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0.05.01 (토)
2010년 5월 1일 선배가정국기도회 간증 주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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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일 선배가정국기도회 간증 - 주이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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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일 선배가정국기도회 간증 - 주이랑(임이랑)
1. <너희를 향한 선생의 사랑을 알라>
새벽기도를 하는데 예수님께서 ‘선생 사랑을 증거 해야 한다. 선생을 너무 모르니 떠나간다. 깊이 기도해. 그래야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다.’하였습니다. 그 후 저도 제가 아는 선생님, 제가 느꼈던 10년 동안의 선생님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았
습니다. 나에게 편지 주셨던 것이 사랑이였을까. 나에게 통화해 주셨던 것이 사랑이였을까. 여러 가지로 선생님의 사랑
의 근본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섭리사 신부야,
너희들 신랑 예수다. 봄날이 왔다. 바깥 어두운 곳은 싸늘하고 매세운 북풍이 분다. 그러나 내 품에 안긴 너희는 봄날의
따스한 햇볕이다.
사랑, 내 사랑의 봄이다.
내 신부야,
오늘은 너희를 향한 선생의 사랑을 증거 하고자 한다.
앞장 선 내게 해가 될까 쉬이 사랑도 표현 못하는 내 신부, 그 사랑을 내가 친히 증거 하고자 한다.
너가 준비한 사랑의 그릇을 꺼내어라.
사랑, 사랑 그의 온기가 담긴 사랑을 너에게 부어 주리라.
마지막 천사장 나팔과 함께 내가 강림할 것을 알렸을 때 그는 첫째로 너희를 떠올렸다.
그 찰라의 순간, 그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치는 너희의 얼굴을 나는 보았노라.
속히 알려줘야 하는데, 너희 한명 한명 붙잡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외쳐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그의 현실이 고통이
였다.
지옥 같은 환경이 문제가 아니요, 먼 한국 땅에 영혼 생생하게 들려오는 너희의 신음소리가 그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고
통이였다.
그리고 차디찬 곳에서 스스로 위한 고통의 시름이 아니요, 오직 너희 섭리사 너희를 위한 기도의 제단을 쌓았다.
피맺힌 눈물, 가슴 치는 통곡으로 내게 너희의 죄를 용서해 달라 간구했다.
30년간 편히 발 뻗고 자지도 못한 지치고 지친 그 몸으로 1년만 참으소서. 심정의 눈물 흘렸다.
너희는 모른다. 그가 나와 나눈 대화를.. 그의 심정을..
너희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역사를 바꾸는 기도였다.
너희 생명의 운명 바꾸는 기도였다.
그리고 그 기도가 오늘도 너를, 바로 너를 지키고 있다.
이 시간 말해보아라. 선생의 사랑을 받은 너희여,
너희 마음으로 고백해 보아라.
진정 그의 사랑을 보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였느냐.
섭리사 너희는 내게 말한다. ‘서운합니다. 섭섭합니다.’
그러나 내 신부야,
실상 선생만큼 외롭고 고독하고 서운하고 섭섭한 자 있겠느냐.
너희를 사랑하여 껴안고 온 지난 30년은 그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하는 십자가였다. 땅의 사랑을 이루려니 무겁고도
아픈 십자가였다.
그러나 절대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고, 그의 귀는 진실만을 들었으며, 그의 눈은 근본의 마음을 보며 행하였다.
내 진실로 증거 하노니 그는 공의로운 사랑을 하였으며. 진실된 사랑을 하였으며, 심정의 사랑을 하였으며, 사랑의 사랑
을 하였다. 진정 깨달아라.
그의 손길, 그의 눈빛 받음이 사랑이 아니다.
눈비 맞아가며 절절한 심정으로 지옥으로 치닫는 온 인류를 위한 기도가 사랑이요, 너희의 죄악 앞에 책망이 아닌 눈물
의 회개로 올린 그 기도가 사랑이요, 손과 팔이 마비되어 펜을 질수조차 없음에도 그가 보내는 말씀이 사랑이요, 어린
아이의 작은 신음에도 반응하며 마음으로 달려가 안아주는 그의 편지가 사랑이다.
선생 보지 못하였다 눈물로 아파하지 말고, 선생 사랑 보지 못함을 아파하여라. 육신세계의 사랑이 아니다.
육신세계의 사랑으로 선생의 사랑을 판단하니까 진정한 사랑의 참 맛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오늘도 선생의 사랑이 아프고, 너희의 사랑에 아프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 예수의 사랑도 아프다.
너희는 모른다.
나와 선생을 떠난 숱한 사람들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는 선생의 마음을 너희는 모른다.
너희는 그저 떠나는 형제로 여길지 모르나 그에게는 피붙이요, 살붙이다.
고로 마지막까지 참고 기다리며 용서하고 붙잡은 자 선생 뿐이였다.
인간의 사랑이였겠느냐. 아니다. 그 영혼까지 껴안는 신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찢기는 아픔이다.
그럼에도 사랑, 사랑,,, 진정 너희를 사랑하기에 오늘도 그 길을 나와 함께 간다.
섭리사 신부들아,
선생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희의 자랑이 되지 말고, 그 사랑을 전하는 너희의 행함을 자랑삼아라.
오늘은 선생도 양떼를 위한 심정의 눈물을 흘리건만 그 사랑을 받아 전해야할 섭리사 일꾼들에게서 그 눈물이 보이지
않는 다면 선생의 사랑이 거할 곳이 없다. 사랑은 전함으로 존재한다.
1000년 역사의 세월동안 진정 선생의 사랑이 남아지길 원한다면 지금 서로에게 그 사랑을 전하여라.
사랑으로 안아주고, 사랑으로 용서하며, 사랑으로 관리하고, 사랑으로 전도하여라.
선생이 내게 말하였다.
‘내게 잠시의 시간이라도 허락해 주신다면 섭리사 방방곡곡, 한사람 한사람을 붙잡고 눈물로 이 재림역사를 알리겠습니
다.’ 통곡하며 호소하였다.
알아라. 진정 알아라. 지금 너희에게 전해지는 그 말씀에 숨겨진 선생의 심정, 사랑, 눈물 제발 알아라.
그리고 선생과 같이 깨달은 자 전하여라. 그것이 선생의 소원이다.
너희 모두가 친히 휴거되어 나와 선생과 함께 영원토록 천국의 삶을 누리는 것, 그것이 너희 선생의 기도다.
육신의 자유를 가진 너희여, 진정 그 사랑을 전해다오.
내 신부야, 선생위해 나와 함께 기도하자.
강철 같은 정신 안에 숨겨진 심정의 눈물을 위로하자.
이 시간 내가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훗날 선생이 너희에게 들려주려나. 아니 너희 맘 아플까 그리 안할께다.
그저 속깊이 묻어둔 채 눈물만 눈물만 흘리겠지. 사랑한다. 안녕. 신랑 예수.
2. <나의 사랑의 확신을 가져라>(제목은 따로 말씀 안하셔서 내용상 임의로 적었습니다.
(계시의 산을 오르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다시 꺼내어 보는 계시입니다. 여러분도 많으실꺼예요. ‘회개 더 못하면
나는 휴거 안 될꺼같아. 나를 버리실꺼같아’ 저는 계시를 받으면서 제가 실수하면 ‘주님이 떠나실 꺼야’하는 두려움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심해지니까 하루는 그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이날 작정을 하고 예수님께 제 마음을 이야
기 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말로 기도하기보다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저는 휴거말씀 미리 배워놓고 다른 사람 휴거되고 나는 휴거 안 되면 어떡해요.’하며 눈물로 제 마음을 2시간 정도 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 성경을 읽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읽을 차례였는데 믿음장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갑
자기 오셔서 한마디 해주셨습니다.
“이랑아 선생이 어떻게 섭리를 이끌어 왔는지 알아? 바로 절대적인 믿음이다.”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서“너희 선생은 첫째 믿음으로 내가 존재함을 배웠고, 믿음으로 내가 사랑함을 느꼈고, 믿음으로 내가 그에게 역사
함을 알았고, 믿음으로 내게 시대의 진리를 배웠으며, 믿음으로 그의 사명을 알았고, 믿음으로 섭리역사를 시작했으며,
믿음으로 모든 핍박을 이기고, 믿음으로 지금도 복음을 외치고 있다. 너희는 그의 가장 큰 믿음이 무엇인지 아느냐. 내
가 절대적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역사한다는 확신이다. 믿음 없는 사랑은 갈대와 같아서 바람에 쉬이 흔들리나 믿
음으로 줄기를 튼튼히 한 거목은 비바람, 눈보라에도 울창한 사랑의 숲을 이룬다.”
그리고 이어서 베드로와 마리아의 사랑에 대해서 잔잔하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
<예수님의 말씀>
내 사랑아, 2000년 전 육을 쓰고 온 내게 베드로가 고백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이는 실로 위대한 고백 이였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 고백에 나는 그의 눈만 한참을 바라보았다. 거짓 없는 청아한 눈빛
이였다. 나는 그 눈빛에 작지만 강한 희망을 보았다. 내 목숨을 내놓아도 사그라들지 않을 역사의 태동을 보았다.
고로 나는 진정 평안한 마음으로 십자가 죽음의 길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눈물어린 희망으로 미처 열지 못했던 내 말문을 열어 십자가 구원역사의 비밀을 알리었다.
그날 내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의 고백이 잠들어있던 나의 제자들을 깨우고 2000년 역사의 잠을 깨웠다. 내 아버지의
역사지.
그러나 그의 순수한 사랑의 결실이라고 너희에게 말해주고 싶구나.
베드로는 그저 내가 좋아 나를 쫒은 제자였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감히 상상도 못한 채 육으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내가 그저 좋아 쫒았다. 훗날 그에게 물으니 스산한 인생길에서 홀로 고독케 하던 그에게 내가 내민 손이 참으로 따뜻
했다 말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의 포근함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쫒았다 말한다. 그러나 그런 그가 나를 부
인했던 까닭을 아느냐.
(제가 한참을 고민하던 뒤에 ‘두려워서 일꺼 같다 ’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두려울까?
(제가 ‘자신에게 닥칠 일들이 두려웠을꺼 같습니다.’)
맞다. 그러나 더 깊은 근본 이유를 생각해 보아라. 무엇이든 근본을 보는 것이 제대로 된 깨달음이다.
(그래서 제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문득 제 중고등부시절이 떠올랐어요.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100%
확신했기 때문에 저는 섭리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뵌 적도 없었고 그저 말씀만 믿고 쫒
았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이 나를 이단에 보낼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말 재림을 기다렸고 그것
은 아무도 몰랐고 오직 하나님만 아셨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100% 믿음을 가졌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예수님께 했습니
다.
“예수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향한 사랑의 확신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까. 자신을 향한 사랑을 진정 알았다면
두려웠을지라도 목숨 걸고 주님의 곁을 지켰을 것입니다”)
맞다. 잘 깨달았다. 그는 인류를 향한 내 사랑을 알았으나 자신을 향한 내 사랑을 미쳐 깨닫지 못한 자였다.
구원자 예수를 알았으나 그를 구원한 나 예수를 몰랐다. 살아계신 예수를 알았으나 그의 신랑된 나 예수를 몰랐다. 머
리로는 알았으나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앞으로 있을 내 십자가 죽음을 이야기 하자 그는 나를 붙들고 ‘주여 가지 마소서.’ 항변하였다. 진정 나를 위해
행한 일이였을까?
아니 그는 나와 함께 그 길을 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걸어야할 십자가 그 길까지 품어 사랑치 못했던 게다.
그러니 내가 잡히던 그 날에도 멀찍이서 나를 바라보았을 뿐 내 곁을 지키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모진 고문을 당하는 나를 보며 ‘나는 그를 알지 못하오. 나는 그를 알지 못하오. 나는 그를 알지 못하오.’ 3번
부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어떠했느냐.
그녀는 내 참 사랑에 눈뜬 자였다. 모두가 그녀를 버려도 내가 그녀를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였던 자다. 그러니 그녀
는 나와 영혼의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십자가 길을 가야만 하는 나를 품고 향유옥합을 깨트리며 나와 함께 그 길을
가겠다 사랑으로 서약하였다.
그리고 내 모진 십자가 길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키며 내 죽음까지 사랑하였다. 내 부활의 그 날에도 끝까지 나를 기
다려 처음으로 나를 맞았다.
그녀를 향한 내 근원의 사랑에 눈을 떠 느꼈기에 그녀도 근원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한 것이다. 나는 태양과 같은 동일
한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하였다.
그러나 누구는 나와 신부의 사랑을 나누고, 누구는 나와 자녀의 사랑을 나누었다. 왜인지 아느냐?
내 사랑을 깨닫는 만큼 나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사랑을 불같이 깨달은 자는 불같이 나를 사랑할 것이요. 내 사랑을 물같이 깨달은 자는 나를 물같이 사랑할 것이다.
베드로는 나를 사랑하였으나 그를 향한 내 사랑의 확신이 없으니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게다.
(제가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예수님,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언제 깨달았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였습니
까.’)
아니다. 그는 그때까지도 내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니 내게 사도요한에게 닥칠 훗날의 일을 묻지 않았느
냐.
여전히 사랑의 감수성으로 나를 대하며 마음 한 켠에 깊은 사랑의 슬픔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는 언제 예수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달았습니까?)
사랑을 깨달으면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난다. 언제였겠느냐. 너가 대답해봐.
(오순절 성령 역사 때였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맞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 때에 비로서 그를 향한 내 사랑을 전율로 체험했다. 어떠한 사랑 이였겠느냐.
고독한 그의 영혼을 말없이 끌어안은 사랑이다.
오직 그를 위해 인생도 마음도 목숨까지 내어놓은 사랑이다.
멀찍이서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도 나를 부인하던 그를 용서한 사랑이다.
지옥문 앞에서도 끌어안는 영혼의 사랑이다.
그러나 곁에 울고 웃으며 함께했던 내 육은 이미 떠난 후였다. 내 영혼까지도 이미 승천한 후였다.
그의 가슴이 어떠했겠느냐. 찢고 또 찢어도 떨칠 수 없는 원통함 이였다.
사랑의 아픔에 그는 숨조차 쉬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마음에 있는 불같은 사랑과 한설인 심정으로 그 자리에서
3000명을 전도하였다.
이것이 사랑의 성령이다. 내 사랑에 눈이 먼 그는 더 이상 내 십자가 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깊이 박힌 내 사랑의 불길 이끄는 대로 담대히 복음을 외치며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을 사도의 삶을 살
았다.
그리고 내 진정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는 십자가 형틀에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하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환한
웃음을 내게 짖더구나. 그를 못 박았던 자들이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상의 미소였다.
그 미소로 마지막 순간까지 내 사랑을 전한 자가 바로 나의 제자 베드로다.
내 오늘 너에게 묻는다.
내 사랑아, 너는 진정 내 사랑을 아느냐. 진정 내 사랑을 너는 확신하느냐.
초라한 너를, 보잘것없는 너를, 모두가 떠나버린 너를, 마지막까지 영혼으로 품으며 사랑할 이가 나 예수인 것을 믿느
냐.
모두가 너에게 죄인이라 손가락질 하여도 너의 선생만은 너를 대신에 그 무릎 다 닳도록 내게 용서를 빌며 애원할 것을
너는 믿느냐.
불행하게도 ‘나를 사랑한다.’ 고백하는 많은 섭리사 신부들이 사랑의 확신 앞에 흔들린다.
누군가를 향한 내 사랑은 보고 알았으나 자기 자신을 향한 내 사랑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랑의 소경이요. 귀머거
리요 불구자다.
그러니 두려움 속에 외로움이, 섭섭함이, 소외감이라는 사랑의 슬픔을 간직한채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지도 못하
고 자신이 정의한 사랑의 틀 속에 갇혀 발전도 전진도 없다.
근본의 사랑을 하지 못하니 글로 사랑을 채우고, 사명으로 사랑을 채우고, 그러다 사명 잃고 일도 잃으며 사랑도 잃고
생명까지도 잃게 되는 것이 아니냐.
사랑의 확신. 이는 내 태양과 같은 동일한 내 사랑을 받는 그릇이다.
사랑과 믿음이 더해질 때 너의 가슴이 내 사랑으로 벅차오르며 유일무이한 너의 존재가치를 회복하며 핍박도 환란도 죽
음까지도 능히 이기며 죽는 순간까지도 내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너가 진정 내 사랑을 받았다면 확신으로 너의 마음에 새기어라.
다른 무엇보다 내 사랑을 구하여라. 사랑의 믿음을 구하여라.
오직 너를 향한 내 사랑으로 오늘도 너가 웃음질길 바란다.
사랑한다. 내 사랑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