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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0.10.15 (금)

이선진 생명은 말씀과 기도로 관리하는 것이다

선포일
2010.10.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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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말씀과 기도로 관리하는 것이다 (20101015) 작성일 : 2010. 10. 9 (토) 2:19 작성자 : 이선진 (분당 제일교회, 평화 오케스트라) [‘생명은 관리다’ 10월 10일 주일말씀을 읽은 후 오직 주님의 온전한 말씀 받기를 간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말씀이 무엇이더냐. 말씀은 나의 사랑이 집약된 사랑의 결실체이며, 도구이다. 내가 너희를 온전히 관리하고자 하여 말씀을 준 것도 있지만, 너희를 사랑하는 나 주 예수의 사랑을 전달하고자 하여 준 것도 있느니라. 그러니 너희는, 너희만 말씀을 받지 말고 나누어 주거라. 관리할 생명, 전도할 생명, 이 밖에도 주고자 하는 생명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거라.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그런 내가 왜 말씀을 선택했겠느냐. 그건 바로 말씀의 속성 때문이니라. 말씀은 영원하다. 무한이니라. 사랑은 표현할 방법이 참으로 다양하다. 이적과 기적이 있겠고 수많은 각종 자연물들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장 온전히 오래도록 남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말씀이니라. 이젠 시대가 흘러 현대 사회가 되었구나. 그렇지만 너희는 아직까지 성경을 통해 혹은 시대 말씀을 통해 관리 받고 있지 않느냐. 이처럼 말씀은 시대가 변하여도 온전히 너희를 관리하고 또 새로운 생명을 관리하는 최첨단 무기이니라. 또한 말씀은 내가 되어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닐 무기 중 무기이니라. 무기는 써먹어야 녹슬지 않는다. ‘너희가 녹슨다’는 것이 무슨 말인 줄 아느냐. 정신이 녹슨다는 의미이며, 마음이 돌밭처럼 굳어 버린다는 말이니라. 이 말은, 너희가 생명을 구하는 데 있어서 열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며 더 이 상 나와의 사랑에 열심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이니라. 이처럼 관리도 마찬가지이니라. 관리도 꾸준히 해야 너희의 마음도 녹슬지 않으며 그 생명의 마음 또한 녹슬지 않으니더 수 월한 것이다. 꾸준한 관리가 생명을 낳는다. 꾸준한 관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기도와 말씀으로 생명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겠다. 먼저 생명을 기도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가 온전히 깨끗이 청산되어있어야 한다. 온전히 깨끗이 죄를 청산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온전히 죄를 청산하여 어서 생명을 기도로써 관리하고픈 마음이 있다면 어서 죄를 청산시켜주지 않겠느냐. 이처럼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회개를 한다면 그 회개가 조금은 더 수월할 것이니라. 또한 기도로 간구하여 그 자의 죄를 대신 청산해주고자 죄를 회개해준다면 진정 기도로 생 명을 관리한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것이니라. 기도로써 생명을 관리한다는 것을 진정 쉽게 보면 안 되느니라. 진정 힘든 일이며 수고로운 일이니라. 진정 귀히 여기고 귀히 보거라. 그 자의 영을 직접 관리한다고 생각하면 되느니라. 그 다음, 말씀으로 생명 관리이다. 이 단계가 되려면 우선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이 간절히 깃들어야 한다.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없이 어찌 사랑의 말씀으로 생명을 낚아 올려 건져낼 수 있단 말이더냐. 우선은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부터 지녀라. 그 후에야 진정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과 마음과 말씀이 결합되어 생명을 낳는 법이니라. 말씀은 선생의 정신과 나 주 예수의 정신이 만나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니 선생의 정신 받 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사모하여라. 나의 정신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알겠지. 이렇듯 선생의 정신과 내 정신이 결합되어 온전한 정신되기를 간절히 사모하여라. 그런 후, 생명을 관리하여 보거라. 무언가 다를 것이니라. 이렇게 코치해주었으니 실천은 너희 몫이니라. 실천하는 자에게 역사하리라. 안녕. 나 예수가. 내가 너를 관리하게 하라 작성일 : 2010. 10. 7. (금) 작성자 : 주혜인 [ 철야기도 중 저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가운데, 예수님께 저에게 하실 말씀이 없으신 지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네 마음의 키를 내게 다오!’ ‘네 마음이지만 네 마음대로 살아선 안 된다.’하시며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제 차를 예수님께서 운전하시고 제가 옆에 타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차를 몰면 사고가 나니, 아예 내가 모는 것이다.’하셨습니다. 이어 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 다. ] * 예수님 말씀 * 내 사랑하는 자여! 오늘은 나의 머리 둘 곳 된 삶을 살았느냐? (“주님, 진정 주님께서 저의 모든 삶을 동행하시며 이끌어 주셨건만, 온전히 느끼고 감사 영 광 돌리며 맞지 못한 것만 같습니다.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요.”) 그래, 많은 인생들이 그러하다. 많은 인생들이 나를 맞고자 하여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여 함께 행하여도, 진정 나를 온전히 맞는 자가 많지 않구나. 나를 대하는 법을 모르고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무례히 대하기도 하고 혹은 내가 함께 함을 모르고 아예 무시하고 살기도 하며 함께함을 알 아도 어찌 해야 할지 모르고 감각이 죽어버린 자들도 많구나. 내 사랑하는 자들이여. 내가 모든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너와 함께 행하고 있었다. 몰랐느냐! 나를 맞아라. 내 사랑아. 마음의 감각을 깨워라. 죽은 감각을 다시 살려라. 한번 죽어버린 감각을 다시 살리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고로 너희는 힘들게 얻은 모든 것을 맘과 뜻과 목숨 다해 행함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함께 한다. 내가 거한다. 그러니 나를 맞는 것도 감각이다. 내 불쌍한 신부여! 내가 앞에 있어도 나를 맞을 줄 모르니 마치 신부가 그 사랑하는 자를 만났어도 그를 사랑하는 자로 대하지 못하는 것과 같구나. 사랑은 연습이다. 평소의 모든 삶이 연습이다. 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잃은 감각 찾아야 한다. 내가 섭리사를 바라보니, 나의 신부라 하며 기다리는 자 중에도 그 감각을 갖추지 못한 채 나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구나! 너희의 모든 신부로서의 삶도 결국은 신부다운 삶을 살 줄 아는 지식과 지혜와 행실이 다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시간과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하여 내 신부로서의 단장을 끝냈느냐? (“주님, 단장에 있어서는 끝이 없는 듯합니다. 그 감각을 또 자꾸 잃어버립니다.” ) 목숨 걸고 놓치지 말아라. 자기 관리, 곧 신부로 단장함을 잃지 않는 것, 곧 나 예수 그리스도 너희 신랑을 잃지 않는 것이다. 친히 나 예수가 약하고 약한 너희 인생 가운데 왔다. 어떤 이유이겠느냐? ("저희를 데려가려고 예비시키러 오셨나이다." ) 맞다. 나는 너희의 약함과 무지와 인내 없음을 안다. 고로 나는 너희에게 와 이토록 역사하며 내 사랑하는 신부들 데려가려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다. 선생, 그런 내 심정 알고 피눈물의 고통 가운데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신부들아!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지금 나를 맞은 자도 있고 맞지 못한 자도 있다. 또한 맞은 자가 그것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나의 존재를 잊고 살기도 한다. 자기 관리가 곧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내가 너희 가운데 와 있음을 정녕 잊지 말라. 내가 곧 가리라 하였지만 이런 모습의 너희를 두고 어찌 내 발걸음이 떨어지겠느냐! 지금 나를 맞아라 재촉하는 선생의 외침 듣지 않았느냐! 이미 그를 통해 말하였다. 나를 맞은 자여! 나를 잃어버리지 말라. 맞지 못한 자여! 나를 맞으라. 내가 너희 마음의 운전대를 잡고 내 신부들 친히 천국길로 이끌 것이다. 내가 왔으니 너희 마음의 키를 냉큼 내게 건네주어라. 내가 친히 너희 인생을 이끌리라. 내 신부여. 답답하고 힘든 마음이냐? 나와 동행치 못하여 그런 것이다. 나를 온전히 맞지 못하니 너의 마음이 괴롭고 더딘 것이다. 내 사랑아! 모든 것을 끊고 내게만 오라! 나를 맞는 것에 너희의 운명이 달렸다. 나를 너희가 매 순간순간 맞고 사는 것이 바로 너희의 관리의 근본이다. 오, 사랑하는 자여! 누가 너희 인생을 최고로 이끌며 만들어 줄 수 있느냐!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 나다. 내가 너를 최고의 인생 되게 한다. 그러니 내게 맡겨야지. 내게만 너희 마음의 키를 내어 주어야지. 내가 함께 하마. 내게 묻고 맡겨라.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되느냐? 그래, 내가 있다. 내게 맡겨라. 네 인생이라는 차를 몰아 끝 날까지, 나의 나라 올 그날까지 달려갈 길이기에 너희 스스로 몰고 가다간 또 사고 나고 인생 어둡고 쓸쓸한 흑암길 간다. 어떤 자는 사망길인 줄 모르고 절벽으로 자기 인생의 차를 내모는 자도 있구나. 그리 달리다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간다. 그래서 내가 직접 몰고 간다는 것이다. 내게 맡겨라. 내 사랑하는 자여. 내가 친히 그 차를 몰아 너를 천국 길로 이끌겠다. (“주님, 차를 몬다는 것은 어떤 뜻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너희 마음의 ‘주권’을 포기하고 내게 ‘주권’을 넘겨준다는 말이다. 너희의 마음은 너희 것이나 곧 너희 것이 아니라 내 것인 양 내 뜻대로 내게 맡긴다는 것이다! 내게 맡기어라! 자기 의지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표상자 선생처럼 되어라. 먹고 자고 입고 행하는 모든 것에 본인의 주권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내게 묻고 내게 허락받고 움직이는 선생을 보아라! 내가 그리 할 것이다. 내게 맡긴 자의 인생, 내가 직접 운전하여 이끌 것이다. 그리고 차를 몬다는 것은, 내가 선포한 말씀으로 너희 머리를 삼아 너희 육신을 움직인다는 말이다. 내 말대로 사는 자, 곧 내가 모는 인생의 차를 타고 가는 자로다. 내가 운전대를 잡게 허락한 자로다. 내 사랑하는 자여! 내가 너희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가겠다. (“주여, 맡기겠나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운전대를 주었다가도 급하면 또 자기가 잡고 가기도 한다. 습관이 되고 의식이 약해서 그렇구나. 내가 보이지 않으나 너희 선생의 의식 속에 늘 내가 함께 있어 그가 모든 것을 나를 의식하며 행하듯이 너희도 그리하여라. 너희 의식 속에 꼭 나를 넣어두고 나 ‘예수’라는 이름을 잊지 말아라. 내가 친히 너희에게 와서 이미 너희 인생의 운전대를 잡으려 하고 있음을 잊지 마라. 왜? 너희 인생을 더욱 빛의 세계, 더 나은 이상적인 세계로 이끌어내려 함이다. 매일 매일 더 높은 차원의 부활을 이루며 거듭나는 너희가 되어야 하기에 내가 그렇게 이끌어내려 하는 것이다. 오늘은 자기 관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 말씀 더욱 중심하여 반드시 귀히 보고 행해야 한다. 이 시대에 주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화이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