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09.04.08 (수)
보충말씀7
- 선포일
- 2009.04.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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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말씀 7 (2009-4-8)
교회에서는 말씀을 잘 전해야 됩니다. 말씀이 너무 중요
합니다. 말씀 때문에 그 시대 종교의 운명이 좌우되었습
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선지자가 있어서 말씀을 전할 때
는 시대가 살아나고 선지자가 없을 때는 시대가 죽어있었
습니다. 예수님 때는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니 2
천년동안 시대가 다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물론 사람들이
말씀을 듣게 인도를 해줘야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말씀으로 끌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성악부들은 자꾸 새로운 곡으로 노래를 불러야 됩니다.
만날 옛날노래만 부르면 아무리 유명한 가수라도 뒤처지
게 됩니다. 그러니 자꾸 새롭게 만들어야 됩니다. 내가 곡
을 만들어주겠습니다. 찬송가도 보면 몇백 년전 사람들
이 지은 것이니 그것만 부르면 안 됩니다. 외국 음식도
가끔은 먹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으로 먹어야
되듯 우리식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씨를 뿌리면 관리가 문제입니다. 관리를 얼마나 잘 하느
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나무를 키울 때도 거름도 주고 열
심히 가꾸면 관리가 잘 됩니다. 신앙을 잘 관리하면서
육적인 것도 관리를 해야 됩니다. 관리를 정말 잘 해야
됩니다. 못하면 안 됩니다. 관리를 하기 어려우면 사람을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아픈 사람을 계속 간호하려면 힘
드니까 병을 고쳐주면 됩니다. 병이 나으면 관리를 안 해
줘도 본인이 관리를 합니다. 이렇게 관리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도 신앙생활을 그럭저럭 하면서 일반교회를 다녔으면
목회 안 했을 것입니다. 우리 윗집과 우리 집에 목사님들
이 많이 있는데 나까지 왜 목회를 합니까? 이렇게 해서
는 안 되겠다 하고 교회에서 나와 산에서 기도생활 20년
동안 하니까 그때 확 달라졌습니다. 사상이 달라져 버렸
습니다. 내가 사상이 변하니까 환경도 변하게 만들어놨습
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켜 버렸습니다. 그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이 왔습니다. 내가
만날 새벽마다 적습니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더 이상 특
별계시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 영이 돌아가셨습니까? 성경이 아니더라도 계속 말
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말한 것은 제2의 성
경이다.” 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구
에 예수님이 오셔서 2천년동안 온 인류에게 수십억번은
이야기 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관리해 오셨습
니다. 이것이 계시 아닙니까? 신학에서 더 이상 계시가
없다는 잘못된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도 손짓 발짓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
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날 새벽에 내가 늦게 일어났습니다. 새벽2시에 일어났
습니다. 이때 일어나면 늦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12시를
꼭 점령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러
나 보통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2시간 늦게 일어
난 것에 대해 내 자신을 너무 원망했습니다. 애들이 자
기가 잘 못했을 때 스스로 포기하고 자기를 원망하는 마
음을 나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이런 마음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다 자기 스스로 복이 있습니
다. 자기가 자기에게 희망을 걸었을 때 안 됐을 때는 너
무 너무 슬픈 것입니다. 상대로부터 오는 희망과 자기 자
체로부터 오는 희망이 있습니다. 자기 자체로부터 오는
희망과 복은 자기가 직접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원
들도 자꾸 고민하고 해보려고 도전하고 해야 됩니다.
나는 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나를 판단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청중이 세계적으로 나를 따라
오는데 이들을 어떻게 지도하면 좋겠냐고 늘 생각하며 기
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월남에서 한참 싸울 때 쓰던 그
런 신형무기를 한 대 주시면서 “이걸 사용해.” 하셨습니
다. 그러니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요즘은 진짜 바쁩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립니다. 외
국에서 있을 때도 바빴는데 지금처럼 이렇게까지는 안 바
빴습니다. 너무 너무 바쁩니다. 시간이 모자랍니다. 하루
가 5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시골은 열심히 해도 선교가 어렵습니다. 일단 해보
고 안 되면 캠퍼스 같은데 가서 뛰십시오. 유능한데 시골
에 처박혀 있어도 안 됩니다. 시골은 시골식으로 가야 합
니다. 시골은 젊은이가 없기 때문에 그 지역의 어른들
이나 토박이들을 데리고 해야 됩니다. 그러나 또 해보면
혁신을 일으키면서 할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해야 됩니
다.
기독교는 30년 전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습니다. “예수
님 곧 오십니다.” 하면서 엄청나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내
가 15살 때 동네에서는 시골에서 돼지 잡아서 잘 안 먹
었는데 돼지 잡아서 서로 나눠주면서 먹고 그랬습니다.
나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외치더니 지금 2000년도
에 더 가까워졌는데 안 외치고 있습니다. 더 외쳐야 할
때인데 안하고 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나는 예수
님께서 외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전부터 재림
을 외쳤으면 교인들이 섭리에 안 있고 기독교로 갔을 것
입니다. 가장 큰 것은 요한복음 5장에 나온 예수님의 말
씀대로 현실에서의 부활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만날
죽은 몸이 살아나는 부활만 외치지 않았습니까? 이런 부
활도 있기는 하지만 죽은 몸이 살아나는 시체부활보다 우
리는 살아있기에 심령의 부활, 정신적 부활, 사상적 부활,
행동적 부활 이런 것을 외쳐왔습니다. 안 믿는 사람 믿게
만들어 주는 게 부활이라고 외쳐왔습니다. 현실에서 상관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