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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09.02.08 (일)

090208 주일말씀 인생의 삶과 영원한 길 자기 몫이 있다

선포일
2009.02.08 (일)
성경 본문
요한복음 14장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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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208-주일말씀_인생의 삶과 영원한 길_자기 몫이 있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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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8일 주일말씀> 인생의 삶과 영원한 길 자기 몫이 있다 본 문 요한복음 14장 1-6절, 14-15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도 주님이 전해 주시는 이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을 보겠습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제자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간절히 말씀하시듯이, 이 시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 도 절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니 귀를 기울여 듣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 신 것입니다. 하지 말라면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또한 자신들도 근심하지 아니함으로 애간장을 안 태우며, 속을 안 썩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지고 사는 자들도, 없는 자들도, 10대들도, 청년들도, 어른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근심·걱정·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현실과 앞날에 대해서, 또 선생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하늘나라가 정말 있 는지, 자기는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별의별 걱정과 근심들을 다 합니다. 그 런 자는 쉽게 늙고, 마음에 병이 들고, 육신의 병까지 들게 됩니다. 주님이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순종하는 것이 곧 고치는 약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보낸 나 예수를 절대 믿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주님을 안 믿으면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듯 이 삼위일체가 되시는 주님도 절대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약해서 무엇을 해 주시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믿어라.” 말씀하심에 따라 의심 없이 믿기 를 축원합니다. 의지는 믿음에서 옵니다. 믿음에 따라 의지가 생깁니다. 절대 믿음으로 절대 의지하게 됩니다. 믿음에 따라 구원도 달라집니다. 의지가 강할수록 근심이 사라지고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인생에게 큰 힘입 니다. 굳건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이 아닌 메시아이니 절대 믿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구원받는 데 있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것은 잘 믿습니다. 자기의 어 떤 문제를 두고 주님께 기도하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절대 해 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안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문제가 어렵게 되면 ‘내가 할 일이야.’ 하고 자기가 하려고만 합니다. 주님을 절대 믿고, 절대 의지하고, 절대 해 주실 것을 믿고, 근심 하지 말고 살라고 했습니다. 믿고 살았는데 안 되었다고 낙심 말고 끝까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얻는 길’입니다. 삶 속에 고통·염려·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주님께 간절히 구하고, 주 님이 그 뜻대로 해 주실 것을 절대 믿고 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 다. 주님의 말씀을 잘 알겠습니까?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을 보겠습니다.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기서 ‘처소’는 영원히 거할 수 있는 하늘나라를 두고 말한 것입니 다.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처소, 곧 각자의 집들을 말씀하셨 습니다. 또 주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주실 처소를 직접 만들러 가심을 말씀 하셨습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다.’라는 책에도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 말 씀과 같이 “약속대로 너희를 위해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고 그 책의 저 자를 통해 확실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자세히 책을 쓰게 하였습니다. 이미 우리도 전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아는 바이지만 천국은 큰 세 계입니다. 히브리서 8장 5절을 보면, 땅에 있는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 의 모형이며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히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세상에도 사람마다 자기 집이 있듯이 천국에도 각자 집이 있습니다. 세 상의 집은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자기가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집은 그 사람의 공적에 따라 주님이 약속대로 예비하여 지어 놓으십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을 아시고 뜻을 아시니 그에게 맞게 100% 마음에 들 게 지어 주십니다. 세상의 집은 돌, 철, 시멘트, 흙, 나무, 벽돌로 짓지만 하늘나라는 금과 각종 빛난 보석으로 집을 짓습니다. 세상의 집처럼 값이 없고 빛도 나지 않는 허술한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집이 없습니다. 흙이나 나무나 벽 돌로 지은 집에 살 정도의 사람은 아예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행한 대로 준다」는 말씀대로 주십니다. 금보다 못한 나무 집이나 돌 집이나 흙집을 지어서 주지 않으십니다.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천국도 빈 부의 격차가 있는 세계가 되고, 천국 같지 않으며, 그 세계의 일부는 이 세 상과 같을 것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의 보석집과 같이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과 주님 을 위해 빛나고 찬란하게 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하여 영이 빛이 나서 천국에 가야 됩니다. “천국은 가 봐야 알지...” 하고 말하는 사람도 못 간다고 봐야 됩니다. 호리라도 문제가 있으면 안 됩니다. 세상의 모든 삶을 하늘나라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바울 선생은 하늘나라에 대하여 보고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라.” 고 했습니다. 또 “나는 날마다 주를 위해 죽노라.” 하고 말했습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 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못된 성격과 성질을 죽이고, 혈기와 악한 마음을 죽이고, 세상으로 가는 마음을 죽이고, 육성을 죽이고, 사람의 생각을 죽이고, 오직 주님의 말씀으 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모두 그같이 살라고 했습니다. 제 성질대로 살고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한 명도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자기의 육과 영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육신이 죽으면 육체 만 땅에 남고 하늘나라에 못 가는 것이지, 그 마음과 생각은 세상에서 행 했던 행실 그대로 자기 영체가 하늘나라에 가져갑니다. 고로 완전히 회개하고 완전히 의를 행하여 천사의 마음과 주님의 성품 과 어린아이의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을 갖지 못하면 그 영도 마 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 때 죽으면 유전죄가 있어도 유전죄를 인정하지 않 고 자동적으로 없어져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잠재해 있 는 유전죄를 범하므로 자신이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을 메시아로만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 님의 말씀대로 절대 순종하여 화평케 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 하고, 참고 견디고, 의를 행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됩니다. 땅에서 도 육신을 가지고 주 안에서 천국같이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땅에서 천 국이 거의 좌우됩니다. 주님은 “땅에서 뜻이 이루어져야 하늘나라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못 가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은 불바다 지옥은 아니지만 천국에서 볼 때는 지옥으로 봅니다. 그곳에서 지옥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예 주님의 말씀처럼 잘하여서 천국으로 가야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주님은 한마디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살아야 된다.」 성경을 보면 천국에 갈 자들의 기준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람 들은 성경을 일반 책 읽듯이 그냥 읽기만 합니다. 세상의 책들은 지식과 상식을 써 놓았고,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써 놓았습니다. 성경은 인생들의 영원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 생을 구원하시는 메시아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며, 천국을 어떻게 찾아오 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명 대로 사는지 말했고, 수한 전에 죽는 하늘의 뜻있는 자에 대해 말했고, 하 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나옵니다. 또 지옥은 어떤 자들이 가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님과 사도 들을 통해 확실히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과 주님 의 음성과 같이 귀히 보고 읽어야 됩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천국에 집을 예비해 놓으시고 다시 와서 우리를 영접하여 하늘 나라로 데리고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온다’는 말은 주님이 꼭 재림하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 님은 그 날이 아주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 날과 그 시는 몰라도 주님께 기 도하면 어느 정도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뿐 아니라 직접 천국을 구경시키고 책을 쓰게 한 자들을 통해 주님 이 지금 이 시대에 제일 급히 하고 싶은 한마디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 다 훨씬 빨리 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느 정도인지 말하면, 마치 해산하는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가 되어 더 이상 거동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는 정도와 같이 임박했다는 말씀으로 표현되었습니다(살전 5:3). 또 다른 말로 깨우쳐 달라고 하였더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는 항상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징조가 보이지 않느냐. 이와 같이 내 가 임하기 전에도 성경에 이미 말한 대로 징조가 일어나지 않겠느냐. 세상 에 징조가 일어나 너희가 쳐다볼 때 내가 임할 것이며, 너희의 마음과 몸 을 마지막으로 단장할 때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징조들이 많 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더니, 이에 주님은 “너희가 알고 판단 할 일이다. 하늘 편은 항상 계시나 징조를 보일 일이 있으면 보여 주기만 한다. 보고 깨닫는 것은 너희가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 다. 여러분들은 징조들을 보았습니까? 하나님도 주님도 계획적으로 징조들 을 보이시는데 사람들은 답답하고 무지하게 생각해 버립니다. “계절에 따 라 태풍이 불었구나.”, “지구 온난화 현상이야.”, “요즘 같은 때는 모 두 돈을 사랑하니 경제 흉년이 들고 가뭄이 든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러 나 모두 징조들입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징조가 무슨 징조인지 너희 신앙의 급수대 로 지혜대로 깨달으라. 내 말을 항상 심각하게 잘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마태복음 16장 3절을 보면 “너희가 천기는 분별하면서 어찌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징조는 ‘예비하라’는 뜻입니다. ‘피하라’는 경고입니다. 모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살전 5:1-6)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 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 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해산하기 전에 산모는 아픔과 고통이 와서 괴로워합니다. 임신했을 때 의 고통은 많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고통, 몸이 무거운 고통, 배가 나오는 고통 등 여러 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다 아이를 낳기 전 에는 태 속의 아이가 나오려 움직이고 방향을 트니 아픈 고통이 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오실 때도 세상의 징조로 인하여 세상 모든 자들이 고통 을 받게 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 자들은 직접 고통을 겪게 됩니다. 주님은 성경에 예언하신 말씀대로 오시지, 절대 뒤바뀌어서 오지 않으 십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오신다고 했 습니다. 그 말씀대로 오시지, 천둥 번개를 치면서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 다.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시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대로 오십니다. 천사장이 나팔을 불고 그 나팔 소리를 듣는 자들만 알고 주를 맞을 것입니 다.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 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 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어느 날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말한 것은 하나님도 나도 다 책임을 지고 이룬다. 그러니 꼭 성경대로 살아라.” 또 “선지자들이 나 사도들이나 중심인물들이 말한 것까지 하나님은 다 책임을 지고 이루시 니 꼭 성경대로 절대 믿고 행해야 된다. 고로 율법의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다 이룬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읽으 면 성경을 통해 깨닫고 듣게 됩니다. ‘회개하라.’, 혹은 ‘기뻐하라.’, 혹은 오늘 말씀처럼 ‘근심하지 말라.’, 혹은 ‘형제를 사랑하라.’ 하며 자기 마음 상태와 행위에 따라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이 말씀은 30개론 중에서 계시론에 나옵니다. 배우기만 하지 말고 실천 해야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오는 계시는 문학적 계시요,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그리 고 직접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특별계시에 속합니다. 어느 때는 만물을 자세히 보면서 성경처럼 보고 행할 때 만물로도 들려 옵니다. 만물은 인간을 중심하여 실체로 존재하게 해 놓은 하나님의 말씀 의 전개체이며 하나님의 창조 작품입니다. 만물은 자연계시를 보일 때 사 용합니다. 어느 때는 꿈을 통해 보이며 깨닫게 해 주십니다. 환상·이상·비몽사 몽간에 보이는 것은 초자연적인 계시입니다. 주님이 직접 환상이나 꿈으로 안 나타나도 상징적으로 다른 자로 나타나 어떤 상황을 보이며 말씀하여 깨닫게 해 주시고 사라지기도 하십니다. 지금은 재림에 대해 주님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해 놓지도 않은 자들이 세상에 나타나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며 유혹합니다. 그들을 따라가지도 말고 속지도 말기 바랍니 다. 주님은 천국에 올 자들을 위해 각자의 집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은 주님이 아닙니다. 성경에 그들이 다시 온다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져 주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 흙이나 나무나 벽돌로 지은 하찮은 집 한 채씩도 지어 주지 못했습니다. 세상 실력도 없는데 어 떻게 하늘나라의 실력을 행사 하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하나 구원받기도 힘들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예 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구원하고 남들도 구원해야, 남에게 복음을 전해 줄 때 전하는 만큼 힘을 얻고 은혜를 받고 더 좋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더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도 재림하지 않으신 예수님인데 왜 예수님은 가시면서 곧 온다고 하셨습니까? 사도들도 왜 그같이 말했습니 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재림을 쪼개서 보아 라. 말씀은 항상 짝 지어 한다고 말한 것을 깨달으라. 2000년 있다가 올 것인데 곧 온다고 하였겠느냐. 내가 말한 대로 십자가에 죽은 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쪼개서 보면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3일 후에 부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셨지만 처음에는 몰라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방에 모 여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영으로서 육신 같은 실존체 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주님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항상 같이 있지 않고 때에 따라 나타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 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영으로 나타나 전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밧모 섬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 영계로 천국을 보여 주시고 천국의 실태를 모 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000년 동안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나타나 보여 주셨습니다. 주 님을 상상해서 꾸는 꿈이 아닙니다. 실체가 나타나 보이니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평생 보고 싶어도 못 본 자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다시 온다고 말씀하신 후에 1차 2000년 동안 나타 나셨고, 또 2차로 재림하십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시고, 오늘 본문 말 씀과 같이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하면 너희를 데리러 온다.”고 했습니 다. 그동안 죽은 자들은 영계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가 주님을 한 번이라도 보았냐고 물으니, 53 년 살도록 딱 한 번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 으니, 자기가 아주 억울한 일을 당하여 수천억 문제가 생겼는데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 얼굴을 보고 한 시간 만에 3천억에 해 당되는 억울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지금은 잘 지내냐고 물으니, 금전적으로 또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같이 해결된 것을 아느냐고 했더니, 아무튼 신기하고 기뻤다고 했습니다. 그도 교회는 다닙니다. 그에게 말하기를, 주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절대 해 결이 안 될 일이었으니 감사하며 은혜의 삶을 살아야 된다고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은밀히 행하시는 주님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뼈저리게 감사하 지 못합니다. 정말 확실히 알고 감사하며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이 또 오셔서 돕고 함께하십니다. 아무리 주님이 어 려움을 도와주었어도 자기가 열심히 해서 된 것으로 알거나 사람들 때문에 된 것으로 압니다. 주님이 사람을 통해 도와주시고, 보낸 자와 사명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무엇을 해 주면 모두 자기 때문에 되 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는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입니다. 큰 죄를 짓 게 되는 자입니다. 주님이 음성으로나 영으로 나타나시는 것을 작은 일로 보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나 주님 꿈을 자주 꾸는 것으로 알고 보통으로 생각합니 다. 한 번이라도 예수님을 꿈에 보았거나, 자기를 찾아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모두 옆을 보고 앞뒤를 돌아봐요. 꿈에서라도 예수 님을 본 사람이 많아요? 적어요? 주님을 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와서 무슨 말을 하고 가 셨느냐, 또 어떤 임무를 주셨느냐가 중요합니다. 잘 생각해 봐요. 선생이 20대에 주님이 나타나신 후에 옛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짓게 되 었고, 또 다시 만났을 때 월명동에 자연성전을 짓게 되었고, 붓을 주어 책 을 쓰고 30개론을 받게 되었고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큰 표가 납니다. 주님이 혼을 내러 오셨든지, 혹은 자포자기한다고 위로하러 오셨든지, 혹은 잘한다고 칭찬하러 오셨든지 주님의 발걸음은 정말 귀한 방문입니다. 진실로 감사해야 됩니다. 선생도 여러분들의 집을 방문하기 어려운데 예수 님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여러분 집에 선생이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30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도 집을 방문하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교회에 가 기도 힘들었습니다. 주님의 계획에 따라서 다니니 또 갈 것입니다. 주님을 꿈에서나 환상으로나 기도 중에 못 보았어도 오십니다. 그러나 영이시기에 와도 가도 모릅니다. 쳐다만 봐도 큰 것입니다. 예수님은 청중 이 모일 때 거의 나타나십니다. 한 명이나 두 명쯤은 볼 때도 있습니다. 예 배를 드릴 때 천사를 보내어 보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한눈에 전 세계를 보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직접 교회에 나타나 왔다가 가기도 하십니다. 말 씀으로 나타나기도 하시고, 기도 중에 나타나기도 하시고, 홀로 위험할 때 동행하기도 하십니다. 직접 못 보았어도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못 본 자는 이와 같이 나 타나심을 알아야 됩니다. 본인만 못 보았지, 주님이 오신 것을 느낌으로 깨 닫고 감사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4~6절을 보겠습니다.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 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세 상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제자와 선생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내가 가는 길을 알아야 된다.’는 격으로 말씀하신 것입니 다. “내가 가르친 것이 인생길이다. 생명의 길이다. 내가 길이다. 그대로 살면 내가 간 곳에서 만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의 실체가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행실이 생명의 말 씀이 되었습니다. 그 행하심이 길이었습니다. 그 생각하심이 생명이었습니 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오직 주님만 따라가야 됩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길로 가는지만 생각하고 좇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위치에서 시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선생을 따라가 는 길이며 선생과 동행하는 자들입니다. 육신이 어디로 가는 것은 중요하 지 않습니다. 말씀에 따라 올바른 인생길과 생명길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 다. 믿습니까?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를 보면 길이 많습니다. 길로 가야 편합니 다. 무고히 길을 막는 자같이 큰 죄인이 없다고 말들 합니다. 길은 아무도 막지 못하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인생길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명을 받고 가는 길도 막으면 큰 죄입니다. 산길은 많지 않고, 절벽에는 겨우 하나밖에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 길이 있듯이 주님은 인생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길은 주님 자신의 길 이 되었고, 주님의 말씀하심이 인생길이 되었습니다. “멸망길은 넓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좁은 생명길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주님을 찾는 자들은 적습니다. 주님을 찾도록 전도하여 그 길로 가게 해 줘야 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특히 ‘길’에 대한 묵시의 말씀입니다. 잘 들어 봐요. 어느 날 큰 바위산을 올라갔는데 내려오는 길이 없어서 막다른 골목에 처했습니다. 올라갔던 길로 내려오면 되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 른 길이 없어서 절벽을 내려다보니 도저히 생명이 위험해서 갈 수 없었습 니다. 너무 막막해서 걱정하고 있는데 ‘늦더라도 길을 찾아 길로 가야 된 다. 그 절벽으로 내려가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현기증이 나서 서 있는데 “내가 길이다. 생명이다. 진리다.”라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주님이 이 절벽에서 길이 되신 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고 주님께 길을 물었습니다. 이 순간 주님이 시 키는 대로 하는 것이 길이었습니다. 그 절벽에서 뒤로 물러나 길을 찾으니 크고도 큰 바위 사이로 길이 보 였습니다. 순간 쉽게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님 을 찾는 것이 길이었습니다. 길은 가까이 있는데 도마처럼 육적인 길만 생 각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오죽 길을 잘 알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은 인생길입니다. 주님은 그때그때 삶의 문제 속에 길이 되십니다. 삶 가운데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할까?’ 하며 다른 궁리를 하거나 다 른 생각 하지 말고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면 생명의 길이 되시고 말 씀의 길이 되시는 주님께서 “이같이 하라.”며 꿈으로나 상황으로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총동원하여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절벽에서라도 길을 찾아 쉽게 내려오는 것과 같이 쉽게 길을 찾게 됩니다. 늦더라도 길을 찾아 가야 합니다. 길이 막혔다고 그제야 길을 닦으면 바윗길도, 산길도, 인생길도 고생만 하게 됩니다. 또 그 길은 올바른 방향 도 아니며 헛수고만 하게 됩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생명길이며 삶의 길입 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혀 한계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길을 닦듯 하지 말고, 이미 나 있는 절벽의 길과 같은 주 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내 진로는 뭐지?’ 하며 고민하지요? 정말 답답하고 걱 정되지요? 주님께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물어봐야 됩니다. 주님이 시키는 그 길이 아니면 바위 절벽에서 내려올 길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사람들 이 따라오면 꼭 생명길이 되시는 주님께 붙여 줘야 됩니다. 자기가 끌고 다니면 자기가 그 생명들을 책임져야 됩니다. 자기가 구원시킬 수 있습니 까? 선생도 여러분들을 인생의 길이 되신 주님께 모두 데려다가 자기 애인 보다, 어느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면서 살라고 묶어 놓았으니 영원히 헤어지지 말고 주님과 살아야 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 준 것 을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지난날 주님의 은혜를 잊고 현실에 또 달라고만 합니다. 은혜 를 헛되이 받으니 이 같은 사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생각 하고 변화해야 됩니다. 길이 막히면 급한 자는 가시덤불이나 잡초 밭이나 절벽을 헤치고 갑니 다. 그러다가 큰 고통을 당하게 되며 10배나 더 힘들어 애를 먹고 괴로움 을 당하기도 합니다. 늦더라도 길을 찾아 가야 됩니다. 길로 가면 쉽습니 다. 안될 때는 방법을 달리해야 됩니다. 또 처음에는 안되는 일도 끝에 가 면 되기도 하니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인생들이 각자 삶의 막다른 곳에 부딪힐 때 급하다고 해서 자기를 중심 하여 다른 길로 가지 말고, 주님을 찾고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하여 그 길로 가야 됩니다. 길로 가야 제 시간에 제 갈 길을 가서 목적을 달성하여 성공 할 수 있습니다. 길도 아닌 가시덤불이나 절벽으로 가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길을 새롭게 닦아서 가면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고생만 합니다. 전쟁터에서 길을 잘못 들면 적들의 소굴로 가게 되어 많은 생명을 잃게 됩니다. 신앙 길과 인생길을 잘못 가면 사탄의 세계와 악의 세계로 가서 멸망과 실패를 맛보며 세상의 삶 속으로 가게 됩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생명길로 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보낸 모세를 따라가야만 자기 민족의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모세를 따라가지 않고 악평하고 불평한 자들은 광야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시대마다 주님이 보낸 사명자들을 따라가야 하나님과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됩니다. 삶의 길에 대한 것은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성 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야 됩니다. 그리고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지 않으면 하늘이 틀어 버려 안됩니다. 주님의 길은 욕심이 없는 길이며 공의와 화평과 사랑의 길입니다. 긍휼함을 가지 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위해 주며, 절대 믿음을 가지고 행하며, 시기 질투 가 없고, 자기 사명에 만족하고 충실하며, 주를 의지함으로 끝까지 가며, 약속을 지키고, 말조심하고, 함부로 형제들을 판단하지 않으며, 악평과 이 간질과 음모와 거짓으로 거스르는 일들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행하지 않 는 길은 사탄의 길입니다. 무지의 길입니다. 겸손과 순종, 온유와 절제, 화평과 기쁨, 희생과 봉사, 전도와 가르침, 기도와 감사, 찬양의 일들이 주님이 가신 생명길입니다. 이 외에도 손님을 대접하고, 없는 자를 먹이고 입혀 주고,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고, 형제를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고 긍정해 주고 고마워해 주는 일들이 주님이 가신 생명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 같은 삶의 길을 가야 됩니다. 한번은 영계의 어떤 마을에 갔더니, 마을 청년이 바닷가로 가는 길이 없다고 하면서 큰 바위 밑을 산짐승 오소리같이 파서 겨우 구멍을 뚫고 빠 져나갔습니다. 나는 도저히 그 길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는 자들도 다 그 구멍으로 오소리처럼 박박 기어 들어가 흙투성이를 하고 가야 되는데, 안 되겠다 생각하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주님이 삶의 길이니 주님을 불러 가면서 길을 찾았습니다. 그 순간 옆을 보니 바위 사이로 1m 넓이의 공간 이 있었습니다. 짐승처럼 가지 않아도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바닷가로 쉽 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이 마을에 살면서 왜 짐승같이 사느냐고 물으니, 길을 찾 아서 갈 수도 있지만 머리가 안 돌아가서 자기가 바위 밑으로 길을 파서 다녔다고 했습니다. 길을 두고 왜 사서 평생 고생을 하느냐고 하며 길로 가면 쉽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연석을 많이 채취하는 자였는데 자연석을 보물처럼 숨겨 놓았습니다. 내가 자연석 전문가라고 했더니 잘 믿지 않으면서 자기 잘난 체만 했습니다. 결국 그가 숨겨 놓은 자연석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막상 보 니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작품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작품이 없어 내가 사 갈 것이 없다고 하니, 김이 빠진 듯이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청년에게 힘들게 길도 아닌 길을 닦지 말고 있는 길을 찾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 영계의 마을을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이에 교훈을 얻고, 여러분들에게 그 청년처럼 짐승 다니는 곳으로 다니 며 힘들게 살지 말고 옆의 쉬운 길을 찾으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주 님의 교훈과 묵시입니다. 각자 인생의 삶 속에 쉬운 길, 있는 길로 가면 됩 니다. 주님이 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면 쉽습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쉬운 길이며 있는 길인 주님을 찾고, 믿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힘든 길입니다. 주 님께 묻지 않고 자기 스스로 찾아 간 길은 사망의 길이 되기도 하고, 실패 의 길이 되기도 하고, 손해의 길이 되기도 하고, 후회의 길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월명동에 가서 길로 안 다니고 횟골, 가는골, 감람산에 다녀 봐요. 얼마 나 힘든가요? 이미 다녀 보았을 것입니다. 인생길도 주님 떠나 다녀 보면 상처투성이가 되어 결국 그 길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나오지 않는 자는 뱀과 짐승을 만나 사망길로 가게 되고 사탄들 속에 가게 됩니다. 사망길은 가면 갈수록 돌아오기 어렵고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길은 조금 잘못 들었을 때는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많이 잘못 들면 오 다가 기름이 떨어지고, 힘이 떨어지고, 먹을 것이 떨어져서 오도 가도 못하 고 길에서 서 있기만 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알고 가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며 후회할 것입니다. 모두 어렸을 때부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길을 가야 됩니다. 자기마 다 타고난 재능과 개성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10대이든 어른이든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한 길 을 가든지, 자기의 방법으로 길을 닦으면서 가게 됩니다. 길을 닦다가 힘들 어서 못 가고 늦어서 못 가고 말게 됩니다. 이미 닦아 놓은 길, 곧 주님을 찾아서 그 길을 가야 되며 주님이 사람마다 허락한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15절을 보겠습니다. (요 14:14-15)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주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 의 길로 가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께 구하면 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주셨듯이 또 주십니다. 주님께 구하여 받아서 쓰고, 주님을 위해 일해야 됩 니다. 우상이나 각종 신상들에게 구해서 받으면 우상들을 위해 일해 줘야 됩니다. 꼭 하나님과 주님께 구하고 받아 써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을 가지 고 주를 위해 쓰게 되고, 자기를 위해 보람 있게 쓰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시행하리라.」 하였으니 얼마나 큰 약속 입니까?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않은 연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구해야 됩니다. 사랑하니 원하기만 하지 말고 구해야 됩니다. 받기 원하는 자가 구해야 주고 싶지, 구하지도 않고 원하기만 하면 주지 않습니다. 기다 리기만 하지 말고 모두 구해야 됩니다. 개인의 것도 구하여 받아 풍부히 쓰고, 주님의 일도 풍부히 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말씀할 테니 잘 들어 봐요. 오늘 영계의 한 지역을 홀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길옆에서 여기 저기 맛있게 음식들을 먹고 있었습니다. 나도 배가 고파서 먹는 곳에 가서 지켜보았습니다. 모두 먹느라고 바빴습니다. 같이 먹고 싶고, 또 조금이라 도 주면 먹으려고 했지만 주지를 않았습니다.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먹으면 부족하게 먹게 되고, 먹는 자들도 부족해 보였습 니다. 각자 자기 몫이 있어 자기 것을 먹어야 양껏 만족하게 먹을 수 있어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깨달아졌습니다. 여기 먹는 데 있어 봤자 주지도 않지만 줘도 얻 어먹는 거지 같을 것이고, 또 내가 먹으면 모두 부족하겠고, 각자의 몫을 빼앗아 먹는 것 같아서 결국 내 갈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네 몫도 있다. 앞으로 가 보아라.”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렇지. 저들도 있 는데 내 것도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정자 좋고 물 좋은 곳에 내가 먹을 것들이 있었습니 다. 내 체질에 맞는 산나물과 잡곡밥이 있고, 짜고 맵지 않게 만든 음식들 이 있었습니다. 이 음식이 내 몫인 것을 알았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깨달 음으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도 저마다 자기 몫인 밥도, 옷도, 잘 곳도 부모님이 마련해 주 듯이 인생들에게도 하나님이 각자에게 먹을 복도, 사명 복도, 입고 사는 복 도, 집도, 환경도 주셨다. 그러니 자기 몫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기 웃거리지 말고,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곳에 가서 인생 푸념하며 곤란하 게 하지 말고, 시기도 질투도 하지 말고, 욕심도 내지 말아라. 자기에 맞게 그동안 수고한 그 행위에 따라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그들이 먹고 마시니 누구한테 누구 어떻다고 말하지 말아라. 자기도 가다 보면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으니 자기 것이나 먹고, 입고, 자고, 누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환난과 고통에 참여하지도 않고 그때는 제가 죗값을 받는다고 하 고, 환난이 지나고 그가 축복을 받으면 시기 질투하며 어쩌고저쩌고 말들 합니다. 이는 못된 마음이며 마귀의 마음이니 다 고쳐야 새롭게 변화됩니 다. 주님은 영계에서 이 같은 현상을 보이시면서 섭리인들과 세상을 깨우쳐 주라고 했습니다. “절대 남의 것을 넘볼 것 없고, 욕심낼 것도 없고, 이유 붙여서 이러니저러니 하지 말아라. 잘못하면 하늘로나 땅으로 책망 받게 된다. 고통도 고생도 자기 사명과 자기 몫이 있으니 남의 것을 자기가 손 대며 참견하지 말고 기도해 주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섭리 사람들의 모순은 자기 일이나 할 것이지, 사명을 받고 행하는 것 인데 모르고 참견하여 일하는 자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수고 하고 열심히 하여 고통을 겪은 후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인데 그것을 시기 질투하고 자기도 끼어서 먹고 마시려 합니다. 그 사람의 것은 사명에 따라 따로 있으니 칭찬하고 축복을 빌어 줘야 됩니다. 그리고 섭리의 일을 할 때 근본도 모르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니다 하며 제 생각대로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를 보 고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항상 뜻대로 해 달라고 해 놓고, 무슨 일을 하면 자기 주관을 주장합니다. 평생 그같이 하다 보면 구원길도 벗어나고 주님의 뜻을 벗어나서 살다가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시켜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니 뜻대로 해 달라고 해 야지, 왜 이러쿵저러쿵 합니까? 몰라서 사탄이 개입하는 것입니다. 기도하 여 잘되게 해 주면 혈기를 부리면서 왜 이같이 했냐고 합니다. 오직 주 뜻 대로 해야 됩니다. 자기의 몫이 있으니 자기 것이나 챙겨 먹으라고 했습니다. 자기 몫이 있는데 곤란하게 다른 사람의 것을 얻어먹으면 안 됩니다. 그같이 하면 주 는 자도 부족하고 얻어먹는 자도 부족하여 서로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늦더라도 자기 것이 있으니 자기 몫을 받고 살아야 됩니다. 자기 몫의 환난과 고통도 있고 각종 축복도 있습니다. 남의 것은 체질적으로 사명적 으로 자기에게 맞지 않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말씀 마치겠습니다. 말씀에 따라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 도> 주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말씀을 듣고 길이 되신 주님을 길로 알고 찾고 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할 것을 축원하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