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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0.10.15 (금)

2010년 10월 15일 천성운 말씀

선포일
2010.10.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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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15일 천국성령운동>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 그리고 뜨거운 성령이 이 자리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께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오늘 불같은 역사를 다시 한번 기다려 봅니다. 오늘은 충남 금산지역에 있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변함없이 예술단, 월명동에 계신 여러분들도 함께 참여 하고 있습니다. 네, 이틀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 금산지역은요. 총 4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귀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합봉의 말씀이 나오기 전부터 금산지역에는 큰 뜻이 있었습니다. 이 합봉의 말씀이 나오고 나서 가장 먼저 4개의 교회가 섭리사에서 합쳐지지 않을까. 모두 다 주님의 마음으로 합하고 기도하고 주님의 생각대로 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한 줄 믿습니다. 각 지역 각 교회에 주님의 능력 사랑이 충만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제 10월입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왜 이제 10월이라는 얘기를 할까요? 이제 10월이예요. 섭리역사에서 천국 성령운동을 시작한지 이제 1년 5개월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충만하 게 받으셨습니까? 대답을 못 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오늘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주님 앞에 감사함과 떨림과 그리고 온전한 마음과 자기를 비워내는 마음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는 내일로 향하는 도약을 절대 할 수가 없을 것입니 다. 여러분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셨습니까? 마태복음 25장에 주님은 말씀하셨죠. 신랑이 오는 그 날까지 너희들은 마음에 등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 마 음에 성령 곧 기름, 곧 사랑을 충만히 가득 채워라. 여러분은 꺼뜨리지 않은 그런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셨습니까? 냇물이 흐르면 강이 되죠. 강물이 흐르면 바다가 됩니다.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이 충만하게 바다와 같이 마르지 않 게 넘쳐 흐르게 그 만큼의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은혜가 하나하나 차곡차곡 뭉치고 우리 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음으로 인해서 바다처럼 마르지 않게 충만하게 넘쳐 흐르게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첫 번째로 무슨 역사가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변화의 역사, 회개의 역사, 찬양의 역사, 주님과 일체되는 역사, 사랑하는 역사, 그리고 전도하는 역사 모든 것이 변화를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첫 번째 증표 바로 변화입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변화하셨습 니까? 말과 행실, 우리의 육신의 행실, 그리고 정신, 우리의 영혼이 다시 한번 변화되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변화되 지 못 했는지 우리는 이것을 제일 먼저 시자가고 우리는 오늘 천국성령운동 시작하면서 주님을 모셔야 하겠습니다. 천년 하루 같이 기다렸던 이 역사가 이땅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얼마나 새롭게 되고 얼마나 주님과 일체되었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회고’ 찬양 사랑하는 여러분들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의 눈, 마음의 귀 뜨고 열어서 주님의 귀한 말씀 들으시고 이 지상에 펼 치시는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여러분의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저에게 가장 많이 합니다. 성령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 진짜 불을 많이 받았어요. 성령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너무 힘이 솟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를 하죠. 그리고 감사를 하죠. 그런데 꼭 꼬리표가 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꼬리표를 떼고 싶습니다. “정말 성령의 불을 뜨겁게 받았습니다! 2009년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어요.” 2009년의 꼬리표를 어떻게 뗄 수 있을까? 이런 말을 들으면 생각이 깊어지죠. 주님과 선생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야 한다.” 과거를 회상하고 기뻐하는 것은 맞습니다. 과거를 거울삼아 더 좋았던 것을 더 좋게 만들고 좋지 못했던 것은 더 온전하고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변화. 우리는 이것을 날마다 잊으면 안됩니다. 어제보다 더 낳은 오늘입니다. 사람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지 않으면 참 곤고고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날마다 행복을 찾아갑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그러므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더 좋게 하려고. 낫게 하려고. 그래서 하나 님과 주님께서도 이 시대를 차원높여 수준높게 날마다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차원높게 이끌어 주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시들시들해집니다. 시들시들 해지다가 계속 그 상태로 두게 되면 결국 죽어버립니다. 날마다 변화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기성이요, 그것이 바로 구시대입니다. 새롭게 변화하지 못하면 모든 것은 형식화되고 맙니다.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형식적인 것입니다. 왜? 새롭게 하지 못하고 항상 똑같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에 대해 시들시들해지게 되고 형식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불이 없어지고, 마음에 열정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구시대에 갇혀 버리게 됩니다. 새시대에 왔어도 자기가 자기를 가둬놓고 살면 결국 새시대 속에 구시대에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우리 는 자기 앞에 놓인 자기 주관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끊을 것을 끊어야 합니다. 빼낼 것을 빼내고,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한차원 높여 날마다 새롭게 주님 앞에 다가가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다시피 성령은 하나님의 신이요,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신, 예수님의 마음, 성령님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그 마음이 가슴으로 콱 들어와요. 이것이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뇌로 들어오는 거죠. 나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의 신적인 차원의 생각과 지혜로 다 물 들어 버립니다. 내 생각은 온데 간데 없어져요. 내가 내가 아니야. 요즘 이상해. 뇌가 내가 아니니까 행동도 내가 아닙니다. 이 머릿속 이 가슴속이 온전히 하늘의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받음으로 나의 행실 또한 내가 내가 아닙니다. 예전의 나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이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사람은 변화되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옛것은 완전히 벗어나게 되요. 옛것은 생각나지 않아요. 변화되게 되죠. 그래서 묻습니다. 여러분은 변화되셨습니까? 새사람을 입으셨습니까? 여 러분은 예전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건 괜찮은 거 같아요. 여러분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고, 자신의 행위와 정신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죠. 어떤 사람을 보고“저 사람 변했어. 정말 변했다.” 이 야기하죠. 그런데 또 얘기하죠. “그런데 더 변해야 될 거 같지 않니? 말을 할 때 가끔씩 가시가 튀어나오지 않아? 더 변해야 할 것 같아.” 그러면 조심하죠. 가끔씩 가시가 튀어나오는데 아파. 가끔씩 가시같은 말을 하고, 가시같 은 행동을 하니까 아직까지는 너무 힘들어. 아직 새사람을 입지 못한 것입니다. “저 사람 변했어! 어쩜 저렇게 변하니? 야. 진짜 변했다. 이제 저 사람하고 얘기해도 가시에 찔리지 않을 것 같 아.”정말 변화한 거죠. 여러분은 정말 변화하셨습니까? 새사람을 입으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뜨겁 게 성령을 간구하며 성령받기를 애원하며 내 마음에 무엇이 남아있진 않은지 다 벗어던지고 싶었던 그 때를 기억하 십니까? 이때 변화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고, 이 때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애. 들리지 않았던 말씀이 들리고, 이해하지 않았던 말씀이 이해가 되고, 형제가 다르게 보여. 아, 이제 이해할 수 있 어. 사랑하고 싶어. 주님의 말씀에 더욱더 귀를 귀울이고 싶고 옛날엔 보이지 않던 게 보여.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깨닫지 못했을 때 “아, 이런 것이구나. 휴거란 그런 것이구나.” 기뻐하셨던 그때를 기억 하십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그 때를 기억하며, 우리는 2009년이라는 딱지를 떼내야 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작년보다 더 나은 올해, 올해보다 더 나은 내년으로 가야만이 우리는 계속해서 시들해지지 않고 더 높은 차원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운동 시작할 때 처음엔 낮설고 어색했지만, 그 마음만은 저부터도 진짜 ‘이때를 재대로 보내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마음을 매일 먹고 살았어요. 여러분은 성령을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주님을 찾는 마음, 부르짖고 찬 양하고, 말씀을 이해하고, 외치려고 노력하는 여러분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성령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성령이 얼마나 중요하고 운명적인 것인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잊고 살고 있습니다. 버렸다 하나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완전하게 비웠 다 하나 완전히 비우지 못한 것을 주님은 지적하고 계십니다. 2009년에 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또 다시 내 마음속에 살아납니다. 그것은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자르지 비우지 않고, 버리지 않고, 아직 태우지 않은 것입니 다. 성령은 “주여. 주여.” 하고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왜 성령을 받은 자가 가슴을 치며 손을 들며 주님을 부르는지 아십니까?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저 깊은 내 면에서 깨달아져요. 그 때 사람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내가 다시는 예전처럼 살지 않으리라. 내가 다시는 그와 같이 살지 않으리라.”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 다음엔 이와 같이 하게 되죠. 정말 예전처럼 살지 않습니다. 이 단계까지 가야 정말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내 마음 속에 불이 일어나고 깨달아 져서 “정말 주님 이렇게 하겠습니다.”그러나 여기서 끝났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성령을 받았으나 어떻게 행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다시는 그와 같이 행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대로 다시는 그와 같이 살지 않은 자는 그는 온전히 행함으로 온전히 변화를 이룬 자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가 주님께 묻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죠.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 님의 나라를 볼 수 없으리라.” 니고데모는 너무 이상했어요. “아니 그러면 사람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인데 어머니의 태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정녕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육은 육으로 태 어나고 영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다.”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그제야 비로소 주와 일체, 사랑일체, 마음일체, 행동일체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바로 그때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으면 그때 변화되는 기회입니다. 불을 받았을 때 그때가 기회입니다. 그때 자기의 그릇된 것을 찾아내며 반드시 그것을 고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 때를 놓치면 안되요. 먼저 그 전에 제 모습을 한번 볼께요. 제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항상 제 입에서 나가는 말 이 있었어요. 말실수를 한 거죠. 어떤 말실수? “내 한계는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내가 할 일이다.” 저는 이 말을 한 1년 동안 달고 살았어요. 거기다가 한단계 더 가서 사람들을 쳐다보며 핑계를 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 주님이 보실 땐 핑계입니다. 행한 자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한 자라 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다 해보지 않고 핑계를 되는 거죠. ‘내가 여기서 조금 더 해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나? 조금 지친다.’ 성령을 받기 전에 이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에게 성령을 주셨을 때 큰 불덩어리 3개를 꽝꽝꽝 받았을 때, 그 날이 제가 어떻게 결심한 날이냐면 ‘오늘이 단상 서는 마지막 날이다. 오늘이 공식적으로 단상에 서는 마지막 날, 이날 모든 걸 마무리짓자.’ 한 그 날 성령을 받아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 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단 한번도 그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저의 그릇된 생각들 그 온전치 못한 것을 버렸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무한한 변화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단계에 머물면 절대 주님과 일체될 수 없고 주님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나부터도 온전한 주님의 신부로 거 듭날 수 없기에 주님은 저에게 무한한 변화를 요구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음으로 너무나 많이 몸부림을 치게 됐습니 다. “모든 것이 내 부족이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 나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 그 안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더 기도하자. 더 연구하고 몸부림치고 더 보여주는 거야. 그래 실천해야해.” 주님께서 내게 100% 역사하심을 믿고, 그리고 100% 역사하실 수 있도록 회개하고 몸부림치며 행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항상 말씀하시죠. 저는 이 말씀에 가장 큰 불을 받았거든요. “불이야. 불이야. 불받아라. 그러면 누가 불을 못 받겠느냐. 그 순간엔 불 받아라 하면 불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불가지고는 안돼. 무슨 불인줄 알고 불을 받느냐? 그 불을 가지고는 거듭나게 할 수 없다. 말씀의 불이다. 진리 의 불이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요, 주님이시고,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을 받은 자요. 말씀을 온전히 받아서 내 모든 것을 쪼개고 없앤 자는 하나님의 신을 받은 자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온전한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았으면 그 때 말씀을 듣고 신을 받았으면 그 때 변화시킬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뜨거운 물을 받아 놓았을 때 목욕을 해야죠. 그 때 뜨거운 물속에서 들어가서 목욕을 해야죠. 가스불을 켜놨을 때 그 때 후라이팬을 올려놓고 요리를 해야죠. 쇳물을 펄펄 끓였을 때 그 때 금융을 떠야죠. 뜨거운 물이 다 식고 나 서 그 때 들어가서 목욕을 할 수 없습니다. 가스불이 꺼졌어요. 그 때서야 비로소 후라이팬 올려놓고 냄비 올려놓 고 나서 요리할 수 없습니다. 쇳물이 다 굳은 상태에서 그 쇠로 무엇을 만듭니까? 녹았을 때 만들어야죠. 이와 같이 성령을 받고 결심했을 때 버릴 것 다 버리고 자기의 그릇된 행위 마음을 싹 없애고, 새사람을 입는 것 입니다. 행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남을 헐뜯고 함부로 말을 합니다. 그러면 성령받고 결심했을 때 딱 끊는 것 입니다. 다시는 하지 않으리. 어떤 사람이 담배를 펴요. 뜨거운 불이 와.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 말씀을 듣고 들었는데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이 깨달음이 와요. 성령을 받으니까. 그 때 들어가서 담배를 다 버 려야죠. 다 끊어야죠. 자기의 온전치 못한 것을 다 끊어야죠. 그 때 못하면 뜨거운 물이 다 식습니다. 그 때는 무 엇도 할 수가 없습니다. 태우려면 옛날의 모양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완전히 태워버리는 거예요. 남김 없이 재가 되게 만드는 거예요. 사람이 남기면 어때요? 모양이 남아있으면 어디다가 쓸만한가 써보려고 생각 이 납니다. 재가 되어 남김없이 다 없애버려야 생각도 안나요. 아예 있지도 않으니까. 성령으로 변화되었다는 것 은 옛것이 다 없어지고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왜 오늘 이 말씀을 하느냐. 우리는 변화되었다고 하나 아직까 지 옛것을 다 버리지 못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영계를 보시면 신입생이 그렇게 깨끗하대요. 비교를 할 수가 없대요. 아직까지 자기 주관 옛 것들이 남아있지 않아요. 없어요. 그런데 다만 보다 세상것을 조 금 더 생각합니다. 깨끗해요. 신앙을 오래 한 사람을 보면 그릇 생각하고, 자기 식대로 생각하고, 주님말씀과 다르 게 생각하다 보니까 이 마음속에 여러 가지 붙어있는 거예요. 그게 여실하게 다 보인다고 합니다. 왜냐. 아직 옛것을 버렸다고 하나 다 잘라내지 못한 상태에서 거듭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겠습니다. 정말 거듭났는지. 그러나 우리는 한번에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잖아요. “너희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항상 기도하고 항상 하나되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성령? 한번 받고 끝나는 게 아니야.” 잠언 중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열심히 회개하고 간구하여 성령을 받았어도 열심히 행하지 않으면 없어져 버린다. 뜨거운 물 식듯이 다 식어버린다. 성령님을 예전보다 못하게 모시면 자동적으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마치 손님이 딱 찾아왔는데 처음에는 “반갑습니다. 우리집에 어떻게 다 오셨어요?” 하더니 시간이 지났는데 관 심도 없이 “오셨수? 않으슈.” 합니다. 주님은 성령님은 하나님은 그와 맞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하십 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입니다. 그의 행하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과 나중이 일정하지 못하고 더 차원을 높이지 않은 인생은 맞지 않아서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은 바로 나 예수라고 생각하라.”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삼위는 동일하니까. “성부성자성령은 동일하다. 각 위로 존재하지만 동일하게 보아라.”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을 본 자는 예수님을 본 자요,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한번 받으면 선물같이 옆에 놓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받도록 소멸하지 않도록 행하고 간구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한번 받았다고 해서 계속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살펴보아라. 성령을 받았다고 하나 성령을 받은 자들아, 한번 성령이 너의 속에 그대로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아라. 성령이 지금도 니 속에서 뜨 겁게 역사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라.”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주님은 주일말씀에 말씀해 주셨죠? “관리하지 않으면 참감나무도 돌감을 연다.”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행하지 않으면 고염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을 붙여서 이미 참감을 맺었습니다. 그런데도 관리하지 못하면 또 다시 고염나 무 가지들이 가라게 되요. 결국 거기서는 돌감이 열리게 됩니다. 완전히 잘라내지 못하면 또 자라나게 됩니다. 모든 생명의 이치가 이와 같습니다. 자르지 않으면 뽑아내지 않으면 다시 자라납니다. 완전히 버리지 않고, 완전히 고치지 않으면 또 생각나요. 또 행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길했대요. “내가 다 시는 도둑질을 안해. 손을 잘라버려야지.” 손을 잘랐습니다. 왼손을 잘랐습니다. 또 오른손으로 합니다. 손을 자 르지 말고 생각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 두 손 멀쩡하게 가지고 있어도, 그 손으로 옳은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잘라낸 것 같지만 우리의 발은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이 땅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머리까지 땅에 두고 살기 때문에 잘라내지 못하고 육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발은 이 땅에 두었지만 그러나 우리의 머리는 하늘에 두고 주님 앞에 두며 세상을 다스리며, 태울 것은 태우며 버릴 것은 버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발은 땅에 놓되 여러분의 머리는 땅에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머리는 하늘 앞에 주님앞에 두어야 해요. 주님 앞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땅을 딛고 살면서도 여러분의 생각, 행실 다 잘라내고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뜨겁게 찬양했는데 내일은 또 똑같애요. 오늘 열심히 찬양했는데 일주일 후에 또 똑같애. 이 삶을 반복한다면 영원 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원히 천년만년이 가도요. 성령은 우리가 행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장악해 버립니 다. 그리고 행하도록 이 마음을 불로 뿜어냅니다. 안 하면 뜨거워서 못 견딥니다. 행하도록 해줘요. 실천이 말보다 강하려면 말보다 말보다 실천을 많이 해야 합니다 실천하는 횟수가 많아야 하고, 성령을 받고 온전 하게 행해야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말씀했잖아요. 형제를 미워했아요. 그런데 말로만 회개행. 그래놓고 형제는 미워하고 그리고 말은 계속 회개, 행 하지 않은 것은 변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는 최고의 목적 바로 주님과 일체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일체되는 것을 말로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행하지 않는 자는 질문이 진짜 많아요. “이성을 조심해야해. 어 린 나이에는 이성을 잘 지키다가 나중에 주님이 원하는대로 살아야해.” “그러면 어떻게 해요? 세상풍토가 그런 데.” 하면서 또 핑계를 대는 자는 평생 못 고칩니다. 행하는 자는 무슨 이유가 있던지 행하게 됩니다. 자꾸 주변 환경이 그렇고 풍토가 그렇고 세상환경이 그렇다고 핑계를 대요. 뭐가 진리입니까? 세상 풍토 모든 것 잘못된 것은 다 고쳐야 해요. 진리는 오직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모든 것을 표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래요. “새벽기도 정말 하고 싶은대요 어제 진짜 늦게 잤어요. 회사가 늦게 끝나서. 그리고 새벽기도를 진짜 못하는 이유가 몸이 안 좋아졌어요.” 새벽기도하다 몸이 안좋아지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병났을 것입니다. 여러분, 새벽기도는 건강입니다. 새벽기도 를 하는 자는 생명을 지켜주시고 주님은 그의 건강을 책임져 주십니다. 왜 새벽기도를 하다가 병이 나느냐. 밤새고 또 낮에는 자고 지혜롭게 시간을 못 쓰니까. 시간을 잘 조율해야죠. 절대 새벽을 깨워 일해야 합니다. 새벽을 깨워 주님을 찾아야 해요.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새벽에 줄 것 다 주고 간다. 새벽에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나는 새벽에 이미 이끌어 낼 자 다 이끌어 내. 그리고 간다. 하고 싶은 말 해주고 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어제 꿈을 꾸었어요. 새벽기도를 못 했는데 자기가 감옥에 같혀 있더랍니다. 주님 말씀이 딱 맞더라구요. 저도 새벽기도 조금 늦게 일어나잖아요. 알람 10개 맞춰놓고 자는데 그러면 더 못 일 어나요. 다음 알람을 믿고서. 저도 똑같은 사람이예요.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 알람까지 기다리다 잠이 들고 벌떡 일어났을 땐 이미 시간이 지나가고 동이 트고 있습니다. 그 때는 얼굴을 못 들고 그러다가 다시 잠들잖아요. 저도 새벽시간을 제대로 못 맞추면 새벽3시면 그 시간 딱 되면 그떄 바로 아저씨가 권총 들고 내 방에 들어와요, “내 방에 와 들어와 있어? 비켜!” 하면서 권총들고 그래요. 사탄이예요. 그리고 아주 힘든 날, 머리 아프잖아요. 제방에 할머니 세명이 꼭 들어와 있어요. 그래서 내 기를 다 빼가요. 그 렇게 못하면 할머니들한테 잡히는 거에요. 할머니랑 얘기하고 주물러 주고 완전히 너무 힘들어요. 그러다 할머니 주물러 주다 시간 다 간다니까요. 제가 선생님께 했더니 “다 귀신 아니냐? 새벽시간 잡지 못하니까.” 어제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갇혀있는 거예요. 주님이 새벽에 이끌어 낼 자를 다 이끌어 내시기 때문에 새벽은 운명 과 같은 시간입니다. 정말 중요한 시간이예요. 그런데 핑계를 대는 거에요. 핑계를 대려면 끝도 없어요. 핑계대는 사람에게는 말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런 사람에게는 그냥 이 한 마디만 하세요. “행한 대로 받겠지.” 한마디만 하세요. 오죽이야 이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말을 할 수가 없어요. 핑계거리를 만들어 낸 사람은 절대 대화가 안 됩니다. 모 든 결과는 행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천하를 다 버리고,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자기 것을 못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제발 너희의 온전치 못한 것들을 잘라버려. 제발 이 세상 저래. 저 세상 저래. 세상 풍토 이렇다고 하며 핑계되지 말고 행하라. 행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고 표적을 보이리라.” 9월에 신학생들이 매일 여기 앉아 말씀만 듣는 거예요. 그래서 “새롭게 해보자. 실천신학이다. 2010년 주와 함께 생명구원의 해이니 나가서 전도하자.”해서 선생님 말씀대로 했대요. 전도하러 나가기 전엔 40일 기도 하고 4시간 기도하고, 그것도 안되면 40분이라도 기도하고 나가라고 하셨잖아요. 1년 동안 전도하러 나가기 전에 40분 이상 기 도하신 분? 근데 신학생들이 없어요. 괜찮습니다. 40분 이상 기도하신 분? 한 1% 되는 거 같아요. 한 1%~ 2%정도는 기도하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신학생들이 “기도다,” 했어요. 주와 함께 전도하려면 주님과 대화하고 나가야죠. 40분 동안 뜨겁게 기도를 했대요. 그리고 그 날은 흩어져서 자기 지역에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마음에 그렇게 뜨 거운 불이 났대요. 그러도 나갔더니 98%의 생명이 연결됐답니다. “말씀대로 한번 행해보자. 왜 말씀이 나왔는데 왜 거기에 왜 토를 다냐? 왜.” “그거 안 돼.” 하고, “재림말씀 외쳐라. 과감하게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외 쳐라.” 그런데 “재림 안 기다리는데요?” “기도하라.” 하면 “시간이 없는데요.” “담대하게 이 시대 너희 선생을 증거하라.”하면 “악평있는데요?”이렇게 핑계를 대니 주님 말씀이 그 땅에 떨 어져도 생명이 똑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행하질 않아요. 핑계에 다 막혀요. 자기 것을 버리지 못하니까 떨어져요. 그냥. 주님은 지구의 크기의 몇십만배 이상의 말씀을 이 땅에 이미 주셨습 니다. 지구무게의 몇 십만배 이상의 말씀이 떨어졌으니 이 땅을 구원해야 하는게 맞는 거거든요. 주님 말씀하셨을 때 행한 자의 반응은 이러합니다. “아멘. 정말 그 말이 맞아요. 진짜 예수님 행해보니 맞아 요.” 이런 표현이 나오죠. 행하지 않은 자의 반응은 어떻게 나오느냐. “어째서? 안 되는데?” 이런 반응이 나오 죠. 주님은 토를 달지 않고 한 마디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말씀하시기를 “왜 토를 달지 않고 말하는지 아느냐?”선생님께 말씀하셨대요. 행해보면 왜 그런지 나오기 때문에. 고로 주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는 그 말씀을 받아 말씀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행실이 능력이예요. 늘 선생님의 표어, 선생님의 좌우명이 있잖아요. “나는 말보다 실천 이다.” 행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행동으로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행동으로 감동을 주 고, 행동으로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이 시대 크나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선생과 같은 실천력을 가진 자가 필요하다. 무엇으로 보이겠느냐. 말씀 아무리 갖다가 외쳐요. “나 많이 알어. 나 모태신앙이야.” 선생님께서 유럽에 나가셨을 때 그렇게 사람들이 말했잖아요. “아니. 2천년의 전통이 있는 나라 앞에 고작 400년의 전통으로 개신교로 했을 때는 더 짧은 그 역사의 한국인이 와서 말씀을 가르친다니.” 아예 듣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행함으로 보여주며, 예수님의 행함을 몸소 보여주니 “주님 보내신 자가 맞구나.” 따라옵니다. 이 시대 불같은 역사가 일어나라면 그가 행하는 대로 행함을 주님처럼 나타내는 자가 있어야 이 시대 사람들이 감 동받고 따라옵니다. 주님을 나타내려면 주님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 노래처럼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 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라.” 노래를 부르면서도 우리는 그와 같은 행함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그 온전한 말씀을 핑계대지 않고 행할 자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서 불이 일어나. 그런데도 불이 있는데도 못한다는 거예요. 불이 있는데도 나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자를 주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변화는 새로움입니다. 거듭남이예요. 거듭났다는 것은 다시 태어났다는 거 예요. “정말 다시 태어났어. 예전에 핑계대던 거 다 짤랐어. 예전에 내 속에 이상했던 거 다 잘라냈어. 절대 실수 하지 않을꺼야.” 저도 가장 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이 단상에서 주님을 외치고 주님을 위해서 사용되는 사람 이면 여기서 이 단상 앞에서 주님을 외치다가 살다가 죽을 거라면 내가 절대 말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절대 단상에 서 말실수 없다. 절대 온전하게 하고 올라가자.’ 이거 하나가 저의 완전한 주관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고 있느냐?” 우리의 마음에 가득한 것을 우리는 입으로 뿜어낸다는 것입니다. 절대 말실수는 그냥 쏟 아져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도자들이. 말을 한번 잘못하게 되면 생명은 실족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라고 오늘 성령집회부터 다음 주일말씀 다음 수요말씀까지 교육으로 이어집니다. 완전히 청결히 하기 위해서 옛것을 다 잘라버리기 위해서 완전히 다시 태어나라. 버려. 청산해. 깨끗하게 없애버 려라. 남아있지도 못하게 재를 남겨버려. 말씀과 성령으로 그리 하라. 자기는 모릅니다. 사람은 옆에 사람이 보면 딱 알아요. 가시가 톡톡 찌르니까. 자기는 모릅니다. 옆사람은 찔리니 까 아픕니다. 그러니가 아는 겁니다. 여러분. 섭리는 오래 되었다고 갈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신앙 생활한 지 오래 되었다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주님을 오래 믿었다고 해서 가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변화된 자가 가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말씀과 성령으로 완전하게 변화된 자만이 섭리사를 가며, 천국에 가며 주님 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옛것에 사라잡혀 있는 자를 어찌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정 때문에 데려가지 않으실까? 정 때문에 회개하면 용서는 해주시겠죠. 오직 그날은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난 자 변화된 자만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왜 성령을 받지 못하는가. 나는 왜 불 을 받지 못하는가. 내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답은 딱 하나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왜 나를 주관하지? 왜? 내 주관을 버리지 못하니까. 모든 열쇠는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문을 따주고 사탄에게 문을 닫아버려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정말 교육을 계속해서 행실교육을 시키셨 어요. 2005년도 호된 교육을 받았습니다. 죄에 대한 것, 회개에 대한 것, 다 행실로 시키셨던 그 때예요. 그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선생님이 원하시는 기대치가 있습니다. 이 역사를 이루며 가야 되기 때문에. 주님과 약속한 것 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내 수준은 아직 말은 잘 듣지만 수준은 아닌 거예요. 더 좋은 차원을 원하고 더 변화되길 원하는데 제가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너무도 실망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선생님. 정말 다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반응도 없으신 거예요. 그래서 “진짜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저 좀 믿어주세요. 한번만.”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내가 그 말 안 믿는 다.” 저는 너무 야속하더라구요. 저는 진짜 내 마음과 뜻과 목숨으로 말씀드렸는데 그때 가슴에 뜨겁게 깨달음으 로 오기를 ‘아. 실천함으로 보여드려야겠다.’이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선생님. 알았습니다. 실천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니 선생님 반응이 또 시큰둥해요. 진짜 강한 깨달음이 와 서 실천으로 보여드릴 것을 결심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그 말도 안 믿는다. 정말 그 말대로 행한다면 내가 그 행한 것만 믿어줄 게.” 그 이후로 행실교육을 안 시키셨어요. 여기서 행하지 못하면 끝난다는 거예요. “정말 니가 실천하겠다는 말 도 안 믿어. 그러나 니가 실천한다면 행한다면 그 행한 것만 믿어줄게.”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나는 정말 변화됐는가. 정말 버릴 것을 버렸는가. 옛사고, 나의 주관, 나의 사고, 나의 식대로 하는 모든 것들을 버렸는가. 선생님에 대해, 역사에 대해, 형제에 대해. 과연 내 주관을 다 버렸는가. 어느 정도까지인가? 겉만 변화 됐는가? 속까지 완전한 새사람이 되었는가? 우리는 날마다 물음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이 내 속에 뜨겁게 역사하시는가? 나는 어디까지 왔는가? 우리가 날마다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그 순간 기성이 되고 맙니다. 기성이 왜 기성입니까? 꼭 버려야 될 것을 버리지 못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고정관 념에 사로잡히고, 주님의 역사하심을 몰라서 기성이 되었습니다. 구시대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꼭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면 어떻해 되는지 아십니까? 쓰레기가 있어요. 쓰레기가 처음에는 하나 떨어졌어요. 그 리고 나중에는 무릎까지 차고, 허리까지 차고, 어깨까지 차고, 머리까지 다 차서 쓰레기 더미에 갇혀 그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쓰레기 더미에 갇혀서 쓰레기만 보입니다. 옛주관 자기의 사상을 버리지 못하면 그것이 자기의 키까지 쌓여서 눈을 뜨고 봐도 주님이 안 보이고 자기만 보입 니다. 자기 주관에 갇혀 자기가 자기를 가둬버리게 되는 격입니다. 구시대에 영원히 갇히게 되고, 사망에 영원히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말 버려라. 티끌 하나 남기지 말라. 천국에는 검은 점 하나 없다. 버려야 한다. 여러분, 변화되기를 정말 원하십니까? 이 해가 가기 전에, 이 달이 가기 전에, 이 주가 가기 전에 오늘이 가기 전 에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성령이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이 하는 말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내것이 아니야. 난 아니야. 난 이미 버렸어.” 그런 사람 먼저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이 바로 벌써 자기 주관이 키까지 싸여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예요. 이미 구시대에 갇혀 있는 상태예요. 이 말씀은 섭리 사에 어느 누구에게도 빠짐이 없습니다. 특히 신앙을 한지 오래 된 자들, 지도자들 모두 다 이 말씀을 실행해야 합 니다. 정말 변화되고, 뽑아내시기를 원하십니까?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옛것을 다 뽑아 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옛것을 다 태워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 입니다. 버리고 비워내고 청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주님께서 선생님을 통해서 말씀하셨대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른다. (그렇다고 어느 교회 누구 여기 누구 그거 고쳐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인 격의 주님이시거든요.)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 하나만 말한다. 특히 지도자들 자기 주관에 나의 말 씀을 넣어 말하는 자들이 많다. 아직도 구시대 사상 자기가 버리지 못하는 것을 끌어안고, 자기 혼자 말하면 듣지 않으니 자기 주관에 역사를 넣어, 말씀을 넣어, 선생님을 넣어, 예수님을 넣어 말하는 자들이 많다. 이런 자들에게 나의 양들을 절대 맡기지 않는다. 생명을 실족하게 하는 자들을 무엇으로 말하랴. 자기 식대로 말하고, 자기 식대 로 가르치고, 자기 식대로 행하고, 자기 것을 넣어 나의 말을 가르치는 썩는 마음과 행위를 버려라. 버려야 너부터 산다.” 이 말씀을 듣고 저부터 혹여 나의 식대로 가르치진 않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11월 7일은 섭리사 성찬식이 있는 날입니다. 작년에 정말 뜨거움과 눈물로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하고 주님의 잔 주님의 떡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작년보다 더 못한 성찬식을 드 리면 안됩니다. 더 경건하게, 더 완전하게, 더 빼낼 것을 빼내고 이제는 좀 더 알았으니 더 완전하게 성찬식을 맞 이 해야 합니다. 또한 이제 올해를 매듭짖는 연말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이 달이 가기 전에, 이 해가 가기 전에, 이 주가 가기 전에 우리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내년에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작년 2009년 새롭게 변화하는 해, 왜 우리 는 새롭게 변화되었지만 2010년 주와 함께 생명구원 왜 온전히 이루지 못했는가? 작년 한해 새롭게 변화하지 못했 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되는데? 왜? 주님의 말씀은 한번 땅에 떨어지면 정녕코 이루십니다. 우리가 아직 새롭게 변화하지 못함으로 올해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감당하지 못한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자는 공의롭게 그대로 받아가서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내년 이제 2개월 조금 더 남았습니다. 이후에 우리에게 어떤 방향이 떨어질지 우리는 알 수 없습 니다. 올해 한번 더 완전하게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빼낼 것을 빼내지 못한 상태라면 그는 똑같이 그 다음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탓하며, 주님을 탓하며, 역사를 탓하며, 주님을 원망하 는 일까지 생깁니다. 절대 남을 탓하거나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원망할 것이 없어요. 서운해 할 것이 없어요. 주님은 하고자 하는 자에게 역사하시며, 주의 말씀대로 온전하게 행하는 자에게 역사하시며, 핑계대지 않고 그 말 씀을 온전히 행하는 자에게 역사하시며,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에게 역사하시며, 참고 견디는 자에게 역사하시며, 끊임없이 배우고 행하며 실력을 갖추는 자에게 역사하시며, 간구하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이 너무 많습니다. 사랑의 축복, 성령의 축복, 말씀의 축복, 합봉의 축복, 재 림의 축복, 세상을 다스리는 축복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 다스려야죠. 이 축복을 감당할 자가 누구겠습니까? 오늘 더욱 더 우리가 가진 것을 빼내고, 온전하게 해서 우리 주님을 맞읍시다. 이 달을 모든 것을 버리고, 성찬식을 맞이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연말을 맞이합시다. 오늘도 성령으로 모든 것을 태우고, 이 말씀이 남의 말씀이 아니고 바로 나의 것이다. 오늘 다 버리자 새사람으로 거듭나자. 오늘이 가기 전에 주님의 마음처럼 온전하게 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의 마음처럼 사랑의 불로 성령의 불로 저 희 모든 것을 다 태우기를 진실로 기도합니다. ‘주님의 마음처럼’ 찬양 (마침기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주님. 이곳은 어디 입니까? 내가 서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주님이 역사하시는 곳, 주님 의 말씀이 선포되는 이 귀한 곳, 제가 어찌 여기서 실언을 할 수 있겠사오며 주님이 원치 않는 말을 하오며 주님이 원치 않는 행실을 할 수 있겠사옵나이까? 주님 오늘도 목숨 걸고 주께서 외치시고자 원하시는 것, 사랑하는 선생님 께서 목숨걸고 외치시고자 하시는 것을 외쳤나이다. 성령의 귀있는 자들은 이미 들었사오니, 결심했사오니, 오늘이 가기 전에 간구하였사오니, 주님 오늘은 너무나 중요한 날 오늘 주님은 이미 사람을 보신 줄 믿습니다. 누가 말씀이 나왔을 때 핑계치 않고 행할 자인가. 오늘 버릴 것을 버린 모든 자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끌어내어 온전히 변화되고자, 완전케 되고자, 새사람을 입고자 거듭나고자 간구한 모든 자들 주님 이들을 살피셨사 오니 주님 이들을 가장 먼저 주님의 사람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이들을 통해서 역사 이루어 나가 주시옵소서. 이 시대는 어떠한 시대입니까? 성약역사. 성약은 약속을 이루는 역사, 그 약속은 무엇인가? 6천년 종교역사를 시작하시기 전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이루시려고 했던 그 뜻 그 역사를 이루는 복직의 시대 천년 사 앞으로의 모든 기초가 되는 역사 주님의 재림에 시작이 되는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주님. 그런데 이 역사에 핑 계댈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마지막 역사, 약속을 이루는 역사에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 이행하는 자를 너무나 원 하셨습니다. 물질도 먼저는 아니다. 건물도 아니다. 보이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나를 뜨겁게 사랑함으로 나의 신 그 말씀을 받아 이 시대를 쪼갤 자가 누구인가? 그 온전한 사람이 생명이다. 그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야 비로소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리라. 주님. 그 모든 역사 이제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막내는 속지 않는 역사, 우리의 사랑을 보시고 온전한 것을 주시는 주님인 줄 믿사오니 이제 저희가 새 사람을 입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온전케 주의 말씀대 로 행하지 못하는 자, 이 마지막 역사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이행하지 못 하고 세상의 풍토에 세상의 상 황에 모든 것이 가로막혀 한 마디도 외치지 못하고 억울하게 그대로 갔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희망을 이루려면 외쳐라. 비젼을 이루려면 외쳐라. 꿈을 이루려면 외쳐라. 행하여라.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 역사에 찾을 자가 누구인가. 말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고, 육적으로 다 줬다 고 하나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 그가 원하는 대로 행하는 자가 사랑하는 자다. 말로는 모든 것을 다 드렸으나 마음으로는 아직 남아있고, 행실로는 아직 남아있어요. 주님 원하시는 것을 아직도 마음에 어떠한 감정으로 인해 어떠한 위축감으로 인해 행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태워지길 원 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이행할 자를 보내 주시옵소서. 핑계치 않을 자를 보내시옵소서. 주님의 능력을 그대로 나타낼 자를 보내시옵소서. “주님. 역사하시지 않아.” 말하는 자가 누구이옵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음으로 그 역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주의 말씀대로 했더니 너무나 힘들고 너무나 어려움을 당하는 거야.” 그 다음 단계에 얻는 축복을 끝까지 행하지 못함으로 받아보지 못한 자들인 줄 믿습니다. 주님. 이제는 한계를 뚫고 극복하여서 도약하는 자들을 원하오며, 행할 자를 외칠 자를 원하오니 이들을 보내시옵 소서. 선생님처럼 오직 주의 말씀대로 행할 자가 누구인가. 이 자리에서 찾으시고 보내시옵소서. 버릴 것을 버릴 자를 보내시옵소서. 자기 식대로 하는 모든 것을 버리게 하시옵소서. 자기의 주관과 생각을 버리게 하시옵소서. 옛것을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치 못한 것을 자르게 하여 주시옵 소서. 주님. 새롭게 하지 않으면 시들시들해집니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죽어버립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절대 주님 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섭리역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냥 정이 붙었나? 오래 가다보니까 그냥 나 의 삶대로 섭리역사가 젖어들었나?” 이것이 형식이요, 이것이 온전치 못한 것, 주님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시는 것. 이 모든 것은 온전히 행함으로 버릴 것을 버림으로 완전히 버림으로 이 역사를 갈 수 있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한 자 결국은 떨어져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애타게 애타게 간구하시며, 우리에게 변화하라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희망의 역사, 성 약역사, 약속을 이루는 역사 반드시 창대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 역사에서 눈물을 흘리심은 어찜이신지요. 그것은 이 시대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 주님을 깨닫고 이 역사에 살면서 도 아직도 제대로 외치지 못하고 아직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자들을 보실 때 그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심이 아니 겠습니까? 이 모든 병폐 이 모든 온전치 못한 것들이 오늘이 가기 전에 이 주가 가기 전에 이 달이 가기 전에 이 해가 가기 전에 깨끗이 씻어내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비워진 마음, 성령이 내려와 불태워 주시옵소서. 비워진 마음에 능력이 내려와 이들에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의 모든 병 영혼의 모든 병 정신의 모든 병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음을 받을 줄 믿습니다. 이전 것은 다 사라지,며 오늘부터 새사람을 입어 다시 한번 도약하게 하여 주시옵시며, 이제 우리에게 앞으로 남아있는 합봉의 축복 또한 온전히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주님은 사람을 다 쳐다보고 계십니다. 이제 내 사명이 순간 없어진 거예요. “나는 어떻게 해야될까? 주님. 주님 뜻대로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실력을 겸비하며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간구하며 내가 준비하고 있겠사오니 주님 뜻대로 합당하게 나를 보내시옵 소서.” 이렇게 간구하는 자를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 비워내어 주님 말씀대로 행하며 주님 앞에 배우는 자, 그들을 주님은 찾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한 역사가 섭리사 가운데 일어나 이제 부흥하는 2011년 되는 줄 믿습니다. 이제 연말 전도의 해 준비하는 모든 자들 온전히 감당케 하여 주시옵시고, 또한 주님이 날마다 주시는 말씀과 성령으로 온전히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시 며, 온전한 마음으로 성찬식과 연말을 맞이하며, 2010년 주와 함께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와 함께 작년에 하지 못한 온전한 변화 새로운 변화의 역사를 다시 한번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께 힘과 능력 더하여 주시옵소서. 나 때문에 희생하고 가시고, 나 때문에 주님 십자가에 희생하고 가셨사오니 주님 나를 보내어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간구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역사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의 모든 사랑을 모아 주님께 드리오니 이 불이 꺼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께 맡깁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건강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시고, 이제 10만 그릇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나오실 때 무엇으로 준비하겠습니까? 10만의 그릇, 각 교회 청중이 모여들고, 각 교회 살아숨쉬는 역사로 준비케 하시고, 그와 더불어 더 부흥하여서 주님의 재림을 온전한 것으로 준비하고 예비해주실 줄 믿습니다. 주께 맡깁니다. 모든 영광 주 앞에 돌리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