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09.07.22 (수)
090722 수요말씀 나 여호와는 처음과 나중이다 첫사랑을 찾아라
- 선포일
- 2009.07.22 (수)
- 성경 본문
- 요한계시록 21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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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22-수요말씀_나 여호와는 처음과 나중이다_첫사랑을 찾아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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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2일 수요말씀>
1. 나 여호와는 처음과 나중이다
2. 첫사랑을 찾아라
본 문 요한계시록 21장 6절
요한계시록 2장 4-5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요즘 정말로 바쁩니다. 이 말씀을 쓰기 전에 시간에 쫓겨서 설교 말
씀을 빨리 쓰려고 펜을 잡고 “주님, 오늘은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급히 물었습니다. 주님은 “아무리 급해도 먼저 기도하여라. 기도하면 말
씀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나는 “주님, 한번 기도 시작하면 몇 시간씩 가는데 시간이 없
어서 이번 수요말씀 못 보내겠습니다. 말씀 보낼 시간이 정확히 5시간
남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다 쓴 후에 교정하고 끝낼 때까지는 15시간
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은 새벽 1시 반입니다. 가능할까요?” 했습니다.
주님은 또 “기도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나의 모든 시간을 공적으로 썼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같이 시간에 쫓겨 이제야 말씀을 쓰게 되어 죄송
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간구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주님은 항상
꼭 결재할 것이나 어떤 문제 편지들이 와도 그것 먼저 손대지 말고 말씀
먼저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순종하지 못했다고 회개했
습니다.
편지가 오면 ‘선생님, 제 힘으로는 안 됩니다. 몇 줄이라도 좋으니
생명 좀 살려 주세요.’, ‘누가 열심히 했는데 안 나옵니다. 기적으로
만났는데 교회에 갈 마음도 없고 자기 갈 길 바쁘답니다. 그런데 선생님
은 찾습니다.’ 이 같은 편지들이 내게 몰려와 급하다고 빠른 결재를 부
탁합니다.
결재를 하고 답장을 쓰다 보면 시간에 쫓겨서 설교를 못 쓸 때가 많
아서 설교 쓸 시간을 놓칩니다. 고로 주님은 항상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말씀 먼저 받아쓰고, 그 후에 시간이 있으면 결재해 주고 생명을 살리는
편지를 쓰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최우선 순위입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아야 하는데, 생활 속에서
정말 급한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들을 하다 보면 시간에 쫓겨서 주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못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같이 하면 같은
공적인 삶이라도 육적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러니 절대적으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님의 일 먼저 해야 됩니다. 아무리 공적인 일이라도 뒤로 미
루고 주님을 최우선으로 둬야 합니다. 반드시 기도가 최우선이어야 합니
다. 새벽은 절대 꼭 쥐고 놓치면 안 됩니다. 섭리사는 새벽에 모든 역사
가 다 일어납니다.
이날, 아무리 급해도 주님은 기도 먼저 하라고 하여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항상 회개하고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 기도한 지 3분도 채 안
되었을 때 말씀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다.” 주님은
선생이 이제 말씀 써서 보내기에 늦다고 생각하시고, 기도하니 금방 말씀
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다.’라는 말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
님이 행하신다. 오직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자가 없
다.’는 말입니다. 이는 전제 조건입니다.
오늘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다’의 근본은 ‘하나님
은 처음과 같이 나중까지도 변함없이 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반갑게 대해 주시고, 사랑으로 대해 주시고, 진리
와 기쁨과 각종 기적으로 대해 주셨듯이 지금도 안 변하시고 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태양이 떠서 질 때까지 동일하게 빛을 비추고, 뜨겁게 찬
란하게 환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만물들을 대하듯이 나는 지금도 처음같이
너희들을 대해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도 성령님도 동일하십니
다.
‘하나님이 변하셨나? 주님이 변하셨나?’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
다. 선생에게 오는 편지를 보면 선생이 자기 대하는 것이 변했는지 제일
걱정하고, 더러는 자포자기하면서 편지를 쓴 사람도 있습니다. 섭리를 나
간 사람들 중에서도 그들을 관리했던 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자기를 대
하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기에 나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선생이 변했나?’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선생의 기대대로 못
해 주어서 예전같이 대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인데 처음같이 안대해 주면 구원도, 사랑도, 믿음도,
화평도, 이상세계 희망도 이룰 수 없기에 선생의 마음은 처음같이 여전합
니다. 믿습니까? 믿지 않으면 불안하고 희망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
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편지해 주지 않아도 그런 줄 아세요. 자신들이
할 일을 못 해서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처음부터 나중까지 변함없이 대해 주는데 너희는 왜
나를 처음같이 안대해 주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주님
께서 모두에게 계시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제 처음 와서 신앙생활 하며 말씀과 은혜의 불이 붙어 하나님을 주
님을 애인 사랑하듯 사랑하며 사는 자들을 보면 ‘나도 한때는 저같이 했
는데... 나는 이제 나이 먹고 오래되어서 안 돼. 못 하겠어.’ 하는 자들
이 있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처음같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처음
같이 하나님 사랑도, 진리도, 은혜도, 성령의 역사도 뜨겁게 불이 붙습니
다.
하나님과 주님은 지금도 처음같이 다 대해 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점점 변하여 처음같이 하나님과 주님을 대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처음과 나중이 다른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심정에 안 맞는 자들이 되었
고, 하나님이 슬퍼하시게 되었고, 걱정하시게 되었고,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멀리 보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일어났으니 모두 처음같이 다시 생각하며 행해
야 됩니다. 성령 집회를 통해 처음같이 해야 됩니다. 못 하면 낙오자가
됩니다. 하나님과 주님과 선생이 여러분들을 처음에 어떻게 대해 주셨는
지 생각하고 그같이 행해야 처음같이 불이 붙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우리를 대해 주십니다.
보통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최첨단으로 극적인 사랑과 믿음과 화평과 희
망으로 대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우리를 믿어 주시는데, 우리가
절대 믿어 주지 않으니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 믿고 행
해야 표적이 일어나 불가능한 것이 이루어집니다.
선생님도 여러분들을 믿어 주는데, 나를 대하는 자들이 안 믿어 주니
이루어질 것이 깨어지고 안 되어 정말 실망하게 했습니다. 주님이 시키는
대로 행해야 됩니다. 안 하면 희망하던 일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주님이 하신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
수요말씀을 쓰기 전에 너무 바쁘지만 주님께서 먼저 기도하라고 말씀
하시어 기도하니 3분 만에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지금 풀어 주면서
쓰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처음
사랑하듯이 지금도 변하지 않고 너희를 대해 주시는데, 너희는 하나님을
어떻게 보고 처음같이 대해 주지 않느냐?”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처음 대하듯 대하지 않으면 자기 길로 가게 됩니다.
자기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음부로 가는 길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입
니다. 아무리 즐겁게 먹고 입고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랑하고 재미
있게 살아도 그 길은 한마디로 말해서 ‘지옥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직행
길’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주님을 처음 대하듯 대하는 그 신앙만이 ‘천
국으로 가는 직행 길’입니다.
처음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좋아하고 믿고 온전한 신앙을 쏟
으면서 사는 삶이 희망이요, 기쁨이요, 천국의 삶입니다. 그 삶을 살지
않으니 자기 길로 가서 함정에 빠지고, 고통에 빠지고, 지옥의 갖은 고통
들을 겪는 것입니다. 처음같이 하면 됩니다. 그 책임은 자기가 져야 됩니
다.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해야 됩니다. 누가 대신 못 해 줍니다.
여러분들이 처음 어떻게 교회에 나오고 섭리사에 오게 되었지요? 말
씀 좋고 선생이 좋아서 교회에 왔습니다. 안 좋았으면 안 따라 나왔습니
다. 말씀 좋아하고 선생을 좋아하면서, 하나님도 주님도 좋아하게 되어
결국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처음같이 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
습니다.
선생도 마음 변하지 않고 처음과 동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편지가 옵니다. 그래서 답을 해 주었습니다. ‘너는
마음도 행실도 변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 오늘도
여전하다. 선생 오해 말고 너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임을 알아라.’ 했습
니다.
섭리 사람들은 왜 선생을 그렇게 오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마
음대로 생각해 놓고 선생을 오해하고 자기만 마음고생 합니다. 남은 그렇
지 않은데 자기가 오해하여 함정에 빠져서 고생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처음같이 여전히 우리를 대해 주십니다. 그런데 자
신들이 처음같이 대하지 못해 놓고 하나님과 주님도 자기 맘 같은 줄로
오해하고 ‘주님이 나 버렸다. 나는 희망이 없다. 세상에서 살아야 된다.
내 나름대로 섭리에서 살 수밖에 없다.’ 생각하면서 사는 자들이 많습니
다.
우리가 나이 먹어 늙어도 하나님과 주님은 처음같이 대해 주십니다.
모두 첫사랑을 잃지 말고 처음같이 하라고 하나님은 “나는 처음과 나중
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계시 받고 현실에서 그같이
되는 실체를 통해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입니다.
주님의 계시를 받는 자들을 보면 공통적인 계시의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신다. 슬퍼하신다.’ 합니다. 예수님이 울고 슬퍼하시는 모
습이 느낌으로 오고, 깨달아지고, 그같이 보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왜
만왕의 왕이신 위대한 예수님께서 그같이 눈물을 보이며 우실 수 있을
까?’ 의심하는 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선생이 주님께 말씀
을 받았으니 들어 보기 바랍니다.
선생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안나 수녀가 쓴 책에 주님이 슬
퍼하신다는 내용을 보고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고 모두 그같이 느끼고 계
시를 받는 것입니까?” 이에 주님은 “사람들이 어느 때 우는지 생각해
보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이 생각해 봐요. 여러분들은 어느 때 울지요? 사람들은 어느
때 울지요? ........ 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이 죽은 것을 보면 웁니다.
남이 죽은 것을 보면 슬프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자기 식구나 자기
와 친했던 친구나 애인이 죽으면 울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힘 있는 주먹
으로 막아도 눈물이 펑펑 나옵니다.
이와 같이 주님도 십자가로 자신의 몸을 주고 사랑으로 사 놓은 자가
마귀에게 끌려 사망으로 가서 죽을 것을 보시고 우신답니다. 사망 주관권
멸망의 삶을 좋아하며 살면서 갖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시고 우신답
니다. 또 주님이 그렇게도 사랑하는데 몰라주고 그 하는 짓을 보면 불쌍
하여 그 근본을 아시고, 사랑이 많고 자비로운 주님이 안 우실 수가 없다
고 합니다. 주님이 애타게 기다리며 사랑하는데 그 심정 몰라주니 눈물밖
에 안 나오신답니다. 아무리 참아도 눈물이 줄줄 흐른답니다.
그리고 세상 환난이 점점 닥쳐오고, 주님의 재림이 눈앞에 다가오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다가오는데 모르고 살기에 마지막으로 심정 태우며 외
치는데도 심정 모르고 사니 너무 심정이 타신답니다. 말을 해도 못 알아
들으니 울 수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세계적
으로 시간이 다 되어 가니 주님은 눈물밖에 안 나온다고 하십니다. 만왕
의 왕이신 주님을 몰라주니 그 심정을 눈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하십
니다.
‘주님이 우신다.’는 계시나, 환상이나, 깨달음이나, 느껴지는 것 모
두 다 맞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냥 생각하면 ‘왜 주님은 그렇게 자주
우실까?’ 합니다. 안 믿어질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를 위해 울어 주실 때 우리들도 같이 회개하며 울어야 합
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모두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주님의
심정을 느꼈지요? 자기의 눈물은 곧 주님의 눈물입니다. 하나님도 주님
도 “내가 너희의 눈물을 보았노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쁨으로 생명을 찾아야 되는데, 눈물로 생명을 찾고 구하는
안타까운 시대가 되었고 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시대가 악하고, 모두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찾을 때 울면서 찾으러 다니면 자기 자녀에게 사
고가 난 것 같고 이미 죽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웃으면서 찾으러 다니면
자기 자녀가 기쁨으로 할 일을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애인을 찾는 자가 애인이 가까이 있을 때는 찾지 않고 끌어안고 대화
합니다. 조금 떨어져 있을 때는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안 보이고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걱정되어 찾습니다. 찾고 찾았는데도 없으면 걱정하고 불
안해하며 슬픔으로 찾습니다. 나중에는 울면서 찾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걱정되어 부르니 이미 타락해 버렸습니다.
선생도 안 보이는 자가 있어 걱정되어 불러 보면 이미 타락되었거나 다른
자와 키스하며 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돌아보
면 양심에 꺼려 괴로울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이 울면서 찾게 하고, 슬퍼하게 하고, 걱정
하게 한 것이 다 크고도 큰 죄입니다.
선생도 안 보이기에 찾아보면 꼭 다른 자와 둘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자는 이미 끝났고, 어떤 자는 사귀고만 있고, 어떤 자는 자기 위로
자를 삼고 있고, 어떤 자는 세상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계속 그 길을 가
면 결국 사망의 길로 가서 끝납니다. 돌아와도 그렇게 행한 것으로 인하
여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복직해야 됩니다. 누가 자기 행위의 대가를 대
신 갚아 주겠습니까? 복도 아닌데 누가 대신 받겠습니까? 돌아와서는 세
상에서 놀 때를 저주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고 주님이 찾으실 때 웃으면서 사랑으로 찾게 해야 됩니
다. 슬픔으로 찾든지, 울면서 찾든지, 책망으로 찾든지, 노여움으로 찾든
지, 걱정으로 찾든지 그 사람의 행위대로 대하면서 찾으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신 줄 압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
다 천 배, 만 배 더 속을 태우셨습니다. 구원자를 그같이 대하면 무슨 기
분으로 돕겠으며 무슨 기분으로 구원을 시키겠습니까?
선생도 지옥 같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구원해 놓았더니 아무것도 아
닌 자들에게 가서 그 귀한 몸을 더 바치고 드렸습니다. 그런 자에게 ‘너
평생 후회할 것이다.’ 하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 자들이 많으니 말씀
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계시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계시받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다 계시만 받
으려고 욕심내지 말고 몇 사람이 받으면 같이 들어야 됩니다. 계시받는
자들을 위해 옆에서 기도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사탄이 안 옵니다. 계시
를 받아 선생에게 보내는데 마치 책같이 옵니다. 너무 많아서 다 읽기도
어렵습니다. 선생이 그 내용을 받아서 주일예배 때나 수요예배 때 전해
줘야 전 세계가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계시받을 때는 주님께 자잘한 것은 묻지 말고 섭리 전체에 해당되는
것이나, 교회에 해당되는 것이나, 덕을 세우는 계시를 받아야 됩니다. 계
시를 받으려면 끝이 없습니다. 온종일 받아써야 됩니다. 계시받은 내용을
보면 너무 길어서 끝이 없습니다. 그 많은 것을 단상에서 다 전할 수 없
습니다. 핵심만 간단하게 전해 줘야 됩니다.
부흥강사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찬송도 해야 되고, 기도도 해야 되
기에 계시자의 시간을 너무 많이 내면 듣는 자가 힘들어서 감당을 못 합
니다. 앞으로는 꼭 필요한 것만 하겠습니다. 계시의 말씀은 설교가 아닙
니다. 그러니 설교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는 특별 계시, 일반 계
시로 나눠서 전하되 핵심들만 하게 해야 되겠습니다.
일반 계시는 자기가 깨닫는 계시로서 기도하면 다 받게 됩니다. 어떤
자는 주님께 계시를 달라고 하니까 ‘말씀으로 이미 다 나갔다. 수요, 주
일, 새벽말씀으로 다 나갔다. 너희에게 계시하는 것들도 말이 조금 다를
뿐이지 이미 말씀으로 다 나간 것이다.’ 하고 주님이 계시하셨답니다.
계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편지가 많이 오기에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령 집회 때는 찬송을 부르고, 부흥강사가 설교를 하고, 기도까지
하면 시간이 2시간 30분에서 3시간은 필요합니다. 거기에 계시까지 전
하면 30분만 말해도 3시간이 훌쩍 넘습니다. 아무리 음식이 계속해서 새
로 나와도 먹을 수 있는 양이 있기 때문에 다 못 먹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처음 신앙, 처음 사랑, 처음 믿음, 처음 열심으로 하듯이
해야 복직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처음같이 대
하십니다. 의식도 말고 묻지도 마세요. 제 갈 길 가 놓고, 하나님과 예수
님과 선생이 자기를 잘 대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서운해서 자기 갈
길 갔다고 합니다. 더 큰 죄를 짓는 자입니다. 자신이 처음같이 안 해서
점점 그같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우리들을 웃으면서 찾게 해야 합니다. 눈물로, 슬픔
으로, 걱정으로, 염려로 찾지 않게 해야 됩니다.
그동안 잘 안 보이거나 두문불출할 때 다 이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
습니다. 교역자도 일반 사람들도 잘 안 보이고 두문불출할 때 이성 문제
가 있었든지, 세상에 빠졌든지, 자기 주관에 빠졌든지 했습니다. 세상에
빠지고 자기 생각대로 하였기에 엄청난 경제의 피해를 당하고, 아프기도
하고, 갖은 고통들을 받았습니다. 그같이 하여 물질 손해를 보았기에 어
떤 자는 사명을 박탈당했습니다. 자기도 손해를 보고, 섭리에까지 피해를
입게 하였습니다.
주님이 최고 좋아하는 대상은 늘 주님 옆에서 대화하는 신부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걱정 끼치지 말고, 나를 슬프게 하지 말고, 내가 눈물
보이지 않게 하여라. 나를 처음 사랑으로 대해라.” 엄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성령을 쏟아 부어 주셨으니 정말 감사하며 하
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이 새벽에 처음부터 나중까지 선생이 말씀을 썼습니다. 이와 같이 여
러분들도 처음부터 나중까지 변하지 말고 살아야 됩니다. 자꾸 변하는 자
들은 예수님도, 선생도 질렸습니다. 다시 신임하도록 무엇인가 보여 줘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첫사랑과 믿음을 모두 복직해야 됩니다. 신임
을 잃은 자들은 다시 찾도록 이제 10배나 잘해야 됩니다. 마지막 기회를
줍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첫사랑과 첫 신
앙이 절대로 변하지 말기 바랍니다. 첫사랑이 변하면 본보기 사람은 못
됩니다. 첫사랑이 변한 자에게 주님은 “너도 저 사람같이 하여라.”는
말을 안 하십니다. 주님은 첫사랑 그대로 간직하고 사는 자들을 가리키시
며 “너도 저 사람같이 하여라.” 하십니다.
환난, 핍박, 어려움, 억울함, 누명, 미움을 받았어도 오직 첫사랑을
간직하고 온 자들을 보시고 주님은 “저 사람을 보아라.” 하시며 큰 사
명을 주어 일하게 하십니다.
온 세계 각 나라 모두 성령을 충만히 받고 또 받아 빛나는 자들이 되
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고 모두 첫사랑을 회복하기를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시간은 새벽 5시 20분입니다. 약 네 시간 만에 교정까지 다 했
습니다.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여서 시간적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의 재림을 맞기에 이미 늦었습니다. ‘시간이 없
다.’는 주님의 말씀은 ‘너희가 나의 재림을 맞는 데 준비하려면 시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나를 못 맞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너희 선생이 절대 내 말을 듣고 행하듯 해야 표적이 일어나
나의 재림을 급히 준비하여 영적으로 능력을 받고 행함으로 나를 맞게 된
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첫사랑을 잃은 자도 말씀을 듣고 오로지 내
가 시키는 대로 행해야 겨우 복직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할렐루야!
선생은 한 시간 동안 세 군데에 보낼 말씀을 또 써야 됩니다. 내게
편지를 쓴 자들이 ‘왜 내게는 답장이 없지?’ 하지만, 선생은 안 먹고
잠을 안 자 가면서 해도 다 감당을 못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단둘이 해
도 끝이 없습니다.
이제 집회 말씀을 해 줘야 됩니다. 조은이 강사는 내 심정을 겪어 봐
서 알기에 한마디 계시라도 해 달라고 몇 번이고 간구했습니다. 전북 생
방송 말씀입니다. ‘한마디 계시라도 해 달라.’는 그 말을 듣고 ‘너는
내 심정을 잘 알아. 그리고 많이 컸다. 전에는 설교를 써서 줘야 했는데,
이제는 한마디 계시를 가지고도 주님의 심정을 맞춰서 외치고 다니니 내
가 하듯 하는구나.’ 했습니다.‘선생같이 되면 만족한 것이다.’라고 예
수님도 말씀하셨지요(마10:25).
선생도 주님의 한마디 계시 가지고 그 말씀을 중심하여 계속 계시를
받으면서 말씀을 씁니다. 단상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는 한마디 계시가 전
체 말씀이 되도록 외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은 천 마디 말씀이 됩니다. 그러니 계시받는 자
들이 풀어서 받으면 20쪽, 30쪽이 나오는 것입니다. 실상은 한마디입니
다.
예수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라. 이
것이 율법의 완성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모르니 계속 계시하시
는 것입니다.
알고 행하는 자에게는 선생도 긴 편지 안 합니다. ‘알았다. 나도 변
함없다.’ 합니다. 문제 있는 자들은 설명해 주고 설득해야 하니 골치입
니다. 말 잘 듣고 순종하면 좋아서 내 심정을 아니 긴 사연을 전해 주며
대화가 길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끼리 말하는 것도 계시입니다. 그러니 말을 잘해야 됩니다. 계시
를 받아서 쓰는 자들은 제대로 쓰고 정확히 써야 됩니다. 잘못 쓰면 읽는
자가 계시를 잘못 받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계시가 길면 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