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09.01.25 (일)
090125 주일말씀 진리와 증거의 영, 성령
- 선포일
- 2009.01.25 (일)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5장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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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5일 주일말씀>
진리와 증거의 영, 성령
본 문 요한복음 15장 23-27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명절로 인하여 이동하느라 바빴지요? 한국을 비롯한 몇 나라들은 음력
으로 설을 쇱니다. 명절 때문에 기쁜 사람도 있겠지만, 슬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가 되시고, 주님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되어 주시니 항상 이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됩니다.
부모가 없다고 슬퍼하고 마음 아파할 것 없습니다. 그 슬픔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주님은 기쁨의 날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저도 지난날 슬픈 날이
있었지만, 그 슬픔으로 인하여 내 인생이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주님은 각
종으로 표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지난해는 고향과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외롭게 명절을 맞았는데, 올해
는 한국에 들어와 10년 만에 처음으로 여러분과 함께 명절을 맞게 되었습
니다.
오늘은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되지요?
본문 말씀을 먼저 들어 보겠습니다. 주님은 그 육신이 제자들과 이별하
게 될 것을 아시고, “걱정 마라. 오히려 너희에게 더 좋게 될 것이다.”라
고 말씀하시며 깊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희도 나도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에게 무고히 많은 미움을 받아 왔
다. 실상,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다. 저들은 내 아
버지께서 「왜 너희는 나를 그렇게도 미워했느냐?」하면 「언제 감히 미워
했나이까?」할 것이다. 이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낸 자를
미워한 것이 나를 미워한 것이니 너희들에게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저들에게 아무도 말하지 못한 무지와 죄를 말하지 않았으면 저희가
죄 없으련만, 온전한 말씀을 듣고 아버지를 보았어도 미워하는도다. 이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저희가 연고 없이 무고히 나를 미워하였다 함이 응하
였느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
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와 너희들을 미워하고 죽이는 자들은 자기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 내가 너희들에게 미리 말함
은 그때를 당하면 생각나게 하려 함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앞날에 있을
일과 과거에 당하신 일들을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과 주님이 보내어 일하는 자들을 미워하는 자는
역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보내어 일하라고 한 자를 누가 미워하면, 바로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이후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며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고, 말씀대로 제자들과 이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임하여 주님을 자세히 증거하게 했습니
다. 성령의 감동은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이 메시아임을 더 확실히 알게 해
주었고, 더 확실하게 주님을 증거하게 하여 더욱 사명감이 불타게 해 주었
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더욱 하나 되었고, 복음의 역
사가 이방으로까지 강물처럼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구세주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이 다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친히 말씀하신
것을 주님은 이루셨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다 이
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하나님은 약속대로 2000년
동안 이루어 오셨고, 주님도 그를 믿는 자들과 함께 이루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 하신 일은 성경에 기록된 것뿐만이
아닙니다. 아담 이후 6000년 동안 상상도 못 하게 모든 자들에게 역사해
오셨습니다. 온 세계, 각 나라, 각 개인에게 행하신 일은 너무도 많고 많아
서 세상 어느 누구도 다 말할 수 없고, 각자 자신에게 행해 주신 일들도
자기가 죽는 날까지 다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많고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각자에게 행한 일들을 하나하나 다 감사하다고 말
할 수 없고, 모든 자들에게 다 증거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
인·가정·민족·세계에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영광 돌
리고 많은 자들에게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도
리이며, 또 책임을 다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에는 특히,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신 것만 나와 있습
니다. 여러분들의 나라를 도왔다는 성구는 찾아볼 수 없지요?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도와주었다는 성구도 없지요?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만 도
우시고 그들에게만 기적을 행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듯이, 이 시대 우리들도 사랑해 주시
며 역사해 오셨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사랑하고 도왔던 자들도 함께
하여 이 시대 사람을 돕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도 각 나라와 개인들을
돕고 함께해 주시며 역사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구 세상 모든 인생들
과 각 민족에게 성경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이 역사해 오신 것을 절실히 알
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이 우리도 돕고 함께하신다고 말씀하
는 것입니다. 모두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 봐요. 또 지금 이 시간에도 생
각해 봐요. 그동안 각 개인, 가정, 민족에게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이 돕
고 함께하신 일이 무엇인지 회상해 보기 바랍니다. 알면 더 역사해 주십니
다. 모르는 자에게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너희 전쟁의 날에나, 환난의 날에나, 죽음의 날에 돕지 않았
으면 호흡을 하는 자들이 없고, 살아 있는 자들이 없다.”고 주님은 확실하
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2절을 보면, 택한 자들을 위하여 죽음의 날과 전쟁의
날과 환난의 날들을 감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
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들로부터 믿지 않는 자들까지 도우
시고, 그 생명들을 생각하시어 고통과 죽음들을 감해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가정과 민족과 세계 환난의 날을 위해, 또 자기 환난의 날
을 위해 열심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가정도, 민족도, 섭리도 자기같이 사랑
하며 삶을 살아야 됩니다. 가정이나 민족이나 섭리가 죄를 지으면, 마치 자
기가 지은 것처럼 회개하고, 걱정되는 일과 환난이 있으면 자기 걱정과 환
난으로 생각하며 기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의 기도를 꼭 들어주
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말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여러분들과 각 가정과 나라들을 위해 역사해 오신 것을 여러분들이 직접
말하면 다른 자들도 깨닫고 알게 되니, 지난날들을 열심히 생각하며 감사
해야 됩니다. 그래야 새롭게 변화하는 해가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알거나, 멀리 하늘나라에 계시는 멀고 먼
하나님으로만 알지 말아야 합니다. 나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 작은 일도
큰일도 돕고 신경 쓰시는 하나님, 사람보다 더 가깝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
님을 깨달아야 됩니다.
사람은 자기 원하는 일이나 어려운 일을 말하지 않으면 못 해 주고, 아
예 관심이 없는 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심을 확
실히 알고 믿어야 됩니다. 이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었어
도 막연히 믿고 조금만 알면, 이는 마치 세숫대야에 들어가 목욕하는 자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입니다.
사람도 아닌 하나님이 자기 민족과 가정과 각 개인들을 돕고 함께해 주
셨는데, 도움을 받은 자가 모르면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지 않는
자는 받고도 죄를 지은 자가 됩니다.
개인과 가정과 민족이 생명에 관한 것이나 어떤 어려움에 처해서 도와
야 할 때는 하나님 자신의 일, 주님 자신의 일을 하듯이 행해 오셨습니다.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자에게 더욱 함께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어떤 환난과 어려움일지라도 공중에 바람이 지나가
듯 아무도 막을 수 없이 행하십니다.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그의 몸이 되
어 그의 일을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행하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생
활하면서 제자들이나 세리들과 창기들, 그리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사는 자들과 세상에서 버림받고 사는 자들과 희망 없
이 가난 속에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과 병들어 고통 당하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사랑하는 대상이 되어 주며, 구원을 위해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
하나님을 믿게 함으로 구원을 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사망
권에서 나오고, 고통 받는 데서 건강하게 되어 자유로운 영혼과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 같은 일을 우리와 모든 자들에게 사명자들을 통해 행
하시고, 또 직접 행하기도 하십니다.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주님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사랑하여 생명들이 위험할 때 항상 구원하시
고, 건강 문제나 고민·걱정·염려를 당한 자들을 이끌어 내 주시며, 영으
로서도 밤낮으로 작고 큰일들을 도우시며 바쁘게 우리들을 관리하십니다.
눈에는 안 보여도 주님을 부르고 찾으면 일순간에 오셔서 역사하기도
하시고, 오시지 않고도 옆 사람을 통해 돕게 하시고, 자신에게 깨닫게 하여
이기게 하시고, 수천 가지 방법으로 돕고 행하십니다. 이같이 돕고 함께하
는데도 인생들은 늘 걱정과 염려를 하고, 사고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평소 주님의 말씀대로 “너희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큰일은 도와준 것이 금방 생각나고 깨달아 알게 되지만, 작은 일은 도
와줘도 잘 모릅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도와주었으면 작은 일이나 큰일
이나 다 큰 것으로 알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 환경에서는 그 환경에서 돕
고 함께하시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령, 혼자 밤길을 갈 때 꼭 누구를 보내 줘서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에 사람을 보낼 수 없는 처지라면 자신의 마음을 담대하게 해 주심으
로 도우시고, 천사도 동행하게 하십니다. 또 어느 때는 거기 있는 자를 통
해 돕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마음속에 “내가 너와 함께하니 두려워 말
라.”고 하십니다.
어느 때는 힘든데 자기를 위로할 자가 없어 힘들어할 때 깨닫게 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힘내.” 할 때도 있고, 어느 때는 꿈으로 보여 걱
정이 안 되게 해 주시고, 어느 때는 한입 먹을거리를 주면서 주님이 챙겨
주심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 환경에서는 그 환경에 해당되게 돕기 때문에 별 표가 안 납니다. 작
지만 그 환경 때문에 그만큼밖에 못 도와주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환
경 때문에 그만큼밖에 못 도와주었어도 해결되니, 작지만 감사하고 기뻐하
며 영광 돌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겪고 이에 해당되는 말씀을 받았어도 말로
깨우쳐 주기 정말 힘든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 한 번 더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때는 가을이었습니다. 산에서 기도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지금도
포도가 있을까?’ 하고 숲 속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때가 지
나 반쯤 물기가 빠진 마른 포도송이 몇 개를 찾아 따 먹게 되었습니다. 정
말 꿀맛이었습니다. 너무 양이 적어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서는 환경상 더 이상 포도를 찾을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
니다. 환경 따라 주시는 것이니 「줄 수 없는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미련을 두고 1시간 동안 더 사방을 돌아다녔는데, 마른 포도 한
알을 더 찾지 못했습니다. 그 환경에서는 없어서 더 줄 수가 없었던 것입
니다. 그 환경에서 최고로 도와주신 것입니다. 철이 지나 마른 작은 포도를
찾아 먹게 했어도 그 환경에서 최고로 주신 것임을 깨닫고, 여러분들도 그
같이 환경 따라서 주기에 작은 것을 주었어도 큰 것으로 알고 주님의 심정
을 알아야 됩니다. 심정 모르면 주님께 붙은 지체가 아닙니다. 지체는 같이
느낍니다.
- 하나 더 이야기할까요? 들으면 모두 주님의 사랑에 가슴 뜨끔할 것
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극적인 어려움 속에 정말 속으로 깊
은 한숨을 쉬면서 보내던 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먹는 것에도,
그 어떤 것에도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생각도 없이 살 때였습니다.
내 그릇에 밥과 국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국을 떠 주는 아주머니가
국을 세 번, 네 번 저었는데 건더기가 뜨지 않았습니다. 이 날은 고깃국이
었습니다. 다시 저으니 수제비만 한 고기가 한 덩이 떴습니다. 그것을 내
국그릇에 넣어 주었습니다.
‘아무리 저어 봐도 더 없구나.’ 하는 소리가 번개처럼 선연하게 들려
왔습니다. 주님의 심정의 소리였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소리였습니다. 식사
를 갖다 놓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
기를 “이같이 너를 사랑하는데 내 심정 아느냐. 내 앞에서 무슨 한숨을 그
리 쉬느냐.” 했습니다. “이 환경에서는 더 건더기를 찾을 수가 없구나.” 하
셨습니다.
참 지극히도 챙겨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
으니 주님이 그같이 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도와주니 걱정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주님은 나를 도
와주셨습니다. 감사하지요?
그때부터 나의 한숨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세상 그 아무도 네게 안
와도, 내가 오면 최고다.’ 하는 주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지극히도 챙긴다.」는 시를 머릿속에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주님은 모든 인생들을 지극히도 챙겨 주십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
면 항상 불만입니다. 챙긴다는 말을 깨달았지요? 작아도 큰 것임을 깨달아
야 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 주시어 그
환경에서 우리들이 처한 어려움과 각종 처지에서 최고로 도우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생각을 새롭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주님은 그같이 해 주셨습니다. 모두 주님이 이같이
역사하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동안 이같이 역사하신 주님의 심정과 사
랑을 모르는 자들도 이제 알았으니 감격하며 주님에 대해 다시 새롭게 생
각하고 대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챙겨 주십니다. 작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래밖에 없는 사막에서는 모래 중에 큰 것 하나를 쥐어 주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이왕 도울 바에야 돌을 주워 주
시지.’합니다. 큰 것을 받아야만 큰 것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그 시대,
그 환경에서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주시는지 깨달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받고도 고맙다고
하지 않고 작다고만 합니다. 없을 때는 없는 대로 도우시고, 있으면 있는
대로 그때 더 크게 도우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그같이 행
하십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한숨 쉬면 안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는 하
나님 주관권이고, 불만과 한숨과 원망들은 사탄 주관권의 세계입니다. 주님
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나 죗값 받는 거
야.’ 하기 시작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좌절까지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하나님과 주님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서운함과 섭섭한 마음은 독약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과 주님 앞에서도 절대 그같이 생각 말아라.”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혹시 그 같은 마음이 생기면 간절히 기도하여 순리적으로 자
기도 자기 것을 얻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남처럼 자기도 똑같이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개성대로 자
기 위치에서 자기 사명 하고 살면 됩니다. 자기가 구하지 못해서 못 받는
것도 있고, 또 자기에게는 다른 것을 주기 때문에 못 받는 것도 있습니다.
많이 맡은 자는 많이 해야 되고, 적게 맡은 자는 적게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받아 크게 하고, 자기는 적게 받아 작게밖에 못 한다
고 비교하면서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감사하며 하나 되어 하지 않
으면 주님의 심정을 모르는 자요, 지체가 주님과 붙어 있지 않은 자입니다.
가르쳐 주었으니 알고 기쁨으로 행하기를 바랍니다.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과
주님이 행하시는 일이 다르고,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 다릅니다. 하나로
역사하시나 행하시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애인같이 챙기시고, 부모가 자녀를 챙기듯이 돕고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살아서 복음을 전하
실 때와 같이 성경대로 말씀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시고, 해야 될 것과 하
지 말아야 될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다 말할 수 없으니 4복음서를 잘 읽어 보기 바랍니다. 소경과 앉은뱅이
들과 각종 병으로 아픈 자들이 주님을 쫓아다니면서 낫기를 구했을 때
“네가 원하는 대로 낫기를 원한다.”고 하시며 낫게 해 주셨습니다. 하고
자 하는 자에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지키려 심혈을 기
울이는 자와 순종하는 자를 챙기시고 그와 동행하시며 사랑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책임의식을 느끼고 주님의 일을 자기 일같이 행하며 사
명에 충성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말만 하지 않고 직접 행하며 형제
들을 자기 몸같이 아끼고 돌아보며 화평케 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며
낙심치 않고 부지런히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겸손으로 행
하며 형제들을 자기보다 높게 여기고 위해 주고 섬겨 주는 주님의 마음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같이 사는 자들을 보고 주님은 기뻐하신다고 했습니
다. 주님이 실천하는 본을 보여 주셨으니 우리는 그대로 해야 됩니다.
“어떤 환난과 고통이 와도 낙심치 말고 끝까지 하라. 뜻이 있어 받아야
되고, 또 환난을 받는 만큼 돕고 함께한다. 이 후에는 다 갚아 주고, 그로
인하여 신앙이 더 빛나게 되고, 생명길을 가는 기회가 되게 하는 것이니
감사하며 가야 앞에서 기다리는 주님을 만나 동행하게 된다.”고 가르쳐 주
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으니, 그 수고가 헛되지 않게 우리는 주
님의 말씀을 행해야 됩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를 상속받기 위해서라도 끝
까지 해야 된다. 너희가 고통 받는 것을 알고 있고, 이에 어떻게 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니 이를 믿고 어느 때든지 같이 열심히 해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낙심하고 실패하고 자포자기하고 믿음을 파선하게 됩니
다.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오직 주님이 해 주심을 깨닫고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 말을 믿고 말씀 따라 실천하며 살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쓰이는 지체입니다. 항상 주님께 쓰이는 지체가 되
어야 합니다. 주님께 신앙으로 붙은 지체이면, 주님의 마음과 같이 행해지
는 것입니다.
한번은 주님을 믿는 자와 주님을 믿지 않는 자, 두 형제 사이에서 일어
난 일을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한 형제가 있는데 그는 주님을 믿
고 사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른 형제의 마음을 거스르면서 미워하며
화평하지 못하게 지냅니다.”
이에 주님은 “내게 붙은 지체가 아니므로 그러하다. 나는 그같이 가르
치지 않았는데, 그같이 한다.”고 하며 노여워하셨습니다. “형제에게 미움을
받고 심적 고통을 받는 자가 신앙생활을 하면, 차라리 내 맘에 들게 한다.”
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교훈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심정 상한 한 형제를 다시 만나 주님이 하신 말씀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차라리 당신이 주님을 믿으면 잘할 사람입니다. 주님
은 당신을 보고, 주를 믿으면서도 그같이 사는 형제와 같지 않고 잘할 사
람이라고 하십니다. 또 당신이 주님을 믿기 원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그
는 자기 심정을 잘 안다며 교회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눈을 보니 눈
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핑 도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모두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주님께 붙지 않은 자는
구원에 지장이 생깁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주님께 붙은 지체가 아닙
니다. 주님의 몸과 하나 되어 붙은 몸이라면, 주님의 말씀대로 행해지는 것
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23절을 보면, 그리스도께 붙은 자가 주와 같이
휴거되며 데려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고전 15:22-23)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
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
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
게 붙은 자요』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 되듯이, 주님께 붙어 하나 된 자가 그와 함께
휴거되어 새로운 세계로 가서 살게 됩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은 수천 가지라서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용
서해 주시고, 심판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고, 잘했다 칭찬도 해 주시고, 화
목과 축복을 주시며, 치료하시고, 위로하시고,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교만
한 자, 시기 질투하는 자,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용서치 않는 자, 외모
만 치중하고 형식에 치우치는 자, 의심하는 자,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
한 자들을 책망하시며 행한 대로 대해 주십니다.
주님이 열심히 하는 자들에게 전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름이 없
고 소문이 안 났어도 열심히 봉사하며 충성하는 자를 내가 안다. 살아서
동행하며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니, 사람들은 몰라 줘도 나는 다 안다. 천
사들을 통해 보고받고 알고, 또 직접 보고 안다. 그러니 죽도록 열심히 하
라. 사람이 못 챙기면 때가 되었을 때 내가 꼭 챙긴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행하는 일들과 주님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두고두고 말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주님에 대하여 더욱 새롭게 생각하고
주님을 대해야 감격하게 되고, 심령의 변화와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
다.
다음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말하겠습니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은 많고도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진리의 성령이 증거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에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에베
소서 4장 30절에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가르쳐 주실 때 “성부는 아버지 같고, 성자는 아들 같고,
성령은 어머니 같다. 모두 한 성령 안에 하나다. 성부, 성자, 성신은 한 지
체와 같다.”고 했습니다.
신학에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로 나누기도 합니다. 모두 하
나님의 사역의 존재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후에는 성
령이 증거하며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감동시키시고, 움직이게 하시고, 행하게 해 주십니
다. 하나님은 명하시고, 예수님은 가르쳐 주시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어 행
하게 해 주십니다. 각각 나누어 행하시지만, 어느 때는 주님이 다 행하기도
하십니다. 인간의 몸과 정신과 영은 각각 존재하고 있지만 일체이듯이, 성
부 성자 성령도 일체이시면서 각각 존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뜻있는 일을 행하실 때는 하나님이 명하시고, 주님은 가르쳐
주시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어 일하게 하십니다. 감동으로 말씀하시는 성령
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의 감동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습
니다. 성령은 감동을 일으켜 할 수 있도록 움직여 주시고, 감동으로 깨닫게
해 주시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감동의 신입니다.
모두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보았지요? 성령에 감동되면 가기 싫은데 가
고 싶어져 시동이 걸린 자동차처럼 쉽게 가집니다. 가 보면 생각한 것이
행해집니다. 성령은 감동 감화의 존재이십니다. 성령은 깨닫게 해 주고, 생
각나게 해 주고, 깨달음으로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몸이 뜨겁게 되는 징조가 일어나고, 몸에 진동이 일어나
기도 하고, 영의 눈이 열려 신령한 세계를 보게 되기도 합니다. 성령에 감
동되어 교회에 오기도 했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영의 세계도 가게 되고, 하
나님의 뜻있는 곳으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성령의 역사로 사도의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사
도행전 7장 55절을 보면, 스데반은 순교 당시 성령에 충만하여 기도했습
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그 당시에 옳고 그른
것을 담대히 외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12절을 보면,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주님의 사도들
을 핍박하고 옥에 가둘 때 그들이 사도들을 모아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
구의 이름으로 이같이 표적을 행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성
령에 충만하여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죽여서 버린 자, 곧 죽은 자 가
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이룬다. 예수는 너희가 버렸지만, 건축자들이 가장
귀히 쓰는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며 담대히 외쳤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진리에 대하여 담대하게 외치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자는 내가 제대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동이 걸리지 않은 자동차를 쓸 수 없듯이, 성령의 감
동과 감화를 받아 움직이고 행동해야 쓸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
다.
성령이 주시는 감동과 감화를 충만하게 받을수록 자기 스스로 원하여
행해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알아서 주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
려면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성령님이 친히 오셔서 감동하
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됩니다.
성령의 이론을 가르쳐 주면 행하는 자만이 직접 겪게 되고, 실제로 이
루어져 느끼고, 마음에 깨닫고 몸에 와 닿아 제대로 알게 됩니다. 모두 가
르쳐 주었으니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게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누가 말하기를 “나도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싶으니, 성령이 역
사하는 곳에 가서 불을 붙이고 와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을 붙여 주고 싶
다.”고 했습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때가 되어야 하
니, 사도 시대 때처럼 열심히 기도하며 기다려라.”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도 시대 때도 때가 되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어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을 간구하고 원해야 됩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가 없으면 답답하고,
몸이 무겁고 마음도 무겁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게 되면 방언도 하
고, 예언도 하고, 병 고치는 역사도 일어나고, 화목하고, 서로 유유상종하
며 돕고,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서 번개처럼 빠
르게 날아서 행하게 되고, 가슴이 뜨겁고, 기쁘고, 즐겁고, 희망에 벅차고,
능히 행해지고, 믿어지고, 낙심도 걱정도 사라지고, 주님과 일체되고, 고난
과 역경도 이기게 되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되고, 얼굴에 근심
이 사라지고 빛이 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는 능히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자신이 못 하는 일을 간
구하면, 성령님이 어떤 자에게 감동을 주어 대신 행하게 해 주십니다. 원수
의 마음도 감동하게 하여, 자신이 말로 해도 안 될 때 기도하면 성령님이
감동시켜 주어 이루게 해 주십니다.
또, 로마서 8장 26절 말씀과 같이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를 위해 간구하여 역사해 주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이외에도 여러 수천 가지로 역사하십니다.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곤란한 때도 주님께 기도하면, 성령이 감동으로 역사하여 마음을
녹여 주고 감동시켜 그 원하는 대로 해 주시기도 합니다.
성령의 감동은 크게, 혹은 작게 일어납니다. 어느 때는 태풍처럼, 어느
때는 봄바람처럼, 어느 때는 실바람처럼 은은히 은밀히 역사하십니다. 자기
심령의 기준에 따라 강하게, 혹은 약하게 역사하십니다.
합심하여 함께 기도할 때, 찬양할 때, 말씀을 들을 때, 간절히 함께 하
나 되어 일할 때, 전도할 때, 성경 볼 때, 말씀을 다시 읽어 볼 때, 말씀을
전할 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주님의 모든 일을 할 때 마음과 몸을 뜨겁
게 역사하시며 도와주십니다. 또 홀로 외로이 인생의 길을 갈 때, 위험한
길을 갈 때, 두려움 속에 처했을 때, 고독하고 쓸쓸할 때, 걱정할 때 성령
은 바람처럼 스쳐 행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3절-13절을 보면, 주께서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느니라.
육은 육의 부모가 낳았지만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니고데모야~ 거듭나
야 하겠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이리저리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성령으로 난 자는 사
람들이 보아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났습니다. 이는 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들어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육을
통해 말씀하심을 모두 기이히 여기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육적인 말이 아
니고 영적인 말인 고로 잘 몰랐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했습니
다. 육적인 생각이 아닌, 영으로 생각해야 잘 안다고 했습니다.
영에 대해 모르면 영에 대한 지식도 없고, 영의 은혜도 모릅니다. 육에
대해 모르면 육이 제대로 가치 있게 보람 있게 살지 못하듯이, 영도 그러
한 것입니다. 육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두고 살게 했습니다. 육이 오직 하
나님과 주님과 성령의 뜻을 따라 살다가 죽으면, 그 영은 하늘나라에 가서
하늘나라 천국을 천국으로 두고 살게 했습니다.
영에 대하여 배우고 늘 생각해야 됩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를 받고 성
령과 일체되어야 변화를 받고 더욱 거듭나게 됩니다. 말씀하였으니 성령이
역사하시고 더욱 함께하실 것입니다. 음식도 먹어 봐야 느끼고 알듯이, 성
령을 받고 감동을 받을수록 알게 됩니다.
오늘은 성령에 대하여 특별히 말씀했습니다. 성령에 대하여 간구하고
기도해야 성령님도 더욱 역사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도 잘 부르고, 기도
할 때 주님도 잘 찾는데, 성령을 잘 찾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
도할 때 찾으며 간구해야 됩니다. 성령님이 감동시켜 달라고 구해야 성령
을 선물로 주십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을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기에,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자들을 고
쳐 주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죄를 생각나게 해 주시고, 회개하도록 감동시키시고, 성결케 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며, 해야 될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
있는 일과 주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생각나게 해 주시고, 마음을 감동시켜
행하게 하십니다. 믿어 주고 잡아당겨 갈 곳을 가게 하시고, 안 갈 곳은 못
가게 감동시켜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구심력과 원심력 작용을 합니다. 돛에 바람이 닿아
배를 밀어 끌고 가듯이, 마음의 돛은 성령의 바람으로 끌고 갑니다. 사도행
전을 보면 성령이 명하여 “가라”고 한 일들이 나와 있으니 몇 구절만 읽
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읽어 볼까요?
(행 10:19-20)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
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행 11: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이밖에도 사도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행한 일들이 사도행전에 많이 나와
있으니 찾아서 읽어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의 사역을 받으면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명을 받아 행하면 주님이 함께하여 그 사역을 하게 되고, 성령의
사명을 받고 행하면 성령같이 감동을 주며 행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인간
이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님도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명을 행하는 것입
니다.
흔히 잘못되면 ‘내가 성령이다. 내가 예수다.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합니다. 선을 벗어나면 악이 되듯이, 진리를 벗어나면 탈선자 사탄의 주관
을 받게 됩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의 지체가 되고, 그의 사
역자가 되어서 쓰여집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 있는 자입니다. 바로 알
고 행해야 사람들도 걱정 안 하고, 성령님도 걱정 안 하고, 주님도 하나님
도 걱정을 안 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성령님이 행하심으로 자기가 행할 뿐이니, 그 사람은
성령이 아니라 쓰이는 자입니다. 칼이 부엌에서 사람 손에 쓰여지면 무도
자르고 김치도 자르며 각종 재료들을 필요한 대로 자릅니다. 그렇다고 칼
이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알고 살아야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제대로 성령께 쓰이는 자가 됩니다.
주님께 쓰여지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일을
하여도 주님이 될 수 없습니다. 사역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행
해야 더 역사하시고, 더 온전한 말씀을 깊이 퍼부어 주십니다.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일체가 되어 여자가 남자 하는 일을 똑같이 하여
도 지체로 볼 때 여자가 남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 하는 일을
똑같이 하여도 지체로 볼 때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단지 그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것이 이치요, 진리입니다.
주님은 철저히 처음부터 이같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
고 해서 주님이 될 수 없고, 성령이 충만하여 행한다 해도 성령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앞에도 가지 말고, 나와 같이 행하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주님 옆에서 살려고만 해도 주님이 마시는 쓴 잔을
마셔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마시는 똑같은 쓴 잔을 마시고 그
삶을 감히 똑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 그릇과 사명에
따른 쓴 잔을 마시고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만민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쓴
잔을 똑같이 마실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주님이고, 우리는 우리 위치에서
주를 따라가면서 겨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갑니다. 그리고 자기 위치
에서 겨우 형제들의 십자가를 대신 지어 주고 갈 뿐입니다.
이를 알고 행하면 큰 자요, 따르는 자를 잘 인도할 자요, 복 있는 자요,
주님이 좋아하고 기뻐할 자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항상 주님을 등 뒤
에 따르게 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게 됩니다. 구세주, 메시아, 재림주
이신 주님은 이 사명을 팔지도 않고 주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들과 가르치는 자들은 잘 가르쳐 줘야 됩니다. 잘 가르쳐 줘야
세상 유혹에 들어가지 않고 빠지지도 않습니다.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아
아버지가 되어도 자기 자녀 앞에나 아버지이지, 자기 아버지 앞에는 아버
지가 될 수 없고 아들일 뿐입니다. 이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주님께 배워야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시고, 늘
배우고 알라고 하시고, 모르면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라고 하시고, 주께 묻
고 자세히 배우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내놓을 것이
없으니 배우라.”고 하시며 “내게도 배우고, 세상 상식도 배우라.”고 했습
니다.
기도할 때 깨닫고 배웠어도 성경에 그같이 주님이 말씀하셨는지 보고,
이치에 합당한지 확인해 보고, 실천하고 말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11장 29-30절을 보겠습니다.
(마 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
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처럼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은 쉽고 가볍습니다. 고로 주님처럼 잘
가르쳐 주면 쉽게 잘하게 됩니다. 어렵게 가르쳐 주거나, 자기 주관과 이상
한 변론과 이론을 붙여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비유를 들어 먼저
비유를 말해 주시고, 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비유를 잘못 들어 말하면 본 성경말씀도, 주님의 말씀
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많이 나왔으니 꼭 읽어 보기 바랍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참으로 많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지만, 모르고 살고 있으니 더 자세히 듣고 더욱 성령의 은혜를 덧입
어 행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충만하여야 더욱 시대의 눈을 떠 하
나님의 뜻과 주님의 뜻을 깨닫고 행할 수 있고, 자신도 모든 것을 이기고
은혜로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축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며 주
의 말씀과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