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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09.10.21 (수)

091021 수요말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선포일
2009.10.21 (수)
성경 본문
사도행전 2장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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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1일 수요말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본 문 사도행전 2장 21절 사도행전 4장 12절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니다. 금주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구원 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구원하라고 예수님을 보내셨으니, 누구든지 구세주 예수님을 찾고 부르면 구원을 얻게 된다.’ 는 것입니다. ‘구원’하면, 흔히 죽어서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 다. 인생은 첫째, 육신이 살아야 영혼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영혼은 마치 어머니 배 속의 태아와 같이 우리의 육신 속에서 살아갑니다. 고로 누구든지 자기 영은 자기 육과 절대적으로 생명의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태아를 배고 있는 어머니가 죽으면 배 속 에 있는 태아도 죽듯이, 자기 육신이 죽으면 그 영은 죽지는 않지만 그 육체에서 떠나야 됩니다. 육신이 절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살았다면 그 영도 육신을 따라 구원받아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고, 육신이 그렇지 않았다면 사망으로 갑 니다. 이와 같이 자기 영과 육은 절대적인 생명의 상호 관계를 가지고 있 으니,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부르면 육신도 잘되고 구원을 얻고 그 영혼도 잘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을 안 믿는 흑암의 세계, 곧 사탄·마 귀·귀신들이 사는 세계의 주관권에서 나와 하나님을 믿는 세계, 곧 빛에 속한 세계, 의의 세계, 진리의 세계의 삶을 살게 됩니다. ‘육신이 구원 받은 삶’이란, 자기 중심하거나 혹은 자기가 어떤 존재를 섬기는 체제를 중심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절대시하고 존귀히 여기고 사는 하나님 주관권 세계의 삶을 말합니다. 이로 인하여 그 영도 육신을 따라 하나님을 믿고 존귀히 여기고 사랑 하며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절대 중심하고 살게 됨으로 흑암과 사탄의 주 관권 세계에서 하나님의 절대 빛의 생명권으로 나와 구원받은 영이 되는 것입니다. (도표 - 새벽에 완성) 구원에는 영적 구원만도 없고 육적 구원만도 없습니다. 성경에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 육신이 잘된다.’고 했습니다(요3 1:2). 육신이 주 님을 제일 근본으로 하여 잘됨같이 영혼도 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러므로 주님을 불러야 됩니다. 영육 구원입니다. 살아 있을 때 육신이 구 원받는 삶을 살아야 영혼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육도 영도 잘되고 구 원을 얻어야 합니다. 육신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지만 영이 잘되면 손해 가는 일이 아닙 니다. 이는 남편이든지, 부인이든지 한 명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해도 그 중 하나가 그로 인하여 잘되면 손해가 아니고 영광입니다. 부모가 고생해 도 그 대가로 자식이 잘되면 영광입니다. 둘 다 잘되면 더 좋은 영광이지 만 환난 때는 둘 다 잘되지 않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십자가를 지는 것 입니다. 자기 육신이 금식을 해 가면서 참고, 환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희 생하여 십자가를 지면 자기 영은 그 대가로 영광을 얻게 됩니다. 환난 때 십자가의 고통을 지고 갈 때 주님을 불러야 됩니다. 그래야 이깁니다. 쉬운 이야기로, 힘들 때 부모는 자녀 생각, 자녀는 부모 생각 하면서 가면 어려움을 이기고 극복하게 됩니다. 자기가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가면 고통을 받을 때 이깁니다. 선생도 힘들 때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희망을 걸고 갑니다. 왜요? 내 가 힘들게 기르고, 도와주고, 노력하며 키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서 여러분을 생각하면 힘이 옵니다. 주님은 그것을 보십니다. 주님도 의 지해야 되지만 자기가 수고한 것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선생은 힘들 때마다 약한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더 열심히 했습니 다.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지 않고, 내가 걱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서 ‘가자! 저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니 저들이 잘된다. 그러니 희망을 가져라!’ 하며 이겼습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 나 이 세상은 자녀에 대한 희망, 형제에 대한 희망, 물질적 희망, 사랑의 희망 등 보이는 자들로부터 희망이 있어야 됩니다. 선생이 운동장을 돌 때 똑같은 빠르기로 하루는 30바퀴, 또 하루는 40바퀴 돌았습니다. 그런데 30바퀴를 뛴 날보다 40바퀴를 뛴 날이 훨씬 더 힘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30바퀴 를 돌 때는 바퀴 수만 세면서 돌았고, 40바퀴를 돌 때는 하나님과 성령 님과 예수님을 부르면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몇 바퀴 돌았는지 세지 않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을 몇 번 불렀는지 그 수만 세면서 거기에 빠져 뛰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면서 뛰니 영적인 힘이 와서 숨 가쁘지 않게 잘 뛰었습니다. 영이 잘되니 육도 잘됐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겪고 살 때 주님을 부르면서 가면 이깁니다. 주님을 부르지 않으면 패합니다. 어떤 자는 선생의 이름만 부르고 갔는데도 힘들 지 않고, 이겼다고 했습니다. 선생도 전에 중국에서 고생할 때 매일 500 여 명의 제자들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주면서 고통의 시간을 기도의 시간 으로 뒤바꾸어 보내니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정신이 빠져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세상 재미나 이성에 빠져 살면서 육적 고통을 잊는 자는 마치 아편을 먹고 잠깐 고통을 잊고 사는 자와 같습니다. 영도 육도 그와 같은 자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영과 육의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을 불러야 됩니다. 주님께 책망을 받고 형벌을 받아도 역시 주님을 불러야 됩니다. 여호사밧 왕이 전쟁 때 왕복을 입고 나가서 싸우다가 적들에게 추격받고 포위당했 을 때 여호사밧 왕은 목이 터져라 여호와를 불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니 적들은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보니 우리가 잡으려 하는 아합 왕이 아니구나.” 하며 더 추격하지 않음으로 여호사밧 왕은 살았습니다 (대하 18:28~32). 그때 그 순간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으면 죽었을 것입 니다. (대하 18:28-32) 『[28]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 라가니라 [29]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군중으로 들어가 니라 [30] 아람 왕이 그 병거 장관들에게 이미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1]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 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저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저희를 감동시키사 저를 떠 나가게 하신지라 [32] 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 고 돌이켰더라』 왕이든, 주권자든, 권력자든, 명예자든, 스타든, 미인이든, 장사든, 세 상 어떤 간판을 가진 자라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메시아 예수님을 불러야 위기를 면하면서 구원받고 살게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첫 번째로 주님을 불러야 됩니다. 주님 을 부르면 주님은 첫 번째로 구원해 주십니다. 부르는 것은 인간의 책임 분담입니다. 구원해 주는 것은 구세주 예수님의 책임입니다. 구원받을 자 가 책임을 해야 구원해 주는 구원자도 책임을 하고픈 것입니다. 구원받을 자가 책임을 못 하는데 구원해 주는 자만 책임을 한다고 해서 구원이 이 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자와 구원받을 자를 생명체로 비유하면 구원자는 정자와 같고, 구원받을 자는 난자와 같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일체 되어야 생명체가 탄 생하듯이, 구원자 예수님과 구원받을 자가 일체 되어야 ‘구원’이라는 생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하늘나라 천국에 가는 데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인간이 각자의 책임을 해야 됩니다. 자기 책임분담만 하면 천국은 꼭 갑 니다. 육적 구원도 꼭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항상 인 간이 책임을 못 하여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 했으면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성공하려면 자기 할 일과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공했더라도 ‘하나님 주관권의 뜻을 펴면서 성공했느냐, 자 기의 욕망과 육체의 뜻을 이루며 성공했느냐.’에 따라 ‘영원한 성공이 냐,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만의 성공이냐.’가 좌우됩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흔히 보이는 사람을 자기의 구원자로 삼 고 찾습니다. 물론 사람도 자기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도와줍니다. 그 러나 육적인 구원만 임시로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 도 예수님이 해 주시는 구원을 이뤄야 육은 일생 동안 구원을 이루고, 영 은 영원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자기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사는 자는 온 지구가 자기 재산이고 자 기 주권 아래 있다 해도 미래에 그 영혼이 지옥에 간다면 아무 소용이 없 습니다. 그 정도로 영혼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미련한 자는 순간 없어지 는 눈사람 조각상을 가지고 놀고, 지혜로운 자는 돌과 쇳덩어리 조각상을 가지고 좋아하며 삽니다. 봄이 오면 눈사람은 순간 녹아 없어져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누구든지 죽음의 날이 되면 육신은 시체가 됩니다. 육신만 가지고 산 자는 눈사람을 가지고 논 사람과 같이 가지고 갈 것이 없습니다. 고로 주 님은 말씀하시기를 “영, 영, 영, 영, 영이다. 영을 위해 온몸을 투자하 라. 영은 영원히 산다. 영을 구원해야 된다. 불이 났으면 사람을 꺼내 구 원시켜야지, 물건만 꺼내겠느냐.” 하셨습니다. 주님은 ‘영의 구원’ 때문에 애간장 태우십니다. 우리의 영이 주님 을 불러야 됩니다. 자기 육이 주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부르면 자기 영도 같이 부릅니다.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은 기분이 좋으시면 별것을 다 해 주십니다. 받는 자만 알게 됩니다. 선생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을 부르면서 기도하며 살았기에 지 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영도 육도 살아 있습니다. 매일 감사하면서 좋아 하며 불러야 삶의 천국이 되고, 하나님과 주님도 필요한 것들을 그때그때 주십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흔히 보이는 사람만 부르고 의지하게 됩니 다. 역시 육적인 자요, 인본주의자입니다. 사람은 그저 작은 육적인 쉬운 일은 해 주지만 큰일들은 잘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영혼의 문제 는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고로 사람을 우선권으로 생각하고 찾 지 말고, 처음부터 하나님을 부르고 주님을 불러야 됩니다. 사람을 통해 서 안 될 때 그제야 주님을 부르지 말고, 아예 주님을 불러야 됩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온 세계 모두 주님을 불러야 될 때입니다. 하나 님을 불러야 될 때입니다. 차가 수렁에 깊이 빠졌는데 사람만 불러서는 끌어낼 수 없습니다. 포크레인을 부르고 크레인을 불러야 되지요. 인생들 도 그 깊은 사망과 흑암에 빠져서 사탄이 쥐고 있으니 사람을 불러서 해 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메시아 예수님을 불러야 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과 성령님을 불러야 하늘나라 천국에 갈 수 있 습니다. 인간을 부르고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인간 세상에서는 잘 살겠지 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못 갑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을 부르면 어느 때는 사람을 보내 주기도 하시고, 자연을 통해 돕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그 사람의 정신 가운데 역사하시어 지혜와 용기로 스스로 일어나게 하기도 하시고, 어느 때는 천 사를 보내어 도우시고, 어느 때는 주님이 직접 손을 잡고 이끌어 내 주기 도 하십니다. 오직 주님을 부르면 해결됩니다. 이것이 ‘답’이라고 주님이 말씀하 게 하셨습니다. 선생도 아플 때나 죽음의 위기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가도 록 오직 주님만 불렀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주님은 틀어 버리십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라도 주님은 영이 시니까 어디든지 가십니다. 아무도 선생에게 올 수 없었을 때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부르니까 주 님은 “걱정 마라. 무슨 걱정을 그리하느냐. 너는 나만 불러라. 그러면 내가 걱정하지 않듯이 너도 걱정하지 않게 돼. 나를 부르지 않고 사람만 부르면 행여 그것이 해결되어도 천국이 될 수 없다. 나만 의지하고, 나만 찾고, 나를 믿어 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선생이 해 줄 수 있는 책임 안에서는 나를 믿어 주는 만큼 사명도, 일도 결재해 줍니다. 주님도 그러하십니다. 사탄은 우리가 주님을 부르는 것에 있어서는 감히 건들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르 는데 건들면 주님은 사탄에게 “감히 지옥에 있는 자들이 무슨 권세가 있 다고 방해하느냐. 배설물 같은 사탄아, 왜 나를 부르는 자들을 방해하느 냐.” 하시면서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주님 안에서 강한 미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이 어디를 가도 강하 니까 여러분들 모두 좋지 않습니까? 선생이 정신도, 몸도 약해서 늘 여 러분들을 걱정하게 하면 기쁘겠습니까? 나를 의지하겠어요? 어떤 환경에 서도 강해야 되고, 또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강해야 됩니다. 주님을 불렀는데 응답이 없어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시니 끝까지 굳세 게 해야 됩니다. 자포자기하면 지금껏 수고한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 됩 니다. 최고로 힘들 때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강하지 않으면 누가 자기를 괴롭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큰 운동장을 10바퀴 돌 때, 마지막 9~10바퀴를 돌 때 최고로 힘든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나 어떤 일을 할 때도 마지막 직전에 힘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용기를 내어 해야 승자에 속하여 살게 됩니다. 지면 늘 패자에 속하여 살게 됩니다. 힘든 것이 있으면 자꾸 주님을 불러야 되고 그래도 힘들면 편지해요. 이런 것들을 편지해요. 그리고 교회 목사님에게 말했는데 안 되면 옆의 사람에게 말하고 교단에 말해요. 서로 도우면 됩니다. 혼자 놀지 말고 항상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삼위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각 개성의 사명자들인 우리도 한 덩어리 가 되어야 합니다. 삼위는 하나가 되어 그 엄청난 영의 세계와 육의 세 계, 하늘과 땅을 다스리십니다. 그를 믿는 자들도 이를 따라 한 덩어리가 되어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힘을 받아 상호 존재하고 다스리면서 힘 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는 원인이 많은데, 주님은 그 중 한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 주님이 일하시면 주님이 중심이 되어 세 가지 중에 두 가지를 행하 시고, 나머지는 하나님과 성령님을 각각 증거하여 하나님과 성령님이 역 사하게 하신답니다. - 성령님이 일하시면 성령님이 두 가지를 행하시고, 나머지는 하나님 것 하나, 예수님 것 하나를 증거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이 역사하게 하신답 니다. - 하나님이 나타나 일하시면 두 가지를 하나님이 행하시고, 나머지는 예수님 것과 성령님 것을 증거하여 나타나게 하신답니다. 이와 같이 3분의 2 비율로 일하시고, 나머지는 증거하여 함께하게 하 시니 항상 한 덩어리가 됩니다. 마치 톱니바퀴가 하나 되어 돌아가듯이,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하나 되어 시계가 돌아가듯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일 하십니다. 집안에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있으면 아들이 나가 어떤 일을 할 때 는 아들이 주인이 되어 해야 하니 두 가지를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각 각 증거해 주어 나타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일할 때는 아버지 가 주인이 되어 두 가지를 하고, 나머지는 자녀와 부인도 증거해 주어 같 이 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그같이 하면 상호 일체가 되는 격이라 고 했습니다. 섭리사에서 일하는 모든 자들도 자기가 맡은 것이면 두 가지를 하고, 사명을 맡지 않은 자에게 한 가지씩 사명을 주어 증거해 주고 자랑해 주 며 함께 해야 됩니다. 섭리사 모두 이같이 하면 소외감도 없고, 서로 증 거해 주고 말해 주니 같이 일을 함으로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께 성부, 성자, 성령은 어떻게 하여 그리도 일체가 되시냐고 감탄 하며 그 비밀을 하나라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주님이 이같이 가르쳐 주시며 “너희도 그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만을 나타내고, 상대에게는 일절 말도 안 해 주 고, 일도 안 주고, 자랑도 증거도 안 해 주니까 속상하고, 마음 상하고, 오장육부가 다 뒤집어지기도 하고, 서운하다고 생각하고, 하나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선생과 통하면서 다른 자는 증거해 주지 않으니 속상한 것입니다. 항상 같이 일을 하면서 서로 이해하면 속상하지 않습니다. 그 일의 사역자는 두 가지를 하고, 나머지는 상대와 같이 하면 삼위체와 같이 행 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항상 남편 자랑, 자식 자랑입니다. 자녀도 아버지 자랑, 어머니 자랑입니다. 같이 해야 됩니다. 이제 교회의 사역자들도 모두 그렇게 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 님 자랑, 성령님 자랑, 주님 자랑해야 됩니다. 증거할 때 힘이 오고 능력 이 옵니다. 증거할 때 함께하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거해 줄 때 함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하는 자들이 상대의 약점을 보고 증거해 주지 않고 자기만 나타내니 하나 되지 않은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말씀을 선포했으니 하는지 보겠습니다. 몰랐을 때 는 몰라서 못 했지만 이제 알려 주고 법을 주었으니 안 하면 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서로 증거해 주고 모두 하나 되어 하나 님과 주님의 뜻을 이루는 섭리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