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09.04.08 (수)
090408 수요말씀 3b1cf404
- 선포일
- 2009.04.08 (수)
- 성경 본문
- 누가복음 13장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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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8일 수요말씀>
(주인이여 1년만 참으소서)
마지막으로 연기했다
본 문 누가복음 13장 6~9절
열왕기하 2장 19-22절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걷지 않고 뜁니다. 반면에 희망이 없는 자는 주
저앉든지 걸어갑니다. 이때에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는 희망이 있기에
뛰어야 됩니다.
나무가 열매를 열지 않기에 주인이 도끼로 찍어 없애려다가 과수원지
기가 “한 해만 더 참으소서. 내가 거름을 하여 열매를 열면 좋으려니와
만일 그때도 열매를 열지 않으면 찍으소서.” 하니, 주인은 “그래. 네
말대로 한 해만 더 참겠다. 연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한 해만 더 참아 주시고 기대하며 다시 기회를 주
셨으니, 우리는 감사하며 이제는 앉아 있거나 걸어서는 안 됩니다. 뛰어
야 됩니다. 노루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포수가 오는 것을 보고 나무꾼이
깨워 주니 일어나 뛰어가듯이, 지금은 우리가 노루처럼 뛰어야 될 때입니
다.
말씀의 도끼로 찍힘을 받고 끝났을 것인데 청지기로 인하여 다시 한
해 동안 기회를 얻고 살게 되었으니 우리는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
로 이제는 정말 걸어서는 안 됩니다. 뛰어야만 됩니다. 희망이 있으니 뛰
어야 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시간을 연기해 주시어 다시 기회를 얻었습니다.
자신들의 성격을 정말 완전히 고치고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주께서 선생을 통해 늘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작품으로 멋있게 만들
라.”고 하셨습니다.
과일나무가 3년이나 열매를 열지 않아서 찍어 없애려 하였지만 다시
기회를 얻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도끼로 찍힘을 받았으면 끝났을 것
입니다. 죽음을 피한 것입니다. 죽을 사람이 산 것같이 큰 것이 어디 있
습니까?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목숨입니다. 그 어떤 것을 얻은 것
보다 귀한 것을 얻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희망 속에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딱 한 번의 기회입니다. 열매를 열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선생도 책임이 없습니다. 30년 동안 2만 번 설교해 왔습니다.
이제는 더 할 수 있는 힘도 없고, 과거 역사를 반복할 수도 없습니다. 극
한 환경 속에서 마지막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기회입니다.
과수원지기는 과수원 농사를 지어 알기에, 주인은 거름을 하면 열매
를 열 수 있다고 하는 그의 말을 인정하고 믿고 허락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재림에 깨어 있지 못하여 준비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은 마치 주
인이 열매 없는 나무를 찍어 버리듯이 이 세상을 심판하려 하셨지만, 예
수님이 “한 번만 참으소서. 마지막으로 온 세상에 이 위급함을 계시할
시간만 주옵소서.” 하며, 나무에 거름하듯이 세상 사람들에게 시대의 위
급한 상황을 계시해 주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하나님께 한
번만 재림을 연기해 주시고 참으시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를 깨달아야 됩
니다.
예수님 앞에 포도원지기와 같은 저도 주님께 “주님이여, 한 해만 참
으로서. 깊이 파고 거름하여 열매를 열면 좋지 않겠나이까. 그래도 열매
를 열지 않는 나무는 베시옵소서.” 하고 간청했습니다.
선생은 지난 10년 동안 외국에서 선교하면서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사탄들이 활동하여 행악자들로 인해
가혹한 핍박을 받는 환난 기간이었기에 제대로 말씀을 전하지 못했습니
다. 이제 그동안 주님께 배운 말씀과 뼈저리게 겪고 깨달은 말씀과 주님
이 이 시대에 주시는 재림에 대한 생명의 말씀과 선지자들로 전하신 말씀
으로 거름을 하면, 좋은 열매를 열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
다.
주님이 섭리사 모두에게 말씀을 듣고 변화하여 이 해에는 많은 열매
를 맺는 나무들이 되라고 하셨으니,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시라고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재림을
연기해 주신 이때에 시대 말씀의 거름을 충분히 할 테니, 새롭게 변화되
어 꼭 주님을 맞도록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과일나무는 병들면 거름을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물
면 열매를 맺어도 곧 열매가 떨어집니다. 이 시대 섭리의 과일나무는 거
름만 하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습니다.
거름은 ‘에너지’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종 음식과 밥이 거름입니
다. 사람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으면 힘을 내서 일하지 못하여 행실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등 각종
나무에 거름을 엄청나게 해 줘야 됩니다. 거름하는 대로 건강하게 되어
잎과 꽃이 싱싱하게 피고, 과일도 많이 열리고, 과일도 크고 실합니다.
제때 충분히 거름을 하지 못하면 품종이 바뀌고 과일나무도 버리게
됩니다. 대개 거름할 때 충분히 거름해 주지 못하면 영양분이 없어 과일
나무들을 버리게 됩니다. “섭리의 신앙인들도 제때 말씀을 충분히 해 주
었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과일나무의 품종이 변하여 버리듯 한
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0년 동안 말씀을 제대로 충분히 전하지 못했기에 이제 거름 같은 말
씀을 1년 동안 충분히 전해 줄 것입니다. 그러면 듣는 자들이 더욱 힘을
얻고 은혜가 충만하여 잎과 꽃이 만발하고, 열매도 새롭게 주렁주렁 열
고, 변화될 것입니다.
그동안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 있고, 힘 있고, 소망 있는 생명의 말씀
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기가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에너지는 극한 환난 속에서도 우리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
다. 정말 말씀의 가뭄이 든 이때에 주께서 우리들을 자상하고 세밀하게
가르쳐 주셨기에 폭포수 같은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모스 8장 11~12절을 보면,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
하면 힘이 없어 비틀거리고 쓰러진다고 했습니다. 잘 먹으면 건강하고,
아름다워지고, 할 일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암 8:11-12)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
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섭리역사는 말씀의 위력이 있고 특징이 있어 말씀은 곧 우리의 자랑
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을 따라 말씀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꼭 기도해야 됩니다. 어느 날 새벽에 주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어
떤 사람이 꿈에 나타나 내가 베트남 전쟁터에서 쓰던 M16 총과 실탄을
주었습니다. 총과 실탄을 준 사람은 주님이셨습니다. 말씀은 총과 같고,
기도는 총알(실탄)과 같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나무에 주는 거름 같은 이 시대 계시의 말씀은
그동안 우리의 심령을 많이 변화하게 했습니다. 나무는 거름을 주는 대로
쭉쭉 빨아 먹어야 건강하고 많은 열매를 열게 됩니다. 우리들은 어느 누
구보다도 특히 말씀을 좋아하기 때문에 흡수를 잘하고, 정녕코 하는 기질
이 있기에 좋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동안 섭리 사람들은 선생으로부터 좋은 말씀을 오랫동안 듣는 습관
을 들였기에 오랫동안 말씀도 잘 듣습니다. 지금은 목사님들이 대신 전하
니, 설교하는 자는 지루하지 않게 잘 전해 줘야 됩니다. 그런데 듣는 자
들의 기대에 너무 어긋나게 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앞으로 설교자들이 말씀을 더 은혜롭게 잘 전할 수 있도록 각 교회
교역자들을 집중적으로 신경 써서 관리할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방침입
니다. 주님이 아무리 은혜롭게 긴급한 말씀을 주셨어도 전하는 자가 얼마
나 기도하고, 얼마나 노력하여 전하느냐에 따라 말씀의 은혜와 감동이 좌
우됩니다.
주님은 단상에서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교역자들이 100여 명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더 배우고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자들도 있기
에 1차 교육에 들어가 잘하는 목사님이 인터넷 중계를 통해 전해 주기로
했습니다.
만일 중계하는 말씀보다 그래도 본 교회 목사님이 신경 써서 실감나
게 전하는 말씀이 은혜롭다고 하는 교회가 있으면 다시 의논하여 교단에
알려 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참고하여 다시 조치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
래도 안되는 교역자는 목회를 대기하고 있는 자들이 200여 명 있으니 교
체해 주기 바랍니다.
지금은 다른 때와 달리 ‘주인이여, 참으소서. 깊이 파고 거름하며 이
상적인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하고 간구한 때입니다. 말씀은 곧 거름과
같은데, 만일 충분히 거름해 주지 못하여 열매를 열지 못함으로 나무가
주인으로부터 찍힘을 당하면 영원히 끝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은 정말
말씀을 잘 전해야 됩니다.
선생이 목숨을 걸고 노력하고 말씀을 연구한 지 이미 3년이나 되었습
니다. 선생이 해외에 있을 때 하나님과 주님은 분명 내 입을 통해 심각하
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는 데 더 노력하라.” 노력한 사람은 표가 납니
다. 노력해도 소질과 재능대로 또 표가 납니다. 보다 더 잘하는 자가 보
면 속이 타고 답답합니다.
선생도 옛날에 석막교회에 다닐 때 설교자가 설교를 너무 답답하게
해서 은혜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청년부 헌신 예배 때 내가 3시간 동안
설교를 했습니다. 말씀을 들은 자들이 설교는 길었지만 은혜 받았다고 했
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큰 부흥강사가 되겠다고 말하기
도 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되고야 말았습
니다. 그때 내 설교를 들은 자들은 “그 말씀 속에 정말 무엇인가 들어
있었어.” 했을 것입니다.
설교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있어야 됩니다. 설교자가 장승같이 서서
말씀을 읽어 주기만 하니 듣는 자들이 너무 지루하다고 말하는 교회가 너
무도 많습니다. 세상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자기 맡은 일을 연구하지
않고, 자기 책임을 100% 다하지 않으면 해고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맡은 일에 너무 소홀합니다. 이는 자기가 책임진 자들
의 영혼 문제까지 좌우되게 합니다.
말씀의 내용을 보면, 누가 보아도 심정을 다해 부르짖어 외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심정을 태워서 계시하신 말씀을 주님과 같이 그대로 전해
야 말씀의 불이 붙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 높게 불러야 할 곳에서 저음을
내고 말면 듣는 자들의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입장료 생각이 나게 할
것입니다. 이제는 교역자들을 발령할 때 설교 시험과 은혜 시험을 보고
난 후에 발령할 것입니다.
선생이 10년, 20년, 30년 동안 본을 보여 주었으니 화면을 통해서
배워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설교는 예언이고 계시이며, 설교에는 하나님
께서 전하시는 별의별 말씀이 다 들어 있습니다. 각본대로 심정을 담아
전해야 됩니다.
선생이 2007년에 마지막으로 화면을 통해 설교할 때 ‘하늘과 나,
주님과 나’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 말씀대로 ‘하나님과 나,
주님과 나’의 신앙들이 되었습니다. 이날 설교를 끝낸 후에,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유대인들이 쇠뭉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듯이 그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나와 주님’이라고 하며 꼭 주님과 일체되라고 했습니다. 말
씀을 들어도 행하지 않으니 아직도 주님과 일체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섭리역사는 하나님께서 한 해만 더 연기해 주셨습니다. 이때 말씀을
잘 듣고 변화되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더 이상 시간도 없고 말씀을 받아
줄 수도 없습니다. 주님이 신령한 말씀을 주셔야만 받아 전할 수 있습니
다. 그러니 모두 지루하다, 길다 하지 말고 2007년도에 선생의 행방을
모르고 한마디 말씀도 듣지 못했던 때를 생각하면서 잘 듣기 바랍니다.
“나무 주인이여, 한 해만 더 시간을 주소서. 깊이 파고 거름을 해 보
겠나이다.” 하고 간청했습니다. 거름을 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
니다. 이때 주님이 주시는 거름과 같은 신령한 말씀을 잘 듣고 다 해결해
야 됩니다. 다른 것을 더 달리 해 줄 수도 없습니다. 믿습니까?
주님이 재림을 연기하신 뜻은 “연기한 시간도 끝이 다 되었다. 급히
갖추어라. 오직 계시해 주기 위해서다.” 하셨습니다. 모두 그동안 주님
이 계시해 주신 선지자와 사명자들의 말을 듣고, 또 우리 섭리사에 계시
해 주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같은 시대에 같은
주님을 믿고 살아도 이같이 연속해서 말씀을 주는 곳이 없습니다. 아무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귀한 계시를 다 받을 수 없습니다.
안나 수녀는 밤 10시에서 그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철야기도를 하면
서, 온몸과 눈에서 피가 나오도록 간구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녀에게
세계적으로 알릴 계시를 주셨습니다.
토마스 주남 선지자는 주님이 ‘너는 이 일로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시면서 계획적으로 오랫동안 극적으로 연단시키시고 갖은 고통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갔는데 자기 어머니가 거기서 고통을 받는 모
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또 직접 보
고 깨달아 예수님과 함께 7년 동안 책을 썼습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이나 사도들도 하늘의 말씀을 받을 때 극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옥에 갇히고, 순교하고, 지옥의 고통을 겪으면서 죽음을 앞
에 놓고 마지막 주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하여 전했습니다. 그 시대의 사
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을 지켜 신앙의 열매를 맺어 왔습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각 개인들의 신앙이 살아 뛰지 못합니다. 교역
자의 책임이 큽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을 받았으니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말씀을 깊이 받아서 주었는데 깊이 전하지 못하
고, 깊이 듣지 못하면 주님과 먼 자입니다. 말씀은 곧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앞에 나타나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도 깨닫지 못하면 주님
은 답답해하십니다. 그 사람과 멀어지게 됩니다. 잘 깨닫도록 교역자가
책임을 져야 되고, 듣는 자들도 책임을 지고 잘 들어야 됩니다. 말씀을
받는 자는 제대로 받는 것이 책임입니다. 고로 엄청난 기도를 드리고 엄
청난 시간을 정성으로 드린 후에 받아서 만듭니다.
주님은 “말해 주고 싶어도 조건을 세운 합당한 대상이 없다면 계시
해 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각자에게 계시해 주시는 말씀을 자세히 듣고 끝까지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기도도 제대로 할 수 있고, 말씀을 들으면 은혜 받고, 깨
닫게 되고, 행해지고, 회개하게 되고, 주님의 재림에 대해 이것저것 알게
되어 긴장하고 예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선지자가 끊어져 하나님이 말씀을 주지 못하셨
던 시대는 잠을 잤고, 모두 부패되었고, 발전이 없었고, 신앙인들이 그
시대에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이치에 맞지 않게 다른 일을 하여 하
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자들도 오늘 본문 말씀(눅 13:6-9)과 같이 모두
무화과나무와 같은 입장의 운명입니다. 누가복음 3장 9절의 말씀과 같이
이미 시대의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 거름해
준 후에도 열매를 열지 못하면 온 세상 누구나 찍는다고 했습니다.
한 해는 확대시켜 보면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고, 축소시켜 보면 섭리
적으로는 1년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1년 남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
히 깨끗하게 하고 고치는 기간이요, 회개하는 기간입니다. 잘못 생각하고
행한 자들이 바로 행하는 기간입니다.
‘말씀을 교단에서 만든다.’고 하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들이 있
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말씀을 소홀히 들어 할 일을 못 하게 되면, 그렇게
말한 사람이 다 책임을 지고 죗값을 받아야 됩니다. 감히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함부로 말합니까? 오늘부터 누구 한 명도 그같이 생
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예전에 전하지 않던 말씀이 새롭게 나가도 무조건 믿어야 됩니다. 때
가 되었기에 주님이 그동안 해 주지 않으셨던 말씀을 전해 주기도 하시
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성찬식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
해서 책망 설교가 나가면 회개하지는 않고, 그 내용은 교단에서 만들었다
고 하며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한다고 주님의 책망이 또
나갑니다.
지구촌의 어떤 종교나, 개신교나, 천주교나, 어떤 교파도 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말씀대로 살아야 하며 모두 주님의 재림에 해당되는 자들
로서 말씀에 따라 갖춰 살아야 합니다. 교파가 다르다고 해서 재림에 해
당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메시아가 필요하지 않은 자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환난과 극한 재난은 종교에 상관없이 온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됩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재림에는 관심
도 없이 다른 데 몰두하고 살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교회가 설교 때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외칩니까? 주님
의 애타는 심정과 급절한 상황을 말해 주는 곳이 있습니까? 주님의 심정
을 모르고 계시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기대하지 않
으셔도 주를 믿는 자들은 정말 알고 살아야 됩니다. “2000년 동안 외쳐
오면서 기다렸던 이때를 알려 주었는데도 세상에 빠져 살고 자기 우선으
로 살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은 ‘인생은 참으로 모르
고 살고 있다. 주를 믿는 자도 주를 모르면서 믿고 살고 있다.’입니다.
주님께 배우는 것이 그 얼마나 귀하고 큰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앞날을 미리 안다 해도 하늘의 뜻이라면,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피할
수 있어도 그 길을 가야 됩니다. 2007년 5월 전에 얼마든지 다른 데로
선교하러 갈 수 있었는데도 주님은 “한국으로 가야 된다.”고 하시며,
“고생되어도 생명길을 가야 된다. 네가 생명길을 가야 따르는 자들도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앞날을 미리 알고 있어도 피하지 말고 하늘의 길을 가야
됩니다. 사람은 억지로 못 삽니다. 하늘의 운명이 있기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길을 가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그동안 극한 환난과 핍박을 받았기에 오히려 신앙이 살아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봄이 와서 주인이 과일나무에 풍부하게 거름을 주니, 기뻐하며 꼭 열
매를 맺겠다고 결심하고 춤을 출 일입니다. 봄이 왔는데도 주인이 거름해
주지 않아서 거름 한 바가지도 얻지 못하는 저 울타리 너머의 무화과나무
들을 쳐다보면 안쓰럽습니다. 이 시대 말씀의 거름을 해 주지 않으면 열
매를 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어서 전도하여 다 말씀을 듣게 해 주어
라.” 하셨습니다.
요즘은 주일 단상과 수요 단상의 말씀이 30개론보다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계속 근본으로 세밀하게 가르쳐 줘야 됩니다. 이 시대 주님의 계
시의 말씀입니다. 태양이 멈췄는지, 지구가 멈췄는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엘리야가 까마귀에게 밥을 얻어먹고 살았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밥을
얻어먹고 살았는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교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기성에 있을 때는 이치에 맞지 않게 가르치는 말씀을 듣고 의
아하게 생각하며 확실히 믿지 못했습니다. 섭리에 와서 말씀을 듣고 믿어
져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마지막 재림을 앞두고 여기까지 믿고 오
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 때에 맞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듯이, 이제는
재림에 관한 것을 특히 집중하여 듣고 그에 맞게 행하고 그에 합당한 열
매를 맺어야 될 때입니다.
강사들도 재림에 대한 말씀을 깊이 잘 이해하고 신입생들에게 세밀하
게 가르쳐 줘야 됩니다. 예수님도, 선생도 최고로 알아주는 것은 시대의
말씀을 잘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선생의 심정을 대변할 자가 누구입
니까? 봄이 왔으니 과일나무에 거름하는 것이 최고의 할 일입니다. 그래
야 과일나무도 좋아합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을 가지고 이론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의 근본을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어라.”
하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때에 맞는 말씀이 생명을 살립니다.
예술단 음악부에서 몇 명이 지도자에게 교육을 잘못 받고 안 나오는
것을 알고 걱정되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내가 시키는 대로 내
말을 전해 주면 나온다.”고 하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적어서
주님의 말씀을 대필하여 보내 준다고 하며 그 글을 전해 주었더니, 받아
보고 오랫동안 안 나오던 자들과 오랫동안 힘들어하던 자들이 힘을 내서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직접 그들에게 편지를 쓰실 수 없으니
대필자를 통해 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모든 일을 주님께 간절히
간구하여 주님이 행하셔야 됩니다.
이전에도 주님이 말씀하셔서 믿어지게 해 주셨듯이, 이후에도 주님이
말씀하여 믿어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나무에 주는 거름과 같고 에너지와 같습니다. 계시입니다. 고로
모두 주님의 말씀을 전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씀에 따라 역사하시
고, 꿈이나 생시에 나타나 역사하여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한국의 가정국 중에 한 가정이 내게 편지를 썼습니다. 분별해 달라고
함이었습니다.
그 가정에는 다섯 살 난 딸아이가 있는데, 하루는 그 아이가 방에 누
워서 천장을 보고 손짓하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
보기에 엄마는 이상해서 뭘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혹
시 요즘 말씀같이 도적같이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이 보이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예수님인지 물어보니 아이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알기 위해 예수님 영인체 사진을 갖다 주면서 이 예수님이 맞
냐고 하니, 아이는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맞다고 했답니다. 또
누가 보이는데 예수님이 손을 붙잡고 있다고 하기에 선생의 사진을 갖다
주면서 선생님이 맞냐고 하니, 아이는 맞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아이에게 다시 예수님과 선생님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묻고, 아이가 손짓하는 곳을 보고 엄마가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제대로 찍지 못해서 예수님의 얼굴이 일부 찍히고, 선생의 모습
도 얼굴 밑으로 찍혀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예수님과 선생이 맞다고 했답
니다.
그 후에도 예수님과 선생이 또 나타났다고 하기에 아이에게 위치를
묻고 사진을 찍었더니 빛나는 불빛 두 덩어리만 찍혔습니다. 주님이 허락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아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지금 뭐 하시냐고
물으니, “아직 청소가 안되었구나. 청소할 때다.” 말씀하시면서 청소를
하셨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주님이 바쁘게 다니시는 것을 보고 전해 주는데, 모두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듣고 깨닫고 느끼고 살
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번은 일본으로 순회를 가기 전에 한 명의 제자에게만 간다는 것을
알리고 조용히 갔습니다. 그런데 가정국 통역 목사가 그 제자에게 전화하
여 혹시 선생님이 순회 오시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제자가 선생님이
오시는 것을 누구에게 들었냐고 물으니, 통역 목사는 다섯 살 된 자기 아
들이 선생님이 오시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고 하기에 예사롭지 않게
생각하고 감동이 되어 전화해 보았다고 했답니다.
어린아이들이 먼저 압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에도 신앙의 아이들이
주님의 나타나심을 먼저 알고 말해 줍니다. 어린아이들도 재림에 대해 관
심을 갖는 시대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14).
어떤 가정국은 하루에 하나씩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난절하게 하나
하나 매일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알아라. 그동안 내가 선생을 통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며 대했느냐. 내
가 그 육신을 통해 다 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감당하지 못하고, 제 할 일
들을 하지 못하는구나. 또 내가 보낸 자의 흠을 잡고, 시험 들어 말하는
자들도 있고, 이러니저러니 하는구나. 참으로 답답하다. 그에게 말하는
것을 다 내게 하는 말로 듣는다. 알지 못하고 보이는 자만 쳐다보면서 모
세 때처럼 입을 열어 갖은 말을 하는 자들도 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답니
다. 이는 그가 편지에 쓴 내용의 일부입니다.
주님이 ‘나’라는 육신을 쓰고 일해 오셨다고 그동안 선생이 말하지
않았어요? 모두 근본을 잘 깨닫기 바랍니다.
또 말씀하겠습니다.
제2의 엘리야는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선생인
엘리야를 육신 그대로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리실 때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어디 계시나이까.’ 하고
슬퍼하면서 요단강에 서서 그 옷으로 물을 치니 물이 이리저리 갈라졌습
니다(왕하 2:1-14). 엘리사는 자기의 선생인 엘리야가 한 대로 행했습
니다. 제2는 제1이 행한 일을 따라 합니다. 그가 능력을 주었기 때문입
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나와 같이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이 말씀을 절대 믿고 주님을 따라서 30년 동안 해 왔던 것입니
다. 나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주님이 함께하시고 나로 하게
하여 해 왔던 것입니다.
주님이 선생을 통해 섭리역사에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기적을 보이
셨는지 아는 자들은 새로 오는 자들을 잘 가르쳐 줘야 합니다. 자신들도
지난날을 생각하면 더욱 큰 은혜가 가슴 뜨겁게 일어나게 될 것이고, 지
금도 이같이 때에 맞게 역사하시는 주님이심을 더욱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표적은 늘 선생이 말씀한 대로 ‘말씀의 표적’이었습니다.
말씀 때문에 모두 환난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
기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고로 지금도 말씀의 표적
이 일어나 가슴이 뜨겁고, 개인에게도 각종 표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
다. 말씀을 잘 들어야 주님이 나타나시고 역사하십니다.
엘리사가 엘리야가 행한 일을 그대로 보이니 여리고 성 사람들이 엘
리사에게 와서, “주여!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에
심어진 나무의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엘리
사는 그 말을 듣고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하여 그 소금을 물
에 뿌렸습니다. 그 후부터는 물이 좋아져 토산의 열매들이 충실히 열렸습
니다. 정말 ‘주여, 주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의 선생이 되시는 엘리야로부터 능력의 겉옷을 받아 그
옷을 입고 다니면서 영감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선생도 나의 선생 되시는 주님이 주신 능력과 그가 함께하심으로 지
난 30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지나가고 이
세상이 떠들썩하였어도 말 못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중에서 서해안 밀물을 멈추게 한 표적은 일본과 한국의 제자들
1200명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표적입니다.
같은 이치의 표적이 한 번 더 일어났는데 인도양 연안에 있는 말레이
시아 해변에서도 밀물이 멈추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주여!’ 소리가
나오게 하는 표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해변은 수영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는데 그때 청소한 후로 깨끗한 관광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큰 표적을 일으키니 사라가 ‘주여!’라고 했습니다.
‘과연 주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고 주님이 주셔서 행하게 하여 하나님과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 표적을 보이셨고, 우리와 함께 해 오신 하나님과 주님
이라는 뜻으로 그 같은 표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늘 증거해야 됩니다.
선생이 산에서 기도생활을 할 때였는데 차가 없어서 월명동에서 전북
전주까지 56km를 걸어 다닐 때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내가 보였는데 옛날 한국 사람들이 잔칫집에 갈 때 입
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옷을 보면서 엘리야 선지자가 입
었던 능력의 겉옷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그 흰 두루마기를 입고 내 고향
마을 어귀에 혼자 서 있는데 수억의 사람들이 손에 농기구와 연장을 들고
나를 죽인다고 쫓아다녔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귀와 귀신들 인상이었습니
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잘못하여 나를 이같이 쫓아다니며 해를 주려
고 하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네가 세상에 나가면 우리 편을 괴롭힌
다.”고 했습니다. 무력으로 행하는 그들로부터 벗어나 우선 피해야 되기
에 나는 내 고향의 인대산 쪽으로 날아서 도망갔는데, 어느새 그들이 찾
아와 온 산을 뒤덮었고 대전 쪽까지 꽉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와 30m 떨어진 곳에 서서 내게 더 가까이 오지 못하고 쳐
다보며 농기구를 던지면서 갖은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싸우니 다 도망쳤습니다. 이는 앞날에 내가 복음을 전하면 사탄
의 편이 이 시대 사람들을 통해 나를 괴롭힐 것을 미리 보여 주었던 것입
니다.
잠에서 깬 후에 열왕기상 18장을 읽어 보니, 그 시대 사람들은 왕을
중심하여 엘리야를 미워했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
을 닫아 그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바알
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음으
로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가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바
알과 아세라의 거짓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합
왕이 마차를 타고 먼저 이스르엘로 가고 엘리야는 걸어서 갔는데, 엘리야
가 아합 왕보다 앞서 가 왕을 놀라게 했다는 성구를 보았습니다. 엘리야
가 축지를 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그때 기도하다가 나가서 전도하고 나면 밤 12시였습니다. 차
도 없고, 월명동이 시골이라서 오후 5시면 버스가 끊겨서 전도한 후에
집까지 140리를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 시간에 맞춰서 움직일
수 없기에 웬만하면 걸어 다녔습니다. 이때는 시간의 제한도 느끼지 못하
고, 불편함도 모르고 다녔습니다.
선생은 축지를 수백 번 했습니다. 제자들도 몇 십 번을 보고 놀랐습
니다. 선생이 성령과 주님의 손에 이끌리어 이같이 수십 번 행했어도 신
경을 쓰고 보지 않았기에 몰랐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일에 신경을 쓰고
제대로 보지 않으면 눈앞에서 행해도 모릅니다. 지금도 까막눈이라서 모
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구태여 자꾸 말해 줄 필요도 없습니다. 스스로 알
려고 해야 됩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도 안 보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말고, 알려고 결심하며 심혈을 기울여 봐야 알게 됩니다.
섭리역사가 시작되어 이곳저곳 순회하러 다닐 때도 차를 타고 천천히
가는데도 예상 외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느 때는 부산 시내에
서 서울 봉천동까지 3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지금 월명동 잔디밭을 관리
하는 최 권사님도 그 차를 같이 타고 왔습니다. 증거한 것을 들어 보았지
요? 주님은 선생의 뒤를 떠밀고 다니시고 능력을 주시면서 주님이 원하
시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누구에게나 시간적 표적이 일어납니다. 4시간 만
에 할 것인데 2시간이나 1시간 만에 하는 것이 시간적 표적입니다.
엘리사가 좋지 않은 물에 소금을 뿌려서 물을 좋게 하고 열매를 열게
했듯이, 선생도 이 시대 말씀의 퇴비를 하여 모두 신앙의 열매를 열게 할
것입니다. 믿습니까? 용기를 내고, 힘을 내고, 포기하지 말아요. 여러분
들은 그동안의 환난도 모두 이긴 사람들이 아닙니까?
엘리야 시대에서 제2의 엘리야는 엘리사였습니다. 제2가 되려면 제1
과 같이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됩니다. 그리고나
서 제2의 사명을 맡게 됩니다. 신약시대에서 제2의 엘리야는 세례 요한
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제1과 같이 하면 상징적으로 제2의 예수, 제2의 엘리야, 제
2의 가룟 유다, 제2의 선생이라고 합니다. 가수 중에서도 마돈나와 같은
자를 보고 제2의 마돈나라고 하지요? 연예인들은 제2의 아무개라고 흔히
말합니다.
섭리사에서 제2의 선생 소리를 듣기 위해 열심히 하는 자들이 있습니
까? 그렇게 하려면 나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연구하며 오직 주 뜻
대로 해야 됩니다. 모두 제2의 선생이 되어서 과거에 주님이 선생에게
역사하셨듯이 해 봐요. 주님이 함께하시니 섭리역사 30년 동안 별의별
표적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내 옆에 있던 한두 명의 제자들은 그것을 보
았습니다. 신경 써서 보았으면 알고 말해 줄 것입니다. 성경도 주님이 행
하신 일을 본 자가 기록했습니다.
선생은 주님께 나만이라도 성경말씀을 지키며 순종할 수 있는 데까지
순종하여 원수도 사랑하면서 주님과 같이 해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
님이 좋아하시면서 분명히 “꼭 그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서 지난 30년 동안 나를 해하고 핍박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다윗과 같이
참아 왔고, 주님의 심정으로 참아 왔습니다.
어떤 자는 야곱 같은 사명을 한다고 제2의 야곱이라고 하며 야곱의
노정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펴는 자도 있습니다. 야곱처럼 자녀도
12명을 낳았습니다. 어떤 자는 사도 바울같이 결혼하지 않고 주님의 일
을 하며 제2의 사도 바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자는 성경에 나오
는 이름을 똑같이 짓고 살기도 합니다.
어떤 자는 제2의 예수가 되어 주님과 같이 그 사명을 해 보겠다고 하
기도 합니다. 제2의 주님이 되어 그의 일을 잘하고 싶다고 하며 제2의
예수라고 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
즘 거리에서 전도하러 다니는 자들을 보고 현대판 제2의 예수라고 하기
도 합니다. 또 어떤 부흥강사가 훌륭하다고 하며 자기는 제2의 그 사람
이 되겠다고 합니다.
선생은 주님께 배웠으니 주님의 노정을 가야 했고, 제2의 주님의 일
을 하는 사명자가 되기 원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주님은 신성이시니 따라가기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
마다 주님은 내가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셨
고, 환경의 표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다가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저도 주님과 닮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제1의 주님으
로 제1의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저는 주님께
배우는 제자로서 제2의 사람이 되었고, 제2의 이스라엘이라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제가 태어난 곳도 주님이 태어나신 작은 베들레헴처럼 쓸쓸하
고 적막한 월명동 달동네입니다. 주님은 33세까지 일하셨고, 제가 34세
일 때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주님도 형제들이 많았고, 저도 형제들이 많
습니다. 주님은 3년 동안 복음을 전하셨고, 저는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3년을 7년으로 확대하여 전반기 21년 동안 뛰었습니다. 주님은 무덤에
서 3일 반 동안 계셨고, 저는 3일 반을 확대하여 전 3년 반, 후 3년 반
무덤기간을 보냈습니다.”
주님께 배우고 주님이 함께하시어 30년 동안 역사를 해 왔습니다. 섭
리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이 제2의 주님의 사명을 해 온 것입니다. 그래
서 누구보다 고통도 많고, 환난도 많고, 칼이 심장에 꽂히는 듯한 고통도
많이 받고, 억울함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하시어 상상하
지 못할 표적도 많이 일어났고,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큰일도 섭리역사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죽으실 때까지, 그리고 특히
승천하실 때까지의 노정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당하셨듯이
당했고,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셨듯이 해 온 것입니다. 이는 천하
가 변해도 변함없는 역사입니다. 주님이 그같이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살아 계셨을 때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전해 주셨던 말씀을 우리
에게도 자세하게 전해 주셨습니다. 또 주님은 승천하시는 모습까지 내게
보여 주시면서 붓을 주셨습니다. 붓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할
때나, 어떠한 표적이 일어날 때나 늘 ‘하나님이 하셨다. 주님이 하셨
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말씀을 할 때
도 주님을 숨기면 전할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지난 30년 역사를 돌아봐야 합니다. 왜 제자들은 그 엄청난 일들을
책으로 쓰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전형 노정을 30년 동안 동시성으로 펴
왔습니다. 이제는 그 노정이 끝나고, 섭리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이
내게 마지막으로 승천하시던 모습을 다시 보여 주시면서 “내가 곧 온
다.”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기 위해 준비하고 있
습니다. 주님이 이 같은 뜻을 두고 섭리역사를 이끌지 않으셨으면 여기도
기성 교회처럼 어른들만 꽉 찼을 것이고, 선생도 희망이 없어 목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내게 실체로 수십 번 나타나셨고, 수천 번 역사하셨고, 계속해
서 말씀해 주시고, 나와 대화하셨습니다. 고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
많은 일들을 해 오며, 많은 사람들의 물음에 회피하지 않고 대답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역사를 일으키고 표적을 일으키며,
주님과 함께 간 곳에는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왔습니다. 많은 일들이 일
어났지만 주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많은 일을 보고 겪었어도 다 말
하지 못하고, 설교 때 은밀히 간접적으로 말해 오기만 했습니다.
한번은 그 당시 현실의 상황에 대해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이 늘
나를 통해 ‘평화롭게 살자.’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갖은 핍박을 받으
며 갖은 악평과 언론 보도가 쏟아져도 참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악평은 끝이 없네요.”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나처럼 아무도 곡하게 여기지 말고, 잘되라고 기도해
주어라. 그러면 축복한 대로 잘되지 않겠느냐. 너도 내가 안 썼으면 몰라
서 저들같이 하지 않았겠니. 저들같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 아니냐. 핍
박을 받고 고통을 당할지라도 나와 같이 가는 자가 결국 복이 있고 영원
한 하늘나라에 가게 되며, 핍박한 자는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사도 바울같이 힘들다고 잠언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감사
하고 기뻐하며 노래하여라. 나는 환난 중에도 너희들의 찬양을 기다린다.
이것저것 이유를 달고 하지 않으면 할 것이 없다. 내가 잠언으로 한 말을
다시 들어 보아라.” 하셨습니다.
또 한번은 유럽에 있었을 때의 일인데, 어떤 뉴스를 보고 나서 주님
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 평화롭게 살아야 되는데 역사적으로 그같
이도 전쟁을 많이 하고, 그같이도 사람을 많이 죽여 놓고 또 전쟁을 하려
나 봅니다. 비밀로 바다 속으로 잠수함을 타고 다니면서 세계 정보를 입
수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정보 통신탑을 세워서 자랑하며 활동하
고 다닙니다. 저 나라는 또 원자폭탄이 오죽이나 많습니까? 그놈의 원자
폭탄이 모두 무색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놈의 원자폭탄 때문에 세계인들
이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계에 살면서 늘 불안해하며 공포 속
에 삽니다.” 하며 진정으로 속심을 털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화가 나 못마땅한 주님의 표정이 느
껴지고 그 심정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도 연속해서 주님께 기도했
습니다.
“지구촌을 축소해 보면 한 민족이고, 또 축소하면 한 가정과 같은데
한집에 사는 식구들 중에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하고 누구는 싸우기만 하여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분위기를 깨뜨리면 기분이 나쁘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습니다.” 하며 선생이 복음을 전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기나긴 현실의 사정들을 주님께 자세히 고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알았다. 나도 속이 탄다. 의식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된다. 너는 내 손발이고 내 심정이니, 알았다.” 하셨습니다.
그 후 한 달 만에 그 잠수함은 바다 속에서 선장실의 기계 폭발로 인
하여 고장이 났습니다. 이 일로 거기에 타고 있었던 200여 명의 국가 정
보원들은 산소 공급이 안 되어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죽었다는 신문 기사
를 읽게 되었습니다. TV 화면을 통해서도 계속 세계로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 정보 통신탑은 상공 400m에서 불이 났고, 너무 높아서
통신탑이 다 탈 때까지 소방대가 불을 끄지 못하여 저장된 정보들이 모두
타 버렸습니다.
그때 설교를 통해 뉴스를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환난을
주는 자들만 보며 힘들어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님과 함께
행하시는 것을 보아야 그 행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인지 아는
사람은 말해 보세요.
지금은 어느 나라든지 주님이 심판의 매로써 사용하지 않으시는 이
상, 평화를 파괴하며 스스로 행한다면 그 하는 일이 역천하는 행위가 되
어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개인이든, 단체든,
민족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믿습니까?
이 평화의 시대에 군대를 자랑하고 무기를 자랑하면서 으름장을 놓으
며 보는 자들을 애간장 타게 하고 전쟁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가 있으
면, 하나님은 그 죗값으로 먼저 그 나라를 흔드시며 재앙으로 치십니다.
모두 보지 않았습니까?
보기는 보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소경이며 마음이 둔한 자
들로서 하나님과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 취급을 받습니다. 섭리사에는 그
렇게도 외치며 가르쳐 주었는데 아직도 모르는 자들이 있으니, 그런 자들
은 이제 더 가르쳐 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전쟁하려고 사람들을 겁주고 괴롭게 하는 자들의 생명은 땅에서 찾아
도 못 찾을 때가 가까이 옵니다. 괴롭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들도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는데 교만히 행합니다. 섭리 안에
서는 모두 겸손하게 살기 바랍니다.
말씀의 거름을 해 주시니 이제 우리는 열매를 꼭 맺어야 됩니다. 이
미 ‘우리’라는 각 사람의 나무에 도끼가 놓여 있습니다. 주님이 약속하
시기를 “열매를 열면 좋으려니와 열지 않으면 찍힌다. 영원한 고통의 세
계로 가야 된다. 열매를 맺으면 나와 같이 영원한 천국의 나라로 간다.”
고 하셨습니다.
돌감나무나 돌포도나무는 아무리 거름을 해도 좋은 열매를 열지 않습
니다. 거름을 주기보다 톱으로 베고, 참감나무를 접붙여야 됩니다. 돌감
나무나 돌포도나무 같은 자들은 그 행위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름을 주었을 때 쭉쭉 빨아 먹기만 하면 됩니다. 섭리사 모
든 자들은 말씀의 흡수력이 강합니다. “이때 진실로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자들은 결단코 휴거되지 못하고 사탄의 것이 된다.”고 주님은 경고
하셨습니다.
하루 백 리를 가려면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해 질 무렵에 겨우 도착
합니다. 선생은 걸어 보았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에 놓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때를 연장해 주시고 주님이 계시해 주시어 겨우 외치고 있
는데, 그마저 별것 아니게 생각하고 겉으로만 성의 없이 말씀을 듣는다면
자신이 자기를 뻔히 아는 대로 되고 맙니다.
‘주님이 시간을 연장해 주셨다. 그 시간마저 끝이 다가온다. 이제는
더 이상의 연장 시간은 없다.’는 말씀의 뜻을 잘 모를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를 연장하고 준비하게 하신 후에 다시 와 보니, 또 준비가 안되어
마지막으로 연장해 주었다는 말이라고 주님은 다시 근본을 말씀해 주셨습
니다.
선생이 새벽에 기도할 때 주님께 재림에 대하여 사명자 린다를 통해
섭리사에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말씀해 달라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연
장해 주었으니 빨리 갖출 것을 갖추어라.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
이고, 더 이상의 연기는 없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린다의 글을 다시
읽어 보기 바랍니다.
말씀을 줄 때 받고, 전할 때 들어야 합니다. 섭리의 말씀은 끊어지면
개인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전에 들었던 말씀을 듣는
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과일나무들은 봄에 한 번에 몽
땅 거름을 하면 그 해에 열매 맺을 것을 맺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과
일나무는 한 해 동안 말씀의 거름을 끊임없이 해 줘야 봄에 과일나무에
거름을 한 번 해 주는 격이 됩니다.
금년도 말씀이 벌써 4분의 1이 나갔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성장이 멈
춥니다. 방향을 모르고 그 자리에 멈춰 서 있게 됩니다.
말씀은 ‘에너지’와 같고, ‘차의 기름’과 같습니다. 사람의 영과
육과 정신의 힘과 능력이 됩니다. 사람이 1일, 2일, 3일, 1주, 2주, 3주
동안 밥을 먹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결국 쓰러지고 못 일어납니다. 힘이
빠지고, 맥이 빠지고, 병이 나고, 포기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말씀은 음
식과 같아서 계속 듣지 않으면 결국 쓰러지고 포기하게 됩니다.
또 말씀은 식물에 필요한 물과 같습니다. 식물에 제때 물을 주지 않
으면 금방 시들고 꽃도 피우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열매를 열기 전에 죽
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만물을 보고 그 처절함을 배우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값있고 중한지 알아야 합니다. 돈에 비하겠습
니까? 금 덩어리에 비하겠습니까? 말씀은 ‘하나님’이시고 ‘주님’이
시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영원한 자기의 생명입니다. 또 ‘말씀을 받으면
신이 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주님으로 보고 좋아하며 사랑해야 됩니
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은 자기를 외면했다고 심정 상해 하시며 자존심
상해서 그냥 가 버리십니다.
주님은 “나의 때가 왔으니, 제발 고기 한 점과 같은 인생 가지고 목
에 힘주지 말아라. 자존심을 버리고, 자기 좋아하는 것을 좇지 말아라. 마
지막으로 아쉬운 소리 하니 이때 기념으로 무릎 꿇고 박박 기어 와라. 그
렇지 않으면 영원히 후회한다.”고 재차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자존심이 상하여 나온 말씀입니다. 내가 대신 빌었습니
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다 내 죄고, 내 잘못이라고 했
습니다. 잘하는 자들을 쳐다보시고 힘내시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몇 명이 면회를 왔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힘들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하려 해도 안 되니 자포자기 했다가, 다시 열심
히 하려고 결심하고 면회를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 얼굴 보고 가서 힘내고 잘해 보겠습니다.”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은 그가 잘하고자 하나 잘 못 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시고, 또
그 눈물을 보시고 나로 말씀하시기를 ‘어디에 가서 섭리의 일을 하라.’
고 했습니다. 주님은 신혼골수를 꿰뚫어 보시니 다 아십니다. 양에 따라
각각 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비로 대해 주십니다. ‘자비’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면회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서 나도 그같이 뜨거운 눈물을 쏟으면서
깊이 기도하고 싶다고 하니, 주님은 “너는 보았느냐?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기뻐하고, 한 명은 속으로 울고, 한 명은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안
나와서 흘리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 마음속을 보았느냐. 모든 자들이 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겠느냐. 모두 각각이다.” 하셨습니다.
내가 왜 면회를 안 하려고 하는지 알아요? 시간에 쫓기면서도 면회를
하면 얼굴을 봐서 좋습니다. 얼굴을 처음 본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꼭 해
주는데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 속 시원히
말했으니 나는 좋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처음 본 자에게 잘하라고 한
말도 그에게는 상처가 된다.” 하며 나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처음부터 웃으면서 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면회가 끝나고 돌아오면 내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면회 온 자들은 좋았겠
지요. 주님도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은 답답합니다. 지적할 것과
모순이 보이는데 나뭇가지 치듯이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또 언제 만나
겠습니까?
주님은 내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십자가를 지고 기도해
주어라. 그래야 고쳐지기도 하고 구원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
님은 온 세상 모든 자들에게 그렇게 하신답니다. 그러니 죽는 고통을 받
는 것입니다. 고통 없이는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30년 동안 해
왔기에 이제는 나도 그만 하고 싶지만 주님의 말씀을 통역할 자가 없습니
다.
오늘의 말씀을 깊이 듣고 마음에 새겨 담아 가고, 다시 글로 쓴 것을
봐야 됩니다. (부활 주일이 오기 전에 부활에 해당되는 성구들을 자세히
몇 번씩 읽고 와야 주님이 말씀하실 때 잘 이해하고 은혜가 됩니다. 모두
꼭 읽고 오세요. 모두 안녕히 가세요. 주일에 또 만나요~)
* 다음 주는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의 말씀을 위해 부활에 관한
성구를 있는 대로 다 읽어 보고 오라고 했지요? 이제 주님이 직접 부활
에 대해 예전보다 더 깊이 말씀해 주시니 내용이 깊고, 어떤 것은 방향이
바뀌고, 어떤 것은 재해석되었고, 차원도 높아졌습니다.
부활에 대한 성구를 찾아서 한 절 한 절 다시 읽어 보기 바랍니다.
모두 잘 읽은 후에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요 5:20~29, 롬 8:5-8, 고
전 15:45~54, 살전 4:16-17 / 기타 - 사 26:19, 요 11장, 요 20
장, 요 21장, 약 2:17, 약 2:26, 벧전 4:6, 계 3:1 등등.)
부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거나, 또는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합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자의 부활과 육신이 죽은 자의 부활이 다르다고 했
습니다.
첫째, 육신이 살아 있는 자는 육신 부활이 필요가 없습니다. 육신이
살아 있으니 다만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살아 나오는 부활이 필요합니
다. 육도, 영도, 정신도 사망권에서 나오는 부활이 필요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고 했
습니다. 곧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
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를 회개하고 형제를 사랑하면 그 영이 육과 함께 생명권으로 부활
되어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둘째, 육신이 죽은 자는 육이 회복되는 부활이 필요합니다.
베다니 나사로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었다가 주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 이에 해당됩니다.(요 11:1-44)
셋째, 재림 때가 되면 살아 있는 자들의 육이 영으로 부활되고, 육이
죽은 자들의 산 영이 부활됩니다.
이같이 부활이 각각 다르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나와 있으니 꼭 읽고 와야 말씀을 들을
때 혼돈되지 않기에 핵심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도 주님만이 확실히 아시니 주님이 말씀해 주신
다고 했습니다.
모르면 모르고 살게 됩니다. 어떤 것은 때가 되면 알게 됩니다. 두 가
지 중에 하나만 주장해야 혼돈이 없습니다. 손등 아니면, 손바닥입니다.
각각 쪼개서 봐야 됩니다.
1. 사건적 부활, 심령의 부활, 정신의 부활, 행실의 부활
2. 육체 부활도 있었으니, 주님이 죽은 자들의 육신을 다시 살려 주
셨습니다. 예) 베다니 나사로
3. 마지막 재림 때의 부활 - 예수님을 믿다가 죽어서 재림을 기다리
던 자들은 재림 때가 되면 부활합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자들도 재림 때
가 되면 육이 영으로 변화되는 부활을 합니다. ‘홀연히 변화된다.’는
사도 바울의 말대로 육이 영으로 홀연히 변화됩니다.
마지막 재림 때의 부활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또 직접
보고 확실히 말한 자가 없으니 모두 잘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면 성경대
로 믿어야 됩니다. 육이 살았는데 영이 살았다고 해도 안 되고, 영이 살
았는데 육이 살았다고 해도 안 됩니다.
성경대로 믿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것 때문에 운명이 좌우되는 것
이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면 믿어지지 않고, 신앙생활까지 못 하게 되기
도 합니다. 주님께 확실히 말해 달라고 하니 “성경에서 내가 한 말을 다
시 읽으면 안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도 주님과 함께 행하였기에 말하는 것인데, 이를 믿지 않고 따라
오려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주님이 행하
신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지금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내가 행하는 것을 보고는 그 전의 것까지 믿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지 못하는데 억지로 믿게 하려다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고
주님도 믿지 못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
도 그와 같습니다.
선생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주님이 말씀하셨어도 다시 확인하고 믿
는 신앙이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눈으로 보고 믿으려 하면 많이 모른
다. 가령, 세계에 있는 것들도 현지에 직접 가서 보고 믿으려 하면 하루
에 몇 개 못 배운다. 하지만 본 자가 한자리에서 말해 주는 것을 믿고 따
르면 10개, 20개 더 배우게 된다.”고 하시면서, 하나를 보이면서 ‘다른
것도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도 가서 보고 배우고 믿으려면 일반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못 가 보니 성경에 나온 대로 믿고, 천국을 갔다 와서 보고 말하
는 자의 말을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이 얼굴을 안 보여 주셔도 말씀하시거나 느껴지면 주님
을 본 것으로 알고 따르고 기록하니 많이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
고 성경말씀을 계속 읽으면서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우게 되
었습니다.
한때 주님께 묻기를 “주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에
대해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여 읽어도 헷갈립니다. 사도 바울은 육은 하늘
나라에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시체가 없
어졌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육신 부활 같고, 부활 후에 돌아다니신
것을 보면 영의 부활이 분명합니다. 제가 확실히 믿어져야 다른 자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데 어떻게 해야 돼요?”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이
에 대해서는 네가 믿은 대로 믿고 가도 괜찮다. 억지로 믿지 말아라. 누
구든지 자기 믿음대로, 아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냐.” 하셨습니다.
고로 선생은 요한복음 5장의 말씀과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과 요한
복음 21장(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의 말씀을 읽고 영적 부활로 봤
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을 때 시체가 없어졌고,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살았다고 했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나 살아났다.”고
하시며 안 믿는 자를 꾸짖으셨습니다.(요 20장)
이로 인하여 선생은 주님의 부활에 대해 두 가지 다 믿어 왔습니다.
주님의 육신 부활을 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적 부활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으셔서 죽은 자를
살리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육신은 하늘나라에 못 간다.’
고 했습니다. 또 ‘세상에 살면서 죄지은 몸을 왜 죄 없는 하늘나라로 오
게 하겠느냐.’ 하는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육을 영으로 변화시켜 그 정신과 마음을 가지
고 하늘나라로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의 행실
과 정신을 영이 가지고 간다는 말은 이해되지만, 그 뼈와 살도 가지고 가
냐고 하며 의아해합니다. 이것에 대해 확실히 해석하는 자가 없으니 주님
이 직접 말씀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꼭 부활에 관한 성구를 모두
읽어 보고 와야 됩니다.
선생은 주님만큼은 메시아시니 그 몸을 버리지 않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죄가 없는 몸이고, 세상에서 당한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은 모두 천국에 가 있는데 그들의 무덤에는 뼈
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성경의 여기를 읽으면 영적 부활같이 나와 있고, 저기를 읽으면 육적
부활같이 나와 있습니다. 고로 교파마다 주장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교파는 영적 부활이라고 하고, 어떤 교파는 육적 부활을 교리로 가르칩니
다. 외국에서 흙을 도자기로 만들어서 자기 나라에 가지고 들어올 수는
있으나, 흙 그대로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절대 반입하지 못합니다. 이
와 같이 육도 그같이 변화되어야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입니다.
꼭 부활 성구를 읽고 오기 바랍니다. 모두 안녕히 가세요. 부활주일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