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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09.08.05 (수)

090805 수요말씀 방심하고 태만하면 실패한다

선포일
2009.08.05 (수)
성경 본문
베드로전서 5장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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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5일 수요말씀> 방심하고 태만하면 실패한다 본 문 베드로전서 5장 7-9절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요즘 수련회 때문에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희망이 되시는 주님이 계 시니 더욱 힘을 내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힘내서 끝까지 열 심히 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 주일말씀에 ‘우리가 기도하고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면 현실과 같이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 기에 합당하면 작고 큰 것을 따지지 않고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것 을 구해 놓고 막연히 희망으로 기다리지 마라. 그래 놓고 하나님이 합당 치 아니하여 안 주시면 낙심할 것이 아니냐.”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구했는데도 못 받은 것이 있다면 첫째, 하나님 이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기도를 했는지 생각해야 됩니다. 둘째, 때가 되 지 않았으니 기다려야 됩니다. 셋째, 그 기도가 합당치 않았으면 합당한 방법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한 후에 잘 이루어지는 기도는 회개하는 기도, 정결하게 하는 기 도, 사탄을 물리치는 기도, 절대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기도, 주의 몸 이 되어 살겠다는 기도입니다. 형제를 용서하는 기도, 형제를 주님의 뜻 안에서 사랑하는 기도, 전도를 위한 기도, 화평케 되기 위한 기도, 이웃 과 민족을 위한 기도입니다. 돈을 많이 달라는 기도, 부귀영화를 위한 기 도, 세상에서 날면서 살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합당치 아니하여 잘 안 들어 주십니다. 알고 기도해야 됩니다. 사람이 얻을 것을 얻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자기 태만 때문입니다. 얻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유도 자기 태만 때문입니다. 태만하지 말고 방심하지 말고 부지런함과 열심과 충성으로 해야 됩니다. 선생의 현실의 삶의 입장을 말한다면, 누가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100% 없어졌습니다. 내가 해야 됩니다. 일일이 모두 내가 해야 됩니다. 선생이 처한 일을 누가 대신해 줄 자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됩니다. 내 가 안 하면 할 자가 없습니다. 내가 먹어야 되고, 내가 자야 되고, 내가 글을 써야 됩니다. 바깥의 일도 내가 할 일을 내가 안 하면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힘들다고 해서 한 번이라도 음식을 담아 먹은 그릇을 안 씻고 거기에 다 밥과 국과 음식을 또 담아 먹을 수 있을까요? 힘들어도 그릇을 씻고 거기에 새로운 음식을 담아 먹듯이 삶의 모든 일들도 동일합니다. 날마다 회개로 씻고 새롭게 살아야 됩니다. 회개치 않고 사는 자는 그릇을 계속 안 씻고 그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격과 같은 삶을 사는 자입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완전히 해야 됩니다. 완전하게 하지 못한 나머지의 것들은 늘 불완전하다가 결국 사고가 납니다. 운전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 면 사고가 납니다. 주님이 하시면 완전하고 안전하게 운전하여 사고가 없 습니다. 모든 일을 완전하게 해야 됩니다. 주님과 같이 완전하게 하는 것 만이 해를 받지 않는 길이며 문제가 안 생기게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도 “온전하게 행하여라. 완전하게 행하여라.” 말씀하셨습니 다. 완전하게 행하는 방법이 최고입니다. 마치 위험한 밤길을 가는 자가 철저히 가듯이 해야 됩니다. 완전하게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고 사고들 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하나는 아는데 상대적인 것까지 아 는 둘은 모르고 행한다.” 하셨습니다. 동물은 ‘하나’에 해당되는 ‘덫 에 걸리면 죽는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둘’에 해당되는 ‘먹이를 물면 덫에 걸린다’는 것은 모릅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동물을 잡는 것입 니다. 사람은 동물보다 나으니 둘을 알아야 됩니다. 좋은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에 해당되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를 알 고 문제점도 같이 보아야 하는데 안 봅니다. 그래서 항상 얻으려다가 당 합니다. 완벽하게 행해야 됩니다. 주님께 구할 때도 장단점을 보고 구해 야 됩니다. 성경을 읽어 봐요.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무엇을 구했나 요? 주님께 기도하여 얻은 자도 다 얻었다고만 생각지 말고 더 얻기 위해 태만하지 말고 부지런히 뛰어야 됩니다. 근신하고 방심하지 말고 또 다른 것을 얻으러 가야 됩니다. 어떤 것을 얻으려고 애간장 태우며 고생하던 때를 항상 생각하면서, 얻은 것을 더 귀히 여기면서 써야 됩니다. 그래야 얻은 것으로 인하여 더 귀한 것을 얻게 되고 더 좋은 것을 얻게 됩니다. 사람들은 얻어 놓고도 태만하여 빼앗깁니다. 정말 안쓰러워요. 빼앗 긴 후에 몸부림치고 울면서 다시 얻으려 하지만 다시 찾기가 쉽지 않습니 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하나님이 쏟아 부어 주신 영은 각 개인에게 오 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얻었으면 절대 빼앗기지 말아야 됩니다. 빼앗기 면 다시 찾기 힘듭니다. 정신이 살지 못한 자는 사망에서 사는 자입니다. 인생을 실패하지 않 고 가는 자가 얼마나 위대한 길을 가는지 잘 실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 떤 환경 속에서도 정신이 살아 사망을 벗어나 살기에 실패하지 않는 것입 니다. 몸부림쳐 얻은 것을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기에 실패하 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인생입니다. 건강관리를 하지 못해서 병을 얻고 큰 수술을 해 봐야 건강관리와 건 강이 그 얼마나 큰 것인지 압니다. 병들어 쓰러져 지옥 같은 아픔의 고통 을 받기 전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관리해야 됩니다. 한 번 건강이 무 너지면 마치 벽돌이 무너지듯 하나하나 무너집니다. 자기 스스로 기도하며 얼마든지 건강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내게 물어요. 선생이 뼈 교정도 무료로 하게 해 줄 테니 말해요. 선생도 혼자 나를 치료하며 살기에 지금까지 이상 없이 건강을 유지합니다. 뼈 교정하는 것에 거금들을 쓰는 자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뛰고 달리고 열심히 관리해야 됩니다. 건강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신앙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것과 신앙의 일들 모두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방심하고 태만하고 게을러서 안 합니다. 자기 앞날 에 지옥의 고통이 닥쳐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못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방심하지 말고 태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적들은 아군들을 해하고 죽이기 위해서 짐승같이 배를 땅에 깔고 거리를 좁혀 가까이 다가옵니다. 이와 같이 사탄도, 우리를 해하는 자들도,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들도 거리를 좁혀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말로 근신하고 깨어 기도해야 됩니다. 선생 주변에 있던 자들도 항상 눈앞에 있는 것들만 보았습니다. 멀리 산을 넘어서 오는 것들을 안 쳐다보았습니다. 주님은 이미 멀리서 산짐승 들이 보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도 파수꾼들이 관심을 안 가졌습니다. 태만과 방심은 적이 오는 길을 예비해 주는 행위입니다. 이제는 ‘주님이 해 주시고, 내가 직접 나를 지켜 살아야 된다.’ 하 고 삽니다. 모두 자기 스스로 눈 안에 있는 것들을 지키고, 눈 밖에 있는 짐승들의 행위에서 자기를 지켜야 됩니다. 또 당하니 철저히 해야 됩니 다. 정신을 차리는 만큼 잘됩니다. 정신이 태만한 사람은 곧 문제에 갇히 게 될 사람입니다. 자기가 타고 가는 차가 뒹굴어 사고가 날 것을 안다면 그 차에서 내 려서 소낙비를 맞으면서라도 백 리라도 걸어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 은 아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매일 자기 분노의 날을 피해야 됩니다. 세상 의 환난이나 자기의 환난 날이 오기 전에, 어떤 사고와 문제에 부딪히기 전에 빨리 피해야 됩니다. 당해 놓고 하나님과 주님을 원망해도 소용없습 니다. 늘 근신해야 됩니다. 전쟁터에서 포탄이 날아와 2분 후에 자기 위치에 떨어지는데 무엇을 챙기겠습니까? 생명만 챙기고 거기서 100m 멀리 도망가야 됩니다. 태만 하고 방심하면서 ‘설마 어떻게 될까?’ 생각하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어려움이 많이 닥칩니다. 왜일 까요? 하나님을 잘 믿으니까 다 해 줄 것으로 믿고 살다가 당하는 것입 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더 상 식을 알고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도와주셔도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해야 됩니 다. 잘못된 사고들을 다 고쳐야 됩니다. 자기 맡은 일은 할 수 있는 데까 지 제대로 해 버릇해야 날마다 강자가 됩니다. ‘실전의 강자’는 날로 발전합니다. 목회도 정말 바람을 일으킬 자를 찾습니다. 태풍과 돌풍을 일으킬 자 를 찾습니다. 초임자도 좋고, 각 기관에서 충성했던 자들도 좋습니다. 마 지막 인생을 사는데 못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도 그 여자를 위해 못 할 것 없이 다 합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고 사는데 못 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지옥에 안 가 게 해 주셨으니 일생 동안 주님이 우리를 안 도와주셔도 고맙다고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충성해야 됩니다. 지옥, 그 영원한 고통은 생각만 해도 몸에 경기(驚氣)가 일어납니다. 겨울철에 알몸으로 떨듯 부들부들 떨립니다. 선생이 먼저 겪고 그 고통을 말해 주니 믿어요. 지옥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옵니다. 밥도 못 먹고 주님 의 일을 해도 감격합니다. 지옥은 한 시간만 들어갔다 나와도 정신이 휙 돌아 버립니다. 주님이 왜 우시는 줄 압니까? 정말 그 마음을 몰라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정말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히 고통 받을 지옥에서 빼내 줬는데 빼내 준 주님을 안 따라가고 다른 남자를 따라간 자들도 있습니다. 100년이나 같이 살자고 하며 좋아 라 뛰어 놓고, 주님을 외면하고 등 돌리고 간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삶을 흩어 버리셨습니다. 서로 원수 되어서 싸우고, 버리고 다시 섭리사로 오게 했습니다. 돌아와서 미안하니까 뒤에서 찬밥이 되어 뜁니 다. 젊었을 때 주님이 불러 주셔서 한참 주님과 사귀며 가까이할 연애 시 절에 주님을 버리고 외면하고 세상 남자 품에 안겼다가 다시 장년부로 온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압니까? 주님이 말씀하시 기를 “나를 버리고 매몰차게 가혹하게 돌아서서 갈 때 나도 참으로 어이 가 없었고, 가슴이 터지고, 숨이 안 쉬어지고, 미칠 정도로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돌아와서 주님이 받았던 그 고통을 받고 그제야 깨닫습니다. 주님은 그때의 심정을 말해 주셨습니다. 선생은 주님의 대변자이고, 심정 통역자입니다. 주님과 한 지체라 다 느낍니다. 가혹하게 돌아서서 가는 자들을 보고 선생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알아요? 그때 내 입에 서 무슨 말이 나온 줄 압니까? “내가 만일 주님이라면 그런 자들을 영 원히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선생보다 10억만 배 더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지능지수대로 충격을 받습니다. 영으로 충격을 받고 고통 을 받으면 더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서 편지가 많이 옵니다. 그러나 위로할 말이 없어 무슨 말을 할까 막연합니다. 그래서 답해 주기를 “어찌 내가 너의 젊음을 원 상회복시켜 줄 수 있겠느냐. 이제 남은 섭리의 삶을 미련 없이 살아라. 몰라서 그랬구나. 한이 된 만큼 주님 사랑하며 살아라.” 했습니다. 하늘 앞에 일편단심 드린 몸을 제 몸으로 삼고 세상 남자들과, 혹은 섭리 남자들과 천 년이나 살듯이 산 자들, 그러고서도 선생님이 잘 안대 해 줘서 그같이 되었다고 원망하면서 사는 자들... 하나님과 주님께 선생 이 잘 안대해 줘서 소외감으로 그같이 되었다고 기도하면서 용서받아 봐 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죄를 선생에게 떠밀고 죄가 벗어질까 요? 모두 자기가 좋아서 가 놓고 선생 핑계 댑니다. 영계의 법으로 볼 때 주님을 버리고 다른 자들을 좋아하며 산만큼 1 년, 2년, 3년 회개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하루 좋아했으면 하루 동안 진정 회개해야 됩니다. 한 달 그같이 했으면 한 달, 1년 그같이 했으면 1년, 3년 그같이 했으면 3년을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에스겔아 너는 이스라엘이 범 죄 한 햇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라.” 했습니다. (겔 4:5)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 구십 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자기가 범죄 하여 그 사명을 못 하게 되면 다른 자가 그 위치의 사명 을 하게 됩니다. 이성 타락은 인간 타락입니다. 사탄, 이 잡놈들은 예배 때도, 인간의 삶 가운데서도 이성의 사랑을 낚싯밥으로 삼고 유혹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천적이요, 영원한 멸망의 자식들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타락했으나 주님을 만나고는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섭리사가 왜 신부 역사인지 알아야 됩니다. 섭리사는 타락론을 가르 쳐 주어서 이성 범죄를 차단했습니다. 주님을 신랑으로 삼으라고 했습니 다. 선생은 주님의 신부로서 10대 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주님은 내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모두들 정결히 행하여 나의 신부들이 되게 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지구상의 역사는 신부 역사다. 기독교는 형제 역사, 자녀 역사다.” 하셨습니다. 구약은 종 같은 역사였 습니다. 섭리사는 30년 동안 신부 입장의 역사로 주님을 신랑으로 삼고 왔습 니다. 육적인 자들은 보이는 선생만 쳐다봤지요. 지금은 그리하지 않습니 다. 30년 동안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왔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재 림 때 신랑으로 오시니, 평소 때도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다가 마지 막 재림 때도 그대로 맞게 하도록 섭리를 역사해 왔습니다. 기성 기독교에 가서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신부들이야.” 하면서 그런 설교를 하면 어색하고 은혜가 안 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형제들입니다.” 보통 모두 그같이 말들 합니 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신랑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하는 자로 대하지 않으면 정말 은혜가 없습니다. 기도할 때도 이같이 기도하는 것과 저같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차 이가 있나 봐요. “주님! 나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은 나의 신랑입니 다. 저는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왔습니다. 죽도록 주님의 신부로서 정결(貞潔)을 지키고 깨끗이 살게요.” 하면, 즉시 주님의 음성이 안 들 려도 주님은 “내가 너를 믿겠다. 정말 그같이 살아야 돼. 누구처럼 배신 하지 마.”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 제대로 못 한 것, 오늘부터 정말 잘하겠습니다.” 해 봐요. 그러면 주님은 “나와 같이 하자.”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 형제와 같이 잘 지낼게요. 열심히 하겠어요.” 하면 “너 기성 교회에서 온 지 며칠 되었냐?” 하십니다. 그러면서 “나 바 빠. 다음에 만나자.”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애인이라면, 바쁘다고 하시면서도 주님은 끌고 가면서 대화할 것 다 하고 가십니다. 또 핸드폰 을 사 주시며 “내가 안 보일 때는 수시로 전화해.” 하십니다. 영 핸드 폰이고, 영 하트폰입니다. 영파로 통합니다. 마음이 전화통입니다. 죽기 전에 정말 부끄럼 없이 살아야 돼요. “주님! 나 사랑하지 요?” 물으면, 주님은 “그야 말에게 당근이지.” 하십니다. 아무도 사랑 하지 않고 주님만 사랑하는 사랑은 다이아몬드 사랑입니다. 주님께 “나 사랑하지요?” 물으면, 주님이 미워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마지못해 “그래, 사랑해.” 하고 대답하도록 주님을 대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미련 없이 사랑할 대상이 있으면 행복한 것입니다. 주님 사랑 입니다. 주님은 신이라서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그같이 사랑하고 대하 지?’ 생각합니다. 주님은 안 보여도 도울 것 다 도우시고, 하실 말씀 다 하시면서 못 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태만하고 방심하면 빼앗기고 얻을 것 도 못 얻습니다. 신입생들은 주님과 첫사랑의 불이 제대로 붙어야 됩니다. 주님과 첫 사랑을 할 때는 주님께서 얼마나 기적적으로 역사하는지 모릅니다. 주님 은 사람을 통해 함께하기도 하시고 꿈에 보여 주기도 하십니다.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손이 아프고 어깨가 아파서 더 못 쓰겠 습니다. 나머지 못 한 말씀은 성령으로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꼭 전도하세요. 전체가 전도해야 됩니다.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는 전적으로 전도하기 바랍니다. 현 인원 비율에 비해서 전도 많이 하는 교 회와 캠퍼스는 시상할 것입니다. 돈으로 계산해 줄 것입니다. 말씀을 외치는 자들과 계시자들을 통해 주님께서 계시하시는 말씀 심 각히 잘 들어요. 수련회 때 전도해서 데려와요. 그럼 여기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