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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0.04.02 (금)

2010년 8월 18일 수요예배 간증문 주이랑

선포일
2010.04.02 (금)
성경 본문
이사야서 55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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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8월 18일 수요예배 간증문-주이랑2010040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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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사, 시대의 에덴동산 - 작성일: 2010년 4월 2일 ~ 8월 12일 - 작성자: 주이랑 (서울 진실한교회)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를 할 때마다, “역사를 기록해야 해. 내 마음이 급하다.”하시며 여러 가지 간단간단하게 말씀해주셨고, 4월 2일 새벽기도 할 때 정리하여 말씀해주셨습니다. 대화로 받은 말씀이라 보 기 편하시도록 번호를 매겨 정리했습니다. * 예수님 말씀 * 내 신부야, 오늘은 내 너에게 ‘역사’를 증거하고자 한다. 깊은 나의 말이니 진정한 사랑과 감사로 나를 따라오너라. 1) 재림의 역사 재림의 역사는 쉬이 말해 ‘나 예수를 만날 만한 때’다. 이사야서 55장 6절에 말하길,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하였다. 때, 때, 때, 이는 운명을 바꿀 기회다. 바로 너의 운명, 민족의 운명, 세계의 운명, 천주 역사의 운명이니라. 지금은 재림기간이다. 너는 이것을 진정 믿느냐? (네, 예수님. 저는 진정 믿습니다.) 그래, 고맙다. 진정 믿어주니 고맙다. 많은 자들이 나의 재림을 들어도 가슴이 뛰지 않는구나. 진부한 2000년 역사의 허공 치는 소리로만 듣고 있구나. 매일 매일 그들에게 도적같이 나 예수가 임하고 있음에도 알지 못한다. 영체의 빛나는 몸으로, 실체의 신으로 그들에게 찾아가나 그들은 모른다. 눈이 떠지지 않아 모르고 귀가 열리지 않아 모른다. 그러니 나는 그들과 재림의 역사를 펼 수가 없구나. 내 신부야, 초림은 나 예수가 직접 육의 몸으로 강림한 때였지? 그때 많은 자들이 나 예수를 보았고, 나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 예수를 메시아, 그리스도로서 알고 대한 자가 많지 않았다. 알든 모르든 나 예수가 육으로 존재하던 33년의 시간, 특히 3년의 공생애 기간은 온 인류에게 나 예수와의 만남을 허락한 기간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나 예수, 곧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끝나고 나 예수가 영체의 몸이 되었을 때 2000년간 어느 누가 어떤 노력과 수고를 해도 육체의 나 예수를 만날 수 없었노라. 나의 말 한마디 듣지 못했노라. ‘때’가 얼마나 귀한지 알겠느냐. (네, 예수님 마음으로 확실히 깨달아집니다.) 재림의 역사, 휴거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곧 나 예수를 만날 때다. 나 예수와의 만남을 허락한 때다. 천국의 문이 열린 기간이다. 고로 사랑으로 침노하는 자마다 나 예수를 만날 것이요, 나의 음성을 들을 것이요, 천국을 볼 것이요, 가려졌던 진리의 실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재림의 기간은 온 인류에게 동일하게 흘러간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지금 너희 인류는 추수의 때, 가을의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천주의‘때’를 맞이하였다. 가을이 되면, 꽃은 자연스레 열매로 바뀐다. 이와 같이 수고로 사랑의 꽃을 피웠던 자들은 나의 사랑의 빛, 진리의 빛, 시대의 빛으로 말미암아 그 꽃이 열매로 바뀌어 차원이 다른 만남과 사랑을 이룰 것이다. 누구든 수고하는 대로 변화될 것이요, 나 예수를 만날 것이요, 사랑할 것이요, 재림을 실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 섭리 가운데는 이 비밀을 선포하여 육의 귀로 듣게 하고 알게 하니 얼마나 감사하냐. 알았다면 수고함으로 재림을 실감하여라. 내가 주는 이 기회의 때에 나를 만나 보아라. 수고로 너희 영을 변화시켜라. 변화하는 만큼 깊은 사랑으로 나를 만나리라. 나와 대화하리라. 나의 역사를 힘차게 뛰고 달리리라. 2) 중심역사와 방계역사 (예수님, 맞습니다. 재림은 우리 섭리사에게만 주신 역사 가 아니라 온 인류 가운데 지금 행하시고 있는 역사의 실 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지금 전 세계적으로 ‘선지 자’사명을 받고 뛰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역사와 우리 섭리역사는 어떻게 다른가요?) 역사는 ‘중심역사’와 ‘방계역사’로 나눠진다. 내 너에게 이미 ‘섭리가 중심역사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너무나 귀한 말이다. 깜짝 놀라 감격해야 할 말이다. 오늘은 너에게 더 깊이 역사의 이치에 대해 설명할 테니 목숨 걸고 나의 말을 받아라. 절대 집중하여라. (네, 예수님. 목숨 걸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겠습 니다.) 중심역사는 곧 에덴의 역사를 말한다. 아담과 하와를 시작으로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신약에 이르러 나 예수를 중심으로 나의 제자들의 역사, 이 모든 것이 중심역사였다. 중심역사는 쉬이 말해 ‘사랑과 심정의 강줄기’와 같다. 역사의 강줄기는 사랑과 심정으로 전해지고 전해지며, 성서는 이러한 중심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중심역사는 역사의 크고 작음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고대광실 드높은 궁궐이 나를 부른다 하여도, 내 마음에 맞지 않아 내 발길 닿지 않는다면 신랑 뺏긴 쓸쓸하고 외롭고 처량한 사랑방일 뿐이다. 고로‘뜻’이 문제요, 심정이 문제요, 사랑이 문제다. 즉, 최첨단의 사랑의 역사가 진행되는 그곳, 그곳이 중심역사다. 역사는 원뿔형의 모형이다. 이는 귀한 말이니 깊이 되새겨 깨닫고 또 깨달아야 한다. 원뿔의 꼭짓점은 시대의 ‘중심인물’이다. 중심인물 단 한사람을 통해 처음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케 되는 역사를 이루나니 이것이 ‘중심역사’의 노정이다. 곧 중심역사는, 중심인물을 통해 내 아버지가 행하시는 역사의 행적이다. 역사의 기록이다. 또 원뿔을 보아라. 꼭짓점 중심역사와 함께 그 아래 무수히 많은 방계역사가 공존하고 있지? 이와 같이 역사도 중심역사와 방계역사가 함께 가는 게다. 방계역사는 민족, 나라, 종파, 예술,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별로 다양하게 진행된다. 그 경계선은 무수히 많다. 지구촌을 보아라. 지금 이 시간에도 각 나라는 자기의 수준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지? (네, 예수님) 그런데 앞서가는, 소위 말해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기술의 혜택, 문화의 혜택, 복지의 혜택 등 갖가지 축복과 혜택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소위 말해 ‘후진국’이라는 나라들의 존재가 없느냐? (아니요, 그들도 각자의 삶을 살죠.) 이와 같은 이치다. 중심역사와 방계역사는 공존하며 함께 간다. 고로 중심역사에만 내 아버지가 역사하지 않으신다. 방계역사도 그 수준대로 내 아버지 역사가 진행된다. 그런데 섭리사 어떤 자들은 나 예수가 너희 섭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시험이 들고, 신앙을 파선하더구나. 지옥으로 가도 변명할 수 없는 무지, 무지, 무지다. 한번 생각해보아라. 여기 두 명의 고3 수험생이 있다. 한 명은 중심역사 주관권이나 축복을 구하지 않는다. 또 한명은 방계역사 주관권이나 내게 축복을 구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축복이 가겠느냐? (방계역사 주관권에서 축복을 간구하는 자일 것 같아요.) 그래, 맞다. 맞아. 법칙에 따라 당연히 내게 축복을 구하는 자에게 축복이 임할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이 내게 축복을 구했다고 하자. 그러면 누가 내 축복을 얻어갈 것 같으냐? (중심역사와 방계역사에 존재하는 모두가 축복을 받았겠 지만, 중심역사에서 구한 자가 더 쉬이 얻었을 거 같아 요.) 그래, 맞다. 그렇지. 그것이 주관권의 혜택이지. 주관권의 혜택을 쉬이 표현하면, 왕에게 간청을 하는데 핸드폰 주관권에 사는 자는 당장 전화를 걸어 얻을 것을 얻는데, 편지 주관권에 사는 자는 얻을 것을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이치다. 그런데 이 시간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내 진실로 말하노니, 이것은 단순히 주관권의 혜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깊이 설명하자면 중심역사에 거한 자와 방계역사에 거한 자가 축복을 구하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쉬이 말해 내 마음을 열어 축복을 가져갈 수 있는‘방법을 아는 자’가 중심역사에 있는 자라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 중요한 말이다. ‘방법’을 알아야 산길도 오른다. 중심역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역사’다.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방법’을 알려준다. 나의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나 행함의‘책임분담’을 하지 않으면 결코 축복이 더해지지 않는다. 즉 아무리 신부의 역사에 거하여도 신부로서 행하지 않으면 결코 신부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고로 중심역사의 혜택은 ‘방법을 아는 것’이다. ‘길을 아는 것’이다. 너희는 오르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 그럼 방계역사와 중심역사는 언제나 따로 가나 요? 따로 공존하는 것이 뜻인가요?) 아니, 절대 아니지. 중심역사의 역할은 ‘길을 내는 것’이다. 누구든 오를 수 있는 길을 내는 것, 그것이 나와 중심역사가 행할 역할인 것이다. 어떤 특별한 기술이 발명되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모두 그 혜택을 받지 않느냐. 그러나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가 문제다. 그러나 내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재림 역사는 곧 ‘통합의 때’다. 중심과 방계가 하나 되는 역사다. 나 예수를 믿고 사랑하는 모든 자들이 하나의 군대가 되어 궐기하는 때다. 구심점은 중심역사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들 듯, 나 예수가 임한 중심역사로 내 사랑하는 신부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통합되길 거부하는 방계역사는 성서의 역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수십 년, 수백 년이 흐르고 흘러 그 길이 끊어지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3) ‘육의 역사와 영의 역사’인 재림 역사 지금까지 나는 지금부터 전할 말을 위해 너를 전초 하여 깨닫게 하였노라. 지금부터 전할 말이 오늘 내 너에게 전하는 핵심적인 말씀이니 절대 집중하여 나를 좇아라. 중심역사는 성서를 기록하는 역사이기도 하지만 성서의 예언을 이루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너에게 ‘역사는 역사가 증거한다.’고 그리 숱하게 말한 것이다. 이는 너무나 깊은 말이니 언제나 마음에 품고 나의 말을 들어야 한다. 초림 역사를 자세히 보아라. 이는 곧 재림 역사의 모형이다. 초림과 재림은 하나의 짝이 되어 하나의 완성된 구원역사를 이룬다 하였다. 무엇이었느냐? (초림은 아담 역사 곧 하늘 역사, 재림은 하와 역사 곧 땅의 역사라 하셨습니다.) 맞다. 오늘은 더 깊이 들어가 초림과 재림 모두 육의 역사와 영의 역사의 결합으로 진행됨을 말하겠다. 초림의 역사는 33년 내 육이 살아 이끈 역사와 40일 부활 생애 역사 모두를 말한다. 이는 곧 육의 역사와 영의 역사였다. 하나의 쌍을 이룬 역사다. 그렇지? (네, 예수님 그러합니다.) 이것이 재림 역사의 핵심이다. 육의 역사와 영의 역사. 이것이 무엇이겠느냐? (예수님, 잘 모르겠습니다.) 너는 왜 너희 선생이 30년간 나의 사명을 가지고 행했다고 생각했느냐? (저는 선생님께서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행하셨기 때문에 실상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사명적인 힘 으로 끌고 오셔야 했던 시대적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 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뜻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맞다. 그렇지. 너의 믿음이 오늘 날 너와 나의 만남을 낳았구나. 잘했다. 그러나 너는 역사를 기록할 자이니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한다. 내 진정 말하노니 섭리사 지난 30년은 재림 역사에 있어 ‘육의 역사’와도 같았다. 지금부터 깊은 말이니 잘 따라와. 나 예수를 보아라. 나 예수는 인성과 신성이 겸비하고 있다. 성서에 기록되길, 나 예수가 육의 몸을 지닌 것을 믿지 않는 자가 이단이라 하였고, 신의 몸인 것을 믿지 않는 것도 이단이라 하였다. 그렇지? (네, 예수님.) 고로 인성과 신성 모두 온전히 깨달아야 구원이 이루어진다. 이는 확대시켜 육의 역사, 영의 역사를 말한다. 육과 영은 쌍이다. 육이 없이 영이 존재할 수 없으며, 영이 없이 육이 존재할 수 없다. 왜 천인과 같이 영으로 너희 인간을 창조하지 않고 육을 주었겠느냐. 육을 통한 영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육을 통해 영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내 말을 알겠느냐? (네, 예수님 육을 지녔기 때문에 영의 사랑이 완전하게 되는 이치를 알겠습니다.) 고로 육의 구원 역사, 영의 구원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내 아버지께서는 나 예수를 ‘육신’을 입혀 내려 보내신 것이다. 육의 행함을 온전히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육신을 쓰고 여호와를 모시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육신의 구원이 무엇인지, 육신이 구원된 삶이란 무엇인지 실체로 보여주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육신의 행함 곧 마음을 통한 육신의 행함이 너희 구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통한 육신의 행함으로 1) 너희의 영은 성장하고, 2) 인생의 수고의 열매를 거두며, 3) 육신 천국을 이룬다. 제 아무리 나 예수와 같은 정신과 마음을 가진 자라도 육신의 행함이 없으면 결코 천국을 이룰 수 없다. 여기서 천국은 너의 마음의 천국, 가정천국, 민족천국, 세계천국 곧 육계의 천국이다. 고로 내 역사는 결코 육의 세계 곧 현실을 도피하여 산으로 도망치는 역사는 없다. 나 예수가 너희를 사랑함으로 육신을 쓰고 너희와 함께했듯, 내 사랑하는 제자라면 반드시 이 땅 너희의 현실에서 나의 뜻을 이루며 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너희의 소명이다. 고로 지난 섭리사 30년은 나 예수가 너희 선생을 통해 육의 역사를 진행하고, 나의 인성을 깨우친 시대다. 이 말을 알겠느냐? (예수님, 조금 어렵습니다.) 나 예수는 이미 육신이 죽어 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재림 역사는 ‘영의 역사, 하와의 역사, 땅의 역사다.’ 그렇지? (네, 예수님.) 그러나 재림 역사에 있어 인성과 신성은 함께 가며, 육의 역사 영의 역사는 함께 간다. 그러나 ‘중심축’이 다른 것이다. 초림은 인성과 신성 중에 인성이 핵심이요, 육이 핵심인 역사다. 고로 나는 육의 몸을 쓰고 너희에게 갔노라. 그러나 재림은 인성과 신성 중에 신성이 핵심이요, 영이 핵심인 역사다. 고로 나는 영의 몸으로 너희에게 재림할 것이다. 그러나 중심축이 다르다 할지라도 인성과 신성은 역사 가운데 축소되어 함께 간다. 고로 초림에 있어서도 나는 40일 부활 생애를 통해 신성의 역사를 선보이고, 영의 역사를 펼치며, 재림 역사의 전초를 진행한 것이다. 초림 역사를 가만히 보면 재림 역사가 보인다. 그 안에 답이 있는 게다. 그로 인해 나는 선생의 육을 통해 ‘인성의 그리스도’가 되어 너희와 함께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어찌 사람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느냐.’며 떠나갔다. 그들은 ‘사람’이라는 포장지는 보았으나 그 안에 거하는 나 예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보지 못했겠느냐? 알려고 하지 않아서이지. 왜 알려고 하지 않았겠느냐? 안다는 교만 때문이었지.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구원’이라는 절대 절명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려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곧 나 예수를 만나려는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들이 쥐고 있는 신앙, 주관, 생활, 세상 등을 놓고 싶지 않아서이다. 즉 나 예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고로 그들은 초림 때 육으로 강림한 나 예수를 만났다 할지라도 나를 따르지 못할 자들이다. 왜인지 아느냐? 초림 때 나를 따른 자들은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믿고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재림 역사의 ‘홍해’와도 같다. 육으로 그 사랑을 보여주는데도 따르지 못하는데, 어찌 영적 재림 역사의 ‘요단강’을 건너겠느냐. 눈에 보이지 않는 재림 역사는, 더욱 간절히 나를 만나려는 수고와 노력과 몸부림으로 맞이하는 역사인데, 그런 안일하고 형식적이고 교만에 찬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어찌 나를 맞이할 수 있겠느냐. 고로 홍해의 강은 너무나 중요했다. 4) 섭리사가 중심역사 신부야, 각 시대마다 내 아버지가 선택한 에덴동산이 있으니, 이는 곧 내 아버지의 중심역사를 말한다. 중심역사는 하나의 강하고 힘찬 물줄기로, 6000년 역사를 관통하며 오직 ‘사랑’이라는 내 아버지의 뜻과 방향으로 달려온 역사다. 아담과 하와 시대를 보아라. 그 시대 많은 자가 각자의 수준대로 ‘신’을 상상하여 내 아버지를 찾고 불렀다. 그들 역시 제사도 지내고, 기도도 하고, 기도의 응답도 받으며 나름의 신앙을 구축하였다. 그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한 자가 누구이겠느냐? 천상천하 유일신 여호와 내 아버지다. 그러나 내 아버지는 오직 아담과 하와에게만 깊은 영적 교감과 교통을 허락하시고, 그들을 구원역사의 시작으로 삼았다. 왜이겠느냐? 그들은 ‘사랑의 신’이신 내 아버지의 본체를 깨닫고 눈을 떠 사랑으로 나아왔던 첫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통하는 법. 고로 내 아버지의 마음의 문도, 말의 문도 열어 구원역사의 시작을 꿰차게 된 것이다. 고로 아담과 하와가 거하는 곳이 에덴동산이요, 내 아버지의 사랑의 거처가 된 게다. 지금 이 시대를 보아라. 지금은 많은 자가 내 아버지 여호와와 나 예수의 이름을 알고 구원의 길이라 믿으며 거대한 기독교 왕국을 이루어 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왕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교파마다 개성과 특성이 다르게 나를 섬기며 따른다. 어떤 교파는 나를 구세주 신으로서 대하고, 어떤 교파는 나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육의 인간으로 대하고, 어떤 교파는 여전히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떤 교파는 신앙이 죽어 이방 종교와 같이 나를 대하고 있다. 이는 마치 아담과 하와 시대에 다양한 신을 상상하여 그것이 그들을 창조한 신이라 믿고 섬겼던 자들과 같은 모습이다. 고로 나 역시 실체의 나 예수를 깨달아 사랑으로 대하고 맞이하는 곳을 택하여 발길도 닿고 마음도 닿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심역사다. 그렇다면 이 시대 내가 택한 에덴동산이 어디이겠느냐? 바로 사랑의 역사가 활화산 같이 타오르는 너희 섭리사다. 이곳에 나의 마음이 닿으니, 갖가지 사랑을 나타내며, 내 말문을 열어 성경 역사의 비밀을 쏟아 내고, 내 육신이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이 너희 섭리사를 이끌어 행하고 있다. 깨달아지느냐? 그런데 최고의 사랑과 축복을 너희 섭리사에 주었음에도 이곳을 떠나 다른 종파의 동산을 오르는 자들이 있다. 특히 내가 사랑하여 역사의 시작부터 나의 에덴동산에 불러 함께 일구며 역사를 뛰던 자들이 나와 선생을 버리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니 내 심정이 매우 거스르는구나. 이러한 자들은 마치 내가 사랑하여 청혼함으로 신혼방에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었지만 마음이 변하여 ‘친구’나 ‘동료’로 지내자 하는 자로, 이는 곧 사랑에 있어 이별이니 나를 매몰차게 버리고 떠나 사랑의 상처를 내게 안기게 되는 꼴이다. 이들은 나의 나라 천국에 온다 할지라도 내 얼굴을 감히 볼 수 없을 자들이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는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없는 이치다. 다른 비유로 말하자면, 이는 마치 에덴동산에 심어 최고의 사랑과 퇴비로 고이 기른 나무가 뿌리까지 뽑혀나간 꼴이다. 큰 나무일수록 다른 곳에 옮겨 심는 것이 어려운 이치와 같이 그들이 다른 동산에 스스로를 옮겨 심으려 하여도 결코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울 게다. 이는 그들이 사탄의 꼬임으로 스스로 뿌리를 뽑았기 때문에 나의 동산이라 여기며 다른 동산을 오른다 하여도 영적인 실상은 사탄의 무덤을 오르고 있는 격인 꼴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는 결코 구원을 이루지 못하였다. 섭리역사, 나의 에덴 역사에서 스스로 마음을 돌이켜 떠난 자들은 실상 나의 뜻에 의해 추방된 자들로 구원을 이루기 힘들다. 첫째, 그들에게 향한 나의 뜻을 깨트린 죄인이요, 둘째, 내가 행하는 중심역사를 모욕한 죄인이요, 셋째, 이는 곧 나 예수를 모욕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죄는 큰 죄 중에 큰 죄이니 쉬이 용서될 수 없다. 고로 다른 종파의 동산에 오른다 하여도 이 죄를 청산하지 못하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나니 구원은 정확하고 세밀한 마음의 판결이다. 사람은 속여도 나 예수는 속일 수 없다. 여러 가지 말로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 하나 나는 너희의 영혼육의 세밀한 변화까지 불꽃같이 지켜보며, 너희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삶의 행태를 아는 자가 아니냐. 나는 거짓된 너희의 말이 아닌 마음을 보는 자다. 사랑도 구원도 극과 극의 세계다. 이들은 결국 나와의 사랑을 잃은 결과요, 사랑을 빼앗긴 결과다. 사랑을 잃으니 구원이 어려운 것이 아니겠느냐. 명심 또 명심하여 마음 판에 새겨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나의 사랑도 받고 축복도 받으며 부지런히 나를 좇아라. 내 눈길 닿는 나의 에덴동산에서 너의 꽃도 열매도 무성히 아름답게 가득하길 바란다. 지금은 온 인류에게 나 예수 만남을 허락한 때다. 그러나 너희 섭리사는 너희 선생의 공로로 나 예수를 어찌 만나야 하는지 그 비밀을 알려 주었다. 휴거의 비밀은 결코 알려주는 법이 없다. 재림의 비밀도 결코 알려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중심역사이기에 내 친히 전하는 게다. 왜이겠느냐?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서를 기록하는 역사다. 2010년 첫 주에 내 너희에게 무어라 말했느냐? 가진 자는 더욱 풍요롭게 될 것이요, 가지지 못한 자는 그 가진 것까지 빼앗기게 될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재림 역사의 깊은 비밀이다. 나 예수를 찾으려 하는 자는 더욱 풍요로운 만남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 예수를 찾지 않는 자는 그 작은 신앙까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무서운 말이다. 역사는 고통과 행복이 같이 간다고 늘 말하였지? 나 예수의 뜨거운 사랑의 역사가 진행될 땐 사탄의 바람 역시 거세다. 지금 이때에 수고하지 않는 자는 사탄의 바람에 넘어져 끌려가게 될 것이다. 너는 내가 섭리역사 가운데 함께함을 믿느냐? (네, 예수님 저는 절대 믿습니다.) 너는 섭리가 중심역사임을 믿느냐? (네, 예수님 저는 절대 믿습니다.) 한 인생이 섭리 동산에 뿌리를 내려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그 모든 것이 나 예수의 역사다. 그리고 그 존재가 나 예수의 증거가 된다. 역사에 사라진 이름들을 보아라. 그들에게 행한 나의 역사도 함께 사라졌구나. 애통하다. 서글프다. 그러니 내 신부야, 너는 절대 변치 말고 영원토록 나 예수를 증거하여라. (여기서부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서 해 주시기 바랍니 다.) 5) 월명동은 ‘사랑’이요, ‘나 예수’ 내 깊은 사랑을 헤아려 그 마음에 담을 자 누구며 내 불타는 사랑 앞에 온전히 설 수 있을 자 누구랴. 그 누구의 언변이 나의 말을 담겠으며, 그 누구의 사랑이 나의 사랑을 감히 표현할 수 있으랴. 나 예수의 근본체를 온전히 본 자가 누구며 나 예수의 근본체의 말을 온전히 들은 자 누구랴. 저 산은 여호와의 웅장함을 그림자와 같이 담을 뿐이며, 저 바다는 여호와의 끝없는 영원함을 그림자와 같이 본땄을 뿐이며, 온 우주의 광활함은 여호와의 영광과 존귀를 그림자와 같이 새기었을 뿐이니라. 온 우주 만물 그 무엇이 여호와의 근본을 담아내며, 온 인류 그 누가 나 예수의 근본을 온전히 담아내랴. 어린아이는 나의 말을 투명히 받는 그릇이며 장성한 자는 나의 말을 위엄 있게 받는 그릇이니 온 우주 만물로도 담지 못할 여호와의 사랑이며, 온 인류로도 다 표현치 못할 나 예수의 사랑이니라. 나 예수를 사랑함으로 더 깊이 더 높이 오른 자만이 나의 웅장한 근본체를 만날 수 있으니 더 위엄 있게, 더 웅장하게, 더 신비하게, 더 순수하게, 더 깨끗하게, 더 아름답게, 더 사랑스럽게 나 예수를 증거할 자 누구랴.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요, 표정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요, 육계 세상 그 무엇으로가 아닌 영혼의 깊음으로 밖에 전할 수 없는 나 예수를 증거할 자 누구랴. 깊은 영혼을 담아 증거할 때 그 영혼이 소생하여 나의 사랑에 대답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오게 되나니 사랑은, 영혼으로 증거하는 게다. 내 사랑아, 너는 눈을 떠 월명동 나의 성전을 보아라. 아름답고 신비롭고 웅장한 나의 위대한 자연 나의 성전을 보아라. 너는 무엇이 보이느냐. 자연이 보이느냐, 너는 육에 속한 자로구나. 선생의 정신이 보이느냐, 너는 혼에 속한 자로구나. 나 예수의 사랑이 보이느냐, 오호라, 너는 영에 속한 나의 신부로구나. 나의 성전에 깃든 나 예수와 너희 선생의 사연을 너는 아느냐. 네 선생은 인류 그 누구보다 나의 근본체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사랑으로 만진 자라. 누구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가장 위대하고도 신비로운 나 예수의 성산을 가장 높고도 깊이 오른 자가 바로 사랑하는 네 스승이다. 그는 온 우주로도 다 담지 못하고 온 인류로도 다 표현치 못할 나 예수의 웅장함과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만났나니 인류 그 누구도 감히 체험치 못한 나 예수의 ‘근본체’를 이 땅 가운데, 보이는 이 육계 가운데 새기어 영원히 남기길 원하였다. 나를 향한 네 선생의 이 깊은 사랑을 알기에 나는 나의 성전을 이 땅 가운데 허락하였나니, 1000년사 길이 남을 월명동 자연성전이로구나. 월명동 나의 성전을 보아라. 저 웅장한 자연석은 위대한 나의 사랑이요, 저 떨어지는 폭포는 장엄한 나의 사랑이요, 저 푸르른 잔디는 순수한 나의 사랑이요, 저 높다란 소나무는 고고한 나의 사랑이요, 저 잔잔한 호수는 투명한 나의 사랑이요, 저 신비로운 소나무는 변치 않는 나의 사랑이구나. 시원스레 네 마음을 살랑이는 바람은 나의 애틋한 사랑이요, 네 귓가를 속삭이는 벌레들의 노랫소리는 나의 애잔한 사랑이요, 내 코끝을 훔치는 포근한 향기는 내 설레는 사랑이라. 사랑, 사랑, 사랑. 이 마지막 역사 가운데 나 예수와 나의 육신 된 너희 선생은 오직 ‘근본의 사랑’만 말하고 싶은데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너희는 여전히 타락된 육의 눈으로 나의 역사를 보고, 나의 성전을 보고, 나의 육신 곧 너희 선생을 바라보니 각자의 수준대로 보고 수준대로 말하는구나. 쉬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높고도 높은, 험하고도 험한 사랑의 근본에 도달할 자 그 누구랴. 불타는 태양 아래 동일한 불이 되어 설 자가 누구랴. 투명하고 깨끗한 내 사랑을 본 자가 어찌 내 앞에 주관으로 나아오고 자존심으로 나아오고, 욕심으로 나아오고, 죄로 나아오랴. 깊은 심정의 내 사랑을 본 자가 어찌 가벼이 나의 역사를 말하고, 중심을 잃은 얕은 사랑을 말하고, 제 주관의 판단을 말하고, 내려놓지 못한 제 삶을 주장하랴. 내 사랑의 웅장함을 본 자가 어찌 진실하지 못한 사랑으로 사랑을 대하고, 흔들리는 사랑으로 사랑을 대하고, 경건함을 잃은 사랑으로 사랑을 대하고, 고결함을 잃은 사랑으로 내 사랑을 증거하겠느냐. 나의 역사, 이제는 근본 된 ‘사랑’을 증거하여야 할 때니, 잃어버린 사랑의 이름도 되찾고, 잃어버린 사랑의 근본도 되찾아 처음 너희 인류에게 허락하사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느끼게 하신 그‘사랑’을 온전히 깨달아 나와 함께 증거하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사랑을 나와 함께 기록하자. 내 사랑은 오직 ‘사랑’이다. 위대하며 아름다운 사랑이구나. 내 사랑을 담은 월명동에서,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