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0.04.23 (금)
2010 0423 천국성령운동 50차 말씀
- 선포일
- 2010.04.23 (금)
- 성경 본문
- 저녁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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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423 천국성령운동 50차 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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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진리천국성령운동 50차 말씀>
내게 영광 돌려라
2010. 04. 08. (목)
김은미 (대구 스타교회)
[저녁9:40분경에 주님께 더욱더 영광 돌리지 못함과 더욱 더 주님께 몰두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할 때 받은 말씀입니
다.]
사람들 중에는
비장애인인데도 장애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눈이 있어도 나를 향해 보지 않고 세상을 향해있으니
눈이 먼 자요.
말을 할 수 있어도 나를 찬양하지 않고
나와 대화하지 않으니 벙어리요.
또 팔과 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으니
온몸이 전신마비가 된 자로구나.
너희는 왜 정상인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꾸 비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냐!
너희의 모든 눈, 코, 입, 몸
늘 나를 향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하늘 아버지가 너희를 창조하였는데,
어찌 다른 곳만 보고 다른 것을 더 원하느냐?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는 자들이요.
말을 할 수 있으나 말 못하는 자요.
움직일 수 있으나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이다!
매일매일 내게 영광 돌려야지!
제발 내가 원하는 정상인처럼 살아다오!
늘 나만 생각하며 늘 나를 찬양하며
늘 내게 영광을 돌려야지!
너희는 어찌 세상만 바라보느냐!
그렇게 세상이 좋단 말이냐?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은 것이 세상이다!
그러니 세상이 아닌 나를 위하여 살아라!
세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사탄의 신부밖에 되지 못한다!
난 그것을 원치 않노라!
나의 신부들이여.
너희는 나의 신부들이니
수준 높은 신부가 되어야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나의 말에 더 귀 기울이고 나만 보아라!
세상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좋으나 계속 빠져 하다보면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 보고 내게만 영광 돌려라!
세상이 아닌 나만 바라보아라.
사랑한다.
너희의사랑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노라.
<정조은 목사님 말씀>
할렐루야. 오늘 “내게, 오직 내게만 영광돌리라.” 이 귀한 심정의 말씀으로 성령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 우리의 영혼, 우리의 몸, 우리의 눈, 우리의 입, 우리의 귀, 모든 것을 주님만을
바라기를 원합니다. 또한 오늘 이 자리 천국성령운동 주님만을 바라기 위해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오지 않았습니
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늘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주님께 영광을 돌릴수록 우리에게는 더욱 더 성령
의 불길이 내려올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39절 말씀, 항상 새기시길 바랍니다.
“누구든지 목이 마르거든 나에게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그 속에서 생수의 강
성령이 흘러 넘치리라.” 주님께 영광돌리시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사랑하겠다는 그런 마음, 결심, 그런 결단을 가지고 다시 한번 더 하나님 앞에
영광돌린 후에 2010년 4월 23일 너무나 귀한 이 시간 천국성령운동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은 주만 바라봅니다. 섭리사의 모든 여러분들 부르신 이 곳 섭리사에서 주만 바라보는 찬양을 한 목
소리 한 마음으로 먼저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주만 바라볼찌라’ 찬양)
2009년 저희들 재림의 긴박한 말씀이 선포되면서, 저희들에게 천국성령운동이라는 너무나 엄청난 이 역사를 통해
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께서 얼마나 섭리역사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지 증명해 주셨습니다.
역사를 동참한 자, 믿고 따른 자, 순종한 자, 감사한 자, 그리고 깨달은 자, 정말 진실로 몸이 닳도록 내 목이 가슴
이 타도록 내 가슴이 타도록 주님 앞에 무릎꿇고 간구하며 주님을 바라보기 바랬던 모든 섭리역사 여러분들, 여러분
들은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만, 절대 거역하면 안되는 이 성령, 이 성령의 역사
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역사, 주님의 말씀, 그리고 주님의 심정을 더욱 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불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불살랐고, 그리고 우리는 그 불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과 심정을 더욱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비로소 이 천국성령운동을 통하여 더 차원높은 영적인 역사를 선포하시사
더 깊은 이 시대에 맞는 심정을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죠.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거 같아요. 그 정도로 목숨을 이 목숨, 그 생명이라는 목숨 전에 목을 거의 걸었죠. 여러분
들 작년 한 해 목이 성했던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목이 다 쇠하기까지 성령운동을 여러분들 적극적으로 참
여하시면서 불받기 힘썼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인력으로는 할 수 없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의 역사, 천국성령운동이 2009년 5월 1일에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음 주가 되면 1주년을 맞게 됩니다. 너무 감사드리죠?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같이 할 수 없다.”
늘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천국성령운동의 가치를 모르는 자들은 저희들과 같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치를 모르는 자는 성령과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은 곧 “성령을 받을 수 없다.” 이 말입니다.
가치를 모른다는 것은 “매일 똑같은 상태에 머물러서 변화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가치를 모르면 그렇게 할 생각도 없고, 생각이 없으니 행할 마음도 없고, 행할 마음이 없으니 행하지 않고, 행하지
않으니 그 영혼조차 변할 수 없고, 더 이상적이고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무한도전입니
다. 무한한 도전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세계, 주님의 세계, 천층만층 구만층의 그 엄청난 세계 무한한 세계이기 때
문입니다. 지난 1년 2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이 섭리역사는 무한한 도전 속에 달려온 역사임을 믿습니다.
저는 섭리역사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섭리역사를 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죠. “천리마다.” 천리마. 주님을 맞
아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절대 멈추지 않은 천리마입니다.
아무리 옆에서 개들이 짖어대도, 아무리 누가 막아도, 절대 멈출 수 없는 그런 너무나 귀한 역사입니다.
우리 섭리역사의 특징, 날마다 더 높은 곳으로 부활하며,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 새롭게 새롭게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며, 희망입니다. 계속되는 이 천국성령운동의 역사에 어떤 사람은 ‘한번쯤은 빼먹
으면 되겠지.’ 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그 사람은 역시 이 성령이 우리에게 주면 줄수록 날마다 타오르는 성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사람이기 때
문입니다. 아직까지 성령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간구하며, 기도하며, 저도 단상에서 외치는 만큼 더 외치고 싶고 더 받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성령이었습
니다. 불같은 성령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매일 주님의 뜻에 따라 차원높게 변하지 못하는 자, 아직까지 그 상태에 머
물러 있는 자, 한번쯤은 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하는 만큼,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만큼, 우리가 더 행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만큼, 우리의 마
음 속에는 “주여. 성령을 더 주세요. 더 주세요. 더 주세요.” 할 수 밖에 없어요.
그 힘이 아니면 내 힘으로는 뛸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소리도 이렇게 기도하면 쓰
러지겠다 했을 때, “주여. 이 때 더 주시지 않으면 그만 둘 수 밖에 없거든요. 주세요. 주세요. 성령이여.” 내 가슴에
불이 팡 떨어지면서 그 때는 주님을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찬양하며, 주님을 부르게 됩니다.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이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 뿐만 아니라,
섭리역사는 말씀의 역사, 우리 선생님을 통한 말씀의 역사도 날마다 차원을 높여가며 시간이 갈수록 불이 붙어갈 것
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신과 삶, 우리의 영혼은 무한대로 발전하고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욱더 완전히 주님의 신부로서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변화시켜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사랑은 너무 지겨워. 더 이상 사랑받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아. 난 이대로 살
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 보니, 아직까지 주님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
기 때문입니다. 또한 근본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사랑, 이성의 사랑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 그 상태에서 빙빙돌며, 수레바퀴 머물러 왔다갔다 하니 그 사랑이 지겹게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됩니다.
아무리 이만큼한 사랑도 매일 그만하면 지겹습니다.
자꾸 또 조금 조금 조금 더 차원을 높여갈 때 새로움을 느끼며, 만족함을 느끼며, 희망을 느끼게 되어있습니다. 그
래서 이 세상은 한계의 세상 더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 없는 육적인 세상이 증명이 되지 않습니까?
“더 이상 말씀듣고 싶지 않아. 왜 주일이랑 수요일은 또 오는 거야. 반복되는 거야. 또 오고, 또 와. 그만 쉬어야
겠어.” 역시 귀로만 형식적으로만 말씀을 듣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 그 상태에서 머물러 있기 때문에 매
주 오는 주일과 수요일이 그냥 매주 오는 그냥 주일과 수요일 날인거예요. 나에게 새로운 주일과 수요일이 아니니까
새롭지 않으니 모든 것이 새롭지 않게 보이고, 내 삶과 나의 영혼과 나의 모든 것조차 새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역사, 그리고 성령의 역사, 그리고 말씀의 역사는 절대로 그 상태에서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확신해요. 지난 주보다 더 엄청나고, 더 완벽한 성령을 저희들에게 주시며, 저
희들을 불로 태워주실 것입니다. 매일매일 차원 높게 변화되는 이 역사는 절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삼위의 하나님께서는 그리고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더 불로 역사하실 수 밖에 없고, 더욱 더 완벽한
진리로 역사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예비시켜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매일매일 밑으로 내려가는 삶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하루를 맞으며, 새로운 주일을 맞고, 새로운 삶을 맞으며,
새로운 수요일을 맞으며, 새로운 새벽을 맞아야 할 것이니다. 자기의 삶이 힘들고 지겹다고 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죠. 그러한 사람이 세상에는 있대요.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그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의 정신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행하지 못함으로 남을 챙기기는 커녕 나 혼자 챙기기가 급급합니다.
그러니까 하루하루가 너무도 고달픕니다. 기도가 지겹고 지치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가 너무 지치는 거예요. 역시 일사천리로 기도만 하고 마는 거예요. 그냥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부르면 이런 기
도는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한 마디를 하더라도 날마다 차원을 높여가며, 새롭게 하나하나 주님을 찾고, 고백하는
기도가 되야 만이 지루하지 않고 지겹지 않은 것입니다.
날마다 차원을 높여가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 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이 사람은 고생되고, 힘들어도 자꾸
행함으로 자꾸 전진을 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선생님께 이런 소리를 했어요.
“선생님. 저의 10년 전의 삶을 보니까 전 정말 바보였어요. 전 정말 바보였어요.” 선생님께서 잘 듣고 계시더라구
요. “저는 이상하게 살았어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선생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너. 너. 3-4년 가봐. 또 지금 니 모습을 보고 나 정말 바보처럼 살았다는 말이
나오게 돼.” 그런 말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요? 늘 변화하는 삶을 산 사람은 어제 자기의 모습을 보고도, ‘왜
내가 그렇게 살았지?’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변화시키며, 고칠 수 있는 길은 내가 잘못된 것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더 변화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기 싫습니다. 하면 할수록,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이보다 더 날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정말 변화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오늘 저는 오늘 주님과 함께 이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정말 새롭게 변화되었느냐.” 이제 2009년 가고, 2010년 벌써 1월, 2월, 3월을 지나서 4월도 끝나요. 정말 너희들
이 새롭게 변화된 것을 확인하고 있느냐. 아니면 아직도 계속 새롭게 변화하여 가면서 옛날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
고 있느냐. 이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자기를 자꾸 변화시키며, 사는 자는 남 탓을 할 줄 모른다.” 했습니다. 남
탓할 줄 모른다. 그리고 “환경탓 할 줄 모른다.” 했습니다. 자기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자꾸 채우고, 자꾸 행하
려고 합니다. 정말 자기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은 주님께 간구하고, 주님께 얻어내려고, 몸부림을 칠 뿐입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남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먼저는 자기를 변화시켜야 됩니다. 자기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자, 탓탓탓, 환경탓, 쟤탓, 비디오 카메라탓, 여기저기 탓을 합니다.
변화하지 않으니 다 상대의 탓이예요. 그러다가 결국 주님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러다가 심판대 앞에 와서도 ‘이래서 못 했습니다. 저래서 못 했습니다.’ 하는 소리만 하게 된다. 그러나 오직 행
한 것만 남는다.” 여러분. 세상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먼저 변화해야 합니다.
세상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사람이 변해서 그렇습니다. 세상도 변합니다. 사람이 변하여 이 세상도 육적으로 타락
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보다 육적으로 좋은 것을 즐기는 세상이 왜 되었을까? 사람은 너무 착해요. 그
런데 세상이 자기 혼자 돌아가요? 변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정신이, 사상이, 의식이 변해서 이 세상이 변한 것입니다. 안 좋게 변질된 거죠.
그래서 섭리역사도 주님께서 선생님께 늘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세워라. 사람을 세워라.”
“주여. 우리도 조직을 만들어야지 않겠습니까?”
“조직을 만들고 싶으냐. 사람을 세워라. (어떤 사람?) 정말 믿을만한 사람, 정말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자, 정말 변
하지 않을 자, 세상에 빠지지 안을 자, 나의 일을 해줄 자, 나만을 사랑해줄 그 사람을 세워라. 실력가도 유능한 자
도 지금은 필요치 않다. 변하지 않을 자, 이 역사에 변하지 않을 자, 그 사람을 먼저 세워놔야 이 역사가 흔들리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기둥들이 되어라.” 했습니다. 기둥들이 되어라. 이 건물도 기둥이 없으면 무너집
니다. 주님은 주춧돌이 되시고, 우리는 기둥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야 됩니다. 자기를 완전히 변화시킨 자
는 반드시 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생명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변한 세상을 바꾸고 싶어. 세상이 바뀌기만을 기다리지 않을 거야. 내가 먼저 변화해서 나가서 외쳐서, 한 사
람 한 사람부터 돌려놔야지. 그래서 하늘역사도 살리고, 나도 살리고, 영혼도 살리자.”
자기의 변화를 가져온 자는 이 세상에서 힘들어서 못 삽니다. 그래서 노력을 합니다. 사람을 바꾸고, 사람을 구원
하기 위해 반드시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2010년 주와 함께 생명구원’ 말씀이 나오면서 첫 번째 조건이 “자기 자신
을 구원하여라. 그래야 남도 구원할 수 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내가 먼저 웃을 줄 알아야 남에게도 웃음 보따리도 나눠줄 수 있습니다. 본인이 먼저 변화해야 만이, 남도 변화시
켜 줄 수 있습니다. 내 정신 속에 좋은 생각이 있어야 이 정신을 통해서 좋은 정신을 전파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전도, 생명구원, 원래는 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이것 참 창피하지 않냐. 전도하라. 전도하라. 생명을 구원하라. 너
무 창피한 일이 아니냐. 자기를 구원시킨 자라면, 남을 구원시키고 싶어서 못 참는 거야. 생명구원의 맛을 본 자는
도저히 생명을 구원하지 않고는 못 참는 것이다.” 했습니다.
이 맛을 느낀 자는 정말 성령받은 자이고, 정말 변화한 자, 정말 주님이 찾는 그 사람입니다. 정말 사랑의 맛을 제
대로 깨달은 자입니다. 사랑의 맛을 제대로 깨달은 자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 않고, 정말 사랑을 주고 싶어 합니
다. 이게 정말 사랑이예요. 참 변화, 참으로 새롭게 변화된 자, 바로 나를 변화시킨 자, 남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이
내 속에 있는 자는 이 사람은 정말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서 구원해 주셨다고 했습
니다. 이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몰라요. 본인이 생명을 사랑하면서 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
려야, 그 때야 주님의 심정을 깨닫습니다.
절대 주님의 심정을 깨닫지 못한 자는 자기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어요. 모르거든요. 애타는 심정을.
생명을 위해 울어봐야 해요. 여러분 생명을 위해 울어 보셨습니까? 나를 위해, 나의 애타는 마음을 위해, 옆에 있는
생명을 위해, 정말 저 생명 살리고 싶다면서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눈물 흘리신 적 있습니까? 정말 구원하고픈 생
각이 있습니까? 정말 변화한 자이고, 정말 성령받은 자입니다. 저는 올해 이 모든 것이 진행되면서 주님의 심정은
너무나 너무나 애가 타서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월명동 야심작 중에 어떤 말이 있죠? “생명을 사랑하라.”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생명조차 사랑하지 못하여서 자기 목숨을 끊기도 하구요. 주님의 사랑조차 깨닫지 못하여서 왜
사랑해야는지 깨닫지 못하고 삽니다. 다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사랑, 자기
영혼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초점은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의 뜻, 사랑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도 부어주시고, 말씀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말씀을 주시
며, 성령을 부어주시며, 제발이나 나의 뜻, 이 말씀의 역사성령의 역사를 이루어 달라고 합니다. 먼저는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이 말씀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주님 사랑, 생명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다 헛것입니다.
주님은 헛수고 하시는 거예요. 너무나 너무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
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소리질러 주님을 찾지 않으면, 내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어려운 엄청난 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사랑, 생명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
다. 이 말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2장 36절에서 40절 말씀.
“선생이여.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첫째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 생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도 큰 율법이요, 강령이
라.” 고 했습니다. 주님 사랑,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생명사랑,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보내주셨
고, 지금도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이성사랑에 사랑을 쏟지 말고, 생명사랑에 사랑을 쏟아라. 세상 사랑에 사랑을 쏟
지 말고, 생명사랑에 사랑을 쏟아라.” 했습니다.
생명을 구원하고,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구원받고, 지킴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랑을 보십시오.
사랑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 그러나 생명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성을 사랑하니 생명을 사랑하지 않아도
육을 내어줄 수가 있어요. 그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영혼까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까지 그의 정신까지 사랑한다면 그냥 육만 취하는 사랑이 될까요? 이성사랑의 사랑을 쏟을 줄 알고, 기본
적인 사랑의 사랑을 쏟을 줄 알지만, 그의 구원을 위한 사랑, 진정 생명 사랑을 이루지 못해서 세상 사랑은 허무와
눈물 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줘요. 모든 걸 다 쏟아내지만, 결국은 또 허무한 눈물을 흘리며, 그러나 자식이
니까 정으로 또 해주고, 부부와의 사랑을 맺어도 그 정신까지 그 영혼까지 구원하고자 사랑하는 사랑이 있을까요?
정말 생명사랑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냥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게 아닙니다.
주님 사랑과 동시에 생명사랑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혼자 사는 인생이예요.
자기 혼자만 변화하면, 이 세상에서 무슨 재미로 삽니까? 나 혼자 변화를 이루어요. 나 혼자 너무 차원이 높아졌어
요. 나는 저 위에 살아서 매일 날라다녀요. 세상을 잡을 수 있겠다. 딱 해서 나갔더니만, 그러나 세상은 똑같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에게 왜 그런 식으로 사냐고, 절대 그런 사람과는 같이 어울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선생님 항상 말씀하시죠. 사람이 사랑을 깨닫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며, 더 높은 위치로 자꾸만 수준을 높
여 올라갈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를 숙여 땅을 내다보며, 생명들의 상태를 내다보며, 살피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변화시키는 게 목적이예요. 그러하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을 맞추어 주며, 그들의 상태를 맞
춰주며 변화시켜 줍니다. 주님이 그 모든 사랑의 표본이 되셨습니다. 어렸을 때는 자기만 챙기기 바쁩니다.
사람이 성장하면 반드시 본능이 있어요 왜 성적본능 이성본능은 사용하면서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케어하는 이
본능은 잊어버리고 사는지 근본을 잊어버리고 사는지 역시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근본을 잊어버리고 산 탓이 아
니겠습니까 아까도 찬양을 할 때 잠깐 심정말씀을 찬양인도자 분께서 전해주셨어요 저는 제일 그 말씀을 좋아하거
든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쳐다보시며 지었던 그 웃음 너무나 너무나 환하게 웃으셨던 웃음을 찾아드리기 위해서
지금도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다고 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나?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니까요. 내가 그를 위해서 눈물을 막 흘립니
다. 내가 그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 그 아이 때문에 힘들어서 죽겠다.” 하며 힘들어서 흘리
는 눈물과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심정태우며, 애태우며 흘리는 눈물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하나 살림으로 인해서 주님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고, 스승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게 차라리 내 앞에서
속을 썩이는 게 낫지.’ 주님 앞에 가서 역사를 속썩이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저는 그 마음으로 가서 생명을 관리
합니다. ‘이 사람이 힘들어지면 전체가 다 힘들어지니까, 선생님 예수님 힘들어지면 다 힘들어지니까, 차라리 나 하
나 속썩으면 괜찮잖아. 혹여나 100명 중에 한명, 1000명 중에 한,명 돌아올 애가 이 애가 아닌가?’ 하면서 하지 못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이유를 찾으면서 이 생명을 관리하게 되고 전도하게 되죠.
그렇게 행할 때 힘들지 않습니다. 생각의 차이, 이 방법의 차이로 생명을 죽이느냐 살리느냐가 결정이 됩니다. 내
가 변화하지 못한 만큼, 변화무쌍합니다. 인간은 너무나 변화무쌍해요. 상태가 좋은 사람도, 좋지 않은 사람도 사람
은 날마다 변화합니다. 너무나 변화무쌍해요. 이랬다, 저랬다, 잘 하려고 했다, 못 하려고 했다 하는 그것이 사람입
니다. 자기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이랬다, 저랬다, 마음잡지 못하는 자기도 감당을 못 해요.
자기도 감당 못하는 자는 절대 변화무쌍하게 왔다갔다 하는 생명들을 절대 살필 수가 없습니다. 천국성령운동 정말
변화된 증거를 보여줘야, 주님께서 할 맛이 나실 것입니다. 제발 주님께서 할 맛 나시도록 하는 섭리역사가 되길 진
정으로 원합니다. “매일 주십시오. 주님 주십시오.” 하는 섭리역사가 아니라, 할 맛 나는 역사, 내가 행할 때 “쫓아
가서 도와줘야지.” 하는 할 맛 나서 역사해 주는 그런 발맞추어 가는 섭리역사가 되길 원합니다.
날마다 변화시키며,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감동시킬 자가 누구랴. 내 마음을 자극할 자가 누구랴. 내가 해주고 싶어서 너무나 안달이 나서, 그에
게 쫓아가 참지 못하여 해주고 싶은 자가 누구냐.”
아니면 우리를 구원 때문에, 영혼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우리도 더 이상 바라지 않지 않습니까?
여러분. 온전한 자가 짐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처음에 무슨 말씀을 전했습니까?
“먼저 밥을 차려놓은 것을 먹은 자가 배불러서 다른 굶은 자를 찾아낼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먼저 깨달은 자가
행동해야 깨닫지 못한 자를 데리고 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섭리사에 제일 먼저 외치신 것이 그것입니다.
“너희가 변화하라. 제발이나 변화하라.” 팔 한짝이 없어요. 다리 한짝이 없어요.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짐을 맡기겠
습니까? 온전한 자가 더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전한 자를 찾으십니다. 이 시대에.
찾을 수 밖에 없어요. 우리는 자기의 상태, 자기가 매일 변화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허우적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어요. 지난 주에도 말씀하셨어요. “그 시간에 변화하라. 고민할 시간에 변화할 것을 연구하라.”
“나. 할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해요. 일어날까? 말까? 그 시간에 하고 일어나면 되요. 그 시간에 일어나서 세
수했으면 괜찮았을 거예요. 너무 안타깝죠. 할까, 말까 하는 시간 내가 힘들어하는 시간에 하면 됩니다.
하면 역사가 일어나고. 하면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역사하시고. 하면 주님께서 불을 주시니까요. 안하는 것보
다 하는 것이 낫다는 거예요. 정말 저는 선생님께서 그 말씀을 해주신 게 감사했어요.
“힘들어? 힘들어? 찬양해. 힘들어? 힘들어? 찬양이나 해. 가서 찬양이나 해라. 그러면 너에게 유익하기라도 할 것
이다. 제발. 제발.” 진짜 답답해 하셨어요.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제가 힘들어 죽겠는데. 비교를 한번 해보세요. 한것과 하지 않은 것. 그 5분 기도할까. 말
까. 일어날까, 말까 하는 시간에 5분을 기도하면 운명이 좌우될 것입니다. 내가 할까, 말까 하는 시간에 내가 한 마
디라도 달라지고, 생명의 짐을 나눠질 자는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온전한 자를 찾으세요. 짐을 나눠질 자를 찾
습니다. 이 시대는 급박하니까, 긴급하니까요. 신부들을 찾으시니까요. 왜요?
시간이 없어서요. 완벽하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어떤 모임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이 말씀을 전할까 말까 계속 기도하고 있고, 선생님께도 여쭤보고 있어요.
한마디. “나는 최고의 것을 원하기에, 최고의 길만을 너희들에게 말해 주련다.” 이 말씀을 하셨어요.
풀어주지 못하면 이 말씀 모릅니다. 주님은 그 역사를 원하십니다. “이 역사 나는 최고의 길만을 원하기 때문에 너
희들에게 이 역사 살아있는 너희들에게, 그래서 사랑의 성령 사랑의 말씀을 주면서 최고의 길로 한번에 오기를 원하
기 때문에. 나는 구원받는 숫자 너무 중요해. 나는 구원자니까. 그러나 나는 구원자이기에 앞서 신랑이니까 구원받
는 숫자보다, 나의 신부가 된 숫자가 많으면 내가 온 뜻과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을 너희에게 원한다.”
구원받게 하고, 주님을 시인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아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여, 정결한 신부로 예비하는 것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행해
야, 그만큼 행해야, 그만큼 변화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한번 오늘 잠깐 본 사람이 결혼하자고 갈
수 있겠습니까? 정말 자신부터 변화시켜야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자가 누구냐. 한 마디로 얘기해 드리겠
습니다. 주님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드리는 자. 넓은 등판에 간지러운 부분 딱 있어요.
그 부분을 딱 해결하고 긁어야 합니다. 이 등판 전체를 긁어도 거기만 안 긁으면 안 긁는게 좋아요.
그런데 다 손을 써도 힘들어. 그런데 싫다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애를 썼는데, 몸을 가서 발도 이용해서 긁었는데
안되요. 그러나 어떤 사람을 손가락으로 긁었는데 시원해요. 이런 사람이 되어야죠. 핵을 맞춰야죠.
하나님 역사의 핵. 왜 이 역사의 시작하셨는지, 왜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이 역사를 시작하셨는지, 그 많은 역사를
기다리며 종교의 역사를 시작하셨는지, 왜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셨는지, 그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을 보내주시며 그
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허락하셨는지, 핵을 아는 자는 성공합니다.
손가락 하나, 그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은 무작정 긁어대기만 했구
요. 이 사람은 “어디가 간지러우세요?” 노력합니다.
“제가 그 부분을 긁어 드릴께요. 어디요? 여기구나.” 이 사람들은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노력, 그 사람
의 마음까지 알아내야 되기 때문에.
자기 정신의 구원은 자기 행실의 구원을 낳습니다. 자기 행실의 구원은 자기 삶의 구원을 낳습니다. 자기 삶은 구
원은 자기 영혼의 구원의 구원을 낳고, 자기 영혼의 구원은 다른 생명도 구원하는 구원을 낳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되요. 나를 벗어나야 가정으로 가고, 가정을 벗어나야 민족으로 가며, 민족을 벗
어나야 세계로 가며, 세계를 벗어나야 천주의 세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변화시켜야 되요. 빨리 자기를 변화시켜야 됩니다. 빨리 자기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어제 신문을 봤어요. “시린 봄날. 너마저 이렇게 지는구나.” 이렇게 써 있었어요. 사진을 보니까 벚꽃이 봄비에 막
바닥으로 떨어져요. 아직도 다 피기 전에. 그것을 보고 쓴 거예요.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아직 봄이 오지 않아서 벗
꽃이 다 피지도 못했는데, 비바람에 그냥 맥없이 떨어지니까 그걸 보고서도 너무나 애가 탑니다.
왜 떨어지는 꽃을 보고서 마음이 안타깝고 슬프겠습니까? 아직 피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도 변화시키지 못한 상태에
서 지는 거예요. 완전히 활짝 피지도 못하고, 자기를 완전히 나타내지 않고, 지는 꽃을 보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아
쉬워하면서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짧은 봄이 아쉽구나.”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왜 사람이 짧은 봄은 아쉬워할 줄 알면서, 이 짥은 인생은 아쉬워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죠.
마태복음 16장 3절에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시대의 표적. 주님께서 부활하신 표적, 주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며, 영적으로 약속하시며, 다시 오리라 약속하신
그 때, 그 때를 몰라서 짧은 인생 짧은 봄날처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애가 타는 것은 무엇이냐.
“환란이 닥치면 가장 슬프고 애가 타는 사람들이 누구냐. 바로 완성되지 못한 자다.” 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그 단계 그 위치에서 허우적 대면서 힘들다고 하지 말고, 제발 그 시간에 뛰
어오르는 노력을 하여라. 환란이 와서 나무에 열매가 더 떨어졌을 때도 그리 하려느냐. 환란은 이미 시작되었다.”
과일이나 밤이 익은 후에는 바람이 불어서 떨어져도 상관없다. 왜? 다 익었기 때문에. 그 때는 주인이 떨어져도 주
워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더 익을 것이 없으니까요. 얼마나 아쉬운 정말 아쉬운 것이 무엇이냐.
아직 다 익지도 않았는데, 나무에서 떨어져 버린 거예요. 그것은 다시 성장할 수도 없는데, 그런데 바바람을 먼저
맞은 거예요. 지금의 벗꽃들처럼 자기 변화를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도 환란이 닥쳤을 때 그 영이 완성되지 못하고, 아직도 주님을 맞도록 예비되지 못하고, 자기를 변
화시키지 못한 자는 이런 자는 환란이 오면 정말 울고, 불고, 자기를 한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환란이 와도, 비바람이 불어도, 떨어져도, 좋은 열매가 되어야 해요.
왜요? 다 익었으니까 주인이 주워가면 되잖아요. 주님이 데리고 가면 되잖아요.
절대 자기를 변화시켜야 됩니다. 빨리 자기라는 꽃을 활짝 펴야지, 그 다음 때를 시원하게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혼자 변하면 재미가 없어요. 같이 변해야 큰 역사 큰 뜻을 이루며, 재미있어서 장단맞추며 뛰고 달릴 맛이 나
는 거예요. 여러분 다 그렇죠? 뛸 사람들 한 명만 있으면 좋겠는데. 장단맞추어 뛸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좋겠는
데, 뛰면 뛸수록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해요? 포기하시렵니까? 한 사람이라도 만들어서 또 뛰고 달려야
죠.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같이 변해야 재미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자신을 변화시켜 분위기를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사람도 변화시키고, 세상도 변화시킵니다. 만약에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너무 힘들어 날씨도 안좋고, 다 골머리를 앓고 이렇게 있는 거예요. 제가 변화하지 못하면 제가 울거예
요. 제가 변화했다면 이 분위기를 살려서 여러분 분위기 살려보려고 노력하겠죠. “분위기를 살려봅시다.”
그러다 한두명 잠이 깨면 “한번 해보자.”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점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가 어떻게 한번에 불이 붙습니까? 작은 불씨가 톡 떨어져 활활 타올라 저 세계까지 가는 것입니다. 재
미있지 않습니까? 희망있지 않습니까? 이게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하늘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장단 맞추어 뛰면 힘들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2001년 정말 깊이 기도하라고 해서 정말 깊이 기도하
는 가운데 꼭 깨달아야 된다고 하셔서,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을 보면서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뭐였나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면 선생님께 이것을 말씀해 드리니까, “정말 큰 도를 네가 깨달았구나.” g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걸 어떻게 깨달았냐면, 정말 무서운 언니가 있었어요. 너무 너무 무서워했어요. 그 언니만 보면 눈을 안 쳐다볼
정도로 언니가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 언니가 너무 친절해진 거예요.
그래서 진짜 친절해진 거 맞나 할 정도로 행복하게 막 잘 지냈어요. 그 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옛날 모습 그대로
변한 거예요. 너무 놀랜 거예요. “어떻게 된 거지?” 보니까, 그 언니가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그 사람이 없었다가 다시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그 언니가 머리를 막 아파하면서 막 그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걸 보고서 깨달았어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거나. 환경이 변한 것이구나. 환경이 변한 것이지. 아, 환경이 변한 것이
지, 사람이 변한 게 아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드렸어요. “네가 정말 큰 것을 깨달았구나.”
사람이 정말 변했다는 것은 환경과 상황과 입장과 처지를 따지지 않고 변한 것을 정말로 변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휘몰아 닥쳐도 본인이 변한 상태를 유지한 사람은 정말 변화한 사람, 이 사람 보이면 괜찮다가 다시 보
이면 안 좋았다가 환란이 없으면 “너무 좋아.” 하고, 환란이 있으면 “못 해.” 하고, 누가 악평하면 “나도 막 싫어.”
하고, 누가 선평하면 “그렇습니다. 확신합니다.” 하며, 그랬을 때 나도 그래 변한 사람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린 사
람입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 질문을 하시더라구요.
“그래. 너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을 알았으니 그러면 어떻게 하고 싶으냐?” 이렇게 물으셨어요. 그래서 제 속을
보신 거죠.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사람은 변하지 않아. 제가 선생님 저는 “변화해서 분위기를 한번 바꾸어 보겠습
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그래. 한번 해봐라.”
“정말 변화해서 분위기를 싹 바꾸어 놓겠습니다.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린 패기니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 어린 사람들 절대 낙심하지 마시고, 여러분 분위기를 바꿀 수 있으니까 절대 나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람이 강한 거 같지만 얼마나 약한지 아십니까? 사람이 강한 것 같아도 약한 것이 사람입니다. 분위기에 따라 흘
러가요. 저는 이 역사 이렇게 단정짓고 싶습니다. 단정짓는 것은 말이 안되지,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왜 이 역사가 이렇게 악평을 받을까? 분위기에 따라서 흘러가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깨달아 보지도 못 했으면서 이 세상에 그 분위기에 흘러가 분위기에 악평을 합니다. 그
러면 분위기 한번 바꾸어 봅시다. 너무나 멀고 너무나 엄청난 목표 같지만, 하나하나 이루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부터 바꾸어 봐요. 멀리서 찾을 필요 없어요.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만큼 그 분위기에서 빼주
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위기 한번 바꾸어 보자. 이 세상 분위기 한번 바꾸어 보자.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 눈이 멀어 사는 그런 분위기로 한번 바꾸어 보자. 그러면 나부터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나부터 만들어 보자. 나부터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선생님이 “정말 더 깊은 도를 깨달았다. 너부터 하라.” 시작은 바로 나부터. 바로 나로부
터 시작되리. 이런 노래도 있잖아요.
나로부터 모든 역사는 시작되어 갑니다. 내가 주님과 일체되어, 내가 먼저 변화되어, 세상 변화를 기다리는 것입니
다. 우리가 먼저 온전히 변화되어서 분위기를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믿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나는 절대 내 스타일대로 살거야. 사람은 변하
지도 않는데, 내가 이렇게 해서 뭐 해? 정말 그 사람 다시는 얼굴 보고 싶지 않아.”
이 사람은 변한 사람이 아니고, 환경만 바꾸어진 것입니다. 정신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영혼의 상태도 그대로입
니다. 정말 변화된 사람이라면 주변을 변화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이치며, 법칙입니다.
사람은 변화하지 못하면, 지루해서 못 산다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 “새롭게 하라. 새롭게 하라. 새롭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이 안 붙는다. 앞에서 찬양을 아무리 새롭게 해도, 듣는 자가 참여하는 자가
새롭지 않으면 매일 새롭지 않은 것입니다. 앞에서 아무리 불이 떨어지게 설명해도 내가 새롭지 않으면, 늘 똑같은
것입니다. “방법 좀 바꾸지.” 방법이 바뀐다고 바뀔까요? 자기가 바뀌어야죠.
인도하는 사람도 바꾸고, 듣는 자도 바꾸고, 참여하는 자도 바꾸고, 계속 참여만 하지 말고 본인도 인도해 보고 그
래서 자체 천국성령운동 하지 않습니까?
변화를 이루어 더 새롭게 더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었는데도 ‘왜 나는 이래? 왜 나는 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상태에 있는 것일까?’ 답을 주셨습니다.
그 불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불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스불을 켜 놨어요. 그 위에 아무 것
도 올려놓지 않아요. 무슨 유익이 있어요? 물이라도 올리고 물이라도 끓여야 끓인 물을 마시죠.
사용해야 합니다. 써야 되요. 그렇게 매일 하다보면 어느 새 환경이 변해있고, 어느 새 분위기가 변해있고, 어느 새
옆에 사람이 변해있고, 주변이 변해있고, 어느 새 세상이 변해있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
세요. 여러분 변화하는 것 날마다 자꾸만 행실하는 것을 절대 피곤해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찬양도 마찬가지, 말씀듣는 것도 마찬가지, 성령의 불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 내 차원에서 계속해
서 차원을 높여 가야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서 불과 불이 만나는 불꽃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
다. 그 불이 점점 퍼져나가서 냉냉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찬양의 불, 기도의 불, 말씀의 불을 통해서 계속해서 생명들에게 불을 지피면서 성령의 불을 뜨겁게 지피면서 증거
해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됩니다. 여러분 할 수 있겠어요? 내 주변을 변화시켜야 되겠습
니까? 세상을 변화시켜야 되겠습니까? 어떻게요? 하나부터.
여러분. 저 저 여러분들보다 더 어린 자였어요. 그러나 희망을 가졌어요.
“선생님. 그러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부터 변화하면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분위기 한번 바꾸어 볼께요.”
제가 처음에 98년도 신입생때 KBS홀에서 ‘하나님이시여’ 이 노래를 처음 시작했어요. 그 때 다 새노래를 불렀거든
요. 막 춤을, 현란한 춤을 추면서 제가 너무 따라할 수 없는 현란한 동작을 하는 거예요.
저도 하라는 거예요.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시여’ 이런 노래 밖에 몰랐어요. 현란한 동작 뒤에 제가
나가서 ‘하나님이시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요.
왜 눈물을 흘려 분위기 쏴 해지고 끝까지 부르는데, 하나님이 너무 느껴져서요.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그 때 정말
그 분위기 속에 부른 것은 몰라서 그랬어요. 제가 노래 하나라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노래 불렀을 거예요.
그 때 결심을 했습니다. “주님. 저 노래를 몰라요. 그런데 나는 전문가도 아니구요. 너무 잘하니까 작아진다.”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찬양하는 것은 그거 하나는 보여주고 싶다고, 이 분위기는 만들어내고 싶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누가 욕을 해도 초지일관 10년 동안 그 찬양을 하며 살았습니다. 오늘날 주님 앞에 눈물흘리며, 주님 앞
에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모습을 볼 때 ‘현란하게 춤을 추며 찬양하지 않아도 되는 구나.’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도 바뀌어야 되니까 무조건을 시작했습니다. 나도 바뀌어야지, 상대도 바뀌길 원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정말 눈물을 머금고, ‘주님 힘내세요’ ‘무조건’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 마음을 아무도 몰랐어요. 그런
데 정말 주님 알아주셨고, 우리 선생님 알아주시더라구요.
지금도 그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그 노력을 뿜어낸다면 이 섭리역사 얼마나 불
같이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 가진 재능들이 얼마나 많아요? “나같은 사람이 뭘?” 그럴 줄 알았어요.
“나같은 사람이 뭘 변화시켜? 너무 작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 마음부터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의 불을 통해 “나는 할 수 있어. 내가 하지 못한다는 이유, 나는 부족
하니까. 그러니까 변화해. 정말 한번 노력해보자. 이제는 정말 비상해 보자. 정말 한번 날아가 보자. 이렇게 한번 살
아보자.” 하는 불을 받기 바랍니다. 주님은 바로 섭리역사에 여러분 같은 사람을 불렀어요.
나같은 사람이 뭘까? 여러분 같은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필요해서 여러분을 사랑해서 이 역사에 여러분들
을 불러 오셨습니다. 날아볼까요? 한번 비상해 볼까요?
이 찬양으로 여러분 한번 날아오를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키고, 생명으로 나아가는 찬란한 새로워지는 완벽해지는
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생명을 주님 손을 붙잡고 ,주님과 같이 뛰어오르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비상’ 찬양)
비상해야 되요. 날아올라야 됩니다.
불받은 자, 새롭게 변화된 자, 실천자는 반드시 자기자신을 돌보며, 남의 생명까지 관리하며, 구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멀리서 찾지 마시고, 여러분의 주변 하나하나 바로 할 수 있다는 사람, 바로 나, 나같은 사람, ‘주님. 나
같은 사람을 불러주셔서 살려주시,고 이 뜻을 이루기 위해 나를 기다리셨구나.’ 하며 깨닫는 그런 시간되도록 진실
로 바라겠습니다. 새롭게 변화. 이것은 이미 작년의 주제였습니다.
올해 우리는 새로운 때를 맞았어요. 새롭게 변화되었으면,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내야 됩니다. 나무도 새롭게 변화
되면 반드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불붙는 역사, 더 찬란한 역사, 우리만 가지고는 나만 변화되
어서는 절대 이룰 수 없습니다. 함께 이루고, 함께 불붙어가지 않으면 절대 비전이 없습니다.
나와 함께 이 세상에 함께 변할 수 있어야 뛸 맛이 나고, 더 몸부림칠 맛이 납니다.
기도할 때 나만 아무리 ‘주여’ 해도 힘은 점점 떨어집니다. 소리칠수록 내가 ‘주여’ 하는 동안 전세계 계속 ‘주여’ 불
길이 일어날 때 이 힘으로 다시 주를 찾으며, 불붙는 역사 여러분 경험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역사가 생명의 역사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뛸 맛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씀의 성령이, 그리고 우리의 불타는 이 성령이 우리의 골수에,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의 영혼 속에 들어와 태워
버려야 됩니다. 우리의 죄악을 태우고, 우리의 정신을 태우고, 우리의 삶을 태워서 활활 불이 올라야 됩니다.
엘리야는 제단을 쌓아서 올렸죠. 돌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쌓아 그 위에 제단을 쌓고 도랑을 팠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하는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주시사, 그 제단에 번제물만 태운 것이
아니라 나무와 돌과 그 도랑을 가득 채운 물까지 가득 다 태워 버렸습니다. 우리의 제단, “주여. 내 가슴에 내 마음
에 나의 정신에 제발이나 불을 보내 주시옵소서. 주여 내게 응답하소서. 성령이여. 내게 불을 보내주시어 응답하소
서.” 간구할 때 번제물인 내가 타고, 내 주변이 타고, 이 세상에 타 활활활활 성령의 역사가 타는 그런 역사를 맞아
야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엘리야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제단이 불타는 그것도 모자라 도랑을 다 태워서 물을 태우듯
이, 이 세상과 마른 심령들 아직도 메말라 간구하며, 애태우고 있는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그런 생명들을 태우
는 그 날까지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불을 받야야 됩니다. 지금 우리는 불을 받을 때입니다.
내 제단이 태워져야 될 때입니다. 그냥 불가지고는 안됩니다. 활활활활 타올라서 주변을 태울 정도가 되어야 된다
는 것입니다. 오늘 그 불을 받고 가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사시겠습니까? 불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불을 내려주소
서. 불을 내려주소서. 내 제단에 불을 내려주소서. 태우소서. 부으소서. 우리의 제단이 활활 탈 것을 믿습니다.
(‘불을 내려주소서’ 찬양)
기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심정이 오늘 모든 자들 어떻게 참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 변화하지 못한 저희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너무나 큰 기대를 두시며, 한 시대가 다
가도록 이 역사를 위해서 쏟아 부어주신 그 사랑을 저희들이 어찌 그냥 우리만 받고 끝날 수 있겠습니까.
주님. 너무나 애가 타는 이 심정이 주님의 심정의 천분의 일, 백만분의 일도 안될텐데 주님 먼저는 너무 추수할 것
이 많은데, 일꾼이 적다 지금은 거두는 때인데 변화하지 못한 저희들을 용서하시며, 아직도 자기자신의 굴레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를 용서하시옵소서. 아직도 자기 제단에 불이 떨어지지 못하여 허우적대는 모든 자들 용서하시옵소
서. 아직까지 나의 것 내 것, 내 것을 크게 하며 내 것이 잘되고 내 주변이 잘되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옵소서.
이 섭리역사, 주님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 천국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한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어
찌 하나의 교회,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계, 그것만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의 세계, 온 세상, 온 땅, 온 지구, 주님께서 역사해 오신 6천년의 한을 풀어드려야 하는 그 때 이제 주
님이 오실 날이 너무나 긴급하여 주님은 신부를 찾으시고, 주님은 사랑할 자를 찾으시는데 아직도 준비되지 못한 저
희들을 용서하시며, 아직도 저희들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용서하시옵소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더 많은 것들을 보여드리며, 더 많은 것들을 해야하는데, 아직까지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이
유가 무엇이옵나이까. 주님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를 못살게 하는 사탄마귀를 멸하여 주시옵소서.
악의 무리를 멸하여 주시옵소서. 그릇된 생각과 사상을 멸하여 주시옵소서. 그릇된 정신을 멸하여 주시고, 그릇된
사고를 태워 주시옵소서. 죄악들을 태워 주시옵소서. 회개하지 못하는 모든 마음들을 주님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애타는 심정을 알게 하시옵소서. 벙어리들의 입을 열게 하옵소서. 벙어리인데 주 앞에 기도하지 못하는 벙어리, 말
씀을 외치지 못하는 벙어리, 이 역사를 증거하지 못하는 벙어리, 이 성령의 역사를 외치지 못하는 벙어리들을 깨워
주시옵소서. 심령의 불을 태워주시사 나가게 하시옵소서. 전진하게 하시옵소서.
움직이게 하시옵소서. 날아오르게 하시옵소서. 높이 오르게 하시옵소서. 멀리 가게 하시옵소서. 천국가는 그 날까지
천성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게 하시옵소서. 이대로의 살 변화하지 못하는 삶은 죽은 삶이다.
어찌 거기서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구시대에 머물러 구시대가 되길 원하느냐. 옛사람이 되길 원하느냐. 한 때는
그러했노라. 다 지나간 과거를 가지고 어찌 주를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변화, 과거를 감사하며 과거를 생각
하며 현실의 시대를 맞추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저희 섭리인들이 되길 원하옵고 원하옵나이다.
눈치볼 것 어디 있습니까. 이 눈치보는 모든 마음들을 일으켜 주시옵시며, 눈을 뜨게 하시옵시며, 주만 바라보게
하시옵소서. 주님 심정, 아직도 다 십자가에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그 심정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보내시옵소서. 보내시옵소서. 보내시옵소서. 아직도 환란핍박에 어깨를 움츠리며, 아직도 의심과 자기생각에 어깨를
움츠리고 마음을 움츠리고 있는 자들 발산하지 못하며,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모든 자들 주여 날개 달아주시
옵소서. 날아오르게 하시옵소서. 날개를 펴게 하여 주시옵소서.
너무나 엄청난 역사,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 날마다 역사가 불이 떨어져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며, 사랑의 역
사가 불붙으리라 믿습니다. 언제까지 주여, “앞으로 이렇게 할께요. 이렇게 할께요. 지켜봐주세요.” 이런 말을 하겠
습니까? 주여 앞으로는 “이렇게 했습니다. 주여 이렇게 했으니 주여 봐주시옵소서. 주님 이만큼 했으니 주님 역사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만큼 했으니 나를 쳐다봐 주시옵소서.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내 기도소리를 들어 주시옵소
서. 하는 저희가 될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애끓는 심정, 애끓는 모든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죽어있는 모든
마음, 울부짖지 못하는 자 고백하지 못하는 자 외치지 못하는 자, 모든 마음의 병을 고쳐주시며 오늘도 다시 한번
더 큰 성령의 불로 회복되게 하시며, 섭리역사 전체가 불붙지 못한다면 불붙는 자들을 통해 불붙어가게 하시옵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나 먼저 나 먼저 끝까지 끝까지 하겠사오니 주님 나 먼저 보내시옵소서.
우리 스승의 짐 나누어지며 우리 주님의 짐 나누어질 자가 여기 있사옵나이다. 그러나 나는 부족하옵나이다. 그러니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셔야만 하고, 주님께서 나와 일체되어 주셔야만 하고, 주님께서 나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야만
내가 할 수 있사오니 역사하시옵소서. 사용하시옵소서. 불을 내려주시옵소서.
다시는 우리 섭리역사 죄 가운데 날마다 전진하며, 의인되며, 주님의 심정의 신부되는데 부족함이 없이 역사하시옵
소서. 오늘도 역사하신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이제 더 이상 퇴보하지 않으며, 타협하지 않으며, 오직 주님과만
타협하며, 주님과만 의논하며, 주님과만 대화하며, 오직 주님의 뜻을 위해 살게 하시며, 이들의 불붙은 제단 위에 나
뭇가지, 돌가지, 그 도랑의 물까지 다 타듯이 이들의 주변, 그리고 이들의 모든 우리의 민족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세계까지 반드시 변화되게 하시옵소서. 할 수 있사오니 할 수 있사오니 섭리사 모든 자들 다시 한번 긍휼히 여기시
고 사랑으로 여기시사 변화되게 하시옵소서. 우리 새로운 자들, 주님 무엇으로 증거하겠사옵니까?
말로 이치로 어떻게 이 성령의 역사를 증거하겠나이까? 주님 이 마음으로 깨닫게 하시사, 그 영혼으로 깨닫게 하여
불이 붙게 하여, 성령으로 증거케 하시며, 주님께서 전도하여 주시옵시며, 주님께서 깨닫게 하시오며, 주님과 즉시
불이 붙어 주님의 신부되어 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역사 주 앞에 감사하오며, 지금 이시간 날마다 기도하시는 우리 선생님의 제단 가운데도 불이 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있는 그 제단에 불이 떨어져 능력과 은혜를 보게 하시며,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날마다 폭포
수같이 쏟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우리가 행할 때 저희들이 변화하지 못하는 환경을 바꾸어 주시며, 세상을
바꾸어 주시옵소서. 모든 것 주께 맡깁니다. 모든 것,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해서 더 타오르는 불의 역사, 저는 확신하고 확신하오니 그 불을 섭리사 모든 자들에게 부어주시사 사도시대
마가 다락방의 역사 “너희들은 새 술에 취하였느냐?” 성령의 역사가 임하여 증거치 않고는 주님의 사랑을 고백하지
않고는 살수 없었던 그 시대와 같은 놀라운 역사, 아니 그 시대보다 더 불이 타오르는 수준이 높아지고, 더 차원이
높아지는 그런 사랑과 진리와 말씀의 역사, 지금 이 때에 이 곳에서부터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주님께 사랑과 영광
모든 걸 드리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전세계 수고하신 모든 여러분들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받으소서.
우리 불이 나서 열심히 뛰고 달리시는 여러분들 절대 실망하지 마시고, 이 불이 더욱 더 타오를 수 있도록 하면 됩
니다. 여러분들 수고 많으시고, 아직까지 불이 타지 못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몸은
너무 귀하니까 조심하시고 편하게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