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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09.11.08 (일)

091108 주일말씀 주님의 성찬 예식의 뜻과 의미

선포일
2009.11.08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26장 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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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8일 주일말씀> 주님의 성찬 예식의 뜻과 의미 본 문 마태복음 26장 26-29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성만찬의 뜻과 의미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열두 제자들과 한자리에 모였습 니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셨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은 근심하여 “주여, 저는 아니지요?” 여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기다 리는 자들이 알지 못함으로 악으로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인 나 예수를 파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 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누구인지 모르겠느냐? 지금 떡에다 손 을 대는 자다.” 하셨습니다. 예수를 파는 가룟 유다가 말하기를 “주여, 저는 아니지요?” 여쭈 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하였도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를 앞에 놓고 축복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먼저 떡을 주시면서 “받아먹어라. 이것은 나의 몸이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잔에다가 포도주를 주시면서 “마셔라. 이 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 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제부터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아 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 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으 로 가졌던 성만찬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마치 예정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많은 자들 가운 데, 한 팀 중에 꼭 한 명씩 문제를 일으킵니다. 가룟 유다가 행한 것은 예정된 일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해 놓아서 가룟 유다가 악한 일을 했다면 불의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 니다. 이성 문제, 돈 문제, 불신하는 문제, 혹은 각종 책임을 못하고 실수하 여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경계하고 잘 다뤄야 됩니다. 가룟 유다는 마치 잔칫집에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 다. 예의 없는 짓을 했습니다. 항상 교회에서나, 섭리세계에서나, 어떤 팀에서나, 각 기관에서 예의 없는 짓을 하면 금방 표가 납니다. 모두 의의 옷을 입어 깨끗하니 행실의 옷에 이상이 있으면 금방 표가 나게 됩니다. 꼭 한두 명씩 문제를 일으킵니다.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람들을 이용 하는 자들은 주님이 다 들통 내 버리십니다. 주님은 더 이상 손해가 가지 않도록 자기의 사랑하는 생명들을 위해 말해 주십니다. 그런 자는 가는 곳마다 그같이 하니, 일을 맡기지 말고 자기를 구원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게 해 줘야 됩니다. 주님이 사고가 잘못된 가룟 유다를 알고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 셨듯이, 섭리사에서도 어떤 문제 되는 자가 있을 때 지도자들은 먼저 알 고 더 피해를 받지 않도록 이야기를 해 줍니다. 교단이나, 중고등부·대 학부·청년부·가정국·장년부 중앙의 지도자들은 이제부터 더욱 따르는 자들 중에서 주를 팔 자가 있는지 잘 보고, 또 문제를 일으킬 자가 있는 지 잘 보고 속히 처리해야 됩니다. 그로 인하여 교회도 잘 안 되고, 부서도 잘 안 되고, 그 팀도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세밀히 관찰해야 됩니다. 교회와 부서와 어떤 팀이 발전 하지 않고 힘들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뒤늦 게 회개함으로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선생 앞에도 1년, 2년, 10년이 가도록 회개하지 않다가 지옥 가게 생겼으니 이제 와서 이야기합니다. 늦게 하면 늦게 하는 만큼 형벌이 따 릅니다. 근본으로 회개되었는지 스스로 확인해야 됩니다. 가룟 유다를 통 해 모두에게 교훈했습니다. 이제 성찬식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겠습니다. 성찬식에 대해서는 성경 본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세상이 악함으로 예수님을 불신한 그 시대의 죄를 그냥 놔두면 멸망을 받기에 예수님은 하 나님께 그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택한 민족입니다. 택한 자들이라도 모르면 반대하게 됩니 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예수님을 불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 라엘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보내신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몰랐고, 구약 선 지자들로 하나님이 보낸다고 약속한 메시아가 예수님인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하나님이 나타 나신 것을 몰랐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필요해서 사명자들을 보내면 그 시대는 모르고 배척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이 보낸 사명자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무지가 얼마나 큰 죄를 짓게 하는지 알아야 됩니 다. 얼마나 자신에게 손해가 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깨 닫고 배우는 것입니다. 무지한 만큼 무지하게 손해 갑니다. 모르면 영원히 지옥에 가고 알면 영원히 천국에 가게 됩니다. 몰라서 못 하고, 알아서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안 사람들은 믿고 따랐 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는 무식한 것 같았지만 지혜로웠습니 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니 지혜로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 는 자들보다 뛰어난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보내 신 메시아임을 판단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 시대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인하여 대신 죽어 줘야만 불신한 죄인들의 영혼을 살리게 되므로, 예수님은 모든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이 뜻하신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는 것 이 예정되어 있기에 어떤 연극의 각본대로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성경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팔 자에게 “인자는 기록된 대로 가지만 인자를 파 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제게 좋 을 뻔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아를 몰라보고 악인들의 손에 넘겨주면 성경에 고난의 주로 기록된 대로 가기는 하지만, 인자를 파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그 말씀대로 예수님을 판 후에 괴로워서 자살하여 죽었 습니다. 화가 그 뿐이겠습니까? 그에게는 지옥의 화가 있습니다. 개인이고, 가정이고, 민족이고 주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면 그를 위해 대신 죽어 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환영하고 믿는데 왜, 왜, 왜 죽어 줍니까? 상대가 잘하는데 왜 그를 위해 대신 죽어 줍니까? 정신적 심정의 십자가를 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애인 이나 자식이 말을 잘 듣는데 왜, 왜, 왜 그로 인하여 고통 받습니까? 성경에 주님은 영광으로 오신다고 하였고, 영광으로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리며, 영광으로 만국을 다스린다 고 했습니다. 주님이 지구촌 전체를 다스리셨다면 세상이 얼마나 태평하 고 복을 받고 살았겠습니까? 태평과 평안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가 아니다.” 하면서 복음을 안 받아들인 적이 있습니까? 그 런 자는 주님이 그를 위해 십자가를 져 주셨기 때문에 깨닫고 믿어서 구 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절대 메시아다.” 하고 믿고 산 자들은 예수님이 영광으로 자기에게 오신 것입니다. 선생 역시도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며 부정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고로 주님을 영광의 주로 맞이했습니다. 영광 의 주라고 기록된 대로 주님을 성경대로 모셨습니다. 성경에 ‘고난의 주, 영광의 주’라고 기록된 대로 두 가지 예언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불신자들에게는 ‘고난의 주’로, 믿고 맞은 자들에 게는 ‘영광의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불신하는 자들을 위해 십 자가를 져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불신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는 ‘고난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 시대도 주님은 사명자와 함께 참아 주시며 심정의 십자가를 져 주 시고, 육신을 가진 자를 통하여 이 시대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다. 이 시 대 모두는 예수님께 순종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예수님을 맞아야 됩니 다. 그래야 ‘영광의 주’가 됩니다. 주님을 맞아야 됩니다. 주님은 믿고 따른 제자들 때문에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믿 고 사랑하며 따랐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 고 대신 죽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섭리사는 ‘예수님이 죽으러 오셨다. 성경의 예정대로 십자가에 서 돌아가셨다. 주님이 고통 당하신 것은 예정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 며 모순되게 가르치지 않았고, 그같이 믿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한 곳만 보며 이치에 맞지 않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세 때 모두 주님을 믿고 따르고 일체 되었다면 주님은 절대 십자가를 안 지셨습니다. 인간들의 잘못과 죄로 인하여 메시아가 받아서 는 안 될 고통을 당하셨으니, 주님의 심정을 알고 영광의 주로 모시고 사 랑하면서 그 마음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인간들의 잘못으로 주님이 돌아가셨는데 하늘의 운명으로 돌아가셨다 고 가르칩니다. 주님을 죽인 자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라고 가르 칩니다. 우리 섭리사는 그들이 몰라서 주님을 죽였고,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 죽어 주시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고 가르쳐 주님의 마음을 시원 하게 해 주었습니다. 심정을 모르면 주님의 참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요즘에 기도를 깊이 하는 자들에게도 주님은 “너희 위해 죽어 주었 다. 왜 나의 심정을 모르느냐?” 하시며 그 심정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주님이 죽는 것이 뜻이었다면, 주님은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죽었는데 너희는 왜 괴로워하느냐?” 할 것입니다. 세상이 악함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주님을 배신하고 배척하고 불신했 습니다. 주님은 악인들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내 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 그를 채찍질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너희가 구원을 받으니 그같이 하라.”고 하신 성경말씀이 있습니까? 하 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그같이 했다면 왜 행한 대로 받았겠습니까?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암탉이 병아리 품 듯이 너희를 모으고 품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를 싫어하였도다. 보라. 그 날이 이를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 이 무너짐을 받을 것이다. 너희를 위로할 자가 없을 것이다.” 하셨습니 다. 예정대로 했으면 축복을 해 주셔야지요. 왜 이같이 심판의 말씀을 하 셨겠습니까? 누가 들어도 분별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속 시원히 성경을 풀어 전해야지요. 누가복음 10장 22절을 보면, 주님은 “나의 계시를 받 는 자는 안다.”고 말씀했습니다. (눅 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 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40년이 못 되 어서 주후 70년에 함락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예수님이 돌아 가신 후부터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석에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이 중 에 나를 팔 자가 있다”고 하시며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이래도 주님이 본래부터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성경말씀을 바로 해석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가룟 유다는 지옥 사망으로 간 것입니다. 인자를 팔았으므로 그같이 운명이 돌아가 버렸습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주님이 사명을 주셔서 행하 는 자들을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하듯이 그같이 대한 자들도 동일합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네게 좋았으련만...’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는 자들도 ‘그 육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못한 자들’입니다. 인생 100년 동안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되고, 모든 것을 다 누리고 다 해 봤을지라도 죽은 후에 그 영이 지옥으로 가면 아무것도 아 닙니다. 100년 동안 주님을 믿으면서 고생했어도 죽은 후에 그 영이 천국에 가면 영원히 행복한 자입니다. 지옥에 가는 자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수십억 배 낫습니다. 태어났으니 모두 천국으로 가야 됩니다. 평생 자기의 원수라도 지옥을 겪고 온 자라면 지옥에는 보내고 싶지 않을 만큼 지옥은 영원히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에서 배우고 교육해야 할 것은 꼭 배우고 알아야 됩 니다. 어떻게 해서 성공하고, 어떻게 해서 실패하고, 어떻게 해서 그같이 되었는지 정말 알고 교훈 삼아야 됩니다. 그리고 현실에 꼭 할 일들을 재 촉하며 해야 됩니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현실에서 준비하고 예비하고 살 아야 됩니다. 작은 일이라도 준비하지 않으면 그 일이 닥쳤을 때 못 합니다. 현실 에서 현재 성공하는 삶이 이루어지고, 현실에서 과거에 못한 것을 하는 때를 맞게 되고, 현실에서 미래의 성공을 위한 때가 주어지게 됩니다. 현 실은 미래의 운명을 조종하는 귀한 때입니다. 현실에서 흥청거리면 미래 에도 그 인생은 흥청거리며 끝납니다. 주님은 “중심을 잡아라. 균형을 잡아라.”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은 과거와 미래의 중심’입니다. 전체를 중심해서 중심을 잡아 나가야 됩니 다. 어떤 한 부분을 보고 전체의 중심을 삼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전 체 중심은 전체를 보고 잡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늘 물어보고 허락받고 해야 됩니다. 안 물어보고 하면 ‘죄’라고 했습니다. 섭리사의 갖가지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에게 물어봐야 됩니다. 아직도 선생에게 물어볼 것을 안 묻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중 직을 맡은 자들인데 안 묻고 행합니다. 이는 선생에게 보고하면 문제가 있어 허락하지 않으니,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묻지 않고 거짓말하며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보직에서 즉시 해임됩니다. 문제가 있으니 즉시 사명을 철수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도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어떤 것 하나를 선생에게 허락받으면 그것 한 가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를 합니다. 옆에서 이상하다고 하면 선생에게 허락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들이 이상해서 선생에게 물어봅니다. 내가 한 가지를 허락했다고 말해 주 면, 그들은 “5~6개씩 합니다.”라며 그 행위를 말해 줍니다. 그런 자들 에게는 절대 사명을 맡길 수 없습니다. 달걀 하나 사 오라고 하면 하나만 사 오지, 왜 다섯 개씩 사 옵니까? 달걀 주인을 좋게 하면 됩니까? 섭리사에서 형제는 죽든지 살든지 자기 만 유익하면 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형제에게 돈이 있으면 선생의 이름을 대거나, 각종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기어이 빼 갑니 다. 선생이 늘 참으라고 하니까 그 기회를 이용하여 거짓 행위를 합니다. 요즘도 모사를 써 가면서 섭리사에 돈 있는 자들 찾아다니며 또 그같 이 행하니, 도대체 누구에게 더 고통을 주려고 하는 짓인지 더는 볼 수가 없습니다. 형제가 잘못하면 일곱 번,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그 말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자는 주님이 손을 대 십니다. 선생도 잘못된 자라고 판단합니다. 선생까지 속이니 안 됩니다. 겁 없이 입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형제들에게 공적으로 쓴다고 하면서 부정하게 돈을 빼내 갑니다. 적 은 금액도 아닙니다. 몇 억씩을 그리합니다. 왜 줬냐고 물으면, 선생이 교단에 임무를 준 사람이 섭리 교회를 만든다고 하고, 그같이 하면 선생 도 좋게 될 수 있다고 하여 줬다는 것입니다. 선생을 이용한 사기들 좀 그만 쳐요. 이제는 그냥 안 둡니다. 돈을 준 자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알아보니 모두 다 거짓이었다고 하며, 자기가 돈 준 것이 잘못이라고 자기가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아직도 사 명을 이용하여 형제들의 돈을 빼 갑니까? 불법을 행한 자입니다. 주님은 “불법자는 내게서 물러가라.” 하십니다. 선생에게 물어보지 않고 그같이 행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이름을 이용했습니다. 거짓으로 행하는 자들은 들통 날까 봐 선생에게 묻지 않고 행합니다. 그 사람은 그렇다 해도, 왜 돈을 주는 자는 선생에게 묻지 않 고 합니까? 다른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말씀으로 나가는 것입니 다. 잘못을 끝까지 용서해도 그같이 행하며 계속해서 선생을 이용하니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말씀이 나가는 것입니다. 섭리사는 모두 주님 이 양같이 만들어 놓아서 이리나 염소들에게 정말 이용을 잘 당하니 절대 로 선생의 허락 없이 행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또 합니다. 그 런 자들도 선생의 말을 안 믿는 자입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일을 다 저질러 놓고 편지가 옵니다. 불순종하면 안 됩니다. 최고의 신앙을 지켜 열심히 할 때인데 이같이 하면 됩니까? 그 같이 행하는 자는 안 고치면 평생 그같이 행합니다. 섭리사에 피해를 입 히면 안 됩니다. 더 이상 못 하게 광고해야 됩니다. 교단에서 중직자와 교역자들에게 다 말해 주기 바랍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행하는 자들은 정리를 해야 되겠습니다. 어떤 일을 맡기면 그 일에나 충성해야지, 사명의 권한으로 자기 유익을 챙기면 안 됩니다. 일을 맡길 때 다 서약 받고 맡기는데도 안 됩니다. 행한 대로 대해야 됩니다. 절대 선생이 보는 데서 말하기 전에 믿으면 안 됩니다. 돈을 주는 자들은 돈이 남으니 주는 자들입니다. 교훈을 잘 받아야 됩니 다. 다시 본문 말씀을 하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주시며 “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내 살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떼 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잔을 받으라. 이는 너희를 위해, 만민을 위 해 흘리는 구속의 피다.”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 를 잔에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몸을 제자들을 위해서도, 불신자들을 위해서도 다 내어 주셨습니다. 마치 제물로 드리듯이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 몸과 피가 되어 내 정신으 로 내가 못 한 것을 대신 행하여라. 내가 피로 값을 주어 너희 몸을 샀으 니 이제 너희는 내 것이다. 나는 너희를 위해 죽어 준다. 죽으니 없다. 그리 알라. 이제 내 아버지 나라에 가서 새것으로 난 것을 먹기 전에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때 하늘나라에서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마지막 만찬이면서 거룩하고 성스러운 예식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자 들은 그때 판국으로 보아서 주님이 그같이 말씀하시니 ‘죽으시는구나.’ 깨달았습니다. 그 시대가 주님을 환영하며 영광으로 모시고 세상이 좋은 때 주님이 그같이 말씀하셨으면, 아마 제자들은 “주님, 걱정 말아요.” 했을 것이지만, 이미 판국이 기운 것을 제자들도 알았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시면서 늘 쫓겼습니다. 불신하는 자들은 늘 예수 님을 죽인다고 하며 잡으러 다녔습니다. 성만찬을 할 때의 현실은 극히 혈안 되어 예수님을 잡으러 다니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몰래 제자들과 모 였을 때입니다. 다만 안 잡히고 있을 순간의 때였습니다. 주님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버리고 흩어지고,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온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가 다 시 올 때까지 이 날을 기념하라. 그래야 나를 잊지 않는다. 너희 몸은 내 가 피로 값을 주고, 몸을 주고 산 것을 알고 기념해야 된다. 너희는 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나와 한 혈통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와 한 몸이 되어 나는 너희의 신랑이 되고, 너희는 나의 신부가 되어 사는 것이다.’ 말씀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같이 주님과 제자들은 한 혈통이 되고 사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돌아가신 후, 갖은 환난이 왔지만 제자들은 주님을 불신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복음을 외치며 주님을 증거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자들은 1년에 한 번씩, 혹은 몇 번씩 성찬 예식을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니, 선생이 지난날 행악자들로 인하여 쫓기고 억센 손 에 잡히던 때가 기억납니다.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맛있게 먹어라.” 하고 신중하게 여러 가지 말을 하던 때가 생각납니 다. 어쩜 그리 상징적으로 주님의 십자가 노정을 따라 행했는지 정말 실 감이 납니다.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면서 신중히 이 야기한 후 며칠 있다가 그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역사는 어느 시대든지 안 믿고 불신하면 고난의 역사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것인데 세상의 무지와 악함으로 인하여 본 래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늘 편을 희생시켜서라도 다른 길로 결단코 뜻을 이루십니다. 본래 뜻대로 안 될 때 다른 방법으로, 다른 길로 행하십니다. 그러나 하늘 본래의 뜻대로 못 하게 될 때 인간들에게 많은 손해가 갑니다. 많은 자들이 구원받을 것인데 못 받게 됩니다. 영광으로 가면 많은 자들이 구 원에 참예합니다. 고난으로 가면 많은 자들이 구원에 참예하지 못하게 됩 니다. 또한 믿고 따르는 자들도 고난을 받으면서 주님을 좇아야 되는 어 려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주님은 결국 십자가를 지시고 만민의 고통을 대신하셨습니다. 세상에 서 최고 극형을 받으셨습니다. 세상 죄인들의 것을 다 받고 돌아가셨으니 세상의 가혹한 고통을 극적으로 다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주셨어도 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 뜻 대로 살아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안 믿어도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죽어 주었다고 해서 그냥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을 믿고 따라가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같이 가혹한 최고의 형을 받으셨으니 누구든지, 어떤 죄인 이든지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면 속량되지 않을 죄가 없 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자도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주님을 사랑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피 값과 그 육체가 대신 죽은 값으로 인하여 구 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몰라서 못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 생각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 다. 주님은 그 시대 살인자들이 받는 형을 받으셨고, 최고 죄인들이 받는 형을 받으셨습니다. 만민을 위해 그같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자기 죄를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잔인하게 고통을 당하고, 잔인하게 죽은 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복음을 전하실 때도 죽음의 공포 속에서 늘 쫓기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육신의 고통뿐 아니라 정신의 고통까지 극 적으로 잔인하게 받으셨습니다. 고통을 받아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당한 자만이 압니다. 고통을 받고 맞은 자만이 압니다. 어떠한 사명을 하면서 비슷하게라도 받아 보아야 압 니다. 주님이 얼마나 가혹하게 고통을 받으셨는지, 얼마나 잔인하게 고통 을 받고 죽으셨는지 성경에는 세밀히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 날에 다 드러나리라” 하셨습니다. 오늘은 두 가지 글을 통해 주님의 고통에 대해 말해 주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글은 헝가리 황제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의 궁중 생활 기록 문서 중 개인 소장품 중에서 후대 사람들에게 남기는 글로서 후에 발견된 기록입니다. 죽기 전에 자신을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을 한 번만이라도 보여 달라며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두 번째 글은 이태리 마리아 발또르다의 글입니다. 그녀는 37세부터 27년간 죽기까지 침대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죽기 전에 예수님 께서 나타나 4년 동안 환상을 보여 주어 글을 기록했는데, 기록한 것이 150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에게 주님이 보여 주시고 말씀하신 것을 핵심만 들어 보겠 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주님이 섭리사 한 목사를 통해 보내어 읽게 하였습니다. 모두 말해 주라고 했습니다. 주님에 대해 알아야 그 심정 알아주지, 그냥은 모릅니다. 오늘 다시 들어 보고 주님의 고통을 알고 심정을 알기 바랍니다. 1. 첫 번째 예수님 십자가 고난의 체험의 글 이 글은 헝가리 황제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의 궁중 생활 기록문서 중 개인 소장품 중에서 후대 사람에게 남기는 것으로 발견된 기록이다. (1207~1231년) 그는 어느 날 지병으로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주님이 고난 당하신 십 자가 앞에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묵상을 하다가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자 기 자신을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을 만나 뵙기를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가야바 대제사장의 뒤뜰에서 골고 다 언덕까지의 과정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 주님 : 그때 나를 둘러선 빌라도의 군병은 150명이었고, 그중에서 내 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 끌고 간 군병은 23명이었다. 나를 사형 집행 할 때 혹 민중들이나 제자들에 의해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대비하여 무장 군병 83명을 추가로 주위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내 머리는 150번이나 주먹으로 크게 맞았고, 180번이나 발 길질 당했으며, 양쪽 어깨는 채찍으로 80번이나 맞았으며, 내 머리칼은 끈처럼 꼬인 채로 개처럼 질질 끌려 다녔으며, 나는 24번이나 심문을 당 하느라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침 세례를 받았고, 11번이나 채찍으로 머리를 맞았다. 나는 낮 12시에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머리가 찢어진 채 십자가에 매 달렸다. 특수 채찍으로 뼈가 부서질 듯이 100번을 맞았으며, 머리에 씌 워진 강철 같은 가시관은 가시가 7~8cm나 되었으며, 그 가시관은 너무 나 아파서 신 포도주를 머금지 못하고 3시에 운명하였다. 가시관의 가시 숫자는 72개였는데 머리에 박힌 상처는 110개인 이유 를 물으니, 이 가시관을 한번 벗겼다가 다시 씌웠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박은 못은 20cm로 그중 하나가 산타클로치인 예루살렘 대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2. 두 번째 예수님 십자가 고난의 체험의 글 마리아 발또르다(Maria Valtorta) : 1897년 이태리 가제르카에서 출생. 37세부터 죽기까지 27년간 침대에서 생활했다. 예수께서 나타나 영화처럼 보여 주신 환상을 4년 동안 기록한 것이 15000페이지가 넘는 다고 한다. 그가 묵상 중에 받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환상 중 일부를 소개한다. 네 번째 집행인은 머리가 둥글고 팽팽한 1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기 다란 못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며 나무에 뚫어 놓은 구멍이 손목 관절과 꼭 맞는지를 확인한다. 사나이는 쇠망치를 들어 올려 손목 끝에 세워 놓 은 못을 향해 일격을 가한다. 눈을 감고 있는 예수님은 극심한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며 손바닥을 감아쥐고 눈물이 흥건한 눈을 뜬다. 이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다. 못은 근육과 맥과 신경을 찢고 뼈를 부 수고 관통한다. 이 모습을 보고 옆에 서 있던 어머니 마리아는 머리를 감 싸 쥐고 몸을 웅크린다. 예수님은 너무 아파 신음하다가 어머니를 괴롭히 지 않기 위해 그 아픔을 입으로 삼키며 다시는 비명을 지르시지 않는다. 당시의 태형은 십자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미리 때리는 방편으로 로마 군병이 때릴 때도 있지만, 이집트의 가장 포악한 노예 6명을 선출 하여 그들의 울분을 마음껏 채찍으로 풀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채찍에 맞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죽는 것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들 6 명이 교대로 술을 마시며 지칠 때까지 때렸다. - 1차 : 두 명이 탄력 있는 흰 가죽 채찍으로 피범벅이 될 때까지 때 리다 지치면, - 2차 : 다른 두 명이 딱딱한 파칠라우스 채찍으로 때리는데, 끝에 뼈가 달려 있어서 때릴 때 살점이 튀고 피가 튀었다. 그들도 지치면, - 3차 : 마지막 두 명이 끝에 갈고리처럼 동물의 뼈 같은 날카로운 것이 달려 있는 채찍으로 때릴 때 옆구리, 등허리, 이마가 깊숙이 패어 피범벅이 되고 녹초가 되는데 이때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지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맞는 감각이 없을 때까지 때려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였다. 모두 잘 들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위해 이같이 죽어 주 셨습니다. 그러니 어떤 죄든, 악이든 모든 잘못을 다 회개하고 다시는 죄 를 짓지 말아야 주님이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십니다. 주님은 “자꾸 죄를 짓는 자는 현재도 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자들은 주님께 욕을 보이는 자들이라 고 했습니다. 그런 자가 어찌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까? 주님을 괴 롭히는 대상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을 때는 쉽게 좋아서 지었지만, 죄를 없앨 때는 주님께서 죽음의 고통을 받아 주시고 죄를 지 은 자가 회개해야 됩니다. 죄는 용서를 받아도 대가가 따릅니다. <중요 : 성찬 예식의 의미> 주님의 이 같은 고통을 알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깨 닫고 알라고 성찬식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 예식은 신성해야 됩니다. ‘성찬식의 뜻과 의미도 모르면서 성찬식에 임하면 죄를 먹고 마시는 격 이 된다.’고 했습니다. 꺼림이 있으면 참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알고 준 비하고 참예하면 더욱 거룩한 자, 깨끗하고 성스러운 자가 됩니다. 주님이 피로 값을 주고 그 몸을 아낌없이 내어 주심으로 자기가 구원 받은 것을 믿고, 또 자기 몸을 주님의 몸과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이 예식 에 참예하기 바랍니다. 섭리사는 다음 주일(11월 15일)에 성찬식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왜 안 했을까요? 주님이 희생하시기 전에는 성찬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 시대도 시대가 악함으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불신하고 복 음을 불신했습니다. 결국 주님은 또 십자가를 지신 셈이 됩니다. 주님은 늘 “이 시대에 나의 심정을 전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지난 30년 동안 마치 주님의 3년 노정과 같이 우리를 통해 복음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섭리역사는 주님의 견본 노정이기도 합니다. 주님 이 그동안 우리를 보고 성찬 예식을 하라고 하셨으면 벌써 하지 않았겠습 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금년도부터 성찬 예식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역사는 시대의 복음을 가지고 주님의 몸과 마음이 되어 뛰어왔습 니다. 주님이 역사해 주셨습니다. 섭리역사는 주님이 행하신 역사이며, 하나님이 시작한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7년, 7년, 7년을 마치고 섭리사에 시대의 환난과 핍박이 몰려 왔고, 복음에 대한 불신과 악평들이 와 우리를 막았습니다. 결국 우리도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듯이 심정의 고통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 로 인하여 복음의 주인인 구세주 예수님은 시대의 구원을 위하여 선생부 터 십자가의 고통을 받게 하고 용서의 길을 열어 주어 주님을 믿게 했습 니다. 모세 때도 그러했습니다. 주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림을 받아야 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시대에 모 세의 노정 역사와 같이 역사를 펴셨습니다. 야곱 노정, 요셉 노정, 천주 교 노정, 기독교 노정, 섭리사 노정, 주님이 가신 노정은 모두 십자가 길 을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섭리사가 하나님의 참된 역사, 주님의 역사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죄인들의 죄는 의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해결하며 갔습 니다. 우리가 이같이 왔기에 이야기하면 잘 알 것입니다. 전형 노정, 혹 은 본보기 노정, 혹은 주님의 노정을 개인도, 시대의 사명자들도 맞추어 갑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몸을 내어 주시고 3일 후에 다시 부활 하시어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신 후부터 주님은 영체의 몸으로 나타나 제자들과 복음을 펴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 주시어 제자들에게 불을 붙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땅에 계실 때 복 음의 불이 붙어 역사하셨듯이,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제자들이 성령, 곧 하나님의 신을 받고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활 복음이었습니다. 알고 믿고, 알고 증거해야 됩니다. 세계 모든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알고 보면 하나님의 중심의 뜻을 두고 강물처럼 흘러왔습니다. 하지만 인 간이 책임을 못함으로 본래의 뜻대로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 들이 고난을 받고 희생함으로 기어코 뜻을 이루고 마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지금까지 펼쳐져 왔습니다. 우리는 성찬 예식의 뜻을 잘 알고 신성하고 거룩하게 예식을 행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왜 성찬식을 하는지 알았습니까? 모르는 자들은 ‘왜 이제야 성찬식을 하지?’ 합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 어련히 알고 지휘 하시겠습니까? 몇 주 동안 주님으로부터 성찬 예식에 대해 눈물겹게 말씀을 들었습 니다. 주님은 “시대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너희들도 꼭 성찬식을 해야 된다. 너희 신부들의 성찬식을 받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이 역사를 알고 시작할 때 주님께 동시성 역사를 배우면서 십 자가의 고난에 대하여 이미 알았습니다. 섭리역사를 시작할 때부터 복음 으로 인한 환난과 핍박이 가해졌습니다. 무지하니까 반대한 것입니다. 사 탄과 마귀가 역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원수는 사탄이요, 마귀 요, 귀신입니다. 사탄은 불신자들을 통해 역사하고 반대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항상 함께 모으고 헤치지 않는 자들이 주님의 뜻을 알 고 행하는 자들을 반대했고 불신했습니다. 사탄은 그들을 통해 선수 칩니 다. 그러나 우리는 환난과 핍박을 받아도 오직 주님만 섬겨 왔습니다. 우 리를 핍박하고 반대한 자들은 우리들같이 주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 자들 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형식으로 교회에 다녔든지, 혹은 다니지도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온 세계로 이 복음을 전해 주어서 어디를 가나 ‘주님. 주 님.’ 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님을 잘 가르쳐 주고 깊이 가르쳐 주니 주님만 위해 살겠다는 신앙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그냥 주님으 로 부르기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영원한 신랑’으로 주님을 섬기고 살게 해 주었습니다. 신부 입장의 마음과 정신을 갖도록 근본적으로 주님을 마 음에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아예 그같이 신 앙을 넣어 주었습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주님을 보통으로 가르쳐 주고 보통으로 사랑하면 주님도 우리를 이같 이 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과 보통으로 교통하고 보통으로 교제해서는 주님을 그저 믿기만 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 애인, 부인, 남편, 형제,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좋아하고 사랑할 수 없으며 주님을 신랑 으로 삼고 신앙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극적으로 좋아 해야 주님께 인정받고, 주님이 신부 취급을 해 주고, 믿는 자들도 주님을 신랑같이 모시고 살게 됩니다. 세상의 남녀 사이도 보통 가까워서는 자기 신부나 신랑으로 대하지 못합니다. 자기 신부고, 신랑인데 보통으로 대한다면 그를 위해 자기 삶 을 살 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주님을 제대로 가르쳐야 세상 물질과 세상 사람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며 최고 신랑으로 삼고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 그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는 못 합니다. 선생도 처음 교회에 다닐 때, 그냥 예수님을 가까이 대할 때는 주님 을 보고 ‘친구 같다.’, 혹은 ‘형제 같다.’ 여기며 그 정도에서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기도 깊이 하고 주님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하면서 살게 되니 주님을 만날 때마다 늘 “주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도 주 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이 나를 대하는 것을 보니 보통으로 나를 대하는 것 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선생도 더욱 주님을 보통을 넘어서 대하기 시작했 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눈치를 보니 아주 나를 키워 애인으로 만들어 쓰 려고 하는 마음을 알았습니다. 기도를 깊이 하면 꿈에나 환상 가운데 주님이 나타나셔서 나를 대하 시는데 주님이 짝사랑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계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 주님은 나를 애인같이 대하시고 자랑하시고 칭찬 해 주셨습니다. 나는 너무 좋아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너 무 주님을 사랑하니 ‘주님을 좋아하다가 결혼도 못 하는 거 아냐?’ 하 고 고민도 했습니다. 세상에 그 좋은 여자와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주님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그런 자가 많으니 서로 대화도 하고, 또 주님 곧 오신다고 할 만하지요. 정말 선생 은 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다가 주님의 진실한 마음으로 인하여 주님과 사 랑에 빠졌습니다. 그때는 주님이 집을 지어 주지도 않으셨고, 월명동 개 발을 해 주신 때도 아니었습니다. 선생은 주님과 애인이 되어 살았습니 다. 그때부터 주님의 뜻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기대만큼 해 드리지 못했습 니다. 선생이 타 종교의 한 여자를 짝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도 목숨 걸고 사랑했는데 그 여자는 나의 사랑을 몰라주었습니다. 내가 주님에 대해 가르쳐 줘도 그 여자는 자기 종교 지도자를 주님보다 더 사 랑하고, 크게 보고, 메시아로 보았습니다. 나는 그 여자를 3년이나 쫓아다니며 물심양면으로 살폈습니다. 그야 말로 좋은 것이 있으면 모두 다 주고 싶었습니다. 그 여자가 받기만 한다 면 다 해 줘도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뭘 해 줘도 잘 받 지 않았습니다. 다른 자가 해 주는 것은 달갑게 잘 받는데 내가 해 주는 것은 잘 받지도 않고, 받아도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사랑으로 받지 않고 도리 상 당연히 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 내 심정을 말해 주면 좋겠는데 정말 애간장이 탔습니다. 주님만 이 메시아라고 그렇게도 성경을 풀어 주면서 가르쳐 줘도 안 믿었습니다. 그녀의 환상에 내가 백마를 타고 오는 것을 보았고, 해가 자기에게 떨어지는 꿈도 꾸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니 주님을 상징하 여 보여 준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나타나 보여 준 것이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믿지 않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결국 그 여자 는 이미 약혼하여 사랑하고 있는 다른 남자에게 가서 결혼했습니다. 그 남자는 폐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선생은 난생 처음 사랑의 큰 충격을 받 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기도 중에 나타나시어 “네가 그 여자를 그렇게 사랑해도 그 여자가 네 심정 모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듯이, 내가 인간들 을 그렇게도 사랑하여 복음의 역사를 시작했는데 자기 좋은 대로만 사니 나는 너와 같이 짝사랑으로 끝나고 사람들은 세상과 하나 되고 끝났다. 뿐만 아니라 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내가 짝사랑하게 두고 나름대 로 신앙의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목숨 걸고 사랑 하는 자만 알게 된다. 너도 내가 그렇게도 사랑한다. 나는 네가 나를 사 랑하는 것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데 그 심정 모르고 나를 대하면 너도 내 가 짝사랑하는 자로 끝나고, 세상에 속한 자가 되어 세상 여자를 사랑하 다가 끝난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짝사랑의 한을 풀어 달라. 나도 너의 한을 풀어 주겠다. 나를 극히 사랑하고 내 말을 순종하여 지켜라.” 하셨습니다. 그때 선생 은 주님의 뜻과 심정을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누구나 짝사랑의 충격과 한은 자기가 사랑했던 자보다 훨씬 더 이상 적인 자를 만나 열렬히 사랑할 때 풀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향한 짝사랑의 충격과 전자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한을 섭리사로, 나로, 우리들 로 푸셨습니다. 고로 섭리사는 주님을 신랑으로 삼고 예술과 말씀의 불을 붙여 왔던 것입니다. 섭리사는 주님의 짝사랑의 한을 풀어 주며 지금까지 왔고, 하나님의 사랑의 한도 풀며 왔습니다. 선생도 짝사랑의 충격을 섭리사에서 주님의 소원을 풀어 줌으로 풀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자들에게 말씀하 신 대로 주님을 최우선 순위로 사랑하며 살지 않는 자들은 다 주님이 짝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선생은 그때 그 같은 일을 겪고 주님을 위해 평생 살겠고, 또 수만 명씩 전도하여 나와 같이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 국 30년 동안 그같이 했습니다. 복음으로 그동안 주님의 짝사랑의 한을 풀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주님은 예전 역사에서 받은 충격을 섭리사에서 푸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더 열심히 해야 됩니다. 섭리사 사연이 깊습니다. 주님의 짝사랑 한을 풀어 주니까 때가 되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때를 맞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이니 특히 주님의 때를 알도록 말씀해 주시며 신앙의 잠에 서 깨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신부의 신앙을 30년 동안 해 오게 했으니 얼마나 잘한 일입니 까? 주님만을 위해 산다고 하는 자들은 정말 위대한 자들입니다. 이왕이 면 지난날이고 현재고 깨끗이 살면서 주님의 신부라고 하면 주님이 얼마 나 좋겠습니까? 만왕의 왕 주님 앞에 떳떳한 신부가 되어야 됩니다. 이방인들보다도 더하게 이성으로 범죄 하며 살고 와서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자들을 보면 시험에 듭니다. 주님 앞에 깨끗한 사랑의 제물이 되어야 됩 니다. 제물이란, 먼저 자신을 주님께 흠 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선생은 먼저 선생 자신이 주님의 신부가 되어 살고, 따르는 자들도 주님의 신부 가 되게 했습니다. 주님은 계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섭리는 너희가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이다. 내가 이같이 되게 하기까지 얼마나 너희와 함 께했는지 아느냐? 다 내가 해 왔다.” 하셨습니다. 30년 동안 수만 번의 예술로 하나님과 주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주님 이 이전 역사에서 받았던 짝사랑의 충격을 다 없애겠다고 결심하고 지금 까지 해 왔습니다. 이제 이 같은 전통의 하늘 뜻을 더욱 빛내면서 가야 됩니다.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여야 주님만 사랑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감동이 됩니다. 좋아서 주님을 따라다니게 해야 됩니다. 요즘 섭리사의 어떤 자에게 주님이 나타나 대화하시면서 “너를 멀리 서 쳐다보다가 내 마음에 안 차서 보고 싶어 대화하려고 가까이 왔다.” 하셨답니다. 이에 그 사람은 “주님, 정말이에요? 정말이면 그 말을 믿게 해 줘요.” 하니, 순간 주님이 사라지셨답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충격 받고서 계속 기도를 했답니다. 의심해서 잘못 했다고 다시 와 달라고 기도하니, 주님이 옆에서 “울지 마라. 옆에 있 다. 네가 안 보이게만 한 것이야. 내 심정의 사실을 증명하려고... 맞지? 내가 보고 싶어서 사랑하니까 온 것을 이제 믿겠지?” 하셨답니다. 그래 서 “예. 예. 믿겠습니다.” 했답니다. 주님은 “섭리의 다른 사람들도 모 두 너와 같이 그러하다.” 말씀하시면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 다. 그날 계시를 잔뜩 받아서 내게 보내왔고, 선생은 그것을 다 읽느라고 눈이 피곤했습니다. 제발 주님 심정 몰라주어 주님이 오래도록 계시하게 하지 말아요. 긴긴 대화, 긴긴 계시 확인하다가 주님이 선생에게 맡긴 섭 리사의 일과 책임을 다 못 합니다. 섭리사에 자기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과 대화한다고 하는 자들이 매일 계시를 받아 보내니 끝이 없습니다. 이제 선생이 답장을 안 보내도 잘못되어 답장 안 한다고 생각 말고, 섭리의 다 른 일 하느라 못 봐서 그러니 그리 알기 바랍니다. 끝이 없습니다. 이제 주님과 의논하며 한정된 자들의 것만 받으려고 합니다. 특히 바쁘니 짧은 것만 결재하겠습니다. 어떤 계시는 주일말씀보 다 훨씬 더 깁니다. 개인들이 각각 한 번에 20장, 15장, 10장 받은 것 을 일주일 동안 합하여 보내면 엄청납니다. 개인 것이 우리 섭리세계로 나간 것보다 더 많습니다. 주님이 개인에게 그같이 길게 계시하는 자들이 소소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개인 지식이나 지혜나 자기 의지로 받는 것이나, 협조 영 이 주는 계시나, 일반적으로 성령으로 감동되어 깨닫는 것이나, 은혜로 깨닫는 내용은 너무 평범하니까 설명 없이 답이 안 갑니다. 성령 시대라 거의 모두 영적 체험을 하며 주님의 마음이 깨달아집니다. 사람마다 뜻이 있어 주님께서 역사하시어 깨달으니 끝이 없이 많습니 다. 그것을 다 써 보내면 다 못 봅니다. 눈이 피곤해서 돋보기도 안 통하 고, 아무리 글씨를 크게 해서 보내도 온종일 읽다 보면 안 보입니다. 시 간 있으면 다 봐 주겠는데 한계를 넘었습니다. 계시받는 자들은 꼭 보낼 것과 보내지 않을 것을 알 것입니다. 또 선 생의 심정을 알면 주님께 간단히 달라고 할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확인해 주어 간증케 하면 좋겠습니다. 계시를 보낸 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 자기가 계시받은 것들을 컴퓨터 열어서 계산해 봐요. 본인도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와 같이 섭리사 온 세계 각 나라에서 몇 명씩 계시를 확인해 달라고 온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봐요. 선생도 말씀 받아야 되고 기타 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성찬 예식을 잘 준비하고, 대상자들은 기도하고 준비하기 바 랍니다. 지도자들은 새벽예배 때 성찬식에 대해 더 가르쳐 주기 바랍니 다.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전지전능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성찬의 예식에 참예하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