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0.07.04 (일)
100704 주일말씀 주님께 합당한 사람
- 선포일
- 2010.07.04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0장 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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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4일 주일말씀>
주님께 합당한 사람
본 문 마태복음 10장 37-39절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예수님이 직접 전해 주시는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오늘의 성경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가르쳐 주시고 겪게 한 말씀을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부모
나, 형제나, 애인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나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면 합당
치 않다.” 하셨습니다.
얼핏 들으면 이는 도덕에 벗어난 말이 아니냐고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여 흔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부모 형제들은 “교회에 다
니는 사람들은 불효자식들이다. 성경에 부모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라고
가르친대.”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같이 말씀하셨는지 그 의미를 완전히 알도록 말씀하
겠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치 않으셨으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
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체 중의
한 존재자이신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예수님께서 인생들
을 죄에서 구원하여 이끌지 않으면 천국에 갈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먼저 사람 입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 전도하러 갔는데 전도될 상대가 자기 친구의 말이나 애인의 말을
더 듣고 따라다니면 그 사람은 전도하는 자가 전도하기에 합당치 않습니
다.
- 물에 떠내려가 곧 죽게 될 사람을 구조대원이 건지려고 밧줄을 던
지며 말하기를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너를 끌어내어 살릴 수 있다. 다
른 사람의 말보다 내 말을 더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가 아는 사람들과 자기 애인과 부모의 말을 더 중심하며
구조대원의 말을 듣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사
람은 구조대원이 구출하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 한 가정에 병들어 있는 사람이 있기에 부모 형제들이 병원으로 데
리고 왔습니다. 진찰하고 검사해 보니 급히 수술을 해야 살 수 있는 사람
이었습니다. 의사가 수술하자고 하니 그는 부모 형제와 애인에게 물어보
고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부모 형제와 애인에게 물어보니 수술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밥 잘 먹고 기분 좋으면 나을 수 있는데 왜 수술하느냐고
말하는 부모 형제와 애인의 말을 듣고 의사의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그 사람이 부모 형제와 애인의 말을 더 들으니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며, “내 말보다 그들의 말을 더 사랑하니 내가 살릴 수 없습니
다. 집에 가서 잘 먹고 부모 형제들과 애인과 기쁘게 사세요.” 하며 집
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석 달도 못 가서 그 사람이 죽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의
부모 형제와 애인은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우리 말을 더 들었기에 죽었
다고 하며 후회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말씀보다 부모와 형제와 애인의 말을
더 중심하거나, 구원자이신 예수님보다 부모와 형제와 애인을 더 사랑하
면 ‘구원’에 합당하지 못하고, ‘주님의 참사랑’에 합당하지 못하여
구원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전능자 하나님과 자기를 영원히 구원하시는 메시아
예수님을 부모, 형제자매, 애인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합당치 못함을
바로 배우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와 형제와 애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
는 예수님을 1000배, 10000배 더 사랑하지 않으면 자기가 사랑하는 자
의 말을 더 듣기에 구원해 줄 수 없으니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자기 부모와 형제와 애인보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더 사랑해 주며, 죽
음에서 구원해 주고, 어려움에서 도와주고, 관리해 주셨는데 그들보다 예
수님을 뒤에 두고 대하고 사랑한다면 예수님께 합당치 않을 수밖에 없습
니다. 이는 인법 도덕에서도 어긋나고 천법 구원의 법에서도 어긋나는 일
입니다.
선생도 만일 예수님보다 부모와 형제와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살았으
면 이같이 민족과 세계적으로 주님의 일을 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부모
형제나 나를 더 사랑하며 살았으면 지금 부모 형제들과 붙어 살았을 것이
며, 어떤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더 사랑하며 살았으면 지금 가정을
꾸리고 살았을 것입니다.
선생이 만일 부모만 사랑하고 살았으면 어머님도 지금 세상에 살아
계시지 않고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내 사랑을 가지고서는
생명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니 예수님의
사랑으로 어머님이 지금까지 살아 계신 것입니다.
내가 만일 형제만 사랑하고 살았으면 형제들도 오늘날같이 서로 화목
하게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형제들 중에서도 이미 죽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자도 있을 것입니다.
선생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므
로 예수님은 우리 가정을 사랑해 주시어 예수님을 사랑하는 세계적인 가
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해 주시고 알아주시는 가정이 최고의 가
정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든지 전능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 그리스도보
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자는 오늘도 예수님께는 합당치 않은 자입니
다. 선생은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
부모도, 내 형제도, 내가 사랑하는 자들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도 죽음과
병과 고통의 벼랑에서 살려 주어 쓰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면 예수님께서 각자의 개성대로 세상에서도
잘되게 해 주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시어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해 주시
고, 그 부모 형제와 애인도 더 좋게 대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아멘!)
자기가 사랑하는 자나, 부모나, 형제나, 친구나, 그 어떤 것을 주님보
다 10000배나 더 사랑하고 대하면서 살아 봐요. 그리고 잘되는지 보세
요. 10000배나 더 안될 것입니다. 이는 천륜의 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입
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자나, 부모나, 형제나, 친구나, 세상 그 어떤 것보
다 주님을 10000배나 더 사랑해 봐요. 과연 어떻게 되는지 그같이 해
보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예
수를 제일로 사랑하고, 그다음 보이는 부모와 형제와 사랑하는 자들을 내
뜻 안에서 그같이 사랑하여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를 먼저 사랑하여 참
된 사랑을 배우고, 그다음에 배운 참사랑으로 부모와 형제와 사랑하는 자
들을 대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전능자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가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감히 부모와 형제와 자기 사랑하는 자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는
자기 부모 형제나 자기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랑
해 주시는지, 그 큰 사랑을 깨닫고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누구든지 더 사랑하면 왜 합당치 못한지 이제 깨달았을
것입니다. 모두 가르쳐 주고 알고 살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메시아 예수님이 지고 끝난 것인데 왜 사람마다 십자가를
져야 하나?’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는 무엇인가?’에 대해 듣기 전에, 예수
님의 십자가에 대해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첫째, 구원의 십자가였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을 기다렸던 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
아임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들
이 모르고 이같이 하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하나
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죽음을 대신하여 온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
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저주의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의 입장
은 구원의 십자가였습니다.
둘째, 희생과 죽음의 십자가였습니다.
셋째, 사랑의 십자가였습니다.
만민을 사랑하였기에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져 주시고 메시
아로서, 의인으로서 죄인을 대신하여 대신 죽어 주신 것입니다.
넷째, 고통과 몸부림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차마 인간으로서 볼 수 없는 처참한 고
통을 받으면서, 죄인을 위해 수백 가지로 고통을 받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예수님처럼 메시아가 되어 그같이 사랑하며 십자가의 가혹한
고통을 받아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다섯째, 영광의 십자가였습니다.
멸망을 받고 지옥에 갈 죄인들을 구하여 영광스럽게 해 주었으니 영
광의 십자가였습니다. 결국 예수님께도 영광, 구원받을 인류에게도 영광
이었습니다.
여섯째, 부활의 십자가였습니다.
죄인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역사를 한 것이므로 결국 주님도
부활의 몸이 되셨고,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도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일곱째, 승리의 십자가였습니다.
사탄 마귀와 악한 자들을 의로 싸워 멸하시고 이긴 승리의 십자가였
습니다.
여덟째, 메시아로서 인류를 향한 구원의 책임을 다하신 십자가였습니
다.
찬송가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놓고 ‘고난의 십자가’라고도 노래를
부르고, ‘영광의 십자가’라고도 노래를 불러 혼돈되는 사람도 있을 것
입니다. 장단점을 가지고 가사를 지어 찬양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주님은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하
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셨습
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의 십자가에 의미와 뜻이 있듯이, 너희들도
각자에게 해당되는 삶의 십자가를 지고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야 합당하다.” 하셨습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주님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작은 십자가입니다. 우리
도 예수님처럼 어느 때는 고난의 십자가, 어느 때는 영광의 십자가, 어느
때는 억울한 십자가, 어느 때는 구원의 십자가, 어느 때는 형제와 자기를
살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은 ‘고통과 환난, 배
고픔과 힘든 일이 있어도, 억울함을 당해도, 손해를 보아도 고통의 십자
가를 지고 피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모두 저마다 섭리 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그 뜻을 생각하
며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형제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정과 교회
와 섭리세계 각 사명지에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래
야 예수님도 선생도 합당하다고 하면서 계속 사명을 줍니다. 그로 인하여
더 좋은 삶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선생도 예수님 시대와 같이 그러하기에 이 시대를 위해, 나를 위해,
섭리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고난의 십자가이며 영
광의 십자가입니다.
선생이 아끼고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지고 가는 고난의 십자가입니
다. 억울한 십자가를 지고 가도 사랑하는 자들을 더 좋게 하기 위함이니
희망과 영광의 십자가라 하고 지고 갑니다. 큰 십자가는 선생이 지고 갈
테니, 작은 십자가는 각자 지고 따라오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억울함과 아픔만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난 후
에는 그에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옵니다. “예수님 것도 우리가 지고 가
자.”고 하면서, “나는 예수님이 두 번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하겠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
자기 개인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 교회에서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지 않고, 섭리 안에서 각자 사명지에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조금 편
할지는 몰라도 주님께 합당치 않는 자로 희망이 없는 자이며 앞날에 영광
이 없는 자입니다.
자기 위치에서 지는 십자가만 지지 말고 교회에서, 섭리사에서 져야
하는 십자가를 모두 다 져야 교회·가정·섭리 모두 희망이고 잘되고 평
안하고 영광이 됩니다. 서로 희생하지 않고, 참고 견디지 않고, 사랑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니 교회가 안되고, 불안하고, 서로 화평하지 않고, 불
만이고, 싸우고, 울고 짭니다.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지면 금방 화평하게
됩니다.
교역자들은 열심히 부지런히 양 떼와 소 떼를 관리하고 살펴야 됩니
다. 설교하고 몇 명 돕고서는 피곤하다고 자고, 낮에도 누워 있고, 그러
다가 교인들 눈에 띄면 안 됩니다. 사탄, 인사탄, 이리와 늑대, 야수들이
교인들을 괴롭히고 잡아갑니다. 그러면 양들도 목자를 괴롭힙니다.
목회자들은 선생이 옆에 있어도 그같이 할 것입니까? 전도하고 뛰어
야 됩니다. 왜 교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까? 어떤 자는 허리
가 구부러지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어떤 자는 편하게 서서 갑니다. 교
인들은 다 알아도 기도만 합니다. 선생이 다 알고 말합니다. 주님 답답하
다고 하시며 뛰는 자를 세우라고 하시어 계속 뛰는 자들을 세우고 있습니
다.
교인들도 목회자나 책임자만 십자가를 지게 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래야 신부로서
주님을 예비하고 맞게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고난이 있고 힘들어도 희생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라. 고생되고 억울해도 참고 견디며 그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고생된다고 안 지고 오면 합당치 않다. 따라와도 헛수고
다.” 하십니다. 주님이 보따리 맡겼는데 힘들다고 거리에 두고 빈 몸으
로 따라오면 보따리를 맡긴 주님은 “올 필요 없다. 오려면 내가 맡긴 보
따리 메고 와라.” 하십니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자에게는 더 고통이 오고, 살려고 하는 자 더 죽
게 되고 고통을 받게 됩니다(마 10:39). 얻으려고만 하면 더 잃게 됩니
다. 자꾸 주님께 드리고 맡겨야 더 얻게 됩니다.
선생도 섭리사의 십자가,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영광입니다. 주
님만 쳐다보고 사랑하며 여러분들을 사랑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여러분들도 주님만 쳐다보고 사랑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이런 자가 좁은 길, 생명길, 천국길로 가는 자이며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
의 재림을 앞에 두고 예비하며 사는 자입니다. 아멘.
이제부터 주님이 말씀해 주시니 잘 듣기 바랍니다.
<예수님 말씀>
나보다 자기 자신, 부모 형제, 사랑하는 애인,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는 것을 내게 배우고 알고 행하여라. 알고
행하면 너희가 자원해서 하고 싶어 행하게 되지만, 알지 못하고 행하면
끌려서 의무적으로 행하게 된다.
나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더 사랑하면,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쪽으로 가기 때문에 그 사람을 구원하러 온 내가 그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으로 구원하는데 사랑이 없으니 어떻게 구원하겠느
냐. 내가 전심으로 사랑하고 진실로 100% 사랑하는데, 그는 다른 것을
사랑하면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나보다도 세상의 다른 것을 더 사랑할지라도 나 홀로 그를 잡아
당겨 내 마음대로 구원할 수 있다면, 내가 온 인류를 그토록 다 사랑하는
데 단 한 사람도 지옥에 보내지 않지 않겠느냐.
너희가 사랑할 한 대상이 있다 하자. 자기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여
도 상대가 사랑을 주지 않으면 자기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도 나 홀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나를 최고로 사랑할수록 내가
구원도, 그 어떤 것도 속히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죄의 함정에 빠진 자들에게 내가 손을 내밀면 함정에 빠진 자가 자기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아당겨야 내가 이끌어 내는 것이다. 손을 내밀어
구원자의 손을 잡는 것이 부모 형제보다, 자기 사랑하는 애인보다,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그 누구보다,
그 어떤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한 것이
다.
천국은 나를 최고로 사랑해야만 가는 나라다. 나의 나라 천국은 사랑
의 나라이므로 나를 최고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갈 수가 없다.
나는 사랑의 근본자요, 본질이다. 나를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누구
보다도 항상 사랑하여라. 나에게 참사랑을 배우고, 그다음에 너희 부모
형제와 네 사랑하는 자와 자기 자신을 나의 공의로운 사랑으로 사랑하라
는 것이다.
나보다 세상이나, 부모 형제나, 자기 애인이나, 그 어떤 것을 더 사랑
하는 자를 구원하여 천국에 데려다 놓으면 천국 가서도 나 외에 다른 것
을 더 사랑할 것인데, 그런 자를 왜 천국에 데려가겠느냐.
누구든지 자기 육신이 행하는 대로 자기 영이 형성된다. 그 성격과
마음과 행실에 따라 영이 변화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나보다 더 사랑하고, 자기 부모 형제를 나보다 더 사랑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 물질과 명예와 각
종 세상의 것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그 마음과 육의 행위에 따라 그
영도 육과 똑같은 성격과 마음을 가진 영이 된다. 그 영을 어찌 신부로
삼아 천국에 데리고 가겠느냐. 그 영뿐만 아니라 그 육신도 이 세상에서
내게 합당치 않은 자다.
아직도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며 사는 자들은 오늘부터 고쳐서
하루라도 더 일찍부터 나를 제일로 사랑하면서 살아라. 그래야 네 영혼도
잘되고, 네 육신이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와 동행하면서
형통하게 할 것이다. 내게 합당한 자가 되어라.
내 아버지와 나와 성령님은 사랑을 목적하고 세상을 창조하였다. 사
랑을 이루어 사랑의 세계인 천국에 데려가고자 함이다. 그 사랑의 목적을
이루어 주지 않는 자를 사랑 때문에 창조한 천국에 데려갈 수 있겠느냐.
세상을 창조할 때 사람들이 하나님과 나와 성령님을 제일주의로 사랑
하는 것을 목적하고 창조했으나, 사람들이 창조 목적대로 나를 위해 살아
주지 않는 것은 타락되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
는 모두 타락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듣고 창조자와 구원자를 제일로 사랑하고 사는 자는 창조
한 목적을 이루고 사는 자다. 타락을 벗어난 자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여 같이 살기 위해 세상
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물을 더 사랑하고 자신을 더 사랑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합당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세상에 내게 합당치 않은 자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거의 다다. 그러
므로 인간이 그 행한 대로 심판을 받아야 합당치 않겠느냐. 지구상에는
그 행위대로 심판에 합당한 자가 너무 많다. 그래서 심판의 그 날이 너희
앞에 닥쳐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고로 오늘 ‘무엇이든지 나와 내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
치 않다.’고 계시하는 것이다. ‘합당치 않다’ 함은 ‘심판을 받게 된
다.’ 함이다. 내게 합당한 자가 되어라.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게 된다.
너희는 그동안 너희 자신과, 세상의 것과, 너희가 사랑하는 자들을
나보다 더 사랑해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천국이더냐. 순간만 심리적으로
기쁘고 즐거웠지. 법칙을 어기니 소망이 깨지고 곤고하지 않더냐. 허무하
고 허탈하지 않더냐.
그러나 자기보다, 부모 형제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자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자는 잘되고 형통하지 않았느냐. 너희 선생을 보아라. 잘못된
것이냐. 잘되어서 가는 길이다. 고통 가운데서 나와 일하지 않느냐. 넓은
세상 자유롭게 살면서도 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사망의 길을 가는 것이
다.
너희 선생을 보아라. 너희와 이 시대를 위해 중형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서 나의 뜻을 이루면서 가지 않느냐. 어떤 이는 형벌을 받고 간다 하
지만 그렇지 않다. 자기 죄로 고통을 당하면 무엇이 대단하냐. 그럼 내
어찌 의에 대하여 말하겠느냐.
너희도 이로 인하여 다시 살고, 자기 영혼과 형제들의 영혼을 구원하
며 산 신앙의 삶을 다시 살게 되지 않았느냐. 너희 선생은 어떤 환난과
고통에도 나를 더 사랑하고 따랐기에 내게 합당한 자다. 각자 자기 달란
트를 가지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어떤 환난과 고통 중에도 나를 최고로
사랑하며 따르는 자는 내게 합당하다.
너희는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라. 이것이 너희가 해야
될 책임이다. 영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십자가를 지고 고난으로 시
대 뜻을 이루어 영광으로 받아야 된다.
내가 십자가를 짐으로 너희 죄가 구속되고, 너희가 사망에서 생명으
로 나오게 되었고, 사탄과 악을 멸하고 영광을 얻을 수 있었듯이 너희도
피곤해하지 말고 자기를 위해, 형제를 위해 희생하며 고통의 십자가를 져
라. 너희가 지는 십자가는 나와 같은 죽음의 십자가는 아니지 않느냐. 자
기 십자가를 지고 고생되어도 참고 견디며 가야 된다.
억울한 십자가, 희생의 십자가, 참고 견디는 고통의 십자가를 힘들고
쓰러져도 벗지 말고 짊어지고 나와 같이 이 시대 골고다 언덕까지 지고
가서 죽어 줘야 된다. 참고 견디고, 대신 해 준 것이 죽어 준 것이다. 그
러면 끝난 것이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후에 영광의 부활을 하듯이, 너
희가 십자가를 지면 각종 영광이 너희에게 오게 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는 자만이 내게 합당한 자다. 그들만
이 인생 영원한 승리를 하고, 사탄을 물리치고, 영과 육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힘들다고 십자가를 벗어 버리고 세상에 가서 몇 년씩 있다가 오
면 누가 자기 십자가를 대신 져 주겠느냐. 다른 사람이 대신 지고 1m나
옮겨 놓았겠느냐. 아니다. 자기가 져야 된다. 자기가 지고 기쁨으로 영광
을 위해 가야 된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 책임이다. 그 위에 나 예수를 위해, 형제들을 위
해, 섭리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 너희 선생이 무거운 십자가
를 지고 다리를 절며 가고 있으니 너희가 그 십자가를 나눠 짊어지고 가
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에게 손해가 되고, 그 고통으로 인하여
섭리가 더 어렵게 된다.
어떤 것이 십자가를 대신 지는 것인지 알고 날마다 더욱 너희 선생의
일을 나눠 지며 너희가 할 것은 하고 기도할 것은 기도해 주어라. 너희
개인들이 10분씩만 선생을 위해 진실로 기도해 줘도 다 합하면 몇 만 시
간이 된다. 너희 선생 혼자 몇 만 시간 하려면 10년 해도 다 못 한다.
아직도 기도하는 자들이나 너희 선생을 위해 기도해 주지, 기도하지 않는
자는 안 해 준다. 그럼 자기 신앙이 힘들게 된다.
교역자, 지도자, 각 교회, 섭리사 모두 자기 십자가의 책임을 지고 형
제를 위해 서로 십자가를 져 주고 살아야 교회가 화평케 되고 생명 구원
의 역사가 창대하게 일어나게 된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우선 편안
히 지내려고 하는 교역자나 지도자나 개인들은 그로 인하여 결국 자기만
어느 날 홀연히 벼랑 끝에 서 있게 된다.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따라
야 죽음의 벼랑 끝에 서게 되지 않고 내게 합당한 자가 된다.
형제를 위해, 교회와 섭리를 위해 십자가를 더 지고 가라. 이는 자기
가 한 것이 되어 결국 자기에게 영광이 오게 된다. 기도해 주고 대신 회
개해 주는 것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살리게 되고 구
원을 이루게 해 준다.
개인·가정·민족·세계의 십자가를 각자 센터별로 사명대로 지고 나
를 따라라. 나의 심정을 알고 나의 마음을 가진,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에게 나는 이 시대 나의 십자가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십자가도 나의
사랑과 심정을 알고 져야 한다. 나의 뜻을 이루면 내게 합당한 것이다.
너희에게 평강을 빈다. 각자 시대의 골고다 언덕까지, 끝까지 십자가
를 지고 죽어 주어라. 죽고자 하는 자는 내 말대로 살리라.
너희를 사랑하는 주 예수다. 너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사탄도 이
기고, 악한 자도 이기고 멸한 승리의 주니라. 안녕.
<축 도>
지금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우리를 사랑하시어
죄에서 대속하시고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
령님의 뜨거운 불의 역사와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
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섭리사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