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0.10.04 (월)
2010년 10월 6일 수요간증 최종 주혜인 월명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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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머리 둘 자 되어라
작성일 : 2010. 10. 4. (월)
작성자 : 주혜인 (월명동 교회)
[ 철야기도 가운데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그 품에 안겨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나는 주님께 온전한 사랑을
드렸을까?’생각이 들었고 “행하는 자 완전한 자다”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어 기록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 예수님 말씀 *
완전한 사랑에 성공한 자는 끝까지 행하는 자다.
행하다 마는 자 그는 아무리 그동안 태산 같은
공적을 쌓고 나를 사랑했을지라도
결국 행하지 않은 마지막 행실로 인해
사랑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보아라.
결승점을 눈앞에 불과 몇 미터 남겨두고
달리기를 멈추는 자는 어떠하겠느냐.
그가 1등으로 달려왔다 하여도
그는 승리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가 되는 것이다.
고로 행하되 끝까지 하여야 한다.
나는 너희 사랑의 모든 행위, 말, 삶 가운데
모든 것 받지만, 결국 가장 완전한 사랑은 바로 행함이다.
행함이 사랑의 완성이다.
나의 말대로 행하는 자를 나는
가장 나를 사랑하는 자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단계의 사랑이기에 그러하다.
너희의 마음과 정신의 사랑이 결실을 맺으려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나
기도, 찬양, 말씀은 너희가 존재키 위한 기본이며
결국 가장 큰 행함은, 나의 마음 알고
이 시대 나의 구원사업에 내 심정 가지고 뛰는 것.
이를 행하는 자가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자다.
생명 전도는 부끄러움을 참고 이기고,
게으름을 극복하고, 나만 사랑하며,
나와 완전히 일체된 자가 행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이다.
너희는 나를 사랑하여 수천 번씩 노래를 불러보았느냐?
또 수백 시간의 쉼 없는 기도를 통해 나를 만나 보았느냐?
너희 선생은 그 모든 단계를 넘어
나를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여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생명을 위해 뛰쳐나갔었다.
그 사랑이 폭발해 활화산 같이 터져 나올 때
그 입술은 나를 자랑하고 증거 하고파 했으며
그 발은 생명을 향해 달려감에 피곤함이 없었다.
그에게 무슨 사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쏘냐.
미친 듯이, 참을 수없이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그래서 생명을 구원하러 여기 저기 다니는 자에게
무슨 사망의 그늘이 있겠느냐?
그에게는 소망과 희망, 나와 일체된 큰 기쁨뿐이었다.
전도는 형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나와의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여 외치고 싶고
나의 마음 위로하고 싶고 나의 머리 둘 곳이 되고파서
그리 바쁜 걸음 옮기며 다니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힘들어도, 직장일로 피곤해도,
나를 사랑하는 자 그것이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고
기쁜 맘으로 소망으로 뛰고 달리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을 새며 생명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 위해 뛰고 달린다.
그래서 선생이, 먼저는 나를 맞고
나와 사랑에 성공하라 하지 않았느냐.
섭리사 내가 머리 둘 곳이 어디냐!
나를 마음껏 드러내고 나만을 위해 온전히
예비 된 시대 성전 월명동, 바로 너희 선생과
너희가 내게 지어준 그곳이라.
너희 인생도 그러한 자가 되어라.
오직 나만을 위해 쓰일 수 있는 자,
다른 곳에 자신을 내어놓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되고 예비 되어진 인생,
너희 인생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의 마음
섬세히 헤아려 내 뜻대로 행해줄 자,
내가 마음껏 쓸 수 있는 그러한 자를 나는 찾고 찾는다.
그 육신이 닳고 문드러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일을 행한 너희의 표상자 선생을 보라!
그가 얼마나 혹독히 자기를 이기며 다스려서
내가 온전히 그를 쓰고 통제할 수 있게 하였느냐!
그것을 나는 ‘순종’이라 불렀다.
‘불순종’의 영이 이 세상을 주관하기에
내게 순종하는 이를 찾기란 어려웠다.
순종의 표상자 선생 통해 내가 세운 이 섭리에는
선생 같은 ‘순종자’가 많아야 할 것이다.
무릎이 아파도 펴지 않는 그 마음과 정신,
손이 아파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그의 행함을 보라.
결국 육신과 마음을 다스려 사탄을 굴복 시키고
순종하므로 내 뜻을 이루어
시대 크나큰 업적을 남기고 있도다.
내 사랑하는 자들이여.
나도 너희가 그러한 자 되길 바라노라.
나를 사랑한다 하며 다가오는 너희에게 나는 묻고 바라노라.
사랑하기에 너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희생과 어려움을 감수했는지
나의 신부들을 너희 신랑 예수는 지켜보고 있노라.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사랑과 자비의 그리스도이나
나를 온전히 아는 자 그리 많지 않으니
선생 통해 더욱 배우고 내게 나아오라.
나는 분명코 말하노니 나는 사랑의 신이나 또한
공의의 신, 내 아버지의 법칙대로 너희를 대하고
다스리는 지혜의 신이다.
나는 행함에 따라 공의롭게 대하고
온전한 자에게 나의 온전함을 보이는 자로다.
(“예수님,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나는 온전히 행하는 자에게
온전한 역사를 일으키는 자라는 뜻이다.
그것은 법칙과 이치이며
세상을 다스리는 성삼위의 공의이다.
행함에 따른 상벌과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행한 그 육신의 영혼이, 그리고 육신이 사는 동안은
육신도 더불어 받게 되나니, 이 법칙은
내가 아무리 그를 사랑하여도
누구도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법이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되었지?’
하고 실족한다면 나는 분명히 말하노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모든 것은
그 행함에 따라 받도록 창조 되어 있고
그것을 벗어날 자 아무도 없다.
고로 내게 실족하고 하늘 앞에 원망과 불평을 한다면
오히려 그 죄만 더 가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선생처럼 순종하므로 너희 인생을 다스려
정녕 내가 머리 둘 곳이 되도록
너희를 예비하고 준비하여라.
내가 거한 곳이 딱딱한 돌짝밭이거나
메마른 광야여서야 되겠느냐.
너희 마음을 옥토밭으로 가꾸어 순종하고
자기를 온전히 비워 내가 거할 수 있는 곳이 되게 하여라.
이 시대 모든 인생들의 운명이 머리 둘 곳 찾아
헤매는 나 예수를 맞느냐 맞지 못하느냐에 있구나.
( 이때 어제 만난 생명이 떠올랐습니다.
노방 전도한 생명을 만나 전초 하는데, 주님께서 오셔서
그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것을 느껴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빠져 집중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맞지 못함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주님, 새 생명을 만남에 있어서도 그러함을 느꼈습니다.
주님이 찾아와 말씀하시는데도 주님을 모시지 못하고
머리 둘 곳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
내가 너희를 통해 나의 머리 둘 곳을 찾아
많은 생명들 찾아 나섰노라.
그들이 나의 머리 둘 곳이 되어 주지 않으니
나는 그들 마음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개인의 인생에 역사할 수 없어
발걸음 돌릴 수밖에 없구나.
망연자실 손을 놓고 서 있을 수밖에 없구나.
나를 맞아 내 머리 둘 곳을 제공하는 자는 복이 있구나!
그는 사마리아 여인 같은 자다.
사마리아 여인은 냉큼 내게
자기의 마음의 방을 내어 주었으니
실로 위대한 여인이 아니냐.
한 사람이 내게 영·혼·육 온전히 머리 둘 곳이 되어주니
온 마을이 그 축복을 받아 내가 머리 둘 곳이 되었구나.
마치 선생이 나의 머리 둘 곳 되어
온 지구 마을에 그러한 역사가 일어난 것과 같구나.
나는 지구촌을 하나의 큰 마을로 보고
한 민족, 한 나라를 작은 마을로 본다.
내가 머리 둘 곳이 된 곳 축복의 역사요,
그렇지 못한 곳 시대 심판의 대상이 되었구나.
내 사랑들아!
나 예수 거하는 곳, 그 머리 두는 곳은
생명의 해를 입지 않으리니 너희는 모두
그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나의 머리 두는
마음이 되고 정신이 되고 육신이 되어라.
나의 머리 둔 입술이 되고 나의 머리 둔 손과 발,
그 각각의 육신들이 되어라.
(“그런데 예수님, 왜‘머리’둘 곳이라 표현하셨나요?”)
머리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아라.
손도 아니고 발도 아니고 머리라
표현한 의미가 무엇이겠느냐!
머리는 곧 시작이며 중심이며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 육신의 행함을 지시하고 명령하는 곳이다.
머리를 둔다 함은 내가 그에게 머리가 되는 것을 뜻한다.
곧 나로 머리 삼는 자를 뜻한다.
내가 너희에게 머리를 두고 가면
너희는 너희의 머리가 아닌 나의 머리로
행해야 하지 않느냐.
나의 지혜와 나의 머리로 행하는 자
어찌 그 행함의 결과를 비교할 수나 있겠느냐.
수백, 수천, 수억, 수경 배 실로 상상치 못할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느냐?
나에게 너희의 머리를 맡기고 나의 머리를
너희에게 두노니 그것을 가지고 행하여라.
결국 내가 너희에게 머리 둠은 너희에게도
하늘 앞에도 유익을 끼치기 위함이니라.
너희 삶 가운데 내가 너희의 머리가 되게 해 달라 기도하라.
달리 말하면 너희가 나의 머리 둘 곳이
되게 해달라 기도하라는 것이다.
혹은 나의 심정을 받았으되 그 머리가 없어
행함의 지혜를 얻지 못하면 또 어찌 하겠느냐.
머리를 받아야 그 지혜로 판단하며 행할 것이 아니냐.
내가 말씀을 던졌으되 그것을 행함에 있어서도
구체적 방법을 몰라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지.
내가 다 아노라.
그러하기에 선생 통해 이 말씀을 선포하였다.
나의 머리 둘 자 되어 나의 머리로
행함의 지혜와 지식을 얻어라.
내가 선생에게 시대 가장 극적으로 머리를 두었기에
엄청난 말씀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너희는 힘들고 지치면 쉬고 때에 따라
머리 둘 곳이 되었다 안 되었다 하나
그는 항상 맘과 뜻과 목숨 다해 나의 머리 둘 곳이
되어 주기에 내가 그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늘 선생처럼 나의 머리 둘 곳이 되어 주거라.
내가 늘 그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전도하는 생명들에게도 이 말을 꼭 전해주거라.
이 말씀 곧 시대 복음이 바로 나 예수임을 꼭 증거해다오!
복음을 맞는 자, 나 예수를 맞고 나의 머리 둘 곳 되는 자다.
섭리사 너희들도 나의 말씀으로 온전히
너희 머리를 채우는 자, 이 시대 선포되는
주일 수요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
바로 나를 맞는 자요, 나의 머리 둘 자 되어주는 자다.
말씀이 곧 나의 머리요, 너의 육신을
움직일 머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긴 가르침 끝이 없다.
내 사랑하는 신부들 더욱 교육하여
사탄을 이기고 다스리게 하였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