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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09.11.15 (일)

091115 주일말씀 영과 육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선포일
2009.11.15 (일)
성경 본문
빌립보서 4장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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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5일 주일말씀> 영과 육, 불가능한 것이 없다 영과 육,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본 문 빌립보서 4장 12-13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인생과 삶에 대해서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현실과 미래, 그리고 영원한 삶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며 “나의 방법대로 살면 쉽다. 내 길은 쉽고 어렵지 않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마 11:29-30). 예수님도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구 못지않게 환난과 고난을 당하시 며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는 고통까지 당하시면서도 다 이겨 나가셨습니 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것과 개념과 생각이 다른 구시대 종교인들은 예수 님을 막고 반대하며 각종으로 예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억울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포기하거나, 중단하거나, 낙심하지 않으시고 매일 열심으로 하던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청중들 앞에서 몸소 실천하시며 모 두 보게 했습니다. 이론에서 끝나지 않고 날마다 행하셨습니다. 형제를 진정 사랑하는 것도, 불쌍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도 모두 몸소 행하며 사셨습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 다. 그로 인하여 삶의 어려움을 겪는 자들이 주님을 따라 행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자기 주관권의 삶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실천하는 자만이 삶 의 사망권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실천의 삶, 행동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인생들이 행동적이 고 생명력 있는 삶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말씀과 영원한 세계,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받아들이며, 하나님과 주님을 모시 고 존경하고 존귀히 여기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니 정신세계도, 영의 생각도, 영도 거듭나게 되고 새롭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지식과 지혜와 재능의 신이 강림하였고, 예수님은 인간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육의 몸이 되어 실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병든 자를 고쳐 주듯, 죽은 자를 살리듯 인생의 심령적인 것과 육적인 것들을 고쳐 주고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육신이 죽은 자를 살려 주시면서 “너희 영도, 육의 삶도 이같이 사망의 세계로 가 죽은 몸인데 살려 놓았다. 이제는 내 말씀 대로 살아야 다시 죽지 않는다.” 하시며 그 핵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몸소 보여 주시면서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쉽게 가르쳐 주셨 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른 자들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이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과 뜻대로 살게 해 주셨고, 그 영혼은 하나님 같 은 마음과 모습으로 변화되고 하늘나라의 형상과 형체로 변화되게 하여 능히 천국으로 들어가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육신이 잘되고 형통한다.’고 해서 당장 삶이 변하여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고, 명예와 권세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 니다. 하나님의 뜻을 두고 변하여 형통하게 사는 삶을 뜻하는 것이었습니 다. 그러므로 누가 보아도 육적으로는 삶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 만 육의 행실이 의의 삶으로 변하고, 영이 하늘나라의 형상으로 변하여 영원히 하늘나라 천국으로 들어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며 말씀하시고 행하시며, 또 사명자들을 통해 행하게 하십니다. 그 복음을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을 도우시며 그같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받아쓰고 있는 새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 주셨 습니다. 모두 귀를 기울이고 생명의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 인간은 자기 스스로 할 일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스스로 능히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셨다. 식물들이나 동물들이 스스로 존재하며, 자기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 조금 더 자세히 보아라. 식물들이 얼마나 강하고 굳건하고 힘 있게 존재하느냐? 저 바위 절벽에 어린 씨앗이 떨어져 스스로 자라나 거목이 되고, 가뭄과 추위를 이기며, 퇴비를 주는 자가 없어도 그 얼마나 싱싱하 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존재하고 있느냐? 동물들을 보아라. 영하 20~30도의 혹독한 추위에서 눈이 쌓여 한동 안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어도, 가뭄이 들어 물을 제대로 못 먹어도 견 디고 사는 것을 보아라. 창조주가 스스로 견디고 이기고 살도록 아예 창 조해 놓았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그보다 훨씬 강하고 위대한 존재로 창조했다. 고로 추위도 더위도 이기고, 70일 동안 음식과 물을 못 먹어도 견디고, 못 입어도 참고, 환경이 나빠도 이기고, 애가 타도 견디고 이기며 살도록 창조되었다. 창조자가 아예 창조할 때부터 자력으로 이기도록 창조하셨 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아플 때 자기 영의 능력과 정신의 힘으로 스스로 이기고 고칠 수도 있게 창조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스스로 능히 견디며 이기려고 마음먹고 행해야 된다. 마음이 약해서 어려움을 못 이기고 쓰러 지는 것이다. 모두 내 말을 깨닫고 어떤 환경에서도 강하게 견디며 살아 보아라.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지혜와 지식의 눈을 떠서 생각해 보니, 인간이 스스로 행하여 살 수 있게 창조해 놓으신 그 실상에 대하여 놀랍게도 많 이 알 수 있었습니다. 영웅이었던 칭기즈칸이나 나폴레옹은 하나님을 섬기고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불가능이란 없다.’ 하면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며 살았습니다. 그만큼 자력을 쓰면서 살았기에 영웅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힘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에 게 영웅 같은 정신을 넣어 주고, 그들도 그같이 살게 했습니다. 그러니 전쟁에서 그 정신으로 무장한 군사들을 당할 수가 없었고, 그 강한 행동 을 당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을 보면 자력에 의하여 민족을 세우고 다스려 나갔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메시아를 믿지 않고서는 도저 히 사는 것이 불가능하고, 아무 일도 못 하고, 존재할 수가 없다면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찾고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 믿어도 살 수 있고, 부자도 되고, 명예도 얻고, 부귀영화도 누리고, 주권을 행사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에게 “현실 에서 사는 것을 볼 때 너희와 우리가 특별히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 면서 믿는 자들로 할 말을 잃게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도 더 잘되고, 잘 누리고 사는 자들의 말에 호응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 믿는 자들은 돈, 명예, 사랑, 권세에만 몰두하 기 때문에 잘되는 것이 아주 당연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미래를 보았을 때는 하늘나라에 이름도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위해, 영을 위해 사니 육에 속해서만 사는 자들과 비교가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누구든지 자력에 의해서 능히 살아가도 록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은 자력에 의하여 자동기계와 같이 엄청난 일을 합니다. 포크레인, 크레인, 자동차들도 자동화해 놓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을 합니다. 차는 하루 천 리를 달려도 피곤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 앉아서 손과 발을 까딱거리며 편히 가는 사람이 정말 피곤하다고 합니다. 포크레인은 온종일 땅을 파내는 작업을 합니다. 월명동에서나 공사장에서 보았지요? 온종일 땅을 파내고 밤에 또 해도 피곤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포크레인에 타서 발만 까딱거리며 양손만 움직여 주었는데 도 피곤하여 코피가 나고 몸살이 나고 야단입니다. 사람이 왜 기계를 그렇게 강하고 힘 있고 튼튼하게 만들었겠습니까? 다 알지 않습니까? 사람 편하라고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람 이 힘들지 않도록, 사람이 유익하도록 그같이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 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인생들을 창조하실 때 인간 스스로 해야 될 일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강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 니다. 하나님을 믿으나, 안 믿으나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으로서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차를 만들 때 어느 차든지 그 차에 해당되는 엔진을 넣어 주고, 그 차에 해당되는 만큼 기능을 만들어 내보냅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로 그 사람에 해당되는 대로 만들어 내보내 셨습니다. 사명대로 능히 감당하도록 정신과 육신을 만들어 내보내셨습니 다. 하나님과 주님이 항상 가담하지 않으셔도 인간 스스로 능히 상상 못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하면 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모두 신앙의 영웅, 삶의 영웅이 되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왜 저 사람은 하나님도 안 믿는데 잘되고 엄청난 일을 하지?’ 하며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인간으 로서 불가능한 것이 없을 정도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쳐다보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쳐다보면서 가만히 있는 자들이 믿는 자들일수록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대로 더 영웅같이 살아야 됩니다. 인간으로서 잘 먹고, 잘 입고, 명예와 권세를 가지고, 영웅과 스타가 되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같이 축복하여 창조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생육하고 번성하며 만물까지 다스 려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막연히 하나님과 주님만 쳐다보지 말고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섭리사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쫓기며 무서워 했지요? 과거에도 그랬는데 현재도 그렇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역사 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만 역사하셔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죽음 을 내걸고 했고, 우리는 죽음을 내걸고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핍박을 당해도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며 그냥 왔기 때문입니 다. 수만의 무리가 일체 되어 그들이 하듯이 해 봐요. 게임이 되겠습니 까? 어린아이와 어른 격이지요.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인간에게는 그만큼 자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 때도 똑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자력을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면 다윗같이 이깁니다. 다윗은 하늘 편이었고, 전쟁 때 목숨 다해 하 나님을 의지하며 자력을 다해 싸웠기에 이긴 것입니다. 자기 자력으로 할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면 못 이깁니다. 왜요? 인간의 책 임을 하지 않고 행하였기에 안 됩니다. 인간의 책임이 얼마나 큰 위력과 세력인지 압니까? 인간의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주님을 불러 봐요. 주님은 약속대로 함께하십니다. 역사해 주 십니다. 그런데 결국 패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스스 로 행하도록 절대적 자력을 주셨는데 그 자력의 법도를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은혜를 받고 살아왔는데, 왜 신앙 에서 패하고 넘어지고 실패자가 되었습니까? 주님께 간구함으로 주님이 함께해 주셨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 님이 함께하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인 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승리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이 붙 잡아 주실 때만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런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누가 봐도 은혜를 받았고, 성령의 불도 받았고, 그가 말씀을 전할 때 참 은혜로웠는데 그 사람의 신앙이 넘 어지고 존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은혜가 식었다.’ 생각하고 맙니다. 혹은 ‘그렇게 은혜롭게 살던 사람이었는데 이상하다. 어떻게 그 렇게 됐지?’ 하며 이해가 안 되기도 했습니다. 자기 자력의 능력, 영적 능력, 정신적 능력, 육적 능력, 행동적 능력, 잠재력을 가지고 자기 책임 을 다하지 못하고, 스스로 할 일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새벽에 기도할 때 ‘자력(自力)’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서 “자기 스스로 존재하도록 자력의 능력을 실행하고, 내 능력과 은혜를 받 아 함께 해야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두 잘 알고 이해했습니까? 아멘. 할렐루야!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행동의 능력과 자력에 대하여 속 시원하게 깨닫고 알아야 주님이 말씀하신 보람이 있고 주님도 속이 시원하다고 하 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를 의지하지 않고 극적으 로 행하듯 모두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의 자력을 발하여 영웅적인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 신앙 생활을 할 때는 자신이 알아서 실천을 잘하다가 점점 하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께 미루고, 선생에게 미루고, 알아서 해 줄 것으로만 믿고 사니까 문제입니다. 처음에 신앙을 시작할 때는 자력의 불이 붙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이 식어 자기는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 님만 부르니까 약해진 것입니다. 자력의 능력, 정신의 능력, 행동의 능력, 영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 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받아야 됩니다. 이는 절대적인 이론이 요, 실제요, 주님의 말씀입니다. 자기 책임을 못 하여 자기 변화가 안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마치 씻지 않고 헌 옷 위에 새 옷을 입은 격 이 됩니다. 새 옷은 입었으나 냄새가 나서 이상하다고 합니다. 은혜는 받 고 성령도 받았는데 냄새가 납니다. 지극히 인간의 냄새가 납니다. 자기 자력의 능력을 행치 않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만 받은 자는 자기 마음 그릇에 찬물이 있는데 거기에 뜨거운 물을 받은 격이라서 금방 식어 버립니다. 마음이 식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뜨겁게 자력의 역사를 일으켜야 됩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께서 그 심정을 말해 주는 자들은 정말 깨끗하고 흠이 없겠다. 육과 영과 그 마음이 흠이 없겠다. 그러니까 주님이 그 심 정을 말씀해 주시는 것 아니야?’ 생각하게 됩니다. 맞아요. 그러나 다는 아닙니다. 주님이 어떤 사람과 대화 중에 “너 아직 회개가 안 되었구나. 아직 도 죄가 있다.”고 말씀하시면, 그 사람은 그 내용과 함께 선생에게 편지 를 보내옵니다. 주님께 왜 그런 자들에게 계시를 주시고 대화하셨냐고 여 쭈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 뜻이 있으면 악인에게도 역사하고, 선인에게도 역사한다. 마음의 조 건이 되어 있으니 대화하는 것이다. 또한 육신의 조건이 안 되어 있어도 마음, 정신, 영의 조건이 되어 있으면 대화한다. 만일 다 깨끗하면 다 통 하고, 행실의 대화도 하게 된다. 가령 네가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너를 불러서 무엇을 물었다고 하 자. 그런데 그 사람을 보니 어떤 문제가 있거나, 혹은 이성 문제도 있거 나, 혹은 교회에도 잘 안 나오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네가 지나갈 때 너 를 부르고 무엇을 묻는다면 그냥 지나가겠느냐? 대화해야 할 조건이 되 니 대화하고, 혹은 나의 의 안에서 필요하면 대화하는 것이다. 계시받는 자들도 인격과 행실 등 영혼이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갖춘 것이 아니다. 답답해도 대화해 주고, 할 일 못 했어도 대화해 주는 자들 이 있다. 그런 자들은 자기가 닦아야 하고 고쳐야 한다. 사명을 받은 자도 말을 거칠게 하고, 인상 쓰고, 또 인격이 안 된 자 도 있고, 싸우고 다투기도 한다. 은혜를 못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사 명을 못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자기 육신의 행실과 말과 정신이 변화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을 보면 흔히 ‘시험에 든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나도 시험 든다고 말할 정도다. 모두 그런 자들을 보고 시험에 들지 말아라. 내 말을 듣고 ‘이래서 그렇구나.’ 생각해야 한다. 그로 인하여 시험에 들고 신앙이 파선되면 어찌하냐? 자기만 손해가 아니냐? 기도해 주어라. 먼저 된 자가 빛과 소 금같이 본을 보이며 행케 해 주어라. 이 세상에서 육신도, 마음도, 영혼 도 다 고치고 온전히 만들어야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다. 마음이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간다고 한 말을 아직도 모르느냐? 지금까지 주님이 하신 말씀에서 한 가지 더 답을 주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자력의 능력을 넣어 주셨기에 인간 스스 로 육의 능력으로, 행실로, 정신으로, 영의 능력으로 행하여 영웅 열사까 지 되고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틀어 버리시 면 일점일획도 불가능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예수님이 틀어 버리시면 일점일획도 안 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자력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 없이 행하여 부귀영 화를 누리고, 영웅 열사가 되고, 스타가 되고, 왕이 되어 세상을 통치한 다 하여도 불가능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력의 힘으로는 천국에 못 갑 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힘이 아니고서는 천국에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자기 스스로 이 세상을 마음대로 다스릴지라도 인생은 100년에서 끝 나고, 자기 한때에서 끝납니다. 하나님이 인간 스스로 존재하라고 자력을 넣어 영웅도 되고, 스타도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창조해 놓으셨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살 때 강하게 살라고 함입니다. 인간 자체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창조해 놓지는 않으셨습니다. 비 유로 말해 주겠습니다. 산에 있는 소나무가 자력으로 겨울도 이기고, 가 뭄도 이기며 살아도 자력의 힘으로는 월명동 돌 조경 사이에 못 옵니다. 월명동 돌 조경에 있는 소나무는 사람이 캐다가 심었기에 거기 있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도 누구든지 자력의 힘으로는 못 갑니다. 하나님 이 그같이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섭리역사 안에서도 각자 자력의 힘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선생이 같이 해야만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 도록 주님은 해 놓으셨습니다. 오늘은 자력의 힘과 그 능력의 한계에 대해서 말씀했고, 또 그에 대 한 답을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자력의 힘을 무한히 주셨으 니 각자 실천하면서, 하나님과 주님을 부르면서 행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고 무한한 자력의 능력을 쓰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주시는 것만 받으면 약하다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입니다. 주님은 또 한 가지를 보여 주시면서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이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됩니다. 그렇지요? 흔히 일찍 자 면 일찍 일어나진다고 하며 일찍 잡니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난다고 교 훈하고 가르치며 그같이 행하게 합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것이라고 합니 다. 육적인 방법이며 육적인 답이라고 합니다. 생리적인 현상이라고 합니 다. 세상 이치와 원리라고 합니다. 맞는 말이지요? 선생도 주님께 맞다고 했습니다. 주님도 “그것이 과학적인 방법이다. 그것이 생리적이고 체질적인 방 법이다. 그것이 육적인 방법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여러분들이 보내온 서류와 편지들을 보고, 주님과 대화하여 계시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내온 것들을 보다가 밤 11시를 넘기게 되 는 날이 많습니다. 그때 마치고 정리하고 자니 새벽 2~3시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 안 해 버린다고 하며 저녁 7시에 잠을 자 버린 적 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새벽 2시에 일어났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제가 피곤하여 단잠을 재우셨습니까?” 하니, 주님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들이 예수님께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어찌 곡식과 함께 가라지가 났 습니까? 이상합니다.”라고 여쭈었던 것과 같이, 선생도 참 이상하다고 하며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 어찌 과학적인 방법으로 하느냐? 어찌 세상 법칙과 원리적인 방법으 로 하느냐? 어찌 육적인 방법으로 하느냐? 영의 방법, 영의 능력, 나의 뜻대로 해야 되지 않겠느냐? 육적인 방법으로 하면 안 된다. 모두 육적으로 계산하고 환산하는데 그것은 과학적인 방법이요, 지극히 육적인 계산법으로 하는 것이니 안 되 는 것이다. 육적으로 하니 실컷 잠을 잤어도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지 못 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자들은 자기가 원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새벽을 못 깨운다. 영적으로 해야 된다. 영적으로 하면 1000대 1이 아니냐. 1000배가 된다 함이다. 하늘나라의 하루가 인간의 날 1000년과 같다 하지 않았느 냐. 영적으로 하고, 내 뜻대로 하면 밤 11시에 자도 새벽 1시에 능히 일 어날 수 있다. 영의 능력으로 나와 함께하면 잠 안 자고도 철야기도 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섭리인들 모두 육적으로 계산하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 그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습니까? 이것을 하지 않으면 저것을 할 수 있다고 하나, 이것을 안 한다고 해 서 저것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을 통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모두 겪어 봤지요? 과학적으로나 육적으로 계산하여 어렵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 다. 영적으로 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육도 하면 불가능한 것 없이 하는데, 영으로 하면 수백 배 더 능력이 있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두고 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으니 ‘나는 몸이 약해. 나 는 체질적으로 안 돼.’ 하며 제발 엄살 그만 떨어요. 혹은 ‘나는 살이 많이 쪄서 잠이 많아. 인간의 생리적인 현상이라서 할 수 없어. 나는 못 해.’ 하며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불가능하다고 하지 말아요. 주님은 ‘부정적인 생각은 절대 금물!’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 다.”고 했습니다(빌 4:13). 사도 바울처럼 해야 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져 주셨으니 혼자서 능히 할 수 있다.’고 하며 해야 됩니 다. 주님은 나를 쳐다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 할 수 있는데 왜 어리광 피우냐? 몇 살이냐? 나 예수는 33세 때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졌다. 그 포악한 일을 다 당하면서 수십 명이 주는 고통을 다 받으면서도 했다. 모진 고통, 갖은 고난, 인간으로서 더 받을 수 없는 고통을 받았지만 온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았다. 저들을 다 살리는 길이니 행복하다고 하며 그 고통을 받고 갔다. 너희는 왜 못하느냐. 나도 사람으로서 받았다. 내게 비하면 코끼리 다리에 새 다리 같은 격으로 너희의 고난은 아주 작은 고통들이다. 그런 데 왜 한두 번 해 보고 어렵다고, 안 된다고 하며 그만두느냐. 주님은 이 시간에도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 나는 너희를 위해 95%를 해 주었다. 천국의 희망, 나 예수의 사랑의 희망이 약속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라! 자력의 능력, 정신 의 능력, 잠재 능력, 영적 능력이 있는데 왜 못 하느냐. 마음의 능력, 뜻 의 능력, 목숨의 능력이 있으니 맘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라고 하지 않 았느냐. 혼자라고 못 한다고 하며 약한 척하느냐? 내가 십자가를 질 때 누구와 같이 지고 갔느냐. 구레네 사람, 시몬이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를 조금 메고 갔을 뿐이다. 그만큼 내가 질 수 없 는 아주 무거운 십자가였다. 지금의 장정들도 맨 정신으로 끌고 가기 힘 든 것이었다. 너희가 지는 십자가는 육으로 지는 무거운 통나무 십자가가 아니지 않느냐.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십자가인데 그 정도도 못 끌고 가느냐? 들고 가도 될 것들이다. 내가 말한 것을 안 지키고서 나를 또 민망하게 하지 말아라. 나 예수가 하늘나라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올 수 있는 자는 와서 보아라. 세상에서 못 한 것, 나 예수를 자기 마음대로 대한 것을 생각할 때 마음 아파할 것이다. 나의 세상은 영의 세상이라 하늘나라에서 나를 볼 때는 세상에서 보듯 안 본다. 수천억만 배 달리 본다. 너희가 세상에 서 알고 행하면 현실에도 좋고 미래에도 얼마나 좋겠느냐. 또 내 말을 들어 보아라. 주님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는 자들과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이 너 무도 심정을 몰라준다고 하시며 늘 계시자들에게 말씀하시다가, 오늘은 섭리 전체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을 못 하고 어리광을 부리거나 힘들어서 사탄의 주관이 나 받는다면, 주님은 그에 해당되는 십자가를 실체 영으로서 지고 심정 태우고 애간장 태우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님은 “때가 되어 내가 재림을 위해 떠나면, 너희들이 과연 어려움 을 어떻게 이기려나? 어떻게 행동으로, 기도로, 영의 능력으로 이기려 나?” 하며 걱정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내가 함께하며 극적으로 역사하고, 은혜와 사랑과 성 령을 퍼부으며 역사할 때 해야 된다. 이때 안 하면, 마치 여름 장마 때 댐이나 호수나 연못에 물을 받아 놓지 않으면 절대 안 되듯 안 된다. 이 때 완전히 배우고 새롭게 되어라.” 하셨습니다. 먹을 때 먹고, 입을 때 입고, 잠잘 때 꼭 자야 먼 곳에 여행을 같이 가듯이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빠져도 안 됩니다. 행복한 자들 중에는 불행한 자가 꼭 있습니다. 열 처녀 중 다섯 처녀 는 다 준비해 놓고 신랑을 기다렸기에 신랑을 맞고 행복했지만, 나머지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올 것을 알았지만 준비하지 않아서 불행한 사람으로 끝났습니다. 주님이 재림할 것을 알아도 준비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주님 의 재림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육적인 논리, 과학적인 논리, 생리적인 논리로 따지면서 ‘이래서 못 한다. 저래서 못 한다.’ 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영적으로 따지고 계 산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선생은 이 말씀을 쓴 다음 날 아침부터 온몸이 쑤시고 팔다리, 어깨, 무릎이 아프고 쑤셔서 앓아누웠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쓴 것이 생각났 습니다. ‘자력의 능력!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한 말씀이 마음속에 계속 파도처럼 오고 가기에 간신히 일어나서 말씀 교정에 들어갔습니다. ‘내 가 안 하면 누가 하랴. 일어나자.’ 하고 일어나서 말씀을 마무리 지었습 니다. 모두 선생같이 어려움과 고통을 육적으로 따지지 말고 하면 이같이 표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엄살 피우지 않고 하니 그 세계에서 벗어났 습니다. 영적으로 하면 사탄도 불가침이고, 능히 쫓아냅니다. 아멘. 할렐 루야!! 오늘의 말씀은 빌립보서 4장 12-13절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을 생각하고, 자기 인생을 생각하고 어떠한 곳에서도 할 일 을 해야 됩니다. 어떠한 일이 닥쳐도 해야 됩니다. 두 가지 중에 한 가지 가 자기 맘에 안 들어도 나머지 맘에 드는 한 가지를 보고 하면 결국 좋 아집니다. 어떤 지도자는 교회는 맘에 드는데 자기가 거할 사택은 맘에 안 들어 하였습니다. 두 가지 다 맘에 드는 곳에 가려면 기다리라고 하고 철수시 켰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지도자는 사택은 맘에 드는데 교회는 맘에 안 들어 하여 교회를 신경 쓰지 않기에 주님과 의논하고 철수시켰습니다. 두 가지 다 맘에 들 장소를 찾고 있는데 과연 있을까요? 하나만 맘에 들면, 그것을 보고 뛰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 하나도 해결됩니다. 나중에는 훨씬 더 좋게 됩니다. 선생을 생각하면서 어떤 곳에서도 감사하 면서 뛰어야 됩니다. 이 비결을 꼭 알고 행해야 됩니다. 선생도 항상 두 가지가 다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좋은 것을 보고 나 머지를 메워 나갑니다. 주님께도 십자가는 안 좋았지만, 만민의 구원은 좋았습니다. 만민의 구원을 보고 견디시며 인상 찌푸리지 않으시고 깨끗 하게, 아름답게, 멋있게, 사랑에 있어서 일점일획도 감하지 않으시고 사 랑으로 대해 주시면서 가셨습니다. 주님께 감사하지요? 고맙지요? 주님을 사랑해야 되겠지요? 존경해야 되겠지요? 우러러봐야 되겠지요? 훌륭하지요? 그래서 땅 끝까지 주님을 증거해야 되겠지요? 이런 주님을 증거하지 않고 누구를 증거하고 믿고 좋은 세계에 간다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이 사랑의 예수님 을 제대로 알고 믿고 섬기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에 갈 자가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늘나라에 간다고요? 좋은 세계에 간다고요? 한 명 도 못 갑니다. 성경의 수백 군데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든지, 우상과 신상을 섬긴 자는 삼사 대까지 그 자손들이 땅에 서도 벌을 받으리라.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출 20:5-6, 출 34:7). 살아서도 그런데 죽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선생이 주님께 여쭌 것이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주 님이 어떤 사람은 잘 대해 주시고, 어떤 사람은 잘 안 대해 주시는데 정 말 그렇습니까?”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것은 나의 의향이야. 너희 들 말로 ‘내 맘’이 아니냐? 너희도 그와 같이 대함을 받도록 하라고 성경에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셨습니다. 또 여쭙기를 “주님도 사람들처럼 좋은 사람을 고르십니까?” 했더 니, 주님은 “성경에 내가 말한 대로다. 좋은 사람, 더 나은 자, 더 멋있 는 자를 찾는다. 나는 겉도 보고, 마음의 중심도 보고, 내 자유의지대로 사람을 찾는다. 나라고 좋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없겠느냐. 바다 에서 각종 고기를 잡아서 좋은 고기는 골라내고, 나쁜 고기는 내버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전도할 때 잘못해 놓으면 속 썩여서 전도자가 힘들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고르셨고, 사울은 사무엘이 골랐습니다. 결국 어떻 게 되었습니까?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의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도 하나님께도 기쁨거리가 되었습니다. 선생도 사람 잘못 고르 고 쓸 때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심정거리였습니다. 이제는 본인이 잘한다 고 해서 무조건 믿지 않고 다 파악하고 결재할 것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주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 나 버리고, 너 버리고 세상을 쫓아간 자들 너무 신경 쓰다가 가슴에 멍들고 속 썩어 내가 맡긴 더 큰일 못 하고 갈 길 못 가면 안 된다. 높은 나무 올라간 자 다리 저리면 내려오고, 안 내려오다가는 떨어져 버릴 것 이 아니겠느냐. 한계를 못 견딜 것이다. 때가 되면 한계를 못 견디고 온 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어도 오랜 시간이 가면 온몸이 저려서 일 어나는데, 법칙에 벗어나 사는 자들이 얼마나 가겠느냐. 육적 세계의 부귀영화, 명예, 권세, 사랑... 모두 한정된 세계다. 아무 리 자기가 좋아서 누려도 한정된 세계에서는 지속적으로 가지 못한다. 하 지 말라고 그렇게도 말했건만, 기어이 나가서 후에 탕자가 되어 돌아오는 자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아예 하늘 길만 간 자들이 얼마나 가치 있 고 행복하냐. 모두 육적인 기능이 한정되어 있다. 그 세계는 순간이다. 어떤 것을 얻으려 할 때는 그것이 100년이나 갈 것 같고, 몇 십 년이나 갈 것 같아 도 지난 후에 생각해 보면 일순간이다. 배고팠을 때 진수성찬을 먹으면 그 맛이 온종일 갈 것 같아도 다 먹고 숟가락 놓으면 맛도 사라지고 거기 서 끝난다. 사랑도 그러하고, 물질·명예·권세·세상 모든 부귀영화가 다 그러한 것이다. 이 모든 것에서 아예 떠나 자기를 구하여 그 영혼을 하늘나라에 가게 하는 자와 같이 위대하고 지혜롭고 큰 자가 없다. 온 천하 지구 세계를 다 얻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은 자다. 빼앗기지 말아라. 하늘에서 받을 것이 온 세상의 것보다 훨씬 더 좋다. 어찌 영원한 것과 썩어 없어질 것 을 비교하겠느냐. 굳세어라! 세상 것을 다 누리다가 하늘 세계에 못 간다. 정자 좋고, 물 좋고, 산 좋아도 거기 앉아 쉬고 자고 놀다가 갈 길 못 간다. 자기 앞에 사랑으로 누리고, 물질로 누리고, 명예로 누리고, 권세로 누리고, 영화로 누릴 것이 있어도 분토같이 버리고 하늘 길을 가야 할 때다. 그래야 영원한 것을 얻 는다. 나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가 말한다. 그래도 못 믿겠느냐. 너희는 참 새 같은 머리요,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삼위일체 된 하늘의 머리다. 너 희는 천국을 상상하는 자들이고, 나는 그 세계를 만든 자다. 너희는 구원 받을 자이고, 나는 구원할 자다. 세상 부귀영화 얻으려고 세상을 쫓아가 느냐? 해 지는 줄 모르고 어린아이가 깊은 산속으로 토끼를 쫓아가느냐? 행여 사랑도,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얻었으면 모두 나눠 주고 이 시대 에 전하는 내 말을 듣고 따라야 된다. 왜 그래야 되는지, 하늘나라에 와 서 보고 생각해 보아라. 하늘나라에 못 오는 자는 지옥에 가서 보고 생각 해 보아라. 세상의 것들은 차를 타고 창 밖에 스쳐가는 것을 보듯이 봐야 된다. 스쳐가는 것인데 내려서 즐기고 살려느냐? ‘참새는 먹을 것이 많고 즐길 것이 많은 방앗간을 두고 그냥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않았느냐? 너희가 참새라고 하자. 참새가 방앗간 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먹다가 죽을까 봐 그러는 것이 아니다. 방앗간에 있을 것이 없기 때문도 아니다. 먹을 것이 많고 즐길 것이 있어도 가면 안 된다. 때가 그런 때다. 그러면 갈 곳을 못 가기 때문이다. 너희 인생은 나그네야. 정자 좋고, 물 좋고, 경치 좋고, 먹고 마실 것 이 있어도 갈 길 향해 가야 할 때다. 인생사 먹고, 누리고, 즐기고, 사랑 하며, 쾌락과 물질과 명예와 모든 영광이 있어도 도시락이나 간단히 먹고 가야 될 때다. 안 그러면 영원한 저 천국 본향을 놓친다. 천국 가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그 영혼이 어디로 가겠느냐. 잘 먹 고, 누리고, 쾌락을 즐기다가 영원히 이를 갈면서 슬피 우는 곳에 가서 지난날 잘 먹고, 잘 입고, 쾌락과 기쁨을 누리고, 명예·권세·영광을 누 렸던 것이 기쁘다고 하겠느냐. 나 예수가 말한 것을 믿고 결심하라. 돌이켜라. 내 말을 믿지 않은 자들이 모두 어디로 간 줄 아느냐. 지금 이 시간도 많은 자들이 사탄의 세계, 최악의 영들의 세계로 가서 불못에 떨어지고 있다. 내 말을 믿어 주고 몸부림치고 고생하며 행한 자들이 어디로 간 줄 아느냐. 오늘도 너희에게 나의 평안이 충만하기를 빈다. 너희가 내 말을 들으나, 안 들으나 나는 너희를 끝까지 축복해 주고 간다. 이는 내가 축복하지 않아서 천국에 못 갔다고 내게 원망할까 함이 다. 후에 내가 너희에게 못 해 준 것으로 맘 아픈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 다. 어느 누구도 내게 “주님이 더 신경 써 주셨으면 그도 천국에 왔을 것인데요.” 하며 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성경의 약속대로 다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다. 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다 실천 하고 가기 위함이다. 내가 갈 때 너희를 위해 내가 해 줄 것을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해 주었다고 말하고 떠나기 위함이다. 십자가에서 한 말을 또 하고 가기 위함이다. 내가 있을 때 잘하고 몸부림도 쳐라. 내가 간 후에 나 보라고 잘하지 말고 이때 보여 주어라.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도 보고 가고 싶다. ‘내 의향’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무슨 말인지 깨달아야 된다. ‘내 맘에 들게 해야 내가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 준다.’는 말이다. 내 말대로 잘해 줘야 내 마음이 감동되어 나도 잘해 주는 것이다. 너희도 얻 도록 그리하라. 계시받는 자들이 나를 보았을 때 ‘울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하였어 도 잘 이해되지 않았지? 내 말 한마디 들으면 이해될 것이다. 너희 섭리 사에서 사망으로 가는 자들이 꽤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 말을 듣 고 정신 차리고 돌이키면 그 생명들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오게 된다. 마 음과 뜻과 목숨 다해 해야 생명길로 가게 된다. 각자 자기가 자신의 행위 를 알지 않느냐. 이제 왜 너희를 보고 내가 우는지 알았느냐? 나의 이 같은 말씀을 듣 고 가슴에 품고 살지 않는 자는 너희 생명을 물에 떠내려 보내는 자와 같 다. 내 생명의 말씀을 네 생명과 같이 여겨라. 이런 말씀이 아니고서는 네 영혼을 구할 수 없다. 너희에게 평강을 빈다. 사랑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이 같은 시가 떠올랐습니다. 주님 진정 나를 사랑하사 나를 진정 축복해 주셨다 못 먹고 못 자고 못 누리고 온갖 고생으로 긴장으로 재촉으로 외롭고 쓸쓸함으로 홀로 독방에서 축복해 주셨다 쉴 곳 없고 앉을 곳 없고 누릴 것 없어 밤낮으로 주님 따라 갈 길만 간다 <축 도>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주님의 변 함없고 끝없는 사랑과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이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과 생명이 되어 사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고 영원할지어 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