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0.04.16 (금)
2010년 4월 16일 천국성령운동 말씀
- 선포일
- 2010.04.16 (금)
- 성경 본문
- 새벽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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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6일_천국성령운동_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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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6일 천국성령운동 말씀>
-계시말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고백
작성일 : 2010. 3. 14 (일) 새벽 5:00
작성자 : 정명심 목사 (대구스타)
[‘사랑해서 구원 한다’라는 주일말씀 주제를 듣고 사랑에
대하여 더욱 알고 싶다고 간구 드렸을 때 예수님께서 말
씀해 주셨습니다. ]
사랑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네가 나를 닮고,
내가 너를 닮고,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할 수 있고,
상대를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면서도
기쁜 것이다.
감사한 것이다.
감사는 기적을 낳고,
사랑은 천국을 낳고 구원을 낳는다.
천국의 사랑은 서로 시기 질투하지 않으며
절대 각자의 사랑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사는 도다.
천국은 흠잡을 수 없이
아름답고 고귀하고 순결한 사랑이 가득한 곳이다.
너도 천국에 오려면
이와 같은 사랑이여야 함을 꼭 기억하라.
(예수님께서는 사랑이 최고인가요?)
그래, 나는 사랑이 최고이니라.
나 예수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약이니라.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아프고,
심정 다치고, 가슴 찢기고, 헐고,
피눈물의 연속이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약으로 바르고
온전히 치유되고 싶구나.
(예수님은 어떤 사랑 고백이 가장 좋으세요? 하고 여쭈었
더 니, 직접 우리 입장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맘과 뜻과 목숨 다해 주님만을
최고로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나는 변치 않는 사랑을 좋아하니,
‘영원히’ 라는 말이 들어가면 좋겠고,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길 바라니,
‘최고’라는 말을 넣었다.
‘맘과 뜻과 목숨’은,
너의 마음과 너의 의향과 너의 호흡까지도
늘 나만의 것이 되길 바라노라.
절대 나만 보라.
(절대 예수님만 바라보며 평생 살겠습니다!)
그렇게 살길 축원하노라.
나는 사랑의 예수임을 기억하라.
사랑으로 다가와야
사랑으로 나아간다.
너는 도자기 굽는 법을 아느냐?
아름답고 예쁘게 만든 도자기를
800도 이상의 뜨거운 불에 초벌구이 한 다음,
유약을 바르고 또 재벌구이를 하지 않느냐.
나를 향한 사랑도
아름답고 뜨겁다 할지라도
진정 너의 사랑을 쏟아 붓고,
성령의 용광로 속에 다시 한 번 거듭나지 않으면,
덜 구운 도자기와 같이 쉽게 깨어진다.
튼튼하고 견고하여
절대 변하지도 변질되지도 않는
그와 같이 튼튼한 단단한 사랑하여라.
저 세월에도 환경에도 어디에 두어도
빛을 내며 존재감 있는 사랑의 작품이 되어라.
사랑의 값은 따질 수 없는 것이니
절대 뺏기지도 ,
소홀히 다루어 깨어지지도,
낡아 버리게도 않게 하여라.
진정 사랑이 너를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에서
구원하여 줄 것이니라.
깊은 바다 구명조끼요,
어둠 가운데 빛이요, 희망의 끈이다.
놓치지 마라.
귀하디귀한 구원 길의 보증수표요,
천국 삶의 티켓이다.
소중한 보물처럼 꼭 끌어안고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말고 근신하고 긴장하여
온전히 나에게 다오.
사랑이 견고한 자 되어라.
사랑이 튼튼한 자 되어라.
너의 영, 혼, 육이 사랑의 지체가 되어라.
영원히 사랑하며 가자.
나 혼자 사랑은 안 된다는 것 알지?
함께 하자.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허물도, 단점도, 온전치 못함까지도.
하지만 완벽하게 고치자.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외쳐주셨습니다.)
사랑이 핵심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나와 대화한다.
작성일 : 2010. 3. 19 (목) 새벽 2:20
작성자 : 정명심 목사 (대구스타교회)
[ 철야를 하며 예수님을 진정 사랑한다고 고백 드리고,
주님의 말씀를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순수
하게 위로해 드리고자 기도를 할 때 주님께서 나아와 말
씀해주셨습니다. ]
마음이 깨끗하고 청결한 자 되어라.
그러한 마음 가운데
내가 역사하고, 대화하며, 나의 말을 해주노라.
너는 수시로 방을 치우듯이,
너의 마음의 방을 치워라.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네가 특별히 간구치 않아도
내가 들어가 대화하자며 너에게 말을 건다.
사랑아, 사랑아
너는 너의 마음을 점검하여 너의 신랑을 맞아라.
욕심도, 시기질투, 서운함도, 섭섭함도
모두 다 소각해버리고,
온전한 너의 마음의 방에 나 주 예수를 모시라.
영원히 너의 안에 살고 싶구나.
내 신부야, 너는 신랑을 맞으러 나온 열 처녀를 아느냐?
(네,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고,
나머지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지 못하였느니라.
그 이유는,
다섯 처녀는 자기를 청결하게 하였고,
나머지 다섯은 자신을 깨끗이 만들어 놓지 못하여,
신랑을 맞는 것에 실패하였다.
자신을 청결히 한다는 것은
몸도 깨끗해야 되겠지만,
영혼의 상태를 깨끗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이 개끗해야 맞을 수 있다.
깨끗이 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여 행실로 옮겨
하나의 티가 없어
조건 잡히지 않고 사탄마귀를 굴복시켰다는 것이다.
먼지하나 없는 곳에 파리모기가 꼬이겠느냐?
너의 마음과 영혼을 정결케 하라.
(예수님, 등은 무엇을 상징하고 의미하는 것입니까?)
등은 너의 영혼을 의미한다.
너의 영혼의 등불을
항상 준비하고 예비하고 있으라는 의미이고,
기름은 성령이며 성령으로 꼭 불 붙여
너의 영혼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항상 살려둬야 됨을 의미한다.
꺼지는 날에는 너의 영혼도 온전하게 살지 못하느니라.
또한 등은 나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를 꼭 붙잡고 어느 순간이라도 놓으면 안 된다.
내가 너의 등불이요,
내가 너의 길잡이다.
나를 놓치는 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이다.
내가 길이요, 생명이다 하지 않았느냐.
나를 붙잡고 나와 함께 나로 말미암아
모든 것 하자꾸나.
신부야, 나는 영원한 너의 신랑이로다.
이 말 명심하고 끝까지 나를 놓지 말고, 이 길 가자.
영원히 사랑한다.
너의 영혼육의 신랑 나 예수가
할렐루야. 네 반갑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께 하나님께
영광돌려 볼까요? 할렐루야.
이 곳은 성령의 불이 타는 대전입니다. 정말 그 뜨거움
이 전세계까지 전해지고, 또 여러분의 각 나라 각 교회
속하신 모든 처소에서 주님께서 뜨거워서 너무나 기뻐하
시고 뜨거워서 모든 것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게끔 그런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감사가 넘쳐나는 만큼 자기의 마음을
비워내고, 주님의 뜻을 헤아렸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비워냈다는 것, 그리고 그
만큼 주님의 뜻을 헤아렸다는 증거입니다. 또 우리의 마
음 속에 사랑이 넘치는 것은 그만큼 주님의 심정을 깨닫
고 그만큼 주님과 통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 끊이지 않음은 그만큼 기쁨과 진
실함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모든 것
의 시작에 앞서 기도가 끊이지 않음은 그만큼 주님 최우
선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생명을 구원하고자 전도하시는 여러분들 그만큼 자기
자신을 살렸다는 그 증거입니다. 또 생명을 관리하는 자
주님의 몸이 되어서 그만큼 주님께 힘을 드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새기는 자 여러분의 귀와 마
음에 끈임없이 그만큼 실천했다는 증거입니다
회개하고 간구하는 자는 그만큼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고백하며. 온전한 변화를 이루어 왔다는 증거입니다. 여
러분 그 산 증인들이 이 곳에 또 함께 모여서 성령의 역
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기쁜 날입니
다. 우리 주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시작해 보도록 하
겠습니다. 한번 해볼까요? 우리의 마음을 모두 담아서 우
리 입술의 증거로 마음의 증거로 주님 앞에 사랑을 고백
합시다. 주님. 주님. 최고로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하겠
습니다. 아멘.
오늘 그에 대한 더욱 더 확실한 응답 확실한 증표를 여
러분, 받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섭
리사 계신 모든 여러분들 너무나 수고 많으십니다.
여러분들의 노고와 수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더
깨닫기 위해서, 더 많이 실천하기 위해서, 더 회개하기
위해서, 더 성령을 받기 위해서, 더 많이 말씀을 듣기 위
해서, 너무나 여러분 처소에서 많은 몸부림을 치고 또 자
기 한계를 극복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성령을 통해서 새
생기를 얻기 위해 오신 줄 믿습니다.
또 섭리사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죄를 위해서 더 많이
행한 자, 더 많이 주님 앞에 사랑을 간구한 자들이 선생
님의 짐을 나누어지고, 주님의 짐을 나누어지고, 오늘도
함께 그들을 위해 뛰어줄 것을 믿습니다.
또 아직도 마음이 온전하게 되지 못한 자는 다시 한번
거듭나기를 진실로 기도하는 바입니다. 교단에 계신 여러
분들, 그리고 각 부서 지도자들, 교역자들, 장년부, 그리
고 가정국, 청년부, 대학부, 중고등부, 예술단, 신입생들
여러분 정말 정말 수고 많다고 선생님께서도 오늘 여러
분들 수고에 대해서 꼭 인사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습
니다. 각자의 처한 처소대로 많이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몸부림은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이 행여 지나가다가 더 이상 몸부림치다가 머리
가 산발이 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여러분 그 모습이
아름다움은 그 모습이 주님을 향한 몸부림입니다. 그래도
머리 한번씩 빗어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살피긴 해야 되
겠죠.
우리는 신부니까요. 여러분의 몸부림으로 선생님의 몸부
림과 함께 섭리 역사가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주님의
크나크신 사랑으로 저희들의 부족을 감싸 안아주시고, 끝
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마음으로 섭리역사가 지금까
지 살아왔습니다. 여러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고 많으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속해서 아직까지도 애를 태우시고 심
정을 태우십니다.
긴급하게 말씀하시면서 자꾸만 “더 속히 더 속히 빨리
행하라. 빨리 내 심정을 알아달라.” 주님께서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왜 예수님의 그 마음은 더 애가 타는가.
여러분 못 먹어서 굶주린 자들보다 이미 밥상을 다 차려
놨는데 그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말라죽어가는 자들
그들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보다 아는데도 아직까지도
행치 못하고, 있는 자들을 보실 때 애가 타신다는 것입니
다. 구시대 있는 자들을 쳐다보는 것보다 구시대에서 이
미 나와 새시대에 살고 있는데 다시 옛시대를 쳐다보는
그런 사람들을 쳐다보시며 안타까워 하고 계십니다. 날마
다 더 새롭게 높은 차원으로 가야 하는 우리들이 그 벽
을 뚫지 못하고 가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워 하십니다.
여러분, 차려진 것이 있어서 빨리 그 밥을 챙겨먹어야
그 사람이 나가서 굶주린 사람을 찾아 데려와서 먹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는 자가 먼저 행해야 나가서 모르는 사
람들을 데려와 가르쳐줄 수가 있습니다. 새시대로 온전히
나와서 이 역사 가운데 뿌리박고 살아야 구시대의 자들
을 이끌어 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왜 그렇게 애가 타시냐? 여러분 자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빨리 만들어지기를 빨리 자꾸 더 높은
차원으로 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너무 잘
하고 계시고, 너무 많이 몸부림치시고 수고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애타는 심정을 안고 우리의 발걸음을 더
재촉하고, 그 심정을 알고 주님께 더 간구하고 주님과 함
께 행하면서 우리의 한계를 뚫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야
겠습니다.
우리는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적지
가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까? 정답을 알고 있습니까? 여
러분 진리를 알고 있어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
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영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
하여 천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사랑하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제일 먼저 배운 노래입니다 제가 교
회가서요. 이게 진리입니다.
여러분 입에 달고 사세요. 여러분 우리는 이 진리를 알
고 있습니까?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면 그를 보내신 이
유,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 멸망하지 않기 위해. 영생을
얻기 위해. “선생이여,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
옵니까?” 물었을 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
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
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니라.” 마태복음 22장 진
리입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몸으로 예
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되
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 보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 도대체 무슨 사랑인가 이 사랑은 도대
체 무슨 사랑인가.
마태복음 25장 1절 말씀.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
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와 같다 하리니”
신부의 사랑.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
14절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었으니 듣기는 들
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할 것이
라.” 알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을 너무 사랑하셔서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며,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되는 계명임을 알고 있
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여서 신부의 사랑, 활화산 터지듯이 참지 못하는 사
랑, 영원한 사랑, 신부의 사랑, 정결한 사랑, 애인의 사
랑, 그 사랑인지는 왜 모르고 사는 것일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주
셨으니 나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 또한 아들과 그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모른다.” 여러분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살고 있습니까?
우리 이 역사의 정답이 알고 살고 계십니까? 그렇습니
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도대체 선생님께서 어떻게 신부의 역사를 많은 세
월 동안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 이겨내시면서, 날마다 지
치지 않고 쓰러질 것 같지만 쓰러지지 않으면서 이 역사
를 지키며, 주님께 온전한 사랑을 드리는지 그것에 대해
서 기도하며, 또 선생님은 어떠한 마음으로 뛰고 계신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너희 선생은 정답
을 알고 있어.” 그 정답 무엇이냐. 신부로서 주님을 맞는
것. 신부의 입장에서 신랑을 맞는 것. 그것은 정답 진리
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해서 행하지 못하는 그 것, 보
기는 보아도 행하지 못해서 알지 못하는 그 것, 바로 그
뜻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정답으로 가신다는 것입니
다. 섭리역사에서 바라시는 뜻은 섭리역사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섭리역사에 불러온 이유는 이 안에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신부의 뜻, 사랑의 역사를
이루러 이 곳에 오신 것입니다.
형제의 사랑, 종의 사랑, 그것을 하러 부른 것이 아니라
신부의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자들 할 수만 있다면
하기만 한다면 그와 같이 살게 하려고 이 곳에 부르셨습
니다.
여러분 정답을 알아야 해요. 길가다 낙심하지 말고, 일
하다 포기하지 말고, 여러분에게 향한 주님의 뜻 정답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 진리 위에 먼저 굳건
히 서는 거예요.
두 번째 그렇다면 이 진리 이 정답을 안 사람 이 사람
은 어떻게 해야 과연 이 뜻을 이룰 수 있을까?
오늘 그것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이유는 이미 비밀이 선포되었습니다.
단 한번의 주님이 오실 때 단 한번에 여러 단계 거치지
않고 주님을 신부로서 맞이해서, 단 한번에 하늘나라 영
으로 변화를 받는 역,사 어떤 것을 거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단계에 가는 역사를 주님은 이루시길 원하
십니다. 그래서 애가 타는 것이예요. 너무나 많이 수고하
고 있어요. 모든 것을 다 투자하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만큼 섭리역사만큼 모든 것을 다 바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단계, 한 번에
“그래, 너다.” 하고 택하는 모든 사람들이 섭리사 모든
자들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고, 몇 명
이 아니라, 섭리사의 모든 사람이 다 그와 같이 구원받아
한 곳에 맞이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알면 성
공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아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있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가는 나라입니다. 신
부는 사랑해야 만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거 하
나면 알면 성공해요. 일단 진리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데 그 나라 가서 뭐하겠어요? 하나님이
나타나서 거룩하게 “여봐라.” 하시면 “누구예요?”
“내게 오라.” 사랑으로 부르시는데 “내가 왜 가는 데
요?” 이런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이것
은 선생님의 삶을 통해서 받으신 주님의 말씀이예요. 가
치를 알아야 같이 살 수 있다.
하나님의 가치를 알고, 그 사랑의 가치, 신부의 사랑의
가치를 알아야만 사랑하며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영의 세계, 주님의 사랑, 우리의 말씀, 사람의 입
으로 만은 도대체 알 수 없는 것들 먼저는 사명자를 통
해서 말씀을 전해서 믿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도 알지 못하는 것,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귀로,
인간의 논리로, 인간의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을 그
래서 성령을 주시어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주님을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의 증표입
니다.
성령은 거역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주님이
없다.” “하나님이 없다.” “사랑이 어디 있느냐.” 거론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진심으로 받은 자라면 주님을 외
칠 수 밖에 없고, 주님을 토로할 수 밖에 없고, 눈물흘리
며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밖에 없고, 성령을 느끼고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역사의 증표이고 약속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신앙의 체험을 하게 되고, 주님을 만
나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부인할 수 없는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이로구나.’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
태복음 12장 32절, “누구든지 너희가 말로 인자를 거역
하면 사함을 얻되,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하
리라.” 여러분 성령의 역사는 장난이 형식이 아닙니다.
어떤 대체 도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역한 자
는 사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 나라에서
도. 성령은 최대의 무기, 마지막의 무기 깨닫게 하고, 주
님을 만나게 하며, 주님을 거역할 수 없는 엄청난 약속의
증표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장
22절, “내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보낼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할 것이라.”
그 성령이 이 역사 가운데 오실 때에 주님을 보게 하며,
주님을 깨닫게 하며, 증거하십니다. 그는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며, 장래의 모든 일을 깨닫게 한다고 했습니다. 음
성이 와서 “맞어. 맞어. 이 역사는 정말 역사야.” 음성으
로 들릴 줄 알았더니 내 마음에 영혼에 자극이 오고, 눈
물을 흘리고, 내 입이 돌아가서 방언은 안 나와도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 기도가 나온다는 것
입니다.
성령은 거역할 수 없어요. 이 진리에 온전히 서서 약속
을 지킨 자는 그 거역할 수 없는 성령으로 인해서 반드
시 주님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진행
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주님이 오실 때를 증
거할 것입니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증거하고, 주님의 심
정을 증거하고, 반드시 주님을 만나게 할 것입니다.
지친 자를 일으켜 세우시고, 죄와 악을 멸하실 것입니
다. 선과 악을 쪼개시고, 힘든 자에게 새 힘을 주실 것입
니다. 회개의 역사, 회복의 역사, 생명의 역사, 사랑의 역
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부터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성령을 받으니까요. 이것이 성령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거역하겠습니까? 한번 불을 받았을 때
불이 식으면 그 불이 식어졌을 때, 그 불을 다시 찾기 위
해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내가 받았고, 느꼈고, 보았고,
체험했으니까 성령을 받으면 목소리도 커져요.
심정이 타서요. 저의 모든 삶을 바꾸어 준 것도 이 성령
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음으로 마음에 불이 타고, 마음에
애가 타서 회개하게 되고, 더욱 더 온전하게 하게 되고,
성령이 식을까 조마조마하게 되고 목소리 톤이 굵어지면
서 “회개하라.” 외치게 되고 주님께 더욱 더 사랑을 고백
하게 되고, 온전한 삶을 살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옛날에 잡을 수 없는 마음들, “내가 왜 그렇게 해야
돼?” 인간의 논리로 생각했을 때, 절대 회복할 수 없고
나에게 말해줄 수 없는 그 모든 것들 성령이 오셔서 증
거하십니다. 이것을 어떻게 거역해요? 성령이 살아있는
곳, 주님께서 최첨단으로 살아계신 온전한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의 최고 표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
다. 누가 굳이 나에게 증거해 주지 않아도 내 스스로 성
령을 통해서, “주여, 내게 오셨군요. 주님 이건 어떻게
이루어진 겁니까? 정말 날 사랑해주신 것입니까?”
말씀에 수없이 사랑이 나와도 깨닫지 못했던 모든 마음
이 성령을 받음으로, ‘주님.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이 성
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자 사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정녕 비워진 사람들의 마음 깨끗한 사
람들에게만 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
는 우리는 이 곳에서 사랑,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 그래서 주님을 믿고 신부로서 구원받는 역사를
이룬다는 것. 이 진리 앞에 서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
리는 그래서 목적지를 알아야 해요.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 자는 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
속해서 기도합니다. 그 동안 30년 동안 이렇게 외친 말
씀, 그동안 1년의 성령집회를 통해서도 얼마나 많이 외쳤
습니까?
그래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면, “주님이시여. 성령을 통
해서 알게 하시옵소서.”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적지 정답을 알았으면 그 때부터 무엇을 해야 되나.
차의 시동이 부르릉 걸렸어요. 그러면 달려야죠. 악셀레
이타를 밟아야죠. 그 때부터는 달리는 것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정답을 알고 목적지를 아
는 자들이 해야될 일이 있습니다. 보물섬에 지도를 가진
자들이 희망을 이루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지도를 가지
고 움직여 그 곳을 향해 움직인 자가 희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목적지를 알았으면 책임분담을 해야합니다. 저
는 선생님의 삶을 한 마디로 증거합니다.
저도 몸부림치며 깨달으며 이 삶이 이렇게 아니라, “이
것이 맞지요?” 내가 직접 겪으면서, ‘이렇게 사셨구나.
선생님은 정답을 아시는구나.’ 인간이 행해야 될 책임분
담이 무엇인지 알고, 본연의 위치를 다하면서 그 본연의
책임분담을 다 하고 있습니다. 플러스.
주님께서 해주셔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주님 앞에
간구하며 붙들며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정답을 알았으니까 나의 책임분담과 주님의 책임분담을
정확히 쪼개서 내가 할 것을 하고, 주님께 간구하여 얻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절대적인 행함의 조건 속에 주님의
역사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두 가지가 공존하지 않으면
천생연분이 아니지요.
천생연분. 무엇이 천생연분일까? 내가 할 것을 알고 나
의 상대가 할 것을 정확하게 알아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천생연분이죠. 방향을 알았고, 길을 알았으면 가는 것입
니다. 아무리 생명력있는 말씀이라도 죽은 자에게 전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대고 아무 것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천생연분이 아닙니다.
방향을 알았고, 길을 알았으면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명력있는 말씀이라도 죽은 자에게 전하면 소용이 없습
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움
직여야 됩니다. 살아있는 역사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말
해요.
움직여야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움직이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멈춘 것은 죽은 것입니다. 움직
여야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생님의 특기의 말씀이 있죠?
여러분 말씀을 통해 들으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29절의 말씀. 바로 부활의 말씀. 예수님께서 선
생님께 주신 바로 특기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더 좋은 부활이다.
“너희들은 육신이 살아있으니까 육신이 살아있는 자들
에게 무덤에서 살아나는 부활이 해당되느냐. 그것이 아니
다.
날마다 정신을 새롭게 행실을 새롭게 날마다 삶을 새롭
게 함으로 인해서 차원 높은 삶으로 자꾸자꾸 올라가는
것이 육신이 살아있는 자들이 이루는 부활이다.“ 날마다
더 좋은 부활, 더 좋은 변화, 이것은 우리 섭리역사의 히
든카드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를 통해서 이 역사를 증
거하느냐. 답은 딱 하나예요. 보여줘야 해요.
살아있는 것을 성령으로 증거하며, 말씀으로 증거하며,
열정으로 증거하며, 움직임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가
죽은 자가 아니라면 반드시 살아있는 것에 반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열정이예요. 움직여야 해요. 몸부림쳐야
해요.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애간장이 타야 해요. 왜 애간장
이 탑니까? 살아있어서 그래요.
죽은 자가 애간장이 탑니까? 처참한 소식과 광경을 보
아도 그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 반응을 보이
지 않아요. 우리 역사의 히든카드는 날마다 부활이예요.
여러분 이 말씀을 누가 전하겠습니까?
날마다 고도를 높이고, 날마다 차원을 높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했잖아요. 여러분, 낙관론자입니까?
인생아. 너는 쉴새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저 파도를
보고 뭐라고 생각하느냐. 피곤하다. 생각하십니까?
비관론자요. 생동적이라 생각하느냐. 낙관론자로다. 그
보고 생각하기에 따라 인생운명 좌우되는 것이다. 변화를
이루지 않은 자는 죽은 자입니다. 왜 구시대가 구시대가
되었습니까?
변화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에. 구시대는 구시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 자리에서 차원높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제자리 걸음 하면 그것이 허무이고, 죽
음입니다.
자꾸만 단계를 높여 올라가며, 생동적으로 뛰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아픔도 쓰러짐도 있고, 낙심하게 되
기도 하고 절망하게 되기도 합니다. 왜요? 살아있으니까
요. 그러면서 사람은 움직임으로 인해서 얻어갑니다.
더 높은 곳이 있음에, 더 좋은 곳이 있음에, 날마다 체
험하며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제가 이 말씀을 지난 주
너무 일이 많아서 시간적인 여유도 안 되고, 정말 몸부림
치면서 정말 선생님께서 이를 악물고 하라셔서 이를 부
득 갈면서 했어요. 일을 다 했어요. 그 날 하루가 또 그
렇게 되니까, 모든 일정이 다 틀어졌는데 이를 악물고,
‘행하는 만큼 얻으니까 행하는 만큼만 하자. 주님 역사하
시니까 움직이자. 내가 정답을 알고 있으니까 성령을 받
았으니까 움직여야지. 움직이는 만큼 반드시 역사하실 거
다. 내 책임분담 다 하는 만큼, 주님은 반드시 책임분담
해주실 것이다. 내가 움직이자. 내가 뛰자.’
선생님은 어떤 답을 주셨냐면, “너는 지금 내가 기도하
면서 행하는 거 어떻게 알고 너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
지?”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렇게 살어. 천년을
잠을 자도 남는 게 없잖아. 뇌를 가지고 있으면 자꾸 연
구하고, 좋은 것을 생각해서 뇌에서 생각을 조립하여 실
천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무슨 소용이냐. 자꾸 내놔
야지. 인간이 이 좋은 뇌를 갖고 가만히 있으면 짐승이
지. 짐승과 다른 게 무엇인가. 날마다 더 좋은 것을 생각
하고, 더 차원 높은 차원을 행해 달려가는 것. 자꾸 내
생각을 좋은 것으로 연구하고, 계발해서 조립시켜서 실천
하는 것 이것이 인생 재미지. 이것이 인생사는 것이지.
이래야 사람이지. 끝까지 실천하는 것이 내 철학이야.”
그러나 끝까지 하되, 더 차원 높게, 더 높게, 더 좋은
방향으로.
지금은 어느 누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다 변화를 이루
는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정말 보실 분들은 보세요.
봐야 성공합니다. 보지 못하면 믿음으로 들으시길 바라
겠습니다.
본 자가 성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는 자가 성공하고,
아는 자가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 뛰고 있어
요. 특히 섭리사 사람들 많이 뛰고 있습니다. 아는데
안 뛸 수가 없어요. 그러면 언제까지 뛰어야 되느냐.
1000미터면 1000미터까지 뛰어야 합니다. 목적지를 알았
으면 포기하지 않는 것이 멋진 인생입니다. 그러면 행하
는 가운데 죽어라 가기만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100
미터 지점에 도달했을 때 희망을 느끼고, 200미터에 도
달했을 때 자신감을 얻습니다. 그러다 가면서 한계를 느
끼고, 극복하고 또 달려요. 가다보니 옆에 따라온 사람들
이 얼마 없습니다. 700미터, 800미터, 900미터 다 왔으
면 더 뛰는 거예요. 더 뛰는 거예요. 999미터 지점에 와
있으면 더 뛰어야 얻을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운
동경기 보세요. 스케이트 보면 쇼트트랙 보면 날을 내밀
어 들이지 않습니까? 참 대단한 연구입니다. 연구한 거
죠. 단 0.0001미터 라도 더 뜁니다. 그래야 그동안의 수
고가 허사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부활하시고 그냥 그대로 끝났다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
까?
주님이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것
으로 끝났어요. 그러면 어떨까요? 주님은 계속해서 더 찬
란한 역사를 펴나갔습니다. 차원을 높여서. 그래서 이 시
대가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거두는 때니 얼마나 희
망입니까? 주님께서 이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부활해
서 2천년을 기다리신 거예요. 차원높게 역사를 이루면서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심정이 타는 사람은 역사를 이
루는 사람입니다.
이 심정이 매일 불타지 않으면 나는 날마다 죽었다가
또 살아나야 됩니다. 그러나 또 이 상태에서 쓰러져. 이
상태에서 쓰러져. 제자리 제자리 얻는 것은 없고, 지치
고, 힘들고, 그러니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나아가 이곳에
서 태어나 점점점점 발전하며 살 때 그 차원 높은 삶을
삶으로 인해서 사람의 피곤함이 없어집니다.
얻는 것이 있으니까요. 발전하니까요. 차원이 높아지니
까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날마다 나는 죽노라.” 했습니
다.
매일 죽어야 다시 부활하여서, 더 주님께로 가까이 가며
오늘 육성 하나를 죽이고, 내일 육성 두 개를 죽이고, 다
음날 3개를 죽이고, 그 다음날 100개, 1000개, 10000개,
날마다 죽이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구원을 다 이루
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맨 뒤에서 구원을 이
루며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그것이다.”
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다 이루었다 생각하면 더 가겠습니까?
더 가지 않습니다. 저부터도 “오늘 천국성령운동 너 이것
만 잘 하면 끝난다. 그대로 기다려. 휴거가 일어날꺼야.”
제가 과연 더 움직일까요?
그러면 절대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절대 사람은 움직
이지 않아요. 저는 작년에 성령집회로 다 끝이 나고 다
변화를 이룰 줄 알았어요. 저도 그랬어요. 작년에 그렇게
변화되면 끝이겠구나. 진짜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 마
치고 잠을 자려고 했더니만, 그 다음주 1월 8일 성령집
회 있더라구요. 내가 그것을 끝으로 알고 그냥 가만히 있
으면 얻는 것이 있을까? 저부터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끝나는 거죠. 이 인생, 이 땅은 터전입니다. 뿌리
는 터전. 뿌리고, 거두기도 하고, 이 땅에서 뿌린 것을
하늘에서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지만 계속해서 전진하면서 주님께서 원
하시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런 말씀
하셨습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 오르면 오를수록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오르면 오를수록 새로운 기쁨과 사랑
의 세계다. 그럼 지옥은 어떤 곳인지 아느냐.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없다. 자꾸 내려갈
수록 새로운 고통과 처참한 괴로움의 세계이다.”
하늘의 세계. 누가 과연 그것이 끝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이 끝이라 말하는 자는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사
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사람은 항상 끝까지 하라고
합니다. 끝까지 하는 것이 성공이다.
그러면 그 끝이 무엇이냐? “주님의 얼굴을 보기까지 끝
을 다 해야 해요.”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주님의 손을 잡기까지 끝까지 해
야 해요.” 또 어떤 사람은 “주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끝까
지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해요. 이왕이면 인간으로 태어
나 이왕이면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사는데, 이왕이면 다
홍치마 더 좋게, 더 온전하게, 내 인생 투자하며, 내 인
생 주님 품에 안겨 살아아죠. 내 인생 끝까지 하는 정신
이다.
우리는 한 번에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끝은 주님의 얼굴만 보고, 주님의 옷깃을 스치고
말고, 주님의 얼굴을 잠깐 보는 것에서 만족하고 이와 같
이 뛰고 달릴 것입니까? 이왕이면 꿈, 포부 크게 가져야
죠. 저는 매일 주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해 죽겠어요. 죽
어도 여한이 없어요.” 뜻을 이루었으니까. 꿈을 이루었으
니까. 저는 꿈이 천국가는 거요.
여기 중고등부들이 많은데 저는 학교에서 꿈이 천국가
는 거라고 쓰고 싶은데 그렇게 쓸 수가 없어서 “행복한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라고 장래희망을 썼었어요. 천
국가는 게 진짜 소원이었어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모르면서 저는 17살 때 너무나
너무나 계속해서 신앙생활 정말 열심히 했어요. 무릎꿇고
매일 기도하면서 울부짖으면서 식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그 신앙이 식을 수 밖에 없는 이유, 내가 사랑하
는 것이 많아지고, 보이는 것이 많으니까, 누가 안 가르
쳐 주니까 식었어요.
그냥 천국가야 하니까. 그러면 천국을 갑니다? 예수를
믿으면 여러분 가족들이 잘 됩니다. 우리 가족도 예수님
을 믿고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꾸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어.요
그 신앙이 파선되려고 할 때, 예수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님께 처음 들은 말이, “하나님 사
랑함을 낙으로 두고 살아라.” 누가 그 말을 해준 적이 없
었어요. ‘아. 그것이 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구나.’ 저는
결국 천국을 바라보게 되었고, 이제 천국이 막연한 세계
가 아니라 내가 정말 원했고, 내 인생을 투자하고 싶은
세계가 되었습니다. 막연한 꿈의 세계가 아닙니다. 믿게
되었어요. 말씀으로 폭팔적이고 불을 지르는 말씀으로 불
과 같이 내 마음과 내 머리를 쪼개 버렸습니다.
두 번째 성령으로 증거해 주셨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게 해 주셨어요.
여러분 다 그러한 역사 살고 있지 않습니까? 간구합니다.
뺏기기 싫어서요. 뺏기면 나부터도 부인을 합니다.
이렇게 열렬하게 눈물흘리며, 주님을 찾고 주님을 간구했
던 내 삶이 빼앗기면 나부터도 부인하고, 나부터도 성령
을 거역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프기도 한 거예요.
누가 꼬집으면 아파요. 누가 괴롭게 하면 힘듭니다. 그
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있구나.’
뭔가를 반응을 했을 때 “아, 뜨거워.” 왜 그래 반응을
하는 것. 내가 살아있구나. 더 살아있다면 그것으로 낙심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보여주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
다. 몸부림에 걸작품입니다.
움직이는 만큼, 행하는 만큼, 반드시 얻게 되어 있습니
다.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은 썩습니다. 죽은 물입니다. 역
사가 흐르지 않고 차원을 높여 가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기쁨을 얻으며 희망을 얻으며 살 수가 있겠습니까?
비행기가 움직이지 않고 점점 고도를 높이지 않으면 절
대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비행기가 점점 고도를 높여
차원을 높여 날아야 날아갈 수 있습니다. 날기 위해서는
속력이 필요해요. 300킬로 이상을 밟아가면서 고도를 높
여 가야 합니다. 비행기는 날기 위해 태어났어요. 땅에서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 여기서 끝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저 하늘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우리에
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우리의 정신, 우
리의 삶, 우리의 영혼의 고도를 날마다 차원을 높여야 됩
니다.
그래야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한계에 부딪혀
이기는 재미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뜻이 이루어
지고, 소망이 이루어 집니다. 날마다 더 나빠지는 게 절
망이예요. 날마다 더 좋아지는 것은 희망입니다.
그대로 멈추는 것은 허무입니다. 여러분 부활했으면 죽
지 말아야죠. 부활해 놓고 다시 죽으면 어떻해요? 예수님
이 왜 그렇게 심정 태우시는가? 부활했는데? 다시 죽을
까봐, 다시 또 옛세계로 갈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차원을 높여 고도를 높여 가지 않는 삶, 자체가 퇴보니까
요. 죽은 삶입니다.
부활은 휴거의 할아버지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부활을
이루어야 만이 휴거라는 자식을 낳습니다.
그것도 그냥 밑에 자식이 아니라, 2대째 보게 되는 거예
요. 우리의 인생 날마다 부활을 이루며 살 때, 1차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부활되며, 2차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부활
되는 날, 하늘나라 영으로 변화되는 휴거의 할아버지, 우
리의 소망, 소원이예요. 우리가 이 역사를 뛰는 최고의
비밀이며, 최고의 권력이며, 최고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되요. 우리 중고등부, 우리 대학
부들, 은하수까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린
나이 때부터 나이들 때까지 뛰고 달리며 고생하며 내가
노력한 만큼 얻으니까 절대적으로 쓰러질 필요가 없어요.
다 얻어가고 다 받아가니까 땅에서 얻지 못한 것, 내 영
에 축적해서 쌓아가고 있으니까 천국에 내 집을 짓고 있
으니까
그 반응으로 육 또한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살아있는 정신으로 살아있는 행실을
하면서 살아있는 영혼으로 만들어서 날마다 차원높게 더
심정깊게 더 높이 뛰어올라 더 멀리 내다보고, 뛰고 달려
야 됩니다.
지구력이 있어야 되요.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것 저것 거치지 않고, 한번에 주님이 사랑하는 신부로
서 구원받아 주님과 함께 혼인잔치 해야죠. 진리는 변함
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 위에 서서 변화해야 됩니
다.
더 좋게 더 높게 그래야 죽지 않습니다. 왜 구시대는 구
시대가 되었는가? 진리가 없어서? 그 한계에 머물렀기
때문에, 거기에 안주했기 때문에, 그것이 결국 형식이 되
었고, 형식이 되니 결국은 죽은 신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래서 천국성령운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는데 “자꾸 새롭게 하라. 새롭지 않으면 형식이
되고, 형식이 되면 죽음이 된다. 신앙이 형식이 되고, 형
식신앙이 되면 죽음이 된다.”
우리의 사랑의 고백이 죽음이 되며, 우리의 움직임이 죽
어있고, 입으로는 주님을 시인하,고 마음엔 이미 주님이
떠난 지 오래예요. 이 역사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결국은 바다로 흐릅
니다. 역사는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으로 쭉쭉 올라갑
니다. 결국 창대한 역사를 이루게 되죠.
섭리사의 특기. 살아있는 것, 살아있는 신앙을 하는 것,
보여주는 것, 열정적인 것, 생명력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섭리사의 특기예요. 날마다 더 좋게 부활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며, 사탄을 이기는 방
법입니다. 아예 없애지 못하거든 그들보다 더 높은 차원
으로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왜 거기서 같이 살아요?
이것은 방법이예요. 여러분들 스스로도 부딪히죠? 특히
같이 살고 있는 여러분들 방법이예요.
왜 이 단계에서 살고 있으냐. 올라와라. 올라오면 안 부
딪혀. 선생님께서 저에게 항상 가르쳐주셨던 거.
“올라와. 왜 여기서 같이 있으면서, 쟤 때문에 힘들다,
저 형제 때문에 힘들다고 하고 있느냐. 올라와라 왜 거기
서 있느냐. 다스려라. 부딪히지 않는 한계로 가서 다스려
라. 왜 거기서 실타래처럼 얽혀 있으냐. 풀어라.”
우리가 사탄을 이기는 방법? 없애면 또 나타나고 없애
면 또 나타나고.
뒤에서 앞에서 그래요. 언제까지 어려운 환경에 치이고
가겠습니까? 고도를 올려야죠.
부딪히지 말아야죠. 더 위에 단계에 가서 사랑해 주고,
겸손하게 낮아져서, 그들을 위로해 주고 싸매주는 역할을
해야죠. 몸부림 우리 역사는 현재진행형,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일 도전, 매일 변화입니다. 날마다 변화, 날마다 부활
입니다.
믿습니까? 완성된 자가 반드시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예 못을 박으세요. 나의 완전은 어디까지일
까? 끝이 없구나. 하늘의 세계, 고도를 높일수록 오를수
록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어. 더해야 돼. 더해야 돼.” 이
것은 저의 신앙 간증이예요. ‘이만하면 됐겠지.’ 2006년
도에 처음 이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 때 제 강의를 들었던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처음 말씀을 전하라고 보내주신 거예요. 제가
정말 3일 밤낮을 잠을 안자고, 준비해서 말씀을 전했어
요. 처음 이 모임이 끝나고 나면 “나는 다 이루었어. 그
동안의 모든 어려움을 여기서 다 폭팔시키고, 그리고 진
짜 주님의 사랑을 받고 하는 거야. 이거 하고 나면 다 이
루었지. 그렇지.” 그래서 덜덜덜덜 떨면서 말씀을 전했고
끝났어요. 저는 그 때 “이야, 좋다. 좋다. 끝났다. 나 잘
했지? 잘했지?” 진짜 이러고 있었어요. “진짜 기특해. 이
젠 다 된거야.” 저를 보고 예수님이 얼마나 웃으셨을까
요?
저는 2010년도 처음 1월 1일부터 성령집회를 하면서 너
무 충만한 거예요. 2010년이 되니까 1월 말이 되니까
‘여기서 내려오고 싶어. 절대 스타들이 제일 좋은 상태에
서 은퇴한다고 하잖아. 내려가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내
가 한 역할을 끝났어. 내년이 되면 부흥강사가 많이 나오
면서 그렇게 하는 거야.’ 그 때 주님은 저를 보면서 말씀
하시겠죠. “쟤는 뭐야? 지금 시작이다.” 천국의 세계,
주님의 영적인 세계, 얼마나 깊고 깊은 줄 아십니까?
하는 만큼, 행하는 만큼. 제가 만약에 10시간을 말씀을
준비했다면, 지금은 20시간을 준비해야 해요.
그만큼 하면 할수록 더 깊고, 더 마음이 애가 타고, 더
눈물이 나고, 더 완전해지고 싶고 그 기도를 해요.
“주님, 정말 의인이 되고 싶어요. 정말 주님 사랑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기도하라. 내가 시행하리라.” 하는 그
말씀을 이룰 수가 있잖아요. 내가 수없이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내가 그와 같은 삶을 삶으로 주님의 사랑하는 자
의인이 된다면, 내가 하는 말 주께서 들으시고 다 시행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절대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역사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시어 버리지 않
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렇다면 해야될 것
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행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
분담을 감당해야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정답을 확실히 알고 가라. 그러면 포기
하지 않는다. 끝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이 정
답을 확실히 알고 가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나를 최우선
에 두고 사랑하라. 내 계명을 지키라. 나를 사랑하는 자
는 나의 말을 지키리라. 그 다음에 이 정답을 알고 사는
자들이 해야될 것이 무엇인가.
너의 책임분담이 무엇이고, 내가 해줄 것이 무엇인지 정
확히 알고, 니가 행할 것을 절대적으로 책임분담을 완수
하며, 그리고 내가 해줘야 할 것을 절대적으로 간구하여
내가 시행하게 하도록 하라.
더 나이가 들고 지도자가 될수록 행해야 될 일이 많을
거고, 보다 어린 생명들일수록 주님께서 해주실 것이 많
을 것입니다. 보다 지도자 되신 여러분들은 행하시고, 보
다 신앙을 한지 얼마 안된 여러분들은 많이 간구하기 바
랍니다. 그러나 이 밸런스 간구하며, 내가 행하는 발런스
를 잘 구분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조건, 그리고 주님의 역사 속에 섭리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진리 위에 살고 인간의 책임분담을 다하며 주
님의 책임분담을 간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될 것 날
마다 더 높은 차원으로 더 깊은 차원으로 매일매일 몸부
림치며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라갈수록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내려갈수록 이보
다 더 고통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나쁠 수는 없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 죽은 것과 같으
며 전진하지 않는 것 퇴보와 같다.
우리의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거역할 수 없는 성령, 나를 더욱
더 불태워주고, 달궈주시며, 깨닫게 해주며, 살아있는 역
사로 증거해주는 것이 성령입니다.
이 성령은 어린 아이부터 시작해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거부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게 해주시
고, 느끼게 해주시며, 만나게 해주실 것이며, 굳건하게
해주실 것이며, 사랑을 느끼게 해주시며, 고백하게 해주
시며, 회개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주의 마음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이 희망이 되는 역사,
더욱더 완전히 이루며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기를 진
실로 기도합니다. 오늘도 저희들의 안 좋은 생각들, 그리
고 믿지 못하는 것,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모든 것, 사랑
의 불로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며, 은혜의 물로 씻어 주시
면서, 저희들과 함께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지
금도 주님은 이 자리에 계시면서 목숨 걸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부르짖으며 찾는 자의 마음 속에 들어가기
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의 마음처럼 되길 원합니다.
불길이 전 세계에 타기를 진실로 진실로 원합니다.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