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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09.08.12 (수)

090812 수요말씀 마음의 계시다

선포일
2009.08.12 (수)
성경 본문
에베소서 1장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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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2일 수요말씀> 마음의 계시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본 문 에베소서 1장 17-19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모두 수련회를 준비하고 참여하느라 수고 많습니다. ‘희망을 이루는 역사’에서 ‘희망’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이때 해 야 됩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을 보듯이 영의 세계도 보면서 느끼고 깨닫고 알면서 주님을 믿고 살고 싶을 것입니다. ‘나는 영의 세계를 못 보니까 그에 해 당되는 만큼 신앙생활을 못 하고, 주님과도 멀리 있는 자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님 앞에 충성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관리하는데도 영적인 것에는 감 각이 없는 자들도 많습니다. 충성하고 열심히 하는 것도 실제적으로 영에 속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멘! 몸은 눈과 달라서 보지는 못하지만 느 끼고 깨닫습니다. 마음은 느껴 보는 눈이고 느껴 듣는 귀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 세계와는 멀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강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는 못 하고, 강의도 못 하고, 설교는 잘 못 해도 봉사하고 충 성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못 따라가게 잘합니다. 가정국 사모들 중에 몇 명은 월명동 화장실 청소를 3년이나 했습니 다. ‘나는 다른 것은 못 하고, 주님과 선생님을 위해 해 드릴 것이 없으 니 화장실 청소라도 죽도록 하자.’ 생각하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동안 그만큼 청소가 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화장실을 새롭 게 했습니다.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깨끗하게 다시 하면 좋겠다.’고 기 도했을 것입니다. 책임자를 통해 보고가 올라와서 이번에 새롭게 하라고 하여 새 것이 되었습니다. 충성자가 자기 센터의 일을 하며 기도하면 주님은 더 잘 이루어 주십 니다. 누구든지 희생하면서 기도하면 주님은 그것을 보시고 더 잘 이루어 주십니다. 모두 뛰면서 기도, 뛰면서 보고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도 성전이나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희생하 며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사명을 받고 죄를 청소해 주는 자 들이 있습니다. 영의 세계는 잘 못 봐도 충성하고 희생하는 것이 영적인 실천의 삶입니다. 믿습니까? 어떤 사람이 몇 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하루는 누가 뒤에 서 있는 것 같아서 ‘아! 화장실 사용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화장실을 나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깥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화장실에서 사람이 안 나오더래요. ‘세상에! 이렇게도 오랫동안 안 나오나?’ 하고 다시 화장실에 들어 가 노크를 해 보니 아무 대답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무서워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주님이 옆에서 쳐다보고 계시더랍니다. 주님을 사람으 로 보고 착각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못 보고 안 알아줘도 주님은 다 알아 주시고 다 쳐다보십니다. 주님은 화장실뿐 아니라 일하는 곳들을 다 쳐다보십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충성하는 자들에게 가까이 찾아가서 보십니다. 주님은 “나를 못 본 자들에게도 그같이 가서 쳐다보았다. 가까이에서도 쳐다보고 멀리에서 도 쳐다보니 전해 주어라.” 말씀하시어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명을 받은 자들은 그 일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도 일을 맡기면 일하는 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봅니다. 그 옆의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알 수 있고, 일한 것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있어도 그 옆의 눈을 가지고 봅니다. 모두 이를 알고 행하면 좋겠습니다. 1년에 20명을 전도했으면 정말 열심히 한 사람입니다. 교회가 배가 되었으면 열심히 한 교회입니다. 하루에 몇 백 명씩 전도한 사람은 큰 표 적을 일으킨 자입니다. 기록을 세우는 자가 되어 봐야 합니다. 섭리에서 기록을 세우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심정을 깊이 느끼고 깨닫고 강대상 청소를 열심 히 했답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청소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예배 준비를 위해 청소뿐 아니라 예배에 필요한 것들을 철저히 했답니다. 그렇 게 오랫동안 그 일을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와서 “이왕이면 집회나 행사 때 가서 일해 보는 것이 어때?” 하고 물었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생 각하고 전국 집회나 행사, 그리고 월명동 행사 때 가서 행사 전에 해야 할 일들을 했다고 합니다. 특별한 사명 없이 충성한 것입니다. 행사 전에 준비해 본 사람은 알지만 뒤에서 미리 해야 할 일들이 정 말 많습니다. 선생도 전에 집회 다닐 때, 뒤에서 행사 준비하는 자들을 보고 정말 수고 많다고 인사하고 단상에 올라가면 더욱 마음에 부담이 없 고 감격스럽고 기뻤습니다.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니 더 큰 곳으로 보내어 개성으로 일하게 하 셨습니다. 그런데 직책과 간판이 없으니 직책을 가진 몇몇 선배들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또 그가 제시한 방법으로 하면 좋은 데도 직책이 없으니 선배들이 무시하고 안 따릅니다. 일을 하는 자는 일머리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좋은지 압니 다. 그러나 위에서 직책 있는 자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뻔 히 힘든 것을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제대로 하 면 배나 힘이 안 듭니다. 일을 해 본 자가 좋은 방법으로 하면 윗사람이 무시하며 안 된다고 합니다. 또 주위에서는 별 사명도 없는 자가 눈에 띄게 일하려고 한다고 시기 질투까지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억울하지만 열심히 했으나, 집회에 따라다니는 목사가 “너는 내가 길렀는데 왜 다른 쪽만 챙기고 내가 하는 일은 안 챙기니?” 하며 혼냈다고 합니다. 이에 그는 주눅이 들어서 무 섭다고 하며 도대체 주님의 뜻이 뭐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그는 사회에서 선수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감독과 코치로부터 철저 히 교육을 받아서 남들보다 기본에 앞서 있고 충성을 잘하니 주님이 기르 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대한 것입니다. 선생이 외국에 있을 때 편지로 자기 진로를 묻기에, 편지로 면담하여 ‘너의 길도 좋은데 주님의 일을 하라.’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선생같이 키도 작고, 또 어리니까 아무 백도 없는 줄 알고 함부로 대한 것 같습니 다. 주님보다 백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선 보이는 자들이 다스 리니 주님이 쓰시는데도 꼼짝 못 하는 것입니다. 흔히 누가 계통에 의해서 어떤 사람을 추천하여 그가 직책이나 사명 을 맡으면, 올려 준 자들이 자기 때문에 사명을 맡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 개인을 보고 주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도 주님께 어떤 사람을 추천할 때 억지로 콩을 팥이라고 하여 허 락받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나 때문에 콩인데 팥이 된 거야. 내 덕이야.” 하지 않습니다. 그도 본인이 잘했고 이미 예전부터 뜻이 있어 옆에 심부름하는 자로 오게 한 것입니다. 그같이 심부름하는 자가 없었으면 그 일을 누가 했겠 습니까? 주님이 지금껏 길러 오셨는데 주님이 하시는 일을 모릅니다. 목 사들이 알아야지요. 섭리사에는 이 사람과 같이 직책이 없어도 뒤에서 옆에서 찬밥이 되 어서 꾸중 듣고 혼나가면서도 주님을 보고 열심히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몰라줘도 주님 앞에 열심히 충성하면 하늘나라에서는 그 공적으로 대가를 주고 있으니 서운함 타지 말고 해요. 그런데 이름 없고 직책 없는 자들이 계속 충성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직책을 가진 자들이 몰라주고 힘들게 하니 더 이상 거기 못 있고 물러나기 때문입니다. 교역자들이나 책임자들도 하나의 심부름꾼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명 을 받았으니 일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린 자들을 일하게 한 후에 “너는 나 때문에 그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이를 보시고 슬퍼하십니 다. 주님께 심정의 십자가를 더 짊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직책자들이 필요할 때 자기 밑에 쓸 때도 오직 주님이 자기를 통해 쓰신다고 생각해야 되고, 쓰이는 자들도 주님을 더 귀히 여기고 주님이 사람을 통해 쓰신다고 생각하면서 모두 주님 우선순위로 생각해야 됩니 다. 주님 제일 우선주의라고 하면서도 현실에서 부딪힐 때는 자기 성격들 을 못 고쳐서 그만이야 누누이 자기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자기 위주로 행 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과 동행하며 보시다가 결국 실망하신 답니다. 주님은 그들과 안 통하니 그 자리에서 심정만 태우고 계십니다. 그러 다가 옆의 사람들을 감동시켜 주님과 말이 통하는 선생에게 다 보고하게 합니다. 실상 주님은 보고 원자탄이십니다. 보고할 것을 사람들에게 계시 하시고 명령도 하시여 보고하게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고쳐져야 합니다. 선배들은 나이는 먹어 가는데 젊은 신입생이나 20대, 혹은 30대 초 반에 있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니까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질까 봐 불안해 하고 초초하여 인성으로 대합니다. 그러니 눌림을 받은 자들은 주권이 사 명이니까 열심히 충성하며 잘할 테니 사명을 달라고 각자 사연들을 내게 말해 옵니다. 이에 선생은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어떤 사명을 줘야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또 윗사람이 볼 때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만 보고 꾸짖고 책망하고 힘들게 하지 않느냐고도 물어보았습니다. 주님은 그렇다 고 그에게 목사나 강도사나 어떤 사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발 애들 꾸짖고 힘들게 하지 말아라. 버릇이 되어 자꾸 그같이 하면 그같이 하는 자는 그같이 고통을 받게 된다.” 하시며 섭리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게 했습니다. 또 “특별한 직책을 안 주었어도 내 가 이름 없이 쓰는 자니까 심정으로 느끼고 나를 대하듯 하라.”고 했습 니다. 그리고 그가 기가 죽고 주눅이 들어서 주님의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안 되니 더 열심히 하라고 몇 자 써 주었습니다. ‘주님께 더 충성하고 너같이 눌림 받는 자를 빼내 주어라. 극히 담대하여라.’ 하며 격려해 주 었습니다. 모두 그리 알고 별 직책 없이 충성하는 자들에 대하여 스스로 죄를 짓지 말고 칭찬하고 잘 대해 주어 의의 공적을 세우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그로 인하여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흔히 교단을 거쳐 편지를 보내면, 교단에서 뺄 것 빼고 수정하여 보 낸다고 생각하고 속 심정의 편지를 안 보내는 자들도 있습니다. 교단은 선생에게 오는 편지를 보고 뺄 것 빼고 좋은 말만 전해 주기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같이 하려고 거기 근무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교단은 누구에 대해 말하든지 다 선생에게 올립니다. 다만 절대 그렇지 않은데 그릇되게 보고한 것이 있으면, 선생이 참고하라고 옆에 소견서를 써서 보 냅니다. 선생이 억울함을 당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공의로운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모두 해를 받지 않게 해 줍니다. 주님이 계시는데 감히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보고를 올리는 자는 능선에서 좌우를 다 보고 정확히 올려 야 됩니다. 한 쪽만 보고 판단하여 올리면 상대편도 그에 따라 올립니다. 주님은 세밀하게 그 입장과 처지와 심정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한번은 누가 계시를 받고 분별해 달라고 하기에 보니, 자기 기질대로 여러 가지를 세밀하게 받았습니다. 계시도 자기 그릇대로 받습니다. 이에 선생은 “네가 받은 계시를 보고 주님과 의논하니 주님이 맞다고 한다. 또 내용을 보니 성경적이고 이치에 맞다. 현실 상황을 봐도 맞다. 기도 많이 해라.” 말해 주었습니다. 계시받는 자는 기도가 에너지입니다. 기 도가 없으면 전진하지 못합니다. 물론 주님을 믿는 자 모두가 그러합니 다. 모두 기도로 전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서의 다른 자에게 편지하여 ‘네 부서의 늙은 자는 주님 의 계시를 알차게 받는다. 그리 알고 기도해 줘.’ 했습니다. 그가 내 말 을 듣고 편지의 내용을 전해 주면서 기뻐하니, 계시받는 자는 자기에게 늙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슬퍼서 주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선 생님이 저를 보고 늙었다고 해요. 정말 슬퍼요. 저는 아직 50도 안 먹었 잖아요.” 했답니다. 이에 주님은 “늙었다는 말을 왜 육적인 나이로만 따지냐?” 하셨답 니다. 그가 “그럼 늙었다는 말을 어떻게 따지는 거예요?” 물으니, 주님 은 “네가 섭리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좋은 말이다. 섭리에 온지 오래되 었기에 늙었다고 한 것이다. 오래된 것이 좋지 않으냐.” 말씀하셨답니 다. 주님은 그때 그같이 말한 선생의 입장과 심정을 풀어 말씀해 주셨습 니다. 주님이 그같이 말씀하시어 자기의 슬픈 마음이 풀렸다고 했습니다. 그가 주님께 받은 여러 가지 종류의 계시가 많은데 그 중에 한 계시를 말 해 주었습니다. 이런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될 일입니다. 선생이 일일 이 다 말하면 너무 할 일이 많아 피곤합니다. 각 교회나 개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야 발전하고, 전진하고, 날개를 달아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앞에서 한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섭리사에서 사명이나 직책이 없으면 꾹 눌림을 받으니까 자꾸 목사나 강도사나 전도사 직책을 받으려고 합니 다. 그래서 목사와 강도사 직책이 섭리사에 많은 것입니다. 교회를 맡았 을 때 목사로 임명해 주었는데, 지금은 그 위치에 있지 않으면서도 목사 사역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대기자도 있고, 다른 부서에서 일 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주님의 일은 안 하고 자기 일만 하면서 도 목사 사명록에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교단에서는 모두 정리하기 바랍니다. 직책을 맡았을 때 목사 사명을 받은 것인데 지금 일을 하지 않으면 명예 퇴직자입니다. 현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직장만 다니는 자 역시 퇴직 목사입니다. 교단에서는 정식으로 인정하는 자들을 제외하고 모두 정리하게 바랍니다. 공직자만 공직자 호 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적인 일을 하지 않는 자에게 보수가 나 가면 안 됩니다. 열심히 하는 자에게 돌려주기 바랍니다. 섭리사에서 목사, 강도사, 전도사의 직책이 있는 자만 중직을 맡은 것 이 아닙니다. 평신도 중에서도 목사 못지않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따로 사명을 주어서 일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직책이 없다고 무조건 밑의 사람 취급하고 심부름만 시키면, 그도 목사에게 심부 름을 시킬 것입니다. 모두 존경해 줘야 됩니다. 영의 세계를 모르니 주님 이 행하시는 것을 못 보아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정 체제도 아니고 사회, 정치, 군대 체제도 아닙니 다. 자기 개성과 사명의 지체 체제입니다. 사명대로, 일하는 대로 각자 자기 의견과 권한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인데 누구에게 눌려서 못 하면 안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의 의지로 막아서 사명자가 일을 못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교역자들은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해서 배제하면 안 됩니 다. 마음에 맞는 자들도 있지만 안 맞으면 맞춰 가야 됩니다. 교역자가 자기 마음에 맞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자기 심정을 알아주는 자만 몰 고 나가면 안 됩니다. 항상 찬반이 있으니까 좌측도 우측도, 손도 손가락 도, 발도 발가락도 모두 자기 지체와 같이, 주님의 지체와 같이 골고루 다루면서 섬세히 일을 해야 됩니다. 자기에 대한 것이나 전체에 대한 것을 보고할 때 잘못 보고 하면 허 락할 것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자기나 자기 교회에 대 해 말한다고 하는 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서로 잘해야 잘됩니다.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니 이를 알고 행해야 됩니다. 처음에 전도할 때는 천릿길을 쫓아다니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전도되게 해 달라고 금식도 해 가면서, 전도만 되면 소원성취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끝까지 잘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도되고 어디서 누구한테 당하는지도 모르고 심정적으로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놓아 둡니다. 섭리사에 부모 없는 고아처럼 크는 자들이 너무 많아요. 이제 은 혜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성령님이 그들의 엄마가 되시고 주님이 그들 의 신랑이 되어 주심을 깨닫고 보이는 자만 중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보이는 자들이 못해 줘도 이로 인하여 주님을 더 찾고 성령님을 더 찾고 하나님을 더 찾아, 보이는 신앙과 육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을 벗어나 야 되겠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신앙은 인본적인 신앙입니다. 주님과 멀 어지는 신앙입니다. 사람끼리 모여서 위로를 받고 답을 받으면 그런 체질 의 신앙이 들어갑니다. 습관이 됩니다. 먼저는 자기와 주님과의 일대일 신앙 속에 살면서, 그 다음에 형제를 대상으로 삼고 화목하게 사는 것입 니다. 오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육에 속한 주님의 말씀을 여 러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이제부터 영적인 말씀을 듣겠습니다. 핵심만 하 겠습니다. 기도하는 자들과 계시받는 자들과 주님과 가까이 살겠다고 하는 자들 에게 보내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불이 얼마만큼 뜨거운지 느끼려면 눈으로 보는 것보다 가까이하여 느 껴야 합니다. 불이 자기 품속에 와야 겨울철에 쓰는 열주머니나 불같이 뜨겁게 느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옥도 가 봐야 보고 느낍니다. 세상 지옥은 마음으로 몸으로 겪으면서 느낍니다. 주님의 몸을 안 보여 줘도 주님이 가까이오시면 주님을 느끼게 됩니 다. 그러면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 생각을 통해 여러 가지로 느껴 알 게 됩니다. 주님의 심정과 그 깊은 마음을 알도록 하기 위해 주님의 몸을 보여 주어도 그 깊은 심정을 다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든 자들이 말씀을 깊이 들으려하면 할수록, 기도를 깊이하면 할 수록 주님은 말씀을 통해, 기도 중에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과 심정을 느 끼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적 세계의 말씀으로서 우리의 마음이 귀가 되어 들 려옵니다. 육적 세계의 것은 육신의 귀로 들려오지만, 하나님과 주님과 천사들이 말씀한 것들은 영적 세계의 것으로 마음의 귀로 들려오는 것입 니다. 그래서 흔히 마음으로 깨닫거나 마음으로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게 되 면 자기 마음을 통해 느껴져 들려오니까 자기 의지에서 자기 마음이 그같 이 인식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주님의 음성이 맞느냐고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주님의 말씀이 깨달아 느껴졌어도 주 님인지 모르겠으니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보여 달라고 말을 한답니다. 주님을 보여 줄 단계가 된 자에게는 그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렇 지 않은 자에게는 안 보여 주십니다. 지체 중에 눈을 제외하고 몸의 지체 들은 느껴 보기밖에 못 합니다. 대화하면 심정으로 느끼는 것이 더 충격 적입니다. 오히려 눈으로 주님을 보면 사탄으로 가장한 마귀가 아니냐고 의심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온전하게 충격적으로 믿어진다고 볼 수 없습 니다. 주님의 모습을 눈으로 안 보고 가슴으로 그 심정을 느끼는 것이 더 주님의 깊고 깊은 심정을 여러 가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들 선생을 못 보고 늘 기도하니 순간 보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생각이 되고 더 느껴 집니다. 면회 와서는 순간밖에 못 봅니다. 보았는데도 갈 때는 ‘봤나? 안 봤나?’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눈으로 보던 것은 눈에 안 보이면 곧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주님을 눈으로 보았어도 사라지시면 곧 눈에 안 보이니까 본 기억이 희미해지며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느껴 보는 것은 언제나 생각하면 느 껴집니다. 온종일 느껴지고 자기 가슴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생각이 실 상입니다. 무엇이든지 생각하는 대로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자도 생각하면 지난날의 생각이 훤히 떠오릅니다. 그러니 주님이 영안으로 보이지 않고 보여 주지 않으셔도 서운하게 생각 말고 평 소에도 늘 하나님과 주님을 뜨겁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슴에, 심정에, 마음에 그 뜨거움과 느낌이 떠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늘 마음 으로 느끼고 마음의 눈으로 느껴 보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볼 때만 눈이 즐겁습니다. 볼 때만 마음이 기쁩니다. 그 러다가 안 보이면 불 꺼진 마음입니다.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마음 으로 느껴 여러 가지로 주님의 심정을 느끼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섭리인 모두는 이를 알고 주님이 안 보여도 낙심하지 말아요. 하나님 은 더 좋은 방법으로 행하시니 이를 깨닫고 날마다 이에 합당한 마음의 눈을 떠서 주님을 느껴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이를 생각하고 기도하 고, 찬양하고, 말씀을 들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도 느낌이고 음식도 맛의 느낌입니다. 모두 느낌이 생명입니다. 마음으로 느낀 것을 실제로 생각하면 그때 영이나 환상이 보이고 아른거 립니다. 느끼는 대로 현실이 그같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100분의 1의 영 감과 느낌으로 실체를 알게 됩니다. 영이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찬 공기 와 더운 공기는 느끼는 것입니다. 주님께 자꾸 느끼게 해 달라고 말하면 마음으로 느껴 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없어도 마음으로 심정으로 강하게 느껴 오면 은혜입니다. 통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통하고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지 말 고 범사에 주님에 대해 생각하며 자꾸 주님께 말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말해야 주님도 말씀하십니다. 심정이 터지도록 느끼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은 간사하게 거짓으로 나타나기에 뱀이나 짐승같이 무섭게, 두렵게, 섬뜩하 게, 어둡게, 더럽게 느껴져 옵니다. 사탄 마귀들은 자기들에 대한 느낌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도록 각종으로 수작을 부리면서 자기 모습을 숨깁니 다. 그러나 그 근본이 죄와 악이기 때문에 결국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어린데 마귀가 와서 자기에게 말을 하기에 “네 가 하는 말의 내용을 보니 마귀다.”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니까 놀라서 혀를 내두르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섭리사에서 나이도 많 이 먹었는데 눈으로 훤히 보이는 악평자들이 행하는 것을 모르고 그들이 말하면 귀가 솔깃해 따라가는 어리석은 자가 있습니다. 마귀는 점점 느낄수록 알게 됩니다. 속닥거리고 수군거립니다. 느낌으 로 볼 때 결국 마귀 느낌이라고 판단하고 대하면 마귀는 대화도 안 하고 사라집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들도 느낌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자인지, 악평자인지, 착한 자인지 각종으로 느껴집니다. 은하수나, 10대 아이들을 막론하고 신령한 자들은 느낌으로 알게 됩니다. 인터넷에 우리 섭리를 악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꼬이고 섭리에서 소외당하는 자들을 꼬여 가려고 인터넷에 사망과 지옥의 올무를 놓고 기다립니다. ‘교리가 잘못 되었다.’ 하면서 섭리를 욕하고 선생의 흠을 잡습니다. 그들은 전에 섭리에 있다가 각종 문제를 일으켜서 주님이 섭리에서 쫓아낸 자들입니다. 그들은 가인처럼 미워하는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 자들이 사람들을 꼬여 모이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곳을 보고 “꼬임 받은 자들이 모이는 곳이며, 가인들의 모임이며, 사탄의 회당이 다.” 말씀하셨습니다(계 3:9). 섭리에 있을 때도 신앙이 온전치 못하더니 어디가도 그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속지도 말고 그 꼬임에 넘어가지도 말아 요. 느낌이 안 좋고 썩는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주인이 먹고 버리는 것 을 주워가고 물고 가는 개들입니다. 넓은 길은 흠이 너무 많습니다. 호리라도 모순이 있으면 안 되는데, 그 자체가 옳지 못하니 주님이 그곳에 역사하시겠습니까? 느낌으로 알고 판단하고, 오직 주님을 따라 이 시대를 알고 주님을 준비해야 됩니다. 선생이 이곳에 있다고 넓은 길을 가는 자들은 나를 더욱 씹고 쪼아댑 니다. 선생은 밤낮으로 더 강철같이 기도하여 그들에게 주님의 손길이 가 게 할 것입니다. 가인들은 알고 보면 약합니다. 하나님도 주님도 그들을 알아주지 않 으시고 그 편을 들어주지도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가인들은 인본주의입니 다. 사고 자체가 그릇된 사고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사탄의 마음과 가 인의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구원의 길을 가는 자는 사람을 쪼아 대고 흠잡고 악평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고 행위를 보고 악인을 알게 된 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6:43-45). 사탄의 손에 잡혀 사는 자들은 음침한 행위를 보고 압니다. 주님을 제대로 섬기고 살면 사탄의 것이 되겠어요? 주님을 제대로 믿고 섬기지 못하니 야비하고 비굴한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속한 자가 그 야 비하고 비굴한 행위를 두고 기도하면 주님은 다 들어 주십니다. 사탄의 세계는 아벨들의 주권에 지배당합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눈으로 보려고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라. 심정으로 느끼고 항 상 주님과 교통하고 대화도 하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보편적으로 이렇게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이 불같이 와 닿아도 어디 성령이 보입니까? 보이지 않지만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역사해 오셨지만 모두 다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보았어도 만물과 태양으로 상징적으 로 보여 주실 뿐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느낀 자는 하나님을 느낀 자니라.” 말씀하셨습니다(요 14:9-10). 느낀 것도 제2의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기도할 때도 주님은 옆에 와 계시니 심정으로 느 껴 보는 자가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느끼지 못하는 자는 심정이 죽은 자요, 영이 죽은 자요, 주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느낌과 감동과 심정의 뜨거움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항상 주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 눈으로 주님을 못 보는 자는 생 각해야 그 영으로 주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주님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충만하기 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