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09.08.09 (일)
090809 주일말씀 마음의 계시다
- 선포일
- 2009.08.09 (일)
- 성경 본문
- 에베소서 1장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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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9일 주일말씀>
마음의 계시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본 문 에베소서 1장 17-19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성령 집회와 더불어 수련회 기간에 들어섰기에 저도 여러분들도 서로
바쁜 시간들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일이 밀리고 일에 쫓기면 피곤하고
두 배나 더 부담이 되고 고통이 됩니다. 주님은 “이런 때에는 꼭 할 것
만 하고 지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최우선 순위로 하고 사는 삶이 구체적으로 보면 잘 안 되는
것에 대해 주님은 “너희가 내 방법으로 안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작은 일 빨리 해버리고 아예 주님 우선권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주님을 위해 하자고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절대 주님 우선권의
삶이 살아지지 않습니다.
작은 일 몇 개 하다 보면 거기에 시간을 다 빼앗깁니다. 작은 일도
한번 손대면 많은 시간이 들어가고 시간은 순간 다 갑니다. 작게 주님께
시간을 줄지라도 주님 것 먼저 해야 됩니다. 주님은 “많으나 적으나 먼
저 나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새벽에도 제일 앞부분 시간을
먼저 내게 달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계시 받는 자 주님과 대화하는 자들은 우선 주님과 대화를 하든
지 계시를 받든지 기록 먼저 해야 됩니다. 주님께 먼저 시간을 내줘야 됩
니다. 그런 후에 자기 기도하고 기타 다른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고 했
습니다.
주님은 기다리게 세워 놓고 자기 기도 다 한 후에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은 새벽에 개인에게 시간을 많이 못 내니까 주님을 우선 순위에 놓고
대하는 다른 자에게 갑니다. 옛날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대할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 하실 것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했습니다. 주님이
대화하고 계시하러 왔는데 자기만 말합니다.
기도가 대화입니다. 대화한 내용이, 주님이 말한 것이 주님의 계시입
니다. 주님은 계시를 받는 자들이 묻는 대로 대답하십니다. 그러니 소소
한 개인 문제를 묻지 말고 섭리사나 민족, 교회에 해당하는 것들을 물어
보기 바랍니다. 작은 것을 묻는 것은 주님의 시간을 뺏는 일입니다. 먼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감격하고 간절하게 대답
하고 꼭 꼭 주님의 심정을 맞추어 응답해 줘야 됩니다.
주님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나 전능자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여 너를 구원시켜주고 섭리사 모두를 너와같이 사랑해서 너에게 계
시를 주어 모두에게 사랑한다 말해주니 깨달아라.”하십니다. 주님께서
심정 깊이 말씀하셨으면 그에 해당되는 감격스런 심정을 뜨거움으로 표현
해야 되는데, 자기에게 해당되는 별것도 아닌 것을 묻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대하다가 선생도 가까이 못 대했습니다.
지혜롭고 슬기 있고 지식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은 계시하러 가든지
뜻이 있어 한번 그와 대화하여 계시했으면 그냥 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와 연애하듯이 계속 만나고 대화하십니다. 한두 번 계시하시고 끊어버리
면 그가 신앙에 좌절하기에 계속 나타나십니다.
주님은 좋아서 또 그 사람에게 가셨는데 주님을 의심하고 피곤하게
말을 하고 사탄이냐고 하며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하고, 혹은
주님이면 나타나 보이라고 한답니다. 주님은 그런 자를 보면 정말 피곤하
다고 하시며 심정이 타고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주님이 내게 오시
면 피곤하지 않게 대합니다. 믿고, 알고, 의심 없이 대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받는 자들은 옛날 왕의 명령을 받듯이 중히 여기며 받아야 됩니
다. 그리고 요즘 계시를 받는 자들이 많아서 그중에 전체에 해당되면서
수준 있는 것만 간증하게 할 것입니다. 내용을 보고 순서를 짤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해 주시고 선생이 물으면서 순서를 짭니다. 그때 해 줘야 될
계시가 있고, 보관했다가 해야 할 계시가 있습니다.
사탄의 계시를 받고 귀신들의 계시를 받는 자들은 내게 말하고 주님
께 고하여 물리치고, 낙심치 말고 다시 주님의 것을 받으면 됩니다. “왜
나는 귀신 마귀가 계시를 주지?” 하며 낙심하지 말고요. 선생도 기도생
활 할 때 사탄 마귀들과 싸우면서 주님 앞에 가서 계시받고 대화했습니
다. 주님을 대하면 사탄도 마귀도 방해하기 위해 계시를 줍니다. 그러나
받으면 누가 주었는지 알게 됩니다.
주님 계시도 받고 마귀 계시도 받으면 그때는 혼돈되니까 본인이 받
은 후에 생각을 해 봐요. 상식에서 벗어나고, 이치에 벗어나고, 진리에서
벗어나고, 현실에서 벗어나는 계시는 마귀 계시입니다. 마귀들은 그 순간
만 임시적으로 얼렁뚱땅해 버리고 갑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현실에
서 볼 때 그러하고, 이치와 진리로 볼 때도 다 맞습니다.
계시받는 자가 주님께 어떤 사람에 대해 묻기를 “그가 주님을 많이
사랑하지요?” 하니, 주님은 “그는 내 사랑을 몰라.” 했습니다. 그 사
람은 이 말을 듣고 계시받는 자가 계시를 잘못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 자기가 주님을 대하는 것과 주님이 생각하시는 것이 다릅니다.
선생에게도 누가 물어봅니다. “저 제자는 선생님 마음에 들게 선생
님을 사랑하지요?” 하면, “아니야. 아직도 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본인은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내 마음에 들게 합당하게 사랑해야지
요. 선생은 주님을 사랑하는데 그 제자는 나만 사랑합니다. 나를 따라서
주님을 사랑해야지요. 같이 모으고 헤쳐야 내 마음에 합당하게 나를 사랑
하는 자입니다.
주님도 주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사랑해야 됩니다. 영계로 보면 육계
에서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인정을 받은 자가
선생을 사랑하는 자로서 인정을 받습니다. 선생 마음에 들게 사랑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선생이 그를 보고 합당하다고 하겠습니까?
주님은 마치 시골의 윗논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마치 물과 같습니다. 주님이라는 윗논에 사랑이라는 물이 가
득 채워지면 그 밑의 아랫논까지 물이 넘쳐흘러 내려옵니다. 그 아랫논은
선생입니다.
윗논에 물이 먼저 흘러 들어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순리이듯이,
섭리역사도 먼저 주님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충만하게 차고 넘쳐야 합
니다. 윗논에 물이 차고 넘쳐 내려와야 아랫논에도 물이 흘러 들어갑니
다. 섭리 전체로 보나 각 개인으로 보나 그와 같습니다.
항상 이와 같이 대해야 됩니다. 이같이 하지 않는 자는 선생의 생각
에 합당치 않은 자입니다. 오히려 나를 욕 먹이는 자들입니다. 주님께 선
생을 혼나게 하고 책망 받게 하는 자들입니다.
선생이 눈에 보인다고 해서 주님보다 먼저 선생에게 잘 보이려고 하
면, 마치 물을 아랫논에 넣어 주는 것과 같아서 선생은 그 물을 함지박이
나 양동이로 퍼서 윗논인 주님께 채워야 되니 그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는 순리가 아니라 무력입니다. 말씀한 대로 안 하면 순리가 아니기에
선생도 더 이상 그같이 안 합니다.
섭리 일을 할 때나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나 번거롭게 무력으로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해 놓고도 주님께 칭찬받지 못하고 책망을 받게
됩니다. 편지와 보고도 교단으로 보내야 거기서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선생이 결재하도록 올려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으면 정확히 파악한 후에 교단으로 보내고 교단은 다시
한 번 파악하고 선생에게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직접 통한다고 내게 보
내고, 확실히 알아보지도 않고 내게 바로 보냅니다. 그런 자는 선생을 교
단 밑에 있는 사람으로 보고 대하는 자입니다. 왜요? 나는 보고 받은 후
에 또 교단에도 보내야 되기 때문입니다.
보고는 아래에서 위로 하고, 명령은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것입니다. 내
게 하지 않을 것까지 다 내게 합니다. 그런 보고는 처리하지 않을 것이며
교단에게도 알리지 않고 헛수고로 돌리겠습니다.
편지도 한번 답을 해 주면 이제 길이 열렸다 생각하고 계속 보냅니
다. 답을 받으면 좋지만 계속해서 편지를 쓰기 때문에 선생이 설교를 못
쓰고 기도를 못 합니다. 시간 없으면 읽어만 보려고 합니다. 매일 내게
오는 편지와 보고를 합치면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니 어떻게 그것을 다
읽고 일일이 답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중에 몇 십 개도 답을 못 합
니다. 여러분도 편지 써 봤지요? 막대한 시간이 듭니다.
죽을 때까지 그같이 할 것을 깨달았고, 아예 안 되겠다고 판단했습니
다. 편지를 보면 미안해서 답을 해 줘야 되니 이를 어쩌면 좋겠냐고 기도
했습니다. 교단을 통해서 보내야 합니다. 이곳은 교단이 아니고, 홀로 십
자가를 지고 가는 곳입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오직 하나님
을 부르고 기도하는 것에 바빴습니다. 선생도 그와 같습니다.
편지를 받으면 기뻐야 되는데 오히려 걱정됩니다. 선생이 편지 한 장
하지 못했을 때 행한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할 일을 자기
가 안 하여서 문제가 생긴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자기가 안 하여 문제가
생긴 것까지 선생에게 보고하면 어쩝니까? 주님께 기도하고, 교단에게
말하고, 주일과 수요일에 나간 말씀대로 해야 됩니다. 부지런히 뛰어야지
요. 주님께 기도하여서 용서 받고 해야 됩니다.
어떤 자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사랑해 버리고 ‘선생님은 사랑이 많으
니 허락하시겠지?’ 하며, 결혼해도 되겠냐고 묻는 편지가 왔습니다. 선
생이 심판자가 아닙니다. 주님께 말씀 드리니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
게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선생을 통해 사전에 너희는 짝
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무력으로 했습니다.
재림 때인데 깊은 함정에 빠지는 행위를 합니까? 그런 자는 이성범죄
를 저지른 자이며, 섭리에서 하나님이 세운 법을 범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 놓고 선생은 섭리 안의 모든 일들을 다 결재하니 결재해 달라고 합
니다. 그런 자는 자기를 위해 자기가 죄를 짓고, 그 형벌의 십자가를 내
등에 얹어 놓고 제 갈 길 가는 자입니다. 주님은 그 행위대로 대한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문제가 있기에 교회에서 순회를 요청하여 갔는데, 순회하는
자가 교역자 편만 들어 주고 교인들이 말한 것을 공의롭게 처리하지 못하
고 올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목사라고 목사 편만 들어 주고 교인들이 말
한 것을 듣고도 공의롭게 처리하지 못하고 올 때는 선생에게 편지하면 다
시 파악하여 다시 교정하도록 할 것입니다. 공의는 저울로 달 듯 해야 됩
니다.
지금도 가끔 여기 저기 목사님들이 교회들을 무섭게 잡고 있다가 때
가 되어 교체되어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있을 때 두려워서
말을 못하고 목사가 그 교회에서 떠나니까 그제야 보고들을 합니다. 서울
쪽 여자 목사입니다.
그 교회에서 표현하기를, 교역자가 마치 구렁이가 몸을 감고 목을 쪼
이듯이 해서 정말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전 교인들이 구렁이에게 감긴 듯
억압과 제재 속에서 살았다는 편지들이 왔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목
회자를 다시 용광로에 넣어서 재생시키기 전에는 목회 지역으로 안 보낼
것이며 공적인 위치에도 안 보낼 것입니다. 주님께 물어보니 그같이 강하
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 스타일의 목회가 아닙니다. 목자다운
목회를 해야 됩니다.
다음 말씀입니다.
주님은 계시자들에게 계시하실 때에 가장 현실적인 것을 계시해 주십
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들을 계시해 주십니다. 또 우리가 모르는 것도
계시해 주십니다. 이미 선생을 통해 말씀한 것을 귀히 여기지 않으니 다
시 계시하십니다.
어떤 사람의 계시를 보면 앞뒤가 안 맞습니다. 주님의 계시가 안 맞
으면 이상이 있지 않아요? ‘인간 책임 못해서 안 되었다. 다시 책임을
하여서 되게 되었다.’고 하며, 인간이 책임을 하고 못함으로 그같이 됐
다고 합니다. 이는 이치에 맞지만 선생은 그것까지 다 재보고 저울에 달
아 봅니다. 모두 파악하여 알아보고 분별합니다. 또 주님께서 선생에게
계시한 것과 맞는지 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느 날 심판한다고 하며 날짜까지 받기도
합니다. 그런 계시는 주님이 섭리사 계시받는 자들에게 해 주지 않으셨답
니다. 계시를 받으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일부 있습니다. 틀린 것
이 섞인 계시는 일단 간증하게 허락하지 않고, 맞는 것과 현실적인 것만
간증하게 합니다.
자기 의지로 깨달은 것은 주님이 주신 계시라고 해도 자신이 옳은 것
을 인정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계시는 차원이
높고 깊고 오묘합니다. 선생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내가 나를 알기 때문
에 확인하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메시아를 잉태했는데 내년 1월에 낳는다고 합니
다. 일본 사람입니다. 이 같은 것은 예수님을 안 믿는 자도 사탄의 계시
임을 아는데 믿는 자들이 어리석게 그것을 따라갑니다. 선생의 말을 안
믿으니까 그 같은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선생이 이미 사탄 계시라고 했
는데도 믿고 따라갑니다. 발이 머리 노릇하며 가니까 사탄이 꼬인 것입니
다.
‘주님의 사랑을 느꼈다. 주님이 함께하심을 확실히 느꼈다. 감동을
받았다. 자기 과거도 다 안다.’고 하며 따라가지만 모두 사탄이 꼬이는
것임을 절대 알아야 합니다. ‘메시아 잉태’에 대한 것은 여자를 가지고
사탄이 꼬입니다. 메시아를 임신하여 배가 지구만 하게 불룩하여 잠시 후
에 낳는다고 해도 절대 믿지 말기를 바랍니다.
계시를 받으면 사탄이 주는 계시인지, 혹은 자의로 깨달아지는 것인
지, 혹은 영적 세계에 들어가니 배운 것이 체계 있게 떠오르는 것인지 감
이 잘 안 잡히고 분별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주님을 직접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눈으로 보는 것만이 확인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귀로 듣
는 것도 확인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도 확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눈의 문을 통해서만 오지 않는다. 이와 같으니 말해 주어
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들어오시는 문이 많습니다. 눈으로
보이며 눈의 문으로 들어오시고, 귀로 들리면서 귀의 문으로 들어오시고,
대화로 하시면서 입의 문으로 들어오시고, 느끼게 하시면서 심정과 마음
의 문으로 들어오십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행할 때 행동의 문으로 들
어오십니다.
섭리인 모두 잘 들어봐요. 전체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계시를 받아도
잘 모르고 주님이 가셔도 잘 모른답니다. 새벽에 계시받는 자들에게만 주
님이 가시는 줄로 안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계시해 주시면서 왜 자
기에는 안 해 주시냐고 합니다. 빵이나 먹을 것을 전체의 대표가 받아 모
두에게 나눠 주듯이, 주님은 계시자들에게 신령한 말씀을 계시해 주시어
그들을 통해 개성대로 나눠 주게 하십니다. 그들은 계시의 사역자들입니
다. 이 역시 개성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섭리사 모두에게 전해 주시는 계시가 있으니, 곧 주일
말씀과 수요말씀을 통해 주는 계시입니다. 이 말씀을 간절히 듣고 깨달으
려 할 때 가장 많은 답을 받게 되고, 응답을 받게 되고, 깨달아 알도록
계시해 주십니다. 이는 말씀의 계시입니다.
잘 들어봐요. 계시받는 자들 중에서도 주님을 직접 영의 눈으로 보는
자는 많지 않고 그 중의 몇 명만 봅니다. 나머지 계시받는 사람들은 못
봅니다. 이와 같이 섭리인 모두가 주님을 못 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얼
굴을 보는 것을 마치 소경이 눈을 뜨기 원하는 만큼이나 바라고 원합니
다. 예수님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지요? 그래서 주님은 “내 영의 사
진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안 보여 주시는데 굳이 보려고 하면
주님의 입장을 곤란하게 합니다.
누가 눈으로 주님을 보면 ‘나보다 뭐 잘한 것이 있나? 혹은 주님께
어떤 서약을 해서 보여 주셨나?’ 하며, 왜 보여 주시는 거냐고 각종으
로 주님의 마음을 바가지 긁듯 긁어 댑니다. 선생부터도 주님을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선생에게는 상징적으로 많이 보여 주십니다. 상징적으로
보았어도 본 것이니 좋지요.
예수님께서 누구에게는 그 모습을 보여 주시고 누구에게는 안 보여
주시는 것이, 마치 면회를 통해 누구는 선생을 직접 보고 누구는 못 보는
것처럼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생도 모두 다 보고 싶지
만 못 보니까 사진으로 봅니다. 청중이 찍은 사진을 보면 한 눈에 다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이 사람이다. 사진이 본인이다.’ 생각합니다.
“주님이 자기에게는 안 보여 주신다고 난리치고, 오해하고, 섭섭하다
고 하니 눈 딱 감고 한 번만 보여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주님께
물으니, 주님은 “내가 어련히 알고 하겠느냐? 너희들은 생각이 짧고 내
심정을 모른다.” 하셨습니다.
이에 “주님은 심정 모른다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또 어떤 심정을 모
르는 것입니까? 가르쳐 주세요.” 하니, 주님은 “이미 말씀을 통해 향수
비유를 들어서 말했듯이 향수병이 안 보이는데 향기를 맡게 되면 더 향기
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떤 향기인지, 향수병은 어떻게 생겼지, 어느
나라 제품인지 더 신비하게 생각되고 관심이 깊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눈으로 안 보이고, 귀로 안 들리고, 입으로
대화하지 않아도 마음과 심정으로 느낄 때 온몸이 다 느껴지고 충격과 감
정과 심정이 더 불이 탄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 앞에 오시면 안 보여도 평안이 찾아오고 감동이 되고 주
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깊이 알아주고 사랑하는 마음
을 고할 때는 숨도 못 쉴 정도로 심정이 느껴 오고 조여 옵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도 사랑하고 그렇게도 아껴주고 대하는데 그렇게도 모르냐.”
하며 가슴을 태우고 심정을 태우는 주님의 뜨거운 마음이 느껴져 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고백하게 됩니다. 약속하게 됩니다. 영혼 깊이
깨닫게 됩니다. 눈물이 흘러 강이 됩니다. 주님의 흐느낌이 가슴에 와 닿
습니다. 세상 모두가 느껴지고 섭리 모두가 느껴집니다. 형제들의 입장이
느껴지고 이해가 됩니다. 그들의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그동안 주님이
주일단상과 수요단상을 통해 말씀하신 것들이 다 생각납니다. 지난 날 주
님이 도우신 것들이 다 생각납니다. 못한 것들이 다 기억나 흐느끼게 되
며 주님께 죄송하여 머리를 둘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눈으로 안보여 주셔도 심정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느껴 스며드는 것이 더 충격적으로 주님을 깨닫게 하고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눈으로 보여 주시어 일시적으로 눈이 팔리게 하기보다,
안 보이시고 혼으로 느끼고 심정깊이 영혼까지 느껴 흐느끼게 합니다. 이
와 같이 하여 온몸과 마음과 영혼이 느껴 충만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믿
습니까?
주님은 “말로도 다 표현이 안 되고, 눈으로 보여도 다 전달이 안 되
고, 귀로 듣게 해 주어도 다 전달할 수 없다.”고 하시며 “오직 마음과
느낌으로 전달된다. 천 마디 말보다도 심정깊이 느껴야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주님을 안보여 주신답니다.
우리가 영의 눈을 떠 주님을 보는 것을 허락하면 보는 데서 끝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자는 “정말 주님이 맞아요? 혹시 마귀 아니에요?”
하며, 주님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시간 다 보내고 결국 주님의 명함과 마
패인 손의 못 자국을 보여 줘야 된답니다.
마귀는 못하나요? 했다가는 주님께 혼이 납니다. 하더라도 마귀는 손
에다 코딱지 바른 후에 속이고 거짓으로 나타납니다. 마귀는 광명하게 나
타나지만 전신을 보면 발이 이상하게 생겼든지, 꼭 몸의 어느 한 곳에 어
둡고 모순된 곳이 있습니다. 666 수니까 완전하지 못합니다.
마귀들도 옳은 말로 계시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체를 옳게 말하
지 못합니다. 결국 표가 납니다. 마귀에게 속은 것이 분하다고 주님을 찾
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더 악착같이 해야 됩니다. 마귀에게 꼬임
받고 당했으면 더 악착같이 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나를 눈으로 순간 보는 것보다 못 보아도 마음으
로 느끼고 심정으로 느끼고 온몸과 혼과 영으로 느낄 때 많이 느끼게 된
다. 모든 섭리 사람들에게 이같이 역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많이 받고 느꼈지요? 주님은 “왜 나의 마음을 받았어도 모르냐?”고 말
씀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와 생활 속에서 심정으로 오는 계시를 알아야 됩
니다.
사탄 마귀가 앞에 오면 평안이 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
하며 두려움의 감정이 오고 의심이 듭니다. 또 이성적 감정과 각종 이상
한 감정이 옵니다. 사탄은 똥과 같고 썩은 것과 같아서 썩는 냄새만 풍기
고 향기는 못 풍깁니다. 사탄이 오면 그대로 사탄 냄새가 납니다. 무섭습
니다. 말도 무섭게 하고 행동도 섬뜩합니다. 이제 주님이 왜 안보여 주고
역사하시는지 알겠지요?
심정의 은혜가 큰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성
령님의 마음과 주님의 마음을 잘 알게 됩니다. 그래서 형제들의 마음을
잘 알고 위로하게 되고 칭찬하게 되고 주님의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고전 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
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주님의 심정 계시 중에서 “왜 너희는 내 심정을 모르냐? 나는 섭리
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고 위해 주며 그때그때 잘 대해주는데 왜 너
는 모르냐.”는 계시가 정말 많습니다. 또 주님은 “재림 때가 가까웠다.
너희가 환난 날을 당할 때 그제야 내가 말한 것을 믿겠느냐? 사람들은
내가 말할 때는 믿어도 조금 관심을 두거나 믿었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환
난과 고통의 그 일이 닥칠 때 그제야 두려워 나를 찾는다.”며 주님은 심
정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모두들 자기에게 하나하나 환난이 닥쳤을 때 그제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어서 닥친 환난을 다 당합니다. 적어도 환난이 일어나기
1년 전에는 알아야 됩니다. 대개 1년 전에는 개인의 환난도 예고해 주십
니다. 선생이 세계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할 때 일 년 전, 혹은 세 달 전,
혹은 한 달 전에 말했습니다. 어떤 것은 십 년 전에 말하기도 했습니다.
환난이 닥칠 때 알게 되면 거의 환난을 당하고 고통을 받으면서 피하
게 됩니다. 마치 전쟁하면서 적과 싸우면서 자기 몸을 구원하는 입장입니
다. 사전에 피해야 환난과 고통을 전혀 겪지 않게 됩니다. 고로 오래 전
부터 시대에 닥칠 앞날의 환난을 준비해야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사는 자가 환난을 피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맞고 사는 자가 환난을 피하는 자입니다. 주님의 재림
때에 주님을 맞으려면 지금 주님을 맞고 늘 주님과 통하면서 살아야 됩니
다. 지금 못 맞으면 재림 때도 못 맞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섭리인들이 주님을 맞은 상태를 표현하셨습니다. 이미
맞은 자도 있고, 맞기 위해 주님을 쳐다보고 뛰어 달려가는 자도 있고,
쳐다보기만 하는 자도 있고, 선생을 사역자로 보냈으니 선생을 맞으면 주
님을 맞은 것이 아니냐고 하는 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자는 세상으로 향하여 섭리사를 등 돌리고 가고 있다고 했습니
다. 주님은 이들을 보고 ‘사탄이 데리고 사망으로 가는 자’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어떤 자는 세례요한같이 주님을 맞는 신부들을 쳐다보는 것으
로 만족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자는 이미 주님을 맞을 기회가 자기
에게 왔는데도 맞지 못하여 기회를 놓치고 있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런 자는 빨리 주님이 또 다른 자들을 위해 역사하시는 곳에 가서 맞아야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절대 나를 못 맞는다. 아
직도 나를 목숨 걸고 맞으려고 하지 않는 정신이상 된 자들이 있다. 그들
에게는 재앙의 날이 점점 닥쳐온다. 재앙이 닥쳤을 때 나를 부르나 대답
할 수 없고, 보낸 재앙은 그냥 돌아가지 않는다. 나를 맞은 자는 내가 떠
나도 마치 애인이 떠나고도 늘 전화로 통하듯이 마음과 심정의 전화로 늘
통한다. 이들에게는 재앙대신 복이 찾아와 환난 때도 잔치한다.”고 하셨
습니다.
선생도 환난 때 마음의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말씀을 하겠습니다.
주님의 계시를 받는 어떤 자는 기도하니 주님이 “오늘은 내가 또 네
게 계시하여 선생에게 편지할 거리를 주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는‘나
의 생각인가?’하고 두려워 머뭇거리면서 적지 않으니까 “너는 내가 없
어 봐야 알겠느냐?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도해.” 하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심정이 냉랭해지고
기도도 안 되고 슬픈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래도 기도해야겠다고 마음먹
고 계속 기도하니 다시 음성이 들렸답니다. 주님은 “이제야 알겠느냐.
내 마음 알겠지?”고 하셨답니다. 이때 계시받는 자가 “주님, 대화해
요?” 하니, 주님은 “적어라. 모든 일에는 대충이 없다.”고 하셨답니
다.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주관적인 계시면 어떻게 하
지?’ 생각하니, 당장 주님은 “나는 네게 위로 받으러 왔는데 너까지
나를 모질게 대하려느냐? 거짓되게 꾸며서도 나를 대하지 말아라. 있는
그대로 사랑으로 나를 대할 수 없겠니?” 하시면서 계시해 주셨다고 합
니다.
그는 그 계시를 누가 받은 것인지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어서 부흥강
사를 통해 전해 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이에 주님은 “겸손한 너의 기
도에 감동했다. 끝까지 겸손하게 하고, 선생과 끝까지 의논하라.”고 하
시면서 “계시받는다고 좋기만 하겠느냐. 내가 온 인류를 보고 느낀 그
뼈저린 심정을 받아내기가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 기도하는 것, 참는 것
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기도해서 사탄을 물리치기까지 해야 하니 쉬운 일
이 아니다. 내가 함께 해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참고 견뎌야 된다.”고
하셨답니다. 이 계시는 다음에 나갈 것입니다. 기대해요.
주님이 계시를 주시어 받는 자들은 뼈저리게 받고 전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귀하고 깊은 계시를 받는 자가 되어 주님과 통하게 됩니다. 주님
이 이 계시를 준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고 선생은 많이 웃게 되었고
주름살이 펴졌습니다. 그러하신 주님의 심정을 더욱 깨닫고 주님의 마음
안 아프시게 기쁨으로 일하여 마음 주름과 심정의 주름도 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섭리역사는 정말 신부역사입니다. 정말 주님
이 사랑해 주십니다. 이같이 계시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전체는
주님께 감사하며 그 심정을 알아 드려야 됩니다. 저마다 자기의 깨끗한
품속에 주님을 품어 드리며, 그 마음이 주님의 보금자리가 되어 편히 쉬
도록 해 드려야 됩니다.
선생은 주님이 내게 오시면 걱정 마시라고 합니다. “저는 괜찮습니
다. 전체 모두에게 일을 시키시고 오히려 저를 쉬게 해 주어 감사합니
다.”라고 하며 “섭리 사람들이 주님의 마음을 몰라주면 제가 칼날같이
말씀을 써서 외치게 할 테니 며칠만 기다리세요.” 합니다. 그리고 사람
들이 주님과 말이 안 통하니까 내가 편지를 써 줘서 확 뒤집어지게 하여
주님을 맞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주님을 편하게 해드려야지 부담되게 하면 골치 아파 안 갑니다. 감사
하고 고마워하고 사랑으로 품어 맞고 해야지 서운해 하는 자, 투덜거리고
불안해하는 자는 사탄 주관 받으니 기분 나빠 주님은 더 쉬려 안 갑니다.
그런 자를 보시면 과거 주님이 해준 것을 오히려 생각하면서 “저 빚쟁이
저기 간다.” 합니다.
주님은 온 종일 일하시고 “오늘은 누구에게 가서 거하며 같이 밤을
새우면서 이야기하나?” 하시며 사람을 찾으십니다. 찾으시다가 기도하
며 깊이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심정을 알아주는 자에게 베다니 마리아 집
에 가셨듯이 조용히 가십니다. 가서 이야기하시며 피곤을 풀고 오십니다.
주님을 잘 맞도록 정말 잘해 봐요. 예전에 선생이 있을 때 제대로 못
한 것과 한이 된 것을 주님이 다시 기회를 주시니 이때 다 해야 됩니다.
누가 주님께 묻기를 “어떤 사람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말이 맞다면
왜 월명동에 화장실을 다시 만들고 정자도 짓는다는 말씀을 하느냐며, 말
씀이 모사라고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니, 주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두고 웬 모사냐? 더 아름답게 만들어야지.” 하셨답니다.
다시 묻기를, “환난 때 월명동은 괜찮아요? 지진이 나고 세상이 뒤
집어진다고 하니 걱정됩니다.” 하니, 주님은 “재림 때 월명동 자연성전
을 때려 부수는 목적으로 환난을 일으키겠느냐. 영영하다. 더 보전케 할
것이다. 천년이 지나도록 보존케 하여 남아있는 자들이 쓰게 할 것이
다.” 하셨답니다.
이미 말씀에 나갔지요? 선생님이 말한 것도 계시임을 알아야 됩니다.
죽을 때까지는 화장실에 가야되고, 밥도 먹고, 잠도 자야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성전도 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루 동안 있을 대행사와 집회를 위해 무대를 꾸미고, 연극 연습을
하고, 노래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서기 위해 각종으로 몇 달씩 연습하지
요? 그 한순간 5분, 10분, 20분을 위하여 몇 달씩, 혹은 1년씩 연습합
니다. 100m 육상선수는 올림픽 경기에서 10초 동안 뛰기 위해 4년 동
안 연습합니다.
휴거를 위해 주님은 2000년 동안 섭리해 오셨고, 사람들은 기다렸습
니다. 휴거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순간 ‘뿅’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뿅’이 아니라 ‘뽕’으로 끝납니다. 어떤 자는 창피하게
‘빵’으로 끝납니다. 이 말씀도 웃고 끝날 것이 아니라 계시입니다.
영적으로 산 자는 주님을 따라 아폴로처럼 하늘로 ‘뿅’ 치솟고, 육
적으로 산 자는 ‘뽕’하고 육체적인 세계로 끝나고, 그것도 못한 자는
‘빵’ 하고 냄새만 풍기고 맙니다. 깨달았지요? 휴거 인사를 나눌 때는
서로 반갑게 ‘뿅!’ 해야 되겠습니다. 육적인 자에게는 ‘뽕’, 사탄주
관 받고 악평자, 주 무지자들에게는 ‘빵’입니다.
인터넷에다 누가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하는 자들이 있는데, 정신이 정
상이 아니고 모르니까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라도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
릅니다. 요나 선지자도 니느웨 성에 해당되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들도
각자의 사명의 센터가 다릅니다. 각 지체와 같습니다.
주님이 우리 섭리인들에게 얼마나 많이 직접 계시를 해 주십니까? 린
다 뉴커크도 토마스 주남도 섭리역사를 계시해 주는 사명자로 보낸 것이
아니고 각자 그 센터의 사명입니다. 우리들은 30년 동안 누구의 말씀을
들으면서 준비해 왔습니까? 주님이 선생 통해 2만 번 이상 말씀으로 계
시하시면서 섭리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주님께 예
술 문화로 영광 돌리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섭리역사는 마치 주님이 오신 것처럼 3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주님이 다양하게 계시해 주십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섭리 전체가 심정으로
주님을 느끼면서 계시를 받고, 또 시대의 말씀을 통해서도 계시를 받아
왔습니다. 선생도 계시 식으로 말씀을 받으면 계시받는 자들같이 설교가
나가게 됩니다. 성경 말씀은 계시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계시입니다.
그같이 주님의 계시가 설교로 나갑니다.
우리 섭리역사는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여 주님께 말씀을 받아 전하
고 모두 깨닫고 뛰어야 됩니다. 천주교는 천주교에 해당되는 계시를 주시
고, 기독교는 기독교에 해당되는 계시를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해당
되는 계시를 주십니다.
기도를 많이 하여 이 시대 우리에게 해당되는 계시를 받고 자기에게
해당되는 계시를 받아 행하고, 깨닫고, 느끼고, 주님의 심정을 받고, 성령
으로 새롭게 거듭나서 주님의 재림을 맞기 위해 지금 주님을 마음에 맞고
사는 삶을 계속 살아야 됩니다.
‘나는 재림 맞기 힘들다.’ 하는 자들은 실상 힘든 위치에 있는 자
들입니다. 확신에 차야 됩니다. 섭리인 전체는 주님의 재림을 앞에 놓고
여름철에 수영장에 뛰어들듯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겨울이 와 뛰어
들 수가 없습니다. 이때 이 순간입니다. 기회는 순간입니다. 사랑 때문에
구원해 주시고 사랑하기에 찾아와 주십니다.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행해야 됩니다. 주님의 심정을 알고 기도하고 행해야 됩니다.
한 덩이 고깃점 같은 인생을 가지고 망설이고, 주저하고, 뒤로 빼고,
생색내고, 재고, 버리고, 잘난 체하면 안 됩니다. 우리 몸값은 실상 고기
한 점 값입니다. 청춘 때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모든 시간을 자기 위해
다 써 놓고 때가 지나서 다 늙은 몸으로 “주여!” 하고 찾고 올 것입니
까? 주님을 따라다니는 자도 그에게 주님 대신 대답도 안 해 줍니다.
주님이 여러분 앞에 나타나서 말씀하실 때, 사정하실 때, 사랑한다고
표현하실 때, 그 말 떨어지기가 바쁘게 “주님 위해 살고 내 몸을 주님께
바칠게요.” 해야 됩니다. 그 순간 대답하지 않고 끙끙거리고 말 돌리면
주님도 마음 돌리고 다른 사람을 택해 버리십니다. 주님의 신부가 된 자
들이나 천사들이 옆에서 그를 보고 하는 말이 있다면 “병신, 뭐가 잘났
다고 고기 한 점의 인생 가지고 생색내는 거야? 제때가 지나면 땅이 갈
라지도록 후회할 자로구나.” 합니다.
주님은 우리 육신이 일생동안 구경해도 다 구경할 수 없는 보석의 나
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권세와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습니다. 인간은
그 영화로움을 영원히 찬양해야 되는 존재입니다. 그 나라에 같이 가서
살자고 이 땅에 오셨는데 주님을 몰라보고 오히려 뒤로 빼고 생색내는 자
들이 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이 잠깐 살 수 있도록 흙덩어리 세상을 주셨
습니다. 가다보면 늙어 꼬부라지고 썩어 없어질 몸을 가지고 살면서 생색
냅니다. 자기의 젊은 몸은 자기 몸이니 자기가 세상에서 살아보겠다고 주
님을 앞에 놓고서도 제 갈 길로 가는 자들은 정말 본정신이 아닌 철없는
자들입니다. 지구촌에서 살다간 영웅열사들도 왕들도 주님을 아는 자는
모두 땅바닥에 엎드러져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성공한 후에 선생을 찾아온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
다. 그런 정신을 가진 자는 돌은 자입니다. 찾아오면 선생이 좋아할 줄
알아요? 성공하고 돌아와서 밤새도록 벨을 울려도 듣기 싫어서 벨을 떼
어 버리고 안 열어 줍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 합니
다.
그의 성공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환난 때 같이 환난 받고, 같
이 먹고, 같이 주님을 모시고 가야지요. 섭리인들 중에서는 세상에서 출
세하고 오면 알아 줄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주님도 그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같이 사는 자가 최고의 스타입니다. 세
상 스타가 좋았다면 선생도 했지요. 주님 품에 안긴 스타, 주님 말씀 잘
듣는 스타,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스타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그런 시대입니다.
섭리사에서 그동안 자기 갈 길 안가고 선생을 도우며 그때 그 순간
뛰던 자들이 모두 섭리사에서 주님이 기뻐하는 자들로 쓰여졌습니다. 사
명을 맡았어도 자기 사명에만 빠져 살지 말고 사명하면서 늘 주님과 대화
하면서 주님께 빠져 살면서 해야 됩니다.
선생은 사명 없나요? 다 자기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을 한다고 해서
주님이 자기에게 와도 모르면 안 됩니다. 섭리사 안에서 사명을 받은 자
들이 자기 사명만 하느라 시킨 자에게는 관심 쓰지 않으니 더 큰 사명을
못 받고 그 자리에 있게 됩니다. 큰 사명을 하면서 아무리 바빠도 늘 주
님과 통하고 선생과 통하는 자들이 어떻게 되었나 봐요.
선생은 첫째, 기도로 주님과 대화하고 만나고 계시를 받습니다.
둘째, 말씀을 쓰고 완성합니다.
셋째, 건강 위해 시간을 씁니다.
넷째, 시간이 있으면 밥 먹고 잠을 잡니다.
그 다음에 시간 있으면 결재할 것 결재하고, 다음에 편지 처리를 합
니다. 그래서 그날 시간이 없으면 못 자고, 못 먹고, 편지도 못 읽고, 결
재도 못하고 지나갑니다. 그러니 교단으로 보낼 것을 내게 보내면 답이
안 갑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님의 것은 주님께 해야 됩니다.
자기가 할 일 못해 놓고 교단에 짐을 맡기지 말고, 주님과 선생에게도 십
자가 지게 하지 말아요. 어떤 힘센 장수가 있어도 그에게 섭리사의 것과
개인의 책가방 하나씩만 맡겨도 수십 트럭이 됩니다. 계산 좀 해 봐요.
교단에서 근무하는 자들이 20~30명이나 되어도 전국에서 오는 보고
를 다 받으면 밤잠 못 자고 해도 끝이 없는데, 선생에게는 세계에서 다
들어옵니다. 그러니 선생이 혼자 다 할 수 있겠어요? 불가능합니다. 교회
에서 처리할 문제를 교단에 보내고, 교단에서 할 일을 선생에게 보내니
감당을 못 합니다.
선생에게 편지 한 통씩만 받고 싶다고 편지 보내고, 교회 이름 지어
달라고 편지 보냅니다. 교회에서 모두 의논하고 지어야지요. 선생을 피곤
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나를 대하듯이 주님을 대하니 주님도 피곤하다고
하셨습니다. 부담 없이 대해야 주님이 자주 오십니다.
그 많은 편지들 중에 ‘누구 편지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할까?’ 하고
한 장을 골라 읽었습니다. 간단하게 쓴 편지였습니다. 일편단심 예수님만
을 위해 살겠고 하늘을 위해 살겠다고 하며, 타락한 자와 같이 안하겠다
고 했습니다. 자기는 답장을 기대 안하고 1년 동안 답장 못 받아도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씩 주님이 편지하라는 감동을 줄 때 편지한
다고 했습니다. 정말 부담이 없었습니다. 기뻤습니다. 나보다 주님을 사
랑하는 뿌리 깊은 신앙이 잘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즉시 편지 써 주었습
니다.
‘부담 없는 편지다. 주님께 붙어사니 고맙다. 항상 주님께 잘하여 주
님과 같이 먹고 즐기면서 감사하면서 살아라. 네 소원대로 항상 주님의
뜻 속에서 사는 자가 되어라.’ 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도 계시를 해주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가만히 놔두어 봐라. 내가 계시하는 것을 깨닫나 보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지옥을 축소판으로 보여 주시고 설교를 축소판으로 보여
주시며 깨닫도록 계시해 주고 있었습니다.
자~ 오늘 들은 말씀들이 모두 계시이니 깊이 깨닫고 거듭나서 영적인
자가 되어 주님 심정의 계시의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눈으로
안 보여도 심정으로 느끼며 감동과 뜨거운 은혜를 받기 바랍니다. 주님은
마음의 문으로 오시니, 천 마디 말로 주님을 보여 주어도 표현할 수 없는
심정으로 깨닫는 은혜를 받고 기록하기를 바랍니다.
계시받은 자들이 받은 계시를 잘 듣고 귀한 것을 알고 살기 바랍니
다. 주님이 악평자들의 공격에 놋성벽이 되어 주시니, 주님만 메시아로
믿고 모시고 섬기고 사랑하고 살면 누가 이단시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일
순간만 사랑하지 말고 오랫동안 변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꾸준해야 됩니
다.
주님이 어떤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선생이 그곳에 있다고 희망
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데 착각하지 말아라. 내가 더 역사하여
뛰게 하고 뒤집어 놓을 것이다. 거기서 심정이 타니 더 행하고 더 새롭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자기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세상으로 가지 말아요. 세
상에 나가서 결혼하는 희망으로 산다고 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경고하셨습
니다. “그렇게 행하는 자는 그 세계에 가서 다시는 못 온다.”고 했습니
다. ‘빵’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사랑과 주님의 함께하심과 성령님의 감동 감
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