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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0.09.14 (화)

2010년 9월 18일 새벽 주이랑 서울진실한교회 캠퍼스

선포일
2010.09.14 (화)
성경 본문
새벽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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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9월 18일 새벽 주이랑20100914-서울진실한교회-캠퍼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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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육신이 되어다오 작성일 : 2010. 09. 10 (금) 새벽 12:30 ~ 1:20 작성자 : 주이랑 (서울 진실한 교회) [ 너무 피곤한 날이라 기도를 하던 중에 오늘은 이만 잘까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내 사랑, 나의 신부여 많이 피곤하지?” 라고 잔잔히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네, 예수님 저 사실 많이 피곤해요. 그렇지만 주님 만나고 싶어서 왔어요. 죽기 살기로 기도할 테니까 제 영을 깨워 저 좀 깊이 만나주세요. 주님 너무 만나고 싶어요.” 라고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 그래, 내가 너의 마음을 안다. 너의 사랑을 안다. 그래서 좋다. 너의 이 마음이 나는 좋다. 내가 먼저 주지 않아도 내게 먼저 주니 좋고 내가 먼저 고백하지 않아도 내게 먼저 고백해주니 좋고 내가 먼저 손 내밀지 않아도 내게 먼저 손 내미니 좋다. 이것이 너희 선생에게 가르친 신부의 사랑이 아니겠느 냐. 그러나 두 무릎을 꿇고 내게 간구하는 너의 모습이 나도 안쓰러우니 우리 오늘 더 빨리 올라 더 깊은 대화를 나누자꾸나. 우리 오늘 신부의 사랑 그 너머를 배우자” 하셨고 이어 말씀해주셨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신부, 이는 너무나 깊고도 깊은 비밀이 담긴 말이지. 사랑으로 창조된 인간의 근본을 말함이며, 사랑으로 신의 대상체 삼은 인간의 위치를 말함이며, 사랑으로 자기 자신, 가정, 민족, 세계라는 천국을 이루어가는 역사의 이치를 말함이지. 얼마나 위대하고도 놀라운 말이더냐. 나의 성서를 집필하는 자의 골수에 ‘신부’라는 글자를 부어주어, 나의 성서 가운데 ‘신부’라는 글자를 새기었나니 그날의 내 입술의 떨림과 손끝의 떨림을 너는 아느냐. 나의 기쁨의 순간이다. 잊지 못할 황홀한 순간이다. 그리고 성약역사 가운데, 나는 더 깊은 심정의 말을 인류 가운데 새기었나니 곧 ‘나의 육신이 되어 달라’는 말이다. 너희는 이 말을 아느냐? ‘주님의 육신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이는 실상 너희 선생이 내게 고백한 말이란다. 인류 최초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그 고백의 떨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단다. 찬란한 세마포 자락에 눈이 부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던 네 선생은 나의 영광과 존귀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강렬한 감동으로 보고 듣고 느낀 자다. 그로 인해 그는 한평생 깊은 기도로써 나에게 영광 돌렸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보고 들었던 대로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진심어린 찬양으로 내게 늘 사랑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네 선생이 달콤한 사랑 교감에만 머물지 않고 그리 목숨 걸고 나의 역사를 뛰는 까닭을 너는 아느냐. 위대한 고백의 주인공이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라 네게 말한바 있지? 네 선생의 위대한 고백이 무엇인 줄 아느냐. 바로 ‘주님의 육신이 되어 드리겠습니다.’라는 것이었 다. 그리고 네 선생의 고백대로 그는 한평생을 나의 육이 되어 살아왔다. 사랑의 대상체로서 나와 마주보며 선 것이 아니라 나의 육신이 되어 나와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것을 말하며 일체되어 내가 걷는 이 모진 십자가 길을 함께 걸었던 것이다.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완전한 일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나의 안에 그가 거하며, 그 안에 내가 거한다는 말이다. 그가 아닌 ‘나’로 산다는 말이다. 이는 먼저 ‘버림’으로부터 시작된다. 먼저는 육이요, 나중은 마음이다. 너에게 묻는다. 내 사랑아, 내가 네게 “지금 당장 오지로 떠나거라.” 라고 말한다면 너는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겠느냐? 만약 꺼림이 없다면 너는 비운 자요, 만약 꺼림이 있다면 너는 아직 비우지 못한 자다. 내 사랑아. 내가 네게 “너의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자” 말한다면 너는 네가 한평생 수고한 모든 것일지라도 당장 버리고 나와 함께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겠느냐? 만약 할 수 있다면 너는 비운자요 만약 할 수 없다면 너는 비우지 못한 자다. 너희 선생, 그리고 나를 좇은 수많은 제자들의 처음은 나와의 만남이요 다음은 온전한 버림이었다. 얼마나 내려놓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나와 일체될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차원’이 되어 너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나의 어떤 말에도 무조건 ‘아멘’하며 순종할 수 있는 육적 상황과 마음 상황을 지닌 자. 그가 진정 버린 자이며 온전히 내려놓은 자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자들은 언제나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광야 인생과도 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의 육이 되어 나의 발길이 이끄는 대로 그리 산 것이다. 어떤 것도 몸에 지니지 않고 어떤 것도 마음에 지니지 않고 오직 나의 정신과 사랑만을 가슴에 품고 자유로운 영혼과도 같이 나와 함께 그리 산 것이다. 그러한 인생이야말로 육적 자유를 얻은 자요 육적 해방을 맞은 자란다. 이는 진정 그 단계까지 오른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말일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는 나의 말을 이 시간 깊이 깨닫길 바라노라. 육으로 어떤 상황과 환경에 매여 있지 않더라도 실상 더 근본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이 마음의 비움을 더욱 중심하여 본단다. 육의 상황과 육의 시간을 내게 내어놓은 자는 많아도 마음을 내어놓은 자는 많이 없구나. 마음의 척도는 육보다 훨씬 미묘하다. 나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네 마음에 이는 작은 요동까지도 나는 불꽃같이 보고 있다. 진정 빈 마음으로 ‘아멘’하는 것인지, 말만 ‘아멘’하는 것인지 나는 철저히 살핀다. 나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순간적으로 네 마음에 무언가 얽매임이 있다면 그는 자유롭지 못한 자요, 마음의 해방을 맞지 못한 자다. 네 선생이 네게 ‘나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너의 가나안 복지다’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그 말을 깊이 새기며 실천하고자 몸부림친 것을 알고 있다. 맞다. 이는 실로 위대한 나의 말이다. 나를 진정 최우선 순위에 둔 자만이 나의 지시에 무조건적인 ‘아멘’이 나오며 마음에 작은 요동도 일지 않는 순결하고 깨끗한 빈 마음을 내게 보일 수 있다. 풍랑 너머를 걷는 자, 마치 인생을 천국을 위한 광야와 같이 여기며 광야 길을 걷듯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빈 몸과 빈 마음으로 오직 나의 발길이 되어 살아줄 자 나는 그런 자를 찾고 또 찾았단다. 육신 없는 나의 서러움을 알고 나를 위해 살아줄 자를 나는 찾고 또 찾았단다. 그리고 네 선생은 나를 사랑함으로 남들이 보지 못한 나의 육신 없음의 서러움을 알았고 그 서러움을 온몸으로 함께 느끼며 내게 ‘주님의 육신이 되어 드릴게요.’라는 위대한 고백을 안길 수 있었단다. 내 사랑아. 사랑의 대상체가 되었다면 이제는 나의 육신이 되어다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마음의 해방을 맞아 내 말만 오롯이 새겨지는 내 육신이 되어다오. 네 세포 하나까지도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온전히 내게 내어다오. 섭리사 너무나 많은 자들이 내게 인생을 다 바쳤다 말하며 또 그리 믿고 살고 있구나. 그러나 실상 진정 나의 육신이 되어 사는 자는 얼마 없 다. 내게 인생을 내주었다 말만 했지 시간을 내주지 않았으며, 시간을 내주었다 말만 했지 실천함으로 나의 육신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허송세월 속에 그저 사랑타령만 하고 있는 뒷방 늙은이들이 너무 많구 나. 팔팔한 나의 젊은 신부야. 너는 진정 내게 배우고 또 배워 나의 육신으로 온전히 성장하여라. 빈 마음에 내 정신을 채우고 죽도록 실천이다. 이것이 나의 육신의 삶이다. 사랑한다. 나의 신부야. 그리고 나의 육신아. 너와 영원히 함께하길 축복하노라. - 너의 마음의 주인,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