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사연2010.01.15 (금)
천국성령운동 말씀
- 선포일
- 2010.0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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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5일 천국성령운동 기도회 말씀>
2010.1.3(일)
주윤애 (전주 스타교회) 계시간증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
섭리를 향한 깊은 하나님의 심정
내 너희를 버리지 않으리.
내 너희와 늘 영원히 함께 하리.
사랑의 역사 섭리를 향한 사랑의 약속을 절대 놓지 않으리.
나에게 마지막의 희망과도 같지.
이 지구를 향한 기대와 창조의 목적 너무 많은 사랑의 역사가 깨져왔다.
나의 근본의 사랑의 뜻인 신부의 역사 마지막 희망의 역사 바로 섭리의 역사 나의 사랑의 역사이니라.
그리하여 더 모지고 힘든 역경과 어려움이 늘 함께 했지.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아느냐.
늘 환난과 어려움의 끝에. 그 끝자락에는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이 그 곳에 있노라.
나 여호와 사랑의 근본 너희와 늘 함께 하고 있으나
내 그 어려움 속에 있는 너희를 부를 수 없음은 너희를 더 단단히 만들어 진정 그 가운데
나에 대한 깊은 사랑의 마음을 지키는지. 어떠한 마음으로 이겨내는지 내 그것을 보느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를 보아라.
어려움 속에 있을 수 밖에 없었고 너희와 함께 하고 싶지만 가까이 갈 수 없었느니라.
내 진정 그 마음 모르고 이루어주지 않았겠느냐.
그것이 아님이라. 내 선생을 너무도 사랑하여 그를 어려움에서도 나를 찾게 하였고 그 가운데 이 모든 인류,
만민의 고통을 알게 하여 기도케 하였느니라.
내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내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희를 구원코자 내 사랑의 아들을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였고, 그 가운데 너희에 대한 나 여호와의 사랑을
확증하였느니라. 그와 같이 이 시대, 나의 사명자, 사랑하는 선생을 통하여 만민의 구원을 맡기어 나의 사랑의 복
음을 주었고 신부의 역사 지금 이루고 있노라.
이토록 사랑하는 선생을 나의 사랑하는 신부를 그 고통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게 함은
내 너희 그리고 이 모든 인류의 생명을 향한 나의 사랑을 확증하게 함이라.
나의 사랑을 진정 너희는 깊이 깨달아라.
이 인류를 없앨 수도 있었고 등을 돌려 보지 않아도 되었을이 지구를.
난 손을 놓지 아니하고 끝까지 내 지구를 지켰노라.
왜?
내 사랑하는 신부. 너희 선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단 한명의 신부의 조건으로 인하여 이 지구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것을 희망삼아 이 역사 마지막 나의 사랑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마지막이기에 나는 나의 이 깊은 마지막의 사랑까지 미련 없이 다 너희에게 쏟아 사랑해주고
마지막이기에 내 너희 한 명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 너희를 사랑하여 나의 사랑하는 자, 많은 자 가운데 택하여 너희를 이 사랑의 역사 섭리사 가운데 이끈 것이니
라. 내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은 지금도 그리고 후에도 변함없이 뜨거운 태양보다도 지옥의 불 보다도 뜨거운 사랑
이니라. 나의 사랑을 알겠느냐. 알아다오.
내 이 역사 진정 이루고자 하는 뜻을 알아다오.
나 여호와는 너희를 사랑하였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리고 매일같이 불꽃같은 눈이 되어 너희를 향해 보고 있노라.
그런데 어려움이 있다 넘어질 것이냐.
내 너희를 보고 있거늘 힘들다 낙심할 것이냐.
두렵다 주춤할 것이냐. 그리하지 말아라.
너희 선생. 그 모진 핍박과 어려움에도 나를 찾고 부르며,
오히려 나와 성령의 마음. 예수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우리의 사랑은 진정 애틋하여 지고 이제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사랑의 결정체가 되었다.
사랑의 틈이 있으면 사탄이 힐문한다.
어떠한 어려움과 그 환난이 올지라도 넘어지지 아니하고 사랑의 조건을 지키며 나의 생명을 살핌은
진정 우리의 사랑을 틈 없이 완벽한 사랑의 결정체가 되게 하는 것이니라.
전에도 후에도 없고 이제 영원히 없을 나의 마지막의 사랑의 역사이니라.
진정 너희 모두 어렵고 힘들어도 높은 산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겠느냐.
그 가운데에서도 너희는 나를 찾고 부르며 그 사랑의 조건 지킬 수 있겠느냐.
내 너희를 진정 믿겠다. 아니 믿는다.
너희는 어떠한 큰 환난의 바람이 불지라도 이겨내며 나의 사랑에 굳건할 것을 믿는다.
진정 내가 섭리역사를 사랑하고 이 역사는 나의 사랑의 마지막 역사이며, 이곳은 진정 나의 손 안에 그리고 나의
품 안에 거하며 내 사랑하는 신부 선생 통해 나의 사랑의 역사를 이룰 것임을 너희 모두는 늘 기억하고 마음속에
깊이 새기어라. 말씀에 굳건해야 넘어가지 않는다.
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어라.
내 심정의 말. 선생 통해 하는 모든 말을 마음 깊이 새기어라. 어려움을 만났을 때, 큰 산에 가로막혔을 때,
내가 역사함의 마음 기억하라.
이곳 섭리사 떠나면 너희 개인, 가정 모두 신부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곳만이 나의 유일한 신부의 복음. 신부의 역사, 신부의 조건을 세우고 있노라.
나의 생명을 구원시켜라. 어둔 저 흑암에 살고 있는 나의 생명을 구원시켜라.
이 곳 가운데로 모두 데려와라.
너희 선생을 그 고통가운데 있게 할 수 밖에 없는 나 여호와의 사랑의 마음을 진정 알라.
아무 뜻 없이 나의 사랑하는 자를 그 곳에 있게 하겠느냐. 그러나 뜻이라고만 생각하지 말아라.
진정 너희 제자의 죄 또한 크고 크다. 내 선생을 더 좋은 곳으로 인도 할 수 있다.
나 여호와는 이 세상을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이니라. 너희가 하는 그 행실을 보겠다.
너희의 그 기도와 실천을 보겠다.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지 보겠노라.
너희의 행실과 노력,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을 보겠노라.
2010년 한해. 뛰어보자. 날아보자.
나의 사랑의 역사가 이 세상 가운데 충만케 해보자. 내가 택한 모든 자 불러오자.
그리할 때 그리할 때 내 너희의 그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겠다.
사랑하는 자 위해 기도하는 너희의 기도를 받고 이루어 주겠노라.
나 여호와 너희 한 명 한 명 더 뜨거운 성령의 불과 생명의 역사 이루겠노라.
나의 손을 잡아라. 주와 일체되어라. 선생과 일체되어 행하여라. 역사가 이루어질 것임이라.
역사가 일어난다. 나의 소망과 희망의 해 2010년이 될 것이다.
늘 마지막의 순간에 내가 사랑 마음 가득 담아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다. 2010년, 달리고 또 날아보자.
너희와 나 여호와 함께 함을 잊지 말아라. 나 여호와는 사랑하는 나의 신부와 함께 함을 잊지 말아라.
나 너희를 진정 사랑하고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사랑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여 2010년 더 뜨거운 사랑으로 만나자.
매일 매일 매 순간 매 시간 모두. 사랑한다. 나 여호와 내 너희를 향한 사랑의 심정을 전하노라. 사랑한다. 안녕.
새벽2시27분.
<정조은 목사님 말씀>
할렐루야. 오늘도 희망과 소망을 알리는 할렐루야 인사로 하나님께, 예수님께, 성령님께 그리고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평강과 은혜가 섭리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하길 기도합니
다. 또한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소망을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과 소망이 오늘 이 가운데 넘치길 기도
합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이 섭리역사 속에서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사는 우리 사랑하는 주님의 사람들, 바로 여
러분들 어떤 사람은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삶에 지쳐서 그 확신과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간에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여러분들은 오늘 확신과 소망을 가
질 수 있도록 성령의 역사로 주님은 더욱더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맡기고, 영혼을 맡기고, 시간을 주님께 맡기며 온전한 시간을 갖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이 곳에 예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 동안 주님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 이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정확히 증거할
수 있구요. 그리고 지금도 살아숨쉬면서, 주님의 역사를 떳떳하게 증거할 수 있음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27절을 보면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살아계신 여러분들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정신과 마음이 살아있고, 영혼이 살아있고, 삶이 살아있는 여러분들 가운데 살아있는 시간으로 역사해 주실 것입니
다. 여러분들은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희망이신 하나님과 주님이 그 영이 여러분 속
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이루어낸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귀하고 귀한 여러분들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하게 된 제 자신을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만나는 영광으로 여러분들을 만나는 영광으로 귀한 말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요. 많은 것
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술, 문화, 문명, 갖가지 여러 가지 것들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어요.
특히 한국같은 경우는 굉장히 많은 문화를 갖가지 어떤 나라에서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받아들인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
어야 합니다. 받아들인 것을 내놓지 못하면 남길 수가 없고, 남기지 못하면 결국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 빼앗기
게 됩니다. 이번 주 말씀의 핵심 중에 하나는 바로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달란트를 받은 것도 좋다. 몇 달란트든지 받은 것은 좋다. 그러나 누가 그 달란트를 남기고 누가 유익을 남기느냐?
그것에 대해서 주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겨야 유익이 있어요. 나무는 열매를 남기고 닭은 달걀을 남깁니다.
사람도 뭔가 남기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받아들인 것, 자기가 그동안 받아들이고 산 것을 세상에 내놓으려
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받아들인 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으면 내놓을 것이 없어요. 이것이 바로 주인의식이라고 합니다.
1월달에 예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했더니 섭리사 가운데 섭리의식을 고취시키며, 주님의 신부의식을 더욱 더
심어주면서 주인의식을 심어주고 계십니다. 음식을 먹어서 씹고, 넘기고, 소화를 시켜야만 자기 것이 되어서 영양분
으로 남아 힘이 되는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음식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토해내게 되요. 그러면 결국
내 몸 속에서 소화시킬 수 없습니다. 나에게 유익을 줄 수 없어요. 하나의 음식이더라도 내가 먹어서 내 것으로 만
들어야 소화를 시켜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영양분으로 남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도 섭리역사도 이 시대의 말씀도 내 것,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내 것이야. 이 역
사는 내 것이야. 주님은 내 것이야.” 하는 자가 역사를 이루어서 세상 앞에 내놓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은 섭리인으로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섭리역사를 나의 것으로 만들자. 남의 것이 아니고, 내 것 .기쁘면 내가 제일 기쁘고, 슬픈 일이 생기면 내가 제일
아픈 나의 것으로 만들자. 이 역사의 확신과 소망과 자랑을 늘 삼고 살자. 그래야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확신의 역
사가 일어나고, 우리가 소망을 가져야 소망의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가 자랑을 삼아야 자랑할 수 있는 역사가 일어
납니다.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죠.
“너 자신을 먼저 확실히 구원해라. 너 자신을 확실하게 온전하게 자랑삼을 정도로 구원해서 너와 같은 생명을 구원
해. 그것이 온전한 생명구원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역사의 자신감과 희망을 가진 자라야만 이 역사를 자신있고, 희망있게 전할 수가 있어요. 내가 자신이 없으면
어디 가서 전할 수가 없어요. 내가 이 역사에 대해 희망을 못 느끼면 희망있게 메시지를 전할 수가 없어요.
먼저 말씀을 전하는 가장 큰 능력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제스쳐, 표정, 말투, 다음 문제예요. ‘내가 정말 확신에
차서 희망으로 이 역사를 증거할 수 있느냐’ 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먼저 봅니다.
사도바울은 매순간마다 말씀을 전할 때마다 감옥에 갇혀서도 서신으로 교우들을 격려하고 말씀을 전해줄 때마다,
먼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충분히 빌어주고 그 다음에 확신을 갖고 말씀을 전했어요.
신약성경에 “나는 이 역사를 확신하노니, 나는 소망하노니.” 이런 말을 가장 많이 한 자는 사도바울 선생입니다.
그만큼 예수님 역사에 대한 자랑과 확신이 있었어요. 자기가 가는 길이 주님이 있음을 확신했고, 그 확신에 따라
주님은 역사하셨고, 그 확신을 따라 그 시대는 사도바울을 통한 역사가 너무나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되 꼭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자랑을 삼고 확신을 가지는 것은 너무
도 중요하지만,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점도 파악하는 것. 남이 나를 지적하기 전에 남이 나를 뭐라하기 전에 내가
자신에 대한 문제, 섭리사의 문제, 개선할 점을 먼저 파악하고 직시하고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누가 말해주기 전에 이건 내가 고쳐야 해.”
저도 단상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데, “나는 완벽해 나는 말씀을 너무 잘 전해. 주님이 매순간마다 나와 함께 하시니
까 걱정이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 삶은 발전이 없고, 우낀 삶, 자아도취에 빠져서 나 혼자의 기분, 생각
자신감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나는 완전함에 도전하자. 사람은 완벽하라. 완전하라. 주께서 말
씀하셨는데 완전할 수는 없으나, 완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완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도전을 하는데 매일 도전하는 것입니다. “주님 만날 때까지 내가 완전히
변할 때까진 나는 완전한 것이 아니야. 나는 매일 변해야 해.”
하는 사람은 발전을 만들어 내고, 성장을 만들어 내며, 전진하는 인생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섭리역사가 그래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있고, 주님께서 사하시고 확신에 차 있지만, 나의 문제점과 고칠 점은 보완해 나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잘하자. 조금 더 도약하자. 조금 더 완전하자. 이렇게 계속해서 발전되고 완전한 삶을 살아 나간다면 이 섭
리역사는 희망입니다. 남을 지적할 때는 그래서 나 먼저 고치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인생을 살아가면서 섭리사에서 살아가면서, “누군 저런 거 같애. 섭리사는 이런 게 있는 거 같애.” 그런
말을 한번씩은 들어봤고, 한번씩은 본인이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자기 행동이 완벽하게 변한 상태에서 말하는가?
자기 모순이 있는 상태에서 누구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 모순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올해는 더 완벽해지기로 했어요. 내 모순을 먼저 고치자. 그리고 모순을 지적하는 자가 되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살아계실 때, “네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봐. 남의 눈에 티를 빼려고 하지 말고, 네 눈에
들보를 먼저 빼라. 그리고 죄없는 자가 죄있는 자를 돌로 치라.” 했습니다. 우리 먼저 성경대로 살면서 우리 먼저
주님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성경대로 살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인들처럼, 형식신앙하는 사람들처럼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이 주님의 눈에 피눈물나는 역사이지 않았겠
습니까? 율법을 자랑삼지 말고, 우리의 말씀만을 자랑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행함에 있어 자랑을 삼아야 합니다.
말씀 자체에 자랑삼는 것. 우리는 말씀을 받아낸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자랑하려면 적어도 그 말씀을 행하는 자라야 그 말씀을 자랑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랑삼
은 말씀을 힘있게 전하는 자는 그 말씀을 들은 자가 자랑스럽게, 확신있게 이 역사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바울에 대해서 말씀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2장 17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내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에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
한 것을 좋게 여기며 ,내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의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스승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
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하지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는 네가 간음하느
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시대 우리들에게 던지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율법을 자랑삼아 그것을 스스로 선생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율법
을 범하는데 어떻게 율법의 선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을 가르치는 우리들이 말씀을 지키지 않는데 어찌
우리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하나 성경을 이루는 자, 바로 주님의 말
씀을 행하는 자들 바로 완전함에 도전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이 무엇입니까? 오늘 여기 신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신학, “올해 뭔가를 도전하고 확실히 배워
보겠다.” 결의하는 여러분들의 반짝반짝한 눈이 지금 주님의 마음을 자극할 것입니다.
전세계 또 신학 800여명이 함께 하고, 또한 전세계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신학의 근
본, 종교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주님께 받은 그 말씀을 직접 삶으로 실천함으로 인해서, “너는 정말 사랑하는 자야. 너는 정말 인생을 구원
할 수 있는 자야.” 인정받아야 만이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을 사람이야. 천국갈 사람이야.”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너는 내가 인을
쳐놨어. 너는 구원받을 자야.” 해야 만이 구원받을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 입장의 선교, 우리의 입장에서 구원, 우리 입장에서 섭리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장에서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섭리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와 함께 생명구원, 여러분 생명구원하려면 반드시 주와 함께 해야 합니다. 주님이 신앙의 근본이신대 누
가 누구를 정죄하겠습니까? 주님의 마음이 이 것이라고 누가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신감을 가지세요.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누가 뭐라 해도 신학의 근본이신 주님을 배제하고, ‘이것
이 죄다’ 정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찾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이루지 못한 뜻을 찾아야 해요.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 이루고자 했던 그 뜻을 진정으로 다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찾을 때 복직된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사랑을 찾고 있고, 복직된 역사
를 찾고 있습니다. 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죠. 얼마나 담대하게 외쳤는지 그냥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서 39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말씀하시길,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 하시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도 예수그리스도니 이는 하
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낮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더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음이라.”
여러분,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서 이 역사의 주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금 기술이 부족해도, 조금 말주변이 부족해도, 기술과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자기 삶에서 우러나
오는 실천력입니다. 자기 삶에서 우러나오는 실천력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의 파워는 엄청납니다.
그것은 생명력과 같습니다. 아무리 얼굴 표정 제스처 표현을 다양하게 구상하며 말을 할지라도 자기 삶에서 우러나
오는 말씀이 아니면 파워, 능력, 생명력이 없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우리에 대해서, 이 역사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
서, 확신을 가지고 내 실천에서 나오는 말씀을 가지고 제스처도 하고, 표정도 하고, 말씀도 하는 그런 여러 가지의
스킬들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먼저 할 것을 먼저 해야죠.
그럼으로 우리는 정말 진실되고, 확신에 찬 주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러한 자를 찾으십니다.
이 역사를 최고라고 외쳐줄 자, 주님이 최고라고 외쳐줄 자, 세상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하늘의 것이 존귀한 것임
을 알릴 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자, 확신하는 자, 확고부동한 자,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 진실함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우리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여러,분 섭리인이 아니면 섭리역사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섭리역사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의
도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임무가 무엇인지, 자기가 어떤 역사에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
엇을 전하고 말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몸이 묶여 살아요. 몸이 서로 섞여 삽니다. 그래도 마음이 따로 놀면, 오래 살
아도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등을 확 돌려버려요. 왜? 몸은 섞여 사는데 마음은 따로 살아요.
어떤 사람은 무색할 정도로 등을 확 돌리는 것 뿐만 아니라, 등에 비수까지 꼽는 무서운 역사까지 일어난다는 것입
니다.
여러분 세상이 정해놓은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주님만 알고 계세요.
세상도 보지 못한 진실 속에서 왜곡되어진 진실을 저희들은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시대 사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받
아들였으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내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내 속에서 좋은
이미지를 창출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통해서 나오니까, 나라는 사람이 너무 중요합니
다. 여러분 자신이 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 속에 들어가면 여러분의 이미지화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니 마음을 내게 줘. 니 정신으로 살지마. 내 정신으로 살라.” 그래야 그 말씀이 마음 가운데 들어가서 살아야 주
님의 이미지로 되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살아계실 때, 마태복음 5장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돌리게 하라.”
주님은 그러한 삶을 사셨죠. 사람들은 그 행실과 마음을 보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들도
이왕이면 멋있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미지, 이미지가 중요하죠.
이미지로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됩니다. 품질이 안 좋은데, 이미지 때문에 물건을 사듯이 그만큼 이미지가 중요합니
다. 그러나 섭리사는 환란과 핍박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은 이미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첫인상, 섭리사의 너무도 좋은 이미지가 때로는 좋지 않게 흘러가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일도 생겼습니다. 바
로 이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저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섭리역사는 3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하나 저희
들이 체계를 갖추고, 하나하나 구상하고 시간이 갈수록 완벽하게 굳건하게 만들어져 갈 것입니다.
먼저 이 섭리와 섭리의 구조 이 체제를 지적하기 보다 내 자신이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자신이 변하지 못한 모
순이 무엇인지, 고쳐나갈 때 온전한 섭리사가 됩니다. 주님은 그렇게 인생을 사셨죠. 구조와 체계를 먼저 만든 것이
아니라 그 한 인생을 변화시킴으로 인해서 한 사람이 살아있는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관광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하이. 서울’ 하면서 한국을 홍보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외국인이 와서 돌아다니는데 ‘하이’ 가 아닌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으로 인해 나쁜 이미지를 심고 갑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외교관이 되야 그 나라가 발전한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증거하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어야만, 주님의 사람들이 되고, 밝고, 오고 싶고, 듣고
싶고, 있고 싶고, 같이 하고 싶은 섭리사가 됩니다.
말에 힘이 있고 말의 능력이 있는 자는 바로 행한 자입니다. 받아들여서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않고, 실천
하지 않고, 내놓기만 하는 자는 입만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자는 힘이 없어요. 입만 움직입니다.
방법은 너무 좋아요. 이렇게 하면 좋을 거 같애 그런데 가다보면 한계에 부딪혀요. 그냥 보고, 모순만 지적하고, 그
냥 보고, “이렇게 하면 좋겠어. 이렇게 하면 좋겠어.”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떠한 말을 내놓을 때는 적어도 내가 그러한 인생을 살고 있을 때, 그러한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생명력
있는 섭리사의 이미지를 만들려면, 우리부터 삶을 통해 본이 되어짐으로 생명력있는 인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 자기의 문제를 직시하라. 자신의 문제점을 직시하되 남의 시선으로 쳐다보지 말고 섭리사의 문제점을
직시하되, 남의 문제로 쳐다보지 말고, 내 자신의 아픔으로 느껴라.
사랑하는 내 몸에 하자가 있어요 .물건에 하자 있듯이 안좋은 부분이 있습니다. 내 것이 상해있고, 찢겨 나가고 ,온
전하지 못하면, 그렇게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남의 것이 온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고 그냥 쳐다보고 지나가게
되죠. “어떻게 살아? 얼굴이 저래서.” 그렇게 하고 지나가게 되죠. 내 몸이 그렇다면 나에게 아픔이예요.
왜 항상 많은 말들이 조언이 되지 못하고 악평이 되느냐.
내 몸과 같이 내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쳐주고 함께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의 시선으로 쳐다보며 문제점과 지적했
기 때문에. 이제 섭리사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문제점은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고쳐야 됩니다. 성공학 강연을 많이 하죠? 저도 성공학 강연을 몇가지 들어 봤는데요.
성공학 강연의 승패는 바로 정말 성공한 사람이 성공학 강연을 하느냐, 아니면 성공학 강연을 연구해서 하느냐. 말
을 좀 못해도 정말 성공한 사람이 강의를 해야 제대로 된 강의 생명력이 있어요. 제가 엊그제께 두 가지 유형을 봤
어요. 역시 말만 하는 자는 오래 앉아서 듣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행실 삶을 통해서 나타낸 자, 그와 같은 인생을 산자는 똑같은 말인데 그 말에 힘이 있고, 확고한 의
지 자신감이 있었어요. 거기서 마음이 움직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이랴.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랴. 주님의 말씀 또한 말 잘하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목소리도 다듬어야죠. 그러나 자기가 먼저 생명력있는 말씀을 듣고, 자기가 먼저 소화해야 목소리 좋은 자보다 엄청
난 파워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하나 갖추어 가는 우리들이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자기자신을 볼 때, 완벽할 정도로 자기가 자기를 볼 때, 흠이 없어서 지적하지 않을 정도까지 그 정도로
만들어야 완벽한 거지.” 엄청난 말씀이죠. 사실 남이 나를 보는 것보다, 내가 나를 볼 때, 내가 더 많이 나의 모순을
알게 됩니다. 나는 나의 삶을 다 보고 있거든요 .약간의 흐트러진 모습까지 다 보게 되요.
“니가 너의 자신을 볼 때 완전한 흠이 없을 때까지 지적할 것이 없을 때까지 만들어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를 만들어서 우리 자신의 달란트를 가지고 꼭 해야할 일입니다.
고치면 고칠수록 빛이 나고, 회개하면 회개할수록 빛이 납니다 .온전해지면 온전해 질수록 빛이 납니다.
마치 바다가 내가 강이 되고, 강이 흘러 바다가 되듯이, 우리의 성령의 역사 또한 날마다 불어나는 역사가 되어야
우리 앞에 소망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명구원에 있어서 선생님의 사상과 정신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라고
했습니다. 섭리역사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가르쳐 줘야될 것인가? 여러분 지금 다 한번쯤은 고심하지 않았을까? 저는 다른 것을 모른다면 이것은 알
기를 바랍니다. 그냥 세운 섭리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요술방망이로 뚝딱. “월명동아 나와라. 잔디밭 쫭. 약수가 터
져볼까.” 이렇게 해서 절대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얼마나 노력하고 피눈물 흘리면서 키웠습니까? 여러분들을 쳐다보시면 예수님
은 만감이 교차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보시면서도 얼마나 만감이 교차하실까?
참 기특하기도 하거니와 옛날 일을 생각하면 잘해주기도 뭐하,고 그렇지만 열심히 믿음지키고 잘하는 것 보면 또
잘해주고 싶고. 그런 저희들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어디 있어요?
이 섭리역사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역사가 아니예요. 땀과 눈물과 정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구상과
능력과 성령님의 감동감화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졌어요.
우리 섭리역사는 월명동을 개발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안 되는 환경 속에 주님께서 인식을 바꿔주시고 하게끔 해줘서 이루어냈어요. 하나하나 차근차근 주님이 역사하지
않았다면 손도 안 댔을 것입니다. 이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할 생각조차 안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탓하리요.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도바울이 말했죠.
하나님이 우리 역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낳으셨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모두 하나하나 다 만들었습니다.
흙도 한줌한줌 다 하나하나 만들어놓은 세계이고, 이 섭리역사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뺏기면 안되요. 사탄은 그냥 가져가잖아요. 눈물과 정성으로 키워놨더니만, 너무나 잔인하게 빼내
가잖아요.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저는 이런 말을 들었어요.
“아이고, 그 월명동 개발하는데 인력을 다른 데 썼으면 큰 일을 했지.” 그 분이 굉장히 인격이 있으시고 사회적으
로 인지도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 앞에 “참 죄송합니다. 저를 무례하고 버릇없다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지
만, 저는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제자인데 그 제자가 앞에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믿고 이 역사 앞에 접을 붙여 살아가는데,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이 버릇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할
말은 하고 살아야죠. 누가 나에 대해서, “어디서 그렇게 일하게 됐어? 어디서 땅에 떨어진 것처럼 복도 많아.”
그럼 저는, “참 죄송한데 저는 이 곳에 하나님 예수님이 있기에 목숨걸고 살고 있고, 피땀 흘려 피눈물을 흘려 살
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말은 삼가주시기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어찌 그런 말을듣고 방관하며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면 그런 말에 동조하는 것이죠. 바로 이런 것들이 섭리사의 이
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말이 버릇없는 것이 아니죠. 할 말은 정확하게 해야해요.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한번이라도 주님의 입장에서, 이 역사를 이끌어오신 선생님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면 혀를 조심할 것입니다. 이 섭리역사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30년의 역사지만,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요. 그 역사를 어떻게 단면만 보고, ‘그렇다’ 너무나 너무나 담대하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정말 말도 안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이 이미지를 잘 만들어야 되요. 예의있을 때는 예의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할 때는 당당하게, 예의있게 하면 됩니다. 말씀으로 싸워이기고,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싸워 이기면
됩니다. 자기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 괜찮습니다. 회개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음을 반드시 알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입장을 알고, 주
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 역사를 이끌어오신 선생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장한 저희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편지광고 많이 나갔죠?
어떤 사람은 “왜 그렇게 편지를 쓰지 말라는 거야? 특급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거야?” 합니다. “이유를 말해줘!” 못
말합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이라도 스승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편지 못 보내게 하려고 그냥 막 말씀 하시겠어요? 아니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역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데요. 맨손으로 이끌어 아무도 도와주는 자 없는 가운데, 기구절창한 인생으로 무시당하고, 천대받으면서, 여러분 한
사람 이 곳 가운데 이끌어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해가 가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라도 유익이 되게 하시려고 몸부림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절대 토를
달지 않고, 말을 지켜줄 거예요. 우리가 몰라서 손해를 당하고 우리가 파내서 손해를 당하는 일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가 이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선생님을 오해하면 되겠습니까?
노심초사 밤새 한 자라도 더 말씀 주시려고,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본인생각 하지 않으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죠. 정말로 우리를 잘 이해해 주시죠.
이해의 예수님이십니다. “몰라서 그래. 가르쳐 줘야지. 사람이 몰라서 반대하고, 몰라서 핍박하고, 몰라서 죽이고,
몰라서 메시야인 나도 죽이지 않았냐. 몰라서 그래.”
이해하고, 용서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 주심으로 이 세상의 구원역사가 다시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입장을 이해하는 자는 주님의 말씀을 받게 되요. 주님의 말씀을 받고 거기서 한 단계 더 가서 주님의 입장을 아는
자는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되요. 이 말씀에 여러 가지 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 말씀은 못 드립니다.
주님의 감동의 말씀을 듣는 자도 말씀을 듣는데서 끝나는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한단계 더 가서 그 마음과 외로움을 이해해 드려야 해요. 그래야 주님의 사랑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여러분들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주님의 입장을 이해해 드리기도 하고, 더 나아가 더 주님의 입
장에서 알아드리고, 헤아려 드림으로 인해서 주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기존에 와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지도자분들. (저부터) 옛날에 수고한 것에만 빠져있지 말고
항상 변화를 이끌어내는 자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먼저된 자로서 할 일이지요.
“먼저 된 자로서 변화를 이끌어 가며 변화에 동승하는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냐. 변화를 이끌어가지 않으면, 변화에
동승은 해가야지 않겠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물은.요 위에서 아래로 흐르죠.
계속 변화하죠. 물이 흐르지 않고 변화하지 않으면 썩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데, 물은 위에도 물이 있고, 아
래도 있어.요 그런데 변화, 시대의 흐름은 다릅니다. 흐름이 탁 오잖아요.
시대의 흐름이 이렇게 흘러오면요. 흘러간 곳, 이미 옛날에 있는 곳은 비어 있습니다. 변화는 현재, 변화를 이루고
있는 곳에만 차고 넘치는 것이 변화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또한 흘러간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발에 맞추어서 그 발맞추어 뛰어야 주님의 변화의 역
사에 흘러 넘치는 역사를 맛보고,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해요. 방관자가 되면 안됩니다. 방관자가 되면 악평이요, 불만이요, 불평이요.
내 것이 되면 문제도 나의 아픔이고, 발전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봐도 내 아픔이고, 내가 안할 수가 없어요. 아
프니까 그래서 나의 것으로 삼아 받아들여 주님이라는 좋은 이미지로 세상에 내놓는 섭리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창밖을 내다봐야 해요. 세상 사람들 기성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봐야합니다.
섭리역사가 얼마나 귀한지 깨달아야 해요. 그런데 먼저는 섭리역사 가운데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섭리역
사의 흐름을 파악한 상태에서 내다봐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내다본 세상을 좌지우지 조절할 수 있어요. 받아들일 것
을 받아들이고 뺄 것은 뺍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다보는대로 쏠려요. 변하지 않게 굳건한 반석 위에 서서 세상을 보
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받아들일 것만 받아들이고, 빼낼 것은 빼내야 합니다.
이 역사에 자신감이 있습니까? 확신이 있습니까? 섭리사가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것이 되었
어요. 이 시대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까? 그러면 하나하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님의 심정과 일체되어 생
명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야 됩니다.
마음이 금단의 열매라고 했죠? 신앙을 파선한자, 혹은 지금도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다 주님이 사랑
했다 했던 사람들이요, 주님을 사랑한다 했던 사람들인데 그런데 어떤 자는 신앙을 파선하고, 어떤 자는 여기 남아
서 열심히 하는가 말로만 사랑했는지, 마음까지 주었는지 여기서 좌우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더러우면 사랑해줄 수가 없어요. 그를 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기에, ‘사랑한다’ 말해 줍
니다. 우리가 마음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 마음에 임할 수 없어요. 주님은 깨끗하신 분이시기에 회개하
지 않고 더러우면, 주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이 취하실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을 취하지 않으면, 말로만 사랑이라 결국 깨지고 말아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
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마음을 취하고, 내 삶을 취하고, 우리의 영혼을 취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주님의 것이 되요. 그 동안 말로만 주님 사랑한다고 하며 살았던 사람들, 상황과 환경으로만 이 역사가 맞
다고 믿으면서 따라오기만 했던 사람들, 주님 그 마음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갈수록 그 마음을 채워줄 수가 없기 때문에 신앙을 파선하고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분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취하셨습니까? 아니면 말로만 여러분이 취하셨습니까? 여러분은 말로만 주님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셨습니까? 아니면 마음까지도 주님을 자기 것으로 삼으셨습니까?
마음까지 주님 것으로 삼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금 이따 할
께요. 네 ,주님이 내게 직접 들어오지 않으면요. 결국 자꾸 멀어져요. 자꾸 멀어지면 남남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세계는 절대 법칙의 세계라고 했어요. 여러분 절대 법칙 마음을 줘야, 깨끗하게 해야, 그 마음을 취하고
예수님께서 마음의 금단의 열매를 취하셔야 절대 헤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선생을 모시고 가는 섭리사가 아니라, 너희 선생처럼 나를 모시고 가는 섭
리사가 되길 바란다.” 하나의 이야기를 할께요.
너무 착한 소가 살았어요. 너무 착하고 온유한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너무 담대함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 소가 너무 용맹스럽고 담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쫓아다니게 되었어요. ‘어쩜 나는 저런 게 없
는데, 어쩜 저렇게 용맹스러울까.” 그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졸졸 쫓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호랑이도 그 마음을 받아줘서 너무 사랑하다가, 헤어질 수가 없어서 결혼을 하게 되었대요. 소는 호랑이에
게 다주고 싶었습니다. 정말 다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호랑이가 일을 하러 나간 사
이에, ‘맛있는 풀을 다 뜯어다가 맛있는 음식을 해주자.’
그래서 맛있는 풀을 뜯어다가 음식을 준비하고, 호랑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고 하자, 호랑이가 식탁에 왔는
데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먹나. 처음에는 사랑으로 생각하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소는 좋은지 알고 호랑이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하루, 이틀, 열흘, 한달, 1년을 계속해서 똑같은 풀만 갖다주
는 거예요. 호랑이는 그것을 계속해서 먹을 수가 없었고, 나중에는 만나기가 두려운 거예요.
“먹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이렇게 먹다가는 내가 죽겠구나.’ 자꾸만 꺼리는 마음이 있어서 가까이 하
지 못하니까, 소가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나는 모든 것을 다 해줬는데 왜 저러지?’ 그렇게 하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소는 호랑이의 마음을 몰랐던 거예요. 한번이라도 물어보면 좋았을텐데. 진심으로. 모르고 오해한 것입니다. 소는 모
르고 오해를 하,고 돌아서면서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나는 목숨 바쳐 최선을 다했어.”
여러분, 최선을 다했으나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결국은 제각 각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수고와 사랑이 헛되지 않으려면 마음을 알아줘야 되요. 마음을 줘야 되요.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취하셔야 됩
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되요.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았는지, 아니면 말만 그렇게 하고 내가 원하는대
로 내 주관대로 살았는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인지 알면서도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만 하면서 살았는지, 우리는 하나하나 정비하고 돌아보며 올해부터는 완벽하게 살아야 됩니다.
“네 마음을 내게 주어라. 내가 네 마음을 취하게 하라. 그것이 사랑이다. 말로만 하고 행동으로 하지 않는 것은 사
랑이 아니다.” 회개도 그렇죠. 회개하고 말하고 행동하려면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수고와 노력을 하기 싫어서 편하게 말만 하고 살아갑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말하는 것은 계약하는 것과
같고, 행동하는 것은 돈을 지불하는 것과 같다.”
행동하는 것은 돈을 지불하는 것, 사람이 집을 살 때 계약금을 조금 지불하고 계약을 하는데 그렇다고 내 집이 아
닙니다. 계약을 하면 돈을 후에 완전히 지불해야 내 집이 됩니다.
이와 같이 말로 계약을 하고 행동으로 완전히 지불을 해야 주님은 완전히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신랑이 되려면, 말로 계약하고 행동으로 지불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마치겠습
니다. 말씀 마치기 전에 광고 하나 할거예요.
오늘 원래 은하수부터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이성에 대한 교육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부서별 교육으로 바꾸었습니다. 한꺼번에 하기엔 방대하고 효과
적이지 않을 거 같아서 이 교육은 대대적으로 하라고 하셨는데, 각 부서는 이 말씀에 따라 교육을 해주시고, 특히
가정국은 신경써서 해주셔야 합니다. 특히 교회, 각 부서, 그리고 신학 여기서는 정확하게 말씀에 대한 교육 첫 번
째, 그리고 이성에 대한 교육 두 번째, 바로 우리는 성령의불 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불은 진리와 사랑을 만날 때 폭팔적으로 일어나는데 진리와 사랑이 안 되면 성령의 역사는 무색하
게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대대적으로 올해는 말씀과 이성에 대한 교육을 해나갈 것입니다.
이것은 각 교회 부서에서 계속해서 신경쓰시고, 쓸만한 자료가 있으면 제공할 것입니다.
여러분 교육이란, 생명구원이란, 자신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만들어놓는 것이라고 했죠.
반드시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행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육적사랑은 꽃가루를 먹는 것과 같고, 영적 사랑은 꿀을 먹는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꿀먹고 살
아야죠. 오늘 마지막 성경구절 사도바울의 말씀 히브리서 6장 1절 9절 말씀.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에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교훈에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대로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
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받고 은사를 맛보고 성령의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회개하여 새롭게 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
성령을 받고, 회개를 받고 용서의 말씀을 받고, 회개를 받고 또 범죄하는 자, 이들은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
아놓고 만방에 드러내놓고 욕되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섭리사 나의 것입니다.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서 세상에 내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기도해야 되겠죠? 기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께 사랑을 느끼게 해드리고, 내 마음을 전달해 드려야죠.
주님은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인사해야지. 나한테. 나한테 먼저 인사하는 거야. 그리고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사람은 1:1의 관계에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름을 부를 때 사람은 가장 많이 느끼고, 이름
을 부를 때 살아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주님을 살아 존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성령님은 계십니다. 예수님도 있습니다. 천사들도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름으로 그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존재감을 느끼면 역사가 일어나죠. 놀라운 이름, 예수님을 부름으로 이 섭리역사 가운데 이 기도하는
가운데 충만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이름 불러요. 노래 한 곡 하고 확신과 확실한 소망을 갖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찬양반주) 제가 확신을 갖고 소망을 가지고 이 역사를 이끌어갈 주인공이예요. 예수님 저는 할 수
있어요. 저는 확신한다니까요. 예수님 나한테 와주세요. 나한테 와주시면 제가 정말 다 드릴 거예요. 예수님 느끼시
나요? 예수님 이곳에 계시나요? 내게 와주세요.
(주의 이름 불러요 찬양)
<마침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지금 이 자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난 30년 역사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각 개인의 인생 가운데
도 함께 하시어 우리를 이곳에 살아있게 하신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살아있는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며, 살아있는 마음을 주관하시며, 살아있는 마음 깨끗한
마음을 취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되지 아니하면 누구의 것이 되리요.
주님의 은사와 빛을 맛보고, 성령의 뜨거운 역사와 권능을 맛보고, 주여 무엇을 바라보리요. 무엇으로 이 역사를
증거하리요. 주님, 나입니다. 주님, 나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시대 섭리역사를 증
거하는 살아있는 증인들이 아니겠습니까?
주님 이들을 귀히 여기시며, 귀히 보살피시며, 떠나지 마시며, 보살펴 주시고, 회개하면 용서하시며, 주님의 것으로
온전히 삼아 주시옵소서. 주님으로 시작한 섭리역사, 주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
리를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 스승을 대적하리요. 너무 많이 피지 못한 이 역사 가운데 주님 말로 할 수 없는 탄식과
눈물로 역사하신 이 역사 앞에 누가 단 한마디의 말로 이 역사를 정죄하리요.
주님 그 모든 세력을 깨부수어 주시옵시며,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의 세력들은 사라질 줄로 믿사옵나이다.
섭리사의 먹구름들이 사라지며, 근심 걱정들이 사라지며, 환란이 사라지며, 대적하는 자들이 사라질 줄 믿습니다. 주
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들을 조정하는 사탄을 몰아내 주시옵소서. 사탄마귀를 몰아내 주시옵소서.
굳건한 반석에 서게 하시며, 오직 주님을 바라봄으로 성령의 불과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그 빛의 복음에 바로 서서
이 역사를 증거하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확신함으로 간구하옵나이다.
소망을 가지고 간구하옵나이다. 주님 우리와 영원까지 함께 하시며, 주님께 간구하는 모든 자들 주님의 말씀 따라
행하는 모든 자들, 주님 말로 계약하고 행동으로 지불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며, 그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주어 주님
의 것 삼아 주시옵소서. 빛이 날 줄 믿습니다. 굳건할 줄 믿습니다. 전진할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역사 앞에 온전한 역사를 세 울줄로 믿사옵나이다. 간구하는 모든 자 성령의 불덩어리로 녹여주시
며, 성령의 불덩어리로 태워주시며, 성령의 불덩어리로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간구하고 애원한 모든 자
들, 주님, “과정 가운데 모든 재림의 역사는 진행된다. 과정 가운데 나를 맞는 자라야 그날에도 나를 맞지 않겠냐.
내가 사귄 자라야 내가 아는 자라야 내가 왔을 때 데리고 가지 않겠냐. 내가 무엇을 주었을 때 그것을 남긴 자라야
데리고 가지 않겠냐.” 주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 이들이 남길 수 있는 인생 살 수 있도록 받아들인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주님의 것으로 만들어 이 모든 것
을 세상에 만방에 떳떳하게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외칠 수 있도록 더 함께 하여 주시옵
소서. 주님은 “지금도 인치고 다닌다.”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인치는 자라야 그 날에도 데리고 다닌다.” 고 했습니
다. 주님의 재림의 역사에 맞추어 인치심을 감사드리며, 소망 중에 감사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힘쓰는 모든
자들 가운데 역사하시며 이 환란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았습니다.
이 소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뜨겁게 불타오르는 소망인줄 믿사오니 이 소망이 영원히 영
원히 사라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신학, 능력과 은혜로 더하셔서 올 한 해 완전함으로 함께 하시어 진리로
충만하게 하시며, 담대하게 증거하는 시대의 사도들이 나오게 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섭리사의 각 사람들 세계의 각각 한 사람들에게 주님 나타나 주시어 온전한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우
리 스승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요술방망이로 쳐서 이 섭리역사가 나온 것이냐?
이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냐? 바로 이 역사는 사랑의 역사인데, 주님은 신부를 찾으시는데, 신부이면서 일할
사람을 찾으시는데 사랑하면서 그 일을 자기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일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사랑의 역사인데 이 사랑의 역사를 어떻게 이루어 왔느냐. 모르면 되겠습니까. “내 앞에 주님 앞에 사랑을 이룬 자
만이, 그 사명을 받아 이 역사를 이룰 수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주님 저희들도 그러한 역사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역사 신부의 역사의 사명자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
하여 주시옵소서. 섭리사의 이성문제가 사라지며, 사랑과 진리로 온전한 섭리역사가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스승, 주님의 능력으로 권능으로 임하게 하시며, 말씀이 없이 비틀거리며 갈망하는 이 젊은 시대를
감당할 수 있도록 영적인 권능과 능력으로 임하실 줄 믿사오며, 그의 육적인 소원까지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모
든 걸 주께 맡기며, 하나된 섭리사, 똘똘 뭉쳐 나의 섭리사.
섭리사가 아프면 내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섭리사가 즐거우면 내가 즐겁고, 이 형제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이 형
제가 즐거우면 나도 즐거운 하나된 똘똘 뭉쳐 하나된 섭리역사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그러한 화평과 능력의 역사가 여기 모인 모든 자들에게 충만할지어다. 모든 것 주께 감사드리며 저희들의
모든 기도를 통해서 영광받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하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빌립보서 1장 8절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
되시니라.” 선생님의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우리 무리를 사랑하시는 선생님의 말씀, 감동
으로 전해 주시겠습니다. ‘할렐루야’ 로 맞이하시겠습니다.
<주윤애 계시간증>
2009년 11월 14일 밤8시경
모임 중에 예수님께서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함께
오심을 느꼈어요.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렸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선생님께 ‘한마디 해’하시며. ‘이 시간 너에게 줄게’ 말씀하시고 선생님께서 말씀
하시기에 기록을 했어요. 저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선생님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사랑하는 나의 섭리의 제자 모두에게.......
이 시간 예수님께서 너도 한마디 해. 그동안 하고 싶은 말 많았지? 하시며 윤애와 대화하는 시간 내게 내주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나의 제자 너희 모두와 이 시간
대화하며 보내려 한다.
이 선생을 따라 그동안 우리는 많은 시간을 달리고 또 달려왔다. 그 세월이 벌써 열매가 익듯이 영글어 탐스러운 열
매가 되었어. 내가 너희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과 떨어져 만나지 못하는 시간들과 너희와 대화하며 보냈던 그 날들
과 한 명 한 명과 함께 예수님과 많은 추억남기고자 이 생애에서 함께 했던 우리의 시간들이 하나의 인생이란 단어
로 맺어졌구나.
난 오직 너희와 함께 예수님 사랑해드리는 그거 하나가
나의 인생의 되길 원했다.
나의 육이 부서지게 행했는데 우리 예수님의 마음 만족하셨을지 이 하나님의 역사에 내가 그 뜻을 더 온전하고 완
전하게 해드렸는지. 그건 하나님만 아시고 예수님만 아시고 너희가 하나님과 예수님께 드리는 사랑이 결과로 남을
것이야.
그렇지. 음 맞아. 그래.
아무것도 없이 이 예수님의 역사 시작했다.
오직 주님을 희망, 소망으로 삼고 이 역사 과감하게
나는 나의 손을 내밀어 주님 손잡아 이루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오직 주님의 심정 하나 받고
불되어 뛴 것이다.
그 뜨거운 사랑이 불이 되어 나에게 그리고 우리 섭리사에 오는 모든 환난도 이기고 어려움도 이기고
그리고 나를 넘어지게 하는 그 모든 일도 이기고 걸어왔다.
나를 넘어뜨린다 이를 박박 가는 사탄 이기고 이렇게 묵묵히 이겨 이 역사 이렇게 이루었단다.
지금은 주님께서 많은 자 통해 내가 외치지 못하는 답답한 심정까지 전하시며 정말 이 역사 하나님, 예수님의 역사
임을 더 실감케 하고 이 역사의 맺음을 이루고 있으시다.
섭리의 제자들아. 우리가 무엇을 보고 이 역사 가는 것이냐.
너희가 나의 무엇을 보고 이 길을 따라왔느냐.
무엇을 배우려고 나의 제자 되어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왔느냐.
나의 돈 때문이었느냐.
내가 가진 어떤 하나의 명예 때문이었느냐.
그래. 너희는 내가 너의 갈급한 인생의 영혼에
주님의 사랑 가르쳐주니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나의 가르침, 주님의 가르침으로 아멘! 하며
나를 따라 온 것이잖아.
나도 주님께서 돈 주신다고 명예주신다고 해서 온 거 아니야.
인생의 어려움으로 어찌 살아야 될까. 외치고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를 주님의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사랑의 길,
이 하나님의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사 나에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알려주셨다.
나의 사랑하는 섭리의 제자들아.
지금은 예전보다 더 잘 되고 있다. 그리고 후에는 지금보다 더 잘 될 것이야.
왜냐하면 이 역사는 우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이고 우리의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역사이
기
때문이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했던 것도 너희에게 더 예수님의 사랑
느끼게 해주려 함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 예수님을 한낱 살다간 한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늘 함께 해주고 계시는 주님을 느끼지 못
하고 옆에 계시는 우리 예수님 눈에서 자꾸 피눈물만 펑펑 흘리게 해 내가 애가 타 너희 옆에서 주님께서 너희에게
이렇게
함께 해주고 있다 알려주려 너희와 함께 하며 주님을
불러드려 우리 예수님 한 시라도 1분이라도 눈물
멈추게 해드리려 했다.
이런 나의 마음 모르고 세상은 잘 못 되었다 하는구나.
나의 제자들아.
너에게는 정말 알려주고 싶구나.
나의 이 심정 이 깊은 심정 이 역사에 남기려 한다.
너희는 나의 심정 알아주고 사랑한다 해주고 감사하다
해주니 내가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고마워.
너무 바쁘다. 이 역사 내가 가기 전 주님 마음 속 시원히
다 이루어 드리고 가려하기에 내가 너무 바쁘고 바쁘다.
넓은 마음과 사랑의 예수님이 이 시간 한마디 속 시원히
하라 하시며 시간 주시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말한다.
제자들아.
너희와 나는 이 생애에서 주님이 맺어준 스승과 제자로
만났구나.
내가 참된 스승 되어 너희를 이끌어주고 싶었다.
세상에 많은 인생의 가르침 전하는 사람 있지만,
난 너희에게 실천하는 모습 보여주고 정말 참된 인생 살게 해주어 너희 마음 한쪽에 우리 스승, 기억해주는 참된 스
승 되어 주고 싶었다.
인생의 스승 찾아 해매이며 찾지 못해 죽으려고 하는 자
많기에 징검다리가 되어 우리 예수님과 만나게 해주려
했단다.
섭리의 나의 제자들아.
너희 모두를 진정 나는 사랑한다.
너희가 꼭 주님의 신부되어 그 나라 천국에 함께 가서
영원 기쁨의 삶 살길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 하나님 기쁘시고 우리 예수님 기쁘시고
너희 또한 기쁘다면 그리 하다면 나 또한 기쁘다.
내 육신 부서져도 내 육신은 아프다 해도 그 아픔이
무엇이랴.
너희가 주님 만나 행복해하는 것만으로 난 기쁘단다.
내 사랑하는 섭리의 생명들아
우리 어떠한 힘든 환난이 와도 넘어지지 말자.
예수님이 오라하신다.
주님께서 준비해두신 그 나라 천국에 와서 함께 살자 하신다.
주님께 의지하며 꾹 참고 일어서면 환난은 너희에게 없음이라. 그러나 무너지면 너희에게 큰 환난이 되는 것이야.
그리하여 주님 품 떠나면 절대 안 된다.
예수님 너희 살리신다고 그 십자가에서 또 모든 피를 쏟으셔야 하며 못 박음의 고통 받으시며 너희를 살려야 한단
다.
우리 이제는 예수님의 마음 꼭 알아 내가 너에게 주님과의 징검다리가 되어 스승 되었듯 너희 또한 주님 모르고 살
아가는 생명들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님과 만나게 해줘요.
그리하여 너희 또한 인생의 참된 가르침 주는 스승이
되어주어라.
인생에서 나는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너희를 살린다며 주님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 의논하며 울며 대화한 그 추억이다.
그 추억으로 난 우리 예수님 더 깊은 사랑이 되어 주며
산다. 그리고 너희에게도 진정한 사랑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사랑 주님의 사랑아.
너희도 나와 같이 주님께 그런 신부되어 드려라.
예수님은 매일같이 주님의 몸 되어 줄 자를 찾으신다.
“너희가 이 육신이 없는 서러움을 아느냐.”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 기억하며 주님의 몸이 되어
우리 인생 드려 살아보자.
주님의 몸 되어 주님의 신부되어 사는 삶이 가장 성공한 삶, 가장 가치 있는 삶, 가장 행복한 삶, 기쁨의 삶 사는
것이다.
나는 바빠. 예수님과 대화해야 해요.
너희에게 말씀 줘야하니.
주님께서 주신 이 귀한 시간 너희에게 몇 마디 남기고 가요. 예수님께 꼭 감사하다고 말해줘요.
사랑하는 주님의 신부들.
나 또한 너희를 사랑한다.
우리의 사랑, 추억 잊지 말아요.
나도 다 기억하고 있단다.
주님께서 잊지 않을 수 있는 기억력의 능력 주셨다.
주와 사랑하며 이 하나님의 역사 6천년의 한 맺힌 신부의
역사 하나님의 한 풀어드리자.
늘 주님 의식하고 깨끗케 하며 신부되어 살아야 해요.
그럼 안녕.
울지마요 나의 사랑.
너희를 나 또한 너무 사랑한다.
편지에 사랑한다 쓰지 않아도 평소에 사랑한다 하는 말
듣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슬퍼하지 마요.
알았지?
사랑해.
안녕 주님의 기쁨의 사랑 신부 모두 안녕.
섭리의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보낸다.
안녕 안녕 안녕 사랑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