
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며 놀지 않고 참고 섭리를 뛰던 자들은 월명동에 와서 보람 있게 뛰놀게 되었습니다.
주님도 하늘나라를 다 준비해 놓으시고 데리러 오셨는데 세상을 너무 좋아하며 거기에 빠져 사는 우리의 육신들을
보고 한탄하시며 “마지막으로 준비하라고 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겠지요?
섭리사는 빨리 빨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약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판이 식어 버
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가야 됩니다. 주님 앞에 낙심하면 순위가 바뀝니다. 절대 주님을 신임해야 됩니다.
정리가 되었지요? 설교 때마다 말씀한 것을 반복하여 말해 주지 못하니 말씀을 계속 반복하여 보기 바랍니다. 주님
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크십니다. 주님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와 동행하십니
다. 또 수시로 도적같이 오셨다가 가십니다. 안녕~ 모두들 잘 가고 또 만나요.
<2009년 3월 15일 주일말씀>
예비해 놓고 있으라 정말 생각지 않은 때 주님이 오신다
본 문 마태복음 24장 40-51절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주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다뤄야 될 것인지를 먼저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꼭 들어야 된다. 그리고 성경도 본 후에 말씀을 들어야 나의 마음과 일체되고, 책망을 받지 않
고, 제대로 재림을 예비하게 된다. 또 내가 준 원본의 말씀은 건드리지 마라. 토를 달지 말고 내가 주는 말씀의 원
본 그대로를 전해 주고 기록도 하라.”
주님은 주님이 주신 원본 말씀에 대하여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원본은 건드리지 말아라. 원본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아라.”
사도 요한이 묵시의 말씀을 기록할 때 엄히 말씀하셨듯이 나에게도 말씀하시며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계시록 22장
19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천국에 오는 것을 제하여 버린다고 했습니다.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
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너무나도 두렵고 더 이상이 없는 대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주님의 원본 말씀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가는 전화번호와도 같고 주소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더해도 안 되고 빼도 안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를 제대로 찾
아갈 수가 없어서 다른 길로 가게 됩니다. 다른 길로 가서 구원을 받지 못하므로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감을
제한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도 자기가 말한 것을 듣고 전하는 사람이 제 감정대로 더하거나 빼서 전하면 너무도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자
기의 어떤 좋은 세계에 오지 못하도록 제하여 버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원본 말씀과 성경 말씀을 제 마음대
로 빼거나 더해서 전하면 천국에 들어감을 제하여 버린다는 말씀을 깨달아야 됩니다.
30개론 말씀도 선생이 가르쳐 근본을 인식시키는 것과 여러분이 가르치는 것을 비교해 볼 때 너무 차이가 나게 가
르치는 것이 많습니다. 어떤 것을 너무 부각시키거나 더해서 가르치는 것이 많습니다. 주님을 근본으로 한 말씀인데
말씀을 받아 와서 가르치는 자를 부각시키면서 가르칩니다. 그것도 원본에 더해서 가르치는 것으로 잘못된 것입니
다.
선생이 직접 가르치면 주님에 대해 제대로 증거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고, 말씀 중에 주님이 나타나 역사하십
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가르치면 내가 나타나게 가르칩니다. 말씀을 받아 온 사역자를 통해 주님이 역사하시니 눈
에 보이는 자를 중심하게 됩니다. 육적인 사람들입니다. 단상에서 목사님들이 말씀을 잘한다고 해서 목사님 중심하
면 되겠습니까.
말씀의 원본자는 주님이십니다. 그 다음은 받아서 쓰고 만든 자입니다. 그 다음은 외치는 자이며 듣는 자, 실천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받아 오는 자도 절대 믿어 줘야 합니다. 모세같이 귀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주시는 자는 말씀의 주인이시며 그 말씀대로 이끌어 가고 목적을 이행할 전지전능하신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늘 생각해야 됩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말씀의 원본자이신 주님을 범사에 기억하고 생각하며 ‘이래서 이 말씀을 주셨
구나.’하고 감사하고 고마워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은지 주님과 일체되지 않은 자는 정말 모릅니다. 왜 중매한 사람만 좋아합니까. 중매한 사람 때문
에 대상자와 살게 되었다고 중매자를 대상자보다 더 가까이하면서 살면 대상자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모세와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과 주님이 귀히 보셨기에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또 실력이 있어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택하였기에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받은 자의 말을 안 들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제한다고 했습
니다.
말씀을 받아 주는 사역자를 말씀의 원본자이신 주님보다 더 귀히 여기니 말씀을 받아 주는 자가 그들의 잘못을 고
쳐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귀히 여김을 받는 자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못 합니다. 항상
원본을 더욱 빛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설교하는 사람이 해야 되지만 원본을 더하거나 빼면 안 된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깨닫겠습니까.
주님은 “이 시대도 네게 준 말을 다른 말로 바꾸거나 빼지 말고 전하고 기록하라. 다만 원본을 놓고 그 말씀의 근본
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로는 설명을 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주님의 원본 말씀이고 어디까지가 사람이 깨닫고 설명하는 말씀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설명하
는 것도 주님이 원본을 주시어 그것을 지혜와 성령의 감동으로 비유를 들거나 다른 말로 감동시켜 하게 하시니, 사
람을 통해 하는 말씀도 제대로 전하면 다 귀한 것입니다.
말씀의 원본을 더하거나 빼거나 손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첫째, 주님이 쓰시는 문법과 문자의 근본을 알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님은 과연 어떻게 그것을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책 한 권
도 한마디로 줄여 잠언으로 짧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천 마디 물음에 한마디로 짧게 대답하셔도 천 마디 물음에
대한 답이 되게 대답하십니다. 고로 단어를 만들어도 다른 말이 됩니다.
말씀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해, 또 문법을 어느 정도 전지전능하게 쓰시는지 알게 하기 위해 원본을 손대
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 말씀의 원본을 손대면 말씀의 본질과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성경은 원본 말씀이니 그대로 전하되 설명해 주라고 했습니다. 고로 원본 말씀을 읽고 싶은 사람은 성경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목숨 걸고 고통을 겪으며 순교해 가면서 기록한 말씀이다. 또 극한 환난 가운데 옥중에서, 혹은 산속에 들
어가 굶고 쓰러지면서 기록한 말씀이다. 그런데 왜 제 생각대로 빼고 더하여 가르치느냐. 편한 시대에 살면서 편히
방 안에서 성경도 주일말씀도 다시 읽어 보지 않느냐. 성경은 나에 대해서 말했는데 왜 나를 알려고 힘써 읽지를 않
느냐. 나에 대해서 알려면 읽어라. 읽을 때는 집중하여 깊이 읽어야 깨달아진다.”
주님이 사명을 주어서 쓴 책도 한두 번 읽고 끝납니다. 모든 것을 건성으로 합니다. 완벽하게 행하시는 주님은 그런
사람을 신부로 삼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주님의 음성이 글과 겹쳐 마음에 들려야 성경 원본을 깨달아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천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하시며, 실천할 때 주님이 도우시고 함께하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원본을 깨달아야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주님이 행하신 일이며 하나님과 주님의 사명을 받은 자들이 행한
일이기에 원본을 읽고 깨달아야 사명을 주신 하나님과 주님에 대하여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원본의 말씀을 귀하게 보고 생명시해야 됩니다. 근본으로 보고 전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잘못 풀어 잘못 전하는 자
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동안도 주님이 확실히 깨우쳐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될 수 있는 한 저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주장하고, 확인하고 말해야 됩니다. 듣는 자는 말씀을 잘 이해해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에 대한 깊은 것을 몇 시간 동안 말한 후에 정말 잘 알아들었는지 다시 확인해 보았
을 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행하는 것을 많이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섭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
세히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원본 말씀의 핵심만 전하려다가 잘못 전한 것이 있으니 계속 교정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
다. 가장 근본은 ‘주님만이 구원주이시다.’,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된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
고 사해 주신다.’, ‘유일신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님은 삼위일체다.’, ‘주님이 재림하신다. 인간은 재림주가 될 수
없고, 다만 선지자와 사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위해 보낸 사역자들이다.’입니다.
이외에도 많지만 원본 말씀에 절대 어긋나면 안 됩니다. 부활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마귀에 대하여 주님이 말씀
하신 원본 말씀과 표적들은 절대 그대로 전하고 다만 풀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그렇게 짧고 간단하게 썼느냐고 주님께 물었을 때 원본 말씀만 연결하여 쓰다시피 했다고 했습니다.
또 주님이 일일이 다 코치하고 인도하여 썼다고 했습니다.
20대에 산에서 주님의 원본 말씀을 꼭 듣고 싶다고 했을 때 주님은 “성경을 내 음성같이 듣고, 내가 설교하는 것같
이 외쳐 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니, 성경을 읽다가 감동되어 감격해 울면서 예수님의 음성을
깨달은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성경은 내 원본 말씀이다. 원본만 기록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토를 달지 않고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에 대해 이해를 했을 것입니다. 성경 원본을 제대로 풀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근본을 제대로 알고 해석
하고 전해야 주님과 일체되고 신앙이 생명권에서 주님의 시대 역사를 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어
떤 사람이, 또 어떤 교파가 살아서 주님과 함께 열정적으로 시대에 맞는 뜻을 펴는지 말씀을 들으며 지켜보기 바랍
니다.
주님이 비유를 들어 하신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열 명의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 차(茶)를 대접했다. 차를 대접한 자는 손님들에게 차의 맛이 어
떤지, 무슨 차 같은지 물었다. 모두 대답하기를 맛이 텁텁하다고 하며 무슨 차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들이 차를
많이 안 마셔 봐서 모르겠느냐. 차의 종류를 몰라서 모르겠느냐. 모두 생각해 보아라. 또 그 집의 다른 사람이 손님
들에게 차 한 잔씩을 대접하고 차 맛이 어떤지, 무슨 차 같은지 물었다. 이에 손님들은 차 맛은 쌈박하고, 매실차라
고 대답했다. 전의 것은 모르고 후의 것은 아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한 가지 종류의 차를 타 줘야 즉시 알고, 맛
도 한 가지로 동일하게 느끼지 않겠느냐. 이 시대 말씀도 그렇게 전해야 되고, 행함도 생각도 그렇게 해야 된다. 시
대가 급하니 속히 깨닫도록 깨우쳐 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너무 합당하여 소름이 끼칩니다.
오늘의 원 말씀을 듣겠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 마태복음 24장 40~41절을 보겠습니다.
(마 24:40-41)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흔히 사람들은 이 말씀을 두고 믿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데려가지 않는다는 식으로 풀어 전
하는데, 이 말씀은 누구를 두고 말한 것이냐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세상 모든 자들을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
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 데려가는 2:1의 비율이라는 말이 아니고, 데려가는 사람도 있고 버림을 받는 사람도 있
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마태복음 24장 42~44절을 보겠습니다.
(마 24:42-44)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날 재림 때에 버림을 받는 자들은 신앙이 깨어 있지 못하고, 완전하게 준비하고 예비해 놓고 살지 않았기 때문이
라고 했습니다.
“완전하게 예비한 자만이 내가 도적같이 와도 맞을 수 있다. 너희가 정말 생각지 않은 때에 온다. 그러므로 깨어 완
전하게 준비하고 있으라. 정말 그리해야 나를 맞는다. 깨어 준비한 자에게는 도적같이 아니 올 것이다. 그래도 그날
에는 도적같이 나타날 것이다. 모두 놀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말한 그대로다. 생각나고 깨달을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5~51절을 보겠습니다.
(마 24:45-51)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
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
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서 주인이 원하는 대로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이며, 주인이 올 때에 종이 그같이 하
는 것을 보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양식은 말씀입니다. 그 시대에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알지 못하는 자는 버림을 받는 자가 됩니다. 말
씀을 주님같이 보고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받게 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주
일말씀과 수요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자기 얼굴의 눈·코·입·귀와 같이 귀하고 목숨과 같이 귀합니다.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온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좋아하며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즐긴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와
서 이를 보고 엄히 때리고 벌을 주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
“속히 곧 오신다.”, “더 여유가 없다.”고 하며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이 시간마저 끝이 다가온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늘 긴장하여 준비하고 예비하는 사람을 주님은 이 시대에 최고로 좋아하십니다.
*“때가 되어 마지막 말씀을 선포한다고 해서 하늘만 쳐다보며 천사장의 나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아라. 역사
는 과정이다. 과정 속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그동안 외친 말이 기억나지 않느냐. 과정 없이는 목적지를 갈 수가
없고, 과정 없는 역사는 없다. 역사는 동시성이라고 한 말을 잊었느냐. 잊지 말고 늘 생각하며 말씀을 들어야 된다.
지금은 재림을 곧 앞에 두고 마지막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과정 중에 재림을 준비하고 행하라는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이 그 날을 위한 지금의 자격자가 되는 것이다. 과정 중에 깨끗이 회개하고 정결케 행하며 늘 주님을 맞아 살아
야 한다. 이런 사람이 역사는 동시성이라는 말씀과 같이 그 날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게 되는 것이다. 재림
전에 주를 맞고 산 자가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고 주님이 도적같이 오실 때에도 부활되고 휴거되어 주를 맞고 하
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깨달았습니까? 주님 말씀의 원본은 꼭 쓰고 외우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하겠습니다. (‘*’ 표시한 부분의 말씀을 다시 외쳐 주어라.)
이제 어떻게 이 말씀을 생활 속에서 더욱 깨닫고 실천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앞에서 마시는 차를 두고 비유한 말씀을 들었지요? 한 가지 종류의 차를 타 주면 누구든지 무슨 차인지 그 맛과 종
류를 금방 알 듯이,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전지전능하게 말씀하십니다. 할렐
루야~ 아멘! 그래서 원본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말고 전해 주고, 이에 설명하는 것은 더 해 줄 수도 있고 덜 해 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는 것이 곧 설교이며 주님의 원본 말씀입니다. 모두 신약성경을 20독 이상 정독하도록 해요.
여러분들도 말을 조리 있게 하고 강의도 잘하려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배워야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말을 더듬
기도 하고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했는데 주님께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세상 말을 하기는 쉬운데, 하늘 말을 조리 있게 감동을 주며 제대로 깨닫게 해 주고 은혜를 주면서 하기는 어렵습니
다. 하늘 말은 감동으로 해야 됩니다. 주님은 “자세히 해야 알아듣고, 그 해당되는 말만 간단히 여러 번 해 줘야 된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오늘 말씀을 깨닫도록 더욱 자세히 말씀하겠습니다.
원본 성경 말씀은 머릿속에 넣고 꼭 잊지 말고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원본 말씀을 모르거나 정신에서 잊어버리고
말씀을 듣는 자는 마치 목적지를 잊고 가는 자와 똑같아서 방황하며 그 수고는 헛수고가 됩니다.
「평소에 주님을 맞은 자가 마지막 재림 때 휴거되어 주님을 맞는다」는 축소된 말씀을 꼭 외우고 들어야 됩니다.
역사는 동시성이듯이 평소 주님을 늘 맞는 역사가 마지막 재림 때도 주님을 맞는 역사가 됩니다.
마지막 재림 전에 주님이 어떻게 나타나시는지 먼저 말씀하겠습니다. 알아야 평소에 주님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꿈에 나타나기도 하시며, 혹은 새벽이나, 기도 중에나, 낮에 생활할 때나, 밤길을 갈 때 나타나기도 하십니
다. 반드시 뜻이 있어 나타나십니다. 나타나시면 얼굴만 비치고 그냥 가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행함을 보시든지, 어
떤 것을 깨우쳐 주시든지, 어려운 문제를 도와주시든지 표를 내고 가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관심 없이 보거나, 하나의 환상같이 보고 말하거나, 하나의 체험으로 보고 끝나거나, 신앙이 잠자
는 상태와 정신이 썩은 상태로 보면 그냥 보고 지나치게 됩니다. 주님이 깨우쳐 주신 것도 못 깨닫고 말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근신해야 합니다. 또 주님을 보면 실제 온 것같이 귀히 맞고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늘 회개하며 깨끗한 마음과 행실로 감격하면서 실제로 주님을 맞듯이 재림을 예비해야 됩니다. 특별히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보면 그 곳에 갔다 왔어도 그것을 못 보고 오듯이, 주님에 대하여 신경을 쓰고 살며 깨어 기도하고 근신
해야 주님이 오심을 알게 되고 깨닫게 하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요즘 주님은 수시로 도적같이 오고 계시니
정말 내가 말한 것을 믿기 바랍니다.
어느 때는 실제로 보이게 오시기도 하지만, 거의 모습을 안 보이시고 기도 가운데 깨닫게 해 주고 가십니다. 또 성
경을 읽을 때 오셔서 자기 문제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오셔서 깨닫게 하시고, 집회 때나 예배 때 오시
고, 형제를 용서해 줄 때 오시고, 일할 때나 생활 속에 오시고, 찬양하고 전도하며 강의할 때 오시고, 새벽에 오시
고, 구제할 때 오시고, 원수를 사랑할 때 오시고, 감사할 때 오시고, 위험할 때 오시고, 사고 직전이나 사고 났을 때
오시고, 심판할 때 오십니다. 이렇게 그 언제라도, 알 수 없이 24시간 속에 도적같이 오십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꼭 알고 대화를 해야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때 빨리 자기가 할 말을 해야 됩니다. 주님은 “네
시간은 네 시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순간 만나는 시간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자기 시간으로 쓰라
는 말입니다.
이렇게 평소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줄 알아야 재림 때 휴거되는 자격을 갖추어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부활되고 휴거되어 주님을 맞아 천 년 동안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꼭 꿈으로나 환상으로만 계시를 받으려고 하지 말아라. 평소에 지혜로 계시가 전달된다. 이는 머릿속에, 뇌 속에
어떤 깨달음이 오고 그 현상이 꿈에 보이듯 느껴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서 7장 1~15절을 보면, 다니엘 선지자는 뇌로 계시를 받고 번민했습니다.
(단 7: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큰 짐승 네 마리가 뇌에 스쳐 보였습니다. 이에 번민하니, 해석해 주는 천사가 네 마리의 큰 짐승은 네 왕을 말하는
것으로 각각 보인 모양에 따라 그와 같음을 말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뇌로 어떤 현상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낮에 현장에서 사건이 닥쳐오는데 그날 밤에 잠자는 중에 꿈으로
전달하면 늦어서 안되기에 즉시 뇌로 계시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만물을 보여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계시를
하십니다.
주님의 계시는 다양합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로 도적같이 역사하니 깨어 있어야 안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말씀은 안 하셔도, 알고 맞는 자는 주님이 자기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즉시 깨달아집니다. 영계에서나 육계에서
나 특별히 주님을 실체로 만나면 말이 필요 없이 줄줄 주님의 마음이 전해져 깨닫게 됩니다.
천국은 말이 없어도 거의 서로 전달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하고 싶
으면 입이 있으니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오시면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을 무언으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주님은 문제가 있고 고민이 있고 걱정이 있는 자에게 사람을 통해 나타나셔서 인성과 신성으로 충분히 말씀하시고
계시하실 때가 많습니다. 신성이란 주님이 사람을 통해 원본대로 말씀하시는 것이고, 나머지는 감동으로 그를 설득
하면서 보낸 자로 말하게도 하신답니다. 이는 ‘인성’이라고도 합니다. 주님이 이같이 깨우쳐 주실 때 깨닫고 즉시 돌
이키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단상에서 제가 직접 말씀을 전할 때 설교를 많이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어느 때는 천둥 번개 치
듯이 전하고, 어느 때는 물 흘러가듯이 전하고, 어느 때는 주님의 웃음을 나로 보여 주시고, 어느 때는 주님의 모습
을 느끼게 하시고, 어느 때는 그 음성을 느끼게 하며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저뿐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다른 자들
을 통해서도, 전도자들을 통해서도 많이 역사하시면서 나타나십니다.
평소 깨어 있는 자로서 정신이 살아 있는 자가 주님을 맞게 됩니다. 평소에 주님을 맞고 만나고 교통하면서 같이 사
는, 살아 있는 생명권의 신앙생활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 오시는 주님을 맞는 데만 신
경 쓰면 안 됩니다. 평소에도 못 맞으면 마지막 재림 때도 제대로 못 맞는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미리 완전히 주님
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이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주님을 맞지 못하고 마지막 재림만 기다리고 살면 무슨 맛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무슨 멋으로 인생을 살아갑
니까.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만 막연히 기다리며 희망으로만 살지 말라고 지난 30년 동안 외쳐 왔던 말씀을 생각
해 보기 바랍니다.
「지금 신부로서 늘 주님을 맞고 살아야 한다.」고 30년 동안 외쳤던 말씀을 잘 듣고 주님과 같이 살아 온 자들은
주님의 재림을 더욱 잘 맞을 자들입니다. 평소에 늘 주님을 맞고 사는 것도 하나의 주님의 재림을 맞은 자라고 그동
안 가르쳐 왔습니다.
흔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마지막 재림만 기다리고 희망하면서 현실에는 그냥 주님을 믿고 사는 정도입니다. 현실
이 재림보다 더 중합니다. 주님을 맞는 준비를 하다가 주님을 만나 맞고 이야기하며 어떻게 오시나 물어도 보는 것
입니다. 결혼을 준비할 때 신랑이 신부를 수시로 찾아오는 격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나 사명자들로 노여워하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마저도 들을 때만 생각
하고 평소에는 잊고 삽니다. 평소에 주님을 제일주의로 하고 일체되어 살면 그같이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평소 때나 재림 때 주님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말씀할 테니 잘 듣기 바랍니다.
첫째, 자기가 지은 모든 죄를 낱낱이 회개해야 됩니다. 저에게 잘못한 것은 제게 고하고, 그 잘못을 다시 행하지 않
고 제가 시킨 대로 했으면 용서한다고 한 대로 용서받은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과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마음 상하게 불순
종한 것들을 깨끗이 회개해야 됩니다.
셋째,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범한 것이 죄입니다. 한다고 하고 안 한 것도 죄지만, 할 것을 안 한 것도 죄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죄
에 대하여 알고 회개하여 깨끗하고 정결케 해야 됩니다. 회개하고 또 그 일을 행하면 또 더러워진 것입니다. 회개했
으면 안 해야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제 시간에 일어나 기도하는 중에 보니, 내가 씻은 욕조의 물이 깨끗했습니다. 기도 끝나고 피곤하
여 말씀을 안 보고 운동도 안 하고 잠을 잤더니, 그 욕조가 또 보이면서 깨끗한 물이 더러워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깨달으라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옷을 많이 빨아 봤지요? 이 말씀은 이미 ‘구원의 말씀’에도 나간 말씀입니다. 흰옷이라도 빨아서 물을
짜면 빨아진 옷에서 구정물이 나옵니다. 완전히 빨아질 때까지 구정물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완전히 회개하지 않으면 자기 입을 통해 자꾸 원망이 나오고, 그 사람에 대해서 또 말이 나오고,
거짓말도 나오고,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옵니다. 이는 아직 완전히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
습니다.
옷을 빨 때 더 이상 구정물이 안 나와야 완전히 빨아진 것입니다. 구정물이 나오듯이 입에서 자꾸 더러운 말이나 거
짓말이나 원망이나 용서가 안 된 말이 나오면 구정물이 나오는 덜 빨아진 옷과 같습니다.
주님은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고 원본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2;34,마15;18). 이로써 그 사람이 완전히
회개되었는지 알게 되고, 자신이 깨끗이 회개되었는지 알게 되니 모두 깨닫기를 바랍니다.
완전히 빨아진 옷은 아무리 옷을 물에 넣었다 짜도 깨끗한 물이 나오듯이, 입에서 더러운 말과 용서하지 않은 말이
전혀 나오지 않고 선한 말만 나와야 진정 회개한 사람입니다. 그는 진정 형제를 용서한 사람입니다. 그 형제야 어떻
게 하든지 용서해 주는 사람은 평소에 주님을 맞고, 재림 때도 주님을 맞을 사람입니다.
나를 재판한 자들이 주님을 잘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니 주님은 나의 기도를 침묵으로 듣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회개했는데 정말 회개되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위를 보며 깨닫고, 사람을 대하
는 것을 보고 깨달으라고 옷 빠는 이야기를 해 준 것입니다.
죄는 마치 자기 몸에 붙어 있는 시한폭탄과 같아서 빨리 회개하고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다 되었을
때 폭발하여 다치거나 죽게 됩니다.
지금은 마지막 재림 때 주님을 맞는 자가 되려면 평소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마치 녹이 슨 철과 같아서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해도 곧 떨어집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철을 불에 넣어 녹을 깨끗이 벗겨 내야 됩니다. 이는 회개를 깨끗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마치 철을 용광로에 녹여 다시 뽑아내면 새 철이 되듯이, 성령으로 영이 다시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
다. 성령으로 영이 거듭난다는 말은 자기 본래의 영을 없애고 새 영이 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비유컨대, 처음에 광
석을 캐내면 금, 은, 동, 철이 섞여 있습니다. 이것을 용광로에 녹이면 분류가 되어 순금만 남습니다.
이와 같이 잡철을 다 버리고 순금만 남게 하듯이, 육으로 받은 영의 사고와 생각과 행실이 성령으로 거듭남을 받아
완전한 것만 남게 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었습니까? 영이 성령으로 다시 나면 하나님의 신과 일
체됩니다. 금과 금이 일체되듯 합니다.
지금까지 회개는 평소 때나 재림 때나 주님을 맞는 데 준비하고 예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회개한 자는 주님과 일체되어 살아야 됩니다. 어디를 가도 주님을 1순위로 놓고 대하며 모시고 섬기고 말씀 따라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자는 것도 주님의 일 먼저 하고 해야 됩니다. 생활하는 모든 것에 주
님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왕 중의 왕이시며 하나님과 삼위일체의 존재자이신데 그냥 옆에 있게 놔두고 자기 것 먼저 하고 해질 무렵
에 주님 것 조금 하면 되겠습니까. 정말 너무하는 형식적인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일을 하다가
주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그냥 끝난답니다.
주님의 일과 주님을 제일주의로 하면서 살면 세상에 빠질 시간이 없고 세상을 좋아할 시간이 없습니다.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자가 시킨 일만 하고 그만 따라다니면 자기 시간을 쓸 시간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시키신 일만 하
다 보면 세상에 쓸 시간이 없습니다. 먹을 시간도 없고 잠잘 시간도 모자랍니다. 해 본 사람은 압니다.
주님을 제일주의로 대하고 섬기고 위하고 모시며 그 일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해야 됩니다. 주님이 지상에서
우리에게 그만큼 해 주셨고, 천국에도 우리를 위해 수천 배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우리들을
위해 대신 죽어 주시고 지옥에 안 가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행실은 절대 순종하고, 마음은 즐거움과 기쁨과 진정 충성된 마음으로 하고, 목숨을 다해 끝까지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라는 말씀에 대해 이같이 더욱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끝까지 하지 못하고 반쯤 가다 말고, 조금 가다 말고, 어떤 사람은 거의 다 가서 원하는 것이 안되니 포기
하기도 합니다. 끝까지 가야만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국까지 끝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
야 평소나 재림 때나 주님을 맞도록 내정되어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재림에 대하여 사명자를 통해 전하신 말씀을 잘 듣고, 주님의 원본 말씀을 지켜 행하고, 주일말씀과 수요말
씀을 실천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깨어 있는 자로서 평소에 오시는 주
님을 귀히 맞고, 재림 때 주님을 맞고 부활되어 휴거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천국이 좁거나 준비한 것이 모자라서 제한하는 세계가 아니다. 많은 자들이 휴거되기를 원한다.”고 하셨습
니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휴거될까?’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말고 완전히 예비해 놓고 주님을 기다리면서 말씀
대로 살면 됩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강조하신 원본 말씀을 알려면 성경을 읽어 봐요. 너무 많습니다.
화목하라. 각자에게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부지런히 행하여 남겨라. 형제를 용서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악평하지 말
아라. 형식 신앙 하지 말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님을 최고 사랑하여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
라. 거짓말 하지 말아라. 약속을 지켜라. 서로 위해 주고 섬겨 주어라. 없는 자가 있으면 나눠 먹고, 주린 자가 있으
면 먹여 주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을 보면, 주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해 주는 것이 곧 내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내가 옥에 갇혔을 때 가혹하게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에 “주여, 언제
주께서 옥에 갇혔었나이까.” 하고 물으니, “나를 믿고 사는 내 사랑하는 자들과 가난하고 헐벗고 잘 곳이 없는 자,
업신여김을 받는 자, 환난을 당하는 자, 낙심하는 자, 충성자, 혹은 하고자 하나 아파서 못 하는 자들이 옥에 갇힌
것과 같이 고생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안 해 준 것이 곧 내게 안 해 준 것이다. 너희들은 염소와 같이 내 말을 안
듣는 고집 세고 교만한 자들인 고로 저기 좌편에 서라. 심판이다. 영원한 형벌의 길로 가라. 그러나 저들은 평소에
나를 대하듯 형제들을 대한 양 같은 자들이니 오른편에 서라.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일들을 꼭 하면서 살아야 평소에 주님을 맞고 예비한 자로서 마지막 재림 때 주님을 맞을 자격자들입니다.
말씀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영이 새롭게 거듭나서 주님을 깨끗이 맞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부활되고 휴거되어서 평소 보던 주님을 맞고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비유를 들어 오늘 주님의 원본 말씀을 더욱 실감나게 깨닫게 해 주겠습니다.
국가 대표 선수들을 뽑거나 모델, 기술자, 교육자 등 각종 필요한 사람을 뽑을 때는 뽑는다고 말했을 때부터 면접하
고, 훈련하고, 생활 속에 행하는 것을 보고, 면담하고, 수련하고, 여행하면서 과정 중에 하는 것을 보고 미리 뽑아
놓습니다. 그러다가 행사 당일에 사전 프로그램대로 심사하고 발표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평소에 주님을 맞고 생활하는 것을 주님은 정확히 공의롭게 보시고 뽑으십니다. 이렇게 과정 중에
뽑아 놓은 자가 거의 주님의 재림 때 부활되고 휴거되어 맞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을 두고 시대마다 주
님의 재림을 외치는 사명자들을 통해 주님이 곧 오신다고 전하여 준비하며 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재
림을 맞는 모든 자들에게 공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같이 하다가 죽은 자들은, 살았을 때 주님을 맞고 대한 행위에 따라 재림 때가 되면 현재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영으로 다시 부활되어 주를 맞게 됩니다. 만일 재림 시대에 사는 자들에게만 “준비하라. 예비하라. 내가 곧 온다.”고
하여 이들만 주님을 맞으면 공의가 아닙니다. 어느 시대든지 개인마다 주님의 재림이 곧 시작된다고 깨우쳐 주어 준
비하고 예비하며 살게 한 것입니다. 예비하다가 죽은 자는 재림 때 다시 새로운 영으로 부활됩니다.
과정 가운데 뽑고 내정되기 때문에 우리 섭리역사는 지난 30년 동안 기성보다 더 새롭게 말씀을 전하면서 주님을
다시 보고 정신 차리고 맞아 살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짝사랑하게 하지 말아라. 주님을 눈앞에 두
고, 보이는 나만 보지 말아라. 주님을 맞고 나와 같이 해야 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성경대로 살아 보라고 하니 모두 나를 볼 때 주님같이 보기도 한 것입니다. 주님이 시키는 대
로 살면 주님이 그 사람과 동행하기 때문에 그 얼굴이 주님의 모습으로 비쳐 보이는 때가 많습니다. 거지에게도 주
님의 얼굴이 비쳐 보일 때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주님의 뜻대로 사는 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적과 기적과 표적이 일어나는 것도 주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모세도 선지자들도 사도들도 그러했습니
다. 그가 주님의 말씀대로 사니 주님이 함께하는 것임을 알고 대해 주며, 본 주인이 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도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하신다는 뜻이었고, 예수님이 삼위의 한 존재자로 오셨다는
것을 알라는 뜻이었습니다.
흔히 신앙인들은 평소 때 주님이 나타나시는 것을 하나의 환상이나 꿈이나 체험으로 생각하고 스쳐 지나갑니다. 평
소에 나타나신 그 주님이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도 오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같은 주님이고 전지전능하신
같은 주님인데 왜 그같이 대하지요? 이는 대하는 자의 무지이며, 주님의 심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같이 대하니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성령으로 영이 거듭나지 못하고, 신앙의 변혁이 일어나지 못하여 보통 생
활을 하게 되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무는 신앙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서야 재림 때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알고 준비된 몸으로 부활되어 맞을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만전을 기하고 갖춘 자만이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시동이 걸려 부활이 되고 연속 휴거가 되어 주님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1978~1979년에 기독교에서는 특히 주님이 곧 재림하신다며 떠들썩했습니다. 이때는 부흥 강사들의 초청 집회만 가
면 목사님들이 숨넘어가는 소리들을 하면서 주님이 곧 오신다고 했던 때였습니다. 이보다 10년 전에도 기독교인들
은 세상 말세라고 하면서 곧 주님이 오신다고 하며 소란했습니다.
석막리 사람들도 말세라고 하여 돼지와 소도 잡아먹었습니다. 그때 아랫집 남 집사님의 아버지가 저를 보고 같이 가
자고 했는데 안 갔습니다. 안 속은 것입니다. 자기가 메시아라고 하는 신흥종교들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속지 말아라. 또 그들이 가르치는 대로 천사장
이 나팔을 불면 주님이 곧 오신다는 것을 저들처럼 가르치지 말고, 그동안 산에서 가르쳐 준 부활과 구원과 거듭나
는 것을 가르쳐 주어라. 또 육신을 쓰고 살면서 육으로 주님을 맞는 휴거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말세에 대해서 가르
쳐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도 주님의 말씀을 못 듣고 배운 것이 없었으면 아마도 기성의 목사님들처럼 똑같이 주님이 곧 오신다고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하면서 외쳤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같이 외쳤으면, 특히 학생들과 젊은 청년들은 마음이 조급하
고 민감하여 내가 외친 후에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주님이 오시지 않으니 이 분의 말은 신
빙성이 없고 주님이 함께하여 외친 말이 아니라고 하며 따라오다가 그때그때 나갔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따라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후 30년이 넘었는데도 주님은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한참 재림을 외칠 때는 기성 교회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
여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달리 주님이 오지 않으시니 거기에만 희망을 두면서 교회를 다니던 자들이 더 이상 안
다니게 되었고,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나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에 젊은이들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럴 줄 아시고 산에서 나에게 가르쳐 준 말씀을 하나하나 외치며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라고 하신 것입니
다. 성경말씀(30개론)을 배웠지요? 그로 인하여 말씀을 받은 저를 보고 ‘정말 주님께 받았구나.’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 지금까지 주님을 믿고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성경말씀(30개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식을 잘못 하고 배운 자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님은 지적
하셨습니다. 머리에 인식을 잘못한 것도 교정하고, 잘못 인식하여 잘못 가르친 것도 교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귀하고 중한 생명의 말씀이면 말씀을 주신 주님이 귀하니 주님과 일체되어야 합니다. 받아 온 자는 심부름꾼
입니다. 심부름은 조건을 세우면 자격자가 되어 주님이 사명을 맡겨 주십니다. 조건을 세우기도 정말 힘들기는 합니
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받아 온 사람을 귀하다고 하며 말씀의 주인으로 보면 절대 안 됩니다. 받아 온 자는 심부
름의 주인입니다. 말씀을 이루시는 주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머릿속에 꽉 차도록 배워야 됩니다. 가르치는
자도 그같이 해야 됩니다.
성경말씀(30개론)은 다 귀하지만 몇 가지만 다시 생각하라고 말하겠습니다.
기성 교회에서는 ‘부활’ 하면 육신이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가르치고 외칩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이 죽으면 다시 살겠구나.’ 하는 희망을 줍니다. 만일 사람이 예수님을 믿다가 죽고 주님이 다
시 오시면 육신이 부활된다고 합니다. 고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 나왔으니 육으로 믿든지, 영으로 믿든지 부활된다는 것은 믿어야지요. 가르쳐야 되지요.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요한복음 5장 24-29절 말씀을 깨우쳐 주시면서 이 말씀을 교리로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요 5:24-29)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
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
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망에서 생
명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이며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말씀하시니 그때 들은 자는 살아나고 있
었습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하나님이 예수님께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하여 어느 시대 누구든지 주님을 믿는 것이 부활이라고 가르치면서 영적 부활도 되고, 육신으로는 행
실의 부활도 되어 영육이 사망권에서 나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보다 사망권인 구약시대에서 보다 생명권인
신약시대 예수님께로 나오는 것이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구시대는 마치 무덤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 믿는 자들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기에 무
덤 속에서 죽은 자들과 같다고 가르쳤습니다.
육이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는 부활보다, 예수님의 마지막 재림 때 부활된다는 것보다 지금 주님을 믿으면서 영으로
부활되고 육의 행실과 삶이 변화되어 사망권에서 나오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님이 가르치게 하시어 그같이 가르
쳐 준 것입니다. 모두 배우지 않았습니까?
육이 삶의 부활을 하여 사망권에서 나와야 영도 육과 일체되어 빛 가운데 나와 주님과 함께 삶 속에서 뜻을 펴며
전도하며 공적을 세우며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같이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마지막 주님
의 재림이 임박한 이때에 깨어 주님을 맞는 데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배운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배운 말씀은 주님을 맞는 데 첩경을 평탄케 해 온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온 성경말씀을 중심하여 사는 것이 우리의 영과 육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것이며, 육신을 가
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될 절대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로 이 말씀을 이 시대에 외치게 했던 것입
니다.
이 말씀을 불신하지 않고 여러분들처럼 따라왔으면 지금 듣는 긴박한 재림의 말씀도 같이 듣고 깨어 준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창 밖을 보면 이 시급한 때에 시대의 깊은 잠들만 자고, 재림에 대해 말하면 ‘또 말세냐?’ 합니다. 때
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삶의 부활을 영육으로 해 왔기에 신앙이 살아 더욱 신앙의 잠을
자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전할 때마다 항상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주님을 믿어야 된다. 너희도 나와 같이 주님을 사랑하
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전해 주는 자는 항상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그중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만 중심하여 온 자들도 있습니다. 이같이 그릇된 자들은 말씀을 듣고 새롭게 변화하여 주님을 맞기
위해 예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고(思考)가 잘못되면 꼭 사고(事故)를 내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은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요, 알파
와 오메가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초림도 재림도 한 분이 하십니다. 초림주가 재림주가 된다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져 주시고, 성경에 다시 온다고 예언하시고 기록해 놓고 가신 자가 성경대로 또 오신다고 가르쳐 왔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이 부활되고 육의 삶이 부활되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와야 마지막에 주님이 오실 때에 부활되고 휴거되는 자격
자가 됩니다. 주님의 재림만 기다리며 그 때 부활할 것만 기다리면 준비가 안되어 주님을 절대 맞을 수 없습니다.
다음은 주님이 ‘구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것을 말씀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교회에 다니는 자
들은 모두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며 교회만 왔다 갔다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사도행전 4장 12절,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
게 하려 하심이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
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하고』
이 몇 구절만 가지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 말씀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주님이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 말씀대로만 해도 구원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기본입니다. 주님은 이를 중심하여 더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욕하지 마라. 긍휼히 여겨라. 내 말을 믿고 나 보
내신 하나님을 믿어라.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모든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라. 네게 잘못
한 자를 용서하라.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구제하는 데 써라. 믿기만 하고 행치 않으면 죽은 자다. 환난과 핍박을 이
겨라. 율법을 더 완전하게 지키고 내가 말한 모든 말씀을 지켜 구원을 얻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해야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기에 섭리역사는 그같이 구원을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만 믿고 살면 정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고
로 주님은 섭리역사에 나로 말씀하시기를 “내 계명을 지키고 순종해야 구원받고 거듭난다. 거듭나야 구원받는다.”고
하시며 그같이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힘들지만 연속 행하면서 그 환난 속에서도 생명
권 안에 살아온 것입니다.
이같이 살아야 재림 때 부활되어 휴거됩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제대로 구원받은 자 안에서 휴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은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 믿으니 교회에 다니지요.
천국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됩니다. 좁은 생명의 구원길은 가끔 한 명씩 가고 있는 것을 주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저만 알라고 보여 준 것이 아니니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동안 애태우며 같이 고생했으니 같이 천
국 가자고 외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믿으면서 불만 불평하고, 수군수군 악평하고, 헐뜯고, 원망하면 안 됩니다. 신광야에서
모세를 원망한 자들은 멸망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모세 때처럼 원망하면 그같이 됩니다. 주님이 사
명자를 통해 말씀하시는데 원망하고 따르지 않으면 주님을 그같이 대한 것으로 보시고 모세 때같이 그 행위대로 대
해 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아무리 원해도 자신들이 이 말씀을 듣고 스스로 하지 않으면 도무지 어쩔 수가 없다.”고 하시며 “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신경 써 주어라. 그러면 내가 도와 회개하게 하여 온전케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영혼들을 세상으로 떠나가게 하고, 주님을 믿는 자들까
지 못 믿도록 동기 부여를 한 자들은 결국 그 생명을 대신하여 구원에서 제거됩니다.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자를 시
험에 들게 하여 섭리에서 나가게 한 자들은 자기 생명을 멸망시키는 자들입니다. 애타게 외칠 때 깊이 듣기 바랍니
다.
마태복음 18장 6절을 보면, 누구든지 사람을 실족시키면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났
다고 했습니다.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
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그런 자들은 그 영혼이 육신과 꼭 하나 된 자로서, 지난 수요일에 말씀이 나간 대로 나쁜 육의 나무가 좋은 영의 열
매를 맺지 못하므로 예비된 자가 되지 못하여 주님의 재림 때에 부활되지 못합니다. 서로 돕고 약자를 도와주면서
주님의 인정을 받고 살 때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늘 말씀한 대로 ‘너희를 인도하는 자를 소홀히 여기지 마라.’고 했습니다. 말
씀이 나갔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다 아시고 감동으로 말씀하게 하십니다.
다음은 ‘말세와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흔히 ‘말세’ 하면, 마지막 주님의 재림 때만 말세라고 하며 세상의 말세는 2000년이라고 합니다. 말세
때는 하나님이 세상을 불로 다 멸하여 세상이 없어진다고 가르치고, 말세는 세상의 끝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문자적으로 보고 가르치니 주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가르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역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말세란 ‘전환’이라고 했습니다. 「말세는 마치 계절처럼 시대마다 온다. 신약역
사도 구약역사와 같이 끝이 있다. 하지만 전환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불로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심판하신
다. 또 그 행위에 따라 부분적으로 지진·불·가뭄·홍수·태풍·질병·해충·경제·추위·더위·전쟁 등 각종 재해로 심판하신
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있다. 주님이 재림하셨을 때 휴거되지 못한 자들은 지상에 남
아 환난을 받고, 천 년이 찰 때까지 지상의 역사는 계속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같이 주님을 믿는 것이 하나의 부활이요, 구원이요, 거듭남이요, 마음천국과 지상천국이요, 지구 공중에서 육신을
쓰고 휴거를 이루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주님이 오시면 주님을 믿다가 순교한 자들과 짐승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과
환난 핍박을 이긴 자들과 성결하게 산 자들이(계20:4)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대로 부활되고, 살아 있는 자는 육신
이 영으로 홀연히 변하여 휴거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모두 30년이나 배웠습니다. 생각납니까?
주님은 특히 성경말씀을 현실의 삶 속에서 지키며 살라고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음과 행실과 육신이 더욱
신앙의 잠을 자지 않게 되었고, 영도 육과 함께 새롭게 되어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고 신앙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셨을 때도 항상 육신과 마음과 행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영이 긍휼히 여기라. 네 영
이 구제하라. 네 영이 네 가진 재물을 나누어 주라.」고 그 영의 행위를 지적하며 고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의 행위 그대로 영은 행합니다. 육신이 변하지 않은 자는 영도 변하지 않고 사망권에 있습니다. 꿈에 보이는 자
신의 모습이 어떤지 보세요. 빛난 영과 빛난 육으로 보이는지, 그냥 보통으로 보이는지, 어둠 속에서 돌아다니는지,
그 입은 옷도 보면서 확인해 보세요.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맞으려면 육신이 완전히 변하여 거듭나야 됩니다. 그래야 영도 새롭게 거듭나서 주님의 재림
을 맞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숫자 제한 없이 못 맞습니다.
주님은 요즘 나가는 말씀을 제대로 안 받아들이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가룟 유다처럼 말씀에 손을 대며
빼고 더하고 건드리며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조건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면 그들의 영이 보입니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이유도
대지 말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변화해야 됩니다.
기성은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지, 깨어 재림의 설교를 하고 있는지, 집회를 하
고 있는지 창을 열고 내다보세요. 빛에 속해 있는 자들에게만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30년 전
에도 주님이 곧 오신다고 숨넘어가게 외쳤으니 지금은 정말 외칠 때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때가 되어 정말 새롭게 하라고 주님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늘 깨어나는 말씀을 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2007년부터 주님은 은밀히 재림에 대해 저에게 암시하시면서 고통 중에 극적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배워야 내
놓을 것이 있다. 나와 대화하자. 먹는 것과 고통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기도하라. 기도해야 신령하여 나의 뜻을
깨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주님은 시대를 깨우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음식 종류에 따라서 먹는 대로 영양가가 몸에 흡수되어 건강이 좌우되듯이, 말씀을 듣는 대로 마음이 좌우되
고 행실이 좌우됩니다. 말씀을 잘 전하고, 잘 인식하고, 잘 믿고 행해야 될 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그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양식은 말씀이라고 했
습니다. 그 말씀을 전하는 자도 복이 있고 듣는 자도 복이 있습니다.
만일 주인이 더디 온다고 생각하는 자는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
지 않은 시간에 주인이 와서 엄히 때리고 쫓아내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 쫓겨난 곳은 지옥이라고
항상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이 늦게 온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 마귀의 주관을 받아서 하는 말입니다. 주님은 사명자들로
급히 곧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원본이니
빼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자가 데려감을 당하는지 여쭈었더니 ‘먼저 회개하여 깨끗이 하
고 예비하고 기다린 자’라고 했습니다. 어서 빨리 잘못을 먼저 회개하고 행위를 고쳐야 됩니다.
“너희 중에 먼저 회개하고 고치는 자가 섭리에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1999년도에 했습니다.
예전에 섭리역사를 불평하고 불만하며 저를 원망한 사람들 중에서 말씀을 듣고 먼저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들이 많
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가게 되었는데 실상은 주님이 쫓아낸 것입니다.
이제 누구 이야기도 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떠하다고 말할 시간이 없고, 다른 사람 짐 싸 줄 시간도 없
습니다. 자기 짐을 부지런히 챙겨야 될 때입니다. 또 수십 가지를 빨리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하루가 급하니 빨
리 말씀 따라 행할 때입니다.
주께 들은 비밀의 말씀들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1~5시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신다고 하면, 3시까지만 말씀하
시며 나머지 시간에는 심정으로만 전달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자에게만 그 깊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
고 있습니다.
우리는 늦게 깨워 놓았으니 이제 잠자면 안 됩니다. 기성은 일찍 깨워 놓아서 또 잠들을 자는 것 같습니다. 모두 깨
워 줘야 됩니다. 주님이 깨워 주셔야 일어나는 새벽잠이니, 인색하게 시간을 쓰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 예비하고 기
도해야 됩니다. 정말 주님이 도적같이 오셨다 가십니다. 정신이 살아 있는 자는 알고 예비하고 기다려 주님이 오심
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직접 나타나시고, 혹은 계시로 나타나시고, 혹은 사람을 보내어 나타나시고, 혹은 꿈에 나타나시고, 혹은 상
징적으로 나타나시고, 혹은 깨달음으로 나타나십니다. 이때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지 못하면 마지막 재림 때 자
격이 없는 자들이 됩니다.
오늘은 평소 때도 못 맞으면 재림 때도 맞을 수 없다고 여러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땅의 것도 안 믿는데 하늘의 것을 믿겠느냐. 보이는 부모에게도 순종하지 못하는데 안 보이는 하나님을 모시고 순
종하겠느냐. 보이는 네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겠느냐. 보이는 선생하고도 화목하지
못하면서 주님과 화목하며 하나 되겠느냐.” 하고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평소에 나를 맞지도 못하면서, 똑같은 그인데 더 엄격한 재림 때는 맞을 수 있겠느냐. 뽑을 자는
큰 행사 전에 과정 가운데 이미 다 뽑아 놓고 그 날에 발표하듯이, 재림 전에 뽑아 놓고 그 날이 되면 부활시켜 휴
거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중심자를 뽑을 때는 미리 정하시고 키우시고 의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
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도 주님도 항상 미리 행하십니다. 우리도 미리 행하는 것이 최고 지혜입니다.
천적 마귀의 인을 맞으면 끝납니다. 마귀와 귀신이 오면 느낍니다. 자기 생활과 말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수시로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됩니다. 666 인을 치는 짐승들은 천하의 천적입니다. 이것들이 우리의 원수입니다. 정말
마귀의 인을 맞지 않도록 마귀의 주관을 받지 말아야 됩니다. 아직은 인 맞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미 주관을 많이 받으니 절대 근신해야 됩니다.
평소에 주님을 맞는 신앙생활을 늘 해야 됩니다. 과정 중에 모든 것이 좌우됩니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는
전혀 준비하지 못합니다. 3년을 준비해도 부족합니다. 매일 쉼 없이 표 나게 준비하고 예비해야 됩니다.
오늘의 주제 말씀은 ‘생각지 않은 때 주님이 오시니 예비하라.’입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을 절대 믿고 사는 것이 부활이며 하나의 휴거라고 할 수 있듯이, 평소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깨어 맞는 것
도 주님의 재림을 맞는 휴거로 보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말은 주님이 맡긴 개성의 센터에서 왕 같은 사명을 한다는 말입니다. 영계에 가
서 주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말은 주님과 일체되어 주님의 일을 하는 그 일에 있어서는 누구나 ‘제2
의 주’라는 말입니다.
내 말을 정말 잘 이해해야 됩니다. 주님은 나를 이 같은 이치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즘도 섭리 안에서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형제들을 헐뜯거나 자기들끼리 뭉치고 이러쿵저러쿵하
면 정말 안 될 때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내가 가르쳐 준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시면서, 욥기
40장 10~14절 말씀을 주시면서 “이같이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늘 지옥에서 파견 나와 여러분들을 꼬이고 주관하려 하니, 천적 마귀의 주관을 받지 않도록 꼭 주님의 이름
으로 쫓아내고 기도해야 됩니다. 자꾸 마귀의 주관을 받고 시대 말씀을 불신하면 마귀는 여지없이 666 짐승의 인을
칩니다. 그때는 회복이 안 됩니다.
정말 지옥은 이 세상 어떤 죄를 지은 자라도 갈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지은 수십억 배의 고통을 영원히 받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 세계를 갔다 온 자가 외쳐야 신앙이 살아나고, 마귀를 천적으로 여기고, 주의 말씀을 간절히
전하게 됩니다.
사명자들은 별의별 지옥의 고통을 다 체험하며 연단받고 주님의 뜻에 따라 외칩니다. 말로는 그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이 시대 말씀을 귀히 듣지 않으면 말씀이 끊어집니다. 말씀을 못 들으면 늘 금식하는 자와 같습니다.
주님은 말만 하면 모른다고 하시면서 속심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너랑 같이 천국 가서 살자고 십자가를 대신 져 사
망으로 못 가게 해 주고, 또 생명의 길이 되어 주고, 또 천국을 다 예비해 놓았으니 오기만 하면 되는데도 왜 오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어서 자기도 예비하고, 복음을 전해 줘야 됩니다. 전도하지 않은 죄도 큰 죄입니다. 전도해야 전도하지 않은 죄가
없어집니다. 저도 이를 깨닫고 수만 명을 전도하겠다고 주님께 약속하고 30년 동안 쉼 없이 외쳐서 주님과 함께 섭
리세계를 이같이 이끌어 온 것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정말 부지런히 관리해야 됩니다. 이제 시간이 더 없습니다.
주님을 제일주의로 두고 살아야 세상에 빠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면 시간이 없어서 세상에 빠질
수도 없습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뛰어 본 자들은 그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자게 됩니다. 자기를 최우선으로 두면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세상에 빠집니다. 주님의 일을 할 시간도 없고 주님
을 생각할 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선생을 통해 주님은 수십 가지를 보여 주시면서 이같이 살라고 모두에게 말씀을 외쳤건만 행치 않는 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는 다 고쳐야 됩니다. 그래야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예비하여 주님을 맞게 됩니다. 이 시대
의 때에 맞는 말씀을 들어야 예비할 수 있습니다.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평강이 성령 안에 충만하기를 빌며, 성삼위 되시는 성
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3월 18일 수요말씀>
내 말을 듣고 예비하라
본 문 마태복음 24장 44절
주님의 평강과 은혜가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매사에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날 말씀을 쓰다가, 어떤 내용을 잘 깨우쳐 주기 위해서는 어떤 비유를 써야 되느냐고 주님께 물으며 기도할 때
였습니다. 이때 깨달아지기를, ‘비유를 합당하게 쓰지 못하면 비위가 상하니 합당한 것을 비유로 들어 말해야 된다.’
고 했습니다.
그에 합당한 비유를 들지 않으면 그 글을 보거나 그 말을 듣게 되었을 때 비위가 상하고 심정이 상한다는 것을 다
시 인식하고, 성경에 주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역시 정말 합당하고 이치에 맞았고, 비
유한 것을 깊이 생각할수록 왜 그 비유를 드셨는지 근본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머릿속에 연상되어 그 현상들
이 영상으로 보였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이 더욱 떠올랐습니다.
주님은 “비유뿐 아니라 나의 말을 제대로 전해 주지 못해도 비위가 상하며 심정이 상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 말을 윗사람들이 자꾸 해 대면 비위가 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는 주님도 저도
같이 심정이 상하고 비위가 상합니다. 평소에 혼자 있을 때나 끼리끼리 뭉쳐 있을 때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말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님의 재림 때입니다. 완벽히 고쳐야 더 이상적인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비위가 상해서 못 먹는 음식이 있지요? 한국 사람들에게는 대만의 두부나 유럽의 치즈가 그렇습니다.
또 외국인들은 한국의 된장, 솥에 끓인 누룽지, 오징어를 비위가 상해서 못 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좋다고
해서 남에게도 좋은 음식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정말 정확하고 확실하게 전해 줘야 됩니다. 주님은 “속 시원히 내 말 좀 해 달라.”고 하시며 30대 때
부터 나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전도할 때나 말씀을 전할 때 확실하게 깨우쳐 주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확실하게 성경말씀을 실천하고 확실하게 전하니 전도가 잘되고 은혜의 불이 붙었습니다.
말의 위력, 말의 능력, 말의 표적이 일어나야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확실히 전할
때 능력이 생기고 표적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실천하며 확실하게 전하는 교회는 표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어 요즘도 말씀을 전할 때마다 큰 표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도 먼저 그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심령이 감동되어 행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군중들이 예수
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사도들도 주님을 따라 그 같은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 시대도 주님의 심정을 확실히 알고, 또 시대에 합당한 말씀을 확실히 알고 능력 있게, 확실하게, 속 시원하게 전
해 주어 심령에 불을 붙여 부흥시켜 온 것입니다. ‘시대의 말씀을 가지고 불을 붙이는 자가 누구인가.’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비유가 합당하지 않으면 비위가 상하듯이 그 시대에 맞는 말씀과 제때 합당한 말을 해 주지 못하면 비위가 상합니
다. 말을 이치에 맞지 않게 함부로 하는 자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위가 상하게 하고 마음이 상하게 합니다. 듣
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들으시는 주님도 마음이 상한다고 하셨습니다.
화날 때나 몰라서 말을 할 때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물 퍼내듯 한바탕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답답한 것이 뚫리
고, 숨통이 트일지는 몰라도 그것을 회개하려면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 때는 쉽습니다. 그러나 별 의식이 안 되던 것도 회개할 때는 갖은 몸부림을 쳐야 됩니다. 회개했
어도 정말 회개가 되었는지 궁금하고 확실히 알 수 없으니 고통입니다. 화나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을 무조건 기도
하면서 주님께 말하고 풀어야 됩니다. 주님과 기도로 풀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답답한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여도 풀리지 않아서 너무 답답하여 주님께 기도했더니 확실하게 답을 깨
닫게 해 주시어 모두 풀렸다고 기뻐하며 편지가 오기도 했습니다. 주님이 풀어 주셔야 속이 근본으로 풀립니다.
어느 날 주님은 나에게 “너는 나를 따라가면서 넓은 길로 가는 자들에게 왜 자꾸 네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느냐. 나
와 동행하면 나와 대화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속상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또 사람들
이 말한다고 거기에 대답하지 말고 나와 대화하며 가야 된다. 속상하다고 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싸우면 근본이 풀
리겠느냐. 오히려 더 죄만 짓게 된다. 나와 대화해야 근본이 풀리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이다. 아직도 가슴에 품
고 있느냐. 네가 그렇다면 아직도 진정 용서하지 않았거나 내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한 것이 무슨 말인지 연상이 됩니까?
<실상 도표> “나와 대화하자.”(주님과 대화)
이 상황을 영계로 보면 이와 같습니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궁금한 것을 묻기에 대답해 주었습니다.
(삽화 들어감)
주님 : “세상 사람들과 속상한 이야기 하지 말아라. 나와 같이 가는데 나와만 대화해야 되지 않겠느냐.”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때부터 일절 속상한 것을 사람들과 말하지 않고 주님과 대화하며 나머지 속에 있는 것들도
풀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람들을 만나면 속상한 이야기 자꾸 꺼내지 말고, 혹여 그들이 꺼내도 말을 돌려 주님과 이야기해야 됩
니다. 주님과 좁은 길을 가고 있으니 주님과만 대화하면서 기쁨으로 감사하며 주님께 빠져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부의 도리입니다.
누가 위로한다고 해도 심정만 상하여 모두 일절 끊고, 교회에 다니라고만 말해 주었습니다.
모두 이같이 하는 것이 주님을 맞는 자로서 준비하고 예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팔방미인이라도 말할 때 험한 말을
불쑥불쑥 하면 “저 여자 보통이 아니네. 직업 따라 말한다더니만 뻔하구먼.” 합니다. 얼굴이 그럭저럭 생겼을지라도
천사같이 말하면 “겉으로 보기보다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 하면서 자꾸 그 말을 듣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곧 앞에 놓고 정말 이제부터는 섭리 전체가 세계적으로 은혜 있고 덕이 되는 말만 하며 다 고쳐야
됩니다.
지난날 주님이 나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도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혀 조심’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아직 못 고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로만 들으니 별로라고 생각하고 안 고치는 것입니까? 주님이 말하라고 엄히
말씀하여 그때그때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고로 내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입니다.
“모두 화목하게 살라고 수백 번이나 말씀했는데도 예사로 생각하고 고치지 않는 자는 결단코 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고, 천사장이 나팔 불 때도 부활될 수 없으며 사망으로 갈 자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이는 형제들과 화목하지 못하면서 전지전능하신 화목의 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신 주님과 어떻게 화목하게 영원
히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배우자와 결혼하기 전에 ‘저 사람과 살면 평생 행복할까?’ 생각하며 갖가지를 확인하
고 결혼합니다. 결혼했다가도 말과 행실이 어긋나면 고치라고 하고,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결국 이혼합니다.
이 세상의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사전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살다가 성격이 안 맞으면 이혼하고 헤어지지만 주
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들과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평생 꿰뚫어 보시고 이상이 없으면 데려
가 주십니다. 일단 행할 것을 다 행하고 준비해 놓은 자를 데려가십니다.
비유의 말씀을 하나 듣고, 오늘 말씀을 듣겠습니다.
산 고개를 넘어오는 한 청년을 보고 소방 경찰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넘어온 산에서 아까부터 연기가 나고 있는데
혹시 산불이 나지 않았습니까?” 이에 청년은 “요즘은 봄이라 밭이나 논두렁에 불을 놓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논밭
주인들이 불을 놓은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상 청년은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제 나름대로 대강 말한 것
입니다. 소방 경찰은 “그래요?”하며 조금 마음이 놓여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다음에 다른 한 청년이 고개를 넘어오기에 소방 경찰은 또 물었습니다. “산 너머 연기가 올라오는데 혹시 산불이
나지 않았습니까?” 이에 청년은 “저는 불이 난 것을 못 보았는데, 고개를 넘어와서 쳐다보니 내가 넘어온 산에서
자꾸 연기가 나는 것을 보니 산불이 난 것 같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소방 경찰이 “논밭에 불 놓은 사람이 없습니
까?” 하고 다시 물으니 “제가 올 때는 전혀 없었습니다. 산불 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고 청년은 말했습니다.
그제야 소방 경찰은 대원들을 데리고 산 너머로 갔습니다. 가서 보니 불이 꽤 번져서 산이 타고 있었습니다.
확실하게 말을 해 줘야 믿고 따릅니다. 시대의 말씀을 누가 깨닫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확실하게 전하느냐에 따
라, 불법으로 인한 생명을 사르는 불이 꺼지고 말씀의 불이 가슴에 붙게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시대 말씀의 불이 가슴에 붙는 자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자입니다. 나팔을 부는 대로 사명자들이 움직여야 됩니
다. 근무를 서는 사람이 자면 전체가 자는 것과 같습니다.
금주의 말씀에서는 두 사람이 맷돌질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는 슬픈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은 둘 중에 한 명만 데려간다는 말이 아니라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개 이 본문의 말씀을 설교할 때 믿는 사람들 중에서 반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설교하여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
는 버림을 받기도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내용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놓입니까? 아직도 마음이 안 놓이는 사람들은 더 열심히 하라는 주님의 경고임을 알
고 행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집중해서 먼저 들을 말씀은 ‘예비하라.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간다.”고 원본의 말
씀을 하시며 “너희는 이 비유를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4장 42~43절을 보면,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 만일 도적이 어느 시
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도적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했습니다.
도적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아는 자는 사도 바울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어둠에 속하지 않고 빛에 속한 자
입니다.
(살전 5:4-5)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
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여러분들은 주님이 재림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 주님의 재림은 멀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곧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하고 급히 준비하며 사는 자들은 다 빛의 아들이요, 낮에 속하고 주님께
속해 사는 자들입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만 하면 됩니다.
<주님의 말씀>
그러므로 내가 오는 시기를 아는 자는 빛에 속한 자다. 나와 이야기가 통하는 자다. 나의 재림의 말씀에 귀를 기울
이는 자다.
(-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날이 내일인지, 모레인지, 한 달 후인지, 1년 후인지, 2년 후인지는 모릅니다. 그날은 아무
리 따져도 모르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모릅니다. 그날을 알려고 하지 말고 빛에 속하여 그날을 예비해야 됩니다.)
‘재림이 임박했다’는 이 시기만 알아도 빛에 속한 자들이다.
(-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심혈을 기울여 듣기 바랍니다.)
이제 너희가 할 것은 부지런히 예비하고 준비하는 일이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 나는 너희들에게 가고, 너희
는 ‘주여’ 하며 맞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준비하고 기다렸다가 맞는 것이다. 그동안 말씀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말씀할 것이다.
회개하고, 화목하게 하고, 말을 온전히 하고, 육과 마음과 영을 정결하게 하며 말씀을 행하면서 살아야 된다.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행해야 된다. 하늘나라 천사같이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같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 선지자나 사명자들을 통해 외치는 말씀과 매주 외치는 단상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해야
된다.
예전에는 너희들을 키우고 기르는 기간이라 웬만한 일들은 이해하고 지나갔지만, 지금 너희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장
성하였으니 죄가 호리라도 마음과 행실에 남아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이는 눈의 티와 같아서 너희가 못 견디게 된
다. 깨끗이 완전하게 빛나는 흰옷처럼 티도 더러움도 없어야 된다. 이것이 예비하는 것이다. 너희는 하려고 결심하
면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예비하는 자라면 반드시 그날 일은 그날 꼭 한다. 그날 일을 그날 못 하면 일주일, 한 달, 1년씩 밀린다. 그렇게 밀
린 일을 어찌 할 수 있겠느냐. 그날 일은 그날 꼭 하라고 내가 한 말을 읽어 보고 들어 보았느냐.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어떠한 괴로움과 고통을 당해도 그날 일을 다 하면 보람 있고 족하다고 한 말이
다. 그날 일을 다 한 자는 그날 삶의 승리자인 것이다. 재림을 예비하기 위해 행하는 일들도 그날 못 하면 기회를
놓쳐 못 하게 된다. 새벽기도 하는 것, 말씀 듣는 것, 전도하는 것, 강의하는 것 등 만사의 모든 할 일을 두고 말한
다.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두지 말고 해 지기 전에 그날 풀라고 했는데 해가 바뀌어도 풀지 않는 자는 누구냐. 그로
인해 해를 받는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 그같이 작은 일도 즉시 순종하지 않으면서 어찌 나의 재림을 맞는다고 준비
한다고 하느냐. 모두 풀고 와서 나를 보아라.
그렇게 행하지 않는 자들이 데려감을 받지 못하고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이다. 완전히 예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만
이 데려감을 받게 된다. 도둑이나 강도들이 집에 침투하여 오는데도 잠을 자고 있다면, 그 잠자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도 없는 것이다. 이때에 순종하지 않고 신앙의 잠을 자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도 없다. 잠깐 편하게 잠을 자면
서 살다가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라.
너희는 지난 30년 동안 시대의 말씀을 들어 왔기에 누구보다도 깨끗한 흰 구름 같은 자들이 되었어야 했다. 양과
염소가 함께 뛰놀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고, 사자가 어린아이의 손에 이끌린다고 했다. 모두 하늘에서 하듯
이 땅에서도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끌어도 끌려오지 않으니 그 같은 사람을 누가 끌고 가겠느냐. 마귀에게 끌려가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냐. 회
개하지 않으면 마귀가 짐승의 인을 칠 것이다. 모두 즉시 회개하여라. 이제는 행위로 회개하여라. 입술의 회개는 그
같이 하겠다는 하나의 약속의 회개가 아니냐. 속된 회개는 없는 것이다. 지옥은 나를 믿었어도 자기 죄를 회개할 기
회를 잃은 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전할 때는 어느 한 곳만 보고 그것만 풀어서 주장하거나 전하지 말고, 곳곳마다 한 말들을
여기저기 모아 읽어 보고 바로 인식하고 행해야 착오가 없다. ‘나의 원본은 손대지 말고 빼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고
믿고 행하라.’ 하였으니 원본의 말씀대로 행해야 된다. 그 행위를 보고 심판한다.
성경을 읽으려면 자세히 읽으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부활에 대해 근본을 알려면 성경에 나온 부활에 대한 성구
를 다 모아 놓고 읽어 보고 기도해야 부활이 어떤 부활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심판에 대한 것도, 말세에 대한
것도 모두 그와 같이 성경을 보아야 된다.
성경은 모순 없이 쓰고 말했으나 몇 구절만 중심하여 보고 주장하니 서로 싸우고 배척하고 미워하며 다투는 것이
아니냐. 이 시대 말씀도 그러하다.
성경의 부분적인 몇 절만 성경의 주인이 말한 것이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처음부터 나중까
지, 시작에서 끝까지 모두 동일한 나의 말이다. 이 시대의 사명자나 선지자들로 말하는 나의 말도 모두 동일하게,
그 답이 같게 말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성경을 부분적으로 해석하면 부분적으로밖에 모른다.
성경에 아담이 930세를 산 것과 므두셀라가 969세를 산 것도 성경의 그 구절만 보고 그 시대의 기록만 보면 의심
스럽고 안 믿어지지 않느냐. 계속 읽어 내려가면 답이 나오고 의심할 것이 전혀 없다고 가르쳐 주어 배우지 않았느
냐.
성경은 사람이 푸는 것이 아니다. 원본을 읽고 내가 깨닫게 해 줘야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해 알려면 성
경에 자세히 기록되었으니 자세히 읽어 보아라. 잘못 풀었기에 오히려 잘못 가게 되고 잘못 인식하게 된 것이다. 알
고 주장하고 외쳐라.
말씀을 듣고, 성경을 다시 읽어 보고, 그동안의 지난 말씀들을 다시 생각해 보아라. 다른 데 귀를 기울이지 말고 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날마다 예비하고 행하여라.
지난날 내가 외친 말씀이 생각나지 않느냐. 성경을 읽으려면 자세히 읽어 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를 가르치는
자가 말한 것으로 생각했느냐. 너희가 성경을 읽을 때는 나 예수가 너희에게 직접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읽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20년이나 배워서 나가 외치는 말씀을 내가 말한 것으로 믿고 생각하고 실천했어야 되지 않았느냐.
실천자는 위대한 자라고 내가 칭찬하지 않았느냐.
다시 성경을 자세히 읽어라. 가슴이 뜨겁고 감격하고 뜨거운 눈물이 나올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다시 깨닫고 실
천하게 되어 나의 재림을 예비하게 될 것이다.
이 시대는 나의 재림을 맞기 전,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마음이 동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
나하나 그날그날 나를 맞기 위해 준비하여라.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몇 년도쯤에 간다고 한 말이 없다. 그
해는 말하지 않았어도 내가 한 말 중에 그 말도 다 들어 있게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진정 매일 예비하는 일에 힘
써 행하라.
지구도, 너희가 사는 나라도 현실체로 보면 너무 커서 한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한눈에 보고 인식하고 어떻게 생겼
는지 자세히 알고 싶으면, 축소하여 보면 된다고 축소의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무엇이든지 축소해서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너희 인생도 일평생의 결과를 보고 알려면 아직 다 살아 보지 않
아서 잘 이해도 안 가고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일생을 하루로 축소시켜 새벽부터 살아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
하루를 살고, 그 24시간을 따져 보아라.
1. 잠자는 시간
2. 식사 시간
3. 거리를 돌아다니는 시간
4. 공부하는 시간
5. 직장에서의 시간
6. 놀고 쉬는 시간
7.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8. 씻고 닦고 목욕하는 시간
9. 화장하고 몸단장하는 시간
10. 전화하는 시간
11. 책 보는 시간
12. 화장실 가는 시간
13. 자기 취미생활 하는 시간
14.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
15. TV 보는 시간
16. 신문 보는 시간
17. 음악 듣는 시간
18. 운동 시간
19. 시장 보는 시간
20. 식사 준비하는 시간
21. 설거지 시간
22. 글 쓰는 시간
23. 잡 시간
24. 청소 시간
25. 기도 시간
26. 성경 보는 시간
27. 교회 가는 시간
28. 전도하는 시간
29. 강의 시간
30. 말씀 듣는 시간
31. 순회 시간
32. 차 타는 시간
33. 약속한 사람과 만나는 시간
이와 같이 자기가 쓴 시간을 따져 보고 계산해 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과연 하루에 자기 할 일을 빠짐없이
다 했는지 보고, 신앙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썼는지 보자. 거의 먹고 입고 자고, 자기 육의 생활을 위해 쓰지 않았
느냐. 얼마나 나의 재림을 위해 살고 예비하였느냐.
인생, 일평생 살아도 할 일 못 하고 일순간에 지나간다고 이미 도표를 그려 ‘하루 같은 인생살이’라고 배우지 않았
느냐. 그 구상이 누구의 구상이냐. 알면 말해 보아라. 너희가 어떤 개인을 따라왔느냐. 그동안 30개론을 도표로 그
려 쉽게 가르쳤다. 모두 나의 구상이며 나의 가르침이었다. 왜 하나의 학문으로만 배우고 끝나 버리느냐. 생활 속에
매일 쓰고 고치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너희를 가르치는 자가 말할 때 누가 가르쳐 주어 ‘축소/확대’를 배웠다고 하였느냐. 축소해서 보면 우주 세계도 그
이치를 알 수 있지만, 확대시켜 보면 너희는 영원히 모른다.
태양을 중심한 행성이 지구를 중심하여 왜 아홉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지를 너희는 아느냐. 알면 말해 보아라. 내 말
을 내게 배우는 자에게 말해 주었건만 너희가 귀히 여기지 않으니, 이제 그도 말해 주지 않는구나.
진리가 자기 생명같이 귀한 것인지 알아야 진리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시대 나에 대한 진리의 말씀이 그 얼
마나 중한지 생명같이 여기는 자에게만 주고, 또 귀를 기울여 듣는 자에게만 깨닫게 해 준다. 나의 진리를 깨닫고
받는 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고생을 하며 어떤 고통들을 겪으면서 받고 전하는지 생각해 보아라. 사도 시대의
것도 보고, 역사의 흐름도 보고, 이 시대도 보아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짐승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재림에 대해 말하자. 역시 축소시켜 말하련다.
불과 얼마 남지 않은 그날을 하루로 축소시켜 보고 살아 보아라. 과연 재림을 위해 예비하고 사는 시간이 얼마나 되
는지 하루로 축소하여 살아 보고 계산해 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더욱 자세히 근접하여 알게 될 것이다. 몇 년을
준다 해도 너희가 삶을 살다 보면 재림을 준비하는 기간이 아주 적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깨닫고 감사하며 염려를 내게 맡기고 살아라. 세상이 너희를 버려 가슴이 저리고,
놀라 충격을 받아서 갈 길을 잃어도 나는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살아 있었을 때처럼 환난 중에도 화목하라. 화목하지 않고 싸우고 분쟁하면서 너희 소원을 기도하면 내가 들어
주겠느냐. 서로 돕고 사랑하며 내가 오는 것에 희망을 품고 살아라. 기회를 주고 재촉하여도 못 하느냐. 내가 너희
기도를 다 듣고 있다. 이루어 주는 것은 때를 정했으니 낙심 말고 기다려라. 옛적에 했듯이 열심히 하고 충성으로
하라.
평소에 나를 맞는 자가 그날에도 나를 맞는다. 섭리역사를 두고 사명자를 통해 처음부터 그같이 말했는데도, 아직도
내가 짝사랑하게 두는 자가 있으니 안타깝다.
너희는 깨어 있어 이 시대에 일어난 세상의 많은 징조와 표적들과 심판들을 말해 주어 알고 온 사람들이다. 지금은
재림으로 인한 환난이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지난날 너희에게 내가 행한 일들
을 잊지 마라.’ 함이다.
지난날 너희들에게 내가 행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나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고로 ‘지난날을 잊지
마라.’고 외치게 한 것이다. 사람을 통해 말하면, 왜 그같이 했는지 꼭 생각해야 된다.
아픈 것도, 약한 것도, 너희들이 원하는 모든 것도 진정 내게 고하여라. 내가 실행하리라.
나의 재림을 예비하는 자가 예비하려면 무엇보다도 나를 최고 우선으로 두고 매일 살아야 된다. 그런 자만이 재림을
맞을 것이다. 먼저 할 일을 꼭꼭 하고, 보통 일은 맨 마지막에 시간이 남으면 하는 것이다. 왜 매일 살고 겪으면서
도 모르느냐.
나는 약속대로 너희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천국에 모든 것을 예비해 놓고 왔는데, 너희는 너희 몸 하나도 아직
도 제대로 예비하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준비되지 않았기에 나의 긍휼과 자비로 마지막 짧은 연장 시간을 준 것이
다. 이것도 그나마 끝이 보이며 다가온다.
너희는 알아라. 내가 너희 각자의 생활 속에 도적같이 가리라.
나 주 예수의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주님이 해 주신 말씀을 잘 들었습니까. 더 이상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원본의 말씀을 쉽게 알아들었을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듣고 당황하지 말고 매일 꼭꼭 행하기 바랍니다.
대만에서는 예배 때 예수님이 한 사람에게 나타나신 일이 있었습니다. 단상의 말씀을 듣기 전에 준비 기도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들어오셔서 예배 때마다 설교자가 단상으로 가는 노선 그대로 가셔서 단상에 서서 성도들
을 쳐다보시면서 “오늘의 말씀은 내가 전하겠다.”고 했답니다.
그 사람이 너무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는데 설교자가 같은 노선으로 단상에 서서 “오늘의 말씀은 내가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것입니다.”라고 특히 강조하며 말씀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날은 특히 전하는 자나 듣
는 자나 모두 가슴 뜨겁게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날 예수님을 본 사람은 평소에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내가 구원을 못 시킨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회개기도를 했고, 그 후부터는 말씀을 잘 깨닫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주님이 다스려 주십니다.
또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나는 지금 좁은 길을 가고 있는가?’하고 걱정하며 깊은 기도와 회개를 하며 지내고 있
는데, 어느 날 꿈에 누군가가 자기의 손을 잡고 좁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평소에 나타나시는 주님을 직접 보든지 못 보든지 느끼고 깨달아 주를 맞고 살기를 바랍니다. 모두 안녕~
<2009년 3월 22일 주일말씀>
갖춰야 주를 맞는다
본 문 누가복음 17장 22-30절
참 고 마태복음 22장 1-14절
주님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주님은 노아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롯 시대를 말씀하시며,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와 이 시대도 그러하다고 하
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깨어 있는 자는 빛에 속한 자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미리 알고, 급히 예비하고 갖추어 하나님을 맞았습니다.
먼저 노아 시대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노아는 의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 있는 신앙을 하였기에 빛에 속하여 깨어 있었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그에
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어 나의 심판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시대마다 하나님과 예수님
을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자들에게는 ‘때가 되어 심판할 테니 어떤 것을 예비하고 갖추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노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식구들과 함께 희망으로 방주
를 준비하여 홍수 심판 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 시대 다른 사람들이 노아를 보고 왜 그같이 하느냐며 물었을 것
이 아니겠습니까?
노아는 그들에게 외치기를,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그 뜻대로 살지 않고 세상의 것들만 좋아하며 제 좋아하는 대로만
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외면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으니, 회개하고 방주를
만들어 갖춰야 산다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해 주었습니다. 자기와 같이 방주를 만들어 준비하고 갖춰야 심판을 면
하고 산다고 방주를 다 만들 때까지 외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사는 것에 빠져서 단 한 명도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아를 비
방하고, 반대하고, 핍박하고, 미워하고, 무시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신 대로 정한 때가 되어 그곳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오직 준비하고 갖춘 노아의 여
덟 식구만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강림을 맞이했습니다. 홍수로 인하여 죽은 자들은 방주를 만들어야 할 급절한 그
기간에 갖추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사는 데만 그 시간을 모두 썼던 것입니다.
노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았으면 모두 방주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설교 가운데 “그럴 줄 알았으면
그럴 자가 누가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람은 정말 무지 속에 살아갑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는 먹고 마실 겨를도 없이 방주를 만드는 데 몰두하며 모든 것을 거기에 투자했습니다. ‘방주를 만
들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우리의 삶을 통해 짐작이 가고 이해가 가지 않습니까?
항상 어느 시대든지 빛 가운데 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준비하고 갖출 수 있도록 알려 주십니다.
알고 깨달은 자들은 그때 그 기간에 절대 필사적으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 모르는 자들은 빛에 속한 자가 하
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을 때 듣고 따르면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믿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판이나 재림에 대하여 들었으나 그 기간에 행하지 않
는 자는 너무도 안타깝고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는 의롭게 사는 롯이 있었습니다. 롯은 어둠에 살지 않고 빛에 속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
나님이 강림하시어 천사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성을 하늘의 불과 유황으로 멸할 것이니 날이 새기 전에 피
하라.”고 했습니다. 롯이 지체하니 “지금은 지체할 때가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제야 롯은 절대 믿었습니다. 이
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부패되고 타락되었음을 롯이 보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달받고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심판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고 노아 시대와 롯 시대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시대도 주님이 곧 오실 때라는 것을 시대를 보면
알고 믿어질 것입니다. 정말 부패되었습니다.
롯은 식구들에게 긴급함을 말해 주어 믿고 따라 행하게 했습니다. 또 사위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사실을 전했습
니다. 그러나 모두 농담한다고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농담 좋아하는 사람은 진실도 농담으로 압니다. 롯이 전하는
말을 듣고 준비하고 갖추어 피해야 될 때에 먹고 마시고 의심하고, 혹은 농담이라고 여기며 믿지 않았습니다. 소돔
과 고모라 성 사람들은 그만큼 몰랐습니다.
결국 롯과 그의 식구들만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그 성을 빠져나와 천사의 말대로 소알 산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도
적 같은 하나님의 강림을 맞고 산 것입니다. 말씀이 곧 생명이었습니다.
이 시대 주님의 재림 때도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준비할 기회를 준 것처럼 미리 알려 기회를 주어 갖추게 하는
자들도 있고, 롯과 같이 심판 직전에 예고하여 이끌어내 겨우 몸만 살게 해 주는 자도 있습니다. 재림 때도 그와 같
음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동안 우리 섭리역사는 노아 때같이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왔고, 지금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롯과 같이 재림에 대
하여 급히 전달받고 재림이 연장된 시간을 보내는 때입니다. 재림이 임박했다고 하는데도 “농담하네.” 하며 믿지 않
고 외면하는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았던 사람들과 똑같은 자들입니다.
동물들도 바닥이 뜨거워지면 지진이 날 것을 느끼고 그곳을 피하여 사는데, 사람들은 신호와 경고를 줘도 믿지 않고
며칠 더 살다가 잔인한 죽음을 당합니다. 며칠, 몇 달, 몇 년 더 거기 빠져 살다가 그 같은 결과를 맞게 됩니다. 사
람들은 말을 해 줘도 잊어버리기 때문에 주께서 계속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 수백 명이 죽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나의 제자 중에 한 명이 그곳 지하 식당
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예감이 이상하여 밖으로 뛰어 나왔고, 뒤에서 바람이 태
풍처럼 스치기에 쳐다보니 건물이 폭삭 주저앉고 먼지만 치솟았다고 합니다. 그 옆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에게 이상
하니 나가자고 했는데, 그들은 느낌을 받고서도 먹는 것을 다 먹고 나오려다가 참사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판국에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살 때입니까? 이 사건이 스쳐 지나가 깨우쳐 주기 위해 주님은 이 사건을 전하
게 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아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입니다. 고로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
다.
롯의 아내는 처음에는 믿고 가다가 후에는 의심하여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본 고로 죽었습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었고 절대 믿음이 없었기에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감히 천사의 말을 소홀히 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 시대도 처음에 말씀을 믿고 가다가 또 세상을 돌아보고 제 갈 길을 가면 제대로 갖
추지 못하여 이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절대 믿지 않고 다른 말을 하는 자는 롯의 아내와 같은 자가 될 것입니다.
사명자로 주님이 하신 말씀을 안 믿는 자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끝까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뛰고 달리며 가야
됩니다. 지난날 뛰지 못한 사람은 배로 뛰고, 뛰던 사람은 시대의 말씀을 듣고 갖추며 뛰고 달려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어느 시대든지 심판하시기 전과 강림하시기 전에 그동안 평소 빛에 속하여 산 자들에게 반드시 앞
날의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외치는 사명자는 그대로 외쳐 주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과 주님을 맞게 됩
니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은 빛에 속한 자가 외치는 말을 듣고 같이 행하며 갖추고 따라가면 됩니다.
주님은 노아 시대와 롯 시대를 말씀하시면서, 이 시대도 먹고 마시며 그 시대와 같이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이 살아 계실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그같이 또 말씀해 주십니다.
이사야 11장 1~4절에 하나님이 강림하시면 말씀과 지혜와 지식으로 강림하신다고 한 대로 하나님이 실체로 강림하
시어 예수님을 통해 그 모습을 보이셨으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사 11:1-4)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
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
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
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
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롯은 심판하러 온 천사를 보고 사람들에게 그의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
이 주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씀하시며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같이 말했는데도 보면
서도 믿지 않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향해 천사가 급절하게 외쳤듯이, 노아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긴박하게 외쳤듯이, 예수님도 살아
계셨을 때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말씀을 외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외치셨는지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은 이 시간에 더
욱 생각날 것입니다. 수십 가지 비유를 대며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는 임금의 혼인 잔치에 비유하여 하신 말씀이 있
습니다.
아들의 혼인 잔치가 있어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청하여 오라 했더니, 모두 자기 생활을 위해 논으로 가고,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가며, 각자의 삶을 제일로 하고 먹고 마시는 일을 하느라 그 때문에
못 온다고 했습니다.
종들은 임금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에 임금은 “아니, 하루도 못 온단 말이냐?” 하며 노하여 열 일을 제
치고, 올 사람들을 다시 부르기 위해 종들을 다시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나 와도 좋다고 했습니다. 후에 임금이
청하여 온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이 없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자기 할 일을 우선으로 두지 않고 임금의 아
들의 혼인 잔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감격해서 온 것입니다.
혼인 잔칫날 하루도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상 ‘뜻이 없다.’, ‘생각이 없다.’, ‘성의가 없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마음이 없고 무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할 일이 더 급하고 바쁘다.”, “나 살기 어렵다.”, “죽으려 해도 바빠서 못
죽겠다.”는 말은 삶의 핑계들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그렇게도 청하며 외쳤어도 많은 사람들은 보낸 자를 가혹하게 대하고 비난했습니다. 그 시
대가 다 지날 때까지 그같이 대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가혹하게 대하며 비난해도 주님을 맞아야 세상에서 받는 고
통도 없어지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른 자들은 참고 견딘 것입니다.
주님이 정하신 때가 올 것을 사명자는 다 알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주님의 뜻대로 다른 것들만 외치고 갖추
며 온 것입니다. 만사에는 때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데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외치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
유는 구원이 더 중한 것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이같이 급절하게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나올지 몰랐을 것입니다. 모두 놀란 것은 주님이 미리 가르
쳐 주시어 이같이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준다는 것입니다. 놀랄 일이 아닙니까? 주님은 세상의 인생들이 정말 구
원받기 원하십니다. 또 섭리역사를 정말 사랑하십니다. 이를 깨닫고 감사하며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가까이하며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면서 복음을 전하신 3년의 짤막한 기간은 혼인 잔칫날 하루와 같습니다. 주님이 직접 오셔서 지
혜와 지식과 능력과 기적을 행하시면서 외치셨는데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세상에 빠져 살았던 것
입니다. 특히 구시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극히 반대하며 막았습니다. 마귀들이 인을 치고 그들을 써먹었던 것입니
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은 주님을 맞았습니다.
선지자 시대에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행하실 때도 그러했습니다. 모두 무지하여 따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하나님을 믿고 살았던 사람들이 더욱 예수님께 오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종교의
부패, 형식적인 신앙생활, 외식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만 매달려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과 제물을
드리는 것에만 몰두하고 그것을 전부로 알고 살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제물 드리는 것에만 너무 치중하여 성전에
서까지 비둘기와 양과 소를 사고파는 모습을 보시고, 성전에서 장사한다고 책망하시며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다
내쫓으셨습니다.
기존에 하나님을 믿고 있던 자들은 교리에만 빠졌고, 전통에만 빠졌고, 모세의 율법 이론에만 빠졌고, 형식주의에만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니 외식자들과 형식자들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모두 책망하셨습니다. 외식과 형식
의 썩은 신앙을 가지고 시기 질투하는 못된 자는 엉겅퀴와 가시나무 같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며, 회개하여 좋은 열
매를 맺고 거듭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주님을 맞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막았고, 주님과 그 따르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 시대 하나
님이 강림하신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며 살았던 자들이 하나님이 인성을 쓰시고 신성으로
나타나셨을 때는 맞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던 이방인들은 세상을 너무 좋아하여 생활에 빠지고,
자기 삶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았기에 그 시대에 주님을 맞지 못한 것입니다.
옛 시대 율법과 교리에 빠지지 않고 형식과 외식에 빠지지 않은 자, 사람을 악평하지 않고 선히 대한 자, 주님의 말
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주님을 인정한 자, 어린아이 같은 자들은 주님을 맞았습니다. 즉 그 시대에 하나님
이 주님으로 강림하심을 맞은 것입니다.
주님이 강림하실 이 시대 역시 노아 시대와 같고, 롯 시대와 같고, 예수님 시대와 같습니다. 교리에만 빠져 형식과
외식적인 신앙을 하고 있고, 악평하는 것과 남을 헐뜯는 것을 좋아하며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이방인들은 세상에 빠져 세상 삶의 모든 것들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인정하고 급히 좇는 자들만 주님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 말씀에 “갖춰라.”
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갖추듯이, 결혼하는 신부가 결혼을 위해 생활용품을 갖추고 마음과 몸을 갖추듯
이 갖춰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맞는 자들이 가장 먼저 갖출 것은 첫째, 말씀을 잘 듣고 거기 해당되게 마음과 육신의 행실과 영혼을 갖추는
일입니다. 바울 선생은 제대로 안되니 자기 몸을 스스로 치면서 주님 앞에 복종하게 하며 갈 길을 갔습니다. 그래도
안되는 자는 주님이 그 몸을 쳐서 하게 하기도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마음에 들어야 물건을 사고, 자기 마음에 들어야 자기 사랑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주님도 “내 마음에
들어야 나의 영원한 신부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온 세상을 위해 오지 않으십니다.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자들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어 준비하게 하고, 그것
들을 갖춘 신부들만을 데리러 온다고 하셨습니다. 비유컨대, 결혼하는 자가 자기 배우자만 데리러 오는 격과 같습니
다. 들러리들과 구경꾼을 데리러 오는 것도 아니고, 혼인 잔칫날 먹고 마시러 온 그 많은 자들을 데리러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자기를 위해 갖춘 자를 데리러 오십니다. 사랑도, 마음도, 행실도, 해당되는 것을 갖춘 자들만 데
리러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주제로 “갖춰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랑을 맞기 위해 그동안 갖춘 자는 신부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들러리와 구경꾼들이며 분위기에 들떠 먹고 마시
는 자들로서 한탕 먹는 것만 준비하고 갖춘 자들입니다. 이들은 신부처럼 신랑을 맞기 위해 애태우면서 사전부터 신
랑과 의논하면서 갖춘 자가 아닙니다.
신부는 결혼 전부터 신랑이 원하는 것을 갖추기 위해 놀러 가지도 못하고, 여행도 못 가고, TV 볼 시간도 없이 세상
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면서 근신하며 신랑을 맞는 데 해당되는 것만 갖추
느라고 한숨 쉬며 몸부림칩니다.
신랑은 신부를 맞기 위해 집을 크게 지어 놓고, “방이 크니 옷장도 갖추고, 너 좋아하는 것과 나 좋아하는 것을 갖
추고, 마음과 행실도 천사처럼, 어린아이처럼 갖춰 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신부는 그것을 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어 가면서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이같이 갖춘 자를 주님은 데리러 오십니다.
혼인 잔칫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신랑 앞에 이같이 갖추고 올 자가 있습니까? 오직 신부뿐입니다.
이 시대도 주님을 맞는 자들이 사전부터 무엇을 예비하고 어떤 것을 준비하고 갖추어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하고 고
민하니, 주님은 선지자들과 사명자들을 통해 이것저것 자세히도 말씀하시며 이 같은 것을 갖추라고 비유를 들어 말
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갖추는 사람들만 도적같이 오시는 그날에 데
려가십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의 들러리 격의 삶을 산 자들도 있고, 분위기로 신앙의 삶을 산 자들도 있고, 혼
인 잔치에 먹고 마시고 끝날 손님과 같은 자들도 있다고 주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빛에 속한 자를 통해 말씀하신 재림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그에 따라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노아가 힘
들지만 방주를 만들어 갖춘 것같이 갖추고, 롯이 천사의 말을 잘 듣고 끝까지 가라는 곳까지 가듯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가다가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 세상을 보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이제 모두 알았으니 갖추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이 늘 말씀해 주시고, 또 우리가 할 수 있
도록 각 교회는 물론 개인이 자고 깨는 것까지 수시로 와서 다스려 주시니 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몇 년 동안 갖추었는지 모두 알 것입니다. 롯은 심판 날 전부터 심판이 있을 것을 알
았지만 그같이 도적같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사전에 느끼고 깨닫고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말했을 때 믿고 따랐습니다.
지금은 재림 전에 최고의 은혜를 주시는 기간입니다. 주님은 최고의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은혜를 주실 때 갖춰야
됩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니 능히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을 가지라’고 주님이 나로 시를 써서 주기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이 없는 자는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시들은 묵시들입니다.
자신을 가지고 하면 됩니다. 여러 번 했는데도 안되어, 주님이 이같이 하라고 한 것이 잘 안된다고 주께 여쭈었더니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고 기대할 테니 또 해 보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말씀하시듯이 모두에게도 말씀하신다며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가지고 또 해 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다음에 또 오실 때는 꼭 해 놓고 맞겠다고 각오를 하고 해야 됩니다. 주님은 수시로 도적같이 우리에게 오십
니다.
더욱 각오를 가지고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저처럼 충격을 받도록 이야기 하나 해 주겠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성스러운 호소’라는 책을 쓴 케냐의 안나 알리 수녀는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일곱 시간 동안 기
도하고, 또 아침 일곱 시에 미사에 참석하며 몇 년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1987년 9월 8일부터 1988년 10
월 23일까지 195회나 실체로 나타나셔서 그 시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손가락과 발가락에서 피가 나는 병을 앓고 있었고, 그 병으로
7년 동안 갖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수녀가 되고 싶었지만 건강하지 못하여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안
나는 자기 병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결국 주님은 밀링고 추기경을 통해 기도하게 하여 병을
낫게 해 주었습니다.
수녀가 된 후에도 안나 수녀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밤 10시에서 그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매일 철야하며 눈과 온
몸에서 실제로 피가 나도록 기도하며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195번이나 실체로 나타나 그 시대를 계
시해 주셨고, 어떻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내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들로 인하여 내가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니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안나 수녀는 기도할 때 예수님이 나타나신다고 신부님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이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예수님이
나타나셨으면 네가 그 얼굴을 그려 보라고 했답니다. 이에 안나가 그 빛난 모습을 감히 그림으로는 그릴 수가 없다
고 하니, 카메라를 주어 찍게 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찍게 되었습니다.
안나 수녀가 기도하면 눈에서도 몸에서도 피가 나왔다고 합니다. 기도하면 피가 흘러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이 피로
얼룩졌는데, 그 증거로 사진으로 찍어 책에 실었습니다. 눈에는 붉은 눈물이 흐르고, 몸에서는 보다 연한 분홍색 피
가 흘렀는데 그 몸에서 향기가 진동했다고 본 자들이 증거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눈에도 피가 흐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이에 안나 수녀가 예수님께 물었을 때 「나도 너희를
위해, 인류를 위해 피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 또 마귀들은 마치 자기들이 세상을 영원히 통치할 듯이 믿는 자들
을 유혹하고 끌고 가기에, 믿는 자들이 거기 빠지지 않고 유혹받지 않게 하기 위해 안타까워 기도한다.」고 했습니
다.
보잘 것 없는 안나를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았지만, 주님은 추기경이 인정하게 하시면서 결국 모두 믿게 하도록 하시
고야 말았습니다. 주님은 흔히 바보 같은 자, 연약한 자, 사람들이 별로로 보는 자들을 통해 은밀히 역사하십니다.
선생도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역사하시고 말씀하시니, 살려면 그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섭리 사람들의 믿음 점수는 평균 80점밖에 안 나온답니다. 말씀도 누가 주는지 확실히 모릅니다. 특히 오래된 사람
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100% 믿고 행합니다. 믿음대로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의
점수가 80점인 사람은 갖추지 못하여 절대 주님의 재림을 맞을 수 없습니다.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각종 발악을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 시대는 재림을 앞두고
세상에 빠지지 말고, 마귀들이 사람을 통해서나 직접 유혹할 때 꼬임을 받고 끌려가 살지 말라고 이같이 심정 태우
며 말하는 것을 모두 깨달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안나의 저서는 지금 절판되어서 서점에서는 구하기 어려워 말씀해 주었습니다.
사진을 보았지요? 주님이 보여 주라고 하셨기에 보여 주었습니다. 사진이 푸른빛을 띠는 것은 빛이 강하면 푸른색
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별들 중에서도 푸른색의 별은 열이 최고로 높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마치 산소용접 할 때
와 같이 푸른빛을 띱니다.
오늘의 말씀과 같이 모두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해 마지막 은혜의 날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갖추라고
했습니다. 특히 신약성경을 자세히 읽고,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에 몰두하여 자세히 듣고, 그동안 들은 재림의 말씀들
을 반복해서 보고 행하면서 마음과 행실을 신부처럼 갖춰야 됩니다.
신부가 결혼 전에 신랑이 말한 대로 그것에 몰두하여 필요한 것을 갖추듯이 꼭 갖춰야 됩니다. 전도 공적과 의의 공
적과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들을 육과 영이 갖춰야 됩니다.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외에도 주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꼭 갖춰야 됩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는 다툼과 노여움으로 하지 말고 기쁨으로 주께 감사하며 해야 됩니다. 근신하고, 기도하고, 감사
하고, 말씀한 것에 순종하고, 형제를 용서하고 위해 주고,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깨끗하고 청결
한 신앙의 삶을 갖추고, 말을 할 때도 절대 은혜로 하여 의롭고 착한 말을 하도록 갖추고, 게으른 자는 부지런하게
갖추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신앙인들은 이때 뜨겁게 갖추고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안나 수녀에게 하신 많은 말씀 중에 마지막으로 나타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진정한 나의 사랑의
불꽃 위에 올라와서 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형제 사랑, 주님 사랑, 말씀 사랑 하고 실천하면서 사랑의 불꽃
위에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도록 갖춰야 됩니다. 주님은 말과 행실이 정말 불꽃같습니다. 고로 주님이 우리에게 가
까이 오시면 가슴이 뜨겁고 마음에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느 시대든지 주님이 사명을 주어 보낸 자들의 말씀과 그 행함을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으로
믿지 않는다며 답답해 하셨습니다.
언행 심사를 갖추고 살지 않으면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새벽에 완전히 기도하는 것, 시간을 온전히 쓰는 것
을 갖춰야 됩니다. 기도할 때나 주님의 일을 할 때는 억지로 하지 말고 체질적으로 기쁨으로 해야 됩니다. 낮에 생
활할 때도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갖추어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사명자 린다로 전한 말씀을 다시 보면서 그 말씀대로 회개하고 행하면서 갖춰야 됩니다. 긍휼과 자비와 용서
와 사랑을 갖추고, 잃은 생명을 찾아 백 마리 양을 채워 갖추고, 필요 없는 시간을 쓰지 말고 주님을 맞는 데 쓰면
서 갖춰야 됩니다.
그동안 주님이 섭리역사에 심정 타게 외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성공하려면 시간 뺏기지 마라. 시간 뺏기면 실패한
다.” 는 말씀입니다. 5분도 필요 없는 시간을 쓰지 말라고 나에게 말씀하시어, 나는 수십 년 동안 외쳐 왔습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 먹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갖추지 않으면 주님과 통하지도 않고, 말씀도 없고, 대화도 안됩니다. 주님의 계명을 생명시해야 됩니다. 주님을 최
우선으로 해야 세상을 이기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갖출 수 있습니다. 이는 시간적으로 승리하는 자로서 우리의
천적인 마귀가 시간을 빼앗지 못하게 해 버리는 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한국 사람은 화끈하기는 한데 오래 못 가서 그 마음과 행실이 욕조의 뜨거운 물처럼 곧 식는
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지속적으로 가야 됩니다. “어느 민족이고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처음에서 나중까지, 시작에
서 끝까지 가는 것을 아예 생각하고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는 연장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섭리역사는 특히 연장된 시간에 준비하고 갖추고 있는 자들이라고 주님은 말
씀하시며 “고로 이제는 실패 없이 부지런히 긴장하고 행하라.”고 했습니다. 초소 근무자는 어떤 사건을 확실하게 전
달만 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기도가 끊이면 안 됩니다. 전달해 준 말을 듣고 행하고 갖추는 것은 본인들
이 해야 됩니다.
주님이 연장하신 시간도 그나마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항상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긴장이 풀려 할 일도 못 한다
고 했습니다. ‘나태와 태만’은 성공할 사람도 실패하게 하는 천적입니다. 마귀의 술법 중에 하나가 우리를 태만하게
하는 일입니다. ‘근신’은 실패할 사람까지 성공하게 해 주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신하라. 깨어 있어라.
주님은 나를 가르치실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완전히 완벽하게 해 놓고 미리 갖춰 놓고 있어야 한다. 중요
한 것은 무조건 제일 먼저 해 놓고 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지난 30년 동안 항상 긴박성을 가르쳐 주셨고, 긴장하며 근신하라고 가르쳐 주셨고, 집념과 사고력에
대해 말씀하시며 번개처럼 행하고 빠른 구름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같은 정신력을 가지고 그 터전 위에
섭리역사를 지휘하고 이끌어 왔던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실패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청중도 끌고 가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 몸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고 끌고 가지 못합니다.
모두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총명이 능력으로 함께하며, 성령으로 거듭남과 그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3월 25일 수요말씀>
이와 같이 이러하다
본 문 누가복음 17장 26-30절
먼저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말씀 중에 성령님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를 빕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주님은 “내가 말함을 먼저 자세히 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설교를 제대로 들을 수 있고,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고 기록한 말씀과 주님이 근본으로 말씀하신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또 그 말씀을 온전히 행함으로 복을 받고, 심판을 면하고, 재림을 제대로 예비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주님이 말씀하시니 들어 보기 바랍니다.
주님은 “깨달은 것을 통하여 깨닫지 못한 것을 그와 같이 깨달으라.”고 하셨습니다.
노아 시대는 창세기 6장과 7장을 읽으면 잘 깨달을 수 있고, 롯 시대는 창세기 19장을 읽으면 잘 깨달을 수 있습니
다. 꼭 여러 번씩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정말 깨달으려 기도하고 읽어야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상황을 보고
깨달은 것을 통해 주님의 재림에 대해 아직 깨닫지 못한 것과 그 내용을 확실히 모르는 것을 깨달아 현 시대를 바
로 보고, 주님의 재림의 날을 깨달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깨닫고 안 것을 가지고, 그로 인
하여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고 알라는 말씀입니다.
노아 시대와 롯 시대에 노아와 롯만 피하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상상하지 못할
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홍수가 일어나 십오 규빗(약7m)의 물이 찼고, 롯 시대에는 하늘에서 불비
가 내려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그 시대에 이같이 심판했듯이, 이 시대에도 휴거된 자만 데리고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시대에 해당되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와 롯의 시대에도 하늘이 택한 자를 피하게 하신 후에 물로, 불로 심판하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주님이 재
림하시어 택한 자는 휴거되어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고, 나머지 휴거되지 못한 자들은 세상에 남아 갖은 환난을 당하
게 됩니다. 상상하지 못할 이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말씀대로 심판으로 인하여 산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각종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죽기도 하고, 처처에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믿는 자들은 그 환난을 겪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노아 시대와 롯의 시대에도 그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간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심판이 있었습
니다. ‘이를 보고 깨달은 것을 통해 아직 깨닫지 못한 주님의 재림의 때를 깨달으라.’ 함이며, ‘어떤 죄를 깨달음으
로 인하여 아직 깨닫지 못한 죄를 회개하라.’ 함입니다.
주님은 “내가 과거와 현재에 하도록 도와주었는데 왜 도와줘서 감사하다고만 하고 행하지 못했느냐. 못 한 죄도 회
개하라. 나와 의논하지 않고 행한 일에 대해서도 매를 들고 있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 듣고
회개하기는 하는데 빨리 하지 않는다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나에게 “말씀은 짝 지어 다닌다.”고 말씀하시며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미 전에도 말씀했지만 이 말씀
을 잘 배우고 이해해야 언제든지 주님의 말씀을 빨리 깨달을 수 있고, 그 근본을 완전히 깨닫고 이해할 수 있기에
주님은 다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앞에서 어떤 것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시는 이유는 뒤에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두고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거의 그같이 되어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말씀하시면 거의 그같이 말씀
하십니다.
어느 때는 비유가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앞에 하시면서 현 시대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이 같은 말씀이 이번 주일의 말씀입니다. 「노아 시대와 롯 시대와 같이 인자의 시대도 그와 같이 그러하
리라.」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 어떤 말씀보다도 깊고 고상하고 오묘합니다. 주님은 급절하게 감동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이해가
빨리 되고 듣는 즉시 깨닫도록 말씀해 주십니다.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실제 일어날 것을 말씀하시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현실도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말씀은 짝 지어 가고 있지 않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
다.
또 주님은 육적인 말씀과 영적인 말씀을 하시며 짝 지어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 대해 말하려면 남자와 여자에 대해
같이 말해야 됩니다. 10년을 말한다 해도 남자에 대해서만 말하면 인생에 대해 다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한 시간을
말한다 해도 남자와 여자에 대해 같이 말해야 인생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육적인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 육신 세상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영에 속한 마음적인 것과 영에 관한 말씀과
하늘나라에 관한 것들을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것을 말하는데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을 말하면 믿겠느냐.” 하셨습니다. 이것도 짝 지어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깨달은 것을 통해 성경의 짝 지어진 말씀을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고로 성경을 제대로 깊이 보고 하나님
과 주님이 선지자들과 사명자들로 하신 말씀을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러하니, 앞에 말한 것을 확실히
알아야 뒤에 아직 모르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다른 면으로 짝 지어 말씀하신 것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주님은 “성경은 짝 지어 말씀했다.”고 하시며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나 예수가 주는 말씀을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기록한 것으로 하늘과 땅이 짝 지어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시대도 그러하다. 너희들에게 말씀할 때도 그러하다.”고 하시며, “자유로운 자와 감옥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다르고, 천국과 지옥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다르고,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하는 소리가 다르고, 의인과 악인
이 하는 소리가 다르고, 나와 사람이 하는 소리가 다르지 않느냐. 너희는 어찌 깨달음이 그리 더디냐.”고 하셨습니
다.
주님은 극한 환경 중에 있는 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심정의 사람을 사랑하며 그를 쓰십니다.
-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혀 고통 중에 주님께 말씀을 받아 전했을 때, 그 말씀은 듣는 자들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
으며 평소와는 다르게 들렸습니다.
- 예수님이 죽음을 앞에 놓고 전하시는 말씀은 달랐습니다. 육계와 영계의 비참하고 참혹한 모습을 직접 보고 외치
시니 그 말씀이 간절하고 확실했으며, 읽거나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가슴에 충격적으로 깊이 와 닿았습니다.
- 히스기야 왕은 왕으로서 왜 벽과 얼굴을 맞대고 그토록 슬피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겠습니까? “네가 곧 죽으리
라.”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전해 듣고 그같이 슬피 울며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고통을
자기 외에 누가 아는 자가 있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눈물을 보시고 선지자를 통해 “네 병이 낫고,
15년을 더 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화가 복이 되었습니다. 간구와 회개의 눈물로 인하여 이같이 해 주신 것
입니다.
-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왜 그같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며 일생을 살았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이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살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보시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슬퍼 눈물을 흘렸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사랑하여 복을 받고 영광스럽게 살 민족이 심판을 받아 이웃 나라에 끌려가 갖은 고통을 받는 안쓰
러운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며 미련한 시대를 향해 비통하게 외쳤습니다.
셋째, 이방 민족들에게 시대의 급절한 말씀을 외쳐도 듣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왕들이 교만하여 주권과 세
력만 넓히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로 심판한다고 가르쳐 줘도 오히려 옥에 가두고 벌을 주었습니다. 옥에서 보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순간에 거대한 민족이 황폐하게 되고 적막한 황성 옛터가 되었습니다. 고로 예레미야는 슬퍼하
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잘 들었으면 복을 받고 살 민족이었는데 말씀 한마디를 듣지 않고 불순종하
여 그같이 된 것을 보고 안타까워 개탄하면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로 애가를 읊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에 비해 작지만, 많은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축복
을 받고 택함을 받은 뛰어난 민족이었습니다. 왕자같이 살고 공주같이 살았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를 제일주의로 하고 살다가 어느 날 노아 때 홍수 심판을 받아 다 쓸려 가듯이, 소돔 땅이 폐허가 되듯이 망한
것을 보고 눈물로 애가를 부른 것입니다. 모두 잡혀가 여기저기 움막을 쳐 놓고 살고 있고 게다가 이웃 나라에 조공
까지 바치는 신세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을 쳐다보니 슬픔의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성경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애가를 읽어 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렇
게도 목이 터지게 왕에게 외치고 제사장들과 방백들에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믿지 않고, 외면하고, 불순종하고, 업신여기며 외치는 자를 그렇게도 미워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람
들이 죽고 민족이 망하는 것을 보고, 예레미야는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며 애가를 지어 역사에 남겨 어느 민족이나
개인이나 다시는 그같이 하지 못하도록 역사의 거울이 되게 하였습니다.
-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사울 왕에게 자기중심으로 살지 말고 다윗을 무고히 미워하며 원수시하지 말라고 양심적
경고와 전쟁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평소 다윗을 미워하듯이 계속 그를 미워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
다. 결국 전쟁에서 패하게 되고, 왕궁이 무너지고, 사울과 세 아들은 전쟁 중에서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고야 말았습
니다.
이 시대에도 이러한 일이 도적같이 이르기 전에 이미 노아 시대와 롯 시대와 같이 주님은 경고하시며 사명자로 외
쳐 알게 하십니다. 그것마저 불순종하면 결국 심판을 받고 멸망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과 주님
을 최우선으로 두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한 자들은 구원을 받고 살아서 후대를 이었습니다.
사명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든지, 주님이 직접 외치시든지 주님이 말씀하셔야 전하는 자도 듣는 자도 확실
하게 알아듣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현실과 앞날을 다 알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매일 지옥으로 가고, 아주 적은 사람들이 생명길로 가는 것을 보시고 심정 태우며 하
나하나 다스리고 다니십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삶 속에서 항상 이기고 승리하라.
누구나 자기가 좋아서 행한 불의로 인하여 지옥에 가게 되니, 실상은 자기가 좋아서 지옥에 가는 것과 같다.”고 주
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에 일어나는 일도 확실히 알지 못하고, 또 미래의 일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말을 들어도
확신이 없고, 확실하게 믿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귀를 기울이고 듣겠습니다. 모두 읽어 보겠습니다.
(눅 17:26-30)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
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
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인자의 때, 인자가 나타나는 날’이라고 했는데 ‘인자’란, ‘주님’을 말합니다. 주님은 인자로서 이스라엘 민족에 육신
을 가지고 나타나 구원의 말씀과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 시대와 롯 시대같이 먹고, 마
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을 짓고, 삶에 빠져 자기 생활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현실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이 다시 재림하시어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도적같이 오실 때도 노아 시대와 같이, 롯 시대와
같이, 주님이 이스라엘 민족에 오셨을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을 짓고, 자기 삶에 빠져 살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사람들은 구원받아 데려감을 당하고, 나머지 사람들
은 민족적으로 각자 심판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모두 구원받도록 사전에 예비할 시간을 주시고, 끝에 가서는 경고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은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한 자들만 심판을 피하고 살았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과 주님은 심판을 하실 때 사전에 절대적으로 심판을 피하도록 마지막 예비할 시간을 주시고
경고까지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비와 사랑을 베풀 수 없는 예정된 날에 심판하신다고 주님은 말
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섭리역사를 30년 동안 펴 오면서 섭리 안에서나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면, 주님은 반드시 사전에
피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시고 끝에 가서는 경고까지 해 주십니다. 그 말을 잘 듣고 순종한 자들은 피했고, 듣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은 죽거나 다치게 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뉴스에도 보도되고 신문에도 기사가 나서 다 본 것이지만, 주님이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말씀하시니
지난날 행하신 일들을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들어 보겠습니다.
섭리역사가 30년 동안 오면서 세계적으로 일어난 사건은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말해도 잘 모릅니다. 고로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들 중에, 노
아 시대와 롯 시대 소돔 땅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사건만 말하겠습니다.
1. 고베 대지진 - 1995년 1월 17일, 6,300여 명의 사망자와 1,400억 달러의 피해액 발생
2. 한국 삼풍백화점 붕괴 - 1995년 6월 29일, 501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 발생
3. 한국 IMF - 1997년 12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여 IMF로부터 달러를 지원받아 외환 위기의 고비를 넘긴 일
(월명동 전망대에서 설교할 때 물질 대 가뭄이 온다고 확실하게 말해 주었고, 모두 저금하고 아끼자며 요셉이 애굽
에서 총리로 있을 때와 같이 했습니다.)
4. 코소보 전쟁 - 1999년 3월 24일부터 6월 25일까지 전쟁이 발생하여 코소보인과 민간인 7,500여 명이 사망
5. 대만 지진 - 1999년 9월 21일, 2,193명의 사망자 발생 (대만 국민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대지진으로 많은 절
들과 사당들이 무너졌다.)
6. 남미 베네수엘라 대 홍수 - 1999년 12월 사망자 3만여 명 발생
7. 프랑스 폭풍 - 1999년 12월 (1999년 크리스마스가 끝났을 쯤 유럽 각국은 2회에 걸쳐 맹렬한 폭풍우가 덮쳤고,
프랑스뿐 아니라 스위스·스페인·이탈리아 등에도 재해를 입었다. 최근 오십년 동안 최악의 폭풍우라고도 말하여 진
다.)
8. 미국 9.11 테러 - 2001년 9월 11일
9. 사스(SARS) 전염병 -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유행하여 8,096명의 감염자와 774명의 사망자 발생
10.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태국, 몰디브 등지에 일어난 지진해일(쓰나미) - 2004년 12월 26일 발생하여 약
30만 명의 사망자와 500만 명의 이재민 발생
11. 중국 심천 화재 - 2005년 심천의 유흥가 한 주점에서 발생하여 320여 명이 사망
12. 미얀마 사이클론 - 2008년 5월 2일, 13만 8천여 명의 사망자와 100만여 명의 이재민 발생
13. 중국 스촨성 지진 - 2008년 5월 12일, 7만여 명의 사망자, 1만 8천여 명의 실종자, 37만 3천여 명의 부상자,
500만여 명의 이재민 발생
주님은 이러한 재앙을 당하는 나라나 지역의 사람들에게 노아 시대와 롯 시대처럼 미리 경고해 주시고 피할 수 있
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경고를 받고서도 안심하고 ‘설마 그 같은 일이 일어날까?’
하며 믿지 않고 두려움과 떨림과 긴장하는 마음으로 행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재앙을 당한 후에 뉴스를 보아
도 사전에 피할 수 있도록 징조가 있었고,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이 있었는데도 ‘설마...’ 하며 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누구든지 그같이 하지 않았으리라.” 주님이 평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주님은 “고로 노아 시대와 롯 시대처럼 되고 말았다. 나의 재림을 앞에 놓고 온 세계에 마지막 경고를 하여 내가 전
하는 말을 인터넷으로, 책으로 읽고 알았는데도 그것을 우선으로 하지 않고 자기 평소 하던 신앙생활들을 그대로 하
고 있다. 이방인들은 농담같이 듣거나 자기와 거리가 먼 이야기로 듣고 ‘설마...’ 하며 안심하고 살고 있다. 종교 지
도자들도 그 순간 스치고 지나가고 만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섭리 모든 사람들에게도 “계속 단상의 설교를 통해 말하니, 소돔 땅의 롯에게 천사들이 말씀했던 것처럼 들
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하기도 하셨지만 거의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고, 예측하
지 못하는 깜짝 놀랄 큰 재난이 일어난다는 것만 내 믿음에 따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경고해 주셨습니다.
고로 설교 때 “그곳에 가지 마라. 거기서 나오라. 너희 민족에 놀랄 일이 일어나니 신앙생활 제대로 하고 민족을 위
해 기도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때는 누가 그곳에 가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못 가게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서 지금도 주님의 일을 열
심히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알았으면 모두 총동원해서 막았을 것입니다. 어느 때는 경고를 듣고 복음을 전하다
가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급히 빠져나와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1999년 프랑스에서도 문화 교류를 통해 전도하며 더 있으려고 하였지만 주님은 다른 나라로 이동시키시고 거기서
선교하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얼마 후, 프랑스에 큰 폭풍이 일어나 엄청난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제야 전에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땅을 쳐다볼 때 주님께서 “겉은 천국, 속은 지옥이다. 차라리 겉은 지옥, 속은
천국이라면 심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같이 세계 곳곳에 그 많은 참사가 일어났지만, 섭리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전에
주님이 나를 통하여 못 가게 하고 거기서 나오라고 했을 때 그 말씀을 생명시하고 지켰기 때문입니다.
섭리역사 30년 동안뿐만 아니라 그전부터 주님이 나에게 약속하셨거나 계시하신 말씀은 거의 다 이루어 주셨고, 미
리 경고한 사건도 어느 것 하나 착오 없이 다 일어나 뉴스로도 보도되었습니다. 사전에 이 같은 일을 들은 사람들은
사실임을 그동안 간증해 왔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대에 내가 말한 재림도 일점일획도 착오 없이 임박해 오고 있다. 고로 외쳐라. 중지하지 말고 재림 때
까지 내가 말하는 대로 확실하게 전해 줘야 된다.”고 하시며 “섭리역사는 그동안 성장해 오던 방법이 있다. 내가 그
방법으로 말씀하니 더욱 너희에게 맞게 성장하고 예비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맞게 말씀해 주셔야 주의
날을 맞도록 예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전에 어떤 일들을 확실히 말해 주어도 자기 믿음과 신령함의 수준에 따라 어떤 이는 확실히 믿고,
어떤 이는 부분적으로 일부만 믿고 그에 따라 행합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믿고 외칩니다. 당한 후
에는 예언이 소용없는 것입니다. 소돔 땅같이 심판 후에야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됩니다. 구체적인 일들은 하
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거의 알려 주지 않고, 계시도 받기 어렵고, 하나님과 주님이 막기 때문에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소돔 땅을 심판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네게 숨길 수 없구나.” 하
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롯에게도 사전에 가르쳐 주시고 외치게 하셨습니다.
왜 노아 시대와 롯 시대와 같은 일이 어느 지역에 언제쯤 일어난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지 않으시냐고 주님께 물
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어떤 놀랄 일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만 알면 되지, 구체적인 일을 안다고 해
서 다 믿고 피하는 것도 아니고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하셨습니다.
고로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주님이 선지자들이나 사명자들로 긴박하게 말씀하신 것만 알면 감사하고 만족한 것입
니다. 더 알려고 하는 시간에 예비하고 준비해야 될 긴박한 때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극한 깊은 비밀
은 가르쳐 주지 않으십니다.
오늘은 “지난 30년 동안 말씀한 것이 다 이루어졌듯이, 임박한 나의 재림도 그와 같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역사를 펴 오면서 90년도 초만 해도 돈이 없어 큰 교회를 지을 수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한 자리
에 모여 설교 들을 장소가 없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뛰고 놀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장소를 달라고 기도했을 때,
주님은 예배 장소와 뛰고 놀고 마음껏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장소를 주시겠다고 나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월명동 자연성전을 만들도록 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이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듣고 제자들에게 말하였더니,
일부는 좋아하기만 하고 ‘설마...’ 하며 확실히 믿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그 말조차도 다 잊어버렸고, 월명동을 개
발하면서도 잘 몰랐습니다. 완공한 후에 사용하면서 그제야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긴박함을 이같이 생각하고 믿고 행해야 됩니다. 진행 중인데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주님의 재림을
제대로 맞지 못할 사람입니다.
노아 시대에도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이 곧 시작된다고 외쳤어도 사람들은 ‘설마...’ 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롯의 시
대에도 롯이 이 성은 곧 심판을 받으니 나를 따라 나가서 살자고 했어도 ‘설마...’ 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믿었으면
따라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오른쪽 강도처럼 예수님의 말을 듣고 즉시 믿었으면 과거에 어
떤 삶을 살았든지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도 그러한데, 섭리 사람들 중에서 일찍 온 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20년 동안 말씀을 듣고 준비해
왔습니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 환난과 억울함을 당하며 이단 소리를 듣고,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언론의 공격을 당
했습니다. 과거의 어떤 종교보다도 상상할 수 없이 많은 환난을 받아 왔습니다. 어이가 없어 그저 막연히 지켜보면
서, 하늘을 쳐다보며 오직 주님만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따라오다가 구름 떼같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환난 중에 섭리역사를 오해하고 서로 싸우다가 나갔고, 나간
자들이 강 건너가 갖은 분풀이 하는 소리를 우리는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원수까지 사랑하고 기도해 주라는 주
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나처럼 참고 견디고 긍휼히 여기면서 주님의 마음으로 살자고 했습니다. 마치 결혼하는 날
동네 개들이 물어뜯고 싸운다고 해서 같이 싸우다가는 혼인 잔치 못 하고, 신부는 신랑을 못 맞고 신랑은 신부를
못 맞는다고 하며 참고 오게 했습니다.
그렇게 참고 견디며 오다가 10년 만에 서로 만나려 하였지만 우리의 기대는 또 어긋났습니다. 모두 이상하다고 했
을 것입니다. 결국 2000년이나 기다렸던 주님의 재림을 주님이 직접 선포하시어 「재림이 가까웠다. 너희는 연장
된 시간의 끝에 살고 있다. 빨리 준비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해당되는 시대 말씀을 누가 전해 줘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전
하는 자를 통해 재림 때까지 주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성경에 선지자의 말을 듣지 못하면 백성이
방자하고 갈 길을 모른다고 했으며, 그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온 세계의 빛에 속해 있는 자들은 그 말이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빛에 속해 있는 자란, ‘주님이 보
낸 사명자들이 외치는 말씀이 믿어지는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명자란, ‘주님이 그 순간 그 순간 하시는
말씀을 받아 전하는 자’입니다.
지진과 전쟁 등 놀랄 사건이 일어나니 그제야 그동안 있었던 가지가지 의문들이 풀리듯이, 이 시대에 외치시는 주
님의 재림의 말씀을 듣게 되니 섭리역사 30년의 의문이 풀리고 환난과 핍박과 근래에 일어난 극적인 사건들이 모
두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는 깨달아 알지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갖은 고통을 받으며 긴장하며 살게 하시고, 특히 지난 10
년 동안은 더욱 내 마음대로 못 하게 하시고 초긴장하여 말씀을 전하게 하시며 우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전해 주게도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를 깨닫고, 성경에 이 같은 일들을 두고 내가 말한
것을 깨달아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깨닫고 보면 우리 섭리역사는 그동안 재림에 대하여 준비해 오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주님은 환난과 핍박과 억울함
을 통해 더 긴장하고 신앙의 잠을 못 자게 섭리해 오셨던 것입니다. 생활의 부활, 정신의 부활, 영의 부활을 가르
쳐 주시며 평소 살아 있는 신앙으로 주님을 믿고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나로 외치게 하시고 본을 보여 그같이 너희도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야 된다고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들도 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해 온 것입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라는 말씀은 성경에 너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명자들을 통해 계속 외쳐 오기도
했습니다. 사명자를 통해 말씀하시니 요즘 재림을 앞에 두고 특별히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들을 한다고 주님은 책망
하시며 “너희는 그동안 듣고도 왜 못 들은 체 하느냐.” 하셨습니다.
선생은 그동안도 「나는 주님께 배우는 자로서 주님은 나의 선생이다. 나는 주님의 신부다. 주님이 오시는 때를 위
해 본을 보인다. 주님보다 부모나 형제를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애인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 나
보다 주님을 백 배, 천 배 더 사랑해야 된다.」고 외쳐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 세상의 마지막 말세 때
만 심판하지 않으시고, 시대마다 사람들이 살다가 때가 되면 죽으니 하나님은 그때그때 심판도 하시고 축복도 하신
다.」고 외쳐 왔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배운 말씀 중에 재림에 대한 깊은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다만 재림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고 외쳐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진 환난과 고통을 통해 주님을 더 가까이하고, 다른 사람보다 주님을 더 찾고 부르면서 신앙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는 때 천사장이 나팔을 불기 전, 연장 시간의 끝에서 시대 말씀을 듣고
살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지 않겠느냐.”라고 이미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주님은 “나의 재림을 맞는 것은 일순간, 몇 달 준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마치 찻집에서 남녀가 차 한 잔 마시면
서 눈이 맞아 사귀고 결혼하여 신부를 맞고 신랑을 맞듯이 맞는 것이 아니다. 일생의 지은 죄를 회개하고, 인생을
만들고, 선하게 만들고, 공적을 쌓고, 많은 생명들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나와 같이 일을 하면서 맞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홍안 소년들과 홍안 소녀들이 늙는 줄 모르게 부지런히 순종하며 뛰어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시대 말씀만
잘 듣고 갖출 것만 갖추면 됩니다.
어떤 남자가 궁을 지어 놓고, 갖은 별장들을 지어 놓고, 각종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놓고, 온 나라를 다니면서 자기
와 같이 살 배우자를 찾아다녔습니다. 한 곳에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기에 가 보았습니다. 환경도 경
치도 좋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예쁜 여자가 있다고 하여 가서 확인해 보니, 배우자도 없고 누구 사귀는 사람도 없
는 여자였습니다.
이 남자는 여자가 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 살아도 그것을 보지 않고 사람 하나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준비
한 궁궐과 좋은 환경이 있기 때문에 여자가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환경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여자와 이야기를 해 보고 그 행실을 보더니만 그냥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저 같은 여자
를 보고 그냥 가다니...” 하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이 남자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그 같은 말을 한 것입니다.
왜 그냥 갔을까요? 궁금하지요? 미친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미쳐서 거기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 한 남자가 갔어도 관심 없이 대하고, 귀에다 이어폰
만 꽂고 음악을 들으며 노래만 부르고, 세상의 온갖 것에만 신경 쓰고 행동했습니다.
이 남자는 그 여자를 보고 세상에 미치고 자기 취미에 미친 것으로 잘 판단하고 다른 곳으로 간 것입니다.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긴장을 하고 이리저리 숨 가쁘게 뛰어다녔습니다. 이번에는 변장을 하고 달동네 같은 곳
에 갔습니다. 이 남자는 여자의 환경도,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오직 사람 하나만 보았습니다.
한 여자가 있어 가 보니 신발을 벗어 놓을 곳도 없었습니다. 여자가 괜찮으니 들어오라고 했는데 앉을 곳도 없었습
니다. 남자가 해가 져 갈 곳이 없다고 하니, 여자는 누추하지만 자고 가시려면 자고 가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러
나 방을 보니 너무 좁아서 누울 곳도 없었습니다. 방이라기보다 마치 죽은 자가 들어가는 관 속 같았습니다.
서서히 이야기를 해 보니 인물이 보통이 아닌데다가 너무 착하고 순수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인생의 최고 우선
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여자는 신랑을 만나 결혼하여 모시고 받들고 위하고 섬기면서, 신랑에게 순종하며
사는 것이 최고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을 위해 매일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자가 환경에 맞춰서 허름하게 입고 갔기에 여자도 남자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보니 여자의 사고와
생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그 같은 환경에서도 불평 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많이 깨달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속
으로 좋아했습니다.
집은 어느 정도면 되냐고 여자에게 물으니, 자기는 남자 하나 보고 시집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남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며칠 못 가서 죽을 것만 같다고 했습니다. 이에 남자는 여자에게 자기도 급한 사람이라고
하며 결혼하지 못하여 결혼할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데 환경도 안 보고 나를 위해 갖춘 자만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
러니 자기와 같이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었어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릇도 없고 수저도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에게
또 집에 언제 오겠다는 날짜는 이야기할 수 없고 오기는 또 오겠다고 희망을 주고, 그 후에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살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이 같은 여자가 좋다고 하며 신부로서 갖춰야 될 것들을 은밀히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
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직접 오지 못할 때는 긴긴 사연의 편지로 해야 될 일들을 전해 주면서 도적같이 오고 갔
습니다.
여자는 매일 남자가 갖추라는 것을 갖추기 위해 밤잠을 못 자 가며 새벽부터 정성을 들이고 살았습니다. 남자는 여
자를 데려갈지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자가 아직도 갖춰야 할 것이 있기에 남자는 기대를 걸고 희망에 차
서 오고 가기만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그 행실을 볼 때 그 남자에게 휴거되어 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
나 실상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시대가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주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섭리 사람들은 섭리 뛰느라 돈을 못 벌어 돈이 없고, 또 돈 쓸 일이 없어서 세상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래서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근성을 고치지 못하면 돈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자기 주관
에 빠지고, 자기 사고에 빠지고, 게으름에 빠져 사는 것이다.”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꿰뚫어 보시
고 하시는 말씀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말씀이 가슴에 ‘찡’ 하고 와 닿아 다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니 연속하여 깨우쳐 주셨습니다.
“사람이 환경의 주관을 받기로 골방에 가둬 놓아도 거기서도 스스로 할 일을 못 하면 죄를 짓게 된다. 주위를 보고
생각해 보아라. 그러므로 문제는 환경도 인간을 만들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 정신 차리고 깨어 기도하며 죽음을 벗
어나려고 하듯 해야 된다. 환경 가지고 사람을 만들 수 있겠느냐. 각자 자기 마음대로 못 하도록 환경이 나쁜 곳으
로 보낸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이 쉽게 고쳐지겠느냐. 누구든지 본인이 깨닫고 스스로 해야 된다. 좋은 환경이든,
나쁜 환경이든 환경과 상관없이 전에 네게 말한 대로 시계처럼 어디 갖다 놓아도 1분도 어기지 않고 제때 일을 해
야 된다. 사람은 몸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환경이 살아 주느냐. 자기 하나 온전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며 깊이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역사 각 사람들의 마음을 보니 일부는 청소되었고, 일부는 아직 안 되었다.”고 하며 마음들을 보여 주셨습니
다. 주님은 또 “깨달은 것을 통해 깨닫지 못한 죄를 깨닫고 회개하라. 너무 느리게 청소들을 한다. <구원의 말씀>
에서 말씀한 죄는 모두 오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오물을 청소하는 것이 죄를 회개하는 것이라고 비유로 하신 말씀을 다시 하시면서 “하기는 하는데 속 시원하게 하
지 못한다. 이같이 하라.”고 하시며 청소기를 빼앗아 번뜩번뜩하게 깔끔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섭리 사람들에게 계속 갖가지로 도적같이 가십니다. 각 교회에 주님이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들어 보겠습니
다. 모두 듣고 안녕히 가세요. (간증문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3월 29일 주일말씀>
회개하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
본 문 마태복음 4장 17절
참 고 마태복음 4장 1-16절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주님께서 오늘은 무슨 말씀을 해 주실까 궁금하지요? 주님의 말씀은 다 귀합니다. 주님은 귀한 말씀과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은 더 귀하고 필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시며 세상의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먼저 갖추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때 마귀는 음식과 하나님에 대한 것과 명예로 예수님을 시험했으나 말씀으
로 다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주님은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 먼저 기도하여 모든 할 일을 하셨습니다. 또 죄로 인하여 마귀가 많은 생명들을 사
망권으로 끌고 갔기에 복음을 전할 때 방해하고 막을 마귀와 먼저 싸워 완전히 굴복시키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복음
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회개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며 죄에
대하여 모두 회개하라고 외치셨습니다.
손님을 맞더라도 먼저는 깨끗하게 합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집을 청소한 후에 손님을 맞습니다. 만일 그같
이 하지 않고 맞으면 손님도 꺼려하며 가까이 올 수가 없습니다. 맞는 자신도 누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이기에 맞을
수 없고, 마음이 꺼려서도 맞지 못하게 됩니다.
인생의 배우자와 사랑하는 자를 맞더라도 먼저 깨끗하게 하고 맞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맞고, 천국을 맞고,
기다렸던 메시아를 맞는데 깨끗이 하고 맞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고로 주님은 “회개하라.”고 제일 먼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누가 들어도 당연한 일입니다.
오전에 친구들이 맛있는 것을 사 가지고 집에 놀러 온다고 연락하면 준비되지 않은 자는 즉시 오라고 하지 않을 것
입니다. 몇 시간 후에, 아니면 오후에 오라고 할 것입니다. 먼저 집을 깨끗이 해 놓고, 이것저것을 준비해 놓고, 자
기도 단장한 다음에 친구들을 맞으려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을 맞는 우리들에게 너무 필요하고도 필요한 말씀임을 깨닫고, 모두 기쁨
으로 받아들이고 행해야 되겠습니다.
꿈에서나 기도 중에 주변 환경이나, 방이나, 화장실에 더러운 것과 지저분한 것이 보일 때는 아직도 깨끗이 회개되
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시입니다. 주님은 각 교회를 돌아다니시면서 “여기도 더럽구나. 저
기도 아직 청소가 안 되었구나.” 하며 다 적으라고 하십니다.
손님이 오니 급히 청소 먼저 하라고 했는데도 시장으로 화분을 사러 갔습니다. 자기 방이나 정원에 놓고 손님을 보
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급한 것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도 여러분에게 가실 때는 화분 보러 안 가시고, 사람 보러 가시니 먼저 죄를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죄를 회개하
지 않으면 사탄이 그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자기 사랑하는 자를 보러 왔는데, 그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사랑의 조건이 잡혀 그가 여자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가 그 여자에게로 오겠습니까? 이
와 같이 죄로 조건이 잡혀 마귀가 그 손을 꼭 움켜쥐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겠습니까? 고로 ‘먼저 회개하여 깨끗이
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제일 급한 것 먼저 하고, 꼭 할 것 먼저 하면서 순서별로 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믿고 살면
서 꼭 회개 먼저 해야 됩니다. 먼저 깨끗이 해야 됩니다.
주님 앞에는 ‘성결과 청결’입니다. 정말로 성결하고 청결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죄가 있으면 사탄이 주관하여 사망권
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높은 담입니다.
주님은 “네가 지은 죄로 인하여 너와 나 사이에 높은 담이 있어 못 가겠다. 네가 회개하면 무너져 버리고 없어지도
록 내가 용서한다. 죄는 하나하나 자복해야 된다. 마치 구석구석 청소하듯이 회개해야 하며, 목욕할 때 지체별로 깨
끗이 씻듯이 회개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죄를 지었으면, 한 사람 한 사람 불러가면서 언제 어떤 죄를 지었는지 하나님과 주님께 진실로 고백하며
회개해야 됩니다. 수십 가지의 죄를 놓고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먼저 하나하나 고백해야 됩니다. 마
치 백지 위에 있는 글씨를 한 자 한 자 지우개로 지우듯이, 자기가 지은 죄를 경멸히 여기고 멸시하며 하나하나 회
개해야 됩니다.
무조건 용서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먼저 세밀하게 고백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고백한 후에는 뉘우치고, 죄 지은 것
을 분통히 여기며 성경말씀대로 회개해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내용을 다 들으시고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긍휼
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
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성경에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
털같이 희게 되도록 용서해 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긍휼입니다. 자비하신 마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해 주십니다.
이사야 55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나 여호와 앞에 오라.
다 준비해 놓았다. 목마른 자도, 배고픈 자도,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리라.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있을 때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버리
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긍휼히 여기사 널리 용서하리라.」
(사 55:1-9)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
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
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
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
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
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은 자는 개인의 때, 민족의 때가 되면 노아 시대같이, 롯 시대 소돔 땅같이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
니다. 고로 니느웨 성같이 빨리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의의 삯은 축복입니다.
섭리역사 30년 동안 주님은 “나의 신부가 되려면 깨끗이 회개하라.”고 외쳐 오셨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요즘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재림에 대한 말씀도 실상은 30개론 말씀 가운데 해 왔고, 설교 때 다른 말로 해 왔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확실하게 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약속한 것은 다 해 주니, 너희는 성경말씀대로 할 일을 하라.
회개도 하고, 절대 믿기도 하고, 절대 진실로 기도하라. 그 어떤 선지자나 사도를 통해 말씀하셨든지 성경은 주 하
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니 다 이루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회개하여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회개해야 그에 합당한 신앙의 열매를 맺고, 의의 열매, 사랑의 열매, 화평
의 열매, 선의 열매, 인내의 열매, 절제의 열매, 믿음의 열매, 온유의 열매, 주님이 원하시는 모든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열매를 맺어도 충실하지 못한 것을 맺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이 살아 계실 때 말씀하신 대로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천국은 실상 ‘주님’
이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마음천국을 이루고 삶의 천국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이
시대에는 “나의 재림이 곧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회개하라’는 말씀을 하신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많습니다. 근본적으로
회개하지 않은 자들도 있고, 제대로 회개되지 않은 자들도 많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회
개해야 됩니다. 회개했으면 행동해야 됩니다.
죄는 더러워 썩은 물과 같고, 썩은 음식과 같아서 빨리 회개하여 버려야 됩니다. 또 썩어 냄새나는 시체와 같아서
장사하듯 없애야 됩니다. 그러니 슬픔으로 죄를 멸시하며 정말로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다시는 죄를 안 짓겠
다고 통회 자복해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용서해 주시고, 용서받은 자는 정말 깨끗하게 됩니다. 회개된 것은 자신
에게 깨닫게 해 주시고 확실히 보여 주기도 하십니다.
주님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는 재림을 위해 준비할 수가 없다. 진실로 죄를 회개한 자가 깨끗한 흰옷을 입고 나의
신부가 될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과 마귀는 우리에게 죄의 소망을 두고 죄를 짓게 하여 어떤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타락시키려 하고, 주님과 일
체되지 못하게 하고, 화목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죄를 짓게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결국 우
리들을 지옥에 가게 하려는 엄청난 뜻을 품고 있습니다. 마귀는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짐승의 인을 칩니다.
“마귀는 정말 어마어마한 일을 너희들에게 저지르려고 밤낮으로 발악을 한다. 그런데 왜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뿌리
치지 못하고 결국 지옥으로 가서 고생하느냐.” 하고 주님은 애타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대신 죽어
주고 살려 주었기에 지금 너희가 살고 있는데, 왜 나를 안 믿고 마귀가 하는 짓을 따라 하느냐.” 하며 심히 분노하
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여 멸하려 하시는데 내가 간구하여 지금까지 지구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의 때를 연장시켜 주시고 기다려 주실 때 속히 회개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의 죄보다, 섭리의
죄보다, 민족의 죄보다, 그 어떤 죄보다 먼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청산해 버려야 자기가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회개하면 죄에서 석방됩니다. 자유롭게 됩니다. 그리고 사망에서 나와 부활됩니다.
마귀는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주님은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하도록 마귀가 얼마
나 방해를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하나 즉시 회개해 버리고 주님이 용서해 주시면 자기 죄는 깨끗이 처리됩니다. 그
러면 사탄과 마귀가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회개함으로 인하여 그동안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의 수고는 헛수고가 된다
고 했습니다.
회개하면 꿈도 맑게 꿔집니다. 회개하고 자신의 모습을 꿈속에서 보면 깨끗한 데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계도 맑게 보입니다. 회개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지옥에 간 자들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1분도 주지 않습니다.
세상에 살 때 하나님도 주님도 이미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라는 설교를 했을 때, 본인 스스로 죄를 깨닫고 두려워하며 즉시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는 그 날 해가 지기
전에 해야 제일 좋고 잊어버리지 않고 하게 됩니다. “회개하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니 진실로 회개만
하면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자는 주님의 계명을 범했는데도 모르고 ‘그것이 죄인가?’ 생각합니다. 이성의 죄, 도둑질한 죄, 거짓말한 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죄도 다 죄니 일단 다 회개해야 됩니다. 흔히 자기가 행한 것을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
든지, ‘이것은 죄가 아니겠지.’ 생각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일단 계명을 범했으면 진실로 회개하라고 했습
니다.
“자기 깨끗한 옷을 자기가 더럽히지 않고 먼지나 매연이나 다른 사람이 흙 묻은 손으로 옷을 만져서 더러워졌어도
자기 옷이 더러워졌으니 자기가 빨아야 하듯이, 스스로 지은 죄뿐 아니라 상대로 인해 지은 죄도 모두 회개하라.”고
주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러분들이 보았듯이 꿈에나, 기도 중에나, 환상 중에 직접 나타나셔서 “청소 안 되었다.”고 하시며
상징적으로 “네가 아직 회개가 안 되었다.”고 지적하시고 계시해 주시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빨리 회개하지 않으
면 자기 회개할 기회가 지나갑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을 때 회개해야 됩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읽고 복만 달라고 구하지 말고, 먼저
회개하도록 도와달라고 구하고 주님 앞에 죄를 고해야 됩니다. 죄가 없어야 마음이 감동되어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고 했습니다. 죄가 있는 상태에서 구하면 축복을 주어도 마귀가 주관하고 있어서 다 빼앗아 간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주님이 재림을 앞두고 회개할 기회와 은혜를 주시는 때입니다. 이 기회를 잃으면 1년, 2년, 3년 후에 돌아오
기도 하고, 아무리 회개를 하려고 해도 회개기도가 안 나오게 됩니다. 회개기도를 하려고 하는데도 회개가 안 나오
는 것은 거의 사탄이 막고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죄를 무섭게 여기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나에게 가까이 와 달라고만 하지 말고, 사랑한다고만 하지 말고, 더러운 죄를 깨끗이 회개하라.”고 주님은 말씀하
셨습니다.
어떤 죄를 놓고 기도하다가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고 해서 자기 죄가 다 회개된 것이 아닙니다. 그때 자기 죄를 하나
하나 고해야 회개된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죄가 있으니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을 행해야 자기모순이 고쳐지게 됩
니다. 전도하지 못한 죄, 화목하지 못한 죄, 관리하지 못한 죄, 이성의 죄 등 각종의 죄를 다 고해야 됩니다.
주님은 안나 수녀에게 「너희 죄를 신부들에게 가서 고하고, 스스로도 고하라. 그리하면 내가 용서해 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주교는 신부님들에게 가서 죄를 고하여 용서받고, 주님께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기 때문입니
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님이 세운 사명자 앞에 주의 이름으로 진실로 죄를 고하고 회개하면 주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게 됩니다.
오늘은 회개해야 주님의 재림을 맞게 되고 재림을 준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죄보따리를 한 짐 지고 다니면서는 재
림을 위해 준비할 수 없으니, 먼저 죄 짐을 벗도록 회개하여 죄가 없는 상태에서 재림 준비를 각종으로 하는 것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천사가 그것을 보고 기록하여 하나님께 고하게 됩니다. 회개하면 그 죄가 없어집니다. 이는 주
님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로 깨끗이 씻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하루 만에 너희 죄가 없어지리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죄가 없어지고, 죄를 힐문하던 마귀
도 없어집니다. 그리고 죄의 담이 무너져 주님과 하나 될 수 있고 주님을 느끼고 보게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어떤 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은 그를 살리기 위해 눈물까지 흘리시며 계속 기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갖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자는 주님을 십자가에서 내려놓는 자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쳐다보면 심정이 터질 것만 같다. 그를 위해 십자가를 져 주고 죽어 주었
는데 회개하지 않으니 사탄이 지옥으로 자꾸자꾸 날마다 끌고 간다. 그것을 쳐다보면 가슴이 타고 괴로워서 십자가
에 매달려 몸부림치듯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지옥은 실상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안 간다. 자기가 허락지 않으면 결코 안 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물으니, 주님은 “자기가 좋아서 이성 관계도 하고, 자기가 좋아서 도둑질도 하고, 자기가
좋아서 거짓말도 하는 것이다. 악한 행위도 실상 자기가 좋아서 행한 것이 아니냐. 좋아서 행한 것이고, 자기 마음
이 허락해서 육이 행하고 결국 영이 그 마음과 같이 지옥에 가지 않느냐. 이제 깨달았느냐.”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믿는 자들이나 안 믿는 자들이나 자기 마음이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 어기고, 그것을 마음이 허락하
여 행한 것을 회개하지 않아 지옥에 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옥은 남이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짓도, 악한 짓도 마귀가 꼬이고 주관함으로 자기 마음이 허락해서 스스로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여 그를 주관하고, 각종으로 가혹하게 해를 주고 괴롭힐 때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마귀는
사람을 통해 마음을 거스르게 하고 행동을 거스르게 하면서 들어오고, 각종 악평과 무지한 말과 악한 말을 하여 귀
를 거스르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 들어옵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마음의 문을 닫고 살면 그 주관을 받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그 사람을 주관하여 스스로 행하게도 하지만, 사람을 쓰고 역사하기도 합니다. 마귀에게 쓰여지는
자도 회개하지 않으면 역시 짐승의 인을 맞고 마귀와 함께 지옥으로 갑니다.
지금도 마귀는 섭리 안에서 불만하는 자들을 통해 역사하며 섭리역사에서 자기의 이론을 내세우면서 섭리 밖으로
꼬여 내고 있습니다. 속지 말기 바랍니다. 주님은 다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가인과 아벨 때부터 항상 선과 악을 쪼개어 섭리하셨습니다. 악한 자는 악한 자들끼리 모입니
다. 불만자들과 악평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 하나 되지 못하게 하시고 쪼개 내신다고 했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절대 순종하며 따라야 좁은 생명길을 가게 됩니다. 깨닫겠지요?
주님은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할 능력이 있으시고, 또 사랑하신답니다. 주님은 전지전능
하신 존재자이십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과 같이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주님이 사랑과
긍휼로 얼마든지 전능하게 행하시는 것을 막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삼위일체가 되는 주님이십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능력이 많아도 자기 죄는 자기가 회개해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니
다. “회개하지 않은 자를 천국에 데려가면 세상에서 했던 행위를 천국에서도 똑같이 하기에 못 데려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국가의 큰 행사 때, 거기 들어가는 사람들은 일일이 몸수색을 받습니다. 무기나 각종 흉기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
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흉기나 총기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먼저 몸수색을 하고 단 한 가지도 못 가지
고 들어가게 합니다. 그런 사람은 들어가는 것을 아예 금합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도 폭탄이나 각종 흉기를 가지
고 있으면 다 빼앗고, 그런 사람은 비행기 안으로 한 명도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는 자들도 이와 같습니다. 성격의 무기, 죄의 무기, 각종 악한 마음의 무기는 일절 못 가지고 갑니다. 다
회개하여 버리고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진리, 선하고 착한 마음, 온유하고 청결한 마음만 가지고 가게
합니다. 주님의 재림 전에 속히 회개하여 공적을 쌓아 가지고 가야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것은 공적이 아닙니다. 행한 것만 공적이라고 했습니다. 믿음도 행한 것만 공적으로
인정해 줍니다. 긍휼함도 남을 긍휼히 여겼을 때 공적이 되어 가지고 갑니다. 각종 물질도 하늘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주의 이름으로 쓴 것만 공적으로 인정되어 가지고 가게 됩니다.
하늘나라는 영만 갈 수 있습니다. 돈과 귀중품도 못 가지고 갑니다. 가지고 가는 방법이 있으니, 하늘을 위해 드리
고 형제를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쓴 자는 「너희를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 6:20)」는 말씀대로 자기 보
물이 하늘나라에 가 있어 하늘나라의 것으로 받게 하십니다.
돈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공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남을 위해 쓴 것만큼만 공적으로
인정해 줍니다. 가지고 있지만 말고 써야 됩니다. 때가 되면 음식이 썩어 버리듯이 아무 쓸모없게 됩니다.
오늘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축 도>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회개하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기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4월 1일 수요말씀>
회개하라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
본 문 마태복음 4장 17절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주님이 살아 계실 때 세상에서 가르치시고 설교하신 말씀들은 특히 신약성경 4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제자들이 주님이 하신 말씀과 자신들이 깨닫고 행한 일들을 신약성경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주님은 죄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쳐 주시며 왜 회개해야 되는지 말씀해 주시면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회개하면 결
과가 어떻게 되는지, 또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어떻게 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면 마음천국을 이루고, 죽어서
그 영이 하늘나라에 간다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지상에서 살 동안에 마음지옥, 삶의 지옥을 이루며 살다가
죽은 후에 영원한 지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고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메시아로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말씀을 들어 봐야 어떤 것이 죄인
지, 어떤 것이 의인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설교로 다 말할 수 없으니 축소시켜서 말씀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속에 사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율법을 폐하러 온 자로 오해하지 말라.”고 하시며 “율법을
더 온전케 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속하여 살았던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율법을 폐한다고
오해하며 예수님이 복음 전하시는 것을 막았습니다.
오해하는 것도 ‘죄’라고 했습니다. 오해하여 해를 주고 그릇되게 행하니 큰 죄입니다. 그러므로 오해하고 형제들을
대한 자들은 다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섭리도 지난날 기성으로부터 오해를 받아 왔고, 그들은 지금도 우리를
오해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모두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기성인들과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왔습니다. 그들은 확인하지도 않고 오해한 대로 우리를 잔인하게
대하고, 온갖 말을 퍼부으며 해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같이 마음 아픈 고통을 받았고 해를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서는 이를 거울삼아 확실히 알고 서로 오해하지 말아야 되는데, 기성인들이나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형제들을 오
해로 대하고 갖은 말을 하며 해를 주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동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너희 의가 저들보다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못 간다.」는 말씀을 지금도 하십니다. 고로 누구든지 모
르고 했든지, 알고 했든지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주님도 오해 때문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으셨기에 오해하고 행한
자들을 회개시키시는 것입니다.
오해하면 싸우고 죽이기까지 하며, 전쟁도 일어나게 했습니다. 오해는 무서운 괴물입니다. 오해는 마귀가 침투하는
데 있어서 큰 요인이 되어 마귀를 불러옵니다.
주님은 “나의 계명 중에 작은 것 하나라도 빼든지 버리고 가르치는 것도 죄다.” 하시며 “그동안 제대로 가르치지 못
한 성경의 근본을 이제부터는 더욱 섬세하게 가르쳐야 된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실 때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
씀하셨습니다. 그들보다는 더 나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외식과 형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남의 잘못만 끌어
내고 물고 늘어졌습니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리라』
율법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주님은 더 완전하게 「형제를 보고 분노하지 말라. 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보고 분노하고 욕하는 자는 모두 큰 죄를 지은 자니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
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도 형제들에게 행한 것들을 예사로 여기지 말고 회개해야 됩니다. 어느 누구든지 자기는 아
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죄입니다. ‘회개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서 회개해야 됩니다.
지금은 마태복음에 주님이 외치신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형제를 세상법으로 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령 형제가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정죄하지 말고 하나님과 주님께 고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왜 공의로 심판하지 못하는 세상의 악한 자들에게 고하냐.”고 했습니다. 주님은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왜 주님을 믿고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섬기며 그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주님께 고
하지 않고, 세상 사망권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 범한 죄를 고하냐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자기를 다스리시는 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탄이 다스리는 자로서 사탄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을 상징하는 세상에 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백성이라면 절대 주님께 고해야 됩니다. 자기 스스로 주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주님의 백성이 되
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주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주께 고하면 주님은 다 아시기에 공의로
세밀하게 처리해 주십니다. 주님은 세상 법정에 가지 말고, 서로 풀고 사과하고 내게 고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알았
으니 반드시 그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율법에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주님은 더 완전하게 「마음에도 음욕을 품지 말라.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것이니 회개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고, 어떻게 사람이 마음에도 음욕을 품지 않을 수 있냐고 합니다. 음욕을 품지 않으려
해도 여자를 보면 마음에 음욕만은 생긴다고 하면서, 차라리 여자가 없는 곳에 가서 살아야 되겠다고 합니다. 여자
가 없는 곳에 가서 살든지, 남자가 없는 곳에 가서 살아도 생각하면 또 마음에 음욕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남자만 창조하셨든지, 여자만 창조하셨으면 그 같은 죄를 안 짓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도 합니다.
죄를 지은 후에 ‘천국은 가겠지. 정말 지옥에는 가지 말아야지.’ 하면서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만일 사람들의 말처럼 남자나 여자만 창조되었다 하더라도 죄를 짓게 됩니다. 여자끼리 있어도, 남자끼리 있어도 동
성연애를 합니다. 하나님이 잘못 창조하셨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마음에도 음욕을 품지 않고 간음죄를 짓지
않을 것인지 노력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할 수 있으니 하라고 한 것입니다.
마음에 자꾸 이성을 생각하니까 음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같은 주관권을 벗어나 천국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
며 빛으로 나오면 어둠의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성령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했습니
다. 거듭나고 새롭게 변화되면 이성으로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잘못한 자를 원수로 여기고 미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자기에게 잘못한 자라도 원수로
여기지 않고 전혀 미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해 줍니다. 이는 마음이 거듭났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마
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이성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변화된 자는 다스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또 들어 보겠습니다.
「만일 네 눈이 너로 실족케 하여 죄를 짓게 하면 빼내어 버리라.」 하시며 「네 지체 중 하나가 죄를 지으면 그것
을 없애 버리고, 나머지 지체가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죄는 결국 지옥에 가는 데 쓰여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천적으로 보고, 자기 몸을 감은 뱀같이 보고
다루고 처리해야 됩니다. 언젠가 설교 때 「죄는 마치 방에 들어온 뱀 같으니 잡아 없애고 잠을 자야 되듯이, 그 날
죄는 그 날 꼭 회개하고 자야 된다.」고 했습니다.
죄는 마치 뱀과 같고 마귀와 같습니다. 사탄은 죄를 자기 권세로 삼고 우리를 각종으로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사탄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임을 이해하고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눈 때문에 지옥에 간다면 눈을 빼고 영원토록 고통 받는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다시
깨달아야 됩니다.
지옥의 고통을 아는 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당연하다고 하며, 눈뿐만 아니라 다리를 잘라 내고서라도 지옥만은 절
대 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고 할 것입니다. 주님이 지옥에 사명자를 데리고 가서 지옥에 가 있는 자들에게 욕을 먹어
가면서까지 지옥에 대한 글을 쓰게 하여 모든 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도 ‘그러하니 제발 지옥에 가지 마라.’함입니다.
모두 그 책을 읽어 보아서 알지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생도 지옥의 고통을 받았기에 그 가혹함을 보다 실감나
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주님처럼 지옥의 고통에 대해 잘 아는 분은 없습니다. 주님은 다 아시고 이같이 말씀하셨
습니다.
주님은 한 달란트를 맡겼는데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오히려 주인을 오해한 자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왜 주인을 오해했느냐. 내가 너 같은 줄 알았느냐. 너는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하시며,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다른 자에게 주셨습니다.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말은 주인의 종으로 살다가 집 밖으로 쫓겨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겪으며 살고, 겨울철이 되면 추워서 이를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깥 어두운 곳은 지옥을 말합니다.
지옥을 훤히 보시면서 지옥에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야 충격을 받고 행
하게 됩니다.
주인이 한 달란트를 주었으나 한 달란트도 남기지 못한 자는 주님을 오해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열심히 이행하지
않은 자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라고, 주님은 죄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실 때 다시 깊이 말
씀하셨습니다. 또 형제를 오해하고 정죄하는 것도 큰 죄니, 선선히 말하고 기회를 줄 때 어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선생에 대해서도 제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맡아서 열심히 하는
자들은 그와 반대로 천국에 가고,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해야 됩니다.
주님은 “재림 전에 마지막 기회를 주었을 때 꼭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오른쪽 눈이 죄를 지으면 그 눈을 빼내 버리고 지옥에 가지 마라.’는 말은 첫째, “차라리 그같이
함이 낫다.” 함입니다. 둘째, ‘죄를 짓는 근성과 마음과 버릇을 죄지은 눈을 빼듯이 네게서 빼내 버려라. 네 몸에서
눈이 빠진 만큼 해가 되어도 근성을 빼내라.’는 말씀도 된다고 했습니다.
셋째, “눈을 빼겠느냐, 회개하겠느냐. 어느 것을 하고 천국에 가겠느냐.”고 주님은 물었습니다. 회개하기 싫은 자는
그렇다면 눈을 빼내겠습니까? 회개해야지요. 눈 빼지 않고 회개하고 천국 가야지요. 이같이 회개가 좋습니다.
주님은 “죄 짓는 습관과 근성을 고쳐야 되고, 마음과 행동에서 그것을 빼내야 된다. 형제를 미워하고, 욕하고, 게으
르고, 시기 질투하고, 악평하고, 남만 헐뜯고, 얼굴에 인상을 쓰고, 나를 성의 없이 대하고, 감사하지 않고, 찬양하지
않고, 무관심하고,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사랑으로 타락하고, 형제를 참소하는 것들이 죄로서 습관이 되
었고 근성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자세히 말씀해 주시니 그 얼마나 좋은지 모두 알고 있습니까? 깨달아야 됩니다.
주님은 “내가 말할 때, 지금 너희들이 내 말을 들을 때가 기회니 어서 회개하여라. 나는 너희들이 회개할 때까지 수
시로 가서 본다.”고 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주님은 가까이해 주시고, 만나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나를 떠나서 자기가 좋아해서 행한 일들로 인하여 결국 지옥에 가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가지 말라고 내가 대신 죽어 주었기에, 지옥에 가는 자들이 있으면 마치 내가 지옥에 가는 것만큼이나 괴로
움을 겪는다. 고로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주님이 우리들을 지옥에 보낸다고 생각하며 무지로 오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
기가 허락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좋아서 하나님의 법을 떠난 행위를 하고, 주님
이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자기 마음이 허락하여 자기 육신이 즐겨 행한다고 하시며 ‘지옥은 그 행위로 인하여 가는
것’이라고 주님은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안나의 저서에서도 주님은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깊이 읽어 보면 이에 대한 말씀이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
다. 주님이 우리를 지옥에 보내신다면 왜 만민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언젠가 설교 때 「하나님과 나는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기 직전까지 ‘혹시 마지막에 하나님과 나를 찾으려나? 부
르려나?’ 하며 그 사람을 쳐다본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해 준 적이 있지요? 하나님도 주님도 그처럼 우리들을 사
랑하십니다. 고로 아무리 자기가 좋아도 하나님과 주님의 뜻이 아니고 그 뜻에 벗어난 것이라면 자기 마음이 허락하
게 두지 말고 행하지도 말아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지옥에 가지 않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과 예수님이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지옥에 가기 원하신다면, 왜 재림을 앞에 두고 애간장을 태우시
면서 그 시간을 연장해 주셨겠습니까? 죄를 진정 회개해 보아야 회개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사탄이 주는 고통을 받게 되고, 주님과 점점 멀어지게 되므로 회개를 빨리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어 선생은 죄에 대하여 잠언으로도 많이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천국 가기를 원하면서도 지옥에 갈
짓을 하여 지옥에 간다. 지옥은 자기 행위로 간다.」고 했습니다. 읽어 보았지요?
잠언은 거의 주님이 말씀하시어 쉽게 이해하고 빨리 깨닫도록 토를 달아 쓴 말씀입니다. 잘못 인식하고 보면 선생의
잠언 같습니다. 성경도 기록한 자들이 깨닫고 쓴 말도 있지만, 하나님과 주님의 계시입니다. 바로 인식해야 바로 읽
고 깨닫게 됩니다. 자기에게 말하는 계시로 보고 읽어야 됩니다.
주님은 “내 말은 성경 책뿐 아니라 어디에 써 있든지 성경이니 귀히 보고 내 말같이 읽고 대하라.” 하셨습니다.
또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것도 죄라고 했습니다. 또 오른쪽 뺨을 치면 왼쪽 뺨도 대 주고, 거듭 화나게 해도 참고 좋게
대해 주고, 구하는 자에게 주고, 5리를 동행하고자 원하면 거절 말고 10리를 동행해 주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
지도 사랑해 주고, 핍박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잘해 주는 자에게만 잘해 주지 말라고 하시며 “그러면 무슨 새로운 상이 있겠느냐.” 했습니다.
한번은 누가 나에게 내가 가진 것을 달라고 하기에 “너 주면 나도 없는데...” 하며 주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주
고 싶기도 했지만, 그는 나에게 1원어치도 해 준 것이 없으니 주기 싫었습니다. 얼굴까지 험하게 생긴 자였는데 나
에게 마구 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행한 대로 갚아 주라고도 했고, 또 네게 꾸고자 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라고
도 했는데...’ 생각하다가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로 인하여 10배나 손해를 보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내가 잘못한 것이냐고 물으니, 주님은 “왜 내 말
을 지키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네게 속옷을 원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때가 어느 때냐. 재림
을 마지막으로 연장해 주면서, 성경말씀대로 원 없이 행해야 될 때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에게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 혼자라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말씀한 대
로 해 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보다 더 어려운 계명인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킨 자가 그까짓 것을 못
주고 고통을 받느냐. 쳐다보니 안타깝다. 주면 그도 이익이고, 너도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줘야 한다. 또 달라고 할
때 줬으면 내 말을 지킨 자가 되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주님께 책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작은 것도 안 지켰을 때 받는 고통이 너무 컸는데, 큰 것을 안 지킨 자들이 받을 고통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
빨리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절실히 배우고 깨닫고 전해 주니 말씀을 듣고 속히 실천해야 됩니다.
“네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면 네가 안 주겠느냐.” 하고 주님이 내게 물으시기에 “만일 나를 따라오는 제자들
중에서 어느 누가 그것을 원했으면 누구라도 줬을 것입니다.”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네가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지
말고, 사랑하지 않는 자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성경에 ‘행한 대로 갚아 준다’는 말씀만 생각하고 사람을 대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다 듣고 보고 그때그때 맞
게 대해야 됩니다.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무조건 주는 마음을 가져야 되고, 모든 사람을 주님같이 보고 사랑하는
자는 거듭난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를 깨닫고 그 후로는 계속 말씀대로 행하니 주님은 기뻐하시며 그를 통해 나
타나셨습니다.
“어느 때는 사람을 통해 네게 무엇을 구하기도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나는 “그를 통해 나에게 그것을 구한 것
입니까?” 물었더니, 주님은 이번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요? 여러분들도 다 가지고 있는 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새벽에 제때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달라고 했을 때 주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은혜를 베풀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의 끝 날을 살아가니 후회 없이 할 것을 다 하고 살아야 한다. 못 한 것 다 하라고 재림의 시간을 연장
해 주었으니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아는 자는 많이 행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천 년 동안 후회하고, 어떤 자는
영원히 후회하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도와주고, 신앙의 잠을 깨워 주고, 선생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와주기 바랍니다. 내게 해 주었다고 말하고, 주님
께도 말해요. 주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고 잘 대해 주시는지 모두 알기 바랍니다.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특히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의 행위라고 했습니
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섭리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면 소문을 내면서 하니 무엇을 시키지를 못합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비밀을 지키는 자
에게 사명을 주고 예수님도 선생도 가까이합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한 것같이 하나님도 나도 용서하니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너를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시며, 그러기 위해서는 감사생활을 하고, 성경에 주님이 칭찬하신
과부처럼 엽전 한 닢도 하늘 앞에 정성스럽게 드리라고 했습니다. 열의 하나라도 꼭 드리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주님이 하라는 것을 하고, 창고가 차고 넘치게 받아 풍부하게 살라고 했습니
다.
우리는 그동안 돈 없는 학생들이 선교한다고 헌금을 거의 강조하지 않고, 헌금으로 빵 사 먹고 밥 사 먹으며 열심히
뛰라고 했습니다. 실상은 성경말씀대로 하지 않은 격이 되었습니다. 30년 동안이나 그같이 해 왔습니다. 농부가 씨
를 뿌리지 않으니 거둘 것이 없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성경의 과부처럼 감사할 일이 있을 때는 없으면 없
는 대로 드려야 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니 정한 것은 꼭 하면서, 이제부터는 제대로 해야 되겠습니다.
꼭 해야 될 것은 없는 대로라도 꼭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고 - (막 12:42-44)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
라』
선생도 돈이 없어서 10대와 20대에 십일조를 못 했는데 더 힘들게 되어 섭리를 뛰면서 10의 1조뿐 아니라 10의 2
조, 10의 3조, 10의 4조, 10의 5조, 10의 6조, 10의 7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얻게
하셨고 풍부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에서도 주님은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말라기서에는 십일조를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여 먹는 자라고 했습니다.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
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참고 말 3:8-12)
결국 헌금은 헌금을 한 자들을 위해 쓰입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제대로 하면, 여름철에 비 맞지 않고 각종 행사
를 할 수 있도록 그 헌금을 가지고 월명동에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모자라면 주님이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
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같이 안 해서 교회가 전세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섭리역사에 사람은 많은데 건물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힘을 모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나님도, 주님도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다른 교파들은 건물은 있는데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나은 섭리를 펴 왔습니다.
120만 번 기도하면서 월명동에서 행사할 때 비 안 맞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십일조를 하고 헌금
에 신경 쓰라고 하시면서, 그러면 속히 해 준다고 하셨습니다. 또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구하지 않음으로
얻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주님은 안타까워하십니다.
주님은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며 “형제들의 눈의 티를 지적하는 자는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자니 회개
하라. 그러다가 내가 보낸 자도 지적하고, 나까지도 지적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온갖 고생을 해도 이 시대 좁은 문으로 가라. 그 문은 생명길로 가는 문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라가
는 길이 좁은 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의 행위를 보고 알라고 하시며, 그 속을 보면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했습니다. 형제끼리도 거짓되게 행하는 자들은 속과 겉이 다른 자로서 겉은 양, 속은 이리라고 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자란,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맺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자
는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고 하시며, 그렇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와 같아서 비가 오
고 홍수가 나면 쓰러진다고 했습니다.
1978년 삼선교에서 섭리역사를 시작하면서 주님은 꿈에 엄청난 바위를 불도저로 싹싹 밀어내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
다. 바위들은 마치 목수가 대패로 나무를 깎는 것처럼 깎였습니다.
꿈에 주님은 “내가 반석이 아니냐. 나를 중심하여 복음을 펴 나가면 교회가 점점 부흥되어, 비바람이 치고 홍수가
나듯이 갖은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교회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하시면서 “초대 교회도 그같이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산에서 가르쳐 준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교회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메시아로 분명히 알았으니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고, 또 네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성경구절이 생각났습니다.(마 16:13-19)
그 꿈을 꾼 후부터 한 명씩 전도하여 말씀을 가르쳐 주면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교회
가 없어지지 않고 반석 위에 지은 집같이 세계로 뻗어 가, 비바람 치는 핍박과 홍수 같은 환난이 있었어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섭리역사는 30년 동안 민족적으로 갖은 환난과 핍박을 가혹하게 받으면서 왔지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리
스도 예수라는 반석 위에 역사를 펴 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를 제대로 가르쳐 주시어 모두 내 말을 듣고, 주님
을 메시아로 믿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기는 하나, 핵심 지도자부터 예수님과 일체되지 않고 예수님을 잘 부르지도 않습
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그 보낸 그리스도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요한일서2;22-23) 라고 했습니
다.
주님이 보낸 자의 말을 믿고 순종하면서 주님을 제일주의로 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보
낸 모세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선지자를 보냈으면 그 말을 듣는 것
이 하나님과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보낸 모세의 말을 듣지 않으니 결국 하나님은 내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이라고 하시며,
원망하는 자들은 사탄을 상징하는 뱀에 물려 죽게 하시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감을 금하셨습니다.
선생도 때에 따라 제자에게 하고픈 말을 전해 주어 심부름을 시키고 사명을 줍니다. 그러나 선생이 보내어 왔다고
해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자는 내 말을 듣지 않은 자입니다. 그의 말을 듣지 않기에 선생이 후에 또 말
했는데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지옥에 간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간청했습니다. “아브라함이여, 나의 식구들이 지옥에 오겠으니 천국에 있는 자들 중
에서 누군가를 내 식구들에게 보내어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하나님을 믿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모세나 선지자들의 말을 전도자를 통해 전해 주고 있다고 하면서, 전도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천국에 있는 자
들이 가서 말해도 안 믿을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 보낸 자로 인하여 운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는 책임이 큽니다. 선생도 사람들의
사정을 봐주고 입장을 봐주다가 할 말을 못 하게 되었을 때 주님은 “내 말을 전해 주지 못하면 내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네 입을 통해 대신 말하니 담대히 외쳐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섭리역사에 세운 계획이 있으니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안 하면 네가 회개해도 안 된다. 회개는 각 개인
들의 죄에 해당되는 것으로, 각자 자기의 죄를 자기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섭리역사에 계획한 모든 일을 못 하게
되니 엄청난 손해다.” 말씀하셨습니다.
1980년대에 한국의 기독교는 주님이 곧 재림하신다며 긴박하게 외쳤습니다. 그 위력 있는 말을 나만 외치지 않으니
힘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30년 동안 외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재림의 사명자들과 함께 말씀하니
능력이 나가고 힘이 있습니다.
선생도 2000년부터는 긴장했습니다. 1999년에 해외에 나가면서 주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
다 정말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이 일어나면서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명자마다 각각의 사명을 합니다.
그 이루어진 일들은 감히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 일을 다 아는 사람은 섭리 사람들 중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본 사람은 부분적으로 압니다. 본 자가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일부는 이미 설교로 나갔습니다.
선생이 보내지 않은 자는 심부름의 사명을 할 수 없습니다. 모르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에게 어
떤 말을 전해 주라는 말을 받지 않은 자가 어떻게 무엇을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주님도 “보지 않고, 보냄을 받지
않는 자가 어떻게 말하리요.” 하시면서 “하나님이 나를 보냈으니 내가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보냄을 받지 않은 자
는 한 번에 드러날 것입니다. 보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즉시 알게 됩니다.
선생도 주님의 심부름을 하지 않고 나만을 위해 살면 얼마나 시간도 많고, 나름대로 좋은 일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물론 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보람 되고 좋지요. 하지만 사람의 심부름이 아니니 얼마나 두렵고, 어
렵고, 뼈가 마르고, 애간장이 타는 일인지 모릅니다. 너무 책임이 커서 어느 때는 깊은 탄식이 나오고, 예수님의 심
정이 마음에 와 닿으면 숨도 안 쉬어집니다.
해 본 자만이 압니다. 선생의 심부름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좀 심하게 많이 하는 사람은 밤잠 못 자고, 코피 흘리고,
못 먹고, 아프고,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얼마나 힘든 일이 많은지 압니까? 물론 보람도, 공적도, 사명도 큰 사람
이지요.
하물며 주님의 심부름을 제대로 하려면, 세상의 일들과 다른 것들은 1분도 하기 힘듭니다. ‘죽기 전까지 주님이 주
신 사명을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언젠가 말했던 것이 기억날 것입니다.
요즘 섭리 안에서는 마치 자기가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주님도, 선생도 시키지 않은 일을 휘젓고 돌아다니면서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섭리역사로 착각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 섭리역사를 자기의 섭리역사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으니, 곧 마귀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섭리역사가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마귀의 주관을 받으니 주님과도 나와도
의논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말이 통하는 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선생이 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해 줘도 그
러니, 내가 없을 때는 오죽했겠습니까? 선생이 보낸 자까지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며 온 섭리사를 휘젓고 다녔습니
다.
주님은 욥기서 40장 10~14절 말씀을 내게 주시면서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고, 영광과 영화를 입고,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면 낮추라. 교만한 자를 낮아지게 하고, 악인은 그 처소에서 짓밟아 그들과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두어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
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내 생명이 달려 있는데 말씀의 활과 폭탄을 안 쏘겠습니까? 주님께 인정받으려면 그 말씀대로 해야 되지요.
인정받아야 주님과 가까이하여 시대 말씀을 받아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섭리 안에서 돈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보시고 모두 자기가 쓰려고 걷는 것으로 인
정하고 대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광고가 나갔습니다.
경고로 주님의 심정을 말해 주겠습니다. 그런 자들은 바로 회개하지 않으면 정말 물질로 친다고 하셨습니다. 섭리역
사에 손을 대니 주님이 얼마나 분노하시겠습니까? 빨리 회개하고, 서로 모여서 음모하는 일을 그쳐야 됩니다. 주님
앞에 잘한다고 하는 일 같아도 교만한 일들이고, 악에 속한 것으로 회개해야 될 일입니다. 선선하게 선히 말할 때
들어요.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고, 교만한 것은 마귀의 것입니다.
지금 이때가 어느 때입니까? 그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을 형식으로 아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시고
“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지 않고 형제들을 고발하는 데 신경 쓰는 자들이다. 내 말을 업신여기는 자들이다. 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그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곧 스스로 깨닫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죄에 대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이같이 죄에 대하여, 회개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주시니 깊이 깨닫
기 바랍니다. 또 하룻저녁 설교로는 주님의 말씀을 다 전할 수 없으니, 신약성경 4복음서를 읽어 보면서 주님이 말
씀하신 뜻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잘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죄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벨론 앗수르
를 향해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니 선지자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시고 「내가
보낸 자를 가두었으니 내가 더욱 보복한다.」고 하시면서 용서치 않으시니, 결국 대국이 무너지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대군들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예수님도 죄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시며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지옥으로 가지 말고 천국으로 오라.’ 함입니다.
주님은 “인생들 모두가 천국 가기를 원하지만 실상 지옥에 가는 자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훨씬 많다. 하나님이
재림의 때를 연장하신 것은 마지막으로 계시를 주어 그 말을 듣고 변화되고 돌이키라 함이다.” 하셨습니다.
금년도 대 주제는 ‘말씀을 듣고 새롭게 변화되어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계시하시는 말씀을 생명시하면서 듣고
즉시 행할 때입니다. 듣고 즉시 행하지 않으면 안 될 때입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의 저자 토마스 주남에게도,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의 저자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에게도, 안나
수녀에게도 주님은 「나의 재림을 마지막으로 연장했다.」고 같은 시기에 동일한 말씀을 했으니 모두 책을 보고 자
세히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 권의 책을 보니, 주님의 재림을 사람들이 준비하지 못하여 안타까워서 재림을 연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
장된 시간이 시작되었으니 그래도 연장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았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숨 쉴
시간은 있다고 상식적으로, 지혜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책들을 보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쓴 것입니다.
80~90년대부터 연장 시간에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안나 수녀나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에게 「내가 만민을 위해 십자가를 져 주었는데 지옥으로 가는 자들이 많
아서 재림의 때를 연장했다.」고 말씀하셨고, 주남 선지나나 기타 사명자들에게도 재림의 때를 연장했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주님은 숨넘어가는 소리로 그 연장 시간마저 다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깨닫고 주님께 말씀
드리니 “네가 바로 보았다. 바로 그것이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재림의 때를 연장하시고 책을 세상에 내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재림의 때를 연장한 주님의 목적은 「긴박함
을 겨우 계시해 주려 함이다.」라고 세 권의 저서에 한 절 나옵니다. 고로 주님은 책을 통해서도 계시해 주셨고, 사
명자들을 통해서도 계시해 주셨습니다. 섭리사에도 많은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1990년대는 섭리사가 한참 클 때였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너무도 많아서 힘들 때였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상상하지
못하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럴 때마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러면 어떤 핍박도 이긴다.”고 하시며 “세
상이 아무리 핍박하여도 내가 너와 함께하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핍박받는 자가 복 있다. 가다 보면 보람을 느끼고,
왜 이같이 핍박을 받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사탄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모르는 자들을 통해 역사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주님이 재림을 연장해
주신 기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림의 때를 연장하신 지 오래되었으니 주님은 미국의 사명자들에게 「연장된 시간의 끝이 곧 다가오고 있다.」고
한 것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리고 재림의 때를 연장하지 않으셨더라면 섭리역사도 시작하지 않으셨을 것임을 깨닫
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또 선생을 통해 외치시기를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온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경에 주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을 보아도 타국에 간 주인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고 했습니다. 선생도 해외로 선교를 갔다가 생각보다 일찍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성경대로 보면 기독교도, 우리 섭리사도 2000년쯤이면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오신다고 했
으니, 주님이 오시는 때가 90년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 주남과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와 안나 수녀의 책을
보면 출판한 시기가 90년대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연장하셨기 때문에 이제 재림을 더 연장할 수도 없고, 연장한 그
마지막 시간마저도 곧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비유로 다시 말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축구 경기를 보러 갔는데 양쪽 팀이 피 튀기는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옆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전후
반이 끝나고 연장전 경기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두 친구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하고 궁금해했습니다.
친구 A : “밖에 나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게.”
친구 B : “연장전은 짧아.”
친구 A : “연장전도 30분이나 돼.”
친구 B : “연장전도 어느 정도 끝나 가는 것 같으니 가지 마. 친구야~ 저 건너편을 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꾸 가잖아.”
친구 A : “화장실 가는 거겠지.”
친구 B : “야~ 화장실을 저렇게 한꺼번에 많이 가냐? 경기 곧 끝나 간다.”
친구 A : “아니야. 먹을 것 사 올게.”
친구 B : “가지 말아라. 너 축구 경기 한두 번 봤어?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거의 끝나 가는 거야.”
이 친구(B)는 지혜로웠습니다.
주님은 재림을 앞두고 “지금이 이 같은 때니 너희도 징조를 보고 깨달아라.” 하셨습니다.
연장 시간도 연장한 시간이 오래되었으면 불과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야 됩니다. 깨달았습니까? 이 비유를 깨달
아요.
영계를 보면, 사탄들은 자기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눈이 벌게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시간 없다고 뛰어다니며 저 사람에게 가서 꼬입니다. 예수님을 믿
다가 죽은 자들의 영들도 알고 당황하여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 중에서도 빛에 속한 영들은 이 시
대를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역사적으로 누구보다도 더 배웠는데도 모르냐.”고 했습니다. 섭리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재림의 때를 연장해 주신 목적은 오직 ‘계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계시가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으니 때가 다 된 것이 확실합니다. 주님의 마지막 계시를 듣고 몰랐던 자들은 빨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시대의 말씀을 어떻게 전하는 자’를 제일 좋아하십니다. 어떻게 전하는 자를 제일 좋아하시는지 기도하여
깨닫기 바랍니다.
주님이 연장하신 시간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니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이 연장하시면 그 시간은 1년이나 5년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도, 지혜로도 모두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적어도 10
년 이상 연장되었든지, 20년 가까이 연장되었다고 봅니다. 주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세계로 알리기까지는 시간이 걸
립니다. 외칠 시간과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역사로 볼 때 그러합니다.
실상 주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을지라도 2000년쯤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온전히 믿은 자들은 적어도 90년대부터는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소경보다 눈 뜬 자들이 보고 더 애간장을 태우듯이, 사명자들만 눈을 뜨고 더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1990년대에도, 2000년에도 별 기다림도 없었고 준비하는 모습도 안 보였습니다.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으나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시는 주님이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그 심정을 모르는
자들은 준비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구원하신 자가 오신다고 하는데도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잠자고 있으니 이것도
죄입니다. 또 그릇 알고 그릇 준비하고 있었으니 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외치는 말씀들을 하나의 설교로만 듣지 말고, 섭리역사 후 최고의 생명의 말씀과 계시로 들어야 됩니다. 말씀
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주님이 그 사람에게는 말씀을 끊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끊느냐고 물으니 말씀하지 않으셨
습니다. 고로 기도하면서 깨닫고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는 자들은 말씀을 해도 믿어
지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방식으로 행하십니다.
주님은 모두 깨닫게 해 주시려고 계시하여 한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 지역을 보여 주시기에 그쪽으로 길을 따
라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좀 떨어진 곳에서 자세히 보니 진흙 수렁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큰 둑에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쳐다보는 곳을 보니 큰 호수가 있
는데 물이 다 빠져서 고기들이 이리저리 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호수로 들어가 그 고기들을 잡다가 그 늪에 빠
져 묻히는 것이었습니다.
고기는 물질을 말하고, 혹은 사람을 말합니다. 물질 때문에 늪에 빠지고, 사람의 꼬임 때문에 늪에 빠지는 것을 보
여 준 것입니다. 나를 따르는 자들도 거기 있었는데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다가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
니다. 그 순간 바닥까지 보였는데, 바닥은 끝없이 깊었습니다.
나와 같이 둑에 서 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물에 빠지면 다시 한 번 솟을 때 꺼내면 된다고 하며 모여서
구경을 했습니다. 내 눈에는 그 깊은 속까지 투명체로 보이는데 솟지는 않고 30~50m 깊숙이 계속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늪을 쳐다보니 끝이 없이 넓고 깊은 늪이었습니다.
장면이 사라지고 기도하면서 주님께 이 계시에 대해 물었습니다. 늪과 수렁은 무엇을 계시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
다. 주님은 핵심만 한마디 해 주셨습니다. “네가 읽은 책을 다시 읽어 보아라. 네가 본 계시에 대해 내가 한 말이
거기 나온다.”
몇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찾아보니 「세상은 오물과 수렁이 가득한 늪」이라고 나와 있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엄격
한 정의의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다.’고 보여 주신 계시였습
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그 죄의 늪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니 괴롭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만 나의 말씀이 아니다. 내가 한 말은 모두 성경이다. 그러니 내가 말한 것은 성경을 보
듯이 반복해서 보아라. 죽음과 삶을 경고해 놓은 말들을 그저 스쳐보고 마는구나. 얼마나 영원토록 후회를 하려고
하느냐.” 하셨습니다. 또 “늪과 수렁과 같은 죄의 세계에서 나오려면 회개해야 된다. 회개하는 자만이 거기서 나오
게 된다. 자기가 지은 죄가 자기에게 늪이 되고 수렁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자꾸 죄의 늪과 수렁에 빠져 들어간다’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누가 구하러 들어가도 그도 금세 빠
져 버리니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나로 지옥을 체험하게 하시고 주님의 심정을 이 시대에 대변하게 하셨습니다. 가혹한 지옥의 고통을 이를 갈
면서 겪고, 정말 어느 누구도 지옥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나로 결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설교한 말씀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 어떤 죄를 지은 자라도, 자기에게 어떤 잘못을 한 자라도 지옥만큼은 절대 보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되기 때문이다.」 하고 설교한 말씀이 생각날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괴롭힌 자가 있다면 1년, 10년, 20년, 30년밖에 더 괴롭혔겠습니까? 지옥은 슬픔으로 이를 갈면서
불꽃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내게 잘못한 자는 내가 지옥을 안 보내도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지옥
에 가게 됩니다.
주님은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그 말만 믿고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납니다. 나는
지옥에 가 보기 전까지 ‘하나님은 그 누구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읽고, 하나님이 해 주
시니 웬만하면 모든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을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온 세상 사람들 어느 누구라도 지옥에 가기를 원하지 않죠? 그렇다고 사람들이 지옥에 안 갑니까? 이
말은 『하나님도 예수님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나, 본인으로 인하여 지옥에 가는 것이니 깨달으라.』고 한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최근에 가장 많이 들은 말씀입니다.
선생도 여러분들이 잘되기를 원하여 늘 축복을 빌어 줍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행한 자만 축복받고 삽니다. 축복은 물질 축복만 생각하지 말아요. 신앙의 축복도 생각하고 깨달아야 받은 것을 알
게 됩니다.
특히 이 시대는 신앙의 축복을 받고 살 때입니다. 신앙의 축복을 받았기에 그 환난 가운데서도 이기고 신앙생활을
해 온 것입니다. 핍박과 환난이 별로 없는, 기성에 두고 온 여러분들의 형제들이 지금도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보세
요. 빈자리, 쓸쓸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주님도, 선생도 진실로 원하고 바라면서 기도해 줘도 누구든지 자신이 행하지 않으면 복을 빌어 준 보람이 없고 다
헛수고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만민을 위해 십자가를 이미 져 주셨기에 진정 주님을 믿고 그 말씀 따라 행하기만
하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지만, 진정 믿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허사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져 준 것이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
니다.
섭리역사는 인간의 책임에 대해 가르쳐 주어서 그래도 자기 책임을 많이 행하면서 삽니다. 다른 기성인들보다 훨씬
더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기에 신앙들이 살아 있습니다. 인간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누구나
다 구원해 주신다면 지옥에 가는 자들이 그같이 많겠습니까? 자기가 자기 할 일을 하지 못하니 지옥에 가는 자가
많은 것입니다.
주님은 지옥에 떨어지는 자들을 보고 괴로워하시며 쳐다보고 계십니다. 그러니 깊고 깊은 말씀이 그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도 지옥에 가는 것을 정말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가 행할 것을 행하지 못하
여 지옥에 갑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겠습니까? ‘주님이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
로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으로 가는 것을 선생이 원하겠습니까? 자기가 가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은 자기가 해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해 주는 일을 하십니다. 주님은 공의롭
게 도우십니다. 그 도움을 받고자 해야 됩니다. 주님이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의를 행하면, 주님은 그를
인정해 주시고 천국에 오게 해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 세상은 육신의 세상입니다. 육신이 있는 자가 해야 됩니다. 주님이 육신이라면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과 같이 많
은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영이시니 사람같이 말이 안 통합니다. 주님을 보기 얼마나 힘듭니까? 영이시니 수만 명
의 사람이 있어도 몇 명만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육신이면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과 대화하시며 그 모
습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았고, 그 말씀을 들었고, 주님께 묻
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그 같은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사랑하는 자들과 말이 안 통하니 얼마나 답답하시냐고 하며 주님의 육이 되
어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속 시원하게 대신 외치겠다고 하면서 30년 동안 섭리역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주님을
대신하여 말씀도 해 주고, 도와주고, 책망할 자는 책망하고, 사랑하는 자는 주님 대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 주며
사랑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개미랑 말하려면 개미가 되어야 하듯이, 세상 사람과 말하려니 주님은 세상 사람인 선생을 쓰고 말씀해 오신 것입니
다. 그러니 주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을 선생을 통해 전해 오셨습니다. 주님이 어떤 사람과 말하고 싶어도 말이 안
통하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이를 알고 선생은 주님의 모습이 보이고 그 소리가 들리니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 준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선지자들이나 중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습니다. 아버지의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알 자가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이 시대도 주님의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예수님에 대해 모릅니다.
이제 모두들 주님을 직접 만나서 통하려니 정말 어렵지요? 겪어 봐야 압니다. 깨진 바가지도 있다가 없으면 아쉬운
데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지금은 주님이 보이지 않으셔도 주님이 말씀해 주시니 천만다행입니다. 주님과 하나 되어
야 될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주님이 말씀까지 해 주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갈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너
희를 버려도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하신 대로 해 주고 계십니다.
말씀을 받는 자들이나 선지자들은 제2의 주인공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보낸 자로서 제2의 하나님과 같은 자였
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할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은 다 그같이 사명을 했습
니다. 고로 하나님과 주님이 보낸 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으로 보시고 심판하
셨습니다.
선생이 제자들 중에 어떤 사람을 보내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내 대신 일을 하게 했으면 그가 제2의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제1의 선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만 제2의 선생인 것입니다.
선생도 주님이 사명을 주셔서 30년 동안 주님의 몸이 되어 그같이 일했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기신 사명의 일을 한 것입니다. 선생은 제1의 주님이 될 수 없습니다. 이를 확실히 가르쳐 왔는데
제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도 세상 사람들과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으시니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
고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과 일체되어 행하셨습니다.
선생이 사람을 보내어 내 말을 전달하여 어떤 일을 급하게 하라고 했는데, 선생의 소식을 기다리는 자들이 믿지 않
으면 답답해서 “내가 하는 일이 선생님이 하는 일입니다. 내가 제2의 선생입니다. 육체만 다르지 말의 내용은 똑같
고, 다만 내가 전하니 목소리만 다른 것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선지자들이나 사명자들은 하나님의 대신자들이며 주님의 대신자, 대변자들입니다. 주님은 “선지자나 나의 계시를 받
는 자가 아니면 내 사정을 전할 길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선생이 해 온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행한 제자들의 잘
못이라는 것입니다. 제2의 선생으로서 일했던 자가 선생이 왔으니 내 수종을 들어 주고 내가 앞장서서 일하듯이, 주
님의 재림의 때가 되었으니 선생도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수종을 들어야 되고 주님의 재림을 맞도록 준비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깨닫겠어요?
선생이 보낸 자를 선생이라고 하면 안 되듯이, 주님의 시중을 드는 나를 보고 주님과 같이 보면 안 된다고 하는 말
입니다. 그동안 이것을 말해 온 것입니다. 깨닫겠습니까? 이를 분명히 알고 행하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
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바보들은 거듭 말해 줘도 모릅니다.
또 다른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주님은 꼭 눈에 보이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나에게 주님이 어떻게 오셨는지에 대해 말해 주라고 하셨습니
다. 핵심만 말해 주겠습니다.
한번은 너무 일찍 일어나서 다시 잠을 잤습니다.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났더니 2시였습니다. 목의 위치를 잘못 놓고
잤더니 목이 너무 아팠습니다. 목을 주무르고 목운동을 해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너무 아파서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목이 뻣뻣하여 움직여지지 않아서 심하게 목을 주무르면서, 사탄이 기도를 방해한다며 “인류의 천적 사탄아!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니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사탄아! 천적아! 너는 내 기도까지 방해할래? 너는 나 못 이긴다.
이 판국에 내가 결심하면 다 부서진다. 너, 나 알잖아. 북경에서 네놈들과 싸워서 내가 이겼지. 지금 나는 더 무서운
사람이 되었다. 영적 무술을 한없이 닦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보고 사탄이 왔느냐고 물으니, 안 왔다고
했습니다.
‘아! 어제 운동을 안 했더니 몸에서 표가 나는구나. 오늘은 꼭 운동해야지. 바빠서 운동 못 했더니 이렇게 표가 나는
구나.’ 하면서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 순간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40년 전에 베트남 전쟁에서
적들이 부비트랩으로 설치한 방망이 수류탄을 내 손에 쥐었을 때 주님은 1초 안에 안 버리면 죽는다는 것을 아시고
몽둥이로 내 목을 쳐, 손에 쥐고 있던 방망이 수류탄이 멀리 날아가 죽음을 피한 것이 머리에 ‘찡’ 하고 생각났습니
다.
‘그때 주님이 내 목을 치셨지?’ 주님이 생각나서 ‘주님 오셨구나.’ 하며 즉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순간 목이 뻣뻣하고 등이 뻣뻣하던 것이 사라졌습니다. 깨닫지 못하니 예전에 주님이 도우셨던 것을 생각나게 하시
며, 또 주님을 생각하라고 예전처럼 주님이 목을 쥐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같이 역사하십니다. 고로 지난날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역사하셨으며 어떻게 도우셨는지 말씀했
지요? 이날도 깊이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느끼고 깨닫고 전해 줘야 된다. 저들에게
는 깊은 것들을 말할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얼굴을 보기 어려우니 영인체 사진을 주었는데 이런 때 귀히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하시며 “일반 사진
이 아니다. 사진으로 담은 내 몸이다. 그냥 사진으로만 보면 별 유익이 없을 것이다. 나는 사진 속에도 들어 있고,
정결한 마음속에도 들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안나 수녀가 사진으로 찍은 주님의 모습을 보니 그 얼굴에 온 인류가 흘릴 눈물이 꽉 차
있고, 하도 많이 우셔서 얼굴이 부어 있고, 사진을 찍으려고 한 순간 그 눈물을 참은 모습이 다 보인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것도 모르고 주님을 한 번도 위로하지 않고 달라고 하기만 하니 정말 한심스럽
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섭리 30년 동안 주님의 육신이 되어 행하다 보니 모두 내 심정 모르고 자기 짐만 내 등에 얹어 놓고
내 짐 보따리를 가져가는 자는 드물다고 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말이 통하니 “주님이여~ 이야기나 해요.” 했습니다.
그리고 내 방은 좁지만 내가 윗목에 몸을 붙일 테니 쉬었다 가시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피곤
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깨 보니 또 새벽이었습니다.
한참 기도하는 중에 한 여자의 얼굴이 선연히 떠올랐습니다. 그 얼굴이 주님의 모습으로 뒤바뀌었습니다. 우셔서 얼
굴이 부은, 안나 수녀가 찍은 사진의 그 얼굴 그대로 보였습니다. 내가 주님의 사진을 보고 말한 것을 주님은 들으
시고 심정에 닿고 위로가 되었다고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그 심정을 알아주니 내 말을 들어주시고 이야
기하시다가 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주님이 나에게 가장 엄하게 하신 말씀이 “나를 사랑하면 제발 나와 상의하고, 내가 허락하거든 하라.”였
습니다. 주님과 상의하지 않고 행하면 주님을 위해 했어도 너무 심정이 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논하지 않은 것
이 너무도 큰 죄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주님이 계시해 주신 것을 모두에게 말해 주라고 하시어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의논하지 않으면 해가
갑니다. 의논하지 않고 행하여 해를 받은 일은 성경 역사를 볼 때 너무 많았습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와 의
논하지 않고 행하여 결국 왕권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날 “일찍 일어나 피곤해도 나와 의논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날은 새벽 1시 전에 일어났기에 다시 잤
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1시가 주님이 나에게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24시간 도적같이 오십니다. 만전을 기하
고 주님을 맞고 말씀을 행해야 될 때입니다.
육계의 일들은 육계로 보면 죄인지, 실수인지 잘 모릅니다. 영계로 보아야 얼마나 잘못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은 죄에 대하여 말씀하며, 주님은 상징적으로 나타나시니 직접 못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
은 학교 담임선생님, 혹은 교회 목사님, 혹은 교회 교사님, 혹은 군대에서 자기를 지휘했던 지휘관, 혹은 주님의 사
진 등 각종의 것으로 나타나십니다. 깨달아야 됩니다.
한번은 붉은 포도주 한 병이 내 앞에 보였습니다. 그 포도주는 깨끗했고, 병은 봉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대체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옆을 보니 성찬 때 쓰는 작은 잔들이 보였습니다. “아직도 깨달음이
없느냐.” 하시기에 계속 보니, 주님의 성찬이 생각났습니다.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보이시면서 “올 가을부터 섭리사도 나의 거룩한 성찬식을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성찬을 하나의 예식처럼만 여기고 행한다. 너희는 네가 나를 대하듯이 행하고, 마치 내 몸을 대하듯이 정성스럽게
성찬식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스럽고 정성스럽게 할 것을 기대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아~ 예술제도 하나님과 주님 보시라고 장대비를 맞으면서까지 했듯이 그렇게 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30년 동안 해 온 것이 있으니 우리는 하기만 하면 확실하게 할 것입니다. 섭리 사람들은 대체로 선생의
기질을 따라 한번 하면 잘합니다.
지금부터 모두 알고 살라고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성찬식은 ‘주님의 몸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으며 그 피는 우리
의 죄를 위해 흘리신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그 신성을 깨닫고 주님을 거룩하게 대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부활절을 맞기 전에는 신약성경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부활에 대한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고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금년부터 새롭게 변하라고, 주님은 부활절에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
다.
요한복음 5장 24절 이하의 말씀을 잘 읽어 보세요. 육신을 쓰고 살아 있는 우리가 주님을 맞는 부활을 하였으니,
이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부활주일은 4월 둘째 주일입니다.
모두 안녕히 가세요.
<2009년 4월 5일 주일말씀>
(주인이여 1년만 참으소서)
마지막으로 연기했다
본 문 누가복음 13장 6~9절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음으로 마음에 새겨 담아 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자기가 기대한 것이 안되었을 때같이 실망이 큰 때도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사람이 사람을 실망시켰다면, 실망시킨 사람은 실망한 자의 그 심정과 마음을 모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
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나, 과일나무들에게나, 땅에나, 건물에나, 논밭에나, 어떤 물질에 기대를 하고 희
망을 둘 때는 아무런 수고와 노력 없이 정성을 들이지 않고서 기대하거나 희망을 갖지 않는다. 수고하고 노력하고
투자한 만큼 더 기대하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바라는 것이 안되었을 때는 땅을 팔아 없애 버리고, 집이나 물건도 다 팔아 없애고 다른 것을 하게 됩니다. 과일나
무로부터 과일을 기대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면 다 베어 내고 그 땅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
럼 기대했던 것인데 실망시키면 버릴 것입니다. 기대가 어긋나고 희망이 깨졌는데도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지옥이고, 기쁨은 사라지고,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만 아프고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속 시원하게 처
리하고 말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기대대로 안 되고 실망시킨 것들은 다 버리고 정리해 버렸을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 시대 사람들에게도 이같이 말씀하셨
습니다. “이 시대가 나의 재림을 곧 눈앞에 놓고 이와 같다.”
본문에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어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열매 맺을 때가 되어 나무에서 열매
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열지 않아 실망하여 포도원지기에게 말하기를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정말 실망했노라. 땅만 버리니 찍어 없애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포도원지기가 대답하기를 “주인이여, 금년에도 찍지 말고 그대로 두소서. 내가 땅을 파고 거름도 주면서 노력
하겠나이다. 이후에 열매가 열면 좋으시려니와 만일 열매가 열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주시면서 “이 시대가 그러하다.”고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심은 나무의 주인은 하나님
이시고, 포도원지기는 주님이십니다. 땅으로 축소시켜 더 가까이 보면 무화과나무를 심은 나무의 주인은 주님이시
고, 포도원지기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때가 되어 주인이 열매를 얻으려 왔는데 3년이나 열매를 얻지 못하여 심히 실망하고, 땅만 버리니 모두 찍어 없애
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사명자인 포도원지기는 “주인이여, 내가 땅을 깊이 파고 거름을 하겠나이다. 열매가 열면
좋지 않겠나이까. 만일 그래도 열매가 열지 않으면 더 이상 할 방법이 없으니 찍으소서.”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 당시 이 본문의 말씀을 하실 때 무화과나무를 심은 주인을 하나님으로 보시고, 무화과나무들은 그 시대
모든 자들과 특히 구시대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사람들이 맺어야 할 신
앙의 열매를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복음을 전했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아
홉 가지 성령의 열매인 사랑·희락·화평·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의 열매를 비롯하여 감사의 열매, 하나님
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의 열매,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열매, 회개의 열매, 주를 맞기
위해 예비하고 갖추는 열매, 믿음과 행실의 열매, 기도의 열매, 말씀을 보는 열매, 전도의 열매, 심령이 변화되고 거
듭나는 열매, 가르치는 열매, 설교하는 열매, 용서의 열매, 봉사의 열매, 각종 사명의 열매들을 맺어야 되는데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찍어 없애려고 하시는데 예수님은 “한 해만 더 그냥 두소서. 땅을 파고 거름을 하리니 열매가 열
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찍으소서.” 하시며, 그때의 현실을 두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르게 보면, 예수님이 3년이나 복음을 전하고 수고하셨는데도 사람들이 신앙의 열매를 맺지 않아 심판하고 찍
어 없애려고 할 때 사명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주인이여, 그냥 두소서. 우리가 다시 깊이 파고 거름
하여 보겠나이다. 말씀을 전해 보겠나이다. 열매가 열면 좋으려니와 그래도 열지 않으면 그때는 찍으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같은 뜻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시대도 이와 같으니 나의 심각한 말씀을 들어 보아라.”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정한 기간 동안 열
매가 열지 않은 것처럼 이 시대 전체가 주님의 재림을 눈앞에 두고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대 사명자들이나 선지자들로 말씀하시기를 「때가 되어 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나의
재림에 깨어 있지 않고 알지 못함으로 준비하지 아니하여 재림을 연기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 재림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이 원하시고 내가 원하는 만큼 준비되지 않았다. 나의 재림을 맞기 위해 깨끗이 한
자들이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린다 뉴커크를 통해서 주님이 하신 말씀 중에 26번째 항목을 보면 「세상에 깨끗한 자가 별로 없다.」고 하셨습니
다. 27번째 항목을 보면 「내가 너희를 위해 오리라는 경고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연장한 시간이 다 되었
으니 이를 알고 속히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때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나무를 찍는다고 하신 것처
럼, 그때까지 준비되지 못한 자는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무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아버지여, 그대로 두소서. 한 해만 참으소서. 내가 깊이 파고 거름하겠나이
다. 열매가 열면 좋으려니와 그래도 열지 않으면 찍어 없애소서.” 하였으니 연기한 기간입니다. 한 해만 참아 달라
고 했습니다. 한 해는 짧은 기간입니다. 하지만 열매를 열 수 있는 한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열매를 열 나무라면
충분히 열 수 있는 기간입니다. 시간이 짧아서 열매를 열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재림하셔야 될 주인공이신 주님이 땅에 다니시면서 연기해 놓은 기간에 자기를 맞을 신부들의 잠을 깨우
고 신앙을 붙잡아 주시면서 지구촌을 한마을같이 다니시면서 계시해 주시고 관리하시고 도우십니다. 마치 포도원지
기가 땅을 두루 파고 무화과나무에 거름을 하듯이 한다는 것입니다.
‘거름한다’는 말씀은 ‘계시한다’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거름으로 보는 것입니다. 고로 주님은 선지자 토마
스 주남,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 린다 뉴커크, 안나 수녀 등 사명자들에게 계시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섭리역사는
나로 계시의 말씀들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마음의 땅을 깊이 파고 계시의 말씀을 주었는데도 열매를 열지 않으면, 그때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
로 그 나무를 찍어 낸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3장 9절에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
라』 했습니다. 도끼는 말씀이요, 나무는 사람이요, 열매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열매로서 앞
에서 말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비롯하여 각자에게 사명을 맡겨 주신 대로의 수십 가지 열매들을 말합니다.
주님이 안나 수녀에게 시대를 계시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세상을 보시고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기
도하여라. 세상 죄를 네가 지은 것같이 대신 회개하여라. 하나님의 분노의 손을 내가 잡고 있다. 때를 연기해 놓고
빨리하라고 외치고 있다. 내 심정이 타들어 간다. 이미 수세기 전부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감옥에
서 갖은 고통을 받고 있는 나다. 나 좀 위로해 달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주님께 맡기고, 깨어 준비하고, 할 일을 다 하고, 절대 주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
는 자는 주님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모시고 위해 주면서 기쁨으로 살아 주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사명자들이 외친 말씀이나 그동안 섭리역사에서 외친 말씀을 보아도 모두 동일합니다. 주님이 이 사명자들의 책을
동시에 다 읽어 보라 하셔서 한눈에 보며 몇 번을 읽었는데, 주님은 동일하게 90년도 전후에 말씀하시고 계시하셨
습니다. 80년대 말, 혹은 90년대, 혹은 2000년대였습니다. 섭리사도 80년대, 90년대에 외쳤고, 2000년대에 또 외치
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님이 하신 말씀과 사명자들로 쓴 책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보니, 90년대를 전후로 하여 말씀하시고 계시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볼 때 80년대 말부터 연장 기간에 들어간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보면, 주님이 재
림의 때를 연장하신 지 20년이 넘은 것입니다.
이 기간은 열매를 여는 기간으로 ‘주님이 다시 파고 거름하시는 기간’이며 ‘재림을 위해 계시해 주시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기한 기간이 이같이 오래되었기에 주님은 ‘그나마 연기한 시간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확실히
알라.’고 더욱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모두 깨달아야 됩니다.
주님은 사명자들을 통해 오시는 해와 그 날짜만 말씀하지 않으셨지, 실상 준비하는 자들에게는 할 말을 거의 다 해
주셨습니다. 그해와 날짜는 알려고 할 필요도 없고, 알아도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알면 오히려 더 당황하게 되고,
준비하는 데 태만하거나 지장이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몇 시인지 시계를 안 보아도 해(태양)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거리의 택시나 차들을 보고 사람들의 움직임만
보아도 알 수 있고, 자기 느낌으로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계절인지 달력을 안 보아도 환경 보면 알 수 있고,
논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축구장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할 때 시작한 시간을 보면 언제쯤 끝날 것인지 알 수 있고, 시작한 시간 몰라도 경기장
에서 선수들이 뛰는 것을 보고 알 수 있고, 건너편의 사람들이 일어나 자리를 뜨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주
님이 승천하신 때로부터 얼마나 지났고, 재림하실 때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축구장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일어나
자리를 뜨는 때와 같다고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연기한 그 시간마저도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얼마나 조금 연기했기에 벌써 그
시각이 다가오느냐고 할 것입니다. 사명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연기한 시간은 이미 20년이나 지나간 것
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책에 써 있으니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학교에서 산수와 수학을 배우지 않았습니
까? 따져 보면 압니다.
섭리사는 재림에 대한 말씀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었다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신앙의 잠을 잔 자는 얼마 안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주님 맞자고 외쳐 왔고, 마지막 재림에 앞서 하늘을 맞는 신앙을 나를 통해 해 왔습니
다. 그리고 1년 전부터 극적으로 외쳐 왔습니다.
어느 교회 못지않게 주님이 말씀하시어 계속해서 재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가면 1
년이 가도 이런 말씀은 한 번도 들어 볼 수 없습니다. 감사하고 기뻐해야지요. 그동안 주님을 생활 가운데서도 잘
모시고 살면서, 신랑같이 모시라고 가르쳐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섭리사는 재림에 대한 말씀을 하기 전부터 나와 같이 주님을 늘 모시고 섬기며 새 노래도 불러 드리고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 말고 하나님과 주님만 보시도록 영광 돌리라고 했습니다. 고로 20년 동안
하나님과 주님께 영광 돌리는 예술 축제를 해 왔습니다.
재림에 대하여 근래에 들은 말씀으로 생소하게 생각하면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재림’에 대한 단어만 표현
하지 않았지, 주님이 재림하셨다고 생각하면서 생활 가운데 주님을 맞는 역사를 펴 왔습니다.
주님은 “지난날 역사를 생각하라. 다시 할 수도 없는 섭리역사요, 하나님의 역사다.”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자는 주
님 보시기에 떳떳하게 살았고, 어떤 자는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게 제대로 못 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하라.」고 마
지막 주님의 계시의 말씀을 또 주는 것입니다.
90년대를 전후로 재림의 때를 연장하셨으니, 실상은 오랜 시간을 연장해 주신 것입니다. 20년이 넘게 연장해 주었
으면 준비하고, 잘못된 버릇을 고치고, 공적을 세우며 할 일을 다 하지 않겠습니까? 섭리역사는 자연성전을 짓는 데
10년이 걸렸고, 선교는 20년밖에 못한 셈입니다. 그래도 이같이 많이 했습니다.
선지자 토마스 주남의 책은 한국에서 2003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책은 엮는 기간과 번역하는 기간이 있고, 세상에
전해져 읽히기까지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기간만 해도 7년쯤 걸린 것입니다. 그 전에 계획하고 계시를
위해 준비해야 하니, 재림의 때는 그 전부터 연기된 것입니다.
앞서 주님이 다른 사명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을 때도 「사람들이 알지 못함으로 재림을 준비하지 않고 있으니, 네게
말하여 이 책이 세계에 전해져 모두 알고 마지막으로 모두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부활에 관한 것을 잘 알려면 성경에 부활에 대해 기록한 구절을 다 읽어 봐야 된다. 요한복음 5
장에 나오는 부활에 대한 말씀도 삶의 부활, 행실의 부활, 정신의 부활, 사건적인 부활이 있고, 육이 죽은 나사로와
같은 부활이 있고, 나와 같은 부활이 있으니 자세히 모두 읽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선지자나 사명자들을 통해 마지막으로 재림에 대해 계시하신 말씀도 모두에게 전하신 말씀을 다 읽어 봐
야 주님이 말씀하신 근본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읽을 때는 세밀하게 적어 가면서 읽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
의 말씀을 정성 없이 읽거나 듣거나 전하는 것도 예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죄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주님이며 하나
님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속에 주님이 담겼다고 했습니다.
한 사명자에게 모든 말씀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지요? 이미 우리에게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나지요? ‘감 이야기
할 때는 감 이야기만 하고, 사과 이야기 할 때는 사과 이야기만 해야 듣는 자의 마음에 깊이 깨달아지고 혼돈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에게는 지옥에 관한 것을 계시하셨고, 토마스 주남 선지자에게는 천국에 관한 것과
재림에 관한 것을 계시하셨고, 린다에게는 재림을 맞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라는 것과 연기한 시간이 다 되어 간다고
계시하셨고, 안나 수녀에게는 주님의 심정을 말씀해 주시며 주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과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해
세계적으로 계시해 주시며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섭리사에게는 그동안 주님께서 계속 말씀해 오셨고,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을 신랑 삼아 모셔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나 사명자들로 말씀하신 것들을 다시 다 모아 묶어서 말씀을 전해 주셨고, 지난 1년 동안 책이 10권
이상 나오도록 구체적으로 긴 설교를 연속 전해 주셨고,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고, 온 세계 섭리인들은 ‘말씀을 듣고 새롭게 생각하고 변화하자’는 금년도 표
어대로 빨리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정말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 돌려야 됩니다. 선생이 이같이 이곳에 있으니 더욱 애타는 심정으로 깊은
경지에서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고, 모든 섭리인들도 여기서 나온 말씀을 다른 때보다 더욱 눈물겹게 듣고 귀히 여
기기 때문입니다. 옥 소리가 소쩍새 소리 같기 때문입니다.(옥(獄)에서 외치는 소리가 소쩍새 소리처럼 구슬프다는
말임.)
섭리에서도, 기성 교회에서도 어떤 설교자는 주일날 성도들이 깊은 설교를 기대하니까 금식도 하고 산에 가서 철야
하면서 깊은 심정을 받아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말씀을 뼈저리게 깊이 전하는 자는 옥에 갇혀서 주님의 말
씀을 외친 사도 바울처럼 악한 시대와 믿는 자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시대를 보며 고통을 받을 때 너무 억울하고 심
정이 타니, 주님의 심정과 일체되어 주님이 시대를 보고 하시는 말씀을 느끼고 알고 외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는 등 여러 고통을 겪으면서 도망 다니고 숨어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후 11:23-31)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
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
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그로 인하여 결국 옥에서 주님께서 하시고픈 시대의 깊은 말씀을 받아 전했습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를 펴 오면
서 수백억의 사람들이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고 찾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로부터 살인적인 고통을 받으시면서 고통 속에 깊은 사연을 전하시고 현실과 앞날에 대해 다 말씀
해 주셨습니다. 신약전서 4복음서에 주님의 말씀과 행한 일과 심정이 나와 있습니다.
다윗도 사울 왕과 그의 군대들로부터 쫓겨 다니면서 시편의 묵시를 썼습니다. 선생도 이 시대 나름대로 그러합니다.
주님은 우리 섭리사에도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재림을 앞에 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준비
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열매를 열지 못하는 무화과나무같이 보시면서 땅만 차지하니 찍어 없애자고 하셨습니다. 이
로 인해 주님은 “한 해만 그대로 두소서. 깊이 파고 거름하여 열매가 열면 좋으려니와 열지 않으면 찍으소서.” 했습
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금년도에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아야 된다.’는 표어를 주시고, 마음이라는 땅을 깊이 파서 거름과
같은 계시의 말씀을 주일과 수요일에 주고 계십니다. 앞으로 1년 동안 계속 이같이 할 것입니다. 정말로 열매를 열
어야 합니다. 선생은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는 땅을 파서 거름을 넣어 주듯이, 주님이 주시는 그대로 모든 자들의 마
음 깊이 말씀을 넣어 줄 테니 여러분들은 진실로 새겨듣고 마음속에 담아야 됩니다.
월명동 야심작에 새겨 놓은 글이 있습니다. 이제 모두 그곳에 무슨 글이 쓰여 있는지 마음속에 외우고 있지요?(교역
자들은 말해 주세요.)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약수 샘 옆 큰 바위에 어떤 글이 새겨져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입
니다. 모두 마음에 새겼습니까? 또 월명동 잔디밭 옆에는 ‘자연성전’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몸은
자연성전의 축소판입니다.
이제 1년 동안 부지런히 거름을 줄 테니 부지런히 받아서 빨아들이고 힘을 내어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각종으
로 열매를 열어야 됩니다. 섭리사 여러분들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이야기를 들어 봐요.
월명동 ‘자연성전’이라고 쓰여진 돌 옆에 분재 소나무를 좌측으로 끼고 15m쯤 자연성전 안길을 따라가다가 좌측을
보면 두 감나무가 있습니다. 생각나지요? 거기 그늘에 앉아서 쉬고, 말씀 듣고, 놀던 자들은 생각 안 나요?
두 감나무 중에 한 감나무는 그 땅을 사기 전부터 열매를 열지 않았습니다. 이웃집 감나무였지만 선생은 지나가다가
어떻게 감나무가 감나무를 열지 않느냐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래도 그 주인은 아깝다고 베지 않았습니다. 그 땅을
우리가 사게 되었고, 월명동을 개발한 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그 감나무는 감을 열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 가을이 되었습니다. 다른 감나무들은 감을 주렁주렁 열었고, 제자들은 그 감나무들을 보고 좋아하며 감을
따 먹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감을 열지 못하는 그 나무는 앙상한 가지에 가랑잎만 날리며 서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저 나무는 누가 감을 다 따 갔네요.” 하기에 나는“저 놈의 감나무! 우리가 이 땅을 사기 전부터 감을 안 연다. 수
컷 감나무인가?” 했습니다. 제자들은 “열매를 안 열고 땅만 차지하니 베어 없애지요. 가을에 열매를 열 때가 되었는
데도 열매가 없으니 너무 보기 싫네요.” 했습니다.
이에 선생은 그 감나무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감나무야. 너 계속 열매를 안 열 것이냐? 땅 주인 바뀌었다. 내 말
들어. 만일 내년에도 열매 안 열면 내가 톱으로 벤다. 들었냐?” 하고 사람을 꾸짖듯이 꾸짖었습니다. 그때 함께 있
던 제자들은 선생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몇 명 못 들었습니다. 선생이 감나무를 쳐다보니, 그 감나무는 마치 사
람이 어떤 말을 알아듣고 두려워하며 몸을 떠는 모습으로 느껴지고 보였습니다.
옆의 제자들을 보고 “내가 할 일이 많아서 일하다 보면 저 감나무가 열매를 여는지 안 여는지 가을이 와도 잊고 그
냥 지나칠지 모르니, 너희가 내년 가을이 되면 저 감나무가 열매를 여는지 확인하고 내게 꼭 말해 주어라.” 했습니
다. “너는 감나무 보고자다.”하고 제자들에게 말하니, 제자들은 “예.” 하며 “저 감나무, 이제 정말 열매 안 열면 죽
는다.” 했습니다.
성경말씀에도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앙의 좋은 열매를 열지 못하면 기대에 어긋나고 실망해서 주님이 찍어 버린
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듬해 여름에 보니 그 감나무는 옆의 감나무처럼 감을 열기 시작했고, 그해 가을에는 풍성
히 열었습니다. 그때 같이 있었던 제자들과 함께 다시 확인하고 모두 기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까지 섭리 책
에도 나오고 조은소리에도 나왔을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생전에 말씀하셨듯이 내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30년 동안 주님은 그같이 선생의 육신을 손발
로 쓰며 일해 오셨습니다. 선생은 알지요. 이와 같이 분명히 주님이 외쳐 주신 이 시대 계시의 말씀을 듣고 신앙의
좋은 열매를 주렁주렁 열 줄 믿습니다. 그러니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행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한 해만 참으소서. 축소시킨 섭리역사의 포도원지기인 제가 깊이 파고서 거름하겠습니다. 열매를 열면 기쁘
고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열매를 열지 않으면, 우리 섭리역사 때문에 온 세계의 시간을 또 연기할 수 없으니 그
때는 찍든지 베든지 하세요.” 하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말씀의 거름을 충분히 해 주어도 열매를 열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을 주어도 열매를 못 여는 인생 나무입니다. 선생
이 쓰러지지 않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데 시중을 들면서 열심히 말씀을 받아서 주도록 선생을 위해서 기도 좀 해 주
고 신경 써 줘요. 그래야 쓰러지지 않고 거름하듯이 충분히 말씀을 주어 열매를 열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주님, 한 해만 참으소서.” 했더니, 주님은 “그래. 예전에 기대 걸었으나 열매 맺지 못하여 다시 맺겠다고 희
망한 것까지 다 걸고, 나도 한 해 동안 도울 테니 같이 해 보자.”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갖 말씀을 다 주고 계
십니다. 할렐루야~!
또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외국에서 선교하다가 법정 일로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입니다. 어머님을 뵙고 월명동 운동장 입구에 있는 큰 느티
나무 밑으로 지나가는데 그 나무를 관리하던 제자가 보고하기를, “이 나무는 링거 600병 맞았는데도 살 가능성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이에 나는 “안쓰럽다. 느티나무야, 살아나라. 주님! 정말 정성을 들였는데 우리 힘으로는 못
살리겠습니다. 링거를 600병이나 맞았대요. 분재라도 하게 기념으로 살려 주세요.”하며 그 나무를 만지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기도할 때 살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치 아픈 제자가 기도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 후로 생기가 나면
서 살아났습니다. “내가 언제 링거 600병이나 맞았지?” 하면서 쳐다보는 자들을 향해 “나 좀 봐요.”라고 말하는 듯
이 싱싱하게 크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역사한 것을 알고 봐야 은혜를 받습니다. 그 옆에 왜 큰 소나무를 심었는지 알아요? 느티나무가
시들어서 죽을 것 같아서 소나무를 예비로 심게 했습니다. 그런데 정성 들여 기도하여 죽는다고 판정 났던 느티나무
도 살리고, 기도하여 소나무도 살렸습니다.
그날 소나무도 두 그루를 심었는데 한 소나무는 죽었습니다. 그 소나무는 안타깝게 내게 보고도 안 되었고, 어디에
심었는지도 몰랐기에 기도를 해 주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원하는 장소에 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
하여 산 느티나무와 소나무같이 될 것을 믿습니다.
느티나무의 교육과 기적을 배우고 믿어야 됩니다. 느티나무를 기도해 주기 전에 그나마 시들시들 살아서 가냘프게
생명이 남아 있는 큰 가지들을 아깝지만 다 잘라 냈습니다. 뿌리는 거의 다 죽어서 수분을 적게 빨아들이는데, 가지
가 많으면 비례가 안 맞아서 그나마 시들거리며 살아 있지도 못하기에 다 잘라 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세상으로 가는 모든 가지를 다 자르고 왔습니다. 아깝지만 그동안 그같이 해 왔기에 시들거리는 신앙이
라도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고로 지금의 주님께서 전해 주시는 시대의 말씀을 듣고 살 수 있게 된 자들이 많습
니다.
월명동은 하나님의 성전이라 수백 가지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는 자들에게 그 표적을 말해 주면서 구경시켜 줘야
지 거룩한 땅만 밟고 다니지 않습니다. 자연성전은 관광지가 아닙니다. 성전은 말씀을 전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믿든지 안 믿든지 말씀을 전해 줘야 됩니다. 1년에 수만 명이 찾아오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부끄러워 말고 전해요.
우리 집 보고 싶어서 아쉬워 구경 온 자들에게 왜 할 말을 못 합니까? 내가 가면 난절하게 합니다.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자연성전을 만드셨습니다. 증거해야 능력이 나갑니다. 운동
선수들은 응원해 줘야 더욱 힘차게 뛰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찾아야 더 가까이 오셔서 역사해 주십니다.
‘한 해만 참겠다.’는 것은 ‘어떤 기간을 연기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해당됩니다. 연기한 때가 오래되어서
그나마 연기한 시간도 다 되어 갑니다. ‘곧 간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 암송하면서 주의 일을 해
야 됩니다. 이처럼 긴장되고 급박하게 말씀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생각과 삶이 금방 태만해집니다.
주님께 세상 모두를 위해 기도할 때 순간 딴 생각하여 죄송하다고 회개하니, 주님은 즉시 “딴생각하는 자는 정신이
죽어서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섭리 사람들도 딴생각하는 자들은 정신이 죽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딴생각하는 자
들은 피하지 말고 들어요.
새벽기도 중에 주님이 해 주신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논밭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좌우되듯이, 이 세상에서 천국
에 갈 자들과 지옥에 갈 자들이 결정된다. 형식으로 나를 믿는 자들은 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한다. 고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나와 함께 그 시대 살면서도 몰랐다.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내가 와서 외쳤어도, 시대를 모
르고 미워하고 막고 시기 질투를 해 댔다.”고 하셨습니다.
자꾸 세상과 이성으로 치우쳐 살며 속 썩이는 자들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면서 정말 속상하다고 했더니, 주님은 “내
가 십자가를 져 주고, 대신 죽어 주고, 지금껏 사람을 통해 관리도 해 주었기에 그동안 해 준 것이 아까워서 그 영
혼을 구원시키려고 애를 태우는 것이다. 실상 내가 버리면 고기 한 점과 같은 인생들이 아니냐. 그들은 마치 사막의
모래 한 알 같은, 보잘것없는 인생들이다. 제발 이 같은 긴급한 시대에 고기 한 점과 같은 몸을 가지고 내 앞에 주
권 좀 부리지 말아라. 아무리 비싼 몸이라도 내가 버리면 사막의 모래 한 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를 사랑하고 좇는 자로서 주님이 버리지 않으시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냐고 물으니, 주님은 “지구만 한 돌덩이
로 보고 대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영원히 천국에 가서 살게 해 주고, 예비한 황금 보석 집을 주어 살게 해 준다고 그같이도 말했는데 말씀을
귀히 듣지 않고 이성으로 흐르고 세상으로 가니 열매를 열지 못하는 나무로 찍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나는 “주
여! 한 해만 그냥 두소서. 마음을 깊이 파고 말씀의 거름을 하겠나이다. 열매를 열면 좋고, 열지 않으면 저도 미련
없으니 찍으소서.” 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이 찾고 좋아해 주실 때 목에 힘주지 말고, 성의 없이 대하지 말고, 세상 사람
따라가지 말고, 세상을 제일주의로 하지 말고, 무릎 꿇고 감사하며 감격함으로 주께 나와야 됩니다. 주님은 한 번
지옥에 가면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을 아시고, 용서해 주시고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독자나 자기 자녀를 전쟁터에 보내 놓고 걱정하는 부모보다 재림을 앞두고 원수 천적인 사탄들에게 꾀여 그
들을 따라갈까 봐 수십만 배 갖은 염려와 걱정을 하신다며, 이를 꼭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희망은 일순간
활활 타고 끝나는 모닥불 같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세계는 희망과 기쁨이 영원히 솟아나는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아
픈 사람이 죽은 후에 약 사러 가고 병원 가듯이 하지 말고, 모두 죽기 전에 구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재림의 때를 연장한 것은 계시해 주기 위함이다. 한 해만 참아 보겠다. 열매를 열지 않은 과일나무에 거름
을 주듯이, 신앙의 열매가 없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계시를 주는 기간이다. 말씀을 주는 기간이다. 그
말씀도 계속 주지 못하니 줄 때 잘 듣고 그때마다 준비하고 행하여라. 설교도 앞에 한 번 하고 지나간 것은 반복하
지 않듯이, 확대시켜 볼 때 앞으로 1년 동안, 그리고 주님의 재림 전까지 어떤 말씀은 거듭 두 번씩 말해 주지 못할
것도 있으니 잘 듣고 마음에 새겨 담아 가라.」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물을 주지 않으면 씻어야 되는 것을 깨달았어도 못 씻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님이 아니기에 그때그때 말씀을 받아
깨닫고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고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말씀이 충만하
기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4월 8일 수요말씀>
(주인이여 1년만 참으소서)
마지막으로 연기했다
본 문 누가복음 13장 6~9절
열왕기하 2장 19-22절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걷지 않고 뜁니다. 반면에 희망이 없는 자는 주저앉든지 걸어갑니다. 이때에 이 말씀을 듣는 우
리 모두는 희망이 있기에 뛰어야 됩니다.
나무가 열매를 열지 않기에 주인이 도끼로 찍어 없애려다가 과수원지기가 “한 해만 더 참으소서. 내가 거름을 하여
열매를 열면 좋으려니와 만일 그때도 열매를 열지 않으면 찍으소서.” 하니, 주인은 “그래. 네 말대로 한 해만 더 참
겠다. 연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한 해만 더 참아 주시고 기대하며 다시 기회를 주셨으니, 우리는 감사하며 이제는 앉아 있거나 걸
어서는 안 됩니다. 뛰어야 됩니다. 노루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포수가 오는 것을 보고 나무꾼이 깨워 주니 일어나
뛰어가듯이, 지금은 우리가 노루처럼 뛰어야 될 때입니다.
말씀의 도끼로 찍힘을 받고 끝났을 것인데 청지기로 인하여 다시 한 해 동안 기회를 얻고 살게 되었으니 우리는 희
망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말 걸어서는 안 됩니다. 뛰어야만 됩니다. 희망이 있으니 뛰어야 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시간을 연기해 주시어 다시 기회를 얻었습니다. 자신들의 성격을 정말 완전히 고치고 완전한 사
람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주께서 선생을 통해 늘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작품으로 멋있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과일나무가 3년이나 열매를 열지 않아서 찍어 없애려 하였지만 다시 기회를 얻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도끼로
찍힘을 받았으면 끝났을 것입니다. 죽음을 피한 것입니다. 죽을 사람이 산 것같이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목숨입니다. 그 어떤 것을 얻은 것보다 귀한 것을 얻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희망 속에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딱 한 번의 기회입니다. 열매를 열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선생도 책임이 없습니다. 30년 동안 2
만 번 설교해 왔습니다. 이제는 더 할 수 있는 힘도 없고, 과거 역사를 반복할 수도 없습니다. 극한 환경 속에서 마
지막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기회입니다.
과수원지기는 과수원 농사를 지어 알기에, 주인은 거름을 하면 열매를 열 수 있다고 하는 그의 말을 인정하고 믿고
허락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재림에 깨어 있지 못하여 준비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은 마치 주인이 열매 없는 나무
를 찍어 버리듯이 이 세상을 심판하려 하셨지만, 예수님이 “한 번만 참으소서. 마지막으로 온 세상에 이 위급함을
계시할 시간만 주옵소서.” 하며, 나무에 거름하듯이 세상 사람들에게 시대의 위급한 상황을 계시해 주면 열매를 맺
을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하나님께 한 번만 재림을 연기해 주시고 참으시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를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 앞에 포도원지기와 같은 저도 주님께 “주님이여, 한 해만 참으로서. 깊이 파고 거름하여 열매를 열면 좋지
않겠나이까. 그래도 열매를 열지 않는 나무는 베시옵소서.” 하고 간청했습니다.
선생은 지난 10년 동안 외국에서 선교하면서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사탄들이
활동하여 행악자들로 인해 가혹한 핍박을 받는 환난 기간이었기에 제대로 말씀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동안
주님께 배운 말씀과 뼈저리게 겪고 깨달은 말씀과 주님이 이 시대에 주시는 재림에 대한 생명의 말씀과 선지자들로
전하신 말씀으로 거름을 하면, 좋은 열매를 열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섭리사 모두에게 말씀을 듣고 변화하여 이 해에는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되라고 하셨으니, 희망을 가지
고 기다리시라고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재림을 연기해 주신 이때에
시대 말씀의 거름을 충분히 할 테니, 새롭게 변화되어 꼭 주님을 맞도록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과일나무는 병들면 거름을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물면 열매를 맺어도 곧 열매가 떨어집니다. 이 시
대 섭리의 과일나무는 거름만 하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습니다.
거름은 ‘에너지’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종 음식과 밥이 거름입니다. 사람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으면 힘을 내서
일하지 못하여 행실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등 각종 나무에 거름을 엄청나게 해 줘야 됩니다. 거름
하는 대로 건강하게 되어 잎과 꽃이 싱싱하게 피고, 과일도 많이 열리고, 과일도 크고 실합니다.
제때 충분히 거름을 하지 못하면 품종이 바뀌고 과일나무도 버리게 됩니다. 대개 거름할 때 충분히 거름해 주지 못
하면 영양분이 없어 과일나무들을 버리게 됩니다. “섭리의 신앙인들도 제때 말씀을 충분히 해 주었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과일나무의 품종이 변하여 버리듯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0년 동안 말씀을 제대로 충분히 전하지 못했기에 이제 거름 같은 말씀을 1년 동안 충분히 전해 줄 것입니다. 그러
면 듣는 자들이 더욱 힘을 얻고 은혜가 충만하여 잎과 꽃이 만발하고, 열매도 새롭게 주렁주렁 열고, 변화될 것입니
다.
그동안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 있고, 힘 있고, 소망 있는 생명의 말씀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
기가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에너지는 극한 환난 속에서도 우리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정말 말씀의
가뭄이 든 이때에 주께서 우리들을 자상하고 세밀하게 가르쳐 주셨기에 폭포수 같은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모스 8장 11~12절을 보면,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힘이 없어 비틀거리고 쓰러진다고 했습니다.
잘 먹으면 건강하고, 아름다워지고, 할 일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암 8:11-12)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
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섭리역사는 말씀의 위력이 있고 특징이 있어 말씀은 곧 우리의 자랑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을 따라 말씀의 사람들
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꼭 기도해야 됩니다. 어느 날 새벽에 주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어떤 사람이 꿈에
나타나 내가 베트남 전쟁터에서 쓰던 M16 총과 실탄을 주었습니다. 총과 실탄을 준 사람은 주님이셨습니다. 말씀은
총과 같고, 기도는 총알(실탄)과 같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나무에 주는 거름 같은 이 시대 계시의 말씀은 그동안 우리의 심령을 많이 변화하게 했습니
다. 나무는 거름을 주는 대로 쭉쭉 빨아 먹어야 건강하고 많은 열매를 열게 됩니다. 우리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특히
말씀을 좋아하기 때문에 흡수를 잘하고, 정녕코 하는 기질이 있기에 좋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동안 섭리 사람들은 선생으로부터 좋은 말씀을 오랫동안 듣는 습관을 들였기에 오랫동안 말씀도 잘 듣습니다. 지
금은 목사님들이 대신 전하니, 설교하는 자는 지루하지 않게 잘 전해 줘야 됩니다. 그런데 듣는 자들의 기대에 너무
어긋나게 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앞으로 설교자들이 말씀을 더 은혜롭게 잘 전할 수 있도록 각 교회 교역자들을 집중적으로 신경 써서 관리할 것입
니다. 이는 주님의 방침입니다. 주님이 아무리 은혜롭게 긴급한 말씀을 주셨어도 전하는 자가 얼마나 기도하고, 얼
마나 노력하여 전하느냐에 따라 말씀의 은혜와 감동이 좌우됩니다.
주님은 단상에서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교역자들이 100여 명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더 배우고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자들도 있기에 1차 교육에 들어가 잘하는 목사님이 인터넷 중계를 통해 전해 주기로 했습니다.
만일 중계하는 말씀보다 그래도 본 교회 목사님이 신경 써서 실감나게 전하는 말씀이 은혜롭다고 하는 교회가 있으
면 다시 의논하여 교단에 알려 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참고하여 다시 조치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도 안되는 교역
자는 목회를 대기하고 있는 자들이 200여 명 있으니 교체해 주기 바랍니다.
지금은 다른 때와 달리 ‘주인이여, 참으소서. 깊이 파고 거름하며 이상적인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하고 간구한 때입
니다. 말씀은 곧 거름과 같은데, 만일 충분히 거름해 주지 못하여 열매를 열지 못함으로 나무가 주인으로부터 찍힘
을 당하면 영원히 끝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은 정말 말씀을 잘 전해야 됩니다.
선생이 목숨을 걸고 노력하고 말씀을 연구한 지 이미 3년이나 되었습니다. 선생이 해외에 있을 때 하나님과 주님은
분명 내 입을 통해 심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는 데 더 노력하라.” 노력한 사람은 표가 납니다. 노력해도 소질과
재능대로 또 표가 납니다. 보다 더 잘하는 자가 보면 속이 타고 답답합니다.
선생도 옛날에 석막교회에 다닐 때 설교자가 설교를 너무 답답하게 해서 은혜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청년부 헌신 예
배 때 내가 3시간 동안 설교를 했습니다. 말씀을 들은 자들이 설교는 길었지만 은혜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어
떤 사람은 나를 보고 큰 부흥강사가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되고
야 말았습니다. 그때 내 설교를 들은 자들은 “그 말씀 속에 정말 무엇인가 들어 있었어.” 했을 것입니다.
설교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있어야 됩니다. 설교자가 장승같이 서서 말씀을 읽어 주기만 하니 듣는 자들이 너무 지
루하다고 말하는 교회가 너무도 많습니다. 세상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자기 맡은 일을 연구하지 않고, 자기 책임
을 100% 다하지 않으면 해고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맡은 일에 너무 소홀합니다. 이는 자기가
책임진 자들의 영혼 문제까지 좌우되게 합니다.
말씀의 내용을 보면, 누가 보아도 심정을 다해 부르짖어 외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심정을 태워서 계시하신 말씀을
주님과 같이 그대로 전해야 말씀의 불이 붙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 높게 불러야 할 곳에서 저음을 내고 말면 듣는
자들의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입장료 생각이 나게 할 것입니다. 이제는 교역자들을 발령할 때 설교 시험과 은혜
시험을 보고 난 후에 발령할 것입니다.
선생이 10년, 20년, 30년 동안 본을 보여 주었으니 화면을 통해서 배워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설교는 예언이고 계
시이며, 설교에는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별의별 말씀이 다 들어 있습니다. 각본대로 심정을 담아 전해야 됩니다.
선생이 2007년에 마지막으로 화면을 통해 설교할 때 ‘하늘과 나, 주님과 나’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 말씀
대로 ‘하나님과 나, 주님과 나’의 신앙들이 되었습니다. 이날 설교를 끝낸 후에,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유대인들이
쇠뭉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듯이 그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나와 주님’이라고 하며 꼭 주님과 일체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행하지 않으니 아직도 주님과 일체되
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섭리역사는 하나님께서 한 해만 더 연기해 주셨습니다. 이때 말씀을 잘 듣고 변화되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더 이상 시간도 없고 말씀을 받아 줄 수도 없습니다. 주님이 신령한 말씀을 주셔야만 받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지루하다, 길다 하지 말고 2007년도에 선생의 행방을 모르고 한마디 말씀도 듣지 못했던
때를 생각하면서 잘 듣기 바랍니다.
“나무 주인이여, 한 해만 더 시간을 주소서. 깊이 파고 거름을 해 보겠나이다.” 하고 간청했습니다. 거름을 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 주님이 주시는 거름과 같은 신령한 말씀을 잘 듣고 다 해결해야 됩니다. 다른
것을 더 달리 해 줄 수도 없습니다. 믿습니까?
주님이 재림을 연기하신 뜻은 “연기한 시간도 끝이 다 되었다. 급히 갖추어라. 오직 계시해 주기 위해서다.” 하셨습
니다. 모두 그동안 주님이 계시해 주신 선지자와 사명자들의 말을 듣고, 또 우리 섭리사에 계시해 주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같은 시대에 같은 주님을 믿고 살아도 이같이 연속해서 말씀을 주는 곳이 없습니
다. 아무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귀한 계시를 다 받을 수 없습니다.
안나 수녀는 밤 10시에서 그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철야기도를 하면서, 온몸과 눈에서 피가 나오도록 간구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녀에게 세계적으로 알릴 계시를 주셨습니다.
토마스 주남 선지자는 주님이 ‘너는 이 일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시면서 계획적으로 오랫동안 극적으로 연단시키
시고 갖은 고통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갔는데 자기 어머니가 거기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또 직접 보고 깨달아 예수님과 함께 7년 동안 책을 썼습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이나 사도들도 하늘의 말씀을 받을 때 극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옥에 갇히고, 순교하고, 지옥의
고통을 겪으면서 죽음을 앞에 놓고 마지막 주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하여 전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을 지켜 신앙의 열매를 맺어 왔습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각 개인들의 신앙이 살아 뛰지 못합니다. 교역자의 책임이 큽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을 받았
으니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말씀을 깊이 받아서 주었는데 깊이 전하지 못하고, 깊이 듣지 못
하면 주님과 먼 자입니다. 말씀은 곧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앞에 나타나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도 깨닫지 못하면 주님은 답답해하십니다. 그 사람과 멀어지게 됩니
다. 잘 깨닫도록 교역자가 책임을 져야 되고, 듣는 자들도 책임을 지고 잘 들어야 됩니다. 말씀을 받는 자는 제대로
받는 것이 책임입니다. 고로 엄청난 기도를 드리고 엄청난 시간을 정성으로 드린 후에 받아서 만듭니다.
주님은 “말해 주고 싶어도 조건을 세운 합당한 대상이 없다면 계시해 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각자에게 계시해 주시는 말씀을 자세히 듣고 끝까지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기도도 제대로 할 수 있고, 말씀
을 들으면 은혜 받고, 깨닫게 되고, 행해지고, 회개하게 되고, 주님의 재림에 대해 이것저것 알게 되어 긴장하고 예
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선지자가 끊어져 하나님이 말씀을 주지 못하셨던 시대는 잠을 잤고, 모두 부패되었고, 발전이
없었고, 신앙인들이 그 시대에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이치에 맞지 않게 다른 일을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
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자들도 오늘 본문 말씀(눅 13:6-9)과 같이 모두 무화과나무와 같은 입장의 운명입니다. 누가복
음 3장 9절의 말씀과 같이 이미 시대의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 거름해 준 후에도 열매
를 열지 못하면 온 세상 누구나 찍는다고 했습니다.
한 해는 확대시켜 보면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고, 축소시켜 보면 섭리적으로는 1년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1년 남았다
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깨끗하게 하고 고치는 기간이요, 회개하는 기간입니다. 잘못 생각하고 행한 자들이 바로
행하는 기간입니다.
‘말씀을 교단에서 만든다.’고 하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말씀을 소홀히 들어 할 일을
못 하게 되면, 그렇게 말한 사람이 다 책임을 지고 죗값을 받아야 됩니다. 감히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함부로 말합니까? 오늘부터 누구 한 명도 그같이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예전에 전하지 않던 말씀이 새롭게 나가도 무조건 믿어야 됩니다. 때가 되었기에 주님이 그동안 해 주지 않으셨던
말씀을 전해 주기도 하시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성찬식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해서 책망 설교가
나가면 회개하지는 않고, 그 내용은 교단에서 만들었다고 하며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한다고 주님
의 책망이 또 나갑니다.
지구촌의 어떤 종교나, 개신교나, 천주교나, 어떤 교파도 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말씀대로 살아야 하며 모두 주
님의 재림에 해당되는 자들로서 말씀에 따라 갖춰 살아야 합니다. 교파가 다르다고 해서 재림에 해당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메시아가 필요하지 않은 자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환난과 극한 재난은 종교에 상
관없이 온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됩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재림에는 관심도 없이 다른 데 몰두하고 살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교회가 설교 때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외칩니까? 주님의 애타는 심정과 급절한 상황을 말해 주는 곳
이 있습니까? 주님의 심정을 모르고 계시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기대하지 않으셔도 주를 믿는
자들은 정말 알고 살아야 됩니다. “2000년 동안 외쳐 오면서 기다렸던 이때를 알려 주었는데도 세상에 빠져 살고
자기 우선으로 살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은 ‘인생은 참으로 모르고 살고 있다. 주를 믿는 자도 주를 모르면서 믿
고 살고 있다.’입니다. 주님께 배우는 것이 그 얼마나 귀하고 큰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앞날을 미리 안다 해도 하늘의 뜻이라면,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피할 수 있어도 그 길을 가야 됩니다. 2007년 5월
전에 얼마든지 다른 데로 선교하러 갈 수 있었는데도 주님은 “한국으로 가야 된다.”고 하시며, “고생되어도 생명길
을 가야 된다. 네가 생명길을 가야 따르는 자들도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앞날을 미리 알고 있어도 피하지 말고 하늘의 길을 가야 됩니다. 사람은 억지로 못 삽니다. 하늘의 운명
이 있기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길을 가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그동안 극한 환난과 핍박을 받
았기에 오히려 신앙이 살아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봄이 와서 주인이 과일나무에 풍부하게 거름을 주니, 기뻐하며 꼭 열매를 맺겠다고 결심하고 춤을 출 일입니다. 봄
이 왔는데도 주인이 거름해 주지 않아서 거름 한 바가지도 얻지 못하는 저 울타리 너머의 무화과나무들을 쳐다보면
안쓰럽습니다. 이 시대 말씀의 거름을 해 주지 않으면 열매를 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어서 전도하여 다 말씀을
듣게 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요즘은 주일 단상과 수요 단상의 말씀이 30개론보다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계속 근본으로 세밀하게 가르쳐 줘야
됩니다. 이 시대 주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태양이 멈췄는지, 지구가 멈췄는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엘리야가 까마귀
에게 밥을 얻어먹고 살았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밥을 얻어먹고 살았는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교리가 문제
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성에 있을 때는 이치에 맞지 않게 가르치는 말씀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확실히 믿지 못했습니다. 섭리
에 와서 말씀을 듣고 믿어져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앞두고 여기까지 믿고 오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 때에 맞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듯이, 이제는 재림에 관한 것을 특히 집중하여 듣고 그에 맞게 행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될 때입니다.
강사들도 재림에 대한 말씀을 깊이 잘 이해하고 신입생들에게 세밀하게 가르쳐 줘야 됩니다. 예수님도, 선생도 최고
로 알아주는 것은 시대의 말씀을 잘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선생의 심정을 대변할 자가 누구입니까? 봄이 왔으
니 과일나무에 거름하는 것이 최고의 할 일입니다. 그래야 과일나무도 좋아합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을 가지고 이론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의 근본을 적극적으
로 가르쳐 주어라.” 하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때에 맞는 말씀이 생명을 살립니다.
예술단 음악부에서 몇 명이 지도자에게 교육을 잘못 받고 안 나오는 것을 알고 걱정되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내가 시키는 대로 내 말을 전해 주면 나온다.”고 하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적어서 주님의 말씀을 대필
하여 보내 준다고 하며 그 글을 전해 주었더니, 받아 보고 오랫동안 안 나오던 자들과 오랫동안 힘들어하던 자들이
힘을 내서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직접 그들에게 편지를 쓰실 수 없으니 대필자를 통해 해 줄 수밖에 없었
습니다. 역시 모든 일을 주님께 간절히 간구하여 주님이 행하셔야 됩니다.
이전에도 주님이 말씀하셔서 믿어지게 해 주셨듯이, 이후에도 주님이 말씀하여 믿어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직 주
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나무에 주는 거름과 같고 에너지와 같습니다. 계시입니다. 고로 모두 주님의 말씀
을 전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씀에 따라 역사하시고, 꿈이나 생시에 나타나 역사하여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한국의 가정국 중에 한 가정이 내게 편지를 썼습니다. 분별해 달라고 함이었습니다.
그 가정에는 다섯 살 난 딸아이가 있는데, 하루는 그 아이가 방에 누워서 천장을 보고 손짓하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보기에 엄마는 이상해서 뭘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혹시 요즘 말씀같이
도적같이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이 보이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예수님인지 물어보니 아이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알기 위해 예수님 영인체 사진을 갖다 주면서 이 예수님이 맞냐고 하니, 아이는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가리키
면서 맞다고 했답니다. 또 누가 보이는데 예수님이 손을 붙잡고 있다고 하기에 선생의 사진을 갖다 주면서 선생님이
맞냐고 하니, 아이는 맞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아이에게 다시 예수님과 선생님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묻고, 아이가 손짓하는 곳을 보고
엄마가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제대로 찍지 못해서 예수님의 얼굴이 일부 찍히고, 선생의 모습도 얼굴 밑으로 찍
혀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예수님과 선생이 맞다고 했답니다.
그 후에도 예수님과 선생이 또 나타났다고 하기에 아이에게 위치를 묻고 사진을 찍었더니 빛나는 불빛 두 덩어리만
찍혔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아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지금 뭐 하시냐고 물으니, “아직 청소가 안되었구나. 청소할 때
다.” 말씀하시면서 청소를 하셨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주님이 바쁘게 다니시는 것을 보고 전해 주는데, 모두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말씀
을 듣고 깨닫고 느끼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번은 일본으로 순회를 가기 전에 한 명의 제자에게만 간다는 것을 알리고 조용히 갔습니다. 그런데 가정국 통역
목사가 그 제자에게 전화하여 혹시 선생님이 순회 오시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제자가 선생님이 오시는 것을 누구
에게 들었냐고 물으니, 통역 목사는 다섯 살 된 자기 아들이 선생님이 오시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고 하기에 예
사롭지 않게 생각하고 감동이 되어 전화해 보았다고 했답니다.
어린아이들이 먼저 압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에도 신앙의 아이들이 주님의 나타나심을 먼저 알고 말해 줍니다. 어
린아이들도 재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시대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
습니다(마 19:14).
어떤 가정국은 하루에 하나씩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난절하게 하나하나 매일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알아라. 그동안 내가 선생을 통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며 대했느냐. 내가 그 육신을 통해
다 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감당하지 못하고, 제 할 일들을 하지 못하는구나. 또 내가 보낸 자의 흠을 잡고, 시험 들
어 말하는 자들도 있고, 이러니저러니 하는구나. 참으로 답답하다. 그에게 말하는 것을 다 내게 하는 말로 듣는다.
알지 못하고 보이는 자만 쳐다보면서 모세 때처럼 입을 열어 갖은 말을 하는 자들도 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는 그가 편지에 쓴 내용의 일부입니다.
주님이 ‘나’라는 육신을 쓰고 일해 오셨다고 그동안 선생이 말하지 않았어요? 모두 근본을 잘 깨닫기 바랍니다.
또 말씀하겠습니다.
제2의 엘리야는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선생인 엘리야를 육신 그대로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리실 때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어디 계시나이까.’ 하고 슬퍼하면서 요단강
에 서서 그 옷으로 물을 치니 물이 이리저리 갈라졌습니다(왕하 2:1-14). 엘리사는 자기의 선생인 엘리야가 한 대로
행했습니다. 제2는 제1이 행한 일을 따라 합니다. 그가 능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나와 같이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이 말씀을 절대 믿고 주님을 따라서 30
년 동안 해 왔던 것입니다. 나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주님이 함께하시고 나로 하게 하여 해 왔던 것입
니다.
주님이 선생을 통해 섭리역사에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기적을 보이셨는지 아는 자들은 새로 오는 자들을 잘 가르
쳐 줘야 합니다. 자신들도 지난날을 생각하면 더욱 큰 은혜가 가슴 뜨겁게 일어나게 될 것이고, 지금도 이같이 때에
맞게 역사하시는 주님이심을 더욱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표적은 늘 선생이 말씀한 대로 ‘말씀의 표적’이었습니다. 말씀 때문에 모두 환난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고로 지금도 말씀의 표적이 일어나 가슴이 뜨겁
고, 개인에게도 각종 표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주님이 나타나시고 역사하십니다.
엘리사가 엘리야가 행한 일을 그대로 보이니 여리고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주여!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에 심어진 나무의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말을 듣고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하여 그 소금을 물에 뿌렸습니다. 그 후부터는 물이 좋아져 토산의 열매들이 충실히
열렸습니다. 정말 ‘주여, 주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의 선생이 되시는 엘리야로부터 능력의 겉옷을 받아 그 옷을 입고 다니면서 영감을 가지고 성령의 역
사를 했던 것입니다.
선생도 나의 선생 되시는 주님이 주신 능력과 그가 함께하심으로 지난 30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행했습니다. 그
러나 역사가 지나가고 이 세상이 떠들썩하였어도 말 못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중에서 서해안 밀물을 멈추게 한 표적은 일본과 한국의 제자들 1200명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표적입니
다.
같은 이치의 표적이 한 번 더 일어났는데 인도양 연안에 있는 말레이시아 해변에서도 밀물이 멈추는 표적이 일어났
습니다. ‘주여!’ 소리가 나오게 하는 표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해변은 수영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는데 그때 청
소한 후로 깨끗한 관광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큰 표적을 일으키니 사라가 ‘주여!’라고 했습니다. ‘과연 주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고 주님이 주셔서 행하게 하여 하나님과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 표적을 보이셨고, 우리와 함
께 해 오신 하나님과 주님이라는 뜻으로 그 같은 표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늘 증거해야 됩니다.
선생이 산에서 기도생활을 할 때였는데 차가 없어서 월명동에서 전북 전주까지 56km를 걸어 다닐 때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내가 보였는데 옛날 한국 사람들이 잔칫집에 갈 때 입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옷을 보
면서 엘리야 선지자가 입었던 능력의 겉옷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그 흰 두루마기를 입고 내 고향 마을 어귀에 혼자
서 있는데 수억의 사람들이 손에 농기구와 연장을 들고 나를 죽인다고 쫓아다녔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귀와 귀신들
인상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잘못하여 나를 이같이 쫓아다니며 해를 주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네가 세상에 나
가면 우리 편을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무력으로 행하는 그들로부터 벗어나 우선 피해야 되기에 나는 내 고향의 인
대산 쪽으로 날아서 도망갔는데, 어느새 그들이 찾아와 온 산을 뒤덮었고 대전 쪽까지 꽉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와 30m 떨어진 곳에 서서 내게 더 가까이 오지 못하고 쳐다보며 농기구를 던지면서 갖은 악담을 퍼부었
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싸우니 다 도망쳤습니다. 이는 앞날에 내가 복음을 전하면 사탄의 편이 이 시대
사람들을 통해 나를 괴롭힐 것을 미리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잠에서 깬 후에 열왕기상 18장을 읽어 보니, 그 시대 사람들은 왕을 중심하여 엘리야를 미워했습니다. 이에 엘리야
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을 닫아 그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
는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가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거짓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합 왕이 마차를 타고 먼저 이스르
엘로 가고 엘리야는 걸어서 갔는데, 엘리야가 아합 왕보다 앞서 가 왕을 놀라게 했다는 성구를 보았습니다. 엘리야
가 축지를 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그때 기도하다가 나가서 전도하고 나면 밤 12시였습니다. 차도 없고, 월명동이 시골이라서 오후 5시면 버스
가 끊겨서 전도한 후에 집까지 140리를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 시간에 맞춰서 움직일 수 없기에 웬만하
면 걸어 다녔습니다. 이때는 시간의 제한도 느끼지 못하고, 불편함도 모르고 다녔습니다.
선생은 축지를 수백 번 했습니다. 제자들도 몇 십 번을 보고 놀랐습니다. 선생이 성령과 주님의 손에 이끌리어 이같
이 수십 번 행했어도 신경을 쓰고 보지 않았기에 몰랐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일에 신경을 쓰고 제대로 보지 않으면
눈앞에서 행해도 모릅니다. 지금도 까막눈이라서 모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구태여 자꾸 말해 줄 필요도 없습니다.
스스로 알려고 해야 됩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도 안 보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말고, 알려고 결심하며 심혈을
기울여 봐야 알게 됩니다.
섭리역사가 시작되어 이곳저곳 순회하러 다닐 때도 차를 타고 천천히 가는데도 예상 외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습
니다. 어느 때는 부산 시내에서 서울 봉천동까지 3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지금 월명동 잔디밭을 관리하는 최 권사님
도 그 차를 같이 타고 왔습니다. 증거한 것을 들어 보았지요? 주님은 선생의 뒤를 떠밀고 다니시고 능력을 주시면
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누구에게나 시간적 표적이 일어납니다. 4시간 만에 할 것인데 2시간이나 1시간 만에 하는 것이
시간적 표적입니다.
엘리사가 좋지 않은 물에 소금을 뿌려서 물을 좋게 하고 열매를 열게 했듯이, 선생도 이 시대 말씀의 퇴비를 하여
모두 신앙의 열매를 열게 할 것입니다. 믿습니까? 용기를 내고, 힘을 내고, 포기하지 말아요. 여러분들은 그동안의
환난도 모두 이긴 사람들이 아닙니까?
엘리야 시대에서 제2의 엘리야는 엘리사였습니다. 제2가 되려면 제1과 같이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그가 시키는 대
로 해야 됩니다. 그리고나서 제2의 사명을 맡게 됩니다. 신약시대에서 제2의 엘리야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제1과 같이 하면 상징적으로 제2의 예수, 제2의 엘리야, 제2의 가룟 유다, 제2의 선생이라고 합니다. 가수
중에서도 마돈나와 같은 자를 보고 제2의 마돈나라고 하지요? 연예인들은 제2의 아무개라고 흔히 말합니다.
섭리사에서 제2의 선생 소리를 듣기 위해 열심히 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나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연구하며 오직 주 뜻대로 해야 됩니다. 모두 제2의 선생이 되어서 과거에 주님이 선생에게 역사하셨듯이 해
봐요. 주님이 함께하시니 섭리역사 30년 동안 별의별 표적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내 옆에 있던 한두 명의 제자들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신경 써서 보았으면 알고 말해 줄 것입니다. 성경도 주님이 행하신 일을 본 자가 기록했습니다.
선생은 주님께 나만이라도 성경말씀을 지키며 순종할 수 있는 데까지 순종하여 원수도 사랑하면서 주님과 같이 해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님이 좋아하시면서 분명히 “꼭 그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나를 해하고 핍박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다윗과 같이 참아 왔고, 주님의 심정으로 참아 왔습니다.
어떤 자는 야곱 같은 사명을 한다고 제2의 야곱이라고 하며 야곱의 노정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펴는 자도 있
습니다. 야곱처럼 자녀도 12명을 낳았습니다. 어떤 자는 사도 바울같이 결혼하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하며 제2의 사
도 바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자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똑같이 짓고 살기도 합니다.
어떤 자는 제2의 예수가 되어 주님과 같이 그 사명을 해 보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제2의 주님이 되어 그의 일을 잘
하고 싶다고 하며 제2의 예수라고 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즘 거리에서 전도
하러 다니는 자들을 보고 현대판 제2의 예수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부흥강사가 훌륭하다고 하며 자기는 제2
의 그 사람이 되겠다고 합니다.
선생은 주님께 배웠으니 주님의 노정을 가야 했고, 제2의 주님의 일을 하는 사명자가 되기 원하며 살았습니다. 그러
나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주님은 신성이시니 따라가기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내가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셨고, 환경의 표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다가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저도 주님과 닮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제1의 주님으로 제1의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
셨습니다. 저는 주님께 배우는 제자로서 제2의 사람이 되었고, 제2의 이스라엘이라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제가 태어
난 곳도 주님이 태어나신 작은 베들레헴처럼 쓸쓸하고 적막한 월명동 달동네입니다. 주님은 33세까지 일하셨고, 제
가 34세일 때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주님도 형제들이 많았고, 저도 형제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3년 동안 복음을 전
하셨고, 저는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3년을 7년으로 확대하여 전반기 21년 동안 뛰었습니다. 주님은 무덤에서 3일
반 동안 계셨고, 저는 3일 반을 확대하여 전 3년 반, 후 3년 반 무덤기간을 보냈습니다.”
주님께 배우고 주님이 함께하시어 30년 동안 역사를 해 왔습니다. 섭리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이 제2의 주님의 사
명을 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고통도 많고, 환난도 많고, 칼이 심장에 꽂히는 듯한 고통도 많이 받고, 억울
함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하시어 상상하지 못할 표적도 많이 일어났고,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큰일
도 섭리역사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죽으실 때까지, 그리고 특히 승천하실 때까지의 노정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
래서 주님이 당하셨듯이 당했고,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셨듯이 해 온 것입니다. 이는 천하가 변해도 변함없는
역사입니다. 주님이 그같이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살아 계셨을 때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전해 주셨던 말씀을 우리에게도 자세하게 전해 주셨습니다. 또 주님은
승천하시는 모습까지 내게 보여 주시면서 붓을 주셨습니다. 붓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할 때나, 어떠한
표적이 일어날 때나 늘 ‘하나님이 하셨다. 주님이 하셨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말씀
을 할 때도 주님을 숨기면 전할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지난 30년 역사를 돌아봐야 합니다. 왜 제자들은 그 엄청난 일들을 책으로 쓰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전형 노정을
30년 동안 동시성으로 펴 왔습니다. 이제는 그 노정이 끝나고, 섭리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이 내게 마지막으로
승천하시던 모습을 다시 보여 주시면서 “내가 곧 온다.”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기 위해 준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같은 뜻을 두고 섭리역사를 이끌지 않으셨으면 여기도 기성 교회처럼 어른들만 꽉 찼을
것이고, 선생도 희망이 없어 목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내게 실체로 수십 번 나타나셨고, 수천 번 역사하셨고, 계속해서 말씀해 주시고, 나와 대화하셨습니다. 고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 많은 일들을 해 오며, 많은 사람들의 물음에 회피하지 않고 대답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입
니다. 가는 곳마다 역사를 일으키고 표적을 일으키며, 주님과 함께 간 곳에는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왔습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주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많은 일을 보고 겪었어도 다 말하지 못하고, 설교 때 은밀히 간
접적으로 말해 오기만 했습니다.
한번은 그 당시 현실의 상황에 대해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이 늘 나를 통해 ‘평화롭게 살자.’고 말씀하셨기에 우
리는 갖은 핍박을 받으며 갖은 악평과 언론 보도가 쏟아져도 참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악평은 끝이 없네요.”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나처럼 아무도 곡하게 여기지 말고, 잘되라고 기도해 주어라. 그러면 축복한 대로 잘되지 않겠느냐.
너도 내가 안 썼으면 몰라서 저들같이 하지 않았겠니. 저들같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 아니냐. 핍박을 받고 고통을
당할지라도 나와 같이 가는 자가 결국 복이 있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게 되며, 핍박한 자는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
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사도 바울같이 힘들다고 잠언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감사하고 기뻐하며 노래하여라. 나는
환난 중에도 너희들의 찬양을 기다린다. 이것저것 이유를 달고 하지 않으면 할 것이 없다. 내가 잠언으로 한 말을
다시 들어 보아라.” 하셨습니다.
또 한번은 유럽에 있었을 때의 일인데, 어떤 뉴스를 보고 나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 평화롭게 살아야 되는데 역사적으로 그같이도 전쟁을 많이 하고, 그같이도 사람을 많이
죽여 놓고 또 전쟁을 하려나 봅니다. 비밀로 바다 속으로 잠수함을 타고 다니면서 세계 정보를 입수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정보 통신탑을 세워서 자랑하며 활동하고 다닙니다. 저 나라는 또 원자폭탄이 오죽이나 많습니까?
그놈의 원자폭탄이 모두 무색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놈의 원자폭탄 때문에 세계인들이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
신 세계에 살면서 늘 불안해하며 공포 속에 삽니다.” 하며 진정으로 속심을 털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화가 나 못마땅한 주님의 표정이 느껴지고 그 심정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도
연속해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지구촌을 축소해 보면 한 민족이고, 또 축소하면 한 가정과 같은데 한집에 사는 식구들 중에 누구는 뼈 빠지게 일
하고 누구는 싸우기만 하여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분위기를 깨뜨리면 기분이 나쁘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
습니다.” 하며 선생이 복음을 전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기나긴 현실의 사정들을 주님께 자세히 고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알았다. 나도 속이 탄다. 의식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된다. 너는 내 손발이고 내 심정이니, 알았다.”
하셨습니다.
그 후 한 달 만에 그 잠수함은 바다 속에서 선장실의 기계 폭발로 인하여 고장이 났습니다. 이 일로 거기에 타고 있
었던 200여 명의 국가 정보원들은 산소 공급이 안 되어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
다. TV 화면을 통해서도 계속 세계로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 정보 통신탑은 상공 400m에서 불이 났고, 너
무 높아서 통신탑이 다 탈 때까지 소방대가 불을 끄지 못하여 저장된 정보들이 모두 타 버렸습니다.
그때 설교를 통해 뉴스를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환난을 주는 자들만 보며 힘들어하는 자들도 있었습니
다. 하나님이 주님과 함께 행하시는 것을 보아야 그 행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인지 아는 사람은 말해 보
세요.
지금은 어느 나라든지 주님이 심판의 매로써 사용하지 않으시는 이상, 평화를 파괴하며 스스로 행한다면 그 하는 일
이 역천하는 행위가 되어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개인이든, 단체든, 민족이든 모두 마찬
가지입니다. 믿습니까?
이 평화의 시대에 군대를 자랑하고 무기를 자랑하면서 으름장을 놓으며 보는 자들을 애간장 타게 하고 전쟁의 공포
를 느끼게 하는 자가 있으면, 하나님은 그 죗값으로 먼저 그 나라를 흔드시며 재앙으로 치십니다. 모두 보지 않았습
니까?
보기는 보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소경이며 마음이 둔한 자들로서 하나님과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 취급을
받습니다. 섭리사에는 그렇게도 외치며 가르쳐 주었는데 아직도 모르는 자들이 있으니, 그런 자들은 이제 더 가르쳐
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전쟁하려고 사람들을 겁주고 괴롭게 하는 자들의 생명은 땅에서 찾아도 못 찾을 때가 가까이 옵니다. 괴롭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들도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는데 교만히 행합니다. 섭리 안에서는 모두 겸손하게 살기 바랍니다.
말씀의 거름을 해 주시니 이제 우리는 열매를 꼭 맺어야 됩니다. 이미 ‘우리’라는 각 사람의 나무에 도끼가 놓여 있
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시기를 “열매를 열면 좋으려니와 열지 않으면 찍힌다.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가야 된다. 열매
를 맺으면 나와 같이 영원한 천국의 나라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돌감나무나 돌포도나무는 아무리 거름을 해도 좋은 열매를 열지 않습니다. 거름을 주기보다 톱으로 베고, 참감나무
를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나무나 돌포도나무 같은 자들은 그 행위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름을 주었을 때 쭉쭉 빨아 먹기만 하면 됩니다. 섭리사 모든 자들은 말씀의 흡수력이 강합니다. “이때 진
실로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자들은 결단코 휴거되지 못하고 사탄의 것이 된다.”고 주님은 경고하셨습니다.
하루 백 리를 가려면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해 질 무렵에 겨우 도착합니다. 선생은 걸어 보았습니다. 주님의 재림
을 앞에 놓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때를 연장해 주시고 주님이 계시해 주시어 겨우 외치고 있는데, 그마저 별것
아니게 생각하고 겉으로만 성의 없이 말씀을 듣는다면 자신이 자기를 뻔히 아는 대로 되고 맙니다.
‘주님이 시간을 연장해 주셨다. 그 시간마저 끝이 다가온다. 이제는 더 이상의 연장 시간은 없다.’는 말씀의 뜻을 잘
모를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를 연장하고 준비하게 하신 후에 다시 와 보니, 또 준비가 안되어 마지막으로 연장해
주었다는 말이라고 주님은 다시 근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이 새벽에 기도할 때 주님께 재림에 대하여 사명자 린다를 통해 섭리사에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말씀해 달라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연장해 주었으니 빨리 갖출 것을 갖추어라.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의 연
기는 없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린다의 글을 다시 읽어 보기 바랍니다.
말씀을 줄 때 받고, 전할 때 들어야 합니다. 섭리의 말씀은 끊어지면 개인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전에 들었던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과일나무들은 봄에 한 번에 몽땅 거름을 하면 그
해에 열매 맺을 것을 맺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과일나무는 한 해 동안 말씀의 거름을 끊임없이 해 줘야 봄에 과
일나무에 거름을 한 번 해 주는 격이 됩니다.
금년도 말씀이 벌써 4분의 1이 나갔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성장이 멈춥니다. 방향을 모르고 그 자리에 멈춰 서 있게
됩니다.
말씀은 ‘에너지’와 같고, ‘차의 기름’과 같습니다. 사람의 영과 육과 정신의 힘과 능력이 됩니다. 사람이 1일, 2일, 3
일, 1주, 2주, 3주 동안 밥을 먹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결국 쓰러지고 못 일어납니다. 힘이 빠지고, 맥이 빠지고, 병
이 나고, 포기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말씀은 음식과 같아서 계속 듣지 않으면 결국 쓰러지고 포기하게 됩니다.
또 말씀은 식물에 필요한 물과 같습니다. 식물에 제때 물을 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고 꽃도 피우지 못합니다. 그러다
가 열매를 열기 전에 죽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만물을 보고 그 처절함을 배우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값있고 중한지 알아야 합니다. 돈에 비하겠습니까? 금 덩어리에 비하겠습니까? 말씀은 ‘하나
님’이시고 ‘주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영원한 자기의 생명입니다. 또 ‘말씀을 받으면 신이 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주님으로 보고 좋아하며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은 자기를 외면했다고 심정 상해 하시며 자존
심 상해서 그냥 가 버리십니다.
주님은 “나의 때가 왔으니, 제발 고기 한 점과 같은 인생 가지고 목에 힘주지 말아라. 자존심을 버리고, 자기 좋아
하는 것을 좇지 말아라. 마지막으로 아쉬운 소리 하니 이때 기념으로 무릎 꿇고 박박 기어 와라. 그렇지 않으면 영
원히 후회한다.”고 재차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자존심이 상하여 나온 말씀입니다. 내가 대신 빌었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다 내
죄고, 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잘하는 자들을 쳐다보시고 힘내시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몇 명이 면회를 왔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힘들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하려 해도 안 되니 자
포자기 했다가, 다시 열심히 하려고 결심하고 면회를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 얼굴 보고
가서 힘내고 잘해 보겠습니다.”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은 그가 잘하고자 하나 잘 못 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시고, 또 그 눈물을 보시고 나로 말씀하시기를 ‘어디에
가서 섭리의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신혼골수를 꿰뚫어 보시니 다 아십니다. 양에 따라 각각 대해 주셨습니
다. 주님은 우리를 자비로 대해 주십니다. ‘자비’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면회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서 나도 그같이 뜨거운 눈물을 쏟으면서 깊이 기도하고 싶다고 하니, 주님은 “너는 보
았느냐?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기뻐하고, 한 명은 속으로 울고, 한 명은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안 나와서 흘리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 마음속을 보았느냐. 모든 자들이 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겠느냐. 모두 각각이다.” 하셨
습니다.
내가 왜 면회를 안 하려고 하는지 알아요? 시간에 쫓기면서도 면회를 하면 얼굴을 봐서 좋습니다. 얼굴을 처음 본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꼭 해 주는데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 속 시원히 말했으니 나는
좋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처음 본 자에게 잘하라고 한 말도 그에게는 상처가 된다.” 하며 나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처음부터 웃으면서 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면회가 끝나고 돌아오면 내 마음이 답답했습니
다. 면회 온 자들은 좋았겠지요. 주님도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은 답답합니다. 지적할 것과 모순이 보이는데
나뭇가지 치듯이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또 언제 만나겠습니까?
주님은 내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십자가를 지고 기도해 주어라. 그래야 고쳐지기도 하고 구원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온 세상 모든 자들에게 그렇게 하신답니다. 그러니 죽는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고통
없이는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30년 동안 해 왔기에 이제는 나도 그만 하고 싶지만 주님의 말씀을 통역할
자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깊이 듣고 마음에 새겨 담아 가고, 다시 글로 쓴 것을 봐야 됩니다. (부활 주일이 오기 전에 부활에
해당되는 성구들을 자세히 몇 번씩 읽고 와야 주님이 말씀하실 때 잘 이해하고 은혜가 됩니다. 모두 꼭 읽고 오세
요. 모두 안녕히 가세요. 주일에 또 만나요~)
* 다음 주는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의 말씀을 위해 부활에 관한 성구를 있는 대로 다 읽어 보고 오라고 했지요?
이제 주님이 직접 부활에 대해 예전보다 더 깊이 말씀해 주시니 내용이 깊고, 어떤 것은 방향이 바뀌고, 어떤 것은
재해석되었고, 차원도 높아졌습니다.
부활에 대한 성구를 찾아서 한 절 한 절 다시 읽어 보기 바랍니다. 모두 잘 읽은 후에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요
5:20~29, 롬 8:5-8, 고전 15:45~54, 살전 4:16-17 / 기타 - 사 26:19, 요 11장, 요 20장, 요 21장, 약 2:17, 약
2:26, 벧전 4:6, 계 3:1 등등.)
부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거나, 또는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합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자의 부활과 육신이 죽은 자의 부활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첫째, 육신이 살아 있는 자는 육신 부활이 필요가 없습니다. 육신이 살아 있으니 다만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살아
나오는 부활이 필요합니다. 육도, 영도, 정신도 사망권에서 나오는 부활이 필요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곧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
희가 아는 바라』
이를 회개하고 형제를 사랑하면 그 영이 육과 함께 생명권으로 부활되어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둘째, 육신이 죽은 자는 육이 회복되는 부활이 필요합니다.
베다니 나사로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었다가 주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 이에 해당됩니다.(요
11:1-44)
셋째, 재림 때가 되면 살아 있는 자들의 육이 영으로 부활되고, 육이 죽은 자들의 산 영이 부활됩니다.
이같이 부활이 각각 다르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나와 있으니 꼭 읽고 와야 말씀을 들을 때 혼돈되지 않기에 핵심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도 주님만이 확실히 아시니 주님이 말씀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르면 모르고 살게 됩니다. 어떤 것은 때가 되면 알게 됩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주장해야 혼돈이 없습니다. 손
등 아니면, 손바닥입니다. 각각 쪼개서 봐야 됩니다.
1. 사건적 부활, 심령의 부활, 정신의 부활, 행실의 부활
2. 육체 부활도 있었으니, 주님이 죽은 자들의 육신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예) 베다니 나사로
3. 마지막 재림 때의 부활 - 예수님을 믿다가 죽어서 재림을 기다리던 자들은 재림 때가 되면 부활합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도 재림 때가 되면 육이 영으로 변화되는 부활을 합니다. ‘홀연히 변화된다.’는 사도 바울의 말대로
육이 영으로 홀연히 변화됩니다.
마지막 재림 때의 부활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또 직접 보고 확실히 말한 자가 없으니 모두 잘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면 성경대로 믿어야 됩니다. 육이 살았는데 영이 살았다고 해도 안 되고, 영이 살았는데 육이 살았다
고 해도 안 됩니다.
성경대로 믿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것 때문에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면 믿어지지 않고,
신앙생활까지 못 하게 되기도 합니다. 주님께 확실히 말해 달라고 하니 “성경에서 내가 한 말을 다시 읽으면 안다.”
고 하셨습니다.
선생도 주님과 함께 행하였기에 말하는 것인데, 이를 믿지 않고 따라오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내가 한 것이 아니
고 하나님과 주님이 행하신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지금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내가 행하는 것을
보고는 그 전의 것까지 믿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지 못하는데 억지로 믿게 하려다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고 주님도 믿지 못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할 필요
가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도 그와 같습니다.
선생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주님이 말씀하셨어도 다시 확인하고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눈으로 보고
믿으려 하면 많이 모른다. 가령, 세계에 있는 것들도 현지에 직접 가서 보고 믿으려 하면 하루에 몇 개 못 배운다.
하지만 본 자가 한자리에서 말해 주는 것을 믿고 따르면 10개, 20개 더 배우게 된다.”고 하시면서, 하나를 보이면서
‘다른 것도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도 가서 보고 배우고 믿으려면 일반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못 가 보니 성경에 나온 대로 믿고, 천
국을 갔다 와서 보고 말하는 자의 말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이 얼굴을 안 보여 주셔도 말씀하시거나 느껴지면 주님을 본 것으로 알고 따르고 기록하니 많이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계속 읽으면서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때 주님께 묻기를 “주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에 대해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여 읽어도 헷갈립니
다. 사도 바울은 육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시체가 없어졌다고 했습니
다. 그것을 보면 육신 부활 같고, 부활 후에 돌아다니신 것을 보면 영의 부활이 분명합니다. 제가 확실히 믿어져야
다른 자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데 어떻게 해야 돼요?”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이에 대해서는 네가 믿은 대로 믿고
가도 괜찮다. 억지로 믿지 말아라. 누구든지 자기 믿음대로, 아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냐.” 하셨습니다.
고로 선생은 요한복음 5장의 말씀과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과 요한복음 21장(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의 말
씀을 읽고 영적 부활로 봤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을 때 시체가 없어졌고,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살았다고 했습니다. 또 제자들
에게 “나 살아났다.”고 하시며 안 믿는 자를 꾸짖으셨습니다.(요 20장)
이로 인하여 선생은 주님의 부활에 대해 두 가지 다 믿어 왔습니다. 주님의 육신 부활을 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적 부활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 살릴 수 있는 능
력이 없으셔서 죽은 자를 살리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육신은 하늘나라에 못 간다.’고 했습니다. 또 ‘세
상에 살면서 죄지은 몸을 왜 죄 없는 하늘나라로 오게 하겠느냐.’ 하는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육을 영으로 변화시켜 그 정신과 마음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의 행실과 정신을 영이 가지고 간다는 말은 이해되지만, 그 뼈와 살도 가지고 가냐고 하며 의아해합
니다. 이것에 대해 확실히 해석하는 자가 없으니 주님이 직접 말씀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꼭 부활에 관한 성
구를 모두 읽어 보고 와야 됩니다.
선생은 주님만큼은 메시아시니 그 몸을 버리지 않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죄가 없는 몸이고, 세상에서 당
한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은 모두 천국에 가 있는데 그들의 무덤에는 뼈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성경의 여기를 읽으면 영적 부활같이 나와 있고, 저기를 읽으면 육적 부활같이 나와 있습니다. 고로 교파마다 주장
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교파는 영적 부활이라고 하고, 어떤 교파는 육적 부활을 교리로 가르칩니다. 외국에서 흙
을 도자기로 만들어서 자기 나라에 가지고 들어올 수는 있으나, 흙 그대로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절대 반입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육도 그같이 변화되어야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입니다.
꼭 부활 성구를 읽고 오기 바랍니다. 모두 안녕히 가세요. 부활주일에 또 만나요~
<2009년 4월 12일 부활절 말씀>
육이 영으로 부활했다
본 문 요한복음 5장 24-29절
- 심령, 행실, 생활, 더 좋은 부활, 즉 거듭난 부활, 구원의 부활, 중생 부활
야고보서 2장 17절 - 정신적, 행실적 부활
누가복음 24장 1-53절 (봉독 36-44절) - 예수님의 부활
마가복음 16장 1-19절 (봉독 14절) - 예수님의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50-54절 - 휴거 부활
마태복음 28장 1-20절 (봉독 생략)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듯이, 우리들에게도 그같이 말씀하셨
습니다(눅 24:36).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먼저 어떻게 말씀을 들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는지 말하겠습니다.
예수님이 3일 동안 무덤에 있다가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찾아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오늘 그같이 모든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그날같이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하겠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러분들도 제자들처럼 깜짝 놀랐습니까?
먼저 누가복음 24장 36-44절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보고 예수님이 영으로 부활되어 온 줄
알고 깜짝 놀라 무서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놀라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마음에 의심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을 믿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어야 주님이 좋아하실 뿐 아니라 주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
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못 믿느냐. 그러면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하셨습니다. 이
에 제자들은 보고 너무 기뻐했으나 아직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아주 죽은 것으로 생각하며 이제 끝났다고 생
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외국에 나갔을 때 ‘이제 섭리사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또 중국에서 소식조차 없을 때 ‘이제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지요? 다시 온다니까 거짓말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와서 더 엄청난 말씀을 하며 보여 줬지요? 말씀을 교단에
서 만들어 보내 준다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보고 간 자들이 말해도 안 믿었던 사람도 있지요? 고로 선생이 면회 때
만나서 “왜 의심하느냐.” 하며 꾸짖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편지로 내 글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보고서 그
제야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의심하다가 그 모습을 보여 주니 믿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의 말을 믿듯이 주님이
살아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주님의 뜻이 있어 어떻게 우리 섭리역사를 이끌어 오셨든지 믿고 감사하
며, 오늘의 말씀도 끝까지 들어 보고 지금 이 시간 “아멘! 주님이 사셨습니다.” 시인하면서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하여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예수님은 그 생선을 받으시
고 제자들이 보는 데서 잡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서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
고 하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명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말씀을 믿고 따라 행할 수
있으며, 무슨 희망이 있겠냐고 하신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6장 9-14절을 보면,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 건강하
게 해 주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습니다. 이에 막달라 마리아가 놀라서 제자들에게 알렸으나 믿지 않았
고, 그들 중 두 사람이 또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보고 남은 제자들에게 알렸으나 믿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 후 열한 제자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왜 믿지 않았느냐.” 하며 꾸짖
으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
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으면 믿음이 없고 완악하다고 주께서 책망하십니다. 이제는 주님이 가르쳐 주셨으니 믿지 않으면 꾸짖으십니
다.
제자들은 표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걱정만 했습니다. 그러니 책망을 받아야지요. 한때 선생의 행방을
알지 못할 때도 여러분들이 기도하여 다시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선생이 오기를 원하여 주님이 보내 주셨는
데, 기뻐하며 하나 되지 않고 걱정하며 서로 의심하고 오해하고 싸우는 모습들을 지금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고로
주님은 그때와 같은 심정으로 우리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떤 고등학생이 선생을 위해서 기도하던 중에 예수님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사진과 같이, 선생의 눈에서 피눈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았다고 편지가 왔습니다. 이에 선생은 “네가 내 심정을 보았구나. 섭리 안에서 서로 오해하고
싸우는 자들을 보면 내 심정에 불이나 피눈물을 흘리듯 한다. 네가 본 것이 맞다.”고 했습니다.
자... 우리는 주님의 심정을 알고 믿어야 됩니다.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의심 없이 믿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이곳저곳을 계속 다니시면서 그 모습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6-2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마 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
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
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
니라』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이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님을 뵙고 경배하였으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같이 잔인하게 찢김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는데 과연 살아나실 수
있을까?’함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리시는데 못할 것이 있습니까? 인간 세계에서도 어떤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면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
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이 부활 후에 나타나신 것을 보고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 20:19-23)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
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
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두려워 모인 곳의 문을 닫아 놓았는데, 예수님이 오셔
서 가운데 서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
들도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니 놀라겠어요, 안 놀라겠어요? “할렐루야!” 하며 박수를 쳐
야지요. “주여!” 하고 불러야지요. “아멘!” 해야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이시면서 “그동안 얼마나 괴롭고 두렵고 고통스러웠느냐.”
격려하시니 제자들은 모두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왜 예수님을 보고도 완전히 믿고 기뻐서 감격하며 운
사람이 없었을까요? 있었으나 기록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래서 주님의 육신이 부활된 것을 성경을 읽는 자들로
하여금 의심하게 한 것입니다. 울고, 붙잡고, 매달리고, 끌어안으며 예수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려고 하면 못 가게 붙
잡고 잔치했어야지요. 정말 너무하지 않았어요?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했겠지요? 그러한 마음으로 주님의 부활을
맞고 대해야 됩니다. 꼭 붙잡고 반가워하며 좋아해야 됩니다.
나는 주님께 여쭙기를, 왜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울면서 붙잡지 않았냐고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다 울었다.
그것은 상식이 아니냐.” 하시며 “제자들도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핍박하던 자들이 또 죽일까 봐 쉬쉬했다.”고 하셨습
니다.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시고 숨
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
라.” 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주님
이 살아나셨다.” 하니,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
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하고 의심했습니다(요 20:24-25).
안 믿는 자에게는 정말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의심이 많은 자들을 보고 ‘도마 신앙’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현대판 도마와 같은 자입니다.
그 후 여드레가 지나서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을 때입니다. 도마도 함께 있었고 문들이 닫혀 있는데 예수님이
또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축복을 빌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가 의심이 많고, 다른 제자들이 말했어도 믿지 않는 것을 아시고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하셨습니다. 그제야 도마
는 “나의 주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 하며 기뻐 소리쳤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셨습니다(요 20:26-29).
여러분들은 보고 믿겠습니까? 안 보고 믿겠습니까? 도마 신앙이 되지 말고 보지 않고 믿음으로 복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자신이 부활한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을 보시고,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며 심히 꾸짖으십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꾸짖음을 받고 혼나면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손해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었듯이 우리도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며 믿어야 됩니다.
사도 요한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요 20:31).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울은 예수님을 믿고 사도 바울이 되기 전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러 다녔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고 책
망하셨습니다. 그때 사울이 예수님을 쳐다보자마자 빛이 강하게 그를 비추어 그는 눈이 멀고 앞을 못 보게 되었습니
다. 사울이 “주여, 누구십니까?” 물으니,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셨습니다. 이에 사울은
3일 동안 앞을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 아나니아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
니라.” 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이 시키신 대로 사울을 찾아가 기도해 주었습니다. 사울은 그 기도를 받고 다시
보게 되었고, 그제야 주님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과 그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눈은 떴으나 실상 소경들입니다. 소경들은 고통이 많습니다.
사울은 영의 눈을 떠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주님의 사도가 되어 크고도 큰 일을 했습니다. 눈을 뜬 자와 뜨지 못
한 자의 차이는 이같이 큽니다. 주님의 손이 가고 안 간 것의 차이가 이같이 큽니다.
섭리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이 하는 일과 심정을 모르고 나를 위한다고 하면서 일만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먼저 본 제자들이 말해도 안 믿었던 자와 같이 섭리사에도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선생이 제
자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 주고 말해 주어 전하게 했는데, 형제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선생이 한 말을 안 믿는 자들
이 있습니다. 다시 선생이 나타나 말하면 그제야 믿습니다. 왜 안 믿었냐고 꾸짖으면 몰랐다고 합니다. 이에 “설교
를 통해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왜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느냐.” 하고 꾸짖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3-11절을 보면, 예수님은 부활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무리가 있는 곳에 나타나 보이시며 친
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 앞으로 할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
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
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려져 가셨습니다. 이에 구름이 가려 예수님을 보이지 않
게 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앞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
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
라.” 했습니다. 이는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천사가 말해 준 것입니다.
벌써 그 긴긴 역사가 가고, 재림을 연기하신 시간도 거의 흘러갔습니다. 주님은 “곧 온다.”고 세계 방방곡곡에 친히
나타나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는 자들은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예전대로 재림
에 별 관심 없이 일반 신앙들만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살아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믿습니까? 아멘!
뒤로 갈수록 더 세밀하게 부활에 대한 말씀이 나오니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잘 듣기 바랍니다. 주님은 재림 전에 마
지막으로 온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시며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한 번 설교로 절대 믿어야 됩니다. 두 번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온 대로 부활을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육신이 죽은 자가 살아나는 주님과 같은 부활이 있습니다.
둘째, 요한복음 5장 24-29절 말씀과 같이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부활이 있습니다.
셋째,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말씀과 같이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주님이 재림하시면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휴거하는 부활이 있습니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20장 4-5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 경배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 후에
살아 있는 자들도 그들과 함께 휴거된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내가 살았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고 ‘육이 살았다.’고 보는 자들도 있고, 주님의 행하심을
보고 ‘영이 살았다.’고 보는 자들도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육신이 사신 것이라면 이 같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육신이 살아나셨다면...
첫째, 왜 세상에서 계속 복음을 펴지 않으시고 40일 동안만 있다가 하늘로 가셨을까?
둘째, 문이 닫혔는데 어떻게 제자들이 모인 곳에 들어가셨을까?
셋째, 제자들은 왜 3일 전에 보던 자기의 선생을 영으로 생각했을까?
넷째, 이스라엘 역사에 예수님의 육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나와 있지 않을까?
다섯째, 왜 제자들은 예수님의 육신이 살아난 것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성경에도 육신이 살아났다는 말씀이 나와
있지 않을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만 성경에 그대로 기록해 놓았는데, 예수님의 육신이 어떻게 살아났다
는 것과 확실히 살아난 것을 써 놓지 않았을까?
그동안 섭리역사는 오직 예수님이 이끌어 오셨습니다. 선생이 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
의 육신이 부활했다고 가르쳐 주지 않고 영적 부활이라고 가르쳤을까요? 이는 주님의 역사이니 그 뜻에 따라 역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주님의 육신이 부활한 것을 20대에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겨울철에 얼어 있던 개미가 봄이 되어 살아나는
것을 시골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이를 실험하기 위해 얼음 속에 개미를 파묻어 놓고 완전히 얼음덩이가 되게 한 후
에 다시 따뜻한 곳에 놓아두었더니 살아났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죽었던 몸도 다시 살아났다는 사고를 가졌습니
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산에서 기도생활을 할 때 육신의 부활보다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이 하는 ‘삶의 부활, 행실의
부활, 정신의 부활’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사망권에 죽어 있으니, 예수님을 믿게 하여 정
신과 행실과 삶을 살리는 부활을 전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29절의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어서 전도하여 내게 데려오라. 그것이 부활이다. 급하다.” 하셨습니
다.
(요 5:24-29)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
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
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 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리고 영계를 보이셨습니다. 이리와 사자들이 양들을 잡아먹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 주시며 “저 양들이 사람이다.
내 양들이다.” 하셨습니다. 이에 나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주님께 오게 했습니다. 말씀으로 사람의 정신과 행실을 부
활시키는 일을 사명으로 하도록 주님은 역사하셨습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능력을 주시는 대로 해야 됩니다. 사명을 받은 자는 그 일을 해야 됩니다. 또 잘못한 것이
있으면 주님께 회개를 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
느니라.” 하셨습니다(요 5:24).
주님은 “나를 믿게 해 줘야 영생을 얻게 되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해 줘야
그 사람의 영과 육이 주님과 일체되어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섭리역사는 이것을 성경적인 부활
교리로 가르쳐 왔습니다. 고로 우리는 선생에게 역사하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해 주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와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하셨습니다(요 5:25).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
시고 세상에 계시지 않았을 때는 제자들을 통해 주님이 전하신 말씀을 외치게 하여 듣게 함으로 구원을 받게 했습
니다. 곧 죽은 자들이 살아난 것입니다.
주님이 선생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들어 온 여러분들도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옮겨져 살아났습니다. 선생의 말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말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생은 늘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전한다고 했지
요?
또 예수님은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셨습니다(요 5:28-29).
과거에 주님을 믿지 않던 자들과 믿었어도 제대로 못 믿는 자들은 실상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에 선생
이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나왔고, 어떤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요한복음 5장 24-29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선생을 통해 말씀하시어 사망권에
있었던 선생부터 먼저 새롭게 부활시켜 사망에서 꺼내시고, 또 나를 세상에 내보내어 나로 외치게 하시어 듣고 따른
자들을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나오게 하는 부활을 시켜 오셨습니다. 이 부활은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특히 해
당되는 부활입니다.
우리는 죽은 시체가 아니므로 시체 부활을 희망하지 않았습니다. 삶 속의 곤고, 고민, 걱정, 염려, 아픔, 허무, 가난,
무지, 악의 생활, 죄의 생활, 멸망의 삶, 세상 정욕과 욕심, 이성, 미움과 싸움과 같은 사망 속에서 해방되기를 원했
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런 것에서 벗어나 주를 믿고 희망을 얻게 되었고, 허무한 삶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삶을 얻게 되었고, 걱정·근심·염려·각종 질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부활되었습
니다. 생명권으로 삶의 부활이 되어서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같이 사망권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손발로 쓰시면서 외치게 하시
어 지금도 사망권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을 부활시켜 생명권 속에 살게 해 주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선생을 통해 이같이 다양하게 부활을 표현해 오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부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
원받는 부활을 말씀하면서 ‘지구라는 공중, 곧 이 땅에서 주를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휴거요,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육신과 영혼이 땅에서 휴거되는 부활이기도 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주님을 모시며 이같이 역사를 펴 왔습니다. 섭리역사는 당세 30년 동안 신부로서 주님을 신
랑같이 모시며 이같이 역사를 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과 영혼의 이 상태 그대로는 주님이 재
림하실 때 하늘 공중에서 휴거될 수 없습니다. 이 육신과 영혼으로는 오직 지상 세계에서만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
다.
주님은 그동안 지구라는 공중에서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자만 주를 맞았고, 믿고 따랐던 자만 주를 맞
았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29절에 나온 부활이 지금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 이루는 부활로,
주를 믿지 못하고 사망권에 사는 자들이 해야 될 부활입니다.
사람들은 ‘부활’ 하면, 흔히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만 의식합니다. 또 그것만 주입식으로 가르칩니다. 죽은 자가 살
아나는 부활은 앞날에 죽은 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사건적으로, 영적으로, 행실적으로 부활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메시아 예수
님을 안 믿거나, 믿어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은 사망과 마귀와 흑암과 죄의 주관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삶으로 빛 가운데 나와 생명권에 살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관하시는 세계에서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는 삶을 살아 마음천국과 행실 천국을
이루고 사는 것이 최고 급선무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재림하시면 휴거될 수 있고, 육신이 죽은 후에도 휴거되어 천
국에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통해 이 부활을 외쳐 오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믿어도 제대로 믿지 않으면 살았다 하나 죽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통해 사데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
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회개하라.” 하셨습니다.(계 3:1-3).
회개하면 사망권 속의 죽은 영과 육이 생명권으로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죄지은 자는 사망권 속의 죽은 자라고 했습
니다. 행실적으로도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죽은 행실을 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 1서 3장 14절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와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사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다시 생명
으로 나오게 된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47절에 예수님은 진리가 없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로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시대의 진리의 말
씀을 들으면 주님께 속한 자가 되어 살아납니다.
마태복음 8장 22절에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죽은 자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24절에 예수님은 “나를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믿음이 없는 자와 의심하는 자들을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는 병을 고쳐 주지도 않으셨고, 기
도해 주셔도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병도 그러했고, 육신의 병도 그러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
는 자들을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사탄들의 지역에 사는 자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그 지역에서 나옵니
다.
새벽에 깨어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새벽을 죽인 자’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찬양하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소홀히 대하는 자들은 다 ‘죽은 자’입니다. 해야 살아납니다. 산 자의 주님이십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를 읽어 보면,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거의 대부분 육신이 살아 있으나 실상 죽은 자들을 부활시
키는 복음을 펴셨습니다. 육신이 죽었는데 다시 살리신 일은 성경을 보면 10명이 안 되었습니다. 베다니 나사로(요
11장), 회당장 야이로의 딸(눅 8:41-56) 등입니다.
선생도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들을 위해 주님이 전하시는 복음의 입이 되고, 주님의 손
발이 되고, 주님의 몸이 되어 30년 동안 섭리역사를 펴 왔습니다. 그래서 번창하는 섭리역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부활에는 ‘심령의 부활과 행실의 부활’이 있습니다. 육신이 산 자가 주님의 뜻대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육신의 행
위에 따라 그 영도 부활되는 것을 말합니다. 육과 영은 일체입니다. 육의 행실의 부활은 곧 영의 부활로서 사망권에
서 생명권으로 나오는 부활을 말합니다. 이같이 하여 보다 구시대에서 새 시대로 나오게 되는데, 이는 ‘시대성 부활’
이라고 합니다.
또 ‘생활의 부활’이 있습니다. 이는 정말 어려운 부활입니다. 자기 습관, 못된 성격, 악한 마음과 행실을 버리고 주
의 뜻대로 사는 것이 생활의 부활인데 너무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육신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만큼이나 어
렵습니다. 생활의 부활은 곧 기적의 부활입니다. 각자 본인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믿고 행해야 즉시 살아납니
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살아나 생명권으로 가니, 마귀는 말씀 듣는 것을 최고로 방해하고 막습니다. 갖은 방법으로
꼬이고 시험에 들게 하여 자기 주관권에 끌어다 놓고는 우리가 말씀을 들으러 갈까 봐 지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말
씀을 듣고 부활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부활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더 좋은 부활’이 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해야 됩니다. 이는 ‘주님 최우선주의 신앙’입니다. 삶 속에서 더 수고하고 노력하여 더 잘살고 더 명예롭게
살듯이 신앙 속에서도 주님과 일체되어 더 충성하고, 더 순종하고, 더 믿고, 더 실천하고, 더 변화하는 것이 더 좋은
부활입니다.
주님을 메시아로 믿는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은 지금 이 시대에 해당되는 부활을 해야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놓고 준
비하는, 완전하고 더 좋은 부활을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요한복음 5장 24-29절에 해당되는 부활에 대해 주님은 여러 가지로 표현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는
‘거듭난 부활’이라고도 하고, ‘구원의 부활’이라고도 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중생의 부활’이라고 표현하기
도 합니다. 이와 같은 부활은 ‘육신을 가진 사람이 지구 공중에서 휴거되는 부활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예수님을 잘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한 자들은 거듭났고, 구원받았고, 중생했고, 무덤에서
나왔고, 사망권에서 나와 부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이것이 육신을 가지고 지구라는
공중에서 휴거된 것임을 모른다고 선생을 통해 주님은 외쳐 오셨습니다.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지구라는 공중, 곧 이 땅에서 이 같은 휴거를 해 왔습니다. 우리 섭리역사는 이 시대 복음을
듣고 이해했을 때부터 휴거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을 불면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자의 육이 무덤에서 살아나 홀연히 변화
되어 휴거되는 것만 기다리고 외치고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외쳐야 될 말씀입니다. 그러나 먼저 할
것을 먼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육신이 살아 있는 자의 육과 영이 부활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정신과 행실과 삶이 온전하게 거듭나는 부활과 구원의 부활을 이루며 사망권에서 나오는 부활을 하여, 주님이 사랑
하시듯 형제를 사랑하며 의의 부활을 제대로 해야 주님의 재림 때도 제대로 휴거되고 부활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
습니다.
주님이 선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신 말씀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생명력 있는 말씀이었습니까? 주님을 믿으면서 가
장 급선무로 해야 될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망권에서 마귀에게 묶여 있던 자들이 멋있게 생명권으로 나
왔습니다. 새 노래도 있지요? 한 번 불러 봐요.
(새 노래 제목은 영광의 탈출입니다.)
이래서 젊은이들이 희망차게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만들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교회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님이 이끄시는 섭리역사를 해 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에 관한 부활을 말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 때 죽은 자들이 살아나 휴거되어 주님을 맞는 부활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을 보겠습니다.
(고전 15:51-53)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
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
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죽은 지 10년, 100년, 1000년, 1500년이 된 자들도 있고, 예수님 당세에 죽은 자는 죽은 지 2000년 정도 되었습니
다. 이들의 육신은 다 썩어 뼈도 찾아보기 힘든 자도 있습니다. 이들의 영은 잠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이
죽어 썩었으니 그 정신과 마음과 행실의 모든 의는 영의 몸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들은 주님의 재림 때 마지막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휴거에 해당되는 영들이 부활되고 휴거되어서 재림하
신 주님을 따라 하늘나라로 갑니다. 이를 ‘휴거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갔다 온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이 아직 재림하지도 않으셨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선생도 어느 날 육체 이탈을 하여 영의 세계에 갔습니다. 그곳을 안내하는 두 명의 천사에게 예수님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길을 알려 주면서 이 길을 따라가 보면 제자들과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 보니, 예수님은 베
드로와 몇몇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보고 또 왔냐고 하시며 몇 마디를 해 주셨습니다.
영계에 가면 영이 육신을 쓰고 있을 때보다 지혜와 총명이 100배 이상 뛰어나게 되어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쳐다
보면 저가 누구인지 압니다.
주님이 아직 재림하지 않으셨기에 휴거되기 전인데 제자들이 천국에 가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주 안에 있는 둘째 하늘의 천국이었습니다.
천국에 갔다 온 자들은 아브라함도 천국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토마스 주남 선지자가 천국에 갔을 때도 주님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중심인물들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모두 부활되어 천국에 갈 줄 알았습니다. 모세, 다니엘, 스가랴 등 옛 선지자들과 중
심인물들의 무덤이 있고 뼈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천국에 가 있습니다. 이를 볼 때 바울 선생이 ‘혈과 육은 하
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말을 중심하고 믿어야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시어 그 육신을 보이시고, 죽은 시체를 땅에 남기지 않으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수세기
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과 뼈를 찾는 시도를 했지만 모두 가설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두 가지를 보면 헷갈리지요? 그래서 한때 선생은 성경을 보면서 속 시원히 분명하게 쓰지 못하고 헷갈리게 썼다
고 하며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땅에 묻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그러한 모습을 다
보시고 답답해하시며 “내게 배우라.”고 하셨고, 나는 주님께 배웠습니다.
성경은 천 년을 배우고, 수천 년을 배운다 하더라도 영적 세계에 대한 것이 같이 들어 있기에 다 배울 수가 없습니
다. 주님께 배워도 순간 다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실력이 되어야 하고, 내가 그 단계까지 실천해야 깨닫
고 물었을 때 주님은 “맞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실력이 있고 주님이 허락하시면 영계에 가서 보고 와서 말하게 됩
니다. 고로 어떤 것은 40년 만에 배우고, 어떤 것은 20년 만에 배우고, 어떤 것은 10년 만에 배우고 깨달아 말씀해
주었습니다.
성경을 깨닫기는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모르면 헛수고하고, 마귀에게 꼬임 받고, 주님의 심정을 답답하게 하니 배
워야 됩니다. 그래도 지금은 주님이 많이 가르쳐 주시니 말씀 천국입니다.
이같이 성경을 풀기 어려우니 오직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성경의 해석을 많이 하지
않고 그대로 믿어 왔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고 모순된다고 하며 안 믿는 자들을 더 많이 믿게 해 주지 못했습니
다. 그래도 선생은 예수님께 배우면서 성경말씀을 정말 많이 풀어 주어 안 믿으려고 하는 자들을 믿고 따라오게 했
습니다.
젊은이들은 모순이 있으면 안 믿습니다. 제대로 가르쳐 줘야 믿고 따라옵니다. 돌아가지도 않는 태양인데, 여호수아
가 기도하여 그 순간 멈췄다고 하니 믿겠어요?
노아 홍수 심판 때 물이 온 천하를 뒤덮었다고 하면 쉽게 믿겠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8848m의 에베레스
트 산입니다. 한 지역의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에베레스트 산이 덮일 정도의 비를 내리셨겠습니까?
천하를 다 덮을 필요까지 없지 않아요? 온 천하를 덮은 물이 150일 만에 다 말랐다고 하니 믿어집니까?
성경을 제대로 보면 홍수 심판이 끝나니 물의 깊이가 15규빗 이라고 했습니다(창7;20). 한 규빗은 손부터 팔꿈치까
지의 길이로 약 45cm정도 됩니다. 물의 깊이가 15규빗이라고 했으니 7m정도 밖에 안 됩니다. 7m 높이의 물이 온
천하를 뒤덮을 수 없습니다.
선생은 성경을 자세히 보고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고로 사람들이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맨 앞부분에 이미 주님의 육신 부활을 말했지만 더 설명해 줄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들어요. 주님은 육
과 영의 부활을 하셨습니다. 어떤 부활을 하셨는지 이해시켜 줄 것입니다. 먼저 성경에 주님이 하신 말씀을 자세히
듣고 결론에서 말씀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나온 내용을 먼저 들어 보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 지내고 3일째 되던 날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다른 여자들
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가서 보니 무덤을 막은 돌이 굴려져 있고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져 근
심하고 있는데, 그 순간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의 곁에 서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
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셔서 7~8번이나 제자들에게 보이셨고, 40일 동안 나타나시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영이라고 하며 안 믿은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믿음이 없고 완악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
이 오셨는데 믿지 않으니 악한 자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 완악한 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주님이 살아났다고 하는 말씀을 성경대로 믿어야 됩니다.
빼지 말고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영적 부활과 행실의 부활만 믿어 왔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믿어 오게 하셨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리는 한 사건을 가지고 두 가지 이론을 붙여 전하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았으면 육이 살았는지, 영이 살았는지 확실하게 말을 해 줘야 따라갑니다.
“너는 기독교니, 불교니?” 물으면 제대로 말을 해 줘야 그를 따라서 교회를 가든지, 절을 가든지 합니다. 교회도 다
니고 절도 다닌다고 하면 그의 교리를 배우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입
니다. 한 입에서 쓴물과 단물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맞지요?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외쳐야 하는데, 육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급선무는 주님을 메시아로 믿게 하고 구원시켜
사탄의 주관권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로 주님은 요한복음 5장 24-29절의 말씀과 같이 섭리역사를 펴
가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게 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도 어떤 제자가 나와 나의 이론을 둘 다 믿고 따라오는 것을 어려워하면, 선생을 믿고 따라오는 쪽 먼저 택하여
가르쳐 줍니다. 따라온 후에는 좋아하니 나머지 이론을 가르쳐 줍니다. 섭리역사 30년 동안 선생이 표적을 행한 것
을 말하면 믿지 않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따라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고 친구가 되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며 이끌어 왔습니다. 따라온 후에 말해 주면 그들은 “이미 믿어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
니다.
예수님 시대의 제자들에게는 두 가지를 다 가르쳐 역사를 펴셨습니다. 주님의 육신 부활을 가르쳤으며,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나와 삶의 부활을 이루게 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주님은 방법
을 달리하며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 시대는 요한복음 5장 24-29절의 말씀을 중심하여 가르치면서, 사망권의 마귀들이 쥐고 있는 자들을 끌어오는 것
이 급선무입니다. 기독교도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전도했으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가득하
게 되었을 것입니다. 섭리 안에는 젊은이들이 가득합니다. 희망이 있지요?
사람들은 우리를 반대하고, 이단시하고, 예수를 메시아로 안 믿는 자들이라고 하며 갖은 악평을 했습니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 쓰면서 비방했습니다. 우리는 실상 예수님을 더 잘 믿지요. 그러니 젊은이들을 사망권의 마귀들
에게 뺏기지 않고 계속 인도해 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망권에 뺏긴 젊은이들을 보시고 너무 안타까워하십니다. 한마디로 10년이나 애지중지 기른 자기 애인을
다른 남자에게 뺏긴 어떤 남자같이 원통해하고 분해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심정을 알고 전도하여 채워 놓았더니,
주님은 우리가 소원을 풀어 주었다고 하며 기뻐하십니다. 마귀의 손에 있는 자들을 빼앗아 와서 주님께 돌려 드려야
됩니다. 하고자 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은 재림하시기 전에 섭리역사를 통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엄청난 역사를 펴려고 하셨지만 사람들이 막았
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이 지금껏 그렇게 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 터전 위에 재림에 대한 경고까지 받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조용한 밤중입니다. 누가 잘했습니까? 핍박받고 고생하면서 주님을 따른 것이 영원히 보람 있는 일입니다.
역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좁은 생명길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망권에서 나와 주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까지 하고 있으니, 때가 되어 주님의 육적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월명동 개발 작업을 할 때 동시에 두 군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한 곳도 제대로 마무
리 짓지 못합니다. 앞산에 먼저 돌조경을 만들고 밤나무 산에 돌조경을 만들었듯이 모든 일은 먼저 할 것을 먼저 했
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먼저 할 것을 먼저 하시며 섭리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먼저 주님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영적
부활과 행실의 부활과 삶의 부활을 이루게 한 후에 주님의 부활에 관한 것은 이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육적 부활은 한 번만 설교하면 다 믿습니다. 한마디도 이유를 달 필요가 없습니다. 영계의 어떤 비밀스러운
것을 보여 줄 때도 한 번 보여 주고 끝납니다.
주님은 “내가 3일 만에 육으로 부활한 것을 한 번만 말해 줘도 너희는 다 믿으니 이제 말씀해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섭리역사 처음으로 근본된 주님의 부활에 대해 주님이 직접 말씀해 주실 것이라고 하며, 성경을 많이 읽고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선생은 부활주일 전부터 매일 새벽 2시에 다 준비하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주님은 부활에 대해
역사적 이치를 말씀해 주신 후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는 말씀을 다시 하시면서 “나의 부활도 이
와 같이 이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다가 큰 물고기 배 속에 갇혀 3일 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요
나의 영이 나왔습니까, 육이 나왔습니까? 육이 나왔지요. 그러니 표적이지요. 영이 나왔다면 무슨 표적입니까? 누구
든지 영은 큰 물고기가 잡아 삼켜도 그 배 속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고로 그것은 표적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죽어 무덤에 계시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요나의 표적과 같이 주님도 그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들어 보아라. 요나가 밤낮 3일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나도 땅속에서 3일
있다가 나오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9-4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마 12:39-40)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
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요나 시대에 니느웨 성 사람들이 악하고 음란하여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요나가 밤낮 3일 동안 큰 물고기 배 속
에서 있다가 나오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도 그 시대가 악하고 음란하여 죽어 땅속에 3일 동안 있다가 나오는 표적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주님이 행하신 다른 표적을 모두 믿고 따라와 이상세계를 이루는 역사의 표적을 보이셨을 것입니다. 주님
은 시대가 대하는 대로 표적을 보이셨고, 주님이 보낸 자도 시대가 대하는 대로 표적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긴급한 말로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40일이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고 외쳤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다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도 무덤에서 영만 나온 것이 아니라 육신이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 40일 동안 외치셨습니다.
그 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들이 성령의 불 이 붙어 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살아났듯이 제자들과 그 시대 말씀을 듣고 따른 자들은 요한복음 5장 24-29절의 부활
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대를 보시고 “악하고 음란한 시대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시며, 마치 요나의 표적과 같이 보이신
표적이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보인 표적이었습니다. 모두 알지요? 그 같은 역사가 또 올까요? 요나의
표적이 두 번 일어났습니까?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듯이 동일합니다.
표적을 보여 주었어도 그때만 번뜩 믿고 잊고 삽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주께서 표적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늘 간증
하기도 하고, 책으로 쓰기도 해서 성경처럼 기록하여 후대가 하나님을 생각하며 믿도록 알려 줘야 됩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땅속에 묻혀 있다가 3일 만에 영만 나왔다면 육은 어디에 있지요?
1980년 3월 예루살렘 인근 탈피요트라는 지역에서 건물 공사를 하던 중 하나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이스라엘의 고
고학자들은 그 무덤에서 10개의 유골함과 3개의 유골을 발견했습니다. 1996년에 영국에서 이 유골함을 다룬 다큐
멘터리를 제작하였는데 그중에 하나가 ‘요셉의 아들 예수의 유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07년에 제작된 ‘잃어버린 예수의 무덤’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전 세계에 방영되었는데, 처음부터 ‘나사렛 예수의 가
족 무덤’이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그 위에 여러 가지 과학적 검증을 내세우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그리
고 그 무덤에서 나온 유골함 중의 하나가 ‘요셉의 아들 예수의 유골’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가설과 가정’에 근거한 내용이었기에 설득력이 없었으며,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으
나 여러 가지 허점을 보이면서 성서학계와 고고학계로부터 지탄을 받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하나의 ‘가설’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과학으로도 다 입증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위대하지만 전지전능하지 않
으며, 학자는 지식이 뛰어나지만 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 말을 빼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세에 보고 겪은 자가 제일 잘 압니다. 선생에 관한 것도 서로 궁금하다고 해서 내 말도 안 들어 보고 제 나름
대로 말하면 큰일 납니다. 내가 한 것을 보았어도 허락받고 말해야 되고, 제대로 보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말
해야 됩니다. 안 본 자는 본 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말하고, 본 자도 보태거나 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이 한마디 하면 자기의 사상과 주관을 다 넣어서 전합니다. 그것도 선생에게 회개해야 용서해 줄
수 있는 큰 죄입니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와는 정말 천 리나 멀리하고 싶습니다. 주님도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
를 신부로 삼지 않으신다고 했지요?
어떤 골동품 박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너무도 아는 체를 하기에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쓰던 놋 요강에다
오줌을 가득 담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3년 만에 캐서 그에게 주면서 “밭을 파다가 나온 것인데 감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골동품 박사가 “이것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적어도 1500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 하기에, 그에게 아
주 비싸게 팔고 돌아오는 길에 킥킥거리고 웃다가 길바닥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어떤 성경 학자는 아담이 인간의 시조라고 하며 지구 역사가 6000년밖에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초등학생이 이 말
을 듣고 너무 모른다고 하며 요즘 나오는 초등학교 역사책을 그 학자에게 갖다 주면서, 이 공부 먼저 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답니다.
어떤 골이 텅텅 빈 학자는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원숭이가 들으면 “이 녀석아~ 너
도 나와 같은 족속이니 바나나나 따 오고 같이 먹으면서 살자.”고 할 것입니다.
주님의 육적 부활에 대해 앞에서 한 말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줄 테니 잘 듣고, 오늘 다 믿고 돌아가기 바랍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3일 동안 있다가 영만 나왔다면 어떻게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외치고 전도했겠습니까?
요나의 영이 회개하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육이 큰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 나와 외친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고통을 당한 후에 나와서 니느웨 성으로 가서 40일 동안 부끄러움 없이 외쳤습니다. 고로 요나는 하나님의
심정으로 칼 같은 말씀을 외쳤고, 니느웨 사람들은 모두 듣고 회개했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 있으면서 악하고 음란한 니느웨 사람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이 기
간은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신 기간과 같습니다.
주님도 악하고 음란한 시대에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속에서 밤낮 3일을 있다가 육이 영과 함께 나와서 제자들에게 보이면서 40일을 외치시고 결
국 다 회개하게 한 후에 그 변화된 신령한 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영만 나왔다면 40일 동안 외치고 돌아다니실 때 예수님을 영으로 믿는 자들을 책망하지도 않으
셨을 것이고, 자신의 몸을 만져 보게 하시며 육으로 믿게 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제 모두 예수님이 3일 만에 육으로 부활하셨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영으로 살아났으면 표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
다. 누구나 하나님을 믿고 주를 믿으면 살아 있는 영이 되어 육체는 썩더라도 그 영은 무덤에서 나와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주님은 새벽에 이 말씀을 자세히 해 주시면서 “육신이 죽은 자는 육신을 살리는 것이 부활이고, 행실과 정신이 죽은
자는 행실과 정신을 살리는 것이 부활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내 영이 죽었느냐? 내 육이 죽어 동굴 속에 넣어 놓지 않았느냐. 아무리 채찍
과 못과 창으로 찔림을 당하여 온 인류를 위해 피와 물을 다 흘렸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지 못하
시겠느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들을 창조하기도 하시니 추호도 의심하지 말아라.” 하셨습
니다.
이에 나는 “주님, 안 믿으려 한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그같이 둘 중에 하나의 뜻을 먼저 우리 섭리역사에 펴 오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도, 주님도 전지전능하시니 그 어떤 것도 못 할 것이 없으심을 믿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주님
이 역사해 온 것이 모두 표적이었습니다. 저 개인에게 행하신 표적만 해도 2000번이 넘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어떤 표적인데 2000번이 넘는지 궁금하지요? 한 센터만 말해도 설교로는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설
교한 말씀의 표적만 해도 2만 번이 넘습니다. 여러분들도 설교를 들었지요? 주님과 대화하는 것도 표적입니다.
2000번만 물어보면서 대화했겠어요? 여러분들이 물어보는 대로 대답해 준 것만 해도 상상도 못 하게 많습니다. 또
베트남 전쟁 중에 내 생명을 살려 주신 표적과 섭리역사 30년 동안 보이신 표적이 너무도 많습니다.
주님은 “너도 나와 같이 섭리역사를 이끌었던 30년 동안 육신이 죽은 자를 너로 기도하게 하여 내가 살리는 것을
많이 보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사례>
- 섭리사에서도 육신이 죽은 자가 살아난 표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죽은 지 하루가 지났는데 기도하여 살
아나셨습니다. 또 충주 스키장에서 한 사람이 죽은 지 17시간이 지났는데 기도하여 살아났습니다. 죽기 일보 직전에
살기 불가능한 자들을 기도하여 살린 일도 너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죽은 자들을 살리셨듯이, 이
시대에도 주님은 나를 통해 행하셨습니다.
- 부흥강사이신 박재봉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자기가 죽은 지 3일이 되어 관 속에 넣고 못을 박고 땅
을 파서 넣으려고 할 때, 자기 누이가 먼 데 살기에 늦게 와서 관을 흔들면서 슬피 울었는데 그때 살아났다고 합니
다. 역시 주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때가 여름이었기에 이미 시체가 부패되었다고 합니다.
죽었을 때 영계에 갔는데, 가서 보니 구원받고 천국에 오는 자들이 너무 없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죽어서 영계
에 오는 자들은 대개 자기가 죽은 것을 모르고 자기 자녀나 안내자를 찾고 부른답니다. 그러다가 없으면 다른 자들
에게 물어보려다가 모두 알지 못하는 자들이니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있답니다. 그러다가 영계에 있는 자가 “당신,
죽었습니다.” 하면 안 믿는답니다. 어떤 자는 “내가 왜 죽어?” 하면서 그제야 탄식하며 슬피 울기도 한다고 간증하
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영계를 보고 온 후로 주님의 사역을 크게 하게 되었고, 주님의 말씀을 힘 있게 외치는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
다.
- 석막리에 사는 장재완 선생의 조카 아버지도 죽었다가 이틀 만에 살아났는데, 시체를 삼줄로 너무 꽉 묶었기 때
문에 살아난 후에도 꽁꽁 묶은 곳에 멍이 들어 안 풀렸다고 합니다. 그 후 15년 더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우리 어머
니는 부활주일마다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 미얀마에 한 승려가 있었습니다. 그는 병을 앓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은 지 3일이 되어 미얀마의 풍습대
로 관 채로 화장하려는데 그 직전에 살아났습니다. 그의 몸은 이미 부패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지옥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지옥의 왕을 만났는데 머리에 뿔이 나 있고, 얼굴은 사자 머리 같고, 용의 비늘 같
은 것이 다리에 나 있고, 몸은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 이름을 물으니 ‘지옥
의 왕, 파괴자.’라고 했습니다.
지옥의 왕이 그에게 불의 연못을 보라고 하여 보았을 때, 그 당시 미얀마에서 가장 저명한 스님이었던 스님이 거기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스님은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훌륭한 스님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
니다. 그 스님은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는 너무 깜짝 놀라 지옥의 왕에게 그토록 존경받았던 좋은 스님이 왜 지옥에 왔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지옥의 왕
은 “아무리 세상에서 선행을 베풀며 살았어도 예수를 안 믿었기 때문에 지옥불에 들어온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또 군 복장을 하고 흉부에 큰 상처가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고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지옥의 왕은 “미얀마의 혁명가
아웅산이다. 그는 기독교를 박해하며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았지. 그러니 지옥에 안 오겠느냐.”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이 보였는데 키가 크고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칼과 방패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마에 상처가 나 있
었습니다. 누구냐고 물으니 지옥의 왕은 “저 남자는 골리앗이다.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의 종 다윗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했습니다. 그는 승려였기에 다윗도, 골리앗도 몰라 혼돈스러워 했습니다.
지옥의 왕은 그를 보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하여 그는 피가 흐르도록 오랜 시간을 걸어 다른 한 길로 들어섰습니
다. 길이 황금빛으로 바뀌더니 그의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냐고 물으니 그 남자는 그와 같이 걷
기를 권유했습니다.
그가 그 남자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여섯 번이나 묻자 “나는 베드로다.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다. 천국은 매
우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너는 지금 그곳을 갈 수 없다. 네가 지옥에서 본 대로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 너와 같이 부처를 섬기는 자들과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네가 본 것을 말해 주어라. 예수님을 믿고 변화를
받지 못하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전하여라. 특히 사원을 만들고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스님들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
들과 절하는 자들도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하여라. 너는 이제부터 ‘아텟 피안 신토우 파우루’라는 새 이름을 사용하
여라. 이는 ‘부활한 바울’이라는 뜻이다.” 했습니다.
그가 베드로의 인도를 받아 도착한 곳은 자기 관 속이었습니다. 살아나 보니 자기 시체에서 액체가 흘러나와 관 속
은 액체로 가득했습니다. 화장하기 직전, 그의 부모님이 그를 한 번 더 보려고 왔다가 살아난 것을 알게 되어 화장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살아서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전도했습니다. 3일 동안 지옥을 보고 살아서 예전보다 수천 배 더 열
심히 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천국이든지, 지옥이든지 그곳을 체험하면 충격을 받고 수백 배, 수천 배 더 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못 보면 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은혜 받고 뛰어야 합니다. 설교를 듣고 감동 받고 행해야 됩니다. 부활해야 됩니다. 영도 육도
새롭게 부활하기를 축원합니다.
이같이 주님의 뜻이 있으면 얼마든지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믿어져요?
- 하나만 더 말해 주겠습니다.
때는 2001년 11월 20일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다니엘 목사는 부인과 싸움을 한 후에 화해하지 않고 바람을 쐬
러 나갔다가 화가 풀려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가 42시간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목사도 죽어서 천사의 인도를 받아 지옥과 천국을 보고 왔습니다. 천사는 그 목사에게 천국과 지옥의 각종의 것
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을 연기하셨다고 하면서 빨리 회개하고 준비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예
수님이 재림을 연기하신 것은 세상이 주님을 맞을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니 세상에 나가면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
며 준비하게 하라고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가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본 많은 상황 중에 지옥에서 본 상황에 대해 하나만 말해 주겠습니다. 지옥의 한곳에 많
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가 보니 자기의 살을 뜯어 먹고, 먹은 것을 토하고, 다시 뜯어 먹고 있어 천사에게 물었습
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탄의 꼬임을 받거나 이단에 속한 자들이다.”라고 했답니다.
또 어떤 자들은 아스팔트같이 딱딱한 마른 바닥을 손에 피가 나도록 맨손으로 파고 있기에 천사에게 물으니 “남의
것을 빼앗은 자들이다.”라고 했답니다.
다니엘 목사에게 보인 지옥의 경고는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경고 중의 하나라고 천
사는 말했답니다.
지옥은 누가 보아도 잔인하고 영원한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누구든지 지옥을 한 번이라도 갔다 오면, 누가 더 가르
쳐 주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고 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육적 부활을 한마디로 말씀해 달라고 하니, 주님은 “육이 영으로 부활되었다.” 하셨습니다.
또 말씀해 주시기를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의 육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육과 같지 않다. 육이 영으로 부활되었기에
영같이 보인 것이며 문이 잠겼는데 마음대로 통과한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의 몸이 된 것이다. 그같이 부활되지 않
으면 하늘나라에 못 간다. 베다니 나사로처럼 육신이 살아서 세상에 있어야 될 사람은 육신 그대로 살아나게 되지
만, 부활하여 하늘나라로 갈 나는 그 같은 부활을 한 것이 아니라 육이 영의 몸으로 부활된 것이다. 베다니 나사로
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육신이 다시 살아나 육신이 세상에서 살아야 될 자들은 육을 중심하여 그대로 살아난다.
그래야 영이 주체가 아니고 육이 주체가 되어 살아서 세상 사람들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육을 중심하여 부활
하지 않고 육이 변화되어 영으로 부활되었다. 영이 주체가 되어 부활된 것이다. 고로 부활된 영체는 이 세상 사람들
과 마음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나라 영의 사람들과는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그 영체는 전능하여 순간 천
국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부활된 내가 너희에게 온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주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의 영도 지금 형태로는 휴거되지 못한다. 내가 오면 다른 형태로 완전히 부활
해야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 지금 육에 속해 사는 영은 누구든지 나를 믿더라도 약하다. 새롭게 하늘나라의 완전한
영으로 홀연히 변화를 받아야 된다. 토마스 주남도 내가 그 영을 새롭게 변화시켰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데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죽었던 베다니 나사로는 세상에 살아야 되기에 육신을 중심하여 부활시킨 것이다. 고로 그 전의 육
신의 몸으로 부활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육이 죽은 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육을 살리고, 영이 죽었으면 영을 살리는 것이 부활이라고 말씀해 주
셨습니다. 주님은 영을 중심으로 부활하셨기에 제자들이 보고 예수님의 영이 부활한 것으로 순간 오해하고 알았던
것입니다.
흙이 도자기로 홀연히 부활되고 꽃이 열매로 홀연히 부활되듯이, 주님의 육이 영으로 홀연히 부활되셨습니다. 고로
주님은 그 몸을 제자들에게 보이시면서 “내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보고 만져 보아라. 내 옆구리를 보고 만져 보아
라.” 하셨습니다.
선생도 예수님을 여러 번 보았는데 만져지고, 뼈도 있고, 살도 있고, 힘줄까지 다 보였습니다. 주님이 붓을 주셨을
때와 붓을 잡고 계신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손등과 손가락까지 자세히 보았습니다. 사람과 똑같은데 잔주름이 없고
피부가 팽팽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같이 다니면서 예수님이 영이라는 생각을 아예 못 해 보았습니다.
주님은 육이 영으로 변화된 실존체이신 영체였습니다. 영체의 단점은 육체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단점은 세상 사람들과는 잘 통하는데 신령한 세계의 천사나 각종 영들을 못 보고 대화도 못 합니다. 기도할 때나 꿈
속에서 겨우 몇 번 봅니다. 육체가 영체의 몸으로 부활되면 영체 중심이라 영들과 대화하며 잘 통합니다.
반복하여 가르쳐 주었으니 이제 알겠지요?
그러므로 주님은 “네가 기도 많이 하고 신령하여 내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내 말을 속히 전해 주어라. 사람도 자기
답답한 것을 해 주면 좋아한다. 나의 답답한 것을 해 주면 나는 수만 배나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오해한 사람들에게 속 시원히 대신 말을 전해 주거나 직접 말하지 못하는 심정을 대변해 주면 대변하는 자
는 그와 친구요, 그와 가까운 자요, 그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선생의 심정을 완전히 알면 전해 주되, 반
드시 내 말을 듣고 전해 줘야 됩니다. 주님의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형체를 이루지 못한 영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 영들
은 그림자 같고 환상체와 같습니다. 귀신들의 영, 유령, 잡신들의 영, 일반 사람이 죽어서 보이는 영들을 보고 ‘그
영들은 살과 뼈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육이 영으로 부활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여러분들 각자에게 계속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께 부활에 대해 확실히 잘 배웠다고 감사하다고 하기 바랍니다.
영은 항상 육을 가진 자들에게 말해도 안 통하니, 육 있는 자가 예수님을 먼저 부르고 기도하고 찾아야 됩니다. 우
리가 예수님을 부르고 찾으면 예수님은 우리를 쳐다보십니다. 고로 그 순간 느낌을 깨닫게 해 주시고 말씀을 주십니
다. 어떤 때는 보이면서 깨우쳐 주시지만, 말씀으로 제일 많이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항상 먼저 부르고 찾아
야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도 우리는 육이라서 모릅니다. 신령해야 되고 온전해야 역사하십니다. 사고가 그릇되면 주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사고가 잘못된 자는 주님이 말씀해 주셔도 자꾸 자기 식으로 생각합니다. 자기를 중심하면 주
님은 곧 끊어 버리십니다. 다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마음속에 잘 새겨서 이 진리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재림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다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예수님은 육이 영으로 부활되었다. 육신이 죽은 자는 육이 사는 것이 부활이다. 영이 죽은 자는 영이 사는 것이
부활이다. 행실이 죽은 자는 행실이 의롭게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다.」
주님의 부활의 역사가 병든 자들과, 행실과 정신과 생활이 죽은 자들에게 충만하여 모두 부활되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축 도>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무재하신 하나님, 주님을 부활시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예수님,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보혈로 속죄하시고 다시 살아나시사 복음을 전하여 우리까지 그 복음을 받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주님의 부활의 역사와,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이 충만하기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09년 4월 15일 수요말씀>
육이 영으로 부활했다
본 문 마태복음 12장 38-40절
주님의 자비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부활주일 말씀 잘 듣고 잘 보냈어요? 부활에 대해 자세하고 확실하게 깨닫게 하려고 부활절 말씀을 길게 해 주었습
니다. 이 주일은 연속해서 부활 주간입니다. 주일말씀을 생각하며 잘 듣기 바랍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하여, 영과 육에 대하여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주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다 이해하고 알기
위해서였고, 성경에 나오는 부활의 근본 말씀을 다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
에게 여기저기 순간 나타나 다니신 것을 보면 영으로 활동하신 것 같고, 또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확실히 주님의 육이 살아나신 것 같습니다.
만일 주님의 육이 살아나셨으면,
첫째, ‘주님은 왜 세상에서 복음을 펴지 않으시고 40일만 있다가 하늘로 가셨을까?’
둘째, ‘제자들은 주님의 육이 살았다는 여러 가지 말씀을 성경에 더 기록하지 않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만 기록했을
까?’
셋째, ‘세상의 이치로 볼 때 육은 마음대로 벽을 뚫고 다니지 못하는데, 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주님은 어떻게 제
자들이 모인 곳에 들어오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죽기 전에 살아 계셨을 때는 그같이 하지 않으셨는데 부활
후에만 그같이 행하셨습니다.
고난주간에 성경에 나오는 부활에 대한 말씀들을 보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자정이 지난 아주 이른 새벽
에 주님은 내게 오셔서 부활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나는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할 때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영적 부활만 외쳐 왔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의 육적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도 그 근본을 깨닫도록 말씀해 주었습니
다.
그날 새벽, 주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하지 않았느냐. 나의 계시는 이와 같
이 이러하다고 항상 말하지 않았느냐.”
“선지자 요나도 악하고 음란한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같이, 인자도 악하고 음란한 그 시대에 표적이 되
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갖은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이 그 육신을 살리어 3일 만에 육이 살아 나온 것 같
이, 나도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매달려 갖은 고통을 당하고 죽어 땅속에 묻혔다가 3일 만에 하나님이 살
리어 부활하여 나왔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주일에 이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확실히 알라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영이 큰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만일 요나의 영만 살아 나왔으면 어떻게 니느웨 성에
가서 외쳤겠느냐. 또 요나의 영만 살아 나온 것이라면 요나에 대해 말하면서 나도 그와 같다고 하였겠느냐. 요나처
럼 나도 부활되어 40일 동안 말씀하고 외친 것이다. 계시는 항상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영원히 확실히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님은 이와 같이 확실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살아서 나온 후 니느웨 성에 가서 생명을 내걸고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40일이면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여 성이 무너지리라.” 하고 외쳤습니다. 이에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있을 때 그 성읍의 왕도 그 소문을 듣고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 금식을 선포하여 모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뜻을 돌이켜 용서하시고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또 하나의 표적이
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도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2의 니느웨 성 같은 이스라엘을 돌아다니시면서 제자들과 그 시대 모든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이것이 요나와 같은 주님의 표적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행한 일들이 많지만, 요나 선지자의 표적이 주님의 입장과 같은 표적이었습니다. 고로 주님은 요나
선지자를 말씀하시며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는 어떤 환상보다도 말씀을 더 좋아합니다. 고로 주님은 이러하기 때문에 이러하다고, 항상 하나하나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 제자들이 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할 때였습니다. 모두 경
기를 지켜보며 애태울 때 주님께 말씀드리고 기도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악하고 패역한 시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
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기 10년 전에 이미 주님은 “세계적으로 축구의 세계가 올 것이다. 너희도 축구로 문화
활동을 하며 복음을 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대로 월드컵을 개최하여 축구의 붐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일
본의 제자들은 자기 나라가 16강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간구했고, 주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결국 일본은
16강에 들고, 한국은 4강에 드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표적입니다. 이 같은 표적은 한 번뿐입니다.
주님이 이 시대 우리들에게도 주님의 시대를 연상케 하며 그 노정의 역사를 해 주셨지만, 패역한 시대는 또 강퍅하
게 대하고 냉랭하게 대하며 불신했습니다. 주님이 시대의 복음을 전하라고 보낸 자들을 불신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주님을 불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믿으라고 했지, 다른 자를 믿으라고 했습니까?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나도 믿
어 줘야 내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도 믿게 되기에, 그래서 나도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온 자를 믿어
주고 시인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과 주님의 말씀을 외쳐도 그가 말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세
를 통해 기적을 행하셨듯이, 주님은 나를 통해 역사를 펴는 만큼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도 표적을 보여 주며 말씀을 전하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고 믿고 따른
것입니다. 주님도 그 시대 모든 자들이 주님을 불신하거나 이단시하지 않고 잘 따랐으면, 요나의 표적과 같은 십자
가에서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나는 고통의 표적을 보이지 않으시고, 모두 회개시켜 이상세계의 표적을 보이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어느 시대든지 보낸 자들을 통해 뜻을 펴시는데, 보낸 자를 대하는 그 시대의 행위에 따라 주님도 그 시대를
대하시며 표적을 보이십니다. 악하면 악한 대로, 선하면 선한 대로 보이십니다.
개인의 전도자로 보내셨든지, 한 교회의 교역자나 사명자로 보내셨든지, 한 민족의 사명자로 보내셨든지, 그 시대의
사명자로 보내셨든지, 하나님과 주님은 보낸 자를 사람들이 대하는 대로 표적을 보이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동안
모두 이것을 깨닫고 알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셨지만 아합 왕을 비롯한 그 시대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고 핍박하고 탄압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셨고, 이에 가뭄이 들어 대지가 바싹
말라 버리게 하셨습니다.
그 시대 이스라엘 민족과 그 당시 왕이었던 아합 왕은 부패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 신과 아세라 목
상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참하나님을 믿고 증거하고 섬기는 자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고로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은 참신이 누구인지 분별하는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께 구했으나 그 신은 어떤 응답도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구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가 드린 번제물을 태우시며 응답하셨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
명을 다 멸하여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최고 우선권으로 둔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에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았던 거짓 선지자들을 치셨듯이 이 시대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치십니다. 이를 깨닫고 어서 빨리 돌이켜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야 됩니다. 지금부터 당장 돌이켜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는 자는 주님의 재림에 해당되지 않는 자입니다. 믿습니까? 꼭!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
라고 지난 30년 동안 말해 왔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라.’고 했지요? 정말 그랬지
요? 꼭 해야 됩니다.
그 시대가 하나님이 보낸 자를 대하는 대로 하나님은 선악 간에 표적을 일으켜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역사
해 오셨고, 우리 섭리사를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불신하고 핍박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과 종들을 미워하며 살
인까지 저지른 족속의 후손들이니라. 너희도 그같이 나를 대하는구나. 그러므로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들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사가랴의 피까지 다 너희에
게 돌아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하셨습니다(마 23:34-36).
주님의 말 한마디로 지옥이 되는 것을 모릅니다.
주님은 복음을 외치러 가는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기를 “너희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을 듣지 않거든 너희 발
의 먼지를 떨고 나오라. 그들에게 심판이 있으리라. 만일 받아들이면 복을 빌어 주어라. 그러면 그들이 복을 받으리
라.” 하셨습니다(마 10:1-15).
주님은 그 시대에 원치 않으셨던 요나의 표적을 보이시며 괴로워하셨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깨닫고 알았으면 그 같은 죽음과 고난의 표적을 보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영광의 주로 표적
을 보이셨을 것입니다.
섭리역사의 선생 역시도 만일 이 시대가 받아 주었으면, 주님은 월드컵의 표적을 보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나를
한국에 보내어 청중 속에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며 계속 역사를 펴는 표적을 보이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로 평화의
역사와 각종으로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게 하셨을 것입니다.
엄청난 표적의 역사가 일어날 것인데, 기껏해야 축구하는 데 표적을 보이셨으니 나는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괴로웠
습니다. 주님은 그 시대에 요나의 표적과 같은 표적을 보이셨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괴로우셨겠습니까?
주님은 역사를 펼 때마다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표적을 보면서 주님의 심정을 모르고 좋아했습
니다. 보고 좋아할 표적이 있고 괴로워할 표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으니 믿으라고 표적을 보여 준 것인데 표
적만 보고 끝났습니다. 심판하는 괴로운 표적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됩니다.
주님이 표적을 일으키셨으나 온 민족이 하나님과 주님이 하신 것임을 알아주었습니까? 잘되면 자기를 내세우고, 안
되면 하늘을 원망합니다.
한국이 월드컵에 나가 이기고 잘되니, 주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고 오히려 누구 때문에 이겼다고만 했습니다. 나는
누구 때문에 이겼다고 할 때마다 속이 상했습니다. ‘그같이 잘하면 계속 이겨 보아라.’ 하고 운세권을 트니, 어디를
가나 ‘호랑이 앞에 고양이’였습니다.
지금까지 보았지요? 한일 월드컵이 끝나기 전부터 이미 말했습니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들어간 것은 표적이다.
앞으로 그런 일이 없다. 한 번뿐이다. 아시아에서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주님이 함께하셔야 표적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이 시대가 대하는 대로 주님은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고통의 표적과 고난의 표적 등 눈을 감고 있어도 각종
으로 일어나는 표적들이 내 귀에 들려옵니다. 시대가 대하는 대로 하나님과 주님도 대해 주십니다.
다니엘 선지자 때도 그 시대 사람들이 악하고 음란하여 다니엘을 모함하여 사자 굴속에 넣어 사자에게 잡아먹히게
하려 했지만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악한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자를 살리는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모
두 놀라 다니엘의 하나님을 찾았고, 다니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두렵게 여겼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하나님을 잘 믿고 충성스러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가 악하고 음란하여 또 그들을 모
함하여 죽이려고 풀무 불에 넣었지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살리는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태워
죽이려던 자들이 죽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자는 모두 몸을 쪼개어 죽이라고
왕이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 세 사람을 모함하는 자들을 저주하며, 이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표적을 행하시고 그 표적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자들은 개망신을 당하게 하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죽음까지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보낸 자를 통해 표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했다고 하는 자들이 있으니, 계속 기대에 어긋
나게 하시며 그 꿈들을 깨 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늘 “하나님이 하셨다. 주님이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
다.
민족도 그러하고, 섭리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선생도 어떤 자에게 사명을 주어 보냈는데, 악하고
음란하여 누구든지 그를 악하게 대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선생도 사명을 주어 보낸 자를
그 시험과 고통 중에서 빼내 주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시대처럼 행하면 결단코, 결단코 안 됩니다. 주님이 하지 말
라고 설교 때 말씀하셨는데도 또 하면 용서에 앞서 대가 먼저 주십니다.
우리 섭리역사도 시대가 악하고 음란하여 세계적으로, 민족적으로, 개인적으로 각종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
님이 지켜 주시고 주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요나와 같은 표적, 주님과 같은 표적을 보이시고, 그리고 다니엘 선지자
나 그 친구들에게 보이신 표적과 같이 각각 그때마다 해당되는 표적을 수천 가지로 보이시면서 지난날 우리를 구원
해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과 주님을 절대 섬기는 자들을 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그들을 통해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증거하면서 받은 사명들을 잘 감당해야 됩니다. 핍박과 억울함과 고통을 받는
만큼, 주님은 더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역사해 주시고 표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성경에 풍부한 부자보다 가난한 문전걸식 거지가 천국에 가기 더 쉬웠던 이유는 세상에는 의지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과 주님만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풍부한 부자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
하여 세상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힘든 일과 어려운 일을 통해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도 힘들 때 훨씬 더 주를 의지하게 되었고
더 많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하여 더 깊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도 그러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오직 영원한 세계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하룻저녁을 보더라도 잠자리가 따뜻하고 편하면 더 잠을 자게 되고 기도 시간까지 빼앗깁니다. 잠자리가 불편하면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일찍 깨어 기도하게 됩니다. 콩도 땅이 너무 지나치게 기름지면 잎만 무성하고 콩이 잘 열지
않습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환난과 핍박과 억울함을 받아도, 살기 어려워 머리 둘 곳이 없어도 낙심하지 말고 더 신앙에 충
실하며 주님 앞에 충성해야 됩니다. 그래야 정신적으로 행실적으로 더 좋은 부활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고생되어도 주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로 인하여 영을 위해 신앙적으로 더 뛰면서 살면 훗날에 수만
배 이상적인 표적이 일어나고 축복을 받습니다. 편한 상태로 그냥 놔두면 그 편한 것으로 인하여 세상으로 흘러갈까
봐 주님이 그같이 하셨으니,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고마워하며 감사해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마음과 심정
을 알아주었다며 가슴 뜨겁게 화답하십니다.
개중에는 열심히 못 해서 어려움을 겪는 자들도 있으니, 빨리 돌이켜 일어나 뛰기 바랍니다. 뛰는 만큼 주님이 역사
하십니다.
모두 자기 상태를 영계에서 봐야 충격을 받고 열심히 할 것입니다. 자기 육신을 보면 영의 상태를 알 수 있지만, 정
말 잘하는지 못하는지 잘 모릅니다. 하루만 지옥에 가서 그 고통을 겪고 오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본인이 알아서 잘
합니다.
이제 부활에 대하여 더욱 잘 알 수 있도록 말씀해 주겠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 3일 만에 살아 나와 표적을 보였듯이, 주님도 악하고 음란한 시대로 인하
여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밤낮 3일 동안 무덤에 있다가 부활되어 나왔다고 했습니다.
요나가 살아 나와 40일 동안 외쳐 회개시킴으로 그 시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여 살았듯이, 주님도 부활하시어
40일 동안 외쳐 그 시대를 살리셨습니다. 그 복음이 2000년 이상 흘러와 지금까지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때
승천하신 몸으로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가 있을 곳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제 재림하실 때가 되었으니 땅에 오셔
서 계속 깨어 있는 자들을 찾아다니시며 무엇을 예비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은 “요나 선지자처럼 나도 육이 부활했다. 육이 영으로 부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육신이 죽은 자는 육신이 사는 것이 부활이고, 신앙이 죽은 자는 신앙이 사는 것이 부활이다. 나의 육신이 죽었으
니 육신이 살아나야 부활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영이 죽었느냐? 육신이 죽었다.
고로 육이 살아나야 이치에 맞지 않느냐. 제자들도 내가 부활하여 나타났을 때 즉시 믿는 자가 없었다. 모두 내 영
인 줄로만 알았다. 육이 영으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육의 마음도 생각도 영의 마음으로 하나 되었다. 육신도 마찬가
지로 영의 몸으로 하나 된 부활을 했다. 하늘나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부활을 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
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몸은 영의 몸과 육의 몸으로, 두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서
로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바울 선생은 곤고하다고 했습니다. 영의 마음은 하나님과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육
의 마음은 육이 편하고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니 곤고하지 않겠습니까? 육도 거듭나 주님을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
면 육과 영은 일체됩니다. 온전히 거듭나면 그같이 됩니다. 거듭났어도 육이 은혜의 생활을 못 하면 영과 잘 하나
되지 못합니다.
선생은 영이고 여러분들은 육과 같습니다. 고로 여러분들이 은혜의 생활을 할 때는 나와 하나 되고, 안 할 때는 각
각입니다. 주님은 영의 몸이시고 우리들은 육의 몸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생활을 할 때 주님과 하나 되고, 안 하면
쪼개져 둘이 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살 때는 한 몸과 같이 생각하고 행합니다. 그러나 오해하고 의견이 갈
리고 싸우면 마음도, 생각도, 행동도 각각입니다.
주님은 육이 영으로 변화된 부활을 하셨습니다. 나는 주님께 말로는 듣고 믿겠으나 한번 그 실상을 보여 달라고 했
습니다.
이에 주님은 “네 몸을 가지고 그 단계에 가려면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영이 보통 육체
이탈을 하듯이 하여 가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선지자 토마스 주남도 그 영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튼튼하고
강하게 만들고, 빛보다 수백만 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참을 만들었다. 본인도 몸부림의 고통을 느꼈다고 하
지 않았느냐. 어찌 속 시원히 보여 달라고 한다고 보여 줄 수 있겠느냐.
네 꿈에서 동물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모두 계시다. 큰 새가 여자로 변하고, 어떤 사람이 가다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수없이 보지 않았느냐. 나무의 꽃도 과일로 점점 변해 가고, 음식을 먹으면 부드러운 살
로 변해 있고, 저녁노을이 시간에 따라 황혼으로 홀연히 변하고, 사람도 커 가면서 그 모습과 성격이 변화하고, 초
가집이 양옥으로 변하고, 월명동 산골이 자연성전으로 아름답게 변화되었듯이 육이 영으로 변화되는 것도 이 같은
이치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계속 말씀해 주셨습니다. (도표 1, 2 활용)
“부활에 대해 더 설명을 해 주겠다. 죽은 사람들 중에서 세상에서 더 살아야 될 사람 같으면 베다니 나사로처럼 부
활시킨다. 그는 육신을 중심하여 부활했다. 부활은 ‘원상을 회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베다니 나사로는 본
래대로 원상회복된 것이다. 육신이 주체가 되어 부활해야 세상 사람과 말도 하고 일도 하며 통하고 살 수 있기 때문
이다.
현재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은 육신이 주체가 되어 살고 있다. 그 사람들의 영은 그 육의 대상이 되어 그 속에서 살
고 있다. 대부분 육성이 강해서 영이 육에 끌려 살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죽어서 영의 세계에 살아야 되기에 육이 영으로 부활되어 천사의 인도를 받고 영계로 간다. 영
이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 그래야 영의 세계에서 영들과 통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 속에는 육신의 정신과
성격이 다 들어 있다. 육에 있던 것이 영으로 다 옮겨진 것이다. 영이 주체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는 잘 안 통하
지만, 사람들끼리 통하듯 영계의 영들과는 잘 통하게 된다. 이는 영계와 육계에 대한 하나님의 법이다. 어떤 영은
하늘나라에 가기도 하고, 어떤 영은 세상에서 재림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도표1>
* 좌측 : 세상 - 영이 육에 속해 산다.
* 우측 : 하늘 - 육이 영으로 변화되어 산다.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이 구분되어 있다. 육신이 죽은 자가 하나님의 뜻이 있어 다시 살아나 세상에 살려면 육을 주
체로 하여 부활되고, 죽어서 세상에서 더 살지 않고 영의 세계로 가서 살아야 하면 영을 주체로 한 부활을 하게 된
다. 깨달았느냐.” 하셨습니다.
<도표2>
* 좌측 : 기존에 배웠던 부활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나온 부활)
* 우측 : 베다니 나사로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육이 육으로 부활.
또 주님처럼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육이 영으로 부활.
이에 나는 “주님,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 앞의 것도 다 깨닫고 이제 알았습니다. 정말 신기하네요.” 하며 감사했습
니다.
그래서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제자들이 보았지만 즉시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주님이 살아나신
것을 전혀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에 육신이 살아왔어도 영으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영을 주체로 한 부활을 했기
때문에 더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이 닫혔는데도 마음대로 다니신 것입니다.
주님이 죽기 전에 살아 계셨을 때는 문이 닫혀 있는데 뚫고 다녔다고 기록된 것이 성경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주님이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더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죽기 전에 살아 계셨을 때도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 주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실 수는 있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에는 더 날아다니시며 여기 번쩍, 저기 번쩍 하며 일순간에 나타나셔서 말씀을 전하고 다니셨습니다.
주님은 육신이 부활되어 영의 몸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영계의 법은 육계와 전혀 달라서 세상의 이치나 법칙으로 생각하면 정말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지금 월명동 잔디밭 상단에 회골로 가는 쪽 능선에 앉아 있었을 때였습니다. ‘라디오
와 TV 전파는 정말 빠르다. 만물과 짐승들과 사람보다 더 빠르다. 왜 하나님은 만물의 영장을 짐승과 만물만도 못하
게 창조해 놓으셨을까?’ 생각하면서 주님께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나는 계속 인간의 약함을 한탄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물보다 뛰어나게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세상이 좁
아서입니까? 빛같이 빨리 다닐 수 있게 창조하셨다면 지구가 너무 좁아서 인간이 활동할 공간이 없을 것이기에 그
같이 창조하신 것입니까?” 묻기도 했습니다.
“왜 인간을 빛보다 빠르지 않게 창조하셨을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데 공중을 나는 새보다, 날짐승보다 빨리 다닐
수 있게 창조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누가 듣든지 말든지 혼자 계속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데 빛보다, 전파보다 더 빠르게 창조하지 않았겠느냐.’ 하고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
이 ‘정신’이라는 것을 그날 깨달았습니다. 그때는 영에 대해 잘 모를 때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주님께 나의
선생이 되어 가르쳐 달라고 하기 전부터 나를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결국 나는 주님께 정신의 세계에 대해 배웠고, 또 영에 대해 배웠습니다. 먼저 성경말씀을 읽고 인식하고, 내 영이
육체 이탈을 하여 빨리 이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그 빠르기가 빛보다 빠르다는 정도만 알았지 몇 천 배,
몇 만 배 빠른지는 몰랐습니다. 지금은 대강 계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산에서 과학의 세계와, 별과 달과 빛과 우주의 세계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이
과학자들로 알게 하시니, 나는 그것보다 인생들을 구원시키려면 신앙의 말씀과 영에 대해 더 배우면서 설교하는 것
과 전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때 주님이 과학을 가르쳐 주실 때 배워야 했었고, 이를 생각하니 후회가 됩니다. 요즘 다시 배우
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알아야 될 급한 것 먼저 가르쳐 줘야 하기에 과학 말씀은 선생만 알고 저장합니다.
영이 빛보다 얼마나 빠른지 계산해 볼까요?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주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거리는 150억 광
년이라고 합니다. 1광년은 빛으로 1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토마스 주남의 책을 보면, 주님이 그녀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때 그 육신은 침대에 눕혀 놓고 그 영을 데리고 가
셨는데 순식간에 갔습니다.
여러분들도 꿈에서 경험해 보기도 했고 영계에 가 보기도 했겠지만, 언제 그 원하는 장소로 갔는지 기억도 안 납니
다. 순식간에 장면이 바뀌듯이 순간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있습니다. 많이 체험해 보았지요?
우리들의 영이 하늘나라의 영으로 변화되기 전에는 그같이 빨리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일반 영들은 지상 영
계에서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로 가려면 주님이 우리들의 영을 더욱 강하고 빛나고 새롭고
온전하게 만들어 주셔야 됩니다.
이같이 영은 빛보다 상상 못 하게 빠릅니다. 우주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거리는 150억 광년이라고 했지요? 빛으로
가면 150억 년이 걸리는 거리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우주 밖에 있습니다. 우주의 중간에 지구가 있다고 한다면, 빛
의 속도로 천국까지 가는데 약 75억 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의 영이 빛보다 몇 배나 더 빨라야 천국까
지 순식간에 갈 수 있겠습니까? 대강 계산이 나오지요.
주님은 ‘영은 자기 생각만큼 빠르다.’고 늘 내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니 영은 빛보다, 전파보다 얼마나 빠르겠습
니까? 영의 속도와 빛의 속도의 차이는 빛의 속도와 사람의 속도의 차이와 같이 차이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하루는 이 세상의 천 년과 같다고 했습니다. 선생이 언젠가 설교할 때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어도
우주는 다 구경 못 한다. 그러나 영으로 구경하면 다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사 인간의 영을 세상의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게 신같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
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아야 놀랍니다.
이 신 같은 영이 하늘나라에 못 가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그 좁은 곳에 갇혀 살면서 영원히 유황불의 뜨거움 속에
서 삽니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면 그 넓은 세계를 누리며 우주 세계를 다 사용하면서 삽니다.
주님께 왜 지옥은 뜨거운 불이 활활 타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이 가스인지, 유황불인지 모르겠지만 지옥은 영원
히 불이 훨훨 타니 에너지도 참 엄청나다고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영적으로 말한다면, 지옥에 간 자들은 죄를 가
지고 갔다. 그 죄가 너무나도 더럽고 냄새가 나서 그 죄를 태우는 불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세상에 살 때 회개하고 성령의 불로 태우지 못하거나, 주님이 보혈을 흘려 우리의 죄를
씻어 없애 주셨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후에 지옥에서 태우면서 자기가 지은 죄의 불길에 휩싸여 같이 타는구
나.’ 생각했습니다.
부활 주간이라서 영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려운 세계의 일들을 더 알려고 하다 보면 잘못 해석하게 되고 잘못 인식
하게 되니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만 배워야 됩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 가야 될 몸이기에 육이 영으로 변하여 부활되었고, 선지자 요나는 세상에서 살아야 되기에 육을
중심하여 원상태로 부활되었습니다. 똑같은 물을 한 그릇씩 담아서 냉동고 속에 넣으면 얼음 덩어리가 되고, 바깥에
놓으면 그대로 물로 남습니다.
이와 같이 죽은 자 둘이 있는데 하늘로 갈 자는 육이 변하여 영으로 부활되고, 세상에 가서 살 자는 영이 육을 쓰고
육으로 부활됩니다. 그래야 영은 영의 세상에서 살게 되고, 육은 육의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예전부
터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영은 분명히 살도 있고 뼈도 있습니다. 영의 살은 육신의 살에 비할 수 없이 부드럽고, 곱고, 티 없이 맑고 빛납니
다.
영에 대해서는 성경을 읽어도 잘 이해가 안 되어서 주님을 볼 때마다 자세히 쳐다보고 만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꿈
에서나 환상 가운데 영들을 보면 만져 보고 확인했습니다. 어떤 영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내 육신이 만지면 안 잡
히고, 꿈속에서나 영계에 가서 내 영이 어떤 영을 만지면 만져졌습니다.
영은 영으로 대해야 영의 실상을 알게 되고 확실히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고전 2:13).
영도 변화되지 못한 혼적인 영이 있고, 귀신과 마귀 같은 영이 있고, 그림자같이 새까맣게 다니는 영이 있고, 형체
를 이루지 못한 영이 있다고 30개론에서 배웠지요? 영형체급, 생명체급, 생령체급이 있습니다.
영은 자기 신앙에 따라 변화되고 형성됩니다. 철같이, 동같이, 은같이, 금같이 그 형체가 모두 다릅니다. 기도를 많
이 하고, 신령하고, 의를 많이 행하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영들은 그 형체가 보다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은 영들
은 안개 같고, 물두부 같고, 순두부 같습니다. 마치 뱃속의 어린아이가 3개월 된 모습과 같고, 4개월, 5개월, 7개
월... 10개월 된 모습 같이 각각 다릅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변함없고, 긍휼과 자비가 있고, 생명을 구제하고, 기도와 찬양이 끊이지 않으며, 말씀도
확실하게 알고 행하면 영도 확실한 형체가 형성됩니다. 행위에 따라 영의 모습이 형성됩니다. 육도 자기를 가꾸는
대로 되듯이 영도 똑같습니다.
육의 삶이 확실하면 영도 확실한 형체를 갖춥니다. 이 같은 영이 주님과 더욱 일체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
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면 그 영과 육은 더욱 형체가 확실하게 존재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영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아이와 같습니다. 살얼음이 얼듯 찬물 반 얼음 반과 같고, 솥에서 끓이
는 순두부와 같습니다. 물건도 다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약합니다. 밥도 짓다가 말면 집니다. 도자기도 모양을 뜰
때는 물컹거립니다. 말리면 단단해지고, 600도에 한 번 구우면 질그릇이 되고, 1200도에 구우면 사기그릇이 됩니
다.
사람의 영도 이와 같이 이러합니다.
육신 쓴 우리의 영이 신령하고 활동을 많이 하려면 영을 중심하여 살아야 됩니다. 신앙을 중심으로 살아야 됩니다.
결혼한 남녀가 있는데 여자가 중심이 되면 남자가 여자의 일을 돕게 되고, 남자가 중심이 되면 여자가 남자의 일을
돕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영 중심이라면 육이 영의 일을 돕고 살아야 되고, 육 중심이라면 영이 육을 도우며 살아야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 세상이 육의 세상이기에 거의 육을 중심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자가 늘 남자에게 쥐여서 살면 여
자는 자유가 없다고 하며 불만이 쌓여서 남자가 잘 때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옵니다. 또 여자가 남자를 쥐고 살
면 남자는 벗어나려고 여자가 잘 때 자기 시간을 갖습니다.
이와 같이 육을 중심하여 영이 육에게 늘 끌려 다니며 살면 육이 잘 때 영이 밖에 나가서 지상 영계 이곳저곳을 돌
아다닙니다. 그러다 새벽쯤에 와서 육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자는 체합니다.
특히 강한 육성을 가진 자들의 영은 육신에 묶여 살고 육신에게 끌려 다닙니다. 고로 육이 잘 때 영은 나름대로 육
체 이탈을 합니다. 기도생활을 잘하고 육성을 약하게 하면 영이 그만큼 영의 생활을 하여 주님과 가까이하게 됩니
다. 영을 중심으로 영육 간의 삶을 살기에 신령한 영이 됩니다.
안나 수녀는 주님과 함께 영의 활동을 강하게 하니 육이 영에게 끌려 살았고, 주남 선지자도 주님과 함께 천국에 다
닐 때는 육이 영에게 끌려 살았습니다. 주님은 절대 육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육성이 강하면 영이 약합니다. 고로 영적인 자는 육성이 약하고 부드럽습니다. 바울 선생은 육신을 쳐 육성을 약화
시키니 영이 강했습니다. 육성이 강하면 영이 크지 못합니다. 금식하면 육이 약해지니 영이 활동합니다. 부모가 자
식을 꼭 쥐고 살면 자식들이 개성대로 크지 못합니다.
육도 영 앞에 그러합니다. 영이 강하면 육성이 크지를 못합니다. 신령한 자가 되려면 스스로 육성을 죽여야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둔 이때에는 영이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께 맡기고 기도를 많이 하면 영이 육을 다스리게
되고, 주님은 영이시므로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주님과 일체될 수 있습니다.
꿈속에서 선생의 영을 보거나 육을 볼 때도 있고, 육체를 이탈한 내 영을 볼 때도 있고, 영이 육체 안에 있어서 육
그대로 볼 때도 있고, 상징적으로 볼 때도 있습니다. 잘 보아야 속지 않습니다. 마귀들도 너무도 악랄하여 별짓들을
다 하며 이용합니다.
주님의 영도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 보이기도 하시고, 우리의 영이 보기도 합니다. 환상으로 볼 때도 있습니다. 본체
가 안 왔는데 영으로 비치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 본체가 천국에 있어도 보게 됩니다.
자기는 남자인데 어떤 여자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주님 앞에 신부라서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같이 보여 줄 때
도 있습니다. 몸의 한 부분을 보여 주면 자기임을 알게 됩니다. 자기 손이나 혹은 얼굴, 혹은 발 중에서 어떤 한 가
지를 슬쩍 스쳐 보이게 하여 이같이 자기 영을 비유했다고 알게 해 줍니다.
꿈에 자기 영이 육체를 이탈하여 그 영을 보기도 하고, 육신이 영과 함께 있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전혀 낯선 환경
을 볼 때도 있는데 이는 지상영계를 보기 때문입니다. 지상영계는 이 세상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
다. 교육적으로 만들어서 보일 때도 있습니다.
부활 주간이 끝나도 영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 주겠습니다.
주님은 그동안 우리에게 육신을 가진 자들의 영적인 부활만 가르쳐 주어, 우리는 그렇게만 믿고 따라왔습니다. “이
제는 보다 육에 속한 것들을 가르쳐 주니 배우라.”고 했습니다.
심판도 말씀 심판을 받지만 실제 불 심판을 받기도 하고, 육에 속한 심판을 받기도 하고, 지진·화산·홍수·태풍·전쟁
으로도 심판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영이 부활한 것만 부활이 아닙니다. 베다니 나사로는 육을 중심하여 육이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을
중심하여 육이 부활하셨습니다. 엘리야도 영만 승천한 것이 아니라 육이 영으로 변하여 승천한 것입니다. 바울 선생
이 말한 대로 지금 가지고 있는 육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 육이 홀연히 영으로 변화되어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변화산상에 나타났을 때 육이 영으로 변한 천사 같은 몸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엘리야가 영으로 왔으니
영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야는 엘리사가 보는 데서 그대로 하늘로 올려져 갔습니다. 그 성경말씀
을 보면 엘리야의 육이 올라갔는데 변화산상에 나타났을 때는 분명 영이었습니다. 육신이 홀연히 변하여 영체가 된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인데도 분장만 하면 못 알아보겠고 헷갈립니다. 옷만 잘 갈아입어도 잘 모릅니다. 이를 이해
해야 됩니다. 지혜는 이해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 같은 영을 영으로 보아 왔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육이 아니면 육이 영으로 변화된 영일지라도 영으
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 사람이라도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 사람으로 보는 격과 같습니다.
한국인 2세, 3세, 4세라도 외국 사람으로 보는 격과 같습니다. 육신이 승천하여 영이 되어 왔으면 영으로 봐야 됩니
다. 또 세상에서 영으로 변하여 하늘나라로 간 것으로 알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육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과 얼음을 달리 보듯이 영은 영으로만 인정하며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몇 가지만 더 말씀을 들으면 성경에
있는 큰 것들은 거의 다 배운 것입니다. 떡 비유도 주님은 먹는 떡으로도 표적을 일으켜 배불리 먹게 하셨고, 말씀
의 떡으로도 표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두 가지로 표적을 다 일으키셨다고 가르치면 됩니다. 그동안 섭리역사도 말씀
표적도 일으켰고, 실제로 음식을 먹여 주는 표적도 일으켰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영적 부활을 중심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실상 주님이 영적 역사만 하신 것이 아니라 육
적 역사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하셨습니다. 영만 구원받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육도 구원받게 해 주셨습니다. 영
이 죽은 자도 살려 주시고, 실제로 육이 죽은 자도 살려 주시고, 육이 죽을 자도 살려 주시고, 경제도 살려 주시고,
먹고 입는 것 등 육적인 표적을 다 일으켜 주셨습니다.
성경대로 믿고 그 말씀 따라 살고 있는데 오해받으면서 고통 받을 것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영적으로만 계속 역
사를 펴 왔기에 영들은 강합니다. 이제 육적인 것도 채워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더 표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에 놓고 주님은 “내가 말한 근본의 말씀을 몇 가지만 더 배우고, 내가 말한 대로 알고 전하면 흠이
없다. 너무 영적으로만 보면 더 큰, 육적인 세계에서 일으킨 표적을 못 본다. 나의 영만 부활했다면 표적이 될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과거에 육에 속한 표적들을 일으켜 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영이 다 살아 있습니다. 이들이 죽으면 육신은 무덤에 묻히고, 영은 살았으니
무덤에서 나와 하나님의 주관권인 빛에 속한 생명권으로 갑니다. 죽을 때부터 아예 그 영은 천사에게 인도되어 생명
권으로 갑니다. 고로 주님은 영만 부활했다고 하면 표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이 살아서 영으
로 부활했기에 표적입니다.
선생이 여기 있지만 정신과 영만 살고 육은 포기하고 쓰러져 잠만 잔다면 표적이 아닙니다. 내가 그 같으면 여러분
들이 기쁘겠습니까? 나를 본 자들이 보고 가서 말하기를 “선생님의 정신이 살아 있고, 말씀을 들어 보니 영도 살아
있고, 그 육신을 보니 운동도 하시고 밤낮 뛰고 사신다. 육도 살았더라.” 하니 기쁜 것입니다. 정신과 영만 살았고
육이 살지 않았으면 영이 육을 통해 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육이 살아야 영이 그 강한 만큼 일하게 됩니
다.
육이 영으로 부활한 것을 이제 알았지요? ‘왜 이제 가르쳐 주지?’ 하며 나에게 불만할 것 없어요. 내가 믿음이 없어
서 몰랐겠어요? 안 믿어져서 안 가르쳤겠어요? 성경을 안 읽어 봐서 안 가르쳤겠어요? 주님이 어련히 알아서 때에
따라 가르치시겠습니까?
만일 선생이 믿음이 없고 몰라서 못 가르친 것이 있다면 주님께 죄를 지은 것이니 회개기도를 해야겠지요. 여러분들
도 도마처럼 늦게 믿어 주님의 마음을 거슬렀다면 그 완악함을 회개해야 됩니다. 이제 주님의 육이 영으로 부활된
것을 믿으면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도마처럼 늦게 알게 되었지만 더욱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정말 부활의 해를
맞았습니다.
주님은 1년 더 시간을 주시면서 “이런 것들을 다시 듣고, 2009년 총 주제의 말씀처럼 말씀을 듣고 새롭게 변화하
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정신의 부활, 행실의 부활, 생활의 부활, 사망권에서 나오는 영의 부활만 집중하여 가르쳤습니다. 육
이 영으로 변하는 부활을 하려면 수십 년 걸리지만 한 번 말하면 믿을 수 있습니다. 고로 한 번 더 말해 줄 때 자세
히 말해 주는 것입니다. 100% 믿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선생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100% 믿고, 아무 의심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럼, 이제 내가 말한 것을 모두
에게 전해 주어라. 너같이 믿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도 신앙의 표적과 말씀의 표적도 있었고, 실제로 표적을 일으켜 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밥을 안 먹고서도 배가 안 고픈 정신적 표적도 있고,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상황인데 음식을 먹게 되어 실제로
배가 부른 표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양면적 표적을 일으켜 왔던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주님의 육적 부활을 믿어야 휴거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4복음서를 다시 읽어 보고, 말씀이 나가면 쉽게 깨
닫고 믿기 바랍니다.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어 줘야 됩니다. 안 믿으면 완악한 자라는 소리를 듣고, 어찌
하여 믿음이 없냐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영계에서 하나님과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면 육계의 법을 완전히 초월하여 행하십니다. 그 능력을 세상에서 행하
시면 봐도 안 믿어지고 이해도 안 됩니다. 전지전능하셔서 마음먹은 대로 다 행하시니 눈으로 직접 보아도 저능한
인간의 머리에는 안 들어옵니다. 고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보여 주며 극적인 고통을 받게 함으로 요나처럼 나가
서 외치게 하십니다.
선생도 극적인 고통을 당한 후에, 그동안 보았으나 너무 엄청난 일이라서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여 회개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받았고 수십 가지 죽음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숨기지 않고 주님이 나로 하신
일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어느 기간에 심판한다고 전하여 회개하게 했습니다. 말씀이 나갔는데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빨리 회개해야 됩니다.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행한 일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 말을 안 했습니다. 그러니 안 듣고 못 본 여러분들은 감동받는
것이 적습니다. 선생만 두려워하며 주님을 섬기게 되고, 여러분들은 주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통해
하신 말씀은 꼭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요한계시록 11장 말씀을 보게 하셨습니다. 특히 1999~2009년까지 주님이 행하신 일이 너무도 컸습
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모두 몰라서 “너 때문에 선생님이 이같이 되었어.” 하며 형제들을 탓합니다.
실상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섭리사에서 선생이 가장 잘 압니다. 그렇다고 말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주님도 세상
에 계셨을 때 귓속말로 하고자 하는 말씀을 전하셨다고 했습니다.
선생이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을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뭘 모르고 싸우고 있어도 못 싸우게 다 말해 줄
수도 없습니다. “고로 화목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천국에 못 가게 된다.”고 말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 주님이 주인이 되어 행하신 일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도 아직
다 하지 못하고 삽니다. 주님을 믿고 절대 의심하지 마세요. 주님이 알아서 하시니 주님을 믿어 줘야 됩니다.
지금도 주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기뻐하라.’고 말할 수도 없
고, ‘긴장하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각자 주님께 물어봐요.
이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그같이 육적인 표적이 더욱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노래를 작사, 작곡했는데 모두 들어 보았지요? 기념으로 주님이 선물해 주셨습니다.
부활주간에 멋있게 부활하며 믿음이 더욱 굳건한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여기서 인사하겠습니다. 안녕~
<2009년 4월 19일 주일말씀>
인생 앞에는 두 길이 있다.
한 길만이 갈 길이다
본 문 로마서 8장 6-9절, 13-14절
요나서 3장 1-10절
마태복음 7장 13-14절
요한복음 6장 63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새벽은 특히 나와 주님의 시간입니다. 새벽을 뺏기면 하루를 뺏깁니다. 주님은 “네 시간만 네 시간이다.” 하셨습니
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주님이 각자를 위해 내주신 시간만 자기 시간이지, 다른 사람에게 시간이 넘어가 그 사람
과 행하시는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시간을 많이 쓰려면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제시간을 써라.” 고 하신 것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면담해 줄 때 그 시간은 그 사람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시간을 충분히 준비하고 예비해 놓
았다가, 주님을 만나면 그때 자기 시간을 써야 합니다.
어느 날 새벽, 주님은 기도 중에 나에게 말씀하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다가 주님을 찾고 어떤 것을
물었을 때 주님은 “네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시간이다. 다음에 네 시간이 되면 말하자.” 하셨
습니다.
시간은 참으로 공정하고 공의롭습니다. 그래서 “네 시간만 네 시간이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연을 말해야 왜 이런 말씀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됩니다. 사연을 말하려면 긴 말이 필요합니다. 답만 주면 간단한
데, 이해를 하지 못하니 왜 그러한지 설명을 해 주게 됩니다. 선생은 설명식 설교를 해야 되기에 설교가 긴 것입니
다. 그 대신 말씀을 잘 깨달아 신앙의 뿌리가 깊이 들어가게 해 주고, 하나님과 주님을 더 잘 알게 해 줍니다. 저도
주님께 배울 때는 하나하나 다 물어보고 배웁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며칠 전 자정 넘어 주님이 오셔서 나를 깨워 주셨습니다. 깨워 주시고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일어나는 것은 내가 할
일입니다. 이 날은 내 인생과 섭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해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자기 앞에 두 길이 있다. 한 길은 쓸 수 없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쓸 수 있는 길이다.”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깊고 심오한 말씀으로 깨닫지 못하여 각자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을 찾지 못
하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릅니다.
누구나 자기 앞에는 두 길이 있는데,
- 두 길 중에 한 길은 가서는 안 될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자기가 가야 될 길이라는 것입니다.
- 두 길 중에 한 길은 쓸 수 없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쓸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 두 길 중에 한 길은 가서는 안 될 실패의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성공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 두 길 중에 한 길은 정말 가서는 안 될 고통의 길이고, 다른 한 길은 몸부림치면서라도 가야 될 생명과 희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축소시켜 한 개인으로 보겠습니다. 한 인생의 길에는 육적인 길과 영적인 길이 있습니다. 육적인 길은 세
상을 향해 가는 길이고, 영적인 길은 주님을 향해, 하늘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육과 영은 한 몸이 되어 서로 매여
삽니다. 육을 중심하여 살면 영의 몸이 육에 이끌려 살게 되어 결국 넓은 사망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육이 영의
몸과 생각을 따라 살면 육이 영의 몸에 이끌려 영생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 선생은 ‘육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이라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더욱 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육은 육의 체질대로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편히 살기를 원하며 육에 대한 것을 생각합니다. 영은 영의 체질과
생각대로 영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육적으로 살면 육이 천국이고, 영적으로 살면 마음이 천국입니
다.
영이 육을 따라 살면 육도 망하고 영도 망하고 끝나게 됩니다. 결국 영원한 지옥에 가서 살게 됩니다. 영을 중심하
여 살면 육도 영도 형통하고, 영원한 기쁨의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인생 앞에는 크게 보면 두 길이 있다. 그중에 한 길은 쓸모없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꼭 필요한
길이다.” 하신 것입니다.
쓸모없는 길은 왜 쓸모없는 길인가 하니, 갈 필요가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손해와 각종 해를 당하는 길
이므로 필요 없는 길입니다.
축소시켜 개인으로 보았을 때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육적으로 사는 길과 영적으로 사는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육으
로 사는 길은 세상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사는 삶이고, 영으로 사는 길은 주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한 길은 쓸데없고, 필요 없고, 손해 보고, 헛수고하는 고통의 길입니다.
다른 한 길은 희망과 기쁨과 유익이 있고 꿈이 실현되는 성공의 길, 보람의 길,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는 좋은 길입
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생들은 이 두 길 중에 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사람들은 가다가
고통스러우니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가야 할 길을 갑니다. 그렇게 가야 할 길을 가다가도 거기서도 고통스러우니 다
시 돌아가 먼저 가던 길을 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야 되는지 모르기에 고민하고, 걱정하고, 면담하여 물어보고, 검토합니다. 혹은 주님께 여쭙기
도 합니다. 전도서를 보면 두 길 중에 어느 길을 가야 될지 분별하지 못한다고 하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신
후사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를 보면 역사적으로 항상 두 길 있었고, 사람들은 개인, 혹은 가정, 혹은 민족 단위로
그 중에 한 길을 택하여 살아왔습니다. 크게 보면 가인의 길과 아벨의 길이 있었습니다. 곧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
이 있었습니다.
왕들도, 영웅 열사들도 가다가 두 길이 나타나면 어느 길을 가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판단하지 못하고 걱정
하고 고민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동안 인생을 살면서 두 길이 나타날 때마다 고민과 걱정과 염려를 하면서 마음의 고통을 겪었을 것입
니다. 기도해 보기도 하고, 한 길을 택하여 갔다가 고생되니 돌아오기도 하고, 돌아왔다가 다른 한 길도 고생되니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기도 하면서 방황했을 것입니다.
두 길이 나타났을 때 ‘이 길이 가야 할 길인가? 저 길이 영원한 길인가? 어느 길로 갈까?’ 하고 걱정하지 않으려
면, 주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주님은 이미 생명길로 가셨습니다. 그 길은 천국까지 닿는 길로 확인되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어디를 가도, 무슨 일을 해도 주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사는 삶은 완전한 길입니다. 고생되
어도, 고통의 십자가가 있어도 절대 되돌아오지 말고 가야 됩니다. 협착하고, 험하고, 좋지 않은 길일지라도 절대 돌
이키지 말고 가야 됩니다. 때로는 슬프고, 외롭고, 쓸쓸한 길일지라도 절대 돌이키지 말고 가야 됩니다.
그러면 육도 영에 이끌려 형통하게 되고, 영은 주님께 이끌려 형통하고 영원히 승리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지상
에서도 갈 길을 간 삶이 되어 보람 있고, 죽은 후에도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세상의 이론을 보아도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보아도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그중 한 길은 쓰지 못하는 길이고, 그중 한 길만 쓸 수 있는 길입니다.
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충분한 시간을 내어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께 다 맡기니 주님 뜻대로 해 달라고 하면
서, 주님만 따라가겠다고 확실히 고백합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자기 시간을 뺏기지 말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제 나의 말을 깨달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너희가 생활 속에서 배우고, 성경을 읽
어 깨닫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해당되는 도표도 그림으로 보아 더욱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음 말씀이 또 있는데, 그 말씀을 전하기 전에 주님은 모두에게 또 한 가지를 물어본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라는 나의 진실한 말을 들었느냐. 그 말을 얼마나 귀히 알고, 마지막 이때에 깨
닫고 실천하며 살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들었어도 실천해 보지 않은 자는 무슨 말인지, 왜 그 같은 말을 했는지 모른다.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육으로 가는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한다. 내 말대로 살면 그날부터 육으로 가는
길에서 영으로 가는 길로 돌이키게 되고, 육이 영에 끌려가게 되고, 영은 내 손에 끌려가게 된다. 모든 생활을 그같
이 하며 꼭 행하라. 행하면 내가 범사에 함께하리라. 형식으로 하지 말고 진실로 사랑하며 행하라. 만주의 주, 전지
전능하신 자를 우러러보면서 행하고, 좋아하며 행하고, 하고 싶어서 행하고, 그동안 행하지 못한 죄를 씻는다고 생
각하면서 행하고, 과거에 못한 것을 정말 회심하면서 행하고, 사탄·마귀·귀신 주관 받지 않고 짐승의 인을 맞지 않
으려면 행하고, 내가 예비한 나라에 와서 영원히 살려면 행하라. 너희가 행한다 해도 행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
지 않았다. 고생이 되어도 행하고, 핍박이 와도 행하고, 자기 소원대로 무엇이 안되어도 낙심 말고 행하라. 모든 것
이 끝난다고 한 날이 가까웠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는 자고 쉬어라. 모
든 것이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기도시간에 졸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회개
하라고 주신 기회의 시간입니다. 회개의 기회는 각자 다릅니다. 날짜도 다릅니다. 시간도 다릅니다.
저는 주님께 섭리 사람들이 주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나
를 믿고 따르는 것이 나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생활 속에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주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몇 가지 말해 줄 테니 들어 봐요.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먼저 최우선으로 해야 됩니다. 그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없어서 다른 일을 못 하니, 세상에
빠지지 않고 육의 시간을 쓸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모시고 사는 왕을 제일 먼저 대접하고, 그가 시키는 것을 먼저
하고, 어디를 가나 그가 먼저 앉게 하고, 매사에 그를 우러러보듯이 주님을 대해야 됩니다. 항상 주께 먼저 묻고, 그
말씀을 우선으로 행해야 됩니다.
섭리 사람들은 그동안 이같이 해 왔습니다. 선생이 순회 가면 먼저 선생을 최우선으로 하여 “오늘 어떻게 해야 되지
요?” 묻고, 선생이 프로그램과 시간을 짜 주면 그대로 했습니다. 나의 계획이 있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다 짜 놓으면
선생은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에게 묻고 했듯이, 생활 가운데서 항상 주님께 그같이 해야 됩니다.
주님께 항상 자기를 맡기고 살아야 됩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놓고 살아야 됩니다. 흔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다 된 것으로 알고 삽니다. 매시간 주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지 않습니다. 최우선으로
주님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 깨끗한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결혼을 했거나, 누구를 모시고 살거나,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먼저 그를 먹이고 입히고, 먼저 그 일을 해 주고, 먼저 묻고, 먼저 생각하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믿어 주고, 먼저
그의 말을 들어 보는 것이 최우선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묻지도 않고, 말도 들어 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면 결
국 자기 혼자 남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기를 바라십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함이고, 주님
이 근본자시며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주님이 긴급히 하신 말씀이기에,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최우선 순위로 놓고 지켜야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는데도 생활 속에 주님을 최우선으로 놓고 살지 않는 자는 주님의 기대를 깨뜨리는 자입니다. 주님
은 회개하여 온전하게 살 기회를 잠깐 주시고, 회개하여 온전하게 살지 않으면 그 사람 대신 행하는 자에게 중심을
두십니다. 행하는 자를 사랑하는 신부로 삼으십니다.
선생도 섭리의 제자들을 30년 동안 겪어 봤지만, 자기가 아쉬울 때 나를 찾습니다. 필요할 때 찾습니다. 내가 필요
할 때는 찾아도 없습니다. 이런 자는 범사에 나와 동행하는 삶이 아니고 자기 우선권으로 사는 자입니다. 이로써 그
사람에 대해 다 압니다.
주님도 “너와 같이 나도 그러하다. 네 심정을 통해 내 마음을 알고, 너는 나를 최고 우선순위에 놓고 살면서 본을
보여라. 그리고 가르쳐 주어라.”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처음에는 얼굴만 안 보여도 못 참고 쫓아가 얼굴을 맞대고, 시장이고 거리고 부엌
이고 논밭이고 따라갑니다. 주님도 사랑하는 자에게는 얼굴이나 마음이나 몸이나 조금도 떨어지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을 필요할 때만 찾고, 문제 있으면 찾고, 걱정할 때만 찾고, 아플 때만 찾습니다. 좋을 때는
자기 시간 다 내어 제 맘대로 친구들과 놀고 먹고 생활하다가, 밤에 사람이 없으면 외로우니까 벽에 걸린 주님의 사
진이 보이고 그제야 생각나 주님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주님의 신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입
이 떨어져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양심이 야심(野心)인 사람’입니다. 야심만 정신과 마음에 꽉 찬 사람입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먹고 나서 주님 생각하고, 입고 나서 주님 생각하고, 무슨 일을 다 하고 나서 주님 생각하고, 실컷 다른 사람 사랑
하고 나서 주님 생각하고, 제 맘대로 다 하고 나서 주님 생각하고, 장편소설 쓰듯이 보고나 잔뜩 하고 나서 시간이
남아 할 말이 없으니 주님 이야기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휴거에 대한 말씀을 들을 자격이 있겠습니까?
오늘부터 모두 싹 자르고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됩니다. 먼저 육적인 행실과 마음과 정신의 휴거부터 하고, 그러고
나서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 불 때 곧 오실 주님을 맞고 휴거하는 데 준비하기 바랍니다.
자기가 행한 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면 회개를 안 합니다. 오히려 의인지 알고 복을 기다립니다. 깨우쳐 주지 않으
면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지옥에 간 자들이 자기가 행한 것이 죄인 줄 알고 그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갈 줄 알았다면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옥을 모르니 지옥에 가고, 천국을 모르니 천국에 못 가고, 주님을 모르니 제대로 믿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한 번이라도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어떻게 하라고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서
잘하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없어서 지옥에 못 가니 갔다 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책도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말씀해 주셔야 믿겠어요? 사명자들과 보낸 자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은 주님이 직접 나타나 말씀하셔도 그때뿐입니다.
주님은 내게 “그때뿐이면 안 된다. 겨울철이나 여름철이나 물이 뜨거울 때 씻든지 빨래하든지 물을 써야 된다. 이와
같이 내가 말한 것을 듣고 즉시 행해야 된다. 뜨거운 물도 안 쓰면 찬물 된다. 내가 말한 것도 행하지 않는 자는 듣
지 않은 자와 똑같다. 계속 말해 줄 수가 없다. 계시는 한두 번 하고 끝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나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설교 중에 ‘주님이 버린다면 인생은 한 점의 고기 같은 인생에 불과한데, 감히 주님
앞에 그것 가지고 목에 힘주고 살고 과시하고 사느냐.’라는 말씀을 듣고 크게 감동됐다고 했습니다.
설교를 깊이 듣고 감동받아서 주님께 진정 그러하다고 말씀을 시인했더니, 그날 밤 꿈에 한 계시를 보았다고 했습
니다. 고기 한 점을 석쇠에 굽는데, 그 밑에서 어디서부터 올라오는지 알 수 없는 새파란 불이 한없이 올라와 고기
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것이 자세히 보이면서 ‘인생도 이와 같다.’고 깨닫게 해 주는 계시였다고 했습니다.
인생도 그러하다고 축소판 지옥을 보여 준 것입니다. 원래 그 설교는 지옥을 생각하면서 해 준 말씀입니다. 지옥에
가면 각각 방이 있는데 그 바닥에서 유황불과 파란불이 올라와 살을 태웁니다. 그러면 너무 뜨거워서 이를 갈며 소
리를 지릅니다. 고로 주님을 찾을 때 간절히 부르면서, 박박 기면서 오라고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말씀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성이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직전에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지 못했습니
다. 고로 니느웨 성에 가서 그들이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회개를 시켜야 될 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피하
여, 두 길 중에 쓸데없는 길인 다시스를 택하고 그 길로 향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요나가 탄 배에 풍랑을 일으키시고 배의 선원들이 다 죽기까지 고통을 주셨습니다. 선원들은 배에 죄
인이 탔다고 하며 제비를 뽑았습니다. 결국 요나가 걸렸고, 이방인들에게는 큰 죄를 짓지 않았으니 죽이지는 않고
자기들 방법대로 요나를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선원들은 요나에게 “네가 정말로 하늘 앞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며 확인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
고 다른 길로 간다고 했습니다. 선원들은 “네가 어찌 바다와 하늘을 창조한 자의 말을 거역했느냐.” 하며 요나를 바
다에 집어던졌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 요나는 그 뱃속에서 3일 동안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지옥의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요나 개인의 일이 아니라 니느웨 성 12만 명의 생명에 해당되는
일이었습니다. 요나가 회개하니 큰 물고기가 토하여 요나는 그 속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참으로 표적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각자 겪었으며 민족적으로도
겪었습니다. 주님도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베다니 나사로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꼭 죽을 생명들
을 살려 주시고, 꼭 안 될 것을 되게 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수천 건이 나옵니다. 수만 건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 성령님과 함께 개인·가정·민족·세계적으로 도와주신 모든 일들이 실상은 요나 같은 표적입니다.
다윗 시대에도 다윗 한 사람을 도와주셔서 이스라엘 온 민족이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이같이 살아난 사람들을 개
인적으로 다 따지면 수십만 건이 됩니다. 깨달아야 감사하게 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후에 어느 길로 갔겠습니까? 요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
으면 40일이면 이 성이 멸망한다. 무너진다.’고 외치기 위해 즉시 밤낮 3일을 걸어서 니느웨 성으로 갔습니다.
니느웨 성에 가서 자기 죄로 인하여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 받았던 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목숨을
걸고 외쳤습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 모두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이 성을 하나님이 멸하여 무너지게
하신다.”고 목숨을 걸고 외쳤습니다. 죄를 짓고 살았어도 하나님 앞에 죄인 줄 모르고 사니 깨우쳐 주며 외쳤습니
다.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실 때 죄인데, 죄로 생각지 않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생활로 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
들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며 죄로 보지 않습니다. 우상 자체를 자기가 좋아해서 섬기는 신으로 봅니다.
‘종교는 자유’라고 세상의 법을 말하며 삽니다. 세상 법이 하나님 법에 통합니까?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입니다.
세상 물질을 사랑하는 것도 자기가 땀 흘려서 번 돈으로 자기가 필요해서 쓰는 것인데 무슨 죄냐고 합니다. 이성의
세계도 자기가 사랑하니 그렇게 사는 것인데 무슨 죄냐고 하며, 도리어 그런 것을 지적하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왜 죄인지 말해 줘야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창조한 인생으로 태어나 하나님 때문에
살고 있는데, 자기 위주로 사니까 죄인 것입니다. 이를 모르니 깨우쳐 줘야 됩니다.
요나는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다니면서, 자기가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외쳤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니느웨 성의 왕도 온 성에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하게 했습니다. 가축도 돌보지 말고 높은 자와 낮은 자를 막론
하고 모두 금식하며 회개하라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에 온 성이 슬피 울면서 자기 죄와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하지 못한 것을 회
개했습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고, 음란한 행위를 하고, 거짓과 미움과 싸움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공의롭지 못하게 살았습니다. 정치인들이나 법관들이나 상인들이나 백성들 모두 소돔 땅을 방불케 하는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이 시대와 똑같았습니다.
죄가 있는데 하나님이 주신 기간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개인·가정·민족·세계적으로 하나님이 정한 날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진·태풍·홍수·가뭄·화재·더위·추위·경제난·각종 병·전쟁으로 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