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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교2010.05.29 (토)

이선진 사랑

선포일
2010.05.29 (토)
성경 본문
오전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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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엔 한계가 없느니라 - 작성일: 2010년 5월 29일 (토) 오전 3:30 - 작성자: 이선진 (분당 제일교회, 평화 오케스트라 첼 로) 안녕하십니까? 서울 분당제일교회 이선진입니다. 2010년 5월 29일 예 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과 인간의 사랑에 한계가 있습니까? 예수 님이 저희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수준이 바로 사랑의 한 계점 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예수님 말씀 * 아니니라. 사랑엔 한계가 없다. 나는 너희 인간을 사랑함이 끝이 없고 어떠한 죄인이라도 최고로 사랑해준다. 한계점 없는 사랑이니라. 한계가 없는 사랑 잘 와 닿지 않지? 잘 설명해주겠노라. 나 예수이노라. 사랑이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또 낳고 무한히 낳는단다. 한 가지 사랑에서 그치지 않으며 계속해서 증가되는 게 사랑이지. 사랑이란 무한이다. 영원이다. 사랑만이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노라. 이러한 속성을 가진 것이 또 무엇이 있는지 말해 보거라. (영, 천국, 성삼위가 있습니다) 그래, 맞다. 다 사랑으로써 이루어진 존재 아니더냐. 나 예수도 하늘 아버지와 성령 어머니와의 사랑으로 잉태되었듯 천국 또한 그러하며 너희의 영 또한 그러하니라. 다 사랑이니라. 사랑으로써 낳은 존재물들이지. 너무나 감사하지 않더냐.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너희를 사랑해주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나님 외에 이렇게 너희를 사랑으로 길러주고 재워주고 섭리에 데려와 무한한 사랑 나누자 권고하며 앞으로도 영원한 사랑 해나가자는 분이어디 있더냐.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속성에 대해 잘 깨달을지어다. 사랑하면 다 해주고 싶은 것이다. 무한히 주고 또 줄 뿐이다. 희생과 사랑 이 또한 뗄 수 없는 관계이지. 항상 슬픔의 눈물만 흘리며 너희에게 사랑 내뿜고 계신 하나님, 진정한 사랑의 존재 체이시다. 사랑 그 자체, 아니 사랑이란 이름으로 불려도 될 존재이시다. 사랑이 참 놀랍지 않더냐.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으로도 희생하고 헌신하며 자신 을 아끼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다 퍼주고 싶고 무조건 위해주게 되지 않더냐. 바로 사랑의 위대함, 이 때문에 너희를 창조하신 것이니라. 사랑으로써 창조하지 않았더라면 이 지구는 이미 멸망했 다.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니 무한히 용서하셨다. 용서 또 용서 그리고 용서... 용서로써 사랑을 표현한 단 한 분, 자신의 아들을 내려 보내어 피로써 희생시킴으로 사랑을 표현한 분, 자신의 눈물의 고백으로 사랑을 표현한 그 분, 하늘 그 분 나의 아버지를 기억해다오. 그리고 사랑해다오. 사랑, 사랑, 또 사랑이다. 사랑엔 한계가 없다. 절대 없다. 있을 수 없다. 유일하게 한계가 없는 인간의 감정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사랑에 한계점을 만들지 말라. 너희가 너희의 사랑을 정하지 말아라. 이것 밖에, 이 정도밖에 못 한다며 불평불만 말아라. 그 정도의 사랑에 만족하지 않으신다. 더 더 더 큰 차원의 사랑 나에게 하나님께 반드시 주길 바란다. (예수님, 그렇다면 구약 신약 성약 시대급으로 계속 발전 해왔듯 주님이 저희 인간을 사랑하셨던 그 사랑의 정도가 계속 발전해 오신 것입니까? 구약의 인간들을 현세의 인 간들처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맞다. 아담 그리고 하와의 변질로 나와 하나님의 너희 인간을 향한 사랑도 점차 낮아지게 되었지. 차원 급의 하락, 사랑의 깊이의 부재. 현재 너희에게 주고 있는 사랑의 차원에 비한다면 개미만도 못한 사랑이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지 않았느냐. 거기에서 나의 아버지가 인간들에게 사랑을 구걸하며 지금처럼 눈물과 오열을 하는 대목이 있더냐. 나 예수, 무릎을 꿇고 너희 앞에서 사랑을 구걸하는데 이 정도의 부탁과 간구를 본 적 있느냐. 없지 않느냐. 사랑의 차원이 시대의 차원 급에 따라 발전해 온 것이다. 발전된 사랑, 한 차원 계속 높여야 하는 사랑, 지금의 사랑이다. 신부의 사랑일지라도 끝이 아니다. 신부의 사랑 안에서도 계속해서 끝까지 한 차원 두 차원 높여야 한다. 끝이 없다. 사랑에는 끝이 없노라. 그러하기에 도전해볼 만하지 않느냐. 한도 끝도 없이 높일 수 있는 사랑 도전하여라. 나 예수가 너희를 한 차원 한 차원 매일 높여가며 사랑해 주듯 너희도 날, 차원 높이며 사랑해주어야 한다. 원한다. 안주하지 말거라. 후퇴하지 말거라. (예수님,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현재 주님을 향한 사랑의 수준이 얼마나 높습니까?) 말해주겠노라. 선생의 사랑 또한 무수히 발전하였노라. 처음 그 때, 월명동에서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은 또 천지 차이이니라. 월명동에서 선생이 나를 사랑함으로 세웠던 무수한 조건들과 이겨낸 시련들을 바라보며 너희는 놀라지 않았느냐. 언제 저런 사랑 해보나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선생은 이미 그때의 사랑의 수준을 뛰어넘어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든 수준의 사랑까지도 도전하고 있다. 천주의 사랑, 나 예수의 사랑에 무섭게 도전하고 있다. 놀랍다. 실로 놀라와.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 정도 급의 사랑을 나에게 줄 수 있는지. 매일 한 차원씩 높아져있는 선생의 사랑을 바라보노라면 감탄사뿐이다. 감탄의 소리만 내 입에서 터져 나온다. 그 급의 사랑을 하려면 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더 이상 너라는 존재는 없어야 하노라. ‘자신’이 없는 상태, ‘나’ 라는 존재가 없는 상태 그런 상태가 되어야만 나 예수의 사랑을 닮아갈 수 있다. 너희의 마음을 모두 비웠다 말할 수 있는 상태는 더 이상 너희의 욕심대로 살아가지 않으며 무엇이든 묻고 또 물으며 그저 내가 좋다는 방향대로 따르는 것이다. 너희에게도 말씀의 분별력이 존재하지 않더냐. 숱한 세월 말씀을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더냐. 나의 의향을 파악하며 내 뜻이 무엇인가 알기 위함이 아니었더냐. 그 말씀에 오로지 입각하여 내 뜻을 판단하고 묻고 또 물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사랑 원한다. 사랑한다. 안녕. 나 예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