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사연2009.11.24 (화)
이주인 기성으로 가려하는 자들에게
- 선포일
- 2009.11.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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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으로 가려는 자들에게
작성일 : 2009. 11. 24 (화)
작성자 : 이주인 (기드온 선교회 가정국)
사랑하는 자들이 나를 벗어나 다른 길을 가려하니,
내 마음이 심히 아프도다.
‘어쩜 이리 할 수 있을까!’라며 생각해 본다.
지난 30년의 세월을
내가 눈물로, 사랑으로, 애지중지하며 만든 이 섭리를
어찌 아들 급의 역사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
흔들리는 자들아! 생각해 보아라.
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 역사에 나의 전부를 쏟아 부었다.
무엇 때문일까? 오직 하나이다.
사랑하는 내 신부를 찾아, 성장시켜,
내게 온전하고 완전한 신부로 서는 것을 원해서이다.
사랑의 역사이다. 신부의 역사이다.
이것이 최초의 내 아버지의 계획이었다.
아들 급의 역사는
어쩔 수 없는 내 슬픈 사연의, 선택의 역사였다.
그들이 받아주질 않았기에.......
그런데, 왜 그곳으로 돌아가려 하느냐?
애인이라 불리던 자가 어찌하여
아들이라, 친구로 불리는 그곳에 가려 하느냐?
너희들 머리로 생각해 보아도
애인이 친구가 될 수 있느냐?
아니다!
애인이었기에 등을 돌리면 친구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냉랭하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그와 같이 그러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그 여인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다.
그러나 그 여인이 변심하여 나를 떠나
‘친구로 지내자’, 혹은
‘좋은 부녀지간처럼 지내자’라며 떠났다 하자,
이것이 쉽게 될 수 있겠느냐?
흔들리는 자들아! 생각을 해 보아라.
그 머리로 생각해 보아도 말이 안 되지 않느냐?
내가 전능자라 다 용서하고, 다 품어줄 것이라 생각하느
냐?
아니다!
나는 신랑이기에
신부였던 자가 떠나가면
누구보다도 더 상처가 크고 큰 것이다.
잘 들어 보아라!
그곳에도 나의 역사가 일어났었고,
앞으로도 내가 다시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 사랑을 감당치 못한 자가,
그곳으로 내려가 나를 쳐다본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겠느
냐?
애인이었던 자가 친구로 나를 대하며,
그래도 좋은 추억이었다며,
‘그래도 당신을 좋아 한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겠느냐?
내 마음은 이미 싸늘히 식어서, 그 자를 쳐다볼 수 없다.
이것은 상식 중 상식이다.
그 자는 내게 가식으로 웃는다고 밖에 나는 생각할 수 없
다.
알겠느냐?
깨달아라! 제발이나!
그래서 사랑이 식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애인이 친구가 될 수 없다. 애인이 떠나면 남남이 된다.
그러니 애원하고 애원하노니, 이 섭리사에 거하라.
이곳에서 애인의 사랑받는 것을 감사해하며,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말고! 기웃거리지 말라!
내가 애인을 뽑고 뽑아,
내 사랑하는 애인들이 거할 처소를 마련해 놓았다.
너희들은 내 사랑, 내 애인이다.
의심 말고서, 미련을 버리고서,
이 길을, 이 섭리길을 따라 오라.
너희 선생이 앞장서서 너희들을 이끌고 있다.
몸소 애인의 삶을 실천하며, 본을 보이고 있다.
그러하니, 선생의 삶을 보면서, 선생의 삶을 실천하며,
내 앞에 완전하고, 정결한 신부로 내게 서라.
부탁이다! 제발 다른 곳을 보지 마라.
이곳 이 섭리사만이 최초의 역사이고, 최고의 역사이다.
내 안타까운 이 마음을 전하고자,
오늘도 나는 몸부림을 친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노라. 나의 신부들아!
나는 너희들의 신랑 예
수 그리스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