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0.08.17 (화)
주이랑 서울진실한교회 캠퍼스
- 선포일
- 2010.08.17 (화)
- 성경 본문
- 새벽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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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곤고와 육적 곤고
작성일 : 2010. 08. 17. (화)
작성자 : 주이랑 (26세, 서울진실한, 출판국)
8/17 새벽 1:30~3:00
말씀 받기 며칠 전부터, 마음이 괜히 답답하여
입에서는 불평불만이 나오고 힘이 빠지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피로가 쌓여서
그런가 하여 하루는 푹 쉬어보기도 했지만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고 17일 새벽 기도 시간에
예수님께 제 마음의 답답함을 회개하며,
마음을 정돈하며 주님께 진실로 감사와 사랑고백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그동안 제 삶과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예수님, 이 모든 것이 어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의 문제고, 제 육신의 행함이 문제인거 같습니
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 예수님 말씀 ※
내 사랑아.
깊은 기도로 나를 만나러 이리 찾아오니 내 진정 기쁘다.
오늘도 너와 나의 만남이 나의 말로 결실할지니
더 깊은 성산을 나와 함께 오르자.
우리 사랑으로 영원한 열매를 맺어 길이길이 남겨보자.
너의 깊은 고백을 내가 들었고,
네 고백처럼 네 육신의 모든 행실도 내가 보았다.
그래, 맞다. 잘 깨달았구나.
네 스스로 깨달아 이 성산을 넘게 하고자
내 너를 지켜보며 기다렸다.
불평불만은 ‘나’가 아닌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말의 행위다.
그러나 불평하는 입술의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는,
‘네 영혼이 네 육신에게 가지는 불평’이
네 병들어 굳은 마음에서 튕겨 나와
육신의 입술을 통해 뱉어내는 경우가 있다.
즉, 병든 네 마음이 자기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라고 직시하여 생각지 않고
상대에게 전가하여 벌어지는 말의 행위가
곧 육신에서 흘러나오는 불평불만이라는 것이다.
이는 깊고도 깊은 근본의 말이니 잘 깨달아라.
내 사랑아. 내 신부야.
휴거의 첫 결실이 된 너희 선생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아
라.
그 삶에 곧 휴거의 비밀이 새기어져 있으니,
내 오늘도 인류의 표상된 너희 선생을
증거하고 있지 않더냐.
그를 연구하여라. 그를 공부하여라.
그러할 때 휴거와 재림,
그리고 나 예수의 역사를 선명히 깨달을 수 있을게다.
나는 너희 선생에게 먼저는
‘영의 성장’을 목표로
깊은 기도와 영적 세계로의 도전을 행하도록 이끌었다.
육의 성장이 아닌 먼저는 영의 성장임을 기억하여라.
그는 충분한 기도와 성서를 읽음으로
그의 안에 숨겨진 영적 감각을 깨우고,
영적 세계에 대해 눈을 뜨며,
자기 자신의 ‘영’과의 교감도 이어갔다.
그가 영적 세계로 도전하는 만큼
그의 영도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영이 성장하는 만큼
영의 차원이 달라지는 만큼
나 예수를 좇아 더 높은 영계의 세계로 이끌려 왔다.
랑아, 너의 영적 삶도 생각해 보아라.
나 예수는 이미 앞서 멀리 갔는데,
네 영이 좇아오지 못할 때
영적 곤고함이 찾아오지 않았느냐?
(네, 예수님 저도 그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다’
고 말씀해주시면 그 말씀에 따라 목숨 걸고
그 단계까지 오르고자 몸부림 쳤습니다.
그리고 나면 정말 신기하게도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있
었고
제 영적 곤고함도 사라졌습니다.)
그래 맞다.
너희 선생도 그러했다.
내가 이전에 너희 선생에게는
‘나는 지금 어느 단계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나의 심정에 맞게 스스로 찾아 나를 향해
올라오기도 했다고 네게 증거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 선생을 증거하는 하나하나를
더 깊이 새기어 너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아라.
네 말처럼 너희 선생도
영적 감각이 깨어나면서,
먼저는 나 예수와 자기 영과의 거리가 생겼을 때
깊은 영적 곤고함을 느꼈다.
그러니 매일 매일 더 깊은 기도와 찬양과
나를 향한 사랑으로 영적 수준을 달리하며
나를 좇은 것이다.
이러한 ‘영적 곤고함’은
진리를 깨우치고 사랑을 깨우치며
나 예수와의 만남으로밖에 해결될 길이 없다.
진리의 맛을 네가 아느냐.
(네, 예수님 저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진리의 맛이 너무나 황홀함을 고백합니다.
정말 저도 무엇 하나를 깨달으면
너무 기뻐서 며칠을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맞다. 이러한 진리의 맛은 영만이 느낄 수 있나니
네 영이 느끼는 환희를 네 육까지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의 교감, 사랑의 교감이 없을 때
네 영이 곤고함을 느껴 네 마음을 두드려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네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나니,
영적 곤고함도 영적 감각이 깨어난 자일수록
더 세밀하고도 두텁게 느껴져
깊은 곤고함으로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 예수가 역사하지 않아도,
네 선생은 스스로 자신의 곤고함을 떨치고자
더 몸부림치며 오르고 또 오른 것이다.
이를 깊이 깨달아라.
그 후에 나는 너희 선생에게 ‘진리의 육신화’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왜겠느냐?
(영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였나요?)
그래, 그것도 하나의 답일 수 있겠구나.
그러나 더 깊은 근본을 이야기할 테니 잘 들어보아라.
나 예수와 자기의 영이 멀어질 때
첫째 영적 곤고함을 느낀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곤고함이 있나니
바로 자기 영과 자기 육의 거리가 멀어질 때
느껴지는‘육적 곤고함’이다.
즉 자신의 영은 이미 나 예수를 좇아
높이 높이 올랐는데, 그에 맞는 육의 수준이
되지 못하니 찾아오게 되는 곤고함이다.
내 너에게 비유를 통해 너의 영과 육을 설명하였지?
(네, 예수님. 마치 제 육신을 탁구채라고 생각하고
제 영을 탁구공이라고 생각하며
육신을 통해 영을 더 높이 높이 올려줘야 된다고
설명해주셨잖아요.)
그래 맞다.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영은 천국에 올라 더 깊고도 신비로운
진리를 깨우치며, 신나게 날아오르고 있는데
육은 자신의 영의 수준만큼 오르지 못하고
여전히 육적 생활을 하고, 육적 재미에 빠져있다고 하자.
이는 마치 있는 힘껏 공을 쳐서
네 영과 같은 탁구공이 천국까지 올라갔는데,
마치 탁구채와 같은 네 육의 수준이 너무 낮아
떨어지는 탁구공을 받아내야하는 순간
탄력이 붙지 않아 공이 더 오를 수 없는 것과 같다.
내 말을 알겠느냐?
(네, 예수님. 제 육과 영은 마치 고무줄로
엮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 육이 오르지
못하면 영도 더 못 오르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예수님 육적 변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영이 영계에 높이 다다를 수 있나요?)
응, 그럼 있지.
그러나 마치 체험과 같이 잠시 머물 뿐,
육신이 죽지 않았거나
혹은 완전히 휴거되지 않아
혼체가 결합되지 않은 ‘영’은
높은 영계에 완전한 거함으로 남을 수 없다.
자신의 육이라는 ‘채’가 함께 따라오면서
더 강한 탄력의 힘으로 자신의 영을 쳐서 올려주지 않으
면
영적 수준은 언제든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는 게다.
그래서 지금 천국을 보고 듣는다 하여도
결코 휴거된 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영적 수준이 그리 올라갈 수 있지만
육적 수준이 같이 올라와 주지 않으면
고무줄이 당기듯 다시금 영이 내려올 수밖에 없는 이치
다.
그러니 내 사랑아.
육과 영은 항상 밸런스를 유지하며 함께 올라야 한다.
그래서 나는 너희 선생에게도
영적 수준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절대적인 ‘실천’을 가르치며
내가 말한 것을 행하게 하였다.
너희 선생이 그토록 온몸과 온맘을 다해
육신으로 진리를 행한 것에는
자신의 영과 육의 거리가 멀어질 때 느껴지는
육적 곤고함을 채우기 위함도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고백하길,
자신의 육을 매일 친다고 하지 않았느냐.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
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 함
이로라.
네 마음에 짙은 답답함이 임한 것은
네 영과 네 육의 밸런스가 맞지 않으니
네 영이 네 육에게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니 더욱 목숨걸고 달려보아라.
그리할 때 육적 곤고함이 사라지며,
더 높은 수준을 향해 또다시 도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높이 오른 공은 언제든 내려올 수 있다.
그러나 공을 다시 쳐줄 채가 수준을 높여 올라가면
마치 튼튼한 바위위에 서는 것과 같아서
진정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게다.
내 사랑아.
휴거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지?
1차 휴거, 곧 꽃이 열매로 바뀌는 것을
마치 네 영과 육이 천상 천국의 문 앞까지
뻗은 긴 계단을 완전히 오르는 것이라 생각해보아라.
재림의 그날, 바삐 수준을 높여 천국 문 앞에 서있는
나의 신부들만 내가 데려갈 수 있다.
제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하여도
영혼육의 수준이 첨단 천국급 사랑에 걸맞지 않는다면
결코 나는 내 신부를 데려갈 수가 없다.
천국은 천국급영, 곧 천국의 수준에 거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더냐.
그러니 내 신부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목숨 걸고 오르자.
깊은 사랑과 진리와 기도로 너의 영적 수준을 높이고
절대적인 실천과 땅의 사랑, 또 생명 구원으로
육의 수준을 높이며 나와 함께 오르자.
그리할 때 너의 영적, 육적 곤고함이 사라지고
다른 차원의 세계가 네 앞에 펼쳐지리라.
사랑한다. 나의 신부여.
깊은 나의 심정의 말을 전했으니
너는 깊이 새기어 전하여라.
내 너를 진정 사랑한다.
이는 영원한 희망의 사랑이다.
- 너의 휴거를 도우며,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