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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0.06.09 (수)

100609 수요말씀

선포일
2010.06.09 (수)
성경 본문
잠언 15장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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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9일 수요말씀> 나와 의논해야 미리 예비해 놓은 대로 현재도 미래도 잘된다 본 문 잠언 15장 22-24절 이사야 45장 11-12절 마태복음 11장 29-30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나와 의논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선생이 지난날 주님과 의논하고 행한 것을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사연들을 다 말할 수도 없고, 또 선생만 알고 전체에게 말해서는 안 될 내용이 많으니 오늘은 신입생들도 잘 알아듣도록, 먼저 온 자들 이 알고 가르쳐 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쉬운 것만 몇 가지 말하겠습니다. 1. 월명 호수 안의 돌 섬 (자료 화면 보여 주며 설명) 월명동에 가면 월명 호수가 있습니다. 그 안에 정자가 있고, 정자 옆에 돌 섬이 있습니다. 그 돌 섬에는 소나무 분재도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 돌 섬에 얽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호수를 만들 때 돌이 나오기에 주님께 이 돌을 깨부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에 진흙이 묻어 있었고, 거치적거리기도 했고, 또 호수에 가득히 물을 채운 후에 노 젓는 나룻배를 타게 되면 돌 섬에 배가 부딪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의 생각은 돌 섬을 깨 없애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 니다. 이런 것은 주님께 여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옆에 돌 깨는 포크레인 뿌레카가 있었고, 한창 높이가 낮은 돌을 깨 버리고 있었기에 그 돌도 깨 버리려고 했습니다. 15분이면 속 시원히 깰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돌을 깨기 전에 주님께 “이 돌을 깨야 되겠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깨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다시 주님께 묻기를 “호수에 배를 띄우게 하고 뱃노래를 부르게 하겠다고 주 님이 말씀하셨는데, 돌 섬이 있으면 노를 젓고 다닐 때 걸립니다.”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럼 네 생각은 어떠냐?”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배가 돌에 부딪히고, 노 젓는 데 부딪히고, 배가 돌 섬 에 걸리면 나무배이니 망가질 것입니다.” 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깨지 말고 낮은 돌만 깨고 남겨 놓아라.” 하셨습니다. 다시 주님께 묻기를 “호수에 물을 채우면 1m 이상 채울 것인데, 돌 섬이 물에 잠기면 불과 얼 마 정도밖에 안 보일 것입니다. 호수의 물 높이를 어느 정도로 할지 몰라도 잘못하면 돌 섬이 물에 다 묻히지 않겠습니까?” 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깨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깨지 않고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을 보는 사람들마다 선생이 생 각했던 대로 호수에 물을 가득히 채우면 돌이 안 보이겠다고 말했고, 또 노를 젓고 다니다 보면 배가 돌에 걸려 배 바닥이나 옆이 부딪혀 위험하겠다고 말하며 여러 가지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선생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그냥 놔두라고 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하기 를 ‘예수님은 노를 젓고 다닐 때 배가 돌에 부딪히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셨나? 주님과 의논한 것이 잘못되었다.’ 고 할까 봐, 그렇게 하여 주님의 심정을 상하게 하는 죄를 지을까 봐 주님과 의논했다 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도 실상 호수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젓고 다닐 때 배가 돌에 부딪힐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호 수에 멋있게 물을 채우면 돌이 물에 묻히거나 아주 조금 정도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고 그 돌이 많이 보이도록 호수에 물을 적게 채우면 보기 싫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것이니 주님 의향대로 하는 것이 도리고, 사명자로서 만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배 타는 것이야 우리가 타는 것이니 주님께서 그것까지 신경 쓰실 필요가 없기에 그같이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호수 바닥 공사를 마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호수 옆 조경까지 만들고 정자까지 짓느라 5년 이상 걸렸습니다. 공사를 다 마칠 때까지 주님의 의향이 궁금했습니다. 정자를 지을 때 타지의 기술자들이 와서 돌 섬을 보고는 “저기 저 돌은 호수에 물을 채우면 보 이지도 않을 것인데 왜 깨지 않았습니까? 수영하다가 걸리고, 배를 타다가 걸려 배가 찢어지겠습니다. 뿌레카로 깨면 잠깐이면 깨는데 왜 안 깼습니까?” 했습니다. 그래서 “멋있게 보이려고 안 깼습니 다.” 했습니다. 그러니 모두 웃으면서 “물을 채우면 다 묻히지요. 호수는 물을 가득 많이 채울수록 멋있습니다.” 했습니다. 공사가 다 끝나고 여름에 물을 채우려고 호수 수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주님께 수문 높이를 얼 마 정도 하면 좋겠냐고 물으니 “1m 20cm 정도로 하여라.” 하셨습니다. 수문 공사까지 끝나고 여름 장마철에 호수에 물을 채웠습니다. 수문에 물을 채우니 돌 섬과 높이 가 맞고, 물 높이도 맞고, 정자에 쌓아 올린 돌 높이와도 맞고, 호수 주변에 세운 돌조경의 높이와도 정확히 맞았습니다. 만일 돌 섬을 없앴으면 기준을 잡지 못하여 물 높이를 조절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물 높이를 1m 50cm 이상으로 했으면 전체 구도가 맞지 않아 호수가 현재같이 멋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쌓은 돌들이 너무 묻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호수의 수위를 조정하여라. 그래야 균형이 맞고 아름답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수문과 돌 섬은 한 쌍이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시키실 때는 몰랐습니다. 또 다르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보니 주님의 말씀대로 했기에 모든 것이 이상적이었습니다. 소경이 아니라면 노를 젓다가 배가 돌 섬에 부 딪히게 하는 일도 없었고, 돌 섬 사이로 배를 타고 가면 스릴도 있었습니다. 또 호수 정자에서 돌 섬 을 쳐다보면 마치 바다의 섬같이 보이고, 거기에 나무까지 심어져 있어서 한국의 독도 같습니다. 할렐 루야! 이와 같이 꼭 주님께 물어보고 해야 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돌 섬을 보고 말하기를 “어떻게 거기에 돌 섬을 만들었습니까?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까? 돌을 갖다 놓은 것입니까? 아니면 자 연 섬입니까? 구상이 너무 멋있습니다.”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해도 근본을 모르면 이해가 안 간다고 하며 말이 많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는 죽어지내야 합니다. 결국 완성해 놓고 보면 너무나 좋고 이상적입니다. 월명동을 개발하며 성지땅으로 만들 때도 그러했습니다. 호수의 돌 섬 사연을 확대시켜 보면 됩 니다. 모두 왜 이 골짜기에 성지땅을 만드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 만들어 놓으니 좋아하며 천국 같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달면서 돕지도 않고 속과 겉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며 반대한 사람들은 주님 께서 “나와 같이 모으고 심지 않은 자들이다.” 하시면서 섭리사에서 내보내셨습니다. 그들은 근본 된 옛 토지를 갈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고 왜 주님과 의논해야 되는지 깨달았지요? 꼭 주님께 묻고 주님과 의논하 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 묻고 의논하며 행한 다음 이야기를 또 해 주겠습니다. 2. 밤나무산 3. 월명동 청기와집 옆 감나무 정자 (자료 화면 보여 주며 설명) 월명동 청기와집 옆을 보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여름에는 그 그늘 밑 에서 쉬면서, 정말 좋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감나무 정자입니다. 청기와집 공 사 중에 주님과 대화하고 의논한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다. 선생은 월명동 이야기를 안 하면 다른 이야기를 꺼내 말씀과 연결시켜도 연결이 안 됩니다. 모두 잘 듣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해 주기 바랍니다. 큰 감나무가 서 있는 이 산은 전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산’이라고 했습니다. 이 산을 사는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밤나무산을 놓고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며 정말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산 주인이 욕심을 부리고 값을 비싸게 불렀습니다. 옆 산보다 4배, 5배나 더 높여 값을 불렀 습니다. 산 주인은 자기는 안 팔고 거기에다 별장 짓고 개발하여 염소를 기르며 살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눈엣가시같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주님과 의논 끝에 주님이 딱 한마디를 해 주셔서 밤나무산을 샀습니다. 주님은 내게 “돈이 필요하냐? 산이 필요하냐?” 물으셨습니다. 나는 “산이 필요합니다.” 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말씀하 시기를 “그러면 주인이 달라는 대로 주고 사는 것이다.” 하시어 그 산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8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사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40일 작정 기도를 한 후에 드디어 계약 이 되어 사게 되었습니다. 그 산을 사고서 너무 좋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비싼 값에 사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기분 좀 풀어 달라고 했더니, 주님은 “그 산기슭에 돌조경을 멋있게 작품으로 만들면 분이 풀리고 기분이 풀린다.”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밤나무산을 산 날 오후부터 성지 사역 특공대 100명을 동원하여 그 산에 있 는 소나무를 전부 멋있게 전지하여 조경을 해 주었고 시원찮은 나무는 잘라 버리고 공원을 만들었습니 다. ‘공룡 바위’는 문화관 앞에 있지요? (자료 화면) 선생이 초등학생 때 학교를 오고 가면서 비가 오면 비를 피하던 바위입니다. 그 바위도 그 산을 샀을 때 그 안에 있던 것이었는데 멋있게 조경을 했 습니다. 또 공룡 바위 위에 분재 소나무가 있어서 그것도 손질했습니다. 주님은 “이 바위만 해도 1억 은 된다. 분재는 몇 백만 원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밤나무산에서 일하면서 보니, 산에 있던 작품들만 해도 몇 억이 되었습니다. 결국 ‘산을 비싸게 샀다고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지만, 작품으로 만들면 분이 풀리고 기분이 풀린다.’는 주님의 말씀대 로 되고 말았습니다. 공룡 바위처럼 1000톤이나 되는 그 큰 돌을 그 산에 갖다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 에 이미 그 돌이 있어 조경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산과 거북 바위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거 북 바위 산도 사서 다 성전 정원입니다. 작품 값까지 따지니 땅값이 반값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군에서 허가를 받고 산 밑을 직선으로 조경하기 위해 땅을 자르고 있었습니다. 한 평이 라도 더 넓게 운동장을 만들어야 산을 보다 헐하게 산 것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산기슭에 감나무가 4그루나 있었는데, 2그루는 당장 잘랐습니다. 그렇게 산기슭을 잘라 내면서 포크레인 작업을 하는데, 큰 감나무 1그루가 또 있었습니다. 그 감나무는 운동장 쪽으로 튀어나온 아주 큰 나무였습니다. (자료 화면) 그래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 나무는 잘라야지요? 산을 비싸게 사서 운동장을 한 평이 라도 더 넓게 만들어야 합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디 가셨는지, 바쁘신지 아무 대답이 없 으셨습니다. 지금 청기와집 쪽 큰 감나무입니다. 모두 보고 있지요? (자료 화면) 선생이 수년 간 올라가서 감 을 따 먹었던 감나무입니다. 사실 옛 추억과 사연을 생각하면 베고 싶지 않았지만 안 베고는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듯하게 직선으로 조경을 하려고 산기슭을 잘라 가는데 큰 감나무가 운 동장 쪽으로 3~4m 튀어나와 있으니, 선생은 ‘이것은 주님께 물으나 마나 자르고 돌조경을 해야 된 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니 현장 작업 부장인 선생은 계속 주님께 물어봤습니다. “감 나무에 감도 별로 안 열리고, 잔디 성전 쪽에도 감나무가 6그루나 있고, 오아시스 샘 쪽에도 2그루나 있고, 성황당 쪽에도 5그루가 있고, 가는골에도 6그루가 있고, 문턱 바위 쪽에도 감나무가 많으니 이 감나무는 당연히 잘라야지요?” 했습니다. 주님은 “너는 자르는 것이 좋겠느냐?” 하셨습니다. “네. 자르면 20평 정도는 운동장이 넓어 집니다. 안 자르면 여기만 가슴처럼 불룩 튀어나오는데요? 그것도 대단한 가슴처럼 나와서 보기 싫을 것입니다.” 했습니다. 주님은 “자르지 말고 동그랗게 둘러서 돌을 쌓아라. 감나무 뿌리는 1.5m 바 깥으로 자르고, 감나무 주위를 둘러쌓으면 된다.” 하셨습니다. 옆에 작은 감나무가 또 있기에 “저것 은 작으니 잘라야지요?” 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그것도 아들처럼 놔두어라.” 하셨습니다. 큰 감나무를 자르면 20평 정도 더 공간이 생기니 그곳을 확 파 들어가서 산 밑으로 시원하게 조 경을 하려고 했는데, 주님께서 감나무를 자르지 말라고 하시니 할 수 없이 큰 감나무 주위를 둘러 돌 을 쌓아 조경을 만들고, 작은 감나무 앞쪽으로 조경을 했습니다. 또 지금의 청기와집 앞쪽도 반듯하게 돌을 쌓았습니다. 그때는 청기와집을 짓기 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은 정말 찜찜했습니다. ‘에잇, 예수님을 불렀을 때 대답하지 않으셨을 때 그냥 잘라 버릴 걸...’ 하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저 감나무 그늘은 여름 한 철 그늘이고 여기에 는 사람들이 잘 안 오고 모두 스릴 있는 잔디밭으로 가는데 이제 이 감나무 주위는 파리 날리겠다.’ 했습니다. 같이 일하던 자들도 말하기를 “선생님 뜻대로 하겠지만 보기에는 별로네요. 한 번 더 생각해 보 세요. 저쪽에서 보면 마치 아이 밴 여자처럼 불룩 튀어나왔어요.” 했습니다. “그래. 여기서 보면 가 슴 정도 나온 것 같은데, 지금 재 보니 뿌리까지 하면 적어도 4m나 운동장 쪽으로 나왔구나. 가 보 자.” 하고 북쪽 골대 놓은 데서 보니, 땅을 못 사서 둘러서 돌조경을 한 것같이 보였습니다. 주님께 다시 물어보는 것이 예의도 지혜도 아니었습니다. ‘어련히 알아서 하셨을까.’ 생각했습 니다. 그러나 돌을 쌓으면서 다시 한 번 주님께 슬쩍 물어봤습니다. 주님은 “내가 보기에는 멋있다. 이렇게 해야 돼. 구불구불해야 멋있는 것이다. 앞날도 생각해야 작품이야. 선이 멋있다. 소롯길도 직선 보다 구불구불하면 멋져. 다음에 연결시켜 구불구불하게 만들자.” 하셨습니다. ‘하늘 생각은 인간 생각과 다르다고 했으니 이것이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생각하고 그대로 조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큰 감나무 있는 곳부터는 돌도 안 세웠습니다. 구석진 곳이기 때문이었고, 돌을 세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때는 청기와집을 짓기 전입니다. 거기에 돌 하나를 세운 이유는 청기와집을 다 지은 후에 집을 가리려고 세운 것입니다. 공사가 다 끝나고 그쪽을 보니 그리 보기 싫지 않았고, 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어서 그런대로 괜 찮았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보시고 감나무 두 그루를 그냥 두라고 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자, 그 러나 끝까지 봐야 됩니다. 선생의 옛 생가가 어느 곳에 있었는지 알지요? (자료 화면) 옛 생가는 운동장을 위해, 전체를 위 해 다 부숴 버렸습니다. 옛 생가 터에 배나무 하나가 있지요? (자료 화면) 잔디 성전 옆에 있습니다. 집이 없으니 작게라도 집을 지어야 되는데, 월명동에는 집을 지을 공간이 몇 평도 없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집터 하나만 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집 지을 만한 곳이 어디 한 평이나 보이느냐? 보이면 주지.” 하셨습니다. 밤나무산 기슭을 깎아 조경을 쌓을 때 그쪽에 있던 큰 감나무를 베지 않고 그곳을 둘러 돌을 쌓 은 곳과 작은 감나무 뒤쪽에 20평 정도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에 일주일간 주님께 말씀드리고 하나 님께 기도하여 그곳에 집을 짓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주님은 그곳에 선생의 집을 지어 주시려고, 큰 감나무 자르지 말고 둘러서 돌을 쌓아 조경하고 작은 감나무도 자르지 말라고 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깨닫고는 감격하여 어느 날 훌쩍훌쩍 눈 물을 쏟았습니다. 역시 내 신랑 예수님이십니다. 집을 짓기 시작하는데, 집을 짓는 자들이 작은 감나무 가지가 자라서 지붕을 누르면 멋있게 지은 집을 가리게 되니 잘라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니 끝까지 그냥 두었습니 다. 결국 여름에 감나무 정자가 되었고, 가을에 열매를 열어 집이 한 폭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여름에 작은 감나무가 집을 약간 가리니, 마치 새색시가 처음에 바깥에 나왔는데 모두 쳐다보니 얼굴을 살짝 가린 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50년 된 큰 감나무는 그 골짜기에서 제일 오래된 작품이 되었고, 그 감나무 밑에 응접 실 정원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집이 작으니 응접실이 없어서 감나무 밑에다 응접실을 만들었습니다. 여름에 거기 올라가서 보면 마치 신선이 된 것 같습니다. 감나무 정자는 월명동 명소 중 하나입니다. 거기에 주님이 오셔서 쉬시라고 돌로 깎아 주님의 의 자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모두 올라가서 그곳을 사용해도 좋습니다. 돌 의자에 앉아서 오늘 이야기한 것을 연상하며 주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보고 구상하며 행하는데, 너희가 내게 묻지 않고 하면 현실에도 미래에도 답답하게 해 버린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쓰고 있는데 오늘도 주님 은 말씀하시기를“만일 네가 내게 묻지 않고 큰 감나무를 잘랐으면 너의 집터가 없으니 거기에 집을 못 지었다.” 하셨습니다. 앞으로 감나무 정자는 누구든지 수시로 가서 주님과 선생과 차를 마시게 되는 장소가 될지 모릅 니다. 주님은 집을 지을 때도 구상해 주셨습니다. 집의 각도를 운동장에서 보았을 때 모델 옆모습처럼 방향을 틀어 지으라고 하셔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고로 더욱 월명동의 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주님과 함께 월명동을 개발할 때 수백 가지로 의논하면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그러니 아름답게 되었고, 손해도 안 보게 되었고, 주님과 의논하여 오직 주님 뜻대로 하니 주님도 좋아하시게 되었고, 하나님과 성령님도 월명동을 보면 좋아하시게 되었고, 보는 자들마다 기뻐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해야 보는 자마다 좋고, 주님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니 주님도 좋아 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모두 이같이 주님과 의논하여 주님의 뜻대로 하면 자기도 유익, 모든 자들도 유익, 하나님도 유 익, 주님도 유익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해야 주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의 구상이라고 떳 떳이 말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할렐루야! 만일 큰 감나무와 작은 감나무를 없애고 돌을 반듯하게 쌓고 집도 없었으면, 운동장만 20평 정 도 더 넓어져 삭막하고 볼품이 없었을 것입니다. 집이 있으니 샘물도 그곳으로 옮겨 특히 신경 써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감나무 정자도 멋있게 만들어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래서 어떤 회의를 할 때나, 교회 일을 할 때나, 전도할 때나, 강의할 때나, 교회를 개척할 때 나, 성전을 이전할 때나, 각종으로 살아가면서 매사에 영육으로 주님과 의논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의논하면 상상을 초월하여 잘되고 유익합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고,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이상 하다고 말이 많아도 주님과 의논하고 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빛이 납니다. 교회 성전도 주님의 것인데 자기 좋은 대로만 쓰기 좋게 꾸미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 교회 부 흥도 안 됩니다. 선생은 자연성전을 만들 때 수천 번, 수만 번 주님께 물어보면서 건축했습니다. 폭포 수 옆 주님 상도 수백 번 물어보면서 주님께 구상받아 한 것입니다. 주님께 묻지 않고 한 것은 주님의 눈엣가시입니다. 개인 신앙과 개인 진로에 대한 것도 매 순간마다 주님과 의논해야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앞에 놓고 재림의 문턱에 살고 있는데도 주님과 의논하지 않고 하면 손해이며, 또 한 주님의 신부로서 준비하고 갖출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 많이 묻는 자일수록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고 주님의 뜻대로 하게 됩니다. 소경이 백지장 위에 주인이 원하는 대로 무엇을 그리려면 주인에게 계속 물어보면서 해야 됩니 다. 그와 같이 우리도 주님께 물어봐야 됩니다. 선생이 어떻게 하여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을 모셔 왔 는지 알아야 됩니다. 제자들 가운데서도 앞날을 위해 뽑아서 민족과 세계적으로 길러 주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처 음에는 선생에게 잘 묻고 하다가 후에 자신이 컸다고 묻지 않고 하여 그만이야 주님과 선생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도 묻지 않고 하는 자들은 이제 선생도 묻지 않고 주님과 함께 행한 대로 대할 것입니다. 지 도자들은 정말 잘해야 됩니다. 묻지 않고 하였기에 자꾸 다시 사람을 뽑아서 쓰게 된 것입니다. 어려 도 묻고 행하는 자가 주님의 뜻대로 하여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클수록 더 귀하고 중요한 큰일을 맡 기니 자꾸 더 물어봐야 됩니다. 인간의 생각은 정말 너무나도 주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아무리 지도자라도 주님의 생각과는 너무 도 다릅니다. 각 나라도 지도자들이 하나님과 주님께 늘 물어봐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나라가 되 고, 육계에서 잘되고, 영도 영원히 잘됩니다. 지난날 주님께 자세히 의논하지 않아서 안 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의논하지 않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다시는 의논하지 않는 죄를 짓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이후에 주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주님과 의논하고 행한 것 3가지만 말했지만, 지난 30 년 동안 주님과 의논해서 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선생은 주님께 묻는 것이 습관이 되고 삶이 되어 이제 주님과 의논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불안해서 못 합니다. 주님은 “네가 나와 의논하지 않고 했으 면 불구자가 되었거나 죽었을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너희 선생이 나와 의논하고 행한 월명 호수 돌 섬 이야기와 밤나무산 이야기와 청기와집 큰 감나 무 이야기를 듣고 정말 나와 꼭 의논해야 되겠다고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아멘.) 너희 선생이 행한 것처럼 너희도 나 예수와 의논하고 매사에 개인의 일까지 의논하며, 유초등 부·중고등부·대학부·청년부·가정국·장년부·교단 모두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까지 의논하고 하라 는 것이다. 너희 선생같이 특별한 자들만 내게 의논할 때 대답하고 나와 의논한 것으로 생각하겠느냐. 모두 사명도 각각이고, 삶도 각각이고, 하는 일도각각이다. 그 하는 일이 모두 나의 일이다. 너희 개인의 일 이라도 너희는 내 것이니 너희가 어떤 일을 하다가 안되면 너도 손해, 나도 손해다. 내 뜻을 벗어나게 되면 원수 사탄이 더욱 기세등등하여 너희에게 더 고통을 주고 괴롭게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게 의논하라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여 각각 구원해 놓고 축복해 줬는데, 나와 의논하지 않고 너희끼리 하거나 너희 혼자 하면 나와 같이 사는 재미가 무엇이냐. 그것이 사랑이 냐. 구원해 놓았는데도 의논하지 않으면 또 사망에 빠지게 되고 구원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정말 모를 때만 “어떻게 할까요?” 묻지 말고, 너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도 내게 물어보고 하여라. 그래야 죄가 아니고 의다. 복이다. 너희 조상 다윗 왕은 전쟁에 나갈 때마다 어떻게 싸울 것인지 그 방법을 늘 내 아버지께 물었고 시간까지 물었다. 삼위체가 되는 내가 그때도 있었기에 말해 준다. 고로 항상 전쟁과 싸움에서 승리했 다. 그동안 내게 묻지 않고 한 것은 실패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응답받고 행한 것은 내 뜻을 행한 것 이지만, 응답받지 않고 행한 것은 너희 뜻을 행한 것이다. 요나는 묻지 않고 행하다가 바다 속에 빠져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 고통을 받았다. 삼손도 묻지 않고 여자 말만 듣고 행하다가 원수들에게 고통 받고 죽지 않았느냐. 노아는 묻고 행하여 심판을 면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중심인물들 중에서 묻고 행한 자들은 내 아버지 뜻대로 되었다. 그러나 묻지 않고 행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자가 되었다. 내 아버지와 내게 묻지 않고 행한 것은 더 잘했을지라도 후에 가서는 해가 되었다. 묻고 행한 것 은 처음에는 의문이 생기고 해가 된 것 같아도 점점 유익이 되고 더 잘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아라. 생각해 보아라. 너희끼리도 아는 사람에게 물을 것을 묻지 않고 행하면 큰 해가 되기도 한다. 하 물며 전능하신 내 아버지와 나의 일을 하는데 묻지 않고 행하면 불순종으로 인하여 현재에도 손해요, 미래까지 얼마나 손해가 되겠느냐. 내게 묻고 행하면 내가 알기에 하루 만에, 혹은 며칠 만에 하게 할 수 있는데 내게 묻지 않고 자 기 두뇌로 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모르고 행하니 한 달이 걸리고, 혹은 1년, 2년이 가도 안 되 고, 혹은 평생 못 하게 되기도 한다. 내게 묻고 행하는 자는 ‘나의 머리를 쓰는 자’가 된다. 인간이 신의 머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 다. 그러니 걸어가는 자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자같이 차이가 있지 않겠느냐. 나와 의논하고 하겠느 냐. 아니면 또 그냥 하려느냐. 이제 너희에게 나와 의논하라고 할 시간도 많이 없다. 나의 재림이 가까이 와 여러 가지로 아예 깊은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다. 한 번 들으면 해야지, 계속해서 말해야 되겠느냐. 너희가 초등학교 때 배운 구구단이나 글들을 한 번 배웠으면 끝나지, 학교에 다니면서 계속 똑같이 배우느냐. 내가 가르쳐 준 것도 한 번 배웠으면 죽을 때까지, 영원히 지키며 사는 것이다. 너희 선생이 나와 함께 그냥 섭리역사를 이끌어 왔겠느냐. “환난과 핍박 속에 이 역사를 반대하 며 악을 행하는 자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나와 의논하여 참아라. 나를 따라와라. 잔칫집 신부가 신랑 따라가는데 알지 못하는 자들이 뭐라 해도, 동네 개가 짖어 대도 그냥 가야 된다.”고 재촉하면서 왔 기에 지난 30년 동안 환난과 핍박과 악평 속에서도 혼인 잔치를 해 오지 않았느냐. 남녀가 결혼하기 전에 먼저 신부 집에서 신부의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하지 않느냐. 지난 30년 동안 너희 선생을 중심하여 내가 시대를 알리면서 신부 쪽 잔치를 한 것이다. 신부 마을인 지구촌 마 을에서 신랑이 신부를 데려가기 위해 잔치를 한 것이다. 그런데 지구촌 동네 사람들이 왜 그리 악평을 하며 각종 말들을 많이 했겠느냐. 시기하고 질투했 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 선생을 쓰고 한 것이다. 신부를 데려간다고 신부 마을 사람들이 은근히 시기 질투하면서 무지한 말을 하면서 신랑을 헐뜯고 소란을 피운 것이 아니냐. 신랑을 데리고 간다고 했으 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전 신부 집 잔치가 끝났으니 이제 신랑 집 잔치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나의 재림을 맞게 하고 신부들을 휴거시켜 신랑의 집인 하늘나라 천국에서 성경의 예언대로 혼인 잔치를 하는 것이다. 이는 전설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실로 준비된 너희 영들을 휴거시켜 하늘나라에 데려가 수천억의 천사 들과 축하하는 천인들이 보는 데서 잔치할 때가 가까웠다. 그래서 이제 나와 의논하자는 말도 하고 싶 어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늘 너희에게 가르쳐 오지 않았느냐. ‘영은 신랑, 육은 신부’라고 늘 가르치지 않았느냐. 너희 선생은 육신을 가진 땅의 사람으로서 지난 30년 동안 내가 그 육신을 쓰고 나타나 역사해 온 것이다. 신랑같이 나를 상징하며 역사해 온 것이다. 그는 나의 사명자요, 육신 없는 나의 몸이 되어 주었다. 이에 따라 너희는 신부의 자격이 되어 오늘날 나의 신부가 된 것이다. 고로 나와 의논하여라. 너희는 나의 신부이니 신랑인 나와 의논하라고 한 것이다. 어서 나의 집, 신랑 집, 하늘나라 혼인 잔치를 위해 신부로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늘 갖추며 살 아야 된다. 이때 나의 재림에 대하여 의논하고, 신부로서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 매사에 신앙 의 일뿐만 아니라 육적인 일까지 의논해야 된다. 이때 자기 신앙의 일과 육적인 일을 잘못 결정하고 자기 길로 가는 자는 영원히 구제할 시간이 없다. 내가 말하였으니 들어라. 내가 너희 선생에게도 이 시대에 대한 나의 어떤 암시를 주었다. 너희가 당황하니 너희에게는 말 해 주지 않을 것이다. 때를 깨달아라. 항상 내 종이나, 선지자나, 나의 사명자들에게 먼저 알린다고 아 모스 선지자를 통해 말하지 않았느냐(암 3:7). 아직도 세상으로 마음을 쏟고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쏟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내가 다 안다. 지도자들 중에 내 눈에 띄는 자들은 스스로 돌이켜라. 나를 마지막까지 외면하는 자들과 서운하게 하는 자들과 외롭게 하는 자들은 계속 그리하면 영원 히 돌아오지 못하는 저 흑암 세계로 가고 만다. 내가 계시자들을 통해 특별히 지옥을 견학시켜 보여 주지 않았느냐. 천국도 견학시켜 보여 주었다. 그리고 시대의 재림도 그 날이 언제인지만 확실히 말해 주지 않았지, 때와 시기를 다 말해 주었다. 더 이상 내가 세상에 있다 해도 말할 것이 없다. 마지막이라 모두에게 내 마음을 쏟아 말하며, 특히 시대 신부들에게 속마음을 말해 준 것이다. 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행하여라. 이것만이 살 길이다. 내가 잠시 떠나 다시 올 때까지 너희 의의 옷, 신부의 옷이 더렵혀지지 않게 세상 땅에 앉지 도 말고,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까지 털고 근신하며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어라. 이 밤에도 너희에게 나의 사랑과 생명의 말씀을 쏟았다. 신입생들은 굳세어라. 사랑한다. 나의 말이 너희에게 생명의 밧줄이 될 것이다. 꼭 잡고 요동하지 말고 지켜 행하여라. 나의 평강을 빈다. 너희 주 그리스도 예수다. 주님의 말씀 마쳤습니다. 선생도 모두에게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안녕히 가세요. 꼭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말기 바랍니다. 승리의 기도로 주님과 온전히 일체 되어 승리하는 자들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