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성경학교2010.11.30 (화)

계시말씀 30fd7993

선포일
2010.11.30 (화)

첨부 파일

섭리 모두에게 주는 예수님의 일대일 편지 - 주와 일체 작성일 : 2010. 10. 26 (화) 작성자 : 정초연 * 예수님 말씀 * 신부야. 내 사랑하는 자야. 너에게 주는 나의 말이다. 너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고, 택한 너의 사랑이 주는 말이야. 지금은 나와 일체될 때라고 몇 번이나 말씀을 통해 이야기했지. 일체된다는 것은 생각과 행실이 동일해지는 것이다. 일체되는 것은 말씀의 핵심이다. 지금은 일체되지 않으면 교리를 알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때이다. 교리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 진리보다 중요한 것이 일체되는 것이다. (무슨 말씀이실까 생각하며 계속 기도하는데 제가 깨닫기까지 주님은 가르쳐주지 않으시고 스스로 깨 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도로도 성경으로도 깨달아 지지 않았는데, 만물계시로 깨달으라는 영감이 스쳐 서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창밖으로 뜨는 해를 보 니 ‘저 빛이 진리구나!’ 하는 영감이 오며 깨달아졌 습니다.) 그래. 어두운 집안에 있다면, 창문을 열어야 빛이 있음을 아는 것은 ‘교리’이다. 그보다 높은 단계는 빛의 근본이 창문이 아니라 태양임을 아는 것 곧 ‘진리’이다. 그보다 높은 단계는 태양이 뜨고 지는 때를 알고 그 움직임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것 곧 ‘일체’다. 교리를 배우는 자, 창문을 통해 빛을 보았으나 빛의 근원인 태양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같다. 마치 너희가 이전에 선생만 알고 근본인 나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과 같지. 선생 통해 역사하는 나를 아는 자는 보다 진리에 가까워진 자이다. 창문 너머 있는 빛을 알게 된 자이다. 지금은 교리와 진리를 초월하여 무조건 나와 일체되는 것이 구원의 단 한 가지 답이다. 이전에는 창문을 열면 빛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해가 서산에 넘어가는데 창문을 연다고 빛을 보겠느냐.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문을 박차고 나가 목숨 걸고 태양을 쫓아가는 자만이 빛에 속한 자가 된다. 옛날에는 그 시대의 차원에서 가르쳐야 깨달을 수 있었기에 그렇게 했으나, 지금도 때 모르고 옛날 방식대로 가르치면 더 이상 맞지 않고 힘도 없다. 말씀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최고의 생명길, 사랑길을 보여준 것이다. 성찬식은 나와 일체되는 것이다. 완성된 진리의 발판 위에 일체의 단계에 선 섭리사만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귀한 성찬식에 합당한 곳이다. 많은 교회가 형식에만 얽매여 있고 그 삶은 일체되지 못하여 오히려 내 심정을 더 상하게 하는구나. 작년, 나와 하나 되는 신성한 의식에 참여한 신부들 아. 희는 진정 일체된 삶을 살았느냐? 성찬식 전에 달란트의 비유를 말한 까닭이 무엇이 겠느냐. 이미 지난 성찬식 때 나의 살과 피를 주면서 각자에게 달란트를 나눠주었다. 이제 너희가 무엇을 남겼는지 보기를 원하니 각자 의의 옷을 입고 내 앞에 나오라. 나는 이번 성찬식에도 너희에게 기대하며 달란트를 나누어 주노라. 각자가 그 재능에 따라 다른 달란트를 가졌다. 그러나 섭리사 누구에게나 내가 동일하게 준 달란트가 있으니 사랑의 달란트이다. 종에게 기대한 달란트와 신부에게 기대한 달란트가 어찌 같겠느냐. 이 시대 너희에게 준 달란트는 내 심장이다. 너희가 다른 것을 다 잃을지라도 이 사랑의 달란트를 남겨오길 진정 기대하노라. 선생은 이 사랑의 달란트를 늘 열배로, 백배로, 천배로 남겨왔기에 내가 가진 모든 달란트를 맡겨 나의 나라를 함께 경영하게 하였다.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지 깨닫고 너희도 그같이 하여라. 먼저는 사랑, 나와 일체다. 사랑하는 신부야, 달려가는 역사를 쫓아오느라 이미 힘들었을 텐데, 이제는 날아가기까지 해야 하니 쉽지 않지. 네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포기한지 알고 있다. 그래서 고맙고 내가 다 기억한단다. 나 너의 신랑, 나는 너를 위해 내 생명을 포기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단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히 만나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문이 열렸잖아. 신부야. 오늘 내 사랑 느껴봐. 신부야. 오늘 나도 네 안에, 너도 내 안에 머리를 두고 우리 한 숨 돌리자. (예수님은 급한 역사를 재촉하시는데 한 숨 돌리자 는 말씀에 혹시 내 주관의 계시가 아닐까 순간 생 각하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쉬자는 말은 영육으로 다 놔버리자는 말이 아니란다. 네가 기도할 때, 너는 내 사랑 안에서 쉬는 거야. 네가 찬양할 때, 너는 나의 기쁨 안에서 쉬는 거야. 네가 전도할 때, 너의 영은 생명의 기적을 낳는 따뜻한 모태 안에 머리를 두고 있단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너희 기도에 답하고 대화하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너희가 전도하는 생명들 함께 만나는 그 모든 시간 은 나에겐 사랑의 시간이며 휴식의 시간이란다. 신부야. 나도 너에게, 너도 나에게 휴식이 되기를 원한다. 새벽기도, 예배, 성령운동, 전도, 관리, 교육, 특강, 강의훈련, 모임, 재정관리, 성전관리, 촬영, 형제사랑, 회개, 찬양, 예술, 말씀정리, 육아, 자연성전 개발, 총무, 직장, 학업. 나와 만나는 휴식이길 원한다. 나와 일체되면 아무것도 힘들지 않아. 선생이 이 길 갈 수 있는 이유다. 일체된다는 것은 생각과 행실이 동일해지는 것이라고 했지. 그러나 일체되는 것에도 차원이 있다. 신부야, 가장 높은 차원의 일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 느냐? 바로 사랑이 일체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하는 것, 우리의 사랑이 동일해지는 거야. 진정 너의 그 사랑 받고 싶구나. 사랑의 복음은 사랑하는 자의 마음그릇에 담겨 전해질 때 가장 위력적이다. 나와 일체되어 땅 끝까지 복음 전하자. 내 심정 전하자. 나의 마음으로 땅 끝까지 복음 전하자. 내 심정 전하자. 너무 사랑하여 너에게 간구하였다. 너의 신랑, 영원히 너를 사랑할 나 주 예수다. 안녕