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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09.11.29 (일)

091129 주일말씀 주가 찾으실 때까지 찾고 응답하실 때까지 불러라

선포일
2009.11.29 (일)
성경 본문
요한복음 15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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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1129-주일말씀_주가 찾으실 때까지 찾고 응답하실 때까지 불러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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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9일 주일말씀> 주가 찾으실 때까지 찾고 응답하실 때까지 불러라 본 문 요한복음 15장 5절, 14장 20절 마태복음 7장 7-8절, 9장 15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님과 일체 되는지, 이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사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최고 원하시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과 일체 되고 주님과 일체 되는 것입니다. 일체 된 단계에 가면 최고의 위치에 간 것입니다. 종교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는 하나님과 일체 되어서 하나님 을 사랑하며 가까이 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해 주시고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지 않고 하와는 아담을 최고로 사랑하 고, 아담은 하와를 최고로 사랑하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멀어지 게 되었고, 하나님과 일체 된 삶에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되 니 환경도 삭막한 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들딸 같은 관계였 고 사랑의 대상이었는데 종 같은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최고의 위치인 하나님과 일체 된 단계에 가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처음에 대해 주셨던 것처럼 그들을 대 해 주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이사야, 에스겔, 예레미야, 다니엘, 다윗 왕, 욥 등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만이 하나님과 사랑으로 일체 되었고, 그들의 삶도 하나님의 역사와 뜻을 펴는 삶이 되 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표상’입니다. ‘사랑의 생명체’ 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아담이 하지 못한 일을 다 이루시고, 구약 4000년 동안 세우지 못한 사랑의 조 건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최고 목적과 뜻인,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뜻을 펴고 행하셨습니다. 가르치고 몸소 행하시 면서 인생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붙어야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마음도 행실도 그같이 해야만 주님께 붙은 삶이 되고, 주님과 일체 된 신 앙인이 됩니다. 주님과 일체 되고 붙은 자만이 주님의 마지막 재림 때 휴 거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 붙은 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휴거된다.”고 했습니다(고전 15:22-23).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자신과 하나 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포도나무와 그 가지가 하나 된 것같이 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시면서 “너희 가 나를 사랑하고 구원받은 자라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와 하나 되 듯 주님과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여러분들은 이와 같이 일체 되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신랑과 신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나는 신랑 이고 너희는 신부가 되어 일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신도, 몸 도, 혼도, 영도 일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주님을 신랑으로 삼고 신부 된 몸으로서 주님과 일체 된 신앙생활 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되었든지,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든지 주님 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실천해야 됩니다. 얼마나 주님과 일체 된 삶을 사 느냐에 따라 주님은 크게 보시고, 귀히 보시고, 귀히 대하십니다. 지도자가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잘 가르쳐 주고, 얼마나 잘 실천하 게 해 주느냐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님을 알았어도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하면서 귀히 여기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이 좌우됩니다. 우리 섭리역사는 시작할 때부터 주님이 세상 사람들을 짝사랑하신다 는 것을 확실히 배웠습니다. 또 주님을 믿는 자들도 자기 할 일 다 하면 서 자기 위주와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며 신앙 따로, 자기 인생 따로 살아 가므로 예수님을 대할 때 하나의 섬길 자로만 생각하고 마치 우상 섬기는 자들이 우상을 섬기듯 한다는 것을 철저히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잘못된 신앙의 사고를 고치도록 온전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이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사랑하듯, 너희도 그같이 사랑하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우리를 사 랑하시는데, 너희가 온전히 주님만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을 믿고 살아 도 주님과 일체 되지 않은 자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 여자가 결혼하여 자기 사랑하는 자를 첫사랑 때와 같이 좋아하 고 사랑하듯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그같이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 면서 주님의 뜻대로만 살아야 된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일점일획 이라도 행하면 안 된다. 이같이 사는 것이 주님과 사랑이 일체 된 삶이 고,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진 삶이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님이 짝사랑하도록 하는 자는 영원히 주님을 짝사랑하는 삶으로 대 함을 받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지 못하고 주님 이 짝사랑하게 하는 자는 그에게 계획된 구원과 모든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오직 주님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온 전히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차원에 따라 구원도 확실히 달라집니다. 말로만의 사랑은 형식적 사랑입니다. 이런 자는 구원을 받아도 형식적으 로만 구원받고 살 것입니다. 사랑은 말이 아닙니다. 실제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연애하는 자들과 결혼한 자들은 말로 사랑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말로 사랑하면 실제 사랑 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두 기도할 때나 은혜를 받았을 때 주님을 사랑한다고 쉽게 말합니 다. 수십 번, 수백 번씩 합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는 어떤 연결도 되지 않고 어떤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행실을 할 때 그제야 주님과 일체 되어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말로 해서는 주님과 안 통합니다. 행실로 통하는 것입니다. 행할 때 예수님의 눈에 그 사람이 보인답니다. 눈에 띈답니다. 행한 일을 보면 그 사람이 눈에 안 보여도 생각나고 떠오릅니다. 말만 하면서 행하지 않는 자는 외식적인 자들입니다. 외식의 입 나팔 을 부는 사람입니다. 말만 하고 행실하지 않는 자는 주님을 속인 자들입 니다. 천사는 일일이 기록하여 하나님께 다 보고합니다. 말만 하고 행하 지 않는 가식적인 자들은 사탄의 주관을 못 벗어난 자들입니다. 이런 자 들은 사탄이 매일 지옥으로 조금씩 끌고 갑니다. 영계에 가 보나 마나 육의 행동의 실상이 영의 세계에 반영됩니다. 영계는 거울 속 같고, 육계는 거울 밖과 같이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거울 앞에 서면 그 모양과 형체에 따라 그대로 비춰 보입니다. 영계는 마치 거울에 비추듯이 육적 행위와 마음을 그대로 비춰 줍니다. 주님께 말로 약속하면서 기도할 때 주님의 심정이 자기 마음에 와 닿 아 깨닫게 됩니다. 이는 “그같이 하여라.” 함입니다. 말로 하는 자에게 는 주님도 말로 대해 주시고, 행실하는 자에게는 주님도 행실로 대해 주 십니다. 말로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주님의 애간장을 태우는 자요, 짝 사랑에서 억울하게 끝나게 하는 자들입니다. 섭리세계는 말로 주님을 믿고 사는 자들이 있고, 실천하면서 주님의 손을 잡고 그 몸이 되어 신부로서 주님을 신랑으로 삼고 일체 되어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하는 자와 행치 않는 자는 서로 가는 길도 다르고 대화도 다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사에서 나 예수를 사랑하며 그같이 말하고 행하고 사는 자들을 보면, 온전히 100%를 하지 못하고 70%, 혹은 80%, 혹은 90%, 혹은 95% 행하면서 산다. 영원한 구원 문제가 좌우되는데 왜 그같이 하느냐. 100%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100% 행하는 자는 산 정상에 오른 자와 같습니다. 또 올림픽 경기 에서 금메달을 딴 자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또 “어떤 자는 100% 구원을 얻어 100% 사망에서 나온 자도 있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는 주님과 일체 된 자입니다. “어떤 자는 ‘천국으로 갈까? 못 갈까?’, 혹은 ‘천국의 변두리 세계에 가게 될까?’, ‘혹은 천국에 가기 위해 다시 1000년씩 교육받 는 곳에 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고 하시며 “모두 온전히 하 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0% 하든지, 90% 하든지, 80% 하든지 힘든 것은 거의 비슷합니 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조금 더 결심하고 하면 됩니 다. 주님이 100m 앞에 계시는데 힘들다고 80m, 90m, 95m 가다가 말 면 안 됩니다. ‘100%’라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며 이해시켜 주겠습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되, 다른 남자는 1%도 사랑하지 않고 마 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전심으로 일편단심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 안 쳐다보고 오직 주님만 사랑하되, 전심으로 해야 됩니다. 반절만, 혹은 반절 조금 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두 개의 컵에 물이 있는데 하나의 컵에 물을 다 쏟아 붓듯 이 열렬히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 100%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신앙인들을 보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면서도 자기가 사랑할 것 다 사랑하면서 사는구 나.” 하셨습니다. 주님만을 중심한 사랑이라야 진실한 사랑입니다. 100% 사랑입니다. 시간으로 말하면, 한 시간에서 1분도 안 빼고 다 주 는 것입니다. 주님께 100% 다 여쭤 보고 그 말씀만 듣고 행해야 됩니다. 100% 사랑은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고, 주님의 말씀만 듣고, 그 외에는 안 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했어도 자기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를 주님보 다 더 사랑하고 중심하는 자는 주님과 일체 되지 못한 자입니다. 온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오직 자기 앞에 주님과 1:1이어야 됩니다. 주님은 메시아이십니다. 우리를 영원한 멸망의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실 자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제일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성경 의 모든 말씀을 범하고 사는 자입니다. 주님의 온전한 말씀을 듣고, 주님 께 제대로 배우고 알고 살아야 됩니다. 십일조와 감사 생활은 하늘 백성으로서 기본입니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그 나라 국민으로서 기본입니다. 성경에 정한 대로 해야 됩니 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끝내 못 하고 말면 정말 안 됩니다. 1000만 원에서 십일조로 100만원을 헌금하면 하나님께 바쳤기에 자기가 쓸 때 모자라는 것입니다. 이는 과학적인 계산이고 육적인 계산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 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 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농사꾼이 가을에 추수하여 거둬들인 것의 십일조만 땅에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 보아라. 씨 뿌린 것이 결실하여 곡간에 쌓을 곳이 없도록 되는지 안 되는지 시험해 보아라.’ 하는 말과 같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농사짓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곡식은 수확량의 30분의 1만 씨를 뿌리고, 어떤 곡식은 수확량의 `100분의 1정 도만 씨를 뿌립니다. 그렇게 씨를 뿌려 가꾸어도 못다 먹습니다. 뿌린 것 의 300~600배 거두는 곡식도 있습니다. 고로 농사짓는 자들 중에는 굶 어 죽는 자가 없습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각종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마치 농부가 옥토 밭에 씨를 조금 뿌리고 수백 배 거둬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섭리인들 중 에서 꼭꼭 10의 1을 하나님께 드리고, 혹은 10의 3까지 한 자들을 보면 잘살고 있다고 간증하는 편지들이 옵니다. 섭리사에서도 감사 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고, 안 하는 자들이 있습니 다. 항상 두 가지 인생들이 모여 삽니다. 하나님께 드림으로 풍족하게 받 고 사는 자들이 있고, 인사치레로 조금만 드리고 나머지는 자기를 위해 다 쓰는데도 부족하여 더 얻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은 십일조와 감사 생활을 하라고 강조하지 않았기에 몰 라서 책임분담 못 하여 죄가 될까, 하나님께 드리지 않음으로 가난하고 어렵게 살까 걱정되어 말씀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하나님께 드릴 것은 꼭 드림으로 축복받고 살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한 계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선생이 하늘 앞에 감사하 는 일에나, 물질을 드리는 일에나, 시대적인 조건을 세웠기에 너희가 이 같이 받고 그 덕분에 사는 것이다.” 하셨답니다. 그 계시가 맞는지 확인 해 달라고 내게 보내왔습니다. 선생은 그에게 “선생이 주님 앞에 무슨 조건을 세웠는지 대화할 때 주님께 묻지, 왜 내게 묻느냐.” 했습니다. 섭리인들이 주님의 계시를 받아도 모르고, 직접 말을 해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섭리사 모든 일들을 어떻게 다 일일이 말합니까? 주님도 알고 계시나 말씀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헌금도 했으면 어디 에 썼냐고 물으면 안 됩니다. 주님의 것이니 주님이 알아서 다 쓰십니다. 주님께 드렸으면 주님 무시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선생도 하 늘 앞에 드릴 것을 꼭 드리면서 삽니다. 절대적으로 꼭 하고 삽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구원받은 자의 집은 천국에서 어떠 하냐고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집도 별로고, 그 집안에 꼭 있어야 될 것이 거의 없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린 자들은 그로 인하 여 세상에서도 받고, 또 천국에서도 자기가 드린 대로 각종의 것들을 100배, 1000배 받아 그 집에 정돈되어 있다. 그러므로 너희 보화를 하 늘에 쌓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천국에서 공적 세워서 받는 것도 있지만, 세상에서 공적 세워서 받은 것이 더 기념이 된다. 세상의 것을 천국에 가 지고 갈 수 없으니, 세상에서 세운 공적대로 천국에서 받게 된다.” 하며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부터 행하기 바랍니다. 애인에게 십일조만 줍니까? 모두 다 맡기고 돈을 타다 씁니다. 선생은 예전부터 그같이 살았습니다. 지금도 자랑하는 것은 선생의 것으로 가지고 있는 돈이 없습니다. 내 것 은 모두 하나님과 주님의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 나를 위해 쓸 곳이 없습 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걸핏하면 형제들이 섭리의 돈을 착취했다고 하는데 모두 모르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다 주님을 위해 썼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데 쓰고, 성지땅을 위해 썼습니다.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함으로 죄를 짓 고 사망으로 가지 말기 바랍니다. 용서할 자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 죄는 죽은 후에도 안 풀립니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리기 때문입 니다. 용서하지 않은 죄보다 오해하고 모르고 악평한 죄가 더 큰 것입니 다. 전에 모르고 악평했다가 알아보고 회개하는 편지가 많이 왔습니다. 아직도 그같이 생각하는 자들은 돈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입니 다. 죄인들입니다. 금전 문제는 예수님과 선생이 관련되었기에 무섭게 다 조사했습니다. 기도를 깊이 하면서 주님께 계시받아 봐요. 선생이나 형제들이 하늘 돈을 착취했는지 주님께 여쭤 봐요. 사람들 말만 듣지 말고요. 누구 말도 듣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주님이 억울하게 당하셨고, 선 생도 억울하게 당했기에 압니다. 억울하게 하는 말을 하는 자는 정말 회 개해도 씻어지지 않는 죄를 짓고 사는 자들입니다. 하늘 앞에 드린 것은 섭리사를 위해서만 썼기에 30년 만에 이같이 생명들을 전도해 온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생명을 구원하는 데 썼습니다. 교회를 짓기보다 생명을 구원하는 데 썼습니다. 섭리사의 목사님들뿐 아니라 기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전도하고 관리 하며 공적으로 뛰면서 살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먹고 뛰겠습니까? 누가 그들을 도와줍니까? 굶고 헐벗으면 어떻게 합니까? 생명을 관리하니 10 만원, 20만원씩이라도 줘야 되고, 먹는 것이라도 도와줘야 됩니다. 섭리사의 행사와 모든 일을 하는 데 들어가는 것을 계산하면 1년만 해도 엄청납니다. 이것을 누가 줍니까? 헌금이 들어오면 오직 생명 살리 는 데 다 나갑니다. 이같이 하여서 현재까지 이만큼 선교해 온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하여 말씀하셨는데도 안 믿는 자는 주님과 선생을 모독한 자이므로 회개할 때까지 그 죄로 인하여 죗값을 받으면서 계속 물질의 손 해를 보게 됩니다. 선생이 선생의 것으로 집을 사 놓았겠습니까? 궁궐도, 좋은 집도 다 필요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영원한 집입니다. 내가 있는 이곳도 못다 씁 니다. 기도해야지,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주님 품이 평안한 나의 집입니다. 이같이 세계 역사를 펴 올 때는 정신과 사상이 다른 자와 다르기 때 문에 펼 수 있는 것입니다. 30년 동안 선생 쓰라고 들어온 돈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돈은 다 여러분들을 얻는 데 썼습니다. 집이나 땅을 사 놓았으면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 교회는 몇 개 안 되었 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선생 오면 거처하다가 가라고 얻어 놓은 방은 있을지 모르 겠지만, 공적 돈을 가지고 사 놓은 집은 없습니다. 누가 집 사라고 돈을 주면 다 생명을 구원하는 데 썼습니다. 얼마나 잘했습니까? 주님 구상이 었습니다. 공적 돈이나 사적 돈이나 선생 것은 다 주님 것입니다. 다 여 러분 것입니다. 선생은 주님의 성전을 관리하는 27평짜리 집도 다 사용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먹는 것이 뭐 그리 중하냐? 잘 곳이 뭐 그리 필요하냐? 네 가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하냐? 고생되어도 내게는 네가 필요하다.” 하시 며, 산과 암벽과 굴속에서 기도하게 하셨고 오직 주님 품만 파고들게 하 셨습니다. 집이 필요할 때 내 집은 자연이었고 제자들의 집이었습니다. 내게 집 이 필요할 때는 그곳에 가서 잠깐 자고 왔습니다. 따르는 자들이 오면 자 야 하니 거처가 필요했지만, 선생은 정신 자체가 하늘 속에 살기에 그같 이 하니 제자들은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선생이 그같이 사니 제자들도 반 거지가 되어서 살았습니다. 그때 선 생은 “네 말을 이해하지만 내가 이같이 살지 않았으면 너도 전도하지 못 하여 저 사망의 땅, 세상에서 살았을 것이다.” 했습니다. 가진 것이 있어도, 누릴 것이 있어도, 참새가 방앗간에 들어가면 먹 고 즐길 것이 많아도 거기 앉지 않고 위로 날아가면서 그냥 지나가듯 살 아왔습니다. 나그네가 정자 좋고, 물 좋고, 산 좋고, 먹을 것이 많아도 도 시락 먹어 가면서 갈 길 가듯이 살아오지 않았으면 몇 개 교회만 만들었 을 것입니다. 지도자가 못하면 따르는 자들도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선 생을 따라온 자들도 모두 같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선생은 습관이 들고 체질이 배어서 풍부한 세계는 안 맞습니다. 주님 도 세상에 계셨을 때 얼마든지 편히 구원역사를 펴 갈 수 있었지만 홀몸 으로 사시며 잘 곳이 없으면 전도자들의 집에 들러 주무시고, 배 위에서, 혹은 산에서 기도하던 곳에서 잠깐 주무셨습니다. 먹는 것도 때가 되면 제자들과 거리에서 한 술 드시고, 오직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말씀 전하 는 데만 전념하셨습니다. 주님은 이같이 섭리역사 30년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섭리사 사람들 은 그래도 선생같이 한다고 하면서 살아왔다고 봅니다. 모두 힘들었을 것 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미래에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데만 쓰다 보니 결국 돈이 없으니 콘크리트 건물 성 전을 못 지어서 자연 속에 자연성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자연성전을 만 들어 놓으니 콘크리트 교회 건물보다 아주 귀하게 세계적으로 많은 청중 들이 여러 가지 용도로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 섭리사는 마치 거지 나사로와 같은 신앙이었습니다. 어려운 삶 을 살면서 주님을 모시고 전도하고 관리하며 사는 데만 신경 썼습니다. 마치 예수님 시대와 같이 섭리의 새 역사를 펴 왔습니다. 그러므로 30년 만에 세계 50개 나라에 복음을 넣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400개 교회 를 만들었습니다. 이같이 하지 않았으면 못 만들었습니다. 다 주님의 것 입니다. 주님의 재림 전에 성전을 만들어 드리고 생명을 드린 것입니다. 주님 의 애인이 되게 하고 신부가 되게 하는 신앙을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지, 해 봐야 합니다. 일반 신앙을 넣어 주는 것은 누워서, 혹은 잠을 자면서 해도 아주 쉽습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는 신앙을 하기 정말 어렵지요? 그렇게 되도록 설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말씀을 계속하겠습니다. 가진 것뿐만 아니라 시간도 꼭 십일조를 하늘 앞에 드려 주님을 위 해, 자기 영과 육을 위해 써야 됩니다. 24시간의 십일조는 2시간 24분 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계산하고 쓰고 있나요? 주님을 위해, 생명을 위해 사는 자들은 10의 1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하늘 앞에 드립니다. 하루 10의 8, 10의 7의 시간을 드리며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루 잠자는 시간 4시간을 뺀다면 20시간 중에 얼마나 주님과 생명 을 위해 썼는지 생각해 봐요. 20시간 중에 공적으로 10시간을 쓰면 10 의 5를 드리는 자입니다. 공적으로 5시간을 쓰면 매일 10의 2.5를 드리 는 자입니다. 매일 주님을 위해 얼마의 시간을 쓰는지 한번 계산해 보기 바랍니다. 돈이 아까워서 못 드리겠다면 시간을 꼭 드려야 합니다. 시간도 돈입니 다. 다 자기를 위해 하는 일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 하기 위함이며, 때가 되면 떳떳하게 하늘나라에 가기 위함입니다. 세상과 자기 육신만을 위해 산 자와 하늘을 위해 산 자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보세요. 그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세상만을 위해 산 자에게 남는 것 은 없습니다. 가져갈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계시자들을 통해서 감사 생활하는 것과 십일조에 대해서, 그 리고 매일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하늘 앞에 드리지 않는 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고 하나 님의 물질을 도적질한 자다. 나의 재림을 코앞에 놓고 안 하고 나를 맞을 것이냐?”라고 심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오늘은 주님과 일체 되는 삶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주님과 일체 되 지 않으면 같은 섭리세계에서도 구원의 차원도 다르고, 가는 곳도 다르게 구분된다고 했습니다. 선생이 새벽에 기도하면서 주님과 대화하는데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 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안 하면 안 될 말씀을 가슴 저리게 하셨습니다. 깊이 들어야 됩니다. <주님의 말씀> 어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여자는 남자 가 집안에 없으면 끝까지 부르고 찾아서 만들어 놓은 음식도 같이 먹고 하고픈 대화를 해야 되는데, 몇 마디 부르다가 대답 없으면 부르다 말고 또 찾다가도 몇 군데 가 보고 없으면 말고, 자기 혼자 밥 먹고 자기 혼자 제 할 일만 한다. 나는 섭리 사람들과 지구라는 집안에 살고 있다. 너희는 나를 몇 번 부르다가 대답 없으면 부르다 말고, 나를 몇 번 찾다가도 내가 없으면 찾 다가 만다. 나는 나를 찾고 부르는 자를 쳐다본다. 얼마나 간절히 찾고 부르는지 보고 응답하고 나타난다. 지금은 지구라는 집안에서만 사니 내가 대답할 때까지 끝까지 목을 놓아 부르고 만날 때까지 찾아야 되지 않겠느냐. 만일 너희 애인을 찾는 다면 불러도 찾아도 대답이 없을 때는 온종일 울면서 찾을 것이다. 자기 삶이라는 집에서 나와 같이 살면서도 내가 대답할 때까지 나를 부르지 않고, 내가 나타날 때까지 나를 찾지 않으니 내가 어찌 대답하고 나타나겠느냐. 진실로 나의 신부로서 나를 신랑으로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찾다가 말고, 부르다가 말 수가 없는 것이다. 지구라는 이 작은 집에 있으니 끝까지 부르면 다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를 찾으면 내가 북극에 있어도, 남극에 있어도 대답하고, 느껴지고, 내 눈에 보인다. 내가 하늘나라에 있어도 보이는데, 이 지구 안에 있는데 안 보이겠느냐. 모두에게 내 말을 전해 주어 내 심정을 알리고, 내가 가기 전에 모두 속히 행하라. 어찌 신부라고 하는 자들이 한 집에 살면서 부르다가 대답 이 없다고 부르다 말고, 몇 군데 찾다가 없다고 찾다 마느냐. 만일 자기 사랑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 쓰러져 있는데 급히 옮 겨 치료를 해 주지 못하여 죽으면 어찌하냐? 나를 너희 애인만도 못하게 대하는구나. 내가 너희 앞에 쓰러져 있고, 너희 죄 짐을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서 나 좀 위로해 달라고, 내려 달라고 하는 소리를 못 듣는구나. 세상의 정말 사랑하는 애인 같으면 그같이 부르다 말고 찾다가 말지 않을 것이다. 정말 서운하다. 하늘나라에 와서 두고 보자 하는 심정이다. 내가 갈 날이 가까웠으니 할 말만 하고 간다. 너희가 “말 안 하면 모르 는데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할까 봐 심정 쏟아 말하는 것이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찾아도 나타나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느냐? 나 예 수, 너희 신랑의 목소리가 안 들리고 찾아도 없으면 더 찾고 불러야 한 다. 기도하다가 그냥 끝내지 말아라. 힘들어도 기도나, 찬양이나, 모든 일 들을 끝까지 하여라. 나를 끝까지 찾아 만나도록 하여라. 나도 너희를 끝 까지 부르고 찾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지금 너희가 나를 믿고 살 고 있는 것이다. 식기도 할 때도 그 정도만 감사하고 찾으면 나는 대답도 할 수 없다. 그 정도 찾으면 나타나고 싶지도 않다. 밥 갖다 놓고 진실로 애인을 찾아 같이 먹으려고 하듯이 간절히 기도하여 나와 같이 먹자고 하여라. 내가 먹는다고 밥이 줄어드느냐? 양이 안 차서 서운하다고 하겠느냐? 이제는 형식으로 하는 습관을 다 버려라. 마치 그때그때 배설물을 버 리듯이 잘못된 것들을 버려라. 이 지구촌에서 자기 혼자 나를 모신다고 생각하면서 진실로 살아야 된다.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이 주님 모시겠 지.’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면 너는 누가 구원하겠느냐. 나를 대하는 것에 따라 구원한다. 그릇된 사고는 절대 안 된다. 그러면 나는 굶어 죽는다. 옷이 없어 수치 속에 살다가 얼어 죽는다. 잘 곳 없어 거리에서 잔다. 고통을 당한 다. ‘내가 아니어도 누가 하겠지.’ 하는 무지한 생각을 버려라. 이제 모두 깨달았느냐? 너희가 십일조를 해야 생명을 살리는 데 쓰 고, 섭리역사가 더 크게 세계로 번져 나가게 하지 않겠느냐. 내가 쓸 곳 에 쓰지 않겠느냐. 이제 가슴이 뜨끔하지요? 주님을 신랑으로 삼고 사는 자라면 절대 형 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제 선생의 말씀을 좀 들어 볼까요? 선생이 유럽에 있을 때였습니다. 섭리인들이 모두 생각하기를 ‘내가 아니어도 세계에 많은 제자들이 있으니까 그들이 하겠지. 지도자들만 해 도 수천 명이 있으니까...’ 했습니다. 그렇게 선생을 대하였기에 한때 끼 니를 걱정하면서 살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그 달의 생활비가 없어서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했고, 어느 때는 무엇을 사 먹고 싶어도 ‘저것을 사 먹고 싶은데 사 먹으면 돈이 바닥나니 어떻게 하지?’ 하며 살았습니다. 한번 한국에 돈을 보내 달라고 했는데 금방 소문을 듣고 돈을 보내 놓고 선생에게 돈 보냈다고 광고하고 다녔습니다. 정말 속이 상해서 100 만원 보낸 것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모두 이와 같으니 주님도 오직 자기 의 주님으로 각자 책임지고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주님은 공원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공동의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해 야 됩니다. 각자 개인의 신랑이십니다. 자기가 자기 책임의 1:1입니다. 주님의 신부로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모시고 살아 야 됩니다. 이것이 주님과 일체 된 삶입니다. 주님은 자기 각자의 신랑이 십니다. 한번은 낮에 주님이 눈앞에 나타나 보이셨는데 거지같이 보였고 배가 고파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주님은 “네가 나를 돕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선생이 산에서 기도 생활을 할 때였는데, 주님께 “제가 너무 힘들어서 산에서 기도 못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그 럼, 나는 힘이 없어서 너의 영도 육도 못 구하고 계획한 뜻도 못 이룬 다.” 하시며 거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에 선생은 다시 산에 가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빛난 옷을 입으시고 얼굴 이 빛이 나게 나타나셔서 내게 힘을 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들 각자에게 주님이 어떻게 나타나시는지 봐요. 죽는 소리를 하시는지, 기뻐하시는지 보기 바랍니다. 주님을 몇 번 찾다가 안 나타나시면 찾다가 마는 신앙인들, 주님을 몇 번 부르다가 대답이 없으시면 부르다가 마는 신앙인들, 모두 이 말씀 을 해 주었으니 이제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오늘 말씀대로 신 랑과 신부가 일체 되듯이 주님과 일체 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하나 되듯 하나 됩니다. 선생은 식기도 할 때만 귀한 음식을 주셔서 정말 진정으로 감사하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하지요? 2007년에 중국에 있으면서 배춧국에 옥수수 빵 반쪽을 놓고 “굶어 죽지 않고 이것이라도 먹으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 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여실하게 주 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만 먹느냐?” 하셨습니다. 너무 부드러운 음성이었습니다. 가슴이 뜨끔하여 눈을 감고 있는데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와 같이 먹어야지. 내게 먹어 보라는 한마디도 없이 너만 먹느냐?” 하셨습니다. 내가 초라한 모습을 하고 못 먹을수록 주님은 더 함께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들도 식사할 때 감사하다고만 하지 말고, 애인이니까 같이 먹 자고 하면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먹을 것이 없어도 주님은 옛 날에 제자들과 빵 한 쪽을 같이 나눠 드셨듯이 지금도 그리하십니다. 아 멘. 할렐루야! 이것이 참된 신랑과 신부의 삶입니다. 그때 주님은 나를 보고 “이 음식을 먹고 뭘 먹고 싶으냐?” 하시기 에 내 입에서는 미리 계획이라도 한 듯이 “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했 습니다. 주님은 “무슨 고기?” 하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돼지고기요. 새우젓과 돼지 족발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나를 보고 “알았 다.” 하셨습니다. 그 이튿날 간수가 돼지고기 먹을 자들은 신청하라고 했습니다. 주님 이 말씀하신 것이지만 가슴이 뭉클하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래서 족발 두 개와 돼지고기를 신청했습니다. 신청한 대로 그날 음식이 도착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간수에게 “오늘 이 나라 국경일입니까?” 물으니, 아니라 고 하며 웃었습니다. 그 음식을 받고 기도할 때 진실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선생 : “사실 불가능한 것을 주님이 어떻게 하실까 했는데 그같이 실 제가 되어 정말 감격하고 감사합니다. 주님, 같이 먹어요.” 주님 : “너 먹는 것 볼게.” 선생 : “왜요?” 주님 : “네가 막 먹다가 죽을까 봐서 걱정이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후 몇 주가 지난 후에 간수들에게 다시 돼지고기를 사 먹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간수는 “여기가 어딘 줄 알 아? 여기가 네 집이냐?” 했습니다. 주님이 내게 돼지고기를 주시려고 나만을 위하여 특히 그들을 통해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 하나 때문에 모두 나팔을 불게 된 것입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님께 기 도하면 주십니다. 식기도 할 때만 감사하다고 하지 말고 주님과 같이 식사해야 됩니다. 주님은 극한 환경에서 머리카락만 한 작은 것도 신경 써 주십니다. 이 말 을 듣고 여러분들도 자세히 신경 써 봐요. 선생의 지금 현실에서도 주님 은 정밀하게 신경 써 주십니다. 춥지 않게 해 주시는 것뿐 아니라 다 해 주십니다. 애인은 항상 같이 먹고, 같이 가고, 같이 자고, 같이 노래하고, 함께 합니다. 포도나무는 1년 열두 달 가지와 항상 같이 붙어 있으면서 같이 잎을 피우고 열매를 엽니다. 겨울에도 같이 추위에 떨며 견딥니다. 주님 과 같이 살면서 같이 생활해야 주님이 어려움을 해결해 주십니다. 믿습니 까? 주님은 나로 깨닫게 하시면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 남녀가 연애하다가 첫사랑에 불이 붙어 같이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자도 남자도 꼭꼭 같이 먹고, 모든 것을 같이 했다. 그러다가 점점 사 랑이 식어 나태해지면서 같이 하지 않기 시작했다. 여자가 안 보이면 남 자가 여자를 꼭 부르고 기어이 찾아서 밥도 같이 먹어야 되건만, 맘이 기 쁠 때는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자기 혼자 했다. 같이 살기는 했지만 사 랑에 얽혀 살지 않고 삶에 얽혀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자기 애인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부엌, 화장실, 뒷방에 가 보고 없으니 찾다가 말았다. 실상 도둑은 여자를 뒷마 당에 붙들어 놓고 붕대로 입을 틀어막고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이다. 여 자가 자기 애인을 속으로 부르고 있었는데 찾다가 만 것이다. 그 도둑은 바깥에서 애인의 친구로 가장하고 남자에게 전화를 했다. “네 애인과 식사를 하려고 하니 나와라. 네 애인은 화장실 갔다.”고 했 다. 남자는 이 말을 듣고 나갔다. 도둑은 그 사이에 집을 털고 도망갔다. 남자가 돌아와 보니 자기 애인은 살기 어려운 단계까지 가 버렸다. 첫사랑이 식고 찾지도 않으면 이같이 되고, 찾다가 말고 부르다가 말 면 이같이 된다. 나타날 때까지, 대답할 때까지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같이 하더니 결국 비극의 날이 오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나를 찾지 않으면 그와 같이 된다. 너희 과거의 삶을 생각해 보아라. 주님을 부르다가 말지 말고 끝까지 불러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들은 후부터 행해야 됩니다. 형제들끼리도 그같이 행해야 됩니다. 선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선생에게도 “끝까지 나를 먼저 찾아라.” 하고 철저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도 늘 그같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은 그 후부터 지금까지 주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끝까지 찾고 있습니다. 한번은 주님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수십 번을 불렀습니다. 결 국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계속 내 옆에 계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네가 어느 정도 부르고, 끝까지 부르는지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사는 데만 만족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 다.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왕처럼 모시고 늘 대화하며 사는 것이 참 신앙, 산 신앙입니다. 한번은 기도하다가 주님을 부르고 찾으니 곧 대답하셨습니다. ‘계속 내 옆에 계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먼 나라 남미에 가 계 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나는 전능 한 영이므로 지구 세상 어느 곳에 가 있어도 마치 집안에 같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멀리 계시나, 가까이 계시나 주님이 말씀하시면 다 들립니다. 우리가 어떤 곳에서 말해도 주님은 다 들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하는지 옆에서 지켜보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끝까지 주님을 불러서 응답받고 마음의 대화 를 해야 됩니다. 또는 더 깊이 영계에 들어가 직접 보면서 주님과 대화해 야 됩니다. 주님이 대답하실 때까지, 나타나실 때까지 주님을 찾아야 됩 니다. 그래야 주님의 말씀을 듣고 확실히 알게 되어 자기 신앙이 흔들리 지 않고 확신이 서게 됩니다. 힘들다고 찾다가 말고 부르다가 말지 말고 끝까지 불러서 응답받고 만나서 그 이야기를 들어 봐야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큰 폐단이 있습니다. 평소 자기 삶의 그릇된 습관을 가 지고 사람 대하듯이 주님을 대한다는 것입니다. 모순 된 행위로 대하니 주님과 안 통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 고쳐라.” 하셨습니다. 육신의 행위를 안 고치고 전능자 하나님과 주님을 대하고 사는 자는 자기 주관 속에 갇혀 사는 자입니다. 진정 사랑하는 자라면 끝까지 부르고 찾습니다. 주님을 진정 사랑한 다면 부르다가 말지 않고 찾다가 말지 않습니다. 주님과 대화하고 그 심 정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어느 정도 기도하는지, 안 해 본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선생은 그들에게 “너희가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의 계시를 받는데 어 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주님을 대하는지 모두 그 사연을 적어 보내라.” 했습니다. 모두 각각 달랐지만 어떤 자는 밤새도록 기도하고, 어떤 자는 추운 날 자연성전에 가서 혼자 새벽 1~4시까지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자 기와 섭리를 위해 그같이 기도하니 과연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만하다 고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안 해 본 자는 계시자들이 주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깨우쳐 준 말씀을 들으면서도 ‘저 사람은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데 계시를 받았나?’ 생각 합니다. 몇 달씩 새벽 일찍 일어나 깊은 기도를 해 봐야 압니다. 선생도 그같이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기에 이렇게 하는 자들의 심정을 알고 그들이 받은 계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성령을 받아야 주님을 만날 때까지 찾고, 응답받을 때까지 부 르는 자가 됩니다. 한 달에 한 번 응답이 아니라, 매일 생활 속에서 주님 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전심으로, 참으로, 신실로 행하는 자만이 주님을 찾아 만날 수 있고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금년도 크리스마스 전까지 21일을 남겨 놓고, 그 전까지 새롭 게 온전히 변화하기 위해 주님 앞에 회개하여 청산하고, 신앙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맺고, 각자 영계를 뚫어야 됩니다. 선생도 극적으로 기도 하고, 여러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겠습니다. 주님은 “열매를 맺지 못한 자는 연장 없이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죄를 낱낱이 고해야 합니다. 전화를 걸 때 제대로 눌러야 신호가 가 고 통하듯 죄도 낱낱이 고해야 됩니다. 절대 죄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됩 니다. 온 세계 섭리인들은 이를 꼭 지켜 행하기를 빕니다. 연말에는 개인과 교회의 전도 상황을 볼 것이고, 기존 인원을 기준하 여 어느 나라가 제일 우수하게 선교했는지 발표할 것입니다. 지금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 의 뜨거운 역사가 삼위의 이름을 끝까지 부르고 찾는 자들에게 충만하고, 주께서 이들에게 응답하시고 나타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