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주일말씀2010.05.20 (목)

주이랑 서울진실한교회 캠퍼스

선포일
2010.05.20 (목)
성경 본문
새벽 12:30-3

첨부 파일

삼위일체와 성삼위 작성일 : 2010. 05. 20. (목) 작성자 : 주이랑 5/13-5/20 새벽 12:30-3:45 예수님께 ‘삼위 일체’와 삼위에 대해 더욱 깊이 알고 싶다고 여쭈었고 일주일가량 말씀해주신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 예수님 말씀 ※ 사랑아, 삼위는 깊은 비밀 중의 하나이다. 네가 성장할수록 더욱 깊은 삼위를 만나게 될 것이요, 깨닫게 될 것일 진대, 어찌 그 깊음과 넓음을 지금 네가 다 담아낼 수 있겠느냐. 그러나 너에게 뜻이 있어 삼위에 대해 밝히 이르리니 너는 더욱 깊은 심정과 영적 조건으로 나의 말을 받으라. 진리는 머리가 아닌 네 영혼이 받는 것이요, 네 영혼의 울림만큼 네게 깨달음이 되어 임할 것이니, 고로 나의 말은 깊은 기도와 깊은 심정으로 듣고 받아야 온전히 그 성산에 오를 수 있느니라. 실상 너희 인간은, 내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그 본연의 모습에 섰을 때야 비로소 여호와의 그 크신 이름을 경배할 것이요, 찬미할 것이요 그 권능과 권세의 깊은 사랑을 깨달을 것이요, 영혼의 깊은 울림을 듣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모성신 성령의 온유하고 따스하며 모든 것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사랑의 깊이를 깨달을 것이요, 나의 온전한 신부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나 예수의 너희를 향한 구원의 의미와 깊이 있는 사랑을 온전히 깨달으리라. 삼위는 곧 여호와 내 아버지, 성령 내 어머니, 그리고 나 예수를 말함을 알 것이다. 그러나 실상 ‘아버지’, ‘어머니’라 칭함은 너희 육계의 관계로 비유코자 함임을 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왜 내가 여호와를‘아버지’라 칭하였는지 아느냐? 이는 깊은 말이니 깊이 깨달아야 한다. 나 예수는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다. 그렇지? 그러나 삼위의 관계를 ‘혈육관계’로 비유한 것은, 내 안에 여호와와 같은 ‘형질’을 지니고 있음을 비유코자 함이다. 즉, ‘신성급’의 형질은 오직 삼위만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나니 마치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의 ‘아들’만이 물려받아 공유하고 있듯 그러한 신성급의 형질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음을 비유하고자 ‘부자(父子)’관계로 설명한 것이다. 사랑아, 남성 안에 ‘여성성’이 있고, 여성 안에도 ‘남성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류사 가운데 엄청난 충격이 되지 않았더냐? 인간의 성품도 보아라. 실상 그 원재료는 같은데 구성 비율에 따라 성품이 결정되고 성격이 결정되지 않더냐. 그와 같이 실상 삼위 역시 각 신은 스스로 완전한 신으로 존재하니 그 원재료는 같으나 그 구성 비율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하고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한다. (네, 예수님 그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왜 하나님께서는 유일한 신이라 하셨습니까? 유일신이라 말씀하셨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는 신과 모성신 성령이 계신 줄 몰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창조사역의 주체가 바로 여호와였기 때문이다. 사랑아, 지금부터 깊은 말을 전할 테니 깊이 따라오너라. 천국은 마치 육계의 말로 철저한 계급 사회라 할 수 있다. 천국은 개성의 세계이지? 그래, 맞다. 그러나 개성의 빛으로 존재하지만 자신의 수준과 급수에 따라 천층만층 구만 층으로 쪼개어 사는 곳이 천국이다. 사랑아, 개성과 급수는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지? 천국에서 개성과 급수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는 깊이 이해해야 알 수 있으니 다음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자. 영계와 육계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주체는 오직 ‘유일신’ 여호와시니라. 나와 모성신 성령은 분명 동급의 신으로 존재하나 창조사역에 있어서 여호와를 머리삼고 마치 그의 지체와 같이 움직이고 있다. 이를 형상화하면 정삼각형 형상이 될 것이다. 육신의 핵이 무엇이냐? (마음, 뇌입니다) 그래, 그와 같이 창조와 운행의 핵이 바로 여호와인 것이다. 고로 머리가 되신 신중의 신 여호와를 두고 유일신 여호와라 칭한 것이다. 내 말이 이해되느냐? (네, 예수님) 삼위일체는 영계와 육계를 나눠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이해가 쉽고, 깊이 깨달아진다. 영계에서 삼위일체란, 네게 말한 바와 같이 마치 삼위가 하나의 육신과도 같이 여호와를 머리삼고 나 예수와 모성신 성령이 그의 지체되어 행하는 것과 같다. 고로 하나의 뜻, 하나의 심정, 하나의 목표 아래 삼위는 각각의 ‘사역’을 감당하며 마치 한 몸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 이 이치를 알겠느냐? (네, 예수님 너무 신기합니다) 너희 인류를 향한 우리의 ‘하나의 뜻’이란 바로‘지상천국’을 의미한다. 실상 타락의 역사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다면 지상천국이라는 뜻은 이미 이루어져 지구라는 지상천국에서 여호와의 사랑의 대상체를 길러 신부 삼는 육계 창조의 본연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구원의 사역’이 시작되었으며 이 구원의 사역의 최종 목적지는 ‘지상천국’으로 ‘사랑의 신부’를 길러내는 자궁과 같은 지구 본연의 역할이 있음을 절대 잊지 말아라. 육계에서의 삼위일체를 네가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육계의 원리를 진정 알아야 한다. 사랑아, 육계는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라 하였다. 그렇지?(네, 예수님 그러합니다.) 영계도 실체의 세계요, 육계도 실체의 세계다. 그런데 더 깊이 있게 네가 깨달아야 할 것은, 마치 예술가가 자신의 정신과 관념을 예술품이라는 실체로 빚어내듯 여호와께서 자신의 사상과 정신, 뜻과 사랑을 육계라는 ‘실체의 세계’로 빚어냈다는 것이다. 고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가의 관념의 세계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실물’로 표현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계의 원리와 이치가 육계에서는 보이는 실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내 말을 알겠느냐? (네, 예수님. 저는 알겠는데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조금 더 자세히 가르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러자. 깊이 듣고 좇아라. 영계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마음 실과’라 하였다. 그렇지?(네, 그러합니다.) 그래서 영계에서 나누는 극한의 사랑은 육계에서처럼 육신끼리 실체로 사랑의 관계를 나누지는 않는다. 육계에서의 ‘사랑의 관계’는 마음과 마음이 실과가 되어 사랑을 나누는 영계의 사랑을 ‘실물’로 표현한 것인 게다. 내 말을 알겠느냐? 또한 육계의 ‘시간’을 보아라. 실상 영계는 ‘시간’이라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육계에서 사는 네가 ‘영원’이라는 시간관념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왜냐하면 영계와 육계의 운행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계에서는‘변화’라는 관념이 존재한다. 완성된 상태로 영원히 지속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리고 이 변화라는 개념을 실물화 한 것이 바로 육계의 ‘시간’이라는 개념이다. (네, 예수님 너무 신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이는 어려운 말이다. 이는 나중에 더욱 깊이 있게 깨닫도록 하자. 더욱 쉬운 예를 또 말해볼까? 천국은 ‘사랑’으로 존재한다. 그렇지? 그런데 천국 역시 사랑의 주고받음의 세계다. 즉, 여호와의 사랑과 사랑의 대상체의 사랑이 맞닿을 때 사랑이 완성되는 사랑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육계로 실물화 한 것이 바로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다. 고로 쉬이 말해 원관념의 세계, 원리의 세계가 영계라면 ‘이와 같이 이러하다’와 같은 ‘이치’의 세계가 바로 육계인 것이다. 고로 ‘모든 만물을 보라.’고 성서가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모든 만물 안에는 여호와의 정신과 관념의 세계가 오롯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삼위일체로 돌아가 다시 말해보자. 영계에서 삼위일체는 어떠한 하나의 형상물 안에 삼위가 함께 들어가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하나의 뜻 안에서 하나의 육체와 같이 각각의 역할을 하며 움직이기에 그리 말하였다고 네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육계는 ‘육’이라는 그릇 곧 영을 담을 수 있는 형상물이 존재하고 있기에 실상 나 예수라는 ‘육’안에 영으로 존재하시는 여호와, 모성신 성령이 실체로 거할 수 있기에 이를‘삼위일체’라 말하는 것이다. 내 말을 알겠느냐? (네, 예수님 이해했습니다.) 고로 성서를 보아라. 요한복음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하였다. 여기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한다.’ 함은 영계의 삼위일체 안에 내가 거함을 말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이라는 것은 육계에서 실상 여호와께서 내 육을 쓰고 역사하심을 말하는 것이다. 이어 또 보아라. 요한복음 14: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여기서 ‘그날’은 곧 이 마지막 때요, 여기서 ‘내가 아버지 안에’는 영계의 삼위일체를 ‘너희가 내 안에’는 나는 곧 천국을 상징하기에 휴거된 너희가 나의 천국에 함께 거함을,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은 곧 육계에서 휴거를 맞은 자들 안에 내가 실체로 거하며 온전한 일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깊은 말이니 깊이 깨달으라. 2. 삼위의 역할 (예수님, 너무 깊은 말씀이라 제가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습니다. 예수님. 저 삼위의 역할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깨닫고 싶습니다. 예수님 저 좀 가르쳐주세요.) 삼위의 역할은 실상 ‘어떠한 뜻 아래에서의 그 역할을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할 수 있다. 즉, 창조의 사역에서 주체는 여호와요, 구원의 사역에서 주체는 나 예수요, 성령의 사역에서 주체는 모성신 성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더 깊이 이야기하면, 구원의 사역도, 성령의 사역도 우리의 머리되신 여호와와 한뜻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상 여호와 ‘유일신’을 중심으로 둔 정삼각형을 그릴 수 있을 게다. 이것이 축소 확대 아니겠느냐. (네, 예수님 맞습니다. 섭리도 보면 한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머리이지만 확대시켜 지역으로 보면 지역장이 머리요, 또 확대시켜 섭리로 보면 선생님께서 머리요, 구원역사로 더 확대시켜 보면 예수님께서 머리가 아니십니까. 이와 같은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래 맞다. 그리 이치로 깨닫자꾸나. 그러나 계급적인 차원에서 이것을 깨달으면 아니 된다. 그저 개성의 차이로 이해하면 좋겠구나. 이는 어려운 말이니 내 다음에 말한다 하였지? 천국의 원리를 배울 때 더욱 깊이 배우도록 하자. 여호와 내 아버지는 신중의 신이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시며 영계와 육계를 창조한 신이시다. 사랑의 본체시며, 그의 사랑은 ‘창조의 사랑’이라 내 너에게 설명하며 정의한 바 있다. 고로 창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그 사랑을 더욱 깊이 있게 깨달을 수 있다고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네, 예수님 기억합니다.) 그는 ‘판단의 신이요, 결정의 신’이시다. 즉, 처음으로 ‘뜻’을 세워 판단하고 결정하는 삼위의 세계에 있어 머리의 역할과 같다. 창조의 사역은 100% 그의 뜻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나 예수와 모성신 성령은 그의 곁을 지키며 함께 사역을 이루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구원’이 필요케 되었을 때 여호와는 나 예수에게 그 사역을 부탁하였고 실상 아담과 하와 이후 나 예수는 너희의 구원사역의 머리가 되어 행하였다. 그리고 때가 되어 육을 쓰고 지상에 거하며 ‘메시아’라는 이름으로 너희의 구원자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 구약에 보면 여호와의 이름만 등장하지 예수님은 등장하시지 않습니다) 그래, 맞다. 영이 죽었으니 어찌 너희 곁을 서성이는 나 예수의 신을 깨달을 수 있었겠느냐. 그저 ‘여호와’라는 이름 석 자만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구약시대 사람들이 어찌 영으로 육계를 서성이는 여호와, 모성신 성령, 나 예수의 신을 예민하게 구분하여 깨달아 알 수 있었겠느냐. 실상 하와의 탕감 기간이 끝나고 복직 역사가 시작되면서 하와의 원존재가 된 모성신 성령의 존재가 너희 가운데 알려진바 된 것이 아니더냐. 이는 깊은 말이니 깊이 깨달아라. 또한 구원사역의 주체가 나 예수라 할지라도 확대시키면 여호와가 머리가 되시니 실상 여호와의 역사로 볼 수도 있는 게다. 그러나 영적 실체로 보면 나 예수가 얼마나 자주 지구촌을 헤매며 돌아다녔는지 너는 모를 게다. (예수님, 맞습니다. 저도 사실 저를 전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 알고 늘 하나님께만 감사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찍으시고 예수님께서 영으로 전도하셨다는 어느 계시자를 통해 주신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겠지요?) 그래,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그리 깨닫도록 하자. (그럼 예수님, 구약 성서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하신바 된 내용 중 예수님의 말씀도 있는 것인가요?) 아니, 내가 영으로 서성였다 하나 나의 말을 전한바가 없으니 구약 말씀의 주체는 여호와의 말씀이로다. 그러나 실상 여호와의 말씀이 곧 나 예수의 말이요, 모성신 성령의 말이지 않더냐. 한마음, 한뜻, 한 말씀이니라. 이를 절대 잊지 말아라. (그럼 예수님, 사람들이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지고 계신 신이라 말합니다. 이는 무슨 말인지 깊이 있게 알고 싶습니다. 그럼 여호와와 모성신 성령은 인성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것입니까?) 내가 인성과 신성을 가졌다는 말은, 내가 육의 삶도 살았고 영의 삶도 살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 안에서라면 삼위 중 나 예수만 인성과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구나. 실상 육을 지녔던 신은 나 예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을 더 깊이 깨달으려면 먼저 인성과 신성이 무엇인지 너와 내가 정의해야 하겠구나. 사랑아, 나의 말은 진리다. 그리고 그 말을 네 영이 듣고 너의 혼체를 통해 글로 표현되고 있다. 고로 단어 하나를 선택함에도 분명한 뜻과 정의를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훗날 오해가 되고, 이해되지 못함이 되니 너는 깊은 나의 말을 받을수록 더욱 신경 써서 세밀히 나와 의논해야만 한다. 또한 진리는 영계에 속한 것이라 실상 그곳에 올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사랑’은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다. 그러나 ‘사랑은 따뜻하다’라고 한다면, 이는 사랑의 한 부분을 칭하여 말하는 것이지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지?(네, 예수님) 이것이 진리의 위대함이다. 진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세계다. ‘사랑’만 보아도 네 평생에 걸쳐 사랑의 성산을 오른다 하여도 그 깊이와 차원을 다 깨닫지 못하지 않더냐. 영계는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세계’다. ‘언어’라는 그릇은 육계의 것으로 결코 영계에 속한 진리의 풍요로움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그러니 나의 말을 밧줄 삼아 너희 각자가 오르고 올라 그 깊이와 넓이를 영혼육으로 느껴봐야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다. 내 말을 알겠느냐? (네, 예수님 정말 맞습니다. 정말 그러합니다.) 사랑아, 인성과 신성의 차이가 무엇이라 여기느냐? (인성은 육성이고 신성은 영성일까요? 예수님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네게 신성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고 인성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구나. 이는 깊은 말이니 깊이 깨달아야 한다. 너희는 창조주의 사랑으로 창조되었으니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구원 역시 하늘의 역사가 있을 때야 가능하며, 육계의 삶 역시 서로 더불어 살아야만 존속시킬 수 있으니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이치다. 또한 인성은 ‘한계를 아는 것’이요, 신성은 ‘한계를 모르는 것’이다. 실상 인간의 한계가 무엇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죽음으로 인해 시간의 유한성이 있고, 공간적으로도 육신을 쓰고 움직이는 한도가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맞다. 육신의 한계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지. 그러나 실상 너희의 시간의 ‘개념’이 한계를 창조한다. 영계의 영원성에 근본을 두고 너희의 시간 개념을 정립한다면 실상 한계는 없다. 언제나‘과정’일 뿐이다. 또한 공간적인 제약 역시 기술의 발달로 점차 축소되고 있지 않더냐. 고로 시간과 공간이 너희의 근본적인 한계가 되지 않는다. 다만 육신이 존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희의 육신이 가진 한계라면 한계다. 그러나 내 진정 말하고 싶은 인간의 한계는 너희의 ‘타락’으로 인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곧 영적인 한계이다. 영으로 살지 못하니 육을 좇고, 육계를 좇으며 본연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계에 막혀 살고 있지 않더냐. 결국 한계를 아는 것이 인성이요, 육성이다. 그러나 나 예수가 가지고 있는 인성은 조금 다르다. 너희의 타락으로 인해 한계를 아는 것을 말함이 아니요, 내가 육을 쓰고 행함으로 ‘육신의 한계’를 더욱 깊이 이해함을 말한다. 곧 앞서 말한 너희 인간 본능의 한계이다. 사랑아, 여호와와 모성신 성령은 실상 너희 인간의 한계를 몸으로 체화하지 못하였기에 그것을 알고 이해하는 감각이 실상 다르다. 나 예수는 몸소 체화해 봤기에 그 감각을 조금 더 세밀히 알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더 깊이 이해하고 그렇지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는‘감각의 통로’가 다르다는 말로 너에게 설명하고 싶다. 그래서 쉬이 말해 그저 삼위 중 나 예수가 너희의 인성을 더 잘 이해한다는 말로 그 감각의 차이를 대신 설명하도록 하자. 인성과 신성이 이해되느냐? (네, 예수님 알겠습니다.) 실상 삼위의 감각은, 신성급이라 너희가 천국급 영이 된다 하여도 감히 깨닫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러니 너희에게 필요한 말만 전하도록 하자. 깊이 들어가 설명한다 하여도 육계의 이치로 존재하는 것이 없으니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말 알겠지?(네, 예수님 알겠습니다.) 3. 성령과 모성신 성령 (그럼 예수님, 성령과 모성신 성령은 다른 것인가요?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어려운데 예수님께서 쉽게 설명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모성신 성령은 ‘성령 역사’에 있어 주체가 된다. 이는 나 예수와 같은 이치니 설명하지 않겠다. ‘성령’은 쉬이 말해 ‘성스러운 영’으로 어떠한 실체가 존재한다기 보다는 마치 ‘너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릇’과 같아서 이것이 여호와의 신, 나 예수의 신, 모성신 성령의 신과 결합하여 너희에게 부어지는바 된다. 그래서 여호와의 신을 받으라는 말은, 성령과 결탁된 여호와의 능력, 은혜, 사랑을 받으라는 말과 같다. 여호와의 신과 결탁된 성령은, 너희 안에 거대한 표적과 이적을 낳으며 절대적이고 권위 있으며 능력 있는 진리와 사랑을 심고, 창조의 사랑의 근원을 깨닫게 하며 여호와를 볼 수 있는 눈과 귀로 변화시키느니라. 고로 여호와의 영을 받은 자는 창조의 근원을 깨닫고 지상천국의 뜻을 이루고자 선과 의를 행하며 더욱 절대적인 권능으로 악을 멸하는 역사가 너희 가운데 일어나게 할 것이다. 나 예수의 신과 결탁된 성령은, 너희 안에 거대한 표적과 이적을 낳으며 너희의 인성을 보듬어주는 진리와 사랑으로 구원의 사랑의 근원을 깨닫게 하며 나 예수를 볼 수 있는 눈과 귀로 변화시키느니라. 고로 나의 영을 받은 자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구원사역을 함께 이루고자 할 것이요, 구원의 정신과 사랑을 깊이 있게 체득하게 된다. 모성신 성령의 신과 결탁된 성령은 ‘회복의 사랑’, ‘보호의 사랑’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며 갖가지 은혜와 은사로 거대한 이적과 표적을 너희 안에 행하시느니라. 나 예수가 승천하기 전, 여호와께서는 내게 이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이라 말하였다. 인류 가운데 성령 역사의 시작을 알린 말이다. 여기서 보혜사 성령은 곧 모성신과 결탁된 성령으로 갖가지 은사와 은혜 영적 현상들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갈기갈기 찢어진 나의 제자들의 마음을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신 분이 바로 모성신 성령이라 섭리사 가운데 말한 바 있지 않느냐. 그리고 2000년 동안 모성신 성령이 주축이 되어 성령 역사를 일으켜 왔으며, 삼위와 결탁한 갖가지 성령 역사가 너희 가운데 함께 했다. 그러나 네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니 ‘성령’은 곧 거대한 영체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핵심 사실이다. 이는 깊은 말이니 나를 깊이 좇아라. 영체의 변화는, 단순히 너희의 혼체로 너희 스스로 이룰 수는 없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명이 탄생하듯 너희 육신인 땅의 수고와 삼위의 성령인 하늘의 수고가 맞닿았을 때 폭발적인 영적 변화를 이루는 신비로운 역사다. 고로 지금 너희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천국 성령 운동은, 그동안의 역사와는 차원이 다른 더욱 강력한 삼위의 신이 너희에게 부으심 바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진정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 불같은 성령은 여호와의 성령이고 따스한 성령은 모성신 성령의 성령일까요? 삼위의 성령을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지 조금 어렵습니다) 결과를 보고 깨달으면 된다. 삼위 모두 불같은 성령도 따스한 성령도 너희 가운데 줄 수 있으나 그 영을 받으면 너희 안에 세밀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나는 역사가 일어나니 그것을 예민하게 깨닫고 알면 된다. 사랑아, 오늘은 귀한 나의 말을 전했으니 깊은 기도로 나의 말을 깊이 깨닫길 바란다. 사랑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