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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0.08.06 (금)

계시말씀 00e1a5c2

선포일
2010.08.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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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에 대한 말씀 작 성 일: 2010년 6월 3일(목) 작 성 자: 김 선 명(마산 주사랑빛 교회) 안녕하십니까? 마산 주사랑빛교회 김선명입니다. 2010년 6월 3일 주님께 이번 주 주일 말씀을 읽고 섭리사 모두에게 헌금에 대해 말씀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연속적으로 말씀할 것이니 중간에 질문하지 말고 그냥 받아 적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적어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헌금에 관한 말씀- 사랑하는 섭리사야. 오늘 나는 너희에게 하늘 앞에 드리는 헌금에 대해서 말씀할 것이다. 너희가 선생의 말씀을 통해 헌금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또 선생이 몸소 실천하는 본을 보였지만 헌금에 관한 교육은 말하고 또 말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니 명심하여 듣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너희에게 축복할 것이 있나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계신다. 그리고 항상 너희가 행한 일의 이상을 축복하셨다. 물질 축복도 그중에 하나다. 그러나 그 축복이 오히려 너희의 무지로 인해 사망의 씨앗이 되고 있으니 내가 정말 심정 상하고 가슴이 찢어진다. 또한 너희에게 주었던 그 축복이 오히려 선생에게 칼이 되어 돌아가니 나의 생각은 깊어지기만 하다. 사랑하는 섭리사야! 너희는 반드시 이 시대 하늘의 방침이 무엇인지 알고 철저하게 성삼위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이 섭리사는 살아 있는 역사이지 않느냐? 저 기성처럼 나의 말씀이 문서화되어 형식화된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나의 육인 선생을 통해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고 그것이 바로 시대의 법이 되는 곳이 아니냐? 그러니 너희가 지난날의 인식을 버리고 새로운 차원으로 하늘 앞에 드리는 예물에 대한 인식을 갖기 바란다. 섭리사야! 내가 너희에게 먼저 묻고 싶다. 너희는 헌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무엇 때문에 하늘 앞에 예물을 드리느냐? 신앙인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정해 놓은 법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냐? 사랑하는 자들아. 명심하여라. 너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너희는 그 어떤 작은 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너희의 소유가 어찌 하나님의 것인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비유컨대, 너희가 여행을 하다 쉴 곳이 필요하여 호텔로 들어갔다 하자. 그 호텔에 너희가 묵는다고 하여 그곳이 너희의 소유가 될 수 있느냐? 너희는 대가를 지불하고 그 호텔 안에 있는 모든 기구를 사용하며 잠시 쉬었다 갈 뿐이다. 이와 같이 이 모든 지구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고 너희가 이 지구에서 잠시 쉬었다 지구 안에 있는 것들을 사용하며 머물다 갈 뿐이다. 너희가 주인이 아니다. 주인의 크신 사랑으로 너희가 너희 것처럼 사용할 뿐이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모든 것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고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함의 예물을 드려야 함에도 마치 하나님께 생색이라도 내듯이 예물을 드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민망하고 당황스럽다. 사랑하는 자들아. 인생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다시 인생들에게 예물을 받으실까? 이 시대 말로 표현하면 왜 헌금을 받으실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 물질에 인생들이 담은 마음보를 보며 영광과 사랑을 받는 것이다. 헌금은 물질 자체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헌금을 드림으로 자신의 모든 마음과 정성과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너무나도 많은 헌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예물을 드리지 못함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또한 가인과 아벨을 보아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았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제물을 드리는 자의 중심을 본 것이다. 즉 그 마음보를 본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제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을 본 것이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한 것을 보아라. 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더 거스를 뿐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했다. 이와 같이 헌금은 어떻게 드리느냐 어떤 마음으로 드리느냐에 따라 헌금을 한 것이 하지 않은 것 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헌금을 드릴 때는 드리는 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성삼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을 절대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헌금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마음을 측량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에 대한 정성이 있는지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반드시 그 정성과 마음과 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 너희가 헌금을 할 때 먼저는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아라. 자신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지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앞에 조건을 건다든지 헌금을 통해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위한 마음이 있지는 않는지 점검하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교회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심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여라. 그리고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하나님의 것인데도 그 예물에 대해 자신의 권리가 있는 것처럼 교회에서 힘을 행사하고 헌금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목이 굳어져 교만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아니라 지옥행 티켓을 예약하는 비용일 뿐이다. 세상에 속해 기부금을 낸 자도 자신이 기부한 것을 숨기며 자신의 의를 공개하지 않는데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로 생색을 내고 교만해진다면 그것만큼 보기 흉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은 다 아시는 것이다. 또한 너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부정한 짓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정당한 땀의 대가로 이루어진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며 재물을 모으는지 뒤돌아보아라.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일을 통하여 재물을 모아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삼지는 않는지 뒤돌아 보아야 한다. 또한 헌금으로만 하나님께 의를 쌓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경제 공적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전혀 옳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예물을 드릴 때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성령의 감동으로 자발적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어떤 누군가의 강요 때문에 의무감 때문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면 절대 하나님께서 귀히 받지도 않으시고 그 예물을 통해 역사하지도 않으시며 그 예물을 드린 자도 또한 강요한 자도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한 것이다. 너희가 교회에 예물을 드렸기 때문에 또한 그 돈이 교회에서 쓰여지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하며 안심하지 마라. 그 마음이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 받지 않으시고 그 예물도 절대 하늘의 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물을 드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고 한 말이 기억이 나지 않느냐? 같은 물질이라도 드리는 자의 마음과 행실에 따라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기도 세상에 속한 제물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헌금을 내는 인생들의 마음보를 보시고 그 위에 축복의 축복을 더하여 주는 것이다. 인생들이 저축을 하면 이자가 얼마나 붙느냐? 이자가 원금을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틀리다.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에 인생들이 어떤 마음보를 담느냐에 따라 드린 예물에 천배 만배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굳이 인생들의 사랑과 정성을 물질로 받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방법으로도 받으실 수 있는데 왜 헌금을 통해 받으실까? 하나님께서 물질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헌금은 바로 인생들을 위한 것이다. 인생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하기에 이 물질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헌금을 받는 것이다. 인생들은 육으로 존재한다. 육을 통해 영을 구원하는 것이다. 고로 육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 물질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물질을 헌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인색하지 마라. 너희가 드리는 모든 것이 다 너희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정해놓은 질서가 있다. 아무렇게나 드려서는 안 된다. 먼저 예물을 드릴 때는 그 바탕에 진실한 감사와 사랑이 있어야 하고 또한 때에 맞는 형식과 예의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부모에게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한다면 그것만큼 황당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이와 같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때에 맞게 형식에 맞게 드려야 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드려야 할 때에 감사헌금을 드리고 또는 감사헌금을 드려야 할 때에 주일 헌금을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실례가 되는 것이다. 마치 때에 맞지 않는 인사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항상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어떤 축복을 주셨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너희가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 축복에 맞게 감사하며 예물을 드려야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서도 기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을 세밀하게 파악하여 그 축복에 맞는 예물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중에 주일헌금이 있다. 이 주일헌금은 주일예배 때 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별다른 감사거리가 있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예배에 참석하여 이 시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신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길 수도 없는 감사거리인 것이다. 고로 항상 주일예배 때는 액수에 상관없이 정성으로 헌금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십일조가 있다.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께 받은 물질 축복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정해 놓은 법이다. 이 십일조는 마치 인생들이 깊은 물속에 들어갈 때에 산소통을 메고 가는 것과 같다. 신앙인이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산소통 없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고로 십일조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중에 기본이다. 기본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지켜야 할 법이라는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하나님 앞에 십의 일조를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십일조가 기본이 되어야지 십의 0.9조 또는 십의 0.8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100만원을 벌면 10만원을 드리는 것이 기본이지 9만원 8만원을 드리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이것은 산소통에 제대로 산소를 채우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격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인색하면 안 된다. 기본은 말 그대로 기본이다. 기본보다 더 해야 무엇이든지 나은 것이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십의 이조 삼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활도 꾸려나가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무렴케 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반드시 조화롭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라. 그리고 감사헌금이 있다. 이 감사헌금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무엇이 감사한지 표현하여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한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림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하나님께서 해주셨는지 세밀하게 감사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간증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고로 감사헌금은 정확하게 무엇이 감사한지 하나님께 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감사헌금의 감사내용을 듣는 자들로 인해 은혜를 받게 하여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그 축복이 기쁨이 되게 해야 한다. 또한 교회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특별헌금을 걷을 때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하나가 되어 하늘 앞에 드리는 헌금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보람이 있고 성삼위도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생이 너희에게 가르쳐 준 방법이지 않느냐? 그리고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헌금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헌금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써야 한다. 헌금은 무한한 것이 아니고 유한한 것이기에 꼭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헌금을 드릴 때의 마음가짐도 보지만 이 헌금을 사용할 때의 마음가짐도 철저하게 보신다. 헌금을 드리고 나서 사람의 생각대로 헌금을 쓴다면 이것은 차라리 헌금을 하지 않은 것 보다 못한 것이다. 그래서 헌금은 반드시 하나님이 어디에 더 중요성을 가지고 사용하고 싶어 하는지 반드시 그 심정을 알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헌금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하늘 공적에 남을 곳에 써야 하는 것이 법이다. 헌금을 가지고 하늘 일과 전혀 무관한데 사용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니 모르고 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 헌금을 사용할 때는 이 시대 나의 육이 되어 뛰고 달리는 선생의 섭리를 운영하는 방침에 따라 써야 한다. 너희가 힘들게 기도할 필요도 없이 선생이 정해준 규칙 속에서 행하여라. 이것이 답이다. 괜히 잘 하려고 하다가 도가 넘쳐 오히려 하지 않은 것이 더 나을 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섭리사는 수백 개의 교회가 나를 중심한 한 지체와 같다. 기성처럼 한 교회에 담임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 교회별로 움직이는 역사가 아니다. 기성의 교회는 문제가 생기면 그 교회가 책임을 지면 끝이 나지만 섭리사는 그렇지 않다. 작은 구멍 하나가 댐을 무너뜨리듯이 섭리사에서 한 교회가 재정으로 무너지면 하늘 역사에 절대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한 교회에서 재정 피해가 나면 섭리사 모두가 피해를 보고 또한 이 모든 것을 선생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고로 교역자와 지도자들은 항상 나에게 묻고 또한 선생께 묻고 행하는 지혜를 가지기를 바란다. 절대 교회의 교역자의 권한으로 처리할 수 없다. 또한 교역자와 지도자가 하나 되었다고 해서 처리할 수가 없다. 반드시 내가 육으로 쓰는 선생과 의논이 되어져야 교회의 재정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것은 우리끼리 의논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은 버려라. 항상 작은 것부터 철저하게 나와 의논하며 행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작은 것이 점점 큰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너희 마음대로 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지도자들은 문제가 생기고 나면 그때서야 후회한다. 그리고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모두 자기가 짊어지고 가겠다고 말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다. 어찌 사람이 하늘의 영적인 손해에 대해 책임질 수 있단 말이냐? 한 교회에서 재정 사고가 나면 그 물질적 손해만 책임지면 끝이 나는 줄 아느냐? 영적인 손해는 어찌 감당할 것이냐? 이것은 선생이 아니면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다. 고로 선생이 모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보고와 묻는 것은 책임분담이니 반드시 교역자와 지도자는 묻고 행하기를 바란다. 너희는 섭리사에 수백 개의 교회가 있는데 ‘작은 것 하나를 어떻게 다 선생님과 의논하며 할 수 있을까?’생각한다. 그것은 지극히 너희의 육적인 생각이다. 내가 성경을 통해 너희와 대화하고 너희의 인생을 가르치듯이 선생이 말씀을 통해 재정에 관한 법을 정해놓았다. 너희는 이것을 준수하고 지켜라. 바로 나와 선생과 의논하여 재정을 사용한다는 것은 선생이 이 시대 말씀으로 선포한 법대로 재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이 재정을 세운 자를 통해 관리하는 것이니 항상 선생이 세운 체계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고 교회의 모든 재정을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 반드시 너희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의논하여 선생이 만든 법의 틀 안에서 움직이기 바란다. 사랑하는 섭리사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물질은 인생들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인생들은 물질을 좋아한다. 고로 성삼위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물질 축복을 한다. 반면에 사탄 또한 인생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교묘하게 들어온다. 물질의 유혹을 통하여 사탄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물질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물질은 물질을 주관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되지만 물질에 주관 받는 자에게는 사망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섭리사는 반드시 선생의 말씀을 통해 물질을 주관하고 또한 선생이 선포한 법의 주관권 안에서 성삼위가 주신 축복 속에 거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축복의 근원 사랑의 주 예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